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가지 흑역사로 읽는 세계사 : 고대~근대 편 - 마라톤전투에서 마피아의 전성시대까지 101가지 흑역사로 읽는 세계사
빌 포셋 외 지음, 김정혜 옮김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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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수명은 일백 년이 안되지만 인간이 쌓아온 업적의 기록은 적어도 수천 년이다. 그 가운데 어떤 인물이 행한, 또는 행하지 않은 일들로 인해 역사가 바뀌게 된다. <101가지 흑역사로 읽는 세계사>는 중요한 순간에 잘못된 선택으로 세계사의 흐름을 바꾼 에피소드를 담고 있다. 고대에서 현대에 이르는 유구한 역사에서 우행이 낳은 웃지못할 순간의 기록을 101가지로 추려 소개하고 있으며 그 가운데 <101가지 흑역사로 읽는 세계사, 고대~근대 편>은 기원전 5세기부터 20세기 초반까지 발생한 50가지 에피소드를를 다룬다. 


각각의 에피소드는 특정 시기 특정 인물의 선택의 순간을 묘사하고 있다. 이를테면 어떤 왕이 외세의 침략에 대응해야 하는 순간에 그릇된 판단이나 착오로 하지 말아야 할 공격을 감행한다든지 공격해야 할 공격을 하지 않음으로써 국가와 본인의 흥망이 결정되는 찰나를 그려낸다. 역사에 가정이 의미있는가에 대한 논란은 있지만 <101가지 흑역사로 읽는 세계사>는 매 에피소드마다 주인공이 선택의 순간에 내린 결정이 반대로 이뤄졌더라면 어땠을까라는 가정을 붙인다. 왕과 장군처럼 중요한 인물의 행동이 부른 결과가 후대의 역사를 결정지었듯 만약 그들이 반대되는 행동을 취했을 때 발생할 나비효과로 세계사는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 크게 달라졌을 것이라 추측하고 있다.


저자들은 로마제국이 고트족을 홀대하지 않았더라면, 아즈텍이 코르테스를 공격했더라면, 영국의 헨리 8세의 이혼을 교황 클레멘스 7세가 승락했더라면, 프랑스와 7년 전쟁을 마친 영국이 미국에 좀 더 관대했더라면, 독일군이 오지도 않을 러시아 군을 기다리며 허송세월하지 않았더라면 등 이미 발생한 중요한 선택(오판)이 부른 패착을 알림과 더불어 반대의 상황을 가정하고 그 상황을 기반으로 이어졌을 법한 역사를 추측한다.


제목에 쓰인 '흑역사'라는 단어가 암시하는 바와 같이 이 책에 소개된 에피소드는 모두 부정적 상황으로 이어진 것들이다. '옳음은 강자의 이익에 복무한다.'나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다.'는 역사의 격언에 담긴 의미를 되새겨보면 <101가지 흑역사로 읽는 세계사>에 소개된 에피소드의 주인공들이 내린 결정이 최선은 아니더라도 최악은 아니었을 수도 있다. 다만 그 결과에 대한 아쉬움을 저자들은 해당 주인공들이 반대의 선택을 했을 때 나올 수 있는 긍정적 요인을 추적해 보는 재미를 통해 해소하는 것 같다. 독자의 입장에서도 역사적 사건을 알아가는 동시에 반대적 상황이 불러올법한 역사의 변화를 읽으며 다양한 관점을 경험하고 견문을 넓힐 수 있기에 유익한 시간이 될 수 있다 생각한다.




세계사를 시대순으로 찬찬히 알아가는 것도 재미있는 과정이지만 <101가지 흑역사로 읽는 세계사>에서 소개하는 것처럼 주요 사건을 단편적으로 접하는 것 또한 즐거운 일이다. 현재의 국제 정세를 파악하는 것도 버거울 정도로 지구라는 공간은 방대하고 인구도 엄청난데 선조들이 남긴 발자취를 모두 좇는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기에 굵직굵직한 인물과 사건을 중심으로 역사의 흐름을 대략적으로 이해하는 것도 역사를 공부하는 방법의 하나라 생각한다. 게다가 강한 인상을 남기는 사건은 흥미를 유발하고 기억에 오래 남는다는 장점이 있으므로 짜투리 지식을 쌓기에도 요긴하다.


근현대 세계사가 서양을 중심으로 이뤄졌기에 <101가지 흑역사로 읽는 세계사>에 수록된 에피소드는 서양인과 서양에서 발생한 사건이 주를 이룬다. 후에 아시아 역사의 줄기를 바꾼 괄목할만한 사건과 인물을 다룬 <101가지 흑역사로 읽는 세계사>과 비슷한 부류의 책이 발간되길 바래본다. 마지막으로 몇 개 안되는 비서양 에피소드 가운데 한국과 관련된 것이 있어 짧게 소개하며 리뷰를 마치고자 한다.


'흑역사 017, 일본 바깥으로 눈을 돌린 히데요시의 패착'은 일본의 최고권력자가 된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자국의 분란을 해소하고 자신의 입지를 견고히하기 위해 해외원정을 결정한 내용을 담고 있다. 가장 가까운 조선을 침략해 단기간에 압록강변에 이르는 엄청난 성과를 내지만 이순신 장군과의 해전에서 연전연패하면서 보급로가 끊겨 곤란에 빠진다. 애초 목표로 삼았던 중국까지의 진출은 요원해지는 상황에 처한 일본은 명나라와 강화 협상을 하지만 서로 의견이 맞지 않아 무산된다. 일본은 다시 조선을 침공하는 정유재란을 일으킨다. 이 때도 이순신 장군의 활약에 힘입어 일본은 패퇴하고 토요토미 히데요시는 건강이 악화되면 이듬해 사망한다. 히데요시의 뒤를 이은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권력을 잡은 후 쇄국정책을 펼쳐 일본의 개방은 3백 년 이후로 미뤄진다. 저자는 만약 히데요시가 조선 침공이라는 전략을 택하지 않고 국내의 입지를 다지며 개방정책을 펼쳤더라면 일본의 산업화와 근대화는 훨씬 앞당겨졌을 것이고 일본이 동북아의 패자의 지위를 꿰찼을 수 도 있었을 것으로 전망한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읽고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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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비우스 로마사 3 - 한니발 전쟁기 리비우스 로마사 3
티투스 리비우스 지음, 이종인 옮김 / 현대지성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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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비우스 로마사 3>은 역사적 사료에 리비우스 자신의 문장력을 가미해 2차 포에니 전쟁이라는 역사적 사건을 서술하고 있다. 포에니 전쟁은 기원전 264년부터 기원전 146년까지 3차례에 걸쳐 로마와 카르타고가 싸운 전쟁이다. 포에니 전쟁이 역사적 의미를 갖는 것은 도시 국가로 출발해 주변국을 병합하며 세력을 키우던 로마가 3차례의 포에니 전쟁에서 승리함으로써 로마의 세력권을 크게 넓혔다는 점에 있다. 포에니 전쟁이 있기 전에도 로마는 상당한 영역을 지배하고 있었지만 주로 이탈리아 반도에 국한된 수준으로 시칠리아나 스페인 그리고 갈리아 일부 도시와 동맹을 맺는 정도에 불과했다. 그러나 로마가 포에니 전쟁에서 승리하면서 이탈리아 반도뿐 아니라 아프리카와 이베리아 반도에도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되면서 지중해의 패권을 거머쥔다. 특히 농업과 상업이 번창한 시칠리아와 아프리카는 이어지는 로마의 원정(갈리아, 트라키아, 아시아, 시리아, 이집트 등)을 지원하는 창고가 된다.


3차례의 포에니 전쟁 가운데 가장 극적인 전개를 보인 것은 2차 포에니 전쟁이다. 한니발이라는 걸출한 영웅의 등장, 그의 앞을 막아서는 많은 로마의 인재들, 한니발에게 결정타를 날린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 그리고 이름조차 기억되지 않은 로마와 카르타고의 병사들에 이르기까지 16년 동안 이어진 전쟁은 그야말로 영웅들의 피와 땀으로 장식돼 있다. 세계사에서 2차 포에니 전쟁이 차지하는 위상이 높은 여러가지 이유와 특색은 로마의 부흥기에 벌어진 대규모 전쟁이었던는 점 외에도 한니발의 가족사(한니발의 아버지 하밀카르는 1차 포에니 전쟁에서 카르타고를 이끌었으며 로마에 패해 불평등 조약을 받아들여야 했고 죽는 날까지도 로마에 대한 복수심을 잊지 않았다), 당시까지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던 알프스 산맥을 넘어 이탈리아 본토로 진격한다는 무모한 전략을 실현한 최초의 전쟁, 기병의 유용성을 돋보이게 한 전쟁, 로마의 본토에서 장기간 이어진 전쟁, 그리고 로마인의 정신과 기상이 돋보이는 전쟁이라는 것들이 한데 모여 2차 포에니 전쟁을 역사적으로도 극적으로도 돋보이게 만든다.




<리비우스 로마사 3>은 어린 한니발이 아버지 하밀카르를 따라 이베리아 반도로 향하면서 시작된다. 1차 포에니 전쟁의 패배로 굴욕적인 조약을 수락해야 했던 하밀카르는 로마에 대한 복수심에 불탔으나 이를 완수하지 못하고 생을 다한다. 아버지부터 로마에 대한 적개심을 주입받았던 한니발은 성년이 되고, 군대를 통솔하는 역량을 키우고, 이베리아 반도 내의 전쟁에서 연이은 승리를 하며 자신의 입지를 다졌다. 때가 됐다고 생각한 그는 기원전 219년 로마의 동맹 도시인 사군툼을 공격한다. 거센 저항에 부딪혀 수개월의 시간이 소요됐지만 결국 사군툼을 정복했다. 한니발이 사군툼을 공격했다는 보고를 받은 로마는 사절단을 파견해 한니발과 카르타고 측에 항의했으나 한니발과 카르타고 정부는 1차 포에니 전쟁 후 맺었던 조약 위반을 시인하지 않았고 필요하다면 로마와의 전쟁도 불사하겠다는 의지를 전했다. 사절단으로부터 카르타고의 뜻을 전해들은 로마는 곧바로 전쟁준비에 착수한다.


로마의 대응이 말로 끝나지 않을 것이란 사실을 잘 아는 한니발은 카르타고, 이베리아 반도의 여러 부족, 누미디아족 등으로 구성된 병력을 꾸려 아무도 시도하지 않았던 대원정을 준비한다. 이베리아 반도에서 피레네 산맥을 넘어 갈리아의 영토를 지나 알프스를 넘어 이탈리아 본토로 향한다는 대담한 계획이었다. 한니발의 게획은 그와 함께 전장을 누비고 다닌 용맹한 병사들조차 두려움을 느낄 정도로 무모해 보였다. 그러나 한니발은 전쟁의 승리와 영광 그리고 그에 대한 보상을 제시하며 병사들을 독려해 결국 기나긴 원정길에 오른다. 한니발의 행보를 보고 받은 로마는 2명의 집정관(코르넬리우스와 셈프로니우스)에게 군단을 맡기고 한니발을 저지하라 명한다.


한니발은 갈리아의 여러 부족을 통과해야 했기 때문에 크고 작은 싸움을 수행하며 알프스를 향해 나갔고 로마 정규군과의 마찰을 피하기 위해 연안이 아닌 내륙으로 진군해 알프스에 이르렀다. 수많은 병사와 수레, 그리고 코끼리까지, 알프스 산맥을 넘는다는 것이 불가능해 보였지만 한니발은 강행하고 성공한다. 한니발이 이탈리아 본토에 도착해 포 강 유역에서 전열을 정비하고 있을 때 로마의 코르넬리우스 스키피오 또한 포 강 근처에 진지를 구축한 상태였다. 상대의 전영을 정찰하기 위해 기병대와 함께 나왔던 한니발은 우연히도 같은 목적으로 나온 코르넬리우스와 마주치게 되어 전투가 발생한다. 기병대의 우위를 바탕으로 한니발이 승리했고 코르넬리우스는 부상당해 간신히 전장을 탈출한다. 이 때 코르넬리우스를 구출한 자가 그의 아들이었다. 스피키오.


회전은 아니였지만 첫 교전에서 참패한 로마군은 진영을 뒤로 물리고 셈프로니우스의 합류를 기다린다. 셈프로니우스가 군단을 이끌고 합류해 한니발과 대치하는 상황에서 작은 교전에서 승리한 후 자만심에 들떠 성급히 공격에 나서고 결과는 참패로 이어졌다. 두 명의 집정관의 연달은 패배로 로마군의 사기는 크게 저하되었다. 해가 바뀌어 기원전 217년이 되자 새로운 집정관으로 플라미니우스와 세르빌리우스가 선출되었다. 갈리아에서 수많은 전쟁을 경험한 플라미니우스는 곧장 전장으로 이동해 한니발 군과 조우한다. 트라시메네 호수 근처에서 벌어진 양 군의 충돌은 수많은 사상자를 낳았으며 특히 로마군에 치명타를 입혔다. 집정관이자 군단의 총사령관인 플라미니우스의 전사는 로마군의 사기를 떨어뜨렸고, 플라미니우스의 위기를 전해 듣고 출정한 세르빌리우스의 기병대마저 참패하면서 로마의 근심은 깊어졌다.


로마 원로원은 파비우스 막시무스를 독재관으로 임명해 로마의 방위를 강화하고 국난에 대응하고자 했다. 파비우스의 전략은 대규모 교전을 피하고 지연 전술을 이용해 시간을 벌어 병력을 충원하고 타국에서 전쟁 중인 상대방의 보급을 차단함으로써 승리를 거두거나 적군을 물러가게 만들고자 했다. 그의 전술은 냉철한 판단에 바탕을 둔 것으로 이내 효과를 발휘해 한니발을 조급하게 하고 곤궁하게 만들었지만 파비우스의 전술의 진가를 모르는 젊은 장교 및 로마 시민들은 파비우스를 비겁하다고 맹비난했다. 그럼에도 파비우스는 자신의 전략을 고수한 덕분에 로마군의 피해를 줄이고 지원군을 늘려 군단의 규모를 키웠다. 반면 한니발의 세력은 처음 피레네 산맥을 넘어설 때의 1/3 이하로 줄어 있는데다 보급이 원활하지 않아 늘 불안한 실정이었다.


파비우스가 독재관의 임기를 마치고 물러난 뒤 기원전 216년 임명된 두 명의 집정관은 파울루스와 바로였다. 그 중 바로는 시민들의 인기에 영합하여 집정관의 위치를 꿰찬 자로 전면전을 옹호하는 입장이었다. 그의 주장대로라면 귀족들이 한니발을 막을 수 있음에도 공연히 전쟁을 지연시키는 중이였기 때문에 자신이 전면에 나서 군을 지휘하게 되면 쉽게 한니발을 제압할 수 있다고 공언했다. 파울루스와 교대로 군단을 통솔하게 된 바로는 자신의 차례가 왔을 때 한니발이 전장으로 삼은 칸나이에서 카르타고 군을 섬멸하고자 대규모 교전을 벌였다. 결과는 로마군의 굴욕적인 참패로 이어졌다. 당시 군단의 사정이 갈수록 나아지는 로마군과 달리 줄고 있는 병사를 충원할 대책이 없고 식량을 비롯한 각종 군수품 부족에 시달리던 카르타고 군은 얼마간의 시간만 지나면 군사들의 자발절 탈영이나 배신으로 자멸할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었는데 바로가 정면에서 맞대응 해준 것은 한니발 입장에서 너무 감사할 일이었다.


칸나이 회전에서의 대패는 궁지에 몰렸던 카르타고 군에게 활기를 불어넣어준 반면 로마는 현직 집정관인 파울루스와 여러 전직 집정관과 법무관 등의 고위 관료가 전사했고 5만이 넘는 군사를 잃어 치명타를 입게 됐다. 로마의 입장에서 불행 중 다행이라 할만한 점은 한니발이 칸나이 회전에서 대승한 기세를 몰아 바로 로마로 진격했더라면 준비가 안된 로마마저 점령될 가능성이 높았지만 한니발은 노고에 지친 병사를 쉬게 하는 선택을 함으로써 로마에게 다시 일어설 시간을 주었다.


칸나이의 대패를 전해들은 로마는 혼란에 빠졌다. 이제 더 이상 군단도 없고 지휘관도 없으며 설상가상으로 카르타고가 시칠리아를 압박하고 있다는 소식까지 전해져 그곳으로 함대를 파견해야 되는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로마의 혼란은 오래가지 않았다. 로마는 패배와 현재 상태를 겸허히 받아들이고 주어진 상황에서 할 수 있는 대책을 논의했다. 도시의 혼란을 통제하기 위한 노력과 더불어 지휘관과 군단을 다시 모집하였다. 이미 많은 젊은이들이 전장에 투입된 상태였기 때문에 이 때 모인 군단에는 미성년자와 노예 그리고 사형수까지 포함돼 있었다는 점은 로마의 절박한 상황을 말해준다.


로마의 대패로 이탈리아 반도 중남부의 몇몇 지역이 로마와의 동맹 관계에서 이탈해 카르타고에 붙었다. 한니발은 로마로 진격하는 대신 캄파니아 지방을 온전히 정복하여 새로운 이탈리아의 중심지로 삼고자 했다. 그러나 그의 예상과 달리 카푸아를 제외한 캄파니아의 많은 도시들은 로마와의 동맹을 충실히 이행했고 한니발에게 항복하지 않고 성에 틀어박혀 수성에 전념했다. 한니발은 때로는 무력으로 때로는 회유로 그들을 달래봤지만 대부분 허사로 끝났다. 결국 카르타고 군은 겨울이 오자 공성전을 다음해로 미루고 카푸아로 들어갔다. 카푸아에서 보낸 겨울은 카르타고 군에게 독이 되었는데 거친 환경에서 끊임없이 싸워오던 전사들에게 도시가 주는 향락은 전사들의 몸과 마음을 병들고 나태하게 만들었다. 카푸아에서 겨울을 보내는 동안 강철같던 정신과 육체는 사라지고 같은 군대라고는 믿기 힘든 방종한 군대로 변모했다.


로마의 동맹도시들이 로마와 카르타고 사이에서 저울질하고 있을 때, 이 도시들을 로마와의 동맹에서 이탈시키기 위한 카르타고의 노력과 동맹을 수호하고자 하는 로마의 노력이 부딪혀 이탈리아 중남부는 흡사 내전이 일어난 것처럼 잦은 전쟁에 휘말렸다. 이탈리아 본토가 한니발과 로마군이 치열한 공방을 벌이던 시기 스페인, 샤르데나, 시칠리아에서도 변화가 일고 있었다. 한니발이 다져놓았던 이베리아 반도의 지배권은 로마의 스키피오 형제에 의해 와해되었고 샤르데나 또한 로마에 반기를 든 움직임이 제압되어 로마가 우세한 상황에 놓였다. 반면 로마를 전적으로 믿고 지지해줬던 시라쿠사의 히에로가 기원전 215년 사망하고 그의 손자 히에로니무스가 권력을 잡자 시라쿠사는 카르타고와 손을 잡았다. 여기에 더해 마케도니아의 필리포스 왕도 참전의사를 밝힘으로써 로마가 감당해내야 하는 전선의 규모는 더욱 커졌다.


이탈리아 본토는 물론이고 스페인, 아프리카 북부, 그리스 서부, 시칠리아 등 로마와 카르타고의 지배권이 작동하는 많은 나라에서 전투가 지속되었다. 어느 한쪽이 일방적 우세를 점하지 못하고 공방이 펼쳐졌는데 한니발은 대부분은 전투에서 승리했지만 그 밖의 지역은 엎치락뒤치락하거나 로마의 우세가 점쳐지는 상황이었다. 한니발이 아무리 뛰어난 명장이라 할지라도 전투를 지속하기 위해서는 인적 물적 지원이 필수적이었기 때문에 시칠리아와 스페인에서 승기를 잡아야 했다. 기원전 215년 히에로니무스가 암살되자 카르타고 지지세력에 의한 폭동이 일어났고 이를 카르타고가 지원하면서 히에로 왕의 통치동안 로마와 굳건한 동맹을 유지했던 시라쿠사는 혼란에 빠졌다. 로마군에 의해 폭동은 진화되었으나 일시적인 평화였고 카르타고군은 시칠리아 곳곳으로 장소를 옮기며 로마와 싸웠다.


기원전 212년 스페인에서는 한니발의 동생 하스드루발이 스키피오 형제를 제압함으로써 스페인에서의 카르타고의 지배력을 높였다. 기원전 211년 푸불리우스 코르넬리우스 스키피오(티키누스 전투에서 부상당했고 스페인에서 전사한 스키피오의 아들)는 아무도 원하지 않았던 스페인의 사령관으로 지원한다. 스키피오는 수년에 걸쳐 스페인에서 카르타고의 영향력 아래 있는 도시들을 점령하고 여기에 더해 아프리카까지 진출한다. 기원전 206년 카르타고에 기마병을 제공해 주던 누미디아와 동맹을 체결함으로써 이후 수 세기 동안 이어지는 로마의 충실한 아군을 획득한다.


기원전 207년 알프스를 넘어 이탈리아 북부로 진입한 하스드루발은 이탈리아 남부에서 활약중이던 한니발과 합류해 로마군을 제압하고자 했다. 그러나 한니발에게 보낸 전령이 로마군에 포획됨으로써 그의 계획이 들통났고 이를 이용해 로마군은 하스드루발의 부대를 향해 진격하자 하스드루발은 퇴각하고자 했지만 길을 잃고 시간을 허비하느라 시기를 놓쳤고 결국 하스드루발은 수적 열세임에도 불구하고 메타우루스 강변에서 일전을 감행했다. 결과는 로마군의 대승이었다. 하스드루발은 그의 아비 하밀카르의 위명과 그의 형 한니발의 용맹에 어울리는 모습으로 싸웠고 승기가 기운 상태에서 로마군의 한가운데로 돌진하여 장렬히 전사했다.


한니발에게 하스드루발의 죽음은 일개 장수의 죽음 이상의 충격이었다. 카르타고 측에 합류한 이탈리아 도시들로부터 어느 정도의 지원은 기대할 수 있을지라도 한계가 있고 그들이 언제 변심할 지 모르는 불안한 상황인데다 로마측에 충성하는 도시들 또한 건재했기 때문에 이탈리아 외부로부터의 지원과 협조가 절실한 상황이었다. 한니발이 전투에서 선전하고 승리한다 할지라도 결국 그의 자원은 로마군에 비해 항상 부족할 수 밖에 없었다. 이런 약점을 제대로 간파하고 이용한 자는 스키피오였다.


스페인을 평정한 스키피오가 이탈리아 남부와 아프리카 북부에서 영향력을 넓혀가며 압박을 넣자 위기를 느낀 카르타고 정부는 한니발을 소환했다. 기원전 203년 이탈리아를 포기하고 카르타고로 귀환한 한니발은 스키피오라는 젊은 용장과 마주할 운명에 놓인다. 스키피오는 한니발이 로마에서 벌였던 티키누스 전투와 칸나이 전투에서 죽을 위기를 넘긴 인물이고 한니발과의 전투를 통해 전략과 전술을 배웠기 때문에 어찌보면 한니발의 제자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로마와 카르타고의 강화가 실패하자 기원전 202년 자마에서 스키피오와 한니발의 대군이 격돌한다. 로마군은 연이은 승리로 기세가 높고 훈련이 잘돼 있었던 반면 한니발의 군대는 급조된 용병 위주의 병력이었기 때문에 이미 승기는 로마로 기운데다 한니발의 전술 전략에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인 스키피오였기 때문에 전투의 변수도 크게 작용하기 힘들었다. 한니발이 고군분투했지만 결국 승리는 로마에게 돌아갔고 자마회전을 통해 길었던 2차 포에니 전쟁도 막을 내린다.




<리비우스 로마사 3>은 역사적으로 굉장히 중요하게 평가되는 2차 포에니 전쟁의 시작부터 결말까지를 다룬다. 주목할만한 점은 리비우스가 역사를 서술하는데 있어 객관적 사실의 나열에 그치지 않고 마치 대하드라마를 써내려가듯 문장을 썼다는 점이다(이런 감흥을 느끼게 한 것은 역자인 이종인의 공 또한 크다고 생각한다). 덕분에 <리비우스 로마사 3>을 읽는 내내 역사서의 딱딱함보다 박진감 넘치는 소설을 읽는 기분이었다. 로마사에 관심이 많아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 에드워드 기번의 <로마제국 쇠망사>, 몸젠의 <몸젠의 로마사> 등을 읽고 있지만 <리비우스 로마사>가 주는 흥미와 재미는 이들 이상이라 여겨진다.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원정기를 다룬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역사적 사실과 소설을 혼합해 독자에게 즐거움을 선사했다면 <리비우스 로마사 3>은 역사설 사실만으로 이런 재미를 이끌어 낸다는 점에서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2차 포에니 전쟁에서 로마를 승리로 이끈 다양한 요인이 있고 그것은 역사가나 독자의 주관에 따라 달리질 부분이다. 내가 생각하는 포에니 전쟁의 승패를 좌우한 결정적 요인은 3가지이다. 첫 번째는 로마인의 정신이다. 포에니 전쟁이 한창이던 당시 로마는 분명 엄청난 위기 상황이었다. 그렇지만 로마인들의 애국심은 국난 극복이라는 공통 과제에 임해 신분과 세대를 뛰어넘는 단결력을 보여줬다. 국가를 위해 기꺼이 복무했고 그것을 영광으로 생각했으며 전쟁자금을 지원하기 위해 사유재산을 꺼내는 것도 꺼려하지 않았다. 전투에 돌입하면 집정관부터 말단 병사에 이르기까지 투혼을 발휘하는 경우가 많았고 설령 패배했다 하더라도 금새 털어내고 다음 전투를 준비했다. 이것은 후기 로마가 쇠망의 길을 걷을 때 보였던 행보와는 크게 다른 모습이라 새삼 새롭게 느껴졌다. 두 번째는 로마가 만들어 놓았던 동맹체계의 견고함이다. 로마의 중심인 라틴연맹 뿐 아니라 많은 도시 국가들이 로마가 가장 불리할 때 조차 로마의 손을 놓지 않았다. 로마는 이들의 희생을 잊지 않았으며 자신들을 배신했던 도시조차 포용하는 자세를 보여 제국으로서의 풍모를 보였다. 마지막으로 적기를 놓친 한니발의 실책과 카르타고의 분열된 모습이다. 16년이라는 긴 시간동안 진행된 포에니 전쟁에서 로마는 어떤 형태로든 의견을 모으고 공통의 적을 물리치기 위한 체계를 지니고 있었다. 혹자는 군주제, 귀족제, 민주제의 형태를 조화롭게 갖춘 체계라고 호평하기도 하는 로마의 체제는 실패하는 경우조차 단결된 모습으로 전쟁에 임했다. 그러나 카르타고는 한니발이 맹활약하던 시기에도 불규칙한 지원으로 한니발의 원정을 뒷받침하지 못했으며 결정된 지원도 원활히 이루어지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역사에 가정처럼 우스운 게 없다고 하지만 만약 한니발이 칸나이 회전을 마친 직후 로마로 진격했더라면, 초반 3년 가량 로마가 패전으로 혼란스러운 상황을 이용해 카르타고로부터의 지원이 확실히 이루어졌더라면, 하스드루발의 전령이 한니발을 만났더라면 등 한니발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아쉬운 대목이 참 많기도 하다.


많지는 않지만 <리비우스 로마사 3>을 비롯해 현재까지 로마사를 읽은 경험에 비추어보면 로마사의 이해를 높이기 위해서는 지도가 반드시 필요하다. 로마가 장악한 영역이 유럽, 아프리카, 아시아에 걸쳐 있기 때문에 광대한 지도가 요구되는데, 인터넷 창을 열고 독서하면 편하긴 하지만 늘 그런 환경에서 책을 읽을 수 없기 때문에 몇개의 로마시대 지도를 프린트해서 보는 게 편할 때가 많다. <리비우스 로마사 3>에도 맨 뒷편에 이탈리아 지도 3장이 삽입돼 있지만 이것만으로는 많이 부족하고 별도의 지도를 같이 보는 게 유용하다. 그리고 로마사를 읽다보면 생소한 인명과 지명에 많은 어려움을 느끼게 된다. 천 년 로마 제국이 유구한 역사에 기록된 수많은 인명은 이름, 가문이름, 부친의 성이 같이 나열되기 때문에 길고 낯설다. 개인적으로는 로마사가 진행될수록 몇몇 가문이 주로 회자되어 더 헷갈리므로 이름과 성을 기억하려고 노력한다.


로마사는 언제 읽어도 재미를 준다. 인류 최대의 제국을 건설한 로마, 천 년이라는 긴 세월을 살아남은 로마, 그리고 그 제국을 거쳐간 수많은 인물과 사건들은 역사적 지식과 함께 교훈을 남긴다. 많은 로마사를 다룬 저작들이 참고하는 <리비우스 로마사>를 늦게라도 읽을 수 있었음을 행운이라 생각한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읽고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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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 잉글리시 구조론 기본수
안정호 지음 / 북트리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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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영어권 국가에서 영어를 모국어처럼 받아들이기란 쉽지 않다. 영어가 대한민국 교육의 중요한 부분이지만 유학을 다녀오거나 지극정성으로 영어를 공부하지 않는 한, 한국인이 한글을 자유자제로 사용하는 것처럼 영어에 익숙해지는 경우는 흔치 않은 듯 하다. 그럼에도 영어를 배제할 수 없는 이유는 국제어로써의 영어의 위상 때문이다. 영어를 사용할 수 있다는 점은 전세계 어느에서나 의사소통이 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하고 경제적 목적이나 학술적 목적의 성취 또한 영어가 뒷받침되어야 하는 빛을 발하는 경우가 많다. 요즘은 영어를 사용하는 이점보다 영어를 사용하지 못했을 때 오는 불이익을 피하고자 영어를 공부해야 하는 시대라고 생각된다. 개인적으로 영어는 직업과 관련하여 자주 접해야 하기 때문에 원서를 읽고 영어로 글을 써야하는 상황이 많아 올바른 영어를 사용하고 싶은 욕심은 늘 있었다. 


특히 논문을 쓰거나 외국인과 이메일로 의견을 주고받는 경우 내가 사용하는 문법이 과연 올바른 것인가 하는 불안감이 상존했다. 요즘에는 영문을 교정해주는 사이트가 많아 그로부터 도움을 얻을 수 있다 하더라도 가급적이면 교정이 필요없는 문장을 구사하고 싶은 마음이다. 회화, 특히 발음의 문제는 이제 40대 중반인지라 어느정도 포기한 상태지만 글로 쓰는 영어는 지금보다 나아지고자 노력하는 편이다. 


<CATE English 구조론 기본수(이하 카테 잉글리시)>는 이런 내 상황과 욕구에 맞는 책이었다. 책의 소개에도 언급된 것처럼 <카테 잉글리시>는 명확한 의미를 전달하기 위한 영문 작성법을 담고 있다. 어려운 문법을 설명하는 것보다는 문장의 구조가 어떤 형태를 띠었을 때 완성도가 높고 의미 전달에 효과적인지를 언급한다. 주어, 동사, 그리고 목적어로 이루어진 문장을 구성할 때 단어는 어떻게 사용되야 하고 구조가 달라졌을 때 의미는 어떻게 변하는 지를 중점적으로 논한다. 문장 구조를 설명할 때마다 한 페이지를 할애하여 문장 구조를 묘사한 플로우차트를 보여주는데 그렇게 함으로써 문장의 구조를 전달하는 시각적 효과를 높이고 있다. 



<카테 잉글리시>는 3백 페이지가 넘는 분량이고 예문의 개수 또한 천 개가 넘는다. 그럼에도 한 번 사용된 단어와 숙어를 반복적으로 사용함으로써 독자가 어휘보다 문장 구조에 치중할 수 있도록 유도하고 있으며 같은 단어를 사용한 문장의 형식이 바뀌었을 때 의도한 바와 전혀 다르게 해석될 수 있음을 지적한다. 한글을 사용하듯 영작을 하다보면 흔히 겪을 수 있는 불분명한 의미전달을 피해 문장을 완성함으로써 공식적인 문서의 명료함을 높이라고 독려한다. 


우리말에 '아 다르고 어 다르다.'는 말이 있는 것처럼 영문 또한 구조에 따라 전달되는 의미가 달라지기 때문에 비지니스 목적을 비롯한 공적인 자리에서 영어를 사용하고자 할 때 문장의 간결성, 명료성, 완성도를 모두 담은 문장을 구사해야 한다.   



<카테 잉글리시>를 공부하며 내가 행했던 방법은 문장 구조에 대한 설명을 다 읽은 후 이어지는 예문의 한글을 보고 영작을 해보는 식이었다. 영작을 마친 후 내가 사용한 단어와 문장 구조를 책의 예문과 비교해 어떤 차이가 있는지 확인하고 보완점을 찾아가는 방법이다. 단순히 영문을 눈으로 읽고 해석만 하는 정도로는 영작 실력의 향상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점을 이제까지의 경험으로 익히 알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하면 예문으로 제시된 모든 한글 문장을 영작해보고자 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문장의 구조에 대한 이해도 높아짐을 느꼈다. 


한국에서만, 혹은 한글이 통하는 곳에서만 평생을 보낼 것이 아니라면 영어에 대한 공부가 필요한데 <카테 잉글리시>는 깔끔한 영문을 작성하는 실용적인 방안을 제안하고 있다. 하루 아침에 영어가 비약적으로 늘진 않겠지만 꾸준히 반복적인 연습을 하다보면 언젠가 나도 깔끔한 영문을 작성할 수 있는 날이 오리라 기대한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읽고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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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기만 하면 내 것이 되는 1페이지 철학 365
최훈 지음 / 비에이블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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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철학을 두려워했던 시기에 철학을 떠올리면 자연히 따라오는 위화감이 존재했다. 무엇보다 철학이라는 학문이 현학적이고 현실과 동떨어져 존재한다는 생각이 우선되었고 철학이 난해하다는 두려움이 뒤따랐다. 이런 이유로 내 독서는 철학이라는 분야를 피하거나 외면하곤 했는데 나도 모르게 철학에 대한 호기심이 급격히 커지는 순간이 왔다. 역사, 문학, 사회 등 어떤 분야의 서적을 접하든 그 시대와 그 인물에 내재된 철학에 대한 언급을 같이 읽어야 했으며 철학을 이해하지 않고는 온전한 이해는 고사하고 표면적인 이해조차 어려움을 절감하게 됐다.  


철학의 역사와 뛰어난 철학자들의 사상을 이해하고자 하는 노력의 일환으로 버트런드 러셀의 <서양 철학사>와 군나르 시르베크의 <서양 철학사>로 시작해 몇몇 유명하다는 철학자의 서적을 읽게 됐다. 철학서를 접하다보니 존재와 삶에 대한 이해를 얻고자하는 욕심이 생겨 이런저런 사유를 겸하게 됐다. 주관적인 사유의 결과물이 위대한 지성들의 것에 견줄 바 아니지만 적어도 내 삶을 이끌어 온 원동력에 대한 진지한 생각과 함께 앞으로 살아갈 인생의 방향을 설정하는 데 도움을 얻었다. 


여느 학문과 마찬가지로 철학 또한 용어에 대한 개념정리가 매우 중요하다. 일상적으로 사용하지 않는 단어가 자주 등장하는데다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단어가 쓰이는 경우도 우리가 알고 있는 일반적 의미와는 다르게 사용되는 경우도 많아 철학의 용어들에 친숙해질 필요가 있다. 


<읽기만 하면 내 것이 되는 1페이지 철학365>는 철학에 대해 쉽게(부담없이) 다가서고 철학 용어들에 대한 거리감을 상쇄시켜주는 역활을 하며 이후 철학서를 읽는 데 도움이 되는 구성으로 짜여져 있다. 제목이 암시하듯 매일 1페이지씩 365일 동안 읽을 수 있도록 요일별로 구분하여 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한 세트를 구성한다. 월욜일은 철학자의 말을, 화요일은 용어/개념을, 수요일은 철학자를, 목요일은 철학사를, 금요일은 삶과 철학을, 토요일은 생각법을, 그리고 일요일은 철학 TMI를 소개하고 있다. 분량은 말 그대로 1페이지를 넘지 않는 범위로 몇 분을 투자하면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다. 그러나 철학이 담고 있는  사유를 같이하고자 한다면 1페이지 분량이 수 일이 지나도 이해하기 어려울 수도 있을 것이다. 


각각의 페이지는 장(chapter)번호, 주제, 주제와 연관된 인용문이나 이미지, 주제에 대한 설명, 그리고 주제와 관련된 에피소드 혹은 지식을 담고 있다. 한 페이지라는 제한된 공간에 이 많은 것을 어떻게 넣었을까 싶었는데 핵심을 요약해 설명하는 방식을 취해 한정된 지면을 효율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독자의 입장에서 요점을 읽은 후 그에 대한 이해가 된다면 최선일 것이고 만약 이해가 부족하거나 더 알아보고자 하는 바가 있다면 해당 철학자나 사상을 좇아 확장된 독서를 진행하면 될 것으로 생각한다. 


<읽기만 하면 내 것이 되는 1페이지 철학365>에 동반된 '1페이지 철학 정리 노트'는 주 단위와 일 단위로 읽어 나간 것들을 체크하고 느낀 바를 정리할 수 있게 짜여져 있다. 저자의 의도를 짐작해 보면, 독자로 하여금 철학을 읽고 이해하는 데 있어 열정적 독서보다 끊기있고 근면한 독서를 권하는 있는 것으로 보인다. 단숨에 읽어 완독한 뒤 덮어버리는 것 보다 꾸준히 철학이라는 학문을 접하고 철학적 사고를 유지해 지식과 삶을 풍요롭게 하길 기대하는 것이리라. 


현재 <읽기만 하면 내 것이 되는 1페이지 철학365>의 중반을 읽고 리뷰를 작성하고 있는 나의 상태는 저자의 의도와 달리 너무 성급한 독서를 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누구나 그럴싸한 계획을 갖고 있듯' 나 또한 계획을 갖고 있다. 일단 앞으로 2-3일 이내로 <읽기만 하면 내 것이 되는 1페이지 철학365>를 완독하되 다시 읽을 필요가 있다고 여겨지는 챕터를 체크해 둘 것이다. 완독을 마친 후 체크한 부분을 다시 읽어도 이해가 되지 않거나 부족하다고 여겨지면 해당 철학자의 사상을 따라가 볼 심산이고 이를 위해 '1페이지 철학 정리 노트'를 활용할 예정이다. 


철학을 읽다보니 철학에 대한 관심도 없고 오히려 기피했던 시절조차 순간순간 철학적 사고로 살아가고 있었음을 깨닫게 됐다. 자신이 인지하지 못하는 순간에도(사유의 깊이에 차이가 있겠지만) 철학적 고민은 지속되고 있었다. 단순히 오늘 무엇을 했는가, 그것을 한 것은 옳은가, 그것이 내일의 나에게 어떤 의미가 될 것인가 등 인생의 매순간이 삶에 대한 고민을 담고 있고 어떤 선택을 함에 있어 중심이 되었던 가치관은 내 안에 담겨있는 철학적 사고로부터 비롯되었다. 역사를 보며 인류가 지난 자취를 되돌아보고 반면교사로 삼는 것처럼 철학은 개인의 인생을 돌아보고 나아가게 만드는 힘이 있다고 여긴다. 


<읽기만 하면 내 것이 되는 1페이지 철학365>를 통해 모호했던 철학적 개념을 바로 알고 50여 명의 철학자와 그들의 사상을 되새겨보며 철학에 대한 친숙함을 키우고 싶다. 종국에는 이런 지식과 지혜를 바탕으로 나와 내 삶에 진지하게 접근하고 내면을 가다듬고 싶다. 


철학이 어려운 학문이라는 사실은 철학자들의 사상에 대한 온전한 이해와 통찰을 시도했을 때의 문제이지 단지 철학 사상의 요점을 얻어 현실에 반영해보고 자신의 사고를 넓히는 것 정도는 누구나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물리학자들이 말하는 상대성이론이나 양자역학 등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지만 대략적인 개념을 잡고 '저렇기도 하구나'라고 짐작하듯 철학 또한 철학자들의 심연까지 다다르긴 힘들지만 대략적인 이해와 응용은 충분히 가능한 부분이라 생각한다. 


<읽기만 하면 내 것이 되는 1페이지 철학365>에 정리된 내용은 나를 비롯한 독자들에게 더 깊은 지식을 얻는 좋은 밑거름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 또한 점차적으로 지식을 넓히고 거기서 한층 나아가 내면의 안정을 찾고 싶다. 진리가 무엇인지 알 수 없지만 적어도 나라는 사람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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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피를 입은 비너스 펭귄클래식 에디션 레드
레오폴트 폰 자허마조흐 지음, 김재혁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웅진)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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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최근 발매된 <펭귄클래식 에디션 레드>의 하나인 <모피를 입은 비너스>를 읽었다. '모피를 입은 비너스'라는 제목에 끌렸고 책소개를 통해 간략히 들여다 본 내용에 호기심이 동했다. 


제베린은 어려서부터 예민한 감수성의 소유자였다. 다른 이들이 관심을 갖지 않을 법한 것들에 깊이 빠지는가하면 무심코 지나칠 만한 것들에 의미를 부여하고 혼자만의 상상력에 취하곤 했다. 제베린은 사랑에 관해서도 독특한 시각을 지녔는데 그가 생각하는 남녀의 사랑이란 두 가지 극단의 성향을 지니고 있었다. 그의 이상형은 매우 고상하고 단아하고 기품있고 지조 있는 여성이거나 차라리 어떤 미덕도 정절도 기대할 수 없는 가혹하고 냉정한 여자였다. 그가 생각하는 결혼은 전자와 결혼해 행복한 여생을 조용히 보내거나 후자를 택해 사랑의 고통을 겪으며 거기서 행복을 찾는 것이었다. 


제베린이 휴양지에서 만난 반다라는 미망인은 빼어난 미모와 감수성을 지닌 자였다. 제베린은 금새 그녀에게 사랑에 빠지고 자신의 사랑에 대한 신념을 전해 준다. 반다가 생각하는 여인의 사랑은 비교적 통속적인 관념을 따르고 있었다. 그녀가 생각하는 여자란 존재는 자신이 가진 무기, 즉 매력을 이용해 남자로부터 무언가를 얻어내고자 노력하는 존재이며 자신의 매력을 휘둘러 상대방으로부터 이득을 챙기는 것을 부덕하다 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사람의 감정, 특히 여자의 감정은 상황에 따라 돌변할 수 있어서 요조숙녀도 순식간에 요부로 탈바꿈할 수 있고 사악한 여인도 어느 순간 성녀로 변할 수 있는 것이었다. 반다의 생각에 남자는 이성이라는 기준 하에서 움직이는 경향이 있지만 여자는 감성에 치우쳐 결정을 내리는 존재기 때문에 기분에 따라 어떤 행동이라도 취할 수 있는 존재였다. 


제베린과 반다는 같은 장소에서 시간을 보내며 서로 가까워졌다. 제베린이 반다에게 바란 사랑은 그의 사랑에 대한 관념에서 후자를 언급된 철저하게 지독한 악녀의 역할이었다. 제베린은 자신을 학대하고 괴롭히고 질투하게 하여 그의 사랑을 들끓게 만드는 사랑을 갈망했다. 반면 반다는 남편과 사별 후 자신의 이성관을 정립하게 됐다고 말하며 그것은 바로 어떤 구속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사랑이었다. 마음이 향하는 사람과 사랑을 나누고 그 사랑이 식으면 다른 상대방을 찾아 떠다는 유랑과도 같은 형태의 사랑이었다.


제베린이 반다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순간에 그의 이상형인 지독한 악녀를 묘사하며 반다에게 그런 여인이 되어줄 것을 부탁한다. 그리고 반다가 입고 있는 모피, 그 모피로부터 제베린은 강한 힘과 지위를 느끼고 모피가 지닌 폭력성을 숭배하고 있음을 고백한다. 제베린은 반다에게 모피를 입은 비너스, 즉 강력한 위계와 힘을 지닌 여신이 되어 자신의 사랑을 받아줄 것을 청한다. 반다는 제베린의 요구에 잠시 망설이지만 결국 승낙하게 된다. 제베린은 자발적으로 반다의 노예가 되었음을 스스로 시인하고 그것에 대해 오히려 기뻐한다. 반다가 채찍으로 그의 몸을 학대하고 말로써 그의 명예를 더럽히지만 그는 그런 고통에서 오히려 행복과 만족을 찾을 수 있었다. 제베린과 반다의 일반적이지 않은 애정행각은 시간이 더해갈수록 수위가 높아진다. 채찍 한 대도 쉽게 휘두르지 못해 망설이던 모습은 사라지고 제베린을 노예로 부리고 학대할 수 있는 자신의 지위와 힘에 만족감을 느끼는 빈도가 잦아진다. 


제베린의 사랑을 알지만 그의 마음을 개의치 않는듯 다른 남자를 만나 애정행각을 벌이고 제베린의 사소한 실수를 빌미로(실수가 없는 상황에서도) 가혹한 학대와 인격 모독을 일삼는 반다는 제베린이 의도한 '강력한 악녀', '자신을 지배하는 독녀'가 되어 갔다. 제베린은 반다의 언행이 불손해지고 강력할수록 더욱 그녀에 대한 집착과 사랑을 보인다. 채찍을 맞다 보면 오히려 희열에 이르고 그녀의 가혹한 부림에도 되려 사랑이 깊어진다. 반다는 제베린의 이런 성향을 제대로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제베린을 더욱 학대할 수 있는 비책으로, 혹은 제베린의 사랑을 더욱 깊게 할 수 도 있을 방안으로써 다른 남자와의 애정의 도피를 택한다. 


반다에게 물리적으로 버림받기 직전(사랑의 견지에서라면 진즉 버림받은 상태로 보였다) 제베린은 반다의 연인에게 심한 채찍질을 당하고 그들의 도피를 겪음으로써 그제서야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깨닫게 된다. 반다의 처지는 '디오니스우스의 황소'를 떠올리게 한다. 

아첨 잘하는 신하가 시라쿠스의 폭군을 위해 새로운 고문 도구를 고안해냈다. 쇠로 만든 황소인데, 그 안에다 사형선고를 받은 사람을 집어넣고 불을 지펴  쇠로 된 황소가 달궈지면 그 안의 사형수가 고통에 울부짖게 되고 그 사람의 목소리가 마치 황소가 울부짖는 것처럼 들렸다는 것이다. 디오니스우스는 그 장치를 고안해낸 사내를 향해 미소를 짓더니 그 도구를 시험하기 위해 그 사내를 가장 먼저 쇠로 만든 황소 안에 집어넣으라고 명령했다. 


<모피를 입은 비너스>는 일반적 사랑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사랑을 다룬다. 소위 마조히즘(masochism)이라 칭해지는 성격을 지닌 제베린이 반다라는 여인을 만나 그녀가 가진 성향인 사디즘(sadism)을 일깨워 놓는다. 제베린은 그가 당한 온갖 모욕과 고통에도 반다를 증오하거나 복수하지 않는다. 순간 순간 분노했을 뿐이다. 반다로부터 철저히 버림받은 후 수년이 지났을 때 반다가 보내온 소포에서 '모피를 입은 비너스'라는 작품을 소중히 하고 경외감을 느끼는 모습은 여전히 그가 일반적 사랑과는 거리를 두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그가 반다와 헤어진 후 주변의 여인들을 대하는 모습이나 여성관에 대한 대화를 토대로 유추해보자면 반다의 모피를 자신의 어깨에 두르고 모피로부터 파생되는 폭력과 지위를 행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제베린이 '모피를 입은 마르스'가 된 것이다. 


제베린의 사랑도, 반다의 사랑도, 내가 꿈꾸는 사랑은 아니다. 나는 소시민답게 일반적인 사랑을 꿈꾸고 그를 좆으며 살고 있다. 다만 <모피를 입은 비너스>를 통해 우리가 생각하는 범주 밖에 있는 사랑을 접함에 있어 이것을 단순히 선과 악으로 구분할 수 없음을 느끼고 사랑의 다양성이라는 측면을 더욱 수고하게 되는 것 같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읽고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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