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 함락 1945 걸작 논픽션 26
앤터니 비버 지음, 이두영 옮김, 권성욱 감수 / 글항아리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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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열흘 동안, 아돌프 히틀러가 세운 제3제국의 마지막 순간들을 읽었다. 2차 세계대전사에서 세계적 권위를 가지고 있는 앤터니 비버는 전후 숱하게 풀린 수많은 자료들은 물론이고 개인의 서신, 일기 등의 기록을 바탕으로 주로 소련군이 주인공이 되어 파시스트 정권을 무너뜨리는 과정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했다. 책을 읽는 내내, CNN에서 실시간으로 중계해 주는 전쟁 실황을 보는 느낌이 들었다. 개인적으로 전사를 좋아하는 취향 탓도 있겠지만, 올해 최고의 책 가운데 꼽는데 주저하지 않겠다. 670쪽을 넘는 책이라 완독하는데 시간이 좀 걸렸다.

 

사실 1943130, 청색작전으로 시작된 독일군의 코카서스에 대한 대공세는 스탈린그라드 포위전에서 독일 최강이라는 제6군이 통째로 괴멸되면서 동부전선에서 독일의 승리 가능성은 날아가 버렸다. 전쟁의 변곡점이라고 해야 할까. 이후 쿠르스크 전투(1943)와 소련의 바그라티온 공세(1944)로 전세는 완전히 연합군 측으로 기울어져 버렸다. 소련은 대소전을 대조국전쟁이라고 부르는데, 조국을 침탈하고 산산조각낸 파시스트 짐승의 소굴로의 진격만이 남아 있었다.

 

히틀러는 마지막 전력을 짜내어 1944년말 아르덴 공세를 준비했다가 예비군마저 다 박살이 나면서 제국의 운명을 앞당겨 버렸다. 이 시점에서 한 때 윌리엄 로런스 샤이러가 천재가 아닐까라고 썼던 총통의 총기는 다 사라져 버렸고, 이후 거의 도박에 가까운 시도들이 이어졌다. 동서 양쪽에서 연합군의 전력은 독일의 그것을 능가했다. 결국 스탈린은 1월 겨울공세에 어마무시한 병력을 동원해서 폴란드의 수도 바르샤바를 해방시키고, 오데르-나이세 강을 향한 진격을 이어갔다.

 

하인츠 구데리안을 필두로 한 독일 정통 장군들은 쿠를란드와 동프로이센 그리고 브레슬라우 같은 거점 도시들에 포진해 있던 독일군 수비대를 철수시켜 독일 본토 방위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스탈린그라드에서 그랬던 것처럼 히틀러는 이번에도 현지사수만을 부르짖을 뿐이었다. 노도와 같이 밀려드는 압도적인 소련군의 보병은 물론이고 포병, 항공전력 앞에 동부전선에 투입된 독일 베테랑 전사들은 전황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의미 없는 수비 외에는 할 일이 없었다.

 

적도 베를린의 진격과 붉은 깃발을 제국의회 의사당에 걸겠다는 신념으로 뭉친 소련군부 내의 갈등도 극에 달했다. 소련군의 수장 주코프를 필두로 해서, 로코솝스키와 코네프 원수가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 폴란드 혼혈이라는 이유로 로코솝스키는 일단 제외되어 북부전선을 맡았다. 독일군의 침공으로 엄청난 피해를 입은 것에 대한 복수심에 불타는 소련군은 독일 민간인들에 대한 잔혹한 복수극을 벌였다. 이를 통제해야 하는 소련 군부는 이렇다할 제재를 하지 않았다. 전쟁 말기, 소련군의 심각한 기강 해이는 파시스트 짐승의 소굴을 격멸한다는 소비에트군의 대의를 실종시켜 버렸다.

 

저자는 신성한 소비에트 군대가 미국의 렌드리스 법안으로 자국에 지원된 미국산 스튜드베이커 트럭(15만 대)과 보급품의 위력에 대해서도 애써 축소하려고 했다는 점도 냉철하게 지적한다. 사실 나치 독일군을 추격하고 패퇴시키는 과정에서, 소비에트군 보급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할 것이다. 독일 영토로 진격할수록 자국으로부터 보급선이 길어지기 때문에, 이를 해결할 수 있는 보급차량의 수요는 절대적이었다. 서방의 이런 막대한 군수품과 차량 지원이 없었다면, 최전방 150만에 달하는 대병력에 병참지원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전장에서 자신들의 공적은 부풀리되, 서방의 조력에 대해서는 깎아내리라는 게 스탈린과 소련지도부의 일관된 방침이었다.

 

앤터니 비버는 이 책을 처음 발표할 때, 카라신 소련 대사가 심각하게 역사적 사실을 거론하는 것에 대해 우려를 표했다고 쓰고 있다. 대조국전쟁은 소련 역사에서 신성이 되어야 하는데, 동프로이센과 슐레지엔 각처에서 벌어진 집단 강간 같은 전쟁범죄를 눈감아 달라는 표현이었을까. 앤터니 비버는 소련의 이런 비난에도 불구하고 꿋꿋하게 사료를 바탕으로 해서 전쟁 막바지에 벌어진 다양한 형태의 비극적인 드라마들을 <베를린 함락 1945>에 기록했다.

 

나는 오래 전, 리더스 다이제스트를 통해 당시 동프로이센에서 벌어진 비극에 대해 간략하게 만난 기억이 있다. 이 책에서 앤터니 비버는 보다 방대한 자료들을 바탕으로 동부전선의 최후는 물론이고, 시시각각 베를린 포위를 좁혀 오는 소련군의 전략 전술에 대해 입체감 있게 그려냈다. 역설적이게도, 연합군의 독일군에 대한 유화정책 때문인지 동부전선에서는 소련군을 상대로 악착 같이 싸웠던 반면, 서부전선의 독일군은 상대적으로 그런 전투력을 보여주지 않았다.

 

이미 독일군이 전투력과 의지를 상실했다고 섣부르게 판단한 소련 군부는 마지막 대공세에서 포즈난 포위전과 젤로 고지 그리고 슈프레강 전투 등지에서 의외의 손실을 당했다. 사실 소련 장군들은 베를린 함락이라는 상징적 의미 때문에 전쟁 막판에 무리한 병력 운용을 했다가 많은 병사들이 베를린 시가전을 포함한 전투에서 전사하고 부상당했다. 연합군 사령관인 아이젠하워가 거의 전쟁이 끝난 마당에 미군 병사들의 생명을 보존하는데 주력한 것과는 천양지차가 나지 않는가.

 

동프로이센과 슐레지엔의 나치 대관구 지도자들은 국방군은 물론이고, 현지에서 급조된 국민돌격대들에게 압도적인 전력의 소련군에게 고작 판처파우스트 같은 소화기로 무장하고 끝까지 제국과 총통을 위해 싸우라고 하고선 자신들은 후방으로 도주해 버렸다. 지도자가 나서서 방위전에 나서도 간신히 버틸까 말까한 마당에, 자신들만의 안위를 걱정하는 황금 꿩들의 이런 작태야말로 히틀러 종말극을 장식하는 희비극이 아니었나 싶다.

 

19447월의 불발된 쿠데타 시도로 독일국방군을 믿을 수 없게 된 히틀러는 SS제국지도자 하인리히 힘러에게 힘을 몰아 주지만, 게슈타포나 운용하고 마르틴 보어만과 총통의 후계자 자리만 경쟁할 줄 알았던 음모가 힘러에게 구데리안 같은 전략이 있을 리가 없었다. 이런 엉터리 지도자들 때문에 독일의 수많은 민간인들이 고스란히 전쟁의 피해를 입어야했다. 제대로 훈련도 받지 못하고 무장도 하지 못한 히틀러 유겐트 소속 분견대 소년들이 동부전선에서 독일 정규군을 상대로 단련된 소련 정예병사들에게 상대가 되었겠는가. 앤터니 비버는 이런 애송이 병사들을 전선으로 내몰아 죽게 만든 나치 지도부들의 광기를 신랄하게 비판한다. 훗날 독일 국가의 재건을 위해서라도 이런 소년들과 청년들의 무고한 희생은 회복할 수 없는 손실이었다.

 

1945416일부터 시작된 소련군의 마지막 공세 앞에 독일 수비대는 속절 없이 무너져 버렸다. 복수심에 불타는 소련군은 끝까지 저항하는 무장친위대와 블라소프가 이끄는 히위들에게 일절의 자비를 베풀지 않았다. 전쟁 말기에 가서는 순혈주의를 자랑하는 나치의 무장친위대의 절반가량이 외국 의용군이었다는 사실이 참 놀라울 뿐이다. 히틀러의 최측근들마저 등을 돌리는 마당에 단마르크, 노르게 연대에 소속된 볼셰비즘에 대항하는 나치 이데올로기의 세례를 받은 타국의 젊은이들이 소련군을 상대로 끝까지 싸웠다는 사실은 역설 그 자체였다. 어쩌면, 이런 점들이 이데올로기 전쟁의 처절함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장면인지도 모르겠다.

 

전쟁 말기의 연합군 레이스에 대한 기술도 흥미로웠다. 소련군은 얄타에서 미영연합군과의 약속과 달리 폴란드에서 자유민주국가를 세울 의도가 전혀 없었다. 스메르시와 NKVD의 수장 베리야가 선제적으로 지목한 자유 폴란드군들은 탄압의 대상이 되었다. 빈과 프라하는 적군의 수중에 들어갔고, 덴마크는 가까스로 영국군이 진주하는데 성공했다.

 

스탈린의 소련은 어떤 방식으로든 전쟁으로 폐허가 조국의 재건을 위해 포로가 된 독일병사들을 이용하고자 했다. 그런 점에서, 소련군이 아닌 서방의 연합군에 대거 독일군이 투항하는 걸 사전에 막고자 전력을 다했다. 하지만, 동프로이센과 슐레지엔 각지에서 소련군이 저지른 만행 때문에 무장친위대들은 소련군에게 투항해서 처형당할 바에야 죽을 때까지 싸우는 선택을 했다. 아무리 소련의 제7국이 독일군을 상대로 선전전을 했어도, 동부 전선에서 소련군이 행한 일들을 감출 수가 없었다. 전후, 독일 일반 국민들의 반소감정이 치솟은 이유를 그들만 몰랐단 말인가.

 

저자는 서두에서 소련군이 미군보다 앞서 달렘에 있는 카이저 빌헬름 물리학 연구소 접수에 전력을 다했다는 점도 지적한다. 스탈린은 서방에 파견한 스파이를 통해 미국의 맨해튼 프로젝트의 진척 상황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전후 동맹국에서 냉전 경쟁국으로 바뀌게 될 것을 예상했던 걸까? 뒤쳐진 핵개발을 위해서라도 독일의 최신 핵기술이 필요했던 스탈린은 독일의 과학자들과 실험실 시설이 반드시 필요했다. 하지만 연합군은 베르너 하이젠베르크와 오토 한 같은 인물들을 먼저 체포해서 영국의 팜 홀로 이송했다. 앤터니 비버는 소련군이 독일에서 뜯어간 시설과 설비들이 정작 소련에서 활용되지 못했다는 사실도 기술한다.

 

그동안 1945430일 자살한 히틀러의 시신이 발견되지 않았다고 알고 있었는데, 소련 정보부에서 휘발유에 타고 남은 총통의 시신을 수습했다는 사실도 처음 알게 됐다. 그리고 스탈린이 그 사실을 다른 사람도 아닌 주코프 원수에게까지 20년 동안 비밀로 했다는 점도 그저 놀라울 따름이었다.

 

히틀러 제3제국의 마지막 순간을 다룬 670쪽에 달하는 방대한 양의 대서사를 짧은 리뷰에 담기란 역부족이라는 생각이다. 앤터니 비버의 전작인 <피의 기록, 스탈린그라드 전투><아르덴 대공세 1944>를 읽었는데, 개인적으로 이번 작품이 최고였다. 미처 몰랐던 부분에 대해서는 새로운 지식을 전달해 주었고, 7년 대전쟁의 마지막과 그 후과로 벌어진 비극을 다룬 대가의 조명은 그저 탁월했다. 5년 전에 나온 마켓가든 작전을 다룬 <아른헴>의 출간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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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미 2023-08-28 12: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레삭매냐님 벽돌책을 완독하셨다니 수고하셨습니다.
게다가 앤터니 비버라니 더 부럽습니다.

외부로 드러난 전생사도 흥미롭지만
거기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는 스파이전 양상도
전쟁의 과정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요소 같아요.


레삭매냐 2023-08-28 14:47   좋아요 1 | URL
<스탈린그라드>와 <아르덴>에 이어
이번에도 역시나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그런 작품이었습니다.

말씀해 주신 대로,
현대전에서 정보와 선전전의 중요성
은 두말할 필요가 없을 것 같습니다.

2023-08-28 12: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8-28 15: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페넬로페 2023-08-28 12:5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마침 제가 어제 영화 <오펜하이머>를 봤어요. 미국은 독일이 핵실험을 했다는 것을 감지 하거든요 근데 하이젠베르크가 먼저 성공하지는 못했나봐요.
이 책이 그당시 독일의 상황을 알 수 있는데 많은 도움이 되겠어요.

레삭매냐 2023-08-28 15:29   좋아요 2 | URL
제가 여기저기서 수집한 정보에 따르면,
핵분열 현상을 독일-오스트리아 과학자
들이 먼저 발견해서 핵무기 연구를 선도
했지만...

현실계에 극히 소량으로 존재하는 우라늄
농축 기술의 부재로 결국 독일이 먼저
핵무기를 개발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나중에 하이젠베르크 들은 미국이 먼저
핵무기 개발했다는 소식을 듣고서도 믿지
못했다고 합니다. 미국 정부 차원의 압도적
지원과 물량 공세로 우라늄 농축에 성공하
고 3기의 핵폭탄을 만드는데 성공했다고...

이 책을 읽고 나서 바로 윌리엄 샤이러의
<제3제국>을 읽기 시작했는데, 오펜하이머-
베를린 함락 1945-제3제국 이렇게 이어지는
서사라고나 할까요.

서니데이 2023-08-28 22: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레삭매냐님 리뷰를 읽으니 이 책 재미있을 것 같은데요.
2차 대전 관련된 내용은 1세기도 되지 않았는데, 가끔 아주 오래전 같은 느낌이 들어요.
그 시기가 흑백사진이 많아서 그런 것 같기도 합니다.
주말 잘 보내셨나요.
편안한 하루 보내세요.^^

레삭매냐 2023-08-29 13:29   좋아요 1 | URL
와우, 놀라운 지적이십니다.
채 100년도 되지 않은 역사가 이렇게
멀게 느껴질 줄이야...

책값이 아깝지 않았습니다.
감사합니다.

얄라알라 2023-08-29 11: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얼마나 글을 잘 쓰면 이 두꺼운 역사책이 CNN 생중계처럼 느껴질까요? 레삭매냐님께서 통으로 깊게 이해하고 흐름 보여주시니, 저 역시 CNN 방송 보는 것 같습니다. 끝까지 싸운 ‘독일군‘ 중 타국의 젊은이들이 다수였다니, 레삭매냐님 말씀처럼 이데올로기로 인한 전쟁의 처절함을 알고 싶지 않아도 보여주네요. 잔혹하고 슬프네요...<제3제국> 리뷰도 곧 만나겠네요. 덕분에^^ 호강합니다.

레삭매냐 2023-08-29 13:31   좋아요 1 | URL
제가 개인적으로 전쟁사를 좋아해서
인진 몰라도 아주 술술 읽혔답니다 :>

아는 부분들에 대해서는 복습을,
그리고 모르는 부분들에 대해서는
새로운 걸 배우는 재미가 있었습니다.

무장SS 의용군이 베를린 전투에서
거의 발악적으로 싸우는 모습이 참...

<제3제국>은 과연 읽을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분량이 거의 이천쪽에
육박하는지라. 열심히 읽어 보갔습니다.

coolcat329 2023-08-29 11: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레삭매냐님 오랜만이에요.
저도 이 책 샀답니다. 벌써 읽고 리뷰를 남기셨네요. cnn 중계 전쟁 실황을 보는 거 같다니 역시 작가가 실력파군요. 언제 읽어야 하나 그것이 걱정입니다.

레삭매냐 2023-08-29 13:42   좋아요 1 | URL
쿨캇트님 반갑습니다 :>

저의 팔월은 이 책과 함께 한 모양입니다.
다 읽고 나니 진이 빠져서 다른 책들을
멀리 하고 있더라는 ㅋㅋㅋ

다 읽고 나시면 정말 뿌듯하시리라 믿
습니다.

그레이스 2023-09-04 11: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벽돌책 보고 한숨만 쉬고 있습니다.
하루 하루 읽어야 할 책들 사이에서 어찌 읽어내나 싶네요

레삭매냐 2023-09-04 18:58   좋아요 1 | URL
저도 다 읽는데 한 열흘 정도
걸린 것 같습니다.

그래도 지난 달에는 이 책을
읽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만족하지 싶습니다.

읽을 책들이 너무 많아 걱정이지요 고저.

잠자냥 2023-09-26 16: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히틀러의 최후를 확인할 수 있어서 더 흥미로웠습니다!
 
삼체 1부 : 삼체문제
류츠신 지음, 이현아 옮김 / 자음과모음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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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대망의 달궁 독서 모임을 하는 날(지난 812)이다. 그리고 당일날 아침에 독서모임 책인 류츠신의 <삼체>를 다 읽었다. 다 읽고 나니, 무언가 깨달음이... 그런 건 없다. 알 것 같기도 하고 모를 것 같기도 한 그런 느낌이라고나 할까. 나머지 빈 부분은 네 시간 뒤 독서모임에서 채울 생각이다. , 내년 1월에 넷플릭스에서 <삼체>를 방영한다고 하는데, 오늘 너튜브에서 트레일러를 보니 역시 이 소설의 주인공은 관찰자인 왕먀오가 아닌 예원제라는 확신이 강렬하게 들었다.

 

우선 류츠신이라는 작가는 중화 SF 부흥이라는 중차대한 임무를 양 어깨에 걸머진 캐릭터라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스나이퍼 앤 파머즈장르에서 노벨문학상이라는 휴고상을 2015년에 받았다고 한다. 나야 뭐 그 동네 사정에 대해서 잘 모르니... 그의 다른 소설인 <유랑지구>도 중국에서 영화로 만들어져 대박이 났다고 하는데, 고장난 태양에서 벗어나기 위해 지구별에 무려 일만 개의 엔진을 달아 다른 행성으로 튄다는 설정이 참 SF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외에 현재 중국에서 진행 중인 여러 가지 이슈에 얽혔다고 하던데, 그 이야기도 궁금했다.

 

삼부작으로 구성된 <삼체>의 첫 번째 인스톨은 삼체 유니버스를 독자에게 물어다 준다. 시작은 <과학의 경계>에 소속(?)된 일단의 과학자들이 하나둘씩 자살하게 되면서 나노 소재 연구에 매진하고 있는 책임자 왕먀오에게 스창이라는 베테랑 형사가 찾아오는 장면으로 시작되던가. 그리고 왕먀오는 우연한 기계에 <삼체>라는 VR 게임에 접속하게 되고, 그 게임 속에서 명멸하는 다양한 문명에 대해 알게 된다.

 

그리고 나머지 한 축은 가장 최근에 죽은 과학자 양둥의 어머니인 예원제를 왕먀오가 찾아가 그녀의 과거사를 들추게 되면서 이야기를 그야말로 폭풍 속으로 달려가기 시작한다. 그녀의 아버지이자 저명한 천체 물리학자였던 예저타이가 1967년 문화대혁명이라는 광란의 시기에 십대 홍위병들에게 모욕을 당한 채, 죽은 사건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현장에서 아버지의 비참한 죽음을 목격한 예원제. 예저타이는 부인이자 동료과학자였던 사오린과 작은딸 예원쉐에게도 배신을 당한다. 개인적인 시선으로 볼 때, 현재 중국은 문화대혁명의 오류에 대해서는 인정하지만 그 사태를 용인한 한 인물에 대한 평가에 대해서는 유보하고 있는 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책을 읽으면서 느낀 점과 독서모임을 통해 나눈 이야기들은 수준이 달랐다. 누가 뭐래도 독서모임 동지들을 통해 인식의 지평을 확장하는데 도움을 받았다는 점에 대해서는 부인할 수가 없을 것 같다.

 

이제, 다수의 스포일러가 등장하니 참고하시면 좋을 것 같다.

 

전도유망한 천제 물리학자였던 예원제는 아버지의 비참한 죽음을 보고 인간에 대한 희망을 버리게 되었다. 물론 충분히 가능한 설정이다. 다른 사람도 아닌 자신의 부인과 딸 그리고 제자 홍위병들에게 그런 대접을 받고 살아갈 수는 없지 않았을까. 예원제는 2년 뒤, 다싱안링 레이더봉 부근의 벌목장에서 노동개조(?)를 하다가 우연한 기회에 외계와 교류하겠다는 홍안 공정에 참가하게 되고, 외계의 삼체문명에 지구별을 박살내 달라는 메시지를 날린다. 놀랍지 않은가 말이다.

 

이 점에서 류츠신의 <삼체>는 다른 SF물과 변별점을 가지게 되는 게 아닌가 싶다. 대개, 외계인들이 지구별을 침략해서 인류와 싸우거나 아니면 E.T. 같이 인류와 함께 공존을 도모하는 친근한 외계인 설정이 보통이 아닌가 말이다. 아니면 지구별에 혹독한 위기가 닥쳐 다른 별로 이주하는 그런 단계에서 뛰어넘어 이제 지구별에는 희망이 없으니 외계인이 침략해와서 우리의 문명을 끝장내달라. 자기파멸적인 무언가가 아닐까 싶다.

 

그나마 외계 삼체 문명에도 양심적인 인사가 있었는지, 그런 파멸을 막기 위해 예원제에게 교신을 하지 말라고 했던가. 하지만, 이미 메시지는 접수되었고 삼체 문명은 450년 뒤 지구에 도착하기 위해 박차를 가한다.

 

독서모임을 통해 내가 잘못 읽은 부분에 대해(여전히 오독의 위험성은 존재한다) 수정하고 몰랐던 부분들을 이해할 수가 있었다. 이게 바로 독서모임의 참맛이 아니겠는가 말이다. 이어지는 2<암흑의 숲>에 등장하는 이른바 면벽자에 대해서도 아쉽게 내가 모임에 도착하기 전에 이미 헤르메스님이 일장 연설로 설명을 해주셨다고.

 

개인적으로 그간 중국이 시도해온 공정의 역사 때문인지 소설에서 빈번하게 등장하는 <양탄 공정> 그리고 <홍안 공정> 등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지울 수가 없었다. 전자야 역사적 사실이니 그렇다 치고, 후자가 실재했는가에 대해 달궁 동지들의 집단 지성을 요구했지만 그 부분에 대해서는 마땅한 답이 없었다. 그리고 247쪽에 등장하는 중국의 현 체제 선전적인 발언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전랑2> 같은 영화에 등장하는 중화민족주의에 대한 거부감 그리고 첸카이거나 장이모우 같은 거장들이 체제에 순응화되어 가는 모습이 아쉽다는 말도 추가했던 것 같다.

 

어쨌든 모든 것에 우선해서 생존을 도모한다는 것은, 모든 살아 있는 생명체의 본능이 아닐까 싶다. ‘로 모시는 외계의 삼체 조직을 추구하는 강림파와 구원파 그리고 문화대혁명의 소용돌이 속에서 비참하게 죽어간 아버지의 모습을 목격한 예원제 그리고 파멸이 예고된 450년 뒤에 모든 지구별 사람들까지 말이다.

 

뛰어난 영업사원 헤르메스 브로의 영업에 넘어가 결국 독서모임 다음날 삼체 시리즈 2권인 <암흑의 숲>도 빌려서 읽기 시작했다. 삼체 이야기에 제법 단련이 되어서 단박에 100쪽을 읽고, 또 다른 책들에 매달려 있다. 10월에 우리는 페르난도 바예호의 <청부 살인자의 성모>로 다시 만난다. 다시 만날 그 날까지. 그리고 그 날 아무 일이 없기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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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미 2023-08-17 20:3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아! 달궁모임 유튜브로 볼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참여할 수준은 안되므로 관람이라도 하고 싶은 욕심에 말입니다.ㅎㅎ
레삭매냐님 <삼체>별3개를 주셨음에도 궁금해지는걸요!^^

레삭매냐 2023-08-18 08:30   좋아요 2 | URL
그렇지 않아도 예전에 우리 모임
을 너튜브로 하면 재밌겠다라고
말한 기억이 나네요. 오디오가 빌
틈이 없거든요 ㅋㅋ

저희 10월 7일 토요일에 종로에서
다시 모입니다.

시간 되시면 한 번 왕림해 주심이
어떨런지요 >.<

미미 2023-08-18 09:14   좋아요 2 | URL
초대해주셔서 영광입니다만 제가 여기서완 달리 낯을 심하게 가려서요ㅋㅋ

너튜브에 올려주시면 구독,
좋아요, 알림하겠습니다^^

레삭매냐 2023-08-18 09:51   좋아요 1 | URL
아, 그러시군요 :>

저희는 지극히 아날로그형
인간들이라 아마 너튜브는 ㅎㅎ

건수하 2023-08-17 21:1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삼체 궁금했는데 넘 두꺼워서…. 넷플릭스로 나오면 맛보기라도 해볼까 싶네요. 류츠신 단편은 몇 개 읽었는데 서양 sf랑은 좀 느낌이 달랐던 것 같아요.

레삭매냐 2023-08-18 08:30   좋아요 0 | URL
그렇지요 책이 두텁습니다 -
독서 모임 당일 아침에 책을 다
읽다니 ㅋㅋㅋ

서양의 스나이퍼 앤 파머즈와
그 결이 무척 달랐던 것 같습니다.

페크pek0501 2023-08-17 22: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독서모임, 좋지요. 류츠신의 작품은 어떨지 궁금하네요..^^

레삭매냐 2023-08-18 08:31   좋아요 1 | URL
십수년 동안 이어져온 모임이라
그런지, 애착하게 되네요 :>

류츠신의 책은 고저 신선했습니다.

그레이스 2023-08-17 23:3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런 내용은 스포일러 괜찮습니다. 직접 읽지않으면 그려지지 않을듯요 ^^
달궁 모임 궁금합니다.
오독부분 공감합니다. ㅋㅋ

레삭매냐 2023-08-18 08:33   좋아요 2 | URL
그런가요 ~
리뷰에 스포 담기가 주저하게
되더라구요.

저는 부족한 독서가라 책을 다
읽었어도, 제대로 그려지지가
않아서 결국 동지들의 도움을
받았답니다 헷 ~!

오독 그리고 내맘대로 해석은
책쟁이의 어쩔 수 없는... 그랬
다고 합니다.

페넬로페 2023-08-18 09: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독서모임의 최대 장점이 모임 다녀오면 뭔가 달라지고 가득해진 느낌이 들어요.
레삭매냐님과 cyrus님이 멤버이신 달궁 독서모임의 수준을 감히 짐작조차 못하겠어요
중국판 sf는 어떨지 궁금해지네요.

레삭매냐 2023-08-18 09:53   좋아요 2 | URL
오오 이달에 싸이러스 브로는
과중한 업무로 그만 참석하지
못했다는 전언이... 그렇지 않아
도 아쉬웠습니다.

저야 뭐 쪼렙이고 헤르메스/
마욤 브로가 고저...
그 두 분이 터는 걸 보셨어야
했는데 크하~~~

중화TV에서 만들었다는 <삼체>
는 좀 조잡했지만, 캐스팅 하나는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짧은 트레일러로 만난 넷플릭스
<삼체>는 스케일이 어마 무시했습니다.
기대 만빵~~~

유부만두 2023-09-27 07: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세 권이라 엄두가 나질 않아요. 그저 내년에 넷플 드라마로나 만나야 할까봐요.
 
듄 그래픽노블 2 - 무앗딥
프랭크 허버트 지음, 라울 앨런 외 그림, 진서희 옮김, 브라이언 허버트 외 각색 / 황금가지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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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보니 지난 주말 내내 SF 장르물들과 함께 했던 것 같다. 우선 토요일에는 달궁에서 류츠신의 <삼체>를 읽으면서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역시 독서란 이렇게 평소의 나라면 절대 읽지 않을 그런 책들과 만나면서 인식의 지평을 넓혀 가는 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바로 다음날에는 류츠신의 삼체 2<암흑의 숲>을 도서관에서 단박에 100쪽 정도를 읽었다. 그리고 대망의 프랭크 허버트의 <2>도 만날 수가 있었다. 사실 예약도서로 걸고 토요일까지 찾으러 가지 못해서 조마조마한 마음이었는데 다행히 아무도 빌려 가지 않아서 내 차례가 되었다.

 

태풍이 지나가고 더위가 가신 줄 알았는데 엊저녁부터 다시 더워지기 시작했다. 그 더위 속에서도 책을 손에서 뗄 수가 없었다. <2>의 절반 정도는 영화에서 상당 부분을 커버하지 않았나 싶다. 이참에 리뷰하는 느낌으로 너튜브에서 너튜버들이 친절하게 올려놓은 분석들을 참조했다.

 

코리노 제국의 샤담 4세가 제국의 핵심으로 부상하고 있던 아트레이데스 가문을 박살내기 위해 치밀한 음모를 꾸민다. 우선 칼다란 행성에서 잘 지내던 폴 아트레이데스를 황량한 아라키스 행성으로 쫓아낸다. 그 다음에 라이벌 하코넨 가문을 동원하고, 또 직속 부대인 사다우카까지 차출해서 레토 공작을 습격한다. 그 와중에 후계자인 폴 아트레이데스와 레토 공작의 부인인 레이디 제시카는 사막으로 탈출하는데 성공한다.

 

전편에서 위의 과정들을 그렸다면, 2편에서는 아무런 의지할 데 없이 사막으로 내쫓긴 폴과 레이디 제시카의 생존기가 그려진다. 아라키스의 사막을 지배하는 이들은 바로 프레멘 족속이었다. 그리고 폴이 아버지의 복수를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이들의 조력을 얻어야 했다. 이런 점에서, <>은 전형적인 성장소설과 영웅신화를 그 바탕으로 한다.

 

프레멘의 리더인 스틸가는 폴의 아버지 레토 공작과의 인연으로 모자에게 우호적인 태도를 보이지만, 사막의 전사들인 프레멘들에게 폴/레이디 제시카는 자신들의 능력을 보여 주어야 했다. 아니, 실력으로 그들을 제압하지 않는다면 그들의 협력을 구하기는커녕 당장 축출될 위험에 처한다.

 

그들 중에서도 가장 호전적인 야미스가 폴에게 도전장을 내민다. 그런데 문제는 전사들의 승부는 누군가 한 명은 반드시 죽어야 한다는 점이었다. 아직까지 거니 할렉에게 호신술 정도만 배운 폴 아트레이데스가 실전에서 크리스나이프 전문가인 야미스를 이길 수 있을 것인가. 바로 이런 고난을 통과해야만, 진정한 미래의 퀴사츠 해더락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우여곡절 끝에 야미스를 제압하는데 성공한 폴은 프레멘들에게 그들의 일족으로 인정받기 시작했다. 스틸가는 그에게 우슬이라는 이름을 주지만, 폴은 스스로 사막 생쥐라는 의미의 무앗딥이라 불러달라고 한다. 그런데 이 부분은 왜인지 영화에서는 제외되었다고 한다.

 

한편, 레토 공작을 죽이고 아라키스를 다시 차지한 파디샤 황제의 권력까지 넘보기 시작한 하코넨 남작은 자신의 후계자로 조카인 페이드 로타를 점지하고, 하코 시티 경기장에서 장대한 쇼를 기획한다. 아트레이데스 가문을 대대로 섬긴 멘타트인 투피르 하와트를 조종해서 페이드 로타가 이길 수 밖에 없는 그런 쇼를 연출하는데 성공한다. 그전에 파디샤 황제의 특사인 펜링 백작이 하코넨에게 일종의 경고를 보내는 장면도 등장한다. 파디샤 황제는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아트레이데스 가문을 파괴했는데, 그렇다고 해서 하코넨이 자신의 지위를 위협하는 것도 허용하지 않겠다는 메시지를 보낸 게 아닐까.

 

듄 그래픽노블 2탄은 레이디 제시카가 프레멘들의 대모가 되는 장면으로 끝이 난다. 하코넨은 계속해서 힘을 키워가고, 반대로 몰락한 아트레이데스 가문은 아라키스의 사막에서 힘을 키우면서 역전의 기회를 노리는 설정이 되었다. 아라키스를 언젠가는 물과 식물이 풍성한 그런 행성으로 만들겠다는 프레멘들의 희망과 결국 자신들을 구할 구세주로 무앗딥을 인정하고 자신들을 핍박하는 하코넨과의 일전에 나서기 전까지의 과정을 2편은 그리고 있다.

 

누가 뭐라고 하더라도, 아라키스 행성의 핵심자원인 멜란지(스파이스)야말로 이런 가문간의 적대적 경쟁의 원인이 되는 요소라고 생각한다. 오래전, 대항해시절 서구 유럽의 탐험가들과 모험가들이 동방의 향신료(스파이스)를 얻기 위해 목숨을 걸지 않았던가. 하코넨과 아트레이데스들도 마찬가지였다. 프레멘들이 신성하게 여기는 모레벌레(샤이 훌루드)가 번식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멜란지야말로 모든 분쟁의 근원으로 설정되어 있다. 멜란지를 현실 세계에서 석유로 치환한다면 바로 이해가 되지 않을까 싶다.

 

아무리 황제의 명령이라고 하지만, 무엇 하나 부족함이 없는 칼란다 행성에서 황량한 아라키스로 군말 않고 자신의 영지를 옮기는데 동의한 레토 아트레이데스 역시 비슷한 계산을 했던 게 아닐까. 그것은 마치 진나라를 멸망시키는데 선봉장이었던 한고조가 항우의 눈치를 보고 미래를 도모하기 위해 당시만 하더라도 불모지였던 파촉으로 가는 걸 마다하지 않은 고사가 떠올랐다. 물론 한고조와 달리 레토 공작은 절대권력자의 음모 때문에 파멸했지만 말이다.

 

<> 내부에 내재된 제국주의적 시선에 대해서는 여전히 불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라키스 행성은 제국이나 하코넨 가문에게는 원료 생산지이자 인적 자원을 약탈하기 위한 하나의 장소일 뿐이었다. 아트레이데스 가문의 인사들은 말로는 아라키스에 초록빛 자연과 프레멘들이 그토록 원하는 물이 흘러넘치는 공간으로 만들겠다고 공언했지만, 결국 하코넨과의 전쟁에서 프레멘 전사들의 피를 요구하게 될 전망이다. 영웅 신화를 위한 대가라는 말일까.

 

프레멘들이 마녀라고 부르는 베네 게세리트 집단에 대한 모호함에 대한 답변을 마지막 인스톨에서는 기대해 보고 싶다. 퀴사츠 해더락의 도래를 기대하며, 아트레이데스 진영과 하코넨 진영에 양다리를 걸치는 것 같은 이중성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의 복잡한 세계관에 들어갈수록 늘어나는 질문들은 어쩌면 읽다만 원작 소설을 읽어야 풀리는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이래서 원작을 읽어야 하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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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라디오 2023-08-14 19: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소설 듄 2권 까지 봤는데 소설이 훨씬 개연성이 탄탄하더라고요ㅎ 아무래도 영화에서는 분량때문에 각색되면서 빠진 부분들이 있어서ㅜ

레삭매냐 2023-08-15 09:15   좋아요 1 | URL
저도 이번에 영화 리뷰를 보니,
영화가 원작과 다른 점들이 몇몇
있다고 하면서 원작 읽기를 추천
하시더라구요.

그래서 읽다만 <듄>을 다시 도전
... 분량이 ㅎㄷㄷ합니다.

바람돌이 2023-08-14 23: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듄이 그래픽노블도 있군요. 관심은 가는데 분량때문에 선뜻 손이 가지 않는..... 뭐 언젠가는 읽겠지 하고 있습니다. ^^

레삭매냐 2023-08-15 09:16   좋아요 2 | URL
저도 영화 나온다 하고 또 새로
개정판이 나와서 일단 사서 읽기
시작했는데, 결국 영화볼 때까지
미처 읽지 못했네요.

올해 11월 2편이 나온다 하니
다시 도전을 ㅋㅋ
 
쥐 The Complete Maus 합본
아트 슈피겔만 지음, 권희종 외 옮김 / 아름드리미디어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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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 대학 친구의 추천으로 아트 슈피겔만의 <마우스>를 읽었다. 무려 퓰리처상을 수상한 그래픽노블로 아무런 기대 없이 도전했지만 홀로코스트 육성 증언을 다룬 콘텐츠에 한동안 후유증에 시달리지 않았나 싶다. 그후로 다양한 장르의 홀로코스트를 주제로 삼은 책과 영화 등을 만나게 되었다.

 

1978년부터 무려 13년이나 걸려 자신의 아버지인 블라덱과 어머니 아냐 슈피겔만이 겪은 홀로코스트에 대한 생생한 증언을 바탕으로 해서 작가는 <마우스>를 창조해냈다. 처세의 달인으로 죽음의 수용소였던 아우슈비츠에서 살아남은 아버지 블라덱과의 대화가 그래픽노블의 중심에 놓여 있다.

 

작가의 아버지 블라덱은 그래픽노블 서두에서부터 친구는 없다고 힘주어 말한다. 혹독했던 아우슈비츠 10개월을 경험한 블라덱은 낭비를 허용하지 않는다. 어지간한 비용이 드는 일들은 모두 자신이 직접 처리해야 직성이 풀린다. 사랑했던 아내 아냐가 죽은 다음에 재혼한 말라는 블라덱의 강박적 절약 강조와 잔소리 그리고 자신의 재산을 노린다는 모함에 혀를 내두른다. 자식인 아트 역시 그런 아버지를 감당할 자신이 없다고 고백한다.

 

거의 강박적으로 자신의 건강을 지키기 위해 복용할 알약을 세고, 스스로 세무자료들을 정리하고 거리에서 주은 전선 조각의 필요성에 대해 아들에게 세뇌한다. 화자는 그런 아버지를 한편으로는 이해하면서도 또 지긋지긋하게 생각한다. 하지만, 홀로코스트와 아우슈비츠를 경험하지 못한 이들이 과연 어떻게 해서라도 살아남아야 한다고 결심했던 이들의 그것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인지 조용한 목소리로 독자에게 속삭인다.

 

은행 계좌에 수십만 달러의 자산이 있으면서도, 묵지도 않는 옆 리조트 시설에 몰래 침투해서 시설을 이용하는가 하면 상점에서 산 물건을 다시 봉해서 환불 조치하는 꼼수도 마다하지 않는다. 성냥을 아끼겠다고 가스 요금이 월세에 포함되어 있다고 하루종일 가스불을 켜놓는 낭비에 대해서는 또 어떤가. 홀로코스트 생존자가 모두가 그런 건 아니겠지만, 블라덱 슈피겔만의 케이스는 너무 극단적이다.

 

그리고 자신도 지독한 인종차별의 희생자이면서도 동시에 미국 흑인을 차별하는 인종차별주의자이기도 하다. 이런 홀로코스트 생존자들의 이중적 태도야말로 전후 세대이자 홀로코스트로부터 비교적 자유로운 아트 슈피겔만이 하고 싶었던 말이 아닐까. 절대선과 절대악이 공존하는 아이러니 말이다.

 

폴란드 게토에서 죽은 형 리슈의 그림자는 또 어떠한가. 아트 슈피겔만은 전후 태어났다. 그리고 그에게 죽은 형은 언제나 이길 수 없는 그리고 모든 순간에 이상화된 비교대상인 그런 존재였다.

 

이제 <마우스>의 실질적인 주인공 블라덱 슈피겔만이 어떤 사람인지 알았으니 본격적인 이야기에 들어가 보자. 1906년 폴란드령 슐레지아에서 태어난 블라덱은 젊어서 호남자라는 평가를 받았고, 이재에 밝았다. 부유한 집안 출신의 아냐를 만나게 되면서, 그동안 교제하던 여자를 냉정하게 걷어차 버리는 냉혈한의 이미지도 갖고 있다.

 

아냐와 결혼하고 장인의 도움을 받아 사업을 일으키지만, 그 무렵부터 나치 독일의 유대인에 대한 핍박이 시작됐다. 나치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하면서 제2차 세계대전이 시작되었고, 폴란드 군으로부터 징병된 블라덱은 개전 초기 독일군과 최전선에서 싸우다가 전쟁포로로 사로잡힌다. 1940년 전쟁포로에서 석방된 블라덱은 생존 게임을 시작하게 된다.

 

폴란드 각지의 게토로 소개된 블라덱 가족 친지들은 차례로 절멸수용소로 끌려가게 된다. 블라덱은 특유의 수완을 발휘해서 최대한 아우슈비츠 행을 막아 보지만, 그 역시 아냐와 함께 죽음의 수용소로 끌려가게 된다. 그곳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실력도 필요했지만 그 이상으로 운도 필수적이었다. 삶과 죽음의 경계가 그야말로 종이 한 장 차이로 갈리는 곳에서 블라덱은 자신이 가진 재능과 운을 최대한 발휘했다.

 

유대인들에게 무지막지한 폭력을 행사하는 폴란드인 카포에게 영어를 가르쳐 주고 생존을 도모했고, 공산주의자 함석장이 십장인 이들 밑에서도 실력을 발휘했다. 프리모 레비도 그의 책에서 말했다시피, 지배 계급의 언어인 독일어 구사도 생존에 반드시 필요했다. 물물교환이라는 유사 이래 가장 기본적인 거래 방식에서도 블라덱은 탁월한 실력을 보여주면서 자신의 생명 연장에 힘을 보탰다. 죽음의 가스실로 가는 선별에서도 운 좋게 살아남았고, 티푸스에 걸려서도 주변인들의 도움으로 살아남았다.

 

그리고 전쟁이 끝날 때까지 살아남는데 성공해서 고대해 마지 않던 아냐와 만나는 것으로 <마우스>는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그런데 그렇게 생존한 이들은 과연 행복했을까? 아냐의 죽음을 볼 때 그렇지 않은 것 같다. 홀로코스트라는 인류의 비극에서 살아남았지만, 가족을 모두 잃은 생존자들은 상상할 수 없는 죄책감에 시달려야 했다. 훗날 아트 슈피겔만이 자신의 아내에게 자면서 비명을 지르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고 어려서 자신은 모든 어른들은 잘 때 그러는 줄 알았다는 말이 어찌나 슬프게 다가왔는지 모른다. 그리고 그들은 끝까지 예의 비극을 극복하지 못했다.

 

죽음의 수용소에서 생존한 이들이 모두 블라덱 슈피겔만처럼 증언에 나서지 않았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다시 떠올리고 싶지 않았던 비극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고 싶지 않았으리라. 하지만, 기억과 추모의 차원에서라도 어떤 일들은 반드시 필요한 법이다. 시간의 흐름에 편승해서 역사적 사실 자체를 왜곡하려는 무리들이 준동하는 현실이야말로 비극의 재현이 아닌가 말이다. 다시 읽어도 배울 게 많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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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야 이동도서관
오드리 니페네거 글.그림, 권예리 옮김 / 이숲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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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 휴일에 만난 그래픽노블 2탄이다. 아까 저녁에 소나기가 내려 붓듯이 오더니 더위가 한풀 꺾인 그런 느낌이다. 그래도 말복은 지나야 좀 나아지려나.

 

<시간 여행자의 아내>를 쓴 작가라고 하는데 사실 오드리 니페네거의 이름은 처음 들어본다. <시간 여행자>는 영화로만 알고 있었는데 말이지.

 

<심야 이동도서관> 역시 간단한 구조다. 남친과 싸우고 밤거리를 거닐던 는 우연히 허름한 밴 스타일의 이동도서관을 만나게 된다. 기본적으로 나는 독서중독자의 일원이지 싶다. 그리고 그 이동도서관에 실린 책들은 왠지 낯이 익은 책들이다. 알고 보니, 예의 이동도서관은 내가 그동안 살면서 읽어온 책들이다. 이런 상상의 날개가 깜찍하지 않은가.

 

사실 독서중독자들이라면 다들 공감하겠지만, 정신을 빼는 낮시간보다 밤시간이 훨씬 책 읽기에 좋지 않은가. 지금 내 곁에서 거의 더위를 쫓기 위해 틀어 놓은 백색소음의 주인공 선풍기와 집밖에서 끝없이 울어대는 귀뚜라미 소리 정도는 애교다. 하긴 무더위에 책 읽는 것도 쉽지 않은 미션이다. 돈도 한푼 들지 않고 시원한 바람을 실컷 쐴 수 있는 도서관에 그래서 사람들이 그렇게 많이 들어와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픽노블의 화자는 심야 이동도서관이 지난 매력에 푹 빠져 버렸다. 하지만 대출은 안된다고 담당 사서인 오픈쇼는 완고하게 화자의 요청을 거절한다. 그리고 또 언제 다시 만날 수 있을 지도 장담할 수가 없고. 집으로 돌아온 화자는 남친이에게 자신의 경험담을 이야기해 보지만, 현실세계에서 T를 담당하는 남친이에겐 헛소리에 지나지 않는다. 상상력이 없는 인간 같으니라고. 결국 둘은 헤어지고, 이동도서관에 오르기 위해 화자는 9년을 기다려야 했다.

 

아마 그래픽노블의 배경이 시카고 부근인지 컵스 팬들이 우글거리는 리글리필드 근처에서 다시 오픈쇼 아재가 운영하는 이동도서관을 만나게 된다. 그리고 자신을 사서로 써달라고 정중하게 요청하지만, 운영 규칙상 불가라는 소리만 듣게 된다.

 

결국 화자는 자신이 진짜 하고 싶은 일이 사서라는 것을 깨닫게 되고, 대학에서 전문적인 사서 교육을 받는다. , 이거야말로 환상이 실제가 되는 추체험이라고 해야 할까. 그리고 보니 <독서중독자> 2탄에서도 비슷한 설정이 나오지 않던가. 아직 다 읽어본 게 아니라 뭐라 말할 수가 없다. 그리고 과연 우리 관내 도서관들이 이 책들을 구입해서 비치할까도 사실 좀 궁금하다. 동시에 기대도 하고 있다.

 

화자는 확실히 독서중독자가 틀림없다. 사서 규욕을 마친 화자는 공립도서관에서 책을 빌려주는 일을 하게 된다. 그리고 계속해서 승진해서 도서관장의 자리에까지 올랐던가. 그 다음에는 좀 비극적인 엔딩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어쨌든 그렇게 서사는 흘러간다.

 

매력적인 단편을 그래픽노블로 만들었다고 하는데, 나라면 이 이야기를 바탕으로 해서 독서중독자들을 위한 시리즈를 만들어도 괜찮지 않을까 싶다. 심야식당의 아재처럼, 늦은 밤에 이동도서관을 끌고 이곳저곳을 돌면서 책과 관련된 이야기들을 들어 주고 또 처방도 해주는 그런 설정 말이다. 이것 또한 독서중독자들에게나 먹힐 법한 그런 이야기이려나.

 

그래픽노블의 화자처럼, 나도 내가 그동안 연을 맺은 책들의 집합과 언젠가 대면하게 된다면 어떤 느낌이 들까 싶다. 참 할 말이 많지 않을까. 그렇다면 사서가 필요한 게 아니라, 나의 그런 이야기들을 들어줄 청자가 필요한 거겠지 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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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미 2023-08-07 10: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독서중독자들을 위한 시리즈 좋은데요?!! 최근 사서에 대한 소설이 나와서 궁금해 찜해두었는데 이런 그래픽노블 반갑네요.

너무 바쁘지 않은 사서라면
시원한 도서관에서 책도 맘껏 읽고 행복할듯합니다ㅎㅎ

레삭매냐 2023-08-07 17:22   좋아요 1 | URL
나이 들어서 도서관 카트를
끌고 서가 정리를 하는 자원봉사
도 멋지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그런데 어디 가나 출몰하는 진상
들은 도서관에도 있더라구요.

예전에 도서관에서 사서들 분들
에게 융통성이 없다고 악쓰는 진
상의 모습을 보니 참...

원칙 대신 자신에게만 편의를 제공
해 달라는 말을 융통성으로 포장하
는 -

건수하 2023-08-07 11: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릴 때 <시간 여행자의 아내>도 좋아했지만 (지금 봐도 좋을지는…) 이 이야기가 더 좋더군요. 이동 도서관을 만나기 위한 과정은 꼭 그래야만 하나.. 싶지만요 ^^

레삭매냐 2023-08-07 17:23   좋아요 2 | URL
아마 그래픽노블에서 어떤 특별한
시간에 대한 추억으로 화자가 계속
해서 심야 이동도서관을 기다리게
된 게 아닐까 싶습니다.

그것은 마치 첫사랑의 느낌이라고
나 할까요 핫하 -

서니데이 2023-08-12 18: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시간여행자의 아내는 아마 영화로 제작된 것 같은데, 이 작가의 책이 영상이나 다른 방식으로 재해석하기 좋은 점이 있나보군요. 잘 읽었습니다.
레삭매냐님 좋은 주말 보내세요.^^

레삭매냐 2023-08-17 23:30   좋아요 1 | URL
답글이 늦었네요 ㅠㅠ
저는 시간의 여행자의 아내는
영화로 보지 못했네요. 근데
문득 보고 싶어졌다는.

어느새 주말이 다가왔네요.
모쪼록 즐거운 주말이 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