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사는 침묵했다 창비세계문학 69
하인리히 뵐 지음, 임홍배 옮김 / 창비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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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인리히 뵐의 <천사는 침묵했다>2년 만에 다시 읽었다. 처음에는 도서관에서 <천사의 침묵>이란 제목의 정말 오래전 책을 빌려서 읽었다. 사실 그 때는 대충 읽어서 그런지 아니면 나의 독법에 문제가 있었는지 뵐 선생의 서사를 따라가기가 버거웠다. 이번에 창비에서 새로 나온 <천사는 침묵했다>는 한 번 읽었던 기시감 덕분인지 생각보다 수월하게 그리고 보다 더 명징하게 만날 수가 있었다.

 

때는 194558. 공식적으로 독일이 패전한 날이다. 우리의 주인공 한스 슈니츨러가 조용하게 무대에 등장한다. 장소는 쾰른이다. 나치 지도자 히틀러의 망상으로 게르만 민족은 거의 괴멸적인 파괴를 경험하게 됐다. 전 세계를 집어 삼킬 것 같았던 제3제국의 영화는 오래 가지 않았다. 그 유명한 블리츠크리크로 폴란드와 프랑스를 정복하는 순간이 제국의 절정이 아니었을까. 그 다음부터는 내리막길이었다.

 

손절할 수 있는 기회가 수차례 있었지만, 독일 군부는 미쳐 날뛰는 총통을 막을 수가 없었다. 1944년 여름의 총통 폭사 계획은 국가를 파멸로 인도하는 급행열차일 뿐이었다. 다시 한스의 이야기로 되돌아가 보자. 한스는 탈영병이다. 미점령군 하에서도 탈영병의 존재는 거북할 수밖에 없었던가. 나치 시절이라면 당장 총살형에 처해질 정도의 중범죄였다. 그리고 한스를 구하기 위해 나섰던 빌리 곰페르츠 중사(법무관 서기)는 그를 대신해서 죽기도 했다. 빌리의 유언장을 미망인 엘리자베트에게 전해 주기 위해 한스는 그녀가 입원한 것으로 알려진 병원을 찾는다.

 

한스는 병원에서 가짜 신분증을 구하기 위해 의사 선생과 대담한 거래에 나선다. 그리고 누군가의 외투를 뒤지다가 미래의 연인 레기나 웅어와 조우하게 된다. 한 때 서점 인턴 직원이었던 한스는 종전 직전에 독일군의 기관총탄에 아이를 잃은 레기나와 사랑에 빠진다. 모든 것이 불투명하고, 앞으로 다가올 겨울을 날 수 있을지조차 모를 그런 절망감 속에서도 청춘남녀의 사랑은 소리 없이 그렇게 타오른다.

 

독일 민족문화의 정신적 지주라고 할 수 있는 성당들마저 연합군의 가공할 폭격으로 모두 무너져 내리고, 당장의 의식주마저 해결할 수 없는 마당에 미래를 그린다는 것은 과연 무슨 의미일까. 훗날 제발트가 높이 평가한 하인리히 뵐의 폐허문학은 그렇게 <천사는 침묵했다>에서 정확하게 그려진다. 제발트가 비판했던 것은, 나치의 잔재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던 독일의 문인들의 기이한 침묵이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원지 때문에 연합군의 무지막지한 징벌적 성격의 폭격에 대해서도 입을 닫았다. 그것이 과연 지식인으로서 응당한 일이었을까에 대한 질문은 제발트의 <공중전과 문학>에 잘 나와 있다.

 

한편, 한스와 레기나 같은 보통 사람들이 석탄 절도와 암거래로 일상의 빵을 구하고 있던 그 절망이 순간에도 나치 당원으로 두 개의 박사 학위를 가지고 있던 피셔 같은 이는 오히려 종전 뒤의 혼란과 무질서 그리고 인플레이션 상황이 오히려 더 반가울 따름이다. 가톨릭 신앙을 대변하는 사제와 수녀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신도/민중들의 구원에 집중하고 있는 동안 나치 부역자들은 치부에 정신이 없었다. 혼란을 틈타 수집한 중세의 성상을 가지고 미래의 돈벌이에 열중하는 물질주의자 피셔들의 모습은 전후 독일 사회의 이중성을 여과 없이 폭로하는 그런 장면이었다.

 

피셔와 엘리자베트의 시아버지는 공모해서 빌리의 유언장을 무효화하고 가난하고 배고픈 이들을 도으려고 했던 엘리자베트의 죽음을 방치한다. 이 점이야말로 시대의 양심이자 지식인이었던 하인리히 뵐 선생이 비난하고자 했던 지식인과 기득권층의 위선이었다고 나는 추정해 본다. 그리고 신의 대변자라고 할 수 있는 지상의 천사상들은 진창 속에서 침묵할 수밖에 없었노라고. 어떤 종류의 삶이든 한스와 레기나는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들에게 다른 선택지가 있는 건 아니었으니까 말이다. 정말 분통이 터지는 건, 전쟁 과정의 모든 결정은 히틀러가 결정하고 실행에 옮겼는데 패전의 상처는 왜 한스와 레기나 같은 보통 사람들이 감당해야 하는가이다. 부역자였던 피셔에게는 오히려 더 큰 기회를 주지 않았던가.

 

전후에 쓰인 <천사는 침묵했다>는 뵐 선생 사후인 1992년에 발표되었다고 한다. 가뜩이나 패전의 충격과 경악의 깊이에 시달리던 독일 사람들에게 또다른 전쟁의 트라우마를 전달할 필요가 있었을까라는 판단에서 출판이 늦어졌던 모양이다. 그동안 절판되었다가 새롭게 번역되어 나와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르겠다.

 

그나저나 노벨문학상까지 받은 독일의 대문호의 작품들이 국내에는 그다지 많이 소개되지 않을 것 같아 아쉽다. <천사는 침묵했다>를 계기로 좀 더 많은 뵐 선생의 책들이 나왔으면 하는 작은 바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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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북소녀 2020-01-10 14: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 요즘... 이 시대 작품들 많이 읽고 있는데... 요거 담아야겠네요.^^

레삭매냐 2020-01-10 14:56   좋아요 0 | URL
어떤 작품들을 만나고 계신지
궁금하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