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야(2024) / 허명행


*** 다수의 스포가 들어 있으니, 참조해 주시길.

 

인스타 광고로 처음 접한 허명행 감독의 <황야>를 봤다. 어포칼립스 시절 사랑꾼, 아니 사냥꾼으로 나선 마블리의 액션은 여전했다. 하지만 서사의 힘이 턱없이 부족했고, 어디선가 본 장면이 계속해서 떠오르는 기시감 때문에 후반으로 갈수록 동력이 떨어지는 건 어쩔 수가 없더라.

 

스토리라인은 간단한다. 어느날 갑자기 벌어진 대지진으로 대한민국은 혹성탈출의 어느나라처럼 붕괴해 버렸다. 물도 식량도 없는 그런 어포칼립스 시절이 도래했다. , 그전에 죽어가는 자신의 딸을 살리겠다는 양기수 박사(이희준 분, 이후 닥터 크레이지로 부르겠다) 역시 자신의 연구실에서 불법 생체실험을 하다가 당국에 의해 저지될 그 순간에 어포칼립스를 피하지 못하고 그대로 추락(?)한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사냥꾼 최지완(이준영 분)이 서울 한복판에 등장한 좀비스러워 보이는 악어를 사냥한다. 불화살이 멕이는데, 악어가 쉽게 죽지 않고 지완에게 덤벼든다. 그리고 우리의 마블리 남산(마동석 분)이 등장해서 한 칼에 악어의 머리를 잘라 버린다. 그리고 그렇게 사냥에 성공한 이들은 푸짐한 악어 고기를 버스동 사람들에게 판다. 이른바 약육강식의 세계가 그렇게 전개되고 있었다.

 

그리고 18세 소녀 한수나(노정의 분)가 등장해서 유명한 사냥꾼 남산과 지완의 그림을 그린다. 남산과 지완이 열심히 악어 고기 장사를 하던 중에 등장한 일단의 양아치 그룹, 조악하게 그린 현상수배범 전단을 들고 사람들을 잡아가던 중에 눈에 띈 수나를 잡아가려고 하자 과거에 자신의 딸을 지키지 못한 남산이 등장해서 이들을 제압한다. 그리고 보니 닥터 크레이지도 자신의 딸을 지키지 못하지 않았나.

 

버스동과 다른 삶을 살고 있는 아파트에 사는 선생님(장영남 분)이 일단의 무리들과 등장해서 수나에게 좋은 삶의 환경과 교육을 제공하겠다며 보호자인 할머니를 설득해서 데려간다. 말로는 새로운 인류를 위한 투자라고 하는데 어째 수상하지. 이런 어포칼립스 영화에서 이런 미래를 위한 투자는 가만 보면 결국 악랄한 착취로 귀결되기 마련이니까 말이다.

 

아니 영화의 내용을 하나하나 다 말할 필요는 없을 것 같고, 닥터 크레이지가 살아남은 십대 소년 소녀들을 생체 실험 재료로 이용해서 자신의 딸을 부활시키겠다는 망상을 우리의 마블리가 뽀갠다는 내용이 영화의 전체적인 줄거리다.

 

사냥꾼 마블리는 기묘하게도 영화 초반에 딱 한 번 악어사냥에서 자신의 실력을 보여준다. 좀 더 다른 사냥을 기대했던 관객들은 그가 무슨 직업을 가졌었는지 잃어버릴 판이다. 아니면, 악어 고기 파는 정육점 주인 같기도 하고. 다른 사냥은 몰라도 빌런 사냥에는 참으로 유능한 남산이다. 자신의 딸을 지키지 못했다는 트라우마 덕분에 딸 같은 수나를 구출해내기 위해 목숨을 건다는 설정도 어포칼립스 시절에 좀 낯설게 다가온다. 남산이 자신의 딸을 왜 지키지 못했나에 대한 설명이 부족해서 그런 탓일 지도 모르겠다.

 

자신의 딸을 다시 살리겠다는 닥터 크레이지와 계속해서 살기 위해 닥터 크레이지가 공급하는 약물이 필요한 유사 K-좀비 권상사의 망상이 결합해서, 생체실험에 필요한 아이들을 계속해서 수급하고 어포칼립스 시절 생존에 반드시 필요한 깨끗한 물과 식량으로 사람들을 착취하는 설정이 영화 <황야>의 근간을 이룬다.

 

모든 시스템이 붕괴해 버린 가운데, 척박한 환경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는 신인류를 창조해내겠다는 하지만 그 이면에는 죽은 딸을 살리겠다는 닥터 크레이지의 신념 아니 망상은 어쩔 수 없이 메리 셸리의 <프랑켄슈타인>을 연상시킨다. 원작 소설에서도 닥터 프랑켄슈타인이 창조한 괴물이 모든 걸 파멸시키지 않았던가.

 

수나와 그의 새로운 친구가 된 수예가 들어간 반에서 우수한 성적을 낸 이들이 생체실험에 선발되는 시퀀스는 영화 <아일랜드>를 떠올리게 한다. 아일랜드에서도 필요에 의해 선발된 클론들이 특별 여행에 당첨됐다고 하면서 번식장을 떠나지 않았던가.

 

점점 K-좀비가 되어 가는 권상사가 닥터 크레이지의 실험실에서 기르던 생쥐를 맛깔스럽게 집어 삼키는 장면은 80년대 최고의 드라마 중의 하나인 <V>에서 외계인 사령관 다이애나가 쥐를 꿀꺽하는 장면을 그대로 따오지 않았나 싶다.

 

수나와 주예 가족에서 분리시킨 수나의 할머니와 할아버지를 쓸모가 없다며 처리하는 K-좀비 최중사와 오하사의 역할은 작년 대유행했던 <무빙>의 안기부 부장과 너무 닮았다. 치열한 삶의 경쟁에서 도태된 인간의 희생은 어쩔 수 없다는 냉혹한 자본주의 논리를 그대로 이식한 교주 닥터 크레이지와 선생님의 지독한 가스라이팅은 어쩔 것인가.

 

, 이전에 마블리와 합을 맞췄넌 버거형의 등장도 반가웠다. 이전과 비슷한 결을 따라 이번에도 호기롭게 마블리 형에게 도전장을 들이밀었다가 바로 꼬리를 내리고 깨갱하고 만다. 극 중에서는 타이거라고 불리는데, 사나운 호랑이라기 보다 귀여운 고양이 정도의 역할로 만족한다. 아파트까지 안내하는 역할을 충실하게 하고는 도중 하차.

 

영화가 엔딩으로 달려가면서 지하에서부터 좀비로 변한 이은호 중사의 부하들과 싸우면서 닥터 크레이지의 핵심 실험실이 있는 8층까지 가는 과정은 마치 게임을 클리어하는 느낌이 들었다. 처음에 준비한 무기와 총탄이 떨어지가 자신들을 공격하는 아파트 군단을 처치하고 무기를 챙기라는 마블리의 말에서 역시 사냥꾼답구나 싶더라. 상당히 폭력적인 어포칼립스 시절을 지배하기 위해 물과 식량만큼 중요한 게 상대를 제압할 수 있는 총 같은 도구라는 점이 시사하는 바도 크다고 생각한다. 깨끗한 물과 식량이 대변하는 가스라이팅이 당근이라면, 바로 물리력을 행사하는 총이 채찍이겠지.

 

어쨌든 어포칼립스와 좀비라는 소재 때문인지 무언가 강렬한 서사의 부족 때문인지, 결론은 밋밋한 맛이 되어 버렸다. 엘리베이터가 없어서 8층까지 수없이 달려드는 빌런들을 제압하면서 끝판왕 군인권상사와 사랑꾼의 입대결이 그나마 위안이 되었다고나 할까. 그래도 그 순간만큼은 재밌었다구. 신인류 창조에 매진하는 계급 간의 투쟁이나 영화에서 살짝 비추는 착취 시스템에 대해서도 말하고 싶지만, 이미 많이 썼고 나의 에너지가 고갈된 모양이다. 이상이다.


[뱀다리] 네이버 블록에도 올렸더니만, 쿠팡 광고로 바로 "악어 고기"가 뜨는 건 뭔데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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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감 2024-01-31 12: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또 좀비 서사로군요. 뻔한 전개가 연상된다는. 그나저나 주먹질이 아닌 마동석은 그림이 영 아닌데요ㅋㅋㅋ 부산행에서도 주먹으로 상대하던 캐릭터였는데.

레삭매냐 2024-01-31 13:44   좋아요 1 | URL
마블리의 주먹 액션은 이번에도
여전하지 싶습니다.

하도 여기저기서 좀비 이야기를
팔아 대서 식상한 느낌이더라구요.
 


지금 아니면 또 언제.

 

잘 사용하지 않는 카드회사에서 만원 이상 돈을 쓰면 만원 청구할인해 준다는 문자를 받았다. 당연 나의 픽은 책이었다.

 

그렇다면 무슨 책을 살까 하고 책이 수북하게 담긴 장바구니를 뒤적인다.

그러다 오래 전에 나와서 사서 읽다만, 슈테판 츠바이크의 <마리 앙투아네트> 생각이 났다. 바로 이거지.

 

마침 근처에 케이문고가 있었지. 바로드림으로 해서 이런저런 쿠폰들을 쟁여서 단돈 천얼마에 데려왔다. 이것이야말로 책쟁이의 행복이 아닐까나.

 

그전에 읽던 책이라 그런지 낯설지가 않다. 그리고 많은 이웃님들이 말해 준대로 정말 재밌구나 그래. 근데 왜 처음에 다 읽지 않았을까. 무슨 이유가 있겠지.

 

역사상 최고의 평전 작가라는 호칭이 무색하지 않게 슈테판 츠바이크는 이백수십년 전의 일들을 마치 옆자리에서 보고 쓴 것처럼 그렇게 생생한 중계를 들려주기 시작한다. 과연 츠바이크로구나.

 

수백 년 동안 유럽의 각지에서 앙칼지게 싸워온 맞수이자 숙적 부르봉 가문과 합스부르크 가문이 혼인으로 그동안의 갈등을 봉합하고 새롭게 등장한 호적수들인 섬나라 영국과 프로이센 그리고 러시아를 견제하기로 결정했다. 미래의 루이 16세가 될 프랑스의 왕세자의 색시로 마리아 테레지아의 여식 15세 소녀 마리 앙투아네트가 픽업됐다.

 

합스부르크 궁정에서 자라나긴 했지만, 엄숙하고 복잡한 의식 타령을 하는 프랑스 궁정에 맞지 않는 재기발랄함을 과시하는 왕세자빈의 등장. 츠바이크는 이미 혼인예식에서부터 불길한 징조들이 세 가지나 보였다고 보고한다.

 

정말 시기적절한 때에 맞춤 독서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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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마트에 갔다가 우리 시민들의 영혼을 달래주는 쏘주 가격이 궁금하길래 한 번 가격표를 유심히 봤다. 1,420원이더라.

그런데 주점에서 사먹는 쏘주는 가뿐하게 오천원이 되어 버렸다. 서민술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말이지. 그러니까 최소한 세 배 이상이란 말이지.

 


물론 업소용과 일반 소매용의 가격이 다르다고 식당하던 친구가 말해 주더라.

출고가 오른다고 하면서 술집에서 먹는 쏘주의 가격은 천원씩 올리더니, 물가폭등에 놀란 정부가 출고가를 낮추라고 해서 내린 것으로 알고 있는데 술집의 주인장들은 입 싹 닫고 여전히 오천원 가격을 고수한다.

 

왜 그러냐고 그랬더니, 메뉴판을 바꾸고 그러는데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든다나 뭐라나. 아니 가격 올리던 시절에는 종이로라도 써 붙이고, 안되면 매직으로 거침없이 오른 가격을 왕희지 글쓰듯 휘갈기던 양반들이 아니던가.

 

그나저나 명절 전에 시간 내서 삼겹살에 쏘주 한 잔 마셔야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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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하수 2024-01-25 00:4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도 읽고싶어 도서관에 상호대차 신청하고 기다리고 있답니다. 츠바이크가 썼으니 뭔들 재미가 없을까요. 기대중입니다^^
전 술이 안받는 체질이라... 쏘주의 진정한 맛을 즐길줄 아는 분들이 넘 부럽네요. 가격 상관 없이요^^

레삭매냐 2024-01-25 10:38   좋아요 2 | URL
그렇지요 격렬하게 공감하는 바입니다.
무려 츠바이크가 쓴 작품이니깐요.

저도 아주 어려서는 쏘주 맛을 몰랐었
는데... 지금도 사실 잘 모른답니다 ^^
유퀴즈에선가 보니 쏘주는 술이 아니
라 화학물질이라고 -

transient-guest 2024-01-25 04:3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가격이 올라갈 수는 있어도 내려오는 경우는 거의 없더라구요. 미국선 마트에서 3불 정도 음식점에서는 10-11불 정도 받고 거기에 세금도 따로 나옵니다. 서민의 술이 아니죠ㅎㅎ 여기선 차라리 맥주나 와인 혹은 위스키가 저가형이 좋은 것이 많습니다. 위 사진은 마트가 아니라 님 냉장고모습인줄 알고 잠깐 깜놀했네요 ㅎㅎ

레삭매냐 2024-01-25 10:41   좋아요 1 | URL
오래 전에 동부에서는 리쿼스토어
에서는 6불, 식당에서는 13불 정도
했었는데... 오히려 술값이 내려갔
나 보네요.

맞습니다, 일단 올라간 가격은 원
부자재 가격이 내려 간다고 해서
동반해서 내리거나 그러진 않지
요. 올라간 가격을 그대로 쭈욱~!

재작년에 놀러 갔던 친구네 집
에 가보니 술장고가 다 있더라
구요 세상에나. 더부럽 -

예전에 저희 독서 모임 두목님
신랑께서 위스키를 좋아한다고
해서 덥썩 덤볐다가 그만 장렬
하게 전사했던 기억이 나네요.

transient-guest 2024-01-25 11:07   좋아요 2 | URL
한국제품이 많이 들어오면서 더 싸진 건 맞아요 스위스 어딘가에서 100유로 내고 소주 마셨다는 얘길 들은 적도 있거든요 ㅎㅎ 저도 더 어릴 땐 한국술 더 비싸게
먹긴 했습니다

Falstaff 2024-01-25 06:0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업소용 입고 가격은 1,700원 정도입니다. 업소에서 3배 받습니다. 예전엔 두 배 받았습니다만 세상에 안 오르는 게 있어야지요. 제가 마시는 쐬주는 마트에서 1,750원~1,900원 합니다. 진로 골드.

레삭매냐 2024-01-25 10:46   좋아요 2 | URL
진로 골드가 씨뻘건 오리지날인가요 ㅋ

그럼 일반 소매용 입고 가격은 더 싼가
보네요.

어제 마트에서 사과 한 봉지 샀는데,
15,000원이라고 하더라구요. 달랑 네
알 들었는데... 맛은 없었습니다, 에잉.

북깨비 2024-01-25 08:2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효리가 광고할때부터 처음처럼를 주로 마셨는데 최근에 화요를 마셔본 후로 다른 소주 못마시겠어요. 소주인데 소주같지 않은 아주 깨끗한 맛. 그래도 제 최애는 위스키입니다만.. 🥃😌

레삭매냐 2024-01-25 13:35   좋아요 3 | URL
아우 화요 쏘주~~~
주점에서 파는 건 너무 비싼 느낌
이랄까요. 사악한 가격 !

위스키 진차 좋아하시는 분들은
오크향 냄새에 반하신다고 하던데...
전 만날 싸구리 제이앤비안 버번 정도
만 마셔서 그런지 맛을 잘 모르는 -

호시우행 2024-01-26 07:3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가게에서 음주하지 않아야 가격이 내릴까요,ㅠㅠ 음식보다 술팔아 돈버는 구조가 식당일수도ㅠㅠ

레삭매냐 2024-01-29 20:18   좋아요 1 | URL
쏘주가 너무 올랐어요. 두 병만 마셔도
만원이니...
식당하던 친구가 다른 건 모두 서비스
로 줘도 술만은 절대 안된다고 하더라
구요.

닉네임 2024-01-27 23:3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소주 좋아하는데, 이렇게 차이가 큰 줄 몰랐네요...;

레삭매냐 2024-01-29 20:18   좋아요 2 | URL
저는 집에서는 쏘주를 마시지 않아
항상 식당이나 주점에서 먹게 되는
데, 소매 가격을 보고 놀랐네요.
 
김치바게트
실키 지음 / 현암사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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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에 같이 어울리던 동네 친구가 있었다. 그는 만화를 그렸다. 나중에 연락이 끊긴 다음에, 앙굴렘 만화축제에도 참가하고 그랬다고 했던가. 그는 교육 만화 그리기를 정말 싫어했었는데, 먹고사니즘을 해결하기 위해 교육만화를 그려야 했다고. 지금은 뭘하고 사는지 문득 궁금해졌다. 그의 자취를 쫓아 보니 작년 11월에 새로운 작품을 발표했구나. 실키 작가의 <김치바게트>라는 책이 기억의 저장고에서 불러낸 친구의 추억이었다네.

 

주간행사로 일요일마다 도서관에 간다. 그전에 빌린 책들을 반납하기도 하고, 또 새로운 책들을 빌리기도 한다. 다음달 마지막 주에 예정된 달궁 책인 <사악한 목소리>도 빌리고, 바로 읽을 수 있는 그래픽노블도 한 번 찾아 본다. 그러다 만나게 된 책이 실키 작가의 <김치바게트>.

 

처음에 제목만 보고서는 음식 만드는 법을 소개하는 책일 줄 알았다. 바게트에 김치를 끼워 먹는 이야기인가? 나의 오바였다. 프랑스의 웹진에 소개된 프랑스에 사는 실키 작가의 체험담을 소재로 삼은 그래픽노블이었다.

 

어딜 가나 그놈의 지긋지긋한 칭챙총 스토리는 빠지질 않는구나. 요즘 독일에서 한창이라는 AfD 반대시위의 거대한 물결 생각이 났다. 그동안 침묵하던 다수가 나서서 점점 더 오른쪽으로 향하는 극우정당의 인종차별에 대한 시민적 저항을 인스타 중계로 보고 있다. SNS의 긍정적 영향이 아닐 수 없다. 나와 다른 것이 나쁜 게 아닐진대, 끝없는 혐오로 치닫는 시대에 깨어 있는 시민 의식 교육에 대한 효과가 유럽의 중앙부인 독일에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모습을 볼 수가 있었다. 그런데 프랑스도 못지 않은 똘레랑스의 나라라고 들었는데, 아직도 먼 모양이다.

 

얼마 전에 회사 중국인 동료의 비자 발급을 받으면서, 다른 나라에 취업을 하고 사는 일이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새삼스럽게 깨달을 수가 있었다. 최종에 가서는 대표이사가 보증을 서고서야 법무부 장관이 발급하는 취업비자를 받았다. 그전에 서류 작업을 하면서 행정사 아저씨의 도움을 받은 건 말할 것도 없고. 실키 작가 역시 코로나 시절에 경찰(?)이 발급하는 체류허가증 때문에 골머리를 앓는 모습을 보면서 절절한 느낌을 공감했다. 남의 나라에서 사는 건 쉬운 문제가 아니구나 역시.

 

외국 생활을 해본 사람들이라면 알 수 있는 각종 민원서류 발급의 난이도에 대한 에피소드는 또 어떤가. 오늘도 가족관계증명서를 발급받아서 알지만, 모바일로도 각종 민원서류들을 처리할 수 있는 디지털 정부의 위력을 새삼 체감한다. 바로 이웃 일본만 하더라도 무조건 서류와 팩스 타령을 해대는 건 기본이 아닌가. 관공서에 가서 무슨 일을 처리하려면 한나절은 기본이 아닌가. 물론 그 이면에는 모든 시민들을 강력하게 통제할 수 있는 주민등록번호라는 개인에 대한 고유 식별이 가능한 '빅 브러더'를 연상시키는 제도가 존재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언제나 그렇지만 무언가를 쉽게 얻기 위해서는 또 그만큼의 대가가 필요한 것도 사실이니까.

 

그 다음에 또 무슨 이야기가 있더라. 이틀 전에 읽은 그래픽노블에 대한 기억을 되살리며 리뷰를 쓰는 게 쉽지 않네. 이래서 보통 리뷰는 책을 읽자 마자 바로 써야 하는데 말이지. 아 친구들하고 같이 어울려서 김치 만드는 프로젝트가 있지 않았나. 오늘 점심에도 김치찌개를 먹었는데, 김치야말로 한국인의 소울푸드라는 점에 대해 이견이 없을 것 같다. 흔하게 먹을 수 있을 적에는 굳이 찾지 않지만, 또 막상 먹기 쉽지 않을 적에는 생각나는 게 김치라고 생각한다. 오래 전 자취생활을 해봐서 김치만 있으면 또 해먹을 수 있는 게 많으니깐. 요리 재료로서도 만능 치트키라고나 할까.

 

실키 작가가 코로나 록다운 시절에 대해 말하는 것을 읽다 보니, 그런 시절이 언제였나 싶다. 우리나라는 그렇게 전면적인 록다운을 실시하지는 않지 않았나. 그러면서 얼마나 의료시설이나 사회 시스템이 그런 팬데믹에 대처할 수 없었으면, 록다운을 실시했나 싶다. 그 시절에도 우리는 마스크를 뒤집어 쓰고 하루의 일용할 양식을 벌기 위해 회사로 출근하지 않았나. 언제 그랬나 싶긴 하지만 말이다. 그런 생각을 하다 보니, 갑자기 평소에 있지도 않은 국뽕이 차오르는구나 그래.

 

내친 김에 도서관에서 실키 작가의 다른 책도 빌렸는데 그 책은 <김치바게트>만 못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뭐랄까, 지금의 어떤 스타일에 도달하기 위한 습작 같은 느낌이라고나 할까. 어쨌든 간단하게 코로나 시절, 프랑스에 사는 엑스페이트리어트의 삶에 대한 스케치를 살펴봤다. 아주 오래 전, 파리에 도착해서 뤽상부르 공원에서 뜯어 먹던 바게트 생각이 났다. 그냥 뭐 그랬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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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아 2024-01-24 11: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순간 ‘김치바게트라니 맛있겠다‘ 생각했는데 아니군요?
정말 김치 만한 치트키가 없죠.
우동 좋아하는데 계란을 곱게 풀어넣고 묵은지나 새로 담근 김치를 넣어도 참 훌륭합니다.^^

파리에 갔을때 아끼려고 바게트랑 빵 위주로 줄곧 사먹던 기억이 납니다.ㅎㅎ

레삭매냐 2024-01-24 15:55   좋아요 1 | URL
저는 파리 민박집에서 아침 저녁으로
밥을 너무 잘해 주셔서 만날 민박집
밥을 먹느라 그만 ㅋㅋ

그래도 푸와그라 샌드위치 먹은 기억
은 나네요.

김치 우동 크하~~ 배 고프네요.
 
아이스링크
로베르토 볼라뇨 지음, 박세형 옮김 / 열린책들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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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다시 볼라뇨다. 열린책들에서 제공하는 리딩 가이드에는 볼라뇨 읽기 5개년 프로젝트가 있더라. 4년 동안, 15권을 읽고 마지막 해에는 <2666>을 읽으라고 되어 있다. 난 아직도 <2666><야만스러운 탐정들>을 다 읽지 못했다. 그리고 또 하나 남아 있던 볼라뇨의 첫 소설 <아이스링크>를 어제 단박에 읽었다. 볼라뇨 21주기를 맞아 올해에는 못 다 읽은 책 두 권도 다 읽을 수 있을까.

 

소설 <아이스링크>는 세 명의 남자가 차례로 등장해서, 스페인 카탈루냐 지방의 Z시 벤빈구트 저택에서 벌어진 살인 사건에 대한 진술(?)이 교차한다. 진술은 모두 16번으로 구성되어 있다. 레모 모란, 그는 칠레 출신 소설가이자 사업가다. 레모의 멕시코 친구 가스파르 에레디아(가스파린)는 스텔라 마리스 캠핑장의 야간 경비원으로 일한다. 마지막 인물인 엔리크 로스켈러스는 Z시의 매우 유능한 공무원으로 뚱보 사회주의자다.

 

그리고 금발의 스케이트 소녀 누리아 마르티가 뮤즈처럼 등장해서 엔리크의 영혼을 빼앗아 버린다. 올림픽 국가 대표 선발을 원하는 누리아에게 연습에 매진할 빙상장이 없는 게 가장 큰 문제다. 누리아를 지상에 강림한 천사로 생각하는 엔리크는 시의 공금을 횡령해서, 신대륙에 가서 성공한 벤빈구트의 버려진 저택의 수영장을 개조해서 자신의 천사를 위한 빙상장으로 개조한다. 사랑에 눈이 먼 이의 대범한 프로젝트가 아닐 수 없다. 스케이트 소녀를 위한 아이스링크에서 현란한 기술을 선보이는 누리아에게 걷잡을 수 없는 사랑을 느끼는 뚱보 엔리크.

 

레모도 엔리크의 동료였던 롤라와 사랑에 빠져 결혼하지만, 2년 만에 이혼하고 카르타고 주점과 스텔라 마리스 야영장 등의 사업장 운영에 전념하다가, 운명적으로 누리아와 조우한다. 곧바로 사랑에 빠지게 되는 누리아와 레모. 기묘한 치정으로 미쳐 돌아가는 애정 전선 가운데, 그나마 서사의 균형을 잡아주는 인물이 바로 레모가 아닐까 싶다.

 

멕시코 시절 친구였던 레모에게 픽업되어, 캠핑장에서 5개월 정도 야간경비원으로 일하게 된 가스파린(가스파르 에레디아)은 불법체류자 신세다. 캠핑장의 터줏대감 카라히요 영감님과 어울리며 야간 경비라는 자신의 본업에 충실한 모습은 보여주지 않는다. 대신 야영장에 빌붙어 사는 카르멘이라는 이름의 오페라 가수 할멈 그리고 정체를 알 수 없는 소녀 카리다드와 관계를 쌓는데 열중한다. 그리고 가스파린은 현재가 행복한 순간이라고 믿고, 무언가 더 바라지 않는다. 이런 게 젊음의 특권이라는 걸까.

 

우여곡절 끝에 벤빈구트 저택의 아이스링크가 완성되고, 우리의 스케이트 소녀 누리아는 그곳에 가서 마음껏 연습에 매진한다. 그리고 야영장에서 쫓겨난 카르멘 할멈과 카리다드도 남몰래 벤빈구트 저택에 잠입해서 삶을 이어간다. 이 정상적이지 않아 보이는 서사의 전개는 예상대로 빙상장에서 카르멘 할멈이 시신으로 발견되면서 파국으로 치닫는다. 왜 누가, 아무에게도 무해해 보이는 카르멘 할멈을 죽였단 말인가.

 

그 다음에는 빙상장 건설에 실무 책임자인 엔리크가 살인죄와 횡령죄로 체포되면서 최고조로 치닫는다. 카르멘 할멈이 시청 공무원 엔리크를 협박해서 10만 페세타를 뜯어낸 전과도 있지 않은가. 모든 지표는 엔리크가 범인이라고 가르킨다. 과연 그럴까?

 

사실 누가 왜 카르멘 할멈을 죽였는가는 소설 <아이스링크>에서 중요하지 않은 요소다. 하지만 타고난 이야기꾼인 볼라뇨는 소설의 끝까지 누가 할멈을 죽였는가에 대한 부분을 밝히지 않으면서, 바로 그 지점에서 파생된 팽팽한 긴장감을 늦추지 않는다. 역시 불혹의 볼라뇨는 글을 좀 쓸 줄 아는 작가였구만 그래.

 

"아이스링크"에서 벌어지는 게임판에 뛰어든 참가자들의 추구하는 목표는 현상유지다. 성공한 사업가 레모는 말할 것도 없고, 날건달처럼 보이는 가스파린 역시 카리다드와 함께 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뚱보 사회주의자 엔리크는 자신의 공금 횡령 발각이 시간문제긴 하지만, 적어도 누리아가 벤빈구트 저택의 비밀 빙상장을 누비는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지복의 행복을 느낀다. 에피쿠로스적인 현세주의자들의 집합인가.

 

어느 순간부터 소설의 중심을 차지할 것처럼 보였던 살인 사건에 대한 미스터리는 뒷전으로 빠지고, 레모와 가스파린 그리고 엔리크 3인의 시선으로 전개되는 진중한 삶의 드라마에 초점을 맞춰지기 시작한다. 무언가 벌어질 것 같은 예고가 이어지는 가운데, 난폭해 보이는 식칼을 든 카리다드의 존재감은 언제라도 무슨 사건이 벌어져도 이상하지 않을 그런 분위기를 조성하는데 한몫한다.

 

또 하나의 문제적 인물 누리아 마르티는 사람이 죽어 나가고, 자신을 사랑한다고 애타게 고백하는 엔리크의 고백에도 그리고 한때 연인 레모의 안위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Z시를 폭풍우처럼 집어 삼킨 어마어마한 추문과 스캔들 속에서도 완벽한 알리바이로 혐의를 벗고, 새 삶을 찾아 나선다. 바로셀로나로 떠난 누리아는 비서로 일하면서 예술 화보를 찍어 대중의 환호를 받는다. 살인죄 혐의는 벗었지만 빼박이었던 횡령죄로 복역하던 엔리크는 교도 행정에 자신의 특유의 행정력 재능을 보여 주면서 자유의 몸이 되었다.

 

소설에 등장하는 이들은 모두 그들이 누리는 행복한 순간이 영원하길 바란다. 하지만, 우리네 삶은 그렇게 마냥 행복할 수는 없다. 아니 행복한 순간들은 찰나일 뿐, 나머지 대부분은 인내와 고통의 시간일 지도 모르겠다. 애정하는 작가의 첫 소설을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나 회고하는 방식으로 만나는 즐거움은 대단했다. 그거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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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아 2024-01-17 14:4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미처 돌아가는 애정전선과 팽팽한 긴장감의 스릴러인가요? ^^
찾아보니<2666>은 마침 정가가 66,600원이네요ㅋㅋㅋ

매냐님이 애정하는 작가 볼라뇨가 프루스트,조이스와 불멸의 작가 반열에 올랐다니
저도 일단 찜해두어야겠습니다.

레삭매냐 2024-01-17 15:17   좋아요 2 | URL
언제 읽어도 역시나, 볼라뇨구나
싶었습니다 :> 아직까지 읽지 않은
책이 있다니... 놀랐네요.

<야만스러운 탐정들>과 <2666>
은 정말 쉽지 않은 도전이네요.

다시 한 번 도전해 볼랍니다 고저.

coolcat329 2024-01-17 23: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 이 책 재미있을 거 같아요!
저야말로 책 사놓기만 하고 단 한 권도 안 읽었네요. <야만스러운 탐정> 어려운가요? 제목이 너무 좋아서 새 책으로 사뒀는데...
저도 조만간 칠레의 밤 도전해봐야겠습니다.
이 책도 찜입니다!

레삭매냐 2024-01-18 16:41   좋아요 0 | URL
왜 수년 전에 사놓고 읽지 않았는지
모르겠더라구요. 아마 읽었다고 착각
을 했는지...

역시나 책은 사서 읽는 게 아니라
개지구 있는 책을 읽는다는 말이
하나 틀리지 않네요.

<야만스러운 탐정>은 두 번인가
읽겠다고 호기롭게 나섰다가 미처
완독 못했네요.

<칠레의 밤>은 세 번이나 읽었네
요. 읽을수록 진국이라는.
 
프라이드 그린 토마토 민음사 모던 클래식 39
패니 플래그 지음, 김후자 옮김 / 민음사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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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에 존 애브넷 감독의 <프라이드 그린 토마토>를 보면서, 영화의 제목이 무슨 뜻일까 궁금했다. 그때는 그냥 흘려버려서일까 기억이 희미하다. 최근에 소설이 재출간된다는 소식에 영화를 다시 봤는데 그제야 프라이드 그린 토마토가 미국 남부 지방의 요리이자, 소설과 영화의 배경이 된 앨라배마 휘슬스톱에 있는 카페테리아 이름이라는 걸 알 수가 있었다.

 

공개적으로 자신이 레즈비언이라고 밝힌 패니 플래그의 원작 소설 <프라이드 그린 토마토>는 짠한 감동의 도가니탕이 있는 소설이다. 영화에서는 대중성을 위해 원작 소설의 상당 부분을 각색했다고 한다. 항상 원작소설과 영화를 비교하면서 느끼는 거지만 영화가 상대적으로 원작 소설만큼의 감동이 2% 부족하다는 느낌이다.

 

소설은 1980년대 중반 48세 중년의 에벌린 카우치가 요양원에 있는 자신의 시어머니를 찾아가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그곳에서 니니 스레드굿이라는 86세의 할머니와 만나 휘슬스톱에 있던 카페 <프라이드 그린 토마토>에 얽힌 이야기를 듣는다. 이야기 속의 이야기 구성으로 사실상의 주인공은 왈가닥 이지 스레드굿과 그녀가 사랑한 루스 제이미슨 그리고 앨라배마 주 휘슬스톱이라는 작은 동네에 사는 여러 군상이 펼쳐내는 다이내믹하면서도 다층적인 이야기들에 초점을 맞춘다.

 

대공황 시절, 그 어렵던 시절 가정폭력을 휘두르는 남편에게서 벗어나 이지를 찾아와 새 삶을 찾은 마음씨 착하고 도무지 일탈이라고는 모르는 것처럼 보이는 루스는 이지와 함께 <프라이드 그린 토마토>라는 이름의 작은 카페를 연다. 1930년대 철도와 열차운행이 호황을 이루던 시절 카페는 휘슬스톱 마을의 사랑방으로 인기를 끈다. 게다가 요리를 맡은 십시와 그녀의 아들 빅 조지가 만들어내는 바비큐 요리는 앨라배마 주 최고라고 했던가. KKK 단을 필두로 한 인종차별이 판을 치던 시절, 이지와 루스는 흑백 인종차별을 하지 않고 카페를 찾는 모든 이들에게 맛있고 따뜻한 정성이 밴 음식을 대접한다. 돈을 내지 못하는 스모키 론섬 같은 노숙자들에게도 이지와 루스는 아낌없는 사랑을 베푼다. 스모키 론섬은 그런 루스에게 아가페적 사랑을 느낀다.

 

영화에서는 이지와 루스가 달리는 열차에 뛰어올라 빈민들이 사는 트라우트빌에 사는 이들에게 정부 열차에서 음식을 던져주는 장면이 나오는데 소설에서는 이지가 레일로드 빌이라는 이름으로 의적 행세를 한 것으로 나온다. 영화와 소설의 다른 점 중의 하나는 빅 조지의 쌍둥이 아들들인 재스퍼와 아티스에 대한 부분이 영화에서는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아마 소설의 방대한 그런 디테일까지 영화에서 감당할 수가 없지 않았나 싶다. 루스와 이지의 아들 스텀프의 성공기에 대해서도 영화에서는 거의 다루지 않는다.

 

소설에 리얼리티를 부여하는 소재로 우체국에서 일하는 윔스 여사가 발행하는 마을 소식인 <윔스 통신>도 한몫한다. 자잘한 뉴스가 주를 이루는 동네소식 <윔스 통신>에는 마을 사람들의 대소사는 물론이고, 애완고양이에게 먹이를 주지 말라는 이웃의 부탁에서부터 친절했던 이웃의 부고 소식에 이르기까지 휘슬스톱 마을 사정을 아는 이들이라면 흐뭇해지는 미소가 절로 피어나는 그런 재밌는 뉴스가 실린다.

 

패니 플래그 작가는 대공황 시절 남부 특유의 대가족 그리고 공동체적인 삶의 이야기들을 소설이라는 무대에 올린다. 아울러 흑인과 여성 같이 소외당하는 계층에 대한 따듯한 시선을 이지와 루스의 모습을 통해 조명한다. 반세기를 지나 그들의 이야기를 전해들은 에벌린 카우치 여사는 비로소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게 된다. 노처녀가 되기 싫어 결혼했고, 당연히 아이들을 낳아 길렀지만 정작 뚱뚱한 중년이 된 자신의 삶에 아무런 즐거움도 느끼지 못하는 모습에 좌절한다. 하지만, 니니와의 진정한 소통을 통해 삶의 의미를 발견한다. 영화에서는 에벌린이 좀 더 희화적으로 묘사되었는데, 소설에서는 평범한 가정주부에서 커리어 우먼으로 변신해 가는 에벌린의 심리묘사가 탁월하게 그려진다. 영화에서 에벌린 역을 맡은 캐시 베이츠는 정말 안성맞춤의 캐스팅이었다. 패니 플래그는 이렇게 두 개의 서로 다른 이야기를 적절하게 독자에게 들려주면서 시대를 넘나드는 여성들의 유대감에 방점을 찍는다.

 

사실 500쪽이 훌쩍 넘는 두툼한 분량에 이걸 언제 다 읽나 싶었지만, 일단 니니 스레드굿의 이야기에 한 번 빠져들기 시작하니 어느새 다 읽어 버렸다. 말미에 실린 십시의 레시피를 보자니, 절로 입맛이 다셔졌다. 책의 표지에 나온 덜익은 초록색 토마토를 보며, 할 줄도 모르는 풋토마토 튀김 요리에 한 번 도전해 보고 싶어졌다. 왜 존재하지 않는 상상의 마을 휘슬스톱에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지 모르겠다.


[뱀다리] 9년 전에 숨넘어간 모클이 다시 부활하려나?

요즘 모클에서 미처 읽지 않은 그리고 절판된 책들을 사냥하고 있는데...

잉고 슐체의 <심플 스토리>에 이어, <프라이드 그린 토마토>도 다시 나왔네. 아마 판권이 살아 있나 보다.

다음 타자는 누굴까? 아울러 새로운 친구들도 내 주면 좋겄다. 



< 인터넷으로 프라이드 그린 토마토 튀김을 검색해봤다.우리나라 호박전하고 비슷하지 않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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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넬로페 2024-01-11 17: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두 번 정도 이 영화를 본 것 같은데 감동적 이었어요.
혹자는 이 영화의 어떤 장면이 잔인하다고도 표현 하더라고요.
프라이드 그린 토마토란 단어에 어떤 상징성이 있을까 궁금하네요~~

레삭매냐 2024-01-11 18:59   좋아요 1 | URL
저도 한 두어번 본 기억이 납니다.
처음에는 그냥 저냥 봤었는데...
두번 째로 볼 적에는 좀 더 진중하게스리.

기억해 보니 어떤 부분에서 그런 기억이
나는 것도 같네요... 아마 빅 조지와 관련
된 스토리가 아닐까 싶네요.

서니데이 2024-01-11 18: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프라이드 그린 토마토 오래전 영화같은데요.
영화보다 원작이 더 좋은가보군요.
미국 대공황 시기가 이제는 거의 1세기 정도의 시차가 생기는 시기가 되었어요.
이제 그 시기를 겪은 사람들은 거의 없을 것 같지만, 1980년대에는 부모세대가 될 수도 있는 거네요.
잘 읽었습니다.레삭매냐님, 따뜻한 하루 보내세요.^^

레삭매냐 2024-01-11 19:01   좋아요 2 | URL
영화는 오래 전에 만들어져서 좀
촌스런 맛이 없지 않지만...
괜찮았던 것으로 기억하네요.

원작 소설을 능가하는 영화는
아직 못본 것 같습니다.

대공황, 베이비 부모 그리고
80년대에는 아마 대공황 세대
가 할아버지 정도가 되지 않았
을까 싶네요.

stella.K 2024-01-11 20: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헉, 저게 풋토마토 튀김이라굽쇼?
영화에선 되게 맛있게 보암직도하고 먹음직도 하던데.
무슨 양파튀김도 연상도 되고. 근데 파삭하게 튀겨질 수 있을까?
의문스럽기도하더군요. 토마토가 수분이 좀 있잖아요.
풋토마토는 좀 덜 할까요? 암튼 저도 그 영화 두 번쯤 봤는데
의외로 두 번 보신 분이 많네요. ㅋ

레삭매냐 2024-01-11 23:10   좋아요 1 | URL
말쌈 듣고 나서 영화를 좀 찾아 보려고
하는데... 찾아볼 수가 없네요 ㅠㅠ 아쉽.

전 영화 처음에 볼 적에는 몬 영화인지
도 모르고 보고... 그 다음에는 소설을 읽
고 나서 작정하고 봤더니 잼나더라구요.

coolcat329 2024-01-12 09: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책 새로운 표지로 다시 나왔군요. 저도 영화는 봤는데 기억이 잘 안 나지만 좋았던 거 같아요. 영화 다시 봐야겠습니다.
좋은 소설일수록 영화로 만드는 게 어려운 거 같아요.

레삭매냐 2024-01-12 13:43   좋아요 1 | URL
영화는 유투바 리뷰로 해서 다시
한 번 보려구요.

아무래도 영화가 원작 소설을 따
라가기가 역부족이지 싶습니다.

그레이스 2024-01-12 22: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영화를 봐야겠네요.

레삭매냐 2024-01-12 23:53   좋아요 1 | URL
지금 막 20분 짜리 영화 소개를
다시 봤는데 명작이네요.
아무래도 찾아서 다시 한 번 봐
야지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