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토끼를 따라가라 - 삶의 교양이 되는 10가지 철학 수업
필립 휘블 지음, 강민경 옮김 / 흐름출판 / 2021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서 엘리스는 하얀 토끼를 따라가다 이상한 나라에 도착하고 영화 <메트릭스>의 네오는 '하얀 토끼를 따라가라'는 메시지를 보고 토끼 문신을 한 여자를 따라가 진실된 세상을 마주하게 된다. '마르셀 프루스트(Marcel Proust)'의 "최고의 여행은 미지의 땅으로 떠나는 여행이 아니라 세상을 다른 눈으로 보는 여행이다."는 말처럼 철학은 삶에 대한 우리의 인식을 담금질한다. 이 책은 신, 감정, 자유의지, 인식, 의지, 죽음 등의 10가지 주제에 대해 현대철학이 제시하는 방향을 담고 있다. 저자는 철학이 어려울수록 심오하고 완전히 새로운 세상에 이르게 할 수 있다는 고정관념에 반기를 들고 흥미롭고 이해하기 쉬운 철학, 새로운 세상이 아닌 현실을 더 명확하게 볼 수 있는 철학을 제안하고 있다.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생각해봤을 법한 주제들에 대한 철학자의 생각은 좀 더 명확하고 논리적인 답변을 추구하는데 '감정'을 예로 들자면 감정이 선천적인지, 감정이 생존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감정의 조작은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지와 같은 의문에 답을 제시하는 것이다. 감정의 정의부터 감정의 원인과 영향까지 인간의 감정이 만들어 낼 수 있는 수많은 결과물에 대해 객관적 성찰을 문자로 드러내는 것이다. 

<하얀 토끼를 따라가라> 본문의 내용들은 어떤 질문에 대한 논리적 답을 찾아가는 여정을 다루는데 이 과정에 새로운 질문이 생기기도 한다. '믿다' 챕터에서 전지전능한 신의 존재를 논하면서 '신은 스스로 들어올릴 수 없을 정도로 무거운 돌도 창조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을 내비친다. 이 질문은 유신론자들의 주장을 반박할 수 있는 용도로 쓰일 수도 있고 사람들이 신의 존재와 역량에 대해 논리적으로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도 한다. 신의존재증명(Gottesbeweis)을 시도한 '안셀무스'나 '토마스 아퀴나스'의 이론을 읽으며 논리적 사고를 시도할 수도 있다. 영성, 신성, 종교, 신에 대한 무신론자들의 자연과학적 접근과 유신론자들의 예감이나 믿음을 기반으로 한 접근을 비교하고 상대방의 입장에서 사고를 해 볼 수도 있다. 철학은 이러한 모호한(답을 이끌어내기 어려운, 설득되지 않는 반대에 직면해야 하는) 주제에도 관심을 기울이고 '오컴의 면도날'같은 직관적이고 합리적 결론을 추구하고 있다.


인간은 많게는 한 세기 가량 세상을 살다 가는데 종국에는 누구나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산다는 것, 죽는다는 것을 재조명하는 것도 철학의 범주에 속한다. 지인의 죽음을 바라보는 인간은 보통 두 가지 감정을 느끼게 되는데 죽은 자에 대한 긍정적 기억과 시신에 대한 부정적 두려움이다. 시체를 표현할 때 보통 부모, 친구, 친지 등이라고 여기지만 철학적으로는 '과거 ~였던 사람으로부터 남겨진 물질'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죽음은 모든 생명체의 종착점임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죽음에 대한 깊이 있는 생각을 품지 않는다. 간혹 지인의 죽음으로부터 그 의미를 간접체험할 뿐이다. 


죽음이 주는 두려움은 사람들로 하여금 죽음에 대한 언급을 터부시하게 만들었고 기피해야 할 무엇으로 여겼다. 죽음을 사유해 보자면 신체적 죽음과 의식적인 죽음으로 구분할 수 있을 것이고 이 두가지가 항상 일치하지 않는다는 사실 또한 받아들이게 된다. 죽음을 자연과학적으로 정의한다면 '돌이킬 수 없는 끝'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삶의 유한성으로 인해 어떤 이는 삶을 긍정적으로 보기도 하고 다른 이는 삶을 회의적으로 바라보기도 하는데 자신의 삶이 어떤 모습인가는 그 사람의 현재의 삶에 대한 만족과 죽음에 대한 관점과 관련되어 나타난다. 우리가 사는 삶이 현재 어떤 의미를 띠고 있으며 죽음을 어떻게 마주해야 할 것인가는 난해하지만 직면해야 하는 주제이다.  


<하얀 토끼를 따라가라>가 다루는 10가지 주제 가운데 위에서 언급한 3가지(감정, 믿음, 죽음)를 간략히 적어봤는데 다른 주제도 마찬가지 양상을 띤다. 주제(단어)의 정의를 구체화하고 그것이 삶에서 어떤 의미를 띠는지에 대해 분명한 말로써 드러낸다. 








<하얀 토끼를 따라가라>를 읽다보면 철학에서 사용되는 단어의 의미는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의미와 다를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철학은 말이나 언어로 우리가 직관적으로 알 수 있는 것들에조차 명확한 정의를 내리고자 한다. <하얀 토끼를 따라가라>에서 다루는 10가지 주제 모두가 삶에 밀접하게 녹아있는 부분이며, 우리가 나름의 이해와 신념을 갖고 있는 분야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철학자의 시선으로 재조명된 후에는 우리가 이해했던 것과는 약간 다르거나 훨씬 구체적인 모습으로 다가오는데 이를 통해 사고를 명료하게 하는 방법을 배우게 된다.

<하얀 토끼를 따라가라>에 담긴 철학자들의 고민(답)은 보통 사람들의 생각을 깊게 만들어주고 사고능력을 더 높은 단계로 끌어주는데 도움을 준다. 저자가 서문에 밝힌 것처럼 철학이 어렵지 않고 현실을 다루는 학문이라는 점을 증명하듯 전체적으로 편안히 읽을 수 있으며 대주제와 소주제는 우리가 생각해봤을 법한 범주에 머무르고 있기 때문에 매우 흥미롭다.

철학에 관심있는 독자들뿐 아니라 인문/교양 서적을 찾고 있는 독자들에게도 좋은 권하고 싶은 책이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읽고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의사의 세금
이장원.이채형.박동일 지음 / 삼일인포마인 / 2021년 5월
평점 :
품절









직장생활을 한 지 어느덧 15년이 넘었다. 일 년에 수 일 가량의 휴가에 만족하며 주 6일 이상, 하루 8시간 이상의 근무를 십 년 넘게 해오다 코로나 덕분에 근무일수가 줄어 작년부터 몸이 호강하는 중이다. 


적지 않은 기간을 봉급쟁이로 살아왔음에도 세무에 관한 지식이라곤 연말정산 시 소득구간을 살피고 공제항목을 잠깐 들여보다는 수준이었고 내가 내는 세금의 구체적인 내역을 확인하지 않았었다. 응당 내야 할 세금이 나갔을 것이라 생각하고 돈을 더 벌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 내가 더 일을 해야 하겠구나 정도의 생각을 품었었다. 


그러나 년차가 쌓이고 수입이 증가하다보니 세금으로 지출되는 비용이 예상보다 훨신 크다는 사실을 절감하고 절세에 대한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 최근 개인사업을 계획하면서는 더 그러해서 <의사의 세금>이란 책을 읽게 됐다. 


<의사의 세금>은 봉직의(페이닥터)와 병원장(대표원장)의 입장의 세무를 구분해서 다룬다. 봉직의는 보통의 직장인이기 때문에 일반적인 근로자의 세무와 같은 경향을 띤다. 페이닥터는 급여에 따른(소득 구간에 따른) 세금을 내며, 의사의 평균 소득이 높은 편이기 때문에 당연히 과세되는 세금 또한 높게 측정된다. <의사의 세금>은 페이닥터의 가상의 월급명세표를 토대로 세금이 어떤 항목과 방식으로 부과되는지 살펴보고 연말정산 소득공제를 통해 절세할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예를 들어 실제 수령하는 월급이 1,500만원인 페이닥터가 있다면 그의 세전 수입은 2,335만원을 넘는데 여기서 소득세와 4대 보험으로 800만원 이상이 빠지는 것이다. 이는 비단 의사에 국한된 항목이 아닌 소득이 일정 수준을 넘는 모든 직장인들에 해당하는 내용인데 고액 연봉자의 경우 연말정산을 통한 소독공제로 환급받는 것에 한계가 있어 현실적으로는 세금을 피할 방법이 거의 없다고 보여진다. 


봉직의의 세무에 이어지는 병원장의 세무는 훨씬 복잡하다. <의사의 세금>에서는 개원의 단계에서부터 병원 경영에 이르기까지 병원장이 마주해야 할 상황들을 매우 구체적으로 다루고 있다. 개원의 형태는 어떻게 할 것인지, 개원 자금은 어떻게 마련해야 하는지, 병원장이 염두해야 할 세금의 종류와 절세를 위한 방안들은 어떤 것이 있는지 등에 대해 챕터로 구분해 설명하고 있다. 특히 절세를 위한 경비처리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는데 페이닥터와 달리 병원장(개원의)은 병원 경영을 위한 지출(인테리어, 각종 장비 구매 비용, 직원들의 복리후생비, 업무용 승용차 운용, 병원 관련 접대비, 광고비 등)의 상당부분을 경비로 인정받을 수 있기 때문에 이에 대한 증빙을 철저하게 해야한다. 증빙자료가 부족할 시 경비로 인정받지 못하고 그렇게 되면 경영을 위해 쓰여 없어진 돈이 고스란히 소득으로 잡혀 높은 소득세를 지불하거나 때에 따라서는 가산세까지 지불해야 하는 상황에 처할 수 있다. 또한 병원경영을 위해 지출되는 내역이 방만하게 관리되면 탈세를 하지 않았더라도 세무조사의 타겟이 될 수 도 있다. 


<의사의 세금>의 후반 두 장(chapter)은 세무조사와 재테크를 다룬다. 세무조사의 대상이 어떻게 선정이 되어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지는지 설명한다. 재테크는 병원을 경영해서 수익을 많이 남겼을 때 남는 돈을 어떻게 운용할 것인지에 대한 조언이다. 




<의사의 세무>는 제목처럼 대부분의 내용이 '의사라는 직종이 마주하게 될 세무적인 상황'들을 구체적으로 설명하는 책이며 봉직의나 개원을 준비하는 의사 또는 개원중인 의사들에게 꼭 필요한 정보를 담고 있다. 열심히 일하고 많이 버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지출을 줄이는 것도 순수익을 높이는 방법이므로 절세의 방법을 공부해 자신들의 입장에 맞게 적용하는 것이 현명할 것이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읽고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세트] 문명 1~2 - 전2권 고양이 시리즈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전미연 옮김 / 열린책들 / 2021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20여년 전 접했던 <개미>를 시작으로 최근의 <심판>에 이르기까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은 재미는 물론이거니와 기발한 발상으로 독서의 몰입도를 높여주곤 했다. 대략 2년 전 쯤 발간된 <고양이>도 그런 작품가운데 하나였는데, 인간들이 행한 테러와 전쟁으로 인간문명이 붕괴될 위기에 처했을 때 도도한 암고양이 바스테트와 현자인 수고양이 피타고라스가 기지를 발휘해 위기를 극복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고양이>의 주인공인 바스테트와 피타고라스는 동료들과 함께 세느강의 시뉴섬에 정착했는데 온 파리를 장악한 쥐떼들은 세느강을 건너 시뉴섬까지 습격해 왔다. 바스테트의 임기응변으로 쥐떼의 1차 침입은 막아냈지만 절대적인 수에서 크게 밀리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이어질 쥐떼의 공격이 성공할 경우 섬에 있는 인간과 고양이의 멸종까지 감수해야 하는 절체절명의 순간이었다. 이에 현자인 피타고라스는 자신이 언제 죽을지 모르는 상황에서 자신이 알고 있는 방대한 지식을 후대를 위해 남겨놓아야 한다는 사명감에 휩싸인다. 그리고 시뉴섬을 벗어나 보다 안정적인 곳으로 공동체를 피신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고양이와 인간의 우호적 관계는 약 1만 년 전부터 시작되었다. 농경을 주업으로 하는 정착생활이 확산되면서 곡물을 쥐로부터 보호해 줄 수단이 필요했고 쥐의 천적인 고양이가 해결책으로 부상했다. 이해관계의 일치로 인간과 고양이는 공생관계를 이어갔고 지역에 따라 고양이를 신으로 추앙하기도 했다(예를 들어 주인공 바스테트는 고대 이집트 신화에 등장하는 고양이 모습을 한 다산과 풍요의 여신 이름이다). 때로는 종교적 박해가 인간사회를 넘어 고양이에게까지 전파되면서 온갖 수난을 겪기도 했다. 17세기 후반에 이르러서야 고양이에 대한 박해가 멈췄고 인간들이 자유롭게 고양이와 함께 할 수 있었으며 21세기에 이르러 고양이는 프랑스에서 가장 사랑받는 반려동물의 자리를 꿰차게 됐다. 


피타고라스의 의견에 따라 시뉴섬으로 피신했던 인간과 고양이의 공동체는 보다 안전한 장소로 여겨지는 시테섬으로 이동한다. 시페섬 둘레를 따라 방벽을 설치하고 세느강 연안과 연결된 부위를 막음으로써 쥐떼의 습격을 막는다. 쥐떼의 수장이던 캄비세스는 시뉴섬에서의 패배로 탄핵되고 그 뒤를 이어 티무르가 쥐떼를 이끌게 된다. 실험용 쥐였던 티무르는 피타고라스처럼 이마에 제 3의 눈(인간의 실험에 의해 만들어진 뇌와 연결된 USB 포트)를 갖고 있었고 피타고라스가 그렇듯 UBS 포트를 통해 인터넷의 수많은 정보를 취득할 수 있었다. 티무르는 인간과 고양이에 대한 큰 적대감을 품고 이들을 궤멸시킬려는 목적으로 전면전보다 시페섬을 포위해 섬 안의 공동체를 고사시키는 작전을 수행했다. 티무르의 무리에 위한 포위를 돌파하기 위해 시페섬의 인간과 고양이들은 하늘을 나는 열기구를 띠워 외부에 도움을 청하게 된다. 


열기구가 성공적으로 작동해 시페섬을 빠져나오는데는 성공했지만 파리 대부분의 지역은 이미 쥐 떼들에 장악된 상태였다. 인간들이 거주했던 공간들은 쥐나 다른 동물들이 점유했다. 인간의 지배가 사라진 후의 세상은 가장 강력한 세력을 형성한 쥐 떼 뿐 아니라 개, 돼지, 고양이 등이 각자의 영역을 구축해 살아가고 있었고 바스테트 일행은 쥐 떼를 피해 다니면서 원군을 확보하고자 노력했지만 흔쾌히 지원을 약속하는 동물집단을 만나기는 어려웠다. 우여곡절 끝에 바스테트 일행은 인간 생존자들이 모여사는 곳에 다다랐고 그곳은 쥐, 고양이, 토끼, 돼지 등 다양한 실험동물들에 '제 3의 눈'을 부여한 실험실이 있는 곳이었다. 바스테트는 자신도 피타고라스처럼 인간과 대화를 나눌 수 있고 인간의 방대학 지식에 대해 접근할 수 있게 해주는 '제 3의 눈'을 얻고자 했고, 자원해서 '제 3의 눈' 수술을 받게 된다. 수술결과는 성공적이였고 바스테트는 인터넷 접속을 통해 인간과 직접 소통하거나 인간의 정보에 다가설 수 있게 되었다. 


인간 사회의 붕괴의 원인이었던 테러와 전쟁은 인간 사회가 무너진 이후에도 지속되었다. 바스테트 일행이 머물던 실험실에는 (어떤 열정적인 연구원에 의해) 현재까지 존재하는 모든 인간 문명의 기록을 저장한 장치(ERASE)를 만들어 보관하고 있었는데 여기에는 단순한 지식 뿐 아니라 치명적인 무기 제조법 등이 수록돼 있었다. 극단주의자들은 강력한 무기를 얻고 자신들이 정보를 통제해 사람들을 지배하고자 실험실을 공격했고 ERASE를 탈취해 간다. 바스테트 등은 ERASE를 탈환하는 임무에 나선다. 


시테섬의 포위를 뚫기 위한 원군 확보를 위해 열기구를 탔던 바스테트 일행...처음의 목적은 제대로 이루지 못한채 여러 사건에 휘말려 위기에 위기를 겪게 된다. 믿었던 대상에게 뒤통수를 맞기도 하고 인간들이 이전 사회에서 저질렀던 만행에 대한 재판에 엮이기도 한다. 그러나 조금씩 시테섬의 구출에 참여하겠다고 하는 동료들을 만나게 된다. 


개, 앵무새, 돼지, 인간 등! 바스테트 일행은 지원군의 도움을 받아 티무르가 포위한 시테섬의 탈출을 위해 출진한다. 그리고 시테섬을 빠져나온 후, 더 큰 세상으로...




<문명>은 고양이의 시선으로 바라본 인간사회의 몰락과 새로운 사회의 도래를 그려내고 있다. 우화가 주는 재미와 더불어 주인공 베스테트의 오만한 모습은 시종일관 미소를 짓게 하는 포인트가 된다. <문명>을 개별적으로 따로 읽어도 전혀 상관이 없지만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이전 작품 가운데 <고양이>를 먼저 읽어보았다면 조금 더 친숙하게 느껴지리라 생각한다. 


내가 이제껏 접했던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작품들에서 느꼈던 재미와 독창성은 <문명>에도 담겨 있었다. <문명>이 선사한 결말로 유추해 보건데 <고양이>에서 <문명>으로 이어진 것처럼 몇 년 후 <문명>과 이어질 다른 작품이 탄생할 것이라는 기대를 품게된다. 그 때 다시 베스테트와 피타고라스를 만나고 싶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읽고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몽골 제국, 실크로드의 개척자들 - 장군, 상인, 지식인
미할 비란.요나탄 브락.프란체스카 피아셰티 엮음, 이재황 옮김, 이주엽 감수 / 책과함께 / 2021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몽골제국, 실크로드의 개척자들>은 군 지휘관(장군), 상인, 지식인을 매개로 유라시아의 광범위한 영역을 지배했던 몽골 제국의 역사를 들여다본다. 실크로드라는 단어는 19세기말에 도입됐지만, 구세계를 동과 서로 연결하는 육상과 해상 교역로는 그보다 훨씬 이전부터 존재했고, 몽골제국이 동서로는 동아시아로부터 유럽과 이슬람 세계에 이르고 남북으로는 동남아시아로부터 시베리아에 이르는 거대 제국을 형성함에 따라 크게 번성하게 됐다. 하나의 거대 제국 또는 연방이 구성됨으로써 해당 지역은 전쟁이 줄고 교역이 활발해졌는데 물자와 인력의 유동성이 증가하고 문화 간 접촉이 활기를 띠었다.

몽골 시기(1206ㅡ1368)를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는데 통일 몽골 제국(1206ㅡ1260) 시기와 몽골 연방 시기이다. 통일 몽고 제국 시기는 칭기스 칸과 그의 후손들이 몽골 제국을 건국해 팽창해가는 과정이었고 몽골 연방 시기는 툴루이(칭기스 칸의 막내아들)의 아들, 뭉케가 쿠데타로 집권한 후 4개의 지역 제국(각각 중국, 중앙아시아, 이란, 시베리아를 지배하는 칸국으로 나뉨)으로 나뉜 시기이다. 몽골 제국의 정복활동은 다양한 문화권을 뒤섞어 동서와 남북의 문화가 서로 융합되고 발전하는 계기를 제공했다. 군인은 물론이거니와 유능한 상인, 기술자, 행정가 등의 등용을 중시했으며 교역에 호의적이었기 때문에 제국 내외로 인재와 상품의 교역이 빈번히 이루어졌고 실크로드는 활성화되고 확장되었다. 원나라(중국을 통치한 몽골제국)가 송나라를 정복하면서 해상 운송수단과 해로를 손에 쥐게 되어 해상 교역도 활성화됐다. 아시아, 유럽, 인도, 동남아시아, 이집트에 이르는 광범위한 세계 교역은 1320ㅡ1330년대에 절정에 이르렀다가 몽골 제국이 쇠퇴하면서 크게 위축된다.



<몽골제국, 실크로드의 개척자들>은 몽골 시기에 활약한 군 지휘관, 상인, 지식인 신분의 15인을 다룬다. 여기에 등장하는 개인의 이야기는 다양한 언어(한문, 몽골어, 러시아어, 페르시아어, 아랍어 등)로 쓰여진 1차 자료를 참조하여 쓰였으며 대부분의 자료는 몽골인 스스로가 기록한 것이 아니라 그 복속민들이나 이웃이 기록한 것이다. 이것은 이 책에 담긴 내용을 정복자와 피정복자의 입장을 대조하여 객관적으로 작성했음을 의미하지만 당시의 사료가 풍족한 것은 아니기 때문에 몇몇 부분은 학자에 따라 이견이 있을 수 있음을 저자들은 미리 언급하고 있다.


첫 6개 장은 6인의 장수들(곽간, 바이주, 쿠툴룬, 양정벽, 사이프 앗딘 킵착 알만수리, 툭투카)를 다룬다. 몽골 제국은 칭키스 칸이 죽은 후 오랜동안 내분을 치뤘고 결국 4개의 칸국으로 분열되었기 때문에 이들 장수의 활약의 명령권자는 제국의 권력을 누가 잡고 있었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한족이지만 몽골 제국을 위해 봉사하며 공성전으로 바그다드 함락에 기여하고 쿠빌라이 칸의 송나라 정벌을 조언한 곽간, 역사서에서 폭력적이고 잔혹한 인물로 묘사되는 인물로서 서방 정벌에 큰 공로를 세웠지만 왕가와의 불화로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는 바이주와 그의 손자 술레미시, 최고의 핏줄을 이어받은 공주로 태어났지만 장수가 되어 전장을 누비고 많은 예술작품의 소재로 되었던 쿠툴룬, 쿠빌라이 칸을 도와 송나라를 멸하고 동남아시아와 인도의 나라들을 복속시키고 해상 무역로를 확보한 양정벽, 몽골의 엘리트였으나 시리아 전쟁에서 포로로 잡혀 맘룩 술탄국으로 망명했고 고속 승진을 거듭해 다마스쿠스의 총독까지 올랐으나 다시 일 칸국으로 넘어가 몽골의 맘룩 정벌을 도왔고 이후 다시 맘룩 술탄국으로 넘어와 사령관으로 복무한 킵착 알만수리, 색목인(킵착인)이었지만 원나라의 원정행보에서 세운 공적과 충성을 인정받아 원나라 최고위층에 이른 툭투카와 그 자손들.    


이어진 4개 장은 몽골 제국의 광활한 영토를 누비던 상인들의 이야기이다. 이는 이슬람 상인 신분이었으나 칭기스 칸을 위기에서 구한 공로와 이어진 금나라 정벌에 기여한 공으로 고위직에 올랐고 118세까지 장수했다고 전해지는 자파르 화자,  조국 로마니아의 사절단으로 지중해와 흑해를 거쳐 크림반도에 상륙해 몽골 제국으로 가는 안전한 길을 개척한 보두앵 드 에노, 이슬람과 원나라의 해상 교역로를 발전시킨 상인이자 지방 장관으로 재직했던 자말 앗딘과 그의 동생 타키 앗딘, 금장 칸국의 황후로서 권력의 핵심에 위치해 있으면서 흑해 무역을 촉진했던 타이둘라


마지막 5개 장은 몽골 시대에 활약한 지식인들의 삶을 들여다본다. 유대교를 버리고 이슬람으로 개종했으며 불교에 호의적이었던 인물로 일 칸국에 복무하며 세계사, 신학, 농학, 의학 등의 많은 저서를 남긴 라시드 앗딘, 훌레구의 원정을 따라 서방으로 넘어와 훌레구의 의사이면서 중국의 천문학을 이슬람에 전파한 부맹질, 언어, 점성학, 의학에 뛰어난 재능을 지녔고 쿠빌라이 칸의 신임을 받아 일 칸국으로 사행을 갔고 거기서 다시 이탈리아로 사행을 떠났다 원나라로 돌아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몽골 제국이 정복한 지역을 망라한 지리학 저작에 힘쓴 이사 켈레메치, 여성의 신분이었지만 남편의 치세를 도와 막대한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고 건축, 종교, 학문을 후원하고 본인도 작가로 활동했던 파드샤흐 카툰, 후잔드에서 출발해 메디나에 이르는 '지식 추구 여행'을 25년에 걸쳐 수행했고 인생의 말년에는 수피 학자로서 삶을 산 알아하위


15인의 인물 가운데 다수는 한 가지 직업에 종사하지 않고 다양한 자리를 가지고 있었다. 전장에서는 장군이었고 평시에는 행정관리가 되었으며 이윤을 추구하는 상인이 되거나 학문을 연구/정리하는 학자가 되기도 했다. 소개된 인물들의 시기는 겹치는 부분이 많아 여러 인물이 반복적으로 등장하고 주인공 격인 인물이 중점적으로 활약한 지역(나라)에 따라 역사적 상황에 대한 관점을 다양화할 수 있다. <몽골 제국, 실크로드의 개척자들>은 개별적 인물을 내비치는 각각의 장으로 구성됐지만 상대적으로 짧은 몽골 제국의 역사를 감안했을 때 이것은 '몽골 시대' 역사를 연속적으로 다룬다고 할 수도 있다(단, 시대순으로 다루진 않는다).  






세계사에 관심이 있어 역사를 다룬 서적을 종종 읽고 있다. 운좋게도 여지껏 읽은 대부분 책들은 재밌기도 하고 각자 떠도는 단편적 지식을 한데로 연결해줘, 그로부터 세계사를 이해하는데 큰 도움을 얻었다.  마찬가지로 <몽골제국, 실크로드의 개척자들>를 통해 몽골 제국의 역사와 함께 중앙아시아, 이슬람, 동로마 제국의 역사를 전체적인 맥락에서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를 만났다. 역사에 등장하는 하나의 에피소드는 재미는 있지만 그것만으로 장구한 역사적 흐름을 가늠하기는 어려운데  <몽골제국, 실크로드의 개척자들>은 서론에서 전반적 몽골의 역사를 서술해 놓고 본 장에서는 15인에 대해 기전체로 서술함으로써 이런 단점을 보완하고 있다. 각 장을 쓴 학자들이 다르기 때문에 하나의 책에 포함된 내용의 서술이 다양한 느낌을 띠는데, 어떤 장은 문헌에 입각한 고증에 치중한 느낌을 주고 어떤 장은 읽기 편하게 스토리를 작성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이 모든 것들이 1차 사료에 의거해 객관성을 추구한 서술이겠지만 전달자에 따라 감흥도 달라짐을 느낀다. 


로마사나 중국사는 역사를 좋아하는 대부분의 독자들이 애써 찾아 읽을정도로 관심을 기울이는 분야일 것이다. 상대적으로 중앙아시아사나 이슬람의 역사는 일부러 계기를 마련하지 않으면 전체적인 흐름을 잡기 어려운데 <몽골제국, 실크로드의 개척자들>에 담긴 인물들의 전기를 읽다 보니 내가 미흡한 부분을 가늠할 수 있었고 어떤 책을 더 찾아봐야겠다는 생각도 하게됐다. 


만약 몽골 제국의 전체적 흐름을 간략히 읽고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몽골 제국의 인물들의 삶을 들여다보고 싶은 독자가 있다면 이 책을 권하고 싶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읽고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감시 자본주의 시대 - 권력의 새로운 개척지에서 벌어지는 인류의 미래를 위한 투쟁
쇼샤나 주보프 지음, 김보영 옮김, 노동욱 감수 / 문학사상사 / 2021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감시 자본주의" 

1. 인간의 경험을 무료로 추출하여 예측, 판매로 이어지는 숨은 상업적 행위의 원재료로 이용하려는 경제 질서

2. 상품과 서비스 생산이 전 지구적 규모의 새로운 행동수정 아키텍처에 종속되는 기생적 경제 논리

3. 인류 역사상 전례 없는 부, 지식, 권력의 집중을 특징으로 하는 자본주의의 악성 돌연변이

4. 감시 경제의 토대를 이루는 틀

5. 19세기 및 20세기에 산업 자본주의가 자연에 가한 위협에 견줄 만한 인간의 본성에 대한 위협

6. 새롭게 등장해 사회를 지배하려 들고 시장 민주주의에 갑작스러운 도전을 제기하는 도구주의 권력의 기원

7. 총제적 확실성에 근거해 새로운 집단적 질서를 부과하려는 움직임

8. 위로부터의 쿠테타에 상응하는 중대한 인권 박탈, 즉 국민주권의 전복



감시 자본주의는 엄청나게 많은 인간의 행동을 공짜 원재료로 삼아 행동 데이터로 만드는 새로운 형태의 자본주의이다. 축적된 광대한 데이터의 일부는 품질 개선 등에 쓰이기도 하지만 인간의 행동을 예측하는 상품으로 활용돼 소비를 포함한 그 사람의 행동에 영향을 끼치게 된다. 감시자본주의는 전례 없던 현상으로 이에 대한 공적 대책도 미흡할 뿐 아니라 감시 자본주의가 불러올 영향에 대한 예측도 불분명하다. 때문에 감시 자본주의의 면면을 탐색해 감시 자본주의의 조건, 작동 원리, 경제적 필요성, 가능한 부정적 결과 등을 파악하함으로써 감시 자본주의가 불러올지도 모를 폐해로부터 우리를 지킬 수 있다.

감시 자본주의는 여러 테크놀로지를 이용하지만 테크놀로지 자체가 아니며 감시 자본주의를 작동시킬 플랫폼을 선택하고 알고리즘을 이용하지만 플랫폼이나 알고리즘 자체가 아니다. 오히려 감시 자본주의의 본질은 자본의 이익이라는 경제적 필요성에 부합한다고 볼 수 있다. 


<감시 자본주의 시대>는 저자의 오랜 연구를 토대로 새롭게 대두된 감시 자본주의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를 위해 감시 자본주의의 토대와 전진 그리고 도구주의 권력으로의 진화를 살펴보고 있다.

우리의 조상은 산업화 시대를 거치며 소위 현대성이라 부를 수 있는 가치를 획득했다. 전통적 규범으로부터 벗어나 개인의 삶을 부족이나 씨족의 공동체에 종속되지 않는 개별적인 무엇으로 바라보게 된 것이다.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최근에는 산업화 시대가 제공한 막대한 부를 바탕으로 생존 이상의 가치를 추구하는 경향이 커졌고 자의식은 더욱 확장되어 대중이라는 무리를 벗어나고자 하는 개인화가 진행되었는데 이런 현상을 '2차 현대성'이라 부를 수 있다. 2차 현대성의 획득은 선험적 사회 규범보다는 개인의 정체성을 보다 중요하게 여기게 했으며 이에 걸맞는 새로운 생활 방식으로의 전환을 불러왔다.

신자유주의가 낳은 각종 불평등한 결과물은 '2차 현대성'의 사람들에게 큰 반감을 샀는데, 자본수익율이 경제성장율을 초과해 세습 자본주의로 가는 사회의 모습은 개인의 능력과 주체성을 높은 가치로 여기는 사람들을 분노케했기 때문이다. 이런 혼란한 와중에 디지털 기술의 급격한 성장은 신자유주의와 디지털의 결합을 통한 새로운 형태의 현대성(3차 현대성)을 제시하는 것처럼 보여졌다. 애플을 예로 들자면 개인적인 자율성에 맞는 아이템을 구성할 수 있는 수단으로써 아이폰, 아이팟, 아이튠즈 등이 시판되었고 엄청난 인기를 누리며 새로운 시장을 형성했다. 그러나 디지털 기술의 이점을 누리기 위해서는 '인터넷 약관'이라고 하는 관문에 '동의'를 해야했는데 이 동의를 통해 개인이 이용하는 수많은 정보와 접속을 자본가들이 상업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면죄부를 제공하게 됐다. 디지털 공간에서 개인이 행한 접속과 획득한 정보는 공짜가 아니라 자본가들에게 엄청난 수익을 안겨줄 행동 데이터를 얻기 위한 대가가 되었으며 개인의 자주성과 존엄성을 위협할 수 있는 요소가 되었다.  


1998년 레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이 구글을 창립했을 때 구글이 제시하는 해방적이고 민주적인 정보의 제공에 3차 현대성에 속한 사람들은 흥분하고 지지를 보냈다. 수많은 사람들이 구글을 이용했으며 구글이 제공하는 서비스는 다양해졌다. 이용자들이 구글에 접속하고 어떤 행위를 하는 것은 (이용자의 의사와 상관없이) 세세하고 광범위한 데이터를 남겼고 이를 통해 이용자의 생각과 감정과 관심을 구성할 수 있음을 알게 됐다. 초창기에는 이 잉여의 데이터의 응용이 긍정적으로 작용해 사용자들이 남긴 흔적(행동잉여, 데이터)은 속도, 정확성, 관련성의 개선, 번역과 같은 부가서비스의 질을 향상시키는데 사용되어 구글과 이용자가 선순환 구조를 형성했다. 그러나 이런 선순환 행동 가치 재투자 사이클(behavioral value reinvestment cycle)은 경제적 이익을 제공하지는 않았기 때문에 구글은 수익을 창출하기 위한 방안으로 행동잉여(데이터)를 활용한 표적형 광고를 시행함으로써 막대한 부를 창출해낸다. 사용자의 행동 데이터를 감시, 포착, 확장, 구성, 탈취해 사용자의 패턴과 관심을 분석해내고 광고에 활용함으로써 개별 맞춤형으로 구성된 효효율성 높은 광고를 만든 것이다. 이렇게 시작된 감시 자본주의는 구글을 필두로 급속하게 정보 자본주의는 시장을 장악해 나갔고 구글을 비롯한 감시 자본주의자들은 소비자의 요구를 충족시키는 것보다 그들의 행동잉여를 토대로 만들어진 행동 예측을 판매하는 것이 훨씬 수익성이 높다는 점을 발견하고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수익성을 맛본 감시 자본주의는 공급을 더욱 확장해 더 많은 행동잉여를 획득할 수 있게 됐고 더 정교한 예측과 구체적인 맞춤형 상품으로 부를 늘리는 작업을 수행할 수 있게 됐다. 사용자들의 정보(행동잉여)가 강탈 당하고 가공되는 과정은 더욱 견고해졌다. 감시 자본주의 세력은 정부 및 정치인들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며 수탈의 정당성을 부여받았고(적어도 묵인 하에) 자신들을 위협하는 법안이나 세력을 견제함으로써 체제를 유지했으며, 수탈은 정치적.사회적.행정적.기술적인 작전이 뒤엉켜 진행되었다. 수탈의 사이클은 네 단계의 침입(incursion), 습관화(habituation), 각색(adaption), 조준변경(redirection)을 거쳐 형성된다. 구글 서비스를 이용하며 남긴 사용자의 수많은 흔적이 침입 대상이 되며 간혹 침입에 대한 저항에 부딪히기도 한다. 저항이 발생한다 할지라도 저항이 잦아들 때까지 기다리는 습관화 단계를 거치며 조금씩 저항이 약해지는데 이를테면 법적 절차와 소송을 지연함으로써 사람들이 잊거나 불가피한 일로써 받아들이도록 유도했으며 필요한 경우 희생양을 설정해 거대 기업은 프라이버시를 침해하지 않지만 유해한 한 인물이 저지른 부도덕한 행위로 몰아갔다. 프라이버시를 침해한 것이 명백하고 저항이 거세게 다가올 때는 문제가 되는 부분만을 각색해 사용함으로써 법망을 피해갔고 다른 수단을 가용해 목표(데이터)를 획득하는 조준변경을 수행했다. 수탈은 저자가 다루고 있는 구글, 페이스북, 마이크로소프트, 아마존, 애플 모두에서 자행되었고 이들 선두주자들 뿐 아니라 후발주자들이 감시 자본주의 시장에 진입함으로써 경쟁은 과열되고 있다. 


감시 자본주의의 경쟁의 심화는 단순히 행동잉여로부터 찬탈한 정보를 수집하는 것을 넘어 얼마나 더 정교한 행동 예측으로 이어지게 할 수 있는가에 다다라 양적인 면과 질적인 면을 모두 잡아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됐다. 일부 학자들은 미래 사회에는 인터넷이 사라질 것이라 전망한다. 이것은 인터넷 자체가 없어진다는 의미가 아니라 인터넷이 일상의 곳곳으로 완전히 스며들어 현재의 PC나 스마트폰이 없이 사용하게 될 것(유비쿼터스 컴퓨팅, ubiquitous computing)을 암시하는 것이다. 이런 시대적 변화에 따라 감시 자본가들도 행동잉여의 추출과 행동예측을 동시에 수행해 사용자의 실생활에 즉각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수단을 강구하고 있다. 예를 들어 리스 차량이 월부금이 입금되지 않으면 차량 모니터링 시스템을 통해 차의 시동이 안걸리게 한다거나 차의 환수를 위해 차가 있는 위치를 알아낼 수 있도록 만들 수 있고 자동차보험사는 운전자의 운전습관을 모니터링해 보험료를 차등 적용시킬 수도 있다. 이와 같은 유비쿼터스 컴퓨팅이 생활의 곳곳에 적용될 수 있는데 이것은 다른 의미로 감시 자본가들이 행동잉여로부터 막대한 수익을 창출해 낼 수 있는 영역이 광범위하게 펼쳐져 있다는 것이다. 디지털 혁신과 기술의 발달에 따라 인간의 주체성을 다소 침해할 수 있는 유비쿼터스 컴퓨팅은 시대의 숙명이며 불가피하다는 주장은 감시 자본주의를 옹호하는 발언으로써 감시 자본가의 수익을 늘리기 위한 수단이라는 실질적 사실은 감추려고 한다. 


인간의 경험(행동잉여)을 데이터화하는 작업을 랜더링(rendering, 어떤 것을 다른 것으로 바꾸는 인과적 행위 혹은 변화의 대상이 스스로를 그 변화 과정에 넘겨주는 행위)이라고 부를 수 있다. 당사자가 랜더링을 결정하고 그것을 통해 개인의 삶이 더 풍요로워지고 당사자만이 공유 및 활용의 유일한 결정권자가 돼야 함에도 불구하고, 실질적으로 랜더링은 당사자가 아닌 감시 자본주의에 따른다. 최근 감시 자본가들은 사용자의 행동잉여 뿐 아니라 지극히 개인적인 내면의 감정들까지도 랜더링하고 있다. 디지털 비서와 같은 수단으로 개인이 갖는 욕구, 욕망, 감정까지도 수집하고 가공하여 감시 자본을 위한 재료로 쓰이는데, 개인의 온라인 및 오프라인 정보가 예측상품으로 탈바꿈 돼 시장에서 거래되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사용자에게는 보다 개인적인 맞춤형 서비스를 얻기 위한 불가피한 과정이며 더 나은 서비스를 위해서는 보다 많은 사적인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고 어필한다.


수차례 언급되는 바이지만 랜더링의 목적은 복리증진이 아닌 감시 자본가의 수익이다. 유비쿼터스 컴퓨팅을 지원할 수 있는 아키텍쳐가 제대로 구성된다면 현실 세계에서 일어나는 정보를 실시간으로 추출 및 랜더링하여 사용자의 행동을 수정하거나 특정 방향으로 이끌 수 있다(actuation). 엑츄에이션은 조율(어떤 시간과 장소, 상황을 특정 행동을 하도록 설정하는 것), 유도(리스 차량의 월부금 미납 시 차량의 시동이 안걸리도록 하는 것과 같은 특정 행동을 행할 확률을 높이는 것), 그리고 조건화(파블로프의 조건/반응에 스키너가 추가한 강화를 이용해 특정 행동이 반복적으로 실행되게 하는 것)로 실현된다. 엑츄에이션은 개인의 주체성을 침범하는 심히 우려되는 부분임에도 불구하고, 감시 자본가들은 교묘한 수단으로 법망을 피하면서 첨단 기술의 편의를 얻고자하는 사용자들을 감시 수익을 위해 방대한 정보를 제공해야하는 처지로 몰아넣는다. 거대 기업이 행하는 이 과정은 개인이 알아차리지조차 못하게 은밀히 진행되거나 저항에 부딪히더라도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면서 진행된다.

감시 자본주의 하에서 개인은 행동잉여의 수집, 추출, 가공의 어떤 과정에도 능동적으로 참여하지 못하며 결정권조차 부여받지 못한다. 인간 행동에 관한 방대한 지식과 사용은 감시 자본가들과 그들의 하수인들에게 허락되며 인간의 가치는 처음에 만들어진 원재료 공급원으로, 그 다음에는 보장된 성과를 위한 표적으로 전락하게 된다. 인간의 자유 의지는 개인의 미래를 설계하고 실천함으로써 예상되는 미래를 향해 다가서도록 한다. 그러나 감시 자본주의가 인간의 자율성을 침해함으로써 인간에게 주어진 고유의 선택권은 박탈당하고 있는 실정이고 이런 움직임은 기술의 발달에 힘입어 더욱 침투적이고 더욱 영향을 미치는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다. 


감시 자본주의는 이전에 없던 새로운 현상으로 과거의 전체주의와 제국주의로 설명할 수 없다. '디지털 전체주의'라는 용어가 포용하기에도 부족하다. 감시 자본주의하에서는 감시 자본이 인간과 인간의 행동을 다른 사람들의 수익을 위한 수단으로 활용하기 때문에 '도구주의'라고 칭할 수 있을 것이다.  전체주의가 폭력 수단을 통해 작동한 반면 도구주의 권력은 행동수정수단을 통해 작동한다. 전체주의는 정치 프로젝트라면 도구주의는 시장 프로젝트이다. 감시 자본주의를 과거의 이론으로 이해하고자 한다면 오히려 심리학자 스키너의 행동주의에서 그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스키너가 주장한 바에 따르면 인간이 자유 의지라고 부르는 것은 과학에서 우연이라고 부르는 것과 일맥상통하는 것으로 우리가 아직 그 원리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명명한 것에 불과하고 만약 인간의 지식이 충분히 깊어지면 인간의 '자유 의지'에 의한 것이라고 믿는 행동은 선행하는 환경적 이력에 영향을 받아 발생한 예측 가능한 것에 불과하다. 스키너의 관점에서 자유란 무지의 다른 이름이었다. 전체주의가 영혼의 개조를 갈망했다면 스키너의 행동주의는 행동의 예측을 갈망했다. 


감시 자본주의의 등장은 도구주의 권력자들에게 스키너의 행동주의를 실현시킬 수 있는 수단으로 여겨졌을 것이다. 사람들로부터 획득한 지적 재산을 자신들의 부를 늘리는데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으며 여기서 상실되는 사람들의 자유는 외면하고 있다. <1984>의 빅 브라더에 대비해 빅 아더(Big Other)라고 부를 수 있는 도구주의 권력은 사회를 집단주의로 몰아가고 개인의 '자연 선택'을 변종과 강화를 이용해 '인위적 선택'으로 변형시킨다. 대상이 감지하지 못하는 사이에 개인의 자율성을 예측가능한 방향으로 이끌고 있다. 인간에게 성역으로 여겨지는 집은 인간에게 사생활의 영위와 평안과 휴식을 제공하고 은신처로 활용된다. 빅 아더는 이제 집이라는 성역조차도 허무는 침투를 감행하고 있으며 물리적/정보적 프라이버시가 침해되고 있다. 


이제는 에디슨이 자본주의의 무분별한 팽창을 바라보며 포드에게 전한 말 "모든 것이 잘못되었다. 통제를 벗어나 버린 것이다."을 떠올려야 한다. 에디슨의 우려처럼 자본주의가 치닫는 절망에서 벗어나기 위해 우리는 자본주의의 유연성에 기대 많은 것을 변화시켰다. 자본주의는 사유 재산, 이윤 추구, 성장이라는 골자는 유지했지만 상황에 따라 형태와 규범을 바꾸어 현재까지 이어져왔다. 낯설고 새로운 감시 자본주의를 대함에 있어서도 변화가 요구된다. 이 변화는 개개인의 내면으로부터 시작되어져야 한다. 우리가 향유하는 민주주의와 주체성을 지키기 위해서는 감시 자본주의가 선심쓰듯 내뱉는 유혹의 손길을 단호히 거절할 줄 알아야 하며 이제까지 우리의 중심 가치가 되어온 것들(도덕, 정신, 자유, 주권, 존엄 등)에 대해 되새겨봐야 한다. 






산업 자본주의는 자연을 파괴했고, 감시 자본주의는 인간의 본성인 자유성과 도덕성을 파괴하고 있다. 우리가 모르는 사이 혹은 우리가 알면서 방임하는 사이, 감시 자본가들은 첨단 기술을 활용하여 우리의 자율성에 피해를 입히며 막대한 부를 축적해나가고 있다. 감시 자본주의에 등장하는 유비쿼터스 컴퓨팅을 비롯한 디지털 장치들은 행동잉여의 추출, 랜더링, 엑추에이션, 예측상품 제조라는 공정을 통해 표적이 된 대상에게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제품을 판매하는데 쓰이고 있다는 점은 놀라운 사실이다. 실생활에서 내가 행한 모든 발자취들이 원재료의 형태나 가공된 형태로 내가 동의하지 않은 누군가에게 판매/이용되고 있으며 이것이 나의 행동패턴을 수정하도록 조장할 수 있다는 점은 두렵기도 하다. 


인류의 기술이 진일보 할 때마다 많은 문제가 동반되었다는 점은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 근현대만 떠올려봐도 산업혁명 시기의 러다이트 운동이나 인터넷의 대중화로 해킹과 익명성의 폐해 등 각종 문제가 대두되었으며 일부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감시 자본주의 시대>에서 다루는  감시 자본주의는 첨단 디지털 기술의 발전과 그것을 악용해 대중들의 권리를 침해하는 실태를 고발하고 있다. 


일반인의 입장에서는 '첨단 기술'의 편의를 누리기 위해 감수해야 하는 부분의 경계를 가늠하기가 어렵다. 저자가 주장한 바대로 우리가 스스로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서는 감시 자본주의 세력에 맞서야 하며 약간의 편의를 위해 자유 의지의 수탈을 방관해서는 안된다고 하지만 그 범주를 정하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시민의 권리를 수호한다는 취지에서 보자면 정부의 대책이 필요한 상황이지만 <감시 자본주의 시대>에 적힌 감시 자본가와 정치권력 사이의 유대관계를 생각해 보면 이 또한 쉽지 않을 것이라 전망된다. 결국 우리가 인간이 가진 고유한 가치라고 여기는 것들과 사생활이라는 안식처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우리 스스로 감시 자본주의 시스템이 제공하는 서비스를 경계하고 검토할 필요가 있다. 생각이 필요한 부분이다. 


<감시 자본주의 시대>에 담긴 IT 기업들의 만행은 이 책을 읽기 전에 어렴풋이 짐작했던 사생활 침해의 수준을 넘어서고 있다. 거대 감시 자본가가 취하는 방식을 알고 거기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읽어보는 게 좋을 것이라 생각한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읽고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