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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우리가 정말 인사를 나누었던가요

 

 

 

 

   동네에 대규모 아파트 단지 입주가 완료되자마자 앞 다투어 중소형 마트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두어 달 사이 백 미터 이내에 세 개의 마트가 들어서자 우리 아파트 단지 입구에 상징처럼 버티고 있던 구멍가게가 문을 닫았다. 가끔 두부나 참치캔 하나씩 사러 들르곤 했는데 아이는 가게 아저씨가 친절했다고 유난히 아쉬워 했다. 우리 아파트 말고 길 건너 아파트내 가게를 포함해 구멍가게가 두 개나 망하고 그 자리에 편의점이 들어섰다. 편의점 자리가 버스 정류장 바로 앞이라 아이들이 학원버스를 기다리면서 음료수도 사먹고 시간이 나면 컵라면도 사먹고 한다. 달라진 게 있다면 전에 있던 구멍가게 아저씨는 돈이 오가면서 내가 사람에게 돈을 건네며 사람이 계산을 한다는 생각을 했지만 편의점 알바 학생은 마치 마네킹이나 로봇처럼 기계적으로 바코드를 긁고는 무표정하게 영수증을 건넨다는 것.(알바 학생은 아무 잘못이 없다) 아저씨는 ‘날이 춥다’ 혹은 ‘축구에서 이겼다’, 아니면 ‘저런 빌어먹을 놈이 있나’ 같은 한마디를 덧붙이며 요즘 살기 힘들죠? 하는 표정을 지어주셨다. 그래서 늘 검은 모자를 쓰고 무릎에 담요를 덮고 계시던 모습이 주름진 얼굴과 함께 아직도 선명하다. 그러나 편의점 알바는 전혀 얼굴이 기억나지 않는다. 서로 눈이 마주치면 큰 일 날것처럼 서둘러 가게를 나오는 게 일상화되었다. 그 아저씨는 지금 어디서 무얼 하실까... 이럴 줄 알았으면 거스름돈 받으며 따스한 한마디라도 해드릴 껄... 사는 게 이렇다. 늘 지나고 나서야 더 잘해줄걸 하는 후회는 왜 이리 달라지지 않는 건지.

 

 

 

 

   지난 겨울 학교앞 네거리에 붕어빵 장사가 시작되었다. 세 개 천원이었는데 정말 맛있고 크기도 커서 아이들에게 인기 만점 이었다. 늘 학교 끝나고 북적거리던 모습이 보기 좋았다. 어느 저녁 아홉시가 다되어서 그 앞을 아이와 함께 지나가는데 -그때가 영하 십오도 였는데 차 엔진 수리를 맡기고 마트까지 걸어가던 중이었다 - 붕어빵 아저씨가 막 마무리를 하던 참이었다. 아저씨는 우리를 보더니 반갑게 뛰쳐나와 붕어빵이 남았다며 그냥 가져가시라고 봉지에 한 무더기 싸 주셨다. 먹을 거 주는데 왜 이리 뭉클한지 감사하다 인사를 하고 아저씨 눈을 보았더니 참 선하게 커다란 눈망울을 가지신 분이었다. 그러다가 방학이라서 문을 열지 않는 것인지 자주 문을 열지 않는 모습이 몇 번 포착되었다. 근 한 달 간 한파와 함께 붕어빵 아저씨를 볼 수가 없었다. 또 그러다가 우연히 아이 핸드폰 바꿔준다고 그 앞을 지나가게 되었는데(이동통신 대리점 앞이 붕어빵 가게) 간만에 문을 연 게 반가워 그동안 문을 왜 안여셨냐고 허긴 너무 추웠죠, 하며 나도 모르게 인사를 했는데. 아저씨는 씨익 웃으며 와이프가 저 세상 갔다고 하는 것이었다. 아... 주책맞게 그 자리에서 눈물이 나왔다. 그 말 듣고 붕어빵을 사면 동정한다고 여기실까봐 그냥 입만 막고 되지도 않는 말을 하고-힘내세요? 비슷한 - 나와 버렸다. 아저씨가 웃는 모습이 마치 슬픔같은 건 초월한 사람같아서 그게 그렇게 눈물이 났다.

 

 

 

   새로 생긴 마트 중 맛있는 과일과 야채를 싸게 파는 곳이 있어서 지난 겨울 자주 이용했다. 그 마트는 조금 더 큰 마트와 조금 더 작은 마트 사이에 끼어 있었는데 주차가 좀 불편해 사람들이 잘 이용하지 않아 보였다. 접근성이 떨어지는 것이 흠이었다. 우리 모녀는 그 마트만 줄기차게 이용했다. 갈 때마다 매장에 사람이 없어 휑뎅그레 한 것이 우리가 미안해 질 정도 였는데 최근에 입소문이 나서 사람이 늘었다. 마트에 과일 담당 총각이 있는데 외모가 꼭 연예인같이 생긴 것이 어쩐지 거기 있기 아깝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농담도 잘하고 목소리도 크고 우리가 이거 살까 저거 살까 고민하고 있으면 얼른 다가와서 귤도 넣어주고 갑자기 할인도 해주고 그렇게 아는 척을 했다. 며칠 전에 그 총각이 과일과 한참 떨어진 구석 위치에 있던 우리에게 다가와 그동안 사람 없을 때 늘 찾아주셔서 고맙다고 방울토마토를-1Kg 정도 되는-카트에 넣고 갔다. 다른 직원들도 우리가 가면 어쩌다 장바구니 없이 들러도 비닐 값을 받지 않거나 말이라도 한마디 정겹게 해주는 터였다. 우리는 횡재한 기분으로 마트를 나왔다.

 

 

 

   동네 빵집에 언젠가부터 커피를 팔길 게 한번 마셔봤는데 그 옆에 카페베네와 파스구찌보다 맛이 훨씬 나으면서도 값은 반값이었다. 커피향이 정말 진해 한 번 씩 생각이 날 정도였다. 커피를 자주 사다 마신지 몇 개월이 지나자 또 입소문이 났는지 아줌마들이 다 거기 커피를 들고 다니는 것이었다. 옆에 분위기 좋은 카페가 아니라 그 빵집에서 다들 차 마시며 수다를 떨지를 않나. 무언가 내가 구심점(?) 역할을 한 것 같아 뿌듯하던 차에 어느날 빵집 주인아주머니가 빵을 사는데 이것저것 챙겨주시는 것이다. 쿠키랑 초콜릿, 날짜가 지나가려고 하는 빵들이었다. 다른 카페도 많은데 매번 찾아 주셔서 고맙다고 한마디를 붙이셨다. 우린 또 올레~ 하며 가게를 나왔다.

 

 

 

   아줌마로 산다는 건 사실 동네 가게 아저씨, 아줌마와 빈번하게 인사하며 산다는 것이다. 이제 어엿한 봄이 되었으므로 동네 장사하시는 분들과 더 따스한 눈빛을 나누며 살아도 좋을 것 같다.

 

 

 

 

#2. 우리는 봄이 왔다고 인사하는 사이입니다

 

 

 

   이번 주에 하루가 멀다 하고 새가 날아들듯 책이 날아 들었다. 3월부터 조금 바빠졌다. 책만 보고 글만 썼더니 그 날들이 소용없는 것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여전히 책 좀 읽고 글 좀 쓰는 일과 관련해 수익창출의 길로 들어서다 - 그래서 부지런히 읽었는데도 책은 여전히 쌓여있으시다. 가끔 이틀만 글을 안올려도 무슨 일 있냐고 물어 오셔서 아무 일 없다고 하기 참 난감한 경우가 있다. (그리고 눈물나게 고맙다 ㅋ) 다른게 아니라 이런 책을 싸들고 씨름을 하고 있다. 앞으로 책 읽는 속도를 빨리 할 생각이다. 여지껏 내가 책을 느리게 읽는다는 생각은 안하고 살았는데 책이 쌓여 있으니 그것도 여간 스트레스가 아니다. 헐.

 

 

 

 

 

 

 

 

 

 

 

 

 

 

 

 

 

 

 

   그 중 박에스더 기자가 쓴 에세이 <나는 다른 대한민국에서 살고 싶다>는 나와 같은 세대라 말투며 논리며 결론까지 미칠듯이 비슷하다. 김영하의 장편은 미니북 때문에 예판 주문하였으나 이상하게 손이 가질 않는다.(잡으면 지난번 원더보이처럼 그냥 앉은자리에서 눕는 자리까지 보다가 그 다음날 다 제쳐두고 리뷰쓸까봐 ㅋㅋ) <통섭의 식탁>은 리뷰를 반 쓰다가 다른 일이 생겨 중단 상태.(개학한다고 아이 머리 잘라주러 미용실 갈 때 들고 갔다가 거기 아줌마들이 요리책이냐고 해서 씩 웃었다 ㅠㅠ)  <자본주의, 그 이후>는 예상외로 어렵지 않아 한 챕터 읽고 잠시 호흡 가다듬는 중이다. (어떻게든 이 책의 리뷰를 써 보고 싶다) 이웃님이 뒤늦게 바람들었냐고(소설 안 읽고 자꾸 인문 기웃거리니까, 하하) 하는데 정말 그런 것 같다. 나 살아온 이 체제-하니까 왜 나꼼수 생각이 나는 것이냐-를 여지껏 크게 고민안하고 살아온 세월이 한심해 죽을 지경이라서 그렇다.

 

 

 

   다음 주 내로 폭풍 리뷰가 이어질 듯하다. 만약 이어지지 않으면 그래도 여전히 책 읽고 (낑낑대며)글쓰고 있는 줄 아시길.

 

 

 

   이상 울 동네는 봄이 왔다고 한사람이 알려드림. 우리는 적어도 계절이 바뀌면 그렇다고 그러냐고 좋겠다고 좋다고, 서로 인사는 하는 사이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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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오 2012-03-03 14: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봄내음과 더불어 사람향기를 맡으셨군요~ 디지털 시대의 아놀로그 감성이 사라져서 안타갑지만 복귀는 힘든일이니 그 안에서의 새로운 감각을 발견해야 겠지요?

아~ 이제는 김영하 소설은 읽고 싶지 않던데요~ 너무 재미없어요 이제는 ㅎㅎ

한사람 2012-03-04 15:21   좋아요 0 | URL

그래요? 저는 특별히 읽고 싶은 작가도 읽기 싫은 작가도 없어요 ~
다만 김영하는 단편이 너무 허망해서 장편이 더 낫더라구요.
또 김영하급(?) 작가들의 소설은 어차피 읽을거 빨리 읽는게 속편하더라구요.

어젠 아이가 친구하고 영화본다고 <휴고>를 예매해줬는데 완전 재미있었다고 해서
같이 그거나 볼껄, ㅋㅋ 후회중이어요^^


아이리시스 2012-03-03 14: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 봄이 왔어요, 한사람님.
김영하 먼저 읽어주세요 ^_________^

제가 <검은 꽃>을 좀 많이 좋아해요.
음, 그러니까 '버려진 자' '잊혀진 자'에 대한 코드가 좋아서요.

어제 주문하려니까 월욜에 온다고 해서(하루에 안오고) 그냥 미뤄뒀어요. 읽고 싶어요. 히히히.

한사람 2012-03-04 15:25   좋아요 0 | URL

저 위의 4권의 책중에 김영하가 4위였는데, 하하
아이님때문에 슬쩍 바꿔치기 해야겠군요 ㅋㅋㅋ
저는 가장 중요한 ㅋ <검은 꽃>은 안 읽어보았어요.
단편들 하고 <빛의 제국>, <퀴즈쇼>정도만~
제가 그런 식으로 예판을 안사고 어영부영하다가 어정쩡하게 산 책이 신경숙의 <모르는 여인들>이었거든요. 어차피 읽게 될거면 다음부턴 그냥 예판으로 편하게 주문해 놓자~~ 그때부터 그렇게 마음 바꿨지요, 히히
솔직히 따라오는 클리어 파일이나 미니북 시리즈들이 별거 아닌 거 같아도
나중에 막상 그런거 없이 덜렁 사려고 하니 배만 아프더라는 ㅋㅋㅋㅋ



이진 2012-03-03 14: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웃과 인사하고 친하게 지내는게 얼마나 큰 기쁨인지 몰라요.
저희 집이 시골바닥의 메카라 불리우는 곳이라서 꽤 많은 분들이 저를 알아보시는데
그때마다 너무나 정겹고 행복하답니다 ㅎㅎ
저도 폭풍 리뷰써야할텐데... 저는 이제 리뷰에 자신이 없어졌어요. 흑흑

한사람 2012-03-04 15:31   좋아요 0 | URL

늘 놀라고 있어요, 이진님의 필력이
이제 고1 학생의 것이라는게 믿기지 않아요, 하하
나는 그때 무얼했던가, 뭐 이런 생각 했어요 ㅋ
사진 바꾼거 조금 적응이 안되긴 하는데요...

음..리뷰는 말이죠..
그런 생각을 하게 되는 첫번째 이유는 무엇보다
1. 잘써야 한다.
2. 남들이 잘 쓴다고 한다.
3. 나도 내가 잘 쓴다고 생각한다.
4. 그래서 더 잘쓰고 싶다.

이런 생각들(이 적어도 두개 이상 있기) 때문에 그런것 같아요. 그래서요.
1. 내가 왜 잘써야 하는가.
2. 남들은 다 남들에게 잘 쓴다고 한다.
3. 나는 내가 못 쓸수도 있다는 걸 안다.
4. 그러므로 나는 잘 쓰지 않아도 괜찮다.

이렇게 생각을 한번 바꾸어 봐요 !!!!!
화이팅~~~~~~~
(잘 써야지 잘 쓰고 싶다, 생각하면 더 안되는거 알죠??)

이진 2012-03-04 23:21   좋아요 0 | URL
후후... 사진바꾼게 전부 적응안되신다고
하지만 저는 이 남자가 좋기에 *^*

맞아요. 신간평가단원이기도 하고 주위에서 어린나이에 대단하다고들 말해주니
제 스스로 강박감(?) 같은것이 생긴것 같아요.
"나는 글 못쓰는데...? 아직 내 수준은 그 정도에 다다르지 않은것같은데"
하면서 더 좋은 글을 써내야겠어, 더 좋은 단어를 사용해야겠어 하는 압박?
생각을 바꾸는 것이 신선한걸요! 남들은 남들에게 다 잘쓴다고 한다!! 후후후

한사람님의 응원을 따라 이제는 마음을 담아서 글을써야겠습니다..
머리로 말고 마음으로요...히히

한사람 2012-03-05 21:14   좋아요 0 | URL

강박감이 심해지면 자신도 모르게 글이 자꾸 무거워져요.
가장 좋은건 내가 글 올리는 세상엔 나보다 글도 잘쓰고
책 많이 읽은 사람도 많다~ 이런 생각, 하하
또 스스로 자기 기대치를 조금 낮추어 보는 것도 좋아요.
리뷰를 한권 쓰고 말것은 아니니까
이번에 좀 아니다 싶어도 다음번에 제대로 쓰지 뭐,
이런 식으로요.
저도 실은 이렇게 되기까지 적지 않은 시간이 걸렸어요 ㅋ
잘썼다고 못썼다고 아무도 뭐라 안하는데 나 혼자 의심하고
걱정하는게 문제죠 !!!!

맘을 좀 편하게~~~~ 먹어봐요~

cyrus 2012-03-03 14: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봄이라서 그런 걸까요? 어제부터 개강하면서 한동안 만나지 못했던 사람들을 만나고 다니니
기분이 좋더라고요. 지금과 같은 이런 좋은 기분이 좀 길게라도 이어졌으면 좋겠어요. ^^

한사람 2012-03-04 15:33   좋아요 0 | URL

앗, 캠퍼스의 개강 !!!
부러워요, 부러워. 아직도 학생인 시루스님이요.
저도 꼭 같은 생각하고 있어요. 지금과 같은 이런 좋은 기분 좀 더 오래 ~~~~하하

(무도 한달 이상 안하고 있는거 어케 생각해요? 씩씩씩~~~)

카스피 2012-03-03 19: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람과 사람이 부대끼는 모습이 넘 정겨워 보입니다.그런데 우린 어는새 그런 정겨움보다는 편리함에 빠져들어 인간다운 정을 느끼는것을 잃어버리는 것 같네요ㅜ.ㅜ

한사람 2012-03-04 15:36   좋아요 0 | URL

어머, 카스피님. 가끔 이렇게 좋은 말 남겨주셔서
간지럽지만 고마워요 ㅋㅋㅋ
(저는 제가 하는 짓을 잘 알기 때문에요 ㅠ)

제가 사는 동네는 초등, 중등, 고등학교가 아파트 단지와 믹스되있어요.
학부모인 아줌마들과 장사하는 분들을 자주 스쳐지나가요.
저도 성격상 마구 인사하는 체질이 아닌데,
한번 꽂히면 의리있게 거기만 가요 ㅋㅋㅋ
그러다 보면 정도 나누고 가슴이 따뜻해지던걸요^^

2012-03-03 23: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3-04 15: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3-04 02: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붕어빵아저씨 이야기에서 울컥 저도 눈물이 솟았어요. 동네이웃들과 겨울도 봄도 함께 하는, 마음으로 여러가지 헤아리고 반가워하고 안타까워하고 뿌듯해하는 한사람님 모습이 좋아요~.

한사람 2012-03-04 15:44   좋아요 0 | URL

예... 지나갈 때마다 짠하고 그래요 ㅠㅠㅠ
저는 한번 친해지긴 어려운데 한번 또 친해지면
되게 오래가는 스타일이어요 ㅋㅋ
가게도 한군데만 파구요.
눈빛이 선하지 못한 사장님이 하는 곳은 절대 안가요ㅋ
(그리고 주인이 착하면 동네방네 사명을 가지고 소문내요 ㅋㅋㅋ)

섬님은 울산에 사시죠? 저는 울산에 두번 가보았는데,
그때마다 죄다 거리에 현대차만 다녔던 기억이 있어요.
친구가 울산에서 아나운서를 했어요.
비록 먼 곳이지만 같은 마음 느껴주셔서 참 가깝게 느껴집니다^^

숲노래 2012-03-04 05: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이웃들하고
좋은 이웃이 되어
하루하루 좋은 이야기 나누어 주셔요..

한사람 2012-03-04 15:50   좋아요 0 | URL

예..된장님 !

그런데, 된장님 방에 몇 번 갔다가 아직도 좀 부끄러워서
그냥 두어번 그냥 왔어요 ㅋ
(그걸 왜 말하게 되지?? ㅋㅋㅋㅋ)

참, 저는 오늘 날이 안좋아서 빨래 안돌렸어요 히히

순오기 2012-03-04 05: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형식적인 인사가 아니라 마음을 나누는 인사에 참 인색했다는 반성을 부르는 페이퍼네요.
드뎌 봄이 왔네요~ 엊그제 봄비도 내렸으니 곧 화분도 내 놓아야겠네요.^^

한사람 2012-03-04 15:50   좋아요 0 | URL

에잉, 뭐 반성까지 안하셔도 되요.
저도 살갑게 인사는 못하고 그냥 꾸준히 다니다 보니까
주인들이 고마와 했던거 같아요.
매출 없을 땐 그런 손님들이 고맙잖아요.
(거기다가 제가 좀 소문을 냈거든요, 하하)

순오기님 사시는 동네는 오늘 구름 없나요?
여긴 흐려서 좀 꾸리한 날이어요.
내일부터 아이들 본격적인 학교 생활이 시작되는군요.
초등생은 주 5일 수업이 실시되어서 엄마들이 투정하고 있어요.

오늘 식구들 잘 챙기시구, 내일부턴 또 활기차게
기분좋은 봄날 맞으시길(이 무슨 거창한 ㅋㅋㅋㅋ) 바라요^^

마녀고양이 2012-03-05 10: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희 아파트에도 6년간 하던 가게가 사라지고, 편의점이 들어섰어요.
학생들이 항상 컵라면이나 인스턴스 뭔가를 먹고 있죠. 음.... 글쎄요.... ㅠㅠ

동네의 개인 음식점도 하나둘 사라지고, 체인점만 계속 들어오네요. 던킨 도너츠, 베스킨 라빈스, 롯데리아
올해 이렇게 세개나 들어왔다죠... ㅠㅠ. 저는 일대일을 좋아하는, 동네 아줌마인데... 머랄까 좀 그래요. ^^

그래도, 봄이니까, 그냥 그러려니 하고, 여유를 갖을까 해요. 히힛.

한사람 2012-03-05 21:17   좋아요 0 | URL

마고님!
오늘은 제가 좋아하는 봄비가 살짝 왔어요.
난 이런 날 좋거든요.
커피도 유난히 진하게 다가오고 ㅋㅋ
구멍가게 없어져서 여간 아쉬운게 아니어요.

오늘은 반찬가게가 하나 없어지고 그 자리에 부동산이 들어 왔어요.
씁쓸 ㅠㅠㅠ
신간 쌓여 있는데 저는 김형경 에세이를 장바구니에 넣고 살까 말까 고민중입니다 ㅋㅋ

보물선 2012-03-08 16: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 글은 중소기업 적합업종에 대기업이 뛰어드는 걸 비판하는 글처럼 읽힌다 ㅎㅎ

사람냄새 풍기며 사는게 이런거구나~ 하는 느낌으로 읽어야 하는데, 내 참^^

한사람 2012-03-09 09:00   좋아요 0 | URL

대표적인 게 떡볶이집이지 ㅋㅋ
이젠 그 옛날 오뎅국물 맛도 안나더라 ㅠㅠㅠ
깔끔하게 포장되어 와서 위생적이긴 하지만
그러는 사이 덤으로 오가는 정은 사라졌어.
예전엔 아파트지만 세탁~ 이런 소리도 들리고 했는데
세탁소도 무슨 크리닝으로 다 바뀜.
사람냄새가 아니라 돈냄새만 남 ㅠㅠㅠㅠㅠ
 

 

 

 

 #1. 컴백홈

 

 

 

집에 돌아왔다. 제일먼저 경비실에 들러 택배 상자를 수거하고 어디 멀리 갔다 오느냐는 경비 아저씨의 질문에 날이 추웠다고 동문서답을 했다. 나 추웠다는 거 누가 좀 알아줄까 싶어서. 아저씨는 이제 날이 풀렸다고 봄만 오면 된다고 하신다. '제 말이요'. 목소리를 들으니 오늘이 아파트 재활용 수거 날인데 작업하시기가 한층 수월하신 듯 했다.

 

 

그런데 난방을 끄고 갔더니 집안이 온통 냉기였다. 짐을 풀고 있는데 서재 방에서 약간 타는 냄새가 나는 것이다. 아뿔사. 의자에 전기 방석을 안 끄고 간 것이다. 다행히 의자가 타진 않았기에 큰 일은 없었지만 이래서 불이 나는 구나 싶었다. 분명 끄고 갔다고 생각했는데 나도 이제 늙은 것이 틀림없다. 어떨땐 문을 잠그고 왔나 싶어 주차장에서 다시 올라간 적도 있지. 가슴을 쓸어 내리며 다시 일상으로 복귀하는 나.

 

 

그나저나 이번엔 완전한 로그아웃 상태를 유지해 보려고 했는데, 잘 안 됬다. 컴퓨터도 안 켜고 메일확인이니 서재방문 같은 건 돌아와 하리라 마음 먹고 떠났는데 저녁에 딱히 할 일도 없고 혹시 해서 가져간 노트북의 용도는 역시 달리 용도가 없었다. 대단한 작업을 하러 간 것도 아니면서 일상과 여행을 분리하려는 태도 자체가 우스워지길래 그냥 보고 싶으면 보고 귀찮으면 잊기로 했다. 더 웃긴건 책도 안가져갔다고 생각했는데 노트북 가방에 떡하니 미리 넣어둔 책이 있더라. 이제 우리가 사는 현실 안에는 컴퓨터 바깥과 컴퓨터 안이라는 두 가지 세상이 거의 대등한 비율로 이중나선구조를 이루고 있는 듯하다. 어느 한쪽이 싫다고 나머지 한쪽만 볼 수도 없고 실상 그러기도 더 힘이 드는 것 같다. 지금 내가 하려는 작업도 찍어온 사진 몇 개와 다녀온 소회를 적어 올리려는 것이므로 결국 컴퓨터 밖에서 한 일을 컴퓨터 내부로 가져오는 과정인 것이다. 그러고선 나는 여행을 마무리 지을 것이므로 두 세상은 상호 인과관계를 형성하며 우리네 현실을 완성해주고 있다. 스마트 폰이 생기면서 이 현상은 더 강화되기만 한다. 이게 무슨 목숨 줄이나 되는 것 마냥 우리는 잠들기 전까지 어디를 가서도 세상의 끈을 놓지 못한 채 로그 아웃을 하지 못한다. 나 여기 어디라고 트위터에 한줄 떠들었다가 지금 누구 들으라고 누구에게 내 행선지를 말하는 것인지 뻘쭘 해지는 것이었다. 습관이란 정말 시간이 갈수록 철학이상의 종교가 되는 습관이 있지 않은가.


 

 

 

#2. 묘지에서

 

 

정말로 추웠다. 오랜만에 손이 몹시도 시렵다는 느낌, 에베레스트에 등반하는 산악인들의 동상은 어떤 고통일까를 처음으로 떠올리며 추위를 실감했다. 그래서 (산소만)사진을 못 담았다. 사실 찍어도 나는 자꾸 예전 엄마 살아 계실때의 사진과 비교하게 되는 지라 마음이 내키질 않는다가 더 맞을 것이다. 나는 엄마가 아버지와 같이 묻히고 난 다음부턴 묘지 사진을 안 찍고 있다. 그러곤 돌아와 이 사진을 본다. 저 끝에 뒷정리 중이신 엄마를 보면서 잘 다녀왔다고 보고를 한다. 내가 마련하지 않은 이상한 종류의 꽃이 꽂혀있었다. 나 몰래 누군가가 다녀간 게 분명하다. 엄마의 형제아니면 아버지의 형제들이겠지... 언제 왔을까. 최근일 거라는 예감이 드는 건 왜 일까...


 

 


< 영천 국립 호국원 - 6년 전 >

 

 

묘지는 벌판이기 때문에 무슨 사막이나 남극같은 기분이 든다. 이 추운 날 죽어 묻히는 사람과 홑저고리 상복하나만 입은 상주도 있는데 나는 장갑이 없어서 얼어죽을 것 같았다. 그래도 신기한건 돗자리 깔고 앉아 있다보면 내 머리위로 쏟아지는 햇빛이 참 따스하다는 것. 콧물을 훌쩍이며 앉아 있는데 봄소풍 온 것같이 순간 그 공간만 따스해지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이것이 바로 시골의 추위인데 아무리 영하십도의 날씨지만 햇빛만 있으면 또 그 추위에 적응이 되면서 그 속에서 따스한 온기를 느끼게 된다. 그러면 나는 잠시나마 그곳은 어떠시냐 여쭈어보면서 나는 잘 있다고 대신 답을 한다.

 

 

 

#3. 경주에서

 

 

 

 

 

 

 

 

 

 

 

 

 

 

 

 

 

 

 

 

 

 


< 경주 호반 1교 >

 

강물이 얼어 있었다. 그 시선으로 보자면 산도 건물도 나무도 모두 얼어 있었다. 딱딱하고 건조해 보여 사진찍기도 재미가 없는 날씨다. 경주 보문호의 호반교라는 다리가 거울에 비친 것 마냥 수면에 대칭을 이루었다.

 

 

 

 

 

 

 

 

 

 

 

 

 

 

 

 

 

 

 

 

 

 

 

 

 

그런데 돌아오는 날 얼음이 녹는 소리를 들었다. 얼음은 '스르르' 녹는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얼음 밑에서 부터 심하게 싸움을 벌이는 듯 하나둘 부숴지고 빠개지고 으깨지고 때론 예리하게 돌아서면 둔탁하게 그야말로 요란을 떨면서 형태의 변형을 견뎌내고 있었다. 아침부터 어디서 공사를 하는 것인지 둘러 보던 중에 그 소리가 물 밑에서 나는 소리임을 알게 되었다. 신기하게도 얼음이 깨지는 곳에 퐁퐁 물이 솟아나고 있었다. 내친김에 돌을 던져 균열을 극대화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아이와 함께 여러번 돌을 던져 보았다. 나쁜 짓이었을까. 어떤 곳은 꿈쩍도 하지 않아 애꿎은 돌만 저 멀리 미끄러져 갔고 어떤 곳은 돌의 충격이 컸는지 물의 파장이 꽤 멀리 나아가는 듯 했다. 무엇도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니었다.- 아마 김훈 작가는 이런 걸 저절로 이루어지는 의식이라 하겠지...- 그들은 우리가 봄을 기다리는 사이 제 살을 깨뜨리며 자신을 녹이고 있었다. 그건, 모르긴 해도 우리처럼 전쟁같은 삶 아닐까.

 

 

그럴 것이다. 얼었던 마음이 녹는 것도 그와 비슷 할 것이다. 마음이 녹는 걸 기온이 올라가는 걸 풀린다고 하지 않는가. 단단한 덩어리가 녹아야 비로소 풀리는 것이다. 우리는 대단한 발견을 한 과학자나 되는 듯 한참을 다리위에서 얼음이 녹아 다시 물이 흐르는 과정을 지켜보았다. 그렇게 아프더라도 봄은 오고야 말 것이다.

 

 

 

 

 

 

 

 

 

 

 

 

 

 

 

 

 

 

 

 

 




< 석굴암 가는 길 >

 

 

석굴암 가는 토함산 길엔 죄다 앙상한 나무들만 즐비했다. 분명 어렸을 적 가본 곳인데 전혀 기억나지 않았다. 불상도 그렇게 작았을리가 없는데 세월은 무슨 조화인지 모든 것이 축소된 크기로만 나를 맞이했다.

 

 

 

 

 

 

 

 

 

 

 

 

 

 

 

 

 

 

 

 

 

 

 

 

 

 

 

 

 

 

 


< 석굴암 계단 >                                                         < 불국사 대웅전 >

 

 

 

 

 

 

 

 

 

 

 

 

 

 

 

 

 

 

 

 

< 석굴암 입구에서 경주시를 내려다 본 전경 >

 

 

 

 

 

 

 

 

 

 

 

 

 

 

 

 

 

 

 

 

 < 속리산 휴게소 >

 

 

 

불국사를 고등학교때 가보고 처음 갔는데 그때 친구들과 사진찍었던 장소는 생생히 기억나서 참 반가웠다. 그런데 역시 규모가 어찌 그리 작을 수 있는지... 나는 생각만큼 그리 큰 사람이 되지도 못했는데 상대적으로 내가 보았던 그것들만 작게 느껴지다니. 작년에 경주에 갔을때 첨성대 역시 똑같은 느낌이었다.

 

 

신문에서 실상은 그렇지 않더라도 나는 행복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하고 말로 되뇌이며 반복하는 사람은 실제로 뇌에서 행복한 사람에게서 나오는 호르몬이 발견된다고 하는 기사를 읽었다. 때마침 찾아온 늦은 한파 덕에 사람 구경이 쉽지가 않았다. 한적한 여행을 하고 돌아와 이것이 행복인가를 생각한다. 이것은 행복일 것이다, 로 결정하기로 한다. 아니 이것은 행복이다. 늘 새학기가 시작되기 전 이 맘때 여행을 자주 갔던 것 같다. 돌아와 이제 봄만 기다리면 된다고 믿었던 것 같다. 봄에 뭐 특별히 좋은 소식이 있는 것도 아니면서 그렇게 꽃이 피길 기다렸던 것 같다.

 

 

날씨가 풀렸다는 소식에 씨익 웃었다. 일부러 나 추우라고 날씨가 심술을 부렸나 싶기도 하고 아직은 아니다 긴장감을 주려고 했나 싶기도 한데 여튼 겨울을 끝내고 돌아온 느낌은 확실하다. 무엇보다 내 두 눈으로 얼음이 녹고 있는 걸 목격했기 때문에. 아픈 겨울은 반드시 떠나간다. 어쩌면 아프기 때문에 봄이 오는 것일지도 모른다. 무쇠같던 저 얼음을 녹이고 다시 아무일 없었다는 듯 흘러가는 저들을 보면. 강물이 흘러가듯 봄이 오듯 다시 천천히 귀를 기울인다. 조금만 기다리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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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2-20 20: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2-21 09: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가연 2012-02-20 20: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 경주.. 좋은 도시죠. 사실 경주는 밤에 거닐면 더 멋진 도시기도 하지요. 문화재 전시지역의 소등시간쯤에 맞춰서 저런 곳에 가면 정말 색달라보이는 경험을 할 수 있습니다. 정말 옛날에 한 번 그런 경험을 했는데 잊을 수 없네요. 그러고보면 정말 수학여행의 도시이기도 한데.. 개인적으로 저에게 어디로 여행을 가고 싶은가? 라고 묻는다면 춘천을 택하겠지만ㅎ 경주를 택하신 특별한 이유라도 있나요?

한사람 2012-02-21 09:54   좋아요 0 | URL

ㅋㅋ 옛날에 그런 경험이라~
저는 밤에 같이 거닐 사람이 없어서요, 밤에는 못다닙니다.
운전도 야간엔 색맹환자나 다름 없어요, 하하

춘천은 대학생때 가본 후로
여행한다고 가본적은 없었어요.
경주는 영천호국원 갈 때마다 들르는데-영천에서 가까움-
순전 다시 운전하고 올라오기 싫어서 경주에서 하룻밤 자고 온 것이 습관이 되어
이제는 아예 묘지는 뒷전이고 경주에서 이틀밤 룰루랄라 하고 온답니다..

매번 느끼는게 산 사람은 어떻게든 살게 되있더라구요.

gimssim 2012-02-20 21: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호국원에 부모님 뵙고 가셨군요.
이맘 때가 석굴암 가는 길이 제일 고즈넉할 것 같아요.
춘삼월 호시절엔 가만히 있어도 저절로 걸음을 옮기게 되지요.
좋은 여행 되셨는지요?

한사람 2012-02-21 09:57   좋아요 0 | URL

안그래도 중전님의 사진이 생각나기도 했습니다.
보문호수에서요,하하

석굴암 가는 길이 이상한 매력이 있더군요.
나무들이 듬성듬성해 아래로 절벽이 훤하고 아차
발을 잘못디디면 저 아래로 굴러떨어질 것 같기도 하고..
내려가는 길인데 도착해보면 올라와 있고..

미치도록 추울줄 알았는데 또 걷다보니 견딜만하고
심지어는 나무들 사이로 햇볕이 포근하기까지 하고, 히히

그동안 경주에 가면서 석굴암, 불국사를 안가다가
이번에 아이때문에 가보았는데 완전 좋았습니다!!!!

순오기 2012-02-21 03: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한겨울에 떠난 여행이라니, 부럽습니다!
경주는 중3때 수학여행 이후 못 갔으니 벌써 30년도 훌쩍 넘어 40년 가까이 되어가네요.ㅜㅜ
사진에 홀려서 석굴암 계단을 오르고 싶네요~ ^^

한사람 2012-02-21 10:04   좋아요 0 | URL

수학여행때 다녀간 석굴암, 불국사, 첨성대는 어쩜 그리 크게 보였을까요.
불상은 아주 자그만하고
불국사에 왜 청운교 앞 단체사진 찍는데 있잖아요.
거긴 정말 동네 사찰같았어요 ㅠ
그 뒤로도 친구들과 엄청 걸었던 것 같은데 두어개 사당만 있고 끝...

규모면에선 실망이지만
그때 전혀 느끼지 못했던 심정을 몇개 느끼고 돌아왔어요.
석굴암 계단을 내려오는데 마음이 이상했어요.
뭔가 일이 잘 될 것 같고, 히히
희망 같은게 가슴에 담겨진 것 같고..

저는 이쯤 되면 날이 풀리겠지 싶어 예약한건데
한겨울 날씨라 떠나기전 두려웠어요.
그런데 막상 가보니 그것도 운치있고 나름 매력이 있더라구요.
순오기님도 언제 한번 아이들 데리고 다녀오세요 !!!!
경주갔다 왔다고 자랑한 적은 없었는데
그냥 말로는 할수 없을 무언가가 전해져 왔습니다~

굿바이 2012-02-21 11: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얼음이 녹고 있었단 말이지요. 이 말이 이렇게 위로가 되기도 하는군요.
몇 해 전에 석굴암에 갔었는데 저도 그 계단이 참 작게 느껴졌어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무거운 마음이 이곳을 지나갔기에 이렇게 닳았나 싶었어요.
여튼 잘 돌아오셨다니 제가 다 좋네요 :)

한사람 2012-02-21 13:45   좋아요 0 | URL

예, 얼음이 지금쯤 다 녹았을까..모르겠네요 !
그 얼음 녹는 소리가 정말 신기하더라구요.
마치 물속 깊은 곳의 그들만의 전쟁같았달까? 하하

잘 돌아왔구요.
날씨가 풀려서 좋아요.
언제그랬냐는 듯 벌써부터 봄옷 생각이 간절해요 ㅋㅋㅋ
(제가 다 좋다는 말씀이 ㅠㅠ 왜 이리 위로가 ...)

cyrus 2012-02-21 20: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행기 잘 읽었습니다. 사진도 보기 좋았고요. 경주에 한 번 가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어요.
여행 가셨을 때 날씨가 많이 춥던가요? ^^

한사람 2012-02-21 23:42   좋아요 0 | URL

많이 많이 추웠어요 ㅋㅋ

산소에서 가장 추웠구요.
돌아올땐 그래도 풀려서 나았지만
뭐 일도 다 보고 구경도 다 한 참이라 ㅠㅠㅠ

시루스님 하고 경주는 멀지 않군요^^
좋은 휴식이 될거예요~~~
(여친하고면 더 좋구요, 하하)

네오 2012-02-22 13: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니 글씨가 왜이리 편해졌어요 ㅋㅋ 다 좋은데 사진밑에 <석굴암에 계단> 뭐 이런거 잘 정렬해서 올립시다 ㅋㅋ 삐딱하게 보이잖아요 ㅋㅋ

한사람 2012-02-23 16:26   좋아요 0 | URL

하하, 폰트를 크게 해봤어요.
시원하게~

그런데 <석굴암 계단>이 정렬이 안되었어요?
제 컴에선 멀쩡한데 ㅠㅠㅠㅠ
 

 

 

 

#1. 두꺼워진다는 것

 

 

 

 

   책을 읽고 나 이런 책 읽었다고 떠들기 시작한 것이 만으로 2년, 햇수로 3년 째 이다. 지난 2년은 사업 망하고 집에 꼭꼭 숨어들어 외부와 일체 연락을 단절한 시간이었다. 그 시간동안 거의 책하고 컴퓨터 화면만 보고 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어떤 사람도 만나기 싫었다. 살면서 사람에게 배신을 당해보지 않았기에 사람에 대한 실망감은 더 뼈저리고 감당할 수 없었다. 나 역시 완벽주의자였던 스스로가 인생의 크나큰 실패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일이 가장 힘들었다. 모양새가 그런대로 멀쩡했던 내 삶의 이력서에도 하나둘 빨간 줄이 쳐지기 시작했고 어디다 내놓기에 민망할 지경에 이르렀다.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사람들은 다를 줄 알았다. 왜냐하면 나는 그 전엔 책도 안 읽고 글도 쓰는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책 안 읽고 글 안 쓰는 사람은 대부분 나처럼 생각이 짧다고 여겼으니까) 많이 읽고 많이 쓰는 사람은 사람을 더 많이 이해하고 배려할 줄 알았다. 아마 드러나지 않은 대부분의 사람이 그러할 것이다. 그런데 나는 지난 이년간 단지 책 읽고 글 쓴다는 이유로 같이 책 읽고 글 쓰는 사람들로부터 어이없는 일을 꽤 당했다. 물론 지금은 그런 일이 거의 없어졌고 잊어버리기도 했고 시간이 지나다 보니 알 수 없는 인간에 대한 연민이 생기는 덕에 분노보다는 측은지심이 더 많아졌다. 또 오해건 이해건 분명 내가 무언가를 쓰고 세상에 떠들었기 때문에 일어난 일들이므로 -그리고 책 읽고 글 쓰는 사람은 더 상상력이 풍부하므로-그냥 내가 감당했어야 할 일들 이었다는 생각이 많다. 내가 더 잘나서가 아니라 세월이 주는 선물이기도 하고 상처 받는 것도 경력이 되다보니 점점 능숙해지는 게 아닐까 싶은 것이다.

 

 

 

   사실 나이 들면 이 착각 때문에 자신이 어느덧 너그러워졌고 이해심이 많아졌고 유 해졌구나 오해를 하곤 한다. 그러다가 비슷한 상처를 받으면 여지없이 서운하고 똑같이 상처받는 자신을 자신에게조차 숨기고 싶어 어쩔 줄을 모른다. 한번 아팠던 곳이라고 다시 아프지 않은 건 아니다. 그러나 그러는 사이 분명 그 굳(어 버렸다고 생각하는)은 살의 더께위로 내가 본 다른 사람의 상처와 눈물도 얽혀 들어가는 듯하다. 상처는 맞는데 아프기도 한데 내가 아프면서 그래 너도 그랬구나를 체감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동화된 상처. 교류된 상처. 나도 아프지만 너 아픈 것도 알게 되는 것, 나아가 그 아픔의 정도까지 공감가능한 상태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상대의 왼쪽 발뒤꿈치에 겨우내 붙어 있는 몇 조각 각질만도 못한 만큼이지만 그것도 여러 번 쌓이다 보니 암 것도 없었을 때와 차이는 나는 듯하다.

 

 

 

 

 

#2. 시리다는 것

 

 

 

 


디센던트 (The Descendants) - 감독 알렉산더 페인 / 조지 클루니, 주디 그리어 출연

 

 

 

 

 

   마음이 잡히질 않아 영화를 봤다. 그런데 영화보고 나서 더 붕뜨고 말았다. 옆집 아저씨로 변한 조지 클루니는 늙어도 멋있는 걸 어쩔 수가 없었다. 그냥 혼자서 두어 번 훌쩍거렸다. 승승장구에서 너는 왜 우냐고 하는 이수근에게 김병만은 ‘니 마음을 알겠어서...’라고 했는데 내 마음이 꼭 그랬다. 나는 남자도 아닌데 그 마음 알 것 같았다. 연기라는 게 원래 그 사람이었던 것처럼 보이는 것이 가장 훌륭한 거 아닐까. 약간 배도 나오고 이태리 정장이 아닌 반바지와 슬리퍼 차림에 뒤뚱거리며 걷는 모습, 진짜 볼품없이 뛰는 모습 모든 것이 다 이해되고 사랑스러웠다. 이 영화는 잔잔하면서도 그 속에서 밀도 높은 파문이 결국 일고 만다. 슬픔을 견디는 건 사실 그 다음날 아침 먹고 점심 먹고 또 저녁 먹고 잠들면서 이루어지는 일에 불과했다. 사람은 그러다가 어느날 죽는 것이다. 그 변함없는 사실이 좀 시리긴 하지만. 영화 리뷰는 내 이웃님 맥거핀님에게 부탁하고 나는 그냥 한마디만 하련다. 오는 27일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남우주연상 탈 것 같은 예감이 심하게 든다. (골든글러브 타면 이어지는 아카데미도 같이 타던데, 하하 브래드 피트도 좋지만 조지 클루니가 타길 바라는 사심에서)

 

 

 

   이번 주에 온 책, 담 주에 오기로 한 책만 해도 배가 불러 터질 것 같다. (나도 이런 책 자랑을 하다니 참 대견하군 ㅋ) 내가 산 책도 있지만 요즘 갑자기 여기저기서 좋은 책이 생긴다. 책을 쌓아두는 것도 부질없는 욕심인데 생각 같아서는 2월 내로 다 읽고 리뷰도 다 써내고 싶으나 두어 권은 중도에 포기하지 않을까 싶다. <어떻게 살 것인가>, <자본주의 그 이후>는 가뿐히 500p, <종말론>은 450p, <경제학자의 인문학 서재>도 공부하겠다고 산 책이라 만만치가 않다. 김태용의 소설집 <포주 이야기>는 소설이 독특한 듯해서 유하의 <추억은 미래보다 새롭다>는 옛 정때문에...


 

 

 

 

 

 

 

 

 

 

 

  

 

 

 

 

 

 

 

 

 

 

 

 

 

 

 

 

 

 

 

 

 

 

 

 

 

   날이 영 풀릴 생각을 하고 있지 않은데 나는 내일 2박 3일 여행을 떠난다. 겨울은 늘 한두 번 씩 새로 오는 봄에게 자기 자리를 내주지 않고 심술을 부릴 때가 있다. 지금쯤이면 큰 추위는 물러가겠지 싶었는데 산소 앞에서 덜덜 떨 걸 생각하면 벌써부터 뼈가 시리다. 그러고 보니 산소갈 때 늘 몇 가지 제사음식을 준비하시던 엄니 생각이 절실하다. 몇 가지 물어 볼 것도 있고 보고 할 것도 있고 일 년 만에 얼굴을 내미는 딸자식이 그새 늙었다고 뭐라 하시지 않으실까... 오늘은 보고 싶은 사람이 많은 날이다. 고로 마음이 복잡한 날이다. 마음의 때를 박박 밀고 와야겠다. 부디 개운해야 할 텐데 돌아오면 이빠진 사람처럼 시큰하지나 않을지 모르겠다. 뭐 하나 대책이 없을 때 '대'하라고 있는 것이 '책'이라고 했던 그의 말이 생각난다. 책을 가져갈까 말까 실은 고민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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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연 2012-02-18 12: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끔 책읽기에 의미부여를 너무 많이 하다보면.. 자만심도 생기고 다른 사람들에게 상처도 주고 그러죠, 풋. 뭔가 더 끄적거리고 싶지만... 더할 말이 없네요.. 아마 추천을 누른 수많은 방문자들도 비슷한 생각에 댓글을 못남기고 떠난게 아닌가 싶네요. 어쨌든, 어떻게 살 것인가, 표지가 맘에 드네요. 저도 책을 몇 권 구입했는데 아직 한 권이 배송에 문제가 생겨서.. 안와서 기분이 좀 울적하네요.

한사람 2012-02-18 22:50   좋아요 0 | URL

맞아요, 제가 읽을땐 안그러면서 여기 페이퍼 쓸땐
꼭 책하고 글하고 맞춰서 의미를 부여하는 작업을 즐기곤 해요.
(이번엔 안그럴려고 쓴건데 그런 건 상관이 없는 것 같기도 하고 ㅠ)
저는 여기 경주에 오고 있는데 택배전화가 왔어요.
경비실에 맞겨 달라고 했는데 그걸 못 받고 온게 너무 아쉽더라구요.
추천이고 뭐고 이 글을 혹시 삭제할지도 모르니 나중에
가연님 덧글이 없어졌더라도 서운해 마세요~


stella.K 2012-02-18 14: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금 읽다가 말아야지 하다가 다 읽어버렸습니다.
요즘엔 컴에서 글을 보는게 점점 쉽지 않아요.
그래서 10포인트로 키워서 글을 쓰고 있죠.

그분이 남자신가 봅니다.
저야 어떤 분인지 가늠하기는 어렵지만 약간 나쁜 남자꽈는 아닐까, 왜 그런 생각이 드는 걸까요?ㅋㅋㅋ
용서하시길.ㅠ

저 유하의 책 제목이 마음에 듭니다.
저는 하도 브래드 피트 얘기를 많이 들어서 이 사람이 탈 건가 싶기도 한데
남의 나라 이야기라 누가 타든 별로여요.

지금 여행중에 계시겠군요. 부럽습니다. 잘 다녀오시길.^^

한사람 2012-02-18 22:54   좋아요 0 | URL

안그래도 폰트가 작아서 저도 힘들어요 ㅋㅋ
딴에는 글이 길기 때문에 시각적으로 너무 거대해 보이지 않으려고
타이트하게 편집하는 거거든요. 대신 단락은 많이 띄우고요.

제가 너무 제 상황에만 몰입하다 보니
또 실수를 한 것 같아요.
저만 좋다고 글을 쓰는게 아닌데..

유하의 책은 받아보고 약간 후회하고 있어요.
(영화 예매권 준다해서 혹해서 산 것도 있어요.)
늘 신간 마케팅에 걸리지 말아야지 하면서 또 늘 걸리는 신세죠 뭐 ㅎㅎ

오늘 산소에서 영하 십도에도 불구하고 한시간이나 앉아 있었어요.
눈물에 콧물에 지금 죽겠습니다 ㅠㅠㅠ

cyrus 2012-02-18 14: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가끔 생각날 때마다 몽테뉴의 수상록을 읽곤 해요. 동서문화사에서 나온건데 엄청 두꺼워요,
페이지만해도 1000페이지 넘는답니다. ^^;; 아마도 국내에 번역된 수상록 중에서 완역이라고 생각이 들어요.
<고독의 위로>에서 작가들은 글을 쓰면서 고독을 위로했다던데 일리가 있는거 같아요.
내가 쓴 글이 자신이 생각했던 마음의 방향과 일치하지 않더라도 그것을 마음 외부로 표현하는 행위 자체가
의미가 있다고 봐요. 혹시 한사람님도 마음이 뒤숭숭하더라도 글을 많이 쓰세요. 글 쓰기 싫으면
책 자랑을 하셔도 좋아요 ^^ 오늘도 날씨가 무척 춥네요. 오늘까지 반납해야 할 책 한 권 때문에
도서관에 나가봐야 해요. 나가기가 귀찮네요. 하필 반납해야 할 책이 <고독의 위로>네요 ^^;;

한사람 2012-02-18 22:57   좋아요 0 | URL

맞다..몽테뉴는 <수상록>을 먼저 읽어야 하는 것이죠?
그걸 다 읽으셨단 말씀이죠?? ㅋㅋㅋ
오늘 여행오면서 책을 안가져왔어요.
컴퓨터도 여기도 잊어 버리자 했는데.. 여기와서 호텔방에서 결국 댓글을 남기는 군요, 하하

<고독의 위로>는 괜찮았나요?
그러고보니 시루스님과 가까이 있네요~
서울보다 안 추울줄 알았는데 모든 강이 얼었더라구요 ㅠ

2012-02-19 13: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2-20 19: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2-20 15: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2-20 19: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2-21 13: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1. 더러운 세상에 산다는 것

 

 

 

 

   요즘 들어 아이가 부쩍 ‘더러운 세상’이라는 말을 많이 한다. 이제 초등 6학년이 되는 아이가 바라보는 세상이 더럽다는 기준과 근거는 무엇일까. 아이는 무엇을 보았길래 툭하면 무슨 유행어처럼 말끝마다 같은 말을 내뱉는 걸까 싶어 하루는 진지하게 물어보았다. 그랬더니 아이는 한숨을 쉬고선 이렇게 답했다.

 

 

   “빽이 없으면 내가 처한 상황이 불리해지는 거.”

 

 

   간결하고 단호했다. 그리고 빽이 없어서 어떤 피해를 당한 적이 있는 건지 가슴이 철렁했다. 그런데 아이는 ‘빽’이 흔히들 생각하는 부모님의 직업이나 재산, 아파트 평수 같은 것이 믹스된 배경이 아니라 한마디로 ‘일진’이라고 부연했다. 무슨 말인고 하니 반에서 일진과 연결고리가 없으면 소위말해서 찍히기가 쉽다는 뜻이었다. 날라리로 보이는 아이들은 반드시 중학교 일진을 빽으로 두고 반에서 짱노릇을 한다는 것이다. 중학교 일진이 초등학교 후배를 선별해 기르면서 중간관리자를 만드는 형국이다. 초등학교 짱은 왕따나 찐따, 은따를 중학교 일진에 보고하고 중학교 일진은 타겟이 되는 아이들만 골라 (효율적으로)돈을 뜯거나 이유없이 따라다니며 괴롭힌다. 초등 짱과 중학교 일진이 어떤 경로로 연결이 되는지는 아이들도 모른다고 한다. 초등학교와 중학교가 아파트 단지를 사이에 두고 근처에 있으면 이 고리는 더욱 질기고 탄탄한 모양이다. 그래서 반에서 ‘빽’이 있는 친구들과 (싫어도)표면적으로 사이좋게 지내야 하며 혹시라도 그들에게 찍히면 학교생활이 곧 죽음이니 ‘더러운 세상’이라는 것이다. 아이는 이번에 전교에서 가장 유명한 짱과 같은 반이 되었는데 다른 반에선 그 짱과 같은 반이라는 소식에 울었다는 아이도 있다고 한다. 내가 직접 귀로 들으면서도 믿기가 어려웠고 부모된 입장에서도 딱히 방안이 떠오르지 않았다.

 

 

 

   며칠 전에 미용실에 갔는데 거기서도 아줌마들끼리 일진이 단골화제였다. 우리가 뉴스에서 보는 소식만 사실인 것이 아니고 학교폭력은 이제 너무나 일상적인 공통의 문제가 된 듯하다. 한 아이가 일진에 맞고 돌아왔는데 피해자 아버지가 유명한 교수였다고 한다. 교수 아버지는 학부모를 종용해 가해자 아이를 처단하자고 의견을 개진했고 다른 학부모들은 적극찬성을 표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법적인 처벌이 아니라 아이의 신상을 알고 있기에 앞으로 평생 앞길을 막겠다는 일종의 보복성 관리형의 처벌에 동의, 협조를 한 것이었다. 속된 말로 내 자식 때린 그 자식이 어디 사람구실하게 내버려 두나 보자, 하는 식이다. 그럴만한 사회적 지위와 인맥과 돈이 있기 때문에 앞에선 선처를 바라네 합의를 해주네 하면서 뒤에선 모든 연줄을 동원해 끝까지 밟아주겠다는 것이다.(일진도 무서웠지만 교수 아버지가 더 서늘했다)


 

 

   아이 말로는 사후 보복 때문에 선생님이나 부모님에게 쉽게 이르지도 못한다고 했다. 아무리 일진을 처벌하고 전학을 가게해도 우리가 아이 학교를 졸졸 따라다니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아이들은 학교 내에서 발생하는 심리적인 스트레스를 고스란히 견뎌야 한다. 세세한 부분에서 미묘한 상황에 이르기까지 반드시 아이들 몫의 학교생활이 있는 것이다. 이것이 진짜 빽이 있는 부모들도 피해자가 된 자기 아이의 고통을 근본적으로 해결해줄 수 없는 이유이다. 아이와 집중적으로 이야길 해보니까 눈에 띄지 않는 것이 현재로선 가장 최선이라는 결론이었다. 너무 잘난 척을 해도 안 되고 너무 침묵해도 안 되고 혼자 얌체 짓을 해도 안 되고 안 좋은 일 있다고 징징대도 안 되고 어떤 특정 과목을(특히 예체능) 너무 못해도 안 되고 너무 더러워도 안 되고 너무 뚱뚱하거나 못생겨도 안 된다. 한마디로 모든 것의 중간치인 평범한 아이가 되는 것이 찍히지 않는 비결인 것이다. 가슴 아픈 것은 혹시 학원을 안다니거나 학습지를 안 한다거나(전교 1등도 아니면서) 핸드폰이(혹은 MP3) 없다거나 집이 멀다거나(아파트 단지와)하는 사항도 찍힐 확률이 많다는 것이다. 자신과 다른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뿌리 깊은 획일성의 잔재가 아닐 수 없다. 다수의 입장에서 소수를 인정하지 않는 전형적인 집단이기심이다. 더 많은 쪽이 강한 것이고 다르고 적은 쪽이 약한 것이다. 아이들이 못 참는 건 자신과 달라서 아예 1등을 하거나 재능이 뛰어나 가수나 특기생이면 모를까 자신들과 크게 다를 것도 없으면서 달라 보이는 그 모든 것인 듯하다. 따라갈 수 없는 차이만 할 수 없이 인정하고 제끼는 것. 교육이 잘못되었다는 건 누구나 아는 사실인데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 가만 생각해보면 이것은 그리 간단한 문제는 아닌 듯하다. 일진이라는 상징은 학교폭력 조직을 의미하지만 그 이면엔 재수 없(어 보이)는 또래에 대한 응징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 건 아닐까. 그 재수 없어 보인다는 건 아주 많이 다르거나 우월한 것이 아니고 작고 사소한 차이에서 비롯된 불쾌감은 아닐까. 그 불쾌감은 혹시 살려면 같이 살고 죽을려면 다 같이 죽어야 한다(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 같은)는 탈개인, 탈개성의 시대부터 이어져온 집단 트라우마의 잔재는 아닐까.

 

 

 

   아이들은 우리 때 보다 전반적으로 열등감, 패배감은 덜해졌지만 시기심은 많아졌다. 물질적으로 풍부해졌기 때문에 괜한 이유 같지 않은 이유로 상처를 받고 또 상처를 주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그 시기심은 결국 그 부모들로부터 기인한다고 보기에 결국 아이들은 우리가 배우고 키워온 악의 습관들을 그대로 상속받아 시대적 환경과 함께 급진적으로 변형된 길을 걸어가고 있다는 생각이다. 우리는 제발 우리 아이들이 우리와는 다른 교육을 받고 우리와는 다른 깨끗한 세상에서 살아가길 바랐지만 아이들은 우리의 가치관을 몸과 마음에 그대로 새긴 채 똑같이 아니 어쩌면 더, 더러운 세상이라 느끼고 있는 것이다. 씁쓸하고 속상한 날들이다.

 

 

 

#2. 깨끗한 세상에서 산다는 것

 

 

 

   39.5㎢는 강남구의 면적이다. 우연인가. 이 책에서 만난 방주시의 면적은 꼭 39.5㎢이다. 그러니까 강남구만큼의 땅에 높이 1.2km 되는 뚜껑을 하나 덮어 서울특별시 중에서도 진짜 특별한 그들만의 도시를 만들었다면 그 도시이름은 ‘방주시’라는 것이 작가의 주장이다.

 

 

   이 소설은 방주시에 탑승한 아이들과 방주시에서 하선한 아이들의 이야기이다. 탑승과 하선이라 한 이유는 초고속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갔다가 내려오기 때문이다. 탑승과 하선을 한 아이들이 같은 아이들이므로 방주시에 탑승했다가 추방된 아이들로 바꾸겠다. 이 소설이 꼭 강남구에 이사 갔다가 적응 못하고 다시 살던 변두리로 돌아온 어느 꿈많은 서민의 이야기로 읽히는 건 무슨 까닭일까. 유리천장이라는 말이 있듯이 실제 뚜껑만 덮지 않았지 방주시라는 가상의 도시는 청와대와 국회의사당, 삼성 밑 지하 백 미터 위치쯤에 존재할 것 같은 이유는 무엇인가. 작가는 어떠한 천재지변이나 전쟁이 닥쳐도 안전하며 이상기후와 질병 바이러스에 노출이 안 되는 무균실 같은 이상향이 있다하면 그건 누가 왜 만들었는지 우리에게 보고하고 있다. 아니 차분히 따져묻고 있다.

 

 

 

    요즘 아이와 함께 동네를 나가면 하도 ‘엄마, 재 일진이야’하는 소리를 쉽게 들을 수 있었기에 깨끗한 세상을 누가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를 고민하던 터였다. 마침 봄방학을 맞아 새학기를 앞두고 엄마들 몇 명이 모여서 정보를 교환해 봐도 끝에 가선 서로 조심하자뿐인지라 알면서도 어떻게 할 수 없는 무력감은 쉬이 사라지지 않았다. 뭔가 고민거리가 생기면 꼭 희한하게도 꼭 그와 연관된 책을 읽게 되는데 이 소설은 앞서 언급한 교수 아버지급 이상의 부모님들이 모여서 장기 프로젝트로 실현한 이상향의 시나리오 같았달까. 어느날 갑자기 하늘에서 지름이 15㎡나 되는 운석이 떨어졌는데 그 자리에 넓이 39.5㎢, 높이 1.2㎞ 되는 '방주시'가 만들어졌단다. 모양새는 SF 영화에서 익숙한 공간으로 돔 형태의 초호화 도시인 이곳은 저 밑의 지상인과는 차원이 다른 양식 있고 세련된 부자들만의 세상이다. 주로 국회의원, 판검사, 변호사, 의사같은 상위레벨의 부모님의 자제들이 방주고등학교에 다니고 있다. 그럼 어떻게 해서 방주시가 탄생했고 그곳엔 최상위층의 인간들만 살게 되었을까. 정부에서 운석이 떨어지고 난후 그 자리를 복원할 생각으로 소수정예의 공간으로 계획 개발해 버린 것이다. 영화 2012(2009)에서 보면 저명한 과학자들이 예언한 멸망의 2012년을 대비해 정부가 비밀리에 추진한 일들이 꼭 이 소설과 흡사하다. 전 세계 곳곳에서 지진, 화산폭발, 해일 등의 각종 재해들이 발생하고 있을 때 G8 회원국은 ‘노아의 방주’같은 거대한 배를 만들기 때문이다. 그 방주에 탑승할 수 있는 사람은 당연히 어마어마한 금액(약 10억 유로, 1조 5천 억 원)을 낸 지구상의 몇 십 만 명에게만 해당된다. 이 사실을 알지 못하거나 돈이 없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냥 앉아서 쓰나미에 실려 가거나 화산과 동반폭발하면 된다.

 

 

 

 

 

 

< 2012 / 감독 - 롤랜드 에머리히, 출연 - 존쿠삭, 아만다 피트, 2009 개봉>


 

 

   실제로 미국에서 네 번째로 큰 휴스턴에서는 허리케인을 막기 위해 도시전체를 돔시티로 계획한 적도 있다. 사실 도시를 덮고 보호하는 거대 인공 돔은 오랫동안 SF의 소재였으며 실현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우리가 지금 대중적인 편의장치로 사용하는 네비게이션이나 스마트폰같은 문명의 이기들도 불과 십 년 전에는 미래프로젝트였다. 도시계획은 막대한 예산과 시간, 기술이 걸리는 사안인데 문제는 샘플형의 이 도시에 과연 누가 혜택을 받을 것인가 인 것이다.

 

 

 

 

 

 

< 휴스턴 돔 프로젝트 'Eden' - 2009. 6. 디스커버리 채널>

 

 

 

   네비게이션이나 스마트폰도 돈이 없으면 사용할 수 없듯이 미래도시도 혹시 일부 특권층만을 위한 계획이 되지는 않을까. 대학에도 정원이 있듯이 방주시에도 정원이 있다면 선택을 받기 위해 사람들은 경쟁을 해야 하지 않을까. 결국 사람 솎아내기 과정에서 서바이벌게임의 승자는 누가 될까. 소수의 특권층도 학교는 다니고 병원도 가야 하고 식당도 가야하는데 혹시 방주시에는 그 특권층을 위한 봉사자들(이를테면 ‘도시의 시스템을 유지시켜줄 따까리’같은)이 필요한 것은 아닐까. 기후가 변동하고 질병이 창궐하고 물자가 부족한 비방주시민들은 과연 이 불평등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말도 안되는 불평등을 타파하기 보다는 혹시 악착같이 방주시에 탑승하려 사력을 다하진 않을까. 내가 안 된다면 내 자식이라도 올려 보내고 싶지 않을까...

 

 

 

#3. 그것 만이 우리 세상

 

 

 

 

   이 소설은 비록 소재와 구성은 SF 영화의 방식을 취하고 있지만 갈등과 해결방식은 지금 우리 현실과 똑같다. 그래서 서사는 전혀 미래적이지 않고 현실적인 시사문제로 읽힌다. 작가가 제기하는 문제들은 모두 지금 당면한 문제이다. 우리는 모두 불평등하고 불공정한지 알고 있지만 어떻게든 더 살기 좋은 공간을 원하고 더 수준 높은 학교를 원하고 질병과 재해 없이 오래 살길 원하고 더불어 내 주변 사람들도 같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작가는 방주시내의 방주고등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을 빌어 작금의 문제들을 인큐베이팅하는데 성공했다.

 

 

 

   방주고는 성경을 일독해야 하는 일종의 종교학교이면서 대기업 계열사 모 정보통신 회사의 회장이 이사장인 사립학교이다. 이사장의 손자가 학생회장이니 삼대 권력세습의 북한사회와 다를 것이 없다. 이 학교에서 선심 쓰듯 정원의 10%를 할당해 입학을 허용한 '지상의 아이들'이 그 주인공이다. 이마와 이루는 1%의 특권층 밑에서 잘 배운 인재들로 상징되는 하수대리인, 즉 그들만의 노예를 상징한다. 학생회장 나일락은 삼성가의 후계자쯤으로 보면 되겠다. 방주시에 불만을 가진 독서모임 프로네시스의 회장이면서 기숙사장 시온施昷은 가정형편은 형편없지만 성적은 최상위인 소위 노조위원장이나 운동권 학생회장쯤으로 보면 되겠다. 윤시온은 학교를 폭파하겠다는 테러계획의 음모를 주도하고 실행하는 요원이며 학교방침을 거스르는 불가촉천민을 잡아내겠다는 일락은 권력자의 대리인으로 보인다. 아이들 이름이 마노와 루비를 비롯해 유시온, 나일락, 유다나, 남달리, 배두인, 노안지, 박하상인 것이 굉장히 종교스러우면서도 중성적이고 뜻깊어 보였다.

 

 

 

   이중에서 가장 드라마틱하여 현실성을 확보한 인물은 주인공 마노이다. 마노는 ‘너무 잘나지도 않고 못나지도 않은 중간인물’이었기에 눈에 띄지 않는 평범성을 주목받아 학생회 전용 프락치로 선택된다. 마노는 쌍둥이 누나 루비를 지키기 위해 프락치를 수락하지만 방주고에 다니는 광장 첫사랑을 지키기 위해 시온 조직의 계획을 막으려 한다. 가족의 안전 때문에 직업을 택하고 사랑 때문에 조직을 배반하는 전형적인 드라마 캐릭터이다. 모든 비극이 끝나야 정신을 차리고 자신도 찾는 설정이다.(물론 그때 가족과 사랑 모두 살아있다는 보장은 없지만) 작가는 마노의 고민과 질문, 대답을 통해 마노의 선택에 동의하는지 반대하는지 의견을 여러 번 묻는다. ‘자기가 믿는 것, 자기한테 이익이 되는 것’이 정의라고 믿는 마노가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는 것이지 절간을 부수는 게 아니’라고 결론내릴 때 당신도 그렇지 않냐고 깊게 응시한다. 우리는 뿌리 깊은 불평등을 재생산하는 이 사회의 학벌체계와 교육시스템을 늘 비판하지만 노력해서 얻은 학벌을 자랑스러워하며 운 좋게 들어간 대기업에 만족해한다. 혹시 부모를 억세게 잘 만난 것은 물론이요 학벌도 좋고 연봉도 좋고 결혼까지 재력의 집안과 맺어져 강남의 어느 최첨단 아파트의 최상층에 살고 있다면 저 밑에 사는 인간들은 땅바닥인간이거나 쓰레기들이라고 생각할지 모를 일이다.

 

 

 

선택받은 이들과 그들이 또다시 선택한 하위자들은 방주인지 바벨탑인지 모를 곳에서 신과 가까운 높이에 안도하며 살아갈 것이고, 지상에 남아 있는 자들은 개미지옥에 빠진 벌레들처럼 꼬물거리며 살아가리라는 것이었다. 언젠가는 위에 있는 이들의 먹이나 거름이 되기만을 기다리며.   -p110

 

 

 

   방주고의 선생들은 철저한 보신주의자이기 때문에 학교에서 일어나는 문제와 학생사이 갈등 같은 건 하등 자신의 업무와 상관이 없다. 학교에서 과학실험을 하고 난 폐기물들은 당연히 지상으로 배출되고 간혹 지상에 다녀온 친구가 있다면 그들이 혹시라도 전염병균을 묻혀 왔을까봐 깨끗이 소독이 된다. 학생들은 ‘미디어의 의무와 표현의 한계’같은 주제를 영어로 프리토킹하면서 수업을 받고 매끼 7성급 호텔 같은 식사를 하고 트레이닝 복도 프랑스 의상학과 출신이 디자인한 옷을 입는다. 그래서 지상에 가족을 두고 온 의식 있는 학생들은 내 가족이 기후나 돌연변이, 물자부족 때문에 힘든 것이 아니라 ‘참을 수 없는 상대적 불평등’ 때문에 살아갈 수 없는 것이구나를 실감한다. 그 중에 기특하게도 이 시스템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빨리 깨달은 시온은 이렇게 말한다.

 

 

 

못 따라 가는 거 맞지. 머리가 아니라 이, 마음이. 나만이 아닌 다른 사람들도 사람같이 살았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도저히 접지 못하는 마음이.   -p158

 

 

 

   이것이 책 좀 읽고 글 좀 쓰고 연설 좀 하는 열일곱의 엘리트 학생의 입에서 아니 가슴에서 나온 말이다. 어른들처럼 자기가 구축한 세상에 이민족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권력과 돈을 이용해 치밀한 각본을 짜고 그 시나리오에 연루된 무고한 조연들이 시니컬하게 같은 친구에게 충고를 한다. 여기가 아닌 다른 곳이었다면 너는 외려 다수의 하나가 되고 너한테 아무리 그럴 의도가 없었다 해도 그땐 당연히 소수를 배제했을지 모른다고. 그러니 여기 어렵게 다수가 된 우리들이 소수인 너희들을 봐주기는 힘들다고. 우리가 사는 깨끗한 세상엔 더러운 소수는 필요 없다고. 어쩌면 이리도 일진의 논리와 같은 것인가.

 

 

 

   소설은 대단한 흡입력을 가지고 끝까지 쉴 틈을 주지 않으며 반전에 반전을 거듭한다. 그리고 미래의 또 다른 반전을 암시하면서 막을 내린다. 장편이긴 하나 짧고 굵은 이야기로 느껴졌고 작가의 개성과 성찰이 잘 어우러졌다. 청소년용으로도 무리 없고 우리 같은 학부모 혹은 교사들에게도 적극 추천이다. 결론이 없기 때문에 토론용으로도 좋을 듯하다. 작가의 전작들을 읽어보지 않았는데 이 작품을 읽고 <아가미>나 <고의는 아니지만>이 궁금해졌다. (이 작품을 읽기전에는 구병모라는 작가가 남자인줄 알았다는 ㅠ)


 

 

   우리는 우리가 사는 세상을 바꿀 수 없기 때문에 끊임없이 바꿀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책도 쓰고 영화도 만들고 음악도 그림도 그리는 건 아닐까 싶다. 같은 책을 읽고 같은 작품을 느끼다 보면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 되어 많은 사람들이 바라는 세상이 오지 않을까 싶기 때문에. 아이가 내뱉는 ‘더러운 세상’도 방주시라는 ‘깨끗한 세상’도 결국은 우리 사는 세상의 양면인 것이지 하나의 세상은 아닐 것이다. 우리는 더럽기 때문에 깨끗한 세상을 원하고 깨끗하기 때문에 더러워질 수 있는 세상을 살고 있을 뿐인 것이다. 시지프스의 신화처럼 살아가는 동안 그 더러움과 깨끗함의 굴레에서 벗어나는 길은 없을 것 같다. 다만 지금 더럽다면 하루속히 깨끗해지기 위해 머리를 맞대고 조금 깨끗해졌다면 다시 더러워지지 않기 위해 그 손을 놓지 않는 일. 그것만이 우리 같이 사는 세상이어야 할 것이다. 머리로 판단하고 결론짓는 것이 아니라 ‘나만이 아닌 다른 사람들도 사람같이 살았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도저히 접지 못하는 마음’ 하나로 연결되는 세상이어야 할 것이다. 그 마음만 있다면 방주 같은 배나 미래 잠수함, 돔시티는 필요치 않을 것이다. 필요하더라도 모두를 위한 배요 강이요 하늘이어야 할 것이다. 우리 모두는 같은 마음의 세상으로부터 선택받은 사람들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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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 2012-02-16 13: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으로 아픕니다. 이런 상황에서 살아간다는 것이. 하지만 빽이라는 것이 정말 있으니까 그것도 두려워요.
또 사소한 일로 따돌림을 당하고 친구들로 부터 경멸의 눈초리를 받는다는 것도 두렵습니다...
저는 체육을 무지하게, 엄청나게 못해요. 웬만한 여자들보다 최하위수준이건만 시골에서는 예체능을 못하는 걸로는 따돌림을 안합니다. (아, 저희학교만 그런가요) 남자들은 그림 엄청 못그리는게 당연하고 여자는 체육못하는게 당연하고. 하지만 시골아이들이라 그런지 심성들이 착하다보니 노는 아이들도 엄청 심한 한 사람빼고는 다 착해요.
아이고,

한사람 2012-02-17 11:05   좋아요 0 | URL

요즘은 왕따도 하위분류를 하더라구요. 급도 있구요..참..
예를들어 피구를 너무 못해서 자기네 반이 지는데 지대한 공헌을 했다든가
자기는 영어를 학원다녀서 날고 기는데 발음이 안좋다든가
(그렇더라도 절대 잘난척을 하면 안되고 ㅠ)
팀숙제를 하는데 기여도 없이 묻어가기만 한다든가..
참 여러가지로 아이들이 싫어하는 종류도 많아서, 들으면서도 갑갑하고 그래요.
학원스트레스가 심해서 그걸 학교에다 푸는 건가 싶기도 하고요.
왕따를 당하는 쪽은 아예 포기하고 더 심화되는 길을 선택하는 듯해요.
무엇보다 아이들 표정이 대체로 어둡다는 것이 가장 우울하고 그걸 보면서도
해결책이 마땅히 없다는 것이 걱정입니다 ㅠ
(소이진님은 좋은 학교 다닌거예요 ㅋ)

울보 2012-02-16 15: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얼마전 3학년딸이 아빠 우리반에 일빵있다, 그게 무슨소리냐고 했더니 우리반 남자친구가 3학년 짱이라고 그말에 아빠가 체격이 좋아, 라고 물으니 아니 작아. 그런데 그에게 일짱이래, 그말에 아빠 그친구랑 친하니. 라고 묻더군요, 응 딸의 대답, 그래 그런 친구랑은 친하게 지내, 그렇다고 네가 그속에 들어가란말은 아니다라고 하더군요, 참,나부터도 이런말을 하니. 옆지기도 고등학교때 학교에 일진에게 한번도 괴롭힘을 안당햇데요, 왜 라고 물었더니 옆지기 말수도 없고 체격도 작고 , 돈도 빼긴적이 없다고 하더군요, 자기랑 친한 친구가 일진이었는데 이친구 나랑 친해 한마디에 아이들이 건들지를 않았다고 하더군요,,
그소리를 듣는데 왜 마음이 아픈지, 내아이에게 뭐라 가르쳐야 할지 정말 모를때가 많아요, 그런 친구들이랑은 어울리지마, 라고 하지만 그래도 안어울리다가 또 아주 많은 고민을 하지만 답이 없더라구요, 그래도 아직 중학교 까지 연결되고 그런 일진의 무리가 아니라 자기들끼리 서열을 정한것 같은데 ,그래서 노상 거리에서나 어디에서건 아이 친구들을 만나면 말걸고 놀이터에서도 몰려소 놀고 잇으면 관심있게 지켜보고 있어요 잘못된 행동을 하거나 말을 하면 지적을 너무 많이 하는 엄마라 딸이 그러지 말라고 말리기는 ㅎ ㅏ지만, 그래도 내아이친구들이잖아요, 어른들이 겁난다고 무섭다고 내아이에게 보복이 두렵다고 모른척 한다면 안될것 같아요, 언제나 우리 아이들이 마음 편하게 학교에 다닐까요,

한사람 2012-02-17 11:10   좋아요 0 | URL

울보님 말씀처럼 일짱과 친하게 지내야(친한 것으로 보여야) 별 탈없이 학교생활할수 있다는거 실감해요.
친구의 친구든, 친구의 언니든, 어떻게든 일짱과 연결고리가 있으면 안건드리는 것도
완전 어른들 학연, 지연, 인맥으로 연결된 서로봐주기 풍토 그대로구요.
중학교 일진들은 세명씩 몰려다니며
딱보기에도 약간 화장도 하고 옷차림도 어른 스럽고
표정도 무표정이거나 냉소적이고
그렇더군요. 학원다니느라 바쁜 아이들보다 현저하게 걸음도 느리구요, 하하

아침 신문에 보니 피해자와 가해자 아버지끼리 서로 고소공방전이 붙었다고 하더라구요.
저도 아이가 저학년일때는 남일이거니 했는데 고학년이 되니까
사춘기와 물려서 여간 걱정이 아닙니다 ㅠㅠㅠ

맥거핀 2012-02-16 15: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산인가 분당인가 어느 아파트에서 아파트 구역 전체에 일종의 스크린도어를 설치했다는 기사를 본 적 있는데요. 말 그대로 외부인들은 들어오지 말라는 것 아니겠습니까. 소설이 현실이 되고 현실이 소설이 되는 세상인가 봅니다. 이글을 보니 앞으로가 더욱 우려가 되는군요. 이 아이들이 만들어내는 세상은 어떤 세상일까요.

한사람 2012-02-17 11:19   좋아요 0 | URL

예전에 분당살때 무지개마을에서 죽전과 연결된 길이 있었는데
그 길이 죽전에서 넘어오는 차량들이 주로 이용하다보니
아침마다 지체되는거예요. 그래서... 그 다음은 말 못하겠어요 ㅠ
그뿐 아니라 분당수서간 고속화도로 끝무렵에 수지로 이어지는 토끼굴도 막았어요.
제가 사는 아파트 앞에는 몇배되는 주상복합 아파트가 있었는데
아침마다 그쪽 경비아저씨와 우리쪽 경비아저씨끼리
서로 자기네 아파트 차가 먼저 큰길로 가도록 차량정리를 하셨죠..

저는 아이가 분당에서 다른 지역으로 전학간 다음부터 여러 스트레스가 없어졌다고 들었어요.
(분당주민 분들에겐 모욕적이겠지만-뭐 저도 분당살았으니까 ㅠ-학교에서의 경쟁심이 너무 심해서 돈없고 빽없으면 못견딥니다)
이 모든게 학부모들의 뿌리깊은 이기심과 경쟁심, 시기심, 열등감의 잔재라고 봐요.
우리는 우리 아이들이 잘사는 세상을 만들고자 한게 아니고
아이들이 보란듯이 잘살아서 결국 내 마음 만족하고자, 사는 사람들에 불과하니까요..

cyrus 2012-02-16 22: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돔 사진 보니깐 스티븐 킹의 <언더 더 돔>이 생각났어요. 그 소설도 어떻게 보면 막장이라고 할 정도로
사리사욕에 눈이 멀거나 외부인과의 접촉을 거부하는 이기적인 사람들이 등장하거든요.
그것도 마음이 돔에 둘러싼 이후부터요. 그런 장소도 결국에는 더러운 세상이 되고 만거죠.

그런데 구병모라는 작가분이 남자가 아니였군요, 저도 그 전부터 그렇게 생각했었어요
이름이 남자 이름 같아서요 ^^;;


한사람 2012-02-17 11:24   좋아요 0 | URL

아..<언더 더 돔>이 돔에 둘러싼 사람들의 이야기군요.
돔이라는 게 안전 보호 장치이지만 결국은 아무리 원인이 합당해도 인공적인 것이니까
분명 물리적인 문제는 발생하게 되있을거예요.
이 소설은 그 돔안에 누가 들어가고, 누가 못들어가나를 따지면서
그렇다면 그 누구는 왜 다른 누구를 못들어오게 하나
말씀하신대로 외부인(이민족)을 거부하는 모습에 질문을 던집니다.

저같이 남자분이라 생각하는 분이 있네요, 하하
 

 

 

 

 

 

#1. 나의 오늘

 

 

 

   졸업은 내가 하는 것이 아니다. 학년이 올라가는 것도 내 일은 아니다. 2월이 지난다고 해서 새 학기가 시작되는 것도 아니다. 이별해야 할 것도 시작해야 할 것도 보완해야 할 것도, 내겐 없다. 처음으로 아이가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는 사실이 두려웠다.

 

 

   나는 무엇을 졸업해야 할까..., 하고 멘션을 올렸더니 어떤 분이 ‘겨울’이라고 답해주었다. 그 한 단어가 갑자기 눈물 나게 반가웠다. 삼재도 지난 지 오래고 삼년상도 지났고 지난 이년간 사업으로 진 빚도 대충 갚았다. 올해는 내게도 뭔가 터져주었음 좋겠다. 대박이나 뜻하지 않은 일회성의 행운 같은 건 바라지도 않는다. 그저 내가 투자한 시간이 묵묵히 그러나 정직하게 운을 준비하는 과정이었기를 바란다. 이런 바람은 욕심은 아니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나도 모르게 들어 버렸다. 무슨 일이 있었던가. 나의 오늘은 어제와 다를 것이 없었건만.(봉주 5회를 듣고 쬐금 불쾌했던 마음은 풀어졌지...사람 참, 하하) 신기하게도 내가 원하는 것이 그가 원하는 것과 똑같다니 이 무슨 조화란 말인가.

 

 

내가 원하는 건 오로지 글을 쓰는 거요. 그러다가 나는 고독한 존재로 변했지요. 나한테 가장 좋은 시간은 아침 7시예요. 침대에서 간밤에 썼던 것을 다시 읽거나, 머리가 맑고 개운한 상태에서 내 마음에 드는 소설을 생각해요. 마치 어린 애들처럼.

 

-p99, <16인의 반란자들>

 

 

   그나저나 이렇게 말한 작가는 누구일까요?

  (힌트 : 성은 오씨요, 한국의 음식이 두개나 들어간 이름 ㅋㅋ)

 

 

 

 

 

#2. 그들의 오늘

 

 

 

 

 

   이 책을 읽는 것은 어찌 보면 욕심이다. 만약 이 책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이 있다하면 그건 ‘읽고 싶다’가 아닌 ‘가지고 싶다’일지 모른다. 성격이야 어떻든 간에 일단 만나보고 싶은 사람들, 비록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작가들의 작품은 만나보지 못했지만 이렇게 수상을 한 작가들을 한자리에서 만나볼 수 있으니 말이다. 서로 긴 설명이 필요 없는 잇 북, 워너비 아이템에 속한다. 이 책이 가지는 인터뷰 집으로서의 가치는 문학적 이라기보다는 여가적 이고 심층적 이라기보다는 다층적이다. 커피 한잔을 음미하면서 천천히 한 장 한 장 넘겨 본 후 근사하게 거실 서가에 꽂아두면 금상첨화인 책이다. 폼도 나고 교양도 있어 보이고 어쩐지 나의 문학수준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 해주는 느낌이 든다. 덮고 나서 여운도 길어 묵직하고도 알싸한 무언가가 가슴에 남아 마음을 가라앉혀준다. 반나절이면 세계 일주에 나선 저자들의 기록을 충분하게 살펴볼 수 있다.

 

 

   아쉬운 게 있다면 내가 만나본 노벨 문학상 수상자는 한명도 없었다는 것인데 그들은 모두 2000년대 이후의 수상자였다. 존 맥스웰 쿠치(2003), 르 클레지오(2008), 헤르타 뮐러(2009), 마리오 바르가사 요사(2010)정도만 읽어본 나로선 부끄럽기 짝이 없었다. 어떤 작가는 아예 이름도 성도 나라도 작품도 심지어는 성별도 모르는 사람도 있었다. 꼭 노벨 문학상 수상자와 작품을 많이 안다고 해서 그 사람의 문학적 소양이 높다고는 할 수 없으나 딴에는 책 좀 읽고 글 좀 쓴다는 자의식으로 늘 괴로워하던 나였기에 그런 고민이 순간 터무니없이 우스워 졌다고 할까. 과학도 아니고 역사나 정치, 음악, 미술, 모든 내가 잘 모르는 분야가 아닌 문학인데... 문학상인데... 나는 내 무관심에 절로 발이 저렸다.

 

 

    더군다나 저자들이 만난 수상자들은 이제 모두 7,80대 할머니, 할아버지 세대이다. 그들은 대부분 거짓말처럼 늙어버린 슬픔을 안고서 스스로 ‘사진을 찍을 만한 인물’이 아니라 말했다. 하지만 나는 그들의 젊음을 모르고 그저 이 책속의 얼굴과 표정을 작가의 이름과 일치시키며 내가 아는 사람으로 영구 저장할 것이다. 그들은 저마다 여기까지 힘들게 살아온 결과로서의 모습을 지니고 있지만 나는 그들의 인생과 작품을 잘 알지도 못하면서 성공한 얼굴만 구경하게 된 것이다. 저자가 수상자들을 만나고 돌아와 책이 출간, 번역되는 세월동안 이미 운명을 달리한 작가들도 있다. 주제 사라마구와의 인터뷰는 그가 사망하기 불과 일이년 전에 이루어진 것이었고 나기브 마푸즈는 인터뷰 후 얼마 되지 않아 사망했다. 이 책의 마지막에 소개된 폴란드 시인 비슬라바 쉼보르스카는 바로 지난주에 타계했다. 기사를 찾다가 타계소식을 보고 소름이 끼치면서 목이 메이기도 했다.(그렇다면 만약 내가 이 책을 가을이나 내년쯤에 읽는다면... 그땐 또 누가...) 누가 봐도 시인이면서 “나는 시에 대해 얘기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다고 말한 작가의 목소리가,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그녀의 목소리가 귀에 가슴에 머리에 쿵쿵 울리는 느낌을 무어라 설명할 수 있을까. 그들은 대체 죽어서 어디로 간 것일까. 여기서 이렇게 오늘도 변함없이 아직 할 일이 많다고 해놓고선 어떻게 눈을 감을 수 있었을까. 혹시 자신의 부고를 알게 된 독자에겐 운 좋게도 독자가 가지고 있는 당신들의 작품 속으로 슬며시 박제되어 영원히 새겨진 것은 아닐까.

 

 

    먼저 이 책은 16명의 수상자들을 ‘반란’이라는 테마로 묶었다는 것이 조용한 반란이라 할 수 있겠다. 저자에 의하면 수상자들을 만나보니 하나같이 문학이 아닌 다른 이유로 사회에 참여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기에 그들을 반란자라 부르고 싶었다 한다. 반란자들은 전쟁이나 독재에 항거하고 환경이나 생태계 보존을 주장하고 인종차별과 여성인권에 목소리를 드높인다. 문맹퇴치, 에이즈 퇴치에 앞장선다. 대부분 종교를 믿지 않으며 특정한 이즘을 갖고 있지 않다. 이외수 식으로 말하자면 그들은 좌파도 우파도 아닌 자기파이며 여성이나 남성이 아닌 인간성이다. 파리로 망명한 중국의 가오싱 젠은 ‘어떤 이즘 없이 산다는 것 그게 바로 나의 저항의 형태’라 말했다.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는 스스로 어느 편에 서명하는 사람이 아니고 그저 음모자나 중개자라 말했다. 혼혈이었던 데릭 월콧은 ‘문학에는 인종적인 순혈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V.S 네이폴은 자신은 종교인이 아니며 다만 ‘내 삶은 글을 쓸 뿐’ 쓰는 게 자신의 종교이며 그것이 ‘존재할 수 있는 종교들 중에서 가장 높은 종교’라 칭했다. 눈과 귀가 멀어 인터뷰가 어려웠던 나기브 마푸즈에겐 어떤 위협에도 굴하지 않는 지인들과의 문학모임이야 말로 종교라 여겨졌다. 그들에겐 규칙적인 글쓰기가 일상이고 종교도 사랑도 우정도 행복도 정치도 모두 글쓰기에 귀속되는 사람들이었다. 특이했던 건 남자들은 대부분 아름답고 젊고 활기차고 지적인 아내를 두고 있었지만 여자들은 독신이었다는 것. 노벨상은 남자에겐 성공이겠지만 여자에겐 보상이었을까.

 

 

   그들은 아주 어렸을 적부터 작가가 될 수밖에 없었거나 혹은 아주 나이가 들어서도 작가를 할 수밖에 없었다. 어린 시절에 본 것은 대부분 전쟁과 상처였고 어른이 되어서는 그것을 기억해야 했기 때문이다. 각기 어느 나라 어디에서였는지가 달랐을 뿐 말하는 방법은 같았다. 오에 겐자부로는 낚싯바늘에 걸린 물고기가 숨죽여 고통을 견디는 모습을 보고선 그 고통을 반영하기 위해 작가가 되었다고 말한다. 그에겐 장애인 아들이 있었고 세상과의 소통은 아들의 눈을 통해서였다. 그들은 상을 받고나서도 달라진 건 없다고 말한다. 토니 모리슨은 노벨상이 아니라 다른 어떤 상도 자신을 좋은 작가 좋은 사람으로 바꾸지 못할 거라 했다. 이탈리아의 극작가 다리오 포는 자신에게 주어진 노벨상이 권력의 부당함을 풍자한 모든 광대들을 위한 보상이라 말했다. 키가 크고 미소가 큰 오르한 파묵은 웃겨 죽겠다는 표정으로 ‘나는 식당에 가고 싶지 않고 사람들을 보는 것도 싫’다고 말하는 듯 했다. 도리스 레싱은 손님이 온다는 데 (아무리 작가라지만)어떻게 그렇게까지 집안이 지저분할 수 있는지 충격이었다. 나딘 고디머의 강단 있는 표정도 인상 깊었고 월레 소잉카의 백발과 흰수염은 예술적이기까지 했다. 그는 나이지리아 민주주의 투쟁의 아이콘답게 크게 클로즈업 한 손가락엔 흡사 자신이 걸어온 길과도 같은 주름이 잡혀 있었다.

 

 

   인터뷰엔 사진작가가 동반했기에 필히 그들의 시선과 표정이 담긴 프로필 사진과 배경사진이 담겨있다. 단정한 뒷모습도 좋았다. 나는 작가들의 사진을 보면서 자주 뭉클하던 순간을 떠올린다. 바로 작가들의 손이다. 작가들의 손을 찍는 사진작가들이 많은 것인지 비슬라바 쉼보르스카는 손이 반년 전에 부러졌다면서 정말로 손 찍는 게 끔찍하다고 말했다. 그 손으로 그들은 무엇을 해왔는가. 지금의 손은 무엇을 말하는가. 글을 쓴다는 건 손을 쓴다는 것이다. 그가 손으로 한 것은 곧 그 사람이 살아온 인생을 말하는 것이다. 의외였던 건 조정래 작가처럼 어깨가 으스러지도록 육필 원고를 고집할 줄 알았던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도 컴퓨터로 글을 쓴다는 놀라운 정보였다. 컴퓨터로 작업방식을 바꾸었더니 7년에 한권에서 3년에 한 권이 되었다고.

 

 

 

 

- Wislawa Szymborska (photo by Kim Manresa) -

 

쉼보르스카 의 두 손은 수분이 모두 제거된 어떤 생명체의 외피와 마주하는 것 같아 한참이나 시큰했다.
유리잔을 쥐고 있는 자태에서도 단호한 근육의 힘이 느껴질 정도로 이 사진은 뇌리에 남았다.
흑백사진임에도 그 와중에 손톱은 무미건조가 아닌 분명한 컬러와 빛이 살아 있지 않은가. 
그는 여성이었고 손이 예쁘게 나오길 바랐던 것이다.

 

 

첫째, 나는 시에 대해 얘기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요. 둘째, 나는 비슬라바 쉼보르스카, 즉 나에 대해 얘기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요. 셋째, 나는 정치에 대해 얘기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요. 그러면 우리 한테 남는게 뭐겠어요? 나는 당신들과 동물이나 식물에 대해서, 그리고 사랑과 우정에 대해서 조금은 얘기할 수 있어요.   - p284

 

 

     하지만 그녀는 시에 대해 자신에 대해 그리고 정치에 대해 결국 다 말하고 말았다.

 

 

 

 

 - Gabriel García Márquez (photo by  Kim Manresa) -

 

마르케스 의 손은 무엇보다 작으면서 바짝 깎은 손톱과 손등에 무성한 털이 인상적이었다.
남자의 손가락이라고 하기엔 다른 작가들 보다 훨씬 굵기가 작았다.
막일이나 바깥일을 전혀 하지 않는 느낌이 들었고 손이 젊고 건강한 편이었다.
저 아담하고 사실적인 손에서 마술적 리얼리즘이 그려진 것이다.

 

 

 

 

   가오싱 젠은 망명한 파리에서 자유롭게 그림을 그렸다. 귄터 그라스는 책을 하나 끝내면 그 손으로 조각을 했다. 자신처럼 작가이면서 미술가인 인물들의 작품을 전시하겠다는 포부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예술이 세상을 구원하진 못해도 적어도 자기 자신은 구원할 수 있고 좋은 시가 삶의 고통을 제거해주지는 못하지만 공포를 아름다움으로 바꿀 수는 있다고 믿었다. 그들은 살아 남았기에 수치스러웠고 유대인이고 흑인이며 여성이며 혼혈이고 반정부주의자 였기에 박해 받았다. 나는 아직 죽지 않았고 유대인도 아니고 흑인도 아니고 혼혈도 아니고 데모도 하지 않았다. 중요한 건 나는 작가가 아니다. 그러나.

 

 

 

 

#3. 나의 내일

 

 

 

 

 

 이것은 나의 손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손에 대해 치명적인 콤플렉스가 있다. 다섯 번째 새끼손가락을 보시라. 나의 새끼 손가락은 남들보다 딱 반 마디가 짧다. 가운데 마디의 생장점이 돌연변이를 일으켰는지 그만 눌러 앉아 버렸다. 안 그래도 손가락이 짧은 편이라 거의 초등 1학년 아이 수준이다.(다행히 아이는 내 손가락보다 길다. 유전이 아니었다) 살면서 새끼 손가락을 사용할 일이 많지는 않았다. 그런데 나는 그 놈의 새끼 손가락만 보면 괜한 자격지심이 드는 것이다. 무언가 신체 일부분이 제대로 다 자라지 못하고 기가 꺾였다는 둥 이 손가락으로 약속을 하는 것은 위험하다는 둥 내가 혹시 나중에 작가가 되어 저들처럼 사진기자가 내 손을 찍겠다고 하면 나는 보란 듯이 주먹을 쥐리라...등등 별 시답지 않은 생각을 이어가게 된다. 한술 더 떠 무언가 일이 잘못 되었을 때 괜히 손가락이 짧아서 그랬다고 말도 안 되는 탓을 돌리곤 한다.

 

 

   작가들의 손을 보면서 반사적으로 (시키지도 않았는데) 내 손을 겹쳐보았다. 한마디로 그들은 어른의 위대한 작품 같은 손이고 내 손은 아직 걸음마 아기 손이었다. 내 손은 아직 이렇다 할 삶의 무늬가 새겨지지 않았고 내가 걸어온 지도 같은 것도 보이지 않았다. 너무나 깨끗해 되려 미안 할 지경이었다. 어이없게도 이 짧은 손가락이 갑자기 사랑스러워지는 것이었다. 나는 아직 내일이 오지 않았다. 모든 걸 졸업하고 이제는 다 끝난 줄 알았는데 아직 많은 게 남아 있는 것 같았다. 저들처럼 슬며시 깍지를 끼어본다. 아직은 부드러운 마디가 한참이나 멀었지만 그래도 좋다. 나는 아직 아무것도 되지 않았으니까. 이 손은 더 진하고 더 주름질 날이 한참이나 남았으니까.

 

 

 

 

 

 

 

 

 

 

 

덧붙임)

 

이 책에 나딘 고디머의 <내 인생, 단 하나 뿐인 이야기 / 2007>가 잠시 소개 되었다.
에이즈 확산을 막기 위해 자선기금을 마련하고자 작가가 지인들에게 이야기를 부탁해 엮은 소설집이다.
<16인의 반란자들> 중에서도 몇 명이 이야기를 제공했다.

(귄터 그라스, 오에 겐자부로, 주제 사라마구,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그러니까 나딘 고디머 까지 다섯명이 일치한다. 이 책의 주인공과)

같이 읽어보려고 도서관에 찾아 보았더니 마침 대출중 ㅠ

생각보다 어렵다는 평이 많아 살까 말까 잠시 고민을 했다.

(누구 아시는 분 평가좀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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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2-02-10 22: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소개한 서재 이웃분들 많이 있던데, 인터뷰집이면서도 작가들의 손을 찍은 사진들도 있군요.
실물을 가늠해보자면 책이 클거 같아요. 그리고 마지막에 언급한 소설집은 읽어보지는 않았지만,,
소설집인데 인문학 책처럼 내용이 어렵지 않을거 같아요. 한사람님이라면 충분히 읽으실 수
있을거라고 봐요 ^^

그런데 님의 손이,,, 남자 손인줄 알았어요ㅎㅎㅎㅎㅎ 농담이에요 =3=3

한사람 2012-02-11 12:25   좋아요 0 | URL

예, 책이 일반 단행본보다는 조금 커요. 무겁기도 하구요.
종이질도 다르구요, 하하.
이런 기획을 했다는게 부럽고 작가들 좇아다니느라
고생한 경험도 부럽고 ㅋㅋ
글보다는 사진이 더 기억나요.

나딘 고디머의 책은 좀 지루할거 같은데
이 책에서 언급된 작가들이 나오니까 궁금해서리 ㅋ

제가 손이 좀 작아요. 손가락도 짧구요, 그런데 사진을 찍으니
더 퉁퉁하고 과장되보이네요 ㅠㅠㅠㅠ

stella.K 2012-02-10 22: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저게 한사람님 손이라굽쇼?
의외로 후덕하게 생긴 손인데요?ㅎㅎ
제 손은 길고도 굵은 편인데 그런 손이 또 게으르다더군요.
그래서 그런가 이렇게 꿈을 못 이루고 있습니다요.ㅠ
마침 이 책이 송경동의 책과 함께 이번 평가단 책으로 예약이 되어 있습니다.
아직 도착이 안 되고 있는데 발송을 했다니 곧 도착이 되겠죠.
이번 달 평가단 정말 끝장이었습니다. 책 선정은 최곤데 배송은 최악이라고나 할까요?ㅋ
저도, 두책이 도착되면 송경동 책부터 읽게되지 않을까 싶어요.
그만큼 말씀하신대로 읽기 보단 가지고 싶다쪽?ㅋㅋ

맨 밑의 책 몇년 전에 샀는데 넘 재미없어서 친구 줘 버렸던 기억이 나요.
저는 좀 취향이 아니던데. 가지고 있었다면 한사람님 보내드렸을 거예요.
여러 사람이 쓴 단편 모음이라 괜찮을 법도 할 텐데 저는 익숙하지 않은 작가들이
많이 나와선지 이상하게 질리더라구요.>.<;;

한사람 2012-02-11 12:32   좋아요 0 | URL

흑.. 실물로 보면 얇고 작아요 ㅠ
손재주 있다고 하는 손 ㅋ

공교롭게도 매번 에세이 평가단 책을 꼭 제가 먼저 읽게 되네요.
아무래도 담번 평가단때 그 쪽을 신청할까?? 봐요 ~~~ ㅋㅋ
에세이와 인문쪽이 겹치는 접점지대에 우리가 있군요 ㅋㅋㅋㅋ

그런데 지금이 몇일인데 아직 책이 안왔다니 음..
자꾸 일정이 밀리나보군요.
평가단이 얼리 어댑터의 성격도 있는 건데 출간된지 한달 지나서 읽고 글쓰면
좀 늦지 않나 싶어요.

그리고, 나딘 고디머의 책은 어쩐지 스텔라님이 읽었을거 같더라구요.
전에 미셸 투르니에 단편 이야기 하셨잖아요.
그 소설이 이 책에 있는 거 같아서 ..
그런데 역시 재미없다고 하셔서 ㅋ 담 기회로 미룰까봐용(역시 책은 운명이야 ㅋ)


잘잘라 2012-02-11 09: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쉼보르스카의 손 사진은 정말 뭉클하네요. 느낌은 완전 나무, 그것도 한오백년 살아온 고목같아요. 이 책, 처음엔 막 갖고싶었다가 시간 지나면서 시큰둥해졌더랬는데 님 페이퍼 읽고 다시 갖고 싶어졌어요. 결국 장바구니로..^^;; 참참참!『16인의 반란자들』리뷰대회 하던데요, 네24,에서요^^;;

한사람 2012-02-11 12:47   좋아요 0 | URL

그렇죠?? 여인의 손, 할머니의 손, 작가의 손 이전에 한오백년 살아온 고목!! 맞다, 그 말이 하고 싶었어요. 저도 처음에 혹해서 시큰둥 하다가 서점가서 들쳐보고 사진때문에 ㅋㅋ
안되겠다. 갖고 말아야겠다, 싶었어요.
많은 사진들 중에 좋은 것들만 책에 실었을 거잖아요.
그 나머지 안 뽑힌 사진들이 마구 궁금해요..

리뷰대회 소식은 저도 봤어요.
저는 요즘 리뷰대회가 재미없어 졌어요, 하하하
작정하고 각잡고 기획적인 구성해대는 것보다
그냥 이렇게 편하게 글쓰고 내 꼴린대로 떠드는게
좋아졌어요.
특히, 이미 사놓은 책도 대회한다고 하면 책이 별로로 보이고
소식을 들은 책은 안사고 싶어져요.(그래서 대회같은 거 일정전에 후다닥 써버리고 싶어요 ㅋㅋㅋ)

또 무엇보다 수상의 의미가 글쓰기의 발전과 비례하지 않는 것 같아
많이 회의적이 되었어요~

히히, 그래도 가끔은 적립금등의 유혹과 책선물에 혹할 때가 있긴해요.
근데 이 책은 그냥 잡문수준으로 마쳐야 할듯 ㅠ

메리포핀스님, 오랜만에 반가워요!

가연 2012-02-11 23: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아.. 뜸했습니다ㅎㅎ 글 내용보다는 한사람님의 손 사진이 먼저 눈에 들어오네요. 사실 저는 엄밀히 말하면 손금이 먼저 눈에 들어오지만, 풋.

한사람 2012-02-13 10:46   좋아요 0 | URL

손금볼 줄 알아요??
음 ~ 이건 제 생각인데
손금도 성장(?)하는 것 같더라구요.
손금대로 살아가는게 아니라 살아가는대로 손금이 만들어 지더군요 ㅋㅋ

바쁘신 듯한데,
사람은 바빠야 해요, 하하

보물선 2012-02-14 17: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잡아봤던 너의 손이구나! 바로!

한사람 2012-02-15 10:38   좋아요 0 | URL

그 손이야 !!! 내 손 작고 아담했지??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