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과 바다 (반양장)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91
어니스트 헤밍웨이 지음, 이인규 옮김 / 문학동네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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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를 읽었다. 아마 헤밍웨이라는 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 같다. 미국 출신의 작가이자, 저널리스트로 지난 세기의 전쟁을 직접 체험하면서 쓴 전쟁소설로 명성을 얻었다. 베트남전과 함께 인류의 양심에 지울 수 없는 상흔을 남겼다는 스페인 내전은 물론이고 노르망디 상륙작전 이후 파리 해방전에도 직접 참가했다. 그리고 오늘 이야기할 바로 이 작품 <노인과 바다>로 노벨 문학상도 받은 바 있는 대문호이자 그야말로 행동하는 양심이었다. 나의 문제는 그의 작품을 제대로 만나볼 수가 없었다는 사실이다.

 

20121월은 헤밍웨이 팬에게는 정말 기쁜 달로 기억될 것 같다. 작가의 사후 50년 동안 보장되던 기존의 저작권이 만료되면서 누구나 헤밍웨이 작품을 펴낼 수가 있게 됐다. 독자로서는 정말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잘 차려진 밥상에 숟가락을 얻는 기분으로 먼저 <노인과 바다>로 헤밍웨이 작품의 정독을 시작했다.

 

흔히 위대한 작품에 불멸의 고전이라는 찬사를 붙인다. 그렇다면 왜 특정 작품에 이런 호칭이 따라 붙게 되는 걸까? 나는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를 읽으면서 다음과 같은 이유 때문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쿠바의 아름다운 항구 아바나 부근을 지역기반으로 하는 노인 산티아고가 이 소설 <노인과 바다>의 주인공 중에 예의 노인이다. <노인과 바다>가 나오던 1950년대 초반, 작가로서 전성기가 지났다고 평가받던 헤밍웨이는 그야말로 와신상담의 세월을 보내고 있었다. <노인과 바다>에서 바다와 자신이 잡을 엄청 큰 물고기와 그 물고기를 노리는 상어 떼들과 분연하게 맞서 싸우는 노인장 산티아고는 누가 봐도, ‘한물간 작가헤밍웨이의 문학적 페르소나였다.

 

초반에 등장하는 소년 마놀린도 산티아고처럼 어부다. 우리의 주인공 산티아고 노인장은 그야말로 바다에서 산전수전은 물론 공중전까지 치른 베테랑 중의 베테랑이지만, 젊은이의 패기에는 댈 게 아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는 우리는 자본주의 신자유주의 체제에서 절대선으로 숭배하는 경쟁이라는 키워드와 직면하게 된다. 바다에 사는 어부는 그가 잡은 물고기로 말하는 법이다. 마놀린 같은 초짜도 매일 같이 물고기를 낚아 올리는 판에, 84일 동안 번번이 허탕 친 산티아고는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다. 산티아고는 주변의 비아냥거림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이 살아있음을 증명하려고 한다. 누가 떠오르지 않는가? <노인과 바다>는 작가로서 여전히 세상에 보여줄 것이 있다고 외치는 헤밍웨이의 목소리이자, 희망과 자신감을 잃지 않고 하루를 살아가는 보통 사람에 대한 이야기다.

 

소설의 곳곳에서 보이는 야구 이야기는 열혈야구팬의 정신을 함빡 빼놓는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내가 응원하는 팀의 숙적 소속으로 그야말로 야구계의 레전드인 위대한디마지오의 아버지 역시 어부였다는 사실로 산티아고는 자신이 느끼는 동질감을 한껏 표시한다. 헤밍웨이가 요기 베라의 그 유명한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라는 격언을 알고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아바나 앞바다에서 마지막 격전을 앞둔 전사는 온몸으로 큰 물고기와 그 다음에는 자신의 성취를 앗아 가려는 상어들과 사투를 벌인다.

 

산티아고가 <노인과 바다>의 반쪽 주인공이라면, 노인장 산티아고의 활동무대인 바다가 나머지 반의 주인공이다. 관습적인 가톨릭교도로 보이는 산티아고가 성모송을 외우는 장면에선 종교적 경외감에 사로잡히기도 했다. 노인-바다 그리고 그가 혼신을 다해 잡으려고 노력하는 큰 물고기는 크리스천 신앙의 핵심인 삼위일체(trinity)의 알레고리로 다가온다. 내가 바다고, 바다가 나며 또 큰 물고기가 그렇더라고 노인은 혼잣말을 쉴 새 없이 되뇐다. 바다야말로 산티아고에게 일용한 양식과 평화를 안겨주는 안식처였다.

 

큰 물고기와 며칠 밤낮을 사투를 벌이면서 산티아고는 자신에게 부족한 것을 아쉬워한다. 아니 그런데 뭍에 있을 적에도 그렇게 아쉬운 게 있었던가. 잠을 깨우는 모닝커피, 하루의 소식을 전해주는 신문은 물론이고, 끼니 때우는데 필요한 음식마저 넉넉하지 않았던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산티아고 노인은 그런 생필품 부족에 의연하게 대처한다. 역설적으로 바다에서는 아쉬운 게 너무 많다. 당장 염분을 보충할 소금 타령을 하고, 칼과 작살 그리고 창이 필요하다고 노래한다. 뭍에서는 인식하던 못하던 결여야말로, 노인장 산티아고 도전정신의 원천이다. 뭍에서는 없어도 그럭저럭 살 수 있지만, 바다에서는 바로 생존에 직결되는 것들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아쉬웠던 마놀린의 도움이 아니었을까.

 

산티아고의 사투는 사실 실패다. 그에게 본질인 바다와 큰 물고기와의 싸움에서는 이겼지만 외적인 요소인 상어 떼로부터 자신의 성취를 지킬 수가 없었다. , 그러고 보니 상어도 바다의 한 부분이구나! 수십 년간 바다에서 체득한 노련함으로 큰 물고기를 잡는데 성공하지만, 마지막에 그가 손에 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그저 전설처럼 인구에 회자될 거대한 물고기의 등뼈 뿐. 사투를 마친 산티아고가 마침내 자신의 소박한 침대로 스며드는 순간, 독자는 돈오의 경지에 다다른다. 어떤 절망의 순간에도 내려놓지 않았던 희망과 자신감이야말로 또 다른 하루를 살게 하는 원동력이라는.

 

다시 불멸의 고전으로 돌아가 보자. 작가가 책에서 말하는 메시지는 상상을 초월하는 수만큼의 다양한 담론과 재해석으로 재생된다.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도 예외는 아니다. 삶의 어느 순간에 만나는 <노인과 바다>는 또 다르게 읽히리라. 책을 대하는 키워드 역시 달라지리라. 그것이 바로 대가들의 걸작이 불멸의 고전으로 꼽히는 이유라고 믿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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