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는 진리를 반박하지 못할 것이다    2014/03/01 12:38추천 3    스크랩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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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리는 진리를 반박하지 못할 것이다.
진리는 진리와 화합하고 진리에게 호의적으로 호응한다.달리 말하자면
과학을 통해 진리를 찾으려 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라.
신의 말은 모든 진리의 원천이므로 진리는 신의 말을 반박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또 달리 말하자면
과학을 감행하라.그렇다고 해서 신은 두려워할 것이 아무 것도 없기 때문이다.

이성은 신의 작품에 접근하게 해 주는 열쇠이고 .이성적 사색은 신에 대한 이해다. 그것이 실수, 남용, 신성모독을 초래할 수도 있다고 해서 금지한다면 " 물에 빠져 죽은 사람들이 있다는 구실로 목마른 사람에게 신선하고 좋은 물을 마시지 못하게 하여 그를 갈증으로 죽게 만드는 것"과 같은 것이다." 왜냐하면 물 때문에 숨이 막혀서 초래되는 죽음은 우연성의 결과인 반면 , 갈증으로 초래된 죽음은 본질적이고 필연적인 결과이기 때문이다.>

멋진 글이다. 이미 1126 년에 태어난 이븐 루슈드의 말이다. 이 말은 중세의 암담한, 절대 화합할 수 없는 신학과 과학의 경계를 허문 위대한 논설이었고 이에 따라 신학에서도 과감한 과학과 이성의 영역, 또는 아리스토텔레스의 학설에 까지  다시 각광을 받는다.

오늘 우리 국민들의 학문에의 열성과 그에 따른 학력은 세계 최고위에 이른다. 
그런데 종교에 관한 우리 신앙인들의 의식은 이러한 치열한 역사적 고찰과 철학적 과학적 고찰 없이 끓어대는
냄비적 근성임을 도처에서 본다. 우리 눈 앞에 펼쳐지는 조용기 목사의 실례를 봐서도.

" 분노하지 않는 그대 , 결국에는 짓밟히리라" 
어느 젊은 철학자의 서늘한 경고다.
우리의 나태한 삶, 언젠가  미구에 짓밟힐 것이다.


< 연신의 노래가 답보상태이므로 예전의 저의 글로 스스로 격려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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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신의 노래   5   - 급전직하 - 낭떠러지로 굴러 떨어지다 -



예나가 일곱 살이 되어 국민학교에 입학하는 날이다.

연신은 사랑스런 딸, 예나의 머리를 빗어준다. 미리 준비해 둔 분홍  드레스와 짙은 핑크 코트를 입히고

어깨에 가죽 란드셀을 메워 준다. 오른 쪽 가슴에 < 이 예나 >라는 이름표와 그 아래에 길게 느러진 하얀 손수건, 영락없는 햇병아리 학생이 된 것이다.

“ 예나야, 이제 넌 으젓한 학생이야. 선상님 말씀 잘 듣고 공부 열심히 하는 모범 학생이 되야 하는기라. “

“ 엄마, 알았다카이. 이젠 쫌 그만 하그라 “

제 언니 가영이의 되바라진 말투 따라 예나도 말투가 고약하다.

그러나 새 옷 입고 학교에 간다는 설레임으로 반짝이는 눈과 벌름대는 콧구멍은  먼 초원을 향해 달리려는  어린 준마의 그 모습이다.

“ 가스나가 나대기는 , 얌전히 좀 기다리그라, 어매 옷 갈아 입고 나올게니.”

그 때 전화 벨이 울린다. 마을 금고에서 일하는 장주사이다.

“ 사모님, 큰 일 났어예. 사장님이 쓰러지서 병원으로 실려 갔어예 “

“ 음마 , 으찌 그리 되셨습니까 ? 어느 병원 가싰어요 ? “

“ 우선 가까운 늘사랑 병원으로 가싯습니다. 한 이십 분 됐실거로. “

“ 그걸 와 이제 알려주십니꺼 ? “ 연신은 소리를 빽 지르며 대답도 들을 새 없이 전화를 끊고


“ 할무이예 , 예나를 학교에 데리꼬 가 주소. “ 일하는 할매에게 예나를 부탁한다.

그리고  남편의 형인 시아주버님 댁에 전화한다. 동서가 전화를 받는다.

“ 행님 큰 일 났어예 예나 제아범이 쓰러져 응급실에 실려 갔답니다. 늘사랑 병원이라 합디더. 지는 지금 곧 가 보꾸마요 “

연신이 병원에 도착했을 때, 만석씨는 응급수술을 하고 있었다. 서너 시간을 기다리느라 피를 말리는 긴 수술이 끝나고 수술실을 나오는 만석씨의 침상은 하얀 시트로 얼굴까지 모두 덮혀 있다.

주치의사 김형식 박사는 연신과 형님 가족 앞에 다가와 정중히 고개를 숙인다.

“ 죄송합니다. 병원에 왔을 때 이미 많은 피가 뇌 속에 차 있어 신속히 핏줄을 차단하고 고여있는 피를 뽑아내었으나 목숨을 구하지 못했습니다. “

만석씨의 사망 원인은 다량의 뇌출혈이라는 것이다.

오일장으로 치룬 만석씨의 장례기간 동안은 연신에게 시공이 아듣히 멀어져 간 무중력 우주 공간 같았다. 머릿 속은 텅 비어 아무 생각을 할 수도 없었고 모든 감각은 마비되어 느낌이 없었다. 곡기도 제대로 때우지 못하여 홀쭉하고 창백한 볼에 눈만 퀭하게 번쩍일 뿐이었다.

“ 지어매, 내 숭늉을 진하게 끓였으니 한 모금이라도 마시게 “ 할매의 권에도 진정한 의미를 모르는 듯 멍한 시선만 보이는 연신이다.

그런 연신이가 우주 속 무중력 공백 속의  현실에서는 엄청난 용틀임의 변화가 있는 줄, 어찌 알았을까.

떠들썩하고 요란한 장례 의식이 끝난 뒤, 연신의 집은 믿을 수 없도록 적막과 고요로 무겁게 가라 앉았다.개 한 마리 얼씬대지 않았고 이웃들의 발길도 뚝 끊어졌다.

연신은 기진하여 어두운 안방에 누워있고 예나마져 고양이 같이 가벼운 발자국으로 이 방 저 방을 기웃거리며 아버지의 흔적과 냄새를 찾는다. 할매도 부엌에서 달그락거리는 그릇의 소음도 조심하며 가만가만 음식을 만들고 안 먹고 남은 숫한 음식을 공연한 죄책감으로 가슴을 조이며 몰래 두엄더미에 내다 버린다.


그동안 밖에서 시아주버니는 만석씨의 마을 금고를 차지하고 금융자산을 조사하여 명의를 바꾸고 그리고 상속인의 서열을 날조하여 많은 부동산을 합법적으로 차지한다.

연신이 문득 정신을 차리고 났을 때는 집 안의 식량이나 당장의 살림비용 마저 텅 빈 상태였다.

만석씨와 함께 산 이후로는 그가 항상 빈틈없이 만사를 배려해 주었으므로 연신은 일상 필요한 살림살이 비용이나 , 더구나 그의 재산 상태에 대해선  알 필요도 없었고 아는 바도 없었다.

연신의 살아 온 생애 중 가장 안락하고 행복했던 십 년 세월 가운데는 만석씨가 있다.

만석씨는 언제나 연신을 따뜻하게 안아 주었고 완벽하게 감싸 주었다.

“ 아 ! 당신 , 나와 어린 예나를 두고 어찌 이리도 허망하게 떠나셨습니꺼 ? “

그와의 이별 앞에서 절망과 아쉬움으로 피를 토하듯 울부짖건만 아무 대답이 없다.

당장에 살 길이 막막해진 연신은 생각다 못해  큰아주버님을 찾아 간다.

“ 예나 아부지의 많은 재산은 다 우찌 된 것입니까 ? 우리는 우찌 살아야 합니꺼  “

시아주버니 대신 동서의 싸늘한 대답이 먼저 날라 온다

“ 아니, 자네는 냄편 잃은게 며칠이나 됐는데 벌써 냄편 보다 재산 부터 챙기는가 ? “

하지만 시아주버님 , 선기침을 흠흠 하며

“ 걱정 마시요, 제수씨 , 내가 이녁  살도록은 돌봐 줄꾸마 “

진정 없이 허울  뿐인  무뚝뚝한 대답이다.

시아주버니가 내어 준 몇 푼의 돈을 손에 쥐고 나오며 연신은 비로소 정신을 차린다.

연신은 서울서 사법고시 준비에 여념이 없는 동생 정연을 부른다.

“ 내 배운게 짧으니 으찌 알것나. 니가 매형의 재산일체와 그게 으찌 움직이고 있는지 알아 봐 도고. “

정연은 누이의 부탁에 두 말 없이 내려 와 남겨진 서류랑 대조하며 실물을 살핀다.

며칠 후 전연은 누이에게 말한다.

“ 누나 정말 무섭십니다. 마치 매형이 이래 될 줄 미리 알고 꾸며낸 일처름 모두 치밀하게 처리됫십니다. 다만 이 집만이 남아 있지만 이것도 언제 날라갈지 모립니다. “

“ 매형과 누나의 가짜 인감도장도 모두 완벽하더만요. “

연신은 눈 앞이 캄캄했다.

‘ 내가 뭐 으쨋다고 ‘

남편 여읜 슬픔 이전에 내 처신을 찾고 살아갈 일이 사막이다.

“ 아주바님, 이러시면 안 되지요 내 남편과 그의 딸 예나의 재산 지분을 강탈하시면 안 되지요 “

연신은 다만 직선적인 항의 외에 방법을 몰랐다.

“ 에이 , 이 보게, 나는 자네를 내 동생 만석이가 엄청 싸고 도니 으쩔 수 없었고만 자네를 우리 가족으로 인정한 일은 전혀 읎네. 자네 에미의 해괴한 소문이 내 동상을 얼매나 힘들게 했는지 아는가 ?  자네 복은 여기 까정인게 이젠 보따리 싸게. 한영이와 가영이는 우리 사돈과 잘 타협하여 갸들 사는데 지장 읎이 한 자락 떼어 줄테니 그건 걱정 말드라고. “

연신의 무지개  다리는 만석씨이고 이제 그 무지개는 스러져 갔는가 ?


동생 정연이가 하는 말이,

사귀고 있는 아가씨가 있는데 그 가족이 미국으로 이민을 간다고 한다.

정연은 남을 것인가, 아니면 그 녀를 따라 이민을 갈 것인가 망설이고 있다고 한다.

“ 누나, 여기 있어봤자 , 똥밭이다 . 누가 우리를 옳게 봐줄까 말이다. “

“ 아직 그누마들의 손길이 안 간 몇 뙈기 논 밭이 있더라, 내 단대이 넘어가지 않게 손 봐 났다.

이걸 잽싸게 팔아 거두면 우리 미국 가서 자리 잡는데 도움이 될꺼로. ‘

연신에게 남은 건 소중한 딸 예나, 할매는 워낙 이 집 안에서 오래 살아왔으니 이 집 안의 소속이고 연신이 책임 질 일 없으니 그녀의  입지는 가볍다.


연신은 한밤 중에 그 곳을 떠났다.

예나에게 두툼한 겉 옷을 입히고 큼직한 가방을 든 채 가벼운 행장으로 야밤, 사랑하던 만석씨의 집을 떠난 것이다.하도 분위기가 으스스하고 삼엄하여 슬픔에 빠질 경황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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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신의 노래  4    - 오늘 흐르는 물은 어제 물이 아니네 -


동연은 제가 원하던대로 웬만한 중농의 외동딸과 혼인하였다.

부모가 아직 정정하고 활력 있지만  도와 줄 장성한 아들이 없어 늘 허전했던 집안이었다.

거기에 용모가 반듯하고 젋은 청년, 부모가 모두 돌아가시어 데릴사위 삼아 가족으로 들이기에 부담이 없으니 됐고, 중학교만을 졸업했다는 짧은 학력이 걸렸지만

딸내미 분이도 싫지 않은 기색이어서 좀 이른듯 하지만 후다닥 혼사를 치룬 것이다.


연신은 우선 외로운 동생 동연에게 짝이 생기고 의지깐이 생겨 안심이 되고 좋았다.

그래서 결혼 예물로 너돈쭝 쌍가락지와 채단을 넉넉히 하고 사돈댁 선물에도 정성을 기울였다.

그런데 이상한 것이 동연의 혼사가 일사천리로 마무리되고 젊은 그네들이 재미나게 사는 걸 보며 연신은 기쁘고 뿌듯한 마음 이면에 쓸쓸함이 마음에 가득 찬다. 수족 하나가 잘린 듯, 잘린 수족 하나를  영영 아쉽고 그리워하며 허전하게 살 것 같은 마음.

그 예감대로 동연은 처가집에 적극적으로 몸담아 본래부터 그 집 아들이었던 것처럼 한 식구로 충실하게 살고 있다. 그 집으로 기우는 만큼, 누이에게는 덤덤하고 멀어지고, 또 연신의 자격지심인지 모르지만 손 아래 올케 분이도 형님인 자기를 별무시하는듯 뜨악한 느낌이다.

딸을 시집으로 보내는  마음이 이렇게 허전하고 서글플까,

그래서 어무이는 그렇게 정나미 뗄려고 이상하게 변하셨던가.

연신은 고개를 살래살래 흔들었다.

다만 동연이가 행복하게 살면 그 뿐이라고  스스로 위로한다.

이럴 땐 정연이라도 곁에 있어 이 허전함을 하소연이라도 하고 싶건만 정연은  지금  서울에 올라가 대학에 다니고  있다.


정연은 정상적으로 중학교와 읍내 고교를 졸업하고 서울 K 법대로 진학했다.

진짜 촌놈에다 ,  한미하고 어려운  집안에서 엄청난 발전이고 자랑스런 일이다.

정연이는 어려서 부터 인생의 쓴맛에 질려 버렸는지 악착같이 공부에 매달렸다.

이 길만이 나의 살 길이란듯 .

또한, 그 뒤에는 누나 연신의 헌신적인 뒷바라지가 있어서 가능하다는 걸 그도  잘 안다.

때문에 더욱 공부에 매진하며 일류대학에 진학하고  열심히 노력하여  하루 빨리 사법고시에 패스하겠다는 야망을 잊은 적이 없다.

연신은 때때로 서울로 올라가 객지에서 외롭게 사는 동생을 찾아 가  보고 싶다.

하지만 그 다음,

‘ 우리 삼남매 한 둥우리에서 한 솥 밥 먹고 살던 때는 지났다. 결국 제 갈 길 찾아 각기 떠나는게 인생살이 아니가, 낸 누나로서 그들이 행복하게 만족하게 사는 것만 보면 되는기라. 내 뭘 더 바라것나.’

하며 스스로를 타이르며 다독인다.


연신이 낳은 딸 예나는  이제 다섯 살이 되었다.

집안은 언제나 드나드는 손님으로 북적였고 연신은 자라나는 세 아이들의 어미로서 소임을 다 하고 한 집안의 모든 일을 총괄하고 지휘하는 일이  골몰하고  바쁘다.

연신이 처음 이 집으로 혼인해 들어 왔을 때 11 살이었던 한영이는 16 살이 되었고 가영이도 13 살 , 부쩍부쩍 장성하여 고등학생, 중학생이 되어 있다.

이들은 연신이가 지성으로  사랑과 정성을 쏟아 공을 드렸건만 연신에 대한 이들의 태도는 녹녹지 않다.

배운 것도 없는 가난한 집 딸이 돈에 팔려와 지들의 어미 노릇하는 걸 어떻게 순순히 받아들이느냐 하는 생각인지  이들의 머리가 굵어질수록 거부와 빈정거림은 더욱 거세게 드러난다.

이 곳서 멀지 않은 부산 대도시에 한영이 남매의 외가가 있다.

외조모가 건재하고 형편도 살 만하다 .  딸을 일찍  여읜 외할머니는 홀랑 남겨진 어미없는 어린 외손주 남매의 성장과 안위에 각별히 신경을 쓰며 경계하여 아이들을 자주 불러 들였다.

‘ 어린 아이들이 어찌 그리 형펜을 자세히 알고 내게 맞먹겠노, 지 외할매가 쯧쯧거리며 하던 말을 야들이 들은거지 ’

연신은 그렇게 생각지 않을 수 없는게 얘들이 외갓집만 갔다 오면 더욱 쌜쭉해지고 어깃장을 부리는 것이다.

애들 외할머니는 올 봄 부터는 아예 큰 도시 부산에 좋은 학교가 많이 몰려 있으니 아이들을 그 곳으로 전학시키라고 성화를 부린다.

만석씨는 골머리를 앓다가 가영이는 아직 어려서 중학교나 졸업하면 생각해 보겠노라 하고 우선 한영이만 부산 애들 외갓댁으로 보냈다.

한영이는 이미 중학교를 졸업하였기에  부산에 있는 제일고교로 진학시킨 것이다.

몇 달 만에 방학으로 집에 내려온 한영은 키가 크고 등판도 넓직한게 부쩍 자라 으젓하게 보인다.

만석씨도 오랜만에 보는 아들의 잘난 모습이 기꺼워서 만면에 웃음이다.

“ 한영이 많이 컷네, 길에서 보면 몰라 보겠다 아이가  ? “

어린 예나도 오빠가 반가워서  

“ 오빠야, “ 하며 종종걸음으로 뛰어 온다.

잠깐 한영은 착잡한 눈길로 예나를 바라 본다. 그리곤 도저히 내키지 않는듯 살짝 고개를 가로 흔든다. 만석씨도 어이없고 놀란듯

“ 이누마, 한 번 안아 주거라. 반갑다고 하는거를. “

연신은 천가지 만가지 생각과 감정이 한꺼번에 휘몰아치며 한영을 지그시 노려   본다.

마침 가영이가 팔랑팔랑 마당으로 들어서며

“ 오빠 왔나 ? " 반기며 죽 둘러서 있는 가족들이게 " 와 이리들 서 있십니까  ?

오빠 가방 주고 어여  들어가자 “

남매는 손을 잡고 한영의 거처로 들어 가고 마당에 고였던  긴장도 서서히 흩어진다.

만석씨의 가슴은 잠깐 구름이 스쳐갔지만 연신은 맥이 탁 빠지며 다리에 힘이 풀린다.

‘ 앙이  되겠다. 한 번 야들 데불고 얘기를 해 볼거구만 ‘

하지만 얘기를 해 볼 새도 없었다.

하루를 쉬고 난 다음 날 한영이는 학교에서 여름방학 보충수업을 해야 한다고 부산으로 되돌아 갔다.워낙 학교의 공부가 이들에게 지엄하니 천하의 만석씨도 암말 없이 아들을 부산으로 보냈다.

그런데 2학기 개학한 지 한 달 쯤 지난 10 월 어느 날 , 만석씨 사무실로 전화가 왔다.

한영이가 살인미수로 경찰서에 들어 와 조사를 받고 있다는 연락이다.

“ 보호자가 꼭 오셔야 합니다. “

한영이는 부산서도 가장 악명 높은  고교 연합 깡패 조직에 속해 있었다. 그들의 조직은 < 빡사리>라는 명칭으로 학생들 사이에선 공포의 대명사라고 한다  .

이번 사건에서 피해자는 품행이 바르고 학업 성적도 좋은 모범 학생이었다

이를 빈방에 감금시키고 몇 날 동안이나  여럿이 돌아가며 패고 담뱃불로 지지며, 심지어는 뜨거운 물을 사타구니에 부어 심한 열상을 입히고 그도 모자라 눈을 마구 찔러  거의 사경을 헤매고 있다는 것이다.

그 중에도 한영은  이들을 선동하고 몸소 행동으로 옮기고,앞장 선 아주 죄질이 나쁜 학생으로 지목된데에 만석씨는 놀라움을 넘어 거의 기절할 지경이다.

‘ 왜 네 눔이 이런 끔찍한 짓을  ‘



청을 넣어 경찰 구치실에 있는 아들 한영을 만난 만석씨는 잘 생겼지만 아직 어린 아들의 얼굴을 심난하게 바라 본다.

“ 한영아 네 엄마는 착한 여자였어. 네 꼴을 본다면 얼마나 슬프고 실망하시겠노 ? “


무심코 첫 번 째 나온 말이다.

“ 아버지, 엄마를 입에 담을 자격이나 있나요 ? “ 싸늘한 한영의 대답.

“ 그 무신 말이고 ? 네 내게 무신 유감있나 ? “

“ 아부지가 새엄마를 들이고 난 뒤 부터 난 아부지를 떠났십니더,

그래 난 이제 내 맘 내키는대로 살겠십니다. 나를 내비러 두소 “

만석씨는 어이가 없어 말이 안 나오고 억장이 무너진다.

“ 아들아 ,나는 너를 경찰에 선처해 달라고 빌 생각은 전혀 없데이 네 죄가 뭐신지 깊이 생각하고 그 죄값을 다 받고 나오그래이 "

쓴웃음을 지으며 한영을 한 번 더 바라 본 후 그 곳을 나왔다.

만석씨는 피해학생을 찾아 병원에 들르고 그 부모에게 깊이 사과했다.

그리고 어떤 일이라도 할 수 있는 만큼 성심을 다 하겠다고 약속했다.

다행히 학생은 생명에는 지장이 없지만  다만 눈을 크게 다치고 열상이 심하므로 긴 치료가 필요하다고 한다.


충격,  실망과 낙담에 힘이 빠진 만석씨는 늦은 밤 집으로 돌아왔다.

연신은 그의 양복 저고리를 받아 장에 걸며 남편의 피곤한 얼굴을 본다.

“ 한영이가 아주 빗나갔더군, 깡패 중에도 상깡패가 되었어. “ 한탄한다.

연신은 아무 대답이 없다.

“ 당신은 그걸 애당초 눈치도 채지 몬했나 ? ‘

“ 대강은 느끼고 있었십니다. 그란디 이제 겨우 부산 가서 몇 달 만인데 그런 대담한 짓을 벌리리란 걸

전인들 우찌 알았겠습니꺼 ? “

연신은 낮은 목소리로 또박또박 말한다.

만석씨는 한영의 반항적인 비수같은 눈초리가 서늘하게 다가오고  연신의 지극히 당연스럽고 합리적인 말에 불현듯 혼란스러워 진다.

‘ 나에게 죄가 많은가 '

아들의 질풍노도 같은 사춘기 변화를 접하며 만석씨는 여느 아버지 보다 더

깊은 회의에 빠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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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신의 노래 4 -  읍내 마을 괴담 -




이 여인 몇이 모여 으시시한 대화를 나눈다.

“ 원한 맺힌 귀신이라카이 “읍내에서  해괴한 소문이 떠돌고 있다.

수상한 소문은 여인들 입으로부터 시작한다.

시냇가 빨래터는 여인네들이 동네 소식을 전하며 수다떨기 더 없이 좋은 장소다.

더위가 한 풀  꺽인 어느 오후, 느즈막

“ 구신은 12 시 넘어서 다니는거 아닌가 ? “

“ 천년 묵은 여시가 둔갑을 했다하데 “ 다른 여인의 숨 죽인 말이다.

“ 에이 ! 그건 옛날 야그에 나오는 거 아이가 ? 설마 그럴라고 “ 하하 웃는 여인에게 다른 여자가 말한다.

“ 맨날 산 너머 공동묘지에서 울던 여시 다 알제 ? 그기 요샌 잠잠하구만. 그기 둔갑한거 아일까? “듣던 여인들은 싸하니 목덜미에 소름이 끼친다. 산 그림자가 제법 길게 내려 와 있다.. 여인들은  갑자기 바쁘게 서둘러 빨래를 개울물에 헹구어 다라이에 담고  어둡기 전에 집에 간다고  제각기 종종걸음으로 혜어진다.


저녁 어스름이 내리는 장터에는 인적이 끊어져 휑한 바람 뿐이다.

거기에 형광색이 돌도록  프르스름한 얼굴로  소복한 여인이 배회하고 있다.

큰 길을 한 바퀴 휘돌아 골목길을 꺽어 돌며 혹시 늦도록 전을 연 술집 앞을 기웃거리기도 하며 돌아 댕기는거다.

여인네나 아이들이 수상하게 쳐다 보면 얼른 눈을 깔고 고개를 외로 꼬며 소리없이 지나치는 걸 보면 아주 정신놓은 미친년은  아닌듯 하다.

그러나 기골이 좋아 힘께나  쓸 만한 장정을 만나면 살그머니 눈을 치떠  헤브즉이 웃는다.

정신이 올바른 사내라면 ‘ 에이 재수없는 여시 년’ 하고 침을 탁 뱉으며 처자식 기다리는 집으로 가겠지만

술이 한 두 잔 올라   마누라가 바가지를 긁거나 말거나, 쌀독에 쌀이 떨어지거나 말거나, 아새끼들이 배고파 울거나 말거나 거나하게 정신줄 헐렁한 한량들, 그리고 동가숙 서가식하는 부랑아,  또는 게으르고 마련없어 장가 못간 노총각들에게  이런 횡재가 어딜쏜가.

더구나 흥정도 않고  앙탈도 없이 사내가 손을 잡아 끌면  순순히 따라간다지 않는가.

그리고  헛간에서건, 으슥한 산비탈 흙바닥에서건, 심지어 막다른 외진 골목에서도 치마를 깔고 다리를 벌린다는 소문은 어디서 난걸까.


동네에서 홀어머니 모시고 사는 과수댁네는 여인들의 마실터다.

“아유, 망칙스러버.  사내에 환장한 년이 지랄병하고 다니는 거랑게. “

왈가닥스럽고 입이 거친 사평댁이 들어 앉자마자 초장에  본론으로 직행한다.

“ 그 소문 듣고선 우리 서방은  초저녁 부터 절대 못 나가게 하고 있구만 “

“ 그럼 , 그래야지러.   어데 맴 놓고 밤마실 다닐랑가 ?”

늙스구레한 영수 엄니 말.

“ 우리 주접은 저녁만 되면 엉뎅이를 들썩들썩 내뺄 궁리만 하는디 ?

왁자한 웃음소리.

“ 이아니, 근데 그기  구신이 맞다 카데. 일만 끝나면  연기처럼 사라져 흔적이 읎다 안 카나 ? “

“ 참으로 모를 일이제, 둔갑한 여시가 사내들 정기를 쏙쏙 빨아 사람이 될라카는게 아인교 ?”

“ 상사병이라 캅디더. 상사병이 깊으모 미친 지랄이 나서 산지사방 쏘다닌다 안 그렇습디어 ?  그 기집이 숨을 색색 헐떡이며 만석이, 만석이 하더랍니더 “

반짓고리를 갖고 와 조용히  버선 볼을 깊던 젊은 새댁이  낮은 소리로 말한다.  새댁의 낮은 목소리는 마침 사평댁이 떠드는 열띤 주장에 덮여 좌중은 듣지 못했다. 그러나 새댁은  어젯 밤 남편의 말이 길게 여운으로 남은 것이다.

사평댁의 말은 이렇다.

우리 여자들이 나서서 그 미친년이 우리 동네에  들어 오지 못하게 지키자는 것이다. 못 믿을 것은 남정네들잉께 우리가 낼로부터 마을 입구에서 그 미친 년이 못 들어오게 교대로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만나문 동네 한가운데로 끌고 가 온 남정네가 보는 앞에서 태장을 치자는 것이다.

“ 맞십니다. 맞애요. 우리 서방들은 우리가 지켜내야 합니더. 발쎄 넘어 간 놈이 있구만요 “

갑자기 흥분한 목소리로 끼어드는 새댁의 열띤  모습에  모두들 놀라 할 말을 잊고  입을 헤 벌린채 그녀를 바라보고 있다.



연신은 마음이 뒤숭숭하니, 매일 밤 꿈자리까지 사납다.

못 견디게 어매가 걱정되는 것이다. 신행에서 돌아올 때 어매는 어데 갔일꼬.

어매의 시름진 얼굴이 이해가 안 되면서 그래서 마음에 걸리는 것이다.

마음 같아선 한 걸음에 친정 집 가고 싶지만 이제 그 절차가 녹록지 않다.

남편에게 얘기하고 허락받고. 그리고 차편이야 대 주겠지만 그것도 부담스럽다.

그리고 오후에 학교서 돌아오는 한영이와 가영이, 이제 겨우 친해지고 있는데.

정연이는 고등학교 공부를 위해 서울에 가 있고 하는 수 없이 동연에게 인편을 보낸다.

‘ 누나가 너를 보고잡구나, 일간 와 주거라 ‘

동연은 연락을 받자 곧 누나 보러 왔지만 ,

오히려  누나를 보자마자 제 불평부터 한다.

어매가 통 농사일은 뒷전이니 혼자하기 너무 힘들다고.

“ 어매는 뭐 하는디 ? 모 하고 있다냐 ? “

“ 어매는 일찍 일어나 아침밥을 하고,  언제나 어매와 난 같이 아침밥을 먹는다. “

“ 그럼 고마분거 아이가 ?

“ 그리고 뭐하는디 ? “ 연신의 성급한 물음에 동연은 느긋하게 대답한다.

“ 상 치우고, 집안 청소하고 , 그리고 세수하고 나가 버린다. “

“ 어데로 가는데 ? “ 연신의 물음에

“ 낸들 아나 , 어매는 미쳤다. 옛날 우리 어매가 아니다. “

“ 동연아, 네가 단대이 어매를 살피거라. 난 걱정이 되서 잠도 안 온다 카이 “

“ 누이야, 어매보다 내가 더 힘든기라. 농사를 어예 짓는지 내가 어찌 알겠노  ? “

“ 그럼, 차라리 머슴 하나 두거라. 그만한 규모의 농사라면 머슴 하나 감당 안 되겠나 ? “

하는 연신의 말에는 별무관심으로

“ 누이야 내가 기양 장가 들면 어떻겠노 ? 아내와  함께 농사짓고, 사돈 집안도  생기니 의지되고 ,

난 의지가지가 필요한기라. “

동연은 심각한 얘기를 하면서도 히힛 웃는다.

“ 으야튼 좋고, 우선에 어매를 잘 살피그라 “  연신도 웃고 만다.





그 해괴한 소문은  얼마  되지 않아 늦가을, 어느 날  속절없이  스러졌다.

인가에서 한참  떨어진 외진 산  골짜기, 으슥한 구덩에 목이 졸린 채 숨져 있는 여인이 발견된 것이다.

흙법벅 치마지만 단정히 여며있고  의외로 그 얼굴은 고요하다.

 인고하며 남아있는  평안한 보살의 미소.  그 미소가 그녀의 죽음을 덜 슬프게 한다.

“ 에이 ! 어떤 개노무새끼가 이렇게 끔찍한 짓을 “

시체를 거두는 경관은 그 처염한 모습에  얼굴을 찡그리며 침을 탁 뱉는다.


연신은 나서지 않았다.

동연에게 돈을 주어 사람을 사고 야밤을 이용해 조용히 매장하였다.

‘ 어매 와 그리 처참하게 갔노 ?  누가 그랫노 ? 어매는 그런 헤설픈 사람이 아니었는기라. 왜 내 가슴에 못을 박고 가 비릿노 ‘ 남 몰래 가슴을 칠 뿐이다.

연신은 풍문으로 들었다. 어매가 정신이 나가 버리면 헛소리처럼  ‘ 만석이’를 불렀다고.

‘ 만석이가 누고 , 설마하니 -- 만석이 하나 둘이 아닐끼고, ‘

그러나 마음은 쿵쿵 심장을 두드리며  평안치 않다.

그러나 또 어쩌랴, 연신의 뱃 속에는 사랑하고 의지하는 남편 만석씨의 어린 생명이 꼬물거리고 있는 것을.

만석씨는  성실하고 자애로운 사람이다. 그의 생활에는 아무런 변화나 파란 없이 언제나  일정 하다.

연신이 회임한 것을 안 후론 더욱 연신을 위해주고  극진하다.


그들은 서로 불행한 어매에 대해선 약속이나 한듯이 아무 말도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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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신이 혼인하고 달 포가 다 되 갈 때,

“ 저  친정 집에 신행 다녀오고 싶십니다. 말미를 주이세 ‘

망설이듯 남편에게 말했다.

반듯한 이마와 흑백이 또렷한 연신의 눈을 가만히 응시하던 만석씨는 빙그레 웃으며

“ 아, 참 그래야제 , 내가 진작에 생각했어야 하는건데. 미안하구만. “

만석씨는 연신의 손을 잡아 손등을 토닥이며

“ 마을에 얘기해서 큰 돼지 한 마리 잡고 음식도 넉넉히 해서 친척들 부르고 이웃 사람들도

모두 불러 크게 잔치 한 번 하자구. “

하고 기분좋게 웃는다.


과연 만석씨는 연신의 신행길에 만반의 준비를 다 해 주었다. 연신의 어머니와 동생들을 위해

새 옷 한 벌 씩을 선물로 준비하고 쌀 서 말을 풀어 떡을 하고 엿을 고고, 그리고 마른 건어물들을

바리바리 싸서 한차에 실었다.운전수를 딸려 친정 집으로 보내며

“낸 바빠서 함께 못 가지만 , 당신은  , 이틀 밤 묵으시요, 내 사흘 째 날 오후 쯤 데리러 가리다. 그 때 장모님께 인사도 드리고요. ““

연신은 남편의 빈틈없고 따뜻한  배려에 너무 너무 고맙고 흐믓하고

주변  사람들의 치사도 한이 없었다.


동생 정연이 동연이도 좋아서 입이 벙긋벙긋했지만 엄마는 왜인지 아직까지도  새초롬해서 연신의

얼굴을 정면으로 대하지 않는다. 많이 수척하고 누르스름한 얼굴이 끼니도 제대로 안 먹고

방 안에서만 웅크려 지낸 것 같아 연신은 마음이 아프다.

우선 엄마 앞에 예를 갖추어 두 손을 이마 위에 얹고 나브즉이 앉으며 큰 절을 올린다.

“ 엄마, 어떠싯십니까 ? 잘 지내싯십니까 ?”

이젠 머리를 짧게 잘라 신식 파마로 달라진 딸의 얼굴을 이윽이 눈부신듯 바라 본다.

“ 잘 있었나 보구나, 잘 했다 “

엄마는 눈을 비키며 낮으막한 목소리로 말한다. 연신은 엄마의 짧고 건조한 말 한 마디에도

너무 기분이 좋아지며 예전 어린 시절처럼 마구 수다가 쏟아져 나올 판이다.

그러나 엄마는 긴 치마를 추스려 일어나며

“ 손님들이 많이들 오실끼니 대접할 준비를 해야제.”

마루에는 동네 아낙들이 모여 상 위에 음식들을 올려내고 마당가에 큰 가마솥에는 이글이글한

장작불로 통돼지를 삶고 있다. 구수한 냄새에 동네 아이들도 몰려 와 제기를 차고 잣치기를 하며  돼지고기가 어서 익기를 은근히 기다리고 있는 눈치다.

이윽고

떡이며 술이며 고기며 모두 넉넉하게 먹고 즐긴 친척과 이웃들은 마음이 더없이 부드럽고

너그러워 연신의 기지와 용기에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 잘 한 짓이여, 딸이 살림밑천이라고 맏 딸이 한 집안 일으킨거 아니여 ?”

“ 그치만 애처롭제, 저 어린 것이 나 많은 서방과 전실 아들 딸 까정 키워야 하니, 맘 고생이 오죽

할라구 “          조금 숨 죽여 말하는 여인네 목소리.

“ 아유 ! 걱정 털어 버리드라구, 소문 들으니까 늙은 서방이 연신을 공주 선녀 떠받을듯이 위한다능만. “  왁자하게 웃고 떠드는 소리.

연신과 연신 어매는 들으마 마나 그들의 우수개 잡담은 못 들은 척하고  일일이 찾아가 반갑게  절하며 인사를 올린다.


동네 잔치가 끝나고 대충 뒷정리를 한 후, 연신은 엄마와 마주 앉았다.

이제 어려운 고비 넘기고 한 숨 놓으며 엄마와 마음을 터놓고 싶은 것이다.

“ 엄마, 나 없어서 많이 아쉽지 않았나 ? 낸 엄마 보고잡고 동연이 정연이 야들도 생각나 밤마다  눈물이 나더라 “

‘ 어째 안 그렇것노 ? 네 고생할거 뻔해 내도 잠이 안 오더라카이’  연신은 엄마의 이런 대답을 기대하고 있는데 엄마는 빤히 연신의 얼굴을 본다.

“ 어매, 어째 내 얼굴을 그리 세세히 보노 , 뭐 이상한거 있나 ?”

연신은 얼굴을 붉히며 당황스레 두 손으로 제 얼굴을  가린다. 그리고 엄마를 건너다 본다.

엄마는 뭔가 다른 생각에 잠긴듯 침착하고 차가운 표정으로 먼 곳 시선을 고정하고 있다.

분하고 노여운 마음은 많이 스러졌으나 여전히 쌀쌀하고 , 그리고 처연한 표정,

연신은 문득 엄마의 얼굴이 아직 젊고 곱다는 생각을 한다. 비록 가난한 살림에 무능한 남편과  자라나는 삼남매의 호구를 위해 엄청난 삶의 질곡을 겪어 왔으나 이제, 얼마간   안정된 방파제 골 안에서 거센 파도를  벗어난 홀가분한 얼굴이 저럴까 ?

엄마가 아버지 장례 후로 부터는 거의 밖에 나가 거친 일하지 않고 집 안에만 칩거해 있어선지 피부가 해말게 보인다.

연신이 새삼스레 묻는다.

“ 어매 몇 살이고 ? 아적도 새댁 같고만. “

분위기가 무거워 웃자고 농담으로 한 말에 엄마는 사나운 눈길로 쏘아보며 뚝뚝하게 말한다.

“ 니 에미 낫살도 모리나 ? 네 서방과 내가 비슷한기라. “

‘ 앗차’ 연신은 자신의 심한 실수에 해쓱해 진다.

따져 보자면 어매는 사위보다 겨우 서너 살 위이다.

“ 내라고 나 많은 서방이 좋아서 갔겠나 ? “ 곧 뒤이어 나올 집안을 위해서 어쩌구 하는 말은 더 이상 입에 담지 않는다. 이제 그런 말은 철 없이 유세떠는 위선 같다는  생각에서다.

그러나 연신은 서러움이 북받치며  울컥 울음이 터져,

펼쳐 놓은 이부자리 속으로 파고  들어가 어깨를 떨며 울고 만다.


이불을 들썩이며 흐느끼는 딸의 모습을 보며 길례는

‘ 내가 왜 이리도 맴이 강팍하고 어리석을까, 이러지 말아얄낀데 ‘

마냥 부끄럽고 한스럽다.

길례도 어린 나이에 중신아비 따라 한씨 집으로 시집이라고 왔지만 빈한한 집안에 남편이란 작자는

먹고 살아가는 일은 뒷전이고  성격이 사나워 제멋대로였다.

그나마 시부모가 계실 때는 그럭저럭 끼니나 때우고  큰 소리없이 살았으나 두 분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돌아가신 후 남편은 더 한층 고약해지고 매일 술을 마시며 주사가 심해  이루 말할 수 없이  식구들을 괴롭혔다.

그래도 맏딸인 연신이가 일찍부터 철이 들었는지 , 때로는 어미보다 더 강단있고 지혜로운 데다

힘도 센 편이라 딸이 아니라 조력자, 동무같다는 생각으로 고된 세월을 함께 살아 온 것이다.

연신이 곁에 없었다면 어찌 살았을꼬.

길례에게는 좋던 싫던 부모가 짝지어준 남편, 한서방  하나 뿐이였다.

남편이 아무리 고약스레 굴어도 ‘ 세상 남자들 속성이 다 그런가 부다,, 또는 내 팔자가 사나워서 전생의 죄 값으로 이리 당하는게 아닐까 ‘ 하며 불평하지 않았고 남들은  어쩌구 하며 비교할 줄도 몰랐다.

무거운 짐을 지고 험한 산길을 오르는  노새처럼 굿굿이 견디며 정해진 인생길을 이제껒 성심껒 열심히 살아 온 길례였다.

그런 길례에게 놀랍고 새로운 시야가  열려진 것이다.

이만석씨는 본래 길례 남편 한씨와 한 동네 국민학교를 다니며 형 동생 하던 사이였다.이후에도

인품이나 신망이 좋은 만석씨는 명절이나 생일 때 직접 들러 인사를 건네기도 하고 바빠진 근래에는 사람을 시켜 선물을 전하기도 했다.

작년 한 때 한씨가 지병으로 몸져 누웠다는 소식을 듣고 그가 찾아 온 적이 있다.

그는 한씨의 병세를 이리저리 챙기고  돌아가는 길에  길례에게 명함과 얼마간에 약값을 내놓았다.

“ 형수님, 형님에게 어려운 일이 생기면 내게 연락해 주시소  “ 할 때에도 그의 친절이 고맙다고 생각했을 뿐, 천만 다른 감정은 전혀 없었다.

그런데 남편 한씨의 위급사항이 생기자 경황없이 그에게 연락을 하고 말았다. 천지간 믿을만한 친지나 이웃이 없었던 것이다.

그는 연락을 받자 열일 제치고 자신의 자가용차를 타고 곧바로 달려 왔다.

그리고 고통으로 몸을 뒤트는 한씨를 넙죽 업어 차 뒷좌석에 태우고

“ 형수님도 어서 여기 타소 “ 옆 자리를 권하였다.

그의 말 따라 운전석 옆 페신저 자리에 앉은 다음부터

길례는 마법처럼 전혀 다른 세상을 알게 되었다.

차 문을 닫자 좁은 공간에 어떤 낯선 냄새가 느껴졌다.

땀 냄새에 베어든 왕성한 동물의  냄새,그 냄새가 싫지 않다. 냄새의 근원을 따라 눈길이 간 곳에 두툼하고 넓직한 남자의 건장한 어깨,


길례는 곧 얼굴을 붉혔다. 그러나 심장의 박동이 지나치게 두근대어  무의식 중 가슴을 싸 안았다.

‘ 이게 뭔 짓이라냐 ? 애들   애비는 저래 사경을 헤매는데 이 무슨 해괴한 잡생각이란 말이가 ‘

첫 번 째 낯선 충격은 영 가시지를 않은 채 , 그 다음은 온통 뒤죽박죽 허둥허둥이었다. 가뜩이나 병원도 처음이요, 외지 사람은 별로 대한 일이 없어 무척 낮설기만 해  길례는 어찌 할 바를 모르고 되가는 모습을 손님처럼 쫒아가며 보고만 있을 수 밖에.

그러나 만석씨는 익숙하게 환자를 응급실로 옮겨 놓고 의사를 찾아 경위를 아는대로 요령있게 설명한다.깊숙한 동굴속에   울리는 듯한 부드럽고 낮은 목소리,  서늘한 그의 목소리가 또한 유별나게 길례의 귓 속을 파고 든다.  환자를 진찰하는 의사를 걱정스런 눈으로 유심히  들여다 보는 그의 모습은 진심이 담겨 인정스럽고  정말 피붙이처럼 친밀하게 느껴진다.

‘ 어째 저런 사람이 다 있노. 한나도 빠진 게 없는 정말 사내다운 사내 아이가 ‘

그리고 문득 저런 사내와 하룻밤만이라도  살아 봤시문 소원이 없겠다는생각을 한다. 그러나 곧

‘ ‘에그그, 내 미친거 아이가 이 무슨 망칙한 생각이란 말인가 ‘ 머리를 흔들며 남편 한씨의 초췌한 얼굴을 들여다 본다.

그 정도 응급실에서 일회성 만남이었다면 그대로 스러질 감정일 수도 있었겠다.

그런데 남편의 병세가 위중하여 서울 큰 병원으로 가야 한다는 의사의 권고를 듣자 만석씨는 지체하지 않고 그 밤으로 서울로 향했다.

서대문 세브란스 병원에 도착하여 입원 수속을 하고  입원비를 지불하며,절차를 거치는 만석씨는  조금치의 주저함이 없이   친동기 같이 믿음직스럽기만 했다.

“ 형수님 여기 보호자난에 지장 찍어 주이소 여긴 우리나라서 젤로 좋은 병원이라 합디더, 잘 고쳐줄구마. 염려 놓으소 “

길례는 얼굴을 붉히며 떨리는 손가락에 인주를 묻쳐 손도장을 찍었을 뿐 아무 한 일이 없었다.

남편이 한 보름 동안 입원을 하고 있을 때도 그는 틈틈이 찾아와 만사를 보살펴 주었다.

“ 마, 입원비는 걱정 마이소  내가 부담하고 있으니께니 “

“ 고맙십니다. 냉중 꼭 값겠십니다 “

길례는 기어 들어가는 소리로 이 말을 겨우 했을 뿐이다.

그러나 만석씨의 이미지는 길례의 가슴 속에 찬탄과 동경의 절대주로 크게 자리 잡아가고 있다.

결국 남편 한씨는  온갖 치료도 소용없이  숨지고 말았다.

한 가장이 아무런 준비도 대책도 없이 폭풍처럼 일을 벌여놓고 뜬금없이 가 버렸다.

‘ 나더러 어떻하라고 ‘ 어쩔 줄 모르고 망연한 길례 앞에 모든 일을 일사천리로 해결해준 사람도

만석씨였다. 그의 의견에 따르는 것이 당시로서는  최선이었다.

“ 이 은혜를 꼭 갚겠십니다. “

길례는 이 번엔 좀 더 또렷한 말씨로 인사를 한다. 어떤 소망이 가능성이 되어 그네의 가슴 속에 자리 잡았을가.

길례 스스로 생각해도 참으로 어처구니 없고 해괴한 욕심이요, 염치없는 생각이라.

‘ 내 이래 살지 않았당이 ,비록 가난하게 힘들게 살고 있지만 한지아비만을 섬기고 아이들 낳아 잘 길렀고만은, 내 이 무신 망령이고, 연신이 보기 부끄럽당이’그러다가도

‘ 인생 한 번 사는기 아이가, 난 한서방, 그 인간 하나만 남자라 생각하며 죽이라, 밥이라,가리잖고  매 맞으며 한 자리서 살았고만, 세상에 저리 잘난 남자가 있당이, 믿기지 않는당이. 남의 말로 들었심 그짓말이라고 했일기구만, 근디 바로 눈 앞에 손 잡을 만한 곳에 있재아이가. ‘그도 나도 홀씨, 나이도 어슥하구만. 몬할 기 뭐 있겠나.

‘ 내도 제 푼수 모리고 웃기는 년 아닌가배 ? 엊그제 서방 상 당한 년이 이 무신 망칙한 발상이고

내 혼자 발광을 하는구만, 김치국만 푸지게 마시고 앉아서 ‘’

하루는 길례 , 세수를 꼼꼼하게  하고 경대 앞에 앉아 머리를 곱게 빗어 본다. 수척한 얼굴이지만 눈매가 깊고 갸름한 턱선이 아담하다.  턱 맡으로 흐르는 긴 목선도  의외로 도톰하고 희다.

‘ 내 아직 마흔이 안 됐고만 ‘

길례는 한숨을 쉬며 들창 너머 먼 산을 내다 본다.

심장이 통증을 느낄만치 뭉쿨하며 오래 잊고 있었던 그 곳의 젖무덤이 뻐근하다.


길례가 하루는 지옥 또 다른 하루는 천당을 꿈꾸고 있을 때, 딸 연신이 폭탄 같은 발언을 한 것이다.만석씨와 혼인하므로 빚도 갚고 앞으로 살 기반도 만들겠다고

이게 선수를치는구나 , 놀람과 동시에 퍼뜩 비교치가 주르륵 나온다.

어리고 어여쁜 연신이, 언젠가 만석씨가 중신을 넣었던 연신이, 영리하고 당차서 결심하면 곧 장 돌진하는  연신이,

‘ 내가 얘를 어떻게 당하는가.’

길례는 얼굴이 새파래져 이불을 뒤집어 쓰고 누워 버린다.

‘ 내 아무리 미치지 않고야 우째 이런 에미 속을 네게 말하리.


다음 날  길례는 연신이 시댁에 갖고 갈 이바지 음식을  정성껒 장만했다.

참쌀을 갈아서 지짐을 부치고 가운데 팥알심을 넣어 얌전하게 접어 개어 부꾸미를 만들고 잘 익은 막걸리를 빚어 엿지름 맑은 물과 밥알을 넣고 식힌 동동주를 됫병에 담았다. 연신이 가져온 북어를 짤게 찢어 고추장 참기름으로 양념한  밑반찬도 연신을 위해 만들어 넣었다.

그리고 가지런히 광주리에 담아 놓은 뒤 길례는 머리에 수건을 쓰고 들로 나갔다.

늦으막한  오후,  약속대로 연신을 찾아 온 만석씨는

처남 동연이와 정연이의 배웅을 받으며  연신을 데리고 처가집을 떠났다.

“ 우째 장모님은 내 인사를 받지 않으시까 “

만석씨는 혼자 말처럼 불만스레 말했지만 연신은 못 들은 척 차창 밖만 보고 있다.

저 쪽 콩밭 머리에서,  흰수건을 푹 눌러 쓴 어매가 일손을 멈추고 몸을 일으키어

먼지 일으키며 달리는 검은 세단차를 묵연히 처다 볼 것 같아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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