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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푸른 눈의 증인 - 폴 코트라이트 회고록
폴 코트라이트 지음, 최용주 옮김, 로빈 모이어 사진 / 한림출판사 / 2020년 5월
평점 :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이 일어난지 벌써 40여년이 지났습니다. 5.18은 6.25와 함께 우리나라 현대사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겼네요. 특히 평범한 시민들을 폭도로 몰면서 군인들을 동원해 총을 겨눴고, 다른 지역에는 철저히 소식을 차단하고 왜곡 방송을 하면서 사람들의 눈과 귀를 막았습니다. 하지만 이 운동을 계기로 우리나라의 민주주의는 한단계 발전할 수 있었고, 이제는 국민이 뽑은 대통령을 평화적인 시위로 끌어내릴 정도가 되었네요.
그동안 5.18에 대한 자료 수집과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되면서 묻혀 있던 진실들이 하나둘씩 밝혀지고 있습니다. '택시운전사' 라는 영화는 광주의 모습을 사진으로 알린 외국인 기자에 대한 이야기로, 이 기자 덕분에 5.18에 대한 실상이 국제적으로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외국인 기자 외에 다른 외국인들도 있었는데 '5.18 푸른 눈의 증인' 은 그중 한명이 쓴 회고록입니다.
저자인 폴 코트라이트는 평화봉사단의 일원으로 나주 호혜원의 한 병원에서 나병 환자들을 돌보고 있었습니다. 나병은 피부가 썩어 문드러지거나 해당 부위가 떨어져 나가기도 하면서 문둥병으로 불리기도 했습니다. 병에 걸린 환자들의 모습 때문에 사람들은 나병 환자들을 기피하였으며, 이들은 한 곳에 모여 살면서 강제로 사회와 고립되었습니다. 한국어도 모르지만 봉사를 위한 신념 하나로 저자는 우리나라를 찾아 먼 나주까지 가게 되었네요.
요즘과는 달리 외국인을 쉽게 보지 못하는 시대였다 보니 저자는 어디를 가든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네요. 길을 갈때마다 학생들이 달려와서는 스무 고개를 하는 것처럼 영어로 이름, 나이, 고향, 직업 등을 묻고는 사라집니다. 음식을 먹는 것도 쉽지 않았지만 나중에는 쌀밥과 김치도 잘 먹게 되었습니다. 외출을 꺼려하는 나환자들을 데리고 진료를 위해 대도시의 병원에 데려갔다 오기도 하는데 우리나라식 이름인 고성철로 불리면서 의지할 정도가 되었네요.
하지만 광주에서 목격한 장면 및 직접 경험한 일들은 정말 충격적이면서 저자의 삶을 바꿔 놓습니다. 곳곳에 바리케이트가 처져 있고 군인들은 최루탄을 발사하며 시민들을 상대로 총을 쏘았네요. 군부 독재의 퇴진, 계엄령 철폐 등 민주주의를 쟁취하기 위해 목숨을 아끼지 않고 시위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순수한 열정과 질서 정연한 모습들을 사실 그대로 기록하였습니다. 도청에 마련된 임시 영안실에서 가족을 잃은 슬픔에 울부짖는 사람들을 보면서 같이 아파하기도 했네요.
광주에서 길을 걷고 있는데 한 할머니가 다가와 꼭 손을 잡으면서 광주의 현재 모습을 사실 그대로 외부에 알려달라는 부탁을 받습니다. 운명처럼 할머니의 말은 뇌리에 강하게 남았고, 목숨을 걸고 광주를 벗어나 서울에 도착하면서 그동안 있었던 일이 대해 알리게 되었네요. 이 책은 5.18 광주 민주화 항쟁이 있었던 며칠 동안을 일기 형식으로 쓰고 있는데 글을 적는 동안 얼마나 가슴 아프고 분노를 느꼈을까요. 푸른 눈의 이방인으로 역사의 산 현장인 광주에서 위험한 일들도 많이 겪었는데 당시의 상황에 대해 읽어볼 수 있어서 도움이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