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 근처에 새롭게 <플라테로북스>라는 독립서점이 하나 생겼다는 이야기를 어디선가 들었다. 이 바닥에서 책이라면 누구에게 뒤지지 않는다고(물론 읽고 뭐 그러는 것보다 사는 것으로!) 자부하는 나로서는 그냥 두고 볼 수가 없었다. 다만 분주한 일상 가운데 시간이 나지 않는다는 핑계를 대며 방문을 미루고 있었다.

 

그러던 유월의 어느 주말 마침내 플라테로북스를 방문할 기회를 잡았다. 물론 그것도 단독방문이 아닌 그 앞 빵집에 들렀다가 방문했노라고 고백하는 바이다.

 

새롭게 생긴 베이커리 전문점은 그 앞에 초라하게 덜렁 문을 연 서점과 달리 휘황찬란하기 그지 없었다. 육신의 허기와 커피로 갈증을 채우기 위해 수만 원을 쓰는 사람들에게 작은 서점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던 모양이다. 물론 나도 그곳에서 육신의 즐거움을 누렸다. 나중에 남으면 집에 가서 먹어야지 하고 페이스트리와 여느 때처럼 아이스라떼를 시켜 2층 테라스에 올라가니 무더운 여름날의 선선한 바람이 나의 염통을 편안하게 맹글어준다. 아 신난다. 그리고 남으면 싸간다는 페이스트리는 그 자리에서 마파람에 게눈 감추듯 나의 육신의 일부가 되었다.

 

그렇게 망중한을 즐긴 다음, 플라테로북스에 들렀다. 무엇 하나 쉽게 진행되는 법이 없다.

 


서점은 작고 아담했다. 누군가의 서재를 보면 그 사람의 성격을 알 수 있다고 했던가. 서점 주인장 양반이 서점에 비치해둔 책이 판매용이라기 보다 왠지 주인장의 인격과 독서 취향을 내보이는 게 아닌가 뭐 그런 생각이 잠깐 스치고 간다. 그리고 내가 샀지만 읽지 않은 책들이 바로 눈에 내리 꽂혔다. 최근에 나온 제발트의 신간 그리고 로맹 가리의 책들.

 

이달의 작가로 아마 주인장 양반은 버지니아 울프를 선정하신 모양이다. 얼마 전에 중고서점에서 데려온 솔출판사 한정판인 <자신만의 방>이 있나 둘러 보는 나. 혹시라도 그 책이 있다면 읽지 않은 책에 대한 죄책감이 덜어지려나.

 


작은 서점을 둘러 보면서 나는 왠지 어떤 책이라도 사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근데 내가 책이 없어서 책을 읽지 못하나? 오늘 아침에도 도서관에 가서 책반납하면서 세 권의 책을 빌리지 않았던가. 욕심이고 모든 게 허망이다.

 

작은 독립서점이기에 재고로 책을 보유하지 않는다는 점을 바로 알 수가 있었다. 내가 있는 동안, 두 팀 정도가 책방에 들렀는데 역시나 그들은 책방만 둘러보고 책은 사지 않고 나갔다. 아니 내가 왜 미안해 지는 거지? 나라도 뭔가 한 권이라도 사야 한다는 강력한 주술을 되뇌이게 된다.

 


거의 망가져서 사진이 잘 찍히지도 않는 핸드폰으로 사진 몇 장을 찍다가 주인장이 비치해둔 앙드레 케르테스의 원서 <On Reading>을 만나게 된다. 전형적인 외국에서 나온 사진집인데... 이거 울림이 보통이 아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열화당에서 헝가리 출신 포토저널리스트의 책이 한 권 나와 있긴 한데 <온 리딩>은 아니었다.

 


<온 리딩>에는 세계 각지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책과 만나는 순간을 앙드레 케르테스 작가가 애용하는 라이카 흑백필름으로 찍은 사진들이 담겨져 있었다. 단가는 무려 USD 30였다. 하긴 미쿡이 책값이 우리나라에 비해 비싸긴 하지. 게다가 사진집이 더더욱. 이 포스팅을 날리기 전에 구글링으로 검색해 보니 <온 리딩>에서 만난 여러 사진들이 주루룩 올라 오더라. 그래서 매우 반가웠다.

 


그리고 나오는 길에 진짜 오랜 만에 오프라인 서점에서 책을 한 권 주문했다. 오늘 도서관에서 빌린 에드거 모건 포스터의 <전망 좋은 방>이었다. 어제 램프의 요정 쿠폰 써먹겠다고 주문했다가 취소했다가 나의 귀중한 적립금 2,500원이 날아가 버려서 결국 도서관에 가서 빌려서 읽기 시작했는데 이거 재밌다. 아무래도 포스터 선생의 책은 컬렉션해야지 하는 마음으로 주문했다.

 

책방 주인장은 입고 되면 그 때 계산해도 된다고 하셨으나, 미리 결제하고 책방을 나섰다. 아마 다음 주초면 입고되겠지.

 

타이틀과는 전혀 다른 엉뚱한 소리만 했네 그래.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우리는 책방에 가는가냐고 묻는다면 책을 사러 간다고 말하고 싶다. 온라인 서점과 중고서점을 이용하는 나의 책구매 패턴과 상이한 구매였지만, 이런 일탈이 있어 삶이 풍요로워지는 게 아닌가 하고 내 마음대로 상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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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1-06-05 21:02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독립서점 잘 되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수익과 상관없이 그냥 좋아서 한다는 자부심 하나로 하면
할 수 있는 일은 아닌가 싶은데 과연 그럴 수 있나 싶어요.
나라에서 지원도 하고 그러면 좋을텐데.
그래야 선진국 아닙니까?ㅠ

레삭매냐 2021-06-05 23:23   좋아요 5 | URL
책산업이라는 게 철저하게 자본주의
시스템적이면서도 또 동시에 그렇지
않은 부분이 있어서 참 어려운 것
같습니다.

예전에는 책방이 1도 신기한 게
아니었는데, 아까 보니 손님들이
책방의 존재 자체에 대해 신기해
하던 점이 참...

독서괭 2021-06-05 21:21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누구에게 뒤지지 않으시는 거 맞는 것 같고요, 아이스라떼에 서점구경 부럽습니다😢

레삭매냐 2021-06-05 23:24   좋아요 5 | URL
아이스라떼도 좋았지만,
곁들었던 페이스트리가 정말
짱이었습니다. 아 또 먹고잡네요.

미미 2021-06-05 21:34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작은 서점 둘러보셨다는 글만 읽어도 저는 이미 미안해지네요.^^;ㅋㅋ
저도 빈손으로 못나왔을 거예요!
아마 로맹가리의 책을 샀을 듯 합니다. 덕분에 구경 잘했어요!

레삭매냐 2021-06-05 23:25   좋아요 5 | URL
제가 달팽이 속도로 로맹 가리
의 전작 읽기를 하고 있어서
그런진 몰라도 다섯 권의 가리
형님 책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답니다 :>

작고하신 지 40년이 넘었는데
도 새로운 책들이 꾸역꾸역
나오는 걸 보면 참 대단합니다.

새파랑 2021-06-05 23:21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책이라면 누구에게 뒤지지 않는다는 자부심이 멋지네요. 역시 레삭매냐님^^ 저도 <전망좋은 방> 읽어야 하는데 ㅎㅎ
사진보니 줌파의 책과 스토너, 슬픔이여 안녕이 눈에 확 들어오네요(저에게 별 7개짜리 책들~~)
검색해보니까 군포던데 저도 여기랑 그 옆에 있는 빵집도 가보고 싶네요 ~!!

레삭매냐 2021-06-05 23:27   좋아요 5 | URL
그만 어줍잖은 책부심이 폭발해
버린 모양입니다...

전 오늘부터 <전망 좋은 방> 읽기
시작했는데 프리뷰를 해서 그런지
술술 넘어 가더라구요. 뭐 책을
주문했으니 좀 쉬엄쉬엄 가렵니다.

낭중에 건너편 빵집 포스팅도 한
번 해보겠습니다. 기대해 주셔요.

붕붕툐툐 2021-06-06 00:34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플라테로북스>를 먼저 찾아본 후 그 앞 빵집을 알아보고, 같은 코스로 방문한다.ㅋㅋㅋㅋㅋ

레삭매냐 2021-06-06 18:07   좋아요 1 | URL
아마 빵집과 책방의 스케일
차이에 놀라실 거라고 장담
하는 바입니다.

페넬로페 2021-06-06 00:48   좋아요 7 | 댓글달기 | URL
전엔 외출하면 서점에 꼭 한번씩은 갔었는데 요즘은 정말 안가는것 같아요~~
서점, 또는 독립서점에 가면 책을 하나쯤은 사들고 와야 하는데 그래서 좀 미안하네요^^
페이스트리에서 웃고 갑니다
사실 그게 남겨둘 양은 아닌듯해요 ㅎㅎ

레삭매냐 2021-06-06 18:09   좋아요 2 | URL
이제 책 구매의 패턴이 책방
에서 온라인으로 바뀐 탓이
아닐까 싶습니다.

저도 대형서점에 가서 실물
은 보지만 실제로 구매로 이
어지지는 않더라구요.

작은 책방은 이야기가 다르
지만 말이죠.

페이스트리를 푸짐하게 판단
한 저의 오판이었습니다.

mini74 2021-06-06 13:46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치킨하고 빵은 원래 남기는 거 아닙니다 ㅎㅎ 독립서점들이 살아남기 위해 다양한 북클럽이나 혹은 글쓰기 수업. 치유의 책읽기 등 다양한 행사를 하더라고요. 그렇지 않음 힘들다고ㅠㅠ

레삭매냐 2021-06-06 18:10   좋아요 2 | URL
예전에 일산에 있는 어느 서점
에서 션한 맥쥬도 판다고 하여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으
나 음주를 하게 되면 차를 데려
올 수가 없어서 방문을 포기했
던 생각이 문득 드네요.

말씀하신 대로 책방이 책의 유통
과 판매라는 고유의 업무보다
문화거점으로 거듭나는 상황이
요즘의 트렌드가 아닐까 싶습니다.
 


아마 오늘 발표가 난 것 같은데...

지난달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분 후보작 가운데 나의 픽이었던

다비드 디옵의 <밤에 모든 피는 검은색이다>가 결국 2021년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분 수상작이 되었다.

 

별 것 아니지만 왠지 으쓱으쓱...

 

그나저나 얼른 다비드 디옵의 책이 번역되어 나오길 고대한다.

얼마나 급했으면 아마존에서 미리보기 서비스로 몇 장 읽었겠는가 그래.

 

젭알.


다비드 디오빠(디옵)는 두 번째 소설, <밤에 모든 피는 검은색이다>1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던 그의 세네갈 증조부의 침묵에서 영감을 받아썼다.

 

디오빠는 부커 인터내셔널 상을 수상한 첫 번째 프랑스가 되었는데, 상금 5만 파운드는 디오빠와 영어 번역을 맡은 미국 작가이자 시인인 애나 모스초바키스가 나눠 먹는다.

 

숏리스트에 오른 다른 다섯 작품과 경쟁 끝에 디오빠의 책이 선정되었다. 경쟁작으로는 다른 프랑스 작가 에리크 뷔야르의 <가난한 자들의 전쟁>도 포함되어 있었다.

 

부커 인터내셔널 상은 매년 한 권에 책에 주어지는데, 영어로 번역되어 영국이나 아일랜드에서 출간된 책들을 대상으로 한다.

 

<밤에 모든 피는 검은색이다>에서 프랑스-세네갈 작가이자 문학교수인 디오빠는 전쟁을 치르면서 광기에 물들어 가는 영맨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1차세계대전에서 프랑스를 위해 싸운 세네갈 청년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최근 BBC와의 인터뷰에서 디오빠는 자신의 증조부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는 자신이 경험한 것에 대해 아내나 나의 어머니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게 내가 항상 이 특정한 전쟁에 대해 친밀함의 형식으로 접근양식을 제공하는 이야기에 대해 궁금해 하는 이유였다.”

 

<밤에 모든 피는 검은색이다>는 현지시각 62일 수요일 오후, 코벤트리 성당에서 열린부추얼 축하행사에서 수상작으로 발표되었다. 발표는 심사위원장인 루시 휴-할렛이 맡았다.

 

역사가이자 전기작가인 루시-할렛은 전쟁과 사랑 그리고 광기를 다룬 이 이야기는 놀라운 힘을 가지고 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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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1-06-03 10:20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오우 부커상! 드디어 발표 났군요. 저는 상들 중에서 이 부커상에 제일 약해요. 여기 상 받은 책들이 다 좋더라구요. 다비드 디옵이란 작가는 처음 보는데 이 아저씨 저 사진 너무 멋진데요. 완전 제가 반하는 스타일!!! 곧 책이 번역되어 나오겠죠? 저는 기다리는걸 잘하니까 - 그냥 가만 있으면 되니까요. ㅎㅎ - 아마존 미리보기 따위는 쳐다보지 않겠습니다. 인고의 기다림을 감내하는 한국여인상 그게 접니다. ^^

레삭매냐 2021-06-03 11:27   좋아요 4 | URL
본상은 아니고, 외국어 번역서를 대상
으로 한 인터내셔널 상으로 다비드
디오빠, 아니 디옵이 받았네요.

네 맛만 보았더니만 더 읽고 싶어지
더라구요 :> 기다리는 자에게 복이
있나니.

미미 2021-06-03 10:26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후보작이 선정됐을 때 죄다 번역해놓음 그걸로도 판매부수 올리고 이렇게 부커상 발표나면 독자는 또 바로 사 읽을 수 있으니 여러모로 좋을텐데 말입니다. 앞으로는 젭알!ㅋㅋㅋ

레삭매냐 2021-06-03 11:28   좋아요 4 | URL
크하 기발한 아이디어가 아닐 수
없습니다.

분량도 적어서 사실 숏리스트에
올랐을 때 번역 시작했어도 충분
하지 않았을까하고 조심스레
추정해 봅니다.

젭알 투 !

단발머리 2021-06-03 11:28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그러게요. 출판사들이 레삭매냐님의 추천작 미리 싹 살펴보고 했으면 지금은 대박의 기쁨 누릴텐데요.
오늘도 좋은 책소식 얻어듣고 갑니다^^

레삭매냐 2021-06-03 11:30   좋아요 4 | URL
저는 개인적으로 다비드 오빠의 책과
에리크 뷔야르의 <가난한 자들의 전쟁>
의 출간을 목 빠지게 기다리고 있답니다.

열린책덜, 열일해 주시길...

새파랑 2021-06-03 11:48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레삭매냐님 이번주 로또 번호좀 ㅎㅎ부커상 책은 다 좋을거 같은 느낌적인 느낌이 드네요^^

레삭매냐 2021-06-03 13:07   좋아요 3 | URL
그거슨... 저도 원하는 바입니다...

저는 수상작도 좋지만, 그만큼
후보에 오른 책에도 관심이 많아서
찾아서 보곤 한답니다.

stella.K 2021-06-03 13:28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이런 정보는 어디서 얻으시나요?
전 매냐님 아니었으면 모르고
한참 후에나 알뻔 했네요.
어떤 책일지 궁금하네요.^^

레삭매냐 2021-06-03 14:22   좋아요 5 | URL
인별그램에 해외 출판사를 걸어
두었더니 요런 정보가 팍팍
뜨더라구요 :> 게다가 알고리즘
까지 작동을 하야...

제가 지난달에 올린 페이퍼에
좀 더 디테일한 정보들을 올려
두었으니 참조하심이 :>

coolcat329 2021-06-03 13:48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진짜 기쁘셨겠어요. 내가 뽑은 책이 수상이라뇨~🤩
늘 해외 수상작은 레삭매냐님을 통해~!

레삭매냐 2021-06-03 14:53   좋아요 3 | URL
아무 생각 없이 삘로 갔는데
지대로 맞췄네요 핫하 -

빨랑 번역이 되길 바랄 뿐입니다.

mini74 2021-06-03 19:2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으쓱 으쓱 하셔도 될듯! 덤으로 엄지 척! 맞추면 상금이나 책이라도 주면 좋을텐데 그죠 ㅎㅎ

레삭매냐 2021-06-03 21:42   좋아요 1 | URL
하하하 듣기만 해도 유쾌해지네요 :>

그렇지 않아도 외국에서는 고런 이벵
을 진행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후보에 오른 책 6권 몰빵으로 앵겨주기!!!

붕붕툐툐 2021-06-03 23: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으쓱 으쓱 하실만 합니다. 안목 최고최고~👍👍

레삭매냐 2021-06-04 10:12   좋아요 0 | URL
순 운빨이었습니다.

카스피 2021-06-04 02: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좋아하는 작가가 상을 탄다면 저라도 어깨가 으쓱으쓱 할듯^^

레삭매냐 2021-06-04 10:14   좋아요 0 | URL
두 번째 소설로 이런 상을 받다니
다비드 오빠도 운빨이 좋은 것으로.
 















 

어제 주문한 브리스 디제이 팬케이트의 소설집이 오늘 도착했다.

섬과 달 출판사의 세 번째 책인가. 1번은 대만족이었고, 2번은 1번만 못해서 지금 읽다 말았다.

 

요즘 독서 슬럼프인지 이 책 저 책 시작만 하고 끝내질 못하고 있는 중이다.

이번에는 다 읽어야 하는데.

 

이름부터 마음에 든다. 팬케이크라니...

오래전 줄창 먹어대던 아이홉의 팬케이크 생각이 절로 나는구나. 그 땐 진짜 자주 가곤 했었지. 두툼한 팬케이크에 메이플 시럽을 뿌려 먹으면 정말... 그땐 그랬지.

 

브리스 디제이 팬케이크는 26살에 요절했다고 한다. 그의 죽음에 대한 이유는 명확하지 않다고 하는데... 그는 1952년 생이고, 1979년에 죽었다고 한다. 그 외에는 아무런 정보가 없다. 책으로 만나 봐야지 싶다.

 

이번 소설집에는 모두 12편의 소설들이 담겨져 있다.

오늘 저녁부터 바로 읽기에 돌입한다. 렛츠기릿.

 


====================================================================

 

평생 남에게 주기만 하던 남자, 브리스 디제이 팬케이크.

인별그램 이웃이자 달궁 두목님께서 이 작가의 라스트 네님 팬케이크가 본명이냐고 물으셨다. 위키피디아를 돌려 보니, 본명은 브리스 덱스터 팬케이크가 맞다. 오 놀랍군.

 

서문을 제임스 앨런 맥퍼슨 교수가 맡았다.

그분도 이제 고인이 되셨지만, 브리스 디제이가 살아 생전에 친분이 있었던 관계로 책의 서문을 썼다. 그렇게 나는 조금씩 브리스 디제이의 문학 세계에 발을 들여 놓게 되었다.

 

첫 단편은 브리스 디제이가 제임스 앨런 맥퍼슨에게 선물했다는 그 귀한 <삼엽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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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22598 2021-05-16 16: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이홉이라면...제가 아는 그 아이홉 맞습니까? ㅋㅋㅋㅋ 따뜻한 팬케이에 시럽 쳐부터 먹는 맛이란 ㅎㅎㅎ 음하.
팬케이크님의 책도 아이홉의 팬케이크처럼 치명적일까요?

레삭매냐 2021-05-16 18:15   좋아요 0 | URL
책의 표지에 힐빌리 헤밍웨이
라고 되어 있네요...

넵, 아이홉은 말씀하신 고
아이홉이 맞습니다.

미쿡인 친구가 인별그램에 댓글
을 달아 주었는데 애팔래치아
사투리를 번역본에서는 어케 다
루었는지 궁금해 하네요.

잠자냥 2021-05-17 10: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매냐 님께 땡스투 갔삼.

레삭매냐 2021-05-17 11:00   좋아요 0 | URL
매우 쌩유~합네다.
 


2021년 인터내셔널 부커상의 쇼트리스트가 발표되었다. 그 정보는 인별그램을 통해 알게 됐다. 여튼 정보 하나는 빠르다.

 

롱리스트 12권 중에서 절반이 떨어져 나가고 이제 6권이 남은 모양이다. 이 중에서 한 권이 대망의 수상작이 될 전망이다.

 

국내에 소개된 작가는 아르헨티나 소설가 마리아나 엔리케스와 프랑스 소설가 에리크 뷔야르 뿐이다. 후자는 그나마 공쿠르상 수상빨로 국내에 소개된 것 같다. 국내에는 두 권의 책이 소개되었는데 그 책들은 모두 읽었다. 서사가 너무 짧고 아예 모르는 부분들이 아니라 좀 아쉬운 느낌이었다. <콩키스타도르><콩고>도 읽고 싶다. 이번에 노미네이션이 된 작품은 2019년에 발표된 <가난한 사람들의 전쟁>이다.

 

 

영어로 된 번역서를 찾아보니 달랑 80쪽이다. 왜 너튜브 리뷰어들이 책이 짧아서 아쉽다고 하는지 알 것 같다. 종교개혁 당시 천상에서의 평등이 아닌 현세에서의 평등을 주장한 토마스 뮌처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모양이다. 리뷰를 한 번 찾아봐야 할 것 같다. 열린책들은 이 책의 분량도 적은데 신속하게 번역해서 내야 하는 게 아닐까? 물 들어올 때 노를 저어야지. 기존에 나온 책의 저자 소개에 책 제목이 나온 걸 보면 아마도 판권도 가지고 있는 것 같은 데 말이다.

 

 

쇼트리스트에 오른 6권의 책 중에서 나의 우선 픽은 프랑스 작가 다비드 디옵이 2018년 발표한 <밤에 모든 피는 검은색이다(영어제목 At Night All Blood Is Black)>. 디옵은 1966년 프랑스 파리에서 태어나, 세네갈에서 자랐다고 한다. 보통의 경우, 반대가 아니었던가. 그의 책 중에서 처음으로 영어로 번역된 책이기도 하다. 디옵은 대학에서 예술과 언어 부서장으로 근무하고 있으며 전문 분야는 18세기 프랑스 문학과 17세기 아프리카 연구라고 한다.

 


 

불어를 할 줄 알면, 저자가 출연한 프랑스 대담 프로그램을 좀 들어 보겠는데 아쉽다. 좀 들어 보니 어느 외계어 같다는 생각만 든다. 놀라운 건, 프랑스에 저자가 직접 출연해서 자신의 책에 대해 이야기하는 프로그램이 있다는 사실이었다. 한국에서는 아예 시도조차 해본 적이 없는 그런 프로그램이 아닌가. 과거에 있었다면 나의 무지의 소산이고.

 

 

1914년 그레이트 워라고 불린 1차 세계대전에 230만 명에 달하는 프랑스와 영국 아프리카 식민지 출신 병사들이 참전했다. 그 중에서도 세네갈 출신 병사들은 유럽 전선에서 프랑스로 파죽지세로 밀고 들어오는 빌헴름 카이저의 독일군과 맞서 싸웠다. 히틀러 시대에 만연한 인종주의 정도는 아니었지만, 독일에서는 그런 프랑스 식민지 병사들을 두고 라인 강의 검은 공포라는 말로 선전을 해댔다. 나중에 참전하게 되는 미국도 40만 명 정도의 흑인 병사들을 동원했는데, 비슷한 시기 미국 남부에서는 짐 크로우 법으로 수많은 흑인들이 차별당하고, 인종주의자들에게 희생되고 있었다.

 

<밤에 모든 피는 검은색이다>는 굉장히 어두운 색채의 전쟁 소설이다. 주인공이자 화자는 알파 엔디아예(발음은 내 마음대로 정해봤다, 나중에 번역이 되면 달라질 수도 쿨럭). 소설은 피와 살이 튀는 전장에서 내던져진 알파의 내적 고백으로 시작한다. 형제 이상이었던 전우 마뎀바 디옵이 전투에서 심각한 부상을 입고, 내장이 튀어 나와 죽어 간다. 마뎀바는 알파에게 세 번이나 자신의 고통을 끝내 달라고 간청한다. 더 이상의 고통을 견딜 수 없었던 마뎀바는 알파에게 자신의 목을 그어 죽여 달라고 부탁한다. 마치 번제물로 받쳐진 희생양처럼 말이다. 전장에서 자신은 인간이 아니었노라고, 알파는 고백한다.

 

알파의 후회가 이어진다. 마뎀바가 처음 부탁했을 때 그의 청을 들어주었어야 했다고. 나의 브라더가 산 채로 하이에나에게 잡아먹히던 늙고 외로운 사자처럼 죽게 만들지 말고, 그의 고통을 자신이 끝냈어야 했다고. 이보다 더한 트라우마가 있을 수 있을까. 친구의 시신을 소중하게 자신의 코트와 셔츠로 단단하게 감싼 알파는 참호로 되돌아간다. 죽어가는 친구의 마지막 요청을 들어주지 못한 자신을 자책하고, 마뎀바에게 용서를 구하며.

 

참호에서 병사들의 두목인 아르망 대위는 독일놈들이 검은 아프리카의 쇼콜라 병사들을 야만적인 니그로, 식인종 그리고 줄루로 생각하고 두려워한다고 사기를 북돋는다. 그가 말하지 않은 게 하나 있다. 백인 프랑스 병사들 역시 쇼콜라들을 두려워하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아르망은 또 쇼콜라들에게 사기를 친다. 프랑스가 그들을 존경한다고. 훗날 식민지를 모두 잃은 프랑스는 세계대전에서 한때 그들의 조국이었던 프랑스를 위해 싸운 알제리 출신 병사들에게 연금 지급을 거부했다. 백인 제국주의자들의 허위와 위선은 그렇게 유구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한다.

 

소설은 시작부터 범상치 않다. 그렇게 친구를 잃은 알파는 후회와 죄책감에 시달리며 복수심에 불타 폭주하기 시작한다. 독일군 진지로 넘어가 마체테로 적군을 죽이고 그들의 손을 잘라 오는 패기를 보여준다. 그런 그에게 동료 병사들은 그야말로 용감무쌍하다며 칭송하지만, 사랑하는 친구를 잃은 알파의 영혼을 살인이 계속될수록 피폐해져 갈 뿐이다.

 

 

게다가 그는 자신의 나라 세네갈이 아니라, 자국을 수탈하고 억압하는 식민 모국 프랑스의 용병이 아니었던가. 도대체 그들이 그레이트 워라고 불리는 유럽 대륙에서의 패권 경쟁이 평생 자신의 마을을 떠나지 않고 살던 알파와 마뎀바 같은 시골 청년들에게 무슨 의미란 말인가. 동료들은 그를 영웅이라고 칭송하지만, 알파가 네 번째 손을 가져오자 그를 두려워하기 시작한다. 동료 쇼콜라 병사들은 전쟁의 광기에 물든 알파를 디몬 혹은 소서러라고 부른다.

 

영어 번역서로 160쪽 정도 되는 다비드 디옵의 <밤에 모든 피는 검은색이다>는 그의 두 번째 소설이다. 첫 소설인 <1889, l'Attraction universelle>2012년에 발표됐다.

 

다음에는 에리크 뷔야르의 <가난한 사람들의 전쟁>에 대해 디비 보자.

 

 

오늘의 점심 메뉴, 존슨네 고기국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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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부만두 2021-05-14 10:24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멋진 소식 감사합니다!
그나저나 세상엔 작가와 이야기가 이렇게나 많고 많아서... 장수해야해요;;;; (홍삼을 마시며)

레삭매냐 2021-05-14 11:38   좋아요 3 | URL
도무지 스토리텔링의 세계는
정말 끝이 없는 것 같습니다.

이렇게 다양한 이야기를 만
나기 위해서라도 부디 장수만세!!!

잠자냥 2021-05-14 10:32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하여간 정보 빠르셔~ ㅎㅎ

레삭매냐 2021-05-14 11:39   좋아요 3 | URL
인별그램을 겟하고
여기저기서 퍼온 정보로
다가 구성해 봤습니다.

아마존 킨들 맛보기로 소설
서두를 본 것은 안 비밀입네다.

미미 2021-05-14 10:41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아 핫한 뉴스를 실어다 주셨습니다.ㅋㅋ👍<밤에 모든 피는 검은색이다>빨리 번역되면 좋겠네요!!!전쟁때 귀,코...저런 기념물?들 많이 챙겼다는데 죽음에 대한 공포도 한몫했을것 같아요. 으..

레삭매냐 2021-05-14 11:40   좋아요 3 | URL
급한 마음에, 아마존에서 제공
하는 맛보기를 조금 읽었는데
정말...

해외 너튜버들이 작년에 읽은
최고의 책 중의 하나로 꼽는
이유가 있었네요 기래.

페넬로페 2021-05-14 11:48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와! 너무 신선하고 핫한 뉴스~~
감사합니다^^
‘밤에 모든 피는 검은색이다‘~~
넘 기대되는 작품이예요

레삭매냐 2021-05-14 13:37   좋아요 3 | URL
이 책이 얼렁 번역이 돼서
출간되었으면 바램입니다.

분량도 적으니 속히 -

새파랑 2021-05-14 13:56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엄청난 정보력이네요. 전 항상 정보만 얻어가는데 ㅎㅎ 저기에 있는 작가는 아무도 모른다는데 반성합니다 ㅜㅜ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레삭매냐 2021-05-14 13:38   좋아요 4 | URL
저도 에리크 뷔야르 외에는 전혀
듣도 보도 못한 그런 작가들이랍
니다.

아, 마리아나 엔리케스는 들어는
보았군요.

세계문학은 정말 파고들수록 대단
하다는 느낌입니다.

바람돌이 2021-05-14 14:1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우와 이런 고급정보를 알려주시다니요. 레삭매냐님 항상 감사!!!
저는 맨부커상 수상작들은 거의 다 좋더라구요. 올해도 설레면서 기다릴 수 있을 거 같아요.

레삭매냐 2021-05-14 16:14   좋아요 1 | URL
올해는 인터내셔널 부커상
이 어느 작가에게 돌아가게
될 지 궁금합니다.

다음달 6월 21일 발표네요.

coolcat329 2021-05-14 15:3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레삭님 이런 정보 늘 알려주시니 감사합니다 ~^^

레삭매냐 2021-05-14 16:15   좋아요 2 | URL
부족한 정보가 도움이 되셨
다니 다행입니다.

mini74 2021-05-14 22:2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디비보자. 너무 좋습니다 ㅎㅎ

레삭매냐 2021-05-15 08:23   좋아요 0 | URL
에리크 뷔야르의 <가난한 사람들의 전쟁>
위해서 토마스 뮌처 열심히 공부하고
있습니다.

잘 디비~보도록 하겠습니다.

붕붕툐툐 2021-05-14 22: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레삭메냐님 정보력 갑!!
지금 번역이 안 된 작품이라도 상 받으면 바로 번역되어 나오겠죠?
올해도 완전 기대!! 행복한 기다림 주셔서 감사해용~ 언제 상 받는지는 몰랐어요~ㅋㅋㅋㅋ

레삭매냐 2021-05-15 08:25   좋아요 1 | URL
꼭 그런 것도 아닌 것 같습니다.

상 받은 작품은 아니지만 마이클
온다치의 <워라잇>이 여적 뭉개
고 있는 걸 보면 말이죠.

<밤에 모든 피는 검은색이다>는
분량이 적어서 번역하는데 그렇게
오래 걸리지 않을 수도 있지 않나
싶습니다.

외전인 인터내셔널은 봄이고,
본상은 가을에 발표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어제 그전에 보다만 영화 <화이트 타이거>를 마저 봤다. 드라마라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엔딩타이틀을 보니 a film by 어쩌구 하는 걸 보면서 이게 드라마가 아니라 영화구나 싶었다. 그래서 타이틀도 드라마가 아니라 영화로 정정했다.

 

여기는 다시 델리다. 오늘 아침에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스러운 샘의 소설가에게 보내는 편지글을 읽었는데, 배우는 게 많다. 소설가가 될 걸 아니지만, 소설 소비자로서 무언가 영업 비밀을 하나 깨우친 느낌이랄까. 영화의 화자 발람 할와이에게 드디어 위기가 닥친다.

 

핑키 마담의 벌쓰데이에 술에 잔뜩 취한 마담이 마하라자 분장을 한 발람 대신 굳이 운전을 하겠다고 운전대를 잡았다가 사달을 낸 것이다. 여러분, 절대 음주운전은 하지 마시라! 새벽 두시 경에 노상에 있던 어린아이를 친 것이다. 소위 미국에서 교육받았다는(심지어 핑키 마담은 박사님이시다!) 이들이 정당한 사고 수습을 할 생각은 하지 않고 꼼수를 쓴다. 그러니까 뺑소니를 친 것이다. 물론 충성스러운 하인 발람은 앰뷸런스나 경찰을 부르자는 주인님들의 의견을 무시하고, 사고 수습에 나선다.

 

뭐 거기까지는 좋다. 소식을 들은 고향 락사만다르의 황새 아저씨와 장남 무케시/몽구스가 델리로 상경한다. 그리고 느닷없이 그동안 막대하던 발람에게 친근 모드를 시전한다. 굳이 발람이 끊었다는 맛있는 빤까지 제공하면서 말이다. 그리고 자술서를 하나 들이미는데, 그건 바로 뺑소니의 주인공이 자신이라는 조작된 자술서였다. 락사만다르의 가족들에게는 모두 말을 잘해 놓았으니 걱정하지 말아라 등등 변호사를 동반한 황새 패밀리의 회유작전이 시작된 것이다.

 

마스터들에게 그렇게 헌신적으로 충성을 다했는데, 자신은 이제 교통사고를 저지른 살인자가 되어 감옥에 갇히고, 전과자가 될 판이다. 그러니까 한 마디로 말해 막바지로 몰린 것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발람 할와이의 고뇌가 폭발하기 시작한다. 더 어처구니없는 건, 예의 교통사고가 소리 소문 없이 무마되자 동생이라고 부르며 그렇게 친근하게 굴던 마스터들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바로 다시 차가운 주인 모드로 돌아갔다는 점이다.

 

이런 마스터들의 행위에 배신감을 느끼지 않는다면 인간이 아닐 것이다. 황새 아저씨의 이율배반적 행동에 진저리가 난 핑키 마담은 개판(shit)이라고 외치며 시아버지와 아주버님과 대판 싸운다. 그리고 자고 있는 발람을 깨워 뉴욕으로 튄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사람 좋은 NRI(Non-resident Indians) 아쇽은 발람을 구타한다. 이거 정말 사람 미치게 만드는구만 그래. 한 번 마스터는 마스터일 뿐이다. 아무리 포장을 한다고 해도, 마스터의 DNA는 바뀌지 않는다는 거다.

 

결국 발람은 힌디 무비의 전형적이라는 어떤 서사를 완성하고, 미스터 아쇽이 노래 부르던 뱅갈로르로 가서 시작한 사업이 대성공을 거둔다.

 

영화 <화이트 타이거>에는 현대 인도가 가지고 있는 모든 문제들이 담겨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 싶다. 대부분의 인도 문학이 다루는 카스트 제도는 오히려 심각한 빈부의 격차에서 발생하는 사회적 갈등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질 정도다. 오죽했으면 발람이 수탉장(the rooster coop)이 인도 최고의 발명품이라는 말을 했을까. 법률적으로는 폐지되었다고 하지만, 고질적 카스트 제도에 의한 차별은 인도 사회의 발전을 저해하는 심각한 요소이다. 그렇다고 모든 권력을 장악하고 있는 상위 카스트에서 순순히 자신들의 기득권을 내려놓을 리가 없겠지.

 

대놓고 농민들을 착취하는 지주 계급에 돈을 요구하는 정치인들의 모습은 또 어떠한가. 무자비하게 정치 헌금의 상납을 요구하는 이가 위대한 사회주의자의 수하라는 점이 역설적일 뿐이다. 잘못 베팅했다가 낭패를 본 아쇽 일가가 위대한 사회주의자 양반을 만나 100만 루피 제공의사를 전달했더니만, 네 배로 뻥튀기해서 내놓으라고 하지 않는가 말이다. 이런 정치권에서 작금의 최악으로 치닫는 코로나 사태의 해결을 바라기는 요원하기만 하다. 그들은 코로나 사태를 해결할 의지나 능력이 1도 없다는 게 더 큰 문제가 아닐까.

 

황새로 대표되는 지주 계급은 하인들의 가족들을 볼모로 삼아 수탉장을 공고하게 만든다. 집안의 어르신이자 절대반지를 휘두르는 쿠숨은 발람에게 색시를 보내, 닭장에 가둘 생각만 한다. 미스터 아쇽은 발람의 대체(replacement) 운전사를 찾기 시작한다. 자신들에 대해 너무 많이 아는 발람이 부담스러워진 것이다. 델리에서 그를 시골쥐라고 부르는 하숙집 아저씨(으응?)는 해고는 죽음보다 무서우며, 종착지는 판잣집이나 노숙자 신세라는 말에 발람은 대오각성하기에 이른다. 오만가지 잡생각들이 그를 괴롭히는 가운데 시장에서 만난 걸인 할머니는 집요하게 발람에게 적선을 요구한다. 우와, 그야말로 미치고 환장하고 팔짝 뛸 일이다. 내 문제도 감당이 안 되는데, 거지까지!!! 막판에 몰린 발람은 그야말로 버럭쟁이로 변신한다. 그리고 그동안 생각도 못했던 일을 결행에 나서게 되는 거지.

 

발람은 자신이 뭔 짓을 했을 때의 후과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원래 락사만다르에서 보내온 조카 다람을 두고 혼자 튀려고 했으나, 그의 불쌍한 운명 때문인지 어쩐지 다람을 데리고 뱅갈로르로 튄다. 쿠숨 할머니의 편지 한 장을 들고 달랑 상경한 다람에게 다짜고짜 손찌검을 하는 못난 삼촌. 에라이! 그는 뱅갈로르에서 북부 인도의 어느 마을에서 일가족 17명이 몰살되었다는 신문기사를 보게 된다. 그게 무슨 의미인지는 이미 결행 이전의 판타지로 처리된 영상으로 시청자는 잘 알고 있다. 지주들이 파견한 청부업자들은 일가족을 소총까지 동원해서 처리한다. 너무 잔인한 장면들을 무음으로 처리해서 희화화한 게 아닌가 싶다.

 

물론 영화는 소설의 풍부함을 따라가지 못한다. 하지만 발람 역을 맡은 아르다시 구라브는 고뇌하는 영혼을 지닌 청년 역을 충실하게 완수했다. 그의 프로필을 뒤져 보니 거의 인도판 아이돌급의 스타였다. 소설에서 발람이 쇠파이프를 시멘트 덩어리에 내리치며 울분을 토로하던 장면이 있었나? 비굴하게 마스터들의 비위를 맞춰 가며 요리사, 발마사지사 그리고 운전사를 오가며 결국에는 성공한 사업가로 변신하게 되는 팔색조 같은 연기를 펼친다. 미스터 아쇽 역의 라지쿠마르 라오 역시 NRI 지식인이면서도 결국에는 미국에서는 이방인일 수밖에 없는 자신의 처지를 깨닫고 조국에 남는 선택을 하게 된다. 그게 결국 자신의 파국을 가져 오긴 했지만. 핑키 마담 역의 프리앙카 초프라는 왜 이렇게 영어를 잘하는 건지. NYC 출신 박사님답게 거의 네이티브 뺨치는 실력의 영어를 구사한다. 결국 다 때려치우고 미국으로 야반도주하는 장면으로 영화에서 아웃.

 

영화 <화이트 타이거>에는 발리우드 영화의 특징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는 노래와 춤이 1도 등장하지 않는다. 이것도 놀랍지 않은가. 모든 발리우드 영화의 공식 같은 흥겨운 노래와 춤이 등장하지 않는다니 말이다. 영화를 딱 절반으로 갈라 전반부가 빛의 인도를 다뤘다면, 나머지 절반은 어둠의 인도를 그리고 있다. 소설도 만족이었지만, 넷플릭스 영화도 상당한 수작이었다.

 

됐고, 아라빈드 아디가의 다른 책들이 어서 우리나라에 출간되었으면 좋겠다. 바로 사들일 텐데. 그리고 좀 더 심각한 차원에서 인도 사회를 그린 로힌턴 미스트리의 <적절한 균형> 같은 작품들도 넷플릭스에서 영화로 만들어 주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너무 방대해서 그게 과연 가능할 진 모르겠지만. 불가능을 가능하게 하는 것, 그게 바로 영화가 하는 일이 아니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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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olcat329 2021-05-07 12:08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저도 어제 밤 3분의 2까지 봤어요. 책 속의 문장들 그대로 많이 나오더라구요. 이 영화 추천할수 있는 점이 발리우드 영화 특징인 그 춤과 노래가 안나오는거죠! ㅎㅎ

이 책 읽고 미스트리의 <적절한균형>을 집어들기까진 했는데 , 너무 무거워서 다시 꽂아두었네요. 😅


레삭매냐 2021-05-07 13:08   좋아요 6 | URL
인도 관련 독서가 일천하지만
제가 지금까지 만난 인도를 다룬
책 중에서 단연 로힌턴 미스트리
의 <적절한 균형>이 최고라고
말씀드리겄습니다.

버겁긴 하지만 완독하시고 나면
정말 뿌듯하시리라고 믿슙니다.

저도 어젯밤에 <화이트 타이거>
좀만 보고 자려다가 결국 엔딩
까지 달리게 되었더라는.

새파랑 2021-05-07 12:2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대세는 인도 ㅎㅎ 재미있을거 같아요 ㅋ 저도 책으로 먼저 읽고 영화를 찾아봐야겠습니다^^

레삭매냐 2021-05-07 13:09   좋아요 4 | URL
인도 출신 작가들의 영어 쓰기
능력이 출중하야, 세계화에도
다른 나라들에 비해 월등한 것
같습니다.

인도 작가들이 좀 더 많이 소개
되었으면 하는 그런 바램입니다.

얄라알라 2021-05-07 15:0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전 발리우드 영화를 제대로 본 건 없지만, 춤과 노래 화려한 의상을 빼고는 상상할 수 없던데 <화이트 타이거>는 보다 사회비판적 성격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셈인가요?
˝수탉장(the rooster coop)이 인도 최고의 발명품˝ 읽고도 바로 감이 오지는 않았어요. 실리콘벨리에서 대체육으로 주가를 올리는 분이 인도의 닭장을 보고 깨달으을 얻었다고 했던 에피소드는 얼핏 떠오르지만 그런 의미는 아닌듯^^;; 저도 더 찾으며 덕분에 공부해보아야겠습니다.

레삭매냐 2021-05-07 15:55   좋아요 2 | URL
dark side of India
라고나 할까요?

발리우드가 춤과 노래로 인도의 비참한
현실을 감추었다면, <화이트 타이거>
는 날것 그대로의 인도를 생생하게 전
달합니다.

아, 주인공 발람이 1초도 주저하지 않고
바지를 내리고 길똥을 시전하는 장면은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습니다.
웃기면서도 참 슬프더라는.

‘수탉장‘은 영화나 책을 보시면 바로
아실 수 있답니다. 더 디테일하게 까면
스포일러로 욕을 먹을 수가 있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