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들의 흑역사 - 부지런하고 멍청한 장군들이 저지른 실패의 전쟁사
권성욱 지음 / 교유서가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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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에 가면 미처 출간된 지도 몰랐던 책들과 만나는 그런 즐거움이 있다. 이번 주말에도 <별들의 흑역사>라는 책을 만났다. 그리고 보니 얼마 전에 만났던 패전사와 비슷한 궤적의 책이 아닌가 싶더라. 실패한 전쟁에서 배우는 교훈이라고나 할까.

 

똥별하면 떠오르는 대표적인 인물이 하나 있지 않은가? 그렇다 비밀 독립군이라는 말로 온갖 조롱을 받으며 기세 좋게 출발한 임팔 작전을 망친 영웅무다구치 렌야다. 태평양 전쟁 당시 남양군도과 여러 곳에서 프로 삽질러의 전형을 보여 준 숱한 일본군 똥별 장군들이 수두룩하지만 그 중에서도 무다구치의 활약상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3개 사단 자그마치 10만 여명의 병력을 동원해서 인도의 임팔을 공략하고, 중국을 지원하는 연합군의 숨통을 끊어 놓겠다는 야심찬 프로젝트로 시작된 작전은 처음부터 성공할 수가 없는 그런 작전이었다.

 

가장 큰 문제는 보급이었고, 그 다음은 아라칸 산맥과 이라와디-살윈 강 같은 엄청난 규머의 강 같은 지형이었다. 연합군에 비해 치중 부대에서 차량이 아닌 우마가 차지하는 비중이 압도적이었던 일본군에, 무다구치는 물소의 등에 짐을 지워서 보급품을 실어 나르고 여차하면 그 물소를 잡아먹겠다는 얼토당토않은 구상을 했다. 하지만 물소가 기존의 소나 말처럼 부리는 사람들의 말을 들었을까? 당연히 아니다. 게다가 험준한 지형에서 통제를 따르지 않다가 절벽으로 떨어지기 일쑤였다고 한다.

 

무다구치는 1944년 전인 2년 전에 이미 비슷한 작전을 구상했다가 보급이 여의치 않을 거라는 점을 들어 작전 계획을 취소한 전력이 있었다. 하지만, 2년 뒤에는 무슨 심정의 변화가 생겼는지 임팔 작전 강행에 나서게 된다. 2년 전에도 이미 잘 알고 있었던 것처럼, 이번에도 보급이 쉽지 않다는 점을 알고 있던 무다구치는 일본인은 초식동물이다라는 구호를 외치며, 현지의 풀을 먹을 것을 주문했다고 하던가. 그들이 그렇게 환호작약하던 황군정신만으로는 영국군의 중화기와 강력한 전차를 상대할 수가 없었다.

 

초전에 31사단이 코히마 점령하면서 기세를 올리기도 했지만, 영국군의 매서운 반격과 결국 18군의 발목을 잡게 된 보급 부족으로 제대로 싸워 보지도 못하고 현지 사단장들의 판단으로 후퇴에 나서게 된다. 특히 31사단장 사토 고토쿠는 독단으로 철수명령을 내려 병사들을 후방으로 소개시켰다. 일본군 창설 이래, 첫 번째 항명 사건 1호로 기록된다. 극우작가 야마오카 소하치의 전선 기록에서는 무다구치와 사토와의 악연에 대한 언급이 보이지 않았는데, 이 책에서는 둘이 구원으로 티격태격했다고 한다.

 

어쨌든 제대로 된 전략과 현지 지형에 대한 이해 그리고 충분한 보급 없이 무턱대고 전선에 뛰어 들었다가 대패한 일본 육군 최악의 무모한 시도가 바로 임팔 작전이었다. 그리고 그 연출에 있어 무다구치는 조금도 손색이 없는 물건이었다. 물론 그 위의 상관들인 버마 방면군 사령관 가와베 마사카즈와 남방총군 대장 데라우치 히사이치도 조연으로 이른바 백골가도를 만드는 데 일조했다.

 

임팔 작전에 앞서 시행된 하호 작전에서 하나야 다다시라는 똥별이 보여준 시대착오적 전투도 주목할 만하다. 세상에 전투를 적의 보급품을 뺏어서 하는 거라는 구시대적 발상은 도대체 어디서 나온 걸까? 만주사변에서 이시하라 간지와 이타가키 세이지로의 대활약에 가려져서 그렇지, 엘리트 육군 출신으로 특무기관 소속이었던 하나야 다다시도 한몫 단단히 했었다고.

 

육군사관학교 그리고 육군대학 출신 엘리트였던 하나야 다다시는 오만에 쩔어, 자신보다 못한 경력의 인사들이라면 지휘고하를 막론하고 무시했다. 상관도 안중에 없던 모양이다. 이런 일본군의 하극상이야말로 고질적 병폐였다. 심지어 군부에 비판적인 언론사에 쳐들어가 기자와 사원들을 폭행하는 패기를 보여주기도 했다.

 

사단장이라는 고위직 지휘관이었던 하나야 다다시는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하급자들을 폭행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요즘 표현으로 하자면, 싸이코패스가 아닐까 싶을 정도다. 온갖 구타와 폭언 그리고 무분별한 공격 강요로 애꿎은 병사들을 희생시켰다. 심지어 작전이나 전투에 실패한 휘하 지휘관들에게 할복을 강요해서 할복 사단장이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였다. 일본군 3대 오물에 비교해 볼 때, 하나야 다다시는 역량과 액션에서 조금도 떨어지는 선수가 아니었다.

 

이번에는 눈길을 북아프리카로 돌려 보자. 어라, 그리고 보니 <패전사>에도 나오는 인물과도 겹치네. 마셜 원수에게 픽업되어 북아프리카에서 전차전의 귀신 롬멜과 상대하게 된 로이드 프레덴들의 이야기다.

 

히틀러가 유럽 대륙에서 전쟁을 일으켰을 당시만 하더라도, 전쟁 준비가 하나도 되어 있지 않던 미국은 서둘러서 전시 징병제를 실시해서 전쟁 준비에 들어갔다. 많은 병사들이 모집되어 훈련이 필요했다. 로이드 프레렌들은 바로 이런 역할에 적합한 인사였다. 하지만 총알과 포탄이 날아드는 전장은 조건이 완전히 달랐다. 게다가 상대는 동부전선에서 활약한 폰 아르님과 사막의 여우 롬멜이 아니었던가.

 

적정 시찰에 적극적이었던 롬멜과 달리 프레덴들은 안락한 후방에서 모호한 지시들을 내리기 일쑤였다. 그러니 이제 막 전선에 투입된 경험이 일천한 미군 병사들이 역전의 롬멜 아프리카 군단병들을 상대할 수가 있었을까. 2차 세계대전 당시, 마셜 장군의 역할은 대단히 중요했다. 연합군 간의 조정과 인사권 행사라는 점에서 훌륭하게 임무를 해냈지만, 적어도 북아프리카 전선에 프레덴들을 투입한 것은 그의 치명적 실수 중의 하나였다. 시디부지드와 카세린 협곡에서 뼈아픈 일격을 당한 미군은 패전을 연구하고 분석하여, 곧바로 엘 궤타르 전투에서 독일군을 패퇴시킨다. 물론 조지 패튼이라는 맹장을 투입한 이유도 있었겠지만.

 

이 책에서 내가 얻은 최고의 수확은 장제스와 스틸웰 간의 심각한 갈등을 다룬 부분이었다. 정말 잘못된 장소에서 잘못된 시기의 만남은 중국 전선에서 대원수 장제스와 미국인 군사고문 조 비니거스틸웰의 그것이었다. 일본의 거센 공격에 밀린 중국은 미국의 군사물자 원조와 장비 그리고 미군이 절실하게 필요했다. 하지만 인종주의자이자 장제스를 경멸했던 스틸웰의 생각은 전혀 달랐다.

 

스틸웰은 장제스가 신편해서 애지중지 기른 정예 병력들을 전략 예비대로 사용하지 못하게 하고, 자신의 목표였던 버마 탈환에 집중했다. 일본은 태평양전쟁의 해전에서 미군에게 잇달아 패배하고, 제해권을 상실하면서 동남아의 전쟁 물자를 본국으로 후송하지 못하게 되자 이번에는 육로로 수송하겠다는 고육책을 내기에 이른다. 광대한 중국 대륙에 발이 묶인 일본군은 각처에서 저항을 이어가는 중국군을 격파하고, 인도차이나에서 중원을 가로 지르는 상대적으로 안전한 육로 수송로를 확보하기 위해 50만이라는 대군을 동원해서 대륙타통작전 이른바 이치고 작전을 시행했다.

 

중일전쟁을 통털어 최대의 병력을 동원한 이치고 작전으로 일본군은 기세를 잡고 끈질긴 저항을 계속하던 정저우, 쉬창 그리고 창더를 함락시켰다. 다만, 헝양 전투에서 일본군을 격퇴하면서 간신히 한 숨 돌릴 수가 있었다. 화베이에서 팔로군을 상대하던 일본군들이 중국 중앙군을 상대하기 위해 이동해 버리는 바람에, 팔로군이 급성장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종전 후, 곧바로 벌어지게 되는 국공내전에서 결국 장제스군이 패하게 되는 원인 중의 하나가 아니었을까.

 

바로 이런 위기를 대비해서 장제스가 길러둔 소중한 전략 예비대를 아무런 의미도 없는 버마 전선에 갈아 넣어 버린 것이 바로 스틸웰이었다. 오래 전, 타임라이프에서 나온 월드워2에 실린 버마 철수작전을 찍은 사진들도 결국 스틸웰 자신의 무능을 감추기 위한 여론전이었단 말이지. 비록 일본군에게 난타당하긴 했지만, 미국의 동맹국의 수장이었던 장제스에 대한 예우를 갖춰야 하는 참모 격의 스틸웰이 중국의 최고 지도자를 무시하고 제 멋대로 중국군에 대한 지휘권을 행사하려고 한 점은 분명 잘못된 것이었다. 그렇다고 버마 전선에서 스틸웰이 선전한 것도 아니었다. 심지어 장제스가 자신의 전략이 장애물이 된다고 생각한 스틸웰은 장제스를 암살할 생각까지 했다고 한다.

 

국부천도로 비록 대륙을 잃긴 했지만, 중일전쟁 당시 정예 관동군을 비롯한 일본의 대군을 중국 대륙을 묶어두는 역할을 충실히 수행한 장제스의 신원을 위해서도 저자는 상당한 부분을 할애했다. 중국전선을 망쳐 먹은 희대의 빌런 스틸웰이 서구 언론에 선전한 대로 과연 장제스는 대륙을 상실할 정도로 무능력한 인사였을까? 아마 장제스라는 걸출한 지도자가 없었다면, 중국의 항일전은 실패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1차 국공합작을 결렬시킨 19274월의 상하이 쿠데타와 국부천도로 이어지는 국공내전 패전의 최고 책임자 역시 장제스였다. 공산군이 그랬던 것처럼, 장제스 역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본격적인 항일전에 나서기 전에 마오쩌둥의 홍군을 격멸해야 했다. 역사에서 이런 했다면이 무슨 소용이겠냐만.

 

한 수 잘 배우고 간다.

 

[뱀다리] 오탈자 감수에 좀 신경을 써주었으면 좋겠다. 콜트 권총을 콜드로, 일본군을 본군 같은 건 좀 아니지 않은가. 아주 간단한 건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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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3-12-13 07: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목만 보고 무다구치 렌야? 를 떠올렸습니다 ㅋ 영원히 조롱받는 사람... 중일전쟁에 저런 배경이 있었군요. 몰랐습니다 ㅋ

레삭매냐 2023-12-13 10:03   좋아요 1 | URL
제목을 아예 똥별들의 흑역사라
고 지었으면 대박이 나지 않았을까
싶네요.

하나야 다다시 장례식장에는
부하들이 아예 나타나지 않았지만...

무다구치 장례식장에는 부하들이
등장했다고 하더라구요. 빈소를
때려 부수러요.

오랫동안 서구 중심의 역사서술
을 들어 왔는데, 전쟁의 이면을
볼 수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즐라탄이즐라탄탄 2023-12-13 09: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개인적으로 잘 몰랐던 역사에 대해 조금이나마 배우고 갑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고맙습니다.

레삭매냐 2023-12-13 10:03   좋아요 1 | URL
나름 그쪽 분야에 대해 알고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저는 아직 멀었습니다.

책은 재밌었습니다.

얄라알라 2023-12-23 17: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똥별^^ 영화 보고 난지 두주 지났지만 아직도 귀에 생생 똥별

요책 연결해 읽으면 딱이겠어요

레삭매냐 2023-12-23 23:00   좋아요 0 | URL
2023년 연말을 관통하는 영화가 바로
<서울의 봄>이 아닌가 싶습니다.

생각해보면 그런 똥별들을 치우자고
쿠데타를 도모한 인간들이야말로 똥
별이 아니었을까요.

격렬하게 공감하는 바입니다.
 


 

고대하던 리들리 스콧 감독의 <나폴레옹>을 무려 개봉일에 관람했다. 오래전, 시사회족 생활하던 시절이 생각났다. 그 시절에는 개봉날 영화를 보는 게 아니라, 아예 개봉도 하기 전에 시사회로 만나곤 했었더랬지.

 

이미 <나폴레옹>은 본 사람들의 평가에 따르면 호오가 갈린다고 했으나 역사덕후라고 할 수 있는 나로서는 호였다. 물론, 몇몇 아쉬운 점들이 있긴 하지만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라는 새로운 시대정신을 대변하는 그리고 알렉산더와 시저에 버금가는 영웅을 재조명했다는 점에서 그 정도는 봐줄 수 있지 않을까.

 

1789년 바스티유 감옥 습격으로 프랑스에서 대혁명의 불길이 솟아올랐다. 왕권신수설에 의해 국왕이 전권을 행사하던 국가 프랑스의 사회 시스템을 통째로 뒤엎어 버린 그런 인류사적 사건이었다. 국왕 루이 16세는 이미 9개월 전에 처형이 되었고, 17931016일 마리 앙투아네트는 국가재산 탕진과 반역죄 등 세 가지 죄목으로 기소되어 기요틴으로 처형되었다. 영화 초반에 등장하는 기요틴은 프랑스혁명의 폭력성을 상징하는 하나의 장치가 아니었을까.

 

그 다음에는 공화국이 들어서고, 로베스피에르의 공포정치가 실시되었다. 왕당파 일당은 국가의 적으로 규정되어 숱한 처형이 기요틴에서 이루어졌다. 훗날 나폴레옹의 유일한 사랑이 되는 조세핀 드 보아르네의 전 남편 역시 사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예나 지금이나 난세는 영웅을 위한 무대였다. 프랑스혁명에 질겁한 유럽 각국의 왕가들은 대불동맹을 결성해서 프랑스 혁명정부를 위협하기에 이르렀다. 무엇보다 프랑스 해군기지가 있던 툴롱항을 왕당파와 결탁한 영국군과 스페인이군이 점령했다. 이때 24세의 나이로 포병 대위였던 나폴레옹에게 국민의회 실력자였던 폴 바라스는 툴롱항 탈환을 명령한다. 나폴레옹과 그의 뤼시앵은 간신히 규합한 오합지졸의 프랑스 부대를 이끌고 강력한 요새에 주둔한 영국군을 기습해서 툴롱항 주변에 집결해 있던 영국 함대까지 격멸하는데 성공한다. 당시 나폴레옹과 뤼시앵을 파리의 인사들은 코르시카 깡패(thugs)”라고 불렀던 모양이다.

 

툴롱 전투를 승리로 이끈 나폴레옹은 단박에 공화국을 수호하는 군사 영웅이 되었다. 이 때 맺어진 조세핀과의 사랑과 우정은 나폴레옹의 평생 동안 지속된 애증의 관계의 시작이었다. 전쟁물을 기대한 관객들에게 어쩌면 영화 <나폴레옹>은 로맨스물로 비쳐질지도 모르겠다. 그만큼 영화에서 조세핀 역을 맡은 바네사 커비의 연기는 대단했다.

 

1795105, 파리에서 2만에 달하는 왕당파들의 반란이 일어나자 폴 바라스로부터 전권을 부여 받은 나폴레옹이 무자비한 진압에 나서 간단하게 그들을 진압해 버렸다. 그 다음은 청년기 나폴레옹의 일대기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이탈리아 원정이었는데 영화에서는 아쉽게 아예 빠져 버렸다. 모두가 불가능이라고 생각한 한겨울에 알프스를 넘는 기동으로 결국 부르봉 왕가 이래 유럽에서 숙적이었던 오스트리아를 제압하는데 성공했다.

 

영화에서는 비교적 짧게 다루어졌지만, 나폴레옹은 영국을 제압하기 위해 나선 이집트 원정에 나섰다. 다른 건 다 필요 없고, 이집트 호족부대원들 앞에서 자신의 장기인 대포로 피라미드 꼭대기를 포격해서 무너뜨리는 장면 하나만으로도 영화에 필요했던 볼거리는 거의 완벽했다. 하지만, 자신의 부관이 파리에 남아 있던 조세핀이 정부 이폴리트 샤를과 애정행각을 벌인다는 뉴스에 전선을 이탈해서 파리로 돌아와 한바탕 18세기판 사랑과 전쟁을 찍기도 했다.

 

이런 식으로 역사에 근거한 서사를 추구하다 보면 리뷰가 한도 끝도 없이 늘어질 판이다. 권력욕에 불타는 남자 나폴레옹은 쿠데타를 일으켜 자신의 통령의 자리에 오르고 그 다음에는 결국 황제가 되었다. 공화국의 구세주로 칭송받던 영웅이 독재자로 변신해서 왕의 권위를 능가하는 황제가 돼 버린 역사적 아이러니라니.

 

격변하던 시대를 장식하던 특징적 인물이었던 조제프 푸셰의 활약(?)을 볼 수가 없어 역시 아쉬웠다. 잠시 등장하고 사라져 버렸던가. 탈레랑을 내세워, 숙적 영국을 포위하겠다는 대전략은 러시아의 애송이 짜르 알렉산드르와의 악연으로 결국 실패해 버렸다. 훗날 러시아 원정으로 나폴레옹이 몰락하는 단초를 제공하기도 한 그런 인물이 바로 이 청년 짜르였다.

 

역시 영화의 압권은 누가 뭐래도 나폴레옹의 빛나는 승리였던 아우스터리츠 전투였다. 당시 유럽 대륙 최강의 대국이었던 러시아와 오스트리아 연합군을 체코 모라바 근처의 아우스터리츠 근처에서 나폴레옹의 빛나는 전략전술로 대파해 버렸다. 영화에서는 꽁꽁 얼어붙은 호수 위로 유인된 러시아-오스트리아 연합군이 나폴레옹이 숨겨 두었던 대포 포격으로 수장되는 시퀀스에서는 대가 리들리 스콧의 연출이 빛났다. 후방을 향해 빙판에서 전력질주하던 오스트리아군 기수가 프랑스군의 대포에 맞아 깃발, 기수 그리고 군마가 그대로 수장되어 버렸다.

 

하지만 이런 나폴레옹의 영광은 오래 가지 않았다. 그의 애정전선 역시 조세핀이 후계자를 생산하지 못하면서 제국의 위기로까지 비화됐다. 아이를 갖기 위한 각종 비방이 동원되고, 이럴 바에는 차라리 빨리 이혼해 달라는 조세핀의 요구가 이어졌다. 영화는 화려하고 장엄한 전투씬만큼이나 인간 나폴레옹과 그의 연인 조세핀이 이런 갈등에도 상당한 러닝타임을 할애한다. 아마 그런 점이 호만큼이나 오가 득세한 이유가 아닐까 싶다.

 

결국 자신의 생산 능력을 확인한 나폴레옹이 법원 서기(?) 앞에서 황후 조세핀과 공식 이혼을 선언한다. 이 장면도 역시나 영화에서 빼놓을 수 없는 그런 장면이었다. 조세핀과 15년에 걸친 결혼생활을 청산한 나폴레옹은 오스트리아 황제 프란츠 2세의 장녀 마리 루이즈와 결혼해서 마침내 그토록 바라던 후계자를 얻었다. 소중한 아들을 안고 옛 부인이자 애인인 조세핀을 찾아가는 나폴레옹.

 

자신을 배신한 애송이 짜르 알렉산드르의 볼기짝을 쳐주기 위해 무려 60만 대군을 동원해서 모스크바 원정에 나선 보로디노 회전에서 많은 사상자(28,000)를 내긴 했지만 승리하고 마침내 모스크바까지 점령하는데 성공했지만, 애송이 짜르의 수도 모스크바까지 홀랑 태워 버리는 비이성적 청야전술로 대군의 보급이 끊기고 러시아의 무시무시한 동장군의 공격까지 겹치면서 결국 4만 명만 귀환하는 참혹한 패배를 맞이한다. 기아와 추위에 허덕이는 프랑스 병사들 사이에서 아우스터리츠의 용사들을 외치는 그의 모습이 안쓰러울 지경이었다. 개인적으로 러시아 침공 초기, 러시아 게릴라부대원들이 프랑스 정예병을 상대로 유격전을 벌이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프랑스 침공군의 사기를 떨어뜨리기 위해 잔악한 행동도 마다하지 않는 장면에서는 충격을 받기도 했다. 황제 퇴위, 엘바섬 유배, 탈출, 조세핀의 죽음, 95일간의 천하 그리고 영화의 대미를 장식하는 워털루 전투가 이어진다.

 

자신의 운명을 가른 마지막 전투였던 워털루 회전에서 영국의 웰링턴 공작과는 초반에 비교적 대등한 전투를 보여주었다. 하지만 프랑스 기병대가 영국군의 방진대형을 뚫지 못하고 병력이 계속해서 소모되고, 12만 프로이센을 이끈 블뤼허 원수가 등장하면서 전세가 기울자 꼴사납게 나폴레옹은 자신의 상징처럼 되버린 바이콘(이각모자)에 총구멍이 난 채 도주해 버렸다.

 

나폴레옹 역을 맡은 호아킨 피닉스의 연기는 역시나 출중했다. 사십대 배우가 이십대 청년 연기를 한 게 좀 걸리긴 하지만 그 정도야 뭐. 호아킨과 극중에서 합을 맞춘 바네사 커비의 연기도 좋았다. 영화에서는 나폴레옹 평생의 연인이라는 점에 치중했지만, 역사에서 조세핀은 나폴레옹이 쿠데타로 권력을 장악하는데 있어 정치적 동지이기도 했다고 한다. 황후의 자리에 오른 뒤에는 마리 앙투아네트 버금가는 사치의 극한을 보여 주기도 했다. 나폴레옹을 몰아내는데 혁혁한 공을 세운 애송이 짜르가 나폴레옹의 옛 애인을 찾아가 마리오네트와 춤을 추듯 댄스홀을 누비는 장면도 씁쓸하게 다가왔다.

 

유럽대륙을 제패하고 호령한 영웅 나폴레옹의 이면도 여과 없이 드러낸다. 엄마라는 울타리에서 벗어나 보니 그 다음에는 조세핀의 포로가 되어 버렸다. 외적으로는 어떨지 몰라도, 내면적으로는 마마보이 같은 인물이기도 했던 모양이다. 허풍일지는 몰라도 알렉산드르와 대면하면서 평화 타령을 하면서도 자신이 원하는 협상이 진행되지 않으면 결국 무력을 동원하는 전쟁광이기도 했다. 아무래도 영화가 스케일 큰 전쟁 시퀀스와 조세핀과의 로맨스에 집중하다 보니 나폴레옹 법전이나 내치 같은 역사적 부분들을 거의 다루지 않은 면도 있다.

 

영화의 엔딩 시퀀스에서 나폴레옹 전쟁으로 자그마치 3백만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죽었다고 한다. 한 사람의 야망을 위해 이렇게 많은 인원의 희생되었다는 게 믿어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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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넬로페 2023-12-07 01: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나폴레옹 영화, 개봉했군요.
전혀 몰랐던 사실입니다.
가족들과 보러 가야겠어요.
호아킨 피닉스라~~
나폴레옹과 매치가 잘 되지 않는데 영화 보고 나서 판단해야 할 듯요^^
300만명의 죽음!
뭐라 말이 떠오르지 않습니다 ㅠㅠ

레삭매냐 2023-12-07 14:31   좋아요 1 | URL
넵, 어제 막 개봉한 따끈따끈한
영화랍니다.

호아킨 피닉스, 연기는 쵝오였습니다.
바이콘 쓰고, 전장에서 돌격하는 장면
이 멋지더군요.

나폴레옹 전쟁으로 너무 많은 인원
이 사망했는데, 정작 자신은 평화타령
을 하고 있다는 점이 역설적이었습니
다.

얄라알라 2023-12-10 15: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레샥매냐님께서는 평소 역사공부 역사소설을 깊게 하시니 같은 영화를 보셔도 찾아내시는 것도 다르시네요
저는 만약 보러 간다면 호아킨 피닉스의 연기가 궁금한 딱 그 수준의 물음표를 가지고 극장 갈텐데^^;;

나폴레옹의 평화타령이라!
어제 밤에 보고 온 [서울의 봄]에서 ˝추워추워˝를 연발하며 귀막이를 챙기는 국방장관 캐릭터가 생각나네요.

레삭매냐 2023-12-10 16:12   좋아요 1 | URL
12-12 사건의 가장 큰 책임자 중의
하나가 바로 그 추워추워 국방장관
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무런 명분도
없는 반란군들을 충분히 제압할 수
있는 권한이 있었지만, 자신의 안위
타령만 하다가 결국 비극이 시작되
었지요.

<나폴레옹>에 제가 아쉬운 점은
너무 방대한 이야기라, 여러 포인트
들을 생략했다는 점이 아닐까 싶습
니다. 알프스 원정이 제일로 아쉽습
니다. 영화에 담았다면 정말 스케일
이 대단했을 텐데 말이죠.

얄라알라 2023-12-10 16:27   좋아요 1 | URL
영화보고 새벽에 관련 영상 뒤져보니 참으로 그 ˝쫌˝스러운 귀막이
실제 청문회 모습에서도 영화와 다를 바 없이 비열하고 입만 살았더군요....분노수치 급상승해서 숨돌리느라 밤중에 야식이 필요했습니다
 
나의 우주는 아직 멀다 마스다 미리 만화 시리즈
마스다 미리 지음, 박정임 옮김 / 이봄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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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개월 만에 대학 친구들을 만났다. 올해 처음 본다고 생각했는데 나의 착각이었다. 후배 녀석은 정말 아주 오래 전의 일들을 마치 어제 있었던 일들처럼 그렇게 나에게 말해 주고 있었다. 그런데 정작 10개월 전의 일들은 기억하지 못한다. 물론 나의 기억도 그 녀석이 수정해 주었다. 오랜 친구들과의 만남은 여전히 만족스러웠다. 좀 추워서 집에 오는 길에 고생을 하긴 했지만. 뭐 정도는 감수해야지.

 

주말행사인 도서관 방문을 했고, 난 세 권들의 책들을 빌렸다. 그리고 도서관에서만 읽을 수 있는 만화를 좀 읽었다. <앨런의 전쟁>은 분량이 좀 있는 책이라, 다음에 가서 또 읽는 것으로. 그래도 한 60쪽 정도 읽었나 보다. 간만에 마스다 미리의 책이 눈에 띄어 골라 읽었다. <나의 우주는 아직 멀다>. 그전에 심심한 그림체의 마스다 미리 작가의 책들을 계속 읽었던 것 같은데 아닌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10년차 서점 직원인 쓰치다 신조가 주인공이다. 나이는 32. 도쿄에 작은 공간에 서식하는 초식남이다. 연애는 6년인가 7년 전이 마지막이라고. 당연히 설정은 성실하고 마음에 따뜻한 친구다. 이 책이 나온 게 9년 전이니 또 지금의 서점 상황과는 다르지 않을까 싶다. 모두가 알다시피 한국의 출판시장과 서점은 동반 몰락하고 있는 중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모든 걸 집어 삼켜 버린 너튜브와 각종 OTT 덕분이 아닐까 싶다.

 

극 중에서 마스다 미리는 쓰치다의 입을 빌려 왠지 흔들리는 전철에서 문고본을 읽는 어른들의 모습이 참 멋졌다는 말을 무심코 내던진다. 어제 약속 장소로 가는 전철 안에서(만원 전철이라 무엇을 할 수도 없을 정도였지만) 책을 읽는 사람은 단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나도 유디트 헤르만의 신간 <레티파크>를 가방에 담아 갔지만 정작 읽지는 않고 대신 핸드폰 게임을 했다. 2023년 한국의 전철 풍경은 그랬다.

 

얼마 전, 신문에서 서점에 들러 책을 사는 충동구매가 현저하게 줄었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문제는 주변에 그럴 만한 서점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아니 서점이 있다 하더라도, 내가 좋아하는 신간 소설 대신 참고서와 문제집만 즐비하다. 왜냐구? 소설책 판매만 해서는 돈을 벌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지난주에 갔던 경인교대 근처에는 서점이 하나도 없다. 그래도 명색이 대학인데 말이다. 이게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책과의 연결점이 계속해서 줄어들고 있다는 반증이 아닐까.

 

뭐 대충 잡아 2014년의 일본에서는 그래도 월급날이면 주머니가 두둑해진 월급쟁이들이 스스로에게 보상해 주기 위해 서점에 들러 책도 사고 그러던 시절이었나 보다. 왠지 낭만이 느껴지지 않나 싶다. 월급날이면 서점의 매출이 올라갔다는 말이 좀 신기하게 다가왔다. 정말 호랑이가 담배 먹던 시절의 이야기로구나. 요즘에는 주머니에 돈이 생겨도 책을 사지 않는다구요 마스다 미리 씨. 그리고 보니 나는 소소하게 공모주 청약으로 번 돈을 책 사는데 쓰고 있구나 싶다. 지난 금요일에 번 돈으로는 옆지기에게 타코 플래터를 사주었다. 다음주에 혹여 공모주로 조금 벌게 된다면, 이달에 나올 예정이라는 존 밴빌의 <케플러> 펀드에 응모하고 싶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쓰치다 씨는 자신의 일에 성실하고 마음이 따뜻한 소시민의 전형이다. 보통 혼자 먹는 저녁 메뉴로 할인된 장어 도시락을 기대하기도 한다. 거기에 나마비루까지 한잔 곁들인다면 아마 더 바랄 게 없겠지. 나도 아까 마트에 들렀다가 몰슨 비어가 4캔에 7,000원이라고 해서 잠시 혹했다. 지난주에만 두 번이나 달렸는데 당분간 자제해야지 싶어서.

 

서점 직원으로 아마도 자신의 일을 사랑하는 쓰치다 씨는 자기 인생의 의미에 생각하는 멋쟁이다. 우리는 보통 그런 생각을 잘하지 않으면서 살지 않나? 어려서 읽은 SF 소설에 나오는 이야기들을 빗대 우주에 대한 상상의 나래를 펼치기도 한다. 이 모든 이야기들이 마스다 미리 작가의 경험에서 나온 서사라면, 왠지 작가의 심리 상태에 연결되었다는 느낌이 살짝 들기도 한다. 쓰치다는 후배 마쓰다가 굳이 하지 않아도 될 일이라는 일들을 무람하게 해낸다. 서점 고객을 찾아 간다거나, 다른 서점에서 아이들을 위한 좌석 배치 혹은 동화 읽어주는 프로그램들을 자신의 서점에도 도입하는 건 어떻겠냐며 점장을 설득하기도 한다. 책을 팔아 수익을 내야 하는 서점에는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는 프로젝트가 아닐지.

 

요코하마에서 병으로 고생하시는 큰아버지를 찾아가는 장면도 눈길을 사로잡는다. 원래는 가지 않으려고 했으나, 역기 사람 좋은 쓰치다 씨는 큰아버지를 찾아가 쓸데없는 이야기로 웃기기도 한다. 병이 나으면, 긴자의 맛집을 찾아가자고 했던가. 병상의 큰아버지는 큰어머니에게 조카가 좋아하는 장어덮밥을 사오라고 부탁하신다. 병실에선 먹는 장어덮밥은 맛있지 않았다고 돌아오는 길에 쓰치다는 회상한다. 우리의 삶은 그렇게 흘러가는 모양이다.

 

마쓰다가 주선한 미팅은 완벽한 실패였다. 미팅에 나온사키에게 쓰치다는 호감을 표현하지만, 사키는 결혼할 애인이 있고 대타로 나온 거라고 말했다. 아니 이런! 그런데 정작 마쓰다의 애인이라고 생각했던 야요이가 여자사람친구였고 쓰치다에게 관심을 보여 둘은 영화도 보고 연애하는 사이로 발전하게 된다. 그런데 첫날 쓰치다가 야요이에게 대담한 제안(?)을 해서 독자를 놀래키키도 한다. 어라 이 친구, 이런 면이 다 있었네하고 말이다.

 

뭐 이 정도면 내가 <나의 우주는 아직 멀다>에서 읽은 것들에 대한 대강이 되지 않았나 싶다. 오랜 친구들을 만나 수다를 떨고, 시간에 쫓기며 관내열람 전용 만화를 보고 낮잠을 늘어지게 잔 다음, 일어나 교촌에서 허니콤보 치킨을 주문해서 실컷 먹고 나서 낮에 본 만화에 대한 소소한 감상들을 적는다. 그거면 된 거다. 그런데 설거지를 많이 해서 그런지 손등이 많이 텄다. 핸드크림을 발라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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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onnight 2023-12-03 22:1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오 주식으로 돈을 버시는 분이셨군요 레삭매냐님 존경♡ 직장 근처에 큰 서점이 있어서 가끔 점심시간에 책을 사곤 했었는데(현저히 줄었다는 충동구매 일인;) 최근 그 서점이 폐업을 했네요 ㅠㅠ;;

레삭매냐 2023-12-03 22:17   좋아요 2 | URL
아닛 누가 보면 목돈을 버는 줄
알갔습니다.
그런 건 아니고, 아주 소소하게
초큼 책값 정도 모으고 있답니다 ^^

새로 회사가 이사간 곳에 K문고
가 있어서 저도 점심 먹고 나서
가끔 구경간답니다. 새책 구경하
는데 제격이지요.

서점의 폐업, 그저 안타깝습니다.

2023-12-04 10: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12-04 22: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그레이스 2023-12-06 08: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ㅎㅎ
핸드크림 어디거 쓰시나요?
치킨 먹고픈 마음이 들게 하네요.
잔잔한 이야기인듯 보입니다.

레삭매냐 2023-12-06 10:58   좋아요 1 | URL
저는 아트릭스를 사용한답니다 ^^
집에도 하나, 사무실에도 하나
그리고 차에도 비치해서 며칠
동안 죽어라 쳐발쳐발했더니
손등이 다 나았답니다.

어젯밤에 먹다 나은 허니콤보 치
킨에 샘 애덤스 비루 한 깡 했습
니다.
 
어쩌면 당신이 원했던 세계사를 흔든 패전사 이야기 - 유튜브 채널 패전사가 들려주는 승리 뒤에 감춰진 25가지 전쟁 세계사 어쩌면 당신이 원했던 시리즈
윤영범 지음 / 북스고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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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튜브가 세상을 지배하는 시절이 왔다. 이제는 너튜브로부터 책으로 진화하는 그런 시절이 되어 버렸다. 사실 <패전사>는 예전에 빌레르 보카주 전투를 다룬 콘텐츠로 이미 접했지 싶다. 무장친위대 소속 SS 전차지휘관이었던 미하엘 비트만의 신들린 활약에 아마 넋을 놓았더랬지. 어떻게 아무리 독일군의 티거 전차가 막강하다고 하더라도, 영국군 전차여단을 무력화시킬 수 있단 말인지.

 

세상은 승리만 기억할 뿐, 패배에 대해서는 기억하지 않는다. 아니 일부러 쓰라린 패배의 기억으로부터 도피하려는 건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승리보다 패배가 훗날 더 도움이 되기 마련이다. 전쟁에서 그런 점을 배우게 된다면 그건 비극이다. 인명의 문제가 걸려 있기 때문이다. 어리석은 지휘관의 명령과 고집 때문에 수십만의 병사들이 전장에서 죽어나간 게 불과 100년 전의 일들이다. 아니 전쟁 자체가 없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모든 일에는 원인이 있기 마련이다. 가령 예를 들어 태평양전쟁의 도화선이 된 진주만 공격을 예를 들어 보자. 중일전쟁으로 광대한 중국이라는 전장에 발이 빠져 버린 일본에 대해 태평양에서 서로 이해가 충돌하던 미국은 전쟁을 그만 두고 철군하라는 메시지를 보냈다. 군부가 조종하는 일본 정부는 그럴 수가 없었다. 19417월 일본군이 비시 정부의 식민지였던 남부 베트남에 진주하면서, 상황은 급박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결국 미국은 미국내 일본 자산의 동결, 그리고 일본에게 가장 중요한 전략물자인 석유금수조치를 취하면서 좀 더 강경하게 중국에서 철군을 압박하기 시작했다.

 

연합함대 총사령관이었던 야마모토 이소로쿠 제독은 처음에는 대미개전에 반대했지만, 미국의 석유금수조치로 앉아서 죽을 수 없다는 판단 아래 결국 기동부대를 진주만에 전개하게 된다. 미국도 일본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는 점을 알고 있었지만, 안일한 대응으로 결국 진주만에서 정박 중이던 태평양 함대의 상당수가 격침되고 파괴되었다. 일본군이 무리를 해서라도 진주만에 대한 3파 공격에 나섰다면, 확실한 전과를 올릴 수 있었겠지만 그러지 않았고 미국은 진주만에 침몰한 전선들을 인양해서 곧 반격에 나서게 된다. 항모전단이 진주만에 없었던 것도 천운이었다. 미국의 진주만 패전은 패배가 아니었고, 일본의 진주만 기습 성공은 완벽한 성공도 아니었다.

 

노르망디 상륙 작전 후, 파죽지세로 파리를 해방하고 독일의 심장부로 진격해서 크리스마스 이전에 전쟁을 끝내겠다는 영국군 원수 몽고메리의 야심찬 계획이 바로 네덜란드를 해방시키겠다는 마켓가든 작전의 기본 얼개였다. 몽고메리는 우선 노르망디 상륙 후, 휴식을 취하고 있던 미국 82, 101 공수부대와 영국 1공정사단을 마켓 부대로 네덜란드 요충지에 강하시켜 교량을 확보하고, 지상에서 영국 30군단이 전차로 밀어 붙이는 가든 부대로 서부전선에서 패배를 거듭하고 있던 독일군을 일거에 섬멸하겠다고 연합군 총사령관인 아이젠하워를 설득했다.

 

원대한 계획이었으나, 이 또한 처절하게 실패한 작전으로 판명되었다. 현지 네덜란드 레지스탕스들이 수집한 정비를 위해 2개의 독일 SS 기갑부대들이 집결해 있다는 정보를 영국군은 애써 무시했다. 가장 중요한 목표인 아른헴 대교(영화 <머나먼 다리>의 배경)를 영국 1공정사단인 붉은 악마들이 악전고투 끝에 성공적으로 확보했지만, 후속부대인 30군단의 진격이 독일군의 치열한 저항에 요격되면서 결국 실패했다. 연합군이 압도적인 공군력을 이용해서 공중 보급에 나섰지만, 대부분의 물자들이 독일군에 수중에 들어갔다. 훗날 영국군을 포로로 잡은 독일군들이 연합군이 공중에서 보급한 보급품으로 적군과 싸우는 수지 맞는 장사였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마켓 가든 작전>은 처음부터 너무 낙관적인 전개를 기대했기 때문에, 작전이 실패할 경우 어떻게 한다는 플랜 B에 대한 구상도 없었다고 한다. 경무장한 소수의 공수부대가 독일군의 기갑부대를 상대한다는 자체가 어처구니없는 상황이었다. 모든 전투가 그렇듯, <마켓 가든 작전> 역시 지휘관의 무책임한 태도 때문에 애꿎은 병사들만 전장에서 소모된 경우였다. 아니 성공하면 오히려 이상한 작전이 아니었을까.

 

진주만 기습 후, 말레이 앞바다에서 벌어진 영국과 일본의 말레이 해전 역시 전쟁사의 흐름을 바꾼 일대 사건이었다.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해전은 거함거포 위주의 포격전이 중심이었다. 세계의 바다를 제패한 영국은 해상에서 압도적 전력으로 상대방을 제압해 왔다. 1차 세계대전에서 독일 역시 적어도 바다에서는 영국에 대항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함재기를 탑재한 항공모함의 등장으로 해전은 그 양상을 달리하게 되었다. 이미 진주만에서 항공모함이 주축이 된 기동함대로 재미를 본 일본은 이번에는 영국을 상대로 자신들의 혁신적 기술과 전략을 시험대에 올렸다. 태평양전쟁 개전 초기만 하더라도, 일본 전투기 조종사들은 훈련과 실전을 통해 얻은 실력으로 미영 연합군을 압도했다. 본국이 독일과의 사활을 건 전투를 벌이고 있었기 때문에 멀리 동방에 주력 부대를 파견할 수가 없었던 영국은 그래도 동양의 양대 진주(홍콩, 싱가폴)로 불리는 거점 가운데 하나인 싱가폴을 방어하기 위해 전함 프린스 오브 웨일스와 리펄스를 파견했다. 하지만, 먹잇감을 발견하고 그야말로 벌떼처럼 달려드는 일본 함재기의 공격 앞에 대영 제국의 전함들은 속수무책이었다. 본국에서 두 전함들의 격침 소식을 듣고 전시 수상이었던 처칠이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훗날 비슷하게 일본이 자랑하던 거함 야마토와 무사시가 비슷한 궤적을 겪게 되는 것도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까.

 

비교적 가까운 사례인 20056월 네이비 실이 투입된 레드윙 작전에 대한 이야기도 흥미로웠다. 탈레반 2인자 아흐마드 샤를 암살하기 위해 투입된 네 명의 네이비 실 정찰조의 위치가 탈레반 전투원들에게 노출되면서 적들의 공격에 노출된 대원들의 이야기다. 악전고투 끝에 마이클 머피 중위가 무선전화로 본부에 구조 요청하는데 성공했지만, 결국 탈레반의 총에 맞아 장렬하게 전사한다.

 

애초에 정찰 대원들이 아프간 민간인들에게 노출되었을 때, 자신들의 신변 보호를 위해 그들을 처치해야 한다는 논쟁부터 시작해서 본부와 무전연락이 두절되는 문제가 발생했다. 마지막으로 고립된 대원들을 구출하기 위해 출동했던 동료 대원들이 탄 치누크 헬기가 탈레반의 RPG 공격을 받고 추락하면서 헬기에 탑승했던 대원들이 모두 전사하는 참극이 발생했다. 이런 실화를 바탕으로 해서 <론 서바이버>라는 영화가 8년 뒤에 제작되기도 했다. 마크 월버그가 연기한 마커스 러트웰은 부상당한 채, 현지 파슈툰 사람인 모하메드 굴랍의 도움을 받아 구출되었다. 영화에서는 배우들이 실제로 낭떠러지에서 떨어지는 연기를 스턴트 없이 직접 연출했다고 했다던가.

 

너튜브 패전사에는 나오지만 책에서는 빠진 2차세계대전 당시, 미군과 독일군이 처음으로 맞붙은 시디부지드 전투와 카세린 협곡 전투도 주목할 만하다. 토치 작전으로 북아프리카에 상륙한 미군이 약체 비시 정부 프랑스군을 상대로 승승장구하다가, 정예 독일군과 처음으로 상대하게 되면서 그야말로 쓴맛을 제대로 보게 됐다. 모래먼지가 이는 사막에서 전차 운용을 해본 적이 미군의 기동부터 시작해서, 미군 지휘관 로이드 프레덴덜은 처음부터 너무 안일하게 독일군을 상대했다.

 

미군이 독일군과의 첫 교전에서 당한 쓰라린 패배에서 교훈을 얻었다가 이 패전의 주된 서사다. 난 그런데 그 점보다 패튼 장군의 사위가 포로가 되었다는 점이 더 흥미로웠다. 결국 패전 무렵에 가서야 포로생활에서 풀려난 패튼의 사위는 훗날 장인보다 더 많은 별을 단 사성장군이 되었다던가.

 

다양한 패전의 서사 속에서 내가 읽어낸 것은 전쟁은 반드시 없어야 한다는 점이다. 현재 9-19 합의파기로 한반도에 다시 무력충돌의 위험이 고조되고 있다. 항상 하는 말이지만, 어떤 형태의 전쟁에도 반대한다. 어떤 평화라도 전쟁보다 낫다는 사실을 왜 우리는 역사에서 배우지 못하는지 그 점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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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니스의 상인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66
윌리엄 셰익스피어 지음, 이경식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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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에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베니스의 상인>을 읽었다. 어제 인천에 갔다가, 우연히 집어 든 책이 바로 <베니스의 상인>이었다. 기록을 찾아 보니 지금으로부터 딱 12년 전에 같은 책을 읽었던 모양이다. 시간이 가고, 독자의 나이가 들면 새로운 것들이 보이게 되는가 보다. 지금으로부터 또 십년 뒤에 <베니스의 상인>을 읽게 된다면 어떤 감정일지 자못 궁금하다.

 

사실 셰익스피어의 <베니스의 상인>의 줄거리는 간단한다. 베니스의 거상 앤토니오의 절친 바싸니오는 벨몬트의 후계자인 포오셔 양에게 청혼하기 위해 거금 3,000다가트가 절실하게 필요하다. 결혼도 그 당시에는 어쩌면 사업이었을 지도 모르겠다. 그러니까 결혼 사업에 뛰어드는 이를 위해서는 투자비가 요구된다. 학자이자 군인인 바싸니오는 사람은 좋지만 그런 거금이 없다. 앤토니오 역시 자신의 모든 재산을 바다 위에 띄워 놓은 상태다. 전 세계에서 향료와 비단을 실은 배들이 베니스로 향하고 있는 중이다.

 

앤토니오는 고리대금업을 하던 유대인 상인 샤일록을 증오하지만, 어쩔 수 없이 그에게 자금을 융통한다. 그리고 자신을 모욕하는 앤토니오에게 앙심을 품고 있던 샤일록은 90일의 약속 기간을 정하고 만약 자금 회수 일정을 지키지 못한다면, 앤토니오의 살 1파운드를 취한다는 보증서를 작성한다.

 

이 보증서는 처음부터 악랄한 샤일록의 계략이었다. 처절한 복수를 원하는 그에게 3,000다카트의 12배가 되는 36,000다카트도 필요 없다. 오직 그에게 필요한 건 앤토니오 심장 부근의 살 1파운드다. 정말 살벌한 계약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야만스러운 계약은 처음부터 성립되지 않는다는 걸 계약의 쌍방이 알고 있지 않았을까? 어쨌든 앤토니오는 계약을 지키지 못했고, 결국 사태는 파국으로 흐른다.

 

희곡의 다른 축에서, 자금은 융통한 바싸니오는 포오셔의 작고한 아버지가 마련한 마지막 시험을 통과하고 마침내 포오셔의 남편이 되는데 성공한다. 이제 자신의 은혜를 갚을 시간이 되었다. 그리고 보니, 그전에 포오셔는 모로코 군주의 피부 색깔 때문에 그가 배우자의 관문을 통과하지 말기를 바라지 않았던가. 그 장면에서는 왠지 모를 인종차별주의적 시선이 느껴지기도 했다. 포오셔의 이미지는 오디세우스의 귀환을 애타게 기다리는 페넬로페이아의 그것과 유사하게 느껴졌다. 또 다른 영국 출신 구혼자에게는 이탈리아 어를 못한다는 이유로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나. 그 장면에서는 또 제노포비아가... 아 너무 PC만 추구한다는 느낌이 들 정도다.

 

어쨌든 포오셔는 바싸니오에게 언약의 반지를 건네 주고, 어떠한 경우에는 그 반지를 타인에게 양도하지 않는다는 약속을 받아낸다. 그런데, 이런 설정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앤토니오가 샤일록과의 약속을 지키지 못해 자신의 살점 1파운드를 떼낼 위기에 처한 것처럼, 바싸니오 역시 포오셔가 건네준 반지의 약속을 지키지 못할 운명이기 때문이다. 이런 빌드업은 고전의 전형이라고 봐야 할까. 터부는 반드사 깨져야 하고, 깨진 터부가 불러온 운명의 소용돌이가 긴장감을 창출하는 내러티브의 근간을 이루기 때문이다.

 

법정에서 자비 대신 복수만을 울부짖던 샤일록은 벨라리오 박사의 추천을 받은 법률전문가(포오셔의 변장)의 등장으로 나락으로 떨어지게 된다. 처음에 사람들이 요청한 대로, 원금이나 그 이상에 상응하는 보상을 받았다면 별 문제 없이 끝났을 재판의 진행이 자신의 명예와 평판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이 소중하게 생각하던 재산까지 송두리째 날리게 만들게 될 줄 누가 알았을까.

 

이번에 <베니스의 상인>을 다시 읽으면서 샤일록이 정말 원한 것은 자신의 사업을 위협하는 경쟁자의 제거가 아니었나 싶다. 중세/근대 시대 고리대금업은 선량한 기독교인들이 할 법한 사업이 아니었다. 저주 받은 유대인들이나 하는 사업이라는 생각이 강했던 모양이다. 고리대금업을 천시하고, 원금에 대한 이자보상을 무시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앤토니오가 샤일록의 눈에는 정말 눈엣가시 같은 존재였다.

 

바싸니오는 앤토니오를 양심적 상인이라고 말했지만, 내가 보기에는 그는 정말 일확천금을 노리는 투기꾼에 지나지 않았다. 당시 향료와 비단 수입이 엄청난 수지가 남는 장사라는 건 누구나 알고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모두가 자신의 전 재산을 그런 방식으로 투자하지는 않았다. 앤토니오가 샤일록을 통해 바싸니오에게 결혼 준비금을 융통해 주는 순간, 앤토니오의 모든 재산들은 바다 위에 불확실한 상태로 떠있었다. 만약 폭풍니나 해적에 의해 난파되거나 납치되었다면 앤토니오는 정말 알거지 상태가 되었을 것이다.

 

샤일록의 딸 제시커도 아버지의 뜻에 거슬러 다이아몬드 일체를 가지고 사랑의 도주행에 나서지 않았던가. 아무리 이교도의 딸이라고 하더라도, 이런 일탈은 허용되지 않았으리라. 중세 내내 탄압받던 유대인들을 이교도로 몰아 기독교인으로 개종하라는 주장은 그때나 지금이나 폭력적이라고 생각한다.

 

법정에서 앤토니오의 심장 부근에서 살점 1파운드를 떼내겠다고, 샤일록이 시퍼렇게 칼날을 가는 장면이야말로 셰익스피어가 빌드업에 성공한 희곡 <베니스의 상인>의 절정이 아닌가 싶다. 자신이 자초한 운명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앤토니오가 덤덤하게 받아 들이겠다며 친구 바싸니오에게 말하는 장면은 희극적이기도 하다. 만약 사태가 그대로 진행됐다면, 친구의 도움을 받아 포오셔와 결혼하게 되는데 성공한 바싸니오가 과연 행복하게 살 수 있었을까? 아마 그러지 못했으리라. 그가 진정 양심적인 학자이자 군인이었다면 그럴 수가 없었을 것이다. 자기 때문에 친한 친구가 죽었다는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단 말인가. 물론 이렇기 때문에 아내 포오셔가 나서서 조금은 사기가 연루(?)된 현명한 방식으로 해피 엔딩으로 이끌어 가지 않았던가.

 

문득 궁금해졌다. 나는 그동안 제목 <베니스의 상인>이 악랄한 유대인 상인 샤일록이라고 생각해 왔는데 다시 읽어 보니 멍청한 상인 앤토니오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상당히 중의적인 의미가 아닐까. 또 한편으로는 상인이 추구하는 목적인 이윤이 샤일록이 집요하게 구가하다가 결국 패가망신한 복수에 우선하고 중요하다는 메시지를 셰익스피어를 독자에게 전달하고 싶었던 것으로 추정해 볼 수도 있다. 그래 고전은 원래 이렇게 다시 읽는 법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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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3-11-26 15: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것 예전에 읽었는데 살을 베어가겠다는 말이 나오죠.ㅋ

레삭매냐 2023-11-26 18:58   좋아요 0 | URL
이번에 다시 읽어 보니,
정확하게 어디라고는 명시되어 있지
않고 그저 살 1파운드라고 되어 있더
군요.

그걸 샤일록이 무기 삼아 심장 부근
에서 살을 베어가겠다고...

법규정 적용의 허술한 점을 정확하게
타격한 게 아닐까 싶습니다.

물감 2023-11-26 15: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크으으 이거 진짜 재미있습죠.
셰익스피어의 매력을 제대로 느낄 수 있더라는.

레삭매냐 2023-11-26 18:59   좋아요 1 | URL
다양한 층위의 이야기들이 섞여 있
어서 그런지 말씀해 주신 대로 매력
뿜뿜이었습니다.

앤타이-세미티즘은 그 시절부터 존재
했었나 봅니다.

새파랑 2023-11-26 16: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역시 고전은 다시 읽어야 하는 법이군요~!! 레삭매냐님 리뷰 읽어보니 이 책 엄청 재미있을거 같습니다~!!

레삭매냐 2023-11-26 19:04   좋아요 1 | URL
대략의 줄거리들은 알고 있었으나
또 새롭게 보이니, 역시 고전 파워
가 아닌가 싶습니다 :>

페넬로페 2023-11-26 19: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릴 때 단순히 느꼈던 권선징악의 결과와는 다른, 훨씬 더 많은 것이 들어 있는 것 같더라고요.
유대인을 사악하게 몰아가는 법과 관습들이 지독하지 않았나, 라는 생각도 해봤어요~~

레삭매냐 2023-11-26 22:21   좋아요 1 | URL
말씀해 주신 대로, 저도 단순하게
권선징악으로만 보았는데 다시 또
읽어 보니 그런 것만은 아닌 것 같
습니다.

기독교 중심 사회에서 유대인들을
이교도로 보고, 십자군 전쟁 때도
그랬지만 유구한 차별의 역사를
다시 한 번 확인할 수가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