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과 및 동행하는 사람들이 바보에서 배 타고 밤빌리아에 있는 버가에 이르니 요한은 그들에게서 떠나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고˝(행13:13).

마가 다락방에서 오순절 성령강림을 강하게 체험했음에도 불구하고 부잣집 도련님마냥 근성이 약했던 마가는 해외 선교지에서 한 번 더 무너진다. 1차 선교여행에서 이탈해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고 말았다. 마가의 신앙행로에 있어 부끄러운 두 번째 추억이다.

˝며칠 후에 바울이 바나바더러 말하되 우리가 주의 말씀을 전한 각 성으로 다시 가서 형제들이 어떠한가 방문하자 하고 바나바는 마가라 하는 요한도 데리고 가고자 하나 바울은 밤빌리아에서 자기들을 떠나 함께 일하러 가지 아니한 자를 데리고 가는 것이 옳지 않다 하여 서로 심히 다투어 피차 갈라서니 바나바는 마가를 데리고 배 타고 구브로로 가고 바울은 실라를 택한 후에 형제들에게 주의 은혜에 부탁함을 받고 떠나 수리아와 길리기아로 다니며 교회들을 견고하게 하니라˝(행15:36-41).

바나바가 2차 선교여행을 제안하면서 마가도 동참시키자고 했으나 완벽주의자 스타일의 철두철미한 바울은 근성 부족의 마가를 거절했다. 바나바와 바울은 크게 싸운 후 각자 팀을 꾸려서 2차 선교여행을 떠났다. 마가는 외삼촌 바나바의 그늘 아래서 선교의 저력을 키워갔을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가끔씩 삽질을 멈추고 둘러보라˝

한국은 물론 미국 등 전 세계가 돈을 마구 푸는 중입니다. 미국은 경기 부양을 위해 앞으로 3000조 원의 돈을 쏟아낼 예정입니다.

각국 정부가 돈을 풀수록 내가 가진 돈의 값어치는 떨어집니다. 내 돈의 가치가 떨어지니까 부동산, 금, 주식의 가격은 올라가는 셈이 됩니다.

돈이 마구잡이로 풀리는 바람에 가만히 앉아서 내 돈이 약탈당하는 꼴입니다. 그래서 빚을 내고(‘빚투‘) 영혼을 끌어당겨서(‘영끌‘) 주식, 아파트, 금, 코인을 삽니다.

나는 월급을 모아도 쓸 돈이 빠듯한데 남들은 투자해서 큰돈을 번다고들 야단입니다. 초등생인데 용돈으로 주식을 사서 많은 재미를 보았다는 뉴스도 나돕니다.

지금이라도 투자에 안 나서면 나만 계속 더 ‘벼락거지‘가 되겠다는 불안감이 앞섭니다. 이미 늦어서 끝물이라는 얘기도 파다합니다. 연말쯤 거품이 터질 거라고도 합니다.

그렇다면 어찌해야 하오리까. 나도 재테크 열차에 올라타야 할까요. 아니요. 투자할 돈도 없겠지만 최소한 큰 흐름을 살펴서 알아두기라도 하자는 겁니다.

인구 위기, 기술 발전, 화폐 변화, 인플레이션이 너무 커서 아득아득합니다. 먹고사는 데 바쁘겠지만 잘 하면 나만의 틈새를 포착할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비만 인구는 자꾸 늘 것이고 다이어트 제품은 계속 유망하겠지요. 내 심장이 아무리 강해도 바깥의 큰 흐름을 모르면 휩쓸려 떠내려갑니다.

기도합시다. 열심히 일합시다. 그리고 가끔씩은 세상의 변화를 공부합시다. 삽질을 멈추고 잠시 주변을 둘러봅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쇼맨십 예능목사들의 선무당질˝

정통 교단의 정상적인 경우 대학 입학부터 총 10년의 과정을 거쳐야 비로소 목사가 됩니다.

그 정도는 공부해야 영혼육을 다루는 목사 수준을 최소한 확보하게 된다는 것이죠.

그런데 이전에는 자주, 지금도 간혹 1~2년짜리, 아니 수개월짜리 속성코스 목사 만들기가 있곤 합니다. ‘영적‘이라는 말로써 얼마든지 속일 수 있었기 때문이죠.

우리의 성경은 삼국시대의 고서들보다 훨씬 더 이전의 책입니다. 성경만 많이 읽는다고 신령할 수는 없습니다. 학문적 뒷받침이 든든하지 않고서 성경만 많이 읽으면 반드시 선무당질을 하게 됩니다.

목사의 자질에 대해 성경을 얼마나 많이 읽었느냐보다 학문적 과정을 충분히 거쳤느냐 하는 평가 기준을 성도들부터 가져야 합니다.

그래야 사이비성 목사들의 몰사회적, 몰역사적, 몰상식적 행태를 줄일 수 있습니다. ‘영적‘이라는 말만 남발하면 꾸벅 쓰러지는 성도들이 있는 한 한국 개신교의 미래는 계속 어지러울 것입니다.

국민 수준이 대통령 수준을 만들 듯이 성도 수준이 목사 수준을 만듭니다. 성도 수준이 낮을수록 쇼맨십 목사들이 준동하게 돼 있습니다. 쇼맨십 예능목사들의 반사회적 선무당질을 걸러내는 선구안이 요구됩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위험하게 편협한 신앙 추구˝

극단적 보수교단들은 ‘영적‘인 것만 외치다가 사회를 버렸습니다. 심지어 반사회적인 경향까지 나타내곤 합니다.

기독교교회협의회(NCCK)와 같은 진보적 교단은 늘 사회와 함께하려고 힘써 왔습니다. 선지자들처럼 사회 정의도 외쳤습니다.

그 와중에 극단적 보수교단들로부터 자유주의신학이니, 신신학이니, 어쩌니 하는 총질도 당해야 했습니다.

극단적 보수교단들은 진보적 교단들을 공격하며 마음껏 교세를 불렸고 그 결과 개신교 신앙에서 사회성이 크게 결여되게 된 것입니다.

진정한 성경적 구원은 개인의 영혼 구원을 넘어 사회 구원은 물론 자연 구원에까지 나아가는 것입니다. 악화일로를 치닫는 사회 양극화와 기후 위기를 보십시오.

코로나19 사태는 극단적 보수교단들의 신앙 추구가 얼마나 위험하게 편협한 것인지 적나라하게 폭로해 줍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사회의 매를 버는 교회

잘못이 없는데도 밉보여서 고난을 받는다면 그건 핍박이다. 그러나 요즘 같은 경우는 전혀 핍박이 아니다. 졸렬한 신앙적 소영웅심의 결과다.

개신교 교회는 코로나19 확산의 반복적인 장본인으로 지목되면서 사회의 매질을 계속 벌고 있다.

사회는 교회에 맹렬한 혐오, 냉소, 분노, 적대감을 보낸다. 교회는 사회의 등불은커녕 사회의 악이요, 적으로 치부된다.

교회는 입이 10개라도 할 말을 잃는다. 해명도, 변명도, 방어도, 공격도 의미가 없다. 그저 입을 다물고 매를 맞을 뿐이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테레사 2021-01-29 10: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돈 때문이 아니겠어요? 돈, 신자수에 따라 수입이 들어오니...자본주의와 결합한 신앙의 가장 적나라한 민낯 아닌가 싶어요.ㅜㅜ

HiWriter iamgceo 2021-01-30 07: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슬프네요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