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과서 너머 교육과정 마주하기 - 초등 4학년 교육과정 개발 사례
열 사람의 한 걸음 지음 / 살림터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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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동안 교육과정 재구성을 몇 번 시도했다. 교과서 진도를 그대로 나가는게 가장 편하긴 하다. 그래도 뭔가 뜻있게 가르치고 싶어 학기초 잔뜩 고민해 앞 뒤로 갖다 붙이며 여러 교과를 통합해 가르쳤다. 진도대로 나가는 것보다는 나았지만 그래도 무언가 부족했다. 교과서 내용 가운데 안 다룬 내용이 불안해 다시 가르치며 빡빡한 수업으로 아이들은 힘들어 하기도 했다.

 

 이 책은 교과서에서 벗어나 교육과정과 마주하려고 노력한 책이다. 초등학교 4학년 사례를 다루고 있었고 정말 많은 고민과 땀이 느껴졌다. 교육과정 재구성은 교과서 재구성이 아니다. 순서만 바꾸거나 여러 교과를 통합한 수업도 아니다. 흔히 그렇게 하고 나도 해보면 그렇게 되곤 하지만 넘어서야 한다. 그 바탕에는 철학이 흘러야 한다. 교육과정관(내가 이 과목을 왜 가르치나?), 아동관(아이들을 어떻게 바라보나?), 학력 및 평가관 (진정한 학력이란, 그렇다면 평가는 어떻게 해야할까?)을 깊이 고민해야 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교육과정을 개발할 수 있을까? 이 책에서 친절히 소개해준다. 우선 욕심을 부리지 않고 시작한다. 순서는 다음과 같다.

 

*국가교육과정 살펴보기(총론과 성취기준) -> 성취기준, 교과서 보며 주제 정하기 -> 통합수업 잠정 계획 만들기 -> 통합수업에서 포함되지 않은 교과교육과정 계획하기 -> 교육과정 지도 작성하기 -> 주제별 수업 디자인하며 실행하기

 

 교사들은 '국가교육과정'에서 정해놓은 '성취기준'을 달성해야 하는 법적 책임이 있다. 어찌보면 이런 상황에서 교육과정 재구성은 교육내용 재구성을 벗어나지 못한다. 글쓴이 주장처럼 국가교육과정이 '기준'이 아닌 '지침'으로 바뀌고 교사에게 보다 자율권을 준다면 보다 교사철학이 담긴 살아숨쉬는 교육과정이 나오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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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 삶의 리듬을 잇는 학급운영 지혜로운 교사 5
박진환 지음 / 우리교육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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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전에는 학급운영 책을 보면 어떤 좋은 프로그램이 있을까 살펴보며 학급에 바로 투입하기 바빴다. 이제는 프로그램을 왜 운영하는지 조금 알겠다. 그 바탕에는 철학이 있다. 박진환 선생님 학급에서는 이오덕 선생님과 발도로프 철학이 따뜻하게 흐르고 있었다. 프로그램 위주 이벤트 행사가 아닌 철학이 살아있는 이런 학급운영 다시 그려본다.

 

 학급운영은 계절흐름에 따라 봄, 여름, 가을, 겨울로 리듬을 살려 운영된다. 월별로 주제를 갖고 학급운영을 하며 활동을 몇 가지 간추려본다. 다시 학교에 돌아가면 해보고 싶은 것들 꼽아본다.

 

 *전체 운영: 옛 이야기 들려주기, 책 읽어주기, 시와 노래, 자세히 그림 그리기(이호철), 가정방문, 글쓰기, 기록
 *월별 운영
-3월(만남): 친구 얼굴 그리기, 걸개그림 그리기, 자연만남, 진달래 꽃전
-4월(소통): 준비(자연,교사,아이), 콩깍지(친구), 태몽이야기(부모님-아이들), 김밥
-5월(관계): 아이 발 씻어주기, 가정수비대, 황토염색, 비빔밥
-6월(평화): 평화동화(파일참고)
-7,8월(세상): 부채만들기, 방학과제, 선생님과 여행
-9월(협동): 몸으로 부대끼기, 협동작품 만들기, 이야기 만들기, 무지개떡 만들기(지층)
-10월(나눔): 나눔장터
-11월(노동): 일하는 삶의 가치 배우기, 김치담그기
-12월, 2월(감사): 마무리 잔치, 전시회, 책만들기

 

 "주제와 교육과정을 아이들 삶에 연결하여 얼마나 잘 녹여내느냐에 따라 성공과 실패를 거듭했다." (27쪽)

 

 교육과정과 학급운영은 함께 가야 한다. 처음에는 수업 따로 학급운영 따로였다. 그러니 늘 이벤트식 행사가 되었다. 교육과정 속에서 철학과 혼이 담긴 학급운영을 해보고 싶다. 초임때는 왜 하는지도 모르고 좋다는 프로그램을 잔뜩 욕심내 했던 기억도 있다. 결국 아이들은 없고 내 만족감만 남았다. 내 욕심이 아닌 아이들과 함께 살아가는 것이 바로 정답이다. 아이들을 바라보는 여유와 머무름이 있는 학급살이를 다시 꿈꿔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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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라는 괴물 - 다시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
권재원 지음 / 북멘토(도서출판)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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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읽고 나면 불편한 느낌이 드는 글이 좋은 글이다." (권정생)

 

 읽는 내내 마음이 조금 불편하기도 했지만 나를 돌아보고 지금 상황을 생각했다. 막연하게 알고 있었던 생각을 또렷이 정리했고, 미처 생각하지 못한 점을 끄집어 내주기도 했다. 현실을 분석해 그 숨겨진 원인까지 찾아내고 대안까지 세우는 힘, 글로 보여준다. 돌직구로 던지는 말들이 차갑게 느껴질 수 있지만 그 속에는 따뜻함이 느껴졌다. 애정이 없으면 비판도 없다.  

 

 1장 '무엇을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는 우리 사회와 교육, 그리고 교사에게 던져주는 이야기다.  지금 우리들이 무엇이 힘들고 어떻게 가야하는지 제대로 짚고 말한다.

 

 "배움은 계획에 따라 정해진 학습량을 달성해 나가는 기계적인 과정이 아니다. 배움은 삶을 공유하는 것이며, 경험을 확장하는 것이다. 훌륭한 교사란 자신이 알고 있고, 할 수 있는 것을 효과적으로 잘 전달해주는 존재가 아니라 삶의 공유와 경험의 확장 과정에 함께 동참하여 학생과 더불어 성장해 나가는 존재다." (19쪽)

 

 그동안 나도 점수따기, 진도나가기에 급급한 수업을 했다. 배움이 무엇인지, 내가 무엇을 해야할지 다시 생각하게 했다. 이오덕 선생님 말처럼 아이들에게 배워야 한다라는 말도 떠오른다. 이 말은 교사가 겸손해야 한다는 뜻이 아니다. 더 깊게 부딪치고 느껴봐야겠지만 가르치려하기보다 아이들 속에서 배우려는 마음을 늘 새겨야겠다.

 

 "공교육은 직업인을 길러 내기 위한 교육이 아니다. ... 학교는 학생들이 현재 자신의 가능성과 역량을 확장시킴으로써 스스로의 미래를 개척하고 창조하는 곳이 되어야 한다. ... 공교육은 학생들이 직업인, 인간, 시민 이 세 차원에서 미래를 열어 가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32쪽)
  "제발 교사를 그냥 두라." (38쪽)

 

 아주 우수한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 교직에 들어선다. 그게 조건이든, 의미있는 가치든 많은 이들이 선생이 되려고 한다. 하지만, 능력있는 사람들이 교직에 들어오면 맥을 못춘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구조다. 교사가 교육에 전념하고 여기에서 보람과 희망을 느끼며 사회도 지지해줘야 한다. 혁신학교를 시작으로 이런 흐름이 만들어지고 있지만 아직도 갈 길은 멀다.

 

 세월호 이야기는 내가 그동안 생각하지 못했던 것을 끄집어 내주었다. 어른들을 믿지 말라고 가르치는 것은 그들을 절망시키는 행위다. 맞다. 사회를 믿게 해야 한다. 하지만, 지금 우리 사회는 믿을 수 없다. 아이들에게도 이를 가려내는 비판적 사고능력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교사는 무엇을 해야 할까? 먼저 학생들에게 믿을 만한 어른이 되는 것, 이를 가려낼 수 있는 경험을 제공하는 것, 사회를 바꾸는데 힘쓰며 본보기를 보여주는 것이다.

 

 교육복지에 대한 이야기도 뜻 깊다. 막연한 생각을 눈에 보이게 정리해준 글이 참 인상깊었다.

 

 "우리는 교육이란 무엇보다도 교육받는 사람의 행복을 위한 것이며, 그 행복은 미래에 유보된 것이 아니라 교육받는 순간에 주어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59쪽)
 "참교육의 평등. ..교사는 저소득층 자녀가 더 높은 성적을 올리게 하면서 교육 불평등을 해소할 수 없으며, 그건 바람직하지도 않다. 그러나 교사는 저소득층 자녀가 덕성, 지성, 감수성을 함양하도록 할 수는 있다." (65쪽)
 "가난하다고 꿈조차 가난할 수 없다. 공부의 동기가 가치(윤리적, 미학적, 영적, 지적가치)인 학생은 동기가 생계(취직, 소득, 혹은 출세)인 학생보다 열성적이고 긍정적으로 공부할 수 있다. 공부의 동기가 가치에서 출발한 학생은 설사 좌절하더라도 자신의 도전이 가치 있었음을 인정하고 차선책을 찾을 수 있지만, 생계에서 출발한 학생은 공부에서의 좌절이 곧 삶의 좌절이라고 느껴서 극단적인 선택을 하거나 심신이 황폐해지기가 싶다. ... 경쟁에 끌려다니지 않고 경쟁을 자신의 페이스에 끌어 담을 수 있는 강단 있고 주체적인 학생을 기르는 쪽이 보다 현실적일 것이다." (85쪽)

 

 우리 교육 문제점을 '인간자본론'에서 찾았다. 교육은 무언가 얻을 수 있는 수단을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가치가 있다. 교육을 시켜 더 많은 생산을 이루는 도구로 바라보기 때문에 지금 우리 교육도 이 지경까지 온 것이다. 아직도 그렇다. 그래도 희망은 교육에 있다. 진정한 교육평등은 저소득층 자녀에게 돈을 투자해 좋은 대학을 보내는 것이 아니라 머리와 마음과 가슴이 채워진 사람으로 자라게 하는 것이다. 그 사람들이 바로 사회를 바꿀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교사들이 그런 사람이 되야 한다.  

 

 2장 '학교라는 이름의 괴물'에서는 학교에서 일어나는 문제 속살들을 그대로 끄집어 보여주고 있다. 더 나아가 대안까지 말한다.

 

 "사람은 일하면서 배우고 놀이하면서 배운다. 그리고 이러한 배움을 통해 자신의 능력과 가능성이 확장되는 경험이 바로 행복이다." (152쪽)
"교사도 사람인 이상 보상이 필요하며, 그 보상은 금전적인 것이 아니라 사회적인 것이라야 한다. 교사로 늙고, 교사로 퇴직하는 것이 자랑스럽게 하라." (217쪽)
"자기에게 주어진 작고 소소한 일을 창조적으로 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뭔가 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해 다른 거창한 일을 벌인다. 그러나 겉보기에는 작고 사소한 아이디어들을 고민하는 사람 덕분에 학교가 움직인다." (227쪽)
"근본적 변혁을 하고자 하는 시도가 아니라 그 순간순간 요구되는 변혁을 꾸준히 누적시키다가 어느 임계점에서 근본적인 변혁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309쪽)

 

 안전문제, 학교폭력, 교장승진제도 같은 학교현장 문제점을 하나 하나 들추며 말한다. 모든 문제를 간추리면 교육이 본래 뜻으로 돌아가자는 거다. 삶을 가꾸는 교육, 아이들을 가르치는데 온 힘을 다 쏟고 이를 지지해주는 사회분위기, 위에서 내려오는 갑작스런 변화가 아닌 작은 것부터 하나 하나 만들어가는 아래에서부터 변화가 바로 학교 변화 시작이 아닐까 싶다. 

 

 3장 '여전히 뜨거운 감자'는 공교육 시장화, 전교조 비판, 진보교육감, 역사교육들을 다룬다. 비판하는 말들이 아프게 다가왔다. 전교조가 왜 이렇게 됬을까 싶기도 하고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제대로 길을 잡고 바로 갔으면 한다. 애정어린 비판을 하는 사람들까지 하나 둘 떠난다면 정말 걱정이다. 또 하나 진보교육감 사용법을 읽고는 지금 충남 상황이 떠올랐다. 뜻있는 이야기는 첫째, 의제를 학교 현장에서 계속 만들고 선점해야 한다는 것, 둘째 교육전문가로서 소양을 갖추어 한다는 것, 셋째, 실천을 만들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진보교육감을 뽑았으니 뭔가 되겠거니 하는 생각을 버리고 뭔가 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해야 한다. 충남은 지금 어떤 상황인가? 쉽지 않다.

 

 요즘 생각을 하며 살아야 겠다는 마음이 부쩍 든다. 학교라는 공간은 더 그렇다. 문제를 못 느끼고 그냥 그렇게 흘러가는 경우가 많다. 왜? 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던져야 겠다.  (2015.7.9 민들레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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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무엇일까요? 눈에 보이지 않아 더 어려워요. 곰곰이 생각해보니 말풀이로 풀 문제는 아닌 듯해요. 사람이 동물과 다른 이유가 저번 글에서 ‘마음’과 ‘얼’이 있기 때문이라고 했죠. 다시 생각해보니 동물에게는 ‘마음’과 ‘얼’이 없을까 궁금해져요. 우리가 모르는 세상이 있을 텐데 싶고요. 사람이 동물보다 위에 있다는 생각은 과연 맞는 말일까요? 우리가 모르는 세상 헤아리기 어렵죠. 다시 처음으로 돌아오네요. 깊은 철학이 담긴 이야기라 살면서 더 찬찬히 생각해보려고 해요. 그래도 ‘넋’과 ‘얼’ 이야기를 여기저기 듣고 본 속살을 나름 갈무리 해봐요. 

 

 먼저 ‘넋’이예요. 김수업 선생님은 살아있는 사람에게는 ‘넋’을 쓸 수 없다고 하셔요. 최종규님은 ‘몸과 마음을 다스리는 기운’이며 ‘넋’과 ‘얼’은 ‘살거나 죽는’것이 아니라 어떤 몸(사람)을 빌어서 이 땅에서 ‘살다’가 다른 몸으로 가서 다시 ‘살’도록 하는 숨결이라고 합니다.

 

 국어말집에는 다음과 같이 나오지요.

 

*넋 [이름씨(명사)]

1) 사람의 몸에 있으면서 몸을 거느리고 정신을 다스리는 비물질적인 것. 몸이 죽어도 영원히 남아 있다고 생각하는 초자연적인 것이다.

보기> 억울한 넋을 달래다. 돌아가신 아버지의 넋이 나를 지켜 주는 것 같다.

2) 정신이나 마음

보기> 그 유물에는 백제의 넋이 살아 있다. 그는 여자 생각에 넋이 빠져 있다.

 

 주로 죽은 사람에게 ‘넋’이라는 말을 1)처럼 써요. 생각해보면 죽은 사람에게만 쓰는 게 아니고 ‘몸과 마음을 다스리는 기운’이 맞는 듯해요. 살아있든 죽었든 사라지지 않는 게 ‘넋’이죠. ‘혼(魂)’이라 불리기도 해요. ‘넋’이 빠지면 몸과 마음을 다스릴 수 없으니 ‘죽은 사람과 다름 아니다.’라는 말이구요.

 

*넋 빠진 사람, 넋 나간 사람, 넋을 놓고 있다

 

 그럼 ‘얼’은 무얼까요? 국어말집에는 이렇게 뜻풀이를 해놓고 있어요.

 

*얼 [이름씨(명사)]

1) 정신의 줏대

보기> 전통문화에는 민족의 얼이 담겨 있다. 엄마는 얼이 빠진 모습으로 쳐다봤다.

 

 ‘얼’은 ‘마음을 지키는 뼈대’예요. ‘얼’은 ‘마음’ 속에 있지만 ‘마음’과는 달라요. ‘마음’은 몸에서 비롯하지만 ‘얼’은 몸에서 나오지 않지요.

 

 ‘얼’은 ‘알’과 같은 말이에요. ‘알’은 새로운 목숨이 태어나도록 하는 씨앗입니다. 많은 짐승들이 알에서 태어나죠. 땅 위에 자라는 모든 푸나무들도 씨앗에서 자라요. 옛 신화에도 알에서 태어난 사람 이야기가 나오죠. 사람의 진짜 알맹이가 바로 ‘얼’이에요.

 

 ‘얼’은 ‘알다’라는 움직씨 몸통인 ‘알’이기도 해요. ‘알’은 ‘앎’이죠. ‘얼’은 아는 것, 알게 하는 힘이라는 뜻이에요. ‘생각’과는 달라요. 사람이 알 수 없는 저 너머 이야기를 아는 힘이죠. 보잘 것 없는 사람이지만 무엇이 옳고 그른지, 제 스스로를 들여다보며, 어디서 왔고 어디로 가야 하는지 아는 그런 힘이에요. ‘얼’은 몸에서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먼저 ‘얼’이 있고 거기서 몸이 생겨나는 거죠. 사람이라는 목숨이 생겨나도록 열어주는 힘이며 씨앗이 바로 ‘얼’이에요.

 

 ‘얼’이 쓰인 낱말들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아요.

 

*얼간이: 얼+간+이 → 얼이 가 버린 사람

*얼뜨기: 얼+뜨+기 → 얼이 하늘 높이 뜬 사람

*얼빙이: 얼+빈+이 → 얼이 비어 버린 사람

*얼빠졌다: 얼+빠졌다 → 얼이 사람의 마음에서 빠졌다

*얼먹다: 얼+먹다 → 놀라서 어리둥절하여지다

*얼치다: 얼+치다 → 정신을 잃어버리다

 

 어른들이 죽으면 ‘돌아가셨다.’라고 하죠. ‘돌아갔다’는 무엇이 돌아갔다는 것일까요? 사람이 죽으면 몸은 썩어요. 몸은 땅에 묻혀 자연으로 흩어지죠. 마음도 몸에 비롯된 것이기에 자연으로 흩어져요. 하지만, 사람은 죽음을 뛰어넘어 ‘돌아가는’ 무언가가 있어요. 그것이 바로 ‘얼’이예요. 목숨이 시작된 곳, 하느님께로 ‘얼’은 돌아갑니다.

 

 그럼 ‘넋’과 ‘얼’은 어떻게 다른 걸까요? 죽기 앞서 있는 게 ‘얼’이고 죽은 다음 있는 게 ‘넋’일까요? 최종규님은 이렇게 말하세요.

 

 “넋이 있어서 ‘산 목숨’이 됩니다. ‘얼’은 뼈대와 같은 구실로 ‘넋’을 지키는 구실을 합니다. 사람은 넋이 깃들면서 새 목숨이 되고, 새 목숨이 되면 ‘생각’을 지어서 어떤 뜻을 품고, 생각을 ‘마음’에 씨앗(알)처럼 심어서 어떤 일을 합니다.”

 

 무교에서는 넋이 깨끗해야 편안히 돌아간다고 믿죠. 그래서 제명에 죽지 못한 사람의 넋을 씻어주는 굿을 하기도 해요. 살아가며 ‘얼’에 때를 묻히고 흠을 내면 저승에 가서 ‘넋’에 묻은 때를 씻겨내는 아픔이 무지 크다고 하죠. 불교든 기독교든 천주교든 그 가르침은 다르지 않아요.

 

다시 사람답게 사는 길, 되새겨 봅니다.

 

(2015.6.2. 민들레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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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15-06-02 14: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무쪼록 슬기롭게 말길을 잘 찾아보시기를 빌어요

민들레처럼 2015-06-02 16: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늘 길잡이가 되주셔서 고맙습니다. ^^
 

 엊그제 서울도서관에서 열린 ‘아이처럼 살다’ 전시회에 다녀왔어요. 이오덕·권정생·하이타니 겐지로 전시회였지요. 가보려 하던 참에 글쓰기교육연구회 선생님들이 모인다고 해서 이때다 싶어 올라갔죠. 온 삶을 아이처럼 살다 가신 세 분 삶을 돌아보며 많은 생각을 했어요. 이오덕 선생님이 아이들 글 하나 하나를 갈무리해 손수 붙여 만든 책을 보았지요. 삐뚤빼둘 쓴 쪽지 시 하나까지 버리지 않으셨어요.

 

 

 저는 선생이 되기 전까지 존경하는 사람이 없었어요. 늦게 이오덕 선생님을 책으로 만나며 제 삶을 다시 돌아보고 선생으로 사는 길을 찾았죠. 만나 뵐 수 없지만 이런 저런 궁금한 것도 여쭤보고 따끔한 가르침도 받고 싶어요. 책과 글쓰기교육연구회 선생님들 이야기라도 만날 수 있어 그나마 다행이예요.

 

 전시회를 둘러보다 이오덕 선생님이 남기신 말이 오래 남아요.

 

 ‘자기 삶은 모든 사람 삶에 이어져야 한다.’

 

 

 사람은 무얼까요? 국어말집(표준국어대사전)을 찾아보니 이렇게 나와 있어요.

 

1) 생각을 하고 언어를 사용하며, 도구를 만들어 쓰고 사회를 이루어 사는 동물

보기> 사람은 만물의 영장이다.

2) 어떤 지역이나 시기에 태어나거나 살고 있거나 살았던 자

보기> 서울 사람, 충남 사람

3) 일정한 자격이나 품격 등을 갖춘 이

보기> 사람을 만들다.

4) 인격에서 드러나는 됨됨이나 성질

보기> 사람이 괜찮다.

 

 물론 사람도 ‘동물’이고 ‘짐승’이죠. 그래도 무언가 찜찜해요. 김수업 선생님 ‘우리말은 서럽다.’를 살펴보면 ‘사람’ 뜻풀이가 참 뜻 깊어요(우리말은 서럽다 251~252쪽). ‘사람’에서 ‘ㅏ’만 빼면 ‘삶’이 되죠. 사람의 값어치는 ‘어떤 삶을 사느냐에 따라 매겨지는 것’이라고 말하기도 해요.

 

 ‘사람’이라는 낱말은 본디 ‘살다’라는 움직씨(동사)에 ‘ᄋᆞᆷ(암)’이라는 이름씨(명사) 씨끝(어미)이 붙어서 이루어진 이름씨 낱말이예요. 그러니 뜻은 ‘사는 것’ 또는 ‘살아 있는 것’ 곧 ‘삶’이겠죠. 김수업 선생님은 더 나아가 ‘살다’와 ‘알다’라는 두 낱말이 함께 어우러져 이루어진 것으로 보셨어요.

 

*‘살다’의 줄기 ‘살’ + ‘알다’의 줄기 ‘앎’ → [살+앎], [삶+앎]

 

 ‘삶을 아는 것’이 곧 사람이고, ‘삶을 아는 목숨’이 사람이라는 뜻이다. 왜 사는지를 알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알고, 어떤 삶이 보람차고 헛된지를 알고, 무엇이 값진 삶이며 무엇이 싸구려 삶인지를 알고서 살아가는 목숨을 ‘사람’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우리말은 서럽다 252쪽)

 

 어찌 보면 ‘사람’은 몸뚱아리만 보면 동물과 다르지 않아요. 하지만 사람이 동물과 다른 이유는 ‘마음’과 ‘얼’이 있기 때문이예요. 먼저 ‘마음’은 무엇일까요? 국어말집을 찾아보면 다음과 같이 나와요.

 

1) 사람이 본래부터 지닌 성격이나 품성

보기> 마음이 좋다. 아내는 착한 마음을 가졌다.

2) 사람이 다른 사람이나 사물에 대하여 감정이나 의지, 생각 따위를 느끼거나 일으키는 작용이나 태도

보기> 몸은 늙었지만 마음은 아직 청춘이다.

3) 사람의 생각, 감정, 기억 따위가 생기거나 자리 잡는 공간이나 위치.

보기> 안 좋은 일을 마음에 담아 두면 병이 된다

4) 사람이 어떤 일에 대하여 가지는 관심.

보기> 오늘은 날이 추워 도서관에 갈 마음이 없다.

5) 사람이 사물의 옳고 그름이나 좋고 나쁨을 판단하는 심리나 심성의 바탕.

보기> 네 마음에 드는 사람을 골라 결혼해라.

6) 이성이나 타인에 대한 사랑이나 호의(好意)의 감정.

보기> 너 저 사람에게 마음이 있는 모양이로구나.

7) 사람이 어떤 일을 생각하는 힘.

보기> 마음을 집중해서 공부해라.

 

 뜻풀이가 또렷하지 않아요. ‘우리말은 서럽다’ 책을 보면 그 뜻이 또렷해져요. 김수업 선생님은 마음은 ‘느낌’, ‘생각’, ‘뜻’ 이렇게 세 겹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말씀하세요(우리말은 서럽다. 213~218쪽).

 

 ‘느낌’은 춥고 덥고, 밝고 어둡고, 시끄럽고 고요하고, 쓰고 달고…… 이런 것들이죠. 몸에서 빚어지는 마음의 움직임인 기쁨과 슬픔, 즐거움과 괴로움까지도 느낌이라고 볼 수 있어요. ‘몸’에서 ‘마음’으로 들어가는 첫 겹이며, 다스려지지 않은 채로 어수선한 상태일 수 있어요.

 

 ‘생각’은 마음의 둘째 겹이예요. 생각은 생각(生覺)이라는 한자말로 알고 있는데, 이건 잘못 알고 있는거예요. 생각은 본디부터 우리 토박이말이죠. ‘느낌’보다는 마음 안쪽으로 끌어와 흔들림이 가라앉은 다음 빚어지는 마음의 움직임이예요. 그래서 알고 모르고, 같고 다르고, 맞고 틀리고, 참되고 그르고…… 이런 것을 가려내지요.

 

 ‘뜻’은 ‘느낌’과 ‘생각’을 지나 좀 더 마음 한가운데로 들어가서 자리잡은 움직임이예요. 바깥 세상을 받아들여 느낌과 생각을 간추린 마음의 셋째 겹이죠. 뜻은 생각과 느낌을 끌고 가요. 뜻이 마음을 끌고 가면 마침내 몸도 끌려가지요. ‘뜻’을 두면 어떤 일도 해내는 것을 보면 알 수 있어요. 이래서 뜻은 마음의 알맹이, 사람의 알맹이인 거죠.

 

 뜻이 어떠한가에 따라 삶이 달라지게 마련이고, 뜻이 어떠한가에 따라 삶이 달라지면 사람의 값어치가 달라지게 마련이므로, 뜻이 사람의 값어치를 매김 하는 잣대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뜻’이 온전하게 세워지려면 먼저 ‘생각’을 올바르게 다스릴 수 있어야 하고, 그보다 더 먼저 ‘느낌’을 제대로 가꾸어야 한다는 사실도 잊지 말아야 하겠다. 몸 바깥세상을 고스란히 받아들이며 살아 움직이는 느낌을 바탕에 깔고, 온갖 것을 가늠하고 간추리는 생각의 힘을 갖춘 위에, 굳세고 슬기로운 뜻의 힘을 세우면, 마음은 더할 나위 없이 온전할 것이다. 그래서 사람의 마음이란 느낌과 생각과 뜻이 골고루 제 몫을 다할 수 있을 적에 마침내 바람직하게 움직일 수 있는 것이다. <우리말은 서럽다. 218쪽>

 

 책을 다시 보며 한참 생각했어요. 사람답게 사는 것은 무엇일까? 왜 사는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어떤 삶이 값진 삶인지. ‘사람’은 ‘삶을 아는 것’이라는 ‘뜻’을 다시 새겨봅니다. 우리말 공부가 그냥 국어 맞춤법 공부가 아니라는 걸 또 깨달아요. 다음 글에서는 ‘얼’에 대해 이야기해보려고 해요.

 

(2015.5.27. 민들레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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