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 없는 사람
커트 보니것 지음, 김한영 옮김 / 문학동네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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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세상에 없는 82세의 노작가의 마지막 백조의 노래와도 같은 책을 만날 수가 있었다. 마크 트웨인 이래 미국 최고의 작가라는 호칭을 얻은 커트 보네거트의 책을 지난 4월 달에 처음으로 만났다. 그리고 마치 그의 작품 세월을 거슬러 올라가듯 그렇게 그의 책들을 하나하나 읽기 시작했다. 그가 생전에 마지막으로 쓴 <나라 없는 사람>은 자신의 평생을 반추해 보는 작가의 자전적인 에세이처럼 다가온다.

미국에서 독일계 후손으로 태어나 2차 세계대전 징집되어 참전하기도 했던 커트 보네거트는 1944년 12월 14일 독일군의 포로가 되어 동부 독일의 드레스덴으로 이송되었다. 노작가는 드레스덴에서 강제노동을 하던 도중, 영국군과 미군이 추축이 되어 감행한 1945년 2월 13일부터 15일까지 대폭격으로 드레스덴 시가지가 불타고, 13만 5천명이 살상당하는 것을 직접 목격하게 된다. 이 인류 역사상 유래 없었던 대참상은 훗날 커트 보네거트를 반전 평화주의자의 길로 인도한다. 아울러 이 사건은 향후 작가의 작품 활동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전 세계에서 자유와 정의 그리고 평화를 사랑한다고 주장하는 미국에 사는 보네거트지만 그는 스스로 자신은 (자유와 정의, 평화가 없는) 나라 없는 사람이라고 이 책을 통해 말하고 있다. 소수의 얼간이들이 지배하고 있는 미국은 그 헤게모니와 방향성을 상실한 채, 국민들이 스스로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한 기본적인 교육과 의료혜택을 받을 수 없는 현실을 개탄해 마지않고 있다. 그와 비슷한 성향을 가진 동지로 부시 행정부 시절 내내 부시 대통령을 갈구었던 마이클 무어 감독을 들 수가 있겠다.

구닥다리 작가답게, 컴퓨터로 쓱싹쓱싹 쳐나가는 글보다는 손수 타이핑을 하고 교정을 봐서 전문 타이프라이터에게 자신의 육필 원고를 동네 구멍가게에 가서 산 마닐라 봉투에 넣어 우체국에 가서 붙인다. 그리고 한 점의 스스럼도 없이 뻔뻔하게 예의 우체국에서 일하는 아가씨와 사랑에 빠졌노라고 고백한다. 그의 솔직한 고백과 글쓰기에 대한 태도가 너무 편하게 글을 찍어내는 요즘의 그것과 변별이 되어서 그런 진 몰라도 아주 마음에 들었다.

모두 13편의 에세이와 각장의 시작마다 자신이 만들어낸 캐릭터 ‘보코논’ 혹은 자신의 이름으로 쓴 묵시적인 교훈들로 이야기를 풀어 나간다. 스스로가 수다쟁이라고 칭하는 커트 보네거트는 철지난 옛 이야기처럼 대가족제의 장점을 설파하고, 그 중요성에 살짝 방점을 찍는다. 핵가족제가 시대의 트렌드마냥 위세를 떨치고 있는 시기에 어느 노땅의 반란처럼 다가온다.

인류의 미래에 대해 암울한 생각을 숨기지 않지만 그래도 인류가 만들어낸 여러 가지 발명품 중에서 특히 그는 음악에 대한 열정을 대놓고 드러낸다. 특히 아프리카계 흑인들에게서 그 유래를 찾을 수 있는 블루스는 모든 음악의 원조라고 거침없이 말한다. 흠, 상당히 일리가 있는 말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게다가 자신을 두려움으로부터 방어하는 기제로서 유머에 아주 높은 가치를 부여한다. 어려서부터 타인으로부터 주목을 받고 싶어서 웃기는 말에 남다른 관심을 보였던 보네거트의 솔직담백한 고백에 웃음꽃이 슬그머니 피어오른다.

자유와 정의가 꽃피울 자신의 조국 미국을 사랑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온갖 사회의 부조리가 판을 치고 있는 미국을 어느 날 화성인이 침공해 주기를 내심 바라는 이중적인 면도 보여준다. 하지만 그는 미국의 희망을 다른 곳이 아닌 오늘도 열심히 공공도서관에서 금지된 책들을 대중들에게 전파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사서들에게서 찾는다. 그에게는 텔레비전도, 신문 같은 대중매체들도 하나 같이 믿을 수가 없는 존재다. 오로지 책만이 우리에게 진리(veritas)를 전해 준다고 역설한다.

역시 평화주의자답게 기존의 미국 사회에 널리 퍼져 있는 기존의 (전쟁) 영웅상에도 반기를 든다. 마초주의로 무장한 영웅들이 아닌, 아무 것도 아닌 사소한 것에 주목해서 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구한 오스트리아 출신 의사 이그나츠 제멜바이스의 손씻기 운동을 언급한다. 수많은 산모들이 산욕열로 죽어가는 안타까운 현실을 타파하기 위해, 제멜바이스는 가장 쉬우면서도 효과적인 손씻기를 제안한다. 그에 대한 후폭풍은 말할 것도 없다. 하지만 우리네 평범한 영웅들의 말로가 그렇듯 제멜바이스 역시 기존의 의학계에서 환영을 받지 못하고 정신병원에서 비참한 죽음을 맞게 된다.

커트 보네거트의 <나라 없는 사람>은 팔순을 넘긴 노작가가 이 세상과의 이별을 앞두고 부른 ‘백조의 노래’처럼 다가온다. 아들과 세상살이의 본질에 대해 마치 선문답을 하듯 대화를 하고, 자신이 왜 노벨상을 받지 못했는지에 대해 농담을 하며 작가로서의 파란만장한 삶을 매조지할 준비를 차분히 하는 모습이 눈에 그려진다. 얼마 전에 읽은 <닉 혼비 런던스타일 책읽기>에서 대작가와 담배를 같이 피우기도 했다는 닉 혼비가 어찌나 부러운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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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뇌의 원근법>을 리뷰해주세요
고뇌의 원근법 - 서경식의 서양근대미술 기행
서경식 지음, 박소현 옮김 / 돌베개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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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 책을 보면서 분명 서경식이라는 한국 저자 이름 옆에 ‘박소현 옮김’이라는 글이 적혀 있어서 적잖이 놀랐다. 한국 사람이 한국말로 글을 썼는데 또 다른 한국 사람이 번역을 했단 말인가? 그런데 책날개를 펼쳐 보면서 바로 그에 대한 오해가 풀렸다. 서경식 저자는 재일동포로 일본에서 거주하면서 글을 쓰고 있다고 했다. 아하 그랬구나. 그런데 저자에 대한 나의 상상의 날개는 쉬지 않고 펼쳐졌다. 현직 법학부 교수가 서양근대 미술기행 에세이를 썼다고?

서경식 작가는 책의 말머리에서 자신의 저술의 방향에 대해 매니페스토를 선언한다. 왜 우리 근대미술은 예쁘다는 미의식에서 자유롭지 못한가. 물론 예술이 모두 정치적인 색채를 띠어야 한다는 것은 아니지만, 예술의 미의식을 지배하고 국가의 통제 아래 두려고 했던 반동적 움직임에 대해 기성의 예술가들의 무기력함을 질책하고 있다. 특히 분단과 전쟁 그리고 오랜 군사독재를 경험한 우리나라에 독일의 오토 딕스가 그린 것과 같은 “전쟁제단화”가 없다는 사실을 통렬하게 비판하고 있다. 물론 저자가 삶의 터전으로 삼고 있는 일본의 경우야 더말할 것도 없다.

2부로 나뉜 책에서 전반부는 작가 자신이 직접 발로 뛰면서 체험한 유럽 특히 독일 화가들을 소개하고 있다. 후반부에서는 우리도 익히 알고 있는 반 고호의 작품세계를 관통하는 고뇌의 미학과 학살 같이 어두운 주제를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다.

사실 이 <고뇌의 원근법>을 접하기 전까지만 해도 에밀 놀데 외의 전반부에서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는 오토 딕스 그리고 펠릭스 누스바움 같이 1차 세계대전 패전 후 성립된 바이마르 공화국에서부터 나치 지배 하의 독일 치하의 예술 활동에 대해 전혀 알지도 못했고, 알려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하지만 르네상스 이래 탐미주의적인 미술계의 전반적인 추세에 반대해서 사회주의 리얼리즘이라는 기치 하에 전쟁과 독재 그리고 서구사에서 도저히 씻을 수 있는 한 획을 그은 홀로코스트에 이르는 전 과정을 그린 굵직굵직한 인물들을 서경식 저자는 집어내고 있었다.

솔직히 말해서 회화나 조각 같은 예술 장르가 아름다움을 다뤄야 한다는 미의식을 가지고 있는 독자들이 이 책을 읽는다면 책을 덮거나 혹은 괴로움으로 책읽기가 고뇌의 시간이 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예술을 통해 국가지배를 정당화하려고 했던 1930년대 나치 독일 이데올로기에 맞서 치열한 예술 세계를 전개했던 이들의 생생한 실제 이야기들은 ,역주행하고 있는 민주주의를 목도하고 있는 오늘날의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다소 투박하고 원시적으로 보이는 색채나 선을 구사하는 에밀 놀데의 <그리스도의 생애> 연작 시리즈를 비롯한 일련의 작품들은 아리안 민족주의를 기반으로 한 인종우월주의적 이데올로기를 자신들의 존립기반으로 삼았던 나치 도당에게 한없이 부담스러웠다. 그래서 나치들은 에밀 놀데를 비롯해서 유대인 화가들의 작품들을 모아 퇴폐미술전이라는 이름으로 국가주의에 예술을 종속시키려는 노력을 끊이지 않고 시도했다.

정말 이 책을 통해 처음으로 알게 된 오토 딕스의 <전쟁제단화>를 비롯한 상이용사들의 비참한 현실과 1차 세계대전 당시 서부전선에서 실제 체험한 엄청난 살상을 동반했던 참호전에 대한 묘사는 리얼리즘의 정수로 다가왔다. 하지만 오토 딕스는 다른 예술인들처럼 정치적 망명을 택하지 않고 독일 국내에 남아 있으면서 그의 조국 독일이야말로 자신의 작품 활동의 원천이 된다는 사실을 몸으로 보여주었다. 그는 독일이 통일된 후에도 서독과 동독 양측에서 찬사를 받은 몇 안 되는 화가 중의 한 명이라고 한다.

 1부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화가로는 유대인 화가 펠릭스 누스바움이 등장을 한다. 부제목으로도 등장한 것처럼 “누가 펠릭스 누스바움을 기억하는가”라는 도발적인 제목이 너무나 인상적이었다. 누군가 말했듯이, 아우슈비츠 이후 예술을 논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부유한 유대 가문에서 태어난 누스바움은 어려서부터 유대인이라는 자신의 정체성과 끊임없이 투쟁을 벌여왔다. 게다가 자신의 타고난 예술가로서의 기질은 생과 사의 갈림길에 서게 만들었다. 벨기에에 숨어 살던 그는 해방을 몇 달 앞두고, 게슈타포에 체포되어 강제수용소로 끌려가서 최후를 맞이하게 된다.

2부에서는 요절한 천재 카라바조의 그림 <토마스의 불신>을 통해 “보고 그린다”라는 양면성을 가진 세속적 욕망의 문을 통과한 예술가들의 이야기로 시작을 해서, 너무나도 유명한 화가인 반 고흐에 대한 대담 그리고 학살이라는 주제를 천사라는 매개체를 통해 구상화시킨 과테말라 출신의 작가 다니엘 에르난데스 살라사르의 이야기로 매조지를 한다.

특히 자본주의 산업혁명 이래, 미술이 산업화되어 가는 시기를 가열차게 살았지만 정작 생전에 자신의 작품이라고는 달랑 한 점 판 실패한 화가 고흐에 대한 접근은 아주 새로웠다. 우리가 살던 시대보다 120여년 정도를 먼저 살았지만, 자본에 의한 지배가 나날이 공고해지고 예술정신조차 가치가 매겨져서 국가권력보다도 더 무서운 시장논리에 좌지우지되는 현실세계는 고흐가 참아낼 수 없는 19세기말의 그것과 너무나 흡사하기만 하다.

이 책을 읽으면서도 개인적으로 예술은 모두 아름다워야 한다는 전통적인 미의식에 대한 가히 혁명적인 개조를 이룰 수가 있었다. 서경식 작가가 말한대로, 아름답지 못한 현실을 담은 회화가 어떻게 아름다워 보일 수가 있겠는가. 현실세계를 도피해서, 물상이나 자연만을 다룰 것이 아니라 오늘날의 우리네 보통 사람들의 모습을 가감 없이 다루고 있는 화가들의 부재가 아쉬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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잇츠 캠핑 it's camping - 초보 캠퍼를 위한 캠핑 가이드&캠핑지 100선
성연재 외 지음 / 이밥차(그리고책)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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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가에서 <잇츠 캠핑>의 돌풍이 불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 같다. 불과 한 달 사이에 3쇄에 들어간걸 보면, 이 책이 얼마나 인기가 있는지 짐작이 가고 남음이 있을 것 같다. 서점에서 이 책을 집어 들었을 때, 무엇보다 사진이 인상적이었다. 하긴 요즘처럼 비주얼의 시대에 사진만큼 사람들의 시선을 끌어당기는 것도 없을 것 같다.

남자들에게 아마 캠핑은 어렸을 적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로망의 촉진제 같은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목적지도 뚜렷하게 정하지 않은 채, 어느 여름 남도 바닷가를 둘러보겠다는 일념으로 친구들과 긴 여행을 떠났던 기억이 난다. 인원수를 훨씬 초과하는 텐트를 메고 다니느라 엄청 고생을 한 기억이 난다. 당시만 하더라도, 요즘처럼 오토캠핑이 일반화되지도 그리고 교통편도 좋지 않던 시절이었지만 그 추억들은 오롯하게 지금도 기억 속에 피어오른다.

<잇츠 캠핑>에서는 그런 마구잡이식 캠핑이 아닌 보다 체계적이고, 자연을 벗 삼아 즐길 수 있는 많은 노하우들을 아낌없이 전수해준다. 대한민국에서 내로라하는 52곳의 캠프 사이트들을 직접 가본 후에, 짤막짤막하게 소감을 피력하는 저자의 전개에 그저 넋을 잃은 듯, 사진과 그 안에 숨겨져 있는 이야기들에 흠뻑 빠져 버렸다.

물론 수년간 캠퍼로써, 경력을 쌓은 이들도 있겠지만 비를 피할 수 있는 작은 텐트와 추위방지용 침낭 하나만 있다면 오늘 당장에라도 떠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책에서는 전혀 언급을 하지 않고 있지만, 캠핑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기동력 다시 말해서 차량이다. 특히 오지의 비포장도로 같은 곳을 달릴 수 있는 스포츠 차량이라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말이다. 그 점은 아마 캠핑에 대한 이야기에 초점을 맞추느라 의도적으로 피한게 싶다.

가족과 함께 하는 캠핑은 더더욱 의미가 있을 것 같다. 예전처럼 자연을 벗하지 않고 회색빛 콘크리트 속에서 하루하루를 보내는 아이들에게, 주말의 잠깐이라도 회색빛 공해의 공간에서 벗어나 굴참나무와 전나무들이 하늘로 치솟은 산 속에서 바로 당장이라도 우수수 떨어질 것 같은 밤하늘에 떠 있는 별들을 보며 보내는 시간들은 그 무엇에 비할 바가 아닐 것이다.

아울러 단순하게 야외로 나가 먹고 자는 것이 아닌, 일상에 피로에 시달린 자신을 되돌아보고 보다 여유로운 독서의 시간도 가질 수 있다는 사실을 저자들은 담담하게 사진을 통해 보여준다. 아웃도어 스포츠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플라이 피싱 역시 빼놓을 수가 없다. 자연을 사랑하는 캠퍼들답게, 열목어나 산천어 같이 희귀어류들을 잡아 사진을 찍고 바로 놓아주는 강태공 캠퍼들의 자연 사랑 정신에 경의를 표할 뿐이다.

저자들은 모두 52곳의 멋진 캠핑 사이트에 대한 소개를 마치고 나서, 역시 캠핑하면 빼놓을 수 없는 베스트 먹거리 20선을 선보여 준다. 누가 나가서 먹는건 뭘 해먹어도 맛있다고 했던가. 자연의 신선한 공기를 마시면서, 지글지글 타오르는 장작불에 더치오븐을 걸고 로스트치킨이 익기를 기다리는 캠퍼들의 허기가 느껴지는 듯한 느낌이었다. 아주 기본적인 요리인 밥구이에서부터 시작을 해서, 조금은 손이 많이 갈 것처럼 보이는 토마토카레그라탕에 이르기까지 베테랑 아웃도어 쿡들의 향연이 펼쳐진다. 개인적으로 20가지 요리 중에서 압권은 ‘비어캔치킨’이라고 생각한다. 언젠가 꼭 도전해 보고 싶은 요리다.

결국 이 책 한 권을 읽고, 캠핑에 중독이 되어 버린 나머지 캠핑 물품 사이트를 뒤지고 결국에는 ‘캠핑 앤 바비큐’ 카페에도 가입을 했다. 물론 일상의 삶이 항상 발목을 잡고 있어서 과연 나의 첫 캠핑이 언제가 될진 모르겠지만, 좀 부족하고 불편하면 어떻겠는가? 바로 그 맛이 지금도 수많은 캠퍼들이 우리나라의 아름다운 산과 강으로 캠핑을 떠나는 이유가 아니겠는가 말이다. 말이 필요 없다, 당장에 떠날지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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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사람들>을 리뷰해주세요
보이지 않는 사람들 - 21세기 노예제, 그 현장을 가다
E. 벤저민 스키너 지음, 유강은 옮김 / 난장이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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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뉴스에서 미 국무성에서 해마다 발간하는 인신매매 보고서에 북한이 지난 6년간 인신매매 최악의 나라 3등급에 지정됐다는 뉴스를 들었다. 부시 행정부 시절이던 지난 2003년 보고서를 처음으로 작성한 이래 북한은 실제로 벌어지는 있는 인신매매에 대한 인정은 물론이고, 이를 개선하기 위한 노력도 하지 않는 나라로 분류되었다는 것이다. 이 3등급의 나라에는 벤저민 스키너의 책에서도 다뤄지고 있는 수단과 사우디아라비아 등이 올라 있다.

<뉴스위크>와 <포린어페어스> 같이 저명한 잡지들에 글을 실어온 벤저민 스키너는 <보이지 않는 사람들>에서 유사 이래 가장 많은 수의 노예들이 상존하고 있다는 사실을 폭로한다. 작가는 노예제 해방에 있어서 선구적인 역할을 했던 영국과 심지어 헌법에 보장된 모든 이들의 평등을 위해 전쟁까지 치른 미국(물론 남북전쟁에 대한 다른 시각도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다)의 경우에서 모든 인류의 소중한 가치인 자유에 접근을 시도한다.

우선 저자는 현대사회에서 자행되고 있는 노예제에 대한 정의를 다음과 같이 규정하고 있다. ‘강요나 사기를 통해,’ ‘생존을 넘어선 보수를 전혀 받지 않고,’ ‘강제노동에 종사하는’ 것이다.

가장 먼저 벤저민 스키너는 중남이 소국 아이티의 만연한 ‘더부살이’로 대변되는 아동 노예들의 실상을 파헤친다. 작가는 나중에도 계속해서 언급을 하게 되지만, 절대 빈곤선에 있는 대부분의 가정들에 현대판 노예상들의 유혹이 뻗친다고 말하고 있다. 기본적인 생존을 위한 먹을 것마저 구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그들에게 보다 나은 삶을 약속하는 교육은 먼 나라 이야기처럼 들릴 뿐이다. 그런 그들에게 노예 중개업자들이 나타나서, 교육을 약속하며 아이들을 아이티 중산층 가정에 공급한다. 물론 그런 거짓 약속 뒤에는 혹독한 매질과 가혹한 노동만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아쉽게도 벤저민 스키너의 현대판 노예제에 대한 고찰은 어쩔 수 없는 한계 때문인지 전 세계적인 노예제 폐지를 위한 노력을 하고 있는 미국의 노력에 집중되고 있다. 미 국무성 산하 인신매매담당과의 무임소 대사로 활약을 한 민주당원 출신에서 공화당으로 당적을 바꾼 존 밀러가 있다. 한편, 기독교 복음주의 출신의 마이클 호로위츠는 존 밀러가 주장하는 대로 노예제의 근본적인 해결을 위해서는 가난과 빈곤으로부터 탈출하기 위한 구체적인 대안이 마련되어야 한다는 주장보다 성매매가 개입된 인신매매에 초점을 맞춘다.

작가는 아이티를 시작으로 해서, 수십 년간의 내전의 참화를 겪은 수단의 가재 노예들의 처참한 상황과 루마니아와 몰도바에서 서유럽 매춘시장을 위해 유입되는 여성들의 현실을 담담하게 독자들에게 제시한다. 이를 위해 저자가 참고한 참고자료들의 수는 방대하다. 실제로 작가가 참고문헌으로 제시한 <타임>의 “인간노예” 기사를 찾아보면서 얼마나 많은 수의 공산주의에서 벗어난 동유럽 젊은 여인들이 가난과 여러 가지 사회경제적인 조건들 때문에 비인간적인 성적 억압과 착취를 당하는지 실감할 수가 있었다.

특히 수단의 경우에는 친정부 아랍계 민병대들에게 노예사냥으로 잡힌 수단 남부의 딩카족을 비롯한 아프리카계 소수민족들의 자유 ‘되사주기’가 수단 반군들에게 자금줄로 역이용되고 있다는 폭로에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이들의 자유를 위해 미국 어린이들이 모금한 소중한 자금이 수단 반군에게 병참과 무기 구입을 위한 돈줄로 사용되고 있다는 사실 앞에서 국제정치역학의 모순이 느껴지기도 한다.

세계의 인신매매 근절을 위해 외로운 싸움을 하는 존 밀러의 이야기는 각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노예제와 교차 편집된다. 미국 정부에 우방이라고 할 수 있는 사우디아라비아나 쿠웨이트 혹은 인도 같은 나라들에 3등급 지정을 하고, 제재를 가하려는 존 밀러의 시도는 그의 상급자들의 정치적인 이유로 해서 번번이 고배를 마시게 된다.

마지막으로 벤저민 스키너는 전 세계 노예인구의 절반을 차지한다는 인도로 눈을 돌린다. 인도에서도 가장 가난한 주 중의 하나라는 우타르프라데시의 채무 노예 고누 랄 콜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인도의 고질적인 병폐 중의 하나인 카스트 제도 밖에 불가촉천민인 달리트 출신의 고누는 거의 3대째 채무 노예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강제노동에 시달리고 있다. 악질 지주들은 고누와 같은 채무 노예들에게 생존에 필요한 음식과 최소한의 물질을 공급해 주면서 대대로 그렇게 가혹한 착취를 일삼고 있었다.

인도의 법률은 카스트제도와 노예제를 인정하고 있지 않지만, 하루가 다르게 변화해가는 현대 인도에서 그 두 가지 악폐들은 여전히 위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서구인들의 일시적인 동정에 의한 도움이 아닌, 자신들의 처해 있는 반인류적인 범죄라고 할 수 있는 예속적인 노예생활에 대한 자각을 위한 계몽활동과 더불어 그들의 경제적 자립을 위한 근본적인 해결책이 제시되어야할 것이다.

책을 다 읽고 나서 이 대명천지에 여전히 현대판 노예제도가 상존하고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가 않았다. 이 책을 통해 오늘도 이 지구상의 어딘가에서는 나이 어린 아이들이, 젊은 여성들을 비롯한 수많은 이들이 가난과 채무 같은 다양한 이유로 해서 착취와 학대에 신음하고 있다는 끔찍한 현실을 직시하게 됐다. 벤저민 스키너의 말대로 그들에게는 자신이 처한 상황에 대한 각성과 더 이상 노예로 살지 않겠다는 선언이 그 어느 때보다도 필요한 것 같다. 벤저민 스키너와 존 밀러 같이 이 심각한 문제를 사람들에게 주지시키고 개선시키려는 이들의 부단한 노력에 경의를 표한다. 이 지구상에서 노예제가 없어지는 그 날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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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 A
조나단 트리겔 지음, 이주혜.장인선 옮김 / 이레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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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최근 들어 작가들의 첫 번째 소설들을 많이 대하고 있다. 지금 막 읽은 조나단 트리겔의 <보이 A> 역시 작가의 데뷔 소설이라고 한다. 영국 출신은 조나단 트리겔은 2002년 이 소설의 배경이 되는 맨체스터 대학에서 창조적 글쓰기로 석사 학위를 받고, 2004년 <보이 A>를 발표한다.

이 소설은 1993년 2월 영국의 리버풀의 쇼핑센터에서 실제로 발생했던 아동 살해사건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두 명의 10살 난 소년들인 존 베나블스와 로버트 톰슨이 두 살 난 제임스 패트릭 불거를 살해했다. 경찰에 의해 검거된 이 소년들은 법원에서 최소 10년형을 선고 받았는데, 소설에서처럼 <선>지가 30만 명의 청원을 받아 당시 내무부 장관이었던 마이클 하워드에게 양형을 늘리도록 압력을 행사했다. 그들은 8년을 복역하고, 조건부로 2001년 풀려났다. 이런 실제 사건의 줄거리를 주지하고 책을 읽기 시작하면, 좀 더 이해가 쉬울 것 같다.

<보이 A>의 구성은 모두 24개의 영어 알파벳으로 시작된다. 실제 사건과 유사한 사건으로 소년원과 교도소에서 14년간 복역을 하고 자신의 신분을 감춘 채, 교도관이었던 테리의 도움으로 맨체스터에서 새 출발을 시작하는 소년 A, 아니 이제는 잭 버리지라는 이름으로 통한다.

여느 결손가정에서처럼 아버지와 어머니의 보살핌을 충분히 받지 못한 채, 천둥벌거숭이처럼 참혹한 아이들의 세상에서 항상 지는 역을 맡았던 잭은 어느 날 소년 B의 도움으로 비로소 자신감을 얻게 된다. 그동안 누려 보지 못했던 친구와의 즐거움들이 드디어 소년 A에게도 주어진 것이다. 아, 조나단 트리겔의 구성은 시간에 따른 연대기적 구성이 아닌 플래시백과 현재의 일들이 뒤죽박죽으로 맞물려 있다는 것을 알 필요가 있다. 처음에는 당혹스러울 수도 있지만, 책에 몰입할수록 더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구성이었다.

어머니가 죽고, 친부마저 자신을 떠난 잭에게 테리는 아버지 그 자체였다. 성난 군중들과 그들의 심리에 편승한 매스컴은 두 소년을 괴물로 몰아가고, 이미 재판을 하기도 전에 그들의 운명은 결정지어진다. 한 때 잭의 절친한 친구였던 소년 B는 교도소에서 레테의 강을 건너는 선택을 하고, 그보다 훨씬 약해 보였던 잭은 싸워 보지도 않고 질 수 없다는 끈질긴 생명력으로 숱한 고난과 외로움의 장벽을 테리의 도움으로 뛰어 넘어 가석방에 성공한다.

14년이란 시간 동안 소년에서 청년이 되어 잭은 새 출발을 했지만 자신이 저지른 사건에 대한 죄책감과 언제라도 자신의 정체가 들어날 수 있다는 불안감에 시달린다. 하지만 오랜만에 느껴보는 자유 속에서 하루하루를 평범하게 살아간다. 그렇게 같은 회사에서 일하는 미셸과 사랑에 빠지기도 하고, 동료 크리스와 우정을 나누기도 한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이 잭에게는 모래성처럼 느껴진다. 왜냐면 모든 것이 거짓말 위에 세워졌기 때문이다.

<보이 A>에는 많은 담론들이 배어 있다. 우선 끔찍한 범죄를 저지른 범죄자들이 교정기간을 통해 다시 사회에 복귀가 가능하냐는 회의론적 주장이 존재한다. 반면에 그들이 몇 달만 더 어렸더라도, 무죄가 될 수 있었다는 반론 역시 만만치가 않다. 이런 측면에서 작가 조나단 트리겔은 주인공 잭에게 좀 더 동정적인 시선으로 접근을 시도한다.

잭의 불우했던 어린 시절의 이야기들을 통해 독자들의 공감대를 형성해 나간다. 상대적으로 극중 희생자인 안젤라 밀튼에 대해서는 조금은 편파적인 매스컴의 주장들을 배치시킨다. 가해자와 희생자의 구분이 어느 순간 모호해진다. 소년 A와 B는 가해자이면서도, 궁극적으로 희생자가 된다. 사실 잭은 새로운 관계를 설정해 나가면서, 자신의 정체에 대해 커밍아웃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을 한다. 그 이유는 스스로가 너무 잘 알고 있다. 그들이 자신의 커밍아웃에 앞서 자신의 정체를 알게 된다면, 그들의 관계는 모래성처럼 무너질 것이기 때문이다. “중요한 사실들이 생략된 진실”(223쪽)의 치명적 약점이다.

이제는 퀜틴 타란티노의 전매특허처럼 되어 버린 뒤죽박죽된 시간의 나열 역시 소설의 읽는 재미를 더해 준다. 조나단 트리겔은 치밀한 계산 아래, 스토리텔링의 고저를 파악해서 적시적소에 현재와 과거, 사건의 경중에 따라 이야기들을 배열한다. 그의 내러티브 연주에 독자들은 일희일비한다. 도저히 글쓰기를 전공했다지만, 초짜 작가라는 사실이 믿겨지지 않을 정도다.

작가는 용서와 화해라는 궁극적인 대전제를 전적으로 독자들에게 맡겨 놓는다. 그가 비록 주인공 잭/소년 A에게 동정적인 시선을 보내고 있긴 하지만 그것에 대한 판단은 온전하게 책을 읽는 이들의 몫이다. 우리의 일상에서 그런 소년 A를 만나게 된다면 우리는 과연 어떠한 편견 없이 그의 아픔의 눈물을 닦아 주고, 친구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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