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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의 집 짓기 - 이별의 순간, 아버지와 함께 만든 것
데이비드 기펄스 지음, 서창렬 옮김 / 다산책방 / 2020년 3월
평점 :
영혼의 집 짓기
데이비드 기펄스
다산책방
면지의 그려진 그림이 낯설었다.
무엇을 만들기 위해 손으로 그려진 설계도 같았다.
누가 그린 것일까?
무엇을 만들기 위한 것일까? 궁금했다.
첫 페이지의 한 줄이 미소짓게 했다.
"첫 페이지가 재미있어야 한단다."
어머니의 짧은 한 마디를 잊지 않고 1쪽에 적어둔 작가의 마음이 전해지는 듯 했다.
<12쪽> 휴식은 우리 가족의 DNA와는 거리가 멀다. 우리 가족은 남보다 더 많이 일하려고 애쓰면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다.
<15쪽> 아버지의 머리카락은 하얗다. 하지만 그 머리털이 내 눈에서 내마음으로 넘어갈 즈음에는 흰색으로 보이지 않는다. 아버지의 억센 팔, 곱슬곱슬한 밤색 머리털, 이것들이 내 마음속에 굳게 자리 잡은 기본적인 진실이고, 세월의 배신은 여전히 나를 놀라게 한다. 기억은 사실보다 강한 법이다.
<21쪽> 유전병, 잠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는 성격, 끊임없이 뭔가를 하려 드는 강박관념, 새로운 일을 하려 들고, 새로운 일을 하는 중에도 더욱더 새로운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강박관념, 편안함을 불편해하는 성격...
<25쪽> 관을 짜는 작업을 하기로 합의했다.... 아버지와 뭔가 거창한 것을 만들고자 한다면 하루라도 빨리 시작해야 한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사실 내가 진짜로 원했던 것은 아버지와 함께 뭔가를 만든다는 행위 자체였다.... 내가 정말 원했던 것은 예날 집 지하실의 그 낡은 작업장으로 돌아가게 해주는, 그 작업장의 달콤새큼한 톱밥 냄새, 윤활유 냄새의 추억으로 돌아가게 해주는 연결고리였다.
<34쪽> 나는 지하실 작업장을 통해 아버지를 가장 잘 이해할 수 있었다. 그곳은 방이라기보다는 아버지가 신중하게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는 공간이었다.
<50쪽> 처음에는 나를 위해 모든 결정을 내려주고, 그러고 나서는 나 스스로 결정을 내리도록 가르쳐준 사람을 위해서 결정을 내린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올바른 선택의 척도는 무엇일까? 그리고 만약 그게 틀렸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57쪽> 삶과 죽음, 양호한 건강 상태와 눈앞에 닥친 죽음의 그림자는 마치 웃다가 우는 것처럼 늘 뒤섞인 상태로 존재하며, 우리가 느끼는 것보다 더 가까이에 있다.
<88쪽> 나의 모름은 철저한 무지였다. 나는 내가 무엇을 모르는지도 몰랐다. 그에 비해 아버지의 모름은 소크라테스의 역설 같은 지혜에 가까웠다. 아버지는 자신이 충분히 알지 못한다는 것을 알 정도는 되었다.
<115쪽> 프로젝트는 아버지가 자신의 삶에서 의미를 만들고 앞으로 나아가는 방식이다. 아버지는 온 마음을 다해 노력을 기울이면서 다음으로, 그다음으로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간다. 그러한 과정, 즉 끊임없은 움직임은 내가 아버지를 알아온 이래로 아버지를 규정하는 것이었다.
아들은 아버지와 자신의 관을 만들기로 계획한다. 아버지만의 장소에서 아들과 아버지의 프로젝트가 시작된다. 휴식을 모르는 아버지의 버릇이 아들에게도 전해져 집안밖의 다양한 것을 만들고 수리하면서 살았지만 관을 만드는 것에는 문외한인 두 사람이었다. 하지만 두 사람은 시작했고, 아버지와의 시간을 공유했으며 실행에 옮기며 아버지를 더 알아가게 되었다. 이 아들에게 아버지는 영웅이다. 자신의 삶을 가꾸고 만들고 (암투병 중이지만) 유쾌하게 이어갈 줄 아는 멋진 어른이다. 아버지와 아들의 대화는 계속 이어진다.
<139쪽> 내가 사랑하는 것은 결과물이라기보다는 그 과정이다. 내가 그리워한 것도 과정이었다. 나는 집을 손보고 수리하는 것을 좋아한다. 그러나 배관 시설이 낡은 집에 사는 사람이라면 다 알겠지만, 그것을 가구를 만드는 것과는 다르다... 아버지는 언젠가 배관 작업에 대해 이런 말을 했다. "네가 그 일을 잘했다는 말을 듣는 유일한 길은 네가 그 일을 했다는 걸 누구한테서도 듣지 않는 것뿐이다."
<160쪽> 몇 주 동안 내가 한 일이라고는 슬퍼한 것뿐이었다. 내가 알게 된 것은 죽음에 대한 슬픔은 모든 것에 대해 슬퍼하게 만든다는 사실이었다. 죽음을 슬퍼하는 것은 내 아들이 야구 대회에서 상을 받은 것을 슬퍼하게 만들었다. 생일 케이크를 슬퍼하게 만들었다. 석양을 슬퍼하게 만들었다.
<167쪽> 아버지와 함께 여분의 시간을 보내는 이유를 만들고 싶었다. 아버지가 이 일을 떠밭아줄 것라는 것을 알았음에도 나는 의도적으로 아버지가 하고 있는 것들을 이해하고자 했다. 나는 각 단계를 따라 하고 싶었다. 가능한 한 많은 것을 내가 직접 해볼 수 있도록 허락해주기를 바랐다.
<171쪽> 한 시간이 흘렀고, 또 한 시간이 흘렀다. 마침내 나는 내가 곧잘 맛보곤 했던 변화의 과정을 겪는 사람이 되었다. 처음에는 사람이 일에 들어가고, 그러고 나면 나중에는 일이 사람에게 들어가는 경험을 맛본 것이었다.
<180쪽> 우리는 온갖 고비와 기쁨희 순간에 서로에게 눈을 돌리고 의지했다. 우리는 성장이라는 이상에 지도에 함께 흔적을 남기고 표시를 했다. 우리는 서로를 더 나은 모습으로 발전시켰다.
<185쪽> 슬픔은 콜라주다. 명확한 순서 없이 한꺼번에 던져진 생생한 이미지, 그것을 해독하는 이링 보는 사람에게 맡겨진 이미지다. 하지만 그걸 보는 사람은 각각의 이미지가 새로운 이미지를 낳고 새로운 이미지가 또 다른 이미지를 낳으면서 끝없이 잡히지 않고 빠져나간다는 것을 발견할 뿐이다. 미래는 현재를 뚫고 나가는 과거다. 그리고 과거는 그런 일을 결코 멈추지 않는다.
<196쪽> 우리는 똑같은 플라스틱 용기에 똑같이 절반씩 든 수프가 지금 각자의 집 냉동실에 들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무슨 이유에서인지 그 사실이 위안이 되었다. 하지만 동시에 그 사실은 우리를 무척 슬프게 했다. 언제 울음이 터질지 알게 되자 웃음이 나왔다. 그리고 우리는 여전히 울었다.
<199쪽> 나는 아버지를 지켜보고 흉내 내며 배웠고, 아버지에게 물어보며 배웠고, 어떻게 물어볼지 생각하면서 배웠다. 이제 내 나이도 쉰에 가까웠고, 그래서인지 나는 아버지를 결코 따라갈 수 없을 것이며, 이러한 일에 대한 안내자로 언제나 아버지를 필요로 하게 되리라는 것을 편안한 마음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205쪽> 우리가 작업한 결과물은 거칠었지만, 그러나 그 사이에 의미 심장한 변화가 일어났다. 그것은 더 이상 막대기와 널빤지가 아니었다. 하나의 생각의 뼈였다. 관의 옆면이 어떻게 생겼을지 넌지시 보여주고, 일이 진행되고 있다는 느낌이 들게 해주었다.
아들은 어머니의 죽음을 맞았다. 몇 주 동안 한 일은 슬퍼하는 것뿐이었다. 그리고 또 하나의 죽음과 만난다. 너무 다르지만 수없이 많은 추억을 나눈 친구의 죽음이었다. 갑자기 터진 울음은 두 시간이 넘도록 지속되었고, 온 몸이 뻐근할 때까지 엉엉 울었다. 한 해 걸러 한 번씩 맞이하는 가족과 지인의 죽음을 어떤 느낌일까? 감히 가늠할 수도 없고 상상조차 되지 않는 슬픔이다. 두 죽음으로 아들은 아버지와의 프로젝트에 더욱 애착을 가지게 된다. 그리고 서서히 자리를 잡아가는 관을 보면서 아버지의 존재로 인해 자신이 성장하고 있음을 느끼고 있었다. 아버지와 뭔가를 만들어가는 아들이 부러웠다. 나는 아버지와 오랫동안 무엇을 하게 된다면 어떤 것을 할 수 있을까? 성인이 되어 아버지와 공유한 시간이 너무 적음을 피부로 느끼게 되었다.
<224쪽> 나는 어쩔 수 없이 중년의 나이에 들어섰다는 것을 알았지만, 정확히 그게 무얼 의미하는지 차분히 이해하지 못한 채 갈팡질팡 어쩔 줄 몰라 했다. 나는 이제 젊지 않은 것인가? 나이 많은 축에 속하는 것인가? 나는 내가 해야 할 행동들을 온단하게 행하고 있는 걸까? 다른 사람들은 어떻지?
<233쪽> 나는 이전과는 다르게 신중하고 차분한 태도로 축하하기 시작했다. 내 생일을 축하한다기보다는 내 삶에 주어진 것, 내가 아직 가지고 있는 것을 축하했다.
<245쪽> 나는 내 관을 만드는 것이 죽음의 당혹스러움을 이겨내는 한 가지 방법일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내가 아버지와 단둘이 시간을 보내는 것의 진정한 의미는 인생의 다른 일들에 너무 압도 되어서 이일을 시급하고도 의미심장한 일로 여길 수 없는 우리가 각자 자기 자신을 찾는 것이었다. 우리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고 있었다. 동시에 각자 자신의 삶을 바쁘게 꾸려가면서 많은 시간을 따로 보내고 있었다.
<257쪽> 이들 공간을 통해 우리는 계속해서 우리 식으로 살아갔고, 우리가 상상해온 장래 모습 그대로의 우리가 되기 위해 별것이 아니라 할지라도 나름대로 진지한 노력을 기울였다.
<296쪽> "내가 삶에 관해 배운 모든 것을 나는 다음과 같은 세 단어로 요약할 수 있다." 로버트 프로스트는 말한다. "삶은 여전히 계속된다."
<329쪽> 나는 먼저 죽음은 내게 뭔가를 가르치는 일에 관심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죽음은 이미 내 안에 있는 것들을 드러낼 수 있을 뿐이었다. 또한 나는 시간을 낭비해서는 안되지만, 그렇다고 쉬지 않고 일하는 것이 시간의 가치를 높여주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고, 오랜 친구가 최고의 친구라는 것, 지혜라는 것은 평생 저지른 실수에 다름 아니라는 것...등을 깨달았다.
<335쪽> 나 자신의 관을 만든다는 것은 한때는 매우 매혹적인 은유처럼 보였지만, 다 만들어진 관의 모습은 자신의 진실을 가식 없이 드러내 보였다. 아버지는 처음부터 알고 있었던 진실이었다. 그것은 하나의 상자일 뿐이었다.
<342쪽> 무지했던 내 존재는 나에게 올바른 정신으로는 감히 시도조차 할 수 없었을 다양한 경험들을 허락해주었다. 우리는 더듬거리면서 무계획적으로, 무모하게 세상을 알아가고 우리 자신을 알아간다. 하지만 인생을 오래 살다 보니 나는 내가 저지른 실수들을 알아가는 일에, 그리고 그 실수들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며 밝은 및 속에서 고민에 빠지는 일에 갈수록 커다란 흥미를 느꼈다. 그 실수들에는 정보가 가득했다.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익어가는 것이 인생이라고 했다. 나이는 들어가지만 마음은 늙지 않는다는 엄마의 말도 떠올랐다. 익어가는 인생은 혼란스러움을 서서히 가지런하게 정리하고 있었다. 내가 가지고 있는 것에 감사하게 했고, 각자의 삶의 방식이 소중함을 느끼게 했다. 계속되는 삶 안에서 슬픔은 순수히 느끼고 지나가야 하는 감정이었고, 죽음은 지금 이 순간의 중요성을 깨닫게 했다. 그리고 자신의 실수에서도 배우고 익히는 여유를 선물했다.
단순히 아버지와 자신의 관을 만드는 괴짜 아들의 이야기로 가볍게 읽기 시작했는데 읽어갈수록 그렇지 않았다. [영혼의 집 짓기]는 인생의 의미를 찾아가는 긴 프로젝트에 대해 이야기하는 글이었다. 진짜 인생을 살아가기 위해서 노력하는 아들이 아버지에게 선물하는 마지막 책이었다. 아들은 아버지에게 두 가지를 선물했다. 관을 만들면서 자신의 시간을 나누었고, 그 이야기를 책으로 엮으면서 아버지를 기억하는 확고한 연결고리를 완성했다. 아들과 아버지의 대화는 계속 이어질 것이다. 이 글을 읽을 수많은 부자들의 마음에서도 이어지길 바래본다.
데이비드 기펄스가 준비한 자신의 장례식에 재생할 곡의 목록이 있다. 책에서 언급하는 다양한 곡들에 대한 배경지식이 있었다면 조금 더 입체적인 독서가 가능했을 것 같다. 그 아쉬움을 이 곡들을 들으며 달래봐야겠다.
한국 독자들을 위해 역자와 편집자가 준비한 위로의 곡도 준비되어 있다. 지금 글을 쓰는 이 순간에도 내 방을 가득 채우고 있다.
이 글을 읽고, 끄적 끄적 몇 줄을 적고, 위로의 곡을 들을 수 있어 감사한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