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갑자기 다정하게 앤드 산문집 시리즈
강혜빈 지음 / &(앤드)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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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주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따뜻해지는 시선이 있다. 엄청 화려하지 않지만 한 번 보면 눈을 뗄 수 없는 그런 시선이.

3월 중순의 날짜가 무색할 만큼 쌀쌀한 오늘,
그 추위를 잊게 해준 강혜빈 시인의 첫 산문집, 『어느 날 갑자기 다정하게』다 :)


✍️
이 책을 받아보고 시인 강혜빈의 작품이 궁금해져 도서관을 찾았다. 그의 시집 두 권 중 『미래는 허밍을 한다』를 먼저 들었다.

무려 317페이지로, 시집 중에는 꽤 많은 페이지 수를 자랑하고 있었다.

"더러운 세상은 사랑해버려요.
다정하게 맞서는 법을 배워요."

50편이 넘는 작품 중 내 기억에 가장 깊게 남은 문장 두 개. 피곤하고, 지치고, 어두운 현실일지라도 '다정'을 잃지 않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
시집을 듬성듬성 다 읽고 나서야 이 산문집을 폈다.
『어느 날 갑자기 다정하게』.

독자에게 전하는 스무 개의 편지로 이루어진 산문집. 각 편지의 화자는 '수'였다가, 'K'였다가, '강'이 된다. 5개의 직업을 가지고 있다는 강혜빈 시인처럼, 조금은 다른 느낌의 인물들이 마치 소설처럼 그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필사'라는 걸 항상 해야지, 해야지만 생각하고 귀찮음에 기한 없이 미루고 있는데, 이 책의 꽤 많은 문장을 다이어리에 옮겨 적었다. 놓치고 싶지 않아서.


🍃
"퇴근길에는 아무데나 서서 구름을 본다. 오랫동안 본다. 버스정류장으로 가는 길목에 커다란 나무가 한 그루 있는데, 껍질은 흰색이고 군데군데 거뭇하게 벗겨져 있다. 아주 거대한 세계를 마주하는 기분. 무언가 압도되고 빨려 들어가는 기분에 몸과 마음이 많이 소진된 날에는 일부러 나무를 피해서 걸었다." _p.63

"영혼, 그리고 마음은 울퉁불퉁한 사탕. 아무런 색도 맛도 없다. 그렇지만 녹여 먹거나, 씹어 먹을 수 있다. 그중에서는 절대 녹지 않는 마음도 있다. 그런 마음을 많이 가질수록 좋다." _p.155


-
너무나 공감되어 읽고 또 읽은 문장이 잔뜩이었던,
시인의 에세이답게 수집하고 싶은 단어와 표현이 한가득 담겨있는 따뜻한 작품, 『어느 날 갑자기 다정하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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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니오스의 바위
아민 말루프 지음, 이원희 옮김 / 교양인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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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바논'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는 작품, 『타니오스의 바위』. 이 작품에 대해 이야기하기 전에, 작품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작가 '아민 말루프'와 '레바논'에 대해 알아볼 필요가 있다.


🗺
먼저, 레바논이란 어디인가?
아랍 국가 중 하나로, 기원전부터 6세기까지는 로마제국에 지배받았으며, 이후 이슬람 국가에 그 지배권이 넘겨졌다.

그러다가 1920년부터 1943년까지 프랑스의 지배를 받았고, 독립 이후에는 1975년부터 약 15년간 내전이 지속되었다.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2006년 레바논-이스라엘 전쟁으로 조금 더 익숙한 국가이다. (2007년부터 현재까지 대한민국 부대 파병 국가)


🪧
그렇다면 '아민 말루프'는 누구인가?
레바논이 프랑스로부터 독립한지 얼마 되지 않은 1949년에 레바논에서 태어나,내전을 피하고자 1976년에 프랑스로 귀화한다. 그의 나이 스물여섯이었다.

또한 이 『타니오스의 바위』는 1993년 작품으로,
2024년이 되어서야 교양인에서 새 옷을 입고 대한민국의 땅을 밟게 되었다.

아민 말루프는 국적이 프랑스이기 때문에 현재 프랑스 작가로 불리지만, 실질적으로 레바논에서 어린 시절을 모두 보냈기에 그의 정체성은 '레바논'에 더 가까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
『타니오스의 바위』는 레바논의 역사, 그 흐름을 '타니오스'라는 인물로 그려낸다.

스스로 온전히 서지 못한 채 끝없이 무언가의 지배를 받아야만 했던 레바논의 이야기가 1830년대를 배경으로 펼쳐진다.

수많은 국가들이 탐내던 레바논의 산악지역, 타국의 싸움에 땅을 빼앗기고 설 자리를 잃은 레바논.
그 시기에 영웅처럼 나타나 신화처럼 사라져 버린 소년 타니오스와 왕좌 형상의 바위 '타니오스의 바위'에 대한 이야기가 379페이지에 빼곡히 서술된다.


✏️
번역 때문인지 개인적으로는 살짝 고개가 갸우뚱해지는 부분이 있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멈출 수 없는 매력과 흡입력을 가진 작품이었다.

"또 다른 삶을 향해, 또 다른 죽음을 향해, 영광 혹은 망각을 향해 떠났을 수도 있다." _p.372

극의 마지막, 타니오스는 홀연히 사라진다.
그는 과연 어디로 향한걸까? 일생의 과업을 이뤄내었기에 본인을 찾아가는 여행을 다시 시작한 것일까.

개인적으로 표지 디자인이 너무나도 인상적이었던 책, 『타니오스의 바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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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글맘 독립백서 - 7년차 싱글맘의 당당하고 슬기로운 현실 조언
비채 지음 / 푸른향기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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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를 딛고 나면 더 나은 내일이 있다." _p.239

결혼 생활 3년 만에 알게 된 남편의 불륜, 사람의 밑바닥을 보게 만든 이혼 소송과 상간녀 소송. 모두의 미래를 위한 철두철미한 재산 분할과 미래 계획, 그리고 꿈꾸는 새로운 삶.

10년 차 엄마, 7년 차 싱글맘인 비채 작가님의 책,
자립 일기 『싱글맘 독립백서』


📖
싱글맘이 된 계기, 결혼이라는 그 시작부터 이혼,
독립을 위해 꼭 필요한 경제력의 중요성,
재산 분할과 가장 중요한 주거 문제, 아이를 위한 그 이후의 기반 다지기,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엄마인 '나 챙기기'까지.

『싱글맘 독립백서』는 아이가 있는 상황에서 이혼을 고민하는 사람들, 혹은 이미 이혼하여 싱글맘 혹은 싱글대디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위한 268페이지의 가이드북이다.

이런 상황에 놓인 이들이 꼭 읽어봤으면 하는,
그들의 용기와 삶에 힘을 줄 수 있는 이야기가 가득하다.


🗡
"악영향을 미치는 사람을 그대로 두는 것은 어찌 보면 '자해'에 가깝다. 당장은 아프지만 '손절'하는 것이 옳다. '손절'을 해야 하는 타이밍이라면 최대한 빠르게 해야 나머지 부분을 살릴 수 있다." _p.50

누군가는 남편의 바람을 묵인하기도 한다. 세상의 눈초리을 피하고자, 또는 아이의 미래를 위해서라는 변명으로.

개인적으로 나는 불행한 부모 밑에서 결코 화목하지 않은 환경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느니, 행복한 한 부모의 손에 양육되는 게 아이에게 훨씬 좋은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내가 후자를 겪어보지 않아서일 수도 있지만)

나는 육아는 물론 결혼과도 거리가 먼 사람이지만,
비채 작가님이 보여주는 삶의 태도만큼은 존경하게 되었다.
상황은 물론 많은 걸 좌우하고, 그만큼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건 '우리가 어떤 사람이 되느냐'이니까.


📌
삶이 불안할 때,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을 때,
흔들릴 때 꼭 해야 할 것.

- 플랜을 세우기. 플랜 A, B, 필요하다면 C, D. 불안함을 잠재울 수 있을 만큼 얼마든지.
- 머릿속에서 꺼내 '적어보기'
> 미래를 예측하고 컨트롤 할 수 있다는 생각은 불안감 해소에 도움이 된다. 해본다고 손해 볼 건 없으니까.

-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기.

"실패를 딛고 나면 더 나은 내일이 있다" _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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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아 만든 천국
심너울 지음 / 래빗홀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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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모든 걸 갈아 넣은 당신들의 천국"

해리포터를 보았던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마법사를 꿈꿔보았을 것이다.
주문 한 번에 무엇이든 이뤄지는 마법의 힘.
'초능력을 딱 하나만 가질 수 있다면?'이라는 타이틀의 테스트는 지금도 인터넷에서 쉬이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갈아 만든 천국』 속 마법사들은 결코 천국에 살고 있지 않다. 그들에게 마법은 저주일 뿐이다.


🌠
'마법'이 실존하는 21세기 한국을 배경으로 한
심너울 작가님의 신작, 『갈아 만든 천국』.

마법 능력은 뛰어나지만 돈이 없는 무현은 능력을 팔고, 자신을 믿지 않는 현채는 잘못된 선택을 하고,
능력과 배경을 다 가진 지현은 아버지의 그늘 아래 자신을 잃었으며, 혜정은 사회에서 아예 배척당할 수밖에 없는 위치로 태어났다.

이렇게 네 명의 메인 인물들로 진행되는 장편소설,
아니 어쩌면 연작소설에 가까운 이 작품은 그 무엇보다도 21세기 대한민국에 가까운 작품이다.
돈으로 무엇이든 사고 팔 수 있고, 빈익빈 부익부가 반복되는.

어쩌면 '공부', '성적', 혹은 'IQ'로 대비될지도 모르는
'마법 에너지, 역장'.

조선시대부터 존재했다는 대리시험.
권력이나 돈이 있는 자는 그걸로 사람을 사서 더 큰 권력을 탐하고, 배경이 안 좋지만 머리가 뛰어난 이들은 대리 시험을 봐주면서 살아남는다. 현대에 들어서는 대기업의 부속품으로 톱니바퀴 인생을 살아가겠지.

그렇게 영재들의 노동력으로 재벌들은 더욱 더 부를 공고히한다. 이 굴레는 끊으려고 해도 쉽사리 끊어지지 않는다.


🪐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적인 인물은 지현이었다.
좋은 조건, 좋은 상황에 놓여있으나 아버지의 꼭두각시처럼 살아가고 있는 지현.
안타까운 마리오네트의 모습에 자신의 못다 한 꿈을 자식에게 강요하는 부모들의 모습이 생각났다.

몇 년 전 학원 강사로 일하는 분이 들려준,
검사 자녀, 의사 자녀들이 그에 맞는 학과를 가기 위해 3수, 5수를 해가며 대학에 가기 위해 삶을 갈아 넣는다는 이야기도.

"서지현에게 이상을 심어준 자가 그 이상을 배반했으니, 그녀는 무엇에 발 딛고 이 세상을 바라보아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서지현의 신념은 그녀 스스로 조각한 것이 아니었으며, 오롯이 한 사람에게서 물려받은 것이니." _p.190

그렇게 이들을 갈아 넣은 이 천국은 누구를 위한 곳일까.


-
처음 만난 심너울 작가님의 작품, 『갈아 만든 천국』.
어마어마한 상상력을 바탕으로 만들어졌으면서도 굉장히 현실적이고, 또한 그만큼 촘촘하고 섬세한 작품이었다.

개인적으로 SF 소설을 굉장히 좋아하기에,
작품의 메시지에 씁쓸하면서도 심너울이라는 새로운 SF 작가를 알게 되어 즐거운 시간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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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가 우리를 구해줄 거야
방구석 지음 / 김영사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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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 : 즐기기 위하여 하는 일

2주 전 참여했던 글쓰기 모임의 주제가 '취미'였다.
그림그리기부터 베이킹까지 취미 부자인 사람,
게임이나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
축구든 야구든 스포츠 경기는 가리지 않고 구장을 찾아다니는 사람 등, 무언가에 깊이 빠져있는 사람들이 많았다.

나는 그날 이런 문장들로 글을 열었다.

'뭐 재미있는 거 없나?
없다. 도통 뭐가 재미있는지 모르겠다.
나는 무언가에 그렇게나 열정적이어 본 적 있는가?
내가 좋아하는 게 뭔지 모르고 살았다. 잊고 살았다.
나를 잃었다. 아니 애초에 있기는 했는가?'


⚽️
글쓰기 모임이 끝나고 나서야 제대로 읽기 시작한 이 책, 인스타툰이 생기기도 전부터 인스타툰 작가였던 방구석의 『취미가 우리를 구해줄 거야』를 읽기 시작했다.

놀랍게도 채 다섯 페이지가 넘어가기 전에 이 책에 매료되었다. 작가가 자신을 칭한 '무색무취의 인간'이라는 표현에 눈을 뗄 수가 없어서.


💬
"취미를 말할 때 묘한 부담감이 있었다. 남들보다 잘하거나 아니면 잘 알거나. 그런 특별한 무언가에만 취미라는 말을 붙여야 할 것 같았다." _p.11

내가 딱 이랬다. 와인을 좋아한다고 말하면 상대방 입에서 달달 나오는 온갖 와인의 종류, "저는 특히 피노 누아가 좋아요" 같은 말. 재즈를 좋아한다고 말하면 꼬리처럼 따라붙는 여러 재즈 아티스트들의 이름.

나는 그저 가볍게 좋아할 뿐 그들에 대한 지식은 전혀 없었기에,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선뜻 그들을 '좋아한다'고 말할 수 없었다.

남들보다 모르고, 많이 경험도 부족하기에.
작가는 그 부분을 콕, 아주 날카롭게 파고든다.
취미는 그저 좋아하기만 하면 되는 거라고.


🍷
'나를 위한 책'이라고 말하면 딱 적당할 것 같다.
목차의 모든 게 내가 한 번쯤 해봤거나,
혹은 해보려고 하는 예비 취미들이기 때문이다.

지금도 하는 독서, 식물 키우기, 공간의 변화, 영화, 산책. 하려고 조금씩 시도 중인 달리기, 그림, 글쓰기. 하다가 잠시 멈춘 여행, 수영(한 달 배운), 재즈와 술.

작가가 말하는 열 세 가지의 취미 중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수염'을 제외한 모든 게 고스란히 있었다.


👟
결국 취미에도 과정이 필요하다.
처음에는 그저 '어? 이거 재미있겠는데?'
'해보니까 재미있네', '더 잘하고 싶어, 더 잘 알고 싶어'

그리고 그렇게 와인 이름과 재즈 아티스트와 기법,
좋아하는 책의 구절을 외우고 다니는 그런 사람이 되는 것이다.

처음부터 짠, 나는 이걸 좋아하니까
이 분야의 전문가야! 가 아닌.

내가 항상 간과하는 '과정'의 중요성이 이곳에도 있었다.


💫
사는 게 다소 재미가 없다면,
누군가에게 선뜻 내 취미를 말하기 어렵다면,
방구석 작가의 취미 찾기 대장정을 한번 따라가 보자.

"야, 너도 취미 가질 수 있어!"를 외치는 것만 같은 책,『취미가 우리를 구해줄 거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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