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의 비용
유종일 외 지음, 지식협동조합 좋은나라 엮음 / 알마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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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교롭게도 <MB의 비용>을 읽기 시작한 2015년 3월 13일, 각종 부정부패에 대한 정부는 무관용 원칙에 입각한 선전포고를 했다. 중심에는 이 책에서도 다룬 바 있는 포스코건설 동남아사업단 100억대 비자금 의혹으로 검찰이 포스코건설 본사 압수수색이라는 초강수를 두었다는 뉴스를 들었다. MB정권 5년 동안의 실정에 대해 그동안 수많은 의혹과 무수한 고발들이 오래전부터 이어졌었는데, 왜 지금까지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다가 이제야 비로소 수사가 시작되었는지 뒤늦은 감이 없지 않다. 어쨌든 잊지 말아야 할 기억투쟁의 서막이라는 점에서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MB의 비용>은 아무래도 최근에 나온 전직 대통령의 자화자찬과 왜곡된 수치로 점철된 <대통령의 시간>과 비교될 수밖에 없는 운명을 타고 났다. 앞으로도 후자를 읽어볼 생각이 없지만, 왜 똑같은 사안에 대해 이렇게 다른 시각이 존재할 수 있는지 나 같은 일반 독자로서는 도저히 가늠할 수조차 없을 것 같다. 전직 대통령의 독단적인 결정으로 22조라는 엄청난 국민의 혈세가 투입된 4대강을 필두로 해서, 자원 확보와 자주개발률이라는 구호 아래 진행된 자원외교 42조라는 천문학적 비용, 원전마피아라는 이름으로 세상에 알려진 원전비리, 한식의 세계화라는 미명 아래 영부인이 직접 나서서 주도했던 한식세계화 사업 등 우리가 과거에 치렀거나 앞으로 치러야할 MB의 비용은 들으면 들을수록 혈압이 치솟는다.

 

MB 대통령 당선 직후 세상에 떠들썩하게 선전했던 쿠르드 유전 개발로부터 그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자원외교는 그 자체가 부실 덩어리였다. 지속적인 경제발전을 위해 자원 확보를 하겠다는 취지에서 시작된 자원외교는 전 정권의 실세 영일대군 이상득 의원과 온갖 비리에 연루되어 결국 실형을 살게 된 박영준 왕차관(미스터 아프리카)의 지휘 아래 진행되었다. 규정에 따른 절차와 원칙을 무시하고 오로지 정권의 홍보와 실적을 위해 속도전으로 전개된 자원외교 사업은 묻지마 투자의 전형이었고, 그에 따른 후폭풍은 엄청났다. 최근에 방송된 KBS 다큐멘터리를 통해 볼리비아 리튬 광산 국유화 선언으로 인해 우리가 수입할 수 있는 리튬 자원은 전무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페루의 사비아페루 유전개발은 전직 페루 대통령이 나서서 말릴 정도였지만, 석유공사가 7,161억원이나 투자해서 성사시킨 계약은 개발허가와 판매권이 아닌 서비스계약으로 석유를 뽑아낼 수만 있지 정작 판매는 페루 정부로 귀속되는 엉터리계약이었다. 광물공사가 주축이 되어 진행된 멕시코 볼레오 광산 개발사업 역시 엄청난 손실을 보았고, 앞으로도 계속해서 손실이 그야말로 눈덩이처럼 불어날 전망이다. 3대 에너지 공기업인 석유공사, 가스공사 그리고 광물공사가 나선 MB 집권 5년 동안의 에너지 자원 외교의 실적은 초라하다 못해 처참할 지경이다.

 

MB 집권 시기 의욕적으로 진행한 4대강 역시 책의 1부에서 다루고 있는 국고의 <탕진>이라는 주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애당초 그의 대선 공약 중의 하나였던 대운하 건설이 국민적 저항으로 무산되자, 다른 이름으로 포장해서 내놓은 것이 바로 4대강의 시초였다. 자그마치 22조에 달하는 천문학적 비용을 어떻게 충당할 것이냐는 질문에 4대강에서 준설한 모래를 팔아 비용을 마련하겠다는 엉뚱한 대답이 들려오기도 했지만, 결국 이 사업 역시 국민의 혈세가 소용된 사업이었다. 홍수대비효과와 많은 수의 일자리 창출효과 등 온갖 장및빛 청사진으로 도배가 되었지만, 이 역시 감사원 감사 결과 실패한 사업이었고 4대강 곳곳에 설치된 수많은 보들은 수질오염과 녹조라떼 같은 환경재앙의 원인이 되었다. 지금까지 들어간 비용만도 국민의 입장에서는 억울한 판인데, 강이 다시 흐르게 하기 위해 만들어진 기존의 12개 보 철거를 위해서는 2천억 정도의 비용이 그리고 현상유지만을 위해서도 지속적인 비용이 청구될 전망이라고 하니 기가 막힐 노릇이다. 게다가 4대강 사업에 참가한 건설사들의 계획적인 담합으로 탕진된 비용은 보상받을 길이 없다고 한다. 그들이 이미 받아 챙긴 1조 6천억 원에 비해 비용에 비해 재판과정에서 11개 업체들에게 물린 벌금은 고작 업체당 5,000만 원에서 7,500만 원 정도라고 한다.

 

그 외에도 최악의 국가적 재앙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었던 원전 케이블 납품비리, 국가안보를 볼모로 잡아 대기업 롯데에 몰아준 특혜의혹, 낙하산 인사가 회장이 된 KT의 무궁화 위성 헐값매각, 현재 검찰의 수사망에 걸린 포스코 정준양 전 회장의 비자금 의혹 등 수많은 이슈들이 바로 탕진의 주범이라는 것이 <MB의 비용>에서 다루고 있는 주장이다. 개인적으로 가장 화가 나는 점 중의 하나는 성과도 보이지 않는 영부인 한식세계화 사업의 디너파티 예산은 아끼지 않으면서, 당시 영유아들에게 제공하는 백신 비용 등의 예산을 가차 없이 깎아낸 정부의 행태다.

 

한편 후반부를 장식하는 <실정>에서는 지난 정권에서 파탄난 대북한정책, 부적격인사, 내곡동 사저에 관한 비리문제, 부자감세 그리고 미디어법 등에 대해 전문가들과의 대담을 통해 접근하다. 북한이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제안을 하면서 북한의 핵포기와 내부붕괴를 압박했지만, 아무런 성과도 없이 그렇게 집권 5년기를 허송세월했다. 5·24선언으로 남북경협와 금강산 관광 등이 모두 중단되면서 남북관계는 경색되었고 그 비용은 고스란히 국민에게 전가되었다. 경협을 통한 지원이 북한에게 일방적인 퍼주기가 아니라 평화통일을 위한 선불이라는 개념에 공감할 수가 있었다. 마지막으로 왜 검찰이 권력형 비리에 무력할 수밖에 없는 이유에 대한 분석과 감사원이 제 기능만 제대로 하더라도 정권마다 되풀이되는 형사처벌로 가기 전에 시정하고 예방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는 지적이 인상적이었다.

 

사실 <MB의 비용>을 읽기 전까지만 해도 대척점에 서 있는 <대통령의 시간>을 읽을 생각은 조금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 책을 읽다 보니, 시간이 된다면 비교 대조를 위해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제는 비용이다. 문득 어느 개그 프로그램에서 이 책의 정가가 자그마치 28,000원이라는 말을 듣고 한참을 웃은 기억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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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를 잡아먹은 오리 - 2015년 제11회 세계문학상 수상작
김근우 지음 / 나무옆의자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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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한 남자와 여자 그리고 꼬마의 이야기다.

 

제목을 보는 순간, 내 눈을 의심했다. 고양이가 오리를 잡아먹은 게 아니라, 오리가 고양이를 잡아먹었다구? 뭐라구? 어디선가 SF 적 장르소설의 혐의가 스멀스멀 피어나는 것을 감지할 수가 있었다. 부리나케 작가의 경력을 뒤져 보았다. 오래전, 피씨 통신 시절에 장르 소설을 썼었던 열혈청년이었구나. 바로 감이 왔다. 그런데 차근차근 소설을 읽어 보니 그런 SF 스타일의 소설이 아니라, 청년실업과 희망이 보이지 않는 저성장 시대의 한 풍경처럼 그렇게 소설 <고양이를 잡아먹은 오리>는 내게 다가왔다.

 

소설의 배경이 되는 불광천이 궁금해서 인터넷으로 검색을 해봤다. 역시 봄이 오는 불광천 풍경은 소설에서 묘사된 것처럼 고즈넉하고 평화로운 분위기였다. 다만, 소설의 키워드로 작용하고 있는 오리를 볼 수가 없어 좀 아쉬웠다. 대신 비둘기 부대는 많이 볼 수가 있었다. 아마 불광천을 지배하고 있는 조류는 소설에 나오는 오리가 아니라 비둘기인 모양이다.

 

누가 봐도 분명 김근우 소설가의 페르소나로 보이는 화자 내가 등장한다. 삼류소설가를 자칭하며 출판사에서 원고를 빠꾸먹은 나는 생존의 위기에 내몰린다. 진부하지만 통장 잔고에 돈이 남아 있을 리가 없다. 이제 도대체 누가 소설을 읽는가라는 질문을 자주 듣는 시대에, 책보다 커피에 투자하는 비용이 더 많은 시대에 소설가는 기피직종이 된 느낌이다. 어쨌든 나는 생존하기 위해 고양이를 잡아먹은 오리를 찾는다는 기묘한 전단지에 이끌려 어느 노인 앞에 서게 된다. 초반에도 이야기했지만, 여전히 이해가 되지 않는다. 오리가 노인이 자식보다 더 애지중지하는 세 살짜리 암코양이 호순이(이름 한 번 호방하다)를 잡아먹었단다. 그래서 그와 그의 동료 여자에게 폴라로이드 사진기를 들려 불광천을 누비며 범인, 아니 범압(犯鴨)을 찾으라는 특명을 내린다.

 

동료 여자는 한 때 잘 나가는 증권사 직원이었지만, 그놈의 한탕주의 때문에 나와 비슷한 처지에 몰린 상황이다. 그래도 남자와 여자는 그나마 일말의 양심이 있다. 범압 사냥에 나서 노인에게 일당 5만원에 고용된 처지지만, 시간이 갈수록 자신들의 고용주인 노인의 상황에 안쓰러움을 느끼기 시작한다. 그렇다, 바로 그런 측은지심이야말로 인간관계 형성의 기본이 아니었던가. 어느 날, 갑자기 등장한 노인의 손자 꼬마까지 등장해서 구성된 범압 3인조는 오늘도 오리 추적에 나선다.

 

이 꼬마는 능청스럽게 성공보수를 노리고 노인을 위해 호순이를 잡아먹은 가짜 오리를 만들자는 아주 발칙한 제안도 마다하지 않는다. 아무리 처지가 궁색해서 노인의 터무니없어 보이는 제안을 받아들인 남자와 여자지만 그건 아니다라고 생각하고 일언지하에 거절한다. 남자는 꼬마가 배달한 김치통이 나뒹굴고 있는 노인의 아파트 청소를 하고, 여자는 노인에게 가정식 백반을 만들어주면서 그들의 신뢰를 점점 쌓여 가기 시작한다. 과연 그들은 범압 사냥에 성공할 수 있을까.

 

<고양이를 잡아먹은 오리>를 읽는 독자라면 알겠지만, 남자와 여자 그리고 꼬마가 과연 고양이를 잡아먹은 오리를 잡았는가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황당해 보이는 미션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듣게 되는 그들 삶의 이야기야말로 김근우 소설가가 이 소설을 통해 하고 싶었던 주제가 아닐까 하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물론 은근슬쩍 집어넣은 소설가의 내력도 주목할 만하다. 사람들이 듣고 싶어 하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스토리텔링의 장인이라는 직업이 과연 존재한다면, 소설 속의 주인공처럼 묵묵하게 그 과업을 해낼 자신이 있을까. 팔리지 않는 소설, 다시 말해 사람들이 궁금해 하지 않는 그런 이야기에 목매고 오늘도 컴퓨터 자판을 부서지게 두들겨 대는 군상이 있다는 사실이 낯설게 다가왔다.

 

그런 점에서 소설 속의 화자가 내세운 허먼 멜빌의 <모비딕>(그 엄청난 두께 때문에 앞으로도 읽을 수 있을까 하는 회의가 든다)에 나오는 에이해브 선장의 복수, 오리를 찾는 노인의 허망한 노력 그리고 소설가의 소설쓰기는 삼위일체다. 우리는 한 배를 탄 운명공동체로 뭉뚱그리고, 노인의 집념이 어이없다는 점을 잘 알면서 현실의 경제적 궁핍에서 탈출하기 위한 방편으로 삼고 있는 자신들의 노력 혹은 노동을 정당화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양심의 가책에 시달리는 그야말로 삼중고에 시달리는 진실에 김근우 소설가는 무의식의 뜰채를 들이민다. 어쩔 수 없이 서로를 이해하게 되는 과정 속에 피어나는 연민과 동정 같은 감정의 파노라마 역시 빠질 수 없는 요소다. 그렇게 세상을 담은 이야기는 매력적일 수밖에 없다.

 

김근우 소설가가 이번 세계문학상 대상 수상을 계기로 다시 잘 팔리는 작가가 돼서 그의 로망대로 볼리비아 우유니 사막 여행에 나서게 되기를 진심으로 기원해 마지않는다.

 

[리딩데이트] 2014년 3월 1일 ~ 13일 오전 7시 5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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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린세스 브라이드
윌리엄 골드먼 지음, 변용란 옮김 / 현대문학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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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오래 전에 처음부터 끝까지 보진 못했지만, 한동안 케이블 텔레비전에서 줄창 방송을 해주어서 영화 <프린세스 브라이드>의 주요 장면들을 보곤 했었다. 그런데 그전에 윌리엄 골드먼이라는 할리우드의 탁월한 스크린플레이 작가가 쓴 소설을 원작으로 했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었다. 사실 영화의 대강의 줄거리조차 기억나지 않지만, 영화 후반에서 이니고 몬토야가 루겐 백작에게 칼을 마구 휘둘러 대며 자신의 이름을 계속해서 소개하는 장면은 잊지 못할 것 같다. 그래서인지 이번에 소설을 읽으면서도 가장 애정을 가지고 지켜본 캐릭터도 버터컵 공주나 해적왕 웨슬리가 아닌 이니고였다.

 

소설은 1973년에 나왔고 영화는 1987년에 만들어졌으니까 14년의 시차를 두고 소설과 영화가 세상에 나왔나 보다. 열 살 배기 소년인 나는 폐렴으로 고생하던 중, 아버지가 읽어주신 모겐스턴의 <프린세스 브라이드> 이야기를 우연히 듣게 된다. 영화에서는 <케빈은 열두살>의 프레드 새비지가 꼬맹이 역을 맡았다.

 

멀지도 그렇다고 그렇게 가깝지도 않던 시절, 플로린 왕국에 내로라하는 미모의 소녀 버터컵이 살았단다. 왜 하필이면 로맨스 영화나 소설에는 절세미녀가 등장하지 않으면 이야기가 되지 않는 걸까. 외모지상주의는 그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모양이다. 시골 출신의 이 소녀 곁에는 농장 머슴애란 친구가 있었으니 그의 이름은 웨슬리. 초반에는 나이를 먹을수록 아름다움 외모가 치솟는 버터컵 이야기가 나오더니, 그 다음에는 백작 부인의 행차로 웨슬리에 대한 사랑을 확인하게 된 버터컵의 극적인 변신 이야기가 이어진다. 버터컵은 그 순간 웨슬리를 자신이 사랑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고백하지만, 웨슬리는 그녀의 곁을 떠날 결심을 하게 된다. 이렇게 덧없는 청춘들의 사랑은 바람결에 날아가 버리게 되는 걸까.

 

한편, 버터컵과 웨슬리가 살던 플로린 왕국에는 험퍼딩크라는 사냥에 미친 왕자가 한 명 살고 있었는데 때가 되어 왕위계승을 하기에 이르렀고, 내친 김에 결혼도 하기로 결심한다. 이웃나라 길더 왕국 공주가 대머리였다는 사실에 식겁한 험퍼딩크 왕자는 그저 외모 하나로 색싯감을 고르기로 결정한다. 어째 하나 같이 그렇게 외모타령을 하는 걸까. 그렇게 해서 결정된 처녀가 바로 버터컵이라는 사실이 여기서 중요하다. 신분상의 문제로 평민이었던 버터컵을 바로 왕자의 신붓감으로 들일 순 없고 해머스미스의 공주로 신분세탁과 동시에 귀족의 예절을 가르쳐 당당하게 결혼을 치를 준비에 여념이 없다.

 

이렇게 일사천리로 이야기가 진행되면 좋겠으련만 바로 시련은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어려서부터 말타기에 일가견이 있던 프린세스 브라이드 버터컵은 결혼을 앞두고 말타고 바람 쐬러 나갔다가 정체를 알 수 없는 삼인조 괴한(이니고 몬토야, 페직 그리고 비지니)에게 납치되어 상어 밥이 될 뻔한 죽을 고비를 넘기게 된다. 이 때 납치된 버터컵의 뒤를 쫓는 검은 옷을 입은 남자가 있었으니, 볼 것도 없이 이미 무시무시한 해적왕 로버츠에게 잡혀 죽을 것으로 알려진 웨슬리가 불사조처럼 살아난 것이다. 그냥 농장 머슴애에 지나지 않던 웨슬리는 언제 그렇게 뛰어난 검술을 익혀 스스로 마법사 이후 최고의 검객이라 자부하는 이니고 몬토야를 제압하고, 천하장사 페직마저 기교로 패퇴시키고, 음모와 술수에 달인 비지니마저 독약으로 처리하는 뛰어난 실력을 보여준다. 그리고 마침내 버터컵을 구해내 해피엔딩에 도달하는가 싶었지만, 천하제일의 사냥꾼 험퍼딩크 왕자의 추격에 잡혀 비명횡사할 운명에 처한다.

 

이야기 속의 이야기로 작가 윌리엄 골드먼은 이니고 몬토야가 어떻게 해서 험퍼딩크 왕자의 심복 루겐 백작과 원수지간이 되었는지 그리고 그가 억울하게 죽은 아버지 도밍고의 복수를 위해 검객이 되었는지를 소상하게 들려준다. 사실 어쩌면 끝이 빤해 보이는 메인 스토리보다 중간중간에 들이치는 그런 소소한 서브 캐릭터들의 이야기에 더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힘이라면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페직 또한 어릴 때 또래들에게 당한 유년 시절의 트라우마 때문에 소녀 심성을 가진 사나이로 등장한다. 자신을 보살펴 주는 전략가 시칠리아인 비지니를 위해 힘을 아끼지 않지만 막상 비지니가 없어지고 나자, 자신의 운율친구 이니고와 힘을 합쳐 험퍼딩크 왕자와 루겐 백작의 사악한 수중에 들어간 웨슬리를 구해내는 작전을 수행하기에 이른다.

 

소설 도중에 읽은 “인생은 공평하지 않아”란 부분이야말로 윌리엄 골드먼이 <프린세스 브라이드>를 쓰게 된 원동력이 아닐까 생각해 보게 됐다. 이 말은 다른 사람이 아닌 책의 제목이 상징하는 버터컵에 적용시켜 보면 단박에 알 수 있을 것 같다. 버터컵은 어려서부터 지적 훈련을 통한 아름다움을 소유하게 된 인물이 아니다. 농부 아버지와 어머니의 어떤 점도 닮지 않고 제 스스로 그저 아름답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험퍼딩크 왕자에게 발탁되어 장차 플로린 왕국의 왕비 그러니까 다시 말해 두 번째 가는 권력자의 지위에 오를 예정이다. 물론, 그 뒤에 기다리고 있는 운명이 잔혹하기는 하지만. 혼례식까지 왕자의 흉악한 음모를 알고 있는 사람은 소수의 측근과 독자뿐일 테니까. 타고난 아름다움 하나로 부와 권력 그리고 온 백성들의 사랑까지 독차지하는 게 공평한 일일까. 참고로 영화에서는 요즘 잘나가는미드 <하우스 오브 카드>에서 발군의 연기를 보여주고 있던 로빈 라이트가 풋풋한 시절의 버터컵을 연기했다.

 

<프린세스 브라이드>는 동화 속에나 등장할 법한 그런 아름다운 여주인공과 그녀를 사랑해 마지않는 웨슬리, 그들에 필적하는 악당 험퍼딩크 왕자, 루겐 백작의 대결이라는 전형적인 선악의 대결구조를 펼친다. 주인공이 의도하는 목적(이 소설에서는 아마도 진정한 사랑)을 이루는 과정에서 겪게 되는 온갖 환난고초와 죽음까지 극복해내는 눈부신 서사구조는 확실히 재밌다. 웨슬리는 결국 검의 달인이자 고문기술자 루겐 백작이 고안해낸 기계에 목숨을 잃게 되지만, 중세스러운 시대에 어울리는 미러클 맥스와 그의 마녀부인 발레리가 엉터리로 만들어낸 부활알약을 먹고 살아나, 험퍼딩크의 왕자의 마수에서 버터컵-공주를 구해내 잘먹고 잘살았다는 해피엔딩으로 끝난다. 참으로 디즈니스러운 소설이라고 해야 할까. 소설 말미에 따라오는 에필로그는 사족처럼 보인다.

 

초반에 몰입이 좀 어려웠지만, 웨슬리가 죽었다고 생각한 버터컵이 낙심해서 다시는 사랑을 하지 않겠노라고 결심하는 장면서부터 시작하는 중반부터 재미를 느끼기 시작했다. 스크린플레이 작가라서 그런지 영화적 상상을 담아 페이지를 휙휙 넘기게 하는 그런 마법 같은 기술이 탁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표지에 보면 우측에 버터컵과 키스를 하는 웨슬리 너머로 플로린 왕국의 성을 볼 수가 있고, 좌측에서 백마를 타고 두 사람 사랑의 방해꾼인 험퍼딩크 왕자가 칼을 휘두르는 일러스트는 윌리엄 골드먼이 <프린세스 브라이드>에서 하고 싶어하는 이야기를 집약적으로 담은 컷이라고 단언하고 싶다. 일러스트 한 번 기차게 뽑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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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 신세계
올더스 헉슬리 지음, 정승섭 옮김, 바나나몽스 그림 / 혜원출판사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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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로만 들어오던 책을 직접 읽게 되는 기분은 어떨까. 사실 이번에 읽은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는 수도 없이 많이 들어왔지만 정작 읽지 않고 있다가 이번 주말 독서모임 책으로 선정되어 부랴부랴 읽었다. 분량도 그렇게 많지 않고 결정적으로 생각보다 너무 재밌어서 단박에 읽어냈다. 이렇게 재밌을 줄이야.

 

1932년 1차 세계대전과 대공황을 거치면서 인류 지성에 대한 회의와 더불어 기술문명의 발전에 따른 미래가 마냥 밝지만 않을 거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 서구 소설가 올더스 헉슬리는 유토피아가 아닌 디스토피아적인 세계를 소설로 창조해냈다. 지금으로부터 무려 83년 전에 이런 발상을 해내게 된 사실이 놀랍기만 하다. 소설을 읽으면서 정말 궁금했던 것은 어떻게 해서 우리는 인류의 진보를 굳건하게 믿으면서, 미래세계가 최소한 지금보다는 더 나을 거라는 막연한 믿음을 가지게 된 걸까하는 점이었다. 물론 기술문명의 발전이 예전에는 인간이 해야만 했던 일들을 대신해 주고, 생산효율을 극대화시키고 있다는 점에 대해서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문제는 그렇게 기계가 인간의 노동을 대신하게 되면서, 기본적으로 노동자인 인간이 노동으로부터 소외되어 주체적 삶을 상실해 가고 있다는 점이다.

 

소설에서 거의 광신에 가까울 정도로 사람들이 타령하는 포디즘이야말로 이런 결과를 가져오게 된 결정적인 요인이다. 대량생산과 대량소비로 대표되는 현대 문명의 특징을 유발한 효율의 극대화는 인간의 사유에 히스테릭한 반응을 보인다. 히틀러의 나치즘에 찬동했던 포드는 소설에 등장하는 전체주의의 한 단면을 보여주고 있다는 생각에까지 도달했다. 서기 2540년에 해당하는 포드력 632년, 인류는 자연적 재생산을 미개한 방식으로 치부하면서 ‘디캔팅’이라는 방식의 인공적 방식의 재생산(reproduction)으로 대략 20억 명 정도 인구를 유지한다. 소설에서 그려지는 미래사회는 디캔팅 룸에서 태어나기 전부터 알파, 베타, 감마, 델타 그리고 엡실론이라는 다섯 개의 카스트로 구성된 철저한 계급사회다. 계층 간의 상호이동을 막기 위해 자연 생산 방식은 오래 전에 도태되었고, 가족이란 개념조차 존재하지 않는다. 지배계급은 피지배계급을 용이하게 다루기 위해 수면교육과 행동조절이라는 정말로 비인간적인 방식과 소마라는 세상의 모든 걱정과 근심을 잊게 해주는 신경안정제를 공급한다.

 

그렇게 ‘만들어진’ 인류는 오로지 자신의 직분에 맞는 노동과 오직 소비만 하라고 강조하라고 세뇌된다. 개인의 상상력과 창의력을 개발시키는 독서나 미술 같은 예술 활동은 일체 금지되고, 성놀이라는 희한한 명칭의 에로틱한 활동이 장려된다. 1930년대 독일에서 나치주의자들이 시행하던 국가개조의 데자뷰처럼 느껴졌다. 한편, 이 사회의 특이한 점은 인간이라면 필수불가결한 노쇠현상 역시 젊은이들의 피와 각종 기술로 젊음을 유지시켜 준다는 것이다. 그 결과 미래사회에서 노쇠는 상상할 수조차 없는 일이 되어 버렸고, 그렇게 젊음을 유지하다가 죽게 된다는 것이다. 일찍이 진시황이 꿈꾸던 영생불사의 노력은 미래사회에서도 빠질 수 없는 한 단락을 장식하고 있었다. 역설적으로 아이들은 어려서부터 죽음이 삶의 일부이자 아무 것도 아니라는 교육을 받는다. 소설의 후반부에서 미스터 야만인 존이 어머니 린다의 죽음을 슬퍼하고 있을 때, 들이닥친 한 무리의 아이들 앞에서 그렇게 화내는 것에 대해 보모장과 아이들은 그렇기 때문에 전혀 존을 이해할 수 없었다. 쾌락의 증진과 고통의 경감 그리고 죽음은 우리에게 아무 것도 아니라는 고대 그리스 에피쿠로스 철학의 한 단면도 엿볼 수 있다.

 

어느 사회에나 이단아가 존재하듯이 이 <멋진 신세계>에도 버나드 마르크스라는 특이한 캐릭터가 등장한다. 모두가 하루 정량의 소마를 먹으며 쾌락에 도취된 삶에 만족하지만, 신체적으로 자신의 계급에 미치지 못한 모습의 버나드는 그렇지 못하다. 아름다운 레니나와 데이트하면서 사랑이라는 관념을 구체화시켜 보려고 노력하지만 미래사회에 존재하지 않는 관념과 둘만의 시간을 보내며 고독을 칭송하는 버나드에게 자유연애주의자 레니나는 어쩔 수 없는 생래적인 거부감을 보인다. 극대화된 포디즘의 세례를 받은 전형적인 모델 레니나는 현대사회 소비 물신주의의 화신으로 봐도 무방할 것 같다.

 

하지만 버나드와 레니나의 캐릭터도 그들이 뉴멕시코 야만인 보존지역에서 만난 백인 청년 존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다. 철저하게 이방인으로 자란 존은 우연한 기회에 버나드와 레니나를 만나 ‘멋진 신세계’에 편입된다. 19세기 서구인들이 아프리카 흑인을 잡아다가 서커스에 이용한 것처럼 버나드 역시 신세계에 도착한 존을 이용해서 단번에 자신을 오지로 보내 버리려는 인공부화 및 조절 국장의 기도를 분쇄하고, 일약 유명인사의 자리에 오르게 된다. 자신이 그나마 신세계의 양심 있는 지식이라고 자부해온 버나드의 그런 행동은 이율배반적일 수밖에 없다. 더 큰 문제는 존이 그렇게 호락호락한 인물이 아니라는 점이다. 어머니 린다에게 글을 배우고, 야생세계에서 다양한 생존 체험을 하고 우연한 기회에 획득한 셰익스피어를 읽으며 주체적 자아를 형성한 존은 자신에게 호감을 보이는 레니나를 사랑하면서도, 신세계의 사랑 방식(성놀이)를 거부하며 진정한 사랑을 갈망한다. 서로 다른 탄착점을 향해 달려가는 두 남녀의 사랑은 파국으로 치닫기 마련이다.

 

올더스 헉슬리는 디스토피아 소설 <멋진 신세계>에서 훗날 다양한 방면으로 영향을 미치게 되는 선구적인 아이디어들을 다수 제공한다. 병에 태아를 넣어 기르는 디캔팅 방식을 통해 속성으로 인간을 만들어내는 장면은 영화 <아일랜드>의 그것을 연상시킨다. 영어문화권 독자가 아닌 번역을 읽어야 하는 입장에서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문학적 이해는 물론이고, 저자가 작품에서 인용한 수많은 셰익스피어 희곡에 등장하는 문장들에 대한 감흥은 상대적으로 빈약하다는 느낌이다. 얼마 전에 간신히 다 읽은 이창래 작가의 <만조의 바다 위에서>를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의 아류작이라는 비평을 어디선가 읽은 것 같은데, 그 이유를 이 책을 읽으면서 어느 정도 파악해낸 것도 하나의 수확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진부하긴 하지만 문명과 야만의 대결이라는 이분법적 구도도 주목할 만하다. 모든 종류의 책이라는 정보 전달 매체가 금지된 문명세계를 책을 통해 개화된 미스터 야만인 존이 비판하는 장면은 특히 인상적이었다. 그냥 문득 모든 것이 다 허용되지만, 책읽기가 금지된 세상에서 사는 것은 어떤 기분일까라는 엉뚱한 상상을 해보기도 했다.

 

소설을 읽는 동안, 예전에 본 영화 <인 타임>이 생각났다. 영화는 시간을 가진 사람이 모든 것을 통제하고 지배하는 사회 이야기다. 돈이 지배하는 현실을 시간으로 비틀었다는 점에서 섬뜩했다. 그런데 올더스 헉슬리가 <멋진 신세계>에서 그린 개인의 욕망마저도 누군가에 의해 통제받고 조종되는 가상의 디스토피아가 놀라울 정도로 작금의 현실과 닮았다는 사실에 다시 한 번 놀랄 수밖에 없었다. 행복을 미끼로 해서, 현실에 대한 궁극적 해결책이 아닌 진통제에 불과한 소마를 나눠주면서 카스트 구성원들에게 지금은 누구나 다 행복해라는 주술을 외우게 하는 프로파간다가 현실이 아니라고 누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겠는가. 빅토리아 시대를 산 작가의 무시무시한 예언에 다시 한 번 감탄하게 된다.

 

[리딩데이트] 2015년 2월 22일~23일 오후 9:3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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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5-02-24 21: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번 주 독서모임 선정도서군요. 취업 준비 때문에 서울에 갈 상황이 되지 않아서 당분간 독서모임에 참여하지 못하지만, 달궁 독서모임에 함께했던 분들 절대로 잊지 않겠습니다. 언젠가 시간 나면 모임에 참석할께요.

레삭매냐 2015-02-25 16:50   좋아요 0 | URL
아숩네요. 싸이러스님도 함께 했으면 좋았을 텐데 -
저도 오랜 만에 출격이라 기대가 많이 됩니다.
곧 뵙게 되길 바라겠습니다.
 
얼간이 미야베 월드 2막
미야베 미유키 지음, 이규원 옮김 / 북스피어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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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무사[武士:부시]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미미 여사의 <얼간이>를 읽었다. 이번 설날은 확실하게 미미 여사의 미야베 월드 제 2막 시대물과 함께 보냈구나 싶다. 가만 그런데 제목이 <얼간이>(뽕꾸라, 바보)라니. 고대해 마지않던 무사 이야기가 나왔는데 도대체 누가 얼간이란 말인가. 짐작대로다, 주인공 이쓰즈 헤이시로가 바로 그 얼간이란 말이다.

 

시대물이 그리는 어느 시대고 당대의 지명과 관직 그리고 풍습과 관련된 전문적인 지식이 없다면 해당 시대물을 애정하기란 쉽지 않은 미션일 것이다. 사실 미미 여사의 에도 시대물을 읽으면서 오캇피키(발음도 물론 기억하기도 쉽지 않다), 요리키, 도신이나 주겐 같은 관직 이름은 물론이고 하오리, 다스키 같은 복식도 낯설기 짝이 없다. 사실 캐릭터들이 외출할 때 어떤 복식을 갖추는 게 무슨 의미인지 저자의 설명이 없었다면 그 또한 몰랐을 것 같다. 그래서 이번 <얼간이>에서는 에도의 신도시에 해당하는 혼조 후카가와 지역과 소설의 주요 공간적 배경이 되는 뎃핀 나가야에 대해 상세한 설명으로 시작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렇게 도해를 보고 나니 확실히 오토쿠 아줌마가 감자 조림과 곤약 조림을 파는 간이식당에 대한 대강의 이미지를 잡을 수가 있었다. 고마워요 미미 여사.

 

아울러 에도 막부가 일본을 통치하던 시절, 철저한 신분제에 근거한 봉건계급사회 시스템에 대해서도 설명이 뒤따른다. 지배계급을 형성하고 있던 무사들은 느슨해 보이지만 한편으로는 치밀하게 조직된 사회시스템으로 인구 백만에 달하는 남초 소비도시 에도의 피지배계급인 평민과 상인 계급을 통치하고 있었다는 것을 소설을 통해 알 수가 있었다. , 이 정도로 설명을 마치고 본격적으로 <얼간이>에 대해 이야기해보도록 하자.

 

우선 주인공 이쓰즈 헤이시로는 사십대 중반의 도신(하급 무사)으로 연간 쌀 서른 섬의 봉록을 받는 마치 담당 순시관이다. 왠지 무사라고 하면 칼도 마구 휘두르고, 소시민들을 무시하는 그런 거만해 보이는 그런 고정관념으로 다가오는데, 이 양반 헤이시로는 전혀 그렇지 않다. 자신이 담당을 맡은 뎃핀 나가야에서 간이식당을 운영하는 오토쿠 아줌마네 집에 수시로 들러 끼니를 때우지만, 거저 얻어먹지 않고 항상 셈을 치르는 모습을 보여준다. 천성이 게으른데다가 무사태평을 신조로 삼고 있으며, 단 것을 좋아하는 아이들 취향마저 보여준다. 헤이시로의 상사는 그런 그의 특성을 꿰뚫고 보고, 새로 개발된 혼조 후카가와에 세상물정에 환하면서 동시에 물렁한 그를 임시 순시관으로 파견하기에 이른다.

 

그렇게 세월 좋게 살았으면 좋겠지만 어디 세상사가 그런가. 뎃핀 나가야의 채소 가게에서 기묘한 살인사건이 발생하면서 헤이시로는 본인이 원하지 않는 그런 사건에 개입하게 된다. 게다가 협박 때문에 뎃핀 나가야의 고참 관리인인 규베마저 줄행랑을 쳐버리고, 나가야의 주인인 미나토야의 소에몬은 풋내기 사키치라는 정원사를 임시 관리인으로 파견한다. 뎃핀 나가야의 터줏대감이라고 할 수 있는 오토쿠 아줌마는 과부로, 간이식당을 운영하면 생계를 꾸리는 당찬 여걸로 이런 사키치를 못마땅하게 생각한다. 게다가 불길한 새로 여겨지는 까마귀 간쿠로를 애완동물로 키우는 것도 마뜩치 않기만 하다.

 

미스터리의 대가답게 미미 여사는 이런 방식으로 적재적소에 꼭 필요한 캐릭터들을 소환한다. 그리고 그녀가 야심차게 준비한 <괴한>, <노름꾼>, <통근하는 지배인>, <논다니>, <절하는 남자> 등의 짧은 에피소드들은 소설 <얼간이>의 근간이 되는 핵심 이야기 <긴 그림자>를 위한 포석이다. 존속살해, 노름에 미쳐 딸자식을 팔아먹은 통장이 아버지, 아버지에게 버림받은 아이 이야기, 화류계를 주름잡던 오쿠메 그리고 항아리 신앙 때문에 잘 지내던 나가야에서 야반도주한 사람들의 이야기는 개별적으로도 높은 완성도를 자랑하면서도 대미를 장식할 미나토야 소에몬이 숨기고 싶은 사실에 도달하게 된다.

 

실체를 알 수 없는 사실을 알아내기 위해 헤이시로는 주변에서 많은 도움을 받게 된다. 우선 범죄자에서 갱생하여 탐정 역을 맡게 된 오캇피키들을 탐탁지 않게 생각하면서도 에코인의 모시치 대행수(드디어 크로스오버가 되는 건가)의 뒤를 이어 활약하고 있던 마사고로, 암기천재 짱구와 함께 일하면서 자신의 선입견에 대해 재고해 보게 되는 계기도 마련하게 된다. 막부의 밀정으로 암약하는 오랜 지기 까만콩으로부터 보통 사람들은 접할 수 없는 아주 은밀한 정보도 취합해서 미스터리를 푸는데 유용하게 사용하기도 한다.

 

한편 미래 자신의 양자 후보이자 처조카로 빼어난 외모를 자랑하는 당돌한 12세 소년 유미노스케의 활약도 빼놓을 수 없다. 계측과 측량의 달인으로 사사키 사부에게 배운 것을 실전에 활용하는 응용력이 대단하다. 그리고 아무래도 성인의 시선에서는 볼 수 없는 특별한 아이의 시선으로 사건에 접근해 가는 방식도 눈여겨볼만한 지점이다. 소설 <얼간이>를 읽으면서 헤이시로를 다시 보게 된 것은 자신이 가지지 못한 능력 때문에 상심하지 않고, 오히려 자신에게 없는 능력을 타인에게서 빌려 쓰는 능력이야말로 그의 장점이 아닐 수 없다. 모든 일을 내가 다 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말이다. 이렇게 별난 능력을 가진 놈들의 활약이 하모니를 이루면서 대단원으로 달려가는 장면을 도저히 놓칠 수가 없어 설날 연휴의 어느 새벽 세시까지 책에서 손을 뗄 수가 없을 정도였다.

 

소설의 말미에서 주인공 헤이시로가 대면하게 되는 과연 무엇이 사실인가라는 질문을 접하면서 이런 생각이 문득 들었다. 지극히 평범한 능력의 하급 무사 헤이시로가 거대한 음모와 마주치게 되었을 때, 과연 그는 어떤 반응을 보이게 되는가. 사실은 사실을 숨기고 싶은 권력이나 금권을 가진 이들에 의해 언제라도 자의적으로 왜곡되고 재단될 수 있다. 그렇게 된 사실을 과연 사실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바로 그 지점에서 얼간이 무사 헤이시로의 인간적 고뇌가 시작되는 것이다.

 

숨 가쁘게 <얼간이>를 읽어내자 바로 후속편에 해당하는 <하루살이>와 미미 여사가 자신 있게 선보이는 연애소설이라는 <진상>이 읽어 싶어졌다. 당장 읽어야 하는 책들을 읽는 대로 다시 미미 여사 시리즈에 도전할 계획이다. 이달에만 무려 5권의 에도 시대물을 읽었는데, 이런 스피드라면 나머지 시리즈도 조만간 다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개인적으로 미시마야 변조괴담 시리즈보다는 무사 헤이시로가 등장하는 수사물이 더 마음에 든다. 그런데 헤이시로는 칼만 차고 다니고 정작 사용은 하지 않는 건가, 궁금하다.

 

[리딩데이트] 2015220~22일 오전 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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