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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즈키 시게루의 일본 현대사 1 - 간토 대지진부터 중일 전쟁 돌입까지
미즈키 시게루 지음, 김진희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23년 1월
평점 :
품절
얼마 전, 미즈키 시게루 작가의 <일본 현대사> 시리즈의 존재를 알게 됐다. 나름 밀덕인 동시에 그래픽 노블이라면 사족을 쓰지 못하니 내가 이 책을 또 거두어 주지 않으면 누가 거두어 준단 말인가라는 생각으로 도전에 나섰다. 오늘 도서관에 방문해서 당당하게 이 책이 비치된 서가로 달려갔다. 총 네 권을 드는 순간, 손모가지가 나가는 줄 알았다. 그만큼 분량이 방대하다는 말이다. 일단 대여하기 위해 지난 주에 빌린 책들을 모두 반납하고, 부지런히 읽었다. 그래서 일단 1권은 도서관에서 모두 읽고 나머지 3권을 빌려왔다. 여유감 때문인지 1권 만큼 스피드가 나지 않는다고나 할까.
미즈키 시게루가 그리고 쓴 <일본 현대사>의 원제는 <쇼와사>라고 한다. 다이쇼 연간에 일본 돗토리현 사카이미나토시에서 태어난 만화가이지 평화주의자 미즈키 시게루는 1922년 간토대지진이 발생한 해에 태어났다. 간토대지진은 1차세계대전 후, 흥청이던 일본 경제에 도래한 공황의 전주곡이었다. 아무리 미즈키 시게루 작가가 양심적인 지식인이라도 하더라도, 간토대지진 당시 희생된 한국 사람들에 대해 언급할 정도의 양식은 가지고 있지 않다는 점이 좀 아쉬웠다.
저자는 숨 가쁘게 돌아가던 일본 경제가 나락으로 떨어지는 과정과 동시에 일본 군부 세력들이 이른바 다이쇼 데모크라시라 불리던 사회 분위기를 군국주의 파시즘으로 몰아가던 당시 상황을 마치 라디오로 생중계하듯 그렇게 독자에게 전달해준다. 한 가지 특징을 말한다면, ‘생쥐인간’을 투입해서 설명을 곁들이는 센스를 발휘한다. 그리고 작가의 작품 활동에 지대한 영향을 준 요괴 입문을 도운 인물로 농농할멈을 배치하기도 한다. 아직 미즈키 시게루의 요괴물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기 때문에 일단 패스.
조선을 1910년 병탄한 일본은 대륙진출의 발판으로 삼아 만주침략을 본격화하기 시작한다. 황고둔 사건으로 만주 군벌 장쭤린을 폭사시킨 일본군은 정예 관동군을 파견해서 중원 침략의 야욕을 불태우기 시작한다. 일본 정부 지침을 따르지 않는 일본군의 하극상은 아마 이 시기부터 일상이 되지 않았나 싶다. 군축회의로 태평양과 아시아의 패자로 부상하던 일본을 견제하던 서구 열강을 의식해서, 일본 내각은 확전을 극히 경계했지만 이른바 군부 내의 일부 모험주의자들을 제압할 수는 없었다.
경제 공황의 여파로 일본 각지에서 빈곤과 가난 그리고 굶주림이 만연했다. 다이쇼 연간에 활발하게 전개되던 노동쟁의는 치안유지법 같은 악법의 시행으로 일소되고, 사회주의 계열의 인사들이 대거 투옥되고 전향하면서 일본 국가의 군국주의화는 거스를 수 없는 대세가 되었다. 미즈키 시게루는 이런 쇼와 시대의 일상에 자기 가족의 이야기를 투영하는 방식으로 서사를 구축해나간다.
일본 현대사를 살아낸 민초의 대표주자라고 할 수 있는 미즈키 시게루는 집안의 차남이었다. 와세다 대학 출신 아버지는 은행 업무를 하다가 자기 멋대로 숙직 시간을 조정했다가 잘려 버렸다. 그 다음에는 영화관을 운영하다가 영사기를 도난당하는 바람에 사업을 들어 먹었다. 그 다음에는 시게루의 조부가 계신 오사카로 가서 보험업을 했다고. 이재에 밝았던 조부는 공황의 전조가 보이자 재빨리 재산을 정리해서 바타비아(지금의 인도네시아)로 건너가 사업을 일으켜 한몫 챙기는 사업수완을 보여 주기도 했다.
일본 국내 특히 그 중에서도 도호쿠 지방의 가난과 궁핍에 절망한 일단의 황도파 청년 장교들은 수시로 쿠데타 시도와 폭력 사태를 일으켰다. 오죽했으면 작가가 전쟁을 치르면서 평생 다시는 과자를 먹을 수 없을 거라고 예상했을까. 너무 가난해서 초등학생 아들을 강제로 배에 태워야 했고, 딸들은 유곽에 팔아야할 지경이었다. 이런 와중에, 조금이라도 우익 세력에 밉보였다가는 내각의 수장인 총리부터 시작해서 여러 대신들이 그들에게 테러당하는 일들이 일상이 되어 버렸다. 그렇게 전권을 쥐게 된 군부는 내각과 일본 국가의 대외정책마저 멋대로 좌지우지했다.
서방의 군국주의 세력이었던 독일-이탈리아와 군국주의 파시즘 체제라는 공통점을 바탕으로 긴밀해지기 시작한 일본은 본격적인 중국 침략에 나서기 시작하면서 국제연맹에서 탈퇴해 버렸다. 만주의 풍운아로 알려진 이시하라 간지와 이타가키 세이지로 등이 주축이 되어 일으킨 만주사변으로 폭사한 장쭤린의 후계자 장쉐량을 내쫓고, 러일전쟁 이래 염원이던 만주를 장악하는데 성공한다. 이후에는 청나라의 마지막 황제 푸이를 내세워 만주국이라는 괴뢰국을 세우지만, 종전 때까지 국제 사회의 인정을 받지 못했다.
이런 일본의 군사적 모험에 아이들은 열광했다. 군부는 멀쩡한 청년들을 희생시킨 ‘육탄3용사’ 조작도 마다하지 않았다. 자기나라 시민들의 민생에는 소홀하고 무능했던 정부가 국가 세입을 절반을 군비에 투입하며, 오로지 시민들의 희생만을 강조하는 모습을 저자는 냉철한 시선으로 그려냈다.
훗날 중일전쟁과 대미전쟁 그리고 패망으로 이어지는 일본의 군사적 모험의 근원을 추적하는 미즈키 시게루 작가의 노고를 집대성한 것이 바로 이 <일본 현대사>다. 우선 2,000쪽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에 놀라고, 몸으로 쇼와 시대를 살아낸 작가의 육성 증언에 감탄했다. 바로 2권 읽기에 나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