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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고 스트리트
산드라 시스네로스 지음, 권혁 옮김 / 돋을새김 / 2008년 7월
평점 :
절판



이제는 세상이 좋아져서, 인터넷을 통해 제공해 주는 위성사진으로 자기가 사는 곳의 대략적인 위치를 볼 수도 있게 되었다. 오늘 읽은 책의 배경이 되는 망고 스트리트 4006번지가 어디에 있는지 문득 궁금해져서, 구글 맵을 통해 찾아봤다. 그런데 노스 망고 애비뉴 4006번지가 시카고에 있다는데 정확한 주소는 아닌가 보다. 그게 무어가 중요한가. <망고 스트리트>의 작가 산드라 시스네로스가 그녀의 마음속에 지은 망고하우스는 (성공을 위해) 떠나지만 언젠가는 다시 돌아가야 할 마음의 고향이 아닌가.

지금으로부터 17년 전에 출간된 이 책은, 마이너리티로서 삼박자를 골고루 갖춘(여성-유색인종-하층민) 주인공이 자신의 삶을 영위하는 장소이면서도 결코 자신의 집이라고 인정하고 싶어 하지 않는 망고 스트리트에 있는 집을 배경으로 해서 벌어지는 갖가지 에피소드들을 다루고 있다. 미국에 삶의 터전을 마련한 여느 사람들처럼 그녀의 부모들도, “아메리칸 드림”을 쫓아 조국 멕시코를 떠나 미국으로 이주를 했을 것이다. 하지만 주인공 에스페란자가 처해 있는 환경은 도저히 그녀에게 그녀가 꿈꾸는 신분상승의 기회를 제공해 주지 않는다.

게다가 철저한 가부장 중심의 전통을 계승한 스페인 문화가 원조인 멕시코계 이민자들의 삶의 역정 역시 7남매 가정에서 유일하게 여자 형제인 에스페란자에게는 굴레로 작용하고 있다. 그래서 그녀는 당당하게, 가정에서 그녀의 역할에 반기를 들고 남자 형제들과 같이 행동하겠다는 폭탄선언도 마지않는다. 이것은 할머니 대에서 비롯되어 어머니 대에 이르기까지 면면히 이어져온 여성성의 억압과 남성종속적인 관계를 끊어내겠다는 자각한 새로운 세대의 기존의 가치와 질서에 대한 도전이다.

에스페란자의 불우한 친구와 이웃들 중에 많은 이들의 불행의 근원은 바로 남자들이다. 보수적인 아버지의 폭력에 시달리던 친구 샐리는 결국 어린 나이에 결혼을 하게 되지만, 그녀의 남편 역시 그녀에겐 동반자가 아닌 상전 같은 존재이다. 그녀의 이웃 라파엘라 역시 남편이 그녀를 집에다 가두는 통에 에스페란자 일당에게 가게에서 단 음료수들을 부탁해서 얻어 마시는 신세다. 세상에서 가장 민주화되고 개화되었다는 미국 사회에서 이런 일들이 일어날 법도 싶나 하지만, 작가는 감수성 예민한 십대 소녀의 눈을 통해 이런 지극히 비현실적인 그네들의 일상의 다반사들을 담담하게 그려내고 있다.

작가의 눈에 비치는 어른들의 세상은 지극힌 모순적이다. 나이를 속여가면서 취업을 시켜 주는 친지에, 거리에 널브러져 있는 술주정뱅이가 돈 1달러에 뽀뽀를 해달라고 하질 않나, 난생 처음으로 갖게 된 직장에서 믿을만하다고 생각한 동료가 강제로 입맞춤을 하는 둥 혼란 그 자체이다. 또래 친구들과의 관계 역시 조숙한 에스페란자에게는 덧없게만 느껴질 뿐이다. 물론, 책을 읽는 얼굴에 살풋하니 미소가 떠오르게 만드는 이야기들도 없진 않지만 이 상반되는 이미지들의 중간은 어디였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책의 뒷면에 나오는 카피에서는 이 책이 ‘성장소설’이라고 분류하고 있지만, 한편으론 소설이기에 앞서 44개의 산문시들의 모음집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어떻게 보면 지겨운 일상의 탈출을 꿈꾸며, 언제가 될지 모르는 미래에 자신만의 ‘눈처럼 조용한’ 집을 갖기를 원하는 작가의 소박한 꿈에서, 오늘도 미국 사회에서 치열하게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수많은 이민자들이 꾸고 있는 “아메리칸 드림”의 단면들이 얼핏얼핏 스쳐 보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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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한 권의 책에서 시작되었다 - 정혜윤이 만난 매혹적인 독서가들
정혜윤 지음 / 푸른숲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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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시사교양 다큐멘터리 프로듀서가 우리 사회의 다양한 11명의 독서가들과 만나 그들의 독서세계를 다뤘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결국은 타인과 소통하는 것이라고 하는데 그렇다면 타인들과의 소통을 통해 작가가 말하려고 했던 것은 무엇일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됐다.

우리가 영화를 보듯, 다른 이들의 독서세계를 엿보는 것 또한 하나의 관음적 재미를 제공해 줄는지도 모르겠다. 어쩌다가 내가 읽은 책의 제목이라도 나온다면 그 재미는 배가가 된다. 아쉽게도 위의 11명의 독서가들과 나의 교차점은 적은지 거의가 처음 들어 보거나 하는 책들이 많았다.

이 책에 등장하는 11명의 주인공들은 모두 엄청난 양의 독서를 했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작가는 한술 더 떠서 그런 이들과 만나면서도 전혀 딸리지 않는 독서내공을 보여주는 것으로 보아 독서의 고수가 틀림없을 거란 추측을 해보기도 했다. 개인적으로 얼마 전에 나갔던 오프라인 카페모임에서 리 차일드가 누군지 몰라, 물어 보기도 한 나로서는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는 냉혹한 현실이었다.

각각의 저명한 독서가들과의 이야기에는 테마가 있었다. 이를테면 <달콤한 나의 도시>의 작가인 정이현 씨와의 에피소드에서는 불안이 화두였다. 불안이 아주 존재하지 않을 수는 없고 덜 불안하고, 더 불안하다는 분류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예전에는 좋아하던 작가였는데, 언제부터인가 멀어지기 시작한 공지영 씨의 이야기에서는 다시 한 번 거리감이 느껴졌다. 사실 그녀의 개인적인 삶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었는데 이 책을 통해 알게 된 사실들도 적지 않았다. 불필요한 오해의 재생산이라고 해야 할까? 그녀는 세상과 ‘화해’하고 싶어 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녀와 세상과의 소통에는 여전히 넘어야 할 장애물들이 곳곳에 지뢰처럼 도사리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책을 읽으면서 정말 여러 군데에 연필로 밑줄을 좍좍 긋고 싶다는 강렬한 충동과 싸워야 했다. 특히 로맹 가리의 <새벽의 약속>에 나온다는 누군가의 ‘해피엔드’가 된다는 이야기에서는 가히 충격이었다. 어떻게 보면 짧다고 할 수 있는 이생에서, 누군가의 해피엔드가 될 수 있을까라는 조금은 묻기 어려운 질문에 자신 있게 ‘그렇다’라고 말할 수 있다면 더 바랄게 없을 것 같다.

80년대 후반, 사회구성체 논의를 이끌어냈던 이진경 씨의 책을 좋아해서 고독할 틈도 없었다는 고백 앞에서는 정말 형언할 수 없을 정도의 엄청난 공감을 할 수 밖에 없었다. 독서를 통해 책의 주인공들과 만나는 시간, 그 작가들의 생각들을 되짚어 가는 시간들은 내가 있는 공간 속에서 아주 유니크한 개인적 경험들과 화학반응을 일으키지 않는가.

언제나 그렇듯이, 빛이 강하면 그만큼의 어둠도 짙은 법. 책을 읽는 내내, 개인적으로 이 책을 지은 정혜윤 작가가 온전하게 인터뷰를 하는 사람들에 좀 더 집중을 해주었으면 더 좋았을 걸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자신의 개인적인 감상과 생각보다는 각 에피소드마다 전면에 나서는 이들의 목소리 분량이 부족한 점이 못내 아쉬웠다.

동시대를 살아가고 있으면서도 이렇게 많은 삶의 군상들의 모습들이 다채로운 스펙트럼을 가지고 펼쳐지고 있다는 사실을 이 책을 통해 다시 한 번 깨닫게 되었다. 이거야말로 진정으로 준비하지 못한 기쁨과의 만남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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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의 미궁
티타니아 하디 지음, 이원경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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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2001년 9월 11일, 미국의 쌍둥이 빌딩이 공중에서 납치된 여객기 테러로 무너진 이래 범세계적인 음모론이 대세인 것 같다. 이상하게도 이런 음모론의 다른 한 축에는 언제나 종교가 한 축을 담당하고 있었다. 그건 아마 종교가 부여하는 전승과 신화들에서 비롯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호주 출신의 여류작가 티타니아 하디가 이번에 발표한 <장미의 미궁>에서도 주인공들과 대립각을 만드는 이들은 바로 맹신적 종교에 심취한 악당들이다.

이미 기존에 발표된 <성혈과 성배> 그리고 그 유명한 <다빈치 코드>에서도 모두 초기 기독교에서 이단으로 배척받은 영지주의(그노티시즘)의 영향들이 곳곳에서 보인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이 아닌, 학습이나 은밀한 깨달음을 통해 진리에 다가서고 구원에 이를 수 있다는 믿음의 코드가 <장미의 미궁>에서도 반복된다.

16세기말 마지막 마법사라는 이름으로 엘리자베스 여왕의 총신이었다는 존 디(John Dee) 박사와 이단으로 몰려 화형당한 이탈리아의 지오다노 브루노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존 디 박사가 자신의 가문에 딸들에게 남긴 비밀상자를 찾아내고 여는 과정을 다룬다. 400년의 시공을 넘나들면서, 티타니아 하디는 주인공들인 윌, 루시, 알렉스 그리고 그들의 친구들인 사이먼과 그레이스, 아버지 헨리와 죽은 어머니 다이애나를 차례로 등장시킨다.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프리랜서 사진작가인 윌과 런던에서 잘나가는 면역학 전문의인 윌의 알렉스. 그리고 알렉스의 환자로 심장이식을 받게 된 루시가 스태포드 가(家)에 대대로 전해져 오는 비밀을 푸는 주인공들이다.

한편,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아마겟돈 전쟁으로 자신들과는 다른 종교를 가진 이들과 어중간한 입장을 취하고 있는 이들과의 마지막 대결을 원하는 일단의 무리들을 대변하는 피철런 월터스가 이끄는 비밀조직이 존 디 박사가 천사들과 나눴다는 비밀스러운 대화를 알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알렉스와 루시들을 협박하기에 이른다.

팩션이라는 장르답게 아예 있지도 않은 이야기들을 다루는 것이 아닌, 존 디나 혹은 지오다노 브루노와 같은 실존 인물들을 거론하면서 적절하게 있을 법한 이야기들을 작가는 곳곳에 포진시킨다. 그리고 역시 미스터리 소설에서 빠질 수 없는 수수께끼들을 적절히 섞어낸다. 장소적 장치들을 보자면, 댄 브라운의 <다빈치 코드>에서 로즐린 예배당과 같은 역할을 <장미의 미궁>에서는 프랑스의 샤르트르 성당의 미로가 대신하고 있다.

소수의 인원들에게 알려졌다는 영지주의 아이디어들도 이제는 더 이상 새로워 보이지가 않는다. 책에서도 잠시 언급되는 <도마복음서>는 물론이고, 얼마 전 공개되어져서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유다복음서>에 이르기까지 너무 많이 알려진 탓이 아닐까 싶었다. 그리고 책에서 많이 등장하는 셰익스피어 작품들에 대한 인용에서도, 무지의 소산 탓인지 주석이 없었더라면 정말 따라 가기가 쉽지 않았을 것 같았다.

유대교 비전의 근거한 카발라 사상에서 연유된 세상의 모든 것이 숫자에 의해 규명될 수 있다는 주인공들의 추리에서는, 지금으로부터 10년 전에 나온 영화 파이(감독 대런 애로노프스키)가 떠올랐다. 예를 들어 남자의 수가 33, 여자의 수가 11이라고 하면 아이의 수는 44라는 식의 아이디어들이 <장미의 미궁>에서도 주인공들이 존 디 박사가 남긴 비밀상자 추적에 큰 역할을 해주고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신경세포의 기억의 전이라는 의학적으로 아직 규명되진 않았지만,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는 시도나 치밀한 인과관계에 의해 진행되는 뛰어난 구성에 호감이 갔다. 결국 결말에 가서는 ‘권선징악’이라는 조금은 평면적인 진행이 아쉽기는 했지만 ‘한여름밤의 미스터리’로서는 손색이 없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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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질링 살인사건 찻집 미스터리 1
로라 차일즈 지음, 위정훈 옮김 / 파피에(딱정벌레)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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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제목부터가 이국적이지 않은가. 다질링이라, 차를 좋아하는 이라면 한 번 들어봤을 법한 차의 이름이다. 인도 히말라야 산맥 접경에서 난다는 고급 차라고 한다. 나도 예전에 펄 스타일로 만들어진 다질링 차를 즐겨 마셨던 기억이 난다. 돌돌 말린 찻잎이 인퓨저 안에서 퍼지면서 향을 맡는 느낌이 참 좋았었다.

그런데 차하고 살인사건이라, 도대체 어떻게 연결이 된다는 거지? 이에 대한 의문은 <다질링 살인사건>의 주인공 시어도시아 브라우닝을 만나면서 자연스럽게 풀린다. 찻집 살인 시리즈를 발표하고 있는 이 책의 저자 로라 차일즈의 페르소나라고도 할 수 있는 시어도시아는 미국 남부의 사우스 캐롤라이나 주(州)에 있는 찰스턴에서 <인디고 찻집>을 운영하고 있는 당찬 여사장이다.

유서 깊은 미국의 제주들에서 시행되고 있는 올드 맨션 투어 중의 하나인, <램프라이터 투어> 행사가 벌어지던 어느 맨션에서 악명 높은 부동산 개발업자가 의문사를 당한다. 그의 죽음에 대한 단서는 바로 그가 마시고 있던 차라고 한다. 이제부터 민완탐정 시어도시아의 활약이 시작된다.

조그만 마을의 풍문 덕분에 그녀의 찻집은 장사가 잘 되지 않기에 이른다. 단골손님을 상대로 해서 하는 장사가 다 그렇듯이 말이다. 결국 그녀는 자신의 사업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루머의 근원을 제거하고, 주변인들이 용의자로 몰리게 되는 상황에 이르게 되자 직접 나서게 된다.

여느 미스터리를 다룬 소설답게 작가 로라 차일즈는 한 명 한 명 주변의 의심스러운 이들을 리스트에 올린다. 이 과정은 주인공 시어도시아를 비롯한 등장인물들의 자세한 심리묘사와 더불어 책을 읽는 이들을 몰입하게 만든다. 게다가 곳곳에 등장하는 대화들과 각주를 통해 우리가 모르고 있었던 다양한 차의 종류들과 어떤 마음의 상태에는 어떤 차가 좋다는 식의 상세한 정보까지 곁들여 주고 있다. 아마 여류작가 특유의 섬세함이라고나 할까.

이 책의 표지가 무척이나 인상적이었다. 우선 <인디고 찻집>의 당찬 여주인 시어도시아가 오른쪽 눈으로 윙크를 하면서 차를 따르고 있다. 그 옆으로는 달브라도라는 그녀가 만들어낸 새로운 품종의 애견 얼 그레이(물론 차의 이름이다)가 씩 웃으며 자리하고 있다. 찻잔 옆으로는 살인사건의 피해자 휴즈 배런으로 보이는 작은 사람이, 찻집의 종업원 헤일리가 구운 과자와 함께 떨어지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하지만 여기에서 가장 눈여겨 볼 것은 시어도시아의 앉은 자세이다. 아크로바트나 요가를 해보지 않은 사람이라면 도저히 나오지 않을 것 같은 포즈가 아닌가.

홍차라는 지극히 평범한 소재를 가지고서도 이런 흥미 있는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로라 차일즈의 계속되는 이야기들이 무척이나 궁금하다. 후속작으로, 역시 같은 장소인 찰스턴에서 벌어지는 사건을 다룬 <건파우더 녹차 살인사건>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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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리보다 소중한 것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하연수 옮김 / 문학수첩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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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오랜만에 하루키와 만난 것 같다. 하루키의 열혈 팬임을 자부하는 동생 덕분에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들을 읽게 되었었다. 새로 나온 책인가 하고, 책을 펴보니 2001년에 나온 <시드니!>가 원작이라고 한다. 난 마라토너를 주인공으로 한 소설이라고 생각을 했었는데, 지난 2000년 시드니 올림픽 기간 중에 직접 시드니를 찾은 하루키가 현장을 누비면서 직접 쓴 글이었다.

8년이나 지난 당시의 일들은 사실 거의 기억이 나지 않았다. 게다가 당시에 올림픽에 대해 거의 관심이 없었던지라 누가 무슨 메달을 따고 그랬는지도 알 도리가 없었다. 하루키는 이 책을 쓰는 내내 올림픽이 “지루”하다고 했지만 난 한술 더 떠서 그 지루함에 아예 동참할 생각이 없었나 보다. 어쨌든 언론사에서 준 미디어 패스를 목에 걸고, 현장을 취재한 하루키 덕분에 생생한 당시의 상황들을 지면으로나마 간접체험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하루키는 자신이 올림픽 종목 중에서 가장 관심 있어 하는 종목인 철인3종경기와 마라톤에 대해 심층적으로 다룬다. 하루키의 이 책을 통해 알게 되었는데, 당시 여자 마라톤에서 일본 선수가 금메달을 땄었다고 한다. 그 이름은 책을 읽었어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하루키가 책에서 내내 근대 올림픽 정신을 훼손시키는 두 가지 해악으로 짚은, 상업주의와 국가주의 중에서 두 번째 이유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사실 기업의 입장에서 보면, 전 세계인들의 시선을 한데 모을 수 있는 올림픽 경기에 스폰서를 맡는 것처럼 효과적인 홍보의 기회가 없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세계의 유수한 기업들이 너도나도 달려들어 날이 갈수록 그 비용이 늘어가는 올림픽 스폰서쉽에 그렇게 막대한 비용을 투자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개인적으로 생각하기에, 국가주의만큼이나 상업주의도 스포츠계에서 경계해야할 것이다.

하지만 나도 한국 사람인 이상, 당시 동메달이 걸린 한일야구전에서 우리나라 대표 팀이 지금은 보스턴 레드삭스에서 뛰고 있는 당시 일본팀의 에이스 마츠자카를 넉다운시키는 장면에서만큼은 뿌듯한 감정을 억누를 수가 없었다. 게다가 일본 킬러로 알려진 4번 타자 김동주의 결승타로 결국 일본을 꺾었으니 말이다. 어쩌면, 하루키는 이런 마음들을 예리하게 사전에 짚어낸 것일지도 모르겠다.

다양하게 펼쳐지는 올림픽 경기들 외에도 올림픽 기간 동안만이지만, 오지(Aussie:호주) 사람들과 지내면서 그들의 일상을 담담하게 글로 담아내는 과정이 참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다년간의 외국생활 덕분인지 어쨌든지(아니면 자신의 말대로 괴짜 일본인이어서 그런지), 일본인 특유의 ‘국가주의’ 정신 대신 절제된 감정의 표현들이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동시에, 나도 이런 경험을 해봤으면 하는 부러운 마음이 드는 것도 어쩔 도리가 없었다.

그런데 정작 제목으로 뽑은 “승리보다 소중한 것”이 뭐지?라는 질문에는 슬쩍 비켜 가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어차피 그런 것은 뭐 독자 개개인이 판단할 부분이니 우리는 하루키 선생이 중계해 주는 지난 시드니 올림픽의 재방송을 보는 재미에 흠뻑 빠지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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