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자들 오늘의 젊은 작가 32
이혁진 지음 / 민음사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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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상과 몰상식의 시대가 다시 도래했다. 대한민국 주거의 표준이 된 아파트는 욕망의 대상이다. 그리고 예의 아파트 건설은 시작부터 다양한 문제점들을 표출해왔다. 최근 어떤 아파트 건설 현장에서 철근 빼먹기로 주차장이 붕괴된 뉴스는 사람들을 경악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오늘도 이어지는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철근 빼먹기가 다반사였다는 사실에 욕망의 상징이 된 아파트에 사는 이들을 공포로 몰아넣기에 충분하지 않았던가. 상식이 무너지고 있다.

 

7년 전 <누운 배>로 우리 곁을 찾아온 이혁진 작가의 책을 처음 읽는다. 실직해서 건설 공사 현장에 투입된 송선길 아저씨의 기구한 사연 때문에 책을 집었다 놓기를 반복했다. 처음부터 다 읽는데 근 한 달이 걸린 모양이다. 왜 억울한 이들의 삶에는 이런 불행만 잇달아 발생하는 건가. 아무리 극적인 서사를 위한 설정이라고 하더라도, 너무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처음에는 리뷰의 제목을 <멧돼지를 기다리며>로 정하려고 했던가. 공사 현장에서 별다른 기술도 없이 투입되어 미적거리는 선길 아저씨의 모습이 낯설면서도 동시에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안전관리가 최우선시되어야 하는 현장에서 안전모나 작업에 필요한 장비들을 갖추면서 일하는 건 사치에 가까울 정도라는 느낌이 들었다.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에 들어갔지만, 여전히 중대재해가 발생한 사업장의 책임자에 대한 처벌은 솜방망이에 지나지 않는다. 중대재해처벌법의 모범 케이스인 영국처럼, 사업 책임자에게 강력한 제재를 가했다면 오늘도 집에 돌아가지 못하는 노동자들의 수는 획기적으로 줄지 않았을까.

 

공기를 줄이겠다고, 혹은 비용을 덜겠다는 이유 때문에 아니 궁극적으로 모든 건 결국 돈문제로 귀결된다. 진행 중인 인구절벽으로 사람의 목숨 값이 얼마나 중요하다는 걸 모두 알지만 당장에 비용이 드는 안전관리보다 발생하지 않은 미래의 재해를 감수하는 것에 사업장들은 오늘도 베팅한다. “관리자들인 현장소장과 반장들은 얼마 안되는 돈에 양심을 팔고, 자신들 휘하의 노동자들을 거침없이 노예운반선에 승선시킨다. 그들에게 최소한의 안전장치가 없다는 건 불문가지다.

 

이런 현장에서 사고가 발생하지 않는 게 오히려 신기할 정도다. 소설에서 빌런 역할에 충실한 현장소장은 노동자들의 사기진작을 위해 회식준비를 하고, 아프리카 열병으로 살처분된 돼지를 잡아 직원들에게 돌린다. 가난하고 돈 없는 이들은 이런 불량식품을 먹여도 된다는 가학적인 발상에 그만 혀를 내두르게 된다. 그리고 선길에게 존재하지 않는 멧돼지를 감시하라고 명령한다. 이런 식의 빌드업은 선길이 사고사한 뒤에 그에게 모든 책임을 뒤집어씌우는 장면에서 정점에 달한다.

 

작업현장의 모든 이들이 얄량한 밥벌이를 위해 정의와 진실에 눈감으려고 할 때, 굴착기 기사이자 사고 현장을 직접 목격한 서현경은 현장소장에게 따진다. 하지만 노련한 현장소장은 이미 여러 곳에 약을 쳐서, 빠져 나갈 구멍을 마련해 두었으며 현경을 착한 사람 올가미로 옭아맨다. 정말 파렴치한 악당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현경은 그나마 양심적이었던 목 씨와 더불어 자신의 무기력함을 뼈저리게 느낀다. 이런 거대한 부조리 앞에서 우리는 어떤 태도를 취할 것인지 작가는 묻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과연 나라면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사실 선길의 유족들이 취할 수 있는 최고의 선택은 가능한 많은 보상을 받는 것이라고 저자는 힘주어 말한다. 공정과 정의는 보상이라는 미명 아래 시혜 앞에 설 자리가 없다는 말인지 묻고 싶었다.

 

현장소장은 다시 한 번 살처분된 돼지로 현장의 분위기 띄우기에 나선다. 이 잔혹한 빌런은 선길이 남긴 댕댕이 두 마리마저 된장 바르자며 휘하 졸개들에게 명령한다. 댕댕이들과 정이 들었던 한 대리는 이 명령을 차마 따를 수가 없었고 결국 현경에게 도움을 청하러 뛰어간다. 살기 위해 발악적으로 저항하고 탈출한 흰둥이처럼, 존재하지만 현장에 없는 것으로 간주되던 현경은 굴착기를 동원해서 흥청망청 진행되던 회식판을 박살낸다. 현실세계에서는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그런 판타지에 가까운 설정에 카타르시스 대신 어안이 벙벙해졌다고나 할까. 아주 잠깐이지만 현경의 활약에 속이 후련해졌다는 건 숨길 수가 없었다.

 

현경을 앞세운 통쾌한 복수극이 현실적이지 않다는 걸 잘 안다. 정의가 승리하는 공식이 리얼리티여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는 걸 잘 알기 때문에 속에 열불이 인다. 작년 산업재해로 집에 돌아가지 못한 이들이 무려 2,223명이라고 한다. 이거야말로 초현실적인 숫자가 아닌가 말이다. 그리고 비극은 현재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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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3-08-01 07:2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넘 안타깝네요.

레삭매냐 2023-08-01 10:03   좋아요 1 | URL
적은 분량이어서 금방 읽을
줄 알았는데...

막상 읽다 보니 안타까운
마음에 다 읽는데 시간이 걸렸
습니다.

2023-08-01 12: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8-01 22: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가필드 2023-08-01 20:5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넷플에서 얼마전에 봤던 드라마였는데 ’그냥 사랑하던 사이 ‘사고재해로 생겼던 주인공에 대한 이야기도 생각나네여 예전 삼풍 백화점 소재로 그렸던거 같은데 답답해지네여

레삭매냐 2023-08-01 22:36   좋아요 1 | URL
언급해 주신 드라마 찾아 보니
2017년에 JTBC 드라마였네요.

사업장에서 돈 때문에 더 이상
희생되는 분들이 없었으면 좋겠
습니다.
 
신이 된 영웅 관우 더봄 평전 시리즈 4
마바오지 지음, 양성희 옮김 / 더봄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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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에 중국 학자가 쓴 삼국지연의의 영웅 관우 평전을 읽었다. 아마 삼국지 최고의 영웅 중의 하나인 관운장을 모를 사람을 없을 것이다. 30년 간 교단에서 역사를 가르쳐 왔다는 마바오지 선생은 관우 평전에서 관운장의 신화를 재조명한다.

 

일찍이 어느 작가는 나관중의 대하 역사소설 <삼국지연의>가 사실 3, 허구 7이라는 평가를 했던가. 삼국지연의가 다루는 역사가 아주 허구라는 것은 아니지만, 상당 부분 재미를 위해 만들어졌다는 점을 말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그렇다면 마바오지 선생은 그에 반해서 그 정도는 아니고 역사와 허구가 반반정도 되지 않나 하는 이견을 제시한다. 전문적인 역사가가 아닌 독자 입장에서 볼 때, 그 정도면 적당하지 않나 싶다.

 

황건적의 난과 환관의 발호 그리고 군벌의 난립으로 난세였던 후말 말기, 도원결의를 통해 유관장(유비-관우-장비) 삼총사가 역사에 등장한다. 그런데 저자는 시작부터 주작이라고 지적하고 나선다. 무엇이든 서사의 시작은 화끈한 게 좋으니, 황건적 무리에 맞서기로 결의한 유관장 삼형제의 기원을 복사꽃 만발한 도원에서 비록 다르게 태어났지만 죽을 때에는 같이 죽자라는 작당을 <삼국지연의>의 시작으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이보다 더 화끈한 시작이 있단 말인가.

 

중산정왕의 후예라는 주장을 내세운 유비 집단의 무력을 담당한 것이 바로 관우와 장비였다. 그들에게 훗날 라이벌(?)이 되는 조조나 원소와 달리 이렇다할 근거지나 삼공 출신의 후예라는 집안의 빽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어떻게 보면 군벌이자 보수주의자 유비는 요즘으로 치면 자수성가의 롤모델일 지도 모르겠다.

 

동탁군과의 대결에서 <온주참화웅> 고사로 관우의 이름을 천하에 떨쳤다고 연의는 기록하고 있지만, 실제로 화웅은 손문대(손견)가 격파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이것 또한 관우 전설이 있게한 시발점이라고 할 수 있는데 무공의 시작부터 의구심이 드는 설정이 아닐 수 없다.

 

주군이자 형제 유비와 떨어져 조조 수하에 의탁하게 된 관우는 중원을 두고 원소군과의 백마전투에서 원소군의 맹장 안량을 패퇴시키는 공훈을 세웠다. 조조는 이에 표를 올려 관우를 한수정후로 봉했다고 한다. 관우는 조조 수하의 장문원(장료)에게 자신은 조조를 섬길 수가 없고, 유비에게로 갈 거라는 말을 했다고 하는데 이후 <오관육참>으로 알려진 고사를 통해 조조를 떠나 유비에게로 떠났다.

 

마바오지 선생은 오관의 위치를 고증하면서 원소군 휘하에 있는 유비에게 가기 위해 일부러 길을 돌아갈 필요가 있겠냐는 말로 오관육참의 허구성을 타격한다. 그리고 아무리 조조가 관우가 유비에게 복귀하는 것을 허용했다고 하더라도, 자군의 장수들을 해치도록 허용했다는 말은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다. 어쨌든 이 일을 통해 관우는 자신의 주군에게 충의를 지키는 인사라는 세간의 평을 얻었고, 조조는 그 이상으로 배포가 큰 주군이라는 사실을 알리는데 성공했다.

 

유비 군단은 이후 서주와 신야에서 조조군의 공격에서 잇달아 패배하고 큰 위기에 봉착한다. 하지만 위기는 기회라고 했던가. 삼고초려로 영입한 제갈량의 활약으로 형주를 노리고 남하한 조조 군단을 막기 위해 강동의 손권과 동맹을 맺고 그 유명한 적벽대전을 거치면서 비로소 형주에 거점을 만드는데 성공했다.

 

관우는 신야 전투에서 후퇴하는 유비 군단의 후위를 맡아 시간을 벌고 역전의 무대를 마련하는데 지대한 공헌을 세웠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후퇴하는 조조군을 화용도에서 조우한 관우가 예전에 받은 후의 때문에 조조를 살려 보냈다는 이야기 역시 허구라고 저자는 지적한다. 어쨌든 적벽에서 조조의 남하를 막아내는데 성공한 유비와 손오 연합군은 바로 적대적 분열에 직면하게 된다.

이유는 형주라는 전략 요충지의 주인이 누가 될 것인가에 대한 다툼이 원인이었다. 서주 이래 거점 형성에 성공한 유비 집단이 형주를 손오에게 반환할 리가 없었다. 손오는 손오 대로, 조조군의 남하를 거의 자력으로 저지했는데 유비 집단이 숟가락 하나 얹어서 형주를 그대로 집어 삼키는 걸 묵인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이에 강경파인 주유는 영토 할양에 결사반대했다. 하지만 그의 뒤를 이은 노숙은 조조를 상대하기 위해 유비에게 형주 할양을 허용했다.

 

유비는 형주를 관우에게 일임하고, 나머지 잔여집단을 거느리고 유장이 다스리던 서천 정벌에 나선다. 주군 유비에게 가절월을 받아 전권을 행사하게 된 관우의 명성이 중원에 진동하기 시작했다. 한중까지 장악하는데 성공한 조조는 우금과 방덕에게 칠군을 주어 관우가 지키는 형주 공략을 명령한다. 하지만 관우는 수공으로 칠군을 격파하고, 조조가 수도인 허창을 옮길 생각할 정도로 위력을 과시했다. 이에 조조는 손권과 동맹해서 손권이 관우의 배후를 노리게 유도했다. 그리고 군수품 보급 문제로 미방과 부사인 등에게 가혹한 처벌을 공공연하게 언급하던 관우는 아군의 지원을 받지 못한 채, 오군의 포위 공격에 그만 맥성에서 아들 관평과 포로가 되어 비참한 최후를 맞게 된다.

 

원래 무인이었던 관우는 사후 곧바로 제후의 반열로 추증되기 시작했다. 유가 집안 출신으로 어려서부터 경전을 접한 것으로 알려진 관우가 조조의 휘하에서 춘추를 읽었던 고사 덕분에 중국 각지에 춘추루라는 이름의 누각이 등장했다. 중원의 지배집단에게 가장 중요한 덕목이었던 충의와 용맹의 상징성을 확보한 관우는 제후의 반열을 넘어 거의 신급 존재로 추앙받기 시작했다.

 

맥성 포위전에서 비참하게 오군에게 포로가 되어 살해당했기 때문에 악귀로 분류되던 관우의 이미지는 오랜 세탁 과정을 거쳐 선귀가 되었고, 뒤이어 재물신의 위치까지 확보하게 된다. 유가는 물론이고 도교와 불교에서까지 인정받는 일약 중원의 스타가 되었다고나 할까. 심지어 남아프리카까지 관우의 묘가 만들어졌다고 하는데, 1599년에 세워지기 시작한 우리나라의 동묘는 해외에 만들어진 첫 번째 관묘라고 한다.

 

마바오지 선생은 삼국지연의에 묘사된 소설적 모습을 걷어내고, 거의 신격화된 관우 신화의 실체 고증에 주력하는 모습을 이 책을 통해 보여주었다. 전장에서 가장 강력한 전사의 이미지를 보여준 관운장 활약상의 대부분이 소설화되었다는 점에 실망할 수도 있겠지만, 실제 역사와 대하 역사소설이 다를 수밖에 없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수긍이 갔다. 책을 다 읽고 나니, 동묘를 찾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날이 좀 선선해지면 한 번 가볼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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맡겨진 소녀
클레어 키건 지음, 허진 옮김 / 다산책방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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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슬프다. 제목인 <맡겨진 소녀>, 원제인 <Foster>를 인식하는 순간 내가 느낀 감정이었다. 나도 아주 어릴 적에 맞벌이 하는 부모님이 일과 육아를 병행할 수가 없어서, 어린 나를 할머니 댁에 맡기신 적이 있다고 한다. 그 때는 내가 너무 어려서 기억을 하지 못한다. 그런데 그 이야기를 할 때마다 부모님들이 느끼시는 회한의 감정들이 느껴졌다.

 

소설 <맡겨진 소녀>의 시공간적 배경을 살펴본다. 때는 1981년 여름, 아일랜드 공화국 출신의 양심수들이 단식투쟁을 하던 중에 바비 샌즈를 필두로 차례로 아사하고 있었다. 55일에 시작된 죽음은 8월까지 이어졌다. 그들의 죽음에 이어 폭동까지 발생했다. 사회적으로 이런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 주인공 소녀는 아버지 댄의 손에 이끌려 친척 킨셀라 가정에 보내진다.

 

화자의 집에는 이미 네 명의 아이들이 있었고, 소녀의 엄마 메리를 다섯 번째 아이의 출산을 앞두고 있었다. 언니 두 명과 남동생 그리고 화자 소녀 가운데 다른 집으로 보내질 아이는 화자 소녀로 결정됐다. 이유는 명확하게 설명되지 않는다. 아마 다른 아이들에 비해 손이 덜 가기 때문에 낙점된 게 아닌가하고 추정해 본다.

 

존과 에드나 킨셀라에게 자신의 딸을 건네는 소녀의 아버지 댄은 만사에 서투르다. 루바브 하나 제대로 뽑지 못하는 위인이라니. 소녀는 낯선 환경 속에서 다시 자신이 아는 세상으로의 복귀를 꿈꾼다. 소녀는 여전히 아이일 따름이다.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부모의 곁을 떠나 낯선 환경 속에 자신의 존재를 욱여넣어야 하는 소녀의 신세가 너무 처량하기만 하다.

 

적어도 킨셀라 부부의 가정은 물질적으로는 소녀의 부모보다 나은 것 같다. 에드나 아주머니의 보살핌과 무뚝뚝하지만 나름 정이 가는 존 아저씨의 심부름으로 달리기를 하며 소녀의 여름은 조금씩 찬란한 빛을 발하기 시작한다. 아주 짧은 기간이지만, 소녀는 아이에서 그 다음 단계로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언제나 그렇지만 진실은 불편하고 잔혹한 법이 아니던가. 타인의 가정에서 더부살이하는 소녀는 바로 그 지점에서 도약을 시도한다.

 

킨셀라 부부는 자신들이라며 아이를 다른 집에 보내지 않을 거라는 말로 소녀의 가슴에 못을 박는다. 그 때는 참 기분이 그랬지만, 나중에 부부의 슬픈 사연을 알게 되면서 마음이 누그러졌다. , 그래서 그런 말을 했구나 하고 말이다.

 

자신의 아버지와 어머니인 댄과 메리와 달리 존과 에드나 킨셀라는 소녀에게 옷과 책도 사주고, 극진하게 보살핀다. 존 아저씨에게 글 배우는 장면이 무엇보다 마음에 들었던 것 같다. 글 읽기는 자전거타기 같다고 했던가. 갈 수 없는 곳까지 자유롭게 갈 수 있다는 표현은 아름다웠다. 그렇지 우리는 이렇게 글을 통해 가볼 수 없는 곳에 도달할 수 있는 마법 같은 선물을 받는다. 소설의 주인공 소녀처럼 말이다.

 

에드나 아주머니를 따라 고리 시내에 가서 새옷을 산 날, 이웃 초상집에 갔다가 소녀는 오지랖이 넓은 밀드러드 아주머니의 무차별 질문공세를 받는다. 그리고 필연적으로 따라오게 되는 불편한 진실과 마주하게 된다. 이상한 일들은 언제나 일어나기 마련이니까. 막냇동생의 출생 소식과 함께 소녀의 복귀를 요청하는 엄마의 편지가 도착한다. 이별의 순간이다.

 

이웃 아저씨의 초상 그리고 10명의 아일랜드 공화군 단식 투쟁가들의 잇단 죽음들과 대비되는 동생의 출생을 통해 우리 인간사의 순환을 생각해 보게 된다. 한쪽에서는 신념을 위해 싸우는 투사들의 거대한 투쟁이 진행되고 있었고, 또다른 편에서는 자신의 아이조차 부양할 수 없는 부모가 친척에게 위탁한 주인공 소녀의 내적 갈등이 부글거리고 있었다. 클레어 키건 작가는 덤덤한 태도로 맡겨진 소녀의 서사를 독자에게 전달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이렇게 생각해볼만한 다양한 이야깃거리들을 의도적으로 배치한 게 아니었나 싶다.

 

결국 일어날 일은 일어나게 되어 있다. 집으로 돌아오기 전에 소녀가 우물에 빠지는 사건도 일어나지만, 소녀는 집에 돌아온다. 그리고 집에 돌아온 자신의 딸에게 탕아의 귀환이라고 비아냥거리고, 킨셀라 부부의 슬픈 과거사를 들추는 발언을 하는 장면에서는 무능력한 아버지 댄에 대한 분노가 치밀었다. 가장으로서 무능력한 댄은 자신의 불안을 자식이나 아니면 킨셀라 부부에게 투사하는 심리적 불안정을 몸으로 보여준다. 도대체 누가 탕아란 말인가.

 

심상찮은 분위기를 느낀 메리는 무슨 일이 있었냐며 취조하듯 소녀를 다그친다. 그런 엄마의 공세에 소녀는 입을 다물 수 있을 정도로 자신이 충분히 배웠다고 독백하는 장면은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그렇게 우리는 성장해 가는 법이지.

 

짧지만 찬란했던 여름에 대한 맡겨진 소녀가 남긴 추억의 기록이 그렇게 명징하게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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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onnight 2023-07-23 05: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불우한 아이들의 판타지로 느껴졌어요. 내겐 나를 진짜 사랑해주는 다른 부모가 존재할거야. 여기 이 곳 말고.. 벌써 슬프다.는 말씀 와 닿습니다ㅠㅠ

레삭매냐 2023-07-23 18:31   좋아요 1 | URL
그래서 판타지인가 봅니다 -
사실 맡겨진 소녀의 복귀 이후
가 더 궁금하긴 했습니다.

찾아 보니 영화도 있다고 하
네요. <말 없는 소녀>라고
이 작품을 모티프로 해서 만
들었다고 하네요.

페넬로페 2023-07-23 19: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책 읽으면서 그 당시 아일랜드의 상황이 이 소녀에게 주는 영향이 무엇인지 생각해보기도 했어요.
집에 돌아온 소녀의 삶이 행복하게 보이지는 않지만 그래도 저는 긍정의 힘을 믿었어요~~

레삭매냐 2023-07-25 13:37   좋아요 1 | URL
부디 집에서 행복해야 하는데-
그 집 아버지 하는 모습을 보면
참 한숨만 나오더라구요.

긍정의 힘, 믿습니다.

서니데이 2023-07-24 21:0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1981년이면 80년대 초니까 생각보다 오래전 일은 아니군요. 그보다 더 오래전의 시대가 배경이 될 것 같았거든요. 이 책 광고도 많이 나오고 영화도 나온다고 하고, 또 소개가 좋아서 나중에 읽어보려고 장바구니에 담아두었는데, 아직 그대로입니다.
리뷰 잘 읽었습니다.
레삭매냐님 편안한 하루 보내세요.^^

레삭매냐 2023-07-25 14:21   좋아요 1 | URL
책을 처음에 보고 금방 읽을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더라구요 ㅠ
제법 시간이 걸렸습니다.
거북이 걸음으로 읽었다고나 할
까요.

책은 언제고 읽게 되실 테니 천천
히 가시지요.

네, 감사합니다.

얄라알라 2023-07-25 01: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Bobby Sands의 단식과정을 처참할만큼 자세하게 묘사했던 책을 읽은지가 매우 예전인데도, 아직도 뭉클하려 합니다. 사실적인 시대적 배경에, 단식하는 젊은이들과 동생의 출생이라는 설정을 의도적으로 대비하여 배치했다고 해석하시니 더 읽고 싶어지네요

레삭매냐 2023-07-25 14:24   좋아요 1 | URL
아 그런 책이 있군요!

대처 수상이 테러리스트들과
전혀 대화는 없다며 강경책으
로 일관하는 바람에 그만...

제가 픽업한 해석은 그랬다고
합니다.
 
달의 바다 - 제12회 문학동네작가상 수상작 문학동네 플레이
정한아 지음 / 문학동네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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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뷰 작성일 : 200992514년 전에 구판 읽고 나서 쓴 리뷰다.

 

책을 접하는 경로는 참으로 다양하다. 가장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온라인이나 오프라인 서점, 혹은 헌책방을 통해 책을 직접 구매하는 것이다. 그 외에도 도서관에서 대출해서 보거나 지인들에게 빌려 보는 방법이 있다. 정한아 작가의 <달의 바다>는 그런 전통적인 독서 방법에서 벗어난, 책을 읽는 이들과의 모임에서 교환과 나눔의 형식으로 접하게 되었다. 그래서 더 기분이 좋았노라고 말하고 싶다.

 

12회 문학동네 작가상 수상작이라는 거창한 타이틀이 책 표지에 쓰여 있었지만, 사실 내게 그런 건 별로 중요한 요소가 아니었다. 오히려, 오히려 우주복을 입은 채, 눈물인지 이상야릇한 화장을 한 어느 여성-아니 여성이 아닐지도 모르겠다-의 일러스트가 강렬하게 나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과연 무슨 이야기가 담겨 있는 걸까.

 

우선 주인공이자 27살 난 무직자로 이대갈비집의 딸인 은미가 등장을 한다. 글쓰기와 책읽기를 좋아하는 이 자유로운 영혼은 남들처럼 세상에 속하기 위해, 신문사 기자에 계속 지원해 보지만 자신의 세계와는 다른 세계로의 진입이 거부된다. 이번에도 낙방의 수모를 당한 은미는 수면제로 이 세상과의 단절을 꿈꾼다. 그리고 그녀의 절친으로 등장하는 여자 같은 남자 민이. 그는 트랜스젠더를 꿈꾸는 열혈청년이다.

 

집으로 귀환한 그녀를 기다리는 할머니는, 엉겁결에 결혼하고 아이를 낳게 되면서 점점 자신의 꿈과는 동떨어진 삶을 되었노라고 작가는 친절하게도 설명해준다. 책읽기의 첫 번째 원칙 중의 하나가 절대, 소설 속의 주인공과 작가를 동일시하지 말라는 건데 이 책을 읽으면서 정한아 작가와 은미의 일체화는 도저히 뿌리칠 수 없는 유혹으로 다가온다. 어쨌든 15년 전에, 자신의 혈육인 은미의 사촌 동생 찬이를 남겨 두고 미국으로 떠나 버린 고모 순이를 찾아가 보라는 할머니의 권유/명령으로 은미는 팔자에 없는 미국행을 감행하게 된다. 아 이런 설정도 가능하구나.

 

개인적으로 이런 뜬금없는 설정과 은미가 순이 고모를 찾게 되는 과정이 조금은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로드무비의 형식을 빌린 <달의 바다>에서 어느새 낯선 공간에서 자신도 모르게 유영하고 있는 자신을 바라보게 된다. 다른 곳도 아니고 미국우주항공국(NASA)에서 일하고 있다는 순이 고모의 일상에 뛰어들게 된, 은미의 이야기가 달의 심연처럼 조금씩 다가온다. 무중력 상태에서의 점프 같은 비약이라고나 할까.

 

글 중에 작가는 은미가 어려서부터 탁월한 거짓말쟁이였다고 진술한다. 그리고 그 거짓말에 따르는 책임감을 일깨워준 고모와 일종의 연대감을 형성되는 과정이 담단하게 소개된다. 그 고모 역시, 주인공에 버금가는 라이어로 모두를 즐겁게 하기 위해 거짓말을 했노라고 고백한다. 그리고 보니 모두가 좋게 하기 위해 계속해서 거짓말을 하곤 하시던 돌아가신 나의 할머니 생각이 났다. 작가는 어떤 면에 있어 이런 선의의 하얀 거짓말이라는 수단을 통해 가족 간의 화해를 도모한다. 과연 그게 현실적인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소설의 제목에도 나오는 달이 가지는 의미는 무엇일까 과연? 주인공 은미의 할머니, 순이 고모 그리고 은미로 이어지는 3대에 걸친 여성들의 연대를 상징하지 않을까 하고 생각이 들었다. 굳이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달의 여신 아르테미스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달과 여자다움의 동질성에 대해 이야기할 수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공간적으로는 그들이 꿈꾸는 이상향으로서 작동하고 있다. 그런 달에 갈 수만 있다면, 하루에 이백 개씩이나 만드는 샌드위치 노동조차 즐겁게 느껴질 정도였다.

 

세상에 속하지 못하고 소외자로 마치 지구를 도는 달처럼 서로 융화되지 못하는 작가의 페르소나 은미 캐릭터에, 그의 오랜 이성 친구 민이 역시 조각 같은 외모에도 자신의 성적 정체성으로 인해 고통 받는 현실이 사실적으로 그려진다. 친구들은 상대방이 자신을 이해해 주기 바라지만, 친구들 역시 자신들이 세상을 보는 시선으로 받아들일 뿐이다. 물론 감정의 폭발하는 어느 순간에, 작가는 놓치지 않고 그들의 진정한 소통을 짚어낸다.

 

소설에 나오는 갈등 상황들에 대해, 작가는 뚜렷한 무언가를 제시하는 대신 열린 결말로 글을 매조지 한다. 뭐 꼭 독자들이 소설에 정답을 요구하는 건 아닐 테니까. 이번 가을에는 재밌고 잘 읽히는 책이 읽고 싶었는데, 그런 기준에 아주 딱 들어맞는 책이었다. 잘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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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미 2023-07-14 11: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김영하 작가도 거짓말을 잘했다고 하던데요ㅋㅋ
소설가에게 어쩌면 필수적인 재능인 듯 합니다.^^

레삭매냐 2023-07-14 17:54   좋아요 1 | URL
구라는... 작가에게 반다시
필요한 덕목이 아닐까 싶
습니다.

격렬하게 공감하는 바입니다.
 
과학자들 1 - 그래도 지구는 돈다 과학자들 1
김재훈 지음 / 휴머니스트 / 2018년 9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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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출근하는데 폭우가 쏟아져서 옷이 다 젖고 말았다. 그리고 곧 비가 그쳤다. 장마 시즌인가 보다. 그런데 또 내일은 비가 그치고 폭염이 예상된다고 한다. 도대체 기상청은 뭘 하고 있는 거지? 많은 비용을 들여 첨단장비를 들여도, 일기예보조차 제대로 맞추지 못하니. 문득 수천년 전에 별의 운행을 관찰하며 기상예측을 하던 고대 과학자들은 어땠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 주말에 도서관에 갔다가 이 책의 존재를 알게 됐다. 그림체가 낯이 익어 보니 김재훈이라는 일러스트레이터의 작품인가 보다. 그리고 보니 예전에 이 작가의 그림을 좋아라하던 시절이 있었지 싶다. 뭐 그런 시절도 한 때 뿐이었지만. 오랜 시간이 흘러 이렇게 다시 만나게 되는구나.

 

3부작으로 구성된 <과학자들> 시리즈의 첫 번째 권에는 모두 13명의 과학자들이 등장한다. 역시 대표선수는 서양 철학과 과학의 아버지라고 할 수 있는 아리스토텔레스다. 지금으로 치면 아마 종합대학 정도 된다고 했던가. 결국 궁극의 진리를 구가하던 학문이라는 점에서 철학과 과학은 쌍둥이 같은 존재가 아닌가 싶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우주관과 프톨레마이오스의 천동설은 정말 오랫동안 중세 기독교적 질서의 핵심이었다. 그러니까 온 우주는 지구를 중심으로 해서 돈다는 비과학적 우주관에 대한 도전은 신의 질서에 대한 도전으로 받아 들여지지 않았을까. 당연히 교황을 필두로 한 기득권층은 그런 도전을 묵과할 수가 없었고, 이단 심판이라는 폭력적인 방식으로 일체의 진실 탐구를 억압했다.

 

나중에 등장하는 인물이긴 하지만 교황청은 갈릴레오 갈릴레이를 그런 이유로 해서 탄압했다. 진실인지 아닌지 모르겠지만, 그가 말했다는 그래도 지구는 돈다는 말은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과 함께 중세 질서의 붕괴를 상징하는 핵폭탄급 위력을 지닌 경구가 아니었나 싶다. 사실과 다른 천동설을 강요하는 기독교 교조주의에 반발해서, 자신의 양심을 저버릴 수 없다는 지식인의 반발이야말로 서구 근대화의 신호탄이 아니었나 싶다.

 

프톨레마이오스의 천동설을 지지하기 위해 고안된 주전원 이론 등은 지구가 타원형을 그리며 자전한다는 지금은 상식으로 받아들여지는 사실을 대신하기 위해 고안된 가짜 논리였다. 어쩌면 <과학자들>에 등장하는 과학자이며 철학자들은 진실 투쟁에 나선 투사였는지도 모르겠다. 제 아무리 권력이 진실을 가리기 위해 찍어 누른다고 하더라도, 진실을 가릴 수는 없었다. 유구한 서구 과학사를 살펴보면, 결국 시간의 싸움에서 과학적 진실을 밝혀질 수밖에 없었다.

 

서구 과학자들에게 아리스토텔레스는 뛰어넘어야하는 산 같은 존재가 아니었을까? 오랜 관찰과 논리 그리고 사유를 통해 아리스토텔레스 우주관이나 기존에 정설로 받아들여지던 사실들을 하나씩 바로잡아가면서 과학자들은 어떤 희열을 느끼지 않았을까? 누군가는 내가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를 깼다는 명예심에서 또 누군가는 자신이 세계 최초로 무언가를 발견했다는 자부심에서 과학이라는 분야에 투신하지 않았나 싶다. 물론 그 중에는 로버트 훅처럼, 과학적 발견에 대한 자부심이나 명예보다는 먹고사니즘을 위한 월급쟁이 과학자를 자처한 사람도 있지만 말이다.

 

네덜란드 상인 출신으로 과학자보다 더 진짜 과학자 같은 면모를 보여준 안톤 판 레이우엔훅 같은 이도 있었다. 르네상스 이래 과학자들이 어떤 카르텔이나 기존 권력에 대한 도전정신을 무기로 삼았지만, 근대 들어 스스로 왕립과학회 같은 카르텔을 만들어 타인의 연구나 관찰 등을 무시하는 경향을 보여주기도 했다. 한 때 이단취급을 받던 이들이 포용 대신 배제를 택하는 순간, 탄압받는 위치에서 탄압자가 될 수도 있다는 점을 명백하게 보여주기도 했다.

 


개인적으로 <과학자들> 첫 번째 이야기에서 가장 관심을 갖게 된 인물은 바로 르네 데카르트였다. 우선 이 책을 통해 철학자로만 데카르트에 대한 시선을 교정하게 됐다.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에서 출발한 세계관의 충돌은 결론적으로 심한 회의주의를 불러오게 됐다. 무엇보다 사물의 작동 원리에 대한 설명이 필요했다. 기존에 신이 부여한 질서라는 말은 더 이상 유효한 판단의 준거가 아니었다. 어떻게 보면 지극히 개인주의적 접근일 수도 있지만, 세상에 존재하는 진리를 받아들이는 주체가 나 자신이라는 선언이라는 점이 놀라웠다.

 


고전역학을 집대성한 <프린키피아>의 주인공 아이작 뉴턴에 대해서도 상당 부분을 할애한다. 알버트 아인슈타인이 등장하기 전까지 아마 서양 과학사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 중의 하나가 뉴턴이나 당연히 빼놓을 수는 없었겠지. 물리에 대해서는 내가 아는 바가 없어서, 운동에너지 등등에 대한 설명은 와 닿지가 않더라. 나는 단지 독서인일 뿐, 책에 소개된 과학에 대해 이해를 꼭 해야 하는 건 아니니까라는 핑계로 슬쩍 넘어가 본다.

 

서구 과학자들 일색이라 아랍권 이븐 알하이삼이라는 인물을 배치한 점도 높게 평가하고 싶다. 대부분의 과학자들처럼(?) 강한 자의식의 주인공이었던 알하이삼은 카이로의 술탄에게 이집트의 고질병인 나일강 범람을 막기 위해 댐을 만들 수 있다고 호언장담했다고 한다. 하지만 정작 거대한 나일강의 실체를 보고나서는 당대 기술로 댐 건설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바로 미친척을 했다지. 이런 에피소드들은 대환영이다. 멀쩡한 사람이 광인 행세를 해서 생존을 도모할 수밖에 없던 시절이 참 그렇다.

 

과학에 대해 문외한이 순전히 과학자들에 대한 호기심으로 읽은 <과학자들>은 생각처럼 만만한 책이 아니었다. 그래도 일단 시작했으니 다 읽어 보겠다는 얄팍한 계산으로 2권과 3권도 빌렸다. 사사키 아타루의 책을 읽다 말고 이책 저책 읽고는 있는데 마무리를 짓지 못하고 있다. 폭염와 폭우 핑계대고 책읽기에 게으름을 피워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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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23-07-11 23:3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중세 지성사를 논하면 유럽 출신 학자들이 제일 많이 거론되지만, 저는 그들에게 영향을 준 아랍 학자들이 주목받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

레삭매냐 2023-07-12 13:48   좋아요 1 | URL
격렬하게 공감하는 바입니다.

다만, 서구에 소개된 저작들에
대한 소개가 미비한 탓이 아닐
까 추론해 봅니다.

다시 한 번 사료 기록의 중요성
이 절실하다고 생각합니다.

페넬로페 2023-07-12 00:4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데카르트가 수학에도 나오더라고요.
천재였던 것 같아요 ㅎㅎ
영화 천문이 생각납니다.
조선은 과학도 중국의 간섭을 받더군요.
서양의 과학도 종교의 그늘에 있었던거겠죠~~

레삭매냐 2023-07-12 13:51   좋아요 1 | URL
조선의 사대부가 그랬던 것
처럼, 서양 지식인들도 다방
면에 뛰어나지 않았나 싶네요.

서구 과학의 발달사는, 중세
까지 사람들의 의식을 지배
하던 기존의 기독교적 세계관
에서 벗어나려는 시도와 그
반동의 역사가 아닐까 싶습니다.

영화 <천문> 급 호기심이 생기
네요.

얄라알라 2023-07-20 00: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겸손하시게 ‘게으름 피우신다‘하시지만, 간만에 들어온 북플, 여전히 매냐님 서재는 뜨거운 걸요^^ 항상 쉼 없으신....

김재훈 작가님 그림체를 바로 파악하시는 걸 보면, 역시나 매냐님!
저도 읽고 싶다는 생각 잠시 스쳤지만, 끝을 보려면 3권까지 완주해야한다니 망설여지네요^^

레삭매냐 2023-07-20 10:39   좋아요 0 | URL
어느 털보 아재가 진행하는
프로그램 이름이 아마 겸손
은 힘들어...라고 알고 있습
니다 ㅋㅋㅋ

제가 예전에 이 냥반 일러
스트를 좋아해서 그림을
모으고 그랬던 시절이 -

요즘 도통 책을 읽지 못하
고 있네요. 그러면서도 책
은 계속해서 사들이고 있
네요.

그레이스 2023-07-24 08: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프린키피아 갖고 있어서 봤는데 1권이 온통 기하학으로 채워져있어서,,, 영재수학 느낌 ?
아직은 이걸 볼 필요를 못 느껴서 덮었습니다.ㅎㅎ

레삭매냐 2023-07-25 14:21   좋아요 1 | URL
오래 전, 고딩 시절에 뉴턴의
프린키피아 이야기를 들은 기
억이 납니다.

그리고 과학과 담을 쌓고 살았
네요.

나중에라도 과학에 관심을 갖게
되면 그 때 도전하는 것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