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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마법사가 되고 싶어요

 

 

아이는 과학자가 꿈이다. 어쩌면 저렇게 나와 틀릴까, 나는 아이를 보며 매번 놀라곤 한다. 유치원 시절 과학관련 전시관에 많이 데리고 다니긴 했다. 일학년 때 어느 과학관에서 행사하던 과학 잡지를 6학년인 지금까지 구독하고 있다. 알라딘에서 검색하는 유일한 책은 ‘내일은 실험왕’이다. 기타 추리소설에 열광하고 영어도 특히 사이언스 과목 선생님들과 친분이 깊다. ‘외과의사 봉달희’에서 시작된 의학드라마에 대한 관심은 최근 ‘싸인’에서 정점을 이루었다. 주말 예능 할 시간에 EBS에서 하는 건강, 생로병사, 암, 한국인의 밥상 같은 다큐멘타리를 스스로 챙겨본다. 책상에 다른 여자아이들과 달리 드라이버, 펜치, 망치, 기타 알 수 없는 종류의 공구들이 박스로 가득하다. 여섯 살 때 잠긴 안방 문을 옷핀으로 열었다. 그래서 손에 맨날 상처투성이다. 욕실에서 뭘 하는지 궁금해 슬그머니 열어보면 샴푸와 린스를 비율에 맞춰 실험용기에 자기 스타일대로 섞고 있다. 향수도 섞고 화장품도 섞고 음식도 섞고 도대체 왜 섞는지 모르겠으나 일단 섞어 본다. 요즘도 재활용쓰레기를 제발 버리지 말라고 다 쓸 때가 있다고 해서 매주 월요일이 되면 실갱이가 벌어진다. 스티로폴이나 페트병은 망치기 좋은 실험재료이기 때문이다.

 

<현실, 그 가슴뛰는 마법>은 과학적 사고방식을 선호하는 아이와 추상적, 은유적 대화를 선호하는 엄마 사이의 간극을 해소하려는 목적으로 구입하게 되었다. 학교 다닐 때 나는 과학을 제일 싫어했다. 생물과 화학은 거의 암기과목이어서 그런대로 잘했지만 물리와 지구과학은 정말 싫었다. 달과 별과 해가 왜 뜨고 지는지 나는 그런 게 하나도 궁금하지 않았다. 계절이 왜 바뀌고 무지개는 왜 뜨고 지진은 왜 일어나는지 세상에 일어나는 자연현상에 참으로 무심했다. (달을보며 아이는 저 달이 상현달이지? 묻지만 나는 그저 반달일 뿐이다.) 그렇게 공부고 일이고 과학에는 관심이 없었지만 무슨 악연인지 사회에 나와서는 과학관 사업만 계속 맡게 되었다. 하필 전공이 과학교육을 어떻게 하면 더 창의적인 인재를 기를 수 있나, 그런 공부를 했기 때문에 우연은 아니었던 것 같다. 나는 무지개의 원리에는 관심이 없지만 그것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가르치면 사람들이 더 빨리 더 많이 이해할 수 있을까, 에 관심이 많았다. 과학자들이 설명하는 방식으론 과학에 관심 있는 학생들만 관심을 가지게 될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이른바 과학 선진국에 나가보면 우리처럼 어렵고 재미없게 과학을 가르치는 나라도 드물다.

 

과학 공부를 한 사람과 이야기를 해보면 도대체 왜 자신들이 이해하는 현상을 사람들은 이해를 하지 못할까 궁금해 한다. 그래서 자세히 설명해 달라고 부탁하면 그건 그냥 당연한 일이라 말한다. 일부러 골탕 먹이려고 설명을 안 해주는 것이 아니라 그들에겐 설명이 필요 없는 너무나 당연한 이치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개 천재에 가까울수록 설명은 바보 수준이다. 아는 것과 가르치는 것은 별개의 문제인 것이다. 분명 잘 가르치는 사람은 따로 있다. 그러나 잘 가르치는 재능을 타고 났다 해서 그 사람이 꼭 많이 아는 사람은 아니라는 것이 얄궂은 운명인가 보다. 나는 많이 알면서도 아주 쉽고 재미나게 가르치는 사람을 찾아 다녔다. 일단은 내가 정확하게 알아야 가르치는 방법도 다양하게 생각해볼 수 있기 때문이다. 드물지만 사회에서 가끔 그런 분을 만나면 눈물이 날 만큼 반가웠는데 과학관 일을 하는 동안 가장 인상 깊었던 인물은 최재천 교수였다.(나는 최재천 교수야 말로 마법사라 생각하는데 아이가 닮았으면 하는 모델이기도 하다. 욕심이 너무 큰 것일까) 당시 최교수는 서울대에 재직중이었고 지금처럼 유명하진 않았다. 문과냐 이과냐 하는 이분법에 익숙했던 나로선 문학적 수사가 가득한 설명을 들으면서 이분이 과학자인가 작가인가 그런 생각을 잠시 했었다. 왜 산에 나무가 있어야 하는지를 하나의 시나리오를 만들어 스토리텔링기법을 구사하셨다. ‘지속가능한 생태계’라는 막연하고 추상적인 결론이 구체적인 영상으로 표현되려면 과학적 지식 외에 특별한 상상력이 요구된다. 상상력은 과학만 잘해서 얻어지는 능력이 아니다. 다른 무엇을 보았고 들었고 읽었고 해보았기 때문에 떠올려지는 2차적인 사고의 영역이다. 그때 나는 설명을 들으면서 이분은 무언가를 엄청나게 많이 보고 읽은 분이라는 막연한 느낌을 받았다. 그런 놀라운 분이 자신의 책에서 다른 책을 이야기 할 때 꼭 빠지지 않고 언급하는 인물이 바로 리처드 도킨스 이다. 최재천 교수는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 때문에 가치관과 인생관, 세계관이 하루아침에 바뀌었다고 말한다. <이기적 유전자>는 우리에게 삶을 바라보는 전혀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기 때문이라고. 나는 아직 그 책을 읽어보지 못했는데 최재천 교수 덕분에 그 책이 유전자의 관점에서 모든 것을 재해석하는 책이라는 사실만 여러 번 확인한 독자가 되었다.

 

 

 

 

 

 

 

 

 

#2. 과학이 가슴뛰는, 마법이야

 

 

그런데 나는 정작 필독서를 들지 못하고 신간을 펼쳐들었다. 각 분야에서 읽어야 할 책은 너무나 많고 그들을 모두 거슬러 올라가기엔 능력이 안 되기 때문이다. 그럴 땐 지금 출간된 책으로 시작하는 것도 나쁘지 않은 방법이다. 지금부터라도 시작하면 다음에 또 이 책을 보아야 하는 부담을 덜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의 장점을 한마디로 말하자면 우리가 과학을 떠올릴 때 누구나 쉽게 하게 되는 아주 오래된 질문에 대한 ‘과학적인 대답’이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우리가 인생을 고민할 때 인간은 왜 죽어야 하나, 죽음이란 무엇인가, 하는 질문을 떠올리게 되듯. 이 책에 가장 끌렸던 이유도 바로 목차 때문이다.

 

저자는 현실이란 무엇이며, 인간은 언제부터 생겨났으며, 태양이란 무엇이며, 세상은 언제 시작되었으며, 왜 나쁜 일은 일어나며, 기적이란 가능 한 것인지 같은 아주 원초적인 질문들로 이 책을 구성했다. 저자는 이 책에서 각 장마다 화려한 일러스트와 함께 이야기 초두에 신화나 전설을 알려준 다음 그것이 왜 틀렸는지를 논리적으로 반박하는 구조를 취하고 있다. 신화적 상상력도 의미 있지만 더 중요한 건 바로 과학적 증거들로 가득한 우리 사는 현실이라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진짜 마법은 허구가 아닌 진실이며 진짜 기적은 종교가 아닌 우리가 알고 있는 과학이라는 것이다. 그것을 저자는 과학이 가진 고유의 마법, 즉 현실의 마법이라 칭하고 있다. 종교나 신화보다 더 경이로운 세계인 현실이 얼마나 가슴 뛰는 마법인가 하고 말이다.

 

이 경이로운 현실이라는 마법의 세계를 강조하기 위해 데이브 매킨의 일러스트는 무척 효과적이다. 사실 일러스트는 비과학적인 예술의 영역이고 이 책에서는 특히 시공을 초월한 상상력의 극한을 보여주는 장치로 활용되었다. 그래서 아이러니 하게도 이 책은 현실에 대한 소중함 보다는 현실 너머, 혹은 말도 안되는 환타지의 세계로 우리의 영감을 이동시키는 효과가 있다. 이 책은 글과 그림의 효과가 3:7로 보인다. 내용은 고교 수준인데 그림은 유치원수준도 많으므로 아이들에게 이해가 안 되면 그림만 보라고 해도 좋을 듯 하다. 판본과 그림 때문에 가격이 좀 비싼 것이 흠인데 이 부분은 서점에서 그림을 넘겨보고 결정해도 좋을 것 같다. 기타 과학교육에 곤란을 느끼는 학부모 외에 이차원적인 내용을 3차원적으로 연출하거나 공간화가 필요한 분들도 유용할 듯 하다.

 

인상 깊었던 그림을 하나만 소개하면 진화와 약간 비슷한 개념의 생명창조 신화를 표현한 그림이다. 가장 가운데 곤충의 세계인 붉은 세상이 있고, 이 곤충들이 기어 올라와 푸른 세계의 새가 되고, 새와 곤충들이 다음 노란 세계로 올라와 보니 그곳에 다른 포유류가 살고 있다. 모든 동물이 마지막 네 번째 세계로 올라오니 그곳에 낮과 밤이 있는 흑백의 세계가 있더라, 하는 생물의 다양성을 말해주는 그림이다. 생물의 다양성을 이런 식으로 표현한 그림을 본 적이 없다. (대부분 나뭇가지 계통도가 아니던가) 이 평면적인 그림을 입체화, 영상화한다고 생각하면 대단한 공간연출이 떠올려지지 않는가.

 

 

- 북아메리카의 원주민 '생명창조' 신화 (56p) -

 

이 책의 결론을 말하기 위해 마지막 장은 ‘기적이란 무엇일까’ 를 질문한다. 저자는 기적을 옹호하지 않기 위해 18세기 스코틀랜드 사상가 데이비드 흄의 문장을 인용했다.

어떤 기적에 대한 증언이 그것이 확증하려고 하는 사실보다 그것의 반증이 더 기적적인 종류가 아닌 이상, 어떤 증언도 기적을 확증하기에 충분하지 않을 것이다.    - 254 p

 

예를 들어 나와 가장 친한 친구가 이명박이 전 재산을 기부한 것을 보았다는 기적적인 이야기를 들려주었고 나는 친구가 거짓말을 할 리가 없다고 생각해 그 기적적인 일을 믿을까 말까 한다고 치자.

 

“나는 친구를 맹세코 신뢰해. 친구는 거짓말을 할 리가 없어. 친구가 거짓말을 한번이라도 한다면 그건 기적이지.” 라고 말했다면 흄은 이렇게 말할 것이라는 것.

 

“친구가 거짓말을 할 가능성이 아무리 낮은들, 친구가 보았다고 주장하는 사건이 기적일 가능성보다 더 낮을까?”

 

친구가 거짓말을 하는 일이 이명박이 전 재산을 기부하는 일보다 덜 기적적이라면 우리는 친구가 거짓말을 한다는 설명을 선호해야 한다는 논리이다. 흄은 기적이 불가능하다고 말하진 않았다.(그러니까 이명박이 전 재산을 기부할 수도 있다 ㅋ) 대신 기적을 개연성 낮은 사건으로 생각해보라는 것이다. 어떤 일이든 기적이라고 주장되는 사건의 개연성을 모종의 잣대에 올려 놓을 수 있다면 환각이나 거짓말 같은 터무니 없는 일과 비교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저자는 어떤 일이 발생했을 때 도저히 이해할 수 없고 설명할 수 없는 일이라고 하여 ‘초자연적인 사건’이라고 결론내리는 것은 불성실한 자세라 말한다. ‘초자연적’이라 치부해버리면 자연적인 설명은 영원히 불가능한 일이 되 버리고 이해하기를 포기하는 것 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중세시대엔 컴퓨터나 휴대전화 같은 기술이 초자연적인 마법의 현상일 수 있겠지만 지금은 너무나 당연한 일상이다. 그러니 과학적인 사고방식이라 함은 우리는 아직 이것을 이해하지 못했지만, 한창 고민하는 중이고 앞으로 더 관찰하고 연구하면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말해야 한다는 것. 쉽게 말해 평생가도 겪지 못할 확률의 기적에 기대고 현실을 무위화 시키는 환상에 의지하지 말고 과학이 해석하는 실재의 현실을 더 믿고 그 안에서 진실을 찾으라는 충고인 것이다.

 

#3. 종교가 가슴 뛰게 하는, 마법이지

 

 

하지만 기적은 비현실적이고 환상은 무용하니 과학적으로만 사고하자, 내 아이에게 그렇게만 주지하고 싶지는 않다. 어찌 보면 과학과 대척점에 있는 종교적 해답이지만 나는 차동엽 신부의 <잊혀진 질문>도 상반되는 대답으로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책은 꼭 리처드 도킨스라는 과학자의 질문을 종교적인 버전으로 변환한 내용 같다. 리처드 도킨스의 질문과 겹쳐지는 질문이 꽤 있다.(언제부터 세상이 생겼는가, 왜 나쁜 일이 일어나는가, 기적은 가능한 것인가 등) 하지만 답은 전혀 다르다. 우리는 살다보면 처음엔 과학문명의 분명한 혜택에 놀라다가도 곧 그것의 냉정함에 익숙해진 자신을 발견한다. 다음의 기술을 좇아 더 나은 생활을 추구하는 인간의 욕망이 꼭 마지막 해답일까 하는 질문을 하게 되는 것이다. 신화의 터무니 없는 환타지나 미신의 비과학적인 논리를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어쩐지 현실 너머에 초현실적인 마법의 세계가 있지 않을까 의구심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사람은 누구나 태어나 한번은 죽게 되는데 죽음 이후의 세계는 어떤 것일까, 죽고 나면 모든 것은 끝일까,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죽음 이후의 세계가 있건 없건 신이 존재하건 하지 않건 그런 생각과 질문을 하게 되는 것이 인간의 특성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과학자의 질문이나 종교인의 질문이나 모두 궁극의 리스트에 가까운데 우리는 그들의 영역을 피해갈만큼 대단하지 않기 때문이다.

 

차동엽 신부는 종교인이기 때문에 당연히 신의 존재와 사후 세계에 대해 과학자와는 반대되는 시각을 가지고 있을 터이다. 나는 종교인은 아니지만 과학과 종교에 대한 질문을 받게 되는 학부모로서 다음의 대답을 기억해 놓으려 한다.

 

확실한 것은 진화론은 인간이 어떤 과정을 통해 생성되었는지는 설명할 수 있어도 태초에 창조주가 있었는가 없었는가에 대해서는 답을 할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진화론이 반드시 창조론에 배치된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상호보완적인 관계에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 p 246

 

차동엽 신부는 신앙에 바탕을 준 종교와 합리성에 바탕을 둔 과학이 서로 보완관계를 가질 수 있다고 보았다. 창조론과 진화론 사이에 언젠가부터 우주 대폭발, 빅뱅이론이 끼어들기 시작했는데 이는 우주가 먼 과거의 어느 시점에 갑자기 존재하게 되었다는 뜻이다. 저자는 창조주의 치밀한 설계 없이 단지 우연히 빅뱅이 일어났을 가능성은 희박하며 하느님의 초자연적인 개입이 있었기에 이처럼 질서정연한 우주가 되었다고 본다. 그러니까 우주 밖에 있는, 아마도 자연계를 초월하는 어떤 존재가 우주를 존재하게 만들었을 것이고 그 분이 신이라는 설명이다. ‘저절로’ 생겨났다는 우주에 대한 해답을 필연적으로 생기게 했다는 창조주 하느님으로 바꾼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리처드 도킨스가 맞고 차동엽 신부가 틀리고(혹은 그 반대이고) 하는 정답 가리기가 아니다. 

 

책을 읽다보면 누구나 해당 분야의 전문가로서 자신의 분야를 말할 때 그것이 가슴 뛰는 마법이라고 하지 않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예를 들어 종교인이라면 종교는 마법이요, 문학인이라면 문학이 마법이다. 과학도 마법이고 예술도 마법이고 음악, 미술, 철학, 건축, 역사, 모두모두 가장 진실한 마법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그것을 평생 즐기면서 그 분야의 최고가 되었을 것인가. 마법이 되는 논리는 그 분야 전문가라면 전문가의 수 만큼 다양할 것이다. 중요한 건 세상에 저자만큼 다양한 마법 중에 어떠한 마법을 우리 현실의 답으로 택할 것인가 이다. 그리고 우리는 아이들에게 어떤 마법을 가장 근접한 삶의 해답으로 제시해줄 것인가 이다. 한가지 마법만 가르쳐 준다면 마법이 일어나지 않을 가능성이 더 많다고 본다. 우리가 알고 있는 마법의 종류가 많다면 아이들도 선택의 폭이 넓지 않을까, 하는 욕심이다.

 

과학적 증명이 가능한 현상과 그로 이루어진 충분한 현실도 마법의 세계이고 도저히 일어나지 않을 것 같았던 기적 같은 우연으로 생명을 건진 신앙의 힘도 마법의 세계이다. 무엇에 이끌렸는지 배운 사람들이 더 무당굿을 찾아 엄청난 돈을 쓰는 것도 마법의 세상이다. 눈으로 보고 있으면서도 믿기지 않는 마술사의 속임수도 그 순간엔 마법의 무대이다. 신화나 전설 같은 이야기도 강력한 마법의 상상력을 불러온다. 세상은 한 가지 방법의 마법만 있는 것이 아니다. 단지 그것을 저마다 마법이라 믿는 다양한 사람들이 존재할 뿐이다. 다 구경하고 그 중에서 자신만의 마법을 찾는 일은 어쩌면 모든 마법을 거부하고 곧 자신이 마법이 되는 일은 아닐까 싶다. 어떤 분야이건 그 분야의 마법사가 되는 아이들을 기다린다. 그러니 이렇게 훌륭한 마법을 찾아라가 아닌 네가 마법이 되어라, 바로 네 자신이 마법을 만드는 사람이 되어라, 우린 이렇게 말하는 부모가 되어야 하지 않을지.

 

물론 우리 자신은 그렇게 되지 못했기에 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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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리시스 2012-05-16 18: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리처드 도킨스..저거 표지.. 진짜 잼없게 생겼어요! 추천이예요, 한사람님? 책값이 비싸서 실물을 보고 싶어요, 인문서는 이상하게ㅋㅋㅋ

cyrus 2012-05-17 16:46   좋아요 0 | URL
저도 추천이요!! 오늘 학교 도서관에서 희망도서로 신청해서 방금 빌렸어요.
판형이 조금은 크고요, 생각보다 그림이 많아요 ㅎㅎㅎㅎㅎ
 

 

 

 

 

오늘은 스승의 날. 아이는 어제 밤늦게 까지 예쁘게 꽃을 만들어 학교를 가더군요. 좋아하는 학원 선생님도 드려야 한다면서 옷도 신경 써서 입었습니다. 요즘은 학교에서 공식적으로 학부모들의 선물을 거부하는 분위기가 많아 선생님 선물 때문에 고민하는 일은 없어졌어요. 그래서 일까요...

 

 

아이가 아닌 나의 선생님이 생각나더군요. 학교 때 그분들이 생각나 홈피를 기웃거려보니 세상에 아직도 교편을 잡고 계시더군요. 저 다닐 때 선생님이 지금 교장, 교감 선생님이 되셨고 국, 영, 수, 생물, 음악, 한문 등 당시 선생님들이 아직도 계시다는걸 알았습니다. 벌써 고인이 되신 분도 계셔서 마음이 이상해지는 것이었습니다. 25년 전에 지금의 저보다 젊었던 선생님들이 이제 초로의 신사가 되셨고 그 사이 나는 이렇게 나이들었구나 싶어 새삼 울컥했습니다.

 

 

같은 반이었던 동창생중 한 명(같은 중고등학교, 같은 대학 같은 과를 나온 친구입니다)이 얼마 전에 하필 저 읽는 신문에 커다랗게 사진까지 함께 기사화 되었죠. 엄청난 성공과 부를 거머진 비결에 대해 특집으로 다룬 기사였는데 그날은 서재에 사과글을 올리던 날이었습니다. 내가 잘 알던 친구의 성공을 기뻐하기 보다는 상대적으로 추락해 있는 제 자신이 한심해 울고 싶은 날이었습니다. 참 이상하게도 그날 TV를 틀었더니 뉴스에서 같은 반이었던 친구, 같은 과 였던 동기들이 작정을 하고 시리즈로 기자가 되어, CEO가 되어, 무슨 단체 임원이 되어 근사하게 인터뷰를 하더군요. 뭐 이런 날이 다 있나 싶었죠. 얘들이 오늘 날을 잡아서 나를 약올리려고 약속을 했나 싶을 정도였습니다. 평소에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가도 왜 내가 잘 아는 친구가 언론에 소개되면 나는 무언가, 그동안 나는 뭐하고 살았나 그런 생각 들 때 있잖아요. 물론 보이는 게 다가 아니고 어디 소개 되는 게 인생 전체의 행복과 성공을 말하는 건 아니겠지요. 하지만 머리로 잘 알면서도, 누가 시키지도 않았건만 그들과 나를 자꾸 비교해가며 그들보다 정체되어 있는 것 같은 현재 내 자신이 소름끼치게 싫어질 때가... 있습니다.

 

 

예, 저는 사실 현재의 제 자신이 몹시도 못마땅하고 원망스럽고 보기 싫은 경우입니다. 친구들처럼 잘나가지 않아서 그런 것일까 스스로 내면을 투시해보지만 그게 다는 아닌 것 같습니다. 엊그제 만난 강상구 기자가 그런 말을 하더라구요. 사람들은 살면서 자신의 일생에서 한번쯤은 스스로 잘나간다고 생각하는 시기가 있는 것 같다구요. 그런데 그 시기엔 자신이 잘나서, 혹은 마땅한 노력을 해서 보상을 받는 것이라 믿기에 그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지 커다란 행운이라 여기진 않는다고 해요. 그런 시간이 행운이었다고 여기는 순간은 그 잘나가던 시기가 지나간 뒤 뜻하지 않은 실패나 좌절을 맛본 후라고 하더군요. 그러니까 만약 지금 잘나가고 있다(고 생각된다)면 그건 행운이니 잘난 척 할 필요가 없다는 말씀이죠. 그런데 이 말도 결국은 잘나가 보았다가 다시 못나가 보았지만 지금 잘나가고 있으니 말할 수 있는 게 아닌가...싶었어요.

 

 

저는 그 행운의 시기를 지나 불운의 시간을 몇 년 보내었더니 이것도 적응이 되어 그런지 앞으로의 행운을 바라기 보다는 그저 더 이상 불운이 생기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만 더 커지더라는 것입니다. 희망에 대한 불신을 키우게 되면 아무것도 도전하지 않아도 되니까요. 그런데 근 한 달간 우울한 심경으로 뚜렷한 대책 없이 책만 대하고 있었는데 고등학교 시절 선생님의 이름 석자와 주름진 사진을 뵈니 무언가 가슴이 두근거리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 중 한분은 저에게 헤르만 헤세 같은 작가가 되거라, 이런 말씀도 해주셨어요. 꿈의 리스트에 작가를 올려놓지 않았던 저는 그 말씀을 흘려 들었고 <데미안>을 읽고는 이런 지루한 글을 쓰고 싶지는 않다고 생각했죠. (중학생때이니 그 책을 제대로 이해나 했겠어요?) 그 중 한분은 정치인이 되라고 하셨는데 제게 '선동'의 에너지와  '설득'의 정신이 공존한다, 뭐 그런 어려운(당시엔 이해하기 힘든) 말씀을 해주신 분도 있었어요. 물론 그 말씀도 아주 훗날 생각이 난 것이지만요. 제가 아주 좋아했던 국어 선생님은 제가 국문학과는 어울리지 않을 것 같다고 하셨어요. 당시 저는 시나 시조, 산문쓰기 같은 학교 백일장 대회에서 미리 여러 작품을 생각나는 대로 써 놓고 친구들에게 나누어 주었어요.(대충 같은 계절에 시행되기 때문에 주제도 거기서 거기니까요. 또 벗어나더라도 상관없었으니까요, 하하) 빨리 제출하고 남은 시간 최대한 놀았습니다. 글쓰기에 대한 진정성이 없다고 생각하셨죠. 하지만 돌아보면 직업적으로 늘 펜대를 굴려야 했고 시나리오니, 큐시트니, 기획서니 하는 문서상의 평가를 받아야 했습니다. 작위든, 효율이든, 감동이든, 어떻든 제가 쓴 글에 세상은 반응을 보였고 글과 관련된 일을 가장 잘하는 사람이 되어 있더군요. 스스로도 싫어했고 매력있다 여기지 않았지만 저는 지금도 글을 쓰고 있습니다. 그게 제 현실이고 현재의 저를 가장 정확하게 말할 수 있는 지표입니다.

 

 

그러나... 글을 쓰고 있는 현재의 모습에 그다지 자부심을 느끼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내가 잘 할 수 있다고 믿는 것과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일치시키는 과정이 제게는 불운의 시기였기 때문에 더 그런 것 같습니다. 글과 불운을 분리하고 어떠한 인과관계를 만들지 말아야 하는데 말입니다. 문제는 이 불운의 시기가 끝이 안 보인다는 것. 그렇기 때문에 내 자신에 대한 신뢰와 욕망 사이의 불일치는 연속적이라는 것. 이것이 현재 제가 가진 딜레마이고 모순이며 풀어야 할 과제인 것이죠. 추측컨대 불운이 지속된다면 계속하여 글을 쓰고 있지 않을까... 이런 씁쓸한 생각을 하게 됩니다.

 

 

스승의 날을 맞아 선생님들이 해주신 말씀들을 떠올려 보았습니다. 창피하지만 1년 동안 강의를 한 적이 있어서 아직까지 스승의 날이 되면 메일로 감사의 인사를 보내는 제자가 있습니다. 저는 아직 어떠한 답장도 쓰지 못 하겠더라구요.(벌써 삼년 째 씹었네요 ㅠ) 살면서 도덕에 어긋나거나 법을 위반하거나 남에게 피해를 주면서 살아온 것 같진 않은데 누군가에게 떳떳하지 못하다는 생각이 많은 요즘입니다. 방황이 생각보다 길다는 생각을 합니다. 세상은 빠르게 변화하고 사람들은 서로를 쉽게 잊고 오늘의 친구는 내일이 적이 되기도 합니다. 계절은 번뇌를 기다려주지 않고 노화는 예외를 두지 않습니다.

 

 

한때 스승을 꿈꾸었거나 스승이었던 적이 있었던 분들을 그립니다. 잊지 못할 스승으로부터 잊지 못할 한마디를 기억하는 모든 분들을 떠올립니다. 지금 누군가의 스승인 분들도 생각합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스승이 없이 살 수 있는 사람은 없는 것 같군요. 일 년이 가도 여간해선 스승 생각같은 건 하지 않고 살았기에 오늘 하루만의 감사가 어색하고 인위적이기 짝이 없는 꼴입니다. 그래서 누군가에게 편지를 쓰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해 이곳에다 아쉬움만 남겨놓습니다. 오랜만에 그리움이라는 단어를 조용히 뱉어 봅니다. 여지없이 목에 걸립니다.

 

 

선생님... 죄송합니다. 보고 싶네요...

내년엔 좀 더 떳떳해질 수 있겠지요... 그래야 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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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5-16 00:2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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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5-16 13:0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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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5-25 17:5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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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5-26 13:1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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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저자와 얼굴 마주하기

 

 

작가가 되고 싶은 사람은 많은 것 같다. 더 정확히는 베스트셀러의 저자가 되어 거액의 인세를 챙기고 대형서점에서 개최된 근사한 사인회에서 줄서 있는 독자에게 덕담을 적어주고 싶어 하는 사람이 많은 것 같다. 작가가 아니더라도 베스트셀러를 써내는 사람들은 많다. 최근엔 기성작가들이 아닌 각 분야 전문가들이 외려 더 베스트셀러에 가까운 듯하다. 그래서 출판기획이 사회적 요구와 잘 부합해 인기를 얻은 경우 작가의 역량이라기보다는 운발이라는 생각이 많았다. 어제 그렇다고 여겨온 저자를 만났다. 하지만 만나보니 그는 나름 고전해설을 위해 시간을 많이 투자해온 분이었고 겉으로 보이는 것으로만 편견을 가진 내가 부끄러웠다.

 

 

 

 

 - 강상구 저자와의 만남 / 홍대 리브로 , 2012. 5. 10. PM 7:30 -

 

 

 

책이 얼마나 팔렸는지는 별 관심이 없었다. 사실 저자도 크게 궁금하지 않았다. 시상식엔 딱 한번 가보았는데 그것도 아이와 함께 고궁을 관람하는 기회라 참석한 것이었다. 날짜가 다가오자 참석을 촉구(?)하는 연락이 왔고 빠지면 식순에서 하나의 순서가 날아가는 상황이라 할 수 없이 참석했다. 리뷰를 직접 낭독해달라는 난감한 경우였다.

 

 

내가 쓴 리뷰를 저자 앞에서 읽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사람들 앞에서 내 글을 읽는다는 것도 창피했지만 그 책을 쓴 저자 앞이라 더 어려웠다. 평소 내가 써온 리뷰에 비하면 굉장히 짧은 글이었음에도 낭독의 시간이 너무나 길게 느껴졌다. 마치 내가 쓴 글을 한자 한자 끝까지 내가 책임지는 기분 이었달까.(글을 읽으면서 리뷰에 저자나 작품을 비판하는 내용이 없어서 얼마나 다행이라고 생각했는지...)

 

 

리뷰를 읽어내려 가면서 나는 순간 스스로 내 진실성(?)을 오롯이 느낄 수 있었다. (너무 오글거렸다 ㅠ) 내가 느끼고 쓰고 싶었기 때문에 쓴 글자가 다시 내 입을 통해 진짜 가슴에 와 닿는 기분이 들었다. 아...내가 이런 말을 했었지... 그때 이런 심정이었지... 그 옛날 이런 일이 있었지... 정말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으면서도 그 글을 쓴 사람과 동일한 사람이 나라는 사실은 새롭고도 신기한 경험이었다. 이곳에 리뷰를 올려놓고도 내가 그런 내용의 책을 읽고 글을 남겼는지조차 모르고 살아오지 않았나 싶다. 그런 생각을 하니 내가 세상에 떠든 말, 내가 쓴 모든 글들을 어떻게 다 갚고 살아가나 새삼 걱정이 되었다.

 

 

책이라는 것이 그 책을 읽고 리뷰를 쓸 때는 해당 책의 주장과 문장의 감동에 빠져 있기 때문에 사실 사고의 폭이 넓어질 것 같아도 의외로 편견에 사로잡힐 때가 많다. 그래서 그땐 칭찬을 마구 했다가도 다음번 작품엔 반대로 욕을 퍼부을 수도 있다. 책 쓴 사람과 리뷰 쓴 사람이 같은데도 그런 일은 빈번하다. 그런데 막상 내 리뷰를 해당 저자들 앞에서 읽는 상상을 해보았더니 얼굴이 뜨거워서 견디기가 힘들었다. 저자는 자기 책의 리뷰는 하나도 빠짐없이 다 읽었다고 했다. 마음을 들킨 것 같아 흠칫 했을 땐 해당 독자에게 몰래 댓글도 남기고 했단다. 가끔 나도 저자나 편집자의 댓글을 받아 본 적이 있었지만 그땐 좋은 평이었기에 서로 웃을수 있었다. 잔뜩 비판만 늘어놓았다면 댓글도 달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책값을 지불했다는 이유로 솔직하게 비판하는 것은 독자의 권리라 생각했는데 저자가 컴퓨터 화면 바로 앞에 있다고 생각하니 마음은 한없이 약해지고 또 그렇다고 솔직하지 않아야 하는가 생각하니 복잡한 마음이었다.

 

 

- <마흔에 읽는 손자병법>의 한사람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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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졸업하고 첫 직장에서 맡은 첫 프로젝트가 국내에서 가장 큰 규모의 전시행사 공모전이었다. 나는 싸우는 방법도 이기는 방법도 모르는 신참이었다. 공모는 1등만이 설계와 공사권을 얻게 되는 전쟁. 단 한 번도 질수 있다는 생각을 해보지 못했다. 그때를 생각하면 아직도 코끝이 시큰한데, 나는 거의 한 달을 집에 들어가지 않고 회사에서 잡아준 호텔방에서 혼신의 힘을 쏟아 부었다. 최선을 다하게 되면 최종 결과물을 보고 우리 것이 최고라는 착각을 하게 된다. 그러나 결과는 아쉽게도 2등이었다. 받아들일 수 없었다. 분명 우리 작품이 1등보다 훨씬 낫다고 생각했기에 충격이 컸다. 나는 바보같이 과로와 탈진으로 회사 근처 병원에 삼일동안 입원했다. 퇴원하고 나서야 대표는 처음부터 회사가 정해져 있었지만 들러리가 필요해 이해관계상 형식적으로 참가한 것이라 고백했다. 기왕지사 직원들에게 경험을 시켜주려 했는데 정도 이상으로 열심인 나에게 차마 말할 수가 없었다고 했다. 아무것도 모르고 당선만을 위해 달려온 시간이 억울하진 않았다. 대기업의 공식 협력회사로서 따로 내정된 회사가 있었다는 사실이 놀랍지도 않았다. 아직 물정을 잘 모르는 신입사원을 기만한 대표가 야속한 것도 아니었다. 사회 첫 발을 내디딘 내게 있어 첫 패배는 이긴다는 것의 의미와 싸움에 뛰어드는 투사의 자세를 질문하게 하였다. 지금도 그렇지만 로비도 실력이고 운도 실력이다. 모든 것이 갖춰져 있지 않으면 싸움에 참가하지 않는 것이 옳은 처사이다. 즉, 싸워야 할지 말아야 할지를 판단하는 일은 싸우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이었다. 이 책을 읽고서 제일 먼저 떠오른 생각은 그래도 그때 혹독한 경험으로 전쟁의 기술을 빨리 깨우쳤구나 하는 것이었다.

 

첫 프로젝트의 대 실패 이후 나는 위에서 시키는 대로 회사의 경험을 위해 투입되는 일은 시작하지 않았다. 처음부터 승률이 없는 게임은 하지 않겠다고 당돌하게 선언을 했고 승률이 반 이상 되는 경우엔 영업팀에게 70%까지 가능성을 올린다음 맡겨 달라 요구했다. 영업팀은 가능성을 항상 부풀려 보고하고 변수가 많기 때문에 다 잡았다고 하는 건 반 정도라 생각하면 되었다. 영업이 확실하다 할 경우 그 다음으로 프로젝트 참여자를 분야별 최고 실력자로만 구성해 달라 요청했다. 용역비 조금 아끼겠다고 B급의 인력을 쓴다면 B급의 작품밖에 나오지 않음을 설득시켰다. 그 다음엔 공고가 떨어지기 전에 이미 작업을 반 이상 해 놓아야 된다고 주장했다. 보통 공모 작업기간은 길어야 두 달이기 때문에 수준 높은 작품을 제출하기가 사실상 어려운 기간이었다. 날짜를 받아서 그때부터 아이디어 회의에 들어간다는 건 지려고 하는 게임에나 해당된다. 실제 공모기간 중엔 완성도를 높이고 수정하는 과정을 반복해야 완벽한 차별화를 줄 수 있다고 믿었다. 그 외에도 프로젝트에 키key를 가지고 있는 전문가를 참여시켜 핵심자료들을 다 받아놓고 다시 그 전문가를 심사위원으로 위촉하는 전통적인 로비는 기본이었다. 공모 작업 중간에 경쟁사에 역정보를 흘려 함정에 빠트리게 하는 것도 필수적인 고도의 심리전이었다. 당선 시 사장으로부터 참가자에게 지급되는 보너스나 혜택을 미리 받아 놓고 프로젝트가 삼분의 이쯤 진행되었을 때 사기차원에서 흘리기도 했다. 일일이 다 열거 할 수 없지만 나는 이기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팀장이 되었고 내가 팀장이던 시절 우리 회사, 우리 팀, 그리고 나는 승승장구 했다.

 

그렇게 나는 스물일곱 살에 팀장을 달고 임원회의에 참석했다. 공모에서 진 적이 딱 한번 있었는데 그것도 1등한 회사와 사전에 협약이 되어 있어 결국 시공권은 우리가 가져오게 되어있는 프로젝트였다. 우리는 영업, 기획, 디자인, 자문, PT에 있어 자타공인 막강한 팀으로 성장했다. 내 역할은 모든 사람을 모으는 프로젝트 매니저이자 기획 및 연출이었다. 공모는 속도전이기에 시간이 생명이었고 순발력, 추진력이 없으면 생존할 수 없는 게임이었다. 본의 아니게 많은 사람에게 상처를 주었고 어떤 직원은 회사에서 잠시 눈 붙인 사이 꿈에서도 내가 결과물을 닦달 하더라며 볼 멘 소리를 하곤 했다. 지는 건 죽는 만큼 싫었고 이기려면 확실히 이겨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이기기만 하다 보니 나는 어느새 업계에서 가장 표독하고 악명 높은 팀장이 되어 있었다.

 

마흔이 넘어 이 책을 읽으니 새삼 이 삼 십대의 내가 생각나 감회가 새로웠다. 돌이켜 보니 나는 회사 입장에서 썩 괜찮은 장수였다. 이기기 위해서는 반드시 누군가가 우리에게 져야 했으며 자주 우리에게 속아야 했다. 패배한 사람의 사정 같은 건 생각할 겨를도 없었고 승리한 것은 우리가 잘나서 된 것이라 믿었다. 이기는 것도 습관이 되다보니 싸우기 전에 판세를 읽는 능력은 물론이고 되지 않을 싸움엔 과감히 도전하지 않는 판단력도 생겼다. 즉, 손자병법에서 말하는 이길만한 싸움에서 쉽게 이기는, 진짜 싸움 잘하는 사람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전쟁을 전제로 할 때만 유효했다. 그것도 한 십오 년 이상 하다 보니 재미가 없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사람들은 내게 반드시 이겨야만 하는, 회사의 사활이 걸린 프로젝트만 맡겼다. 나로선 매번 내 승률을 걸고 꼭 이겨야 하는 싸움이니 한 치의 실수도 허락되지 않는 최상의 완벽함만이 요구되던 지독한 시간들. 내게 있어 한 번의 패배란 곧 추락이요 잠정은퇴와 같았다. 그건 져보지 않았기 때문에 온전하게 감당해야 하는 고통의 옥쇄였달까. 딱 한번만 지고 싶었다. 그러나 그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길 수도 질 수도 없었을 때. 어떻게 하면 일등을 하는지도 잘 알고 그렇게 하기만 하면 되지만 어느 순간 승리의 목전에서 청개구리처럼 반항심이 고개를 쳐들고 말았다. 나는 왜 일등만을 해야 하는가. 나는 왜 이기기만 해야 하는가. 아니 나는 왜 싸우기만 해야 하는가......

 

전쟁터에서 승리의 의미와 이유에 대해 질문하는 순간 그 전쟁은 패배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결국 나는 일등을 만드는 일이 지겨워서 서른 여덟에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을 접었다. 말리는 사람이 많을 것을 예상하고 아예 사람들이 찾을 수 없는 곳으로 도망을 가버렸다. 누군가를 이기지 않아도 된다는 게 그렇게 홀가분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그것도 시간이 지나니 이겨야 할 대상이 없다는 사실이 허전해지고 점점 두려워 지기 시작했다. 싸움도 하지 않았는데 이미 패배해버린 느낌은 또 다른 싸움이었다. 싸움꾼을 그만두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내가 이겨야 할 상대는 내 자신밖에 없음을 깨달았을 때 나는 목이 메었다. 자신과의 싸움은 사는 동안 누구도 피할 수도 중단할 수도 없는 예약된 전쟁이었다. 그때 내가 저자가 발견한 손자병법의 미덕을 만났다면 어땠을까. 마흔이 넘어 돌이켜보니 그때나 지금이나 진정한 싸움의 바탕에 상대를 짓밟는 기술이 아닌 상대를 끌어안는 배려가 숨어 있다는 생각은 해보지도 못했다. 저자가 결론으로 말하는 ‘서로에 대한 존중’, 나아가 ‘공존의 철학’이 싸움의 기술을 뛰어넘는 더 큰 지혜임을 알았더라면 나는 아마 조금은 더 현명한 선택을 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다행히 아직 늦은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다. 손자가 지적했듯이 가장 좋은 승리는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이다. 더 나아가 싸워서 얻을 것이 없다면 싸우지 않는 것이 현명하다. 전쟁의 기술은 신중한 판단을 위해 준비하는 것이지 전쟁을 선택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싸움의 비법은 싸우기 위해 마련한 것이 아니고 싸우지 않기 위해 준비하는 것이다. 그러나 슬프게도 우린 살다보면 자주 싸워야 할 때가 있다. 어쩌면 질 것을 예상하고도 할 수 없이 싸워야 할 때도 있다. 마지막 승리를 위해 그 전까지 지는 시간을 견뎌야 할 때도 있다. 오늘 내가 배운 지혜는 바로 피할 수 없는 경쟁자를 공존의 동반자로 인정하는 자세이다. 상대가 없다면 나는 싸울 수도 없고 그렇기 때문에 얻는 것도 발전도 없을 것이다. 여의치 않다면 싸움을 포기하는 것만이 용기가 아니고 상대라는 적을 함께 가는 친구로 여기는 것도 대단한 용기이다. 무엇보다 내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긴 후라야 가능한 자세이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나이 들면서 점점 상대에 지는 것보다 내 자신에 지는 것이 더 슬프고 분하게 느껴진다. 내 자신에게 먼저 혹은 나중에 무너지는 것이 가장 뼈아픈 패배라 생각된다.

 

내게 마흔 이전의 손자병법은 세상을 향한 처세술에 불과했다. 그런데 마흔을 지나 다시 만난 손자병법은 내 자신을 향한 잠언집에 가까운 듯하다. 그것은 아마 저자처럼 지난시절 수없이 싸우기도 이기기도 지기도 했기 때문일 것이다. 결국 싸움의 시작은 자신과의 싸움이고 싸움의 끝도 자신과의 싸움이었다. 사람들이 싸움을 기피하는 이유는 패배때문이 아니라 시작하기가 두려서가 아닐까. 그것은 곧 자신과의 싸움이 세상에서 가장 힘겨운 전쟁이기 때문일 것이다. 조용히 내일의 인생을 떠올린다. 그것은 제 2의 인생을 시작하기 위한 싸움이어야 할 것이다. 싸우지 않고도 충분히 이길 수 있도록 나는 오늘도 싸움의 기술을 연마하고 싶다. 상처와 실패가 없는 완벽한 승리를 위해 싸움을 준비한다고 생각하니 조금은 가슴이 아련하다. 아마 인생은 이렇듯 싸움을 포기 하지 않기 위해 내 자신과 전쟁을 벌일 수밖에 없는 지독한 여행인 것인가 보다. 이 전쟁 같은 여행길에서 오늘 단비와도 같은 가이드를 만났으니 어찌 반갑지 않을 수 있겠는가.

 

 

- 부끄럽게 리뷰 읽는 한사람 -

 

 

펼친 부분 접기 ▲

 

책을 읽으면서 참 옛날 생각이 많이 났다. 그래서 무언가를 끄적였고 리뷰도 책보다는 그저 내 과거사가 중심이 된 내용이었다. 그런데 저자도 직장인이다 보니 조직에서 승리만을 위해 단맛 쓴맛을 처절히 겪어온 시간에 많은 공감을 해주는 듯했다. 그래서 더욱 가깝게 느껴졌는지 모르겠다. 짧은 악수와 눈웃음 이었지만 진심으로 고마워하는 듯 했다. 언젠가 저자와의 만남에만 일 년을 쫓아 다녔는데 남는 게 별로 없었다는 이웃 분이 생각났다. 어떤 기분인지 알 것도 같았고 그렇지만 결국 부러워하기 보다는 자신의 노력과 의지가 더 중요하다는 말씀으로 해석하고 싶다. 집에 돌아와 보니 책에 뜻밖의 문구를 적어주셨다. 곰곰이 생각해보다가... 나름의 결론을 내렸다.

 

 

 

#2. 저자와 마음 마주하기

 

 

저자가 내 리뷰를 읽고 무언가 반응을 보여준 경우는 작년에도 한번 있었다. 박범신 작가의 <나의 손은 말굽으로 변하고>의 리뷰를 올렸는데 이 리뷰를 읽고 작가는 내게 책을 한권 보내주셨다. 작가는 내가 팔로잉하는 트위터 팬이었다. 트위터에서 내가 작가의 책을 떠들었더니 어디가면 볼 수 있냐고 하셨다. 그때도 진짜 읽어 보실 줄은 몰랐다.(다행이 어떤 흉도 없었다 ㅋ) 워낙 팔로워도 많고 팬도 많으실텐데 일일이 다 읽어보고 답을 해주실 것이라 기대하지 않았다.

 

 

트위터를 요즘은 자주 하지 않지만 팔로잉하는 작가는 이외수, 박범신 딱 두명이다. (황석영 작가도 있지만 거의 트위터를 안하심) 박범신 작가는 작년에 교수직을 그만두시고 고향으로 내려가면서 혼자 계실 때 가끔 트위터에 달보고 예쁘다는 식의(?) 글을 올려주셨다. 손수 찍은 호수사진과 여행사진, 취미로 만든 가구 사진들도 기억난다. 막내까지 결혼시키고 신변에 많은 변화를 겪으신 듯했다. 가끔 술을 드시고 음주 트윗을 발사하셔서 담날 후회하는 글도 여러 번 보았다. 작가이면서 생활인으로서 아버지의 역할을 말씀 하실 때 울컥하여 아버지 생각에 꼬박 답을 해드린 기억이 있다.

 

 

이 책은 바로 트위터와 페이스 북을 통해 심경을 알려주실 때, 작년과 올 초까지 작가의 일기를 모은 에세이이다. 이 책을 마립간님에게 선물 받았다. 한동안 내가 이 책을 누군가에게 받았다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하던 시간이 있었다. 기분전환하라고 보내주셨는데...참...당연히 고맙다는 인사를 할 타이밍도 놓쳤다.(죄송합니다 ㅠㅠㅠ) 마음이 진정되고 빡빡한 인문서에서 벗어나 휴식 같은 에세이를 집어드니 그제서야 이 책이 내게 흘러 들어온 인연의 궤적이 차례차례 떠올랐다. 트위터, 리뷰, 답장, 다시 리뷰, 낭독, 같은 기억, 그리고 선물... 모두 내가 이곳에 글을 쓰고 올리면서 이어진 일이고 내가 허공에 떠든 말, 써댄 글 때문에 비롯된 결과였다. 그리하여 지금 나는 그 모든 것을 하나로 엮어 다시 재구성된 글을 쓰고 있다.

 

 

소설도 글에서 솔직하다고 느낄 수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 평소 나는 박범신 작가의 소설에선 다른 작가들보다 더 솔직함을 느꼈는데 그것은 표현의 가공이나 기법을 떠나 그냥 내 직관으로 판단하게 되는 영역인 듯하다. 그 말을 해야겠다고 생각하면 꼭 그 단어를 쓰시는 분. 이번 <나의 사랑은 끝나지 않았다>는 그야말로 인간 박범신의 날것 고민과 벌거벗은 영혼에 대한 기록인 듯하다. 작가도 인간이고 그렇기 때문에 장점도 단점도 우리와 다르지 않다. 평소 트윗에서의 문장을 보면 여성적인 감수성이 물씬 느껴질 때가 많은데 이 책은 사진과 함께 더욱 감성적으로 다가온다.

 

 

작가로서 큰 부자가 되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 권력도 영향력도 없다. 그러나 좌고우면하지 않고 작가의 길 걷다보면 이웃들로부터 이런, 애련한 사랑을 얻는다. 내겐 산삼이 산삼이 아니라, 사랑이 산삼이다. “사랑이 없으면 / 우리들은 무엇으로 자기를 극복할 수 있겠는가.” 괴테의 시구가 떠오르는 아침이다.      -192p

 

 

아는 후배가 산삼주와 야생국화차를 들고와 일상에서 느낀 소회를 적으신 글이다. (물론 혼자 술 드신다는 시간이 많으니 선물이 남달랐을 듯 ㅋ) 작가는 평소에도 자본주의의 폭압에 대해 ‘정치적’이 아닌 아주 ‘개인적’인 감상을 많이 남겨 놓으셨다. 작가로서 사적으로 괴로워하는 것이 무엇인지 어쩌면 자신의 작가생활에 대한 위로이자 연민은 아닐까, 그런 생각도 들었음이다.

 

 

각설하고, 작가로서 살아, 내가 받은 축복이 있다면 비교적 자유롭게 살았다는 것과 정체될 겨를이 없었다는 것이다. 나의 자유란, 이를테면, 청와대에 들어간다 해도, MB가 결코 나보다 높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아울러 그곳의 수위, 청소원이 결코 나보다 낮지 않다는 식의 믿음, 인간중심주의 자유를 말한다. 권력 중심, 돈 중심의 서열에 눌려선 자유롭다고 말할 수 없다. 소중한 것은 지향과 감각이다. 내 손, 내 눈, 내 오장육부에 찍혀 온전히 ‘내 것’으로 만들어진 그 무엇이야말로 참 자유일 것이다. 예컨대 고산에 오르는 알피니스트는 발걸음 하나마다 목숨이 걸려 있으니, 진정으로 자유롭다고 할 만하다.     -269p

 

 

작가는 자본이 만들어준 편리성에 따른 자유란 다시 우리를 속박하는 프로그램일 뿐이라 말한다. 자신으로부터 비롯된 ‘소중한 지향과 감각’을 잃지 않고 살아온 작가로서의 자유는 박범신 작가가 이루어온 다른 성취보다 부럽고 근사하게 느껴진다. 무엇에도 지배당하지 않는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자유를 얻기 위해 작가가 되기보다는 유명해지고 인정받기 위해 작가가 되려는 사람들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물론 작가가 유명해지고 인정받았기 때문에 저러한 말을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유명해지고 인정받는 일은 돌아보니 자유와 사랑보다 중요한 일이 아니었다는 말씀은 아닐까...

 

 

박범신 작가는 능력에 대한 자유가 아닌 의지에 대한 자유를 말했다. 얼마 전에 박진영이 자신은 자기가 할 수 있는 능력으로 최대한 자유를 누리기 위해 17년 동안 자기관리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는 말을 했다. 패티김도 오십 년 동안 최고의 가수로서 인정받는 공연을 하기 위해 지독히도 자신을 괴롭혀 왔다고 회상했다. 대중들이 보기에 한 분야에서 대단히 자유로와 보이는 사람은 그만큼 자신의 다른 자유를 희생했기 때문은 아닐까 싶다. 능력을 발휘하는 것에도 누구보다 자유롭고 사고나 의지의 발현에 있어서도 자유로운 사람이라면 그 사람은 세상의 평가에는 별 관심이 없는 지경의 인물일 것이다. 그런 사람이라면 우리가 생의 목표로 삼아도 좋을 모델이 아닐까...

 

 

 

 

덧붙임)

 

 

 

 

 

- '바람의 노래'(1997. 16집)는 내가 아는 조용필의 가장 마지막 히트곡이다.
영상은 90년대 후반 <이소라의 프로포즈>의 한 장면이다.
엊그제 ‘나가수 2’에서 이영현이 불렀고 작년에 ‘위대한 탄생’에서 손진영도 불렀다.
최근 40주년 콘서트 영상은 얼굴이 잘 보이지 않아서 이 영상을 올린다.
가사 중엔 ‘이제 그 해답이 사랑이라면 나는 이 세상 모든 것들을 사랑 하겠네’라는 구절이 있다.
우린 해답이 사랑인 줄도 얼추 알지만 어쩐 일인지 그렇게 살기가 쉽지가 않다.

<마흔에 읽는 손자병법>의 강상구 저자와
<나의 사랑은 끝나지 않았다>는 박범신 작가를 떠올리며 이 노래의 가사를 조용히 새기고 싶다.

 

 

 

살면서 듣게 될까 언젠가는 바람의 노래를
세월가면 그때는 알게 될까 꽃이 지는 이유를
나를 떠난 사람들과 만나게 될 또 다른 사람들
스쳐가는 인연과 그리움은 어느 곳으로 가는가
나의 작은 지혜로는 알 수가 없네
내가 아는 건 살아가는 방법뿐이야
보다 많은 실패와 고뇌의 시간이
비켜갈 수 없다는 걸 우린 깨달았네
이제 그 해답이 사랑이라면
나는 이 세상 모든 것들을 사랑하겠네

 

- 김순곤 작사, 김정욱 작곡, 조용필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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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5-11 13:1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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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5-13 15:5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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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거핀 2012-05-11 13: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능력에 대한 자유가 아닌, 의지에 대한 자유..말씀하신대로 목표가 되는 삶이기도 하고, 부러운 삶이기도 하네요. 조금 더 치열하게(오랜만에 쓰는 단어인 것 같은데..) 생각을 하고, 실천을 해야겠지요. 갑자기 저를 돌아보게 됩니다.^^

한사람 2012-05-13 15:53   좋아요 0 | URL

자유라는 건 혼자사는 세상에선 중요하지도 어울리지도 않는 단어인듯해요.
억압과 규제, 관계와 속박, 책임등이 있기 때문에 간절한 것이겠죠..
자유로와 보이는 사람들은 참 부럽긴 한데,
저더러 그렇게 살아라 한다면..
자신없습니다 ㅋㅋ

엄청난 자유는 곧 그만큼의 외로움인 것 같아서요 ㅠㅠ

마립간 2012-05-11 13: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전쟁의 의미와 이유를 곱씹으면서 종종 전쟁에 패배합니다. (옛 직장 상사는 저를 looser라 비판을 했지만,) 스스로 패배한 삶이라고 생각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성공한 삶이라고 할 수 없지만.
밑줄긋기 ; 전쟁터에서 승리의 의미와 이유에 대해 질문하는 순간 그 전쟁은 패배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한사람 2012-05-13 15:56   좋아요 0 | URL

이미 참여한 이상은 되돌아보지 말아야 승리할수 있겠죠..
발 들여 놓기 싫은 싸움이 많은데
조직논리에선 의미를 따지는 순간 바보가 되기 쉽상인 것 같아요.
하지만 조직에서 성공했다고 그 사람의 인생도 성공한 건 아닐 겁니다.
그 직장상사분 같은 분들이 우리사회에 많다는 것이 슬프지만요 ㅠ

숲노래 2012-05-11 14: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언제나 홀가분하게 좋은 사랑 꽃피우셔요.
책을 쓰는 사람도 작가고
느낌글 쓰는 사람도 작가겠지요

한사람 2012-05-13 15:57   좋아요 0 | URL

하하~
갑자기 대박나세요~ 하는 하하 엄마가 생각나요 ㅋ
저는 책이 되었든 느낌 글이 되었든
홀가분하게 사는 분들은 작가의 인생과는 거리가 멀지 않을까...싶은데요 ㅋㅋ

가연 2012-05-12 02: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 글보다 솔직히 사진에 더 관심이..ㅋㅋㅋㅋㅋ 클릭해도 확대가 안되네요, 풋.

낭독하시는 순간, 무언가 글이 한사람님에게 육화된.. 그런 느낌이네요..ㅎ 저야 제 글을 지금껏 낭독해본 적이 없으니ㅋㅋ 어떤 기분일지는 그저 상상만 할 뿐이지만.. 그나저나 리뷰대회였군요. 리뷰대회에서 수상하시고 낭독을 부탁받으신건가요? 어느 쪽이든.. 낭독 자체만으로도 정말 좋은 일 같네요. 축하드려요, 하하.

한사람 2012-05-13 16:03   좋아요 0 | URL

사람들 앞에서 리뷰를 소리내어 읽는다는 경험이 참 새로왔어요.
정말로..창피하더라구요...

작가들이 자신의 소설을 낭독할때 어떤 기분일까.. 그런 생각도 해봤습니다.
사진은 저 정도면 크게 올린 것 아닌가요?? ㅋ

철수 2012-05-12 11: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작가는 자신의 이름을 걸고 자신의 생각을 세상에 내놓는 겁니다.
인간이라면 자신의 생각에 대한 세상의 반응이 궁금하겠지요.
제기준으로... 책을 읽으면서 저자를 마주할수 없다면 그 책은 별로 기억에 남지 않았습니다.
물론..가벼운 맘으로 가볍게 읽는 책도 있지만..나름의 색깔은 있기 마련입니다.
집요한 생각의 고리속에서 고민하고 또 고민한 흔적이 보이는 글을 좋아합니다.
그런책을 읽음으로 내가 변화되고...변화함으로 인해 독서는 가치를 가지는것이 아닌가..
단지, 내가 그런 책을 읽었노라...이런건 아무런 의미가 없겠죠.

한사람 2012-05-13 16:07   좋아요 0 | URL

'자신의 이름을 걸고 자신의 생각을 세상에 내놓는' 것이라는 말씀이
흠칫 합니다.

가끔은 아주 유명하고 작품성 높다는 책을 읽어도 그 생각이 제게는 별 의미가 없을때가 있고
반대로 세상의 비난을 받거나 유명 작가는 아니지만 그 생각이 저를 변화시킬 때가 있어요.
결국 독서도 다른 누가 아닌 나의 고민과 사고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쪽으로
기울게 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종종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때문에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기도 하는 것 같구요.


철수 2012-05-14 12:40   좋아요 0 | URL
댓글 하나를 삭제합니다.
댓글에 달린 글도 같이 삭제가 되어 버리네요.
궁색한 변명조차 구차할 지경입니다.
전혀 상황에 맞지 않은 농담이었습니다.
얼굴이 화끈거립니다. 아..진짜..미안합니다.
인터넷 상의 댓글달기...이거 조심해야 되는데..
무심코 댓글을 읽다 감정선이 오버된..실수 입니다. 부디..

한사람 2012-05-14 14:21   좋아요 0 | URL

에고..제가 답이 늦어서 맘을 불편하게 해 드린게 아닐까..싶은데요 ㅠㅠ
(오전에 남겨주신 글은 보았는데 어딜 좀 다녀오느라 ㅠㅠㅠ)
전혀 그렇게 미안해 하지 않으셔도 되는데요.
농담이신거 충분히 알았는데 혹시
당시 현장에 참여하셨던 분들도.. 보실줄 몰라서요..
저는 정말 괜찮으니 마음 털어버리시길^^

비로그인 2012-05-13 15: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교보문고에서 했던 리뷰 백일장 이벤트 당첨자 발표 나왔는지 혹시 아시나요?
마흔에 읽는 손자병법 블로그 보다가 한사람님 교보블로그까지 가봤거던요. 한사람님 블로그란 거 어떻게 알았냐면 (스토커는 아니예요 오해는 마세욬) 예전에 알라딘 당선작에서 봤던 리뷰들이라서 누구 글이었지? 하다가 찾아보니까 한사람님이었어요. 4월 말에 발표난다고 한거 같은데 아무리 찾아도 안보이네요. 저도 전에 썼던 리뷰 재탕한 것도 있어서 좀 걸리긴 하는데 다른데다 올린 거 또 올리면 안된다는 둥 그런 내용은 공지에 없었겠죠? 1등 상금이 와방 커서 자꾸 미련잌ㅋㅋ 혹시 한사람님 당첨되셨을수도 있겠다 해서 여쭤보아요~ 전 떨어졌겠지만ㅠ.ㅜ

한사람 2012-05-13 16:32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유림님.
그 이벤트는 교보문고에서 벌써 발표하지 않았나요??
열개 정도 리뷰를 올렸었는데 저도 탈락되었는걸요 ㅠㅠ
선정과 심사에 리뷰재탕을 검열하겠다는 공지는 없었던 거 같아요.
그때 1등 상금이 크긴 했죠, 하하

참 오해하실 줄 몰라서 덧붙이면,
알라딘 당선작을 재탕해서 올린 적은 없구요.
대회 참여 글 중에는 이미 올려 놓은 다음에 4월인가 당선작이 된 글은 있어요.(자본주의 그 이후)
다른 글들도 이미 어디서 수상한 글들은 올리지 않았던 거 같아서요 ㅋㅋ
그 이벤트 참여한 다음에 평소에 교보에서 열심히 활동도 안했으면서
상금에 눈이 멀어서 괜히 글을 올렸다는 반성 ㅠㅠ 을 했죠, 하하
(사실 그 이후에 혼자 찔려서 마흔이나 주기자 같은 리뷰도 올려 놓고 그랬습니다 ㅠ)

유림님, 교보 블로그까지 가셔서 제 리뷰 읽어보시고 저를 기억해주셨다니
고맙네요^^ 이곳에서도 자주 뵙기를 바랍니다~

비로그인 2012-05-13 17:36   좋아요 0 | URL
아 그러신가요
몇달 전에 당선작 봤던거 같은데 제가 착각했나봐요
다 이렇게 하는데 뭘 함서 제 꼼수를 합리화했는데 저만 꼼수 썼나봐요 부끄ㅠ
재탕이란 표현은 제가 그랬단 말이었어요
저도 라고 한 게 실수였던거 같네요 지송ㅠ
저야말로 상금에 눈 멀어서 올렸는데요ㅠ.ㅠ
교보 이벤트 발표란 쭉 찾아봤는데 없네요 아마 떨어졌겠죸

한사람 2012-05-13 18:20   좋아요 0 | URL

http://booklog.kyobobook.co.kr/kyoboevent/1124140

죄송은요 ㅠㅠㅠ
제가 다시 확인해보니 이벤트 당첨자가 아니고 광화문 사람들이라는 공식 북로그에 공지를 했네요
(다시 확인 한번 해보세요^^)

평소에 교보쪽에서 활동 많이 하신 분들이 수상하는게 맞는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물론 운영측에서 참여에의 개방성을 넓힌다면 더 좋긴 하지만요 ㅠ
그리고,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한 번 쓴 리뷰를 다른 서점에 올리는 것이 그다지 나쁜 일이라는 생각은 안하게 되었어요.
(우리도 독자이고 꼭 한 곳에서만 책을 사고 한 곳에만 글을 올리라는 법은 없잖아요)
그것도 결국 부지런해야 되는 일이더라구요..
다만, 이곳에서 이미 상탄 글은 다시 다른데 (수상을 목적으로)올리는게..
좀 속물적이지 않나..그런 생각은 들어요, 하하
동시에 올려놓고 어디서 안주나 하는 것도 뭐 다를 바는 없지만 ㅋㅋㅋ

요즘은 기업들의 꼼수가 많기 때문에
독자들만 깨끗할 필요가 있나..우리도 우리 이익을 보아야 하지 않나,
사실 그런 생각이 많거든요^^

꽃도둑 2012-05-14 16: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사람님, 독한 사람이에요...^^
실루엣도 이쁘고...글도 잘 쓰고...일도 똑소리 나게 잘하고..
외모라도 좀 엉망으로 생기시지..그게 뭡니까?...
오늘은 그냥 갈랍니다..ㅡ.ㅡ

한사람 2012-05-15 09:53   좋아요 0 | URL

헤헤, 예전에 좀 독했죠 ㅋ
패션도 나름 진보주의자(?)였는데
것도 나이드니 소심해지더라구요 ㅋㅋㅋ
스타일만 그렇고 자세히 보면 늙었죠 ㅠㅠㅠㅠㅠ
요즘은 거울보기가 참 민망합니다^^

아이리시스 2012-05-15 18: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사람님.. 한사람님?
하트 좀 치워봐요............ 하트..하트..

한사람 2012-05-15 18:22   좋아요 0 | URL

흐흐흐 안되요^^

icaru 2012-05-16 13: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꼬ㅊ도둑 님 말씀이 웃겨서 ㅋㅋㅋ (실은 저도 같은 생각을 했어요..) 아! 독하다!!

한사람 2012-05-16 15:28   좋아요 0 | URL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1. 소설은 나의 현재

 

 

울고 있는 사이 계절이 가고 있다. 봄의 마지막 절기인 곡우(穀雨)를 앞두고 있는 4월 중순. 이 시간이 지나고 나면 곧 여름이 시작된다. 언제나 그렇듯 계절은 내가 느끼고 만끽하려 할 무렵 서둘러 이별을 준비한다. 봄옷을 제대로 입지 못하고 반팔을 찾는 심정이다. 그런 것 같다. 봄에 입으려 사둔 원피스는 쇼윈도에서 하늘거릴 때만 아름답다. 아, 목이 타는 봄 날 오후여. 당신의 봄도 나와 같은가. 오래전 농촌 어르신들은 이 무렵이 나무에 물이 가장 많이 오르는 시기라 깊은 산속으로 곡우 물을 먹으러 가는 풍습이 있었다 한다. 일부러 나무에 상처를 내고 통을 달아 며칠씩 수액을 받아 두었다가 약처럼 마셨던 것이다. 그들은 수액을 마시며 어떤 갈증을 풀었을까. 무엇을 희망하였던 것일까. 막연히 봄비는 슬프지만은 않다고 여겼는데 그것은 아마도 봄비가 잘 내려야 농사가 잘된다는 공동체의 믿음을 우리 모두가 유전자로 간직한 이유가 아니었을까.

 

 

성석제의 소설은 울고 있는 이 계절에 참 시의적절한 듯하다. 지난번 김영하 소설을 덮으면서 주제넘지만 독자로서 소설이 사라진 이 시대, 소설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를 생각해보았다. 김영하, 김연수가 타자의 고통을 끌어안는 초능력자로서 공감의 메신져였다면 그들보다 윗 세대인 성석제는 어떤 고통도 함께 나눌 수 있는 가족을 전면에 내세웠다. 혹시나 가족은 진부하고 새롭지 않다고 외면할 생각이었다면 당신의 생각은 옳지 않다. 내가 생각할 때 가족은 보수언론을 향해 잘 포장한 빅 엿이다.(성석제 소설가는 내가 읽는 신문에 단골 칼럼 기고자 이시다) 이 소설을 덮으면서 소설이라는 것이 자기 처한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다르게 읽힐 수 있다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실감했다. 작가가 말했듯이, 혹은 신문에서 평가했듯이, 아니면 출판사에서 홍보하듯이 ‘우리 안에 근원적으로 존재하는 가족성에 대한 욕망’으로 받아들였다면 아마도 당신은 지금 ‘위풍’도 ‘당당’한 사람에 속할 것이다. 지금 그와는 전혀 반대인 내 입장에서 이 소설은 가족이 보이지 않았다. 백번 양보해서 가족해방의 서사가 표면적 스토리 구성에 실마리를 주고 있다고 쳐도 이 소설에서 ‘위풍당당’해야 할 주체로서의 가족 구성원은 그저 ‘쫄지마’를 외쳐대는 오합지졸 마이너들로 밖에 해석되지 않았다. 그러니까 소설을 보는 시각이 곧 나의 현재이다. 내 심사가 꼬여 있는데 소설에서 훈훈한 가족애를 발견하기란 쉽지 않다는 뜻이다.

 

 

 

#2. 소설은 당신의 과거

 

 

줄거리를 간략히 정리하자면 강 좋고 산 좋은 어느 숲속 청정마을에 느닷없이 나타난 조폭무리를 피한방울 섞이지 않은 마을 구성원들이 보기 좋게 때려잡아 추방했다는 이야기이다. 그 다음 모두가 ‘우린 드디어 가족이 되었어’라며 알콩달콩 행복하게 잘 살았는지는 모르겠다. 영화로 치자면 *이 망가진 보스가 고장난 배를 타고 탈출하는 장면이 마지막이므로 반드시 *을 복구하여 속편으로 귀환할 것이다. 중요한 건 전국구 꽃미남 조폭의 우두머리가 머리도 식히면서 사업을 구상할 조용한 별장을 짓겠다는 그곳이 하필이면 파란만장한 과거를 묻고 제 2의 인생을 살아보겠다고 숨어사는 실패자들의 마지막 안식처였던 것이다. 조폭으로부터 마을 습격의 빌미를 제공한 처자가 물고기의 이름인 ‘새미’였다는 점. 소설 중후반부에 집중적으로 마을에 서식하는 식물과 동물, 자연환경이 사건을 인식하는 감각의 주체자로 기능한다는 점에서 이 소설을 4대강으로 상징되는 환경을 파괴하는 권력의 오만함으로 읽어도 무방해 보인다. 그도 그럴 것이 소설의 첫 문장과 마지막문장은 공교롭게도 ‘강. 강이다.’에서 ‘강이다. 강.’으로 끝난다. 앞에 강은 개발되기 전의 강, 뒤의 강은 파괴된 후의 강, 이것이 내 결론이다. 보스 정묵과 가장 여산이 결투를 벌일 때 기다렸다는 듯이 등장하는 건 ‘거대한 기계괴물’의 군대행렬이었다. 도대체 이 나라의 4대강을 무식하게 짓밟은 자들은 누구인가. 몇 명 살지 않는 마을에 제 멋대로 불도저와 포크레인, 덤프트럭을 몰고 온자들은 누구란 말인가. 내가 모르는 누군가가 있다면 알려주시라.

 

 

정치적으로 해석하자면 이미 가진 게 엄청난 탐욕의 무리들이 겨우 누울 자리 하나 마련한 땅에 와가지고 지금부터 이 곳은 환경을 거시기 하게 개발할 터이니 조용히 나가주시라 협박하는 용역깡패와 죽어도 고롷게는 안되겠다며 인분을 투척하는 철거민의 대치모습으로 환기할 수 있겠다. ‘촌동네 병신새끼들’은 누구보다도 땅과 비슷하게 생긴 똥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잘 활용하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10년 묵은 ‘분뇨’가 나는 왜 ‘분노’로 읽히는 것인가. 조폭을 똥통에 빠트린 마을 사람들이 그 댓가로 목격한 장면은 망루에서 얻어터지고 있는 새미의 동생, 장애인 준호였다. 안 그래도 힘없고 안타까운 우리 시대 최약자들만 모아 놓고 보기 좋게 불 지르고 물 뿌려댄 건 도대체 어떤 권력자의 머리에서 나온 생각이란 말인가. 내가 잘못 생각한 게 있다면 말씀해주시라.

 

 

소설에서 어머니를 상징하는 소희는 죽어가는 생명의 불씨를 살아나게 하는 치유의 상징이었다. 아버지역을 맡았던 여산은 강가에 떠 내려온 한 마리 물고기 같았던 새미를 데려다 살려 놓은 사람이었다. 조폭은 잘 살고 있는 사람도 기계로 밀어버리는 우리 시대 개발 권력의 표상이며 소희와 여산은 죽고 있는 사람도 살려내는 구원의 전도사가 아니던가. 마을에 모여든 사람은 하나같이 가족이 붕괴된 사연을 과거로 간직한 우리 시대 불행의 아이콘이었다. 원래 가족과 헤어진 사람들끼리 뜻하지 않은 가족이 된 사람들에겐 서로의 과거를 묻지 않는 불문율이 있었다. 소설가는 이것을 ‘장벽은 무너지고 강물은 풀려’라는 <과거를 묻지 마세요>의 노래 가사 첫 소절로 표현했다. (아... 부디 나의 과거도 묻지 마시라.)

 

 


장벽은 무너지고 강물은 풀려

어둡고 괴로웠던 세월도 흘러

끝없는 대지위에 꽃이 피었네

아 꿈에도 잊지 못할 그립던 내 사랑아

한 많고 설움 많은 과거를 묻지 마세요

 

 

구름은 흘러가도 설움은 풀려

애달픈 가슴마다 햇빛이 솟아

고요한 저 성당에 종이 울린다

아 흘러간 추억마다 그립던 내 사랑아

얄궂은 운명이여 과거를 묻지 마세요

 

<과거를 묻지 마세요>, 정성수 작사, 전오승 작곡, 나애심 노래

 

 

보스 정묵은 이들이 주막에서 한바탕 해방의 댄스 무대를 연출하자 꼭 아프리카 토인들이 춤을 추는 것 같다고 관람 평을 한다. 소설가는 영필과 소희를 우리 윗세대 어르신들로 여산과 이령을 장년층으로 새미와 준호를 다음 세대로 구분지어 삼대가 전통적 유대를 이어가도록 만들었다. 소희는 이들이 각자 과거로부터 받은 상처를 포용하기 위해 준비된 자연의 어머니였고 여산은 이들을 폭력으로부터 지키는 사냥꾼 아버지였다. 이들은 마치 원시사회 구성원들처럼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스스로 만들고 가족을 지키기 위한 역할에 충실한다. 만약 이 소설을 과거 실패한 가정의 경력자가 새로운 관계 재편을 통해 제 2의 인생으로 부활하는 회복의 서사로 받아들였다면 당신은 지금 가정과 가족의 의미를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는 상황일지 모른다.

 

 

#3. 소설은 우리의 신세계

 

 

현재 이 책은 리뷰대회라는 이벤트를 진행하고 있는 소설이다. 소설이 의미하는 바와 나를 자극했던 이야기를 다시 곱씹어보고 그것들을 자기만의 개념으로 정리하고 있다면 아마도 당신은 리뷰대회를 준비하고 있는 독자일지 모른다. 리뷰대회에 적지 않게 참여해본 경험으로 말하자면 이 책은 리뷰대회와 상관없이도 작가의 네임 밸류와 작품성만으로 판매부수는 목표를 충분히 달성하고도 남을 책이다. 간혹 리뷰대회가 아니었으면 읽어보지도 않았을 작품들이 없는 건 아니다. 또 리뷰대회에 참가하는 글 치고 이 작품 형편없다고 하는 글은 찾아보기 어렵다. 리뷰대회에 참가하는 독자치고 내심 수상을 목표로 하지 않는 사람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출판 관계자들은 리뷰대회를 한다고 특별히 책이 많이 팔리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물론 백프로 다 믿는 건 아니다 ㅋ) 노래가 좋으면 아무리 듣지 말라고 해도 1위를 하는 것처럼 작품이 좋다면 어떻게든 사장되지는 않는다고 믿고 싶다.(책은 꼭 작품이 좋아서 베스트셀러가 되는 게 아니라는 점에서 자신은 없지만 ㅠㅠㅠ)

 

 

의미를 두고 싶은 것은 그래도 리뷰대회를 통해 소설의 의미를 생각하는 기회가 마련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개인적인 생각으로 인문서보다는 소설의 리뷰대회가 더 많은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소설은 해석이 다양할 수 있기 때문에 저마다 다른 의미로 다가오는 이야기가 자신에게 특별히 어떤 의미로 읽혀지는지 그렇기에 소설은 우리 일상에 나아가 인생에 어떤 역할을 하게 되었는지 한 번 더 생각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작금의 시대에 하필, 이 시기에 출간된 소설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부여하는지, 작가는 가족을 뒤로 무엇을 숨겨놓았는지, 저 흘러가는 강물위로 무엇을 비추고자 하였는지, 그리하여 우리에게 ‘강 같은 평화’란 무엇이라고 말하고 싶었는지 고민의 시간을 마련해주기 때문이다.

 

 

이 소설은 특이하게도 마지막에 각 소제목과 제목을 발췌한 노래 원곡을 소개하고 있다. 어딘가 모르게 뜬금없이 느껴지던 노랫말(소제목)이 음악과 함께 깊은 울림의 시간을 선사한다는 것도 이 소설을 읽는 재미이다. 내게도 하나하나 찾아 들어보았던 재미가 새로운 경험으로 기억될 듯하다. 그 중에 이 작품 전체의 분위기와 잘 맞는다고 생각한건 드보르작의 신세계 교향곡 2악장이다. 소설에선 중간보스 양구가 일행을 이끌고 마을에 도착한 후 똥통이라는 함정에 빠지는 순간 이 음악과 함께 ‘지금은 사라진 동무들 모여 옥 같은 시냇물 개천을 넘어’ 라는 <꿈속의 고향> 한 구절을 차용했다. (드보르작은 뉴욕에서 고향을 그리며 이 곡을 작곡했다) 그러니까 똥통이 곧 그들의 고향이고 신세계인 셈이다. 이 얼마나 짜릿하고 시원한 셀프 그레이트 빅 엿이란 말인가. 몇 번이나 반복해서 듣다보니 어느새 마음이 평화로와지는 경험을 했다.

 

 

정말로 한나절 내게 강 같은 평화의 시간을 보내었다. 이 화사한 계절만큼 마음이 편하기 얼마나 어려운 시절인가. 교향곡을 들으며 계절이 가는 아쉬움을 달래보면 어떨까 한다. 이 음악을 혼자 듣는 순간이 듣기 전보다 행복하다면 아마 당신은 새로운 신세계를 꿈꾸고 있었을 사람이 틀림없다. 그래서 지금은 잠시 신세계를 보지 못하게 된 당신과 이 음악을 같이 듣고 싶다. 무릇 책이란 이렇듯 예술의 인접장르로 안내하는 역할도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당연히 그 위풍도 당당함에 조용한 박수를 보내고 싶다.

 

 

 

 


< 신세계 교향곡 제 2악장 - 뉴욕필 평양 드보르작 '라르고' NY Phill Dvorak 'Largo' Pyungy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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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샘 2012-04-16 07: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저 노래 참 좋아해요. ㅋ 옛날 노래~
차이코프스키보다 훨 좋아요. ㅎㅎㅎ

성석제는 저런 디테일에 참 강해요.
옛날에 어떤 소설에... '꿈인가 돌아보니~' 이런 멋진 노래를 알고 있었는데, 처녀 뱃사공을 나중에 알고 봤더니, 군인간 오라버니~ 더라는... 얼마나 멋져요? 꿈인가 돌아보니~ ㅋㅋ

한사람 2012-04-17 13:20   좋아요 0 | URL

과거를 묻지 마세요, 말씀이죠?
저도 좋아요 ㅋㅋ

성석제는 디테일에 강하다는 말씀 공감합니다.
소설에 낙동강 강바람에 치마폭을 스치면~
이 구절 노래하는 장면이 나오더군요.
두만강, 소양강 다 나오죠, 하하
저는 이 소설 4대강 개발에 대한 소설가의 걸쭉한 풍자라고 느꼈습니다^^

2012-04-16 11: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4-17 13: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가연 2012-04-16 19: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성석제의 소설은 이상하게 리뷰대회가 많이 붙는 것 같네요, 풋. 저번에 또 다른 소설도 리뷰대회하는 거 본 적 있는데.. 저는 거의 리뷰대회에는 참여안하는데, (쓴 글이 우연찮게 리뷰대회의 책을 주제로 삼은 경우는 있지만..) 뭐랄까, 리뷰대회라는 것이 강제적으로라도 어떻게든 책의 의미를 되새기게 하는 역할을 하기는 하는 것 같아요, 풋.

한사람 2012-04-17 13:29   좋아요 0 | URL

리뷰대회도 참여하는 분들이 또 참여하고
상타는 분들이 매번 타고 그래요 ㅋㅋ
리뷰대회를 하든 안하든 성석제의 소설은 항상 그 시대에 던지는 농담아닌 농담인듯 해요.
일부러는 아니더라도 가연님,
마침 우연히 그 책을 읽었는데 리뷰대회를 하더라 하면
한번 글 남겨 놓아 보세요.
가연님의 리뷰 스타일이 기존 수상자들과 좀 차별화되기 때문에
신선하기도 하고 워낙 짜임새 있게 논리를 구성하시니
책값이상은 쏠쏠히 얻으실듯해서요 ㅋㅋㅋ
것도 맛들리면 중독에서 헤어나오기 힘들고
작위의 구성으로 가는 지름길이지만,
우연의 일치가 뜻밖의 행운을 가져오기도 하니까요, 하하






stella.K 2012-04-18 18: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성석제에게 감동을 못 받아서인지
이번 작품도 영 그렇더라구요.
아니 예전의 작품은 작가가 어떤 사람인지 알고 싶어서 꾸역꾸역 읽었던 것 같아요.
하지만 뭐가 그렇게 재밌고 입담일까 싶어요.
솔직히 그런 재담은 TV 보면 나오는데.
출판사가 정말 구라가 좀 심하다 생각했어요(물론 내 기준으로 말하는 게 좀 그렇긴 하지만).
그러면 작가는 자기가 진짜 웃기는 줄 알 것 아니예요?

저도 리뷰대회가 없는 것 보단 있는 게 좋은 것 같긴한데
점점 참여를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정상적이 독서를 방해하기도 하고, 제가 워낙에 경쟁을 싫어하고 못하는 성격이라
처음엔 관심을 갖다가도 결국 포기하게 되더라구요.ㅋ

한사람 2012-04-19 09:31   좋아요 0 | URL

이궁, 이걸 지금 발견 ㅋㅋ

뭐가 그렇게 재밌고 입담일까 싶어요~~~ 여기서 빵 터졌어요 ㅋㅋㅋㅋ

저는 이 책이 배꼽잡고 웃는다고 해서
되게 기대를 했어요. (물론 성석제 수준을 고려해서요)
그런데 읽고나서 슬프기만 하더군요 ㅠㅠ

똥 이야기가 많이 나오니까 풍자와 해학이라고 그런 의미를 부여한 모양입니다.

리뷰대회는 확실히 일부러 작정하고 참여하는 것이 독서를 방해하는 것 같습니다.
글도 작위의 정점을 찍게 되구요.

원래 사 놓았고 읽을려고 했고
아니면 이미 읽었다면 모를까..
리뷰대회 공지나고 그때부터 시작하는 독서는 저도 지양하려구요.
그리고, 설사 참여를 결심했다가도 책 읽었더니
영 아니다, 혹은 쓸 말이 없다고 생각했다면
억지로 쥐어 짜지말고 과감히 패스하자,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stella.K 2012-04-19 14:15   좋아요 0 | URL
ㅎㅎ 그랬나요?
그런데 그 똥 얘기도 그래요.
너무 유아적이잖아요.
왜 발달상에서 보면 고맘 때 아이들 그런 얘기하면 빵 터지는 건 이해하지만
명색이 작가님께서...?
작가가 퇴행을 하는 건 아닌가 의심스럽기도 하더라구요.
그래도 저도 작가의 수준을 고려해서 그냥 페이소스라고 말하고 싶어요.ㅋ

솔직히 저는 참여를 생각했어요.
별로긴 하지만 웬만하면 참여해 보자는.
그런데 웬걸요. 읽다 포기했습니다.
한사람님과 같은 이유로 패쓰했구요.
그래도 헤밍웨이는 정말 참여하고 싶게 만들더군요.
물론 참여했다 명작에 대한 높은 벽만을 실감하고 꼬리를 내려야했지만.
그것까지는 어떻게 인정하겠는데 알라딘까지 그런 건 정말 충격에 가깝더군요.ㅋㅋ

2012-04-19 10: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1. 내 인생의 조선일보

 

 

나는 조선일보를 꼼꼼히 챙기는 독자다. 내가 조선일보를 애독하기 시작한 건 아마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일 것이다. 그러니까 햇수로만 해도 30년이 넘었다. 그땐 흑백 신문의 반이 한자였고 내가 아는 한자는 韓자, 國자, 民자, 愛자 정도 밖에 없었다. 아버지가 신문을 넘기신 후 보는 것이라 늘 종이 질은 구겨진 상태였다. 어느 날인가부터 내가 맨 처음 넘겨보고 싶어 아버지가 보기 전에 종이를 넘겨보았다. 종이 한 장이 넘어 갈 때 흩날리는 인쇄소 냄새가 좋았다. 그 시절 나는 버스가 지나가고 난 뒤 그려지던 휘발유 냄새와 소독차가 지나간 뒤 남겨지던 지독한 가스향이 좋았었다. 조선일보 맨 뒷면엔 항상 TV 란이 있었고 그 밑에 독자투고란이 있었다. 유일하게 TV소개만 한자가 없었다. 가끔 故 정영일의 영화평론과 다른 유명한 분(한자를 몰라서 ㅠ)의 방송 평론을 읽어보기도 했다.

 

 

언제인가 내가 고등학생 때 같은 나이의 '김혜수'라는 배우가 성인영화를 찍은 적이 있었다. 당연히 연소자인 우리들은 볼 수가 없었다. 나는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왜 고교생이 주연으로 출연한 영화를 고교생이 볼 수 없는지 따지는 글을 엽서에 적어 조선일보에 보냈다. 그랬더니 며칠 후 독자투고란에 서울시 무슨 동의 몇 살 누구라며(서울시 **동 16세, ***, 이런 식으로) 내 이름이 신문에 새겨지는 일이 발생했다. 내용을 읽으며 스스로 참 잘 썼군, 미소를 지은 기억이 난다. 그런데 내 친척들은 조선일보만 보는 것인지 그날 우리 집 전화에 불통이 났다. 이모, 고모, 삼촌, 사촌 오빠 할 것 없이 그 몇 줄 안 되는 글을 읽고 죄다 엄마에게 전화를 한 것이다.(웃긴 건 서울 무슨 동에 사는 열여섯 살 ***가 나인지 어떻게 알았을까. 학교까지 나왔던 것 같기도 하다) 뭐라고들 하셨는지는 - 주로 고 녀석 당돌하군 식이었을듯 -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엄마는 내용도 모르고 으쓱해 하셨다. 그때 나는 조선일보가 참 공정한(?) 신문이라는 생각을 하며 무언가 정의로운 일을 했다는 우월감을 처음으로 느껴보았다. 그 우월감에 도취되어 김혜수 영화가 나중에 망했다는 사실 같은 건 알지도 못했고 문제제기이후 어떤 조치가 있었는지 그런 것에도 관심이 없었다. 그저, 내 짧은 글을 세상 사람들이 다 읽었구나 하는 야릇한 기분만 간직했던 것이다.

 

 

나는 경상남도 출신 부모님을 두었고 김대중을 빨갱이라 생각하는 가족 분위기에서 자랐다. 친척들은 제사 때 모이기만 하면 전라도 사람들이 비열하다고 속은 사례를 말씀하셨고 YS가 대통령이 되어야 한다 주장하셨다. 내 친척 분들은 주로 대구, 진주, 부산에서 젊은 시절을 보내고 70년대 말 대거 서울로 이주하셨다. 나를 포함한 내 사촌들은 모두 8학군의 학교를 나왔고 서울에 있는 대학에 입학했다. 내 부모님을 포함한 그분들은 70년대 말 강남이 논두렁 밭두렁일 때부터 자리를 잡으셨고 지금은 분당, 용인 권에서 거주하신다. 그들 중엔 장관출신도 있고 대기업 임원, 대학교 총장, 국가 연구소 소장도 있다. 그분들의 자제, 내 사촌들 역시 대부분 대기업, 국가 연구소에 취직했다. 사촌들과 결혼한 배우자 역시 거의 경상도 출신의 대기업 프레임 속에 위치해 있다. 그러니까 나를 뺀 친척 대다수는 탄탄한 상류 혹은 중산층, 철저한 보수주의자들이다.(나도 몇 년 전까진 그랬으니 그들을 뭐라 할 자격은 없다) 이들은 모두 조선일보만 본다. 쭉 보아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2. 오늘의 조선일보

 

 

어제 자정 넘어 그들로부터 몇 개의 문자를 받았다. 이번 결과를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이었다. 안 그래도 마음이 안좋아 잠을 못 이루고 있던 차에 꼭 거봐, 니들은 안돼 하는 조롱으로 들렸달까. 어르신들 막말 싫어하는 거 모르냐고, 노무현을 왜 싫어했는데, 등의 문자를 받고 이명박 잘 숨겨줘서 좋으냐 보낼까 하다가 그냥 부질없어서 꺼버렸다. 그리고 잠이 안와 다시 SNS를 확인해보니 지난 서울시장 선거때와는 달리 조용했다. 새벽녘에 이외수 작가만 모든 원망 이해한다며 죄송하다는 글이 올라와 있었고 애써 아무도 말 안하는 듯 보였다. 아침에 보니 출판사와 마케터들은 상관없는 책 소개나 울지 말라는 식의 은유적인 시들만 올리고 있을 뿐...

 

 

신문을 보니 이번 야권의 참패를 김용민으로 몰아가고 있었다. 오만이 부른 참사, 국민 상식에 무릎꿇다, 나꼼수의 착각등등. 두 번 죽이기는 시작되었고 이참에 확실히 밟아 씨를 말리겠다는 의지를 엿보았다. 나는 조선일보를 한 장 한 장 다 읽어보며 넘기기 때문에 그들이 상징적으로 빗댄 인사가 누구이며 무얼 비난하려고 하는지 잘 안다. 그리고 나는 내 친척들과 같은 보수층이 어떤 생각과 판단을 할지 더 잘 안다. - 참고로 노무현 시절, 그가 검사와 맞짱 뜨자고 했을 때 조선일보 읽은 (나를 포함한)보수들은 모두 거보라고 자질 안 되는 사람을 뽑은 꼴 좋다고 떠들었다. 막말 프레임은 보수가 가장 싫어하면서 열광하는 아젠다이다. 왜? 그래야 자기들하고 수준이 틀린 저질좌파를 확실히 구분 지을 수 있기 때문에 - 나는 이번 선거의 패인을 분석할 주제는 못된다. 그런 건 전문가들이 알아서 잘 할 터이다. 내가 말 하고 싶은 건 보수층이라는 엄청나게 두껍고 단단한 절벽에 대한 절망의 심경이다. 그들은 책도 꼭 김진명 소설과 몇 년 째 이해인 수녀님 시집만 읽는다. 알라딘 서재같은 온라인 서재는 들어오지도 않는다. 책값을 아껴야 할 이유가 없기 때문에 여기서 책 살 일이 없으므로 당연히 아이디도 없다. 그들도 나름 바쁘고 열심히 살기 때문에 왜 여기서 책 안사냐 뭐라 할 순 없는 일이다. 내 생각이지만 지방은 더 심하리라 생각된다.

 

 

SNS에선 자기 보고 싶은 말, 듣고 싶은 말만 맞다고 생각하며 그걸 대세라 착각하는 성향이 뚜렷하다. 조선일보는 그걸 실시간으로 관찰하고 있다가 누가 실수라도 하면 제까닥 일초만에 대서특필한다. 예를 들어 이외수 새누리당 지지, 공지영 또 거짓말, 이런 식으로. SNS는 실시간이고 정보 확산이 빠르다는 장점이 있지만 결과만 올리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생각의 과정이 노출되기 때문에 나중에 수정한다는 건 의미가 없다. 이런 속성을 잘 아는 보수들은 절대 SNS를 안한다. 출세하려면 어떤 종류라도 생각의 흔적을 남겨 놓는 것은 불리하기 때문이다. 나는 그런 말을 한 적이, 고로 나는 그러한 삶을 살아오지 않았다고 해야 하기 때문에. 보수언론에서 SNS를 무슨 종북 좌파들의 수다장소로 연일 떠들기 때문에 정서적으로도 멀리한다. 그러니까 SNS에서 그들의 생각은 절대로 알 수가 없고 - 반대로 저들은 우리 생각을 실시간으로 알게 되고 - 우리끼리 우리 좋은 말만 허구헌 날 주고 받고 할 뿐인 것이다. 지난 서울 시장 선거땐 서울이니까 그게 다인 것처럼 보였던 것이다. (그리고 슬프게도 이곳 알라딘도 마찬가지다. 혹시나 보수 성향의 알라디너가 이곳에 글을 쓸 리는 만무하다.)

 

 

 

#3. 우리 앞날의 동반자, 조선일보

 

 

아침부터 대한민국 보수들의 조용한 조롱과 냉소가 피부로 절절하게 와 닿는 오늘이다. 박근혜라는 붉은 지도의 화신을 넘는 일은 애초부터 쉬운 일은 아니었다. 박근혜는 준비를 오래 해온 인물이기 때문에 여간해선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따지고 보면 방식이 달라서 그렇지 하루종일 박근혜만큼 애국하고 나라걱정만 하는 사람은 대한민국에서 찾아보기 힘들 지 모른다. 내가 아는 보수층들은 그녀의 아버지 박정희 시대에 새마을 운동 노래에 맞춰 새벽 다섯 시부터 집 앞을 쓸었던 사람들이다. 독재가 무엇인지 민주화가 왜 필요한지 그런 생각이 필요하지 않았으며 오로지 우리도 한번 잘살아보세, 라는 일념으로 이 한 몸 부숴져라 일터에 던져온 분들이다. 나는 <강남몽>에서 내 부모님을 보았고 <허수아비춤>에서 내 사촌들을 보았다. 그분들은 전쟁 속에서 빨갱이가 당신들의 친척을 죽이는 것을 목격한 사람이고 열여덟 나이에 나라를 지키겠다고 입대를 한 사람들이다.

 

 

그분들의 순수한 애국심을 이용해 권력을 유지하는데 사용해온 조선일보는 자신들의 독자가 무엇을 가장 싫어하고 두려워 하는지 너무나 잘 안다. 나는 오늘도 조선일보를 읽었다. 나는 조선일보 블로그에도 조선일보 욕하는 리뷰를 올린다. 그러면 조선일보는 제까닥 공정한척 뉴스에 띠워준다. 조선일보가 주는 떡밥을 나는 거부하지 않는다. 오랜 세월 구독료를 내었기 때문에 당당하다. 그런데 같은 글을 올렸을 때 알라딘과 예스 같은 온라인 서점에선 주기자의 글에 열렬한 지지를 보내지만 조선일보는 싸늘하다. 심지어는 한쪽으로 치우친 생각같다는 댓글도 달아준다. 조선일보가 열렬히 반응하는 건 ‘난설헌’같은 이념과 아무 상관이 없는 순수문학이다. 난설헌 리뷰에 폭발적인 반응을 보인 조선일보를 보면서 나는 이 나라 보수들의 청정하고 아름다운 문학적 성향을 새삼 깨달았다.

 

 

이번 선거는 조선일보의 승리다. 이 승리를 정당화 하기 위해 나꼼수 죽이기는 더 꼼꼼하게 계속될 것이다. 진보는 드럽고 추악해서 조선일보를 보지 않는다 말한다. 나는 반대다. 드럽고 치사하고 치밀한 계획정신을 똑바로 확인하고 알리고자 그들을 넘겨본다. 싸워서 이길 수 없을 땐 아예 싸우지 말라고, 손자병법 서문에 나와 있다. 한비자에 보면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이유는 딱 하나, 자신에게 이득이 생기기 때문이라고 한다. 싸워서 이득이 생기지 않고 생기더라도 이기는 싸움이 아니라 판단했을 땐 과감히 다음을 기다리는 것도 용기라고, 그렇기 때문에 싸우기 전에 이길 수 있도록만 완벽하게 준비하고 연구해서 달려들어야 한다고, 그렇게 일단 싸우기 시작했으면 되돌아 갈수 없기 때문에 죽을 각오로 덤벼야 한다고,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가장 좋은 승리는 싸우지도 않고 이기는 것이라고, 싸우는 기술만 몇 십년 연구한 손자가 말하더라. 누가 생각나는가. 나는 딱 한사람, 박근혜가 떠오른다.

 

 

 

우연인가.

손자병법을 해석한 저자는 하필 MBN에서 TV조선으로 가셨구나. 현명한 선택이었을 것이다. 단순히 조선일보로 이직한 것을 비난하긴 싫다. 다만, 이 책이 베스트셀러인 이유를 알고 싶어 읽어봤다. 이 책의 결론은 손자병법이 싸움의 기술이 아니라 안 싸우는 기술이라는데 있다. 싸우는 상대인 경쟁자를 존중하고 동반자로 생각하자는 공존의 철학, 그것이 저자가 마흔에 해석한 손자병법이다. 이 생각은 언뜻 진보적이고 훌륭하고 옳기도 하다. 그러나 이 생각은 이미 이겼고 이긴 사람에게서 나올 수 있는 발상이다. 항상 이기기만 하는 사람이기에 너그럽게 경쟁자를 감싸안을 수 있다. 경쟁자가 자기를 이기게 하는 일등공신이기 때문이다. 이긴 위치에 있기 때문에 할 수 있는 말이다.

 

 

 

이건 보수들이 완전 좋아하는 테마이다. 우리 사회엔 보수들이 좋아하면 확실한 베스트셀러가 될 확률이 많다. 이들은 빼앗겨온 입장에서 공존과 공생을 말하는 게 아니다. 나 이기고 나 가진 다음 나머지로 나누는 선심에 가깝다. 어제 이 책을 덮었을때 공교롭게도 김용민 낙선유력이라는 기사가 떠 있었다. 조선일보에서 무더기로 책을 보내주었는데 그 중에 어려운 시집이 하나 있었다. 아침에 울적한 마음에 몇 페이지 넘겨보다가 그에게 드리고 싶은 시가 있어 옮겨 놓을까 한다. 3월에 꽃피는 봄이 오길 바랐던 그와 나꼼수 멤버들에게 이 시를 바친다. 그리고 나와 같이 그들을 지지했던 많은 분들에게도 마음으로 전해 드리고 싶다.

 

 

우린 아직 젊고 젊지 않더라도 생각만은 젊다. 그러나, 생각이 젊은 건 그다지 이길 승산이 없는 패라고 손자가 가르쳐주더라. 더 꼼꼼하고 더 치사하고 더 속일 수 있어야 더 비겁해야 이긴다고, 그들은 말하더라. 일단 이겨야 공존이고 공생이고 철학이고 떠들 수 있다고 웃더라. 나는 저들만큼은 아니지만 비슷하게 꼼꼼해지기 위해서라도 조선일보를 읽는다.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번을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고 그렇게 적이 보는 눈으로 나를 보려면 냉철한 시선만이 필요하다고, 손자병법같은 비법은 한 수백권 오래전에 떼고도 남았을 박근혜의 시선이, 그녀의 미소를 일면에 장식해준 조선일보가, 그렇게 말씀하더라.

 

 

 

 

 

 

낙상 (落像)

 

 

 

네 혈관도 그렇게 한번 무너지고 싶었겠다

북한산 진달래 능선의 꽃사태처럼 너는

뇌출혈로 무너져 의식을 잃었다

백수광부가 물에 빠졌을 때처럼

황홀한 기억의

아슬아슬한 끄트머리, 그 잎사귀들 사정없이 흔들렸지만

아직은 의식의 밑바닥으로 떨어지지 않았을 때

가로등 불빛 속으로

불콰한 얼굴들이 낯빛을 들이밀듯

펄럭이던 눈발, 색색의

현기증들, 오 그렇게

너와 함께 무너지고 싶었던

3월의 폭설, 낙상이란 말의 행복한 눈사태들

 

 

- 오정국 <파묻힌 얼굴> 中에서

 

 

 

 

낙상의 추억을 잊지말자. 그건 3월의 폭설일 뿐이었다.

이상기후가 닥쳐도 봄은 온다.

지진이 와도 꽃은 피듯이.

 

 

 

 

 

 

 

덧붙임)

 

아직 다음의 책을 안 읽으신 분들은

비록 지져분하지만 책을 보내드리겠습니다.

글 남겨주시는 세대에 맞춰 다른 책도 드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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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2-04-12 14: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의 집도 조선일보를 제가 태어나기 전부터 구독하다
구독을 끊은지가 수년이 됍니다.
그럴줄 알았으면 정말 계속 읽어볼 걸 그랬습니다.ㅠ
전 구독할 때도 TV 프로와 문화와 책 센셕 밖에는 보지 않았습니다.
구독료도 어쩌면 그리도 비싼지.ㅠ
저도 저 책은 읽어보고 싶더군요.
그런데 어떻게 하면 조선일보에서 무더기로 책을 받을 수 있나요?
조선일보는 제가 자기네들을 배신했다고 무더기로 책 보내 줄리 없겠지만.ㅠ

한사람 2012-04-13 09:11   좋아요 0 | URL

읽어야 해요.
가끔 SNS에서 읽지도 않고 헤드라인만 보고 혹은 그 헤드라인에 반응한 글만보고
비판이나 동의하는 글들을 많이 봐요.
종이신문을 읽으면 흐름을 알수가 있잖아요.

스텔라님은 비평이나 정치쪽 책은 관심없으신듯 합니다 ㅠㅠ
..제가 주소를 아니까 걍 보내드릴수 있겠네요.
아마 우체국은 월요일 가게 될거 같아요.
그럼 화요일 받아 보실수 있어요.

참, 조선일보도 블로그가 있어요.
물론 책 리뷰 쓰는 분은 많지 않은데..
조선일보 협찬하는 출판사가 대부분 메인출판사라 -권력의 힘이란 ㅠㅠㅠ-
양질의(?)책을 서평신청 받아요.
경쟁률이 세긴하지만요.

그렇게 해서 몇번 리뷰를 올렸더니 이달의 리뷰인가 뭔가
잊는지도 몰랐던 상을 주더라구요. 그런가 했는데 엊그제 책이 무더기로 왔더라구요.
자기네 추천 책이라고 ㅋ
(대부분 조선일보 비판하는 글이었는데 ㅠㅠ)
저는 SNS에서도 조선일보 엄청 욕했어요.
아마 리스트에 올라있을 걸요, 하하


stella.K 2012-04-13 12:57   좋아요 0 | URL
오, 어니어요 한사람님!
글찮아도 읽고는 싶었는데 지난번에 보내주신 것도 있고
다른 분 신청하시라고 그냥 가만 있었어요.
근데 이케 받아도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조선일보 블로그에도 이달의 리뷰가 있었군요.
한사람님 정도라면 당연히 보내줘야 마땅하죠.
저는 알라딘 이달의 리뷰 하나도 당선이 안돼서 실의에 빠져있어요.
이쪽에서 인정을 못 받는데 그쪽에 리뷰 썼다고 당선이 되겠습니까?ㅠㅠ
그래서 알라딘 살림살이 좀 나아졌는지 모르겠어요.큭!
이런 얘기 한사람님한테 할게 아닌데. 이해하세요.ㅋ
암튼 보내주시어요. 기다리겠습니다.^^

마립간 2012-04-12 17: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달려라 정봉주'만 소장하고 있습니다. 나머지 구매 예정이었습니다. 책 방출 예정이시면 저도 신청합니다. 저의 부모님은 조선일보도 좋아하지 않지만, 투표는 변함이 없습니다. (묻지도 않았지만.) 저는 최근에 조선일보를 잘 읽지 않았는데, 다시 정독해야겠습니다. ('주기자'는 주진우 기자를 돕는 마음으로 지금 주문했습니다.)

2012-04-13 09: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4-12 17: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4-13 09: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4-13 12: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4-12 18: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4-13 09: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4-13 18: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보물선 2012-04-12 18: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 내가 미투에 올린 말이랑 똑같은 내용이 저 위에 있네... 희안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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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S는 소통단절의 도구라고 합니다. SNS를 하는 사람들과 안하는 사람들의 소통단절. 그래서 SNS를 하는 사람들끼리 다같이 착각에 빠지게 하는 효과가 있다는거지요! 뭔가 속았다는 생각을 하고 계시는 분들~ 우리 그래서 그런거드라구요. 세상엔 SNS를 하지 않는 사람이 훨씬 많습니다.

한사람 2012-04-13 09:30   좋아요 0 | URL

우리가 올린 글들 봤는지 ㅋㅋㅋ
조선일보, 한국일보 등등
SNS 는 수도권과 2040세대까지만 통한다!!!

박근혜는 빨리 그들을 잡고
비박근혜(?)는 비수도권과 50대 이상에 대비하라, 이런 식으로 나오더군.
아침 신문에 완전 대선레이스 시작된 분위기야!
맨날 분위기는 지들이 시작하고 조장하면서 이런 분위기라서 조사했다나 ㅋ

철수 2012-04-13 17: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니미...씨바..오늘 하루 완전 패닉이요.
하루종일 뭘 해도 짜증만 나는구랴..
선거가..이렇게 절망이 되보긴 대가리 피가 마른이후..첨이오만...
노니 개라도 팬다고...책이라도 한권 사야겠다 싶어 들어오니..
웬 늠의 활자가..징그럽게 느껴지는 날이구려..
이것 저것 클릭..클릭..클릭하다...우연찮케 눈에 들어오던..
어릴때의 기억으로 진했던 신문의 휘발류냄새...
소독차 뒤따라 댕기면서 완전히 몸을 소독한다고 좋아했던..기억들...
김혜수..그년이 몇살이나 됬능가...얼추 내보다..한두어살 쳐지던데..
아..씨바..강남에 논두렁 샀다구...아..배아퍼..

꼬일되로..꼬인 감정선을 따라..결국은 님의 글을 다읽고...몇자 남깁니다.
그들만의 리그..마이너리티 리포트가 되어버린..
씁쓸함..

희망이 있는걸까요..?? 과연..

=============================

아..그리고..주기자..책 혹시 다봤으면..나도좀 봅시다.
어쩐지 돈주고 살라니..그건 좀 아까워서..


한사람 2012-04-13 09:32   좋아요 0 | URL

같은 심정입니다.
(특히, 소독차 따라가는거...아시는군요 ㅋㅋㅋ 저는 그게 그렇게 재밌었는데
이제와 돌이켜보니 소독차로 상징되는 산업화, 경제화, 위생화에 사육된(?) 세대였더군요.ㅠㅠ)

암튼, 이런 글에 잘 아는체 하기가 힘든데 이렇게
심경까지 남겨주셔서 고맙습니다.
투표율이 대통령 선거때 보통 10프로 정도 상승하잖아요..
이게 다 젊은층이구요.

(수도권에서만)그걸 표로 환산하면 약 56만표 정도 된답니다.-그런식으로 전국에 상승하는 젊은표를 다 가져오면 좋겠네요-
아침 신문에 보니 그걸 뺏기면 안된다고 하더라구요(새누리에서요, 쳇 벌써부터 자기네꺼인양~)
역으로 그표가 야권에 오면 이길수 있습니다.
물론 변심이 없다면요 ㅠㅠㅠ
아직 절망할 단계는 아닌 듯합니다^^
새누리가 의석수에서는 이겼지만 표로 보면 야권에 밀렸잖아요.
벌써부터 표계산하느라 조선일보는 바쁘더구만요~

우편번호/주소/연락처/성함 남겨주세요!!!
(비글로요^^)


굿바이 2012-04-12 21: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정국시인의 시가 이렇게 다르게 읽히는 날도 있군요!

잘 아는 어떤 분이 오늘 새벽에 제게 말하더군요. 어느 지방으로 내려가 어느 당의 공천을 받아라. 썩은 막대기를 꼽아도 뽑아주는 걸 보니 너도 될 수 있겠다, 뭐 이런 이야기를 하시더군요. 진짜 진지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이런 생각을 하는 새벽이 참.... 여튼 오늘 밤은 바람도 차네요ㅜㅜ

한사람 2012-04-13 09:35   좋아요 0 | URL

앗, 역시
오정국 시인을 아시는군요 ㅋㅋㅋ
굿바이님 갖고 계신 시집과 같은 출판사 표지더군요.
시가 대부분 저한테는 어려웠는데 유난히 눈에 띄던 시가 있었어요.

저는 시집을 제대로 꼼꼼히 읽어본적이 없는거 같아요.
넘기다가 나를 멈추게 하는 시만 몇 번 읽어보거든요..
그런데 웃긴건, 다음에 안 읽어본 시 읽어보자 해서 넘기다가
또 그 전에 읽었던 시에서 멈추더라구요 ㅋㅋㅋㅋㅋ

어제 하루 종일 선거때문에 패닉인 분들 많았습니다..
그런데 아직 8개월이나 남았어요!!!!

카스피 2012-04-12 22: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흠 좋은 글입니다.적을 알아야 적을 이길수 있는데 밉다고 조중동을 안보는 이들이 넘 많지요.행간에 숨어있는 무서운 뜻을 알아야 소리없이 뒤에서 날아오는 화살을 피할수 있는데 말이죠ㅜ.ㅜ

한사람 2012-04-13 09:39   좋아요 0 | URL

조선일보는 아주 치밀하고, 빠르고,
또 철저하게 후속조치 합니다.
분위기 잡는데는 도가 텄죠..
그런데 슬픈 건,
조선일보가 주도하는 사회여론이 결국 우리 사회 주류 가치가 되더군요.
중요하고 우선이라서가 아니라 단지,
조선일보가 부르짖는다는 이유만으로요.

저는 조선일보를 관찰하는 것이 결국 이 나라 메인 스트림이 원하는 방향을
깨우치는 길이라 생각합니다.



sonamj 2012-04-12 23: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무리 읽으려 해도 걸핏하면 흥분하는 저 같은 사람은,,건강상의 이유로 읽지 못합니다.

좀 젊은 층들은 몇해 째 상실의 시대만 읽더군요 ㅋㅋ

한사람 2012-04-13 09:42   좋아요 0 | URL

그렇죠!!!
저도 넘기다가 열받는 경우가 많아서
욕을 하면서 볼때가 있어요 ㅋㅋㅋ

얼마나 치사하냐면,
제목은 마치 이 사회 비판, 새누리당 비판인 듯한데,
자세히 끝까지 읽어보면 결론, 마직막에 가서는
꼭 양아치 같은 지하언론(나꼼수), 일부 SNS 대중 소설가(이외수, 공지영)이런식으로
빗대어서 그들 비판하려고 한 내용이었다는거...

조선일보 사설은 끝까지 읽어봐야 하고
마지막 문단에 모든 답이 다 있습니다.

상실의 시대 ㅋ
아마 1Q84는 한권이 아니라서 그렇겠죠 ㅋㅋㅋ

2012-04-13 02:2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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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4-13 09:5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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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4-13 16:0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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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12-04-13 03: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삶을 옳게 바라보지 않으면서
사람들을 사랑스레 이끌지 못하고
이웃과 동무를 착하게 어깨동무하지 않는
글과 그림과 사진으로 어우러진 매체라면,
가까이하지 않아야
내 마음과 몸이
넉넉하면서 따사로울 수 있으리라 느껴요.

오래오래 읽으실 수도 있지만,
마음 건강에 안 좋은 책이나 글이라 한다면
굳이 읽으며 시간을 버려야 할까 싶기도 해요.

온누리 좋은 글
아름다운 그림
사랑스러운 사진...
을 살피고 아끼는 데에
시간과 품과 땀을 들여야 즐거우리라 믿습니다.

한사람 2012-04-13 09:57   좋아요 0 | URL

저는 사실
제가 사는 일상의 틀 안에서는 조직의 왕따와도 같아요..
주변이 다 보수거든요.

그래서 그분들보다 더 많이 읽고
더 정확하게 알고 나서
대화를 하는 편입니다.
의외로 보수들이 신문도 책도 안 읽고 그냥
9시 뉴스와 신문 헤드라인만 보고 삽니다.
사는데 경제적으로 걱정이 별로 없어서 그래요.
야권의 자세한 주장 같은 건 절대 알려고도 하지 않아요..

그래서 현실에선 독립투사와 같은 마음이라
저는 그들의 프레임과 논리와 습관대로 생각을 한 다음,
그걸 틀렸다고 주장하는 쪽입니다.(피곤해요 ㅠㅠㅠ)
그러다 보니, 가끔은
이런건 어떻게 생각하느냐, 누가 맞는 것이냐 슬쩍 물어보기도 해요, 하하

된장님의 글, 늘 눈과 마음을 청정하게 해주는 터라
저같은 머리 복잡한 사람에게 절실합니다, 고마워요^^

2012-04-13 10:3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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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4-14 00:3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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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4-13 17:3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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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4-14 01:1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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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4-13 22:4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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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4-14 00:4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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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4-14 01:2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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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4-14 00:2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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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4-14 01:0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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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좋아 2012-04-16 09: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멜로 날아온 글을 타고 들어와서 읽으며 이렇게 답답한 마음 가진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 새삼 새로운 희망으로 느껴지네요. 선거후 며칠동안을 우울하기도 하고 화병이 생겨 참을 수가 없었어요.
언제쯤이면 그들이 짜놓은 프레임에서 벗어나 사람들이 자유로운 시각을 가질 수 있을까요.
글 읽었습니다.

한사람 2012-04-17 13:14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책좋아님!
저도 같은 생각을 했습니다. 같은 생각을 가진 분이 많구나를 느끼면서
그래도 희망은 있다고 느꼈어요.
힘이 되는 덧글 고맙습니다^^

2012-04-16 09:4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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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사람 2012-04-17 13:17   좋아요 0 | URL

오늘 아침도 조선일보를 읽었지만..
예전엔 네티즌을 비난하는 글이 모두 SNS 하는 사람들로 바꿔서 비난하고 있어요.
근거없이 퍼다 나르고 괴담조성한다구요.
그러면서 꼭 끝에 이외수, 조국, 공지영 언급하죠 ㅋ

이걸 일년 이상 세뇌시키면
북한은 괴물이고 김대중은 빨갱이다, 하는 것과 꼭 같아요..

연일 우울한 날입니다..뒤늦게 글을 발견하고 이제야 답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