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정천 가족 작가정신 일본소설 시리즈 24
모리미 토미히코 지음, 권일영 옮김 / 작가정신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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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여름, 처음으로 일본의 천년고도 교토를 찾았다. 열흘간의 간사이 지방 여행에서 나는 특히 교토를 만끽할 수가 있었다. 그 좋다는 교토의 벚꽃 지는 계절을 못 보아서 그런진 몰라도 지금도 벚꽃이 질 무렵이면, 교토에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최근에 그런 교토에 대한 나의 그리움에 불을 싸지른 책이 있으니 바로 모리미 도미히코 작가의 <유정천 가족>이 그 주인공이다.

이 책의 주인공은 놀랍게도 너구리이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너구리를 주인공으로 삼았을까? 고집스레 교토의 거리를 공간적으로 배경으로 한 일련의 작품들을 꾸준하게 발표하는 교토 대학 출신의 도리미 도미히코 작가는 “판타지 가족 소설”이라는 틀에, 둔갑술에 능하고 거의 인간처럼 묘사되는 너구리들이 아마 자신의 소설에 주인공으로 제격이라고 생각한 게 아닐까.

<유정천 가족>에는 주인공인 너구리, 인간 그리고 텐구라는 세 부류의 캐릭터들이 등장한다. 아카다마 포트와인을 즐기는 아카다마 선생(텐구)을 필두로 해서, 선생이 흠모해 마지 않는 아름다운 미모의 벤텐(인간) 그리고 시모가모 너구리 일족이 나온다. 실질적인 주인공은 시모가모 집안의 삼남 야사부로로 훌륭하게 바보의 피를 이어받아, 엉뚱하고 기발한 장난을 치는 데 있어 따를 너구리가 없다. 둔갑술은 말할 것도 없고. 아울러 악당 너구리들로 등장하는 에비스가와 집안의 멍청이 금각, 은각 형제 역시 <유정천 가족>에서 슬랙스틱 코미디에 어울릴 법한 사이드킥으로서의 역할을 멋지게 해내고 있다.

한편, 교토의 다다스 숲에 평화롭게 은거하며 사는 시모가모 너구리들에게는 씻을 수 없는 트라우마가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그들의 아버지로 위대했던 너구리 시모가모 소이치로가 흉악한 인간들의 모임인 금요구락부의 송년 모임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쇠 냄비요리의 재료로 잡혀먹혔다는 끔찍한 사실이다. 그런 연유로 야사부로의 작은형 야지로는 우물 속의 개구리로 세상을 등진 채 살아가고, 소이치로의 자식들은 모두 변변치 못하다는 세간의 평을 듣고 산다.

너구리들의 지도자인 차기 니에세몬 자리를 두고 경합을 벌이던 야사부로의 큰형 아이치로와 악당의 면모를 유감없이 갖춘 그들의 작은아버지 에비스가와 소운의 대결이 그야말로 불을 뿜는다. 에비스가와들의 음모에 맞서 과연, 시모가모 너구리들은 예의 위기를 벗어날 수 있을지. 천년고도 교토를 무대로 한 너구리들의 대혈투가 벌어진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나는 어쩔 수 없이 오래전에 본 애니메이션 영화 <폼포코 너구리 대작전>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우리나라에서는 고래의 전승설화나 민담에서 너구리에 대한 이야기들이 그다지 많지 않은 편인데, 일본에서는 우리와 달리 거의 모든 형태의 둔갑이 가능한 너구리들에 대한 이야기들이 인기를 끄는 모양이다. 현 일본 국왕이 너구리에 대한 논문을 집필할 정도면 말이다. 모리미 도미히코 작가도 바로 그런 점에 착안해서, 너구리 삼부작의 효시로 <유정천 가족>을 발표하지 않았을까 하는 추정을 해본다.

곳곳에 등장하는 ‘매우 진한 바보의 피’를 이어받은 너구리들의 좌충우돌 이야기와, 가장을 잃은 시모가모 너구리들이 홀로 남은 어머니를 중심으로 똘똘 뭉쳐 험한 세파를 헤쳐나가는 모습에서 작가가 의도했던 “판타지 가족 소설”의 원형을 다시 생각해 보게 됐다. 소설에 나오는 주술적 리얼리즘을 배제하고, 너구리들의 자리에 인간을 대입시켜 보면 우리네 던적스러운 살이와 다를 게 없지 않은가 말이다.

사실 책 표지의 일러스트에서 이미 소설의 많은 부분을 설명해 주고 있다. 시모가모네 둘째인 개구리 야지로가 변신한 가짜 에이잔 전철에 엄마, 야이치로, 주인공 야사부로 그리고 야시로가 탑승해 있다. 가짜 전철의 뒤편에는 너구리들의 영원한 스승 아카다마 선생과 선생의 애제자인 아리따운 벤텐이 한 칸을 차지하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게다가 야사부로는 결말 부분에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는 아카다마 선생의 바람신 천둥신의 부채도 오른손에 쥐고 있지 않은가! 말이 필요 없다, 이보다 더 멋진 표지는 아마 없을 것 같다.

<유정천 가족>은 모리미 도미히코 작가의 너구리 삼부작 중에 첫 편이라고 하는데, 과연 다음에 나올 차기작에서는 과연 어떤 너구리들의 이야기가 펼쳐질지 벌써부터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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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탈레온과 특별봉사대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4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 지음, 송병선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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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 작가의 책들을 꾸준하게 모아왔다. 하지만, 문제는 읽지 않았다는 거. 이번에 문학동네에서 출간된 세계문학전집 시리즈에 바르가스 요사의 <판탈레온과 특별봉사대>가 들어 있다는 소식에 이번에는 꼭 그의 작품을 읽어야겠다는 결심을 다졌다. 지난 금요일에 드디어 시리즈가 나왔다는 소식을 들었고 어제 주문을 해서, 하루 만에 다 읽어 버렸다. 마치 그동안 추앙해 오던 이와의 첫 만남 같았다고나 할까, 그야말로 짜릿한 독서 경험이었다.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는 페루 출신의 작가로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카를로스 푸엔테스,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와 더불어 1960년대, 1970년대 라틴아메리카의 붐 문학을 주도한 작가로 유명하지만, 콜롬비아 출신의 노벨문학상에 빛나는 마르케스에 비해 국내에는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작가이기도 하다. 젊어서는 쿠바혁명에 동조하기도 했지만, 2000년대 들어서는 신자유주의를 예찬하는 정치적 변신을 하기도 했다. 문학 작품은 물론 정치적 활동도 활발해서 1990년에는 페루 대통령 선거에 나서, 후지모리에게 패한 전력도 있다. 





<판탈레온과 특별봉사대>는 1973년에 발표된 바르가스 요사의 다섯 번째 작품으로, 그의 조국 페루의 동부에 있는 로레토주의 수도 이키토스를 공간적 배경으로 하고 있다. 시대적 배경은 1956년, 아마존 정글에 배치된 자랑스러운 페루의 육군 병사들은 숨 막힐 듯한 무더위와 습한 분위기 때문에 용솟음치는 남성적 욕구를 주체하지 못하고 인근 마을의 부녀자들을 습격하는 패악을 저지른다. 리마에 자리 잡은 육군 본부에서는 판탈레온 판토하 대위라는 사관생도 출신의 청교도적 품성을 지닌 매우 유능한 젊은 장교를 이키토스에 파견하여 예의 급한 문제를 처리하도록 한다. 병사들의 난행을 막기 위해 비밀리에 그 임무가 모호한 특별봉사대를 조직해서 운영하라는 명령이 하달된다.

이미 3대째 군인 집안으로 자란 판탈레온 대위는 조국과 군대를 위해 봉사하라는 철저한 군인정신으로 무장되어 있다. 금주, 금연 그리고 금욕이라는 삼금(三禁)을 삶의 철칙으로 삼는 판탈레온은 이키토스로 부임하자마자 특별봉사대원들을 선발하기 위해 지역 민간업자들과 관계 형성을 위해 마시지도 못하는 술을 먹게 된다. 이런 판탈레온의 일탈적인 행위로 신혼의 아내 포치타와의 가정생활에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진다. 





한편, 판탈레온의 비밀 임무 수행과 더불어 아마존 밀림 지역에 프란시스코 형제가 이끄는 ‘방주의 형제단’이라는 이단적인 신흥종교가 발흥하면서 기존의 가톨릭 교회와 충돌하면서 갈등을 고조시킨다. 그들은 십자가에 각종 곤충과 동물들을 못박는 만행을 저지르는데, 군중은 묘하게 그들의 주장에 동조하게 된다. 어쨌든 육군의 유능한 행정장교 판탈레온은 아마존 지역에 근무하는 병사들의 본능적 욕망을 시간과 횟수로 수치화하면서, 수국초특(수비대와 국경 및 인근 초소를 위한 특별봉사대)를 드디어 가동시키기에 이른다. 모든 일탈적인 행위를 배제한 ‘단순하고 정상적인 봉사’를 모토로 삼은 판탈레온과 그의 협력자들은 부패한 지방 경찰의 착취에 시달린 미래의 봉사대원들을 순조롭게 스카우트한다.

수국초특의 임무수행은 순조로워 보이지만, 아마존 오지에 흩어져 근무하는 수많은 병사의 욕망은 무한하다. 판탈레온은 지역 책임자인 스카비노 장군과 끝없는 마찰을 빚으면서 수국초특의 증원과 예산확보를 위해 고군분투한다. 왜 병사들에게만 특혜를 베푸느냐는 민간인들의 항의는 물론, 부사관과 장교들에게까지 서비스를 확대하라는 압력에 놓이게 된다. 설상가상으로 방주의 형제단은 멀쩡한 사람들을 십자가에 순교시키는 만행을 저지르면서 경찰과 군의 주의할 대상으로 떠오르게 된다. 이런 난장판 가운데, 과연 판탈레온 대위의 기상천외한 작전은 성공할 수 있을까?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는 아마존 정글이라는 오지에 떨어진 병사들의 은밀한 욕망과 군에 의해서 비밀리에 인가된 특별봉사대라는 조직의 만남을 블랙 코미디라는 형식을 통해, 해학적으로 독자들에게 전달한다. 가톨릭 신앙이 공식적으로 인정된 페루 사회이지만, 그 사회구성원의 저속한 성적 욕망의 폐해에 대한 작가의 냉소는 신랄하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육지책으로 조직된 특별봉사대에 대한 시민의 시선은 시기와 비난으로 뒤범벅되어 있다. 글을 쓰던 도중에 필요악(necessary evil)이라는 말이 절로 떠올랐다. 아, ‘죽은 사람 깨우기’(109쪽)와 분홍돌고래 기름에 대한 아마존 사람들의 미신과 판탈레온의 실제 체험보고서에서는 그만 웃겨서 숨이 넘어가는 줄 알았다.

청교도적인 바른 생활 사나이 판탈레온 대위의 추락은 특별봉사대의 조직과 더불어 어쩌면 예기된 사태일지도 모르겠다. 곧은 대나무일수록 더 잘 부러진다고 했던가. 상명하복의 철저한 군인정신으로 무장한 판탈레온은 임무의 효율적 달성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 매진하지만, 수국초특 조직이 커질수록 그에 따르는 비난의 수위 역시 높아져만 간다. 그의 임무에 대한 갈등을 더하게 하는 요소로 <신치의 소리> 방송의 해설가 신치 역시 자신의 몫을 요구하면서 판탈레온을 곤경에 빠뜨린다. 공정한 방송 대신 사리사욕에 빠진 부도덕한 신치의 모습은 통제받지 않는 권력으로서의 언론에 대한 작가의 예리한 일침이다. 





작가는 다양한 방법으로 이야기의 본질에 다가선다. 사실 첫 장을 읽으면서, 몇 개의 대화가 뒤죽박죽으로 섞인 구성과 연속성의 부재로 조금 혼란스러웠지만 읽다 보니 금세 적응이 됐다. 판탈레온이 작성한 군인 스타일의 보고서와 회신 그리고 포치타의 장문의 편지 등으로 이루어진 구성이 아주 신선했다. ‘미스 브라질’ 올가와 어쩔 수 없이 사랑에 빠지게 된 판탈레온을 자신을 제외한 모든 이들이 그의 ‘봉사’를 비난했지만 결국 그들 역시 특별봉사대원의 ‘봉사’를 받고 있었더라는 에필로그가 무척이나 씁쓰름하게 다가왔다.

촌철살인의 블랙 유머와 사회의 위선에 대한 통렬한 냉소가 곳곳에서 작렬하는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의 <판탈레온과 특별봉사대>는 재밌고, 심지어 통쾌하기까지 하다. 그렇다고 해서 이 책에 타고난 이야기꾼인 바르가스 요사의 블랙 유머만 담겨 있는 것도 아니다. 한 개인의 고독, 분노 그리고 두려움에 대한 망상도 엿볼 수가 있다. 처절한 고독과 외로움에 몸부림치는 이들이여, 환상의 나라 판티랜드에 오신 것을 환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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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탈레온과 특별봉사대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4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 지음, 송병선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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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존밀림을 무대로 해서 펼쳐지는 기상천외한 특별봉사대 이야기에 흠뻑 빠져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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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스호퍼
이사카 고타로 지음, 오유리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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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여름 <골든 슬럼버>로 이사카 고타로와 첫 번째 만났다. 잘 알려지지 않은 비틀스의 동명의 곡을 제목으로 한 역작에서, 이사카 고타로 스릴러의 맛을 볼 수가 있었다. 이사카 고타로는 이번 여름에 찰리 채플린의 동명의 영화 제목 <모던 타임스>로 독자들의 안달을 유도했고, 이번 겨울에 아주 잘 맞아떨어지는 <그래스호퍼>로 다시 우리 곁을 찾아왔다.

어제 집에 가는 퇴근길에, <그래스호퍼>의 세상 속으로 점프해 들어갔다. 조금 혼란스러울 수도 있지만, 스즈키, 구지라 그리고 세미의 순환되는 구성이 아주 마음에 들었다. 세 명의 주인공 중에 가장 먼저 등장하는 스즈키는 2년 전까지만 해도 아주 평범한 중학교 수학선생이었다. 하지만, 사랑하는 아내가 데라하라라는 깡패에게 교통사고를 통해 죽게 되자, 복수를 불태운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다단계 피라미드 조직인 데라하라의 프로이라인(독일어로 영애:令愛를 의미)에 복수를 위해 잠입한 스즈키는 조직원으로부터 생판 모르는 이들을 처리하라는 어처구니없는 임무를 받는다.

두 번째 주인공인 구지라(일본어로 고래를 의미한다)는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만이 유일한 소설이라고 생각을 하는 전문 자살 유도 킬러다. 오늘도 의뢰인인 의원 출신의 가지로부터 자신의 비서를 은퇴시키기 위해, 호텔방을 찾는다. 킬러와 도스토옙스키라니! 책이 닳도록 <죄와 벌>을 애독하는 구지라에 대한 묘사는 기괴하기까지 하다. 곳곳에서 도스토옙스키의 명문장을 구사하는 구지라는 33번째 희생자를 은퇴시킨다. 이 두 명의 주인공을 묶어 주는 사건은 바로, 스즈키의 원수 데라하라의 갑작스러운 죽음이다. 또 다른 밀치기 킬러의 개입으로 데라하라는 비명에 간다.

세 번째 주인공 세미(일본어로 매미를 의미한다)는 능숙한 칼잡이로 일가족 몰살이 장끼란다. 의뢰받은 사건을 처리한 세미는, 사건 현장에서 우연히 영화 한 편을 보고 자신의 상황을 반추해 보게 된다. 일은 항상 자기가 처리하는데, 자신의 상관이라고 할 수 있는 이와니시의 인형처럼 조종되는 자신의 신세가 처량하기만 하다. 깨달음은 언제나 그렇듯이 삶의 본질에 대한 회의로부터 시작된다고 했던가, 세미는 혼란하기만 하다. 좀 생뚱맞은 이야기이긴 하지만, 난 왜 세미가 여자라고 생각을 했을까.

이사카 고타로는 사건과 주인공들 그리고 적당한 암시가 준비되자 본격적인 이야기를 풀어나가기 시작한다. 아들 데라하라의 어이없는 죽음에 격분한 데라하라 사장은 모든 조직원을 풀어 예의 밀치기 킬러를 뒤쫓는다. 하지만, 현장에서 예의 킬러를 목격한 스즈키가 가장 유리한 고지에 서 있다. 그는 밀치기 킬러가 아주 지극히 평범한 가장이라는 사실에 충격을 받는다. 그리고 덩치가 산만한 자살 유도 전문 킬러 구지라는 그동안 자신이 은퇴시킨 이들의 망령들에 시달린다. 서로 얽히고설킨 인연들이 그들을 한판 운명의 대결로 인도한다.

개인적으로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관심을 끈 캐릭터는 바로 구지라였다. 구지라는 아이러니하게도 천연덕스럽게 자살을 유도하면서(거의 살인에 버금가는 협박이 뒤따른다) 아이러니하게도 인간의 구원과 살인이라는 도덕적 딜레마를 문학적으로 형상화한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을 신봉한다. 그는 먹고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자살 유도 킬러의 일을 수행하지만 오래전 그의 유일한 실패는 심리적 트라우마가 되어 그를 괴롭힌다. 구지라는 세미 같은 냉혈한 킬러로서의 자질이 부족했던 걸까? 미지의 세 번째 킬러로 등장하게 되는 밀치기 전문 아사가오 역시 자욱한 안갯속에 자신의 정체를 은밀하게 자신의 정체를 숨긴 미스터리한 인물이다. 그와 그의 가족에 얽힌 이야기에는 이사카 고타로 작가가 독자들을 위해 준비한 비장의 반전이 깃들어 있다.

그렇다면 독자들은 과연 어느 캐릭터에게 자신을 투영시킬 수 있을까. 물론 우리 같은 보통 사람들이 킬러가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남은 유일한 인물은 바로 스즈키다. 아내의 복수를 꿈꾸면서도, 항상 그놈의 우유부단한 성격 때문에 일을 그르치기 일쑤다. 자기는 전력을 다해, 추격을 하고 거짓말을 해보지만, 항상 그는 상대방보다 하수다. 이사카 고타로가 책의 어디선가 말한 것처럼 그렇게 하잘 것 없어 보이는 캐릭터가 항상 대박을 터뜨리기 마련이 아니었던가.

책의 뒤표지에 나와 있는 대로 “이사카 고타로 최고의 엔터테이먼트 소설”이라는 광고가 하나 틀리지 않았다. 사실 작년에 읽었던 <골든 슬럼버>는 조금 호흡이 길다는 느낌을 받았었다. 이번에 <그래스호퍼>는 전혀 달랐다. 굵직한 사건들을 통해 캐릭터 소개가 끝나자마자 작가는 바로 이어지는 추격과 살인 그리고 대결이라는 구도로 독자들을 마력적으로 사로잡아 버린다. 한동안 남미 소설의 특징을 이뤘던 ‘마술적 리얼리즘’도 환영과 망상을 적절히 배합해서 채용하면서 소설의 오락적 재미를 배가시킨다. 정말 이런 소설이라면 당장에 읽을 수밖에 없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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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의 독서 - 세상을 바꾼 위험하고 위대한 생각들
유시민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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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책쟁이로써 솔직히 고백하면, 타인의 독서기(讀書記)를 읽는 것만큼 두려운 일도 없을 것 같다. 그 이유는 바로 저자가 소개하는 책에 대한 궁금증을 이기지 못하고 결국 어떻게든 원전을 읽게 될 테니 말이다. 지난 10월에 출간돼서, 서점가에서 그야말로 일대 돌풍을 일으킨 유시민 선생의 <청춘의 독서>는 나에게 그야말로 태산 같은 높이로 다가왔다.

내 멋대로 독서주의자인 나는 모두 14편의 책에 대한 유시민 선생의 지도를 무시하고, 가장 먼저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부터 시작했다. 서로 유기적인 연관이 없는 책들이니 그래도 무방할 것 같다는 자의적인 판단에서 일단 하인리히 뵐의 명작 소개를 읽었다. 문제는 처음으로 읽은 책의 지도에서부터 시작됐다. 도저히 원전에 대한 해갈을 참을 수가 없어, 결국 영화와 책을 차례로 보고서야 다시 <청춘의 독서>를 읽기 시작했다.

황색 언론으로 대변되는 독일의 보수신문의 폐해를 언론의 자유라는 핑계로, 사회적 약자로 등장하는 주인공 카타리나 블룸에게 얼마나 인간 존엄성에 대한 모욕과 주변 관계를 철저하게 파괴할 수 있었는지 독일의 위대한 지성은 실재의 불가피한 유사성을 들어 나에게 들려 주었다. 도저히 언론이라고 부를 수 없는 세 개나 되는 <차이퉁>이 여론을 좌지우지하는 2009년의 현실이 35년 전의 그것과 똑같은지 그야말로 소름이 다 끼칠 정도였다.

두서없이 끄트머리의 글부터 읽기 시작했지만, 다시 본 궤도에 진입하면서 처음으로 등장하는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로 돌아갔다. 유시민 선생은 이외에도 푸시킨과 솔제니친 같은 19세기 러시아 현실과 개혁과 혁명을 꿈꾸던 이들에 대한 이야기에서 미국이나 서유럽의 소설들에서보다 더 깊은 울림을 느꼈다고 썼다. 산업혁명 이래, 인류 역사의 축을 크게 뒤바꾸어 놓은 부르주아 세력으로 대변되는 자본주의의 발호는 어쩌면 서유럽의 영국과 프랑스 혹은 독일에만 해당되는 이야기였을지도 모르겠다. 차르를 위시한 지배계층은 서구의 산업화와 이에 따른 눈부신 사회의 물적 토대의 발전을 동경하면서도, 여전히 농노제와 전제주의 왕권이라는 기득권을 포기하지 않고 있었다. 그 결과, 나폴레옹 전쟁을 통해 서구 문물과 혁명적 사고를 접하면서 개화된 일단의 청년 장교들과 지식인들의 계급적 갈등을 <청춘의 독서> 곳곳에 인용된 글들에서 접할 수가 있었다. 한국인들이 그렇게 좋아한다는 푸시킨의 유일한 장편소설인 <대위의 딸>을 <카타리나 블룸>에 이어 두 번째로 주문했다.

비록 시대정신에 맞지 않는 왕도정치를 전국을 주유하면서 설파했던 원조 보수주의자 맹자의 이야기로부터 시작해서, 일진일퇴의 초한대전에서 빛나는 무공을 세웠던 한신의 어이없는 죽음을 기록한 태사공 선생의 <사기>, 이제는 그 역사 발전의 근거를 잃어버린 채 자본주의 비판서로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합작품이 <공산당선언> 그리고 수십 년 간의 치밀한 관찰과 연구 끝에 찰스 다윈이 발표한 <종의 기원>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동서양과 고금을 아우르는 현란한 고전의 향기에 빠져 삼매(三昧)에 빠진 황홀한 독서의 시간이었다.

책을 읽으면서 왜 이렇게 유시민 선생의 글에 공감하게 되었을까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을 해보았다. 이미 기존의 고전에 대한 해설과 주석들은 원전의 컨텍스트를 넘어설 정도로 넘치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주관적인 판단일진 모르겠지만, 그것은 선생의 삶을 관통하는 그 무엇과 일맥상통한다는 직감이 들었다. 책의 띠지에도 나와 있듯이, 선생은 ‘세상이 두려울 때마다 [고전]에게 길을 물었다’고 한다. 선생이 후기에서 문학적 접근보다는 사회과학도로서 문제의 본질에 대한 접근에 치중했던 것 같다고 고백했던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이 책을 산 수많은 독자가 선생에게 공감하는 건 바로, 선생이 책을 통해 깨닫게 된 앎과 현실계에서 자신의 삶을 일치시키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했다는 사실일 것이다.

역사학의 고전이 된 에드워드 핼릿 카 선생의 <역사란 무엇인가>를 통해, 지난 세기를 주름잡았던 랑케 실증사학의 미몽에서 깨어나, 아마 다른 별에서 왔을 것으로 추정되는 기이한 경제학자 소스타인 베블런의 <유한계급론>에서 물질과 재화에 천착하는 유한계급의 본성에 대한 빼어난 통찰의 과정을 대리체험하기도 했다. 그야말로 시공을 초월하는 유시민 선생의 통쾌한 해설과 지난 시절 우리 인식의 범주 밖에서 머물던 광휘로운 사상의 세계로 거침없이 하이킥을 날린다.

유시민 선생이 방향키를 잡은 작은 조각배에 얹혀서 드넓은 고전의 바다를 헤쳐 나왔다. 선생과 더불어 편견과 자의식 과잉에 빠진 맬서스의 이론에 조소를 날리기도 했고, 황색 언론의 무자비한 테러에 무너지는 카타리나 블룸과 함께 분노하기도 했으며, 시베리아 수용소에 갇힌 채 하루를 사는 이반 데니소비치의 비참한 굶주림에 동참하기도 했으며, 토사구팽의 원조 한신의 억울한 죽음 앞에서 권력의 무상함을 느껴 보기도 했다. 다시 한 번 내가 미처 접하지 못한 고전의 세계는 넓고도 끝이 없다는 것과 늘어난 읽어야 할 책의 목록에 깊은 한숨이 절로 터져 나온다. 도무지 끝이 보이지 않는 문명 역주행에 시대에, 방황하는 청춘을 비롯한 모든 이들에게 이렇게 아름다운 책을 선사해준 유시민 선생에게 진심으로 감사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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