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 마음 시툰 : 안녕, 해태 1 청소년 마음 시툰 : 안녕, 해태 1
싱고(신미나) 지음 / 창비교육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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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문학을 좋아한다. 혼자만의 경험으로는 알 수 없던 저편에 닿을 수 있기에, 내 세계를 넓힐 수 있기에 읽는 행위 자체가 즐겁다. 그래서 국어교사가 되었다.

하지만 내가 읽기에 즐겁고 내가 읽기에 행복한 것과 문학 수업은 별개이다. 아이들은 시라고 하면 어려운 것, 무슨 이야기인지도 모르게 꼬아만든 아리송한 말로 생각했고, 시험문제를 풀기 위해 한 줄 한 줄 상징적인 의미를 해석하는 과정은 점점 더 마음의 거리를 멀게 했다.

어떻게 하면 시를 그냥 내 삶의 이야기로 여길 수 있을지, 그냥 편안한 마음으로 시어 하나하나를 음미하며 즐길 수 있을지 고민했다. 그리고 이 책은, 어느정도 그 해답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청소년 마음 시툰'이라는 제목을 달고 있는 이 책은,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시 한 편 한 편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한 웹툰으로 이루어져있다. 주인공인 잔디가 홀로 이사를 오고, 해태라는 영물을 만나면서 학교에서 벌어지는 일상. 예를 들어 처음으로 친구를 사귀고, 머리를 자르고,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고, 발표에서 머뭇거리고, 나를 키워준 할머니를 생각하고. 이런 일상의 과정들을 담아서 시와 연결지어 표현한 것이다.
좋아하는 사람이 생겨 떨리는 마음, 그 사람의 모든 행동이 의식되고 가슴이 쿵쾅거리고 나에게 큰 의미가 되어 마음에 각인되었을 때, 한편에 김춘수 시인의 꽃이 등장하는 식이다. 그저 시만으로는 아리송하고 어려워했을 아이들은 전후 맥락과 웹툰의 상황을 통해서 시를 더 잘 이해하게 된다.

시와 별개로 웹툰으로만 봐도 아이들이 잘 공감할 수 있을 법한, 일상 속의 작고 소소한 사건들이 마음을 따뜻하게 한다. 그런데 여기에 또 시라니. 선별된 시들 또한 교과서에 자주 등장하는 주요 작가들과 작품들이라 학생들에게는 더없이 도움이 될 것 같다. 재미있는 시 공부라는 건 이런게 아닐까.

해태와 진디의 성장기, '안녕 해태'를 읽고 나면 어느새 나 자신도 훌쩍 커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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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 샘과 함께하는 시간을 걷는 인문학
조지욱 지음 / 사계절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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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은 그냥 길이지 뭐. 길이 특별한 게 뭐가 있어? 이 책을 읽기 전까지 내 생각은 그랬다. 심드렁한 표정으로 책을 펼쳤는데, 글쎄, 내 생각보다 길은 특별했다.

물론 당연히, 사회 시간에도 배운 적이 있었다. 길은 물자를 수송하는 수단이 될 수도 있고, 장소와 장소를 연결 지어 갈 수 있는 통로가 될 수도 있다는 건 어림잡아 짐작하고 있었다. 그런데 책을 읽으며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래, 일제강점기에 일본에 의해 쌀이 착취된 것도 길을 통해서였고, 반면에 바닷길을 통해 신대륙을 만나고 새로운 세상을 열기도 하고, 고려와 송나라처럼 무역을 통해 더 넓은 세상으로 연결지어주기도 했다.

하나하나 읽으면서 어머, 그렇네, 이런 일도 있었지 하고 고개를 끄덕거렸다. 낱낱의 사실로는 알고 있었지만 생각해보니 그 모든 일들은 길 위에서 일어났다. 길은 모든 걸 기억하고 있었고, 나라가 사라지고 건물이 사라져도 길만은 그 자리에 그대로 남아 역사를 추억하고 있었다.

이 책은 지식 백과사전과 같은 느낌이 있어서 어디를 펼쳐도 짧게짧게 읽을 수 있다. 한 번에 한 권을 다 읽기가 어려운 사람이라면 하나의 에피소드를 읽은 후에 쉬어갈 수 있을 것이다. 언제든 원하는 부분만 골라 읽어도 충분하다. 한 권을 다 읽어야만 책의 내용을 이해할 수 있는 종류의, 그런 책이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그렇다고 책의 깊이가 얕다든지 하는 그런 말을 하려는 것은 아니다. 이 책은 길을 통한 역사와 문화, 삶에 대해 다루면서도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고 생각하게 한다. 예를 들어 청계천의 복원, 이로 인한 득과 실에 대하여. 혹은 빠르게 가기 위해 뚫는 터널이 과연 모든 면에서 이롭고 유익한지. 자연환경과 길은 공존할 수 있는지. 한 장 한 장 페이지를 넘기다보면 의외로 나 역시도 생각이 깊어졌다. 몰랐던, 혹은 모르는 척 하고 있던 일상 속의 일들에 대해 문제의식을 가지고, 잠시 멈춰 서서 내 주변을 돌아보고 스스로의 생각을 정리하게 했다.

이 책을 다 읽고 난 지금, 이제는 내가 걷는 길이 조금 더 다르게 보인다.

하나의 사회는 길을 통해 확대되고, 다른 사회로 확산된다.
따라서 길을 낸다는 것은 내가 다른 사람에게 그리고 우리 사회에서 다른 사회로 간다는 뜻이며,
반대로 다른 사람과 다른 사회가 내게 다가온다는 뜻이기도 하다. - P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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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스트 러브 소설Q
조우리 지음 / 창비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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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비 소설Q 시리즈 두번째.

우선 굉장히 독특한 소설이라는 생각을 했다.
아이돌을 주제로 하고 있다는 점,
또 그게 아이돌의 빛나는 부분, 아름답고 환상적인 부분이 아니라
아이돌의 탈퇴와 멤버 재영입, 악플, 그룹의 해체, 멤버간의 균열과 일그러진 팬덤문화 등
아이돌의 어두운 면과 숨기고 싶은 면을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기에 더 독특했다.

그런가하면 사이사이에 가사를 인용하여 쓰인 팬픽은 어떠한지.
처음에는 이게 뭔가 했다. 이름만 같은 인물들이 등장했지만 전혀 다른 내용이 전개되었으니까.
점차 읽으면서 아, 이 아이돌을 중심으로 한 팬픽이구나 느끼면서
새로운 구성이 참으로 새롭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 팬픽들이 어떠한 언급도 없이 무척 자연스럽게 여성간의 연애, GL(girls love)으로도 불리는 동성연애로 이어지는 부분도 그랬다.

후에 천희란 작가의 발문을 읽다보면 이 소설의 작가, 조우리 작가가 실제로 f(x)를 매우 좋아했음을 알 수 있다.
그래서인지, 다 읽고 나니 소설 속 제로캐럿의 이미지에 왠지 모르게 자연스럽게 실존하는 그룹이 겹쳐져버렸다.
실은 내심 이 부분은 알지 않았더라면 더 좋았을 걸, 하는 생각도 들었다.
소설 속 이야기는 소설로 남겨두고 싶은 마음, 현실과 오버랩시키고 싶지 않은 이 마음.
하필 또 현재의 f(x)가 어떠한지 생각해보면.
최근에 설리의 안타까운 일을 생각해보면 더더욱이다.
이마저도 아이돌의, 또 악플의 안타까운 면이지만, 이 소설을 읽고 나서 떠올릴 부분은 결코 아니었고 떠올릴 수 없었으면 했다.
정말 하필, 하필이라는 생각.

나도 한 때 아이돌을 좋아했던 사람으로서, 내 추억 속, 기억 속에 내가 좋아하던 이들을 자꾸만 떠올리며 읽었다.
문체는 담담했고 내용은 술술 읽혔지만 내용은 무게감이 있기에 페이지를 넘기는 손길은 자꾸만 멈추었다.

많은 생각을 하게 한 책.


- 언제나 좋아하는 아이돌이 있었다. 텔레비전이라는 걸 처음 보았을 때부터 그랬던 것 같다. 파인캐럿은 지금껏 자신이 좋아했던 얼굴들을 하나하나 떠올려보길 즐겼다. 처음 방송국 앞으로 얼굴을 보러갔던 아이돌, 처음 팬클럽네 가입했던 아이돌, 처음 콘서트를 보러갔던 아이돌, 보고 있으면 괜히 웃음이 나고 그 순간엔 다른 건 아무래도 상관없었던 얼굴들. 이제는 볼 수 없는 얼굴들. 다시는 만날 수 없는 얼굴들. 영원히 돌아갈 수 없는 얼굴들. 그 짧은 순간, 그래서 너무나 생생한 순간, 그때의 마음.
(63pg - 과거형은 언제나 애틋하다 중에서)


- 대학 축제 축하공연을 하러 갔을 때는 천막으로 만든 임시 대기실에서부터 화장실 앞까지 따라왔다. 그리고 매니저와 경호원들이 막아도 아랑곳하지 않고 마린을 향해 외쳤다.
"최마린 사랑해! 사랑한다고! 대답해! 대답하란 말이야!"
사랑이라고 했다.
마린인 콘서트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사인회장에서도 테이블 아래로 손을 뻗어 마린의 발목을 붙잡았던, 온리마린의 뜨거운 감정이 마린의 온몸을 향해 화살처럼 날아와 꽂히는 것 같았다.
그게 사랑이라면 그런 사랑에는 도대체 뭐라고 답을 해야 하는 걸까.
(159pg, 그런 사랑이 있을까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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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야 언니에게 소설Q
최진영 지음 / 창비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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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야는 자기가 봤던 그것을 믿었다.

열몇살의 자기와 스물몇살의 자기는 공존한다고,

열다섯살의 이제야와 열여덟살의 이제야는 사라지지 않았다고,

살아서, 스물다섯살의 이제야, 스물일곱살의 이제야를 보고있다고 믿었다.

열일곱살의 이제야가 보고 있을 어른 이제야를 지키고 싶었다.

그리고 보고 싶었다.

서른다섯, 서른아홉, 마흔일곱, 쉰아홉살의 자기를.

세상 어딘가에서 동시에 살아가고 있는 어리고 젊고 늙은 이제야를. (233pg)


최진영 작가의 '이제야 언니에게'.

별자리가 그려진 밤하늘의 표지를 보고, 나는 당연히 '언니'에게, '이제서야', 비로소 할 수 있는 말, 어떤 고백일거라고 믿었다.

어느 정도는 틀린 말이 아니다. 이제서야 비로소 할 수 있는 고백이기도 하다.

기나긴 시간을, 세월을 넘어, 이제서야 보이는 미래, 저 너머에게 손을 내미는 고백은 분명 정답이었다.

'이제야'가 그 주인공이고 당사자이며 스스로의 미래에게 건네는 악수일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지만.


제야는 성폭행 피해자이다.

제야에게 과거의 시간은 결코 지나간 시간이 될 수 없고, 묻을 수 없는 기억이며, 도려내고 싶지만 도려낼 수 없는 순간이다.

부끄럽지 않았고, 부끄러워해야만 하는 것은 가해자임을 명확하게 알고 있음에도,

정말 내가 문제인가, 내가 잘못인가, 나의 존재만이 오점인가, 끝없이 이어지는 자기 검열.

모든 게 연기같고 2008년 7월 14일 그날의 기억만 진짜인 것 같은 현실,

위로받고 이해받아 떠오르더라도 순간순간 찾아오는 과거와의 만남까지도.


최진영 작가가 예리하게 그려낸 현실 속에서는 문장들이 살아 숨쉬고,

그 속에서 제야는 살아간다. 살아간다는 게 이토록 중요하다.

살아 숨쉬어 미래를 만나, 쉰아홉살의 자기를 끌어안고, 또다른 이제야를 만나 안아줄 수 있다는, 그 사실이 중요하다.

 

 

- 어째서 부끄럽지 않고 고통스러운지. 당신들이 지금 이해하지 못하는 그 모든 것들, 설명을 요구하는 그 모든 의심들, 설명해봤자 핑계나 변명으로 듣는 걸 알아.

어째서 내가 변명을 하나. 변명은 가해자가 하는 것 아닌가. 당신들에게 나는 가해자인가.

나는 부끄럽지 않다. 그건 내 감정이 아니다.

내겐 아무 잘못이 없다. 아무 잘못이 없다. (51pg)

 

- 당숙이 그러기로 마음먹는다면, 오늘이 아니라도 앞으로 마주칠 숱한 날 중 어느 날, 제야는 당했을 것이다. 

 (중략) 당숙은 제야를 강간한 게 아니라 여자를 강간한 것이다.

여자 중에서도 자연스럽게 접근할 수 있는 여자. 자기를 의심하지 않을 여자. 말을 잘 들을 것 같은 여자. 힘으로 제압할 수 있는 여자.

남들한테 얘기하거나 문제를 일으키지 않을 여자. 그래서 또다시 강간할 수 있는 여자.... 미성년자인 친척 여자.

제야는 그 조건을 충족시켰다. 제니도 마찬가지였다. (109pg) 


- 그 날 그 일이 없었다면 나는 분명 지금과는 다른 삶을 살고 있을 것이다.

  그 날 그 일이 없었어도 그는 분명 지금과 같은 삶을 살고 있을 것이다. (207pg)


- '젊은' '여자' '혼자' 중에 사람들을 가장 세게 건드리는 단어는 뭘까. (219pg) 

 

- 여행하는 동안 깨달았어. 나조차 그들의 시선으로 나의 말과 생각과 행동을 판단할 때가 많다는 걸. 무슨 뜻인지 알겠니?

나를 의심하는 사람들의 말이 쌓일 수록 나는 나를 의심하게 되었어. 내가 그럴 만한 행동을 했을지도 모른다고 나를 몰아세웠어.

내가 겪은 사건만큼 나란 존재 자체가 너무 끔찍했지.

끔찍한 나는 그런 일을 당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지만, 이상하잖아, 그 일 이전에는 나는 나를 끔찍해하지 않았어.

원인과 결과가 자꾸 역전되는 거야. (223pg)


​- 제야는 왼쪽 벽에 손을 대고 걸었다. 때로는 달렸다.

미로의 길을 다 걸어야 할 만큼 시간이 오래 걸릴 수도 있지만 언젠가는 출구에 닿을 것이고, 이제 제야에게는 출구가 중요하지 않았다.

왼쪽 벽에 손을 대고 걷는 동안 들여다보는 자기 마음이 중요했다.

언젠가는, 자기 마음을 들여다보는 눈으로 타인의 마음을 바라보고 싶었다.

그들이 무릎을 세우고 일어설 수 있도록, 왼쪽 벽에 손을 댈 수 있도록, 그들의 오른손을 잡고 싶었다.

그리고 평생, 타인의 마음을 바라보는 눈으로 자기 마음을 들여다보고 싶었다. 제야는 정말 그러고 싶었다. (232-233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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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주의 영화 - 공선옥 소설집
공선옥 지음 / 창비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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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켜켜이 내린 눈 위에 또 눈이 내리고 온기 없는 햇볕 아래 눈은 날카롭게 굳기만 할 뿐 녹지는 못한 채로 먼지가 덮이고......

그런 채로 세월은 흐르고......

그랬는데, 절대로 녹을 일이 없을 것 같던 눈이, 옴짝달싹할 수 없게 천지사방을 에워쌌던 그 딱딱하고 날카로운 눈이 스르르 무너지고

무너진 그 자리에서 녹아내리는 것 같았다.  (50-51pg)

 

사양이 비끼는 휴게소 유리문에 오후 다섯시의 흰 달이 언뜻 비쳤다가 윤이 문을 열자 사라졌다. 곧 해가 질 것이다. (72pg)



 공선옥 작가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아직도 단편소설 '일가'이다.

중학교 2학년 국어교과서에 실렸더랬다. 가족간의 관계, 이제는 얇디 얇고 얄팍한 관계가 되어버린 가족의 경계와 그 모습.

수업시간에는 성장소설로서 다루고 1인칭 주인공시점을 말하느라 바빴지만,

정작 그 소설을 통해 내가 아이들에게 이야기하고싶었던 건 문장마다 전해지는 섬세한 감정선이었다. 사춘기를 보낸 사람이라면 그 누군들 공감하지 않을 수 있을까.


그때만큼이나 여전하게, 소설 '은주의 영화'도 그런 설렘을 가지고 읽었다.

여전히 날카롭고 예리하게 삶을 담아내고 있어서 그저 신기했다.

총 8편의 작품이 실려있고, 5.18 광주민주항쟁을 다룬 작품부터 쌍용자동차 사태를 다룬 작품까지,

다양한 상황 속 여러 아픔을 이야기하는 작품들이 저마다의 매력이 있지만

정작 내 마음에는 '오후 다섯시의 흰 달'이 가장 깊게 박혔다.


오후 다섯시의 흰 달.

윤은 25년전, 어린이집 차가 펑크가 나면서 절벽 아래로 굴러떨어진 사고로 아내와 아들을 동시에 잃었다.

어머니는 돌아가셨고, 아버지는 요양원에 계시고, 딸이 독립한 뒤로 윤은 줄곧 혼자이다.

신록에 눈부셔하는 자신이 죄스럽지만, 그럼에도 윤은 살아간다.


그러던 중 사촌누이 경자에게서 오랜만에 연락이 닿아, 옆집 살던 이의 아이를 한 달만 잠시 맡아줄 수 있겠냐고 묻는다.

윤은 아이를 맡게된다는 생각으로, 잊고있던 가족에 대한 마음과 희망을 떠올린다.


아이를 맡겠다는 생각으로 아이들이 좋아할만한 레시피를 찾아보고 동화책과 그림책을 주문하고,

더 나아가 양자로 들이겠다는 꿈에 부풀어있는 윤이지만

경자는 곧 아이의 아버지가 아이를 데려가기로 했다며, 윤이 데려갈 필요가 없게되었다는 무정한 전화를 남긴다.


윤은 버스가 출발하기 오분 전, 다섯시 정각, 아이를 납치할 생각을 하다가 담배를 사러 휴게소 안 편의점으로 들어가고 소설은 끝이 난다.


모든 생기를 잃고 살아가던 이가 자신의 잃어버린 과거를 한 아이에게 겹치며, 그 아이에게 모든 걸 걸고 기대하는 순간은,

또 그 모든 기대가 좌절되고 눈앞에서 부서지는 순간은 어떤지.

다른 작품들 역시도 삶이고 이야기였지만 이 단편이 가장 의미있었던 건, 윤이 감내해야만 했던, 또 앞으로 삼켜낼 시간이 너무 선명하기 때문이다.

이토록 감정을, 특히 아픔을 선명한 색채로 그려내고 절절히 공감하게 하는 게 공선옥작가의 힘이 아닐까.


한 번, 두 번, 곱씹을 수록 더 생각나는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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