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그제 서울도서관에서 열린 ‘아이처럼 살다’ 전시회에 다녀왔어요. 이오덕·권정생·하이타니 겐지로 전시회였지요. 가보려 하던 참에 글쓰기교육연구회 선생님들이 모인다고 해서 이때다 싶어 올라갔죠. 온 삶을 아이처럼 살다 가신 세 분 삶을 돌아보며 많은 생각을 했어요. 이오덕 선생님이 아이들 글 하나 하나를 갈무리해 손수 붙여 만든 책을 보았지요. 삐뚤빼둘 쓴 쪽지 시 하나까지 버리지 않으셨어요.
저는 선생이 되기 전까지 존경하는 사람이 없었어요. 늦게 이오덕 선생님을 책으로 만나며 제 삶을 다시 돌아보고 선생으로 사는 길을 찾았죠. 만나 뵐 수 없지만 이런 저런 궁금한 것도 여쭤보고 따끔한 가르침도 받고 싶어요. 책과 글쓰기교육연구회 선생님들 이야기라도 만날 수 있어 그나마 다행이예요.
전시회를 둘러보다 이오덕 선생님이 남기신 말이 오래 남아요.
‘자기 삶은 모든 사람 삶에 이어져야 한다.’
사람은 무얼까요? 국어말집(표준국어대사전)을 찾아보니 이렇게 나와 있어요.
1) 생각을 하고 언어를 사용하며, 도구를 만들어 쓰고 사회를 이루어 사는 동물
보기> 사람은 만물의 영장이다.
2) 어떤 지역이나 시기에 태어나거나 살고 있거나 살았던 자
보기> 서울 사람, 충남 사람
3) 일정한 자격이나 품격 등을 갖춘 이
보기> 사람을 만들다.
4) 인격에서 드러나는 됨됨이나 성질
보기> 사람이 괜찮다.
물론 사람도 ‘동물’이고 ‘짐승’이죠. 그래도 무언가 찜찜해요. 김수업 선생님 ‘우리말은 서럽다.’를 살펴보면 ‘사람’ 뜻풀이가 참 뜻 깊어요(우리말은 서럽다 251~252쪽). ‘사람’에서 ‘ㅏ’만 빼면 ‘삶’이 되죠. 사람의 값어치는 ‘어떤 삶을 사느냐에 따라 매겨지는 것’이라고 말하기도 해요.
‘사람’이라는 낱말은 본디 ‘살다’라는 움직씨(동사)에 ‘ᄋᆞᆷ(암)’이라는 이름씨(명사) 씨끝(어미)이 붙어서 이루어진 이름씨 낱말이예요. 그러니 뜻은 ‘사는 것’ 또는 ‘살아 있는 것’ 곧 ‘삶’이겠죠. 김수업 선생님은 더 나아가 ‘살다’와 ‘알다’라는 두 낱말이 함께 어우러져 이루어진 것으로 보셨어요.
*‘살다’의 줄기 ‘살’ + ‘알다’의 줄기 ‘앎’ → [살+앎], [삶+앎]
‘삶을 아는 것’이 곧 사람이고, ‘삶을 아는 목숨’이 사람이라는 뜻이다. 왜 사는지를 알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알고, 어떤 삶이 보람차고 헛된지를 알고, 무엇이 값진 삶이며 무엇이 싸구려 삶인지를 알고서 살아가는 목숨을 ‘사람’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우리말은 서럽다 252쪽)
어찌 보면 ‘사람’은 몸뚱아리만 보면 동물과 다르지 않아요. 하지만 사람이 동물과 다른 이유는 ‘마음’과 ‘얼’이 있기 때문이예요. 먼저 ‘마음’은 무엇일까요? 국어말집을 찾아보면 다음과 같이 나와요.
1) 사람이 본래부터 지닌 성격이나 품성
보기> 마음이 좋다. 아내는 착한 마음을 가졌다.
2) 사람이 다른 사람이나 사물에 대하여 감정이나 의지, 생각 따위를 느끼거나 일으키는 작용이나 태도
보기> 몸은 늙었지만 마음은 아직 청춘이다.
3) 사람의 생각, 감정, 기억 따위가 생기거나 자리 잡는 공간이나 위치.
보기> 안 좋은 일을 마음에 담아 두면 병이 된다
4) 사람이 어떤 일에 대하여 가지는 관심.
보기> 오늘은 날이 추워 도서관에 갈 마음이 없다.
5) 사람이 사물의 옳고 그름이나 좋고 나쁨을 판단하는 심리나 심성의 바탕.
보기> 네 마음에 드는 사람을 골라 결혼해라.
6) 이성이나 타인에 대한 사랑이나 호의(好意)의 감정.
보기> 너 저 사람에게 마음이 있는 모양이로구나.
7) 사람이 어떤 일을 생각하는 힘.
보기> 마음을 집중해서 공부해라.
뜻풀이가 또렷하지 않아요. ‘우리말은 서럽다’ 책을 보면 그 뜻이 또렷해져요. 김수업 선생님은 마음은 ‘느낌’, ‘생각’, ‘뜻’ 이렇게 세 겹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말씀하세요(우리말은 서럽다. 213~218쪽).
‘느낌’은 춥고 덥고, 밝고 어둡고, 시끄럽고 고요하고, 쓰고 달고…… 이런 것들이죠. 몸에서 빚어지는 마음의 움직임인 기쁨과 슬픔, 즐거움과 괴로움까지도 느낌이라고 볼 수 있어요. ‘몸’에서 ‘마음’으로 들어가는 첫 겹이며, 다스려지지 않은 채로 어수선한 상태일 수 있어요.
‘생각’은 마음의 둘째 겹이예요. 생각은 생각(生覺)이라는 한자말로 알고 있는데, 이건 잘못 알고 있는거예요. 생각은 본디부터 우리 토박이말이죠. ‘느낌’보다는 마음 안쪽으로 끌어와 흔들림이 가라앉은 다음 빚어지는 마음의 움직임이예요. 그래서 알고 모르고, 같고 다르고, 맞고 틀리고, 참되고 그르고…… 이런 것을 가려내지요.
‘뜻’은 ‘느낌’과 ‘생각’을 지나 좀 더 마음 한가운데로 들어가서 자리잡은 움직임이예요. 바깥 세상을 받아들여 느낌과 생각을 간추린 마음의 셋째 겹이죠. 뜻은 생각과 느낌을 끌고 가요. 뜻이 마음을 끌고 가면 마침내 몸도 끌려가지요. ‘뜻’을 두면 어떤 일도 해내는 것을 보면 알 수 있어요. 이래서 뜻은 마음의 알맹이, 사람의 알맹이인 거죠.
뜻이 어떠한가에 따라 삶이 달라지게 마련이고, 뜻이 어떠한가에 따라 삶이 달라지면 사람의 값어치가 달라지게 마련이므로, 뜻이 사람의 값어치를 매김 하는 잣대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뜻’이 온전하게 세워지려면 먼저 ‘생각’을 올바르게 다스릴 수 있어야 하고, 그보다 더 먼저 ‘느낌’을 제대로 가꾸어야 한다는 사실도 잊지 말아야 하겠다. 몸 바깥세상을 고스란히 받아들이며 살아 움직이는 느낌을 바탕에 깔고, 온갖 것을 가늠하고 간추리는 생각의 힘을 갖춘 위에, 굳세고 슬기로운 뜻의 힘을 세우면, 마음은 더할 나위 없이 온전할 것이다. 그래서 사람의 마음이란 느낌과 생각과 뜻이 골고루 제 몫을 다할 수 있을 적에 마침내 바람직하게 움직일 수 있는 것이다. <우리말은 서럽다. 218쪽>
책을 다시 보며 한참 생각했어요. 사람답게 사는 것은 무엇일까? 왜 사는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어떤 삶이 값진 삶인지. ‘사람’은 ‘삶을 아는 것’이라는 ‘뜻’을 다시 새겨봅니다. 우리말 공부가 그냥 국어 맞춤법 공부가 아니라는 걸 또 깨달아요. 다음 글에서는 ‘얼’에 대해 이야기해보려고 해요.
(2015.5.27. 민들레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