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환자 집단 촌  >



요석이 정착하여 사는 이 마을은 대체로 조용하다. 싸울 일이 없는 동네다.

부부싸움도 없고 이혼도 없고 자식 걱정도 없다. 아무 문제도 없고  조용하다. 가끔 통증으로 길게 얕게 신음하는 소리가 간간이 들릴 뿐.

단지 하나, 문제가 있다면 먹을게 부족하다. 여기 수용소 안에 격리된 한센인은  스스로 생업을 할 수 없으므로 누군가에게  의식주를 기댈 수 밖에 없는데 특히 끼니가  늘 부족해 배가 고프다.

가끔 요석은 나환자들에게 묻는다.

“형제님, 제일 큰 소원은  무엇입니까 ? “

그들은 자기에게 관심을 갖고 물어주는게 더없이 기쁘고 고맙다.

“ 하루 세끼는 아니더라도 다만 한 끼, 밥을 큰 그릇에 수북하니 담아 배 터지게  먹어봤으면 좋겠어요. 그게 소원이얘요” 그는 두 다리가 반 쯤 잘려나가고 한 팔도 없다. 한 팔에 남은 세 손가락으로 땅을 짚으며 엉덩이로 이동한다. 그 세 손가락이나마 언제까지 갈까 ?

“ 천국에 가시면 세 끼 밥과 좋은 음식을 마음껒 드실 수 있습니다. 조금만 참으세요 .”

“ 그 좋은 천국에는 언제나 가지요 ? 어서 가게 해 주세요 . “

그래서 요석은 그의 머리에 두 손을 얹고서 기도한다.

“ 하나님 배고프고 아프고 힘든 이 형제를 어서 데려가 천국의 풍요한 잔치에 참석하게 해 주세요 , 아멘 “ 그도 기쁘게 ‘아멘’ 한다. 그리고 천국에의 소망으로 더 없이 행복해 한다


한센병은 인류 역사와 함께 있어 온 ,유래  깊은 병이다.  살이 곪아 터지며 얼굴이 문드러지고 팔 다리가 떨어져 나가는 이 병은 환자에게는 물론, 가족도 이웃도 모두 기피한다. 신의 저주, 또는 천형이라하여 환자를  멀리 쫒아내고 돌보지 안 했다.

이들도 한센병이 드러난 처음에는 일단 사지가 멀쩡하였지만 이 수용소로 들어와 일 년 이 년,삼년을  지내는 사이 병은 점점 더 진행되며   눈이 멀고 살이 곪아 문드러지고  팔 다리가 떨어져 나가 흉한 모습이 되는 것이다. 그래도 충분한 영양 공급과 얼마 만큼이라도 의료 혜택이 주어진다면 완치는 어렵더라도 병의 진행을 어느 정도 늦출 수 있겠으나 여기서는 전혀 그런 보장이 없이  열악하고 비참하다.

다만 어서 죽기를 바라는 처지일 뿐이다.

요석은 이들의 배고픔이라도 해소해 주려고 이리저리 아는 사람들을 찾아 강냉이 가루나 감자 등, 식량이 될만한 것을 구해다 대지만 수용소 안,  삼 백 명 가량의 인원을 감당하기에는 태부족이다.

하루는 식량도 떨어진지 며칠 되고 돼지죽 같은 급식도 너무 부족해 어떻게 끼니를 이을건가 심각하게 고민한다.  요석도  역시 배고픈 것은 마찬가지인 것이다. 옛 어른들 말씀에 땅을 파면 먹을 게 생긴다는 말이 생각났다. 땅을 파 본다.  한, 일 미터 남짓 쯤 들어 갔을 때, 놀랍게도 초콜렛 색깔, 아주 곱고 쫀득한 흙이 나온다. 조금 집어 먹어보니 이물질의 지금거림이 없고 찰떡 같이 씹히는 맛이 고소하다. 그걸 한 양푼 퍼다 먹을 수 있는 순한 풀을 섞어 반죽으로 치대어 수제비를 만들었다. 흙수제비지만 먹으니 구수하고 배가 부르다. 포만감에 모두 좋아라 하는데 요석은 다음 날 아침 깨어보니 얼굴과 손발이 퉁퉁 부었다. ‘ 어, 다른 사람들은 괜찮은데 왜 나만? , 의아하다. 아직 적응이 안 되어 그랬겠지 생각하며 ,

다음 기회에  또 먹어 보니 웬만큼 괜찮다. 역시 인간의 강인한 생존 능력에 감탄한다.

하루는 고위층 관리가 이 먼 곳 까지 찾아 왔다.

중국에 처음 왔을 때 술 시합으로 제압했던 그 친구다.

“ 선생님은 대단한 투사이십니다. “ 그의 첫 마디다.

“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요석이 의중을 알 수 없어 묻는다.

“ 종교를 금지하는 이 나라에 와서 감히 기독교를 전파하지 않으십니까?” 엄포같기도 한 이 말,

그러나 그는 요석을 진지하게 바라보며 안타까운 듯 말한다.

“ 학식 높고  진실하신 선생님이 이 구석진 문둥이 마을에 들어 와 전염의 위험을 무릎쓰고 함께 고생을 하시며 사신다는게 말이나 됩니까 ?  저는 몹시 안타깝고 걱정이 됩니다.

제가 비교적 환경이 좋은  마을을 찾아서 선생님을 편안하게 모시고 싶은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객관적 이성적 생각이라면 참으로 솔깃한 제안이다. 그러나 요석은 먼저 예수님이 광야에서 마귀의 시험을 받은 부분이 생각난다. 예수님은 마귀가 제안하는 배고픔과 존귀와 권능을 모두  거절하여  마귀의 시험을 물리친게 아닌가 ?

요석은 부드럽게 웃으며 말한다.

‘ 이들이 저를 필요로 합니다.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 곁에 산다는게 저는 행복합니다 “

그는 할 말이 더 있는 것 같이 머뭇거리며.  머리를 갸웃거리다 떠나갔다.


다시 지독한 식량난이 벌어진다. 비축한 곡식은 바닥난지 오래고 지급되는 돼지죽도 최악으로 질도 나쁘지만 양도 극히 적다. 병으로 죽는이 보다 굶주림으로 죽는 이가 더 많이 나오는 형편 이다.

식량을 구하러 왕동싱 촌장 마을을 다녀 왔다. 한 두어 달 걸린 것 같다.

돌아오자마자 소장이 다급하게 말한다.

“ 선생님, 참 신기한 일을 봅니다.

한 환자가 죽을 때가 다 됐는데도 선생님 오기 전엔 절대 죽을 수 없다고 저리 버티지 뭡니까 ? 죽었나? 하고 건들면 벌떡 일어나고 그러며 선생님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어요. “

요석은 바삐 그의 곁으로 다가갔다.

그의 몸은 그대로 주검이다. 움푹 꺼진 눈에 핏기 없이 굳어진 전신. 그러나

“ 형제님, 괜찮으십니까 ? “ 하는 요석의 목소리를 듣자 눈을 번쩍 뜬다. 안광이 번쩍인다.

“ 제가 선생님을 보기 전에는 죽을 수 없어 이때껒 기다렸습니다. “

“ 무슨 일인지 말씀해 보세요 “ 요석이 그의 눈을 보며 말한다.

죽으면 하늘 나라에 갈텐데 이 더러운 문둥이 몸을 받아 주실까요 ?”

요석이 대답한다.

“ 예 염려 마십시요, 천국가는 그 순간에 당신은 변화되어 멀쩡하게 두 다리로 선 정상인이 되 있을겁니다.

“ 선생님, 하나님이 정말 나를 알아 보실까요 ? 선생님이 나를 위해 소개장을 하나 써 주신다면 주머니에 잘 넣고 가서 하나님 앞에 보여 드릴려구요. “

“ 하나님은 벌써 당신을 잘 알고 계십니다. 당신 자리를 예비하고 기다리고 계십니다 “

“ 난 손이 없어요, 하나님을 만나면 손을 잡아 악수를 하고 싶은데 어떻게 잡나요 “

“ 아, 걱정 말래두요. 당신은 천국으로 가면 두 손 두 발 건강한 성한 사람의 모습이얘요 “

요석은 안스러운 마음에 그의 뭉그러져 나무토막 같은 팔뚝을 꼭 쥐어 준다.

그 때 그가 외친다.

“ 아, 나를 놔 주세요. 천국의 큰 손이 나를 잡아 줍니다. 내 손을 잡았어요. 선생님 고맙습니다 “

그의 흉한 얼굴은 화색이 가득하여 위를 향해 시선을 고정시킨 채 조용히 숨을 거둔다.

지켜보는 모든 사람들 또한 천국에의 믿음과 소망으로 감사의 눈물을 흘린다.

이런 행복한 죽음이 또 어디 있겠는가.


상해에서 교수친구가 소개해 주었던 고위 공무원이 또 찾아 왔다. 첫 번 째는 나환자촌을 찾기 위한 술 시합이 있었고,  두 번 째는 선교지역을  다른 곳으로  선처해 주겠다는 제안이었고 그리고 이  세 번 째는 어떤 목적이 있어서 이 멀고 험한 곳을 찾았을까.


요석의 거처는 이 곳 다른 주민들과 비슷하게 갈대풀로 엮어 만든 움막이다. 아랫 쪽으로 흙을 개부쳐 바람을 막은 여덟 평 작은 실내, 한켠에  굵은 대나무로 성글게 짠 침상이 있다.역시 널판지를 구해 와서 손수 만든 작은 책상이 창 쪽으로  있고 그 위로는 성경책과 몇 권의 노트가 단정하게 놓여 있다.하나 뿐인 의자에 손님을 앉게 하고 요석은 침상에 걸터 앉았다.

그리고 그를 자세히 바라 본다. 몇 년 전  처음 봤을 때 보다 무척  수척해진 얼굴, 근심과 고민이 가득하다. 한참이나 말문을 열지 못하던 그가 불쑥 묻는다.


“이루 말로 할 수 없는 극악한 죄라도 하나님은 용서해 주시나요 ? “

“ 이 세상에서 하나님이 사하지 못하는 죄는 없습니다. 하나님께 지은 죄를 고백하고 진심으로 용서를 구하면 하나님은 죄를 사하여 주십니다. “ 요석은 자신있게 말한다.

“ 저의 이름은 자오융칭이라고 합니다. 우리 부모님도 사실은 기독교 교인이었습니다. 새벽마다 저의 손을 잡고 기도해 주셨어요. 그 기억이 요즘 들어 더욱 생생하게 떠올라 너무 괴롭습니다. “



1966 년 마오져뚱이 주도한 < 문화대혁명 >은 중국 역사에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 다방면에 심대한 영향을 끼친 공산주의 대약진 운동이었다. 그 때 자오융칭은 열 세 살,

마오는 서서이 느슨해지는 자신의 권력 기반을 재강화하려는 야심에서 비롯됐지만 사회적 측면에서 서민들에게 파급된 영향은 실로 대단한 것이었다.

마오는 특히 청소년들에 주목했다. 젊은이들이 사상과 행동을 규합해 영구적 계급투쟁의 결과로 민중민주와 민족해방의 노선을 확립하자는 것이다. 구체적 행동 강령으로 기존 유교 질서를 비판하여  모든 인민은 평등하며 상하 불문하고 잘 못된 행동이나 생각은 통렬한 비판과 각성으로 바로 잡아야 한다는 추상같은 개념이다.이에 따른 , 이른바 홍위병들은 의기투합하여  오래 된 문화재와  사당들을 깨부수고  성현들의 고서를 아낌없이  불사른다, 뿌만 아니라   선생이나 교장을 고발하고 자식은 부모를 고발하고 부부 사이에서도 서로를 가차없이 고발하여 인민재판에 부치는 일이 허다하였다.

자오융칭도 소학교  졸업반이 되었을 무렵인데 선생들은 훈시 때마다 어른 중에서도 혁명정신에 어긋난 자는 누구나 고발하라고 부추겼다. 자오는 누구를 고발하여 교장 앞에서 칭찬과 상을 받을까 생각하게 되었다.  그 때 문득 생각된게 새벽마다 어머니와 아버지가 두 손을 모으고 기도하는 모습이었다. 옳다구나, 아버지를 고발해야지.

자오는 교장 앞으로 고발장을 썼다.

< 나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당에서 금하는 기독교를 신봉하는 자들로 새벽마다 기도를 하고 하나님을 숭배하는 찬양을 합니다.  >

그 다음 날로 어머니는 어디론가 끌려가 보이지 않았고 아버지는 모든 사람 앞에서 인민재판을 받게 되었다. 마을 사람이 모두 모이고 당간부들도 위엄있게 배석한 자리였다. 인민재판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전, 교장이 연단에 서서 지오를 호명했다.

“ 군은 매우 굳센 정의감과 용기로  타에 모범이 된 혁명용사요.. 자오군은 앞으로 우리 인민사회가 지향하는 바 진정한 민족해방의 대열에서 앞서 가는 혁명지도자가 되리라 확신하오. “

하며 상장과 당에서 내린 커다란 상패를 주었다. 얼마나 자랑스러운 일인가 하고 한껒 부풀었던 마음이었다 그러나 다음 순간 , 얼굴에 짚가리로 엮은 용수를 쓴 채 꽁꽁 묶여 끌려오는 아버지를 보며 심장이 얼어 붙는 듯 했다. 그 때,  당 간부 중에도 우두머리인 듯한 사람이 연단으로 나와 아버지의 얼굴에  씌운 용수를 벗기게 하고

“ 얘야 너의 아버지가 맞느냐 ?  정말 새벽마다 기도와 찬송을 하더냐 ? “등을 차근차근 묻는다.자오는  묻는대로 고개를 끄덕일 수 밖에 없었다. 그는 모여 선 마을 사람들을 향하여 목소리를 돋구며

“ 이 보십시요, 이 장한 어린 학생이, 아버지가  국가에서 금지하는 반역적인 종교 행위를 고발하고 당당하게 증언하였습니다. 이소년의 영웅적 정의감과 용기에 다같이 박수를 보냅시다.”

우뢰와 같은 박수 소리를 들으며 자오는  다시 마음을 고쳐 먹는다. ‘ 아, 난 잘 한 일이야. 아버지가 나빳어. 난  당당해도 돼. ‘ 하며

아버지를 쏘아 보는 순간 아버지와 눈이 마주쳤다. 사랑스런 아들을 바라보는 잔잔하게 웃는 얼굴, ‘ 그래 넌 잘 했어 ‘ 괜찮아 ‘ 하는 듯 사랑으로 가득 찬 그  눈빛 . 아버지는 처형장으로 끌려 가기 전 다시 한 번 뒤돌아 아들 자오를 바라본다. 그리고  알게 모르게 끄덕 고개짓과 함께 사랑의 눈길을 보낸다.

어머니와 아버지를 졸지에 여윈 자오는 그 날로 고아가 되었다. 더 이상 따뜻한 가정과 부모가 없다. 거지처럼 떠도는 자오의 소문이 퍼지자 당황한 당에서  자오를 데려다 < 혁명 일세대 투사 >라고 떠받들며 모든 뒷배를 넉넉하게  봐 주었다. 잘 먹고 잘 자라  최고의 교육을 받고 출세 가도를 달리며 좋은 잡안의 딸과 결혼하여 아들도 두었다.

누구나 선망하고 존경하는 오늘 날 까지 그의  삶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불현듯 아버지를 본 것이다. 까맣게 잊고 살았던 아버지가 다시 살아  돌아왔다.

그의 아들이 이제 열 세 살,  아들이 자신을 보는 눈에서 아버지를 본 것이다. 사랑과 신뢰가 가득차 잔잔하게 웃는  모습. 열 세 살 아이답지 않은 아버지의 그 얼굴.

그 후로 자오는 아들을 보면 아버지가 연상되고 자신이 철없이 저지른  

엄청난 행위가 생각나며 미칠듯한 고통을 느끼는 것이다. 열 세 살 소년이 보았던 아버지, 그가 자라 아버지가 되어 열 세 살 아들을 보는 자신, 너무 극도의 대비에 그는 비로소 자신이 무슨 짓을 한건가 소스라치게 놀라며  씻을 수 없는 죄악에 진저리를 치는 것이다.


긴 얘기를 들으며 요석은 함께 깊은 한숨을 쉰다. 그가 시대적 상황 속에 그릇되이 저질렀던   인간으로서의 고통이 느껴져서이다.

“ 예수님이 아무 죄도 없이 십자가에 달려 피를 흘리며 고난 중에 돌아가신 이유가 세상 모든 죄인들을 대속하기 위함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독생자이신 귀한 아들을 세상에 내 보내 모든 죄를 대속하고 죽게 까지 하신 섭리도 하나님의 사람에 대한 무한한 사랑이십니다. “

예수님의 희생과 하나님의 드넓은 사랑 , 그 위에 무슨 말을 하겠는가 ?

지오융칭은 이해가 되는지 모르지만 이제는 껍질벗은 애벌레처럼  작고 여린  인간이 되어 그저  한없이 흐느껴 울기만 한다.



가을인가 하는 사이 겨울을 재촉하는 차가운 비가 내리고 사람들은 토굴이나 움막 집에 들어가 몸을 움추려 자는듯 죽은듯 음울한 어느 날, 요석은 열이 펄펄 오르며 참을 수 없이  배가 아프다.’  왜 그럴까 ‘ 스스로 촉진을 하며 원인을 생각해 본다.

‘ 맹장 --염 ?’  왜 맹장염인가 ?

‘ 아, 짚히는 데가 있다. 근래 흙수제비를 꽤 자주 해 먹었는데 ,  그게 원인일수도.’

여기서는 어떤 방도도 없고 읍내로 나가야 하겠는데. 한 시가 급하다.

“ 돌쇠야 “ 하고 부르는 소리에 땔랑땔랑 방울 소리 울리며 달려 온 것은 당나귀다.

한 일 년 전 요석이 이웃 마을을 다녀오는데 한 농부가 어린 당나귀를 때려 죽이려 도끼를 휘둘른다.

“ 여보슈, 왜 당나귀를 죽이려고 하는 거요 ? 차라리 날 주시요. 내가 사리다 “ 요석이 다급하게 외치자 농부는 그냥 가져 가란다. 왜 공짜냐고 물으니

“ 이 놈이 주인 말을 전혀 듣지 않아 괘씸해서 죽이려고 했는데 죽이려는 못된 놈은 팔지 않고 거져 주는거라 “고 했다.

졸지에 당나귀를 하나 얻어 집으로 데려다 친구삼아 잘 다루니, 웬걸 말도 잘 듣고 여간 영리한게 아니다. 이름을 돌쇠라 짓고 한국말로만 소통하니 곧잘 알아듣고 원근 그 등에 타고 다니기도 하여 이젠 없어서는 안 되는 소중한 식구가 되었다.

“ 돌쇠야 내가 아퍼서 죽겠다 네가 수고 좀 해 다오 “

요석은 그 밤을 도와 장장 여덟 시간을 당나귀 등 위에서 신열과 통증으로 쩔쩔매며 읍내에 닿았다.  이른 새벽 녘이었는데 아직 문을 연 가게가 드믄지  적막한 거리다.

그 곳에는 오래된 한의원과 동물들을 치료하는 동물 병원이 있었다. 아무래도 수술이 필요할 것 같아 동물 병원에 들어섰다. 시설이라곤 거의 원시상태로 지저분하고 조악하다. 그러나 어쩌랴, 의사를 불러 맹장 수술을 부탁했다. 의사는 꼬지지한 중늙은이였는데 질색을 하며 자기는 동물 배는 갈러 봤어도 사람 배는 안 들여다 보아 모른다며 거절한다.

“ 영감님 걱정 말고 우선 배를 갈라 주시요, 내가 유명한 기술자 두 명과 같이 왔으니 그들이 도와 주실 것이요. “

어디, 어디 의사 선생이요 ?” 하고 그는 사방을 휘휘 둘러 본다.

“ 아, 글쎄, 내 눈에는 보이니까 염려 마시라니까요

마취제는 있습니까 ?”

“ 어디요 ? 동물은 마취 안 시킵니다. “

그럼 한의원에게 부탁해 보쇼 .” 하는 말에  한의원까지 달려 왔다.

“ 글쎄요, 해 본 적은 없지만 한 번 해 보지요” 한의원은 요석의 혀를 쭉 빼내더니 여기저기 침을 꽂는다.

배를 가르려고 가져온  

칼을 보니 요석은  기가 막힌다. 오래 되어 날이 무디고 녹까지 슬었으니.

“ 숫돌 있어요 ? 잠깐 좀 갈아 쓰시지요 “

“ 어데를 갈라야 하나요 ? “ 수의사는 요석의 배를 들여다 보며 역시 경황이 없다.

“ 주로 맹장은 왼 쪽에 있다고 하니 요쯤 갈라 보시요, “

익숙치 못한 수의사는 떨리는 손으로 가슴 밑 늑골 아래로 주욱 가른다. 너무 많이 갈랐다.

“ 어떤게 맹장이요 ? “ 수의사는 배 속의 것을 이리저리 헤쳐보며 마련이 안 선다.

“ 나도 좀 보이게 들어 봐요 “ 요석이 고개를 들며 말한다. 참 뱃 속에 저런 많은 것이 들었다니, 스스로도 놀라며 아무리 살펴 봐도 맹장 같은 건 보이지 않는다.

“ 요 아래 왼편으로 조금  더 째 봐요. “ 이리저리 헤적이다 끄트머리에서  검푸른 빛의 조그만 덩어리를 발견한다.

“ 그건가 보오, 잘라 내시요 .”

“ 여긴 참 실이 없다오, 무얼로 꼬매지요 ?” 수의사가 또 당황해서 말한다. 다행히 한의원이 재빠르게 자주색 이불 꼬매는 실과 굵은 바늘을 구해 왔다. 수의사는 손재주도 없는지 벌벌 떨리는 손으로 대충 듬성듬성 꼬매어 간신히 배를 덮었다.

때가 꼬질꼬질한 천으로 배를 둘둘 말아 묶은 채 요석은 곧 되짚어서 나귀의 등에 흔들리며 집으로 둘아 왔다. 거의 한 밤 중이나 들어선 집은 냉기로 가득하고 차가운 밤길을 당나귀에 실려 온 요석은 통증을 느낄 새도 없이 정신을 놓는다. ‘ 아, 하나님 뜻대로 하소서. 죽으면 죽으리이다 ’  중얼대며 아득하게 무의식의 나락으로 떨어진다. 다음, 다음 날이 되서야 겨우 정신을 찾은 요석은 자신의 모습에 놀라고  공포스럽다.  다리가 얼어서 뚱뚱 부어오르고 꿰맨 자리에는 벌써 염증이 시작되는지 벌겋게 성이 나고 진물이 흐른다. 또한 통증은 뼈를 생으로 깎아내는듯 처절하게 아프다.  오, 주여 !. 요석은 고통으로 길게 탄식한다.

요석이 많이 아프다는 소문을 듣고 주민들이 몰려 왔다. 그들은 제일 먼저 희희낙낙한다. 선생님도 자기들 처럼 문둥병에 걸렸으니 이제 어디 안 가고 자기들과 계속 살거라고. 그러나 요석이 다리와 배까지 부어 오르고 신열이 뜨겁게 달아 올라 괴로운  신음 소리를 내자 , 자기들도 요석이 너무 불쌍한지, 부은 다리와 배를 주물러 주겠단다.. 손가락 떨어진 몽당 손으로, 팔이 없는 이는 다리로 , 그도 저도  없는 사람은  몸으로 요석을 덮고 얼굴을 문질러 열을 식혀주려 애 쓴다. 요석이 앓는 소리를 할 때마다 그들도 마음 아파하며 온 몸으로 더욱 열심히 주무르고 문지르고 얼굴을 대어 체온을 나눈다. 수 백명이 교대로 몇날 며칠을 그러는 사이 그들의 고름 섞인 핏물과 진물과 눈물이 요석의 상처를 덮고 퉁퉁 부은 다리에도  그들의 체액이 쌓이고 샇여 마치 기브스를 한 것 같이 딱딱하게 굳어 간다.

일주일된 날, 요석은 기적을 보았다. 사랑과 진정이 가득한 그들의 체액, 딱딱하게 굳어진 기브스 껍질 밑에서  다리와 배에 부기가 빠지고 꼬맨 자국도 꾸득꾸득 아물어 간다. 요석은 거의 죽음을 각오하였고, 다행히 살아나더라도 다리를 절단해야 하지 않나 염려했는데 ‘오, 하나님, 이렇게 다 마련이 되신 주님 섭리를 모르고 오히려 염려한 제 허약한 믿음을 용서하여 주소서.’  요석은 흐느끼며 자신의 허약한 믿음을 회개한다.

그리고 예수님은 허다한 문둥병자들을 고쳐주는 은혜를 베푸셨는데 자신은 오히려 그들에게 도움과 치유를 받아 회복된 것에 , 자신이 그들의 사랑과 은혜를 크게 입었다는 사실에 큰 깨달음을 얻는다.

“ 하나님, 더러운 고름이 명약이 되는 하나님 사랑의 섭리. 더욱 겸손하게 그들을 섬기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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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환자 집단 촌  >



요석이 정착하여 사는 이 마을은 대체로 조용하다. 싸울 일이 없는 동네다.

부부싸움도 없고 이혼도 없고 자식 걱정도 없다. 아무 문제도 없고  조용하다. 가끔 통증으로 길게 얕게 신음하는 소리가 간간이 들릴 뿐.

단지 하나, 문제가 있다면 먹을게 부족하다. 여기 수용소 안에 격리된 한센인은  스스로 생업을 할 수 없으므로 누군가에게  의식주를 기댈 수 밖에 없는데 특히 끼니가  늘 부족해 배가 고프다.

가끔 요석은 나환자들에게 묻는다.

“형제님, 제일 큰 소원은  무엇입니까 ? “

그들은 자기에게 관심을 갖고 물어주는게 더없이 기쁘고 고맙다.

“ 하루 세끼는 아니더라도 다만 한 끼, 밥을 큰 그릇에 수북하니 담아 배 터지게  먹어봤으면 좋겠어요. 그게 소원이얘요” 그는 두 다리가 반 쯤 잘려나가고 한 팔도 없다. 한 팔에 남은 세 손가락으로 땅을 짚으며 엉덩이로 이동한다. 그 세 손가락이나마 언제까지 갈까 ?

“ 천국에 가시면 세 끼 밥과 좋은 음식을 마음껒 드실 수 있습니다. 조금만 참으세요 .”

“ 그 좋은 천국에는 언제나 가지요 ? 어서 가게 해 주세요 . “

그래서 요석은 그의 머리에 두 손을 얹고서 기도한다.

“ 하나님 배고프고 아프고 힘든 이 형제를 어서 데려가 천국의 풍요한 잔치에 참석하게 해 주세요 , 아멘 “ 그도 기쁘게 ‘아멘’ 한다. 그리고 천국에의 소망으로 더 없이 행복해 한다


한센병은 인류 역사와 함께 있어 온 ,유래  깊은 병이다.  살이 곪아 터지며 얼굴이 문드러지고 팔 다리가 떨어져 나가는 이 병은 환자에게는 물론, 가족도 이웃도 모두 기피한다. 신의 저주, 또는 천형이라하여 환자를  멀리 쫒아내고 돌보지 안 했다.

이들도 한센병이 드러난 처음에는 일단 사지가 멀쩡하였지만 이 수용소로 들어와 일 년 이 년,삼년을  지내는 사이 병은 점점 더 진행되며   눈이 멀고 살이 곪아 문드러지고  팔 다리가 떨어져 나가 흉한 모습이 되는 것이다. 그래도 충분한 영양 공급과 얼마 만큼이라도 의료 혜택이 주어진다면 완치는 어렵더라도 병의 진행을 어느 정도 늦출 수 있겠으나 여기서는 전혀 그런 보장이 없이  열악하고 비참하다.

다만 어서 죽기를 바라는 처지일 뿐이다.

요석은 이들의 배고픔이라도 해소해 주려고 이리저리 아는 사람들을 찾아 강냉이 가루나 감자 등, 식량이 될만한 것을 구해다 대지만 수용소 안,  삼 백 명 가량의 인원을 감당하기에는 태부족이다.

하루는 식량도 떨어진지 며칠 되고 돼지죽 같은 급식도 너무 부족해 어떻게 끼니를 이을건가 심각하게 고민한다.  요석도  역시 배고픈 것은 마찬가지인 것이다. 옛 어른들 말씀에 땅을 파면 먹을 게 생긴다는 말이 생각났다. 땅을 파 본다.  한, 일 미터 남짓 쯤 들어 갔을 때, 놀랍게도 초콜렛 색깔, 아주 곱고 쫀득한 흙이 나온다. 조금 집어 먹어보니 이물질의 지금거림이 없고 찰떡 같이 씹히는 맛이 고소하다. 그걸 한 양푼 퍼다 먹을 수 있는 순한 풀을 섞어 반죽으로 치대어 수제비를 만들었다. 흙수제비지만 먹으니 구수하고 배가 부르다. 포만감에 모두 좋아라 하는데 요석은 다음 날 아침 깨어보니 얼굴과 손발이 퉁퉁 부었다. ‘ 어, 다른 사람들은 괜찮은데 왜 나만? , 의아하다. 아직 적응이 안 되어 그랬겠지 생각하며 ,

다음 기회에  또 먹어 보니 웬만큼 괜찮아 역시 인간의 생존 능력에 감탄한다.

하루는 고위층 관리가 이 먼 곳 까지 찾아 왔다.

중국에 처음 왔을 때 술 시합으로 제압했던 그 친구다.

“ 선생님은 대단한 투사이십니다. “ 그의 첫 마디다.

“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요석이 의중을 알 수 없어 묻는다.

“ 종교를 금지하는 이 나라에 와서 감히 기독교를 전파하지 않으십니까?” 엄포같기도 한 이 말,

그러나 그는 요석을 신중하게 바라보며 안타까운 듯 말한다.

“ 학식 높고  존경하는 선생님이 이 구석진 문둥이 마을에 들어 와 전염의 위험을 무릎쓰고 함께 고초를 겪으며 사신다는게 말이나 됩니까 ?  저는 몹시 안타깝고 걱정이 됩니다.

제가 비교적 환경이 좋은  마을을 찾아서 선생님을 편안하게 모시고 싶은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객관적 이성적 생각이라면 참으로 솔깃한 제안이다. 그러나 요석은 먼저 예수님이 광야에서 마귀의 시험을 받은 부분이 생각난다. 예수님은 마귀가 제안하는 배고픔과 존귀와 권능을 모두  거절하여  마귀의 시험을 물리친게 아닌가 ?

요석은 부드럽게 웃으며 말한다.

‘ 이들이 저를 필요로 합니다.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 곁에 산다는게 저는 행복합니다 “

그는 할 말이 더 있는 것 같이 머뭇거리며.  머리를 갸웃거리다 떠나갔다.


다시 지독한 식량난이 벌어진다. 비축한 곡식은 바닥난지 오래고 지급되는 돼지죽도 최악으로 질도 나쁘지만 양도 극히 적다. 병으로 죽는이 보다 굶주림으로 죽는 이가 더 많이 나오는 형편 이다.

식량을 구하러 왕동싱 촌장 마을을 다녀 왔다. 한 두어 달 걸린 것 같다.

돌아오자마자 소장이 다급하게 말한다.

“ 선생님, 참 신기한 일을 봅니다.

한 환자가 죽을 때가 다 됐는데도 선생님 오기 전엔 절대 죽을 수 없다고 저리 버티지 뭡니까 ? 죽었나? 하고 건들면 벌떡 일어나고 그러며 선생님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어요. “

요석은 바삐 그의 곁으로 다가갔다.

그의 몸은 그대로 주검이다. 움푹 꺼진 눈에 핏기 없이 굳어진 전신. 그러나

“ 형제님, 괜찮으십니까 ? “ 하는 요석의 목소리를 듣자 눈을 번쩍 뜬다. 안광이 번쩍인다.

“ 제가 선생님을 보기 전에는 죽을 수 없어 이때껒 기다렸습니다. “

“ 무슨 일인지 말씀해 보세요 “ 요석이 그의 눈을 보며 말한다.

죽으면 하늘 나라에 갈텐데 이 더러운 문둥이 몸을 받아 주실까요 ?”

요석이 대답한다.

“ 예 염려 마십시요, 천국가는 그 순간에 당신은 변화되어 멀쩡하게 두 다리로 선 정상인이 되 있을겁니다.

“ 선생님, 하나님이 정말 나를 알아 보실까요 ? 선생님이 나를 위해 소개장을 하나 써 주신다면 주머니에 잘 넣고 가서 하나님 앞에 보여 드릴려구요. “

“ 하나님은 벌써 당신을 잘 알고 계십니다. 당신 자리를 예비하고 기다리고 계십니다 “

“ 난 손이 없어요, 하나님을 만나면 손을 잡아 악수를 하고 싶은데 어떻게 잡나요 “

“ 아, 걱정 말래두요. 당신은 천국으로 가면 두 손 두 발 건강한 성한 사람의 모습이얘요 “

요석은 안스러운 마음에 그의 뭉그러져 나무토막 같은 팔뚝을 꼭 쥐어 준다.

그 때 그가 외친다.

“ 아, 나를 놔 주세요. 천국의 큰 손이 나를 잡아 줍니다. 내 손을 잡았어요. 선생님 고맙습니다 “

그의 흉한 얼굴은 화색이 가득하여 위를 향해 시선을 고정시킨 채 조용히 숨을 거둔다.

지켜보는 모든 사람들 또한 천국에의 믿음과 소망으로 감사의 눈물을 흘린다.

이런 행복한 죽음이 또 어디 있겠는가.


상해에서 교수친구가 소개해 주었던 고위 공무원이 또 찾아 왔다. 첫 번 째는 나환자촌을 찾기 위한 술 시합이 있었고,  두 번 째는 선교지역을  다른 곳으로  선처해 주겠다는 제안이었고 그리고 이  세 번 째는 어떤 목적이 있어서 이 멀고 험한 곳을 찾았을까.


요석의 거처는 이 곳 다른 주민들과 비슷하게 갈대풀로 엮어 만든 움막이다. 아랫 쪽으로 흙을 개부쳐 바람을 막은 여덟 평 작은 실내, 한켠에  굵은 대나무로 성글게 짠 침상이 있다.역시 널판지를 구해 와서 손수 만든 작은 책상이 창 쪽으로  있고 그 위로는 성경책과 몇 권의 노트가 단정하게 놓여 있다.하나 뿐인 의자에 손님을 앉게 하고 요석은 침상에 걸터 앉았다.

그리고 그를 자세히 바라 본다. 몇 년 전  처음 봤을 때 보다 무척  수척해진 얼굴, 근심과 고민이 가득하다. 한참이나 말문을 열지 못하던 그가 불쑥 묻는다.


“이루 말로 할 수 없는 극악한 죄라도 하나님은 용서해 주시나요 ? “

“ 이 세상에서 하나님이 사하지 못하는 죄는 없습니다. 하나님께 지은 죄를 고백하고 진심으로 용서를 구하면 하나님은 죄를 사하여 주십니다. “ 요석은 자신있게 말한다.

“ 저의 이름은 자오융칭이라고 합니다. 우리 부모님도 사실은 기독교 교인이었습니다. 새벽마다 저의 손을 잡고 기도해 주셨어요. 그 기억이 요즘 들어 더욱 생생하게 떠올라 너무 괴롭습니다. “



1966 년 마오져뚱이 주도한 < 문화대혁명 >은 중국 역사에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 측면에 심대한 영향을 끼친 공산주의 대약진 운동이었다. 그 때 자오융칭은 열 세 살,

마오는 서서이 느슨해지는 자신의 권력 기반을 좀 더 강력하게 잡으려는 야심에서 비롯됐지만 사회적 측면에서 서민들에게 파급된 영향은 실로 대단한 것이었다.

마오는 특히 청소년들에 주목했다. 젊은이들이 사상과 행동을 규합해 영구적 계급투쟁의 결과로 민중민주와 민족해방의 노선을 확립하자는 것이다. 구체적 행동 강령으로 기존 유교 질서를 비판하여  모든 인민은 평등하며 상하 불문하고 잘 못된 행동이나 생각은 통렬한 비판과 각성으로 바로 잡아야 한다는 추상같은 개념이다.이에 따른 , 이른바 홍위병들은 의기투합하여  오래 된 문화재와  사당들을 깨부수고  성현들의 고서를 아낌없이  불사른다, 뿌만 아니라   선생이나 교장을 고발하고 자식은 부모를 고발하고 부부 사이에서도 서로를 가차없이 고발하여 인민재판에 부치는 일이 허다하였다.

자오융칭도 소학교  졸업반이 되었을 무렵인데 선생들은 훈시 때마다 어른 중에서도 혁명정신에 어긋난 자는 누구나 고발하라고 부추겼다. 자오는 누구를 고발하여 교장 앞에서 칭찬과 상을 받을까 생각하게 되었다.  그 때 문득 생각된게 새벽마다 어머니와 아버지가 두 손을 모으고 기도하는 모습이었다. 옳다구나, 아버지를 고발해야지.

자오는 교장 앞으로 고발장을 썼다.

< 나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당에서 금하는 기독교를 신봉하는 자들로 새벽마다 기도를 하고 하나님을 숭배하는 찬양을 합니다.  >

그 다음 날로 어머니는 어디론가 끌려가 보이지 않았고 아버지는 모든 사람 앞에서 인민재판을 받게 되었다. 마을 사람이 모두 모이고 당간부들도 위엄있게 배석한 자리였다. 인민재판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전, 교장이 연단에 서서 지오를 호명했다.

“ 군은 매우 굳센 정의감과 용기로  타에 모범이 된 혁명용사요.. 자오군은 앞으로 우리 인민사회가 지향하는 바 진정한 민족해방의 대열에서 앞서 가는 혁명지도자가 되리라 확신하오. “

하며 상장과 당에서 내린 커다란 상패를 주었다. 얼마나 자랑스러운 일인가 하고 한껒 부풀었던 마음이었다 그러나 다음 순간 , 얼굴에 짚가리로 엮은 용수를 쓴 채 꽁꽁 묶여 끌려오는 아버지를 보며 심장이 얼어 붙는 듯 했다. 그 때,  당 간부 중에도 우두머리인 듯한 사람이 연단으로 나와 아버지의 얼굴에  씌운 용수를 벗기게 하고

“ 얘야 너의 아버지가 맞느냐 ?  정말 새벽마다 기도와 찬송을 하더냐 ? “등을 차근차근 묻는다.자오는  묻는대로 고개를 끄덕일 수 밖에 없었다. 그는 모여 선 마을 사람들을 향하여 목소리를 돋구며

“ 이 보십시요, 이 장한 어린 학생이, 아버지가  국가에서 금지하는 반역적인 종교 행위를 고발하고 당당하게 증언하였습니다. 이소년의 영웅적 정의감과 용기에 다같이 박수를 보냅시다.”

우뢰와 같은 박수 소리를 들으며 자오는  다시 마음을 고쳐 먹는다. ‘ 아, 난 잘 한 일이야. 아버지가 나빳어. 난  당당해도 돼. ‘ 하며

아버지를 쏘아 보는 순간 아버지와 눈이 마주쳤다. 사랑스런 아들을 바라보는 잔잔하게 웃는 얼굴, ‘ 그래 넌 잘 했어 ‘ 괜찮아 ‘ 하는 듯 사랑으로 가득 찬 그  눈빛 . 아버지는 처형장으로 끌려 가기 전 다시 한 번 뒤돌아 아들 자오를 바라본다. 그리고  알게 모르게 끄덕 고개짓과 함께 사랑의 눈길을 보낸다.

어머니와 아버지를 졸지에 여윈 자오는 그 날로 고아가 되었다. 더 이상 따뜻한 가정과 부모가 없다. 거지처럼 떠도는 자오의 소문이 퍼지자 당황한 당에서  자오를 데려다 < 혁명 일세대 투사 >라고 떠받들며 모든 뒷배를 넉넉하게  봐 주었다. 잘 먹고 잘 자라  최고의 교육을 받고 출세 가도를 달리며 좋은 잡안의 딸과 결혼하여 아들도 두었다.

누구나 선망하고 존경하는 오늘 날 까지 그의  삶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불현듯 아버지를 본 것이다. 까맣게 잊고 살았던 아버지가 다시 살아  돌아왔다.

그의 아들이 이제 열 세 살,  아들이 자신을 보는 눈에서 아버지를 본 것이다. 사랑과 신뢰가 가득차 잔잔하게 웃는  모습. 열 세 살 아이답지 않은 아버지의 얼굴.

그 후로 자오는 아들을 보면 아버지가 연상되고 자신이 철없이 저지른  

엄청난 행위가 생각나며 미칠듯한 고통을 느끼는 것이다. 열 세 살 소년이 보았던 아버지, 그가 자라 아버지가 되어 열 세 살 아들을 보는 자신, 너무 극도의 대비에 그는 비로소 자신이 무슨 짓을 한건가 소스라치게 놀라며  씻을 수 없는 죄악에 진저리를 치는 것이다.


긴 얘기를 들으며 요석은 함께 깊은 한숨을 쉰다. 그가 시대적 상황 속에 그릇되이 저질렀던   인간의 고통이 느껴져서이다.

“ 예수님이 아무 죄도 없이 십자가에 달려 피를 흘리며 고난 중에 돌아가신 이유가 세상 모든 죄인들을 대속하기 위함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독생자이신 귀한 아들을 세상에 내 보내 모든 죄를 대속하고 죽게 까지 하신 섭리도 하나님의 사람에 대한 무한한 사랑이십니다. “

예수님의 희생과 하나님의 드넓은 사랑 , 그 위에 무슨 말을 하겠는가 ?

지오융칭은 이해가 되는지 모르지만 이제는 껍질벗은 애벌레처럼  작고 여린  인간이 되어 그저  한없이 흐느껴 울기만 한다.



가을인가 하는 사이 겨울을 재촉하는 차가운 비가 내리고 사람들은 토굴이나 움막 집에 들어가 몸을 움추려 자는듯 죽은듯 음울한 어느 날, 요석은 열이 펄펄 오르며 참을 수 없이  배가 아프다.’  왜 그럴까 ‘ 스스로 촉진을 하며 원인을 생각해 본다.

‘ 맹장 --염 ?’  왜 맹장염인가 ?

‘ 아, 짚히는 데가 있다. 근래 흙수제비를 꽤 자주 해 먹었는데 ,  그게 원인일수도.’

여기서는 어떤 방도도 없고 읍내로 나가야 하겠는데. 한 시가 급하다.

“ 돌쇠야 “ 하고 부르는 소리에 땔랑땔랑 방울 소리 울리며 달려 온 것은 당나귀다.

한 일 년 전 요석이 이웃 마을을 다녀오는데 한 농부가 어린 당나귀를 때려 죽이려 도끼를 휘둘른다.

“ 여보슈, 왜 당나귀를 죽이려고 하는 거요 ? 차라리 날 주시요. 내가 사리다 “ 요석이 다급하게 외치자 농부는 그냥 가져 가란다. 왜 공짜냐고 물으니

“ 이 놈이 주인 말을 전혀 듣지 않아 괘씸해서 죽이려고 했는데 죽이려는 못된 놈은 팔지 않고 거져 주는거라 “고 했다.

졸지에 당나귀를 하나 얻어 집으로 데려다 친구삼아 잘 다루니, 웬걸 말도 잘 듣고 여간 영리한게 아니다. 이름을 돌쇠라 짓고 한국말로만 소통하니 곧잘 알아듣고 원근 그 등에 타고 다니기도 하여 이젠 없어서는 안 되는 소중한 식구가 되었다.

“ 돌쇠야 내가 아퍼서 죽겠다 네가 수고 좀 해 다오 “

요석은 그 밤을 도와 장장 여덟 시간을 당나귀 등 위에서 신열과 통증으로 쩔쩔매며 읍내에 닿았다.  이른 새벽 녘이었는데 아직 문을 연 가게가 드믄지  적막한 거리다.

그 곳에는 오래된 한의원과 동물들을 치료하는 동물 병원이 있었다. 아무래도 수술이 필요할 것 같아 동물 병원에 들어섰다. 시설이라곤 거의 원시상태로 지저분하고 조악하다. 그러나 어쩌랴, 의사를 불러 맹장 수술을 부탁했다. 의사는 꼬지지한 중늙은이였는데 질색을 하며 자기는 동물 배는 갈러 봤어도 사람 배는 안 들여다 보아 모른다며 거절한다.

“ 영감님 걱정 말고 우선 배를 갈라 주시요, 내가 유명한 기술자 두 명과 같이 왔으니 그들이 도와 주실 것이요. “

어디, 어디 의사 선생이요 ?” 하고 그는 사방을 휘휘 둘러 본다.

“ 아, 글쎄, 내 눈에는 보이니까 염려 마시라니까요

마취제는 있습니까 ?”

“ 어디요 ? 동물은 마취 안 시킵니다. “

그럼 한의원에게 부탁해 보쇼 .” 하는 말에  한의원까지 달려 왔다.

“ 글쎄요, 해 본 적은 없지만 한 번 해 보지요” 한의원은 요석의 혀를 쭉 빼내더니 여기저기 침을 꽂는다.

배를 가르려고 가져온  

칼을 보니 요석은  기가 막힌다. 오래 되어 날이 무디고 녹까지 슬었으니.

“ 숫돌 있어요 ? 잠깐 좀 갈아 쓰시지요 “

“ 어데를 갈라야 하나요 ? “ 수의사는 요석의 배를 들여다 보며 역시 경황이 없다.

“ 주로 맹장은 왼 쪽에 있다고 하니 요쯤 갈라 보시요, “

익숙치 못한 수의사는 떨리는 손으로 가슴 밑 늑골 아래로 주욱 가른다. 너무 많이 갈랐다.

“ 어떤게 맹장이요 ? “ 수의사는 배 속의 것을 이리저리 헤쳐보며 마련이 안 선다.

“ 나도 좀 보이게 들어 봐요 “ 요석이 고개를 들며 말한다. 참 뱃 속에 저런 많은 것이 들었다니, 스스로도 놀라며 아무리 살펴 봐도 맹장 같은 건 보이지 않는다.

“ 요 아래 왼편으로 조금  더 째 봐요. “ 이리저리 헤적이다 끄트머리에서  검푸른 빛의 조그만 덩어리를 발견한다.

“ 그건가 보오, 잘라 내시요 .”

“ 여긴 참 실이 없다오, 무얼로 꼬매지요 ?” 수의사가 또 당황해서 말한다. 다행히 한의원이 재빠르게 자주색 이불 꼬매는 실과 굵은 바늘을 구해 왔다. 수의사는 손재주도 없는지 벌벌 떨리는 손으로 대충 듬성듬성 꼬매어 간신히 배를 덮었다.

때가 꼬질꼬질한 천으로 배를 둘둘 말아 묶은 채 요석은 곧 되짚어서 나귀의 등에 흔들리며 집으로 둘아 왔다. 거의 한 밤 중이나 들어선 집은 냉기로 가득하고 차가운 밤길을 당나귀에 실려 온 요석은 통증을 느낄 새도 없이 정신을 놓는다. ‘ 아, 하나님 뜻대로 하소서. 죽으면 죽으리이다 ’  중얼대며 아득하게 무의식의 나락으로 떨어진다. 다음, 다음 날이 되서야 겨우 정신을 찾은 요석은 자신의 모습에 놀라고  공포스럽다.  다리가 얼어서 뚱뚱 부어오르고 꿰맨 자리에는 벌써 염증이 시작되는지 벌겋게 성이 나고 진물이 흐른다. 또한 통증은 뼈를 생으로 깎아내는듯 처절하게 아프다.  오, 주여 !. 요석은 고통으로 길게 탄식한다.

요석이 많이 아프다는 소문을 듣고 주민들이 몰려 왔다. 그들은 제일 먼저 희희낙낙한다. 선생님도 자기들 처럼 문둥병에 걸렸으니 이제 어디 안 가고 자기들과 계속 살거라고. 그러나 요석이 다리와 배까지 부어 오르고 신열이 뜨겁게 달아오르고 괴로운  신음 소리를 내자 , 자기들도 요석이 너무 불쌍한지, 부은 다리와 배를 주물러 주겠단다.. 손가락 떨어진 몽당 손으로, 팔이 없는 이는 다리로 , 그도 저도  없는 사람은  몸으로 요석을 덮고 얼굴을 문질러 열을 식혀주려 애 쓴다. 요석이 앓는 소리를 할 때마다 그들도 마음 아파하며 온 몸으로 더욱 열심히 주무르고 문지르고 얼굴을 대어 체온을 나눈다. 수 백명이 교대로 몇날 며칠을 그러는 사이 그들의 고름 섞인 핏물과 진물과 눈물이 요석의 상처를 덮고 퉁퉁 부은 다리에도  그들의 체액이 쌓이고 샇여 마치 기브스를 한 것 같이 딱딱하게 굳어 간다.

일주일된 날, 요석은 기적을 보았다. 사랑과 진정이 가득한 그들의 체액, 딱딱하게 굳어진 기브스 껍데기 밑에서  다리와 배에 부기가 빠지고 꼬맨 자국도 꾸득꾸득 아물어 간다. 요석은 거의 죽음을 각오하였고, 다행히 살아나더라도 다리를 절단해야 하지 않나 염려했는데 ‘오, 하나님, 이렇게 다 마련이 되신 주님 섭리를 모르고 오히려 염려한 제 허약한 믿음을 용서하여 주소서.’  요석은 흐느끼며 자신의 믿음이 약함을 회개한다.

그리고 예수님은 허다한 문둥병자들을 고쳐주시는 은혜를 베푸셨는데 자신은 오히려 그들에게 도움과 치유를 받아 회복된 것에 , 자신이 그들의 사랑과 은혜를 입었다는 사실에 큰 깨달음을 얻는다.

“ 하나님, 더러운 고름이 명약이 되는 하나님 사랑의 섭리. 더욱 겸손하게 그들을 섬기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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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석은 다시 북경으로 돌아가는 기차를 타고 여행을 한다. 멀고 먼 , 길고 긴 여행길이다. 중국인들은 빽빽하게 탄 객차 안에서 대개 삶의 모습을  여과없이 보인다. 그들은 요강을 휴대하고 다닌다.생리적인  감이 오면 깡통 요강에 용변을 보고  철로 변에 쏟아  버린다. 시장할 땐, 가방에 비축했던 굳은 빵이나 말린 생선을 꺼내 맛있게 먹거나  역에 닿아 잠시 서면 벌떼처럼 몰려들는 잡상인들에게서 과일이나 요기거리를 산다. 어떤 때는 지루하도록 길게 정차할 때도 있다. 그 때는 기관사들이 가까운 음식점에 들러 식사를 하느라 그런다고 한다. 그리고 졸리우면 밤 낮을 구분하지 않고  잔다. 아기가 칭얼대면 어미는 허옇고 탐스러운 앞가슴을  풀어 젖을 먹이고 , 옆에 있는 이들은 별관심없이 기차의 흔들림에 따라 졸고 있다

 

요석은 독일어 성경을 읽고 있다.  깊이 묵상하며   심취하여  읽느라 차안의 소란이나 갖가지의 이색적인 풍경도 관심 밖이다.

그런데 갑자기 귓전을 때리는 의외의 울림에 깜짝 놀라 주위를 살핀다.

“다스 하인리히쉬리프트 “ 요석이 읽고 있는 독일어판 성경책 겉표지에 찍혀있는 금색 글자 독일어의 독음이다. 이 소란스럽고 무질서한 중국 오지 서민들의 열차에서 이렇게 똑똑하고 세련된 독일어를 하는 사람은 누구인가 ? 요석은 맞은 편에 앉은 한 노인을 바라 본다.

몸집이 자그마하고 얼굴엔 주름이 가득한 볼품없는 노인이지만 입성이 깨끗하고 단정하며  그의 온 모습에서 깊은 지혜와  경륜이 느껴진다. 그 노인이 요석에게 말한다.

“ 그 책을 한 번 만져봐도 되겠소 ? “

“ 그러십시요 “ 요석은 얼른 성경을  노인에게 건넨다.

“ 이 책을 내가 40 년 만에 만져 보는 거요 “ 하며  성경을 두 손으로 감싸고 쓰다듬는 그 노인은  감회가 아주  깊은 듯 눈을 감고   주름진 눈가에는  물기가 어린다.


왕동싱이라고 이름을 밝힌 그 노인은 기나긴 자신의 인생역전을 말한다.

“  1940 년 대 나는 상하이대학 학생이었소. 아직 공산화되기 이전 중국의 사회상은 극도로 혼란했지요. 국민당 정부와 마우쩌뚱 ( 모택동 )이 이끄는 공산당이 치열한 내전을 벌이고 있고 학생들 사이에서도 공산당 확전 운동이 거세었지요. 나도 자우언라이 ( 주은래 ) 선배님의  심복으로 학생연맹의 주도자가 되어서 연일 집회와 시위, 때로는 반대파와의 폭력 싸움으로 공부는 뒷전이었다오.

그 때 한 독일 교수가 나에게 말했어요. “ 나도 한 때는 공산주의였으나 40 년이 지나서야 그것이 위선 투성이라는 걸 깨닫고 전향했다오. “

“ 그럼 뭐가 제일입니까 ?” 내 물음에 그 교수는 내게 성경책을 줍디다. 바로 이 책과 똑갖은 성경책이었어요. 하며 겉 표지에 있는 금박 글자를 손가락으로 더듬는다.

대충 읽어 보았지만 내겐 먹히지 않았어요. 왼쪽 뺨을 치면 오른쪽 뺨도 내 놓아라, ‘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 도대체 그 때 나로선 납득할 수 없는 말이었어요. ‘ 남의 눈에 티끌은 보면서 네 눈에 들보는 보지 못하느냐’  따위의 말에는 화도 났어요. 그래서 나는 성경책을 도로 그 교수에게 주었어요. 그리고 나는 말했다오.

“ 우리 젊은이들은  중국이  봉건적 지주제 때문에  불평등한  인민들을 위해서   토지개혁을 단행하고  부르조아들의 사기업들을 국유화하여 모두가 차별 없이 잘 사는 사회주의 개혁을 완수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우리들이 앞장서서  싸워야 합니다. “

내 말을 듣는 그 교수는 크게 실망하여 눈물까지 글썽이며

“ 여보게 , 지도자가 잘 못된 진리를 따라가고, 그 잘 못된 지도자의 사상을 그대로 쫒아가면 그 민족과 사회는 망하게 되어 있네. “

1949 년, 중국은 결국 국민군을 밀어내고 마오쩌뚱 ( 모택동 ) 지도자 아래 중화인민공화국을 세워  공산당 천하 통일을 이루었네. 주은래는 부주석이 되고 나는 그의 보좌관으로 활동했지. 공산주의 이론가로 인정도 받아 1960 년 대에는 교육상으로 출세도 했다네. 그러나 그것도 잠깐, 1966 년 일어난 문화대혁명은 모든 것을 뒤집어 놓았네. 모택동이 견제하던  권력층이 무너지고 한창 뜨기 시작하던 덩사오핑 ( 등소평 )도  당직에서  쫒겨나는 수모를 겪었지. 나도 무사하지 못했지. 벙거지로 얼굴을 씌운 채  채 강제노역으로 끌려 가 8 년이나 죽음과 다를 것 없는 고생을 했다네. 다행히 1974 년 등소평이 다시 복귀하여 재집권하며 나도 강제노역에서 풀려났지.  등소평 휘하로 들어오라는 부름도 받았네. 그러나 나는 옛날 독일 교수의 말이 생각났고  공산주의에 환멸을 느껴 더 이상 나가서 섞이고 싶지 않았네.

지금은 내 고향 마을에서 조용히 살고 있다네. 내 나이 이미 칠십을 바라 보고 있으니.”

긴 이야기를 마친 왕동싱 노인은 잠시 숨을 고르고 눈을 반짝이며 요석에게 묻는다.

“ 이제 내가 내릴 곳이 멀지 않습니다, 바쁘지 않다면 나의 집에 함께 가 주지 않겠습니까 ?”

요석에게는 딱히 갈 곳이 정해져 있는 것도 아니고 바쁜 일도 없다. 따라 가도 안 될 건 없겠다.


왕동싱 노인의 집이 있는 곳은 꽤 큰 마을이다. 800 여 호에 이르는 번다한 곳이다. 마을 사람들은 농사를 짓거나 소나 양을 기르는 목축일로 업을 삼아 살고 있다.

며칠 지난 후 어느 날 아침, 노인이 요석의 방에 들어 와 큰 절을 한다.

“ 아니, 왜 이러십니까 ? “ 요석이 당황하여 얼른 일어나 맞절로 허리를 굽힌다.

“ 저에게 글을 가르쳐 주십시요 “

“ 학문이나 경륜이나 어르신이 나보다 한참 위이신데 무슨 말씀이십니까 ? “

“ 우리 마을 사람들에게도 함께 글을 가르쳐 주십시요. 제가 자리를 만들겠습니다 “

얼마나 반가운 제안인가. 노인의 집 넓은 뒷마당에 천막을 치고 자리를 깔아 임시로 교실을 만든다. 수강자를 모집하니 소문이 어덯게 전해졌는지 남녀노소 지원자가 너무 많다.

“ 우선 젊은 청년들이 배워야 합니다. 15 세 이상 30 세 미만의 젊은이들에게 우선권을 줍시다”

왕노인의 말대로 간추려 선발하니 이백 여 명이 된다. 이들이 낮에는 각자 생업에 종사하고 저녁에 모여 성경을 교과서로 하여 폭 넓은 강의를 듣는다. 한 달, 두 달 , 세 달로 접어들며 이 마을에는 신기한 변화가 일어 난다. 대개 일이 끝난 저녁 시간 술을 마시고 끼리끼리 모여 노름을 하던 젊은이들이 성경을 배우게 되니 술을 덜 하고 노름을 끊고 , 그리고 골초이던 그들이 담배를 멀리 한다. 문화혁명 이래 엉망으로 무너졌던 예의범절이 다시 살아나 웃어른에 공손하고 아이들에게 엄격하고, 서로 존대하는 놀라운  마을 분위기가 된다.

이 소문은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며 지역당위원회에도  보고되었다.

언제나 불평불만이 많아  반발하고 투쟁하던 인민들이 스스로 질서를 지키며 면학에 힘 쓴다 하니 믿어지지 않아 당위원들이 직접 시찰을 나왔다.

입구에  < 진리학사 >라는 간판을 보며 안으로 들어선 그들은 이슥한 밤 수많은 젊은이들이 모여 수업에 집중하는 열띤 모습을 보고 감탄을 금치 못한다.

“ 참으로 모범적인 교육관이요.  덕택에 이 마을이 근동에서 가장 모범적인 마을이 되었소 “

칭찬을 아끼지 않으며 표창장을 주고,  학교 허가서 까지 정식으로 내 주었다.

기독교를 절대 허용하지 않아 모임이  발각될  경우, 기물 파괴, 구금도 마다치 않는 서슬 퍼런  당국에서 이렇게도 파격적인 우대를 받는다는  것이 사람의 힘이라곤 생각할 수 없는 놀라운 은혜이다.


이 마을에서 인민재판이 열린다고 한다. 큰 범죄는 관에서 끌어다 조사 하고 재판을 하지만  사소한 사건은 촌장을 위시해서 마을 사람 공동의 재판 형식으로 하는 것이다.

“ 선생님도 참석하셔야지요. “ 촌장인 왕노인이 권한다.

“ 저는 그저 구경이나  하겠습니다 “

“ 아닙니다 선생님도 명예촌장으로 참석하셔야 합니다 어서 가시지요 “

요석은 재촉에 따라 나선다. 명예 촌장은 좀 더 높은 직위라며 촌장의 윗 자리로 모신다.

죄인은 여덟 살 먹은 사내아이, 죄목은 이웃 집 계란 두 개를 훔쳐 먹은 절도죄이다. 촌장은 아이에게 사실 여부를 묻고 아이는 순순히 인정한다. 그럼 형량은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고 우선 고소인에게 묻는다.

“ 저 놈은 늘상 우리 헛간을 넘겨 봅니다. 앞으로는 얼씬도 못하게 요 번에는 뽄대를 보여야 합니다. 볼기짝을   40 대는 쳐야 하겠습죠. “

“ 이봐요, 저 조그만 엉덩이를 40 대나 치면 물구창이 나서 죽을 것이요, 그래야 되겠소 ? “

한 청년이 고소인을 밉살스럽게 째려보며 이의신청을 한다. 한참이나 아이의 형량으로 옥신각신하다 결국 열 대를 치기로 합의가 된다. 형집행을 하기 전 촌장이 요석에게

“ 선생님 혹시 의견이 있으십니까 ?” 하고 묻는다.

“ 제가 한 말씀 들여도 괜찮겠습니까 ?”  요석은 좌중을 보며 묻는다. 이의다는 이는 없다

“ 고맙습니다. 그럼 먼저 저 아이에게 몇 가지만 물어 보겠습니다. “

“ 얘야 , 아침은 먹었느냐 ? “ 아이는 고개를 옆으로 흔든다.

“ 어제 저녁은 ? “ 또 고개를 흔든다. 이틀을 굶고 너무 배가 고파 옆 집 계란 두 개를 훔쳐 먹은 아이의 눈엔 눈물이 넘치고 흘러 까만 때로 얼룩져 있다.

요석은 좌중 늘어선 사람들을 향해 말한다.

“ 법이라는 것은 사람을 죽이려고 하는게  아니라 사람을 살리려고 있는 것입니다.

저 아이가  이틀을 굶고 계란을 훔쳐 먹었다고 하는데 그 원인을 따져 보면 우리 모두의 책임이 됩니다. 어떤 사회에서 문제가 생기면 먼저 그 사회에 최고 고참이 책임을 지고 당연히 벌을 받아야 합니다. 아이를 굶기고 무심코 넘어간 어른들의 잘못으로 명예촌장인  제가 대표로 벌을 받겠습니다. 저를 때려 주십시요 “


하며 요석이 마당 중앙에 설치해 둔 기다란 의자에 엎드러 졌다. 장내는 순간 조용해지고  눈알만 대굴대굴 굴리며 서로 눈치를 본다. 대신 때려야 하나, 말아야 하나 ? 그 긴장 속의  정적을 제일 먼저 깨고  큰 소리로 울며 달려 나오는 이는 아이의 어머니,

“ 제 잘못입니다. 제가 일이 바빠서 아들에게 제대로 밥을 주지 못 했습니다. 제가 맞겠습니다  “

다음으로는 후줄그레 깡 마른 남자가 눈물을 흘리며 나온다.

“ 제 잘 못이 제일 큽니다 노름에 미쳐서 집 안에 쌀까지 털어다 노름판에 몽땅 잃었습니다.”

다음엔 더욱 놀라운 일이 생겼다. 아까까지도 의기양양하여 아이를 혼내 주자는 고소인이 두 손을 싹싹 빌고 나오는 것이다.

“ 제가 크게 잘 못 생각했어요, 이웃 아이가 굶주리고 있다는 걸 미쳐 깊이 이해하지 못하고 잃어버린 계란만 억울하여 이렇게 어른답지 못한 행동을 했구먼요 . 고소 없던 걸로 하세요 “

그 자리에 있던 모든 마을 사람들이 작거나 크거나 간에  그 아이에게 절도죄를 쓰게한 책임이 자신들에게도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며 부끄러운 마음에 고개를 숙인다.

이제 촌장이 결론을 내릴 차례이다. 왕노인이 자리에서 일어나 중앙으로 나와서 목청을 높혀 말한다.

“ 선생님의 훌륭하신 혜안으로 우리들의 졸렬하고 어리석은 마음을  크게 깨우쳐 주셨습니다.

이 거룩하고 아름다운 깨달음을 가슴에 간직하고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서로 돕고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는 우리 모두 부모 된 심정으로 관심을 갖고 잘 거두어 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아이의 어머니와 아버지는 자식을  방임하여 절도까지 이르게 했다는 데에 대한 벌로 매일 아이에게 계란 한 알 씩  한 달 동안 먹이시요. “ 사람들이 웃으며 좀 웅성대자,

“ 항시 내가 아이에게 가서 확인하겠소. “ 하고 엄격하게 말을 맺는다.


마을 일이 더없이 수월하게 진행되어 알음알음으로 복음이 전파되는 중에도 요석의 가슴 한 구석에는 무거운 돌을 끌어 안고 있는 양 답답하다.

처음 중국에 오기로 한 목적지가 나환자 촌이고 또 잊을 수 없는 것은 가련한 아리랑 할머니의 기억이다.  그 할머니와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도  한 번은 꼭 가야만 한다.


드디어 날을 잡아 요석은 길을 떠났다.

그 곳에 닿으니 먼저 나환자 수용소의  소장이 반가워 한다.

그리고 그 할머니의 소식을  알려 준다. 요석이 오기 열흘 전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조금만 일찍 왔더라면 할머니를 만나 뵐 수 있었을 껄 하는 미안하고 안타까운 요석에게

“ 그런데 참 희안한 일이었습니다. “ 원장이 웃으며 말한다.

“ 선생님과의 만남이 딱 한 번 뿐이었는데도 할머니는 많이 변화되었어요. 이제  병이 깨끗이 나아서 더 이상 자기는 환자가 아니라고 했습니다.항상 행복한 얼굴로 예수 얘기만 했습니다. 매일마다 만나는 친구가 되었다구요. 죽으면서도 자기는 영원한 천국으로 예수님과 함께 살려고 가는 거라나요 ? 죽음에 대한 슬픔이나 공포는 찾아 볼 수 없고 기대에 가득찬 기쁜 얼굴이었어요 “

소장의 말을 들으며  그 할머니가 요석을 통해 예수님을 마음 속에 영접하고 천국으로 갔다는 확신은  적잖은 위안이 된다.

“ 할머니의 변화된 모습을 보고 많은 환자들이 당신을 만나고 싶어해요. 당신을 영험하고 도력 높은 주술사로 생각하고 있는 것 같습디다. 들어가 보시겠습니까? “

“ 네 들어가게 해 주십시요. 그들을 꼭 만나고 싶습니다. “

과연 그들이 기거하는 막사에 들어서자 요석이 더 기겁하게 놀라고 말았다.

어둑컴컴한 그 안에서 용케도 요석을 알아 본 사람들이 예수, 예수부르짖으며 그에게 달려 오는게 아닌가. 좀 성한 사람들은 절뚝이며 달려오고, 그 뒤로 기어 오는 사람, 저 뒷 쪽  좀 떨어진 곳에선  배밀이로 굴러 오는 이까지, 오리떼 몰려들 듯 몰려 온다.

요석은 가슴이 벅차 오른다. 두 손을 모은다

‘ 하나님, 감사합니다. 저들이 구원에 눈 떴습니다. 하늘 나라로 잘 인도하여 주님의 영생을 누릴 때 까지 제 목자로서의 소임을 잘 하도록 지혜와  힘을 주세요. ‘


제일 먼저 요석 앞에 다가온 이가 말한다.

“ 선생님 저도 예수란 친구를 만날 수 있을까요 ? 저도 만나게 해 주세요.”

그 뒤로 수없이 다가온 이들도 ‘예수를 만나게 해 주세요 . 해 주세요 ‘ 간절하게  말한다.

한 사람 씩 부르짖는 소리는 어느 덧 ‘예수, 예수 예수 ‘하는 합창 소리로 어우러 진다.

“ 여러분, 예수님은 밖에서 불러오는 분이 아닙니다. 여러분 마음 속에 계십니다. 마음을 모아 간절하게 그 분을 찾으세요. 그럼 그 분은 당신 곁으로 다가와 친구가 되 주십니다. 그리고 당신들의 아프고 괴로운 마음을 그 분께 얘기하세요. 그게 기도얘요. 기도를 다 하면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했습니다  아멘 ‘하세요. 그럼 여러 분이 구하는 것을 찾으실 것입니다. “

요석의 말소리는 어둡고 역겨운 냄새가 가득한 막사 안을 우렁우렁 울린다.

그 소리를 듣는 모든 이들은 그 순간 모든 고통과 시름을 놓은 채 환하고 향기로운 공간에서 눈부신 광채를 우러러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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엎드린 산  6  < 티벳 고승 릅상람파 >



요석이 한국으로 돌아와서도 꾸준히 구독하는 독일의 의학 정보지 ‘ 독일 의학 저널 ‘ 은 언제나 몇 달 지나서야  보게 된다. 계간으로 발행되는  이 책은 배편으로 오느라 한 두 달 느려지고 이 지방 영호우체국 사서함에서 또 몇 주  잠자다 어렵사리 요석이 읍내에 나갈 때에야  찾아 읽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항상 소식이 늦다.

그런데 이번 책에서 급  관심가는 기사를 보았다.

중국에는 철저히 외부에 알려지지 않은 은밀한  나환자 집단촌이 있다는 것이다. 대략 추산한다면 약 삼 만명 가량의  환자들이 사회로 부터, 가족과 친지로 부터 완전 격리되어 의료혜택은 커녕,  먹는 것과 거주하는 곳도  인간 이하, 집승이나 다름  없는  매우 비참한 생활을 한다는 르뽀기사이다.

요석은 이 기사를 본 후  그 내용이 머리에서 떠나지를 않는다.

‘ 하나님, 내가 그들을 필요로 합니다. 그들을 찾아가 그들과 손 잡고 싶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주신 이 몸을 헌신하며  주님께서 주신 사명을 다하고 싶습니다. 길을 인도하소서 ‘

영호교회는 요석이 십 년 가까이 시무하는 동안 많이 성장하고 체계도 잡혀 다른 어떤 목사님이 오셔서 사역을 하더라도 요석의 처음처럼 힘들지는 않을 것이다.

‘ 나는 내 할 일이 있는 그 곳으로 떠난다.’


1980년대 중반  한국은 아직 중국과 수교하지 않아 정식 비자를 받는 건 불가능했다. 그리고 중국은 당시  등소평의 통치하에서 모택동 주도로 개혁된 공산주의 체제로 지배되고 있었다. 국호도 중화인민공화국, 보통 중공이라고 한다.


마르크스의 입장을 계승한 레닌이 ‘ 종교는 자본가들의 착취에 저항하려는 인민들의 의지를 둔화시키기 위해 제국주의자들이 제공하는 아편이라고 선전하는 말이 진리로 통하는 실정이어서 기독교는 엄격하게 통제당하고 억압당하고 있었다.

그런 현실에서 요석의 중국 선교의 소망은 험난한 가시밭 길이다. 그럼에도 어느 날 요석은

한 벌 옷,내복, 양말 몇 켤레, 성경책과 몇 권의 노트만을 챙겨 단촐하게 여행 길에 올라 우선 홍콩으로 향했다.



 그 곳에는  독일서 함께 공부한 중국 친구가 상해 대학 교수로  있어  그에게 초청장을  부탁하려는 것이다.

얼마 후 그 친구의 초청장으로  샹해에  건너간 요석은 그 친구에게 솔직하게 나환자 촌으로 들어가 선교를 하겠다는 목적을 말했다. 그 친구는 깜짝 놀라며  

“ 우리 중국에 나환자촌은 없네 “  딱 잘라 말한다.

“ 자네가 어찌 아나 ?”

“ 주은래 동지께서 우리 사회주의 복지 국가에서는 그런 병 가진 사람이 하나도 없다는 교시를 발표했기 때문에 무조건 없다고 알고 있네. “

“ 자네 진정 몰라서 하는 얘긴가 ? 혹시 나를 자네 대학교에서 강의나 듣는 풋내기 학생으로 아는겐가 ? 나를 기만하지 말게 “ 요석은 목을 젖혀 껄껄 웃는다.

뭔가를 한참  생각하던 친구는

“ 잠간 !  좋은 생각이 있네 오늘 저녁 북경에서 온 동향  동무가 있어 , 함께 식사를 하기로 했네. 그는 고위 공무원이거든. 뭔가 나보다 더 잘 알고 있을게야. “

공무출장을 나왔다는 그 친구는 퉁퉁한 몸에 혈색 좋은 얼굴이다.  

요석의 교수친구가 요석을 소개한다.

“ 나와 독일에서 동문수학했지, 수재이고 성격 참한 진실한 사람일세. 지금은 한국에 돌아가 교회에서 목회를 하고 있다네 “

고위공무원이라는 그 친구는 눈을 가늘게 뜨고 요석을 찬찬히 살핀다.

“ 근데 무슨 일로 이 먼 중국까지 왔소 ? 목사님이 팔자 좋게 유람 다니실 처지는 아닐텐데.”

말투는 깐깐하지만 ‘ 푸하하 ‘웃는 얼굴은 호탕하다. 요석이 그의 진의를 파악하려 망서리고 있는 사이, 친구가 먼저 말문을 티어 준다. 둘은 아주 절친한 치구 사이인 듯하다.

“ 사실 이 목사동무는 문둥병 환자들이 수용된 나환자마을을 찾아 왔다네 . 그들을 돕고 싶어 하오. “

공무원 친구는 순간 정색을 하며 자세를 고친다.

“ 여기 문둥병 환자 있는 걸 어떻게 알고 왔습니까?  “ 그리고 좀 누그러진 목소리로 말을 잇는다. 그는 당보건부에 소속된 공무원이라고 했다.

“ 그러나 나는 공무상 절대 말해 줄 수 없어요. “ 요석은 일단 그 곳을 알 수 있는 연줄을 잡았다는 생각에 얼마간 마음의  여유를 찾아 그를 보며 유감스럽다는 듯  웃는다.

주문한 요리들이 들어오고 분위기도 한결 부드러워진 후, 느닷없이  그가

“ 이봐요, 목사동무, 목사는 술을 안 한다지요 ?  “ 그는 장난스럽게 웃으며 요석을 마주 본다.

“ 글쎄 아직 마셔 본 적은 없소만 “

“ 우리 술 마시기 시합해서  당신이 이긴다면 내가 그 곳을 안내하겠소  “

고위 공무원 실력자라 그런 자신감이 있는건지 참 묘한 타협안을 낸다.

요석은 옛날 바울을 생각했다 그는  이스라엘 민족을 구원할 수 있다면 날 지옥 보내라고 까지 기도했는데,--- 이 술을 마셔야 저들을 도울 수 있다면 하나님 날 용서하십시요, 마셔야 되겠습니다 아멘. 속으로 기도하며 비장하게 그러자고 했다.

“ 자 그럼 한 잔씩 따르겠습니다. 원샷으로 해야 합니다 “

친구는 둘 사이의 대화를 좋아라 들으며  가장 독한 빽 주를 맥주 잔에 콸콸 따른다.그리고  알콜농도를 시험한다며  술잔에 불을 확 부친다 찰랑거리는 투명 액체 위에 파르스름한 불꽃이 타오르며  꺼지지 않는게 신기하다. 사실 요석은 이런 술자리는  난생 처음이지만  피할 수 없는  모험이다. 그들은 각자 잔을 들어 마신다.

 공무원 친구는 술이라면  어지간히 자신이 있는지  , 느긋하게 두 잔 째. 또 세 잔 째.

요석은 생전 처음 마시는 술인데 ‘ 아, 이게 물 아냐 ? 진짜 술이야 ? 분간할 수 없도록 시원하게 넘어 간다. 마른 논에 물 대듯 온 몸이 기분좋게 이완되고 머리 속은 더욱 명징해 진다.

요석도 거뜬히 세 잔 째를 비운다.

“ 아, 술이 다 떨어졌군요, 더 하시렵니까? “ 요석이 공무원 친구에게 묻는다. 그는 얼굴이 더욱 붉어지고 코 끝도 빨갛다. 뜬듯 감은듯 게슴츠레한 눈이 요석을 야릇하게 바라 본다

“ 그렇게 마시고도 당신 정말 괜찮은 거요 ? 당신 가짜 목사 아니요 ?”

“ 저는 물론 괜찮습니다. 그리고 저는 신학교를 나와 이제껒 목사로 지냈지요”

“ 맞아 맞아, 저 동무 진짜 보수 목사야, 고집 때문에 교수님들 애 좀 먹였지 “

요리를 열심히 먹던 교수친구가 힘찬 소리로 보증을 해 준다.

공무원 친구는 꽤나 호승심이 강한지  계속 네 잔 째를  마시다 결국  무리였는듯 식탁에 엎어 진다. 요석은 네 잔 째를 마져 다 마시고도  잔잔히 앉아 있다.

“ 대단하네 요석동무, 자네는 꼭 뜻을 이룰 것일세. “ 교수 친구는 요석의 어깨를 툭툭 친다.

“ 고맙네 친구, 하나님이 자네에게도 축복을 주실게야.”

다음 날 아침 일찌기 누가 찾아왔다는 연락이 왔다. 로비에 나가 보니 어제의 공무원 친구가 말쑥하게 옷을  차려 입고 요석을 찾아 온 것이다. 그는 진지하고 공손하게 두 손을 가슴께에 모으고  허리  굽혀 절을 한다.

“ 대인님, 편안하게 잘 주무셨습니까? “  요석도 마주 인사하자,

어제는 제가 결례를 많이 했습니다. 약속대로 대인님이 가시고자 하는 곳으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 하는 것이 아닌가 .


그를 따라 행정구역 라오닝성 까지 따라 왔다.

과연 그는 꽤 높은 공직인듯 사람을 불러 지시를 한다.

다음 날 , 지시받은 이와 함께 몇 시간인가 차를 타고 다다른 곳은 높은 담에  육중한 대문으로  경비가 엄중하다. 대문을 들어서 메마른 황토길을 한참 달리니 < 통제구역 >이라는 경고판이 보이고 굳게 문을 닫은 건물이 보인다. 안내하는 이는 위생복과 마스크를 쓰고 요석에게도 위생복으로 덧 입을 것을 강요한다. 그러나 요석은 어서 그들을 보려는 성급함으로 불쑥 문을 열고 들어선다

세상에나 , 요석은 깜짝 놀라 눈을 크게 뜨고 본다. 어둑한 실내에 수많은 팔 다리 없는 사람들이 그냥 딩굴면서 긴 죽통에 얼굴을 쳐박고 핥아먹고 있는것이다. 그들은 팔다리가 없으니 뱀이 기어가듯 배로 기어가며 눈알도 다 빠져  코로 냄새를 맡으며 먹을 걸 찾는다.

요석은 하도 기가 막혀 그 중 한 사람을 끌어안고 앉치려고 하니까 경비병이 와서 요석을 끌어 낸다. 다음으로 가서  본 곳은 그래도 상태가 낫다는 사람들이지만 눈이 없는 사람 팔 다리가 하나씩 없는 사람,  

너무도 참혹한 그 모습에 눈을 돌리던 요석은 어디선가  귀에 익은 아리랑 노래를 듣는다.

이국 땅 이 비참하고 처절한 곳에서 아리랑이라니, 요석은 놀라 소리나는 곳 따라 눈을 돌린다.

두 눈은 장님이고 한 팔, 한 다리가 떨어져 나간 백두난발의 할머니, 그는 목소리만은 낭낭하게 아리랑 노래를 부르고 있다. 요석은 다가가

“ 할머니 한국에서 오셨어요 ?” 하고 묻는다

“ 아니요, 난 조선에서 왔어요.”

“  일제 때 왜놈들 수탈에 못 견뎌 간도로 피난 와 살다가 내 나이 열 네 살에 문둥병에 걸려 이 곳으로 왔다오 그게 사십 년이나 됐어요 ”

할머니의 기억과 말소리는 외모와 달리 정확하고 똑똑하다.

부모님은 어디 계시냐고 물었더니 갑자기 그 할머니 어린애가 되어

“ 우리 엄마, 우리 엄마 ! 엄마 찾아 줘요 “ 하고 울부짖는다. 엄마를 부르는 그 목소리는 그녀가 열 네 살 때 내던 아이의 목소리로 바뀌어  얼마나 애처럽고 구슬픈지 요석은 위로할 말이 없어서 다만 그 할머니의 손가락  잘라진 손을 잡는다.  그런데 갑자기 요석의 손등이 불에 데인듯 뜨겁다. 그 할머니 눈에서 떨어진 눈물이 , 사람의 눈물이 이렇게도 뜨거울 수 있다니. 요석도 그만 눈물이 흘러 그 할머니를 감싸고 함께 울고 말았다. 엉엉울던 할머니가 갑짜기 묻는다.

“선생님은 뭐 하시는 분이요 ?”

“ 아, 나는 예수 말씀 전하는 사람입니다”

“ 예수가 뭡니까? “

“ 예수님은 우리가 병 들지 않고 죽지 않게 하시는 분입니다.” 할머니는 가만히 있더니

“ 선생님 나같은 병신도 그런 분 알 수 있을까요 ?”

“ 아 물론이지요 “

“ 어떻게요 ?”

여기는 교회도 없고 인도할 만한 교역자도 없다. 어디로 가야 한단 말인가.

“ 할머니, 마음 속으로 하고 싶은 말 다 하세요, 그리고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 하시면 하나님께서 들으시고 대답하십니다. "

그리고 거기서 돌아나오려는데

“ 선생님 또 오시지요 ? “ 하고 묻는다.

사실 요석은 이 곳의 너무도 더럽고 비참한  모습에 다시 오고 싶은 마음이 싹 가셔 버렸다.그러나

“ 예 언제 기회가 되면 또 오겠습니다 “ 하고 문을 나섰다.




요석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괴상한 스님 친구가 있다. 요석이 영호 교회에 처음 부임하여 옹색하게 살고 있을 때, 느닷없이 찾아와 인사를하며 친구 삼기를 청한 사람이다.

체구가 장대하고 눈이 퉁방울처럼 툭 불거져 디룩디룩하는 양이 절간에서 조용히 수행하는 스님이 아니라 유리걸식하며 시비나 붙는  왈짜패 같은 인상이다. 요석이 방문 밖 인기척에 문을 여니  다짜고짜 떡하니 들어 와 좁은 방이 그득하도록 가부좌를 틀고 앉는다. 그리고  도무지 갈 생각은 안 하고 횡성수설 도에 대한 이야기만 한다.

‘ 이 양반이 나를 개종시키려 온 것인가 ?’ 하는 의심마져 들게 혼자서 주절댄다.

“ 색, 색계라는 말이요, 색즉시공이란 말도 있지 않소 ?  그 세상이 참으로 깊고 오묘하더란 말이요. 허 허 “ 하며 그는 요석을 흘긋 바라 본다.

요석은 이상하게 틀어지는 말길을 돌리기 위해 흐르는 물처럼 제법 가락을 넣어서  말한다.

“ < 색즉시공, 공즉시색>은 반야심경에 나오는 글귀입니다. 해석하자면 ‘ 사리자여 , 물질이 빈 것과 다르지 않고 빈것이 물질과 다르지 아니하며 물질이 곧 비었고 빈것이 곧 물질이니 감각과 생각과 행함과 의식도 모두 이와 같다 ‘ 라는 뜻이지요 “ 그는 후다닥 놀란다.

“ 당신도 불경을 배웠소 ? “

“ 신학에서는 세계의 모든 종교에 대하여 두루 알아 둡니다. 제가 불교에 관심도 있었고요 “

땡중은 아직 일어설 생각을 안 한다. 해가 비스듬히 기울어 저녁상 들어 올 때가 다 되 어서 가 주었으면 하고 생각했으나 그여이 밥상이 들어 올 때까지 버티고 있다.  밥상에는 여전히 밥 한 그릇, 김치, 나물 한 접시와  물 한 그릇이  있다.

“ 스님 소찬이지만 같이 드실까요 ? “ 인사차 묻는데 그는 얼씨구 반기며 상 앞으로 다가든다. 하는 수 없이 밥을 반으로 딱 갈라 반은 주발 뚜껑에 담아 자신 앞에 놓고   밥그릇은  그 앞으로 밀어 논다. 그는  밥상을 둘레둘레 보며 “ 어찌 남의 살 한 점도 없누 ? “ 묻는다

“ 스님이 고기도 먹습니까 ?” 요석이 묻자

“ 득도성불한 사람은 온갖 세속의 속박에서 벗어난 자유로운 존재라오 , 난 없어서 못 먹어요 으 하 하  곡주도 있다면 두주불사하지요.”

그러나 그는 떠나기 전 정색하고 옷깃을 바로 잡은 후 , 요석에게 큰 절을 한다.

“ 소승의 이름은 겸허라 하오. 오늘의 허풍과 치졸함을 용서하소서. 앞으로 형님으로 모시며 자주 찾아 뵙겠습니다 “ 두 손 합장하고 다시 한 번 머리를 숙인다.

과연 그 후로 가끔 찾아와 격의없는 대화로 둘은 스스럼이 없다.

언젠가 그는 말했다.

“내가 소싯적  인도와 티벳에 갔었소. 내깐에 여래불님께 더 가까이 가서 그 가르침을 배우고자 소망했지요 , 그 때 난 한 현자를 티벳에서 만났어요.  이름이 릅상람파라 하오. “

요석이 중국으로 떠난다고 하니 그는 릅살람파의 주소와 서찰을 하나 써 주며 꼭  찾아 가  자기 안부도 전해 달라고 했다.



중국 나환자 집단 거주지를 찾아 보기는 했지만  너무 비참하고 열악한 환경에 크게 실망하여 되돌아 나온 요석은 마침 겸허스님이 일러 준 티벳 고승 릅상 람파를 생각하고 그를   찾기로 했다.

중국 서북 쪽 티벳 자치 지구로 들어서니 푸른 초원이 펼쳐지고 양이나 라마 떼가 구름처럼 널 려 있다. 그러나 차츰 붉은 황토흙과 바위들이  많이 드러나는 산악지대로 들어선다. 1960 년 대 쯤의 낡은 버스는 허름한 주민들을 빽빽이 태우고 좁다란 산길을 익숙하게 달린다.

요석이 쥐고 있는 주소는 별로 효과가 없다. 스님의 이름 릅상람파라는 스님을 찾으니 수월하게 길이 열린다. 깍아지른 절벽에 까치집 같이 붙어있는 고찰, 그러나 막상 들어가 보니 이천 년 세월의 유래가 과장이 아닌듯 건물이 깊고도 융숭하다. 절벽을 의지해 지은 기다란 건물에는 화랑을 통한 수많은 방과 넓은 강론방. 거기에는 어린 학승들이 주홍색 가사를 걸치고 열심히 불경을 외우거나 베끼고 있다.

요석은 겸허스님의  서찰을 상좌에게 보내 한 번 만나 뵙기를 청했다. 이틀 지난 다음에야 주지 스님 릅살 람파의 부름이 있었다.  릅상람파도 조그마한 간소한 방에 거처하고 있다. 몸도 가냘퍼 어린 소년만 하고 감은듯 뜬 눈은 흰 눈섭 밑에 매섭게 빛을 발한다. 우선 둘은 아무 수인사도 없이 서로 마주 바라보고만 있다. 한 시간 쯤 지나자 비로소 릅상람파 주지스님이 입을 연다.

“ 당신의 영과 나의 영은 다른데 왜 이 먼 곳 까지아무 대화가 없엇  나를 찾아 왔소 ?” 요석은 서슴치 않고 대답한다.

“ 예 저도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마는 당신의 영과 나의 영이 무엇이  옳은  영인지  알고 싶어 찾아 왔습니다.”

“ 아, 그러오 ? “ 잠시 지난 뒤 주지 스님이 말한다. “ 그렇다면 며칠 후 다시 만납시다 “

열흘 쯤 후 그는 다시 요석을 불렀다. 그는 뭔가 혼자 주문을 외우며 요석에게는 아무 말이 없다. 그렇게 몇 시간이 흘러 갔다. 거의 다섯 시간 쯤 흐른 후 주지 스님은 종이와 붓 먹물이 담긴 벼루를 앞에 내 주며 둘이 함께 나눈 얘기를 써 보라 한다. 대화 없던 다섯 시간의 대화 내용이라 ?요석은 갸웃 생각하다 한 글자를 써서 그에게 주었다. 그 종이를 물끄럼히 보던 릅살람파 주지 스님은

“ 당신 얘기가 듣고 싶소  얘기하시요 “ 한다.

요석은 준비해 간 성경을 꺼내어 창세기 부터 하나님의 역사를 얘기한다. 당대 최고의 고승 앞에서 성경을 설파하다니, 놀랄만한 상황에서도 요석은 무슨 뱃짱인지 조금도 망설임이나 당황함 없이 차분하다. 한참 얘기를 하던 중 , 릅상람파 스님이 손을 들어 요석의 말을 막는다.

“ 그 성경을 좀 보여 줄 수 없는가 ?”

요석은 성경을 그에게 맡기고 주지스님의 방을 물러 나온다.  그리고 다시 부름이 있기를 기다린다.그러나 릅상람파는 두문불출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요석이 묶고 있는 객사에 한 청년이 있었다. 그는 스므 살 남짓 , 체격이 건장하고 얼굴도 수려하다. 그러나 정신이 온전하지 않은지 늘 옷을 벗고 장발 머리를 풀어헤친 채, 경내를 휘돌아 다닌다. 사람들을 보면 욕을 하고 흙이나 오물을 던지며 사납게 구는 바람에 모든 이들이 이를 피한다. 하루는 요석이 절 뒷 편 언덕길을 산책하고 있는데 그 청년이 뒤에서 슬금슬금 따라 온다. 역시나 벌거벗은 몸에 신도 신지 않은 맨발로.

“ 여보게 청년 , 자네 나와 함께 걷고 싶다면 가서 옷을 입고 신발을 신고 나를 따르게 “

과연 다음 날 그 청년은 옷을 단정히 입고 신도 신고 요석을 따르는게 아닌가 ? 그 뿐 아니라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나 나와 보니 방 문 앞에 세수물을  떠다 놓고 요석의 흙 묻은 신도 깨끗이 닦아 마루 아래 두었다. 절 안 모든 스님들이 놀라며 요석에게 말한다.

“ 선생님의 영이 저 젊은이의 영을 바로 살린 모양입니다. 함께 기거하신다면 더 효과가 있지 않을까요 ? “ 요석은 그들의 부탁대로 그 청년을 자기 방에 함께 지내게 했다.  

한 삼주 지나니 청년은 아주 멀쩡하게 제 정신이 돌아와 제법 책을 들고 글을 읽는다. 요석은 그에게 저녁마다 성경을 가르쳤다.

“ 자네는 지혜롭고 마음도 선하구먼. 이제 집으로 돌아가 자네의 길을 찾아 가게" 요석은 그에게 부드럽게 권한다.

“ 선생님, 지금 떠나기는 서운합니다. 열흘만 더 있게 해 주십시요 “

열흘 후 절을 떠나며 청년은 간곡하게 말한다.

“ 선생님 돌아가시는 길에 우리 집에 꼭  들러 주십시요, 선생님의 은혜를 갚고 싶습니다 “

“ 은혜랄 것 까지야, 허나 지나는 길이 있으면 들러 보겠네 “


두 달이 지난 후 릅상람파 주지스님이 요석을 찾는다. 요석을 보자스님은

“ 이렇게 바른 진리를 왜 이제야 가져왔소 ? 이천 년 넘은 진리를 이제야 알게 되었구려  “ 하며 길게 탄식한다. 요석은 그의 놀라운 말을 들으며 어떤 지혜로운 말로 대답을 해야 하나 생각하다가,

“ 하루가 천 년이요, 천 년이 하루로다 “ 하고 댓구로 화답한다.

스님은 무릎을 탁 치곤  주름진 얼굴에 눈이 푹 파묻치도록 웃으며

“ 바로 그거요 ,” 하며 새삼 두 손을 합장하고  고개를 숙인다.

“ 내 너무 기뻐 당신에게 선물을 하나 하리다 “ 하고 오래 된 상자를 내 놓는다. 뚜껑을 여니 새까맣게 때에 절은 뼈피리가 나온다.

“ 이건 내 스승의 다리뼈로 만든 귀한 피리요, 내가 열 살 때 출가하여 스승님이 입적하실 때까지 모셨어요. 돌아가시며 이 귀한 것을 내게 주셨다오 “

티벳은 그 때에도  전통 장례의식으로 조장을 했다. 사람이 죽으면 높은 산 위로 시체를 모셔가서 옷을 다 벗기고 뼈에서 살을 알뜰하게 발라내  공처럼 뭉쳐서 이 뼈피리를 불며 하늘로 던진다. 피리 소리에   근처에 독수리들이 몰려와   사람의 살을 먹는다. 사람 육신 중 가장 튼실한 다리뼈만 남긴 채 모든걸 잘게 쪼아 독수리에게 먹이로 던진다. 무에서 온 인생 남겨지는  육신마져 자비로운 보시하여 철저한 무로 돌아간다,  다만 남겨둔 다리뼈는 가까운 제자나 친인척에게 선물로 전한다는  것이다.거기에 구멍을 뚫고 피리를 만들어 간직하는 것이 이들에게는 가장 자랑스럽고 소중한 보물이라는 것이다.



요석은 자신의 전도에 너무 감사하고 흡족한 마음으로 산을 내려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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엎드린 산  5  <  친구 클라우드 >



K 목사님에게서 연락이 왔다. 한 번 만나자는 것이다. 그도 물론 세미나에 참석하여 그 소란을 지켜보았고 또 앞장서서 장내를 진정시킨 경륜이 깊은 원로목사님이었다.

“ 교수님은 하나님을 만나셨습니까? “

K 목사는 요석에게 다짜고짜 물었다.  

요석은 대답할 말이 없었다. 그 분은 다시 말했다.

“ 당신은 이론적이나 학문적으로는 훌륭한데 하나님에 대한 체험이 없습니다. 이론하고 체험은 다르니까 교수직에 머물러만 있지말고  한 번 체험을 해 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

“뭐  어떻게 체험을 해야 하나요 ?”  요석이 곤혹스럽게 더듬대며 묻자 그는 미리 준비하고 있었던 듯 .

“ 남부지방에 제가 아는 작은 교회가 하나  있는데  지금 그 교회에 목사님이 안 계십니다 “

하며 그 교회의 주소를 건네 주었다.

사실 요석이 오랜 세월 연구하고 공부해서 얻은 안정된 교수직을 내놓는다는 건 현실적으로 매우 어려운 결단이다. 그러나 요석 자신도 오랜 동안 맘 속에 갈증으로 남아 있는 하나님과의 < 만남의 확신 >,  마치 사람을 직접 만나 악수하듯이 그렇게 만나고 싶었다.


어느 토요일 요석은 호남 방면으로 가는 직행버스를 탔다. 도로사정이 안 좋아 장시간 털털거리며 전라도 영암군에 도착한 것은 저녁 늦은 시간.

다시 시외버스를 타고 영호마을에 도착한 건 이미 밤 늦은 시간이었고 몇 명 마중나온 신자들의 얼굴은 희미한 불빛으로 자세히 볼 수도 없어  수인사만  하고  숙소에 들었다.

그런데 방 안을 둘러보던 요석은 질색하지 않을 수 없다. 바람이 술술 드나들 것 같은 흙벽에 묵은 도배지는 얼룩과  습기로 젖어있고  심지어는 조그만 벌레들이 기어다니기도 한다. 가구는 커녕 당장 덮고 잘 이부자리도 없는 썰렁하기 이를데 없는 이런 곳에서 살라고 ?

그러나 요석은 하루종일 길 위에서 시달린 몸이 고단한지라  착잡한 마음을 품은 채 입은 옷 그대로 누워 잠 들어 버린다.


다음 날 첫 주일예배 시간이다. 주로 나이 많은  어르신들이 앞으로 부터 대부분이고 뒤 끝 쪽으로 중장년층 몇 명, 모두 한 오십여 명 모였다.

요석은 설교단에 올라 막 입을 떼려는 순간 놀라움으로 숨을 들여 마시곤 목소리가 안 나온다.

강댓상 비로 아래에 나이를 가늠키 어려운 한 사람이 얼굴을 번쩍 쳐들고 그를 보는데 그 얼굴이 그냥 구멍 다섯 개 뿐이다.  자세히 보니 다른 이들도 얼굴이 씰그러지고 뭔가가 많이 부족하고 흉한 모습.

요석은 가까스로 당황한 마음을 추스리 며 대충 대충 설교를 마쳤다. 설교를 하면서도 계속 머리 속에서 떠나지 않는 생각은 빨리  이 곳을 벗어나 서울로  돌아가겠다는  조급함 뿐이다. 예배를 끝내고 어서 신도들이 돌아가기를 바라며 일부러 느릿느릿 꿈지럭대다 교회 문을 나서려니, 아앗 ! 신도들이 문 밖에 줄을 서서 목사님이 빨리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는게 아닌가 ? 아아, 정말 이들과 악수를 해야 하나 ?  맨 앞에 서 계시던 할머니가 손을 내민다. 세 손가락이 떨어져 나가고 그 자리에는 노랗게 화농된 물큰하게 느러진 살갗, 아, 정말 이 손을 잡아야 하나 ? 둘 만 남은 손가락을 잡나, 아니면 손 등에 내 손을 얹어야 하나, 정말 당황하지 않을 수 없다. 과연 그들의 손을 꽉 잡았나 ? 아님 살짜기 얹었던가 , 눈을 꼭 감고 얼른얼른 지나가서 기억도 없다. 근데 아니, 이 할머니는  아까 앞에서 악수했던  분 아닌가 ? 근데 이 할머니 다시 뒤 쪽 줄에서 차례를 기다려  내 손을 꼭 잡자  놓지를 않는다. 아예 요석의 손등을 두 손으로 찬찬히 쓰다듬고 있다.

“ 할머님, 어디가 불편하세요 ?” 요석은 난처하고 곤란해서  묻는다

“ 아니, 아니, 호호호  “ 할머니, 너무 밝고 천진하게 웃는다.어린 소녀의 해맑은 웃음처럼.



“ 내가 열여덟 살 때, 집 떠난 후로 성한 사람 손을 한 번도 잡아보지 못해서   젊은 목사님 손은 어떤가  만져 보는거요 “

눈거플도 얼마 안 남아 튀어나온 눈알, 뭉그러져 코구멍이 드러난 코, 입술도 일부분 문드러져 흉한 얼굴, 그러나  이 할머니는 다만 장난스럽고 행복하게 웃는다.

“ 할머니 , 할머니는 인생이 고통스럽고 힘들지 않으세요 ?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으세요 ?”

“ 아이구 목사님, 하나님이 원망스럽기는 , 절대 아니우. 오히려 감사하고 있다우. “ 하며 그 할머니는 아직 귀가하지 않고 주위를 빙 둘러싸고 있는 다른 노인들을 둘러 본다.

“ 그럼요, 그렇구 말구, “ 모두들 끄덕 끄덕하는 동감의 목소리들.

“ 우리가 이 병 들어 여기 안 왔으면 생전 하나님 만나지 못하고 세상 죄만 잔뜩 짊어졌을텐데 이 병 덕분에 하나님을  만나게 되어  죽어서도 영생 축복 받으니 얼마나 감사한 일이우 ?

“ 맞아요, 맞아요. 우린 늘 감사하며 산다우  “

“ 저이는 멀쩡한 형제들도 여럿인데  자기 아버지도 모셔와서  함께 산다우, “ 한 할머니가 아까 보고 충격 받았던 다섯 구멍 얼굴을 보며 말한다.그러자 풍채좋은 한 노인이 썩 나서며

“ 저 아이는 그 잘 생긴 인물이  몹쓸 병에 걸려  저 지경이 됐지만 마음만은 제일 착하고 똑똑했다오 문둥병이라고 집에서 쫒아냈었는데 내가 늙고 외돌토리가 되니  나를 찾아 같이 살자 하고  하나님 잘 믿어 이 어리석은 애비까정도 교회로 인도해 주었다오 “

요석은 신도들의 구구절절한  이야기를 들으며 차츰 자신의 경박하고 조급스런  생각이 심히 부끄러웠다. 그들의  병으로 인해 일그러지고 노동으로 햇빛에  까맣게 그을러 쭈그러진  용모가 예수님이 가까이 사랑했던 그의 백성들이 아닐까. ‘ 병들고 가난한 사람을 구제하라, 그들에게 하는 선행이 곧 내를 대접하는 것이라. 고로  천국에서 큰 상이 있을것이다.’

요석은 비로소 자신이 신과 만나 손을 잡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큰 깨달음을 받은 날 밤 , 요석은 튀빙겐 대학  은사이던 위르겐 볼트만 교수에게 기나긴 편지를 썼다.

< 저는 비로소 신을 만났습니다. 신을 만나 두 손을 잡았습니다.

이제 제가 있을 자리와 할 일을 확실히 알았습니다.

저는 지금 신께  감사하고 신 안에 있어 행복합니다. >


그러나 요석이 머문  나환자 정착촌 영호교회에서의 생활은 지극히 가난하고 궁색했다. 교인들이 모아주는 성미쌀로 가능한  만큼  하루 두 끼, 김치나 나물 등으로  빈약한 식사를 하니, 몸은 날로 여위어 간다. 그러나  여위어 가는 만큼 내적으로는 충만한 주님의 은총을 느낀다. 결코 실망하지 않고 계속 기도로 신과 교류하는  내면은 더욱 풍요롭고 강인함으로 채워진다.


그런 중 갑자기 위르겐 교수가 요석을 찾아 왔다. 일본에 학술회의 차 방문하고 돌아가는  길에 잠간 들른 거라 했다. ‘ 과연 하나님과 손 잡고 산다는 요석의 생활이 궁금하던 까닭이다. 위르만 교수는 요석의 상상 이상으로 가난하고 궁색한 생활에 놀란다.

다음 날 새벽, 이왕 오신 길에 새벽 예배 설교 좀 해 주십사는 부탁에 그는 새벽 예배 강단에 섰다. 그도  역시 요석의 첫날처럼 강한 충격을 받는다. 그러나 한 군데도 성한 곳이 없는 나환자들의  신앙과 열정,  놀랍도록  뜨거운 예배 분위기,  행복한 모습,  위르겐 교수는 바쁜 일정으로 당일  ,  떠나며 문득  요석의 등 뒤에서 허리를 잡고 힘차게 안는다.

“ 당신은  내 제자이지만 나는  당신을  존경합니다  “

은사의 감동에 찬 이 말에 요석은 세상 어느 칭찬  보다도 더욱 뿌듯한 보람을 느끼며 감사한다.


얼마 후 독일 유학 초 때에  한 방 룸메이트였던 클라우드의 편지를 받는다. 그는 동기 중에서도 학업 성적도 좋고   언변 , 사회적 인간 관계, 어느 하나 빠지지 않던 뛰어난 인재였다.

‘ 난 졸업 후 가장 크고 잘 나간다는  유명한  교회에 목사로 있었네. 신도 수가 무려 5천 명 정도였지. 그러나 내가 부임한 지 삼 년 째,  날로 신도 수가 줄어져 이젠 겨우 3백 명 정도로 줄어 버렸네. 난 내 자신에 대한 실망과  회의에 빠져, 뭔가 바꿔야겠다고 생각했네. 그래서  교수 자리는 어떨가 하고 모교를 찾았지. 거기서 전설처럼 떠도는 자네에 대한 얘기를 들었네. 자네는 하나님의 손을 잡고 목회를 이끈다는 교수님 말씀을 듣고 난 놀라고 믿을 수가 없었네. 그래서 부탁인데  나를 자네 교회에 부목사로 초청해 주지 않겠나 ? 자네 곁에서 함께 살며 배우고 싶네. 허락해 주게. ‘


요석은 그에 대한 답장을 썼다.

“ 여기는 매우 가난하고 외진 곳이라네. 그러나 하나님의 은총은 언제나 가득하여 부족함이 없지. 대우로는 수입을 나와 똑같이 나누도록  하지.  거처할 집이나 먹거리도 매우 소박하고 단촐하다네. 그래도 좋다면 와서 함께 지내 보세.”

그는 자신의 몸무게가 150 KG이나 되니  다이어트를 위해서라도 꼭 와야겠다고 했다.




얼마 후 과연 그는 이 외지고 궁벽한 영호마을을 찾아 왔다. 파란 눈과 바랜 밀짚 같은 노란 고수머리, 자주색 쓰리피스 수트로 멋을 낸 거구의 외국인이 이 마을에 나타나니 온 마을 사람들이 잔뜩 호기심과 신기함으로   모여든다. 아이들은 노골적으로 가까이 다가가 양복을 슬쩍 만져 보기도 하고 얼굴을 빤히 올려다 본다.

“ 어서 오게 친구, “ 요석은 반가이 마주 얼싸안고 그의 트렁크를 들어 준다

“ 아니, 웬 짐이 이렇게 많은거야 ?” 대절택시에서 내린 트렁크가 대여섯 개는 된다.

“ 나는 넥타이를 매면 그에 맞추어 양복과 구두 까지도 매치시켜야 하거든 “ 그는 유쾌하게 웃으며 짐을 들고 목사관으로 들어선다.

“ 오 마이, 요렇게 좁은 방에서 어떻게 살지 ? 침대도 없고, 옷장도 없고, 오 지저스, 화장실, 목욕탕은 어디야 ?”

“ 그러니까 여긴 많은 짐이 필요없어. 구두 한 켤레와 양복 한 벌이면 그걸로 족해, 베스룸과 화장실은 바깥에 별도로 있지. “ 요석은 낙천적으로 웃으며 우물과, 별채로 떨어진 허름한 변소를 가리킨다. 클라우드는 쩝! 하고 난처한 듯 눈섭을 꿈틀대다 요석에게 다가와 작은 소리로 묻는다.

“ 근데 이 마을 사람들 왜 모두 음 -- 말하자면 왜 --- 병신들이지 ?” 하고 묻는다.

“ 이 사람아, 독일 속담에 ‘ 병신 눈엔 병신만 보이고 천사 눈엔 천사만 보인다’ 는 말 못 들어 봤어 하 하 “ 클라우드는 자기가 천사가 되기로 맘을 먹은 양 더 이상 묻지 않는다.


저녁상은 여느 때와 같이 밥 한 그릇과 김치, 그리고 물 한사발이다. 클라우드는 김치는 못 먹겠다고 사양하고 밥만 먹는다.

“ 그럼 왔으니 다음 주일엔 부목사인 자네가 설교를 해 보게.” 그러나 크라우드는

“ 우선 자네 설교부터 들으며 적응하겠네 “ 하며 사양한다.

“ 좋아, 그럼 우리 성경공부를 하세  “

클라우드가 가져온 성경은 히브리, 헬라 , 라틴어로 된 세 가지 성경이었다. 그리고 라틴성경을 펼치며 비판부터 한다.

“ 이보게 이건 번역이 잘 못된거 아닌가 ? 헬라어로는 이거 문법이 말이 안 되잖아 ? “

하며 온통 성경 글귀의 타박만 한다. 참다 못해 요석이 묻는다.

“ 여보게 , 그럼 자네는 교회에서 신자들에게 무엇을 설교했나 ? “ 그는 싱긋 웃으며

“ 나는 성경 그대로만 말하니까 믿고 안 믿고는 당신들이 알아서 하시요 , 했다네.”

며칠이 지나자 클라우드는 이 소박하다 못해 너무 열악한 식사에 심각한 허기를 느낀다.

“ 여보게 김목사, 배고파 죽겠어 뭐 좀 먹을 거 없나 ?”

“ 그래 ? 새벽 두 시에 일어나 함께 기도해 보세 , 아마 큰 은혜의 빵이 있을게야. “

클라우드는 좋아라 하고 과연 새벽 두 시도 되기 전  일어나 기다리고 있다. 요석과 그는 함께 기도하고 밖으로 나온다. 하늘에는 여느 때 보다 더욱 별들이 총총하고 대기는 서늘하고 달콤하다.

“ 어디에  빵이 있는가 친구 “  클라우드는 재촉한다.

“ 이 세상이 전부 축복받은 빵이라네. 자네도 입을 크게 벌려 이 빵을 마음껒 먹게”

둘이는 입을 크게 벌리고 숨을 깊게 들여 마신다. 그러나 역시 허기진 클라우드,

“ 자넨 이 공기만 마시고 정말 배가 부른건가 ?” 묻는다.

몇 달 후 어느날 , 주님의 축복인지 넉넉한 성미가 들어왔다. 클라우드가 더욱 기뻐한다.

“ 우리 오랜만에 이 쌀로 밥을 많이 해서 싫컷 먹어 보세. “ 요석은 망서린다. 갑자기 과식하면 좋지 않은데 , 하며 경계하였으나 클라우드는 일단 그 쌀로 몽땅 밥을 한다.

갓 지은 말랑말랑한 밥에 김치를 잔뜩 넣고 - 이 때는 이미 클라우드도 김치니 뭐니 가리지 않게 되었다. - 썩썩 비벼 양껒 먹는다.

그 동안 절식으로 쪼그라든 위장이 갑자기 소나기 밥으로 그득 차 버리니 탈이 날 밖에. 클라우드는 밤새 화장실을 들락이며 고생한다.

새벽 예배를 보려고 요석이 문 밖을 나서는데 클라우드의 울부짖는 소리가 들린다. 요석은  잘 못 들은게 아닐까 하며 다시금 귀를 기울이는데 변소에서 들리는 클라우드의 비명,

급히 변소로 달려가 보니 ‘ 아, 가엾은 클라우드, 그가 재래식 변소 발디딤으로 가로지른 널판지에 겨우 팔을 걸치고 아래는 목까지 온통 똥통에 빠져 옴쪽달쏙 못 하고 있는게 아닌가. 그 육중한 몸무게에 견디지 못한 널판지가 부러져 그는 아래 통 속으로 빠져버린 것이다. 요석은 예배에 나가는 길이므로 그를 몸소 건질 수는 없고 우선 긴 장대를 그에게 주며 짚고 올라오라고 했다. 그는 꽁꽁 힘을 쓰며 겨우 올라왔지만 몸은 온통 똥물로 젖어있고 그 안에 있던 구더기들 까지도 ‘ 삼촌 ‘ 하듯이 스멀스멀 그에게 달라 붙었다. 그를 우물가로 데려가 물로 털어내고 닦아냈지만 워낙 털이 많은 그의 몸에 묻은 똥찌꺼기는 쉬이 떨어지지 않는다.

요석은 먼저 예배당으로 가서 새벽 예배를 인도하고 있던  중 그가  옷을 갈아 입고 천연덕스럽게  안으로 들어선다. 그러나 그와 함께 몰고 온 고약한 냄새, 비록 팔 다리, 얼굴 등이  신통치 않은 나환자들 까지 얼굴을 찌프리고 고개를 흔든다. 예배 후 요석이 물었다.

“ 클라우드 자네 냄새가 어찌 이리 고약한가 ? “

“ 그렇게 지독했나 ? 향수를 좀 뿌렸는데 “

똥 냄새와 향수, 두 조합은  너무 상극으로 더욱 고약하게 상충한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 이 봐, 이 교회 안에서 너 보다 더 고약한 냄새를 피우는 사람이 어디 있나 ? 바로 자네가 제일 더러운 냄새를 피우는  병신이 아닌가 ? “ 요석은 웃으며 말한다.그는 다만 심각하게 고개를 끄덕인다.

그런데 다음 날  한 밤중에 이 친구가 진지하게  요석에게 말한다.

“ 내게 성령의 불이 임하시나 보네. 내 몸이 뜨거워지고 있어  “  요석이 그의 이마를 짚어보니 과연 온 몸이 뜨거운 열기로 예사롭지 않고 옷을 벗겨 맨 몸을 보니 살갗에 뻘긋뻘긋 열꽃이 솟아  있다.. 요석이 알기로는 온 몸이 똥물에 잠겨있는 동안 똥독이 올라 병을 앓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 친구는 요석에게 이마를 짚고 안수 기도를 해 달라고 한다.

평소 교회에서 아이들이 아프다면 알사탕을 하나 입에 물리고 이마를 짚어 기도해 주는 요석의 모습을 보았던 거다. 그럴 때면  이 친구는 병이 들었으면 약을 먹거나 병원에 가야지 무슨 미신적인 태도냐 하며 비방하던 친구였다.

“ 이 사람아, 자네의 병은 자네 스스로의 믿음으로 고치는 것일세, 예수님께서도 ‘ 네 믿음이 너를 구했으니,’하지 않는가 ? “ 클라우드는 또 다시 심각하게 고개를 끄덕인다.

그렇게 고생하는 중에 병은 나앗고 이 친구의 태도도 많이 바뀌고 있었다.”  아, 나도 어느 정도 성경 말씀에 믿음이 가네. 하나님도 계시고  예수님도  됐고, -----  

그런데  성령님은 ?  성령의 불꽃이라니 이해가 안 되네 “  하며 썩 납득이 안 되는듯 고개를 가로 흔든다.


어느 날 둘이는 산책을 나간다. 옆으로 맑은 계곡물이 흐르고 올라갈수록 나무가 울창한 아름다운 숲이다. 제법 명소로 알려져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곳, 요석과 클라우드는 운동삼아 산 위 정상까지 오른다. 요석은 비쩍 마른 몸에 강단이 있어 날렵하게 걷지만 클라우드는 중턱부터 헉헉대며 걸음이 느려진다. 걷기가 힘들고 지루하던 참에 갓길에 세워진 오토바이가 눈에 띈다. 일제 야마하 신형으로 산길도 달릴 수 있도록 제작된 육중하고 터프한, 유선형 몸체가 번쩍인다. 스피드광 클라우드가 무심코  지나칠 수 없다. 오트바이 주인을 찾아 언제, 어디서 , 가격은 얼마나 , 성능은 만족한가 하며 꼼꼼이 묻는다. 그리고 침을 꿀꺽 삼키며

“ 한 번 태워 줄  수 없겠나 ?” 하고 묻는다. 젊잖고 기품있어 보이는 이국의 신사에게 오트바이 주인은 쾌히 승낙한다.


‘ 친구, 난 모터사이클 타고  먼저 갈테니 천천히 오게나 “ 클라우드는 신이 나서 목소리가 한 톤 높아지고 눈은 활기로 반짝인다.

“ 이보게, ‘ 정든 님  버리고 가시는 님은 십리도 못 가서 발병이 난다 ‘는 우리나라 민요가 있네

나와 같이 천천히 걸어 가세나 “

한 시간 쯤 후 , 산 밑 평지로 내려오니 벌써 와 있어야 할 클라우드가 보이지 않는다. 두리번거리며 찾고 있는데 교회에서 낯익은  한 아이가 달려와선

“ 목사님 큰 일 났어요. 코쟁이 목사님이 개울에 빠졌어요 “

아이를 따라 계곡의 다리께로 가 보니 오트바이는 다리 난간에 기대어 있고 오트바이 주인은 이마에 약간 상처가 나서 피가 나 있다. 그런데 클라우드는 안 보인다. 어디에 있지? 그는 오트바이가 살짝 커브를 도는바람에  잘 잡지 않은 몸이  균형을 잃고  날라가 개울물에 빠진 것이다.   요석은 사람들과 함께 힘을 합쳐 물에서 그를 끌어냈다.   다행히  계곡물 있는  곳으로 떨어져 다친 곳은 없으나 흠씬 젖은 몸둥이를  제대로 가누지 못할 정도로  충격이 크다. 요석은 파랗게 질리고 부들부들 떠는 그를 부축하여 숙소로 돌아왔다.

그 날 밤 또다시 클라우드는 열이 펄펄 끓으며 땀을 흘리고 온 몸이 불덩이가 되어 앓고 있다.

육중한 몸이 사오미터를 날라 물 위로 곤두박질을 쳤으니 온 몸이  타박상을 입어  결리고 쑤시고 져려서 견딜 수가 없는 것이 다.

“ 여보게, 김목사 나를 위해 기도해 주게. “ 클라우드는 애처럽게 부탁한다.

요석은 그를 걱정하며 궁리하다 좋은 생각이 났다. 마을 어른을 찾아가 비장된 귀한 약을 좀 주십사고 부탁한다.

그 약이란  베보자기 씌운 항아리를 똥통에 깊이 가라앉치고 몇 년 동안 묵힌 다음,항아리에 걸러지고 숙성한  진국 똥물을 깨끗한  됫병에 담아두고 응급시에 사용하는 민간요법이었다. 이것은 넘어져 다친데, 또는 매 맞아 멍들고 골절되거나 내장이 다쳤을 때도 특효약이라고 전해져 웬만한 집에선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는 것이다.

“ 친구, 이 약을 마시게. 아주 효과가 좋을거야. “ 요석은 그것을 한 사발 건넨다.

“ 이게 뭔가 ? 냄새가 고약하군, “ 클라우드는 미심적은 듯 얼굴을 찡그린다.

“ 입에 쓴 약이  몸에 좋은 거야, 어서 먹게 “ 그는 온몸의 통증이 더욱 고통스러운지 그것을 벌컥벌컥 마신다.

“ 아, 너무 이상한 맛이야. 사탕, 사탕 좀 빨리 줘 “

사탕을 입에 물고 그것이 다 녹기도 전에 클라우드는 혼곤한 잠에 빠진다. 숙성된 똥물의 독한 기운이 온 몸에 퍼지자 술에 취한 듯 통증이 잦아들고 깊은  잠에 빠져 드는  것이다.

이튿 날 아침, 클라우드는 거뜬이 일어난다.

“ 아, 상쾌하네,  어제 그 약이 효과가 그만인걸 , 그게 뭔 약인가 ? “

요석은 그의 얼굴을 피해 고개를 돌린다. 그의 입에서 나는 짙은 똥내를 견딜 수가 없어서다.


클라우드는 결국 똥물에 빠져 고생을 하고 그도 모자라  똥물까지 먹어 속을 다 비워내고 난 다음에야   현저한 변화를 보인다. 새로운 눈이 열린 듯 성경을 보고,  이런 구절이 다 있었나 ?

아, 그런 뜻이었군. 난 그걸 몰랐었어. 신기한 듯 성경을 열심히 읽는다. 생활 주변을 보면서도 아, 이런 아름다운 꽃, 새소리,  이런 곳서 사는  복 받은 사람들 ! 하며 감탄한다.

그 약이 성령의 역사,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하게 해 주신게다.


그러나 아직 그는 설교할 자신이 없다고 한다.

“ 어떻게 해야 자네처럼 파워풀한 설교를 할 수 있나 ? 자네가 설교할 땐 말 끝마다 모두들 아멘, 아멘 하는데  나는 몇 년을 설교해도신자들로 부터  ‘ 아멘 ‘ 소리를 못 들어 보았다네 “

몇 달 전 자만에 가득찬 당당한 모습은 사라지고 이제는 수줍고 소심하게 묻는다.

“친구,  설교는 입으로 하는게 아니야, 손과 발과 행동으로 전하는 것이네 “

그럼, 내가 어떻게 해야 할까 ?”

“직접  행하고 기도하고 찬양하면 성령의 충만한 역사로 신자들에게서 ‘ 아멘’이 나온다네 “



클라우드는 한 일 년간 나와 함께 지내다 고향으로 돌아갔다.

목사로서의 그의 태도가 백팔십도 달라진 건 두 말 할 필요도 없다.   따라서 그가 돌아가서 시무하는 교회는 날로 부흥되고 신자 수도 크게 두 배나 늘었다고 한다.

이제 그는 맏음과 확신에 찬 훌륭한 목사가 되어 있었다.

참으로 감사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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