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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도시 이야기 허밍버드 클래식 M 5
찰스 디킨스 지음, 김소영 옮김 / 허밍버드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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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번개를 만들고 보관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만 번개로 사람을 내리치는 것은 찰나의 순간이듯, 지진을 만들고 보관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만 지진이 도시를 휩쓰는 것이 짧은 순간이듯, 혁명의 불씨를 만들어 키우는 데 오랜 시간이 필요했지만 일단 만들어진 혁명의 불씨는 불꽃이 되고 화마가 되어 온 대지를 뒤덮었다. 

 

찰스 디킨스는 세익스피어와 함께 영국을 대표하는 작가로 칭송받고 있으며 그의 작품은 시대를 넘어 꾸준한 사랑을 받는 스테디셀러로 유명하다. 특히 <두 도시 이야기>는 <올리버 트위스트>, <크리스마스 캐롤> 등과 함께 그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두 도시 이야기>의 배경은 왕정과 귀족의 폭정에 항거해 1789년 발생한 프랑스 대혁명 전후이며, 이 혼란한 시대를 살아간 인물들의 굴곡진 삶을 글로써 묘사하고 있다.  

 


결말을 제외한 대략적 줄거리를 적자면 다음과 같다. 

죽을 줄로만 알았던 아버지 마네트가 살아 있다는 소식을 접한 루시와 루시의 후견인 격인 로리는 마네트 박사를 만나기 위해 파리로 향한다. 오래전 죄명도 모른 채 갑자기 끌려가 감옥에 갇힌 마네트 박사는 15년이 넘는 수형생활의 고초로 인해 기억을 잃고 정신마저 잃은 상태로 석방되어 파리의 빈민가에서 생활하고 있었다. 마네트 박사를 런던으로 데려와 지극정성으로 보살핀 결과 어느정도 기억이 돌아오고 정신병적 증상도 상당한 호전을 보였다. 오랫동안 누리지 못했던 가족과 친구들의 따뜻한 온기에 마네트 박사의 삶은 그가 마땅히 누렸어야 할 행복을 늦게나마 되찾은 것 같았고 루시가 다네이와 결혼해 가정을 꾸리면서 마네트 가족의 행복은 더욱 풍성해지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프랑스 대혁명 전야에 프랑스로부터 다네이에게 날아온 한 통의 편지는 이 가족을 깊은 수렁으로 이끈다. 현명하고 정의로운 다네이는 자신에게 도움을 청하는 '시민'의 도움을 외면할 수 없어 파리로 향하게 되고 그가 예상치 못했던 곤란에 빠지면서 마네트 박사와 루시까지 휘말리게 된다. 다네이는 프랑스 귀족 출신이라는 신분 자체가 죄명이 되어 사형선고를 앞두게 됐고 다네이의 위기를 알고 달려온 마네트 박사와 루시 또한 흉흉한 파리의 분위기에 공포와 위기를 느낀다. 


다행스럽게도 마네트 박사와 다네이의 곁에는 그들을 믿고 지지하는 로리와 같은 친구가 도움의 손을 내밀었으며 루시를 사랑하지만 자신의 조건이 좋지 못한 이유로 그녀에게 친구로 남기를 택한 카턴 같은 비범한 인물도 적극적으로 나섰다. 


상황은 녹녹치 않았다. 그동안 압제에 시달렸던 시민 계급의 분노는 상상을 초월했고 그들의 자행하는 온갖 폭력행위는 가라앉을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다네이의 목숨이 언제 떨어져도 이상하지 않을 긴박한 상황에서 마네트, 로리, 카턴 등은 각자의 능력을 활용해 다네이의 구명을 위해 최선을 다한다. 

 


<두 도시 이야기>를 처음 펼쳤을 때는 여느 재미있는 소설일 것이라 지레짐작했었다. 그러나 책을 읽어나가면서 내가 경솔한 생각을 품었음을 여실히 깨달았고 왜 이 책이 2억 부나 팔렸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두 도시 이야기>에 담긴 찰스 디킨스의 문장은 객관적 묘사를 담고 있지만 화려하거나 장황하지 않았다. 더욱이 무거운 주제와 긴박한 상황을 다루는 순간에도 종종 등장하는 재치있는 멘트는 독자의 미소를 유도하고 자칫 긴박감 일색으로 빠질 수 있는 상황의 완급조절을 해주는 느낌이었다. 특히 '7장 도시의 나리'와 '14장 정직한 상인'은 찰스 디킨스의 재치와 해학, 그리고 풍자를 새련되게 담고 있었다.


<두 도시 이야기>의 많은 부분은 프랑스 대혁명을 앞두고 만연해 있던 위정자들의 비윤리적 폭거와 압제를 드러내고 시민들이 1789년 바스티유 감옥을 습격하기까지의 과정과 이 후의 전개를 등장인물들을 통해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데 할애된다. 

찰스 디킨스가 써내려간 프랑스 대혁명은 아름답지도 숭고하지도 정의롭지도 않았으며 선과 악이란 무엇인지 정의란 무엇인지 인간의 본성이란 어떤 것인지에 대한 사유를 자극하고 있다.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1830년, 들라크루아 작)'을 떠올리게 하던 드파르주 부인과 같은 인물을 보고 있자면 더욱 그러한 질문들에 대한 답을 요구받는 기분이 든다.


보통 같은 시기에 몇 권의 책을 생각나는대로 잡아 읽는 편인데, <두 도시 아야기>는 단숨에 마지막 장까지 읽도록 자극하는 매력과 재미를 지닌 소설이었으며 재미, 긴장감 그리고 사유까지 다양한 요소를 품고 있었다. 그 중에서도 몇가지 에피소드는 오래토록 기억에 남으리라 생각한다. 


본문에 귀족의 마차에 치여 어린아이가 사망하는 장면이 나온다. 부패한 사회에 걸맞게 가해자인 후작은 되려 자신의 길이 방해받았음에 분통을 터뜨리고 말이 괜찮은지 걱정할 뿐 죽은아이는 거들떠 보지도 않는다. 아이의 아비는 울부짖으며 항의하지만 억압과 부당함에 익숙해진 이웃들이 그의 분노를 억제시킨다. 후작이 적선하듯 죽은 아이의 애비 앞에 금화 한 닢을 던져주는데 그 아비는 금화를 보며 무슨 생각이 들었을까. 아이의 생명을 앗아간 귀족에게 달려들지도 못하는 분통이 어떠했을 것이며 얼마나 애달팠을 것인가. 이러한 삐뚤어진 시대의 단면을 보자면 시민들의 분노가 발산된 프랑스혁명의 당위성을 인정하게 된다.


그러나 프랑스혁명이 터지고 자유와 평등과 박애를 사랑한다고 주장하는 애국시민의 행태는 또다른 불편함을 전한다. 부당한 대우에 억눌려 있다 폭발한 혁명의 주체인 시민들이 새로운 기득권이 되어 자신들 또한 부당함을 행사하는 데 거리낌을 느끼지 않게 된다. 다네이가 자신에게 호의를 표시하며 눈물을 흘리고 포옹하려 달려드는 애국시민들의 모습에서 만약 이 애국시민들이 다른 물결에 휩쓸렸다면 자신의 사지를 찢기 위해 맹렬히 달려들었을 것을 상기하며 섬뜻함을 느끼는 장면은 무거운 의미를 던진다.


잘나가는 변호사 스타라이버의 조수로 등장하는 시드니 카턴이란 인물 또한 흥미로웠다. 무언가 내성적이고 음침한 분위기를 풍기를 그의 모습은 아웃사이더의 전형같이 다가오지만 그가 간직한 사랑과 사랑의 맹세는 한 치의 오점도 남기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무뚝뚝하고 불친절하고 무관심한 듯 보여지는 카턴, 그러나 그의 짤막한 말들과 말보다 훨씬 큰 의미를 선사하는 행동들을 통해 카턴이라는 인물을 굉장히 매력적으로 이끄는 것 같다. 


찰스 디킨스의 <두 도시 이야기>는 총 3부로 구성돼 있는데 1부에 등장하는 인물과 사건들이 대부분 복선이 되어 2-3부에 나타나며, 개연성이 높은 스토리 전개로 글이 끊어지는 느낌 없이 부드럽게 이어지고 후반부로 갈수록 긴장감이 고조돼 더욱 몰입할 수 있었다. 

등장 인물들 모두 맡은 바를 충실히 열연하고 막을 내리는 영화를 본 기분이 들었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읽고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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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정염 : 모빠상 단편집 펭귄클래식 에디션 레드
기 드 모파상 지음, 이형식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웅진)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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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에게 프랑스 문학은 친숙하게 다가온다. 언어에 기인한 것인지 정서적 공유에서 비롯된 것인지 명확히 알 수 없지만 주관적인 경험을 돌아보더라도 프랑스 문학 작품은 몰입과 공감이 쉬웠음을 떠올리게 된다. 빅토르 위고, 앙투안 드 생텍쥐베리, 알베르 카뮈, 에밀 졸라, 스탕달, 알렉상드르 뒤마 등 우리에게 익숙한 고전 작가들 뿐 아니라 베르나르 베르베르와 기욤 뮈소 같은 현대작가들의 수많은 작품이 한글로 출판되고 여전히 큰 사랑을 받고 있다. 


기 드 모파상(Guy de Maupassant)은 19세기 프랑스를 대표하는 작가로 그가 1893년 43세의 나이로 요절하기 전까지 300여 편의 소설을 남겼고 <어떤 정염 : 모빠상 단편집>은 모파상의 단편 소설 가운데 사랑을 주제로 한 20편을 소개하고 있다. 사랑이 주제라는 공통점을 공유할 뿐, 각 작품이 다루는 사랑은 종류도 흐름도 결말도 그리고 독자의 감상도 다양하다고 생각한다. 




<어떤 정염 : 모빠상 단편집>은 고즈넉한 저택에서 할머니와 손녀가 사랑에 대해 이야기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결혼이란 가족을 구성하고 사회의 일원이 되어 공동체에 기여하기 위한 제도적 구속인 반면 사랑이란 마음에 일어난 정열을 따라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기 때문에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수십 번의 사랑을 할 수 있다는 할머니의 말에 소녀는 당혹스러워 한다. 소녀는 사랑이란 지고지순한 순정의 발로로 일생에 단 한 번만 찾아오는 축복의 순간이라 여기기 때문이었다. 


할머니와 소녀의 사랑에 대한 대화 혹은 할머니가 손녀에게 사랑에 대한 가르침을 주는 이야기에 이어 19가지 사랑이 이어진다. 

분위기에 취해 불륜을 저지른 후 자신의 감정이 상대방을 향한 진정한 사랑이었는지 단지 분위기에 휩쓸린 것인지조차 명확하지 않은 여인의 사랑, 신분을 뛰어넘는 사랑의 도피를 감행하고 수십 년이 지난 후 빈곤한 형편에도 불구하고 행복하다고 자신하는 연인들의 사랑, 우정과 사랑사이에서 고뇌하는 젊음이의 애달픈 사랑, 그리고 일방적인 정염에 휩쓸려 상대방을 자신의 울타리로 불러오지만 그 결말이 자신 외 모든 사람을 곤궁에 빠뜨리는 사랑도 담겨 있다. 


살아있는 인간에 대한 사랑이 아닌 죽은 자의 물건을 몰입해 그 물건을 통해 죽은 자를 소환해내는 기이한 사랑, 너무나 사랑했던 연인이 죽어 땅에 묻히자 그녀의 시신을 통해서라도 다시 만나고자 시도한 섬뜻한 사랑, 그리고 미물이라 여겨지는 새(bird)의 사랑은 우리가 생각하는 사랑의 범주를 확장시킨다.


첫눈에 반해 연심을 품었음에도 이미 다른 사람과 결혼해 가정을 꾸린 여인을 먼 발치에서 수십 년을 지켜보다 열정과 호기심을 이기지 못해 드러내야 했던 사랑, 사랑하는 사람에게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지 못한 채 원치않는 결혼을 하게 되자 마음의 병을 얻어 죽어가는 여인의 사랑과 그럼에도 그녀를 사랑하는 남편의 사랑, 형부가 될 사람을 사랑하게 된 여인의 극단적 선택이 부른 비극과 후회, 마음을 준 연인이 다른 사람과 사랑에 빠졌다는 절망감에 극단적 선택을 해야 했던 사랑을 소개하기도 한다. 


단순한 여흥처럼 사랑의 대상을 쉽게 바꾸는 인스턴트적 사랑, 지적 장애자임에도 사랑에 대한 열망은 가득했지만 결국 버림받아 좌절한 사랑, 부인의 정욕에 시달려 자신이 죽을 것이라 여겨 부인에게 정부를 안겨주는 웃지못할 남자의 이야기도 있다. 

그리고 마지막 단편에 소개된 사랑은 젊은 시절 잠시 스쳐간 여인이 낳은 남자를 보며 자신의 아들이라 확신하고 그의 초라한 형편에 깊은 연민과 죄책감을 느끼지만 자신의 지위와 명성이 위해를 입을까 두려워 선뜻 나서지 못하는 노인의 사랑이다. 




<펭귄클래식 에디션 레드>에 수록된 7권의 책 가운데 모빠상의 <어떤 정염 : 모빠상 단편집>은 '사랑'이라는 의미를 돌아보게 된다. 특히 진정한 사랑이란 어떤 것인지 떠올려보게 되는데, 사랑이란 일생에서 내 마음을 가장 크게 쏟았던 한 가지를 칭할수 없다는 생각과 함께 내가 마음을 주는 모든 것들이 사랑이 될 수있으리란 생각이 들었다. 대상과 시기에 따라 사랑이라는 것은 기쁨, 희열, 만족 등의 긍정적 감성을 자극하기도 하지만 내가 마음에 담아둔 어떤 것으로부터 느끼게 되는 박탈감, 고통, 슬픔 또한 내 사랑이 좌절된 데에 대한 '사랑의 그림자'가 아닐까 생각한다.


우리의 삶을 구성하는 모든 요소들, 가족, 친구, 동료, 때로는 어떤 물건일지라도 내가 마음먹기에 따라 사랑으로 존재할 수 있음을 새삼 느끼게 된다. 행복하고 풍성한 삶이란 인생의 종장에 내가 많은 것을 사랑했고 내가 많은 사랑을 받았노라고 말할 수 있는 삶이 아닐까!


모빠상이라는 이름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그의 작품을 제대로 읽은 적이 없었는데 <펭귄클래식 에디션 레드> 세트가 출간됨으로써 어쩌면 영원히 모르고 지났을 좋은 작품을 만날 기회를 얻은 것 같다. <펭귄클래식 에디션 레드>의 다른 책도 <어떤 정염>이 선사한 것과 같은 재미와 감동을 줄 것이라 여겨 시간을 두고 천천히 읽어보고 싶다. 



마지막으로 '20편의 사랑 이야기'의 주인공 가운데 내가 가장 서글프게 생각했던 여인에 대한 애잔함을 적어보고 싶다. <의자 수선하는 여인>에 등장하는 의자 수선공은 부모로부터 지독한 가난과 의자 수선법을 물려 받았다. 삶에 치여 자녀에게 마땅히 쏟아야 할 사랑과 관심을 주지 못하는 부모와 그녀의 신분과 행색을 꺼려하고 혐오하는 타인들. 세상은 그녀를 더러운 무언가로 여기는 듯 했고 안타깝게도 그녀 또한 그런 자신의 처지에 순응하며 지냈다. 부모와 함께 일거리를 찾아 들른 마을에서 그녀는 돈을 잃고 울고 있는 또래 남자아이 슈께를 보게 된다. 슈께가 안스럽게 느껴져, 간혹 그녀를 동정하는 사람들로부터 받아 모아 두었던 모든 돈을 그에게 건내 준다. 슈께는 보답으로 그녀가 그를 안아도 밀쳐내거나 떄리지 않았다. 그녀는 행복했다. 이 일을 계기로 인간관계와 사랑의 가치관을 올바로 형성할 기회를 부여받지 못했던 그녀에게 슈께는 사랑의 대상이 되었다. 그리고 '돈'은 그녀가 사랑하는 남자를 잠시라도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주는 매개체가 되었다. 

어린 그녀의 마음 속에 깃든 왜곡과 순수함을 지닌 사랑은 이후로 50년 동안 지속되다 그녀의 죽음에 이르러서야 막을 내린다. 그녀의 한결같은 사랑의 대상이었던 슈께는 그녀가 제공하는 금전을 사랑했을 뿐 그녀를 향한 애정은 전혀 없었다. 죽음을 목전에 둔 그녀는 지인에게 자신의 사랑에 대해 털어놓고 슈께에게 자신의 마음과 자신이 평생을 모아온 '돈'을 그에게 전해달라고 청한 뒤 숨을 거둔다. 그녀의 소식과 유품(돈)을 들고 슈께를 찾아간 대리인은 슈께의 반응을 통해 보상받지 못한 그녀의 사랑에 깊은 연민을 느낀다.

나 또한 첫 단추를 잘못 꿴 그녀의 사랑에 안타까움을 느끼고 뒤틀린 사랑조차 갈망해야 했던 그녀의 환경에 슬픔을 느꼈다. 그리고 마지막 순간까지 슈께에 대한 한결같은 사랑을 간직했던 그녀는 과연 행복했을 것인지, 눈을 감는 순간에도 하늘로 올라간 후에도 행복했길 바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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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딘 뒤바뀐 램프의 주인 디즈니 오리지널 노블
리즈 브라즈웰 지음, 김지혜 옮김 / 라곰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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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개봉한 영화 '알라딘'은 어린이들의 꿈을 구현해주고 어른들의 감성을 자극하는 스토리와 구성 그리고 배우들의 열연과 OST에 힘입어 '천만 관객 영화'에 등극했다. 나 또한 관객의 1인으로 영화 알라딘을 재밌게 감상했으며 오래 전 읽었던 소설 알라딘을 떠올리며 마음 속으로 두가지를 비교해보기도 했다. 그러나 내게 소설 알라딘은 '오래 전 재밌게 읽었다'는 기억 조각과 함께 극히 지엽적인 장면만 남아 있을 뿐 전체적 스토리와 감상이 떠오르지 않아 언제고 기회가 되면 글로써 알라딘을 접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알라딘 뒤바뀐 램프의 주인>은 작년에 내가 마음에 품었던 책으로 알라딘을 읽어 '재밌게 읽었던 기억'에 실제적인 스토리를 더하고 글에서 얻을 수 있는 감상을 추가할 기회를 주었다. 더불어 어렸을 적에는 권선징악에 대한 흐뭇한 감상에 치우쳤을텐데 나이가 들고보니 아그라바의 전임 황제나 자파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되고 알라딘에 대한 것 또한 '멋진 주인공'의 이면을 같이보게 되는 듯 했다. 


<알라딘 뒤바뀐 램프의 주인>은 아랍의 아그라바 왕국의 빈민가에 사는 청년 알라딘의 모험과 사랑을 그린다. 알라딘은 시장을 거닐던 공주를 구하게 되면서 공주와 인연을 맺고 그녀에게 사랑을 느낀다. 사악한 궁정 대신인 자파에 모략에 빠져 '지니의 요술램프'를 뺏기고 사막의 동굴에 갇히게 된다. 불굴의 의지로 동굴을 벗어나 아그라바에 돌아와보니 자파가 요술램프를 이용해 왕위를 찬탈하고 자스민 공주를 핍박하고 있었다. 알라딘은 자파를 벌하고 자스민을 구해내기 위해 빈민촌의 옛 친구들과 함께 계획을 세운다...


어렸을 적 <알라딘>을 동화로 읽었을 때도 그랬을 것이라 생각하고 작년 영화 알라딘을 감상했을 때도 마찬가지 감정을 느꼈는데 그것은 어려운 환경에서 자란 알라딘이 몇가지 우연한 기회와 본인의 용기를 기반으로 국가를 구하고 공주의 사랑을 얻는다는 너무도 행복한 결만에 미소짓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글로써, 중년의 나이에 다시 읽은 알라딘은 순수한 재미와 함께 몇가지 생각을 덧붙이게 만들었다. 특히 생계를 위해 도둑질을 일삼는 알라딘이란 인물과 무능력한 왕을 몰아내고 제위를 찬탈한 자파에 관한 느낌은 단순히 선과 악이라는 측면으로 몰아세우기는 어려워 보였다. 


알라딘의 성장환경은 불우했다. 돈을 벌기 위해 떠난 아버지는 소식이 없었고 홀어머니는 끼니조차 걱정스러운 살림을 맡아야했다. 알라딘은 생존을 위해 도둑질을 일삼았다. 나중에는 자스민 공주를 구하고 자파를 물리치겠다는 마음에 온갖 범죄를 저지른다. 아이의 마음으로 바라본 알라디는 분명 모험심 가득한 영웅이고 정의로운 자일테지만 성인의 눈에 비친 알라딘은 각종 범죄를 일삼는 사회를 어지럽히는 존재로 생각될 수도 있다. 


자파는 2인자 자리를 지켜오고 있었다. 본인의 야심을 채우기 위해 알라딘을 이용하고 왕위를 찬탈한다. 그리고 본인보다 훨씬 젊은 자스민 공주와 결혼해 왕위를 견고히하고자 한다. 비록 부정한 방법으로 제위에 앉았지만 자파가 사술로써 행한 시혜는 가난과 굶주림에 시달리던 시민들의 환호를 받았다. 만약 자파가 무능력한 왕을 벌하고 새로운 나라를 건설하기 위한 걸음까지만 내디뎠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약간의 동정이 생기는 장면이었다. <알라딘 뒤바뀐 램프의 주인>의 자파는 초지일관 악한 마음을 품고 있음은 분명하다. 본인의 이기적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계략을 세우고 양심의 가책도 없이 다른 사람을 희생시킨다. 그럼에도 올바른 위정자가 어떤 인물이여야 하는가를 떠올려보면 무능력하고 놀이에 빠져살던 전대의 왕과 마법으로 모든 권력을 거머쥐고 사람들을 부리려는 자파는 모두 악한 군주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렸을 적 읽었던 동화를 다시 읽을 기회를 접하곤 한다. 기억을 더듬어도 미디어나 다른 책에 자주 회자된 부분만 명확히 기억하는(어쩌면 스스로가 기억한다고 착각하는) 정도에서 글로써 다시 접한 동화는 어렸을 적에 느꼈을 감상과는 분명 다른 느낌을 선사한다. 동심에서 바라본 세상은 우리네 사회 지침과 교육의 방향을 따라 선이 악을 물리치는 장면에서 희열을 느낄 수 있는 단순한 곳이었다. 그러나 어른이 되고 사회생활을 하고 가장이 되는 과정을 겪으며 보다 많은 사람과 책을 만나다 보면 선과 악이라는 개념이 이분법으로 나뉠 수 없는 것임을 깨닫게 되는 것 같다. 


소설 <알라딘 뒤바뀐 램프의 주인>은 소설 자체로도 충분히 재미와 흥미를 유발한다. 게다가 글의 중간중간에 게재된 애니메이션 알라딘의 일러스트로 인해 글이 주는 상상력을 구체화할 수 있다. 그리고 대부분의 독자들이 어릴 적 처음 접했을 알라딘에 대한 향수와 함께 자신이 지나온 삶의 무게만큼의 때를 확인하는 기회가 되기도 하는 것 같다. 


중년이 접한 알라딘은 순수함만으로 구성된 것은 아니었지만 전에 간직했었던 순수함을 떠올리는 동기가 되고 단조롭고 각박한 삶에 미소를 지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그리고 세월의 흐름 속에서 마음이 어떻게 변했는지도 확인 가능하리라. 


PS) 알라딘이 양탄자를 타고 궁전의 활극을 그리는 장면보다 쥐떼거리의 친구들이 주고받는 대화가 내게는 새롭게 다가왔다. 

  "너와 나 사이에 이게 늘 문제였지. 그래, 나도 훔쳐. 하지만 난 필요한 것만 훔쳐. 나 스스로 얻을 수 없는 걸 훔친다고. 근데 넌 본업으로 도둑질을 하잖아. 이젠 아예 제자들까지 무리로 받아서는 애들에게 이런 일을 해도 괜찮다는 생각까지 심어주고 있다고."

   "만약 궁에서 먹을거리와 금덩이를 계속 내어준다면 그때는 더 이상 이 일이 괜찮은 일이 아니겠지. 하지만 역사가 계속해서 증명하잖아. 타인에게 의존하는 건 현명하지 않다고 말이야. 특히 가난한 이들을 구제하는 역활을 하는 자들에게 말이지. 일주일, 길어야 이주일 안에 술탄이 백성을 구제하는 일을 그만둘 거리고 봐."

모르지아나가 말했다. 

    "넌 인간에게서 최악의 면만 보는구나. 그리고 저들의 주머니를 털어도 마땅하다고 생각하고."

알라딘이 침을 뱉었다. 

   "내 아버지는 다리를 잃어도 마땅한 분이 아니셨어. 내 누나는 남편에게 두들겨 맞아도 마땅한 사람이 아니었고."

두반이 차분하게 말했다. 

   "그 누구도 마땅해서 그리 된 것이 아니라고. 그게 현실일 뿐이야."

모르지아나가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다. 

(알라딘 뒤바뀐 램프의 주인 중에서, 152-153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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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에 한번은 차라투스트라 - 니체와 함께 내 삶의 리듬을 찾는 ‘차라투스트라’ 인문학 강의
이진우 지음 / 휴머니스트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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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에 한번은 차라투스트라>는 이진우 교수가 2019년 포스텍 문명시민교육원에서 주최한 <고전의 재발견> 프로그램에서 '니체의 차라투스트라 이야기'를 강연한 것을 기초로 집필됐다. 이진우 교수는 <차라투스르라는 이렇게 말했다>(이하 <차라투스트라>)는 니체가 집필한 철학 텍스트가 아닌 자신에 대한 깊은 성찰을 통해 진정한 자기가 되어가는 삶에 대한 거대한 서사시라고 표현한다. 자신이 니체를 전공했음에도 차라투스트라를 온전히 이해하지 못했던 것은 니체의 글을 분석적으로 접근했기 때문이며 <차라투스트라>를 읽는 것이 아닌 듣는 것으로 받아들이면서 <차라투스트라>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넓어졌다고 생각한다.


이진우 교수는 독자들에게 <차라투스트라>를 읽으며 니체의 사상을 정복하겠다는 공격적인 자세보다는 오히려 차라투스트라에 담긴 행간에 흐르는 음조와 리듬을 느끼는 것이 차라투스트라에 담긴 의미에 가깝게 다가갈 수 있다고 조언한다.


<차라투스트라>는 문학적 전개를 보이지만 세상에 부딪혀 차라투스트라가 겪는 과정과 그것들에 대한 차라투스트라의 언급은 철학적 함의를 담고 있다. 


<차라투스트라>에 대한 문학적 줄거리를 아주 짧게 적어보자면, 차라투스트라는 초인이 되고자 산으로 올라갔고 산 속에서 수행하며 얻은 깨달음을 사람들에게도 알리려고 노력했다. 차라투스트라의 예상과 달리 사람들의 반응은 냉담했고 차라투스트라를 하잖게 보고 비웃는 자가 눈에 띨 뿐이었다. 다시 산에 오르지만 이내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에 끌려 다시 산을 내려오길 반복한다. 그러나 초인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너무 적었고 그저 현실적 쾌락을 좇는 벌레같은 존재만 넘칠 뿐이었다. 차라투스트라는 절망하지만 포기하지는 않는다. 차라투스트라가 초인의 마음으로 사람들을 사랑하고 그들에게 초인으로의 길에 대한 가르침을 주고자 노력하자 그를 이해하고 따르는 몇몇을 만나고 함께하게 된다. 그러나 그들은 보통의 인간(마지막 인간)을 넘어선 존재, 우월한 인간 정도였을 뿐 초인에 이를 수 있는 자들이 아니었다. 


니체가 <차라투스트라>에 담은 철학적 의미는 엄청난 해석의 다양성으로 인해 아직까지 학자들 간에 이견이 있다고 한다. 그러나 대부분은 학자들은 <차라투스트라>에서 초인이 되기 위한 과정에 등장하는 '권력에의 의지'와 '영원회귀'가 중요하다는 점에 동의한다. <차라투스트라>를 느끼기 위해서는 초인, 권력에의 의지, 영원회귀, 마지막 인간, 우월한 인간 등의 단어들이 갖는 의의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초인은 현실에 안주하지 않는 스스로의 가치와 정신을 '창조하는 자'이다. 단발성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스스로를 경멸하고 고독과 싸우며 고통을 이겨내는 과정에 만들어지는 결정체가 진정한 자아이다. 이미 세상에 널리 퍼져 보통 사람들을 지배하는 관념과 규범에서 벗어나 스스로 고뇌하고 사유함으로써 얻은 깨달음을 자신의 가치관으로 삼고, 능동적이고 주관적인 자아를 찾아가는 과정이 초인으로의 여정이다. 초인이 되기 위해서는 부단한 노력이 필요한데 이것은 고독으로 자신을 몰아넣기도 하고 고통마저 포용할 수 있는 사랑을 지녀야 한다. 정신의 고뇌를 거치지 않은 각종 제약에 항거할 수 있는 용기도 필요하다. 


모든 인간은 '권력에의 의지'를 지닌다. 힘이 강한 사람이든 약한 사람이든 상관없이 모든 인간은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권력을 추구한다. <차라투스트라>가 말하는 권력에의 의지는 단순히 누군가를 지배하기 위한 힘과는 다르다. <차라투스트라>는 무엇이 되고자하는 바를 성취하기 위한 동기가 되는 것을 권력에의 의지로 칭했다. 어떤 것, 어떤 상태가 되고자 하는 열망인 권력에의 의지는 세상을 이루는 근간으로 작용할 수 있고 개인이 자신의 내면을 극복하고 한걸음 나아가는 동기로도 작동할 수 있다. 초인이 될려면 자신의 내면을 직시할 수 있고 스스로에 대한 객관적인 경멸을 보낼 수 있어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자신의 악함과 더러움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극복하는 과정을 통해 성장하게 된다. '마지막 인간'은 현실에 안주하여 일시적 행복을 추구하기 때문에 권력에의 의지가 굳셀 필요가 없지만 인간을 초월한 존재인 초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끊임없이 고통을 동반하는 자기성찰을 겪어야 하므로 그만큼 강한 권력에의 의지를 필요로 한다. 


<차라투스트라>는 '영원회귀'를 깨우친다. 태어나서 죽기까지의 인생이 무한히 반복된다는 것을 상상해 보는 것이 영원회귀의 개념이다. 영원회귀라는 말의 정의는 역설적으로 들린다(삶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무한히 반복된다고 한다면 첫 번째 삶과 만 번째 삶을 과연 같다고 할 수 있을 것인지 생각해보면 '영원회귀'라는 말이 갖는 역설을 짐작할 수 있다). <차라투스트라>는 현재가 전부이며 과거는 지나간 현재이고 미래는 다가오는 현재라고 생각했다. 영원회귀 아래에서 삶의 찰나의 순간은 영겁이 되는 기적이 일어난다. 과거이자 미래인 현재가 무한히 반복된다고 한다면 인간의 삶은 그 순간을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 고민해야 된다. <차라투스트라>는 충실한 삶을 강조한다. 현재를 지배하는 어떤 것들에 순응하고 굴종하는 충실함이 아니라 스스로를 돌아보고 받아들이고 극복하는 충실함을 의미한다. 즉 과거에게도 미래에게도 부끄럽지 않을 현재를 살라는 것이다. 




<인생에 한번은 차라투스트라>는 <차라투스트라>에 적힌 여러 문장들을 인용하고 그 문장들에 담긴 의미를 설명해준다. 마치 강단에 선 선생님이 제자들에게 강의하듯 차분한 말투로 편안하고 담담히 글을 적고 있다. 읽다 보면 일반인을 대상으로 가능한 한 쉽고 재미있게 니체의 의도를 전달하고자 노력하고 있음이 절로 전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차라투스트라>는 어렵고 깊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까지 <차라투스트라>를 읽고자 시도했던 것이 서너 번은 되지만 완독한 적은 없다. 내가 마지막 인간에 가까우며 게으른 독자이기 때문에 남들이 주는 빛을 거저 얻으려 했기 때문일 것이다.


<차라투스트라>의 부제는 '모든 이를 위한, 그리고 그 누구를 위한 것도 아닌 책 (A book for everyone and nobody)'이다. 여기서 모든 이는 끊임없는 성찰을 통해 진정한 자아를 발견하고 진정한 삶을 살아가고자 하는 자이다. 자신의 길을 찾기 위해 잠시 니체의 뒤를 따를 순 있지만 자신의 길을 가고자하는 능동적 인간 유형이다.  이런 자들에게 차라투스트라의 가르침은 의미가 있을 것이지만 본인의 고통스러운 성찰 없이 남에게서 위로와 해답을 얻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무의미한 책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 


니체의 차라투스트라가 탄생했던 시대는 소위 허무주의(nihilism)라 일컬어지는 상실의 시대였다. 절대적 가치에 대한 믿음이 사라져 삶에 대한 신뢰가 떨어지고 삶 자체가 문제가 되는 시기에 니체는 절망에 안주할 것이 아니라 삶을 사랑하고 삶을 살아가는 방식을 제안한 철학자라고 말할 수 있다. 우리가 무엇이며 어떤 삶의 방식을 따라야 하는가에 대한 니체의 질문은 니체의 시대 뿐 아니라 고대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꾸준히 제기되어 왔다.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인간과 삶의 본질에 대한 성찰을 위한 안내서라고 여겨진다. 그러나 이 안내서가 그리 쉽게 와닿지 않아 범인들은 안내서를 읽기 위한 또 다른 안내서를 필요로 한다. 이진우의 <인생에 한번은 차라투스트라>가 차라투스트라에 다가서기 위한 안내서 역활을 한다. 그의 조언처럼 니체의 문장을 읽으며 문장이 지닌 의미에 탐닉하기보다 문장과 문장사이에 흐르는 리듬을 느끼고 실천적 자세로 같이 질문하고 같이 사유하는 독자가 되기 위해 노력해야겠다는 다짐이 생겼다. 


현재도 침대 맡에 <차라투스트라>를 두고 잠들기 전과 잠에서 깼을 때 잠깐씩 보고 있다. 니체가 의도한대로 천천히 읽어보는 중이다. 현재 2부 중반부에 이르렀는데 천천히 사유하며 읽는 것에 더해 이진우 교수의 조언에 따라 읽는 것이 아니라 들어보려 하고,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느껴보려 해야겠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읽고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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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더듬을 고치고 내 인생이 달라졌다 - 임유정의 말더듬 교정 트레이닝
임유정 지음 / 원앤원북스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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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더듬을 고치고 내 인생이 달라졌다>는 제목을 보고 반갑기도 하고 우습기도 했다. 40대 중반인 현재까지 긴장하거나 발표하는 상황에서 말을 더듬고 정신줄을 놓는 내가 우습기도 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다시 한 번 말더듬증을 고치기 위해 노력해볼까 하는 생각을 품으며 반가움을 느꼈다. 


이전에도 말더듬을 고치기 위해 여러 방법을 사용해보기도 했고 책을 읽기도 했지만 아직까지 고치지 못했다. 아마 내가 가진 문제(유기적 원인이든, 심인성 원인이든)와 치료 방법이 제대로 맞지 않았거나 내가 노력을 게을리했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이야 나이도 들고 말더듬증 자체에 대한 두려움도 어느정도는 개선된 상태라 생활에 불편함은 없지만 그래도 가능하다면 고치고 싶은게 솔직한 심정이기에 이 책을 읽어 보았다. 


임유정의 <말더듬을 고치고 내 인생이 달라졌다>는 말더듬증에 대한 개괄적 설명은 초반부에 간략히 언급하는 정도에 그치고 바로 본론적인 연습법을 알려준다. 말더듬의 원인이야 어떻든 치료하는 방법과 결과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듯 했다. 여기에는 나도 크게 동의하는 바다. 


말더듬 트레이닝을 7일 코스로 분류해 각각 하루에 해야 할 훈련과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가장 먼저 언급되는 것은 복식호흡이다. 말이라는 것은 목이나 입에서 소리를 만들어내는 과정이라기 보다 날숨이 지나는 길에 만들어지는 소리라는 점이 중요함을 강조하고 복식호흡을 통해 충분히 숨을 내쉴 수 있는 연습을 하도록 권유한다. 숨을 잘 쉬고 나서야 말더듬이나 발음 등의 문제가 보완될 수 있음을 강조한다. 

두 번째는 구강내 공간을 확장하라는 것이다. 물론 물리적인 힘을 가해 구강을 넓히는 것이 아니라 발음과 표정을 크게 해서 구강 내 아치를 넓히는 것을 의미한다. 말이 만들어지는 공간을 충분히 크게 만듦으로써 단어가 원활히 움직이게 되고 결국 말더듬을 줄일 수 있다.  

세 번째 강조하는 바는 발음 연습이다. 발음을 위해 사용되는 구강 공간과 입술 표정을 크게 하려고 노력하면서 채누보(공기를 배에 채우고, 누르고, 보내는) 연습을 해야 한다. 

네 번째는 배털기 연습과 호흡 버티기 훈련이다. 배털기 연습이란 복식호흡을 하며 복근의 수축과 이완에 능숙해지는 과정으로 발음을 할 때 복근을 사용하는 법을 터득하는 연습이다. 호흡 버티기는 긴 문장도 어려움 없이 말하기 위한 훈련으로 긴 문장도 한 호흡으로 말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숨이 부족한 경우에도 복근에 힘을 주어 호흡을 깊게 그리고 길게 내뱉을 수 있도록 훈련하는 것이다. 

다섯 번째 말의 속도를 늦추는 것이다. 말을 서두르다 보면 꼬이고 꼬여 말더듬을 유발하는데 말을 천천히 하면서 충분히 숨을 뱉고 충분한 숨을 들이마시고 다시 말을 이어간다면 더듬지 않고도 말을 편안히 할 수 있다. 시를 낭송하듯 천천히 차분한 마음으로 말하는 연습을 해야 한다. 

여섯 번째는 말에 리듬을 넣는 것이다. 나를 비롯한 많은 말더듬는 사람들이 공감하는 바는 노래를 부를 때는 대부분 말을 더듬지 않는다는 점이다. 같은 원리로 단어를 발음할 때 음의 높낮이를 줌으로써 노래와 같은 리듬을 부여하면 더듬지 않고 자연스러운 말이 나오게 된다. 말에 리듬을 부여하면 말더듬을 호전시킬 뿐 아니라 단조로운 말보다 생동감 있는 말을 전달할 수 있어 청중의 집중도를 끌어올릴 수도 있다. 

일곱 번째는 자기 자신과의 대화이다. 말더듬이란 기능적인 문제를 동반하기도 하지만 많은 경우 심리적 영향이 크게 작용한다. 그렇기 때문에 스스로에 대한 긍정적인 피드백으로 긴장감을 완화시키고 자격지심을 상쇄한다면 기능적 훈련이 더욱 빛을 발하게 될 것이다. 


<말더듬을 고치고 내 인생이 달라졌다>는 순수한 실전 트레이닝 가이드이다. 훈련에 대한 소개와 훈련이 갖는 의의 그리고 자세한 훈련방법을 순서대로 설명하고 예문을 연습한 후 평가까지 할 수 있도록 구성돼 있다. 호흡법이나 발성법의 경우처럼 필요하다 생각되는 경우 삽화를 넣어 이해를 돕기도 한다. 

 



저자 임유정은 하루 1단계씩 1주일마다 반복하고 최소 3개월 이상을 꾸준히 한다면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적고 있다. <말더듬을 고치고 내 인생이 달라졌다>를 읽으며 대부분의 예문과  연습과제를 수행했는데 겨우 3일차지만 효과가 있는 것 같은 좋은 신호를 느꼈다. 그래서 저자의 조언대로 3개월을 해 볼 생각이다. 그리고 3개월이 지난 뒤 말더듬증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좋아졌는지, 좋아졌다면 얼마나 좋아졌는지를 솔직하게 작성해 리뷰를 다시 올리고 싶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읽고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마지막으로 대학시절 말더듬증을 치료하기 위해 했던 방법 가운데 하나를 덧붙이고자 한다. 전공이 낯선 사람들을 만나고 대화를 나누는 것이 굉장히 중요한 분야여서 고학년이 되자 미래에 대한 걱정이 커졌다. 아는 분을 통해 '인지 행동 치료'를 알게 됐고 말더듬증과 무대공포증을 극복하고자 인지 행동 치료를 받기 시작했다. 나와 같은 그룹에 속한 다양한 사람들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나는 말더듬증이 주였고, 어떤 사람은 남들 앞에서 젖가락질을 못해서 오고, 어떤 사람은 낯선 사람 앞에서는 귀가 빨개져서(정말 신기할 정도로 새빨개진다) 오고, 또 다른 사람은 긴장하는 자리에 서면 손이 계속 떨려서 악수도 못할 정도라서 왔다. 사진 작가도 있었는데 그 사람은 누군가 자신을 보고 있으면 손이 떨려서 셔터를 못누른다는 것이 고민이었다. 우리는 처음 만났을 때 서로의 고민을 들으며 각자가 가진 것보다 별거 아닌 것들이라 생각했던 듯 싶다. 일주일에 한 번씩 2달 동안 이어진 치료의 끝에는 크게 개선된 친구가 있었던 것 같은데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다만 그룹원들이 모두 비슷한 또래였기 때문에 치료 받는 도중 친해졌고 말도 편하게 하게 됐는데 치료 막바지까지 서로 호전이 없음을 놀렸던 것이 기억에 남는다. 어떤 친구는 나한테 '뭐라고? 뭐라고? 말을 해봐 뭐라고?'이런 식으로 놀렸고 나도 귀가 빨개지는 친구한테 '귀에서 피난다'고 놀렸던 것 같다. 그리고 애석하게도 치료 수료하는 날 기념사진을 찍기 위해 사진 작가가 최고급 카메라를 들고 왔지만 셔터는 다른 사람이 눌렀다.    

결론적으로는 내 말더듬은 고쳐지진 않았다. 다만 인지행동치료를 통해 말더듬증이 갖는 부끄러움과 자기혐오 등의 감정은 많이 개선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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