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도 행복할 수 있을까 - 행복지수 1위 덴마크에서 새로운 길을 찾다 행복사회 시리즈
오연호 지음 / 오마이북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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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행복은 무얼까? 난 행복한 느낌이 들때가 언제일까?

 

 우선 편안하고 기분좋은 느낌이 들때다. 이런 느낌은 몸상태가 좋을때,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있을때, 새로운 곳을 가거나 맛있는 음식을 먹을때다. 가장 본능에 충실한 느낌이다. 이것부터 채워져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글쓴이가 말한 사회가 나를 보호해주는 '안정'과 의지할 수 있는 '이웃', 깨끗한 '환경'이 필요하다.

 

 다음은 내가 무언가 세상에 필요한 사람이라는 걸 느낄때다. 이를 위해서는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자유', 어떤 직업이든 자부심을 갖고 인생을 사는 '평등'이 필요하다. 인정과 자아실현 욕구, 그리고 더 높은 가치를 추구하는 마음과 느낌을 가질 때 바로 행복을 느낀다.

 

 '우리도 행복할 수 있을까' 물음을 던지며 책을 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래도 행복하자. 그래서 찾아보자. 그러면 해보자.'다. 젊은이들은 우리나라를 '헬조선'이라 부르며 절망을 이야기한다. 이명박 정부는 사대강과 자원외교에 수십조원을 날리고, 지금 정부는 국민과 소통하지 않고 책임지지 않는다. 바닥까지 쳤다 생각하지만 또 다시 곤두박질친다. 어디까지 떨어질까 이제는 두렵다. 사람들은 정치를 믿지 않고, 그렇다고 책임있게 참여하지도 않는다. 과연 우리나라에는 희망이 있을까?

 

 요사이 돌아가는 사회를 보며 답답한 마음에 책을 폈다. 크게 기대하지 않고 봤지만 부러움과 설레는 마음을 함께 느끼며 한숨에 읽었다. 과연 우리나라도 덴마크 같은 나라가 될 수 있을까? 무조건 절망하는 것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희망을 이야기하기에는 우린 아직 깜깜하다. 그렇다고 주저 앉을 수 없지 않은가? 덴마크도 처음부터 그런 사회가 된 것은 아니니까 말이다. 덮어놓고 막연한 동경의 눈으로 바라보는 것은 아니다. 지금 우리사회 좋은 이정표가 될 수 있다 생각이 들었다. 그 몇 개를 들어본다.  

 

 첫째, 성숙한 시민의식이다. 아무리 좋은 제도도 사람이 바뀌지 않으면 소용없다. 덴마크 사회 탄탄하게 자리 잡은 시민들의 바른 생각들이 큰 힘이다.

 

 덴마크에는 '사람은 누구도 특별하지 않고, 누구나 소중하다'는 의식이 잡혀있다. 직업의 귀천이 없다는 말이 말뿐인 우리나라와 사뭇 다르다. 의사를 존경하고 신뢰하지만 특별히 부러워하거나 어려워하지 않는다. 택시기사는 그 직업을 즐기며 자부심을 느끼고 사람들은 이를 존중한다. 이에 비해 우리나라는 특별한 직업이 있고, 특별한 사람이 있으며, 그 특별함이 힘이 되는 사회다. '우리는 모두 똑같다.'는 생각에는 평등의식과 겸손함, 그리고 당당함이 있었다.

 

 또 하나 남과 비교하지 않고 여유롭게 삶을 즐긴다. 이는 오랫동안 쌓아온 문화적 특성, 느긋한 인종 특성일수도 있다. 하지만 가장 큰 이유는 평등한 사회조건이다.

 

 "행복은 소유가 아니라 삶입니다. 친구가 있고, 지붕이 있는 집이 있고, 그 안에서 가족과 함께 사는 것이 행복입니다. 그런 점에서 나는 지금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죠. 나뿐 아니라 덴마크인들의 생활은 대체로 안정되어 있습니다. 여기서는 당신이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이 기본적으로 무료예요. 대학등록금이 무료고 병원비가 무료입니다. 덴마크인들은 길거리에 내쫓기는 신세가 되는 일이 없어요. 직장을 잃어도 정부가 2년간 실업보조금을 주고, 직업 훈련을 시켜서 다른 회사에 취직하도록 적극적으로 도와줍니다. 그러니 생활하는 데 큰 걱정이 별로 없어요." (38쪽)

 

 돈보다 더 중요한게 있다고 생각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사회, 그 사회가 바로 덴마크다. 우리나라는 연봉, 아파트 평수, 더 멋진 자가용을 비교하며 행복을 찾는 사람들이 많다. 보다 많은 것을 가져야 행복을 느끼는 사회. 이런 모습이 어디서 부터 온걸까? 아마도 우리나라는 전쟁 이후 짧은 기간동안 경제를 일으키며 힘있는 직업을 갖거나 돈을 많이 버는게 성공, 그게 곧 행복이라는 생각이 뿌리박혀 있지 않나 싶다.

 

 덴마트도 결코 평탄한 역사를 갖고 있지 않았다. 주변 강대국에 둘러싸여 있는 덴마크는 1814년 노르웨이 땅을 잃고 1894년에는 영토의 3분의 1이 독일로 넘어간다. 특유의 긍정하는 민족성으로 밖에서 잃을 것을 안에서 찾는다. 덴마크 정신 기둥인 그룬트비가 주도한 '깨어있는 농민되기'운동, 협동조합 운동, 달가스의 '국토 개간 운동'으로 행복사회 씨앗을 뿌린다.

 

 정치 역사도 재밌다. 덴마크 정당은 우파 중심 벤스트레, 좌파 중심 사회민주당이 있다. 하지만 1901년 이후 한 당이 의석 과반수를 차지한 적이 없다고 한다. 서로 사안마다 연합을 하며 정권을 잡는다. 우파가 정권을 잡는다고 정책이 확 바뀌는게 아니고 큰 틀을 유지한다고 한다. 그 바탕에는 뿌리깊게 자리잡힌 사회적 연대와 평등의식이 있었다. 좌 우로 흔들리며 정권 성향에 따라 나라 정책이 극으로 치닫는 우리 모습, 타협과 토론없이 대립만 하는 우리 정당 모습과 너무 달랐다.

 

 사민당이 공산당과 경쟁을 한 모습도 인상깊었다. 공산당을 누르고 탄압해 없애는 것이 아니었다. 공산당이 주장하는 사회불평등 요소들을 없애며 노동자들에게 자유를 주는 방식으로 지지를 얻는다. 그리하여 공산당에게 없는 자유와 공산당이 바라는 평등을 한꺼번에 잡는다. 우리나라 정치는 비판이 아닌 비난, 대안없는 깎아내리기, 토론없는 막장으로 국민을 힘들게한다. 서로 함께 보다 나은 길로 가는 모습이 참 부러웠다. 이러한 성숙한 시민은 어디에서 나왔을까?

 

 둘째, 행복한 삶을 배우는 학교다. 지식 습득 교육이 아닌 어떤 인생을 살지 스스로 찾는 교육, 경쟁보다 협력으로 행복을 찾는 교육, 교사, 학부모, 교장 모두 학교의 주인이 되며 자존감을 높이는 교육, 학교에서 여유있고 인생을 즐겁게 사는 법을 배우는 교육을 펼친다. 수업에서 노래 부르기와 '살아있는 말'을 강조하며, 국어.영어.수학 보다 어떤 인생을 살 것인가를 더 중시하고, 비판과 토론을 통해 학생 스스로 답을 찾아간다.  

 

 덴마크 학제는 9학년까지 초등학교(우리나라로 따지면 초중학교가 합쳐짐), 11학년부터 고등학교다. 중간 1년이 비는데 이때 에프터스콜레(인생설계학교)를 다닌다. 원하면 근처학교에서 10학년까지 마칠 수 있고, 그렇지 않으면 기숙학교 형태 에프터스콜레를 선택한다. 대부분 사립이지만 절반정도는 정부에서 부담해 대부분 에프터스콜레에서 1년을 보낸다고 한다. 정말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1년동안 공동생활하면서 인생도 설계하고 단체생활 속에서 함께 사는 법도 배우는 거다. 우리나라도 중학교 1학년 자유학기제를 하지만 느낌은 사뭇 다르다.  

 

 우리나라와 너무 달라 속상한 사실도 있다. 먼저 대학교 등록금이 없고 생활비까지 지원해준다. 그러니 돈 걱정없이 원하는 공부를 하며 인생을 설계할 수 있다. 대학 역시 서열화되어 있지 않다. 학교마다 장점이 있는 학교가 있을뿐이다. 예를 들어 로스킬레 대학은 인문학 사회학이 강하며, 코펜하겐 대학은 자연과학과 법학이 강하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학생들은 인생 종착역인 좋은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 오로지 수능만을 향해있다. 그렇게 어렵게 들어간 대학에서 또다시 알바에 학자금대출에 허덕인다. 수백개 이력서를 써내도 취업을 못하는 우리나라 대학생들이 참 불쌍해진다. 한편으로 마음도 무거워진다.

 

 덴마크 사회를 알려면 '그룬트비'를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다. 그룬트비 정신에 의해 1844년에 세워진 뢰딩 호이스콜레(시민 자유학교)에서 나온 '깨어 있는 농부'들이 고향으로 돌아가 지역 리더가 되고, 협동조합 운동이 일어나며, 오늘날 덴마크를 행복사회로 만든 기틀을 세웠다고 한다. 학교가 사회를 바꿀 수 있다? 사회가 바뀌지 않으면 학교는 바뀌지 않는다? 물론 서로 함께 바꾸어나가야 맞다. 하지만, 덴마크 모습을 보면 한 나라를 바꾸는데 교육과 교육철학이 정말 중요하다는 것을 알려준다. 그래서 지금 불고 있는 학교혁신 바람도 큰 의미가 있다. 새로운 교육철학에서 새로운 사회 씨앗이 들어있다.

 

 마지막은, 당당하게 살 수 있게 만들어주는 사회다. 앞에서도 이야기했듯이 대학교까지 전액 학비, 생활비까지 지원해주며, 개인별 주치의가 있어 사는 곳에서 무료로 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노동조합 조직율은 70%가 넘고 노사간 믿음이 두터워 불합리한 해고, 막무가내 투쟁은 하지 않는다. 실직을 해도 2년동안 기본 월급 90%이상을 받고, 2년이 지나도 70퍼센트에 해당되는 생활 자금을 지원해준다. 다른 사람 눈치보지 않고 떳떳히 살 수 있게 도와주는 사회가 바로 덴마크다.

 

 그렇게 지원해주면 누가 일하겠냐고 물어볼 수 있겠다. 하지만, 진짜 행복을 아는 사람이라면 마냥 놀지만은 않을꺼다. 그렇게 사회가 탄탄하게 믿고 지원해주니 내가 원하지 않는 일을 먹고 살기 위해 억지로 하지 않는다. 실직되도 내가 좋아하는 일을 다시 찾으며 행복을 찾는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즐겁게 하는게 행복의 첫걸음 아닐까? 

 

 물론 이것이 가능하기 위해서 엄청난 세금을 낸다. 소득의 50-60%를 세금으로 내니 가능한 이야기다. 하지만, 사람들은 기쁘게 세금을 낸다. 왜냐하면 그만큼 혜택을 받기 때문이다. 세금을 낸 만큼 혜택을 받고 돌려받으니 불만이 없다. 우리나라는 어떤가? 세금을 조금만 올려도 거센 저항이 생긴다. 그것은 국민들 문제가 아니다. 바로 나라문제다. 사대강, 자원외교, 방사청 무기수입 문제처럼 수도 없는 정부 잘못에서 수십조를 펑펑 낭비했다. 생각해보니 대통령을 잘못 뽑은 국민들 문제도 있다. 제대로 세금이 걷히고 제대로 쓰인다면 국민들도 얼마든지 낼꺼다. 그게 아니니 문제다.   

 

 덴마크 사회가 유토피아는 아니다. 그래도 지금 우리사회에서 배울만한 이야기들이 많다. 너무 먼 나라 이야기 같고, 과연 우리나라가 이렇게 될 수 있을까 의심도 든다. 그래도 희망을 느끼고 설렜던 사실은 덴마크 행복사회도 교실에서부터 시작됐다는 거다. 그래서 지금 일어나고 있는 혁신학교가 한때 유행으로 그쳐서는 안된다. 경쟁과 지식중심 교육에서 더불어 함께 삶을 배우는 교육으로 바뀌어야 한다. '삶을 배우는 즐거운 학교'에서 '더불어 사는 깨어있는 시민'으로 자랄때 우리사회도 희망이 있다. 행복사회를 위한 첫걸음을 우리도 기꺼이 내딛어야 할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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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요즘은 어떠하십니까 - 이오덕과 권정생의 아름다운 편지
이오덕.권정생 지음 / 양철북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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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 손편지를 쓰는 일이 드물다. 나도 생일이나 축하할 일이 있을때 가끔 쓴다. 우표를 붙여 보낸 기억은 잘 나지 않는다. 하지만 옛날 사람들은 편지로 소식을 주고 받았다. 이오덕 선생님은 1973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당선한 권정생 선생님을 만나러 간다. 이때부터 2002년까지 주고 받은 편지글을 모아놓았다. 이오덕 일기에도 나타나지 않은 마음과 권정생 선생님과 나눈 이야기는 우리에게 깊은 울림을 준다.

 

 *선생님은 찾아오시지 않아도 항상 제 곁에 계신답니다.

 

 몸이 아프고 어려운 권정생 선생님을 이오덕 선생님은 애틋이 살펴주신다. 힘들어하는 이오덕 선생님을 권 선생님은 위로해주신다. 편지글 마지막은 몸 살피라는 부탁이 늘 있다. 서로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이 편지 속에 잘 묻어난다. 사람이 진심을 다해 걱정하고 마음을 다하는 모습이 바로 이런 모습이구나.

 

*선생님, 백번 죽었다 살아난대도, 저는 역시 가난하게 살면서 가난한 아이들 곁에 있고 싶습니다. 이대로 죽으라면 죽겠습니다. (56쪽)

 

* 우리 자신이 햇빛을, 공기를, 물을 생산한다는 사람은 미친 사람일 것입니다. 내가 소유할 수 있는 것은 하늘과 바람과 세계입니다. 절대 천 원짜리 지폐나 하나의 손가방이 내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188쪽)

 

*하느님 나라는 절대 하나 되는 나라가 아닙니다. 하느님 나라는 일만 송이의 꽃이 각각 그 빛깔과 모양이 다른 꽃들이 만발하여 조화를 이루는 나라입니다. 꽃의 크기가 다르고 모양이 다르고 빛깔이 달라도 그 가치만은 우열이 없는 나라입니다. (207쪽)

 

*가난한 사람만이 가장 착하게 살 수 있습니다. (233쪽)

 

*권 선생님 편지 보고, 그렇게 돈이란 걸 잊어버릴 수 있는지, 참 놀랍고 부러웠습니다. 그런데 잘 생각해 보면 모든 물질적인 욕망을 끊어 버리는 데서 아동문학의 정신이 싹트는 것이라 봅니다. (245쪽)

 

*결국 인간은 최악의 고통에서만이 진실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배고픈 사람이, 추운 사람이, 질병의 아픔으로 괴로워하는 사람이, 결코 점잖을 수도 없고, 성스러울 수도 없고, 거룩할 수도, 인자할 수도, 위엄이나 용기도 가질 수 없다는 것입니다. (232쪽)

 

 편지 곳곳에는 이오덕, 권정생 선생님 생각들을 엿볼 수 있다. 가난하게 늘 세상 약한 사람 편에 서며 살아갔던 두 선생님. 그립다.

 

*지난밤 꿈엔 어머니를 뵈었어요. 언제나처럼 노동에 시달린 그 모습 그대로 다래끼에 인동꽃을 따 담고 개울물을 힘겹게 건너고 계셨어요. (242쪽)

 

*선생님, 쌀밥 먹고 고기 먹고 나면 불쌍했던 어머니 생각이 나서 더 괴롭습니다. (258쪽)

 

*선생님, 어머니께서 생전에 하시는 말씀이 항상 '사는 데까지 살자'하셨던 게 많은 위로가 됩니다. 혼자 있으니까 울고 싶을 때 실컷 웁니다. 선생님도 힘을 내세요. (291쪽)

 

*어딜 가도 무엇을 해도 누구와 같이 있어도 자꾸 목이 메고 눈물겨워집니다. 요즘처럼 울면서 지낸 적도 없는 것 같습니다. 그저께 써 놓고 못 부친 편지 함께 보냅니다. (313쪽)

 

 어머니 꿈을 꾸고 생일을 알았던 모습, 지독하게 아파 고통으로 몸부리치는 장면, 어머니를 생각하며 괴로워하는 모습과 목이 메고 눈물을 흘리는 선생님 모습들을 보며 가슴이 아팠다. 그렇게 아프고 아파서 권 선생님 동화가 슬픈가 싶다. 아프다. 나도 편지를 읽으며 아팠다.

 

 *하늘을 쳐다볼 수 있는 떳떳함만 지녔다면, 병신이라도 좋겠습니다. 양복을 입지 못해도, 장가를 가지 못해도, 친구가 없어도, 세끼보리밥을 먹고 살아도, 나는 종달새처럼 노래하겠습니다. (13쪽) 

 

 이오덕 선생님이 아파 밥을 못 드실때 권 선생님한테 전화가 와서 죽기살기로 드시라고, 오백 번 씹으면 죽보다 잘 넘어간다고 야단을 친다. 그렇게 돌아가실때까지 서로 곁에 계셨다. 권정생 선생님은 재밌게 유언장을 남기셨다. 죽은 뒤 환생한다면 스물다섯 살 건강한 남자로 태어나 연애하고 싶다는 말. 웃음이 나면서도 참 슬펐다. 그러니 더 슬펐다.

 

 권선생님은 아름다운 세상에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일은 없게 해 달라고 빌며 고통스럽게 '어머니가 사시는 먼 나라'로 떠나신다. 마지막 이오덕 선생님 시와 권정생 선생님 유언장을 보고 책을 덮으며 가슴이 먹먹해져 한참을 가만히 있었다. 사람이 사람을 이렇게 사랑할 수 있구나. 서로를 위로하며 이렇게 힘이 될 수 있구나. 난 이런 사람이 있을까. 난 이렇게 살고 있을까...  (2015.11.1 민들레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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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한도전-배달의 무도편은 오랜만에 마음을 움직인 뭉클한 방송이었죠. 방송 속살은 무한도전 일꾼들이 세계 곳곳 사연이 있는 사람들에게 따뜻한 집밥을 전해주는 이야기예요. 아프리카 가봉 대통령 경호실장, 칠레 라면집 사장님, 미국으로 입양 간 여자군인, 파독 광부와 간호사들까지 모두 저마다 대한민국을 가슴에 품고 사는 아름다운 사람들이었어요. 입양기관에서 만난 외국인도 오래 기억에 남아요. 한국말을 들었을 때 너무 아름다워 한국을 알고 싶었다고 해요. 다른 나라 사람들이 오히려 우리말을 사랑하는 모습에 뿌듯하기도 하고, 그만큼 사랑하지 못하는 우리 모습도 부끄러웠어요.  \

 

 일본 하시마편을 볼 때는 너무 가슴이 아프고 울화가 치밀어 올랐죠. 일본은 우리나라 강제징용 사실을 쏙 빼놓은 채 하시마섬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올렸어요. 열여섯에 강제로 끌려가 더운 탄광 안에서 속옷 하나 입고 일하며 밥도 제대로 먹지 못했던 할아버지들. 그렇게 죽어가며 외쳤던 소리가 귓가에 맴돌아요.

 

 “아이고, 배고파라... 나 쥐나서 못살겠다.”

 

 그분들 넋을 기린 위령탑은 찾을 수 없는 외진 곳에 있었죠. 사망 기록도 모두 불태워 사라졌다는 사실을 듣고 너무 화가 났어요. 나라 잃은 서러움과 아픔을 잊지 말자고 다짐했죠. 우리도 모르게 쓰는 일본말투 부터 하나씩 뿌리 뽑고 우리말도 바로 써야겠다는 생각도 해봐요.

 

무한도전 - 배달의 무도(2015.8.15/8.29/9.12 방영)

 

1. 버릇처럼 쓰는 영국글자말

 

. 3위 할 것 같은 질문 앙케트! 3위 할 것 같은 질문 조사!

. 아쉽, 가봉키드(?)인데 아쉽네, 가봉꼬마인데

. 기부 배틀 버금가는 해외배달 배틀 기부 싸움 버금가는 해외배달 싸움

. 남바원(?) 이렇게 하고 으뜸(엄지척) 이렇게 하고

. 레시피 전수 완료 조리법(맛길잡이) 전수(넘겨주기) 완료(끝냄)

. 스케줄상 아쉽게도 불발된 만남 어긋난 일정으로 아쉽게 못 만남

. 식신 준하가 보너스로 준비하는 한국의 맛 먹보 준하가 덤으로 차린 한국의 맛

. 자주 오는 듯 메뉴를 고르고 자주 오는 듯 음식(라면)을 고르고

. 제가 정말 스페셜하게! 제가 정말 특별하게!

. 기름 온도 체크 기름 온도 점검

. 동그랗게 마는 것이 포인트! 동그랗게 마는 것이 핵심(알맹이, 고갱이)!

. 단무지 없는 김밥 시식 타임 단무지 없는 김밥 맛보는 때

. 결혼에 골인커플도 여럿! 결혼에 성공도 여럿!

. 숙자 언니의 나이스 초이스 숙자 언니의 멋진 선택

. 클래식하게 예스럽게

.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자축하는 플래카드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자축하는 현수막

. 밝은 목소리로 말 꺼내는 일본인 가이드 밝은 목소리로 말 꺼내는 일본인 안내원

. 너무 몰아주니 커트해주는 센스! 너무 몰아주니 잘라주는 슬기!

. 압도적인 고릴라의 비주얼에 난리법석 엄청난 고릴라 모습에 난리법석

. 짧지만 임팩트 있었던 만남 3세트 짧지만 강렬했던 만남 3묶음

. 스펙타클한게 있겠지? 재밌고 굉장한게 있겠지?

 

. 지목해서 디스...? 가리켜 깎아내림...?

 

디스는 디스리스펙트(disrespect, 무례)의 준말로 상대방의 허물을 공개적으로 공격해 망신을 주는 힙합의 하위문화를 일컬어요. [출처: 시사상식사전, 박문각] 무슨 뜻인지 모르는 들온말(외래어)들이 자꾸 만들어져서 답답해요.

 

. 박사장의 플레이팅에 이어 박사장의 음식놓기(음식꾸미기)에 이어 (박사장이 음식을 접시에 놓고)

 

요즘 음식을 다루는 프로그램이 늘어나면서 플레이팅이라는 말도 많이 써요. 원래 뜻은 도금, 이예요. 국어말집, 지식백과를 아무리 뒤져도 공장 작업 기술로 쓰이고 음식을 접시에 담고 꾸미는 뜻은 없어요. 그렇다면 음식놓기’, ‘음식꾸미기라고 하면 어떨까요?

 

. 잘 몰라요아우라 발산 잘 몰라요기품(분위기, 느낌) 드러냄

 

아우라는 고상하고 독특한 분위기를 뜻하며 독일어에서 유래했다고 해요. 국립국어원에서는 기품이라고 다듬어 쓰자고 했어요. 국립국어원이 다듬은 말도 중국글자말이 많네요. 아쉽죠. 더 좋은 우리말도 찾아봐야겠어요.

 

2. 바꿔 쓸 수 있는 중국글자말

 

. 아이고, 수고해라. 아이고, 애써라.

 

우리는 흔히 수고하세요.’라고 인사를 잘 합니다. 윗사람이든 아랫사람이든 버릇처럼 쓰죠. ‘수고의 어원은 15세기 문헌에 슈고로 나와요. 이는 한자어 수고(受苦)’입니다. ‘고통을 받음이라는 뜻이죠. 지금 힘을 들이고 애를 씀이라는 뜻과 다르죠. 알고 보면 나쁜 뜻을 담고 있어 윗사람에 쓸 수 없다고 해요.

일터에서 다른 사람보다 먼저 집에 갈 때 남아 있는 사람에게 수고하세요.”라는 말보다 먼저 가겠습니다.”, “내일 뵙겠습니다.”, “먼저 가겠습니다.”같은 인사가 좋아요. 동년배나 아랫사람에게는 애쓰세요.”애써.”라는 말도 좋겠죠. [출처: 표준 언어 예절, 국립국어원 2011]

 

. 첨언, 언제 또 가봐 덧붙인 말, 언제 또 가봐

. 가봉에서 절대 접할 수 없는 음식 가봉에서 조금도(죽어도) 맛볼 수 없는 음식

. 제작진 호출에 다시 모인 셋 제작진이 불러 다시 모인 셋

. 아드님을 예전부터 부르시던 호칭 있을까요? 아드님을 예전부터 부르시던 별명(이름) 있을까요?

. 단도직입 곧바로

. 칠레에 거주중인 남편과 둘째 아들 칠레에 사는 남편과 둘째 아들

. 멤버들 제일 먼저 출국하는 명수 구성원들 가장 먼저 떠나는 명수

 

멤버라는 말도 많이 써요. 국립국어원에서 밝힌 다듬은 말(순화어)은 회원, 구성원, 선수라고 하네요. 말이 잘 안사는 느낌도 들어 어떤 말이 좋을까 고민해봅니다. 동무들은 어떨까요?

 

. 한국말 능숙한 외국인 또 등장 한국말 잘하는 외국인 또 나타남

. 이건 시중에서 먹을 수 없는 맛이야 이건 쉽게 맛볼 수 없어.

. 이제 마카롱 음미하러 이제 마카롱 맛보러

. 매일 저녁을 먹으며 날마다 저녁을 먹으며

. 착하고 매일 같이 놀아서 좋아요 착하고 날마다 같이 놀아서 좋아요

. 어떻게 매일 재밌어요. 어떻게 날마다 재밌어요.

 

. 정차 중인 차들을 상대로 영업 중 서 있는 차들을 상대로 영업 중

. 우선 칠레말로 거는 아버님 먼저 칠레말로 거는 아버님

. 치밀한 작전 설계 후 꼼꼼한 작전을 짠 다음

. 금세 아이 같은 미소가 둥실 금세 아이 같은 웃음이 둥실

. 재석이 선물하는 저녁 식사 재석이 선물하는 저녁

. 고마운 마음을 표현하고 싶어서 고마운 마음을 보여주고 싶어서

. 때마침 자택 귀가중! 때마침 집으로 돌아옴!

. 떨어져 있으면서 전하지 못했던 애정 떨어져 있으면서 전하지 못했던 사랑

. 공유할 수 있어 더 소중해진 추억 함께 할 수 있어 더 소중해진 추억

. 밀가루 옷 입은 닭고기 투하 밀가루 옷 입은 닭고기 넣기(퐁당)

. 박사장의 노고 덕에(?) 노릇노릇 잘 튀겨진 닭고기 박사장이 애쓴 덕에 노릇노릇 잘 튀겨진 닭고기

. 옆에서 항상 챙겨줄 수 없기에 옆에서 챙겨줄 수 없기에

. 저희가 주변을 알아보니 저희가 둘레를 알아보니

. 하시마 주변만 도는 배 탑승 하시마 둘레만 도는 배에

 

. 말은 서로 통하지 않지만 말을 서로 나눌 수(주고받을 수) 없지만

. 한국을 통해 경호팀을 꾸리고 싶었습니다. 한국사람으로 경호팀을 꾸리고 싶었습니다.

통하다는 또 다른 글에서 자세히 다루려고 해요.

 

. 애정 넘치는 동생들 사랑스러운(사랑 가득한) 동생들

. 나탈리 눈에 포착된 실수 나탈리 눈에 들어온(잡힌) 실수

. 변수가 많은 하시마 입도 변수가 많은 하시마에 들어감

. 두 번 만에 입도하는 하시마 두 번 만에 들어온 하시마

. 일본에서 지난주에 공수한 겁니다. 일본에서 지난주에 가져온 겁니다.

. 철근과 콘크리트 뿐인 회색철근과 콘크리트 뿐인 잿빛

. 형이 제일 그리웠을 텐데? 형이 가장 그리웠을 텐데?

. 기대가 컸던 만큼 실망 기대가 컸던 만큼 실망

. 속속 내오시는 어머니 잇달아 내오시는 어머니

. 드디어 등장핵심 소스 드디어 나타난 알맹이(고갱이) 양념

. 이제 마카롱 음미하러 이제 마카롱 먹으러

. 꿀 뚜껑 맛 가미 꿀 뚜껑 맛 보탬

 

. 임신 중인 딸을 위한 미역국 임신한 딸을 위한 미역국

‘-이라는 말도 많이 써요. 그는 수감 이다. 대학 재학 중에 입대했다. 그러던 중에 그가 왔다. 이런 말투는 영어 현재 진행형을 잘못 옮긴 일본 말투예요. ‘-대신 가운데를 써도 옳지 않아요.

 

*그를 만나 여러 가지 얘기를 하는 중에 새로운 사실을 알았다.

...얘기를 하는 가운데 새로운 사실을 알았다.

...얘기를 하며 새로운 사실을 알았다.

 

3. 틀린 말

 

. 좋겠다~ 아프리카에서 무슨 식사를 할까아~? 좋겠다~ 아프리카에서 무얼 먹을까?

 

식사끼니로 음식을 먹음. 또는 그 음식을 뜻해요. 무슨 음식을 먹음을 할까? 무슨 음식을 할까? 앞뒤가 안 맞아요. 아프리카에서 무얼 먹을까? 이렇게 바꿔야겠죠.

식사하러 가시죠.”라는 말도 많이 써요. 왠지 밥 먹으러 가시죠.”라는 말보다 높이는 말이라 느낄 수 있어요. 뿌리박힌 잘못된 생각부터 바로 잡아요. ‘식당대신 밥집이라 부르면 참 푸근하고 정겹죠.

 

. 리포터 완전 빙의 리포터로 바뀜

. 완전 감동이겠지? 정말 뭉클하겠지?

. 완전 기대 정말 기대

 

. 훈내 풍기며 본인 아이디어 핏대를 세우며 준하 생각

 

훈내뜻은 아무리 찾아도 없어요. ‘군내라는 말은 본래의 제 맛이 변하여 나는 좋지 아니한 냄새를 뜻하는데 훈내훈훈한 냄새라고 짐작해봐요. 그런데 흐름을 보면 그 뜻도 어울리지 않아요.

 

. 새하얀 백지 같은 비천만(?) 광희 새하얀 백지 같은 천만 아닌 광희

 

비천만도 없는 말이예요. 아마도 천만 관객 영화를 못 본 광희에게 천만이 아니다라는 뜻으로 형돈이 말한 듯해요. 요즘 젊은이들 사이에서 도는 이상한 말들도 이렇게 마구 말을 만들어내는 모습을 본 영향이 아닐까 싶어요.

 

4. 쓰면 안될 말

 

. 정말 가슴 아프고 현실적으로 와 닿는 사연 하나를 고르게 됐습니다. 정말 가슴 아프고 피부에 와 닿는 사연 하나를 고르게 됐습니다.

. 바라만 봐도 감동적인 바라만 봐도 가슴 찡한

. 양심적으로 솔직히

. 푼타 아레나스의 이국적 건물들 사이로 푼타 아레나스의 다른 나라(낯선) 건물들 사이로

. 열정적인 자기 소개 혼을 바친 자기 소개

. 어떤 요리보다도 폭발적인 인기! 어떤 요리보다도 엄청난(어마어마한) 인기!

. 강제적으로 해내야 했던 작업 할당량 강제로 해내야 했던 작업 할당량

 

지난 글에도 ‘-을 쓰지 말자고 얘기했어요. 그런데 버릇처럼 너무 많이 쓰고 있어 고치기가 참 어려워요. ‘-을 찬찬히 돌아보면 그 뒤에 아름다운 우리말이 있다는 사실 새삼 또 느껴요.

 

. 신용카드가 보편화되지 않은 동네 신용카드가 널리 퍼지지 않은 동네

. 대중화돼 있지 않던 양변기 널리 퍼지지 않던 양변기

. 칠레에선 먹기 힘든 한국식 닭강정 칠레에선 먹기 힘든 한국 닭강정

. 일본 최초 철근 콘크리트식 아파트 건설했다고 일본 최초 철근 콘크리트 아파트 건설했다고

. 명수 식대로 풀어내고 온 마음 명수 나름대로 풀어내고 온 마음

중국글자말에 를 붙여서 어설픈 말을 만든다고 이오덕 선생님도 말씀하셨죠. 온난화, 일원화, 형상화, 내면화, 간소화, 무력화... 정말 많아요. 곰곰이 생각해보면 대신 쓸 수 있는 우리말은 꼭 있어요. ‘-도 중국말투예요. ‘-을 빼도 말은 아름답게 흘러요.

 

. 음 스멜~ 스뎅(?) 스멜~ 음 냄새~ 스테인리스 냄새~

 

스뎅은 스테인리스를 일본식 영어로 발음한 말이예요. 어린 아이들까지 보는 예능프로그램에 이런 말들이 나오면 씁쓸해요. 그동안 받았던 좋은 느낌과 뭉클함이 사라질까 걱정도 들어요. 아직도 남아있는 일본말투는 뿌리 뽑아야겠죠.

 

. 선영 씨가 살아온 이야기와의 만남 선영 씨가 살아온 이야기와 만나

 

와의는 어찌자리토씨(부사격조사) ‘에 매김자리토씨(관형격조사) ‘가 붙은 것인데, 지금 꽤 널리 쓰고 있지만 이것은 일본말 との를 그대로 옮긴 거예요. ‘韓國との交涉을 옮기면 한국과의 교섭이예요. 그래서 이오덕 선생님은 ()’는 그대로 두고 를 붙이지 말고 움직씨를 쓰면 된다고 하셨죠. 보기를 들면 다음과 같아요. [우리 글 바로쓰기1, 128쪽]

 

* 노조위원장은 금일 중으로 김 회장과의 면담을 희망하고 있다.

노조위원장은 오늘 안으로 김 회장과 만나길 바라고 있다

 

. 내리자마자 멘붕 내리자마자 짜증

 

멘붕멘탈붕괴라는 신조어로 나이든 어른도 알 정도로 널리 퍼진 말이죠. 이런 말들을 우리들은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요? 처음에는 재미있게 쓰고, 젊은 사람들과 서로 소통하는 말이라 생각했어요. 그런데 이런 말들이 아름다운 우리말을 잡아먹고 있어요. 모든 느낌말을 멘붕이라는 말로 싸잡아 말하죠. 당황스럽다, 짜증난다, 화난다, 울화가 치민다, 울고 싶다, 황당하다, 놀랐다, 식은땀이 흐른다 같이 느낌말들이 참 많은데 말이죠.

 

살펴보니 고쳐야 할 말이 많네요. 1012일에는 지난 17호 글과 편지를 무한도전 김태호PD에게 보냈어요. 워낙 바쁜 일꾼들이라 그 뜻이 잘 전해질지는 모르겠어요. 그래도 꾸준히 보낸다면 생각은 조금이라도 해보겠죠.

 

(민들레처럼. 2015.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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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오덕 일기 2 : 내 꿈은 저 아이들이다 이오덕 일기 2
이오덕 지음 / 양철북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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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 못 자는 밤 - 퇴임한 날

 

42년 교직을 어쩌면 이렇게 미련도 한 올 없이

헌 옷 벗어던지듯 훌훌 벗어던지는가.

아이들을 사랑하지 않았는가?

딴 곳에다 꿈을 두었던가?

아니다.

결단코 아니다.

내 사랑은 아직도 저 총총한 눈망울 반짝이는

아이들한테 가 있다.

내 꿈은 저 아이들이다.

그러나, 그러나

내삶은 그대로 감옥살이 42년!

이제야 나는 풀어 놓인 한 사람의 인간

인간이 되었다.

퇴임식-

부끄러운 내 교단생활을 끝장내는 그 장례식을 마치고

돌아와 내 방에 홀로 앉아

그래도 한 방울 눈물도 없이 이렇게 태연하다는 것은

조금은 이상하구나.

산 같은 마음이 있어서인가?

하늘 같은 믿음 때문일까?

그래도 한번쯤은 큰 소리로

통곡이라도 해 봄직한데

어쩌면 목석으로 굳어진 것 아닐까?

자리에 누워도 잠이 안 온다.

쫓기고 시달린 그 많은 나날에도

밤마다 차라리 평안한 죽음을 생각하며

잠을 잘도 잤는데,

오늘 밤엔 어쩌자고 잠이 안 온다.

내일 새 학교에 입학하는 어린아이의 심정인가?

소풍날을 앞둔 밤의 어린이 마음인가?

얼마나 어리고 철없는 마음인가?

마구 짓밟히고 쥐어뜯기고 뿌리 뽑히는 풀 같은 어린 생명들

그들을 살리는 일 이제부터 시작되는데,

어쩌자고 잠은 안 와 들떠 있는가?

어린애같이!

 

 조그만 방에서 퇴임식을 마친 이오덕 선생님을 만난다. 학교생활을 감옥살이 42년이라고 하실만큼 답답해 하셨지만 늘 아이들 곁을 떠나지 않았던 선생님.

 "그동안 얼마나 힘드셨어요?"

 깡마른 어깨를 넘어본다. 일기 속 선생님 학교생활이 스르륵 지나간다.

 "참 많이 애쓰셨어요."

 조용히 말을 건넨다. 그리고 선생님 손을 말없이 꼭 잡아드린다. 조용히 방을 나오며 생각한다. 내가 학교를 떠나는 날, 난 "내 꿈은 아이들이다."라고 떳떳이 말할 수 있을까?

 

 어두웠던 우리 역사 속 온 몸으로 뜨겁게 사셨던 1978년부터 1986년까지 이오덕 선생님 일기다.

 

 *그런 짓을 해서 점수만 따고 상장만 받는 것을 목표로 학교를 경영하는 것이 가장 유능한 교장이다. (71쪽)

 

 *모두 기계가 되어 있어 학교가 교장인 내 한 사람의 의지와는 다른 방향으로 돌아가고 있어요. (154쪽) 

 

 *교감 선생은 교육을 꼭 그런 장부나 물질적인 증거로 남겨 놓아야 된다고 생각하는데, 교육이란 그런 게 아니래요. 교육한 표적은 그런 행사 결과를 증거로 남기는 데 있는 게 아니고 아이들 태도에 영향을 주는 데 있는 겁니다. (267쪽)

 

 *이렇게 겉모양 다듬는 것이 교육자들의 가장 긴급ㅎ고 중요한 할 일이 되어 있는 세상인데, 나는 이런 세상을 모르고, 무시하고 지냈으니, 이제 나는 이 학교에서도, 우리 교육계에서도 아무런 쓸모없는 사람이 되고 만 것이다. (338쪽)

 

 아직도 그렇다. 학교 분위기가 많이 바뀌고 있지만 그래도 여전히 학교에 '아이들'이 없는 경우가 많다. 이름만 혁신학교, 그 속에는 보여주기 위한 성과만 있는 학교도 많다. 뿌리박혀 있는 거짓교육, 일기를 살펴보면 그 뿌리가 꽤 깊다. 

 

 *지금 우리 나라의 교육은 국민학교에서부터 중고등대학에 이르기까지 시험 준비 교육으로 단편적인 지식만을 밤낮 강제로 주입하는 교육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사람을 바보 만드는 교육, 병신 만드는 교육입니다. (107쪽)

 

 *사람되는 공부에는 세 가지가  필요한데 첫째, 일하는 것, 둘째, 책 읽는 것, 셋째, 생각하는 것, 이 세 가지 중 어느 한 가지도 오늘날의 일반 학교에서는 하지 못하고 있으며, 오히려 일하지 않고 생각하지 않고 책 읽지 않는 인물을 기르고 있는데, 이렇게 보면 여러분들이야말로 가장 참된 교육을 받게 되는 행복한 학생들이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146쪽)

 

 마리타스 졸업식에서 그는 교육이 가야할 길을 생각한다. 그 당시도 학교교육이 아닌 대안교육에서 새길을 보니 참 씁쓸했다. 사회를 바로 보지 못하는 이에게 건낸 선생님의 따끔한 비판은 시원했다. 지금 우리에게 회초리같은 따끔한 말을 해줄 큰 스승이 그립다.

 

 *노 양은 한참 동안 교직 초년생이 겪은 여러 가지 경험담을 얘기했다. 무슨 체육대회에 아이들을 데리고 나가 상을 못 타서 윗사람한테 꾸중당한 일, 학력검사 성적이 나쁘다고 야단 맞은 일,... 참 너무 기가 막힌 얘기들이었다. (124쪽)

 

*정말 요즘은 훌륭한 수업을 볼 수 없다. 연구 논문이나 교육 자료 잘 쓰고 만들어 점수 따서 영전하는 사람은 있지만 수업 잘한다고 이름난 사람은 없다. (248쪽)

 

 지금 학교 선생님들은 행복할까? 지옥같은 경쟁을 뚫고 우수한 인재들이 교단에 들어선다. 행복한 꿈을 꾸며 학교에 들어서지만 그 꿈이 곧 무너진다. 무엇때문에 힘들까 생각해보면 그때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래서 참 놀랍다. 무려 삼십년이 훌쩍 지난 이야기인데 말이다.   

 

 *버스에서 라디오방송 뉴스가 나오는데 들으니 아직도 광주 사건이 해결이 안 난 것같이 말하는 듯했다. 얼마나 피를 흘려야 이 나라가 바로잡힐는지, 막막한 느낌이다. (174쪽)

 

 일기 속에는 굵직한 역사가 곳곳에 담겨있다. 바로 1980년 5월 18일 광주민주화운동도 선생님이 보고 들은 살아있는 이야기로 쓰여있다. 일기가 살아있는 역사책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대학교때 선배와 함께 망월동 묘역을 참배하고 충격적인 광주민주화운동 영상을 보며 토론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책 속 선생님과 함께 분노한다. 부정적인 표현, 감정표현까지도 검열을 받았던 시절, 마음이 답답해진다. '민주주의는 피를 먹고 산다.'는 말처럼 우리나라 민주주의도 수많은 사람의 피와 눈물로 얻어냈다는 사실을 다시금 생각한다. 그렇게 얻어낸 민주주의 사회. 지금은 어떤가? 다시 답답해지지만 그 암울했던 시절도 이겨낸 우리 힘을 믿는다.

 

 *이원수 선생님은 이제 운명의 시간이 경각에 놓인 것 같으셨다. 얼굴이 부은 것이 가라앉았는데, 입을 벌리시고 누워 계시는 모습이 거의 해골만 남으신 것 같았다. ... 울음소리가 나지 않았는데, 웬일인지 나만 울음이 북받쳐 엎드려 잠시 울었다. 눈물을 닦고 나서도 또 눈물이 났다. (237쪽)

 

 이오덕 선생님의 스승인 이원수 선생님도 돌아가신다. 장례식장에서 꺼이꺼이 목놓아 우는 모습이 눈앞에 그려진다. 그만큼 큰 영향을 주고 믿었던 삶의 기둥이었구나 싶었다. 눈물이 난다.

 

 *나무의 상처를 치료하는 방법이 없을까? 사람은 자기 몸 치료하는 것밖에 모른다. (300쪽)

 

 *산다는 것은 다른 생명을 밟아 죽인다는 것임을 새삼 생각해보았다. (314쪽)

 

 일기 곳곳에서 개구리 입에 붙은 거머리를 떼어주고, 길잃은 비둘기를 보살펴 날려보내며, 모르게 밟아죽인 개구리를 불쌍히 여기는 선생님 모습을 본다. 아마도 이오덕 선생님 생각의 뿌리가 아닐까 싶다. 바로 사랑이다. 자연과 살아있는 모든 것을 사랑하셨고, 아이들과 약한 이들을 사랑하셨다. 세상 모든 것을 사랑하셨기에 그렇게 살아가시지 않았을까 싶다. 사랑. 모든 것은 이 사랑하는 마음에서 시작되고 끝맺는다는 생각을 어렴풋이 느낀다.   

 

 *남을 생각하고, 남을 위해 일하는 데 기쁨을 발견한 사람은 죽음도 두렵지 않다. (3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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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약이 엄마 그림책이 참 좋아 25
백희나 글.그림 / 책읽는곰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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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 그림책은 진한 연필로 투박하게 그린 그림이 눈에 들어온다. 알록달록 빛깔을 입히지는 않았지만 검은 빛깔로 악동같은 니양이 모습을 잘 살렸다. 소중한 생명을 나타내는 달걀과 병아리, 그리고 달은 노란 빛깔로 따뜻함을 느끼게 해준다.

 

 달걀을 꼴깍 삼켜 먹어버린 니양이는 시간이 지나자 점점 배가 불러온다. 니양이 뱃속에서 알이 자라더니 결국 응가로 삐약이를 낳는다. 응가를 누는 삐약이 모습, 정말 익살스러우면서도 재밌다. 아이들도 참 빠져들며 보겠다. 삐약이가 태어나며 당황하는 니양이 모습도 참 사랑스럽다.

 

 

 악명높은 '니양이'도 자기가 낳은 삐약이를 돌보며 '삐약이 엄마'가 된다. 누군가의 엄마, 아빠가 된다는 것. 어버이가 되는 것은 그렇다. 아무리 모진 사람도 아이를 낳고 길러보면 부모 마음을 알게 된다. 사랑이 뭔지, 왜 자식이 맛있게 먹는 것만 봐도 배부른지, 아이가 아프면 왜 내가 더 아픈지, 그 마음을 조금씩 알아간다.

 

 생명, 따뜻함, 그리고 사랑이 담뿍 담긴 참 재밌는 그림책이다.    (민들레처럼. 2015.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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