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광만이 살아남는다 - 성공과 몰락의 변곡점에서 승리하는 단 하나의 원칙
앤드류 그로브 지음, 유정식 옮김 / 부키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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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한참 흐른 뒤 돌이켜보면, 많은 일들이 명확해진다. ‘아, 그때 그 주식을 사야 했구나, 그때가 그 가격으로 아파트 살 수 있는 마지막 기회였구나, 시간을 조금만 아껴 일본어를 배워뒀더라면 지금 큰 쓸모가 있었겠구나’ 같은 것들. 이건 답안지를 펼쳐놓고 시험문제 푸는 것과 비슷하다. 답을 확인하고 문제를 풀면, 마치 내가 다 알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 마련이니까. 하지만 비슷한 상황이 다시 발생하면 어떻게 될까? 아마 제대로 결정하지 못하고 우유부단 모드로 돌아가기 십상일 것이다. ‘지금 이 주식을? 이 아파트를? 이 가격에? 너무 비싼데? 상투 잡는거 아냐?’, ‘좀 쉬자, 외국어 배우는 건 여유가 더 생겼을 때 하자.’ 머뭇머뭇, 쭈뼛쭈뼛. 시간은 칼같이 흐르고 어느덧 변화는 끝난다. 훗날 다시 돌이켜본다. ‘아 그때 그 주식을 사야 했구나, 그때가 그 가격으로 아파트.....’ 미련한 반복이다. 위 과정을 몇 번 반복하다 보면 재산과, 개인 경력에서 돌이키기 힘든 순간을 맞이하기도 한다. 대부분의 인생이 이런 식이다. 나도 별수 없이 마찬가지고.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 시간이 지나면 방부제도 삭는다. 기업 경영도 마찬가지다. 잘 나갈 때 파놓은 우물 하나로 평생 씻고 마실 수는 없다. 마르거나, 사용할 수 없는 물로 바뀔 가능성은 상존한다. 깨어있어야 하고, 주변의 다양한 변화 신호를 감지할 수 있어야 한다. 언제든 지금의 우물을 버리고 새 우물을 찾아 떠날 수 있어야 한다. 《편집광만이 살아남는다》는 바로 그 지점을 정확히 건드리는 책이다. Intel의 회장이자 저자인 앤디 그로브는 기업 정체성을 송두리째 바꿔야 할 만큼 시장이 급변할 때가 종종 있다는 것을 간파한다. Intel을 경영하면서 깨달은 통찰이다. 지금도 거대기업이지만(2021년 현재 시장가치 256조원) 저자가 수장으로 있던 1980~1990년대의 Intel은 세계 컴퓨터 산업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초거대기업이었고, 많은 기업이 따라잡고(따라하고) 싶어한 롤모델이었다. 하지만 그건 외부의 시선일 뿐 그로브의 머릿속에는 경고등이 켜졌다.

 

저자가 회장으로 재임할 당시 Intel은 ‘반도체 회사’였다. 세계 반도체 시장의 선두에 서 있었다. 그런데 상황이 조금씩 바뀌어갔다. 반도체 판매로 얻는 이익은 점점 줄어가는데(되려 손실이 늘어나는데) 일본을 필두로 한 후발주자들은 무섭게 시장을 장악해왔다. 하지만 여전히 업계 1위를 유지하고 있었고, Intel을 Intel답게 만든 일등 공신이 반도체 사업이었기에 주력 사업을 변경한다는 건 엄두가 나지 않는 일이었다. 이 경우, 평범한 대부분의 기업은 현상 유지가 최선이라 판단하고 이를 위해 기업 역량을 총동원한다. 지금까지 누려온 성공의 달콤함을 잊지 못하고, 불확실한 곳으로 걸어갔을 때의 두려움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Intel 또한 별반 다르지 않았다. 어떻게든 반도체 사업에서 영광을 유지해보려 사력을 다하며, 변화를 완강히 거부했다. 그러나 한 번 바뀐 시장의 흐름은 멈추지 않았고 손실은 천문학적인 액수로 불어났다. 결단의 순간이 왔고, 앤디 그로브의 결정은 평범하지 않았다. Intel은 레드오션 시장으로 변한 반도체 사업에서 발을 빼 떠오르고 있던 ‘마이크로프로세서’ 사업으로 기업의 핸들을 과감히 꺾었다. 그 결정으로 Intel은 90년대 세계 ‘마이크로프로세서’ 시장을 장악한 포식자가 되었다.

 

여기서 하나의 핵심 질문이 나올 수 있다. 기업이 늘 깨어있고, 언제든 변화할 수 있어야 한다는 건 이해하지만 그 시점을 어떻게 알 수 있느냐다. Intel처럼 적시에 잘 변화해 다시 승자가 되기도 하지만 시장 상황과 기업 체질을 오판해 억지로 변화하려다 망하는 기업도 여럿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변화가 완전히 끝나 새로운 룰이 시장을 지배할 때가 되어야 변했어야 할 시점을 (후회 속에서) 정확히 알 수 있지만, 저자의 표현처럼 ‘죽음의 계곡’ 안에 들어가 있을 때는 조짐을 알아채기 힘든 것도 문제다. 증기기관과 전기의 발명으로 시장 생태계가 완전히 바뀌고 업종별 총생산이 폭발적으로 늘어난 산업혁명도 그랬고, 지구촌 경제를 초토화시켰던 세계 대공황도 그랬다. 지나고나서야 ‘아 그때가 산업혁명 시기였구나, 사는게 너무 힘들었는데 그때가 대공황 시기였구나’ 알게 되는 것이다. 미래에서 바라보는 박제된 과거다.

 

앤디 그로브는 변화해야 할 시점을 ‘전략적 변곡점’이라 명한다. 그리고 전략적 변곡점은 갑자기 터지기보다 고양이처럼 살금살금 다가오기 때문에, 제대로 알아채기 위해서는 ‘신호’를 제대로 감지해야 한다고 말한다. ‘잡음’이 아니라, ‘신호’여야 한다. 이걸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까. 저자가 말한다. ‘봄이 오면 눈은 가장자리부터 녹는다. 공기에 노출되는 부분이 가장 크기 때문이다. 가장자리로부터 전해오는 소식을 해석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신호와 잡음을 구분하는 과정에서 매우 중요한 일이다.’ 그럼 그 ‘신호’는 누구로부터, 언제,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저자는 3가지 변화를 유심히 보라고 이야기한다. 그곳에 ‘신호’가 있다며. 저자 그 3가지를 ‘핵심 경쟁자가 바뀌고 있는가’, ‘핵심 보완자가 바뀌고 있는가’, ‘주위 사람들이 갈피를 못 잡는 듯 보이는가’로 설명한다. 경쟁사가 바뀌고, 우리를 보완해주던 기업이 바뀌고, 변화에 우왕자왕하며 혼란에 빠진 주변인들이 늘어난다면 ‘신호’가 내 눈앞에서 깜박거리는구나, 눈치채야 한다.

 

그럼 이 신호를 가장 빨리, 정확하게 감지하는 이는 누구일까. 경영진은 그 주인공이 아니다. 트로이의 멸망을 내다본 예언자 카산드라처럼, 산업의 변화를 제일 먼저 감지하는 사람은 기업 일선에서 일하는 직원들과 중간관리자들이다. 그럼 경영진은? 저자의 표현대로라면 ‘리더는 가장 나중에 아는 사람이다.’

 

저자는 말한다. ‘최일선에서 일하는 직원들은 보통 절박한 변화를 일찍 알아차린다. 영업사원들은 경영진보다 고객 수요의 변화를 먼저 파악한다. 재무 분석가들은 언제 사업의 근본적 변화가 일어날지 누구보다 빨리 인지한다. 경영진이 초기 성공으로 형성된 생각만 믿고 제대로 대처하지 않았던 반면, 생산 계획자들과 재무 분석가들은 철저히 객관적 입장에서 자원을 배분했고 수치를 분석했다. 고위 경영자들은 경기 순환 위기와 지속적인 적자 상황을 겪고 난 다음에야 과거와 결별하는데 필요한 용기를 겨우 낼 수 있었다.’

 

과거의 영광을 뒤로 하고, 불확실한 미래지만 살아남아 승리하기 위해 기업을 뿌리부터 바꿔나가는 것은 힘든 일이다. 앤디 그로브가 언급했듯, 회사의 모든 부분이 과거의 누적으로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바뀌지 않는다면 생존을 장담할 수 없다. 좋든, 싫든 바꿔야 한다. 시장은 냉정해서 기업의 사정을 봐주지 않는다. 적확한 타이밍에 체질을 바꿔가며 잘 적응하는 것만이 기업의 지속가능성을 보장할 수 있다.

 

앤디 그로브는 Intel을 떠났고 2016년에 사망했다. 그리고 2021년 현재 Intel의 기업가치는 삼성전자의 절반 밖에 되지 않는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

*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은 도서를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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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속의 자본주의자 - 자본주의의 변두리에서 발견한 단순하고 완전한 삶
박혜윤 지음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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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말했다. ‘돈으로 행복을 살 수는 없겠지만, 거의 모든 불행을 막을 수는 있다.’고. 삶의 목표가 행복의 극대화라면 ‘돈’만으로 가능하지 않겠지만, 그 목표가 불행의 최소화라면 ‘돈’은 지대한 역할을 할 수 있다. 게다가 불행하지 않으면 행복하다 느끼는 것이 인간이니 ‘돈’은 인간의 행복 추구에도 상당한 영항을 끼친다 할 것이다. ‘돈’을 추구하고 ‘돈’으로 시장을 정의하고, ‘돈’으로 세상을 보다 나은 곳으로 만들겠다는 신념을 멋지게 포장하면 아마 ‘자본주의’가 될 것이다. 2021년 현재, 인류는 이 자본주의 시스템 하에서 살아간다. 불행하지 않으려고, 조금 더 욕심내 본다면 행복해보려고.

 

《숲속의 자본주의자》는 도시를 떠나(자본주의의 중심을 벗어나) 시골에서(자본주의의 외곽에서) 자신의 원칙과 신념으로 삶을 살아가는 주인공과 그 가족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보통 이런 류의 책은 자본주의를 혐오의 대상으로 삼거나 극복해야할 과제로 여기는 경우가 많다. 꽤 노골적 이분법으로 ‘자본주의=악, 대체이념=선’으로 포장하기도 한다. 명확히 드러나는 자본주의의 폐해가 있기에 이해 못 할 바는 아니나, 자본주의가 만들어온 건강한 풍요와 선의 세계를 외면하고 무가치하게 여기는 모습을 바라보는 것은 불편하다. 《숲속의 자본주의자》는 다르다. 저자는 자본주의가 제공하는 편의와 장점을 명확히 알고 있다. 그리고, 영리하게도 그 편의와 장점을 최대한으로 누리려 한다. 저자는 말한다. “이토록 외진 곳에서 살아도 사회와 나는 깊이 연결되어 있으며, 이런 자유를 누리는 일 역시 자본주의하에서 가능하다는 것을. 나에게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고 있다면 자본주의는 내 멋대로 살아가기에 가장 좋은 제도다”

저렴한 가격으로 물건을 살 수 있고, 혼자서는 소장할 엄두도 못내는 고가의 미술품과 건축물을 무료로 관람할 수 있으며, 현대사회가 제공하는 다양한 문화, 사회, 경제적 인프라를 복지차원의 당연한 권리로 사용할 수 있는 것은 자본주의가 제공하는 매력적인 혜택이다. 우리가 누리는 풍요는 하늘에서 거저 떨어진 빗물 같은 것이 아니다. 호불호가 갈릴 수는 있겠지만 자본주의가 삶의 질 개선에 큰 지분을 가지고 있음을 잊어서는 안된다. 그럼 자본주의 시스템 하에서 저자가 누리는 가장 큰 혜택은 무엇일까. 저자의 대답이 너무 마음에 들었는데, 그것은 ‘시간’이다. “평범한 개인이 아무리 덜 쓴다 한들 삶을 충만하게 하는 일만으로 채워진 일상을 살 수 있게 해준 것은 인류역사상 자본주의밖에 없다. 우리에게는 좋아하는 일을 할 시간이 있다. 책 읽고, 글 쓰고, 가족과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하면서 웃고, 만나고 싶은 사람 있으면 당장 만날 수 있는 시간이. 자본주의의 엄청난 생산성이 무르익기 전, 단지 굶지 않고 살기 위해서 전력을 다해야 했던 시대에는 소수의 귀족에게나 허락되었던 것이다.” 맞다. (여전히 하루씩만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보편적으로 다수의 사람들이 여유시간, 자유의지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자본주의가 건내준 그 시간을 통해 우리는 소통을 하고, 문화를 즐기고, 미래를 꿈꿀 수 있게 되었다.

 

 

《숲속의 자본주의자》는 자본주의만을 다루지 않는다. 이 책은 다양한 주제의 이야기가 씨줄과 날줄로 얽혀 있다. 저자는 인간의 ‘심리’를 궁금해하고, 사람 사이 ‘관계’를 관찰하며, 자녀 교육 문제를 고민하기도 한다. 어디서 보고 배운 것을 무의미하게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저자가 직접 경험한 것을 오래토록 마음에서 숙성시킨 후 몸에 새겨진 바를 이야기하기에, 독자에게는 모든 이야기가 너무 생생히 다가온다. 고민거리가 플러스 원으로 따라붙는 것도 흥미롭다. 나라면 어땠을까, 나라면 가능했을까, 싶은 의문 속에서 이런 저런 생각과 고민을 해보게 된다.

 

숲속의 자본주의자》는 자본주의 시스템에서 한 뼘쯤 벗어나, 혜택은 혜택대로 누리며 자본주

의의 부작용은 악착같이 피해보자, 주장하는 책이 아니다. 그냥 이런 삶도 있다는 걸, 이렇게 살아도 즐겁게 살아진다라는 걸 보여주는 책이다. 누군가 부러워하라는 것도 아니고, 누군가 따라와보라는 것도 아니다. 자기만의 방식으로 알아서들 사시면 되지만, 내가 사는 방식은 이러하답니다, 말하는 책이다. 이 책 속에서 저자는 다양한 역할을 수행한다. 사람을 대할 때는 심리학자, 인용한 여러 도서를 소개할 때는 인문학자, 그리고 자본주의에 대한 직관적 통찰을 보여줄 때는 저명한 경제·경영학자가 된다.

 

(최대한 한가하게, 최소한의 노력만 들여) 많은 일을 하고 또 다른 꿈을 꿔가는 저자의 생활을 한 문장으로 표현한다면 이럴 것 같다. 책에서 발견한 저자의 문장으로 서평을 마무리한다.

 

 

“아무렇게나 한다, 그렇지만 한다.”

 

 

 

*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은 도서를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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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 못 드는 당신을 위한 밤의 심리학
허지원 외 지음 / 책사람집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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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심리학자’, 혹은 ‘심리학 박사’ 라는 말을 들으면 ‘독심술’이라는 단어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내 눈빛, 말투, 몸짓을 에피타이저로, 내 입에서 나오는 모든 단어와 문장을 메인디쉬 삼아 나라는 인간을 철저히 해체해 요리하는 요리사 말이다. 나도 모르는 내 불안을 알아채고, 내 장단점을 손쉽게 파악한 뒤, 내 미래를 예측하기도 하는 스페셜리스트 말이다. 내 마음을 나보다 더 잘 알고 있는, 페이스북 알고리즘 시스템 같은 자 말이다. ‘심리학자’는 내게 그런 존재다. (내 마음을 잘 알아)듬직하나, (내 마음을 나보다 잘 알아)오싹하게 만드는 사람.

 

이 책 《잠 못 드는 당신을 위한 밤의 심리학》에는 그런 -마음의 요리사, 스페셜리스트, 알고리즘 시스템- 심리학자가 무려 다섯이나 등장한다. 이 다섯 명의 전문가는 글을 통해 마음이 전하는 서른 개의 이야기를 밤의 어둠에 맞춰 조용하게, 혹은 밤의 화려함에 맞춰 흥겹게 들려준다. 이 책을 읽으며 처음 드는 생각은, ‘어머 심리학 전문가들도 우리와 별반 다를 것 없는 평범한(?) 사람들이네’ 라는 것이다. 이들 역시 자주 불면하고, 스트레스를 겪고, 심리적 압박에 힘들어 하는 일상을 살아가고 있다는 건 책에서 얻을 수 있는 일종의 위안이다.(전문가도 별 수 없구나). 하지만 이건 책에서 굳이 얻어내고 싶지 않은 일종의 절망이기도 하다.(전문가들조차도 불면과 스트레스를 해결하지 못한다는거야! 이번 생은 글렀군)

 

심야 FM라디오 시그널 같은 제목인 《잠 못 드는 당신을 위한 밤의 심리학》은 라디오DJ처럼 부드러운 목소리로 다양한 인간 심리에 대해 말해준다. 크게 다섯 장, 서른 개의 에피소드를 통해 ‘심리’라는 것을, ‘심리’가 우릴 어떻게 변화시키는지를, ‘심리’를 어떻게 다뤄야하는지를 가르쳐준다. 사적인 하루의 끝에서(1장), 긴 밤 나를 사로잡는 강박, 콤플렉스 등을 말하고(2장), 그 모든 고통은 다 이유가 있음을 이해시킨다(3장). 그리고, 과거 기억과 우울, 불안을 다루다(4장), 고통과 불면을 넘어 다음으로 걸어갈 수 있도록 도와주면서(5장) 책을 마무리한다.

《잠 못 드는 당신을 위한 밤의 심리학》은 전공서적이 아니다. 가볍게 읽어도 좋은 에세이다. 하지만 쉽게 읽힌다 해서 내용까지 가벼운 것은 아니다. 책의 에피소드 중 독자들이 경험한 것 사례도 여럿 있을 것이다. 이 경우는 간접적인 치료효과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적어도 나에게는 그랬다.) 나만 이런 심리에 빠지는 건 아니라는걸 알게 되어 좋았다. 내가 겪는 심리적 갈등과 고통이 특별한 건 아니구나 싶어 안심되기도 했다. 일반 대중에게 편하게 다가갈 수 있도록 애쓴 다섯 전문가의 고민이 책에 잘 스며들어 있었다. 이 책을 읽으며 마음의 짐을 조금이나마 내려놓는 하루가 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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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랫폼 경제와 공짜 점심 - 네트워크 경제 입문자를 위한 가장 친절한 안내서
강성호 지음 / 미디어숲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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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콘텐츠 ‘소셜 딜레마(The Social Dilemma)’ 는 세계 굴지의 플랫폼 기업들의 저지르는 윤리적, 도덕적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 다큐멘터리다. 페이스북, 트위터, 인스타그램, 구글같은 공룡 기업들이 자사의 이익만을 추구했을 때 벌어질 수 있는 개인과 사회의 폐해를 적나라하게 다룬다. 이들 기업은 방대한 이용자 데이터와 강력한 알고리즘을 무기 삼아 인간의 일상을 휘젓는다. 이들 기업의 가장 큰 목적은 우리가 그들의 플랫폼에서 최대한 오랜 시간 머무르게 유도하는 것이다. 오래 머무를수록, 다양한 서비스를 이용할수록, 행동예측 모델 알고리즘은 훨씬 정교하게 개인을 파악한다. 좋아하는 음식, 패션스타일, 이상형, 자산규모, 직업, 학력, 성격 등, 관리 가능한 카테고리는 상상 이상이다. 어쩌면 자신보다 자신을 더 잘 아는 것은 부모도, 애인도, 친구도 아니다. 인간의 데이터를 한정 없이 수집한 이들 기업이다.

 

이 다큐멘터리 주제를 한 문장으로 정리한다면 이것일테다. ‘If You are not paying for the product, then You are the product’(상품의 대가를 치르지 않으면, 네가 상품이다.)

 

《플랫폼 경제와 공짜 점심》은 국내외 주요 플랫폼 기업이 혁신적으로 바꿔버린 경제를 설명하는 책이다. 기존의 규칙과 논리로 설명할 수 없는 플랫폼 경제는 새로운 시장을 열어 수많은 기회를 만들어내기도 했지만, 이용자 정보를 자사 입맛대로 활용하면서 많은 부작용도 만들어내고 있다. 중요한 사실은, 이점이 크든, 단점이 크든, 우리가 전통적인 과거의 경제모델로 돌아갈 수는 없다는 것이다. 좋든 싫든, 우리는 플랫폼 경제 체제하에서 새로운 게임의 규칙을 만들어내야 한다.

 

사람들은 플랫폼 기업의 네트워크망을 통해 훨씬 편리한 생활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언제든 지식을 쌓고 정보를 공유할 수 있으며, 상품과 서비스를 이용하는 방식도 간단해졌다. 반면, 개인 정보(단순한 주민번호가 아닌 포괄적 개인 정보) 역시 너무 쉽게 플랫폼 기업에 넘어가고 있다. 앞으로 우리가 받아들일 정보와 지식과 상품과 서비스는, 어쩌면 내가 원해서가 아닌, 플랫폼 기업 알고리즘의 선택에 따른 결과일지도 모른다. 또한, 플랫폼 기업들이 주연으로 활동하는 경제 체제는 필연적으로 산업 독과점, 기업윤리, 조세부과 등 다양한 문제를 불러올 수 밖에 없다. 기존 규칙 바깥에서 활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플랫폼 경제와 공짜 점심》은 플랫폼 기업이 가져올 경제 혁명, 그것에 필연적으로 따라붙을 부작용과 한계, 그리고 이런 네트워크 경제가 만들어낼 자본주의 이후의 세계까지 자세히 설명해주는 책이다. 네트워크와 경제를 다루지만 다양한 사례를 곁들여 쉽게 설명되어 있기에 해당 분야 전공자가 아니라도 정말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돌이킬 수 없고, 필연적으로 다가올(아니 이미 다가온) 네트워크 경제를 이해하기 위한 입문서로 이 책 한권이면 충분해보인다.

 

 

*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은 도서를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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춥고 더운 우리 집
공선옥 지음 / 한겨레출판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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춥고 더운 우리 집의 저자 공선옥 작가는 집과 주변 공간에 대해 할 이야기가 참 많다.

 

이 책 1부는 저자가 살며 거쳐간 집들의 변천사로 요약할 수 있겠다. (물론) 행복한 경험도 많았겠지만, 그 집들이 규정하는 본질적인 감정은 슬픔, 부끄러움, 고독, 낙담, 암담함 같은 것들이다. 저자는 다양한 형태의 집, 때로는 집이라 부를 수 없는 작디 작은 방을 옮겨가며 삶을 꾸렸다.

가족과 함께 살았던 집은 이랬다. 사방이 까맣고, 구렁이가 달걀을 깨물어 먹던 낡은 초가집. 마루와 부엌이 없고, 스케치북만한 창 하나가 유일한 위안이던, 시멘트로 지은 부로꾸집(블록집). 싱크대는 있지만 수도는 설치되지 않고, 비만 오면 아궁이에 물이 가득 차던 또 하나의 부로꾸집. 지긋한 가족과 집을 떠나 독립을 하게 되면 뭐라도 나아지리라 생각하고 거쳐간 집 또한 별반 다르지 않았다. 도시의 하숙집, 공장 기숙사, 영구임대아파트, 그리고 원룸. 저자의 몸과 물건을 의탁한 집과 방은 하나같이 슬프거나 힘에 겨워 보였다. 하나의 온전한 주거지로서 저자를 따뜻하게, 안전하게 품어준 집은 없었다. 겨울이면 춥고, 여름이면 덥고, 벌레가 나오거나, 작은 공간에 사람이 너무 많은 식이다. 혹은 소음에 시달리거나, 늘 누군가의 눈치를 봐야하거나, 자주 부끄러워해야 하거나, 하는 식이다. ()의 본질적 기능과 역할이 살아가는 것들의 보호처, 안전한 물건보관소, 몸과 마음의 충전소, 그래서 인생의 베이스캠프 같은 것이라 정의해본다면 저자가 거쳐간 장소들은 집이라 부르기 애매하다. 몇 가지가 빠졌거나, 모두 빠졌거나. 해서 중년이 될 때까지 저자가 머물렀던 집과 방들은 결함과 결핍의 결정체이자 결코 아물지 않는 상처 같은 것이다.

     

2부에서는 인생 중반까지 집으로 경험할 수 있는 거의 모든 부정적 체험을 다 겪은 저자가 나만의 집을 짓는 이야기를 다룬다.

나는 저자가 집에 대한 허기가 있어보였다. 제대로 된 집을 영양분 삼지 못한 채 노마드처럼 여러 곳을 옮겨가며 살아온 삶이 만들어낸 갈증과 배고픔. 운명처럼 덜컥 시골의 땅을 사고, 어떻게든 살아진다는 마음으로 집을 짓는 모습을 보며, 그간의 허기가 이것으로 달래지겠구나 싶었다. 하지만 내 손으로 창조하는 집이 어디 쉽게 지어지겠는가. 집 짓는 과정은 참으로 고달프다. 설계도를 제작해 시공사를 찾는 건 첫걸음일 뿐이다. 집 뼈대를 만드는 거푸집 공사부터, 철근을 엮고, 위생급수설비를 설치하고(싱크대가 있는데 수도는 없던 저자의 어린 날 집이 생각난다), 전기시설을 깔고, 내외부 인테리어까지 하다 보면 하루에도 몇 번씩 거대 메뚜기떼같은 회의감이 밀려온다. 이런 저런 위기가 있었으나 무사히 집을 준공했다고 저자는 이야기하지만, 책에 담지 못한 속상함과 고단함은 또 다른 책 한 권의 주제가 될지도 모른다. 게다가 준공했다고 집 살이가 완전해지는 것도 아니다. 머릿속으로 그렸던 공간은 현실과 한 뼘쯤 어긋나기 때문이다. 설계에 반영 못한 오류, 시공과정의 실수, 내가 살아가는 방식과 제대로 맞물리지 않는 공간, 온갖 자연 생명체들(Wild Life)의 공습까지, 부술수도, 없던 일로 무를수도 없어서 절망에 빠지게 된다. 그럴 땐 어쩔 수 없다. 쓸고 닦고 고치고 순응하며 살아갈 수 밖에. 내가 일구는 밭에 마음을 내어주며 동화되는 수 밖에. 내가 아껴서 도저히 버리지 못하는 물건들이 안전히 거주할 수 있는 공간을 갖게 된 것을 감사하며 사는 수 밖에. 저자가 했던 그대로 말이다.

     

3부에서는 새집과 함께 하는 저자의 일상을 다룬다. 3부의 매 꼭지는 잘 만들어진 숏폼 콘텐츠 같다. 매회, 정해진 주인공 없이 다채롭게 바뀌는 에피소드로 풍성하다. 워낙 상황 표현이 뛰어나고 대사도 찰지게 적혀 있어 읽을때마다 그 모든 상황과 풍경이 자동으로 떠올라 자주 피식거렸다. 3부는 춥고 더운 우리 집에서 가장 밝고 따뜻한 장이다. 일면식도 없는 나지만 감히 얘기해보자면, 저자의 허기가 사라지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어깨 펴고 당당히 자신있게 내집이야말할 수 있는 곳에서, 그 주변의 마을과 사람들과 함께하는 일상에서 그간 무엇으로도 채울 수 없었던 삶의 허기가 조금씩 채워지는 것 같아 덩달아 내 마음도 따뜻해졌다.

 

게임 속 캐릭터가 다양한 미션을 수행하고 최종 레벨에 올라가듯, 저자는 집과 방들이 뿌려놓은 여러 난관을 뚫고 담양 수북의 지금의 쟁취했다. 춥고 더운 우리 집은 집으로 대체한 저자의 인생 고난기다. 힘들었던 그 시절을 굳이 이야기하지 않아도 살고 있던 집이 저자의 사연을 대신 전해준다. 신기하다 여겼던 건,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 어디에도 자포자기좌절이라는 단어는 없었다는 것이다. 힘겨움은 있어도 포기는 없었다. 무너질 뻔 했어도 실제 무너지진 않았다. 이런 강인함이 있었기에 수북의 집과 그곳에서의 일상이 가능한 것일지 모른다. ‘!!’에서 오랫동안 많은 이야기 만들어가시길 바란다.

 

*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은 도서를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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