마가렛 수녀는 왜 모두의 적이 되었는가 - 17세기 수녀원의 내밀한 역사
크레이그 할라인 지음, 이영효 옮김 / 책과함께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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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수녀가 남긴 편지들이 17세기 유럽 종교인들의 내밀한 모습을 보여준다. 그들에게서 `나`와 `너`, `우리`와 `그들`로 서로를 구분하는 배타성과 세속적인 모습을 봤다는 것이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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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 뚱뚱해서 행복한, 보테로
이동섭 지음 / 미진사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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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술이 뭔지 잘 모른다. 그런데 보테로의 그림들을 보라. 왜이렇게 웃음이 나고 행복할까? 관객에게 행복함을 주는 것. 이것이 예술아닐까. 보테로는 내게 최고의 화가이고 그의 그림들은 내가 본 중 최고의 판타스틱한 작품이다. 보테로족 사람들을 보면서 마치 나를 보는 것 같은 기분(오잉?)에 뭔지 모를 위로도 받고, 진짜 기분 최고다!!!

 

 보테로의 정신도 오래도록 담아두려 한다. 예술은 일종의 소통수단이므로 개인이 소유하는 대신 미술관과 공공장소에서 전시되어 많은 사람들을 만나야 한다는 것, 자신이 정치적인 사람이 아니라고 하면서도 마약과 폭력으로 점철된 조국 콜롬비아의 상황을 증언해야 한다는 믿음, 미군에 의해 행해진 일명 '아부 그라이브' 사건을 주제로 총 96점의 작품시리즈를 만든 것(그중 56점을 기증) 등 그는 용감하게 냉혹한 현실과 마주하고 증언하는 사람이다.

 통통 튀어오를 것 같은, 폭신폭신 달콤한 솜사탕 같은 행복함뿐만 아니라 세상의 야만성을 마주하고 비판할 수 있는 예술가의 눈을 가진 보테로. 그를 만나서 나는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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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누슈 코르착의 아이들
야누슈 코르착 지음, 노영희 옮김 / 양철북 / 200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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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라는 이름으로 불렸던 그 시절을 떠올려본다. 난 10살이었을 때나 서른이 넘은 지금이나 달라진 것이 없는데... 앞으로도 영원한 아이라는 사실을 인식하게 되면서 내 안의 뭔가가 위로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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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도소 도서관
아비 스타인버그 지음, 한유주 옮김 / 이음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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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비 스타인버그의 <교도소 도서관>은 소설이 아니다. 작가가 실제로 교도소 도서관의 사서로 일하면서 겪은 인생이야기를 펼쳐 놓은 책이다. 이러한 기본적 배경을 알면서도 책을 읽으면서 간혹 들었던 '이거 소설 아닐까?'라는 물음표는 워낙 작가의 스토리가 쉽게 접할 수 없는 이야기이기 때문일 거다.

 

 우리는 이 책에서 교도소 도서관 사서라는 특이한 직업의 세계는 물론, 교도소 건물이 가지는 함축적 의미와 역사, 유태인으로서의 정체성 문제, 교도소 내 다양한 군상들, 재소자들 개개인의 인생사 등을 만날 수 있다. 작가는 재소자들과 우정을 나누면서도 그들이 악독한 범죄를 저질렀다는 사실을 놓치지 않는다. 그렇게 충돌하는 감정은 현재 그 재소자가 보여주는 진실한 노력, 예를 들면 글을 쓴다든가, 출소 후 미래를 계획한다거나 하는 모습에 응원을 하게 되는 것이다.

 

 작가는 자신이 사서라기보다는 기록보관인 쪽에 가까운 인간이라고 말한다. 과연 그 차이점은 무엇일까? 

 

 누군가가 시간을 들여 손으로 직접 쓴 편지를 쓰레기통에 던져버린다는 것이 다소 폭력적으로 느껴졌던 것이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들었다.    

 "누가 알겠어, 이것들이 미래에는 누군가에게 대단히 중요한 편지가 될 수도 있잖아?" (270쪽)

 

 아... 당신은 누군가가 그냥 몇 글자 끄적여 놓은 종이쪽지일지라도 쉽게 버리지 못하는 마음을 가졌는가..

 작가가 본인을 기록보관인에 가깝다고 규정하는 모습을 보면서 내가 기록관리학이라는 학문을 배웠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나는 어떤 마음에서 그 학문에 관심을 가졌었던가? 자격증 취득이라는 일종의 보험을 들어 놓는다는 생각도 있었지만, '기록'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그것을 '관리'한다는 것은 어떤 것인지 큰 흥미를 느꼈었다.

 기록이 소중한 이유는 작가의 말처럼 종이 부스러기가 역사가 될 수 있고, 누군가를 추억하는 기억의 흔적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작가의 소설보다 더 소설 같은 이 이야기 역시 그가 교도소 도서관 사서로 근무하면서 경험한 시간들의 조각을 쓰레기통에 던지는 대신, 마음 속에 하나하나 모아 놓았기 때문에 탄생한 것이 아닌가.

 교도소 도서관이란 대체 어떤 곳인가 라는 호기심이 마지막에는 기억, 흔적, 기록들의 의미를 곱씹게 만들어주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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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폭력 대화 - 일상에서 쓰는 평화의 언어, 삶의 언어
마셜 로젠버그 지음, 캐서린 한 옮김 / 한국NVC출판사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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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가 하는 말이 상대에게 폭력이 되어 상처를 줄 수 있다는 것을 인식해보자. 무심코 한 말이 누군가에게는 지워지지 않은 상처로 남을 수 있다. 물리적인 폭력으로 받은 상처보다 더 오래, 더 아프게 할 수도 있다. NVC(Nonviolent Communication), 즉 비폭력대화는 우리의 말이 물리적인 폭력행위보다 더 큰 상처를 남길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하고, 평화의 언어, 삶의 언어를 통해 아름다운 대화 ․ 아름다운 인생을 추구하기 위한 노력이다.

 

 어떤 사람의 행동이 못마땅할 때가 있다. 대체 저 사람은 왜 그 모양인가 싶어 화가 난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일어난다. 못마땅한 상대의 모습에서 아른거리는 내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나에게서 나타나는 소심함, 비겁함, 우유부단함 등을 타인에게서 보았을 때 나는 그를 ‘나쁘다’고 판단해버린다. 소심함, 비겁함 등 내 안에 담겨 있는 부정적인 것들로부터 벗어나고 싶다는 나의 욕구가 상대방을 판단 ․ 분석하고 비난하는 비극적 표현으로 드러나는 것이다. 만약 그 사람이 왜 그렇게 행동하고 말했는지 공감해보고, 그 이면에 존재하는 상대의 욕구에 공감하는 태도를 보인다면, 결국 내 안에 자리한 그 욕구 역시 해소될 수 있을 것이다.

 

 

우리의 대화에서 연민을 방해하는 것들

 

 현대사회와 직장문화에는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것이 곧 자신이 무능력자임을 인정하는 것이라는 분위기가 있다. 실제로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내 잘못을 인정하면 무능하다고 말하는 것 같고, 무시당하는 것 같아서 우울해진다. “가는 말이 고우면 오는 말이 곱다”가 아니라 “가는 말이 고우면 무시한다.”라는 우스갯소리도 있지 않은가.

 

 현대사회의 성과주의, 물질주의 같은 풍조가 이런 분위기를 더욱 고착시킨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것이 어려운 사회에서는 잘못의 모든 책임은 내가 아닌 타인에게 있다고 여기게 된다. 이런 생각이 당연해지면 자신을 제대로 바라보기가 어려워지고, 타인은 불신의 존재가 된다. 우리의 대화는 날카로운 바늘처럼 서로를 찌르고, 남는 것은 상처뿐이다.

 

 ‘엄마 친구 아들’, ‘엄마 친구 딸’의 줄임말인 엄친아, 엄친딸 이라는 용어는 나보다 똑똑하고 멋진 대상을 상징하는 관용어가 되었다. 이 용어의 빈번한 사용은 우리 사회가 서로를 비교하고 평가하는데 얼마나 익숙한 곳인지 보여준다. 우리가 내뱉었던 비교하는 말들은 타인은 물론 나 자신의 자존감을 한없이 무너뜨린다. 비교하는 대화법은 타인을 상처 주는 것에서 그치지 않는다. 그 폭력성이 내 안으로 들어와 자기화(自己化)하여 고착되어 버리는 것이다. 모든 폭력은 자신의 고통이 다른 사람에게서 왔다고 착각하면서 상대가 당연히 벌을 받아야 한다고 믿을 때 오는 피할 수 없는 결과이다.

 

 사람이 진정 평온해질 수 있다면, 그때는 자신과 타인을 비교하는 마음이 사라진 때일 것이다. 우리는 모두 고민과 고통을 안고 산다. 아무 걱정 없고 행복해 보이는 어떤 사람이 실제로 말 못할 고통을 안고 사는지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또한 누군가는 한심하고 답답하게만 느껴지는 나를 부러워할 지도 모른다. 어떤 대상의 실체를 제대로 알지 못하면서 단순히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부분과 자신을 비교하는 일은 스스로를 학대하는 나쁜 버릇이다. 결국 소소한 일상과 세상이 주는 즐거움, 신기함, 호기심까지 사라져버리게 만든다.

 

 

우리의 말은 사람을 죽일 수도, 살릴 수도 있다

 

 󰡔적도의 남자󰡕라는 드라마가 있다. 이 드라마는 인간이 얼마나 악독해질 수 있는지, 얼마나 약한 존재인지, 그래도 인간은 모든 것을 용서할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을 이야기했다.

 여기 한 순간의 판단으로 평생 괴로움을 안고 살아가는 이장일이라는 캐릭터가 있다. 이장일의 아버지 이용배는 우연히 살인현장을 목격하지만, 아들 이장일의 학업을 후원하는 조건으로 살인을 묵과해달라는 진노식 회장의 제안을 받아들이고 만다. 전도유망한 아들의 미래가 가난한 형편 때문에 무너질까 두려운 아버지의 안타까운 부정(父情)인 것이다. 그러나 이용배의 선택은 평생 부자(父子)의 삶을 옭아매고 결국 파멸시킨다. 살인사건에 대한 진실이 점점 드러나면서 궁지에 몰린 이용배는 아들에게 “차라리 내가 죽는 게 낫겠지, 그래야 너한테 아무런 해가 없겠지”라고 말한다.  이때 이용배는 오직 아들을 잘 키워보겠다는 이유로 선택한 길이 오히려 아들의 인생에 죄의식으로 남게 된 것에 아버지로서 애통한 마음이 들었을 것이다. 아들로부터 “아니에요, 아버지. 다 저를 위해서 그랬다는 거 알고 있어요.”라는 위로의 말을 듣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그런데 아들 이장일은 차라리 내가 죽는게 낫겠지 라는 아버지의 말에 “그럼 그러세요”라고 말해버린다. 결국 이용배는 자살을 선택한다. 이 선택에는 자신의 죗값을 치르겠다는 뜻도 있겠지만, 아들의 그 한 마디가 무엇보다 크게 작용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말의 힘을 알고 있다. 말 한마디가 천 냥 빚을 갚는다고 했다. 그렇다면 말 한마디가 천 냥 빚을 생기게 할 수도 있는 것이다. 어쩌면 가장 무서운 무기는 폭탄이나 총이 아닌 사람의 말일지도 모른다. 당장은 그 상처가 보이지 않더라도 머릿속, 마음속에 남아 확대 재생산되면서 자신을 괴롭히는 보이지 않는 무기 말이다.

 

 

내가 선택을 하자 그것은 꽃이 되었다

 

 우리는 사는 동안 자신이 좋아하는 일만 하고 살 수는 없을까? 아침마다 직장에 가는 일이 즐겁지 않지만 우리는 꾹 참고 출근을 한다. 왜 그럴까? 왜 나는 즐겁지 않은 일을 하기 위해 아침마다 이렇게 분주한 것인가? 월급을 받아야 생활이 유지되기 때문이다. 또 직업을 통해 사회의 일원으로서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고 싶기 때문이다. 그럼 우리는 생활을 유지해야 하고, 능력을 발휘하고 싶은 욕구가 있기 때문에 일을 하고 있는 것이 된다. 내가 왜 이 일을 하는지 그 이유를 생각하는 행위는 어떤 행위에 대한 무조건적인 당위성 대신 내 행동의 이유에 대한 설득력 있는 해답을 찾을 수 있게 도와준다. 때문에 그 이유가 부당하다고 느껴지면 다른 대안을 찾거나 그 행위를 중단하는 선택을 할 수 있다. 그리고 “나는 이러이러한 이유로 이러한 행위를 하기로 선택하였다” 는 주체적인 입장에서 긍정적으로 말할 수 있게 된다.

 

 특별한 이유 없이 단지 “나는 운동을 해야만 해, 영어공부를 해야만 해, 숙제를 해야만 해” 같이 “~을 해야만 한다”는 식의 대화법은 오히려 그 행동에 저항하게 만든다. 이것은 나 스스로 그 행동의 필요성을 인식하지 못하면서 타인의 강요, 군중심리 등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데서 생기는 결과이다.

 “나는 살을 빼서 건강해지고 싶어. 내가 건강해지면 우리 가족들은 무척 기뻐할 거야. 나는 운동을 열심히 하겠어”, “나는 세상을 보는 눈을 키우고 싶어. 그러니까 더 열심히 책을 읽고 공부할 거야” 와 같이 어떠한 이유 때문에 그 일을 하기로 선택했다는 주체적 ․ 긍정적인 대화법은 그 행위의 주인공은 나 자신이며, 비로소 그 일이 나에게 ‘’으로 다가왔음을 의미한다.

 

 

우리가 나눈 감사의 말은 우리의 삶을 풍족하게 한다

 

 우리는 자신이 인정받지 못한다고 생각할 때 크게 고통을 느낀다는 것을 알고 있다. 우리들은 직장, 학교, 가정 등 우리가 생활하고 있는 공간에서 의미 있는 존재가 되기를 원한다. 직장 상사, 동료가 나의 업무능력을 칭찬해줄 때 나는 의미 있는 존재가 된 느낌이 든다. 학교에서 선생님께 칭찬을 들을 때도 그렇다. 부모님, 형제들이 나를 칭찬할 때도 그렇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우리는 칭찬의 말을 통해 자신의 존재감을 인정받길 원하면서 동시에 내가 과연 칭찬을 받을만한 자격이 있는지 의심하고 불안해한다.

 

 누군가가 내게 감사의 마음을 표현할 때 그 말 그대로 편하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기대에 부응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생겨서 긴장되고 걱정스럽기 때문이다. 또한 뭔가 대가를 요구하는 건 아닌가 의심이 들기도 한다. 이것은 상대방이 표현한 감사의 말에 내가 공감의 자세를 갖지 않았기 때문이다. 상대방이 내게 표하는 감사의 말로 나는 나의 행동이 그의 행복에 기여했다는 감동을 얻을 수 있다. 감사의 말 때문에 우리 모두가 서로의 삶을 풍족하게 하고 있는 것이다.

 

 감사의 말이 우리 모두의 삶을 풍족하게 하는 것을 인식하면, 내 주위 사람들이 무엇으로 내 인생을 풍성하게 해주고 있는가에 더 많은 주의를 기울이고, 그것에 감사를 표현하는 기술을 기르기 위해 노력하려는 마음을 가지게 된다. 이는 주위 사람들이 하는 작은 행동에도 감사하는 마음을 갖게 해준다. ‘고맙다’, ‘감사합니다’ 와 같은 말을 서로 나누는 행위가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지 알려준다.

 

    

지금 당장 그 사람에게 감사한다고 말해보자

 

 책의 저자 마셜 B. 로젠버그는 <감사표현을 주저하는 마음 극복하기>에서 자신의 삼촌 줄리어스를 떠올린다. 그는 항상 따뜻하고 애정 어린 웃음으로 아픈 할머니를 간호했던 삼촌을 떠올리며 그가 자신에게 얼마나 중요한 사람인지 표현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자신이 직접 말하지 않아도 삼촌은 이런 마음을 알고 있겠지 라며 직접적으로 감사를 표현하는 일을 쑥스러워한다. 하지만 우리는 이렇게 쑥스러운 느낌이 들더라도 직접적으로 감사의 표현을 듣고 싶어 하지 않던가. 저자는 그 순간 ‘말은 가슴 깊이 느끼는 진실을 전하기에는 불충분한 수단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가 배웠듯이 해야 할 가치가 있는 것은 서투르게라도 할 가치가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얼마 후 열린 가족모임에서 마셜은 삼촌 옆에 앉아 자신이 그를 얼마나 사랑하고 감사해하고 있는지 직접 말한다. 또한 집에 돌아와서 그날 느낀 감동의 마음을 담아 시를 지어 삼촌에게 보내드렸다고 한다. 그리고 덧붙인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로는, 삼촌은 얼마 후 돌아가시기 전까지 날마다 그 시를 읽어달라고 하셨다고 한다.”

 

 감사의 말은 가장 아름다운 말이다. 내가 그에게 한 칭찬은 오로지 서로의 기쁜 마음을 나누기 위해서이다. 누군가 나에게 감사의 말을 한다면 역시 어떠한 거짓 겸손이나 우월감 없이 오로지 기쁜 마음으로 즐거움을 나눌 수 있게 되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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