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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 함락 1945 ㅣ 걸작 논픽션 26
앤터니 비버 지음, 이두영 옮김, 권성욱 감수 / 글항아리 / 2023년 8월
평점 :
지난 열흘 동안, 아돌프 히틀러가 세운 제3제국의 마지막 순간들을 읽었다. 2차 세계대전사에서 세계적 권위를 가지고 있는 앤터니 비버는 전후 숱하게 풀린 수많은 자료들은 물론이고 개인의 서신, 일기 등의 기록을 바탕으로 주로 소련군이 주인공이 되어 파시스트 정권을 무너뜨리는 과정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했다. 책을 읽는 내내, CNN에서 실시간으로 중계해 주는 전쟁 실황을 보는 느낌이 들었다. 개인적으로 전사를 좋아하는 취향 탓도 있겠지만, 올해 최고의 책 가운데 꼽는데 주저하지 않겠다. 670쪽을 넘는 책이라 완독하는데 시간이 좀 걸렸다.
사실 1943년 1월 30일, 청색작전으로 시작된 독일군의 코카서스에 대한 대공세는 스탈린그라드 포위전에서 독일 최강이라는 제6군이 통째로 괴멸되면서 동부전선에서 독일의 승리 가능성은 날아가 버렸다. 전쟁의 변곡점이라고 해야 할까. 이후 쿠르스크 전투(1943)와 소련의 바그라티온 공세(1944)로 전세는 완전히 연합군 측으로 기울어져 버렸다. 소련은 대소전을 대조국전쟁이라고 부르는데, 조국을 침탈하고 산산조각낸 ‘파시스트 짐승의 소굴’로의 진격만이 남아 있었다.
히틀러는 마지막 전력을 짜내어 1944년말 아르덴 공세를 준비했다가 예비군마저 다 박살이 나면서 제국의 운명을 앞당겨 버렸다. 이 시점에서 한 때 윌리엄 로런스 샤이러가 천재가 아닐까라고 썼던 총통의 총기는 다 사라져 버렸고, 이후 거의 도박에 가까운 시도들이 이어졌다. 동서 양쪽에서 연합군의 전력은 독일의 그것을 능가했다. 결국 스탈린은 1월 겨울공세에 어마무시한 병력을 동원해서 폴란드의 수도 바르샤바를 해방시키고, 오데르-나이세 강을 향한 진격을 이어갔다.
하인츠 구데리안을 필두로 한 독일 정통 장군들은 쿠를란드와 동프로이센 그리고 브레슬라우 같은 거점 도시들에 포진해 있던 독일군 수비대를 철수시켜 독일 본토 방위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스탈린그라드에서 그랬던 것처럼 히틀러는 이번에도 현지사수만을 부르짖을 뿐이었다. 노도와 같이 밀려드는 압도적인 소련군의 보병은 물론이고 포병, 항공전력 앞에 동부전선에 투입된 독일 베테랑 전사들은 전황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의미 없는 수비 외에는 할 일이 없었다.
적도 베를린의 진격과 붉은 깃발을 제국의회 의사당에 걸겠다는 신념으로 뭉친 소련군부 내의 갈등도 극에 달했다. 소련군의 수장 주코프를 필두로 해서, 로코솝스키와 코네프 원수가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 폴란드 혼혈이라는 이유로 로코솝스키는 일단 제외되어 북부전선을 맡았다. 독일군의 침공으로 엄청난 피해를 입은 것에 대한 복수심에 불타는 소련군은 독일 민간인들에 대한 잔혹한 복수극을 벌였다. 이를 통제해야 하는 소련 군부는 이렇다할 제재를 하지 않았다. 전쟁 말기, 소련군의 심각한 기강 해이는 ‘파시스트 짐승의 소굴’을 격멸한다는 소비에트군의 대의를 실종시켜 버렸다.
저자는 ‘신성’한 소비에트 군대가 미국의 렌드리스 법안으로 자국에 지원된 미국산 스튜드베이커 트럭(15만 대)과 보급품의 위력에 대해서도 애써 축소하려고 했다는 점도 냉철하게 지적한다. 사실 나치 독일군을 추격하고 패퇴시키는 과정에서, 소비에트군 보급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할 것이다. 독일 영토로 진격할수록 자국으로부터 보급선이 길어지기 때문에, 이를 해결할 수 있는 보급차량의 수요는 절대적이었다. 서방의 이런 막대한 군수품과 차량 지원이 없었다면, 최전방 150만에 달하는 대병력에 병참지원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전장에서 자신들의 공적은 부풀리되, 서방의 조력에 대해서는 깎아내리라는 게 스탈린과 소련지도부의 일관된 방침이었다.
앤터니 비버는 이 책을 처음 발표할 때, 카라신 소련 대사가 심각하게 역사적 사실을 거론하는 것에 대해 우려를 표했다고 쓰고 있다. 대조국전쟁은 소련 역사에서 “신성”이 되어야 하는데, 동프로이센과 슐레지엔 각처에서 벌어진 집단 강간 같은 전쟁범죄를 눈감아 달라는 표현이었을까. 앤터니 비버는 소련의 이런 비난에도 불구하고 꿋꿋하게 사료를 바탕으로 해서 전쟁 막바지에 벌어진 다양한 형태의 비극적인 드라마들을 <베를린 함락 1945>에 기록했다.
나는 오래 전, 리더스 다이제스트를 통해 당시 동프로이센에서 벌어진 비극에 대해 간략하게 만난 기억이 있다. 이 책에서 앤터니 비버는 보다 방대한 자료들을 바탕으로 동부전선의 최후는 물론이고, 시시각각 베를린 포위를 좁혀 오는 소련군의 전략 전술에 대해 입체감 있게 그려냈다. 역설적이게도, 연합군의 독일군에 대한 유화정책 때문인지 동부전선에서는 소련군을 상대로 악착 같이 싸웠던 반면, 서부전선의 독일군은 상대적으로 그런 전투력을 보여주지 않았다.
이미 독일군이 전투력과 의지를 상실했다고 섣부르게 판단한 소련 군부는 마지막 대공세에서 포즈난 포위전과 젤로 고지 그리고 슈프레강 전투 등지에서 의외의 손실을 당했다. 사실 소련 장군들은 베를린 함락이라는 상징적 의미 때문에 전쟁 막판에 무리한 병력 운용을 했다가 많은 병사들이 베를린 시가전을 포함한 전투에서 전사하고 부상당했다. 연합군 사령관인 아이젠하워가 거의 전쟁이 끝난 마당에 미군 병사들의 생명을 보존하는데 주력한 것과는 천양지차가 나지 않는가.
동프로이센과 슐레지엔의 나치 대관구 지도자들은 국방군은 물론이고, 현지에서 급조된 국민돌격대들에게 압도적인 전력의 소련군에게 고작 판처파우스트 같은 소화기로 무장하고 끝까지 제국과 총통을 위해 싸우라고 하고선 자신들은 후방으로 도주해 버렸다. 지도자가 나서서 방위전에 나서도 간신히 버틸까 말까한 마당에, 자신들만의 안위를 걱정하는 “황금 꿩”들의 이런 작태야말로 히틀러 종말극을 장식하는 희비극이 아니었나 싶다.
1944년 7월의 불발된 쿠데타 시도로 독일국방군을 믿을 수 없게 된 히틀러는 SS제국지도자 하인리히 힘러에게 힘을 몰아 주지만, 게슈타포나 운용하고 마르틴 보어만과 총통의 후계자 자리만 경쟁할 줄 알았던 음모가 힘러에게 구데리안 같은 전략이 있을 리가 없었다. 이런 엉터리 지도자들 때문에 독일의 수많은 민간인들이 고스란히 전쟁의 피해를 입어야했다. 제대로 훈련도 받지 못하고 무장도 하지 못한 히틀러 유겐트 소속 분견대 소년들이 동부전선에서 독일 정규군을 상대로 단련된 소련 정예병사들에게 상대가 되었겠는가. 앤터니 비버는 이런 애송이 병사들을 전선으로 내몰아 죽게 만든 나치 지도부들의 광기를 신랄하게 비판한다. 훗날 독일 국가의 재건을 위해서라도 이런 소년들과 청년들의 무고한 희생은 회복할 수 없는 손실이었다.
1945년 4월 16일부터 시작된 소련군의 마지막 공세 앞에 독일 수비대는 속절 없이 무너져 버렸다. 복수심에 불타는 소련군은 끝까지 저항하는 무장친위대와 블라소프가 이끄는 “히위”들에게 일절의 자비를 베풀지 않았다. 전쟁 말기에 가서는 순혈주의를 자랑하는 나치의 무장친위대의 절반가량이 외국 의용군이었다는 사실이 참 놀라울 뿐이다. 히틀러의 최측근들마저 등을 돌리는 마당에 단마르크, 노르게 연대에 소속된 볼셰비즘에 대항하는 나치 이데올로기의 세례를 받은 타국의 젊은이들이 소련군을 상대로 끝까지 싸웠다는 사실은 역설 그 자체였다. 어쩌면, 이런 점들이 이데올로기 전쟁의 처절함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장면인지도 모르겠다.
전쟁 말기의 연합군 레이스에 대한 기술도 흥미로웠다. 소련군은 얄타에서 미영연합군과의 약속과 달리 폴란드에서 자유민주국가를 세울 의도가 전혀 없었다. 스메르시와 NKVD의 수장 베리야가 선제적으로 지목한 자유 폴란드군들은 탄압의 대상이 되었다. 빈과 프라하는 적군의 수중에 들어갔고, 덴마크는 가까스로 영국군이 진주하는데 성공했다.
스탈린의 소련은 어떤 방식으로든 전쟁으로 폐허가 조국의 재건을 위해 포로가 된 독일병사들을 이용하고자 했다. 그런 점에서, 소련군이 아닌 서방의 연합군에 대거 독일군이 투항하는 걸 사전에 막고자 전력을 다했다. 하지만, 동프로이센과 슐레지엔 각지에서 소련군이 저지른 만행 때문에 무장친위대들은 소련군에게 투항해서 처형당할 바에야 죽을 때까지 싸우는 선택을 했다. 아무리 소련의 제7국이 독일군을 상대로 선전전을 했어도, 동부 전선에서 소련군이 행한 일들을 감출 수가 없었다. 전후, 독일 일반 국민들의 반소감정이 치솟은 이유를 그들만 몰랐단 말인가.
저자는 서두에서 소련군이 미군보다 앞서 달렘에 있는 카이저 빌헬름 물리학 연구소 접수에 전력을 다했다는 점도 지적한다. 스탈린은 서방에 파견한 스파이를 통해 미국의 맨해튼 프로젝트의 진척 상황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전후 동맹국에서 냉전 경쟁국으로 바뀌게 될 것을 예상했던 걸까? 뒤쳐진 핵개발을 위해서라도 독일의 최신 핵기술이 필요했던 스탈린은 독일의 과학자들과 실험실 시설이 반드시 필요했다. 하지만 연합군은 베르너 하이젠베르크와 오토 한 같은 인물들을 먼저 체포해서 영국의 팜 홀로 이송했다. 앤터니 비버는 소련군이 독일에서 뜯어간 시설과 설비들이 정작 소련에서 활용되지 못했다는 사실도 기술한다.
그동안 1945년 4월 30일 자살한 히틀러의 시신이 발견되지 않았다고 알고 있었는데, 소련 정보부에서 휘발유에 타고 남은 총통의 시신을 수습했다는 사실도 처음 알게 됐다. 그리고 스탈린이 그 사실을 다른 사람도 아닌 주코프 원수에게까지 20년 동안 비밀로 했다는 점도 그저 놀라울 따름이었다.
히틀러 제3제국의 마지막 순간을 다룬 670쪽에 달하는 방대한 양의 대서사를 짧은 리뷰에 담기란 역부족이라는 생각이다. 앤터니 비버의 전작인 <피의 기록, 스탈린그라드 전투>와 <아르덴 대공세 1944>를 읽었는데, 개인적으로 이번 작품이 최고였다. 미처 몰랐던 부분에 대해서는 새로운 지식을 전달해 주었고, 7년 대전쟁의 마지막과 그 후과로 벌어진 비극을 다룬 대가의 조명은 그저 탁월했다. 5년 전에 나온 마켓가든 작전을 다룬 <아른헴>의 출간도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