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트] 오리진 - 전2권
댄 브라운 지음, 안종설 옮김 / 문학수첩 / 2017년 11월
평점 :
품절



감사한 일이다.

시력이 시원치 않아 읽기 매우 어려운데도 구매한지 5 일만에 1,2 권을 독파했다.

재미있냐구? 음, 솔직히 재미는 별로다. 몇 번의 반전이 있었지만 이건 댄 브라운의 특기이고 그것이 끝까지 잘 발휘되었다는 것은 인정한다. 그럼 왜 그렇게 열심히 읽었을까, 그 모티브가 되는 건 '지적 호기심 유발'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리고 모든 세월을 통 털어 모든 사람들이 공통으로 호기심과 의문을 갖게 되는 /종교와 과학의 충돌/을 과감하게 핵심 주제로 다루었다는 점에서 일단 사람을 흥미를 자아낸다. 댄 브라운의 해박한 지식과 종교,또는 예술 분야를 넘나들며 종횡 이야기를 엮어나가는 솜씨가 과연 대가답다. 그리고 소설의 배경으로 제시되는 스페인의 이름 난 건축물 대성당 명화등 예술적 영감과 해설적인 묘사도 독자들의 흥미를 돋구고 감상의 시야를 넓히는데 크게 일조한다.


 줄거리는 이렇다.

주인공 로버트 랭던의 제자이며 뜻이 통하는 제자 에드먼드 커시,그는 천재이며 억만장자 컴퓨터 사업가, 미래학자이며 발명가이다. 그가 이제까지의 신의 창조와 또한 사후세계에 대한 명확하고 실증적인 사실을 세계에 공표하기 전 중교계의 대 지도자 세 명에게 먼저 조언을 구한다. 천주교의 대주교,유대교의 랍비 또 이슬람의 사예들 알파들이 그들이다.

종교를 정면 부인하고 생명의 원천이 신의 창조가 아니라는 커서의 주장은 그들에게 깊은 우려와 근심을 유발한다.커서는 어쩐 일인지 서둘러 자신의 새로이 정립한 창조론에 정면 부정하는 도전적인 과학적 이론과 학설을 대중에게 대대적인 프레젠테이션으로 공표하려고 스페인의 유명한 구겐하임 미술관으로 세계적인 유명 인사들을 초청한다. 현대 거장들의 예술적 조형물이 잘 전시된 미술관에서 과연 컴퓨터 천재 커시의 초청에 참석한 손님들과 전 세계 생방송으로도 이목이 집중된 멀티미디어 프레젠테이션은 호사스럽게 시작된다./ 주제는 <우리는 어디에서 왔는가,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서론이 지나고 막상 본론으로 들어서 커시가 등장하여 대중들에게 열렬한 박수갈채를 받을 때 한 남자가 불시에 저격한 총탄을 이마 한가운데 맞으며 커서, 그는 즉사한다.미스테리한 사건이 연달아 이어지며 랭던과 미술관장 암브라는 에드먼드의 황당항 죽음을 목격하고 미쳐 발표하지 못한 그의 실체를 대중들에게 발표해야만 한다는 사명감으로 커시의 나머지 자료를 찾아 마드리드와 바로셀로나를 인공지능 컴퓨터 윈스턴의 안내를 받으며 끈질기게 추적한다.미스테리한 살인은 계속 자행되고 황태자 홀리안의 약혼녀 암브라 비달은 홀리안을 살인의 배후가 아닌가 의심한다.그녀는 좋은 친구였던 에드먼드 커시를 위해 꼭 커시의 발표하려던 내용을 공개하기 위해 랭던과 함께 위험을 무릅쓰고 커시의 행적을 더듬어 나간다.드디어 무수한 커시의 암호를 해독하고 인공지능 컴퓨터 윈스턴의 도움으로 커시의 나머지 학설을 전세계 오억이 넘는 대중들에게 발표하게 된다.

프레젠테이션의 욧점

생명의 기원--->물리학적 법칙 ,자연발생적

인류의 소멸---->제7계로 돌연 나타난 테트늄에 의하여 인간이 흡수됨.

암브라는 황태자와의 오해가 풀려 더 깊은 사랑으로 발전하지만 한 편 랭던은 생존시한이 얼마 남지않은  인공지능 윈스턴과 대화를 나누며 과연 완벽하고 선한 과학이 존재하는가에 대한 깊은 회의에 빠지게 된다.학문적 종교,과학의 갈등과 도전 속에 미스테리와 역전의 의외성과 또 훈훈한 인정이 양념처럼 어울려 재미를 유발하는 훌륭한 스토리였다.


 책 속에서 한 줄.

*인류의 지식 중심에는 '우리는 어디에서 왔는가,우리는 어디로 가는가?다시 말해 인간의 '창조'와 인간의 '운명'이죠.이거야말로 가장 보편적인 수수께끼입니다.

*인간의 창조와 운명은 전통적으로 종교의 영역이었습니다

*저의 삶의 목적은 과학 진실을 이용해 종교 신화를 무너뜨리겠다고 말입니다.

*보편적인 규칙에 따르지 않는 획기적인 선견자라는 점

자연을 유기적 예술로 바라보는 그의 관점 - 건축가 안토니 가우디, 원시 스프

새롭게 창안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으며 모든 것은 자연에 기록되어 있다.독창성은 기원으로 돌아감을 의미한다.  안토니 가우디

*윈스턴 처칠의 일화; 종교인들이 그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말을 들었을 때, 처칠은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적이 있나?잘 됐군 그것은 자네가 뭔가를 지지한다는 뜻이니까.

*고갱의 작품 중 제목; 우리는 어디에서 왔는가?우리는 누구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신은 죽었다.여전히 죽어 있다. 우리가 죽였다.

살인자 중에 살인자인 우리는 어떻게 스스로를 위로할 것인가?  니체

*어두운 종교는 지나고 달콤한 과학이 지배한다.

*아담과 이브가 정말로 존재한 것은 아니다.진화는 사실이다.그것을 부정하는 크리스천은 우리 모두를 바보처럼 보이게 만든다는 걸 솔직히 인정해야지요 ---- 나는 우리에게 분별력과 이성과 지성을 부여하신 하나님이 -----그걸 하나도 사용하지 못하게 하셨을 리는 없다.

사그라파밀라가 마치 미래의 교회처럼 느껴지거든요---자연적으로 직잡적으로 연결된 교회라고나 할까요?

*다가오는 과학시대에 기독교가 살아 남는 길은 과학의 영적 동반자가 되어 우리의 폭넓은 경험~수천 년에 걸친 철학과 개인적 성찰,명상과 영적 탐구~를 활용함으로써 우리를 통합시키고 일깨우며 더욱 높은데로 이끌도록 노력해야 해요.

*사실 윌리엄 불레이크는 종교가 두 가지 측면을 갖고 있다고 믿었지요,창의적인 사고를 억압하는 어둡고 독단적인 면과 ---자기 성찰과 창의력을 북돋는 밝고 탄력적인 면 말입니다.

*달콤한 과학이 어두운 종교를 몰아낼 것이다.---개화된 종교가 꽃을 피울수 있도록.

*한 때는 모든 것의 중심에는 자연이 있었다. 우리 모두에게,그런 통일성은 오래 전에 사라져 자신만이 유일한 진리라고 주장하는 수많은 이질적인 종교로 갈라졌다.

* 성공이란 열정을 잃지 않고 한 번의 실패에서 다음 실패로 넘어갈 수 있는 능력이다. 윔스턴 처칠

*위대함의 대가는 ----책임감이다.   처칠

*에드먼드 커서의 '미래를 위한 기도'

 우리의 철학이 우리의 기술을 따라잡게 하옵소서.

 우리의 연민이 우리의 권력을 따라잡을 수 있게 하옵소서.

 그리고 두려움이 아니라, 사랑이 변화의 동력이 되게 하옵소서.

*역사는 내게 친절할 것이다.내가 역사를 기록하기로 마음 먹었으니. 처칠


뿌듯한 독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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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2-13 13: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2-14 04:3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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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2-14 10: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2-15 11:1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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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2-19 12: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2-26 12: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3-02 03: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빛으로 다가온 너> 


  이제 너를 생각하면 나는 너를 자세하게 묘사할 자신이 없다. 네 얼굴의 눈 코 입 어느 것도 기억이 안 난다.심지어는 너의 말소리, 네가 좋아했던 음식이나 취향도 뚜렷이 아는게 없다.

다만 너를 처음 보았을 때, 강렬했던 이미지, 네 전체가 하나의 큰 빛덩어리로 다가왔던 걸 희미하게 기억할 뿐이다.청바지로 성큼성큼 걷는 다리가 길쭉했고 힙을 덮은 헐렁한 귤감색 울 쟈켓이 네 스스로 뿜어내는 아우라 속에 흐릿한 윤곽으로 뇌리에 남아있다. 너의 뽀얀 자연피부,쌩얼을 디테일하게 보았다기 보다 그것마져 순수하고 맑은 아침 첫 햇살에 반짝이는 이슬방울의 이미지로 뭉뚱그려 브레인 기억 창고에 톡 떨어졌었다.

네가 처음 나를 보며 미소지었던가.알 수 없다. 다만 하나의 커다란 광채로만 보였으니까.

 "오빤 왜 잔뜩 찌푸리고 나를 봐요? 뭐 잘 못 됐어요?"

 참으로 천진한 어린 목소리에 나는 움찔 놀랐다. 처음 보는 낯선 아이다. 순간 자각한, 내가 선배라는 우월감으로 슬쩍 목소리를 깔아 거만하게 물었다.

 "너는 누구냐"

 "엊그제 입학한 캠퍼스 초보 쟈니키타예요. 같은 과 선배님께 인사하고 있는데요."

 "쟈니키타, 그런 이름이 어딨냐? 농담 따먹기는 집어치우구"

 "너무 길다면 키타는 빼시던지요."

너는 별 일 아니라는듯 심드렁하게 말했다.

 "알았다, 쟈니라고 부르면 되겠구나.오늘은 햇볕이 쎄구만, 난 먼저 들어간다."

 난 우리 노탱들이 모여앉아 지나다니는 애들 품평이나 하고 쓸데없는 개그놀이나 하는 본관 건물 앞 벤치에서 몸을 일으켜 강의실로 들어갔다.'무신 개풀 씹어먹는 소리, 쟈니키타가 이름이라니 말야' 마음속으로는 투덜댔지만 여전히 눈이 부셔 찌그러졌던 눈은 아직 제 시력을 회복하지 못한채 건물 안 어둑컴컴한 복도에서 잠시 휘청거렸다.


"요즘 한국서 유학이랍시고 오는 애들 말이야. 현지에 적응해서 열공할 생각은 개뿔도 없고 지들 끼리끼리 모여 잘도 놀더라. 주말 저녁이면 뉴욕씨티 나이트로 튀는거야, 간도 크지,"

 평소 쓸데없이 흥분 잘하는 탐이 포문을 열었다.

 "요새 젊은 것들을 어째 막냐  지들 하고싶은대로 살다가 죽는거지"

 노탱 멤버들이 대여섯 모였으니 대화가 제법 활기차다.노탱은 글자 그대로 대학생치고 몇 년씩 꿇어 나이 좀 들은 '아재' 같은 애들이다.따라서 이들의 대화는 약간 노파심 비슷하고 회고성 다분한  대화들이 오간다.

필라델피아 시티 한 복판에 자리한 템플 대학교는 공룡대학이다. 전 세계에 해외 켐퍼스를 두고 유학 컨설런트를 파견하여 미국으로 유학오고 싶어 안달하는 세계 각국의  젊은이들이 쉽게 들어올 수 있도록 적극적인 홍보를 하였다 . 입학 과정이 까다롭지 않고 학비도 비교적 저렴하다. 따라서 세계 각처에서 몰려온 학생수가 대단히 많고 이들의 수요충족을 위해 학교 시설 규모도 해마다 커져 이제는 손 꼽히는 매머드 대학이 되었다.

캠퍼스에서 한국 유학생들도 꽤 많이 보게 된다. 또한  교포 학생들도 미주 원근각지에서 모여들어 한인 학생들은 어디서나 쉽게 눈에 띄었다. 그런데 묘한 것이 얼굴도 비슷하고 언어도 동일권인 유학생들과 본토 학생들은 결코 섞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유학생파와 본토파로 나뉘어져 서로 눈도 맞추지 않고 물과 기름처럼 겉돈다. 왜일까, 여러 추측들이 난무했지만 교포측 노탱들은 불만이 많았다.

 "쨔식들이 말이야 한국에서 시시한 대학은 가기 싫구 인서울In seoul 대는 실력이 딸리니 핑게좋게 유학이랍시고  온거 아니냐, 집에서 또박또박 부쳐주는 돈에 잔소리하는 부모도 없겠다 시간은 널널하겠다 가뜩이나 날나리 노는데 이골난 놈들이 이 신천지에 와서 공부에 집중이 되겠냐?"

상당히 신랄한 에릭의 말이다.


"그래두 굼벵이도 굴르는 재주가 있다고 그치들 똘똘 뭉쳐서 족보돌리며 학점 메꾸는거 보통 통빡 아니더라. 족보가 선배부터 착착 대물림이 되어 학점은 어영부영 채우며 넘어가는거야. 쨔식들 눈치만 빠삭해 갖구 말야"

탐이 아니꼽다는듯 침을 찍 뱉으며 말했다.

 " 와우! 걔들 뒷배경 장난 아니더라, 오자마자, 락세스,비엠더불유, 쌈쌈한 스포츠카 포르셰,그런 죽여주는 신차를 빼서 몰고 다니니 계집애들이 안 꼬이겠니?

이십 년이 다 되어 털털거리는 쉐비 웨건을 끌고 다니는 창수가 눈을 반짝이며 말한다.

  여기 노탱들은 사실 그런 호사를 누릴 처지가 아니다. 강의가 없을 땐 부모 옆에서 비지니스를 도와야 하고 용돈도 노동과 바꾸며 스스로 해결해야 했다. 장학금이 아니면 부모에게 학비를 기댈 수 없으니 공부하는게 온통 론(학자금 대출)이고 그나마 학업에 올인할 형편이 안되면  과목 별로 수강 신청해서 졸업 학점을 맞추려니 하세월 나이만 먹고 학업에도 요령이나 부리는 능구렁이가 되었다.

 "야 밥,아까부터 왜 길만 보냐? 누구 기달려 ?"

탐의 말에 몽롱하던 나는 고개를 돌렸다.딱히 누구라 할 거 없이 자꾸 정문 쪽에서 들어오는 애들에게 눈길이 가고 있었다.누구를 기다리는지는 스스로도 확실하지 않다. 역시 말없이 우르르우르르 몰려들고 나는 학생들을 바라보던 아담이 불쑥 말했다.

"이번 학기에 새로 들어온 법대지망  신입생, 쟈니라고 했던가 ,그 기집애는 유학파니? 본토파니?"

 불쑥 여럿에게 물었다.

 "걔 유학생 아니다, 쨔식아, 말 좀 인격적으로 써라.기집애가 뭐니"

 나는 대답인지 뭔지 화가 난 목소리를 퉁명스럽게 아담에게 던졌다.

"햐 저는 더한 말도 잘 하면서 새삼, 뭐 못 먹을거 먹었니?"  

 아담이 내게 눈을 부릅뜨고 항의하자 나는 대꾸 없이 벌떡 일어나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어젯 밤 너의 집 앞에서 오랜 시간 머물며 네 생각을 했다.

너는 어제 저녁 7 시 반에 집에 들어왔다. 네 방에는 9시 쯤에 불이 켜졌고 그 불은 오랫동안 꺼지지 않았다. 너의 오렌지 빛 환한 창문을 바라보며 네가 무엇을 하고 있을지 머리 속에 그려보는게 무척 흥미로웠다. 너는 방에 들어오자 백팩을 책상 위에 던지고 네 연한 살구색 피부를 감싸고 있던 투박한 청바지를 벗어던진다. 베스룸으로 들어가 머리를 감고 따뜻한 물줄기를 맞으며 바디클린져를 풀어 온 몸에 골고루 칠한다.레이스같은 비누방울로 뒤덮힌, 물줄기 속의 너의 나신, 거기서도 눈부신 빛을 뿜을까,잠깐 상상속의 유리문이 수증기로 덮힌듯 뿌얘지며 현기증이 났다. 젖은 긴 머리는 해초같이 네 어깨를 덮고 너는 기분좋은 콧노래를 부를까.상상은 한없이 이어진다.늦도록 불 켜진 네 창문을 바라보며  마감이 빠듯한 리포트 작성에 잠을 잊은 걸까 짐작해 보기도 했다.

새벽 두 시가 넘어서야 네 방 창문에 불이 꺼진 것을 확인하며 나도 서서히 네 집 앞을 떠났다. 네게 주려고 준비해 간 꽃다발은 이미 시들고, 시들어가는 장미향이 차 안에 숨 막히도록 가득해 차창을  내려 심호흡을 했다.

오늘, 너를 꼬셔 보려  준비했던 꽃다발을 주지 않은게 다행이야

쟈니, 넌 바라보기만 해도, 생각만 해도 내 맘이 가득차, 잘 자라. 내 사랑 쟈니

쟈니, 나는 좋은 놈이 못 돼, 20 대 초반, 젊은 놈이 해볼 만한 나쁜짓은 칼 든 강도짓 빼곤 다 해봤고 계집애들도 수없이 건드렷다 걷어차서  눈물께나 빼게했지.대개의 계집애들은 감히 생각지도 못했던 멋진 사내에게서 근사한 저녁 식사를 초대받고 꽃다발로 프로포즈까지 받으면 꼴닥 넘어가거든. 특히 너같은 애송이 초짜들 말이야. 너를 대상으로 그런 사기성 코스프레를 할 맘이 싹 가셨어,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난 내 수준에 맞는 다른 계집애한테나 가서 이 허전한 맘을  풀어내야겠구나. 쟈니 너에게 내 더러운 욕망의 꾸정물을 덮어씌울 수 없어. 잘 자라 순결한 쟈니


"오빠, 오빠는 나를 되게 좋아하는구나"

너의 한 옥타브 쯤 높은 목소리에  펄쩍 놀라 나는 우선 주위부터 둘러 보았다. ' 얘가, 얘가 뭘 믿고 이렇게 앞서가니' 독심술이라도 배웠던거야. 하지만 난 무심한 척 말했다.

"너 도끼병이 단단히 든게야, 너무 드리대지 마라. 소문 나면 네가 곤란하다"

 "오빠가 나를 좋아한다는 이유를 몇 가지로 대 볼까요?"

너는 장난꾸러기가 되어 거리낌 없이 다가오며 킥킥 웃었다.

 "첫 째, 오빠의 시선은 늘 나를 따라다녀요. 근데 웃기는 건 내가 보면 얼른 시침을 떼고 딴데를 봐요.

 둘 째 , 다른 사람들에게는 늘 유쾌하고 재미있다가도 나를 보면 갑자기 무뚝뚝하고 부자연스럽게 버벅대다 머쓱하게 자리를 뜨고 말아요"

 흠, 제법 논거가 그럴듯 해, 나도 모르는 사이 흥미를 느끼며 세 번 째는 뭐냐고 물었다. 쟈니는 더욱 얼굴을 내 가까이 디밀며 눈을 가늘게 뜨고 작은 소리로 말했다.

"오빠는 왜 번번히 우리 집 앞에서 나를 감시하지요? 나 점점 무서워지려 해요"

아, 그건, 그건 하며 손이 머리로 갔다. 머리를 두 손으로 감싸고 마구 긁적댄다.

"그러니까 오빠, 의심스런 행동말고 자수하여 광명 찾자구요. 쟈니는 품이 넓은 여자랍니다"

 나는 앞뒤 없이 불쑥 말했다.

  "너, 너 볼링 좋아하니? 생각있으면 토요일에 볼링장으로 나와라"


 그래서 너는 우리 노팅팀에 자주는 아니지만 가끔 함께 어울렸다. 때로는 네 친구들 까지도 합세해  우리 노팅들에게 신선한 바람을 일으켜 주었다. 진정 우리 노팅들은 너희들의 신선한 공기를 공급받자 아주 신바람이 나서 꺼칠하던 얼굴에 쉐이브도 자주 하고 그리고 제법 오데콜론의 향기까지 풍기는 거였다. 너는 늘 내 곁에 껌딱지처럼 딱 붙어서 내 주인 행세를 하였다.나는 네가 그렇게 하도록 내버려 두었다. 그건 내가 너를 마크하지 않으면 어짜피 다른 놈이 접근할텐데 그 꼴은 내가 못 보지.그렇찮아도 아담 녀석은 항상 너를 넋놓고 보잖아? 언젠가는 내게 불평도 하는거였다.

" 얌마, 넌 애리는 어쩌구 양다리냐?내가 확 애리한테 꼰지를거다." 하며 제법 엄포까지 놓는거다.

'아, 애리' 생각하자 갑짜기 짜증이 차올랐다.그 계집애를 어떻게 너와 나란히 비교한단 말인가.애리는 애초 순수하지 못하게 나한테 접근해 왔다. 부잣집 아들, 앞길이 확 트인 공부 잘하는 법대생, 졸업한 후 변호사 자격시험만 통과하면 지 미래는 따놓은 당상이다.하며  육신공양도 서슴치 않는 거 나는 알고 있다.그런 속셈을 알면서도 넘어가 주는 나는 또 뭐냐.다루기 쉽다고 함부로 이용해 먹는 나란 놈은 또 괜찮은 놈이냐.욕지걸이로 투덜대며 분풀이를 위해서라도 오늘 저녁 애리를 불러낼 생각을 했다.젠장!


네가 자신의 베프 혜진을 탐과 연결해주어 칸막이 바에서 거창하게 쏘맥 파티를 하며 언약식을 치룬 날이다.그들이 공식 커풀로 인정되어 '오늘 밤 베이비만은 좀 유보해라'같은 진한 농담을 던지고 뿔뿔이 흩어진 후, 아까 언약식 때는 진행자로 나서서 신나게 웃고 떠들던 네가 영 기분이 꿀꿀한지 말이 없다.

"쟈니, 왜 그래? 뭐 잘 못 됐어?" 나는 너의 침묵이 부담스러워 슬그머니 물었다.쟈니는 조그맣게 한숨을 쉬었다.그리고 역시 대답이 없다.나는 공연히 불안해지고 조급증이 나고 안절부절해서 버럭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아,말을 하라구, 말을 해야 알아 먹지"

"혜진이가 부럽더라" 너는 어깨 너머로 그 말만을 던지며 빠른 걸음으로 주차장에 세워 둔 네 차로 갔다.

너의 하얗고 깜찍한 포드 스포츠카 스탐이 과격한 엔진소리를 내며 출발하고 난 다음 나는 얼빠진 놈이 되어 마후라에서 쏟아져 나온 매케한 매연을 고스란이 덮어쓰고 한참이나 있었다.


드디어 아담 녀석과 한 판 붙었다.이건 피치 못할 숫컷들의 운명적인 대결이다.평소 녀석이 네게 넋이 빠진 건 알고 있었지만 요즘은 너와 썸을 타고 있는게 내 눈에도 훤히 보이더라.

이 번 주말 영화나 보러 가자고 맥없이 던지는 내 말에 너는 눈을 반짝이며 주말에는 뉴욕 간다고 했다.

"아담 오빠가 이번 주말 나 보여주려고 브로드웨이 티켓 끊어 놨대 < 바람난 고양이들 >보고 싶었는데 기대 되! 브로드웨이 뮤지컬이라니"

이런 젠장,내가 너무 나르시즘에 빠져 뒤쳐지고 있는게 아냐? 뭔가 결단의 시각이 다가오고 있다.

이젠 너는 나만 보면 아담오빠가 어쩌구저쩌구, 아담오빠가 이 번에는 또 머시기 거시기 아담 오빠가 입에 걸렸다.내가 기가 막혀 뺑하니 입을 벌린채 듣고 있노라면 너는 더욱 신바람이나서 침을 튀기는 거였다.

아담 내 이 녀석 쌍판에 한 방 펀치를 먹일테다.네가 내 순결한 쟈니를 채가려 하다니.

"아담 너 파크 왼편 숲으로 가자,할 말이 있어" 녀석도 각오하고 있었던 듯 "좋아, 당장 가지"하며 당당히 앞 서 가는 것이다. 사람 기척이 뚝 끊어진 후미진 숲으로 들어서자 나는 기선을 잡아 기습적으로 녀석의 면상에 강펀치를 날렸다, 주먹 쥔 손 끝으로 인간의 여린 뼈와 살이 뭉개지는 느낌, 아싸! 네 녀석 정면으로 맞았구나.그러나 녀석의 순발력 있는 강한  주먹 또한 내 얼굴을 노리고 뻗어왔다.귀바퀴를 스치는 살기어린 바람을 느끼며 한 주먹은 얼굴을 커버하고 한 주먹은 놈의 턱을 향해 또 한방 어퍼컷의 순간을 노렸다.녀석도 한 치의 방심없이, 나를 꼬나보며 우린 그렇게 제자리에서 몇 바퀴를 빙글빙글  돌았다.녀석의 얼굴에 코뼈가 나갔는지 피가 엄청나게 번져 흐르고.눈두덩도 점점 부풀며 한 눈이 찌부러지고 있다.순간순간 변하는 아담의 면상을 보며 문득 겁도 나고 따라서 전의도 상실되어,

"얌 마,우선 피나 닦아라" 내 셔츠를 훌떡 벗어 그에게 던졌다.놈은 내 셔츠로 면상을 훑으며 낭자한 피와 욱신거리는 통증으로 고통스러웠는지 짐승같은 목소리로 울부짓는 것이다.

"밥 이 나쁜 놈아,넌 계집애들마다 건들고는 걷어차는 바람꾼이 아니냐?쟈니는 너한테 일회성으로 그렇게 끝날 애가 아니다. 쟈니를 너같은 악당한테 방임할 수 없어,쟈니는 내가 지킨다

넌 애리나 잘 챙겨라."

젠장, 또 애리 그 계집애가 내 앞길을 막는구나.


엊그제  애리의 아버지를 만났다.그는 이 곳 카운티에서 제법 큰 교회 목사이다. 하필 목사의 딸이라니,쩝, 그는 점잖을 빼며 나를 이래 위로 꼼꼼히 스캔한다.이건 뭐냐,내 아버지인 한국계 은행의 행장과 그 녀의 아버지 대형 교회 목사가 결탁하고 여우같이 간교한 애리가 연출 하여 나를 옴짝 못할 코너로 몰아 넣자는 음모 아닌가,

"자네 변호사 시험은 언제 있는가?" 묻지만 그는 내 대답은 상관하지도 않고 소위 인륜지대사로 매듭을 짓는다.

"어서들 날짜 잡아,그만했으면 사귀기도 오래됏으니 알만큼 다 알것이고,내 딸 애리는 나이도 과년하여 이 애비의 체면도 있고 하니 말야, 자네 아버지와도 다 의논이 되었네.자네 결정만 남았어"

아, 바비킴의 청춘은 내 원한 바가 아닌 막다른 길로 빠져드는가.이렇게 끝나가는가. 눈부신 광채 속에

내 순결한 쟈니, 천사같은 쟈니를 눈 앞에 두고도 잡지 못하 채, 끝이 뻔한 허상의 인생에 목매어 끌려가게 되는가.


"쟈니 나 약혼하게 됐어,집안과의 결정이라 어쩔 수가 없구나"

한 밤 중 전화선 저 너머에서 너는 믿기지 않는지 몇 번이나 확인했다.

"네가 나를 소망한 만큼 나를 미워해라.욕을 해도 싸다.그치만 내 진심은 이렇다.내 인생 오직 하나 뿐인 내 사랑 너, 너를 계속 보는 것만도 닳을까봐 아까워 늘 눈길을 떨구던 나였다. 이건 내 영혼의 고백이다"

나는 전화선 너머에서 심하게 흐느끼는 네 울음 소리를 들으며 전화의 종료버튼을 거칠게 눌렀다..

그리고 스스로를 심하게 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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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돌이의 푸른 산책길
김청 지음 / 한포연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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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날이 뜨거운 햇볕,후덥지근한 날씨,거기에 미세먼지 까지도, 참 힘든 여름나기다.

물론 시간과 돈과 기타등등의 여건이 허락된다면 훨씬 쿨한 여름을 즐길 방법도 허다하다.

그러나 나는 이 여름,시간과 일과 사람과 부대끼며 사는 생활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래서 가장 보편적이고 가까운 책에 손이 간다.그러나 찐득한 땀을 미지근한 선풍기 바람에 쏘이며 집중할 수 있는 책은 얼마 되지 않는다. 내용이 너무 심오한 책이나 현학적인 달변으로 유혹하는 경세적 책도 덮어 버리기 일쑤다.

 무엇을 읽어야 하나 허전한 내 손에 김청의 수필집 <공돌이의 푸른 산책길> 이 들어 왔다.

'그래 여름철엔 가볍게 읽을 수필이 딱이야'생각하며 책을 열어보니 우선 많은 수량의 목록이 빼곡하다.

작가가 꽤나 열심히 차곡차곡 준비한 것이 느껴진다. 

읽어보노라니 성실하고 진지하게 짧지 않은 세월을 살아 온 노작가의 깊은 통찰과 혜안이 다가오며 그의 깊은 지혜에도 잔잔한 감동이 느껴진다.소제목 따라 그 때, 그 때 부담없이 재미있게 읽으며 또 지혜로운 내용 중 마음에 되새길만한 배움의 기쁨도 누릴 수 있으니, 풍부한 영양이 가득한 이 책이 이 여름 나의 훌륭한 보양식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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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름 밤 이불 퀵>


 또 다시 이불을 화다닥 제치고 솟구치며 일어났다.

이게 벌써 몇 번 째 ? 도저히 잠이 오지 않는다.

밖에는 장마비, 들이치는 빗물을 피하느라 창문을 모두 닫은 방안은 그대로 찜통 그것이다.

끈적이는 살갗이 린넨 100% 까슬한 이부자리마져 스치기를 거부하며, 그리고 땀에 젖은 머리카락과 목덜미에 축축해지는  베개를 혐오한다.


 그러나 진정으로 나를 잠 못들게 하는 것은 밖으로 부터 오는 한여름 찜통 더위만이 아닌 것을 나는 잘 안다. 오히려 내 심장 피를 들끓게 하는 이 노여움과 화통, 그 다음 슬그머니 찾아오는 후회와 자괴 이들이 공모하여 나를 활활 타오르게 한다.그 열기가 나를 삼키려 한다.

그 녀석이 평소에도 비열하고 약삭빠른 것은 익히 알고 있었다. 그런데 이렇게 나의 뒷통수를 칠 줄은 몰랐다. 아까 낮 점심식사 후유증으로 슬슬 졸음이 오는 시간, 사무실에서 녀석이 내게 다가와 한 대 꼬슬리러 가자고 눈짓을 했다. 흡연자들은 슬프다, 마치 전 인류 앞에 큰 죄나 짓는듯 공범의식을 갖고 끼리끼리 구석진 곳으로 몰려서 공연히 서로 눈치를 보며 스스로의 목숨을 담보한 구름과자를 뻐끔거린다.

 헌데 녀석은 오늘따라 기분이 좋은지 히부연 여름 하늘을 향해 콧구멍 두 줄기 연기를 힘차게 뿜어내며 돌지난 애처럼 벙긋벙긋 웃는다.

"어이, 이팀장 오늘 뭐 좋은 일 있어?" 묻는 내게 그는 기다렸다는 듯 냉큼 하는 말이

"야, 나 오늘 리나가 사주는 점심 먹었다. 아가씨가 먼저 자청해서 사 주는 점심이라니,완전 꿀맛이더라"

나는 침을 꿀꺽 삼켰다. 그리고 맘 속으로 외쳤다.'왜 왜 리나가 왜 너한테?'그런데 이 작자가 내가 얼마나 리나한테 공을 들이고 있는지를 알면서도 기분 나쁘게 나를 흘긋 보며 한 층 더 능청을 떤다.

"근데 리나 요것이 보통내기가 아니데, 밥 다 먹고 일어서며 '오빠 백일 이벤트 기대되요'하고 눈을 찡긋하는거야, 백일 이벤트는 어떻게 하는건고?"

내 눈에 불이 확 붙어버리는 순간이었다.지난 석 달 간 제일 일찍 출근해서 몰래 그녀 책상 위에 장미 한 송이를 놓아 준게 누군대,고백할 날을 기다리며 남 몰래 꿈을 키우던건 누군대,근근히 모은 돈으로 커풀링을 준비하고 서플라이 프로포즈 준비를 하고 있는 건 누군대, 맹꽁이 리나야 너 이런 중대한 일에 방향 감각을 상실하다니. 갓 들어온 신입이 사내 연애로 문제가 생길까봐 내딴에는 신경쓰며 은밀하게 준비했었는데,리나 너는 중대한 착오를 한거야,이팀장, 너는 내 맘을 알만한 놈이 나를 골탕 먹이려고 부아질이냐, 하도 어이가 없고 존심이 꼴려 반남아 남은 꽁초를 집어던지고 돌아섰는데.

이제 잠자리에 들어 잠을 청하자니 새삼 그 유들유들한 녀석이 눈 앞에 어른거리고 엉뚱한데 눈웃음을 날리는 리나가 생각나 잠이 멀리 도망가고 성질만 뻗치는 것이다.

"어머니,에어컨은 뭐 장식품으로 세워 뒀어요?이런 밤엔 쫌 쫌 에어컨 좀 켜세요!"

애꿎은 안방에 대고 버럭 고함을 질러댄다.

시계를 보니 밤은 이미 자정을 넘어 3시에 육박하고 있다.


 '음,마음을 가라앉치고 잘 생각하면 국면을 바꿀 방법이 있을꺼야. 까짓 정 엉키기만 한다면 내가 솔직하게 다 불어 버리지. 진심을 고백한다면 오해도 풀리고 리나는 내게 미안해 하겠지'하며 평정으로 가다듬는다.그러며 복식호흡까지 동원해 애써 잠을 청하는데 묘하게 귀청을 때리는 불길한 소음, '애앵'

 또 다시 이불을 박차고 벌떡 일어났다. '이 놈을 잡지 않으면 내 피가 털린다.어디 그 뿐이냐 커다랗고 붉게 부푼 흉칙한 키스마크가 얼굴 한 복판에 생길지도, 상상만으로도 진저리를 치며 불을 켠다. 한마리  모기와의 탐색전과 육박전,살륙전 까지 온힘 다해 치루자 잠은 멀리 달아나고 벌써 창 밖이 훤해지고 있는게 아닌가.짧고 무더운 여름밤을 불면으로 지새운 것이다.이 눈 두덩이 다크써클이 뺨까지 내려온 너구리같이 우중충한 얼굴로 내일 리나에게 고백하기는 다 틀렸다.며칠 여름 보양식으로 심신을 정비하고 새로운 전열을 가다듬어 새 공략을 세울 것을 다짐하며 나는 스르륵 잠이 들었다.


"오매,오매! 얘가 웬 늦잠이라냐, 화사 갈 시간이 발써 지나뿌렀는디" 나는 깊은 잠에 빠져 어머니의 걱정 소리도 들리지 않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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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옥 1 - 잊혀진 제국의 딸
이수정 지음 / 신생(전망)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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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     잊혀진 제국의 딸   ,   곡옥    ( 장편 역사소설 )

작가     이 수정

 

오백여 년 흥성했던 가야국의 갑작스런 쇠퇴와 멸망을 온몸으로 겪으며 그 불운한 국가의 명맥을 지켜내느라 고군분투했던 가야의 마지막 왕비 곡옥의 생애를 바탕으로 쓴 역사소설이다.

지혜롭고 감성이 풍부하지만 또한 철과 같이 강인한 의지의 여인,  삶에 치열하게 맞서고 기울어 가는 국운을 회복하기 위하여  갖은 노력과 방법을 마다하지 않았던 그녀. 그러나 세월이 흐르고 인심도 바뀌어 전통적인 순장의 악습에 민심이 술렁이고,  인간의 삶을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며 순장의 정당성과 필요성을 정면 부인하는 불교가  종이에 물 젖어 번지듯 야금야금 번지는 시대의 변화는 거스를 수 없는 것. 민심은 이미 이반되고 가까운 왕족마져 등을 돌린다.

이를 곡옥이 피치못할 시대의 대세로 인정하고 개선의 의지를 보였을 때는 이미 가야를 받쳐주던 중신들이 흩어지고 군사도 힘을 잃어 닥쳐든 신라군에게 속절없이 포로가 되어 끌려 간다.

적국의 신라 왕 앞에서도 곡옥은 가야 왕비로서의 위엄과 품위를 잃지 않고 가야의  대악 우륵의  망국의 가얏고 음률을 들으며 장엄하게 흰 눈발처럼 흩날려 간다.

나는 때때로 옛시대를 풍미했던 옛사람들의 삶이 궁금했다. 그들도 현대 우리 못지않게 늠름하고 지혜롭고 또 자신의 삶에 최선을 다하며 행복과 안정을 원했을 터. 수천년이 지난 후 우리가 보는 유적의 자취는 그들 실제 모습에 아주 미세한 파편일 뿐이다.

가야국 삶의 모습도 마찬가지로 많은 의문과 궁금증을 자아냈다.

철의 생산지로 일찌기 철기문화를 일으켜 오백여 년이나 흥성했던 국가가 왜 그렇게 소리없이 소멸했을까  그 시대를 가늠할 수 있는 건 그들이 남긴 순장 풍습의 유적 뿐이다.

옛 사람들인들 어찌 가족이나 친구, 유능한 사람들의 생매장이 쉬울 수 있을까, 이를 가야의 주춧돌이 물러나듯 국운이 흔들리게 된 발단으로 시작하는 작가의 상상력이 참신하다. 그리고 때마침 불어오는 불교의 역풍도 가야 멸망의 한 축이 된다.  가야 멸망의 한 가운데서 나라를 존속시키려는 곡옥의 의지와 용기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감동으로 다가온다.

끝으로 한 잊혀진 고대 국가를 건져 올려 무한한 상상력과 미소한 고대 유적을 통하여 살아 용트림하는 생생한 가야국으로 살려내어 우리 독자들의 눈 앞에  스펙터클로 펼쳐 주신 작가님의 혜안과 긴 시간 노고에 깊은 경의를 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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