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에 모든 것을 다 삼켜 버린 공룡 너튜브에 올라온 영화 리뷰를 한 편 보았다. 원래 영화를 볼 생각이라면 이런 리뷰는 보지 말아야 하는데. 하지만 어쩌랴 얄팍한 계산수가 팍팍 작동하여 1시간 40분(정확한 러닝타임도 모른다) 투자하느니 그냥 10여분 짜리로 가자고 마음 먹었다. 그리고 리뷰를 본 다음 결국, 찾아서 영화를 보게 됐다. 그렇게 가는 거지.
일단 이놈의 영화 <더헌트>는 이유를 모른 채, 어딘가로 끌려온 11명인가 12명 정도 되는 사람들이 인간사냥을 당하는 이야기를 모티프로 삼고 있다. 영화 리뷰에서 못봤는데, 그들을 실어 날르는 비행기 안에서 이미 잔혹한 킬링 스프리는 시작된다. 그것도 하이힐로! 오마이갓! 어려서는 이런 무서운 장면들은 눈을 가리고도 못 보았는데... 이제는 하도 단련이 돼서 그런지 뭐야 이게 싶다. 헐.
그리고 사람들이 입에 재갈을 물린 채, 하나둘씩 깨어나기 시작한다. 벌판에 무슨 커다란 나무상자가 하나 놓여 있고, 어느나라 위대한 국회의원께서 당당하게 국회의사당에서 그 위용한 과시한 노루발이 등장한다. 한 마디로 말해 노루발로 나무상자를 뜯어 보라는 말이렸다. 고 안에는 재갈을 푸는 열쇠와 각종 소화기들이 찬란하게 진열되어 있다. 그 순간, 사방에서 사람들을 향해 총탄이 날아들기 시작한다.
비록 소화기들이 있긴 하지만, 제대로 된 훈련도 받아 보지 못한 민간인들이 보이지 않는 적들을 상대로 버틸 재간이 없었다. 그들은 하나둘씩 처참하게 죽어 나가기 시작한다. 함정에 빠져 꼬챙이에 찔려 죽기도 하고, 부상당한 동료를 부축해서 도망치다가 이번에는 지뢰를 밟아 쾅! 철조망을 넘다가 어디선가 날아온 화살에 당하기도 한다. 부상을 당해 도망가던 이에게 수류탄이 날아든다. 이건 정말 창의적인데 그래.
어느 주유소 옆의 상점으로 가까스로 탈출하는데 성공한 3인조는 전화기로 구조를 요청해 보지만, 그들 역시 인간사냥의 덫으로부터 달아날 수가 없었다. 나이 지긋한 부부 역시 인간사냥팀의 일원이었던 것이다. 한 명은 진열된 음식을 먹고 독살됐고, 또 한 명은 독가스에 그리고 산탄총에 맞아 희생된다. 도대체 이들은 무슨 이유로 이들을 죽이는 걸까?
그 순간, <더헌트>의 진짜 주인공 스노볼이라는 별명의 여성이 등장한다. 등장부터 비범하다. 스노볼은 깔끔하게 3인조의 시신을 처리한 부부에게 어디가 어디냐는 질문을 던진다. 아칸소라고 주저하며 대답하는 주인장 노부부. 담배 한 갑을 달라며 20달러 지폐를 내니 10달러와 잔돈을 내준다. 그 순간, 카운터의 할머니를 공격하고 곧바로 할아버지에게 총질을 해대는 스노볼. 아칸소에서는 담배가 6달러라고. 노부부는 준비를 제대로 못한 죄로 그만 스노볼의 첫 번째 희생자가 되고 만다.
주유소에서 살아남은 희생자 동지는 그들을 추격하는 드론을 총으로 격추시킨다. 그렇게 함으로써 자신의 위치를 노출시켰다는 스노볼의 핀잔을 먹는 남자. 둘은 달리는 기차 위로 올라 타고, 그 안에서 난민 일행을 만난다. 이 설절은 좀 뜸금 없는데 킬링 스프리를 기획한 이들이 이 정도의 스케일을 구사한다는 말이지. 기차까지 동원해서. 대단하다 대단해.
남자는 기차 안에서 만난 아랍계 남자를 의심한다. 처음에는 어느 나라 말인지 알아듣지도 못할 언어를 말하는데, 남자의 예상대로 게리라고 불리는 남자는 인간사냥팀의 일원이었다. 코네티컷 출신의 남자는 유엔군으로 보이는 이들이 한눈을 파는 사이 유창한 영어로 남자와 스노볼을 조롱한다. 결국 그도 수류탄이 바지에 넣어져 산산조각이 되고 만다. 남자는 그 사이에 어디론가 도주한다.
스노볼은 난민캠프에서 영화의 초반 나무상자를 뜯지 말라고 경고하던 아저씨 돈을 다시 만난다. 그리고 미국 대사관인지 어디선가 나타난 정장 차림의 남자의 에스코트를 받아 어디론가 떠난다. 이상한 낌새를 챈 스노볼은 정장 차림의 남자에게 일격을 가하고, 참교육을 시전한다. 그리고 그의 트렁크에서 기차 씬에서 도주한 남자의 시신을 발견한다.
그 다음, 스노볼은 처음에 나무상자에서 튀어나왔던 꿀꿀이 오웰을 데리고 인간사냥팀의 본진을 습격해서 쑥대밭으로 만든다. 그리고 이 모든 걸 계획한 아테나를 찾아나선다. 스노볼에 버금가는 실력을 지닌 엔딩 씨퀀스의 아테나와의 대결은 영화 <킬 빌>의 서두를 장식하는 버니타 그린과 키도와의 그것을 연상시켰다. 스노볼의 처절한 복수가 시작된다.
아 그리고 보니 첫 장면을 말하지 않았는데, 오래전 단톡방에서 이루어진 킬링 스프리를 암시하는 대화로 인간사냥팀의 선수들이 직장에서 해고되는 일련의 사건이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들을 온라인으로 격렬하게 비난했던 이들을 끌어 모아 복수전을 감행한다. 그게 바로 이 킬링 스프리의 본질이었던 것이다.
상당히 비급 정서로 제작된 영화는 많은 기대를 하지 않고 보았더니, 오히려 더 재미가 있었던 것 같다. 많은 비용을 들여 제작한 영화보다 어떤 미스터리를 툭 던져두고, 하나씩 풀어 나가는 방식이 인상적이었다. 어떻게 보면 별 것 아닌 일로 출발한 사건에, 일단의 인간사냥팀이 앙심을 품고 다분히 미국적인 방식인 총기를 사용한 폭력적 방식으로 해결에 나선다는 게 문제의 발단이다. 대화 따위는 필요 없다, 총알이 법이지. 그동안 세계 경찰로 군림해온 미국이라는 국가가 팍스 아메리카를 건설한 방식을 그대로 재현한다.
인간사냥팀이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한 원동력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자본의 힘이다. 잘 나가는 그들이 보유한 자본은 바로 권력으로 치환된다. 그들이 소유한 자가용 제트기 승무원은 자신이 서비스하는 고급 와인이나 캐비아는 맛도 보지 못했다. 그들이 자신의 돈줄이기 때문에 본격적인 인간사냥이 시작되기 전 기내에서 발생한 사건에 대해서도 눈을 감는다. 그들이 고문관으로 교육을 담당한 용병 아저씨도 마찬가지다. 고용주에게 살인기술과 전략을 가르쳐 주고 그 대가로 보수를 받는 것이다. 놀랍지 않은가? 별 것 아닌 요소들을 찬찬히 뜯어보면 그야말로 소름이 끼친다.
완벽하게 진행될 것 같았던 그네들의 계획은 스노볼의 등장으로 무산된다. 타겟을 고를 적에 그들은 자신들의 안전을 위해 좀 더 세심한 배려를 해야 했던 게 아닐까? 시골 출신 스노볼이 자신들의 가장 강력한 적으로 부상하게 될 줄 누가 알았을까. 아니 오래전 한 근육질하던 람보나 마동석 같은 이들이라면 아예 리스트에도 올리지 않았겠지. 한 마디로 말해 자본 권력을 지닌 인간사냥팀은 그야말로 손쉬운 먹잇감들만 사냥감으로 고른 것이다. 그들이 진짜 복수를 하고 싶었다면, 온라인상에서 자신들을 비난한 이들이 아니라 자신들을 해고한 이들을 상대로 했어야 했다. 출발부터 어그러진 계획이 성공하면 그게 더 이상하지 않았을까.
영화 포스터를 유심히 살펴보니, 영화 <퍼지>의 제작자가 만든 영화라고 한다. 그 영화를 떠올려 보니, 어떤 맥락이 보이는 것 같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