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비스마르크 - 전환의 시대 리더의 발견
에버하르트 콜브 지음, 김희상 옮김 / 메디치미디어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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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스마르크란 이름은 근대 유럽사를 접할 때면 늘 등장하는 인물이었다. '철혈재상'이라 불리는 그는 프로이센을 중심으로 한 독일 제국을 건설했고 내치와 외교에 발군의 실력을 발휘해 독일이 강대국으로 발돋음하는 데 있어 일등공신이라 일컬어지고 있다. 


그동안 단편적으로 접했던 '비스마르크'라는 인물에 대해 더 자세히 알아보고 그의 생애가 걸은 길을 동행하여 근대 유럽사를 들여다 보고 싶어 <지금, 비스마르크>를 읽게 됐다. <지금, 비스마르크>는 비스마르크의 전기라 할 수 있는 책으로 비스마르크의 생애 전반을 다루고 있으며 특히 그가 정치에 입문하고 외교적 역량을 펼치는 과정을 담고 있다. 

 



1815년 명문 귀족의 자제로 태어난 비스마르크는 고등교육을 받았으며 영어, 프랑스어, 펜싱, 승마, 수영 등에 뛰어난 재능을 보였다. 청년 시절은 모범생이라기 보다 방탕한 일탈을 즐기며 보냈으며 법대를 졸업 후 여러 지역에서 공직에 종사했지만 단순무료하고 수직적 일처리에 싫증을 느끼고 사퇴와 재임을 반복하다 1845년 아버지가 사망하자 유산으로 물려받은 쇤하우젠 영지에서 수리조합장 직을 얻어 낸다. 수리조합장은 엘베강의 범람을 예방하고 관리하는 독립적인 공직이었는데 이를 시작으로 정치활동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1847년 32세의 비스마르크는 요하나 폰 푸트카머와 결혼해 평생의 반려자이자 든든한 지원군을 얻었고 통합의회의 의원자격을 획득하면서 본격적으로 정치 무대에 뛰어든다.

프랑크푸르트 연방의회에서 주도권을 쥐려는 오스트리아에 맞서 프로이센의 주도적 위치를 구축하려는 비스마르크의 노력은 비스마르크가 가진 냉철함과 외교적 수완의 비상함을 알리는 기회가 됐다. 의회에서 보수적 입장에서 정국과 정책을 변론하거나 비판한 비스마르크의 달변은 보수의원들 뿐 아니라 정적들에게조차 감탄을 자아내게 했다. 


1848년 발생한 '3월 혁명'으로 비스마르크의 정치적 입지는 강화된다. 왕정 타도를 기치로 발생한 3월 혁명에 의해 비스마르크를 비롯한 소위 보수파는 잠시 수세에 몰렸는데 비스마르크는 특유의 언변(문체)을 이용해 언론을 이용해 상대 정치 세력을 신랄하게 비판하고 왕정의 회복을 위해 노력함으로써 보수파에 깊은 각인을 남겼다. 


당시 독일은 연방이라는 이름 하에 많은 왕국들이 느슨하게 엮여 있었는데, 비스마르크는 프로이센이 독일 연방의 수뇌가 되어야 한다고 여겼고 보수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조차 보수인 비스마르크는 많은 프로이센인들이 염원하던 통일이란 프로이센이 프로이센다움을 잃지 않고 프로이센이 큰 양보를 하지 않는 범주 내에서만 합당하다고 주장했다.  


1850년 프로이센과 오스트리아 사이에 맺어진 '올뮈츠 협약'은 프로이센이 연합(통일)을 포기하며 국경지대에서 군대를 철수한다는 항목을 담고 있어 연방 국가로의 통일을 원하는 국민들과 정치인들로부터 빈축을 샀고 왕과 보수파가 곤란에 처했는데 비스마르는 같은 해 12월에 열린 의회에서 '전쟁이란 애궂은 프로이센의 젊은이들을 사지로 모는 중차대한 일로써 정치인들의 가벼운 말로 시작될 수 없음'을 강조한 명연설로 왕과 보수파를 위기에서 구해내 큰 주목을 받는다. 덕분에 이듬해 프로이센을 대표하는 외교관 직에 (외교에 문외한이나 다름없었음에도) 비스마르크가 임명된다. 


1851년부터 1862년까지프랑크프루트, 상트페테르부르크, 파리에서 프로이센의 사절로 11년을 보낸 비스마르크는 각국의 상황과 이해관계 그리고 주요 인물과 그들의 속내를 냉철히 분석해 독일과 유럽을 가장 잘 아는 사람으로 거듭났다.      


크림전쟁(1853년)은 러시아와 오스만투르크 간의 분쟁으로 시작됐지만 이내 영국, 프랑스, 오스트리아가 참전하는 국제전으로 변모했다. 오스트리아는 프로이센의 참전을 독려했지만 비스마르크는 중립을 주장했고 종전 때까지 참전하지 않았다. 프로이센 입장에서 크림전쟁에 뛰어드는 것은 실익이 없을 뿐더러 연방에서 오스트리아의 입지를 높이는 것이기에 피한 것이다.

1857년 황제가 뇌졸중으로 쓰러지며 왕세자에게 왕관이 돌아가면서 비스마르크의 입지에 변화가 생겻다. 황후가 된 아우구스타가 비스마르크를 꺼려했기 때문에 비스마르크는 프랑크푸르트 연방의회에서 상트페테르부르크로 임지를 옮겨야 했다. 사실상 좌천이었다.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그리고 이어진 파리에서의 근무는 비스마르크가 러시아와 프랑스의 위정자들과 내정 상태를 파악할 수 있게 했다. 1862년 프로이센 의회선거에서 자유주의자들이 압승을 거두면서 왕과 보수당의 정책이 위기에 몰렸다. 왕 빌헬름 1세는 군대개혁을 필두로 한 자신의 정책을 유보할 생각이 없었기 때문에 자유주의자들과의 갈등이 불가피했고 이를 돌파하기 위해 비스마르크를 전격적으로 수상과 외무 장관에 임명한다.

수상이 된 비스마르크는 자유주의자들이 장악한 의회와 내각의 대립을 중재하고자 노력했고 왕과 내각의 의견을 자유주의자들이 납득할 수 있도록 해명하고자 했다. 결과는 의회의 반대로 서로의 입장차만 확인하게 되는 경우도 많았지만 적어도 과거 비스마르크에게 각인돼 있던 극단적 보수주의자라는 오명은 벗게 됐다. 대외적으로 비스마르크는 독일연방에서 오스트리아가 주도권을 행사하는 것을 지속적으로 막는데 치중했다. 이것은 프로이센의 연방 내 입지를 다지는 과정이기도 했다. 프로이센의 단기 목표는 독일 연방을 오스트리아와 동등한 권리를 갖고 통치하는 것이었고 장기 목표는 프로이센이 주축이 된 독일 연방의 구성이었다.

프로이센과 오스트리아  간의 주도권 경쟁은 필연적으로 양측의 갈등을 심화시켰고 협상으로 다다를 수 있는 만족할만한 성과가 없음이 확실해지자 1866년 독오전쟁(프로이센 vs 오스트리아)이 발발한다. 해를 넘기지 않고 짧게 진행된 독오전쟁에서 프로이센이 완승함으로써 독일 연방에서 오스트리아를 배제시켰으며 비스마르크가 염두에 뒀던 프로이센 중심의 독일 연방 구성을 얻을 수 있었다. 비스마르크는 발빠르게 움직여 독일 연방을 구성하고 연방 헌법을 입안하였다. 이렇게 대두된 연방에서 비스마르크는 첫 번째 수상이 되었다. 그러나 이 독일 연방은 북부 독일에 한정된 불완전한 통일이었기에 비스마르크를 비롯한 독일 연방의 수뇌부들은 온전한 독일 통일에 대한 염원을 품고 있었다. 비스마르크는 북독일 연방의 내실을 다지고 온전한 독일 통일을 위한 발판을 다지는 데 온 정성을 쏟았다. 


남부 독일을 독일 연방으로 끌어들여 독일의 완전한 통일, 즉 독일 제국 건설의 기회는 의외로 빨리 찾아왔다. 독오 전쟁에서 오스트리아 편에 서서 부차적 이득을 취하려 했던 프랑스는 예상과 달리 프로이센이 너무 빨리 승리함으로써 쓴 맛을 다셔야 했으며 스페인에서 일어난 혁명으로 새로운 국왕을 선출함에 있어 자신들이 탐탁치 않아하는 인물을 프로이센이 지원하자 갈등의 골이 깊어졌다. 결국 프랑스는 1870년 강대국으로서의 자존심을 충족시키고 실리를 얻기 위해 프로이센에 선전포고 후 즉각적으로 전쟁에 돌입한다. 프로이센을 중심으로 한 독일 북부와 독일 남부는 프랑스에 대항해 공동전선을 펼쳐 응대했으며 이탈리아나 오스트리아 같은 다른 나라들이 전선에 투입될 겨를을 주지 않고 빠른 승전을 거듭해 파리를 함락했다. 독일 연방은 1871년 프랑스와 평화조약을 채결하면서 전쟁의 책임을 물어 알자스로렌 지방을 획득한다. 대프랑스전의 승리를 계기로 독일의 북부와 남부는 통일에 대한 열기가 더욱 고조되었고 이를 기회로 독일 제국이 수립된다. 그리고 비스마르는 독일 제국의 초대 수상으로 임명된다. 


비스마르크는 이제 제국의 내정과 더불어 국제관계에 힘을 쏟았다. 신생 제국에 위태하고 의심스러운 눈길을 보내는 주변 강대국들에 트집잡히지 않고 평화를 유지하고자 외교에 공을 들였는데 특히 독일 연방에 패해 분루를 삼키며 복수의 기회를 노리는 프랑스가 다른 강대국들과 연합하는 것을 막고자 했다. 비스마르크는 예방전쟁(적의 공격이 예상되어 미리 선제공격 하는 것)을 거부했으며 독일 제국의 군사력을 강화하는 것만으로도 전쟁억지력을 지닌다고 생각했다. 그는 "전쟁이 쉬워 보일 때 커지며, 전쟁이 어려워 보인다면 사라진다. 우리의 힘이 강하면 강할수록, 그만큼 전쟁 은 일어나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비스마르크는 제국의 입법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는데 제국 의회의 설립, 통일 화폐의 발행, 제국 은행 설립, 법인과 주식회사 설립의 자유화, 제국 언론법, 거주 이전의 자유 등을 통해 시민 사회의 출현을 앞당겼고 자본주의, 자유경쟁,계급사회의 재편에 이바지했다. 전후 독일 제국의 경제상황은 호황을 넘어 과열에 이르렀는데 1873년 결국 금융권과 기업이 줄도산하면서 수많은 피해자를 낳았다.(당시 금융권과 주식회사에 관여하는 유대인이 많아 독일인의 반유대주의가 심해졌다.) 호황이 갑작스레 끝나자 제국의 경기는 장기둔화에 빠질 기미를 보였고 비스마르크는 직접 경제사안들을 챙기며 상업과 조세 정책의 방향을 새롭게 잡아나갔는데 특히 보호관세의 도입으로 국내 산업과 노동자를 보호하고자 했다.

소위 문화투쟁이라 불리우는 개신교와 가톨릭교의 갈등도 비스마르크의 골머리를 아프게 했다. 가톨릭은 교황을 중심으로 국가 전반에서 교회의 권력을 유지/확장하고자 했고 독일 제국에서는 이를 표방하는 정당까지 등장해 상당한 인기를 얻고 수십 개의 의석을 차지했다. 가톨릭 사회로의 역행도, 신생 제국의 분열도 원치 않았던 비스마르크는 가톨릭 세력과 가톨릭 정당이 지나치게 국정에 관여하는 것을 견제했다. 1878년 문화투쟁의 상징이던 교황 비오 9세가 타개했고 그 뒤를 이은 레오 13세가 교권의 완고한 주장이 아닌 타협으로 가닥을 잡으면서 문화투쟁이 사그라질 때까지 비스마르크는 교회에 대한 압박을 가했으며 이후 점차적으로 완화했다. 

비스마르크는 사회보장제도를 도입해 노동자들의 권익을 보호하고자 했다. 1880년대에 이미 산업재해보험,  의료보험제도, 연금제도, 그리고 상해보험 등을 도입함으로써 국민의 복지향상을 꾀했다.

외교는 비스마르크가 공직에 몸을 담은 이후로 시종일관 공을 들인 분야이다. 불가피하게 오스트리아와 그리고 프랑스와 전쟁을 벌이긴했지만 그의 방침은 전쟁을 피하기 위해서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가동시켜야 한다는 것이었다. 1880년대 복수심에 불타는 프랑스를 진정시키기 위해 주변국에 외교적 노력을 기울인 점이나 오스트리아와 러시아의 전쟁의 발발을 무마한 그의 외교력은 칭찬받아 마땅했다. 그의 신념은 그가 1888년 제국 의회에서 행한 연설에서 언급한  "우리 독일인은 신을 두려워한다. 그러나 신 외에 세상에서 두려운 것은 없다."는 광오한 자심감에서 엿볼 수 있는데 그럼에도 비스마르크는 전쟁의 승패와 상관없이 평화의 유지가 최고의 승리라는 점을 인식하고 있었다.


1888년 프로이센에서 제국까지 오랜기간 독일을 통치한 빌헬름 1세가 91세로 서거했다. 그의 뒤를 이은 프리드리히는 병약한 몸으로 몇 개월을 카이저(황제) 자리에 앉아있다 사망했고 빌헬름 1세의 손자인 빌헬름 2세가 황제가 되었다. 빌헬름 2세는 재능은 있으나 인내가 없고 자신이 주목받는 정국을 원했기 때문에 비스마르크와는 양립하기 힘들었다. 또한 빌헬름 2세의 곁에 있는 조언자들은 대부분 비스마르크의 정적인지라 비스마르크와 빌헬름 2세의 관계는 악화일로를 걸었다. 많은 사안들에 대해 의견이 충돌했고 결국 1890년 비스마르크는 타의에 의해 사직서를 제출해야 했다. 독일 제국의 창설자로서 찬란한 조명 아래 퇴장해야 했을 비스마르크의 퇴임은 초라하고 급하게 처리되었다. 20여 년 동안 프로이센을 위해, 독일 제국을 위해 동분서주한 위대한 인물은 그렇게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지금, 비스마르크>를 통해 살펴본 비스마르크는 '철혈재상'이라는 이미지에 담긴 '철(iron)'과 '혈(blood)'처럼 강경일색의 지도자가 아니었다. 


그는 뛰어난 언변을 바탕으로 한 위기관리 능력이 출중했고 좋은 기회를 포착하는 재능도 뛰어났다. 전략적 목표를 염두에두고 유연한 대응으로 원하는 바를 얻어냈다. 국내와 국제적인 갈등을 해결하는 방법으로 자주 등장하는 무력에 기대기 보다 가능한 한 협상과 외교로 문제를 풀어나가고자 했다.


비스마르크라는 인물이 목표지향적이고 실리를 추구하는 현실주의자였다는 것을 들여다 볼 수 있었으며 특히 그가 남긴 몇몇 어록은 '참 말을 저렇게도 잘하는구나'라는 감탄을 자아냈다. 그가 세운 목표를 완수하고자 압박을 가하거나 당근을 주거나 또은 애둘러 돌아가는 모습에서 비스마르크가 지닌 상황판단 능력과 기지를 볼 수 있었다. 그가 추진했던 수많은 정책들은 받아들여져 독일 제국에 흡수된 것도 많지만 의회와 왕가의 반대로 무산된 것 또한 그만큼 많음을 알게 됐다. 몇몇 책에서 비스마르크가 독재자로 표현되기도 하는데 이것은 그의 활동 가운데 일부에 편향된 판단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비스마르크의 삶에서 독일을 비롯한 유럽의 근대화를 보게 되고 그의 업적을 상기해보면 그가 남긴 흔적(유연한 외교, 산업육성, 사회보장제도, 노동과의 권익 수호 등)이 현대사회에까지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알게 된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읽고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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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의 역사 - 부자의 탄생과 몰락에서 배우는 투자 전략
최종훈 지음 / 피톤치드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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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금을 막론하고 부(富)에 대한 동경과 욕심은 끊임없이 이어져 왔다. 시대에 따라 부의 관점은 변화했는데 이를테면 구약성경에 등장하는 욥이 살던 시대에는 수많은 가축의 수가 부를 상징했으며 크라수스가 살던 로마시대에는 부동산이 부를 측정할만한 수단이었다. 잉글랜드를 통째로 집어삼킨 노르망디 윌리엄 공은 정복전쟁을 통해 국가, 영토, 그 안에 포함된 막대한 재산들을 소유함으로써 부를 과시했으며 아프리카의 서쪽에 위치한 말리 왕국의 수장, 만사 무사는 엄청난 황금으로 그 부를 과시했다. 세월이 흘러 19세기에 이르러 산업화가 급속도로 진행되면서 부자가 되기 위한 수단이 바뀌었는데 록펠러는 석유로, 포드는 자동차로, 그리고 카네기는 철강에서 두각을 드러내며 어마어마한 부를 축적했고 현재까지도 그들의 이름 앞에는 석유왕, 철강왕,  자동차왕 등의 칭호가 붙어있다. 현대의 조만장자들도 등장하는데 투자의 귀재 워렌 버핏, 마이크로소프트로 세계적 부를 축적한 빌 게이츠, 애플로 스마트폰의 혁신을 이끈 스티브 잡스, 페이스북의 창시자 마크 저커버그, 세계적 물류시장을 구축한 아마존의 제프 베조스 등이다.  



<부자의 역사>의 저자 최종훈은 대학을 졸업한 후 주식관련 분야에 종사하다 20대 후반에 투자회사를 설립해 운영하고 있으며 세기를 뛰어넘는 부를 축적한 동서고금의 CEO를 들여다 보며 이들에게 어떤 특성이 있어 부를 쌓고 명성을 떨쳤는지 추적하고 있다. 저자가 생각하는 부자의 공통점으로 독창성, 진실성, 성실성, 계획성, 그리고 개방성의 5가지 요인을 꼽는다. 시대를 막론하고 조만장자의 반열에 오른 거부들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위의 5가지 특징을 가지고 있음을 말한다. 거부로 언급된 위인들은 독창성이 아주 뛰어나 남들이 미처 생각치 못한 부분에 눈을 돌리거나 모두가 알고 있지만 실행하지 못한 부분을 진취적으로 결행하는 모습을 모인다. 



<부자의 역사>라는 책에 등장하는 15인의 조만장자들의 삶을 들여다 봄으로써 당시의 역사를 배우는 데 더해 부자나 선구자들이 품었던 진취적인 생각이 사회적 여건과 맞아 떨어졌을 때 엄청난 시너지를 불러오게 됨을 알게 된다. 특히 근현대 조만장자의 반열에 오른 이들의 삶은 사회적 변화를 냉철히 분석하고 자신들의 계획을 세웠으며 시련이 다가올때조차도 신념을 잃지 않고 정진했다. 



'부자는 하늘이 내린다'는 속담이 있다. 조만장자의 경지에까지 오르고자 한다면 하늘의 도움, 즉 천운이 따라야 가능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현대 사회의 조만장자의 위치에 있는 자들의 역사를 살펴보다보면 이들이 가진 재능은 천운으로 비롯됐을지 몰라도 이들의 통찰력과 결단력 그리고 진취적인 행보는 이들 자신의 노력과 의지의 산물이라 보는 것이 더 객관적이라 생각한다. 20세기 후반 3차 산업혁명의 시기에, PC와 인터넷이 상용화/대중화 되었고 이런 사회적 흐름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인지하고 있던 바이다. 많은 사람들이 IT 관련 사업들이 크게 성장할 것이라는 기대를 품고 그 시장에 발을 디뎠다. 그러나 전세계적으로 위명을 떨칠만큼 성공한 사람은 손에 꼽을 수 있을 정도인데, 왜 어떤 사람은 성공의 트로피를 들어올렸지만 다른 사람들은 그러지 못했을까? 그에 대한 힌트가 담긴 책이 바로 <부자의 역사>이다.



역사를 좋아하는 독자로서 <부자의 역사>에 담긴 에피소드는 흥미롭고 유익한 정보를 제공한다. 특히 조만장자들이 갖고 있던 하마르티아(hamartia, 빗나감, 일탈, 결함, 심리적 결점 등)가 어떻게 작용하여 그에게 동기를 부여하고 그를 성공으로 이끌었는지를 페리페테이아(peripeteia, 운의 역전, 반전 등)와 함께 설명하는데, 주인공은 하마르티아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조우하게 된 페리페테이아로 큰 성공을 거두게 된다는 이야기이다. 누구나 마음 한켠에 하마르티아를 지니고 살아갈 것이다. 대부분 하마르티아는 숨겨야 할 무엇의 위치이거나 없애고 싶은 결점의 위치에 머무를텐데 소위 성공한 사람들은 이 하마르티아조차도 자신들이 발전하는 동기로 이용한다는 생각을 얻게 된다. 페리페테이아는 하마르티아를 마주하고 이겨내는 과정에 등장하는 천운같은 것으로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격언과 일치한다. 



일상에 지칠 때면 부자가 되고 싶다거나 부자들이 누리는 삶을 영위하고 싶다는 망상을 하기도 하는데 <부자의 역사>를 읽으며 부자라는 위치가 그냥 주어진 것이 아니라 치열한 경쟁과 노력의 산물이라는 사실, 경우에 따라서는 자신의 모든 것을 걸어야 얻을 수 있는 자리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범인에 불과한 나 자신이 엄청난 부자의 반열에 오르긴 요원하지만 내가 살아가는 삶을 자주 되돌아보고 반성하고 고치고 노력하다보면 적어도 오늘보다 나은 내일, 올 해보다 나은 내년을 기대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내게는 그것이 '부'이고 희망이며 지금을 살아갈 용기와 지혜가 된다. 



<부자의 역사>는 역사서처럼 서술되었다기 보다 막대한 부를 축적한 사람들의 삶을 소설처럼 쓴 이야기로 쉽고 재미있게 진행되고 있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흥미를 느낄 수 있을법한 주제와 인물의 선정, 그리고 곁에서 이야기를 들려주는 듯한(또는 재미있는 수업을 해주는 듯한) 저자의 문체가 기억에 남을듯하며 이와 비슷한 형식을 가진 서적들이 많이 발간되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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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능의 역사 - 인류의 기원에서 인공지능까지
호세 안토니오 마리나 지음, 윤승진 옮김 / 라이팅하우스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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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를 읽고 저자의 약력을 살피며 <지능의 역사>라는 책에 담긴 내용과 그를 표현한 삽화에 끌려 서평단에 신청하게 됐다. 저자 '호세 안토니오 마리나'는 스페인의 대표적 철학자이자 교육자로 실용철학에 관심이 많아 '교육 동원' 운동을 이끌었고 자녀 교육을 걱정하는 부모들을 돕기 위한 목적으로 설립된 '부모대학재단'을 운영하고 있다. 


<지능의 역사>는 '우스백'이라는 미래에서 온 고도의 지능을 가진 가상의 인물이 '인류의 지능'이 어떻게 생겨나고 어떻게 발달해 왔는가를 파헤쳐가는 과정을 소개한다. 우스백의 눈을 빌려 6백만 년 전 유인원에 가까웠던 원시인류가 현재의 문화를 이룩하기까지 겪은 과정을 이야기하고 어떤 동인이 그런 진화를 이끌었는지 추적하고 있다.  


현생 인류, 사피엔스는 20만 년 전에 어떤 계기로 말을 하게 되고 또 수만 년 전에 말을 문자로 표현할 수 있는 사건을 겪었다. 신체 무게의 2%에 불과한 뇌에 혈류의 20%를 공급하는 사피엔스는 상상력이라는 무기를 장착하면서 그것을 언어로 표현할 수 있게 되었고 문자로 적어나감에 따라 급격한 성장을 이뤄냈다. 인류가 만든 도구인 언어와 문자는 인류의 지능의 발전을 가속화시켰고 높아진 인류의 지능은 더 정교하고 더 훌륭한 문화를 창출해 냈다. 


본능에 충실한 여느 동물과 달리 사피엔스는 자연이 부여한 본능에 반대되는 성향을 띠지만 공동의 이익에 부합한 다양한 도구를 개발/발전시켰는데 정의, 법규, 도덕, 종교, 과학 등이다. 인류가 만든 이러한 도구들은 인류 사회를 유지하는 근간으로 작동했고 '강자가 약자를 억압하는' 자연의 생리를 벗어나 원초적 본능을 넘어선 과업을 수행하는 기회를 제공했다. 


사피엔스가 사는 세상은 현실과 정신세계, 그리고 언어로 이루어진다. 사피엔스는 언어를 통해 상상할 수 있고 상상한 바를 언어로 표현할 수도 있다. 언어가 있기에 현실의 실체는 다른 개체에게 전파될 수 있으며 언어로 얻은 정보는 실체를 보지 못했더라도 정신세계의 상상으로 이미지화할 수 있다. 


사피엔스는 행복을 추구한다. 개체에 따라 행복감을 느끼게 하는 요소가 다를 수 있는데 어떤 개체는 물질적 풍요를, 어떤 개체는 정신적 만족을, 또 다른 개체는 타인으로부터의 존경을 갈망하기도 한다. 어쨌든 행복은 사피엔스들의 지향점이다. 행복를 얻기 위해 행해야하는 행동은 이성과 감정에 따라 유발된다. 사피엔스는 항상 이성적이지도 않지만 완전히 감성적이지도 않은 상태에서 이성과 감정이 상호작용하여 행동이라는 결과를 만들어 낸다. 


인간의 뇌는 이중 지능(생성 지능과 관리 지능)을 가지고 있다. 생성 지능은 상상, 꿈, 이야기 등을 만드는 능력을 뜻하며 우리가 머리 속으로 생각해 낼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한다. 관리 지능은 생성 지능이 만들어 낸 것들을 검토하고 검열하여 밖으로 표현될 것들과 그렇지 말아야 할 것들을 구분하는 작업을 시행한다. 생성 지능이 과열되거나 관리 지능이 약화되면 다양한 정신질환을 야기할 수 있는데 강박 장애, 환각, 충동 조절 장애, 자폐증, 조현병 등이 발생할 수 있다. 인간의 지능 발전은 생성 지능을 정복하고 재설계하는 과정이며 자기 제어를 확장해 가는 과정이다. 스마트폰으로 비유해 보면 인간의 뇌는 더 많은 어플리케이션을 받아들였고 어플리케이션 역시 발전을 거듭해 관리(운영체계)에 대한 힘을 강화시켰기 때문에 점차적으로 생성 지능과 관리 지능이 모두 발달해가는 과정을 밟게 됐다. 


인간은 사회를 구성하고 문화를 생성했는데 이것은 인간의 지능 발달을 촉진했다. 학교와 같은 선대의 경험을 학습하는 시스템이 구축되었고 개개의 지능이 모여 사회적 지능으로 융합되면서 보다 높은 차원의 지능이 형성되었다. 이 사회적 지능을 문화라 칭할 수 있는데 문화는 인간의 지능에 의해 만들어졌지만 인간의 지능 발달을 가속화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개인의 지능과 사회적 지능이 서로 영향을 주고 받으며 서로를 발전으로 이끄는 것이다. 


우스백은 인류의 역사를 관찰하며 3개의 축의 시대를 생각해 낸다. '첫 번째 축의 시대'는 대략 1만 년 전 수렵 채집 생활을 하며 유랑하던 인류는 안락한 생활과 더 큰 행복을 추구하며 농경 생활을 시작한 것이다. 농경 생활로 발생한 잉여 식량은 재산의 축적, 분업, 상업, 보호의 필요성 등을 야기했고 그에 따라 인류는 집단의 규모를 확장하고 도시를 형성했다. 다수가 모여 형성된 도시는 인간을 생성 지능을 보다 억제하는 방향으로, 관리 지능을 보다 강화하는 방향으로 유도했다. '두 번째 축의 시대'는 종교적인 축의 시대로 기원전 750년부터 기원후 350년 정도의 시기이다. 첫 번째 축의 시대로부터 사회적 지능의 진보를 얻었다면 두 번째 축의 시대에서 종교는 예술과 함께 인간에게 '심리적 기중기' 역활을 수행했는데 이로써 인간은 더 높은 이상의 존재를 상정하고 추종할 수 있게 됐다. 종교에서 말하는 신의 절대성과 완벽함은 인간의 목표가 되었고 동종끼리의 상호작용을 넘어서 초월적 존재를 추구하게 되었다. 더불어 종교가 제시하는 정의, 동정, 조화 등의 개념은 인간 사회의 보편적 가치로 자리잡아 사회 안정성을 높였다. 우스백이 관찰한 '세 번째 축의 시대'는 르네상스 시대, 즉 이성과 휴머니즘의 시대이다. 종교에 대한, 국가에 대한 복종이 미덕이던 시대를 뒤로 하고 이성과 자유가 강조되는 시대가 도래했고 피조물의 위치에 존재했던 인간은 자신을 창조자의 위치로 격상시켰다.     


우스백은 인류의 발자취를 따라 인간의 지능이 발전해 온 과정을 살펴보면서 인류가 만들었고 인류의 발전을 가속화시켰던 문화를 같이 살폈다. 언어, 문자, 농경, 종교, 이성, 자유 등의 가치가 인간의 지능을 고도화시켰음을 확인했고 앞으로 어떤 변화가 올 것인지에 대한 예견을 더했다. 도래할 혹은 이미 진행되고 있는 네 번째 축의 시대는 '포스트휴머니즘 시대' 또는 '트랜스휴머니즘 시대'로 불리는 초지능의 시대이다. 인공지능이 딥 러닝을 통해 스스로 발전하고 인간의 뇌와 결합하여 상상조차 불가할 막대한 지식을 향유할 수 있게 될 것이다. 포스트휴머니즘 시대에는 인간의 수명이 연장되고 신체적/지적 능력의 비약적 향상을 보이지만 우스백은 이러한 변화를 긍정적인 측면에서만 바라보지 않는다. 


네 번째 축의 시대가 불러올 빈부 격차는 혜택받은 인간과 그렇지 못한 인간을 종(species)으로 구분지을정도로 커질 것이며 지나치게 강조된 개인주의로 사회성은 감소하게 된다. 개인은 풍요와 힘을 얻었지만 개체의 중요성을 상실하는 시대를 마주하게 될 수 있다. 우스백은 현재의 인류가 간과하고 있는 가치(연민, 평등, 정의)의 중요성과 맹신하고 있는 가치(이성, 과학, 실용)의 동반성장이 중요함을 강조한다. 미래에서 온 초지능 우스백은 현대를 살아가는 인류의 가치 평가와 판단에 따라 다가올 미래가 달라질 수 있음을 말하며 인류가 현명한 판단을 내리길 희망한다. 



<지능의 역사>라는 책의 표지에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를 누른 스페인 인문 베스트셀러'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알다시피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는 엄청난 호평과 사랑을 받았던 인문학 서적이다.) 어떻게 생각하면 오만해 보일 수 있는 이 문구가 <지능의 역사>라는 책을 읽은 후 어느 정도 수긍이 된다.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는 대중을 위해 쓰여진 훌륭한 책이지만 분량이 많고 담고 있는 정보도 많다. 간단히 말해 아주 쉽진 않다. 반면에 '호세 안토니오 마리나'의 <지능의 역사>는 지능을 매개체로 인류 문명을 돌아보는 책이며 상대적으로 적은 분량을 할애해 아주 쉽게 표현하고 있다. 그럼에도 뛰어난 개연성을 보인다. <지능의 역사>가 더 대중적이라는 측면에서 표지에 적힌 문구에 동의하게 된다. 


<지능의 역사>는 인간 지능과 인류 문명의 발전 과정을 간결하고 흥미롭게 살펴보기에 아주 좋은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읽고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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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러티브 경제학 - 경제를 움직이는 입소문의 힘
로버트 J. 실러 지음, 박슬라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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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이야기는 특정 상황이나 인물들을 통해 전염력을 획득하고 사회전반으로 급속도로 퍼져나가곤 한다. 이야기는 그 진위성과 별개로 커다란 파급력을 띠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경제학의 측면에도 마찬가지로 작동한다. '내러티브 경제학'은 전염성 강한 대중적인 이야기가 대중의 경제적 결정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대중 내러티브의 전염적 확산을 연구)하는 학문으로 효과적으로 적용된다면 경제 사건의 예측과 대비를 도울 수 있다.

'내러티브(narrative)'는 보통 '이야기(story)'와 동의어로 쓰이는데 저자 '로버트 쉴러'가 <내러티브 경제학>에서 사용하는 내러티브는 "특정 사회나 역사적 시기 등을 설명 또는 정당화하는 서술을 할 때 사용되는 이야기나 표현"을 의미한다. 로버트 쉴러는 내러티브 경제학이란 용어를 사용하는데 있어 다음의 두 가지 요소에 집중하고, 이야기가 경제학에 미치는 영향력을 살펴보고 이를 학문적으로 규명하고자 한다.
1. 말로 전해지며 이야기 형식을 띤 아이디어의 전염
2. 전염성 강한 이야기를 새로 창조하거나 이미 존재하는 이야기를 널리 확산시키고자 하는 노력





<내러티브 경제학>은 총 4부로 구성돼 있으며 각각에서 내러티브 경제학의 시작, 토대, 영속성, 그리고 미래를 조명한다.


1부 내러티브 경제학의 시작 

얼마전 비트코인 열풍이 세계를 휩쓸었다. 2009년 '사토시 나카모토'가 발표한 <비트코인 : 개인 간 거래가 가능한 전자화폐 시스템>, 이 짧은 논문은 국가와 금융권으로부터의 자유를 표방하며 개인의 자율에 근거한 범세계적 화폐의 타당성과 당위성을 주장했다. 대중은 비트코인에 열광했고 아무런 실체도 없는 비트코인 열풍은 과열되어 비트코인의 가치가 300조가 넘는 규모로 치솟기도 했다.(2021년 현재 비트코인의 시총은 1,000조에 육박한다.) 마치 17세기 네델란드의 튤립 파동을 연상케하는 비트코인 열풍의 내면을 들여다 보면 결국 대중의 내러티브에 힘입은 바가 크다. 입에서 입으로, 인터넷을 통해, SNS를 통해 전파된 비트코인 이슈는 대중의 경제적 결정을 이끌었고 비트코인이라는 가상의 가치에 매혹되게 했다. 


비트코인의 핵심 기술인 '전자서명 알고리즘'은 비트코인이 나오기 수십 년 전에 발표되었지만 당시에는 대중적 호응이나 각광을 전혀 받지 못했다는 점을 고려해 봤을 때, '전자서명 알고리즘'과 비트코인의 차이를 만든 내러티브의 힘을 짐작해 볼 수 있다. 


경제 내러티브는 마치 전염병의 패턴과 유사한 성향을 보인다. 전염병이 발생 초기에 급격히 감염자 수를 증가시키다 정점에 이르고 회복기에 접어드는 것처럼 경제 내러티브도 초기에 급속도로 확산되어 대중의 지대한 관심을 얻는 시기를 거쳐 정점에 이르고 점차적으로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지는 과정을 보인다. 비트코인의 예에서도 이와 유사한 패턴을 관찰할 수 있다. 


내러티브가 언제 기원했는가를 특정하기 어렵다. 또한 어떤 내러티브는 살아남고 어떤 내러티브는 그렇지 않은지에 대한 원인을 파악하기도 쉽지 않다. 그렇지만 내러티브가 천 년 이상 존속하고 있으며 특정 내러티브가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사람들의 감수성을 자극하고 기억에 오래 남는 형태를 취하는 것이 유리하다는 것은 명확해 보인다. 


2부 내러티브 경제학의 토대 

내러티브가 자신이나 타인의 행동에 경제적 이야기를 포함할 때 이것은 경제 내러티브가 된다. 따라서 경제 내러티브는 다른 사람들의 행동과 의견을 접한 후 취할 수 있는 일련의 행동과 관련이 있다. 내러티브의 발생은 바이러스나 세균에서 변종이 생기는 것처럼 무작위적이지만 예측 가능한 방식으로 작동한다. 추적과 정량화에 어려움이 있지만, 전염성을 지니고, 사람들이 따를 수 있는 대본을 제시하고, 메시지를 반복하고, 인간적 흥미에 힘입어 전파되는 패턴을 지닌다.


대중 내러티브가 바이럴이 되어 경제적 결과를 초래하기 때문에 내러티브를 깊이 이해한다면 경제적 사건과의 관련성을 모형화하고 경제 사건을 예측할 수 있게 된다. 경제 내러티브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다음의 몇 가지 기본 명제를 알아야 한다. 

1. 내러티브는 다양한 속도와 규모로 전파된다. 

2. 중요한 경제 내러티브는 적은 양의 대화만으로도 만들어 질 수 있다. 

3. 내러티브 군집은 하나의 내러티브보다 강력하다.

4. 내러티브의 경제적 영향은 시간에 따라 변화할 수 있다.  

5. 진실만으로는 잘못된 내러티브를 막을 수 없다.

6. 경제 내러티브는 반복 기회가 많을수록 전염력이 크다. 

7. 내러티브는 인간적 흥미, 정체성, 애국심 등과의 결합을 통해 번성한다. 


3부 영속적 경제 내러티브

내러티브는 전염병처럼 재발과 변이를 통해 다시 찾아오는 것으로 영구히 사라지지 않는다. 어떤 사건에 의해 재등장한 내러티브는 원래의 모습과 다른 특성을 지니는데 내러티브와 연관된 인물(주로 유명인)이 다르다거나 시각적 이미지 또는 핵심적인 문구가 달라지는 식이다. 내러티브의 재발은 무작위로 발생하기도 하지만 특정인(마케팅 전문가, 정치인, 소셜미디어 사용자 등)에 의해 부추겨지는 경우도 있다. 


일반적으로 경제 사건은 하나의 내러티브에 의해 좌우되기보다 수많은 내러티브(군집)의 작용이 어우러져 발생하기 때문에 그 실체를 명확히 이해하는 것은 매우 복잡하고 어렵다. 어떤 사건이나 상황에 대해 특정한 내러티브 군집이 강한 영향력을 행사해 반대되는 입장의 내러티브 군집을 소멸시키는 방향으로 작동할 수도 있고 논란을 증폭시켜 반대쪽 내러티브 군집을 강화시키는 촉매로 작동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공황과 신뢰를 생각해 볼 수 있다. 대중들은 은행을 신뢰하고 규제 당국의 도덕성을 신뢰하며 은행의 다른 고객들이 한꺼번에 돈을 인출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20세기 초기에 벌어진 대공황을 겪으면서 신뢰 내러티브를 앞지르는 두려움과 좌절감을 대변하는 내러티브가 자리잡게 됐다. 이후 경기는 회복되었지만 금융 위기를 비롯한 경제 위기가 도래할 때마다 20세기 초의 대공황 때 만들어졌던 부정적 내러티브는 변이된 모습으로 재등장하게 된다. 대공황 때 각인된 내러티브가 대공황을 겪었던 사람들 뿐 아니라 후대에까지 깊은 트라우마를 남긴 것이다. 


다른 경제 내러티브의 예로 부동산 시장의 호황과 불황을 언급해 볼 수 있다. 부동산으로 거부가 되거나 부동산 가치가 상승해 부유해진 사람들의 이야기는 대중의 관심을 끈다. 부동산이 부를 창출한다는 내러티브가 확산됨에 따라 부동산에 관심이 없던 사람들조차 부동산을 관심을 갖고 무리해서 매입하는 행태를 보이게 된다. 경기가 호황일 때는 부동산의 값어치가 지속적으로 상승했기 때문에 '부동산 가치는 지속적으로 상승할 것이며 배신하지 않으리라'는 내러티브는 더욱 더 굳어진다. 그러나 2007-2009년 세계금융위기와 경기침체와 같은 일이 발생했을 때 부동산의 가치는 급락하고 담보대출의 연체가 급증하면서 대출자들은 심각한 경제적 곤란에 놓이게 된다. 부동산 시장의 불황을 겪으면서 발생한 위기와 곤란에 대한 내러티브는 호황기에 부동산을 투자처로 삼았던 인식을 바꾸어(낮추어) 놓았고 부동산 시장 상황에 대한 대화의 빈도를 낮추었다. 



4부 내러티브 경제학의 발전 

내러티브의 미래가 어떻게 될 것이라 단정할 수 없지만 과거의 전염병이 변이를 통해 새롭게 발생하듯 내러티브도 새로 유행하는 시기가 오리라 짐작할 수 있다. 과거 일어났던 사건과 유사한 사건이 발생한다면 과거의 내러티브가 다시 부활하는 일이 생길 수 있고 과거의 내러티브의 변이가 새로운 내러티브로 등장할 수도 있다.  


내레티브는 정보기술의 발전과 문화의 변화에 크게 영향을 받는다. 전염율과 회복률이 바뀌고 내러티브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도 달라지게 된다. 


경제 내러티브는 이제 태동하는 분야로 학문적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과학적 방법론을 포용해야 한다. 이제껏 소수의 연구에서 내러티브 경제학을 다루고 있지만, 내러티브가 사람과 사회에 밀접히 연관돼 있고 개인의 경제적 문제를 포함한 많은 결정에 관여하는 만큼 내러티브 경제학에 대한 연구는 지속될 것이며 발전될 것으로 전망(희망)한다.



인간은 무릇 이야기꾼이다. 언제나 자신과 주변의 이야기에 둘러싸여 살고, 자신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을 그런 이야기를 통해 본다. 때문에, 자신의 삶조차 그 사람을 이야기하듯이 살아가려 한다. 

- 쟝 폴 사르트르(Jean-Paul Sartre) - 



PS) 본문에 언급된 '통섭'이라는 개념이 경제학에도 적용돼야 하고, 인간의 경제 활동에 영향을 끼치는 내러티브를 경제학의 분야로 끌어들여 함께 고려할 때 경제 사건에 대한 분명한 이해가 가능하다는 저자의 견해는 매우 흥미로웠다. 어려운 수식이나 법칙의 나열 없이 내러티브가 경제학과 어떻게 관련돼 있는가에 초점을 맞춘 전개는 나처럼 경제학에 문외한인 사람들도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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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눈에 명화로 보는 셰익스피어 - 베스트 컬렉션 5대 희극 5대 비극
윌리엄 셰익스피어 지음, 이은경 옮김 / 아이템하우스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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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셰익스피어(1564 - 1616)는 영국 문학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세계적 대문호이며 그의 수많은 작품들은 연극, 영화 등으로 자주 소개될 뿐 아니라, 후대 작가들의 소설, 희곡 등에 영감을 불어넣어 현재까지도 수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있다. 


<한눈에 명화로 보는 셰익스피어>는 셰익스피어를 대표하는 4대 비극(햄릿, 맥베스, 리어왕 오셀로)과 5대 희극(베니스의 상인, 한여름밤의 꿈, 말괄량이 길들이기, 십이야, 뜻대로 하세요)에 '로미오와 줄리엣'을 추가해 5대 비극과 5대 희극으로 구성하였다.  ​희곡으로 만들어졌던 작품들을 다룸에 있어 간추린 줄거리와 연관된 예술 작품(그림, 사진 등)으로 독자의 흥미를 돋우고 서술과 대본(대사)을 적절히 섞어 가독성을 한층 높였다.

 



<로미오와 줄리엣>처럼 책을 읽지 않은 사람들조차 대략적 줄거리를 꿰고 있는 작품 뿐 아니라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과 5대 희극에 등장하는 많은 인물들은 그들을 드러내는 독특한 개성으로 인해 다양한 장르의 책들에서 비유적으로 인용되곤 하는데, 이들 인물들을 들여다보자면 인간이 가진 천성, 선과 악, 사랑과 증오, 생과 사 등에 대해 진중한 생각을 해보게 된다. 셰익스피어의 작품이 워낙 유명하다 보니 문학작품과 인문학 서적에서(간혹 딱딱한 역사서에서조차) 셰익스피어의 작품에 등장한 인물의 이름으로 어떤 상황을 설명하는 경우도 많다. 이를테면 햄릿은 비운의 상징으로, 이야고는 간사한 혀를 가진 간교한 인물로, 샤일록은 표독스러운 사채업자를 나타내는데 사용되곤 한다. (물론 셰익스피어의 작품에 담긴 인물들은 단순히 선과 악을 상징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본성을 다양한 측면에서 고찰했다는 점을 고려하지 않은 이분법적인 분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작품에 인용되는 인물들은 인간성의 특정 측면을 반영하는데 사용된다.) 


셰익스피어가 인간의 다양한 감정을 표현하는데 있어 사용한 강렬한 은유적 표현들은 후대에 깊은 인상으로 남아 5세기가 지난 현재까지도 자주 인용되고 있다. 셰익스피어의 호소력 짙은 직관적이고 통찰력 있는 문장들은 실생활에도 종종 등장하는데 <햄릿>의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라거나 <십이야>의 "영리한 바보는 미련한 현자보다 낫다."와 같은 표현은 문학적 수준을 넘어 격언처럼 쓰이기도 한다.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과 5대 희극의 작품들은 이전에도 종종 접했지만 몇 년의 시간이 흐르면 다시 읽고자하는 생각이 피어오르는데, 이것은 해당 작품에 등장했던 인문들을 다시 접해보고 싶다는 마음과 이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감상이나 간과했던 부분들을 한번 더 읽음으로써 보충해보고 싶어지기 때문이다. 이렇게 다시 읽게 된 셰익스피어는 이전에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던 부분들을 세세히 들여다보는 기회가 되었고 문장에 담긴 의미를 다시금 곰곰히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을 갖게 했다.  


지금 당신 말한 대로 생각한다 믿지마는 아무리 뜻을 세웠다 할지라도 깨질 수 있는 법이오. 결심이란 기껏해야 기억력의 노예일뿐, 태어날 땐 맹렬하나 그 힘이란 미약한 것이오. 이 세상은 영원하지 아니하며, 사랑조차 운에 따라 바뀌는 건 이상할 것 하나 없소. 그리하여 둘째 남편 안 맞겠다 생각하나, 첫째 주인 죽었을 때 그런 생각 죽을 거요. 

(햄릿 왕이 거트루드 왕비에게) 

 

왕비도 언젠가는 죽을 몸이고, 또 그날일 올 줄 알았다. 내일, 또 내일. 이 더딘 걸음으로 하루 또 하루,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기어가서 우리의 어제들이 흙덩이 속으로 고꾸라지는 어리석은 자들 앞을 비추리. 꺼져라. 꺼져라 잠시 동안의 촛불아. 인생이란 한순간을 거두는 그림자에 불과할 뿐 무대 위를 잠깐 우쭐대며 오가다 가뭇없이 잊혀지는 불쌍한 배우. 바보가 떠드는 허무맹랑한 이야기. 격정의 소란으로 가득하지만 덧없는 이야기. 

(맥베스가 왕비의 죽음 앞에서) 


<한눈에 명화로 보는 셰익스피어>는 5대 비극과 5대 희극을 중요한 대목 위주로 지루할 겨를 없이 진행하기 때문에 희곡으로만 쓰인 책을 보는 것보다 훨씬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또한 삽입된 많은 예술작품 덕택에 셰익스피어의 희곡에 대한 이해를 높일 뿐 아니라 미술에 대한 감상도 겸할 기회를 얻기도 했다. 셰익스피어의 희곡을 순수한 형태로 만나보는 것도 즐거움이 될테지만 <한눈에 명화로 보는 셰익스피어>처럼 가독성을 높인 책을 먼저 접해 셰익스피어에 대한 흥미를 얻는 것도 보람된 시간이 되리라 생각한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읽고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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