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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스버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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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도미니크 아벨, 피오나 고든 그리고 브루노 로미 트리오의 <룸바>(2008)를 봤다. 그러고 나서 그들의 전작인 <빙산>(L'iceberg)(2005)이 너무나 보고 싶어졌다. 아주 어렵게 구해서, 원어로 자막도 없이 <빙산>을 접할 수가 있었다. 아쉽기만, 대사가 나오는 부분들은 모두 패스하고 봤다. <룸바>처럼 그다지 대사가 많은 것도 아니고 도미니크 아벨과 피오나 고든의 마임이 영화의 대부분을 차지하는지라 영화를 보는 데는 크게 지장이 없었던 것 같다.

패스트푸드 가게의 매니저로 일하는 피오나(피오나 고든 분)는 어느 날 업무를 마치고 집으로 가는 길에 깜빡하고 냉동고에 넣지 않은 물건 생각이 난다. 바닥 청소를 다 마친지라, 바닥에 신발 자국을 내지 않기 위해 천조각 위에서 낑낑대며 움직이는 그녀의 모습이 희화적으로 그려진다. 어이없게도 목에 두른 목도리 때문에 그만 피오나는 냉동고에 갇히게 된다. 




그 다음 날, 극적으로 동료 직원들에 의해 구조된 피오나. 하지만, 그녀의 남편 쥘리앵(도미니크 아벨 분)과 아이들은 그녀 없이도 평범하기 짝이 없는 하루를 잘 보낸다. 아주 평온해 보이던 피오나 가정에 먹구름이 몰려오기 시작한다. 확실히 냉동고 사건 이후, 피오나는 변했다. 피오나는 침대에서 울먹이며 남편과 대화를 시도해 보지만, 진지해 보이지 않는 쥘리앵! 그녀를 위로하기 위해 가족들은 깜짝 파티를 준비하지만, 상황을 더 악화시킬 뿐이다.

이상하게도 그녀는 자신이 목숨을 잃을 뻔했던 냉동고가 편안해지기 시작한다. 가게 앞에 서 있던 냉동고 트럭에 갇힌 채 어디론가 떠나는 피오나. 그 냉동고 안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눈동자들이 마구 나타난다. 알고 보니 불법체류자들과 함께하게 된 그녀는 “YES"와 ”NO"로 나뉘는 체험도 하게 된다. 한편, 또다시 피오나의 부재를 알아차린 쥘리앵과 아이들은 그녀를 찾아 나서지만, 그녀의 종적을 찾을 수가 없다. 망연자실해진 아빠 쥘리랭을 대신해서 딸아이가 대신 운전을 해서 집으로 돌아오는 장면이 참 인상적이었다.

피오나는 단체 관광객 틈에 끼어서 마음씨 좋은 아주머니와 함께 바닷가 마을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이 천국보다 낯선 마을에서 그녀의 눈에 들어온 사람은 바로 요트 “Le Titanique"를 타고 물고기를 잡는 생활을 하는 르네(필리페 마르츠 분)다. 바다에서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르네는 세상사가 덧없기만 하다. 아내를 잃은 쥘리앵은 마침내 수소문 끝에 그녀를 찾는데 성공한다. 고생 끝에 피오나를 집으로 데려 오지만, 그녀는 다시 르네에게 돌아간다. 




피오나와 새로운 사랑을 시작하는가 싶었던 르네는 돌멩이에 자신을 매달고 등대에서 삶을 마감하려고 한다. 그 때 등장한 피오나. 르네와 피오나는 요트를 타고 어디론가 떠난다. 그들의 뒤를 필사적으로 쫓는 쥘리앵, 과연 이 얽히고설킨 그들의 관계는 과연 어떻게 될 것인가! 




도미니크 아벨과 피오나 고든은 브루노 로미와 함께 연기는 물론, 직접 연출까지 맡았는데 그들은 내러티브 보다는 마임이 중심이 되는 행위의 미장센에 더 초점을 맞춘다. 하염없이 긴 롱테이크와 결합된 주연 배우의 연기는 특히 주목할 만하다. 쥘리앵을 떠나 새로운 삶을 시작한 피오나가 바닷가 마을에서 채소에게 물을 주는 장면을 보면, 르네가 바닷가에서 죽은 애인에게 줄 꽃다발을 들고 그녀 앞에서 몇 번이고 망설이고 화면을 들락날락하는 장면은 오해와 동시에 사랑에 빠진 남자의 심정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잘못 읽은 콘텐츠는 바로 다음 장면에서 관객의 고개를 끄덕거리게 만든다. 다시 화면에서 사라졌다가 등장해서, 비석을 껴안고 울부짖는 르네, 애달픈 감정의 고갱이가 바로 전달되는 느낌이었다. 




마을의 식당에서 르네를 발견한 쥘리앵은 가차 없이 그를 구타한다. 다른 것은 다 양보해도, 자신의 사랑만큼은 양보할 수 없노라는 보통남자의 진심이 느껴진다. 정말 피오나를 다시 돌아오게 하기 위해서는 지구 끝까지라도 따라 가겠다는 작정이다. 옥신각신 끝에 바다에 빠진 두 남자가 구명정 하나를 잡고 물 위에 둥둥 떠 있는 장면은 참 가관이었다.

한편, 피오나는 자신이 동경하던 ‘빙산’을 찾기 위해 르네와 무작정 떠나지만 그를 잃고 만다. 하지만 좌절하지 않고 다시 빙산을 찾는 여정을 포기하지 않는다. 결국 빙산과 조우하게 된 피오나, 하지만 빙산이 녹으면서 그녀를 다시 현실세계로 복귀하게 된다. 




어떻게 보면 지루할 수도 있는 삼각관계 이야기를 브루노 로미 트리오는 잘도 풀어냈다. 단조롭게 반복되는 일상과 매너리즘에 빠진 관계를 단호하게 거부하는 피오나는 홀가분하게 일상으로부터 탈출을 시도한다. 그녀는 새로운 사랑을 찾고, 갯벌에서 흥에 겨워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기쁜 감정에 빠져 진흙에 엉망진창이 되면서도 즐거워한다. 연출자들이 말하고 싶었던 건 바로 그런 감정이 아니었을까. 물론, 피오나의 남편 쥘리랭의 눈물겨운 순애보도 빼놓을 순 없다. 늘 하는 말이지만, 좀 있을 때 잘할 것이지.

불어를 좀 할 수 있었다면 참 좋았을 텐데, 이 영화를 보면서 딱 하나 그 점이 아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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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트 로커 - The Hurt Locker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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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리뷰를 하기에 앞서 솔직히 괜찮은 영화라고 생각은 하지만, 영화 포스터에서 말하는 대로 “전 세계를 전율시킨 위대한 걸작”급의 영화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지난 아카데미 수상식에서 최우수 작품상과 최우수 감독상으로 연출을 맡은 캐서린 비글로우가 전 남편 제임스 카메론의 <아바타>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었던 문제작 <허트 로커>를 이제야 보게 됐다.

70년대 월남전이 미국에게 큰 상처를 안겨 주고, 영화소재로 줄창 우려먹게 했다면 새로운 천년에 비슷한 역할을 이라크 전쟁이 맡게 됐다. 이제 더 이상, 미국의 명분도 없는 비도적적인 전쟁의 발단과 원인에 대한 성찰은 보이지 않는다. <허트 로커>에서는 그렇게 이라크에 파견된 폭발물 처리반에 대한 일상을 그린다.

최첨단 시대의 전쟁답게, 군인이 직접 폭발물에 접근하지 않고 로봇을 사용해서 폭발물을 점검하는 영화 초반부가 인상적이다. 하지만, 땅개가 고지에 깃발을 꽂아야 비로소 전투가 완료되는 것이라고 했던가. 결국 문제가 생겼을 때 해결은 사람이 해야 한다. 로봇이 끌고 가던 폭발물 수레바퀴가 부서지자 브라보 중대 폭발물 처리반의 톰슨 하사가 직접 방호복을 입고 현장에 투입된다. 거의 완료하고 돌아오려는 순간, 이라크 저항군으로 보이는 거수자가 핸드폰으로 폭발물을 날려 버린다.

현장에서 폭사한 톰슨의 후임으로 윌리엄 제임스 하사(제레미 레너 분)가 부임되어 온다. 그는 현장에서 잔뼈가 굵은 샌본 병장(안소니 마키 분)과 스페셜리스트 오웬 엘드리지(브라이언 게러티 분)와 함께 이라크 곳곳에서 벌어지는 폭탄 테러 처리에 나선다. 감독 캐서린 비글로우는 왜 저항군들이 미군에 저항하기 위해 폭발물을 설치하고 저항에 나서는지에 대한 이유를 캐기 보다는 그들의 일상에 초점을 맞춘다.

일반 병사들의 순찰도 그렇지만, 항상 죽음의 위험이 도사린 폭발물 처리반의 엄청난 스트레스 가운데서도 제임스 하사의 일견 무모해 보이는 도전에 샌본 병장은 분노의 주먹을 날린다. UN 건물 앞에 이중으로 교묘하게 설치된 폭발물을 솜씨 좋게 처리해낸 제임스를 찾은 대령은 그의 노고를 치사한다. 아프간에서부터 자그마치 837건에 달하는 폭발물 처리 기록은 아무나 세우는 것이 아니니 말이다.

부대 앞에서 짝퉁 DVD를 파는 이라크 소년 베컴과 친해진 제임스는 소년과 축구를 하며 내기를 하기도 한다. 한편, 제임스의 팀원인 엘드리지는 톰슨 하사의 죽음에 자신이 책임이 있다고 생각하고 죄책감을 느낀다. 군의관 존 캠브리지(크리스찬 카마고 분)는 엘드리지에게서 그런 생각을 떨쳐 버리게 하기 위해 노력한다.

제임스 팀은 작전 중에 현상수배 중인 이라크 포로들을 잡은 일단의 용병들을 만난다. 타이어가 펑크났다는 팀 리더(랄프 파인즈 분)의 말을 듣고 그들을 돕던 중에, 보이지 않는 이라크 저항군 저격수의 총격을 받고 3명이 KIA(killed in action) 당한다. 저격용 총인 바렛으로 그들을 소탕하는데 성공한 제임스와 샌본 그리고 엘드리지는 비로소 팀으로 서로를 인정하기에 이른다.

계속되는 임무 중에, 군의관 존 캠브리지도 작전에 함께 합류하게 된다. 제임스는 어느 버려진 건물에서 인간폭탄으로 사용되기 위해 죽은 소년 베컴을 발견한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저항군의 교묘한 위장 폭탄으로 존 캠브리지가 폭사하고, 그의 헬멧만이 나뒹군다. 제임스는 베컴의 복수를 하기 위해, 그의 집을 찾아가지만 다음날 다시 부대 앞에서 베컴을 만나고 자신이 죽은 소년과 베컴을 착각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다음 작전에서 원격으로 폭발을 유도한 저항군을 잡기 위해 무모하게, 적진에 뛰어 들었다가 엘드리지가 다리에 총을 맞게 되고 또 마지막 미션에서는 인간폭탄이 된 이라크 민간인을 구하려다 죽을 뻔하기도 하면서 샌본은 더 이상 스트레스를 참지 못하겠다고 말한다. 365일 로테이션을 마치고 이혼한 와이프와 아들에게로 돌아온 제임스는 다시 이라크를 찾는다.

역설적이지만 적어도 독재자 후세인의 통치 하에서는 이 정도로 극심한 혼란을 겪지 않았던 이라크는 미국의 침공 이래 거의 내전에 가까운 수준의 폭력이 일상화되었다. 미군을 해방군이 아닌 점령군으로 인식한 저항군의 끊이지 않는 총격과 폭탄공격에 민간인을 비롯한 미군의 인명 손해는 날로 치솟고 있다. 이라크에 독재를 종식시키고 민주주의를 정착시키겠다는 미국의 공언은 공염불이 되어 버렸다. 해결책이 보이지 않는 가운데, 출구전략을 세우겠다는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대선공약 역시 요원하기만 하다.

극심한 사회혼란과 무질서 그리고 세계 2위의 원유대국이 물자부족으로 시달리는 이라크의 참담한 현실 대신 캐서린 비글로우는 현지 미군의 일상에 카메라를 들이댄다. 임무를 마치고 돌아오는 미군 험비 차량에 돌을 던지는 이라크 아이들의 모습이 오히려 더 현실적이다. 잘못 시작된 이라크 전쟁에 대한 성찰 대신 국가와 할리버튼  같은 군수업체를 위해 오늘도 이라크에서 피 흘리고 있는 미군 병사들을 통해 우회적으로 반전 메시지를 던지려고 했던 걸까? 하긴 연출자가 누구나 다 마이클 무어처럼 노골적일 필요는 없을 테니까.

진짜 메시지는 집에 돌아온 제임스가 아들래미를 얼르면서 한 말에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장난감이나 동물인형 같은 것에 반응하는 아들을 보며, 어렸을 적에는 자신에게 의미 있는 것들이 참 많지만 자신처럼 나이가 들게 되면 그런 의미 있는 것들은 한두가지로 줄어 들게 된다고. 제임스 자신처럼, 가족이나 따분한 일상보다도 전쟁에 미친 전쟁광(warmonger)에 더 동정을 하게 된다고 암시한다. 그리고 가족을 뒤로 하고 다시 군복에서 방호복으로 바뀌면서 폭발물을 향해 발걸음을 내딛는 장면으로 영화는 막을 내린다.

전체보다는 다시 한 번 개인주의적 관점에서 전쟁을 바라볼 수 있는 그네들의 관점이 부러웠고, 반전 메시지를 담은 영화가 인정받는 현실은 더 감명 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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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스 에이지 3:공룡시대 - Ice Age 3: Dawn of the Dinosau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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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3D 애니메이션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예전에 한 번 만들어 본 경험 탓일까? 물론 거의 습작이긴 했지만 모델링에서부터 시작해서, 모델에 애니메이션을 주고 렌더링 그리고 포스트프로덕션 등 얼마나 어려웠는지 모른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스토리도 만만치 않았지 아마?

20세기 폭스 사에서 꾸준하게 나오고 있는 <아이스 에이지>(빙하시대) 3편이 나왔다. 이번에는 또 어떤 이야기가 나오나 싶었는데, 부제에 달린 것처럼 공룡이 나온단다. 아이들에게 공룡이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존재들이 왜 그렇게 매력적인 걸까 하는 생각이 불쑥 들었다. 여튼 대단한 시리즈다. 




언제나 그렇듯이 다람쥐 스크랫의 에피소드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도토리를 찾아 나섰다가 우연하게 예쁜 날다람쥐 스크레티와 도토리를 두고 사투를 벌이게 된다. 이 귀여운 녀석들이 아웅다웅 다툼을 벌이는 모습이란 정말!

이번에도 역시 매니와 엘리 맘모스 부부와 우리의 말썽꾸러기이자 사랑할 수밖에 없는 수다꾼 나무늘보 시드, 사납지만 따뜻한 마음의 소유자 호랑이 디에고, 조연 역할을 톡톡히 해내는 주머니쥐 크래쉬와 에디 그리고 송곳니가 아주 인상적인 다람쥐 스크랫에 이르기까지 그동안 <아이스 에이지>를 빛내 주었던 애니메이션 스타들이 총출동한다.

1편과 2편은 하도 오래 전에 봐서 기억이 잘 나는데, 3편에서의 키워드를 골라 보라고 한다면 아마 가족애와 역시나 진한 우정 정도가 되지 않을까 싶다. 출산을 앞둔 엘리와 매니 부부는 태어날 주니어를 위해 놀이동산도 준비하고 부모가 될 준비에 분주하다. 너무나 안락하고 평화롭지만 따분한 삶에 지친 디에고는 친구들을 뒤로 하고 떠난다는 선언을 한다. 한편 나무늘보 시드는 우연한 기회에 알 세 개를 구하게 되고 애지중지하며 친구들의 조언을 무시하고 자기도 부모가 되겠다고 고집을 부린다. 




그런데 그 알의 주인이 누군지 아나? 바로 티라노사우르스(이하 티렉스로 호칭)다! 자기 자식들을(?) 잃은 엄마 티렉스는 분노에 차서 시드네 마을에 들어선다. 새끼 티렉스들을 보호하려고 하다가 결국 시드마저 엄마 티렉스에게 잡혀 어디론가 사라져 버린다.

자, 이제 시드의 친구들이 행동에 나설 타이밍이 아니던가. 위험천만한 정글을 지나, 죽음의 계곡과 용암폭포를 거쳐 말썽쟁이 시드를 찾아 나선다. 점점 더 진정한 우정이 휘발해 버리는 세상에 역시 관계와 우정이야말로 우리가 추구해야 할 가치라고 20세기 폭스 사는 친절하게도 알려 주고 있다. 그런 우정을 찾아볼 수가 없으니 영화로라도 대리만족하라는 계언일까? 





항상 시리즈마다 새로운 캐릭터가 등장하는 <아이스 에이지> 시리즈에서 이번에도 역시 빠지지 않고 멋들어진 캐릭터가 등장한다. 그건 바로 캡틴 잭 스패로우를 연상시키는 이미지의 외눈박이 족제비 벅이다. 영국 출신 배우 사이먼 페그가 보이스를 맡아 영국식 악센트로 다른 녀석들에 비해 훨씬 더 이국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지하 공룡세계를 휘잡고 있는 알비노 수코미무스 “루디”에게 오른쪽 눈을 잃는 대신 녀석의 이빨을 하나 얻어 칼로 삼아 가지고 다니는 외로운 캐릭터다. 매니와 디에고 일행을 식충식물로부터 구해내고, 길라잡이로 자신의 역할을 충실하게 해내는 그야말로 감초 같은 녀석이다. 물론 말미에 시드 구출에 있어서 결정적인 공헌을 한다. 





항상 느끼는 거지만 애니메이션 영화들은 하나 같이 교훈적인 내용들을 필히 담고 있다. 정상적인 가족사랑은 말할 것도 없고, (시드와 디에고 같은) 외톨이들도 자신의 가족을 지키기 위해선 두발 벗고 나서는 모습을 볼 수가 있다.

3D 애니메이션 기법의 발전은 하루가 다르게 놀라워져서, 이젠 정말 실사 영화는 저리가라할 정도의 디테일까지도 가능하게 된 것 같다. 예전에는 보통 동물들의 털 묘사가 참 어려웠었는데, 컴퓨터 테크놀로지의 발전으로 비약적인 발전을 했다는 것을 장면에서마다 느낄 수가 있다. 리플렉션과 그림자 같은건 두말할 것도 없다.

확실히 좋은 장편 애니메이션이 되기 위해서는 기승전결의 멋들어진 구조를 제대로 갖춘 스토리라인의 필요하다는 것을 이번 <아이스 에이지> 3탄을 통해 다시 한 번 깨닫게 됐다. 전후로 해서 아귀가 딱딱 들어맞는 이야기 구조가 절로 아하~하고 무릎을 치게 만드는 기발한 아이디어들로 가득 차 있다.

개인적으로 이 영화에서 가장 재밌으면서도 멋진 장면을 꼽으라고 한다면, 첫 번째로 스크랫과 섹시 날다람쥐 스크레티가 도토리를 사이에 두고 격렬한 탱고를 추는 장면 하나, 두 번째로는 족제비 벅이 크래쉬와 에디를 데리고 익룡을 잡아채서 시드 구조에 나서는 공중전 장면이다. 지난 2탄에서 수중전의 묘미를 보여 주었다면 이번 3탄에서는 업그레이드된 공중전의 재미가 쏠쏠치 않다.

촌철살인의 유머로 가득 무장한 <아이스 에이지>의 빙하시대를 보면서 이 무더운 여름날을 보내는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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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더 마인호프 - The Baader Meinhof Comple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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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부터 20년 전 <브룩클린으로 가는 마지막 비상구>라는 의미심장한 제목의 영화를 발표했던 울리 에델이 이번에는 6-70년대 서독을 뒤흔들었던 서독 적군파, 일명 바데르 마인호프 그룹의 실제 역사를 다룬 <바데르 마인호프 콤플렉스>라는 영화를 가지고 다시 돌아왔다. 지난 20년 동안 에델 감독은 영화보다는 텔레비전에 더 집중을 했었나 보다. <트윈 픽스> 그리고 가장 최근에 <니벨룽겐의 반지>를 통해 그와 만날 수가 있었다.

이 영화는 바데르 마인호프 갱의(일명 RAF로도 알려져 있다) 실질적인 리더인 세 명을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다. 우선 저널리스트 출신의 지식인 울리케 마인호프(마티나 게덱 분), 그룹의 리더인 안드레아스 바데르(모리츠 블라이브트로이 분) 그리고 마지막으로 바데르의 여자 친구이자 브레인이라 할 수 있는 구드룬 엔슬린(조한나 워카렉 분)이 그들이다. 이 셋 중에 개인적으로는 구드룬이 가장 실제의 인물과 유사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영화는 두 명의 딸아이들을 둔 울리케 마인호프가 방문한 누드비치에서 시작된다. 그리고 저널리스트로서의 그녀의 성공을 자축하는 파티와 더불어 1967년 6월 2일 서독을 방문한 이란의 전제군주 팔레비 샤에 대한 찬반이 엇갈리는 거리의 모습을 비춘다. 그리고 팔레비 샤를 지지하는 일단의 이란인들이 그의 독재에 반대하는 거리의 군중들을 공격하자 일순간 아수라장이 되고 만다. 마치 1980년대 대한민국의 모습을 떠올리는 시위와 진압 과정 중에, 자유 베를린 대학의 베노 오네조르크가 칼 하인쯔 쿠라스의 총격에 의해 죽는 불상사가 벌어진다. 나중에 알려진 사실이지만, 쿠라스는 구동독의 비밀경찰 슈타지 출신이었다고 한다.

이어지는 영화는 구드룬 엔슬린이 독일 개신교 목사인 아버지와 언쟁을 벌이는 장면을 관객들에게 보여준다. 나치의 망령이 여전히 남아 있는 독일에, 전후 세대인 젊은이들은 미국의 신제국주의에 대한 날카로운 대립각을 세우고 있었다. 한편 남편의 외도를 목격하고 아이들을 데리고 그의 곁을 떠난 울리케. 구드룬과 안드레아스는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경찰국가화 되어 가고 있는 국가에 타격을 줄 수 없다고 생각하고, 폭력적인 방법에 호소하기로 결정한다. 대형백화점에 폭탄 테러를 가하지만, 곧바로 경찰에게 사로잡히고 만다.

1968년 봄, 베트남전의 수렁에 점점 깊숙이 빠져 들고 있는 미국에 반대하는 일단의 독일 청년들의 리더로 부상한 무정부주의자 루디 두취케가 당시 뉴스릴을 그대로 본뜬 필름으로 화면을 뒤덮는다. 하지만 루디 두취케는 어느 나치주의자 청년에게 저격을 당하게 된다. 이에 분노한 청년들은 루디 두취케의 암살을 조장한 것으로 지목된 보수적인 빌트(Bild)지를 발행하는 슈프링거 출판사를 공격한다.

이와 함께 승려들이 분신으로 정부에 항의를 하고, 즉결처형이 난무하는 베트남의 거리들이 그리고 볼리비아에서 미국 CIA의 지원을 받는 볼리비아 정부군에게 살해된 혁명가 체 게바라의 모습이, 미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흑인 공민권 운동의 지도자 마틴 루터 킹과 대통령 후보로 나선 로버트 케네디가 차례로 저격되는 뉴스가 숨 가쁘게 들려온다.

이런 일단의 움직임 가운데, 백화점 폭탄 테러를 계획한 바데르와 엔슬린에 대한 공판이 진행되고 이 과정 중에 마인호프는 그들을 인터뷰하면서 친분을 맺게 된다. 이제 그들의 움직임에 주목하는 정부 측 인사들의 모습이 드러난다.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서독 내무부 장관 정도가 되지 않을까 싶다. 공판 과정에서 이탈리아로 도주한 바데르와 엔슬린은 자신의 변호사와 지속적인 접촉을 갖는다. 다시 독일로 돌아와 마인호프와 활동을 개시하지만 바데르가 불심검문으로 체포되고, 그를 구하기 위해 마인호프 마저 본격적으로 RAF 운동에 참여하게 된다. 아주 우연하게 말이다.

1970년 바데르 마인호프 그룹은 요르단의 파타 준군사조직 캠프로 가서 게릴라 훈련을 받는다. 물론 혁명을 꿈꾸는 이들과 이스라엘과 전쟁을 벌이고 있던 파타 게릴라들의 이상은 너무나 달랐다. 훈련을 마치고, 서베를린으로 잠입한 RAF들은 본격적인 활동에 나서게 된다. 무장강도로 은행을 털며 자금을 조달하며 자신들의 목표와 이상을 사회에 알리기 시작한다. 울리케는 자신의 전문인 글쓰기를 통해, 프로파간다를 충실하게 수행해 나간다.

한편 정부에서 이들을 색출해 내기 위해 갖은 방법을 다 동원하기에 이른다. 결국 새로운 신분증 제도를 도입해서, 소위 말하는 호수에서 물을 빼내 물고기를 띄우겠다는 야심찬 프로젝트를 수행한다. 그 결과 RAF 조직원들의 피해가 늘어나자, 이에 대한 보복을 주장하는 강경론자들이 서독내 주둔하고 있는 미군 기지를 폭파하고, 자신들에게 적대적인 언론사들은 물론 고위 정부 인사들을 납치, 살해도 마다하지 않게 된다.

서독 사회에 온통 혼란과 불안이 가중되고 있던 1972년 6월 1일, 프랑크푸르트에서 바데르의 비밀기지를 급습한 경찰과 총격전 끝에 바데르와 동료 홀거 마인스가 검거되기에 이른다. 바데르 마인호프 갱들에게 수많은 동료들을 잃은 경찰들의 잔혹한 보복이 수감자들에게 뒤따른다. 엔슬린은 함부르크에서 동년 6월 8일 부티크에서 옷을 고르다가 체포되었고, 같은 달 14일 울리케 역시 신분을 감춘 채 은거하고 있던 비트에서 체포되기에 이른다.

영화는 이제 한 숨 고르면서, RAF 지도자들의 감옥에서의 투쟁을 그린다. 1972년 9월 뮌헨 올림픽 도중 팔레스타인 해방기구의 극좌파 집단인 “검은9월단”이 올림픽에 참가한 이스라엘 선수단을 인질로 잡고, 수감된 PLO 조직원들과 RAF 지도자들의 석방을 요구하면서 다시 한 번 세계는 RAF에 주목을 하게 된다.

바데르와 함께 체포된 홀거 마인스가 1974년 11월 9일 단식투쟁 끝에 사망하게 된다. 이 때 정부에서는 그에게 외부 의료진의 진료를 허가하지 않으면서 그를 죽음에 이르게 했다는 비난을 받게 된다. 거의 백차례에 달하는 RAF 그룹의 공판 과정과 그들을 감옥에서 빼내려는 바데르 마인호프 그룹의 조직원들의 노력이 계속된다. 하이라이트는 1977년 10월 13일에 발생한 루프트한자 여객기 납치사건이었다. 하지만 납치사건이 실패하게 되자 스탐하임 감옥에 갇혀 있던 대부분의 RAF 지도자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서 영화는 대단원의 막을 내리게 된다.

우선 이런 대작 영화를 연출한 울리 에델 감독에게 경의를 표한다. 사실 우리에게는 극악한 테러 조직으로만 알려져 있는 서독 적군파(벌써 이름부터 무시무시하지 않은가!), 바데르 마인호프 그룹의 태생과 리더들의 죽음으로 맞이하게 된 몰락에 이르기까지 있는 그대로의 사실들을 전달하는데 에델 감독을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바데르 마인호프 그룹이 한창 활동하던 시절의 뉴스릴과 사진들을 통해 울리 에델 감독은 RAF의 활동에 대한 평가를 온전하게 관객들에게 맡기고 있었다.

스스로 공산주의 도시 게릴라 그룹이라고 지칭한 RAF는 가능한 무고한 시민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억압받는 민중들을 위해 투쟁한다는 이상적인 이념으로 무장되어 있었다. 그런 이유로 해서, 68혁명 이후 청년 세대에게 많은 지지를 이끌어낼 수가 있었다. 보수언론과 우파들은 그들의 대척점에 서 있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을 가장 잘 이해했던 이는 바로 극중에서 연방범죄경찰국의 국장이었던 호르스트 헤롤드(브루노 간스 분)이었다.

호르스트 헤롤드는 RAF가 어떤 방식으로 행동을 하는지, 그리고 왜 자신들의 신념에 따라 행동하는지 그 원인과 이유를 분석하라고 휘하 부하들에게 지시를 한다. 하지만 자신에게는 적인 RAF를 가장 잘 분석하고 파악하고 있던 이는 바로 호르스트 헤롤드였다. RAF와 연방경찰의 수장 호르스트 헤롤드는 마치 한 판의 체스경기를 하듯이 그렇게 공격과 방어 전술을 펼치고 있었다.

극중 캐릭터 간의 갈등 역시 볼만하다. 바데르 마인호프 그룹이 경찰에게 쫓기면서, 안드레아스는 점점 동료들에게 화를 내고 거친 성격을 들어내기 시작한다. 특히 저널리스트 출신으로 예민한 성격의 소유자인 울리케 마인호프에게 여성차별적인 발언과 폭언도 마다하지 않는다. 같은 여성이지만 안드레아스의 여자친구인 구드룬은 애써 이런 사실들을 외면한다. 혁명과 투쟁을 위해 같은 이념으로 뭉친 이들이지만, 이들 사이에서도 보이지 않는 이런 미묘한 갈등들이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까지도 에델 감독은 세밀하게 잡아내고 있다.

극에 등장하는 인물 중에 훗날 극좌파 RAF 출신 조직원에서 극우파로 변신한 특이한 인물이 있는데, 초반 변호사로 등장하는 호르스트 말러다. 그 역시 체포되어 14년형을 선고받고 10년을 복역한 후 출소해서, 극우파로 전향을 하게 된다. 나치의 홀로코스트를 부인하고, 반유대주의자로 인종차별적 선동으로 6년형을 선고 받기도 했다.

<바데르 마인호프 콤플렉스>는 나에게 마치 한 편의 텍스트처럼 다가왔다. 그동안 내가 전혀 모르고 있던 분단 독일 시절의 독일 국가를 뜨겁게 달구었던 어느 조직의 연대기였다. 그 연대기를 수놓아 간 주연들의 삶은 영화로 다루어질 만큼 극적이면서도, 많은 사회적 담론들을 담고 있었다. 영화에서 필수적인 요소들 역시 무엇 하나 부족하지 않았다. 과연 이 영화가 우리나라 극장에 걸릴 수 있을까? 그것이 알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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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6-18 14: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한국에서 상영이 될 수 있을까라는 질문으로 끝나지? 이 영화를 굳이 찾아서 볼 정도면 남들보다 이런 역사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고 보인다. 그런데 보고 나서 쓴 감상문들을 보면 하나 같이 "상영이 될까"라고 묻고 있다. 상영하도록 만들어야지 될까라고 자문하고 있다니..

2008년 촛불부터 지금까지 주되게 보이는 경향 가운데 하나는 제3자 관찰자 시점이다. 웹뉴스로 보며 흥분하고, 댓글달고, 폭력시위는 안되는데...

블로그 주인장님, 이 영화 상영하게 만듭시다.


2009-06-18 14:09   좋아요 0 | 수정 | 삭제 | URL
습관대로 그냥 댓글 달아서 하나 더 남김.
 
거미여인의 키스 - Kiss of the Spider Woman
영화
평점 :
상영종료


아르헨티나 출신의 작가 마누엘 푸익의 1976년 소설을 1985년에 영화화한 동명의 작품을 봤다. 감방에 갇힌 두 남자의 이야기에서 이렇게 다양한 주제들을 다룰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사실 영화를 보기 전에, 영화를 무척 쉽게 만들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 영화의 메가폰은 브라질 출신의 감독 헥터 바벤코가 맡았다.

배경은 남미의 어느 감옥(영화가 실제로 촬영된 곳은 브라질의 사웅 파울루다). 미성년자 추행혐의로 8년형을 선고 받은 루이스 몰리나(윌리엄 허트 분)와 정치범 발렌틴 아레기(라울 줄리아 분)이 한 감방에 갇혀 있다. 이 둘은 그들 개인의 성적 취향만큼이나 정반대의 대척점에 서 있다. 사회 혁명을 꿈꾸는 마르크스주의자인 발렌틴과 진정한 남자와의 로맨스를 바라는 몰리나.

영화는 몰리나의 시시껄렁한 나치 영화 줄거리를 설명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정말 아무 것도 할 일이 없는 감방에서 두 남자가 무얼 하겠는가. 발렌틴은 그다지 영화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하는 것 같지 않으면서도, 굳이 몰리나의 이야기를 말리진 않는다.

몰리나가 이야기하는 영화를 나치 프로파간다로 비난하는 발렌틴. 그런 공격적인 발렌틴과 한 방을 쓰면서, 몰리나와 발렌틴은 수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서로에 대해 조금씩 알아가게 된다. 한편, 교도소장인 워든과 발렌틴이 가담한 조직을 검거하려는 페드로는 고문을 해서라도 발렌틴으로부터 정보를 캐내고자 한다. 하지만 여느 혁명가처럼 조직에 대한 신의를 지키려는 발렌틴은 심한 고문을 당하면서도 조직을 보호하려고 한다.

상점의 윈도우 디스플레이어였던 몰리나는 자신의 과거에 대해 발렌틴에게 털어 놓는다. 그가 계속해서 이야기하는 나치 영화의 줄거리보다 그 자신에 대한 이야기가 더 흥미롭다. 그는 꾸준히 진정한 남자(a real man)를 찾고 싶어 하지만, 동성애자인 그에게 사회로부터 돌아오는 것은 격렬한 비난과 8년간의 구형뿐이다. 역설적이게도, 혁명가와 동성애자 모두 자유를 꿈꾼다. 서로 다른 궤도에서 원하는 것이 일치한다.

발렌틴의 나치 영화의 줄거리는 <거미 여인의 키스>의 전개에 복선과 암시를 전달한다. 사랑과 배신, 조국애 그리고 휴머니즘 등등 통속적이긴 하지만 전통적인 주제들이 얽히고설키면서 본 영화에 길라잡이 역할을 하는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배탈이 난 발렌틴을 돌봐 주면서, 그 둘의 관계는 급속하게 가까워진다. 자신의 감정에 솔직한 몰리나에 비해, 자신의 본심을 들어내려 하지 않는 발렌틴도 몰리나에게 마음을 열기 시작한다. 한편 몰리나는 교도소장은 워든과 비밀리에 거래를 해서 발렌틴으로부터 당국이 필요한 정보를 빼내는 조건으로 가석방을 약속받는다. 몰리나는 교도소장을 교묘하게 속여서 일반 교도소에서는 구경조차 할 수 없는 맛있는 음식들을 갈취한다. 하지만 몰리나와 발렌틴에게 주어진 시간이 그다지 많지가 않다.

아직 소설을 읽지 않아서, 소설과 영화가 어떻게 다른지 알 수가 없지만 다른 이들이 쓴 북글을 보니 원작 소설에서는 한 6편 정도의 영화가 소개된다고 한다. 하지만 영화 버전에서는 달랑 두 개의 영화만이 소개된다. 예의 나치 영화 그리고 “거미 여인”이 등장하는 영화 하나 이렇게 두 개다. 거미 여인이란 이름만 들어도 팜므 파탈이 연상되는데, 이 거미 여인은 난파선에서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남자를 지극정성으로 돌본다. 마치 감방에서 몰리나가 발렌틴을 돌보듯이 말이다.

지금 막 글을 쓰다가 든 생각인데, 원작가인 마누엘 푸익은 그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타인을 이해할 수 있다는 자신의 주장을 펼치지 위해 교도소라는 특수한 공간에, 혁명가와 동성애자라는 캐릭터를 만들어낸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불쑥 들었다. 우리 삶에 있어서 대개의 갈등은 상대방에 대한 몰이해로부터 출발이 되지 않는가 말이다.

또한 무산계급의 혁명을 꿈꾸는 발렌틴의 고백을 통해, 사회주의 혁명의 무상성에 대해서도 작가는 슬쩍 언급을 하고 있다.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의 건널 수 없는 괴리가 느껴졌다.

마초 스타일의 발렌틴을 연기한 이제는 작고한 라울 줄리아의 연기도 일품이었지만, 역시 이 영화의 프리마돈나는 동성애자로 분해서 발군의 연기를 보여준 윌리엄 허트였다. 진짜 동성애자들을 오랫동안 연구한 결과로 보이는 섬세한 연기 선이 무척이나 인상적이었다. 그런데 마누엘 푸익도 동성애자였던가? 왕가위 감독의 영화 <해피 투게더>도 그의 작품을 원전으로 삼았다고 하지 않았던가.

소설에서는 몰리나와 발렌틴의 대사 부분에 대한 적확한 표시가 없어서 책을 읽으면서 조금 헷갈렸다는 글들이 있었는데, 영화에서는 그런 모호함이 없어서 아주 좋았다. 영화를 보고 나니, 소설이 읽고 싶어졌다. 영화의 결말에서 다시 교도소로 돌아온 카메라는 혹독한 고문을 당하고 의료실에 누워 있는 발렌틴을 비춘다. 그의 여자 친구인 마타가 나타나서 그들은 어느 해변으로 달려간다. 몰리나의 영화 이야기에서 항상 나오던 세피아 톤의 영상은 어느 순간, 칼라로 바뀌고 파도 소리가 철썩이는 가운데 매혹적인 주제가 선율과 더불어 노를 저어 어디론가 떠나 버린다.

<거미 여인의 키스> 소설과 영화 모두 그동안 동성애라는 낙인이 찍혀 왔지만, 실제 주제는 자유와 구속 그리고 보통 사람들처럼 보이지 않는 이들의 삶에 대한 태도다. 인간 심리에 대한 뛰어난 통찰력과 놀라움으로 가득한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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