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등이 휠 것 같은

 

 

 

   지난주 나가수에서 거미가 임희숙의 ‘내 하나의 사람은 가고’를 불렀다. 인터뷰 할 때 어머니가 자주 부르는 노래이고 특히 ‘등이 휘어 질 것 같은 삶의 무게여’ 이 부분을 부를 때 울컥했다는 말을 했다. 좋지 않은 목 상태에서 노래를 마친 후 거미는 생각만큼 부르지 못한 아쉬움에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거미의 실력이야 많은 동료 가수들도 인정하는 바이지만 어쩐지 그 노래를 부르기에 거미는 아직은 젊어 보였달까... 그 노래는 정말로 등이 휘어 질 것 같은 삶의 무게를 느껴 본 나이 에야만 겨우 터져 나올 수 있는 한숨 같은 노래가 아닐까... 싶었다. 등이 휜다는 것... 굽는 것도 아니고 꺾이는 것도 아니고 휘어 버릴 만큼의 삶의 무게는 도대체 얼마나 질기도록 무겁고 시린 것일까. 혹시 모르는 누군가의 등을 보고도 그 사람이 걸어온 쓸쓸함을 상상하며 뒤에서 기꺼이 아니 자동적으로 눈물을 흘려 줄 수 있는 만큼은 아닐까.. 그렇다면 그 우는 한사람의 등은 그렇게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자신의 눈물을 우산처럼 지붕처럼 덮어 주며 살아왔을까...

 

 

 

   오늘은 삶의 무게를 생각한다. 지나온 내 삶과 앞으로 남아 있을 내 삶의 총량과 비례하는 그 만큼을 상상한다. 오늘 넘긴 책은 그 무게를 조금이라도 덜어보기 위한 일종의 방편이었다 할 수 있다. 언젠가 병으로 몇 달을 누워 손가락 하나도 까딱하기 힘든 날이 있었다. 그때 나는 방바닥과 천정을 번갈아 보며 아무리 하늘이 넓어도 나는 가벼워 질 수 없음을 깨달았다. 계속하여 내가 누워 있는 것이라면 내가 바닥에서 일어나는 것만이 내 무게를 이기는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어쩌면 아프지 않고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도 자기 삶의 무게를 이기는 일은 그렇게 등을 펴고 직립하는 고집스런 인내일지 모른다. 하늘이 보이면 일어나 앉고 등이 굽으면 다시 일어나 허리를 펴고... 사실 인간이 관에 들어가기 직전까지 자기 등을 의지하는 곳은 모두 준엄한 삶의 무게를 상징하는 것은 아닐까. 그래서 인지 나는 오늘 이만큼의 내 등이 기특하다는 생각을 한다.

 

 

 

#2. 무사히 건너가기

 

 

 

 

   이 책은 엄밀히 말하면 우리가 아는 그런 책은 아니다. 치사하지만 글로 된 페이지를 세어보았다. 모두 서른 페이지가 되지 않았지만 총 페이지는 250여 페이지 이므로 사진 빼고 약 이백 쪽은 내가 채워야 할 책인 것이다. 그러므로 책을 덮었지만 나는 아직 이 책을 다 읽은 것은 아니다. 그런 줄 충분히 알고 샀으니 내게 이 책의 구성과 양과 질에 대해 실망할 자격은 없는 듯 하다. 나는 좀 가볍고 싶었고 여백이 필요했고 생각의 지방분을 대폭 줄여야 했으니까... 작가의 이름만 보고 어느 정도 밀도를 기대한다면 이 책은 절대 구입하시면 안된다. 몇몇 유명한 작가를 앞세워 이것도 책이라고 내었는지 출판사의 꼼수를 욕하기 딱 좋은 책이기도 하니까.

 

 

 

   이 책에 글을 적어 넣은 사람은 8명(김인숙, 김훈, 박남준, 백가흠, 안도현, 윤대녕, 전경린, 하성란)이고 일 년은 12개월이다. 김훈과 하성란이 각각 3개월씩을 맡았고 1월 달의 전경린은 달랑 8줄이다. (턱없이 부족한 원고를 편집자가 달수에 맞추느라 애를 썼다 ㅠ) 한 달 마다 작가의 글이 있고 뒤이어 약 열장의 노트가 삽입되어 있다. 당장 달려가 보라색이나 초록색 플러스 펜을 사오고 싶지 말이다. 한때 내가 사랑했던 남자는 분명 이런 책을, 이런 다이어리를 원했다고 무척 좋아 했을지 모르겠다. 아주 옛날 여학교 6년을 붙어 다닌 그 친구라면 표지가 노란색인 것만 빼고는 쓸만하다 말했을지 모르겠다. 지하철 역이름을 모조리 외우고 학교에서 집까지의 최단거리에 집착하던 대학교 단짝은 이런 책은 사기이고 돈 아깝다 비판했을지 모르겠다. 남편 따라 이 나라 저 나라 떠돌고 있는 선도부 부장 그 녀석은 너 아직도 이런 거 사들이냐 핀잔을 줄지 모르겠다. 하여튼 나는 삼백, 사백 페이지 소설 끝에 꼭 이런 헐렁한 페이지를 그리워 한다. 내가 좋다는데 다 시끄럽다, 외친다.

 

 

 

   이 책에서 건진 명언은 역시 또 어쩔 수 없이... 김훈이다. 나는 아직도 <흑산>을 부여잡고 있는데 그 책을 계속 쉬어가며 읽어야 겠다는 생각이 든다. 글의 무게가 정말로 눈이 휘어 버릴 것만 같아 가끔 작가의 어깨통증까지 둔중하게 전해져 온다고 하면 뻥친다고 뭐라들 하실까. 글을 아무리 써도 완성되지 않고 할 수도 없는 막막한 축성의 세계에 떠도는 가엾은 영혼만 같다. 그런데 김훈은 소설이 아닌 산문에서는 어떤 주제건 꼭 책 읽고 글 쓰는 것의 허망함을 말하지 않는 경우가 없다. 다른 작가들은 출판사가 원하는 주제에 맞춰 기획을 하는 경우가 많은데 김훈은 산문에서도 이야기 하는 것이 한가지다. 그는 사무치도록 가벼워지는 이 세계와 사물과 현상이 싫어 무겁도록 눌러 앉아 있는 석고상만 같다...

 

 

 

책을 읽기는 어렵지 않지만 책과 책 사이를 건너가기는 어렵고, 나 자신과 책 사이를 건너가기는 더욱 어렵다. 그래서 나는, 책을 읽기 전과 책을 읽은 후가 마찬가지이다. 나는 왜 책을 읽는가.

그것을 알면서도, 눈을 치우고 들어와서 돋보기를 끼고 책을 읽었다. 책을 읽어서 나 자신을 새롭게 할 수 있을까, 그 사적인 새로움으로 세상을 새롭게 할 수 있을까. 이 질문이 내 책 읽기의 지옥이다.  - 28p

 

 

 

   전경린과 김훈 사이에 노트가 있다. 김훈과 하성란 사이를, 하성란과 윤대녕 사이를 무사히 편안하게 건너가기는 어렵다. 이 책은 결코 가벼운 책이 아니었다. 가볍기 때문에 더 무겁다는 걸 매번 잊어버리는 우를 범하는 구나, 그런 책이다. 그렇다. 가벼운 건 얼마나 견디기 힘든 막중함인가. 존재의 부재가 제공하는 그 모든 하중을 견디느라 우리 등은 비틀리고 휘어지고 마는 것일지 모른다. 그렇게 우리는 나이 들어 다 같은 모양의 뒷모습을 이루는지 모른다...


 

 

 

#3. 텅빈 무거움

 

 

 

   나꼼수, 봉주 2회를 들었다. 러닝타임이 세 시간 반이 넘어가는 분량이다. 도저히 한자리에서 집중하며 들을 수 없는 정보였다. 등이 정말로 휠 것 같이 삭신이 쑤셔왔다. '나와라 정봉주 국민본부' http://www.freebongju.net/ 에도 가입했다. 민주 통합당 대표선출 선거인단 신청을 했더니 투표하라고 문자가 와서 가볍게 투표도 했다. 곧 ‘BBK 실소유주 다방’이라는 이름의 카페도 만들 예정이라 들었다. 내 평생 이렇게 정치에 관심을 가지며 참여를 해본 적이 처음이라 다시금 이씨가 대단하다는 생각을 했다. 달력만이 아니라 동상 세우고 기념주화를 만들어야 할 사람이 맞는 듯 하다. 아침신문에 이제 정봉주가 사라지니 주진우 기자에 더 예리한 칼날 공격이 시작된 것을 확인했다. 책 한권 받으려고 조선일보 블로그를 개설하면서 아... 나도 모르게 물욕에 무너지는 나약한 민심을 엿보았고 알라딘이나 포털 블로그와는 비교가 안 되게 방문자수가 엄청난 것을 확인하고 또 한번 이 나라 권력언론의 파워를 실감했다.


 

 

   내일은 이 허전한 마음을 꾹꾹 채울 다른 책을 집어 들어야 겠다. 쿤데라에 의하면 책을 읽는 행위는 결국 자기 존재를 잊는 효과를 낳는다고 하는데 정말이지 나 역시 요즘은 책 읽을 때 나는 어디에도 없고 현실의 내 문제와 잡다한 고민들은 그 실체자체가 희뿌예진다는 느낌을 종종 받는다. 어떤 유령과도 같은 존재가 페이지만 넘기면서 앉아 있다는 섬뜩한 생각을 할 때가 있다. 이 도취감이 현실에의 도피로 발전하지 않아야 하는데...책을 읽고 이깟 글을 쓰는 것이 도대체 무엇을 바꿀수 있을지, 나를 새롭게 할수 있을지, 나는 글을 쓰는 동안에도 늘 이 지옥 같은 질문에 시달린다. 김훈도 지옥이라는 데 한낱 아무것도 아닌 나라고 별수는 없다는 것만이 유일한 위안이고 서글픔이고, 그렇다. 오늘은 이 가벼움이 가볍게만 나를 가만두지 않는다. 아무리 원하고 그리웠다손 치더라도, 오늘은 이 텅빈 무거움이 내 등을 휘게도 만드는 것 같다. 오늘까지만, 가슴을 부여 잡는다. 내일은 내일은 가볍지 않을 것이다. 아니 무거워도 견딜 것이다...

 

 

 

 

 

 


댓글(17)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굿바이 2012-01-12 22: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작가의 어깨통증까지 느낀다는 대목, 격하게 공감합니다. 뻥이라뇨...적어도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하성란과 윤대녕의 사이는 제 짐각으로는 정말 아득하군요.

여튼 지옥도 사람에 따라 색색이고 무게도 사무치게 달라 한사람님의 등을 휘게하는 그것을 가늠할 수는 없지만
그저 내일은 뭐든 견딜 만했으면 좋겠습니다.


한사람 2012-01-13 23:58   좋아요 0 | URL

굿바이님...하루 종일 저는 몇몇 시를 잡아 먹었어요 ㅋ
격하게 공감해주셔서 어떤 기분인지 안다 해주셔서 기쁩니다.
하성란과 윤대녕의 글은 하나도 기억 안나고 오로지 김훈이 나는 왜 책을 읽는가, 하는 독백만 맴돌아요..

오늘은 그럭저럭 잘 견딘 것 같습니다^^

cyrus 2012-01-12 23: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박웅현의 <책은 도끼다>에서 저자가 김훈의 소설과 에세이 속에서 발견한 문장들을 소개하고 있는데
인용한 글귀가 무척 좋았어요, 그런데 중학생 때 김훈의 <칼의 노래>, <자전거 여행>을 읽어봤는데
문장이 좋았는 지도 몰랐어요ㅎㅎㅎ 그래서 이번 기회에 김훈의 글을 읽어보려고 해요.
참고로 <칼의 노래>는 처음 읽었을 때는 좀 지겨운 감이 있는데 지금은 어떻게 읽혀질지 모르겠네요 ^^;;


한사람 2012-01-14 00:00   좋아요 0 | URL

<책은 도끼다>는 읽을만 한가요?

그렇죠..김훈 글이 지루한 느낌이 들때도 있는 건 맞아요. 근데 문체가 지겹게 반복되는 구절이 많아서 서사가 어필을 하지 못한다는 치명적 단점이 있어요. 문장만 기억되고 이야기는 잊혀지죠..
저는 김훈표 소설보다는 산문에 한표를 던집니다^^


숲노래 2012-01-13 00: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벼워지기도 하고
무거워지기도 하면서
하루하루 좋은 생각
차곡차곡 빚으시기를 빌어요~

한사람 2012-01-14 00:02   좋아요 0 | URL

예, 오늘 하루는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아주 무거운 시간을 가졌어요, 하하
된장님도 즐거운 주말을 맞이 하셔야...
(틀에 박힌 인사말이네요 ㅋㅋ)

gimssim 2012-01-13 07: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등이 휠 것 같은 사람...여기 또 있어요.
무엇이 문제인가 싶어서 오제은의 <자기 사랑 노트>를 읽고 있네요.
저는 '자기연민'이 내 등의 무게를 지탱해주는 힘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가끔 한겨레신문 온라인에 사진을 올리는데 좋은 사진으로 뽑혀도 달랑 책 한권이 선물로 날라옵니다.
사진관 아저씨는 끌끌거리며 '조선일보'로 바꾸라고, '현금'이 날라온답니다.
삼십 년 만에 남편에게 가계부검사까지 맡은 살림살이지만...무식한 소신도 어쩌면 나를 지탱하는 힘이 아닐까 합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한사람 2012-01-14 00:14   좋아요 0 | URL

무슨 책인지 찾아봤더니..가족상담, 부부치료하는 분이시군요..
저는 자기연민은 몰래몰래 돌아서서 하고 상대에겐 그러지 말라고 잘난척 하는 편입니다 ㅋ
(특히 남자가 연민에 빠져 있는 걸 못보겠더라구요 ㅠ)

조선일보는 현금이 날라오나요??
돈이 많은 언론이군요 ㅠ 안그래도 아까 개설한 블로그에 갔다 왔는데..
세상에 방문자가 600명에 육박해서 놀래서 후다닥 도망왔습니다.
(달랑 글 두개 올려 놓았는데 말이죠..)
아주 오래전부터 조선일보를 봐왔어요. 무슨 거짓말을 어떻게 괴담으로 조성하나
그거 확인하고 고자질 하려고 아직 안 끊었습니다 ㅋ

그런데 가계부검사는 심하신데요??
뭔가 생각의 변화가 있었다는 말씀인데.. 지혜롭게 긍정적으로 서로 맘 상하지 않게,
미래를 생각하셔야...(이런, 또 진부한 덕담을)

따스한 주말 되시길^^

조선인 2012-01-13 08: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거미가 부르기엔 아직 먼 노래지요. 테이의 '넌 할 수 있어'도 너무 이른 노래였지요. 카니발의 '거위의 꿈'도 좋았지만, 인순이가 불러 불멸이 된 게 아닐까 감히 생각해 봅니다.

한사람 2012-01-14 00:18   좋아요 0 | URL

테이도 거미처럼, 선곡이 적절치 않았던 거 같아요. 음원으로 들으면 좋을까 해서 기웃거려봤지만 서비스도 안되더라구요.(원작자와 협의가 안되서요 ㅠ) 그런데 지난주 처음으로 나가수 음원이 한번도 일위에 오르지 못하고 추락을 했어요. 나름 가수다 쪽이 상위권을 휩쓸었구요. 그러니까 실은 연예대상은 나가수팀이 아니라 무도를 줬어야 하는건데 말이죠 !!!!

딸아이 때문에 음반 가요 시장 실시간으로 꿰고 있거든요, 하하

조선인님도 편안하게 주말을 맞이 하시길^^


재는재로 2012-01-14 13: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느정도 삶의 무게를 경험한 사람이 불러으면 좋았을 텐데 좀 아쉬운

한사람 2012-01-15 11:33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삶의 무게라는게..한숨만으로도 느껴지더라구요
노래를 잘하고 못하고와 상관없이..신기하죠^^

노이에자이트 2012-01-14 17: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거미가 만으로 서른이 넘은 나이죠.예전에 대학생이 드물었던 시절은 그 나이면 사회생활 10년을 넘기면서 결코 어린나이가 아니었죠.그러고 보면 대학졸업한 사람이 많아지면서 서른이라는 나이도 어린 나이가 된 것 같아요.

제 주변에도 고교졸업하자 마자 바로 사회생활한 후배들은 남자든 여자든 서른이면 어른 티가 납니다.그런 사람들은 남진 노래 '인생'을 불러도 별로 어색하지 않죠.하긴 남진도 삼십대 초반에 이 노래를 불렀습니다만...확실히 같은 나이라면 대학생이 사회생활하는 사람에 비해 좀 어린 티가 나죠.

한사람 2012-01-15 11:36   좋아요 0 | URL

예, 지금 서른하고 우리때 서른하고..또 부모님 서른하고는 틀린 것 같습니다.
예전에 학교선생님이 삽십대 초반이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거의 사오십 분위기였던거 같아요, 하하

세월과 고생을 겪어야만 묻어나는 깊이가 따로 있기에..

노이에자이트님, 오늘은 날이 따스하고 좋네요^^

노이에자이트 2012-01-15 15: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좋아하는 임희숙 노래는 '진정 난 몰랐네'입니다.한사람 님도 아실듯...왠지 한사람 님이 부르면 어울릴 것 같은 노래입니다.

한사람 2012-01-16 08:54   좋아요 0 | URL

아, 저도 그 노래 알아요~
한번도 불러보진 않았지만 노이에자이트님이 그렇게 말씀해주시니까,
도전해 보겠습니다, 하하. 새로운 한주 시작이네요.
올해는 설이 너무 빨리 오는 것 같아요!!!




노이에자이트 2012-01-16 16:27   좋아요 0 | URL
그래요.유명한 노래죠.

눈 많이 오기로 유명한 광주인데 이번 겨울은 큰 눈이 안 오네요.가뭄이 심하긴 심한 모양입니다.
 
농담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9
밀란 쿤데라 지음, 방미경 옮김 / 민음사 / 1999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농담은 안 해도 된다

 

 

 

   나는 농담 잘하는 사람은 부럽지만 농담을 좋아하는 사람은 아니다. 농담을 잘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농담의 대상이 된 상대, 혹은 사건 등이 기분 나쁘지 않게 같이 자리한 모두가 유쾌하도록 만드는 능력이 아닐까. 내가 싫어하는 류의 사람 중엔 뼈있는 농담을 꼭 하고야 마는 사람들이 속한다. 이미 상대가 기분 나빠할 줄 알기에 농담의 형식을 빌어 자기 하고 싶은 말을 숨기지 않는 경우. 혹은 자기도 모르게 한마디를 던져놓고 상대의 반응을 보고 비로소 농담으로 치부하며 얼버무리는 상황. 뼈 있는 말을 해 놓고 농담이니 신경 쓰지 말라고 한다거나 웃자고 한 이야기니 기분나빠하지 말라고 하는 사람...모두 진담의 위선으로 농담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아닐까 해서이다. 


   나는 이미 말하여 지는 순간 누군가가 기분이 상했거나 상처를 받았다면 그건 확실히 농담이 아니라고 믿는 사람에 가깝다. 농담은 먹히지 않을 경우 상대를 속 좁은 사람으로 만들기도 좋아 제공자에겐 어느 정도 본전인 방법이다. 농담이었다 말하면 그만인 것이다. 그러나 기분 나쁜 농담은 전달되지 않은 그 어떤 하찮은 진심만 못하다. 웃음이 사라지면 불쾌감만 기억되기 때문이다. 농담은 자연스럽게 발생하여 공유되는 것이지 미리 계획하거나 나중에 포장하기 위한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농담이 농담을 넘어서 진담 이상의 실력을 행사하게 되는 상황은 왜 발생할까. 문제는 늘 농담을 한 쪽 보다 농담을 들은 쪽의 해석의 문제인데 이 해석의 기준은 사람과 관계마다 다르기 때문에 똑같은 농담이라고 모두 웃을 수는 없다는 사실이다. 농담의 진정성은 곧 가려진 숨은 뜻의 해독에 있기 때문이다. 농담의 진의, 그러니까 모든 농담은 진짜 뜻이 있는 것이고 그러므로 모든 농담은 가짜일 수 있는 것이다. 칭찬도 비난도 자랑도 흉도 모두. 


   이쯤이면 이 정도일 것이라는 상호 신뢰가 없이 이루어지는 무차별 농담은 혹시 사후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가장 손쉬운 방편은 아닐까. 그런데 농담에의 공감이 상호신뢰가 바탕이 되어야 한다는 배경은 결국 농담의 내용이 뼈가 있는 것이 대부분이기 때문은 아닐까. 우리는 농담을 안 해도 되는 것은 농담을 안 하기 때문이다. 결국 농담은 어느 정도 기분나빠할 소지를 반쯤 내포한 성질을 지니고 드러나는 개인 및 사회의 기획물인 것이다. 그래서 나는 기분나빠해야 할 것이라면 굳이 농담을 하지 말고 그냥 진담으로 말하시오, 뭐 이런 방어 자세를 가진 사람인 듯하다. 이 진지함이 나도 지겨울 때가 있는데 그것은 무의식 중에 농담 많이 하는 사람이 진지하지 못하다는 편견을 가지고 있기 때문인 것 같기도 하다. 하여튼 나는 농담이 필요했다면 어쩌면 진담이 더 필요하지 않았을까를 먼저 생각하는 사람이다. 어떤 글의 행간을 읽듯이 농담에서의 숨은 뜻을 읽는 수고가 귀찮은 사람이다. (참 피곤한 사람 ㅠ)

 

 

 

그의 농담만 소설이다

 

 

 

   그래서 일까. 나는 이 소설의 제목이 농담이 아니고 진담이었으면 좋겠다, 고 생각한다. 이것은 마치 희극이라고 써놓고 비극이기 때문에 그렇다, 말하는 것만 같아 한없이 허탈하고 쓸쓸해 몸 둘 바를 모르겠다. 인간이 오늘까지 죽도록 일하다가 바로 내일, 아니 오늘 저녁이라도 죽을 수 있다는 비극은 사실 대단히 웃기는 일에 속한다. (나는 최진실이 자살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제일 먼저 농담 하지마, 이렇게 말했다) 작가는 우리가 늘 죽어왔고 서로서로 죽는 것을 알고 있는 인간이기 때문에 이 지독한 우리네 세상은 농담과도 같다고, 그 농담이라는 세상에 속한 우리네 인생은 모두 농담처럼 살아가고 있는 것이라 말하는 듯하다. 그러니 이토록 유쾌하지 않은 뼈 아픈 농담은 안 듣고 안 보느니 만 못한 슬픔이 된다. 소설의 ‘배경 전체를 하나로 통일 시키며 모든 곳에 스며 있는 한기’가 그 슬픔을 더욱 분명하게 만든다. 기분이 정말로 나빠지는 운명 같은 농담인 것이다. 어떤 진담도 견줄수 없는 이것이 왜 농담이어야 하는가. 왜, 농담은 우리를 울게 하는가.

 

 

   농담으로 포장된 진담의 알맹이를 가볍게 툭툭 건네 온 우리 소설가 성석제는 인간은 ‘농담’하는 존재이고 우리 삶은 ‘소풍’과 같은 것이며 사람 사는 이야기는 다 ‘소설’이라 말했다. 밀란 쿤데라는 젊음은 실수이고 분노는 지옥이며 시간은 화해이고 농담은 운명이라 말한다. 그것만이 진담이라 주장한다. 나는 이 책을 덮으며 뜻밖에도 내 지난날의 잘못과 실수에 대해 너그러워지는 시간을 가졌다. 이 소설이 왜 나를 빠져들게 했을까, 도대체 좋은 소설이란 어떤 조건을 만족시켜야 하는 것일까, 이 소설이 위대한 이유는 무엇 때문인 것일까, 밀란 쿤데라는 이 소설을 마치며 어떤 기분이 들었을까, 이런 소설을 쓰는 사람의 인생도 농담이라 말할 수 있는 것일까... 이런 생각의 꼬리 끝에 하나로 모아진 결론은 내 잘못을 인정하고 이제 그만 용서하자, 이런 현문우답이었다.

 

 

   그리고 나는 한 가지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만약 소설이 각자 주인공의 절실한 입장을 목격하면서 내 아픔과 실수를 간간히 엿볼 수 있는 무대라면 독자는 바로 자기 잘못과 그로인한 상처를 숨김없이 발견하는 동안 비로소 세상과 자신에 대한 용서의 기회를 얻을 수 있다는 사실. 세상의 위대한 소설은 이 소중한 기회를 제공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고 운 좋은 독자는 무대 앞에서 나처럼 작가의 설득에 기꺼이 머리를 조아릴 수 있다는 것이다. 누가한 농담이었든 간에 그것은 그때 그들의 것이 아니라 철저하게 내가 속한 세상으로 귀환하여 저마다 농담보다 지독한 인생을 살아가고 있었던 여기 사람들을 격렬하게 두드린다. 원래 모든 소설은 농담이었고 모든 인생은 농담이었는데 우리가 우리 이름표에 미인이나 추남이라 쓰지 않고 남과 다른 이름을 붙이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렇지 않으면 모두 같아지기 때문인 것이다. 단 하나의 이름이 아닌 동명의 장르로 살게 되기 때문이다. 소설 제목이 그냥 농담인 이유는 다른 종류의 농담 아닌 소설을 대적하는 처사인 것이다. 일반명사가 고유명사가 될 수 있다는 것은 개체의 절대성에서 기인한다. 이 소설은 농담이다, 고로 다른 소설은 농담이 될 수 없다. 아니 그의 농담만이 소설이다. 이는 다른 소설에 대한 실례이고 무례이지만 역으로 그렇기에 유일하게 이해 가능한 독법인 것이다.

 

 

 

가벼움은 견딜 수 없는 무거움이다

 

 

 

   소설을 관통하는 것은 농담으로 상징되는 가벼움에 대한 무게이다. 이 가벼움은 그 어떤 삶의 무게를 인지하는 사람도 깃털만큼 가벼워 질수 있는 無에 대한 가능성이다. 부재의 실존을 작가는 몹시도 견디기 어려웠던 것이 분명하다. 그는 자신이 부여잡고 있던 소설 속 빈번한 ‘가벼움’을 무어라 변명했을까. 소설가의 산문에 꽂혀 빌려온 밀란 쿤데라의 <소설의 기술>에 이런 힌트가 있다.

 

 

 

<농담> : “나는 이 먼지 날리는 포장도로를 걸으며 내 삶을 짓누르는 공허함의 묵직한 가벼움을 느꼈다.”

<생의 다른 곳에> : “야로밀은 간혹 무시무시한 꿈을 꾸곤 했다. 그는 찻잔이나 숟가락, 펜같은 아주 가벼운 물건을 들어 올려야만 하는데 들어 올리지 못하는 꿈을 꾸었다. 그러면 그 물건들이 가벼운 만큼 자신의 무력감은 더욱 커졌다. 그는 자신의 가벼움에 짓눌리는 것이었다.”

<이별의 왈츠> : “라스콜리니코프는 자신의 범죄로 인해 비극적으로 살았고 결국 자신의 행위의 무게에 눌리고 말았다. 야콥은 자신의 행위가 너무도 가벼워 그것이 자기를 짓누르지 않는다는 것, 그것이 무게가 없다는 것에 놀란다. 그래서 그는 이 가벼움이 그 러시아 주인공의 신경질적 감정과는 다른 방식으로 무서운 것이 아닌가를 자문해 본다.”

<웃음과 망각의 책> : “배 속의 이 텅 빈 주머니, 바로 이것이 참을 수 없는 무게의 결핍이다. 하나의 극기 언제라도 다른 극으로 바뀔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더할 나위 없는 가벼움은 가벼움의 무시무시한 무거움이 되었고 타미나는 이제 자기가 이 가벼움을 한순간도 더 지탱할 수가 없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내 책의 번역본들을 다시 읽으면서 비로소 이러한 반복을 알아차리고 깜짝 놀랐다. 그러나 나는 소설가 들이 쓰는 것이 결국은 하나의 주제(최초의 소설)에 대한 변용에 지나지 않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자신을 위로했다.

 

- p176 <밀란 쿤데라 소설의 기술>, 2008, 민음사

 

 

 

   작가는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라는 것을 이미 <농담>에서 발견했고 그 주제를 다음 작품에 계속하여 주장했다고 고백한다. 며칠 전 김훈의 <흑산>을 읽다가 그런 비슷한 생각을 했던 터였다. 어떤 역사, 어떤 혼란을 그리더라도 결국 자연과의 조화로 귀결되는 그 하나의 실마리, 즉 작가의 작가된 본성을 관통하는 질문의 뿌리는 매 한가지다, 라는 깨달음. 밀란 쿤데라에게 가장 두렵고 고통스러웠던 깨달음은 우리 ‘삶을 짓누르는 공허함의 묵직한 가벼움’ 이 아니었을까. 새털 같이 가벼운 물건 하나도 들어 올리지 못하는 무력감, 그 가벼움에 대한 막중한 절망감, 쉽게 지나쳐 버린 가벼운 행동에 대한 자기 두려움, 그것은 채워도 채워도 기실 텅텅 비어만 가는 인생 주머니 속에 존재하는 ‘참을 수 없는 무게의 결핍’이자 그 ‘가벼움의 무시무시한 무거움’이었던 것이다. 없어서 더욱 분명하고 가벼워서 사무치게 무거운 건 우리가 살기 때문에 죽어지는 삶의 근원적인 슬픔이다. 나는 <농담>이라는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삶의 무게가 똑같이 가벼워 사라질 만큼 희미했던 적이 모두 있었기 때문에 누가 더라 할 거 없이 공평하게 무거운 인생이었다고 이해한다. 우리는 작가가 수사한 이 다양한 삶의 무게들이 신기하게도 나와 똑같은 부피와 질량으로 되새겨지는 순간을 맞이한다. 그것은 마치 농담같이 짜릿하고 아슬아슬하다. 전율, 충격, 해방, 자유, 그렇게 머리에서 가슴으로 그 다음 무릎을 탁 치는 순간을 목격한다.

 

 

 

절대음감은 소설의 기술이다

 

 

 

   또 하나 이 소설을 읽어가는 재미는 은근히 감지되는 음악적 리듬감이다. 작가 스스로 스물 다섯 살까지만 하더라도 문학보다 음악에 더 끌렸고 악기를 다루며 음악적 창작활동에 매진했다고 말한다. 소설의 건축술이라 할 수 있는 분할구조와 서술유형이 다분 음악적 구성을 따르고 있고 인물의 비율이 수학적 구조를 따르고 있다.


이 소설은 루드비크, 야로슬라프, 코스트카, 헬레나, 이렇게 네 인물들을 통해 이야기 되죠. 루드비크의 독백은 책 전체의 3분의 2를 차지하고 다른 사람들의 독백들은 모두 합해야 전체의 3분의 1- 야로슬라프 6분의 1, 코스트카 9분의 1, 헬레나 18분의 1- 을 차지할 뿐입니다. 이러한 수학적 구성을 통해 , 제가 ‘인물의 조명’이라 부르는 것이 결정됩니다. 루드비크는 가장 밝은 곳에 있으면서 안으로부터(자신의 독백에 의해) 조명받기도 하고 밖으로부터(다른 사람의 독백은 모두 그의 모습을 추적하는 것이니까요) 조명받기도 하지요. 야로슬라프가 책 전체의 6분의 1을 차지하는 독백으로 그려 내는 자화상은 루드비크의 독백에 의해 바깥으로부터 수정됩니다.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예요. 각각의 인물은 각기 다른 밝기, 각기 다른 방식으로 조명됩니다.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예요. 가장 중요한 인물 중 한사람인 루치에는 자신의 독백을 갖지 못하고, 그래서 그녀는 루드비크와 코스트카의 독백을 통해 오직 외부로부터만 조명됩니다. 내적 조명이 없는 까닭에 그녀는 신비롭고 이해할 수 없는 성격을 부여받게 되는 겁니다. 말하자면 그녀는 유리창 저편에 있어서 사람들이 건드릴 수가 없는 거죠.   -p128

 

 

<농담>의 길이 순서는 아주 짧음, 아주 짧음, 김, 짧음, 김, 짧음, 김이죠... 한 번 더 소설과 음악을 비교해도 괜찮겠죠. 한 부는 박자예요. 각 장은 하나의 소절이고요. 이 소절들은 길기도 하고 짧기도 하고, 또는 아주 불규칙한 길이를 갖지요. 이것은 우리를 템포의 문제로 이끌어 갑니다. 제 소설들의 각 부분은 모데라토, 프레스토, 아다지오등과 같은 음악적 지시를 가질 수도 있을 겁니다.   -p129

 

 

- <밀란 쿤데라 소설의 기술>, 2008, 민음사

 

 

 

   하지만 이와 같은 수학적 구조는 작가가 미리 계산하여 구성한 것이 아니라 어느 체코의 한 비평가가 알려준 공식이라 말한다. (알고는 있었지만 그것을 체계화하고 정리하는 것은 늘 비평가의 몫이다) 템포의 변화는 곧 정서적 분위기의 변화를 의미한다고 말한다. 이 책의 6부에 다소 이질적인 인물인 코스트카라는 변형된 마디가 출현하는데 이는 새로운 주제를 위해 섬세하게 기술된 의도된 장치라는 것이다. 작가는 음악을 작곡하듯 악기를 연주하듯 각 악장을 자기만의 음표로 빼곡히 채우는 사람이었다. 각장의 분량과 문장이 밀고 가는 속도가 전체 악곡의 균형을 위해 연출되었기 때문에 이 소설은 단 한 번도 지루할 틈을 주지 않았던 것이다. 최근에 나는 여간해선 재미나면서도 그것이 재미로만 끝나지 않고 끝없는 사유를 유도하는 소설을 만나지 못했었는데 지난 주말동안 나는 온전히 이 소설에 빠져 있었고 다시 또 이런 소설을 만나고 싶은 욕구에 시달려야 했다.

 

   은희경 작가가 밀란 쿤데라의 <정체성>을 읽고는 소설이란 이렇게 쓰는 것이구나를 느꼈다고 했다. 나는 그 한마디 때문에 <정체성>을 집어 들었지만 작년 이맘때쯤인가 책을 덮으면서 큰 감명을 느끼지 못했었다. 어찌 된 것인지 잘된 소설이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돌이켜 보면 당시 작가가 말하는 방식에 하나도 적응을 하지 못한 것이다. 이번에 밀란 쿤데라의 전집이 새롭게 출간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그의 처녀작인 <농담>을 먼저 읽기로 한 생각은 기특하게도 적절했던 것 같다. 쿤데라를 배우고 깨닫기 위해선 <농담>부터 시작해야하는 것이었다. 덕분에 좋은 소설의 요건과 나지막한 비밀, 그리고 삶의 진리까지 더불어 기쁘기 그지 없는 것들을 한아름 수확해 간다. 내게 이런 고마운 소설이 의미하는 것들은 요즘의 나를 지탱해주는 유일한 위로이다. 나는 나를 견디고 나를 이기기 위해 소설을 읽으며 나를 가르치고 나를 지적하기 위해 소설을 덮는다. 소설은 내게 대답 없는 경쟁자이고 칭찬 없는 선생님이다. 이런 완벽한 소설은 편곡이 필요치 않으며 편곡을 할 수도 없다. 단 하나의 원곡으로서만 존재하는 절대음인 것이다.

 

 

나는 당신의 쓸만한 농담이고 싶다

 

 

 

   소설의 주인공인 루드비크는 ‘아무 의미 없는 말일 뿐이었고’ 그저 당시 기분 때문에 그랬던 것에 불과한 몇 마디의 농담으로 인해 당과 대학에서 축출되며 당시 체제의 불구대천의 연적으로 낙인 찍히게 된다. 바보같은 농담을 즐기는 성향이었지만 마을 악단의 클라리넷 연주자였고 어엿한 대학생 신분이었던 루드비크는 졸지에 군대생활, 수감생활, 탄광생활을 차례로 겪게 된다. 청춘을 증오와 분노로 보내고 난후 고향에 돌아오는 장면으로 시작되는 이야기는 며칠 후 고향을 떠나는 버스를 기다리면서 일어난 농담 같은 에피소드를 끝으로 막을 내린다. 고향에 돌아와 그 며칠을 보내면서 돌아본 과거에 의미없던 첫사랑과 친구들의 배신과 이루어지지 않은 사랑과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던 치욕과 고통의 세월이 펼쳐진다. 이 소설은 누구에게나 청춘이 참혹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말하는 소설이기도 한 것이다.

 

 

   물론 작가는 시기적으로 체코의 공산화가 이루어진 1948년 혁명의 시기 이후 사람들이 보여준 ‘위대한 집단적 신념의 시대’를 종교인 코스트카를 빌어 냉철하게 비판한다. ‘종교가 주는 것과 아주 유사한 느낌들’에 사로잡혀 ‘보다 높은 것, 보다 초개인적인 어떤 것을 위하여 자신의 자아, 이익, 사적인 삶을 포기했던’ 사람들의 일상과 사고, 의식을 큰 문제는 아니라고 읊조린다. 복수와 증오, 분노에 사로잡힌 루드비크가 듣지 못하는 형식으로 그를 충고하고 위로한다. 그리고 루드비크는 마치 그 진심어린 작가의 충고에 화답하듯 자신을 처절하게 깨닫는다. 이 작품에서 전조나 분위기 이탈로 보여지는 코스트카의 대목은 분명 작가를 대리하는 역할로 보여진다. 종교인이라는 이념에 자유로와야 할 지식인을 앞세워 작가가 전달하고자 했던 가치는 무엇이었을까.

 

 


당신은 복수를 열망하지요. 당신은 예전에 당신을 해친 사람들과 오늘날 다른 사람들에게 해를 가하고 있는 사람들을 동일시하고, 그러고는 복수하는 거예요. 그래요, 당신은 복수하고 있어요. 당신은 사람들을 도와주고는 있어도 증오로 가득 차 있습니다. 나는 그것이 느껴져요. 당신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서 느낄 수가 있어요. 하지만 증오는 또다시 증오를 낳고 복수의 복수를 계속 불러올 뿐 대체 무엇을 가져다 주나요? 루드빅, 당신은 지옥에서 살고 있어요, 다시 말하지만, 지옥이오, 그래서 나는 당신이 가엾습니다.  -334p

 

 

나 자신에 대한 분노의 파도가 나를 온통 집어삼켰었던 것이다. 그것은 당시의 내 나이에 대한 분노였고, 자기 밖에 놓은 수수께끼에 관심을 가지기에는 스스로에게 자신이 너무도 커다란 수수께께인 그런 나이, 또한 다른 사람들은(아무리 친한 사람이라 해도)자기 자신의 감정, 자신의 혼란, 자신의 가치 등을 놀랍게 비추어 주는 움직이는 거울에 불과한 그런 바도 같은 열정적 나이에 대한 분노였다.  -344p

 

 

 

   나는 코스트카의 충고와 루드빅의 독백을 몇 번이나 읽었다. 인간은 자기 등에 지워진 고통의 무게를 증오를 통해 상쇄한다는 그의 논리가 나를 집요하게 굴복시키려 들었다. 그 증오라는 것은 인류 전체가 아니라 결국 한 개인에게 집중시킬 수밖에 없는 인간의 초라함을 인정하기 싫었다. 세상에 대한 분노를 가라앉히고자 개인에 분노를 투사하는 것이 우리이고 나라는 사실에 분노했음이다. 작가는 누구라도 단 한번이지만 치명적으로 저질러진 인생의 실수가 ‘괴물처럼 증식해 가는 그 고약한 농담’을 말끔히 지워버리고 싶은 욕망을 이야기 한다. 하지만 그 누구도 실수는 절대 철회할 수가 없으며 ‘너무 흔하고 일반적인 것이어서 세상의 이치 속에서 예외나 잘못이 될 수 없고 오히려 그 순리를 구성’한다고 설파한다. 그리하여 그 농담 속에 포함된 자신과 그 불변의 농담자체는 어떻게든 다시 원점으로 무화시킬 수 없다는 깨달음을 전해준다. 다만 실수는 고쳐지는 것이 아니고 잊혀질 뿐이라는 통찰이 이리도 벅찬 이유는 무엇일까.

 

 

   마지막 부분에서 모두의 영혼의 치유가 되는 장치로 음악을 택한 것은 의미심장하다. 기계처럼 의미 없이 반복되어온 공산당을 선동, 선전하기 위한 정치음악이 아니라 그 옛날 친구들끼리 순수 음악이 주는 기쁨으로 충만했던 민속예술로서의 음악으로 귀향하고자 하는 작가의 의도는 다분히 목가적이다. 하지만 그것으로 오래된 친구와 화해했다고 믿는다면 아직 여정은 끝나지 않았다 말한다. 작가는 끝까지 농담으로 여정을 마무리 한다. 이것이야 말로 내가 연주하고 싶었던 음악이다 말하는 것 같았다. 음악으로의 귀결 직전에 펼쳐지는 후반부의 깨달음의 연속적 문장들은 이 소설의 백미이다. 어제 나는 이 소설이 주는 깨달음을 몇 줄 문장으로 요약해 수첩에 다음과 같이 적었다.

 

 

 

사람은 시간의 물결을 결국 화해의 상징으로 인식한다.

기억은 취사선택되고 실수는 망각되기 때문이다.

그 누구도 한 번 저질러진 잘못을 고칠 수는 없다.

그러나 삶이 다행이기도 한 이유는 그 잘못과 결과가 동등하게 잊혀진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아주 가끔은 당연히 울어야 할 대목에서 웃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웃는다고 그것이 웃어야 할 일이라 마땅히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저 웃을 수 밖에 없었다고 믿는 사람도 있다는 것이다.

다만 그 웃음의 주인공은 당연히 울고 있을 뿐인 것이다.

 

 

   아! 정말 살면서 내가 저질러온 만행과도 같은 그 고약한 농담들을 모두 지워버릴 수만 있다면. 살아 있는 동안 그 누구에게 떠넘길 수 없고 내가 짊어지고 가야 하는 것. 내가 한 농담들은 곧 내가 걸어온 내 과거, 그리고 지금 숨 쉬고 있는 현재, 알 수 없는 미래의 모든 것이 될 터이다. 그것은 변할 수 없는 내 삶의 진실인 것이다. 이것은 결코 농담이 아니다. 다만 당신도 나와 같다는 것만이 내가 당신을 위로할 수 있는 유일한 이유이다. 변변치 않지만 쓸만한 농담이길 진심으로 바란다.

 

 

 

 

 

 

 


댓글(8) 먼댓글(0) 좋아요(1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아이리시스 2012-01-10 01: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어느 촬영장에서 김효진이 책을 즐겨읽는데 그날은 [정체성]을 읽고 있다고 해서 학생 때 도서관에서 빌렸는데 기억이 나질 않아요. 동갑이었거든요. 그래서 어릴 때 뭐 저런 책을 읽나.. 배우가.. 이랬다니까요. 어쨌든 빌려서 대충 읽다 반납한 것 같은데 그때부터 김효진이 좋았어요. 유지태도 라흐마니노프 음악을 알아보는 김효진한테 반했다고 한 것 같아요. 문화적 코드가 통했다면서^^;; 그래서 한사람님 페이퍼 보면서 [정체성] 얘기는 없나.. 하고 쭉 봤어요ㅋㅋㅋ 은희경이 그런 말을 했군요. 근데 이 책은 왜 새 판본이 안나올까요. 기다리는 1인, 바로 저.

새해되고 처음이에요^^

stella.K 2012-01-10 11: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또 길게 쓰셨구만요.
얼마의 양을 쓰느냐 보다 진지하게 썼느냐가 더 중요한 거죠.ㅋ
그니까요. 전집으로 읽으시지 않고. 예쁘게 잘 나왔더만.
젊었을 때 멋모르고 참을 수 없는...을 사 읽었다 뭐 이렇게 소설이 어렵나 해서
못 읽겠던데 지금쯤 읽으면 어떨지 모르겠어요.
그러고 보니 예전에 저의 꼰대(사부)가 밀란 쿤데라와 하루키를 좋아했었어요.
그후 한참만에 다시 만나니까 그 둘을 욕하더군요. 늙으니까 노쇄해져서 노망난 것 같다고.
요는 글이 별볼 일 없어졌다는 거죠. 작가가 오래되면 그런 것 같기도 해요.
반짝반짝 할 때가 따로 있는 것 같아요.ㅋ

보물선 2012-01-11 14: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빼꼼~~~^^ (슬며시 얼굴을 들이 밀어 봄)

정말 오래간만에 왔어.
지난 두달쯤 회사일이 너무 정신 없었거든.
마무리 딱 짓고, 3일간 제주를 다녀와 오늘 출근했다우~
그래서인지 오늘이 올해의 첫날 같은 느낌이 들기까지 하다니깐^^

다행이야. 설날이 곧 있어서.
새로운 한해를 다시 선물 받는 느낌을 가질 수 있어서.

내 새해 인사는 받았지?
그새 당신은 달인이 되셨드만! 축하축하!!!
근데 소설은 어디 갔어?
18회 이후 못 읽어서 아주 아쉬워.
개인 출판이라도 해라~ ^^*

cyrus 2012-01-11 21: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최근에 쿤데라 전집이 출간되었더라고요. 쿤데라 소설은 안 읽어봤는데 표지가 멋지더라고요.
마그리트 그림이라서 구매욕이 들기도 하고요. 이번 기회에 집에 있는 민음사 전집 <농담>을 읽어봐야겠어요 ^^

꽃도둑 2012-01-12 09: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사람님 글은 일단 길어요. 할 말 다하겠다는 의지가 보이고, 성실해요
또한 짜임새 있는 아주 건강한 글이에요.
저 여간해서 혹~ 하지 않는데...일단 긴호흡이 경이롭네요.
아무래도 제가 폐활량이 적은가봐요...ㅎㅎㅎ 언젠가 날 잡아서 글을 아주 잡으리라 맘 먹고 있는데
잘 될지 어떨지 모르겠네요.

몇 해전인가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읽긴 읽었는데 정말 제 스탈이 아니었어요.
그야말로 감성코드 에러였지요. 작가와 독자인 저와의 간극이 흑해 갈라지듯 그렇게 쩌~억 갈라졌었는데
지금 다시 읽으면 좀 좁혀지려나?...암튼 농담에 대한 진지한 견해 잘 읽고 갑니다.^^

가연 2012-01-14 23: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이 좋았는데ㅎㅎ 물론 제가 읽은 밀란 쿤데라의 소설은 농담이랑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두 권 뿐이지만요. 이건 여담인데 저는 제가 좋아하는 사람(?)은 저한테 농담이나 장난을 안걸었으면 합니다. 그런 사람이 나에게 농담을 걸면 나는 그걸 진담으로 받아들일테니...

2012-02-20 10: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2-20 19: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1.

 

 

   나는 내가 가진 성향 중에 스스로 무서워하는 구석이 있다. 결정하면 실행한다는 것이다. 실행하기로 했으면 중간에 패색이 짙어도 끝까지 간다는 것이다. 나는 늘 과정이 중요하다 노래 부르지만 실은 끝을 매우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인 듯하다. 끝내는 의미때문에 과정을 견디는 사람이었나 싶다. 심지어 끝내지 않은 것은 했다고 여기지 않는 경향도 있다. 좋게 보면 소신과 끈기 있는 것이고 나쁘게 말하면 결과만을 위한 목적 지향주의로 흘러가기 쉬운 꼴이다.

 

 

   과정의 질, 결과의 여부와 상관없이 또 하나 스스로 두려워하는 성향은 과감한 단절에의 결단력(?)이다. 무엇이든 그 전까지 죽을 만큼 열심이었지만 오늘부터 아니라 판단했다면 때려치운다는 것이다. 물론 결정을 하기까지 미련할 만큼 고민을 한다. (열에 한 번 정도 밤새 고민 안 해도 좋았을, 고민할 필요가 없었을 결론을 낼 때도 있지만...) 여기서는 필연적으로 때려치우기 전에 내가 이루었던 모든 것을 한 번에 버릴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한데 버리는 걸 타고난 탓인지 그 부분에서 시간을 오래 끈 적은 없었던 것 같다.

 

 

     헤어지기로 했으면,

     헤어진다.

 

 

     그만두기로 했으면,

     그만둔다.

 

 

     지우기로 했으면,

     잊어버린다.

 

 

   회사 모든 사람이 사직서를 내어도 절대 그만두지 않을 것 같았던 한 사람이 갑자기 짐을 싸고 인사를 한다하면 그건 나였을 것이다. 지구 끝까지라도 같이 갈 것처럼 아니 죽어도 같이 죽을 것처럼 사랑했으면서 뒤도 안돌아보고 집에 돌아와 책을 보는 여자가 있다하면 그건 나 였을 것이다. 몇 날밤을 아니 몇 십 일을 밤새워 만든 작품이었지만 어느 아침 갈기갈기 찢어버린 여학생을 보았다면 그것도 나 였을 것이다.

 

 

   어차피 사는 건 오늘까지 살다 내일 죽는 일이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 내일이 있기 때문에 오늘을 버틸 수 있는 것이지만 ... 그동안 나는 지금까지의 나를 죽여 버려야 내일도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은 날들이 많았다.

 

 

 

#2.

 

 

 

   알라딘 서재도 실은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그때까지 리뷰나 열심히 올리고 다른 계획을 위해 깨끗이 지워버리자, 이런 생각을 했었다. 리뷰가 쓰기 싫어 질 날을 기다렸고 그렇게 될 수 있는 계기를 기다렸다가 맞을 것이다. 그러다가 운좋게(?) 그런 기회가 오긴 왔다. 그때 내가 평소 성격과 같이 서재를 때려치우지 않고 시간이 지나가길 기다렸던 이유는 막연하게나마 그 시간이 내게 도움이 될 것 같다는 예감이었다. 사람은 말로 듣고 눈으로 백날 보아도 자신이 겪지 않으면 알지 못하는 일들이 있다. 이것이 지난 몇 년간 책 좀 읽고 글 좀 쓴 덕인지는 모르겠으나 아니다 싶어 그만두는 것만큼 쉬운 일도 없다는 생각을, 글쎄 이곳 서재에서 깨닫게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세상에서 가장 어렵고 아픈 일은 헤어져야 겠다고 제 때 헤어지는 것이 아니라 헤어져야 했어도 헤어지지 못하는 일이 아닐까 싶은 것이다. 그냥 살고 더 견디고 그러다 다시 웃는 것. 이것이 안 살고 안 보고 우는 것보다 더 힘들더라는 것. 결국 나는 내가 잘나서가 아니라 내가 하기 조금이라도 쉬운 쪽을 택한 것 밖에 아무것도 아니더라는 것. 그런데,

 

 

   서재의 달인이 될 줄, 미처 몰랐다.

   뭐 대단한 감투라도 쓴 것 마냥 호들갑 떨고 싶진 않지만 그러나 분명 이것은 내게 사건이다.

 

 

   첫째, 여러 통계치를 보았을 때 스스로 자격 미달이라 여기기 때문이다.

   둘째, 서재에 의지는 했지만 애정을 가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마지막, 내 서재 활동이 굉장히 폐쇄적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것은 운영을 해온 내 입장에서의 자격지심이므로 평가하는 쪽에서는 그만하면 된 것이라 할 수 있다. 내가 바라고 원하지 않았어도 평가요소를 충족시키는 요소가 있다하면 선정되는 경우이므로 크게 미안해하거나 감사해하지 않아도 된다. 그런데 난 미안하고 감사하고 멋쩍다.

 

 

   달인이란 사전적 의미로 ‘학문이나 기예에 통달하여 남달리 뛰어난 역량을 가진 사람’을 뜻한다. 비슷한 말로 ‘명인’이나 ‘고수’를 들 수 있다. 나는 어쩐지 이 어감이 좋게 느껴진다. 온라인 서재에서 유사한 의미로 ‘파워 블로거’, ‘파워 북로거’, 혹은 ‘파워 북피니언’ 이라는 칭호를 붙여주는 것보다 더 기술적(?)으로 다가온다. 김병만도 생각나고 무언가 진정한 희극인의 페이소스처럼 책 읽고 글 쓰는 자의 자세(?) 같은 것이 더불어 떠오른다. 돈 냄새가 덜 난다. TTB 광고나 적립금이라는 제도 하에 속해 있지만 ‘파워’라는 부정적 의미의 권력 냄새가 덜 난다. 잘은 모르지만 이곳이 그래도 떡밥만을 위해 글 쓰는 분들이 다른 곳보다 적다, 아니 그냥 남들 보다 조금 더 책이 좋고 글을 쓰고 싶어 아는 만큼 옮겨 놓는 분들이 더 많은 곳이라 믿어 본다.

 

 

   물론, 고수들이 많아서 그런지 다른 곳 보다 글빨과 말빨이 센 분이 많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다른 곳이 아닌 이곳을 둥지로 삼는 분도 많은 것 아닐까. 그래서 서재의 달인 소식이 더 으쓱 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3.

 

 

   숫자만 바뀌었을 뿐 달라진 것 하나 없는 새해라고 결심을 해야 하나, 이런 생각을 하다가 어차피 서재활동이라는 것이 의미부여의 기록 및 송수신, 교환의 의미를 가지므로 몇 가지 떠오른 생각을 기록해두고자 한다. 그러니까 달인 된 기념으로 올해엔 이래보자, 이렇게 하겠다(이게 유치해도 또 하는 맛은 있는 법) 이런 의미인 것이다.

 

 

1. 리뷰를 (너무) 길게 쓰지 않는다.

 

 

   작년 초에도 결심한 사항인데 잘 지켜지지 않았다. 일부러 길게 쓰려고 작정하는 것은 아닌데 쓰다보면 어느새 여서 일곱 장이 되 버린다. 처음엔 어느 정도 분량을 채우지 않으면 리뷰를 썼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런데 생각이 좀 바뀌었다. 짧고 핵심만 담으면서도 얼마든지 전달해야 할 것을 정리할 수 있다. 리뷰에 한풀이 하지 않는다. 서론을 장황하게 늘어놓고 소설을 쓰지 않는다.

 

 

2. 리뷰를 (너무) 잘 쓰려고 하지 않는다.

 

 

   책을 읽었지만 스스로 결론을 내리지 못한 경우 리뷰를 쓰지 않았다. 즉 내가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했거나 주장할 것이 없으면 그냥 패스였다. 리뷰는 잘 써야 한다는 강박이 심했기 때문이다. 대충 쓰는 리뷰는 한사람과 어울리지 않는다, 뭐 이런 자존심이 있었다. 그런데 이것도 생각이 바뀌었다. 도대체 왜 나는 리뷰를 잘 써야 하는가, 하하하. 왜 스스로 잘 썼다는 기준에 얽매어 뭣 때문인지도 모를 리뷰를 쓰고 있는가. 작년 한해 작위적인 리뷰는 대폭 줄었지만 아직도 대충쓸 거면 아예 쓰지 말자는 생각을 하고 있다. 올해는 대충 쓰더라도 성에 안차더라도 그냥 올리겠다.(물론 이것 또한 왜 그래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을 하고 있다) 가장 큰 이유는 리뷰에 쏟는 에너지를 대폭 줄이고 싶어서 이다. 그 에너지를 다른 곳에 쓰고자 한다.

 

 

3. 도서관에서 빌린 책은 끝까지 읽는다.

 

 

   이상하게도 도서관에서 빌린 책은 대충 읽게 된다. 돈 주고 사지 않아서 그런 것인가. 내 것이 아니라는 생각 때문인 것인가. 기간 내에 돌려다 주어야 하니 지금이 아니면 다시 들춰 볼 일이 없다는 생각을 놓지 말자.

 

 

 

4. 중간에 아니다 싶은 책은 끝까지 끙끙대지 않는다.

 

 

   읽다 보면 나와 안 맞는 책이 분명 있다. 가끔 평가단 활동할 때 그런 책을 만나기도 하는데 그런 책도 다 읽고 나서 리뷰까지 작성해 놓고 나면 뭐라도 하나 교훈은 얻게 된다. 하지만 서평 의무가 없다면 아니 꼭 서평 때문만이 아니더라도 끝을 봐야 책을 읽었다고 여기는 부담자체에서 벗어나는 것이 더 효율적이라는 생각이다. 시간을 두고 나중에 다시 집어든다고 해서 누가 뭐라 하지 않는다. 물론 그렇게 포기한 책은 다시 안 찾게 될 확률이 더 많긴 하지만.

 

 

5. 읽어보지 않은 책은 추천하지 않는다.

 

 

   그러니까 내가 읽고 좋았던 것만 추천하겠다. 어디서 들었거나 보았거나 신문, 서점에서만 들추어 본 책을 마치 그 책을 아는 사람처럼 읽어볼 만하다는 식으로 포장해 위선 떨지 않겠다. 비슷한 내용으로 이런 책이 좋다고 하더라, 다 같이 읽어보자, 누구 읽어 봤냐, 이런 식의 페이퍼는 될 수 있으면 안 쓰겠다. (가능할까? 평가단 그만 둔 이후로 이 죄책감이 없어지긴 했지만 ㅋ) 한 페이지라도, 하다 못해 서문이라도 읽어 본 후 끄적이겠다. 기타 어떤 책을 말하는데 따라오는 참고 서적은 너그러운 이해를 바란다. 내가 읽은 책이 아니지만 필요에 의해 옮겨오고 싶을 때에도(옮겨와야 할 때) 그 이유를 다시 생각할 것이다. 비슷한 의미로 TTB 광고도 내가 한 장이라도 들추어 보지 않은 책은 게시하지 않을 생각이다. 물론 내가 관심이 가서 곧 사들여 읽어 볼 생각인 책들은 매달 부지기수로 쏟아진다. 언젠가 관심 있는 책들을 무작위로 선정해 광고로 올려놓은 적이 있었는데 그 다음 달 광고수익이 거의 이만원이 된 것을 보고 이건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내 서재에 들어와 내 글을 읽고 그 책을 구입한 분이 쌩쓰투 적립을 했다치면 나도 그러는 바 얼마든지 이해하고 감사할 만한 수익이지만 그냥 내가 읽어보지도 않은 신간들을 올려 놓았고 그 책들을 클릭해 구입한 사람이 많아지면 내 수익도 많아지는 것이 나는 불로소득이라 생각한다. 나는 그런 것이 기득권이고 파워이고 안보이는 권력이라 생각한다.

 

 

   가진 건 없어도 쌩 자존심은 하늘을 찌르기 때문에 그런 클릭은 유도하고 싶지 않다. 혹시나 TTB 광고를 별 생각없이 정보차원에서 장바구니 처럼 활용하는 분들이나 운영측에서 잘 이용하라고 한 시스템을 활용하는 것 뿐인데 혼자만 깨끗한 척 한다 생각하는 분들은 그냥 이 결벽증을 딱하게만 봐주시면 좋겠다. 그리고 절대 어떠한 오해도 말아주심 더 좋겠다. 박근혜 말을 빌리자면 그게 정답이다. 하지만 나는 아직까진 좀 결벽을 떨고 싶으다.(물론, 나는 변덕을 믿는 사람이다. 어디까지나 아직까지다)

 

 

 

 

 

기타,

 

감동받은 글은 뭐라도 남겨놓고 온다.

좋은 글은 꼭 추천한다.

적은 추천과 많은 추천의 차이에 의미를 두지 않는다.

(없다고 서운해 하지 않고 쏟아진다고 우쭐하지 않는다)

남을 비판하는 글에 추천하지 않는다.

나를 비판하는 글에 상처받지 않는다.

오해는 빨리 풀어 버린다.

남의 상처를 구경하지 않는다.

아닌 줄 알면서 침묵하거나 돌아가는 추이를 지켜보지 않는다.

이웃의 행복에 동참한다.

위선이나 기만에 너그러워 진다.

.

.

.

 

 

 

 

 

 

   모두 어떤 글을 쓰겠다는 것이 아니라 책과 글에 임하는 태도, 형식에 관한 내용들이다. 책과 글의 내용에 대해선 1년 단위로 계획을 세우기가 힘들어 아직 고민 중이다. 미셸 투르니에는 사람은 누구나 천재성, 재능, 솜씨, 잔재주 이 네 가지 능력을 조금씩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어떤 능력이 얼마만큼의 비율로 섞여 있는 가 차이가 있을 뿐 아무것도 없는 사람은 없다는 것이다. 이 중에 제일 격이 떨어지는 것은 잔재주이다.

 

 

 

   잔재주를 부리는 예술가는 온갖 수단을 다 동원한 나머지 자신의 작품을 진짜처럼 보이게 만
  드는데 성공하기도 한다. 그렇게 해서 자신의 무능력과 무지와 모자라는 창의력을 숨기는 것
  이다. 

 

  - p146, <상상력을 자극하는 시간>, 미셸 투르니에.

 

  

 

   며칠 전 덮은 책에서 자꾸 나를 잡아 당기는 구절이다. 이 말이 가슴을 찌른다. 천재성은 전무하고 재능은 조금 있는 것 같고 솜씨는 연마한다고 노력하지만 늘 잔재주로 나의 무지와 무능력을 숨겨온 것은 아닐까... 혹은 모자란 그 나머지를 채우며 달려 온 것은 아닐까... 달인이라는 존재가 ‘널리 사물의 이치에 통달한 사람’이라 보았을 때 그것은 결코 잔재주로 이루어질 경지는 아니지 않을까. 나는 아직 서재에 통달하지는 않은 것 같다. 달인된 내 스스로에게 아무리 물어봐도 답은 똑 같다.  통達한 달인은 아니시고 더 다그치고 달려야 할 사람으로서 도달하는 과정속에 위치한 미래의 해를 품은 '달인' 이어야 할 것 같다. 해는 매일 뜨지만 달은 어쩌다 뜨지 않을 수도 있다. 그래도 이미 뜬 '달인'보다는 아직 뜨지 않았지만 언젠간 꼭 뜨고 말 '달인'이 더 기다려 진다. 누구든 가슴에 품은 해가 달빛에 그윽하게 비추어 오는 날, 그런 날의 주인공인 달인이 되고 싶을 것이다. 내게 달인은 아직 더 달리고 품어야 할 그분인 것이다.

 

 

 

 

 

- 2011년의 한사람 서재 -

 

 

 

 

 

 


댓글(12) 먼댓글(0) 좋아요(2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stella.K 2012-01-06 14: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를 너무 길게 쓰지 않는다. 왠지 기대되는 사항인데요? 쿄쿄.
저도 예전에 비해 긴건 참 많이 길어졌어요. 저도 한사람님 따라쟁이 될꼬예요.ㅋㅋ

왜요, 한사람님은 충분히 달인될 자격있어요.
'해를 품은 달' 괜찮은 것 같아요. 책은 안 사 볼 거구요.
암튼 올해도 좋은 글 기대해요.^^

한사람 2012-01-08 08:48   좋아요 0 | URL

성실한 리뷰에 대한 강박을 줄이고 핵심과 압축, 좋은 정보쪽으로
방향을 틀기로 했어요, 하하 물론 잘 될는지는 몰라요 ㅋ

'해품달'은 지나가다 슬쩍 몇 장면 보았는데
뿌리 깊은 나무 끝나고 사람들이 이쪽으로 오겠구나.. 그런 생각은 했어요.
달인은..쫌 제 스스로 아직 어색하네요, 히히

맥거핀 2012-01-06 16: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그랬군요. 달인이 되셨군요. 수제자 필요하면 불러주세요. 파란 추리닝 늘 준비되어 있음.

한사람 2012-01-07 12:11   좋아요 0 | URL

예..맥거핀 님 덕에 그때 포기하지 않았던 것도 새삼 고맙네요^^
수제자로 삼기엔 이미 맥거핀님도 달인이죠 ㅋ

가연 2012-01-06 19: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읽어보지 않은 책은 추천하지 않는다, 라는 대목에서 예전에 같이 리뷰했던(이게 벌써 예전이군요!) 코끼리가 아슬아슬하게 서 있는 모 책이 떠오르는구먼요.. 저도 그 책 이후로는 서점에 가서 책을 먼저 휘리릭 훑어보고 있답니다... 구입하거나 어떻게든지 받았을 때 본인 스스로는 만족해야 되지 않겠나, 하는 심정인데..

그러고보니 서재의 달인이셨군요ㅠ 늦게나마 축하드립니다ㅎ 근데 마지막 사진 직접 편집하신건가요?? 다른 건 모르겠는데 파이프가..ㅋㅋㅋ 탐나는구먼요[심지어 책들보다도..]

한사람 2012-01-07 12:21   좋아요 0 | URL

아하...평가단 아픈 추억이죠 ㅋ
온라인 서점의 한계이기도 하고.. 서점에서는 실물이 다른 책들과 같이 놓여 있기 때문에
상대적 비교를 하게 되는 것 같아요. 그리고 전 꼭 사려고 한 책 말고 그 옆에 책을 들고 온다는 하하하..

밑에 엽서 사진하고 다이어리 사진만 제가 찍은 것이 아니구요.(볼펜과 다이어리가 가장 제 서재와 비슷해서 ㅋㅋ) 다른 사진은 이어 붙이기만했죠. 거기서 파이프를 찾아 내시는 군요, 예리하신 가연님 !
오늘은 주말인데 여유로우신가요??

울보 2012-01-06 20: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꾹 눌렀어요,

한사람 2012-01-07 12:22   좋아요 0 | URL

예, 울보님 !!
저도 그렇게 하겠습니다 ㅋ
좋은 주말이요^^

cyrus 2012-01-06 23: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랑 독서 습관이 비슷하네요. 조금 다른게 있다면 도서관에 빌린 책보다는 집에 구입해놓고 읽지 않은 책들을
좀 읽어보려고 해요. 작년 초에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00권 세트를 구입했는데 몇 권을 제외하고는
한 번도 읽어보지 못했거든요 ^^;;

그리고 서재의 달인이 되신거 축하드립니다. 하긴 저도 작년 같은 경우에는 학업에 충실한 탓인지
관리를 소홀히 했어요. 2년 전에 블로그를 처음 했을 때보다 책을 많이 읽지도 못했고 글도 많이
쓰지 못했고요.

그런데 마지막 사진, 한사람님이 직접 편집하신건가요? 서재 배너나 블로그 바탕화면으로
사용해도 손색이 없네요 ^^

한사람 2012-01-07 12:27   좋아요 0 | URL

그게그게..세트로 구입해서 책장까지 들어온 날은 너무나 기분이 좋은데...
그렇게 꽂아 놓고 잘 손이 안간다는 것이죠, 하하하
주로 민음사껀 도서관에서 빌려봅니다. 저도 집에 쌓아두고 있는 책들이나 읽어야 할텐데...말이죠 ㅠ

두장 빼곤 제가 찍은 사진들이구요. 그냥 이어붙인 건데요 ㅋ
(전문용어로 사기친 건데, 하하)
서재가 책들이 많아져서.. 아주 짜증나요. 쓸데없이 책욕심만 많아가지고 ㅋㅋ

2012-01-25 16: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사람님 서재는 왠지 실속있게 두툼한 한 권의 책 같아요.

/ 한사람님과 저는 다르군요. 1. 저는 어떤 일이든 시작은 잘 하지만 끝은 잘 못 냅니다. 2. 저는 긴 리뷰를 쓰기가 무척 힘들어요. 3. 집의 책은 마냥 읽다 말다 하지만 도서관의 책은 웬만하면 다 읽고 반납합니다. (그러나 잦은 연체로 대출불가 회원일 때가 많습니다. 지금도..;;)

여튼 뭔가 읽는 쾌감, 그리고 공감을 주는 명쾌한 한사람님의 글들을 올해에도 기대하는 독자 한 명입니다.^^

한사람 2012-01-25 16:54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섬님 !!
저도 어렸을땐 용두사미격으로 시작만 창대하고 끝은 늘 흐지부지했습니다.
일하면서 바뀐거 같아요. 긴 리뷰는 작정하고 쓰는건 아닌데 늘 말이 많은 것 같습니다.
핵심을 요약하고 압축하는 능력이 부족하다고 봅니다.
(그런 면에서 시인들이 저는 가장 위대해 보여요 ㅋ)

저는 연체하기 싫어서 안 읽고 반납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날짜에 쫒기는게 가장 싫더라구요, 하하

읽는 쾌감이라는 말씀이 울컥...ㅋㅋ 하네요~
독자라는 말씀도 ㅠ

 

 

 

 

 

 

   대가의 산문을 읽는 일은 언제나 숙연하다. 그것은 아마도 글이 곧 작가로 살아온 자신의 인생철학을 담고 있기 때문일지 모른다. 어제와 같은 하늘이고 매일 맞이하는 아침이고 똑같이 생긴 달이지만 그것을 보고 말하는 모습은 사뭇 우리와는 한참이나 떨어져있다. 이 괴리감을 좁혀주는 것이 작가의 산문이라 여긴다. 나는, 가까와 지고 싶은 작가와 조금이라도 거리감을 좁히고 싶어 소설 아닌 산문을 열어 젖힌다. 

   그러나 지난 연말과 연초에 미셀 트루니에를 읽는 일은 그다지 즐겁지가 않았다. 독서가 즐겁지 않았던 이유는 생각보다 훨씬 더한 사색을 요구하는 글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약간 들떠 있는 내 심리상태를 차분히 눌러줄 것을 기대했지만 되려 그렇지 못한 내 자신에게 스트레스만 감지하는 꼴이었달까. 잡념은 잡념대로 책은 책대로 마치 물과 기름처럼 독서는 내 자신과 잘 섞이지 못한 시간이었다. 과욕이 부른 참사였다. 몇 권을 가지고 이 작가를 알아보자며 덤벼드는 행위가 의욕만큼 좋은 결과가 나오지 않는 이유는 무엇 때문이었을까. 깨달음이라는 것은 깨닫고자 달려들면 결코 깨달아질 수가 없는 산물이어서 그런 것일까. 그나마 최근에 출간된 <상상력을 자극하는 시간>은 그런대로 편안했는데 <외면일기>와 <예찬>은 며칠 만에 깨우칠 수 있는 책은 아니었다. 특히 <예찬>은 거의 고전, 철학서를 읽는 기분이었고 반 이상 알아듣지 못하고 가슴으로만 이해하는 단락이 많았다. (어려워서 라기 보다는 뭐랄까 생각하는 방법, 표현하는 방식이 낯설었다. 그리고 끝까지 친해지지 않았다.) 나는 어쩐지 이 분이 (송구스럽지만)살아있다는 생각이 안 들고 자꾸만 사르트르나 들뢰즈처럼 이미 시대의 역사가 된 분으로 생각되는 것이다. 그것은 아마도 요즘 이렇게 깊이 있는 산문을 읽어 본적이 없어서 그럴까도 싶다. 하지만 같은 작가의 글을 동시에 몇 권 번갈아 가며 읽는 것은 힘들긴 해도 확실히 좋은 방법인 것 같긴 하다. 뭐랄까, 이 사람이 오랜동안 생각하는 과정과 생각이 이동하는 자연스런 흐름이 눈과 귀에 점차 반갑게 들려왔달까...저 멀리, 저어 멀리서 무지개 타고 오네~ 이런 노래가사가 떠오르는데, 이 방법이 앞으로의 독서에 좋은 습관이 되었으면 한다.



#1. 묵은 포도주처럼 서서히 취하는

 


 

 

   먼저 내가 집어든 책은 < 외면일기- 미셸 투르니에 지음, 김화영 옮김 / 현대문학 / 2004 > 이다. 가만히 앉아서 자기 내면을 투시하여 그것을 정리한 것이 아니라 여행 중에 혹은 일상 중에 겪은 에피소드, 계절과 풍경에 대한 소회를 적어 놓은 것이라 ‘외면일기’라고 말한다. 단락구분이 월별로 되어 있어 나무와 바람, 꽃, 시간의 변화를 느끼며 의미를 부여하는 글들이 가장 많은 편인데 어차피 자기시선으로 해독한 문장들이므로 읽는 내 입장에선 그의 내면을 엿보는 듯한 느낌이 많았다. (작가에겐 외면이겠지만 독자에겐 내면이었다) 이 정도가 외면이면 내면일기는 얼마나 깊을 것이란 말인가. 이 수준이 메모라면 작정한 수준은 도대체 어디까지란 말인가. (작가들 때문에 이제 ‘잡문’이나 ‘일기’라는 제목도 붙이기가 부끄럽다) 본인은 가벼운 마음으로 끄적이듯 아무런 원칙없이 편안하게 서술하였다고 했지만 내가 보기엔 거의 도를 닦은 수준의 성찰적 경지가 아니었나 싶은 것이다.

   그저 내 수준에서만 보자면 문장상으로는 이문열이 가장 많이 생각났다.

 

 

시간은 모든 것을 파괴한다. 이 세상 어느 것도 시간의 파괴력에서 벗어날 길이 없고, 사람의 삶도 마찬가지다. 아무도 시간의 파괴력에 저항할 수 없을뿐더러, 어쩌다 벌어지는 부질없는 저항은 오히려 웃음거리나 빈정거림의 대상이 된다. 그리하여 체념한 사람들은 그런 우리의 운명을 허무라 이름 하여 슬퍼하고 한탄해왔다. 세상에 흘러넘치는 염세와 비관의 노래는 대개가 그런 시간의 파괴력에 대한 속절없는 표현이다."   

 

“모든 변화는 그때껏 진행된 파괴과정의 한 단락이다. 시간을 거슬러 되돌아보는 일이 언제나 우리에게 쓸쓸함을 자아내는 것은 그때까지의 변화 속에 스며있는 사멸과 종말의 예감이다. 오랜 세월 뒤에, 한때 머물렀던 땅 또는 한때 사랑했던 사람을 찾는 일은 시간의 파괴력을 확인하는 일이며, 그것은 또한 우리 ‘살이’의 부질없음이나 허망함을 다시 한 번 곱씹는 일이기도 하다.” 

-111p, <리투아니아 여인>, 이문열

 

   이것은 이문열의 소설 <리투아니아 여인> 속 한 단락이다. 소설 같지 않은, 서사와는 상관없이 보이는 산문 투의 글을 빌어 왔다. 감히, 비교해본다. (이런 단순 무식한 비교를 서슴치 않고 하는 이유는 그저 내가 이 두 책을 읽었기 때문임을 용서하시라. 어차피 독서는 장님이 코끼리 만지는 행위라 내가 읽은 작품이 내가 아는 모든 책이다.)

 

시간은 모든 것을 파괴한다. 우리가 사랑하는 모든 것을. 우리가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을. 그러나 시간은 또한 우리가 싫어하는 모든 것, 모든 사람들, 우리를 증오하는 모든 사람들, 그리고 또 고동, 심지어 죽음까지도 파괴하는 장점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 결국 시간은 우리들 자신을 파괴함으로써 우리의 모든 상喪과 모든 고통의 원천에 종지부를 찍는 것이다.

-19p, <외면일기>, 미셸 트루니에

 

   (변역이지만)정확하게 이문열과 첫 문장이 일치하는 이 문단은 미셀 투르니에의 생각이다. 두 사람 다 시간의 장점, 단점을 언급하며 그 특성을 자기 문장 안에서 끌어안고 있다. 이문열이 결론내린 시간의 파괴는 연민에 가깝고 투르니에는 고통의 소멸, 즉 새로운 희망에 가깝다. 나이 상으로 보았을 때 이 작가는 분명 죽음을 차분히 준비하고 있다는 주제넘은 예상을 해본다. 시간이 ‘우리들 자신을 파괴함으로써’ 우리의 ‘모든 상喪과 모든 고통의 원천에 종지부를 찍는 것’이라 한 걸 보면 파괴하는 속성자체보다는 파괴대상이 무엇이냐에 중점을 둔 결론이다. 그러므로 파괴는 파괴만이 아니고 파괴만 하는 것은 아닌 것이다.

 

   1924년 당시 8개월의 태아였던 자신을 임신한 어머니가 프랑스 소설가 아나톨의 국장에 참여해 조사와 조가를 하나도 놓치지 않고 들었기 때문에 그 영향으로 작가가 되었다고 믿는 사람. (내 어머니도 70년에 죽은 아무개 작가를 애도하는 태교시간을 가지셨다면 나도 작가는 되었을 텐데 ㅠ) 그가 말하는 시간과 과거를 찬찬히 넘기다 보면 어느 순간 오래된 글로 이루어진 어느 심연의 숲에 들어와 있다는 착각이 든다. 피톤치드가 뿜어 내는 숲 고유의 향기에 취해 마치 나 자신조차도 나무가 되어 있다는 느낌이 드는 것이다.  많은 작가들이 그의 글을 유려한 은유로 표현했지만 그 중에 일개 독자인 나와 가장 비슷한 생각을 한 사람은 평론가 남진우였다. (그렇다고 그가 내 수준이라는 건 절대 아니고 ㅋ) 그는 ‘투르니에의 산문은 묵은 포도주처럼 읽는 사람의 내면으로 조용히 스며들어와 서서히 취기를 불러일으키는 글’이라 한 바 있다.(『올페는 죽을 때 나의 직업은 시라고 하였다』, 남진우, 2010. 문학동네) ‘고독한 은둔자의 사색’을 목격하며 이렇게 아름답게 늙을 수만 있다면 나이 드는 것도 괜찮은 일이라는 것이다. 트루니에는 이 책에서, 당신의 나이가 되면 ‘과거란 입을 딱 벌리고 있는 심연인데 그 속으로 흐물흐물 미끄러져 들어가는 기분이 얼마나 달콤한지’ 모른다고 했는데 나는 아직 마흔 줄이면서도 그 심정을 조금은 알 것 같기도 하다.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나보다 먼저 근사하게 ‘묵은 포도주’라고 말해 준 남진우 평론가의 표현에 심히 동의하면서 더불어 바디감 굵직한 맛은 아니고 은은한 피노누와쯤이 맞을 거라고 사족처럼 덧붙여 볼까 한다.

 

친구를 잃어버리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다시 접촉하는 주도권을 그에게 맡겨두는 것이다.
그러면 멀지 않아 그가 꼼짝도 하지 않게 되는 날이 오는 것이다.

 

   이것은 그가 1월 달에 쓴 일기이다. 여기저기 오가며 쓴 글 중에 이 두 줄의 문장이 가장 뇌리에 남았던 건 아마도 내가 그 주도권을 친구들에게 완전히 일임했기 때문인 듯하다. 책을 넘기는 중간에도 자주 ‘주도권’이라는 죽비같은 책임을 깨우치게 했다. 무심코 따라가다 큰 코 다치는 기분으로 이 책을 덮었다.

 

 

 

#2. 우리가 잊고 사는 생의 신비란

 

 

 

   우연인지 그 역시 < 예찬 - 미셸 투르니에 지음, 김화영 옮김 / 현대문학 / 2000 >의 마지막에 친구를 언급한다. 미셀 푸코, 질 들뢰즈, 칼 프렝커 같이 먼저 떠난 친구들이 기다리는 곳으로 곧 갈 테니 기다려 달라고 말한다. 자기 하나만 빼놓고 강 건너편에 모여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 눈에 선해 너무나 그립다 고백한다. 이상하게 ‘강 건너편에 모여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 부분에서 목이 메었다. 이런 구절은 문장을 위한 수식이 아니라 평소 떠올리던 장면임이 분명하다. 아직 나는 친구들 중에 부음소식을 접한 사람이 없다. 같이 일하던 동료 중에서도 없다.


이 사람이 떠나고 또 저 사람이 떠나고, 그리고 또 다른 사람이 사라지면서 우리들의 젊은 시절의 영상은 와르르 와르르 무너진다...그들이 거기서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다. 친구들이여, 잠깐만 기다려라, 곧 간다. 곧 간다니까 ! 

- 427p , <예찬>, 미셸 트루니에


   ‘젊은 시절의 영상’이라 하여 비교적 젊은 시절의 작가 모습을 찾아 보았다.(왼편 사진)  정확한 연도는 모르지만 흡사 외모가 여느 프랑스 배우와도 같은 이미지에 흠칫 했다. (독신인 이유가 정말 궁금했다 ㅋ) 더불어 나이든 모습이 참 아름다워 보였다. 항상 털모자를 쓰고 계신데 최근의 사진은 그만 돌아가신지 이십년도 더 된 내 외할머니와도 비슷해 마음이 따스해진다.

 


 

 

예찬보다 더 좋은 것은 없다. 어떤 아름다운 음악가. 한 마리 우아한 말, 어떤 장엄한 풍경, 심지어 지옥처럼 웅장한 공포 앞에서 완전히 손들어버리는 것, 그것이 바로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다. 예찬할 줄 모르는 사람은 비참한 사람이다. 그와는 결코 친구가 될 수 없다. 우정은 함께 예찬하는 가운데에서만 생겨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들의 한계, 모자람, 왜소함은 눈앞으로 밀어닥치는 숭고함 속에서 치유될 수 있다. - 서문 中 , <예찬>, 미셸 트루니에

 

   사실 나는 굉장히 칭찬에 인색한 부모님 밑에서 자랐다. 완벽주의 어머니와 무뚝뚝한 아버지는 다른 조카들에겐 그토록 칭찬을 남발하셨으면서도 유독 내 앞에선 성에 찰만큼 칭찬해주시지 않았다. 들리는 이야기론 뒤에선 친구, 친척들에게 내 칭찬뿐이라 하셨지만 내가 느끼는 칭찬의 체감온도는 늘 영하의 한 겨울이었다. 그러다 보니 누가 내 칭찬을 하는 것도 썩 우쭐하지 않았고 또 나 역시도 남에게 쉽게 칭찬하는 사람이 되지 못했다. 칭찬과 예찬은 물론 다른 개념이지만 나는 두 가지 모두 감사라는 근본적 마음이 없으면 행해지지 않는 행위라 여긴다. 어린 시절 제대로 된 칭찬을 받고 그런 만큼 상대를 칭찬해온 사람은 비교적 어떤 현상이나 본질에의 예찬도 어렵지 않을 것이라 믿는다.

   물론 이 책에서 그가 언급하는 것들이 꼭 우리가 생각하는 예찬의 범주에 들어 있지는 않은 것 같다. 또한 그가 사물과 현상을 예찬하는 과정에서 기록된 과정이라고도 생각지는 않는다. 그는 사물과 현상을 그리고 사람을 예찬하기보다 어떤 경우 더 비판하고 관찰한 결과를 정리하려 본질을 정확히 파악해 새로운 논리를 만드는 것으로 보였다. 그러니까 예찬‘해온 것’ 이라기보다는 우리가 예찬‘해야 할 것’들에 관한 기록이라 할 수 있다. 그것은 자신이 예찬했기 때문에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정보가 아니라 생각해보았더니 비로소 예찬할 만하지 않은가에 대한 설득이자 질문인 것이다. 글쎄, 작가가 해야 할 일은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나는 이 책을 보면서 어줍짢게 작가의 소명 같은 걸 느껴버렸다.

   예를 들어 내가 감탄하고 소름이 끼치는 부분은 이런 것이다. 그는 작가라는 직업이 출근도 없고 퇴근도 없고 휴가도 없으므로 일 년 내내 바캉스나 마찬가지겠다는 동네 정육점 주인의 질문을 시작으로 ‘바캉스’에 대한 단상을 정리해간다. 그가 사색하는 과정을 따라 가다보면 우리가 예찬해야 할 것이 발견되는데 그것에 동의할지 말지는 당연히 우리의 몫이다. 동의 하는 독자들은 대개 그가 예찬하는 그것이 아니라 예찬할 생각을 할 수 있었던 그를 예찬하고 싶어진다. 그 놀라울만한 사고의 깊이와 지적임, 사유의 폭과 박식함, 그리고 번득이는 지혜, 눈부심, 이런 것들을 그저 예찬한다고 밖에 말할 수 없는 내 조악한 표현력, 이런 순간에 절망과 희열을 동시에 느끼는 내 아이러니라도 끄적여 놓고 싶다는 욕심을 이기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에 의하면 옛날 수공업자들, 농사꾼들은 계절과 동시에 자기 능력에 맞추어 나름의 리듬대로 노동을 했기 때문에 ‘바캉스’는 필요치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공업화, 도시화속에서 노동자들은 자기 리듬대로가 아닌 생산성에 맞춘 리듬으로 인해 노동에 구속 될 수밖에 없다는 것. 그러다 보니 ‘바캉스’가 마치 이상적인 해결책인 것처럼 부각되었을 뿐이라는 것이다. 의심없이 떠남과 도피가 휴식이라 믿는다는 것이다. 그는 ‘바캉스’야 말로 모든 습관들의 갑작스러운 단절이며 정상적인 환경을 파괴하는 낯설음이라 말한다. ‘바캉스’를 즐기는 것이 ‘해독’이라고 하지만 해독 앞에 우선 무엇에 ‘중독’되지 않으려 노력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말이다. 다음 문장을 정독해보자.

 

우리는 꿈을 꾸어 보아도 좋을 것이다. 아니 꿈을 꿔보아야 한다. 어쩌면 바캉스는 우리들의 풍속 진화의 한 단계에 불과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 단계 -필요하고 유익한- 를 우리는 언젠가 넘어서게 될 것이다. 우리들의 심장을 생각해보자. 우리는 항상 심장에 대해서 생각해 보아야 한다. 우리 몸의 근육들은 휴식하기 위하여 하루 평균 여덟 시간 동안 잠을 자지 않으면 안 된다. 그중 단 한 가지 근육만이 불연속의 법칙에서 제외되는데 그것이 바로 심장근이다. 이 근육은 일생 동안 쉬지 않고 박동한다. 그렇다면 이 근육이 절대로 휴식을 취하지 않는다는 말인가? 천만의 말씀이다. 그것은 아마도 다른 근육들보다 더 많이, 그리고 더 잘 휴식할 것이다. 심장의 비밀은 그것이 두 번의 박동 사이의 아주 짧은 한 순간 동안 휴식한다는 사실에 있다. 다시 말해서 심장의 휴식, 잠, 바캉스는 분산되어 가지고 그것의 노동과 긴밀하게 뒤섞여 있는 것이다.

 

 

심장처럼 노동하라. 너무나도 재미있고 창조적이며 다양한. 그리고 특히 일상생활에 너무나도 잘 편입되어 있고, 노력과 성숙의 국면들이 너무나도 리드미컬하게 교차하는 지라 그 자체 속에 휴식과 바캉스를 내포하는 그런 노동을 하라.

-p299, 300 <예찬>, 미셸 투르니에

 

   미칠 것 같다. 심장이 터져 버릴 것 같다. 보통 바캉스가 중요하지 않다고 하는 글은 어디서도 접할 수 있는 시작이지만 대개 끝은 일상을 소중하게 생각하라는 식의 틀에 박힌 결론을 자신의 문장력으로 수사하는 경우가 많지 않은가. 그런데 이 사람은 심장을 말한다. 별도의 물리적인 바캉스가 필요하지 않은 이유는 우리 심장이 노동하는 과정에 다 포함 된 것이므로 심장이 휴식하는 것 처럼 노동하다보면 그게 바캉스고 또 그렇기에 바캉스가 필요치 않다는 것이다. 심장이 노동하는 것처럼 자신은 글을 쓴다는 말이 아니고 도대체 어떤 자랑이란 말인가. 그것은 바캉스가 아닌 이미 바캉스인 심장과 그 심장을 가진 자신과 그 심장과 가장 유사한 직업인 작가를 예찬하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3. 쌍으로 생각하는 것의 즐거움

 

 

 

  이와 같은 심장에 관한 주장은 < 상상력을 자극하는 시간 - 미셸 투르니에 지음, 김정란 옮김 / 예담 / 2011 >에도 재차 등장한다. 물론 심장의 놀라운 본질을 예찬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프로펠러와 지느러미’를 비교하면서 언급되는 실마리로 작동한다. 가만 보면 <외면일기>에서 관찰한 나무와 숲의 속성이 <예찬>에서 밝혀지는 숲의 비밀이기도 하고 <예찬>에서 발견된 생의 아름다움이 <상상력을 자극하는 시간>에 다시 재구성되어 펼쳐지는 식이다. 그래서 한 작가의 책을 여러 권 동시에 읽는 효과는 예상외로 큰 기쁨으로 다가온다. 뭔 말씀인지 어떤 게 중요한지, 그 막연했던 느낌이 구체적으로 달려오는 것 같다고 할까. 하늘에서 눈이 내려와 그동안 그 눈송이가 녹는 것만 목격하다가 어느 날 집 앞 나무 밑에 얼어붙어 있길래 만져 보았더니 그만 눈의 결정체가 한눈에 보이는 순간과도 같은 감격. 눈인지는 알았지만 내 눈으로 눈 속을 바라보고 눈을 눈만으로 실감하게 될 줄은 몰랐던 그 순간이 우리 모두에겐 있었다.

 

심장은 두 번의 박동 사이에 잠깐 동안 쉰다. 다른 말로 바꾸어 말하면, 심장의 휴식, 심장의 잠, 심장의 휴가는 잘게 나뉘어져 있고, 자신의 활동에 내밀하게 뒤섞여 있다. 이 매우 특별한 심장의 휴식은 어떤 특권을 가진 사람들에게만 허락되어 있는 이상적인 삶의 형태이다. 일상생활에 매우 잘 통합되어 있고, 일상적 노력과 성숙의 여러 과정들 안에서 매우 부드럽게 리듬을 타고 있기 때문에 그 자체 안에서 휴식과 휴가를 포함하고 있는 일을 하는 것, 이것이 바로 예술가나 또는 적어도 장인 같은 일의 귀족이 누리는 특권이다. 심장이 연속성과 비연속성의 융합을 통하여 이루어 낸 것이 바로 그러한 것이다.      
                                                   
- P62, <상상력을 자극하는 시간>, 미셸 트루니에

 

   <상상력을 자극하는 시간>은 절판된 책 <생각의 거울, Le Miroir Des Idees, 2003>의 개정판 인 듯하다. 원제를 상상력으로 바꾼 이유는 무엇일까. 여기서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상상력 사전>을 의식하지 않을 수 가 없는데 이 책은 상상력을 자극 한다기 보다는 하나의 생각을 거울에 비쳐 보는 사색의 훈련에 가깝다. 무엇보다 작가가 이 책을 쓴 의도가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의 스승이기도 한 바슐라르의 대칭감각에 영향을 받았기도 하지만 이 책은 대칭, 대립의 쌍을 이루는 사고체계를 그 형식으로 하고 있다. ‘남자와 여자’에서부터 ‘존재와 무’에 이르기까지 읽다보면 상상력이 자극되기는 하겠지만 그것 자체가 목적이 된 책은 아니다. 밑줄에의 유혹을 차마 떨치기 어려운데 그러다 보면 아마 밑줄을 긋지 않는 구절을 찾는 것이 더 빠를 것도 같다. <상상력 사전>이 소장용의 성격이 강하다면 이 책은 실용서에도 가깝다. 비슷한 톤으로 이어령 전 장관의 서적들이 눈에 밟히는데 전직 컨셉트 플래너로서 광고나 영화 , 디자인등 개념 작업하는 분들에게 아주 유용하다 추천하고 싶다.(그러니 상상력을 자극하는 것이 꼭 틀리다고는 할 수가 없구나 !!!)

 

 

 

 

"선생님은 늘 쌍으로 된 대칭, 대립관계의 틀로 세계와 현상을 인식하고 설명하는 쪽을 선호하시는 것 같아요. 물과 불, 동물과 식물... 하는 대칭된 개념을 마주 놓고 사고하고 설명하시잖아요. 특히 선생님의 에세이 <사상의 거울>은 그 대표적인 경우라고 봐요. 제목의 ‘거울’이 이미 그 대립이나 쌍을 이루는 인식의 틀을 가리켜 보이고 있잖아요. 생각이 거울 속에 비추어져서 두 가지의 쌍을 이루는 것 아닙니까?“

 

“그렇죠. 정확하게 지적해 주었어요. 나는 쌍으로 놓고 생각하는 것을 좋아해요. 그런 발상은 많은 새로운 것을 발견하게 해줘요. 우리가 두발로 걷듯이 나는 두 가지 쌍으로 놓고 생각하는 것을 좋아해요.”

 

“그런데 한국에서는 번역판을 낼 때 <사상의 거울>대신에 <상상력을 자극하는 101가지>라든가, 뭐 그런 제목을 붙였더군요.”

 

“이해 못할 번역은 세상에 많으니까요.”

 

 

- 미셀 투르니에, 김화영 인터뷰 中 / 2002. 3.28. 슈와젤의 사제관에서

 

 

   미셀 트루니에는 파리 교외의 슈와젤이라는 작은 마을에 있는 3층짜리 사제관에서 사십년 째 살고 있다. 평생 독신으로 살아온 남다른 이유가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신화적인 이해가 얼마나 깊은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또 도시적인 삶과 얼마나 격리되어 살아가는지는 모르겠지만 글의 행간에선 금욕주의적이거나 종교적 관념, 혹은 시골에의 향수, 성에 대한 편견, 문명에 대한 냉소 같은 은둔자적인 뉘앙스는 잘 느껴지지 않는다. 해마다 노벨상 후보에만 오르고 수상하지 못한 것이 너무 오래되어 스웨덴 한림원에선 이미 상을 줬다고 착각한다는 농담이 떠돈다는 작가이기도 하다. 이번 미셸 트루니에를 만나며 새롭게 궁금해진 한 분은 그의 글을 번역한 김화영 선생이다. 문학평론가이자, 불문학자, 번역가인 김화영 선생은 국내에서 카뮈연구로도 잘 알려진 분인데 산문도 기가 막히다는 정보를 얻었다. 여기저기 기웃거리다 대부분의 한국 소설은 다 읽어 보았다는 선생이 11년 만에 낸 평론집 <소설의 숲에서 길을 묻다, 2009 >라는 책에서 지적한 저질 소설에 대해 옮겨 놓는 것으로 이 글을 마무리 할까 한다. 다시금 기본적 역량, 기본적 역량, 기본적, 기본, 기본을 되뇌이며 도서관에나 가야 쓰겠다. 심장처럼 독서하고 심장처럼 글을 쓰기 위해 오늘도 심장을 움직인다. 미셸 트루니에는 적어도 우리가 심장을 작동하는 방법 하나는 알려준 셈이다.

 


'서둘러 쓴 문장과 거침없는 줄 바꾸기, 머릿속으로 지나가는 모든 잡념을 여과 없이 속기한 컴퓨터 시대의 안이한 수다. 태를 부린 깨달음의 제스처, 요란하게 물들인 감정의 전시. 소설가로서의 기본적 역량 부족을 '실험정신'으로 포장해 놓은 난해한 산문.'

p173~174, <소설의 숲에서 길을 묻다>, 김화영, 2009 / 문학동네

 

 

 

 

 

 

 

 

 

 

 

 

  참고)

 

 

 

 

 

 

 

 

 

 

 

 

 

 

 

 

 

 

 

 

 


댓글(11) 먼댓글(0) 좋아요(2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굿바이 2012-01-04 14: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셸 투르니에를 무척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한사람님의 글이 반갑기만 합니다 ^__^
<외면일기>와 <예찬>은 지금도 아무 페이지나 펼쳐보는 책이에요.
처음 읽었을 때, 꽤 많은 시간이 흘렀군요, 막연하기만 했던 어떤 문장들이, 어떤 시간과 사건을 겪고 다시 읽으면
선명해질 때가 있어요. 가끔은 이렇게 곁에 오래 머물고 천천히 빛을 드러내는 책과 작가가 고맙기만 하더라구요.

한사람님이 글을 준비하시는 것 같아 <외면일기> 100쪽에 있는 문장을 여기에 옮겨요. 제 나름 응원입니다!!!

"어서 작품을 한 편 써라. 우리는 갈리옹 광장에 있는 식당에서 너를 기다리고 있다." 물론 거기에는 아카데미 콩쿠르 회원 열 명이 돌아가며 서명을 했다.

한사람 2012-01-05 09:21   좋아요 0 | URL

굿바이님 덕에 미셸 투르니에를 알게되어서 뭐라 인사를 ㅋㅋㅋ 해야할지^^
말씀하신대로 아무 페이지나 펼쳐보아도 좋고 또 시간이 흐른 다음에 보아도 더 좋은 책인 듯 합니다.

저도 외면일기 100쪽을 흠칫 하면서 넘겼어요.
'나는 장차 작가가 되어 공쿠르상 심사위원이 되겠다'..작가가 되는 것도 힘든데
미셸 투르니에처럼 심사위원이 되겠다고 한 꿈이 어이없기 보다 구체적이고
확실해보였어요, 하하.

처음에 미셸 투르니에 같은 글을 쓸 것 같다고 하셔서
어떤 칭찬일까..가 궁금해서 보았지만
제 나름대로 턱없이 부족한 사색의 깊이를 말하는 걸까..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앞이 막막하더라구요 ㅋ

좋은 교훈을 얻었고, 또 응원에 힘입어 오늘도 심장을 달리러 가겠습니다^^

숲노래 2012-01-04 15: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 하루도 심장을 따뜻하게 잘 움직여 주셔요~

한사람 2012-01-05 09:23   좋아요 0 | URL

오늘은 된장찌개를 해먹을까 생각합니다^^
심장이 두근거리네요~

stella.K 2012-01-04 16: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번에 평가단에서 미셀 투르니에를 선정했는데 기대를 하고 있어요.
예전에 그의 단편동화를 읽은 적이 있는데 그후 이분을 좋하게 됐죠.
그런데 사실은 그때 이후 이분에 대한 책을 읽어 본적이 없어요.
만일 이번에 어려워서 재대로된 독서를 못하면 어쩌죠?ㅋ
그래도 변함없이 좋아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한사람 2012-01-05 09:25   좋아요 0 | URL

에세이 평가단 좋겠다!!!
아주 잘 갈아타신거 같아요~
책이 어렵진 않고 천천히 음미하면서 넘기기 좋더라구요.
(저는 위의 세권 중에 상상력...을 마지막에 읽었는데
두권을 요약한 느낌이 들어서 좋았습니다.)
스텔라님 리뷰가 벌써부터 궁금해지네요^^
(정말로요, 다 작성하시면 득달같이 달려가 읽을께요^^)

gimssim 2012-01-04 21: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심장처럼 노동하라'는 말이 의미심장하게 다가옵니다.
미셀 트루니에의 <예찬>을 오래 전에 읽은 기억이 납니다.
이즈음에 다시 읽는다면 새롭게 의미를 부여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며 메모를 합니다.
새해, 좋은 출발 되십시오.

한사람 2012-01-05 09:28   좋아요 0 | URL

예, 저도 '심장처럼 노동하라', 이 구절에서 멈칫 제 심장이 주춤하더라구요.
처음엔, 죽을 때까지 쉬지않고 일하란 뜻인줄 알았죠, 하하.

저는 말로만 듣고 이번에 처음 작가의 책을 집어 들었는데
말씀하신대로 세월이 좀 흐른후에 읽어도 또 다른 깨달음을 얻을수 있겠다 싶습니다.
그런 책을 써야 할텐데 말이죠 ㅠ



반딧불이 2012-01-05 11: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문열과 투르니에의 시간에 관한 견해는 <시간의 이빨>이라는 책을 생각나게 하는군요. 태양아래 더 이상 새로운 것은 없다는 성경구절도 생각나구요.
저는 김정란의 번역보다 김화영의 번역이 더 매력적으로 다가왔었어요. 제가 알고 있는 최고의 궁합이죠. 한사람님께서는 어떠셨는지 궁금하네요.
제가 읽을 땐 <생각의 거울>도 이름을 바꾸어서 출간된 것이었는데 또다른 이름으로 출간되었나보네요. 투르니에 산문의 결정판 같은 글과 늘 정성이 느껴지는 페이퍼 감사한 마음으로 읽었습니다.

한사람 2012-01-05 21:56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반딧불이님 !
나는 왜 쓰는가 이후 일년 만인가요? ㅋ
<시간의 이빨>은 읽어 보지 못했습니다 ㅠ

일차적인 느낌은 김정란은 더 다듬었고 김화영은 더 가깝게 전달하려 했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읽는 입장에선 김정란의 번역이 더 이해가 쉽지만,
아무래도 감정적인 뉘앙스와 작가의 의도는 김화영 쪽이 아닐까...나름 비교 해봅니다
(아마 제가 김정란 번역을 나중에 읽어서 그럴지도 몰라요^^)
철학이 문학화되고 문학이 철학화되는 과정을 조금이라도 엿본 것 같아 유익한 시간이었어요..

반딧불이님 새해이므로 ㅋ 복 마니 행운가득~ 하하 건강한 한 해 되시길 바랍니다.


두사람 2012-04-29 06: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잼업어
 

 

 

 

#1.

 

 

눈이 오면 십년도 더 된 카딜러에게 운전 조심하라는 문자가 옵니다.

이번엔 용띠라고 을 그렸어요.

돈 빌린 걸 다 알고 있는 은행에선 신규 적금을 들라고 해요.

결혼기념일 일주일 전부터 홈쇼핑에서 쿠폰이 도착하죠.

스마트폰도 신상으로 바꾸라고 전화가 옵니다.

집 앞에 새로 생긴 마트에선 귤 한 상자에 만원이라고

그 옆 아울렛에선 아이들 겨울 의류 대폭할인이라고

문자 받은 고객에게만... 혜택 준다고 하네요...

오늘은 동네 치킨집도 휴일인지 할인문자 안 오네요.

카톡에 프로필 메시지를 바꿨습니다.

운좋게 손으로 쓴 연하장을 받았거든요.

떡국을 끓여 먹으려고 양지머리 만원어치 샀습니다.

왕만두도 덤으로요. 아... 이렇게 나이를 먹는 것이죠.

 

 

 

#2.

 

 

사실 언제부턴가 나이 먹는 것이 그리 슬프지도 또 특별히 의미 있게 느껴지지 않더라구요. 서른 살까지 숫자를 세어보았던가 서른 다섯 이후부터 안 세어 보기로 다짐 했던가 마흔부터는 숫자를 지워 버렸던가...그랬나 봅니다. 가끔 너무 오래 살았다는 생각도 합니다. 인간이 유독 욕심이 많아 개, 돼지, 닭, 쥐...들의 생명을 몇 년씩 빌어와 살고 있다고 신경숙의 소설에 나와 있잖아요. 가끔 죽는 것이 무섭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마냥 오래 사는 건 더 무섭습니다.

 

 

그런데 한 해가 간 것이 신기하긴 합니다.

 

 

그전까지 그러려니 했는데 어제 11시59분 55초부터 약 십 초간 그런 마음이 불현듯 들었어요. 프랑스 어느 마을에선 그해의 마지막 날 다들 모여 축제를 벌이다 새해가 되는 순간 서로 껴안고 키스도 하고 기뻐서 죽겠다는 듯 그렇게 브라보를 외친다고 하던데요. 이번엔 이상하게도 잠시, 눈물이 핑 돌더군요. 아... 잘 견뎠구나... 지겹게도 살아 있구나... 빈혈처럼 어지럽고 아스라했어요. 피...철분...나는 삶의 어떤 영양소가 실조되었는가...

 

 

그렇다고 절망으로 새해를 맞이했다는 건 아니구요. 처음으로 새해보다 지나간 해에 내가 견뎌온 시간에 경의를 표해 봤다는 것. 무사히 한 해를 걸어 나왔다는 것이 기특하더라는 것이죠. 몇 년간 나는 나에게 많은 빚을 지고 있었으니까요.

 

 

 

할 수 없이

아버지가 생각나요.

나를 만들어준 어머니가 보입니다.

사연 하나 쯤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헤어지지도 않았지만 그렇다고 만나지도 못하는 한 남자도 많이 생각나요.

 

 

 

 

#3.

 

 

 

우리끼리 이야기지만 )

이제... 독고진은 좀 지겨웠어요. 눈물은 김병만만 인정해 줄 거예요. 유재석이 아내에게 고백하는데 왜 내가 떨리는 것이죠. 모두 턱시도인데 혼자서 비예복 차림 한석규는 어쩐지 고독해 보였어요. 시상식 불참이야 어제 오늘일이 아닌데... 수애 불참은 속까지 상하더군요... 호동씨 다시 보고 싶어요(운동선수가 원래 고집이 세니까...이해는 해줄 거예요) 핑크 드레스 고현정은 사과라...그래도 무례는 해보였어요.(하지만 그래야 견딜수 있다는거..알아요) 글쎄, 아이유도 피곤하니까 음이탈은 하더라구요, 하하. 그런데...당신은 잘 있지요? 나는 아직 여기 그대로 있어요. 괜찮다고는 못해줘요...

 

 

어쩌면 원대한 꿈이 사라졌어요. 정확히는 나도 모르는 내 미래를 생각하기 싫어졌어요. 아무것도 되지 않음을 같이 참아낸 당신이 오늘은 그립군요. 아무것도 이기지 않아도 되니 그냥 올해도 계속 살아만 있어주길.(이것이 의외로 쉬운 일 아닌 거 나이 들고서 깨우칩니다만)

 

 

그런데 여러분은

헤어진 남자와의 반지를 어떻게 하셨나요. 새해 아침인데 떡국 먹다가 생각이 나서요.

(올해도 계속 끼고 계실건지...물어 보는 겁니다 ㅋ)

 

 

 

 

#4.

 

 

  올해부터라도 한달에 며칠 시 읽는 날을 정해놓을까...또 신년계획의 유혹에 빠지고 싶어 죽겠어요. 많은 거장들이 글이 안써진다고 문장 고민하지 말고 그럴때 시나 읽어라 충고를 하지만 네네 그래놓고 다시 소설만 읽었어요. 공부한답시고 철학, 사회과학에만 눈독 들였어요...

 

 

그런데 정확히는 외우지 못하지만 살아서 '좋은 일도 있었다고 나쁜 일도 있었다고 그렇게 우는 한 마리 새....', 이 시가 아침부터 생각이 났었는데....하하하, 최영미 시집에서 드디어 찾았어요.

최영미는 천상병 시인의 새를 읽고 두어번이나 울었다고 해요..글쎄.. 그 마음 아주 조금은 알 것 같은데 어쩌죠...이벤트 같은 거 수줍어서 못해요. 그러니 이웃님들에게 시로 마음 대신합니다...

 

 

산다는 것, 아름다운 것, 그리고 사랑한다는 것... 같이 생각할수 있다는 거 정말 고마운 일이거든요.

 

 

 

 

 

 

 

천상병(1930-1993)

 

 

 

외롭게 살다 외롭게 죽을

내 영혼의 빈터에

새날이 와 새가 울고 꽃잎 필때는,

내가 죽는 날,

그 다음 날.

 

 

산다는 것과

아름다운 것과

사랑한다는 것과의 노래가

한창인 때에

나는 도랑과 나뭇가지에 앉은

한 마리 새.

 

 

정감에 가득찬 계절

슬픔과 기쁨의 週日

알고 모르고 잊고 하는 사이에

새여 너는

낡은 목청을 뽑아라.

 

 

살아서

좋은 일도 있었다고

나쁜 일도 있었다고

그렇게 우는 한 마리 새.

 

 

 

 

 

- 최영미, <내가 사랑하는 시> 中에서

 

 

 

 

 

 

 

 

 

 

  덧붙임)

 

혹시 이런 아르바이트가 있는지는 모르겠는데요 ㅋ  저는 같이 울어 드리는 거 정말 자신있어요.
남의 이야기 듣고 슬픈 부분이 아니어도  엉뚱한 부분에서 잘 울거든요. 다 이야기 하면 별 여자를 다봤네 하실걸요 ㅋㅋㅋ

올해는 산다는 것, 아름다운 것, 그리고 사랑한다는 것 같이 느끼게 될 모든 분들..

더 많이 듣고 그래서 마치 내 일 같이 마음으로 울어 드릴께요...

(물론 몰래 혼자서요)

 

 

 

 


댓글(34) 먼댓글(0) 좋아요(2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stella.K 2012-01-01 13: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애가 안 나와서 저도 좀 떨떠름하더군요.
김래원하고 연기하는 게 힘들어었나?ㅋ
1월이 되었으니 이제 봄만 기다리면 될 것 같아요.^^

한사람 2012-01-01 15:06   좋아요 0 | URL

스텔라님.. 건강하셔야 해요 !!

예상하신 대로 한석규가 대상을 탔죠??
(소감을 꼭 교수님처럼 말하더군요 ㅋ)
저도 수애, 안나온 이유가 궁금한데.. 정말로 개인적인 사정이 있다고 생각되요 ㅠ
(갠적으로 박신양을 버린거...슬퍼요)

대문 그림이 바뀌었어요~


stella.K 2012-01-01 15:42   좋아요 0 | URL
이건 좀 다른 얘긴데, 일본엔 애도하는 사람이 있다잖아요.
죽은 사람의 집을 방문해서 함께 울어주는. 물론 소설 이야기지만.ㅋㅋ
어제 잠깐 보다 졸려서 잤어요.
어차피 끝까지 볼 수도 없고 해서.
그런데 sbs는 어쩌면 그렇게 벙한지 모르겠어요.
딱히 재미도 없고, 최강희는 어쩌면 그리도 사회를 못 보는지...
수애 김래원 베스트 커플상에도 떨어지고.ㅜ
역시 이제 김수현은 알아봐 주는 사람만 알아보나 보다 싶기도 했어요.

대문 그림 예쁘죠?히히

한사람 2012-01-02 09:38   좋아요 0 | URL

텐도 아라타 소설 <애도하는 사람> 말씀이시죠..?
저도 그 책 읽었는데..많이 슬펐던 기억이 있어요. 그 책 읽는 동안에 우연히
배삼룡씨가 병환으로 별세했는데 벌써 이년이나 지난 거 같습니다.

김수현 드라마는 아주 어렸을때부터 봤어요
(이덕화, 정애리의 <안녕하세요>부터요 ㅋㅋ)
그래서 그분 결말이 지향하는 바를 꽤 오래 학습해온 시청자라고 자부해왔죠, 하하
이건 제 사견인데 그분은 남자에 대한 절절한 배신감때문에 온갖 드라마에서 여성에게 순애보 바치는 남성상을 결론맺는 경우가 많다고 봅니다..(그러니까 역으로 그런 남자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ㅋㅋ)

수애불참으로 그 수혜자가 어쩐지 최강희가 된 듯했죠... ㅋ
영화나 드라마에선 팬이지만 MC는 그로써 다시 안했으면 하하하..



마노아 2012-01-01 14: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차분하고 촉촉하게 읽혀요. 어제의 들뜨고 조금은 초조했던 마음이 이제야 조금 가라앉아요.
한사람님, 새해 복 많이 받으셔요.^^

한사람 2012-01-01 15:07   좋아요 0 | URL

맞아요... 기억났어요, 제가 부모님을 언급하면(그러니까 징징거리면 ㅋㅋ)
마노아님이 덧글을 달아 주셨던거 같아요, 하하

나이 들어서 하나도 흥분되지 않을 줄 알았는데..예전만큼은 아니지만,
아주 조금 이상한 기분이 들었어요.

마노아님도 새해엔 더욱 건강하고 씩씩하게 자신있게 ~~
고마워요!

카스피 2012-01-01 18: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차분하신 글이시네요.
한사람님 2011 서재의 달인 등극을 축하드립니다.
2012년 흑룡의 해,좋은일만 계시길 바라며 새해 복많이 받으셔요.^^
그리고 신년 새해 용꿈 꾸시라고 용 한마리 선물로 보냅니다
\▲▲/
( ^^ )
<(..)>
<(▶◀)>
<( = )>
<( = )>

━┛┗━

한사람 2012-01-02 09:41   좋아요 0 | URL

하하, 감사합니다.
서재의 달인 같은 게 되는 분들은 따로 있다고 생각했는데
저도 거기 끼어(?) 있어서 사실 무척 놀라고 떨리고..ㅋㅋ 그랬어요^^
저는 이모티콘 쓰는거 ^^ 밖에 없는데 ..몇개 안가지고 ㅋ 예쁜 용 만드셨어요 !!!
(카피 안하고 도전해 볼만한걸요~)

카스피님 대문 그림이 항상 포근하고 달달해서 좋아요~~
벌써 월욜인데 찬 겨울 맘만은 꽁꽁 얼지 마세요^^



mira 2012-01-01 19: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산다는 것, 아름다운 것, 그리고 사랑한다는 것... 같이 생각할수 있다는 거, 구절이 참좋네요. 시를 읽으면서 한해를 시작하는 기분도 좋구요. 이글을 읽으니 웬지 가슴이 아련하니 .... 저도 때론 같이 울어줄 사람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하곤 했는데 자주 와야겠네요.

한사람 2012-01-02 09:45   좋아요 0 | URL

아..저도 천상병 시인이 그 구절을 강조한 이유를 다시 생각해봅니다.
아마도 시인에게 그 세가지가 살아가는 목표이자 결실이 아니었을까...싶어요.

나이들면서 같이 웃어줄 사람보다 같이 울어줄 사람이 없다는 걸 절실히 느낍니다.
그래서인지 말없이 같이 울어 주는 사람이 괜한 밥사주고 선물 사주는 사람보다 더 고맙다는 걸
실감합니다. 또 좋은 소식 알려서 축하 받는 것도 기쁘지만 내가 상처받고 힘들때 그 마음 알아주는 사람이
실은 더 고맙다는거.. 변변치 못한 서재질하면서 깨우칩니다

고맙습니다^^

울보 2012-01-01 20: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우는것 참 잘하는데 신년부터 울수는 없지만 올해 마음은 그런마음으로 저도 시작을 했답니다,
올해는 우울함보다는 즐거운 생각 즐거운 마음을 더 가지려고 노력하려구요,,,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건강하세요,

한사람 2012-01-02 09:50   좋아요 0 | URL

예, 저도 늘 우울한게 속편하고 익숙한 쪽입니다 ㅋ
울보님도 벌써 닉이 울보이니 눈물이 많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올해는 나를 위해 혹은 나때문에 울기 보다 남을 위해 울어보자..뭐 이런
건방진 생각을 해봅니다.
그러다 보면 내 울일도 줄어들고 같이 울게 한 그 사람도 덜 울지 않을까...

어제보다 많이 추워진거 같아요~ 감기 조심하세요!
(요즘은 감기 환자가 줄었죠 ㅋ, 아이들 사진 보니 방학인데 바쁘시겠습니다 ㅠ)

가연 2012-01-01 21: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새해네요. 잘지내셨나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ㅎ 저는 좀 더 어렸을때는 누군가의 감정을 대신하여 울어줄 수 있을거라고 생각했는데ㅠ 요즘은 잘 안되더라구요. 여러 일들도 있고.. 음.. 이영도씨가 눈물을 마시는 새, 라는 책을 썼었는데, 이건 판타지 소설이에요, 풋. 어쨌든 눈물을 마시는 새가 가장 빨리 죽는다지요. 눈물은 안좋은 거니깐 몸밖으로 내보내려고 하는데.. 그렇게 안좋은 것을 마시는 새가 일찍 살 수는 없을거라고.

한사람 2012-01-02 09:55   좋아요 0 | URL

그 소설 장르소설이죠...? 들어는 봤는데 가연님의 취향인지는 몰랐네요 ㅋ
눈물을 마시는 새가 일찍 죽는다...흑흑..의미심장. 허를 찌르는 진리 같습니다.

하지만 대신 울어주지 않고(희생이 아니라) 손잡고 같이 울어주면 좀 다르지 않을까요.
그렇게 서로의 눈물을 닦아주는 새는 같이 오래 살지 않을까요??

평가단 손 놓았더니 자연 인문서에 관심이 덜 가고 있어요, 하하
(그래서 잘 못갔습니다. 못 읽었어요 ㅠ )

새해에도 변함없는 리뷰 부탁해요!!!(내 대신요 ㅋㅋㅋ)

gimssim 2012-01-01 22: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생각의 단상들의 메모가 차분하게 마음을 가라앉힙니다.
저도 해볼까봐요.
무슨 증상인지 앉아서 오분을 진중하지 못합니다.
다음에 해야 할 일이 생각나서요.

행복한 새해 되세요.

한사람 2012-01-02 09:59   좋아요 0 | URL

아..그와 비슷한 증상 저도 겪고 있는것 같아요.
책 읽을때 가장 방해되는 증상이기도 한데..
요즘은 책에 빠지기가 쉽지가 않아요.
(언젠가 다 덮고 누워서 이어폰끼고 명상음악 같은 뉴에이지만 듣다가 잠든 적도 있어요 ㅠ)

여름에도 단락을 끊어서 마음을 정리한 글이 읽기 좋다고 해주셨어요 ㅋ
단상이라는 단어와 개념, 참 좋아합니다.
(감히 '사랑의 단상'때문에 잘 쓰지는 못하지만요)

건강하시고 또 건강하시기 바랍니다^^

hnine 2012-01-01 22: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사람님 글이 왜 이리 슬프고 쓸쓸한가요.
전 이 글 읽으면서도 마음이 울렁거리네요.
글이 있고 책이 있잖아요.
외롭지 않은 순간도 생각해보면 많지 않을까...그렇게 생각을 돌려봅니다.
일해야 하는데 워밍업 시간이 길어지고 있는 밤입니다.

한사람 2012-01-02 10:04   좋아요 0 | URL

음.. 닉을 어떻게 불러야 할지 모르겠어요.
(가르쳐 주세요^^)

저는 리뷰말고는 이런 글을 좀 슬플때 작성하는 습관이 있어요.
부끄럽지만 어떤 글, 어떤 구절은 정말 울면서 쓰는 경우도 있어서
그런 분위기가 느껴질지도 모르겠어요.
하지만 글을 쓰고 일어나면서 그 마음을 털어 버리기 때문에 이제는 괜찮아요.
글을 썼다는 건 이젠 그렇지 않다는 뜻이기도 한거예요, 하하
안쓰고 안 올리고 담아 놓고 있을때가...더 슬픈 것이죠 실은.
(고마와요, 알아 주셔서요)

글이 있고 책이 있다는 말씀이.. 참 위로가 되네요.
그리고 하나더 이렇게 이웃님들도 있네요, 하하

혹시 직장을 다니시나요?
저는 전업주부가 된지 이제 삼년째군요 ㅠ
다음엔 즐거운 글쓸게요..이래야 되는데 그건 약속 못드리겠어요, 하하하


조선인 2012-01-02 08: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헤어진 남자가 없어요. 철푸덕... 처음 연애한 남자와 그대로 결혼해 지금껏 살고 있어... 그런 반지로 고민해본 적이 없어요. 이런 것도 대신 울어주실 수 있는지요. 헤헤.
새해 좋은 꿈 꾸셨길 바라며, 그 꿈을 이루는 한 해가 되시길.

한사람 2012-01-02 10:08   좋아요 0 | URL

어머나.. 그 꽃다운 나이에 첫사랑과 결혼해 다른 남자를 하나도 겪어(?)보지 못한 그 드라마 같은 주인공이, 그러니까 조선인이셨군요, 으하하하.
(대단한 인연인 거예요) 울어드리기 보다 실컷 웃어 드려야 ㅋㅋㅋ 할 거 같습니다, 히히

지난 연말에 며칠을 부모님 꿈을 꾸더니 이제야 안나타나세요 ㅋ
숫자만 바뀌었을 뿐인데 새해는 새해인가봐요!!

아이들 사진 보니까 마음이 따스하고 편안해집니다.
방학에는 주부들이 은근 시간이 없죠(밥해대느라구요)
자주 들러 슬쩍 울고 갈께요^^ 고마워요

無爲自然 2012-01-02 10: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을 쓰다 보면 속에 든 뭔가가 쏟아져나오는 거 같아요 그래서 펫북을 못 끊고 있나 봅니다 같이 울어줄 누군가를 찾고 있었나봐요 세월이 흐르고 사는게 지겨워지는 순간순간 나를 잡아당겨줄 누군가가 필요했나봅니다 누군가 나를 위해 같이 울어줄수 있다는 말만으로도 안도가 되네요 새해 복많이 받으시고 행복하고 즐거운 날들이 가득한 한해가 되시길 빕니다

한사람 2012-01-02 12:19   좋아요 0 | URL

펫북이..뭐냐고 물으면....싫어하실까요?? ㅋㅋ(페이스북??)

예..저는 사실 내가 울때 누가 옆에 있으면 나오던 눈물도 들어가려 하더라구요.
혼자 있을때 많이 우는 편이라..(그러곤 앞에선 아무렇지 않은 척 ㅋ)
저처럼 그런 분들에게 아주 작고 보잘것 없지만 그런 마음 전해드리고 싶었습니다^^

맛난 점심드시고 웃는 하루 되시길요^^

마음을데려가는人 2012-01-02 12: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올핸 살아있다는 게 아름답다는 걸 말이 아닌,가슴으로 느낄 수 있는 해가 되었음 해요 정말 절절하게 느껴보고 싶어요 :)

한사람 2012-01-02 12:21   좋아요 0 | URL

아하,
저는 살아 있는 것, 아름다운 것을 별개로 보았는데...
살아있다는게 아름답다고 할수도 있겠어요!!!! 음... 훌륭하십니다 ㅋ

그럴려면 우선 살아있다는 걸 실감해야 하는데 우리는 살고 있으면서도 그걸 못 느끼고
심지어는 잊어먹고 뭐하러 ㅋ 사나 싶을때가 많군요..

좋은 말씀 깊이 새기겠습니다, 고맙습니다^^

마녀고양이 2012-01-02 14: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두 엉뚱한데서 잘 우는데,,, 그리고
한사람님이랑 저랑 동갑이니, 제가 확실하게 나이 알려드릴 수 있습니다. 궁금할때마다 물어보세요. ㅋㅋ

저는 이제 중년에 맞는 감성으로 가는데, 한사람님은 아직도 사춘기 소녀군요.. 예뻐랑, ^^

저는 떡국에 굴이랑 매생이를 넣었답니다. 고기 국물을 좋아하지 않거든요. 사실
정성은 훨씬 덜하지요, 양지머리보다. 그래도 우리 식구들 맛있게 잘 먹더군요. 얼마 전에 팥죽도 먹었으니
우리 집은 제대로 한살 먹은 셈이지요.

한사람님, 건강하시고 즐거운 일 가득한 새해되세요.

한사람 2012-01-02 17:50   좋아요 0 | URL

떡국에 굴이랑 매생이를 넣을수도 있구나!!!
저는 예전에 엄마가 멸치국물로 떡국 해주시던게 제일 맛났던거 같아요
팥죽도 부모님 안계시고 나니까.. 동지에 먹는 건지 ㅠ 잊어 버렸어요.
정월 대보름 같은 중간 명절도 의미없어졌구요, 으앙.

저는 작심삼일까지만 해보려고 줄넘기를 시작했어요.
처음에 스무번 하고 나서 핑 돌더니 이제 70개까지 했어요, 하하하

마고님도 새해엔 이곳에서 봉변 당하지 않고, 히히 그렇더라도 여전히 씩씩하게
그리고 더 신나게 살아봐요, 함께^^

이진 2012-01-02 21: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최영미 시인 참 좋아하는 시인인데 그녀가 읽으며 울었다고 생각하니
저도 왠지 훑어보는데도 코가 찡했어요...
어려워보이는데 가슴을 파고드는 시네요.. 아, 좋다

저는 김영애나 염정아가 받았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생각해봐요.
독고진 주는 건 연기대상이 아니라 인기대상이잖아요!!
연기는 로열패밀리 여자들이 올해최고엿는데 ㅠㅠ

한사람 2012-01-03 09:29   좋아요 0 | URL

맞아요!!! 인기대상이었죠, 독고진!
로열 패밀리와 싸인이 작품은 좋았는데 물먹었다는 기사 보았어요.
갠적으로 염정아를 별로 안 좋아하고 싸인은 어쩌다가 못보았는데
우리 딸아이가 박신양이 제일 잘했는데 김래원 줬다고 울기까지 했어요, 하하하

어려워 보이는데 가슴을 파고든다....음..정확하네요,
실은 나도 그랬거든요 ㅋㅋ

인사가 늦었는데 새해의 계획이 모두 이루어 지길 바라요^^, 고맙구요~

2012-01-03 00: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1-03 09: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루쉰P 2012-01-03 00: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사람님 너무 오랜만이죠 ^^ 죄송해요. 그 좋아한다고 말한 글들도 와서 많이 보지를 못하고 새해 진짜 진찌 복 많이 받으셔요. 한사람님이 서서히 그리고 줄기차게 소설을 쓰고 계시다는 사실이 참으로 좋습니다. 전 여전히 어둠을 헤매고 우울과 마주 앉아 스스로를 보며 크게 웃고 있습니다.
서재에 들어 오지도 않고 그림자처럼 그냥 있다가 가곤 하는데 항상 한사람님의 글은 한 번씩 보고 가요. ^^ 제가 한사람님 글 되게 좋아하고 팬인 거 아시죠?
새해에는 더 많이 그리고 줄기차게 쓰셔야 합니다! 그리고 소설가가 되시는 거에요! 야압! 제가 밀어 드릴테니!! ㅋ

한사람 2012-01-03 09:43   좋아요 0 | URL

흑..뭐가 죄송해요..
나야말로 루쉰님 글 읽고도 쓰윽 몰래 울컥만 하고 온 걸요 ㅠ
생활이 바쁘고 고단하고 마음에 찬 바람이 불어도 책 읽고 글쓰는 루쉰님이 더 대단해 보입니다.
철저하게 저는 조직과 야망에만 올인했거든요..

마지막에..
그리고 소설가가 되시는 거에요, 이 부분이 저를 뭉클하게 하네요.
루쉰님의 덧글에서 이상한 희망의 에너지를 받는다고 언젠가 답한 적 있죠.
저도 이곳에서 맘으로 팬인 분 만들고 싶네요.
(저는 제 글에 대한 고민만으로도 아주 부족한 그릇이라.. 사실 남의 글을 루쉰님처럼
진심으로 성의있게 잘 못 읽어 드려요..ㅠ 날 잡아서 정독하거나 그러죠..그래서 이런 글을 쓰기도 했구요, 히히)

소설을 쓰고는 있지만 소설가가 되고싶지는 않다는 이상한 자존심도 있어요..
그렇게 생각하면 안되고 절실하게 매달려야 하는데 저는 아직 왜 소설인지, 사실
아직 영글지 않은 열매인 듯합니다. 줄기차게 쓰다보면 알아지는 날이 있겠죠??

오늘 루쉰님의 일상에 행운과 편안함이 자리하길요(새해인사 포함입니다)


비로그인 2012-01-03 23: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지내고 계신가요.... 한사람님? ^ㅡ^
오랜만에 멋쩍은 발걸음 해보네요.

음, 하고 싶은 나머지 이야기는 2012년 한 해 동안 차차 해봐요 ㅎㅎ

한사람 2012-01-04 08:19   좋아요 0 | URL

앗, 수다쟁이님 !
대문 사진 교체됬네요 ㅋ
저는 잘 있어요, 잘 있다고 말해줄수 있나요?
올해는 설이 1월말이라 어쩐지 본격적인 설날을 그때로 미루는 분위기입니다

날이 많이 추워요, 하지만 1월만 견디면
늘 그렇듯 겨울도 가요.. 함께 견뎌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