엎드린 산  5  <  친구 클라우드 >



K 목사님에게서 연락이 왔다. 한 번 만나자는 것이다. 그도 물론 세미나에 참석하여 그 소란을 지켜보았고 또 앞장서서 장내를 진정시킨 경륜이 깊은 원로목사님이었다.

“ 교수님은 하나님을 만나셨습니까? “

K 목사는 요석에게 다짜고짜 물었다.  

요석은 대답할 말이 없었다. 그 분은 다시 말했다.

“ 당신은 이론적이나 학문적으로는 훌륭한데 하나님에 대한 체험이 없습니다. 이론하고 체험은 다르니까 교수직에 머물러만 있지말고  한 번 체험을 해 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

“뭐  어떻게 체험을 해야 하나요 ?”  요석이 곤혹스럽게 더듬대며 묻자 그는 미리 준비하고 있었던 듯 .

“ 남부지방에 제가 아는 작은 교회가 하나  있는데  지금 그 교회에 목사님이 안 계십니다 “

하며 그 교회의 주소를 건네 주었다.

사실 요석이 오랜 세월 연구하고 공부해서 얻은 안정된 교수직을 내놓는다는 건 현실적으로 매우 어려운 결단이다. 그러나 요석 자신도 오랜 동안 맘 속에 갈증으로 남아 있는 하나님과의 < 만남의 확신 >,  마치 사람을 직접 만나 악수하듯이 그렇게 만나고 싶었다.


어느 토요일 요석은 호남 방면으로 가는 직행버스를 탔다. 도로사정이 안 좋아 장시간 털털거리며 전라도 영암군에 도착한 것은 저녁 늦은 시간.

다시 시외버스를 타고 영호마을에 도착한 건 이미 밤 늦은 시간이었고 몇 명 마중나온 신자들의 얼굴은 희미한 불빛으로 자세히 볼 수도 없어  수인사만  하고  숙소에 들었다.

그런데 방 안을 둘러보던 요석은 질색하지 않을 수 없다. 바람이 술술 드나들 것 같은 흙벽에 묵은 도배지는 얼룩과  습기로 젖어있고  심지어는 조그만 벌레들이 기어다니기도 한다. 가구는 커녕 당장 덮고 잘 이부자리도 없는 썰렁하기 이를데 없는 이런 곳에서 살라고 ?

그러나 요석은 하루종일 길 위에서 시달린 몸이 고단한지라  착잡한 마음을 품은 채 입은 옷 그대로 누워 잠 들어 버린다.


다음 날 첫 주일예배 시간이다. 주로 나이 많은  어르신들이 앞으로 부터 대부분이고 뒤 끝 쪽으로 중장년층 몇 명, 모두 한 오십여 명 모였다.

요석은 설교단에 올라 막 입을 떼려는 순간 놀라움으로 숨을 들여 마시곤 목소리가 안 나온다.

강댓상 비로 아래에 나이를 가늠키 어려운 한 사람이 얼굴을 번쩍 쳐들고 그를 보는데 그 얼굴이 그냥 구멍 다섯 개 뿐이다.  자세히 보니 다른 이들도 얼굴이 씰그러지고 뭔가가 많이 부족하고 흉한 모습.

요석은 가까스로 당황한 마음을 추스리 며 대충 대충 설교를 마쳤다. 설교를 하면서도 계속 머리 속에서 떠나지 않는 생각은 빨리  이 곳을 벗어나 서울로  돌아가겠다는  조급함 뿐이다. 예배를 끝내고 어서 신도들이 돌아가기를 바라며 일부러 느릿느릿 꿈지럭대다 교회 문을 나서려니, 아앗 ! 신도들이 문 밖에 줄을 서서 목사님이 빨리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는게 아닌가 ? 아아, 정말 이들과 악수를 해야 하나 ?  맨 앞에 서 계시던 할머니가 손을 내민다. 세 손가락이 떨어져 나가고 그 자리에는 노랗게 화농된 물큰하게 느러진 살갗, 아, 정말 이 손을 잡아야 하나 ? 둘 만 남은 손가락을 잡나, 아니면 손 등에 내 손을 얹어야 하나, 정말 당황하지 않을 수 없다. 과연 그들의 손을 꽉 잡았나 ? 아님 살짜기 얹었던가 , 눈을 꼭 감고 얼른얼른 지나가서 기억도 없다. 근데 아니, 이 할머니는  아까 앞에서 악수했던  분 아닌가 ? 근데 이 할머니 다시 뒤 쪽 줄에서 차례를 기다려  내 손을 꼭 잡자  놓지를 않는다. 아예 요석의 손등을 두 손으로 찬찬히 쓰다듬고 있다.

“ 할머님, 어디가 불편하세요 ?” 요석은 난처하고 곤란해서  묻는다

“ 아니, 아니, 호호호  “ 할머니, 너무 밝고 천진하게 웃는다.어린 소녀의 해맑은 웃음처럼.



“ 내가 열여덟 살 때, 집 떠난 후로 성한 사람 손을 한 번도 잡아보지 못해서   젊은 목사님 손은 어떤가  만져 보는거요 “

눈거플도 얼마 안 남아 튀어나온 눈알, 뭉그러져 코구멍이 드러난 코, 입술도 일부분 문드러져 흉한 얼굴, 그러나  이 할머니는 다만 장난스럽고 행복하게 웃는다.

“ 할머니 , 할머니는 인생이 고통스럽고 힘들지 않으세요 ?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으세요 ?”

“ 아이구 목사님, 하나님이 원망스럽기는 , 절대 아니우. 오히려 감사하고 있다우. “ 하며 그 할머니는 아직 귀가하지 않고 주위를 빙 둘러싸고 있는 다른 노인들을 둘러 본다.

“ 그럼요, 그렇구 말구, “ 모두들 끄덕 끄덕하는 동감의 목소리들.

“ 우리가 이 병 들어 여기 안 왔으면 생전 하나님 만나지 못하고 세상 죄만 잔뜩 짊어졌을텐데 이 병 덕분에 하나님을  만나게 되어  죽어서도 영생 축복 받으니 얼마나 감사한 일이우 ?

“ 맞아요, 맞아요. 우린 늘 감사하며 산다우  “

“ 저이는 멀쩡한 형제들도 여럿인데  자기 아버지도 모셔와서  함께 산다우, “ 한 할머니가 아까 보고 충격 받았던 다섯 구멍 얼굴을 보며 말한다.그러자 풍채좋은 한 노인이 썩 나서며

“ 저 아이는 그 잘 생긴 인물이  몹쓸 병에 걸려  저 지경이 됐지만 마음만은 제일 착하고 똑똑했다오 문둥병이라고 집에서 쫒아냈었는데 내가 늙고 외돌토리가 되니  나를 찾아 같이 살자 하고  하나님 잘 믿어 이 어리석은 애비까정도 교회로 인도해 주었다오 “

요석은 신도들의 구구절절한  이야기를 들으며 차츰 자신의 경박하고 조급스런  생각이 심히 부끄러웠다. 그들의  병으로 인해 일그러지고 노동으로 햇빛에  까맣게 그을러 쭈그러진  용모가 예수님이 가까이 사랑했던 그의 백성들이 아닐까. ‘ 병들고 가난한 사람을 구제하라, 그들에게 하는 선행이 곧 내를 대접하는 것이라. 고로  천국에서 큰 상이 있을것이다.’

요석은 비로소 자신이 신과 만나 손을 잡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큰 깨달음을 받은 날 밤 , 요석은 튀빙겐 대학  은사이던 위르겐 볼트만 교수에게 기나긴 편지를 썼다.

< 저는 비로소 신을 만났습니다. 신을 만나 두 손을 잡았습니다.

이제 제가 있을 자리와 할 일을 확실히 알았습니다.

저는 지금 신께  감사하고 신 안에 있어 행복합니다. >


그러나 요석이 머문  나환자 정착촌 영호교회에서의 생활은 지극히 가난하고 궁색했다. 교인들이 모아주는 성미쌀로 가능한  만큼  하루 두 끼, 김치나 나물 등으로  빈약한 식사를 하니, 몸은 날로 여위어 간다. 그러나  여위어 가는 만큼 내적으로는 충만한 주님의 은총을 느낀다. 결코 실망하지 않고 계속 기도로 신과 교류하는  내면은 더욱 풍요롭고 강인함으로 채워진다.


그런 중 갑자기 위르겐 교수가 요석을 찾아 왔다. 일본에 학술회의 차 방문하고 돌아가는  길에 잠간 들른 거라 했다. ‘ 과연 하나님과 손 잡고 산다는 요석의 생활이 궁금하던 까닭이다. 위르만 교수는 요석의 상상 이상으로 가난하고 궁색한 생활에 놀란다.

다음 날 새벽, 이왕 오신 길에 새벽 예배 설교 좀 해 주십사는 부탁에 그는 새벽 예배 강단에 섰다. 그도  역시 요석의 첫날처럼 강한 충격을 받는다. 그러나 한 군데도 성한 곳이 없는 나환자들의  신앙과 열정,  놀랍도록  뜨거운 예배 분위기,  행복한 모습,  위르겐 교수는 바쁜 일정으로 당일  ,  떠나며 문득  요석의 등 뒤에서 허리를 잡고 힘차게 안는다.

“ 당신은  내 제자이지만 나는  당신을  존경합니다  “

은사의 감동에 찬 이 말에 요석은 세상 어느 칭찬  보다도 더욱 뿌듯한 보람을 느끼며 감사한다.


얼마 후 독일 유학 초 때에  한 방 룸메이트였던 클라우드의 편지를 받는다. 그는 동기 중에서도 학업 성적도 좋고   언변 , 사회적 인간 관계, 어느 하나 빠지지 않던 뛰어난 인재였다.

‘ 난 졸업 후 가장 크고 잘 나간다는  유명한  교회에 목사로 있었네. 신도 수가 무려 5천 명 정도였지. 그러나 내가 부임한 지 삼 년 째,  날로 신도 수가 줄어져 이젠 겨우 3백 명 정도로 줄어 버렸네. 난 내 자신에 대한 실망과  회의에 빠져, 뭔가 바꿔야겠다고 생각했네. 그래서  교수 자리는 어떨가 하고 모교를 찾았지. 거기서 전설처럼 떠도는 자네에 대한 얘기를 들었네. 자네는 하나님의 손을 잡고 목회를 이끈다는 교수님 말씀을 듣고 난 놀라고 믿을 수가 없었네. 그래서 부탁인데  나를 자네 교회에 부목사로 초청해 주지 않겠나 ? 자네 곁에서 함께 살며 배우고 싶네. 허락해 주게. ‘


요석은 그에 대한 답장을 썼다.

“ 여기는 매우 가난하고 외진 곳이라네. 그러나 하나님의 은총은 언제나 가득하여 부족함이 없지. 대우로는 수입을 나와 똑같이 나누도록  하지.  거처할 집이나 먹거리도 매우 소박하고 단촐하다네. 그래도 좋다면 와서 함께 지내 보세.”

그는 자신의 몸무게가 150 KG이나 되니  다이어트를 위해서라도 꼭 와야겠다고 했다.




얼마 후 과연 그는 이 외지고 궁벽한 영호마을을 찾아 왔다. 파란 눈과 바랜 밀짚 같은 노란 고수머리, 자주색 쓰리피스 수트로 멋을 낸 거구의 외국인이 이 마을에 나타나니 온 마을 사람들이 잔뜩 호기심과 신기함으로   모여든다. 아이들은 노골적으로 가까이 다가가 양복을 슬쩍 만져 보기도 하고 얼굴을 빤히 올려다 본다.

“ 어서 오게 친구, “ 요석은 반가이 마주 얼싸안고 그의 트렁크를 들어 준다

“ 아니, 웬 짐이 이렇게 많은거야 ?” 대절택시에서 내린 트렁크가 대여섯 개는 된다.

“ 나는 넥타이를 매면 그에 맞추어 양복과 구두 까지도 매치시켜야 하거든 “ 그는 유쾌하게 웃으며 짐을 들고 목사관으로 들어선다.

“ 오 마이, 요렇게 좁은 방에서 어떻게 살지 ? 침대도 없고, 옷장도 없고, 오 지저스, 화장실, 목욕탕은 어디야 ?”

“ 그러니까 여긴 많은 짐이 필요없어. 구두 한 켤레와 양복 한 벌이면 그걸로 족해, 베스룸과 화장실은 바깥에 별도로 있지. “ 요석은 낙천적으로 웃으며 우물과, 별채로 떨어진 허름한 변소를 가리킨다. 클라우드는 쩝! 하고 난처한 듯 눈섭을 꿈틀대다 요석에게 다가와 작은 소리로 묻는다.

“ 근데 이 마을 사람들 왜 모두 음 -- 말하자면 왜 --- 병신들이지 ?” 하고 묻는다.

“ 이 사람아, 독일 속담에 ‘ 병신 눈엔 병신만 보이고 천사 눈엔 천사만 보인다’ 는 말 못 들어 봤어 하 하 “ 클라우드는 자기가 천사가 되기로 맘을 먹은 양 더 이상 묻지 않는다.


저녁상은 여느 때와 같이 밥 한 그릇과 김치, 그리고 물 한사발이다. 클라우드는 김치는 못 먹겠다고 사양하고 밥만 먹는다.

“ 그럼 왔으니 다음 주일엔 부목사인 자네가 설교를 해 보게.” 그러나 크라우드는

“ 우선 자네 설교부터 들으며 적응하겠네 “ 하며 사양한다.

“ 좋아, 그럼 우리 성경공부를 하세  “

클라우드가 가져온 성경은 히브리, 헬라 , 라틴어로 된 세 가지 성경이었다. 그리고 라틴성경을 펼치며 비판부터 한다.

“ 이보게 이건 번역이 잘 못된거 아닌가 ? 헬라어로는 이거 문법이 말이 안 되잖아 ? “

하며 온통 성경 글귀의 타박만 한다. 참다 못해 요석이 묻는다.

“ 여보게 , 그럼 자네는 교회에서 신자들에게 무엇을 설교했나 ? “ 그는 싱긋 웃으며

“ 나는 성경 그대로만 말하니까 믿고 안 믿고는 당신들이 알아서 하시요 , 했다네.”

며칠이 지나자 클라우드는 이 소박하다 못해 너무 열악한 식사에 심각한 허기를 느낀다.

“ 여보게 김목사, 배고파 죽겠어 뭐 좀 먹을 거 없나 ?”

“ 그래 ? 새벽 두 시에 일어나 함께 기도해 보세 , 아마 큰 은혜의 빵이 있을게야. “

클라우드는 좋아라 하고 과연 새벽 두 시도 되기 전  일어나 기다리고 있다. 요석과 그는 함께 기도하고 밖으로 나온다. 하늘에는 여느 때 보다 더욱 별들이 총총하고 대기는 서늘하고 달콤하다.

“ 어디에  빵이 있는가 친구 “  클라우드는 재촉한다.

“ 이 세상이 전부 축복받은 빵이라네. 자네도 입을 크게 벌려 이 빵을 마음껒 먹게”

둘이는 입을 크게 벌리고 숨을 깊게 들여 마신다. 그러나 역시 허기진 클라우드,

“ 자넨 이 공기만 마시고 정말 배가 부른건가 ?” 묻는다.

몇 달 후 어느날 , 주님의 축복인지 넉넉한 성미가 들어왔다. 클라우드가 더욱 기뻐한다.

“ 우리 오랜만에 이 쌀로 밥을 많이 해서 싫컷 먹어 보세. “ 요석은 망서린다. 갑자기 과식하면 좋지 않은데 , 하며 경계하였으나 클라우드는 일단 그 쌀로 몽땅 밥을 한다.

갓 지은 말랑말랑한 밥에 김치를 잔뜩 넣고 - 이 때는 이미 클라우드도 김치니 뭐니 가리지 않게 되었다. - 썩썩 비벼 양껒 먹는다.

그 동안 절식으로 쪼그라든 위장이 갑자기 소나기 밥으로 그득 차 버리니 탈이 날 밖에. 클라우드는 밤새 화장실을 들락이며 고생한다.

새벽 예배를 보려고 요석이 문 밖을 나서는데 클라우드의 울부짖는 소리가 들린다. 요석은  잘 못 들은게 아닐까 하며 다시금 귀를 기울이는데 변소에서 들리는 클라우드의 비명,

급히 변소로 달려가 보니 ‘ 아, 가엾은 클라우드, 그가 재래식 변소 발디딤으로 가로지른 널판지에 겨우 팔을 걸치고 아래는 목까지 온통 똥통에 빠져 옴쪽달쏙 못 하고 있는게 아닌가. 그 육중한 몸무게에 견디지 못한 널판지가 부러져 그는 아래 통 속으로 빠져버린 것이다. 요석은 예배에 나가는 길이므로 그를 몸소 건질 수는 없고 우선 긴 장대를 그에게 주며 짚고 올라오라고 했다. 그는 꽁꽁 힘을 쓰며 겨우 올라왔지만 몸은 온통 똥물로 젖어있고 그 안에 있던 구더기들 까지도 ‘ 삼촌 ‘ 하듯이 스멀스멀 그에게 달라 붙었다. 그를 우물가로 데려가 물로 털어내고 닦아냈지만 워낙 털이 많은 그의 몸에 묻은 똥찌꺼기는 쉬이 떨어지지 않는다.

요석은 먼저 예배당으로 가서 새벽 예배를 인도하고 있던  중 그가  옷을 갈아 입고 천연덕스럽게  안으로 들어선다. 그러나 그와 함께 몰고 온 고약한 냄새, 비록 팔 다리, 얼굴 등이  신통치 않은 나환자들 까지 얼굴을 찌프리고 고개를 흔든다. 예배 후 요석이 물었다.

“ 클라우드 자네 냄새가 어찌 이리 고약한가 ? “

“ 그렇게 지독했나 ? 향수를 좀 뿌렸는데 “

똥 냄새와 향수, 두 조합은  너무 상극으로 더욱 고약하게 상충한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 이 봐, 이 교회 안에서 너 보다 더 고약한 냄새를 피우는 사람이 어디 있나 ? 바로 자네가 제일 더러운 냄새를 피우는  병신이 아닌가 ? “ 요석은 웃으며 말한다.그는 다만 심각하게 고개를 끄덕인다.

그런데 다음 날  한 밤중에 이 친구가 진지하게  요석에게 말한다.

“ 내게 성령의 불이 임하시나 보네. 내 몸이 뜨거워지고 있어  “  요석이 그의 이마를 짚어보니 과연 온 몸이 뜨거운 열기로 예사롭지 않고 옷을 벗겨 맨 몸을 보니 살갗에 뻘긋뻘긋 열꽃이 솟아  있다.. 요석이 알기로는 온 몸이 똥물에 잠겨있는 동안 똥독이 올라 병을 앓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 친구는 요석에게 이마를 짚고 안수 기도를 해 달라고 한다.

평소 교회에서 아이들이 아프다면 알사탕을 하나 입에 물리고 이마를 짚어 기도해 주는 요석의 모습을 보았던 거다. 그럴 때면  이 친구는 병이 들었으면 약을 먹거나 병원에 가야지 무슨 미신적인 태도냐 하며 비방하던 친구였다.

“ 이 사람아, 자네의 병은 자네 스스로의 믿음으로 고치는 것일세, 예수님께서도 ‘ 네 믿음이 너를 구했으니,’하지 않는가 ? “ 클라우드는 또 다시 심각하게 고개를 끄덕인다.

그렇게 고생하는 중에 병은 나앗고 이 친구의 태도도 많이 바뀌고 있었다.”  아, 나도 어느 정도 성경 말씀에 믿음이 가네. 하나님도 계시고  예수님도  됐고, -----  

그런데  성령님은 ?  성령의 불꽃이라니 이해가 안 되네 “  하며 썩 납득이 안 되는듯 고개를 가로 흔든다.


어느 날 둘이는 산책을 나간다. 옆으로 맑은 계곡물이 흐르고 올라갈수록 나무가 울창한 아름다운 숲이다. 제법 명소로 알려져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곳, 요석과 클라우드는 운동삼아 산 위 정상까지 오른다. 요석은 비쩍 마른 몸에 강단이 있어 날렵하게 걷지만 클라우드는 중턱부터 헉헉대며 걸음이 느려진다. 걷기가 힘들고 지루하던 참에 갓길에 세워진 오토바이가 눈에 띈다. 일제 야마하 신형으로 산길도 달릴 수 있도록 제작된 육중하고 터프한, 유선형 몸체가 번쩍인다. 스피드광 클라우드가 무심코  지나칠 수 없다. 오트바이 주인을 찾아 언제, 어디서 , 가격은 얼마나 , 성능은 만족한가 하며 꼼꼼이 묻는다. 그리고 침을 꿀꺽 삼키며

“ 한 번 태워 줄  수 없겠나 ?” 하고 묻는다. 젊잖고 기품있어 보이는 이국의 신사에게 오트바이 주인은 쾌히 승낙한다.


‘ 친구, 난 모터사이클 타고  먼저 갈테니 천천히 오게나 “ 클라우드는 신이 나서 목소리가 한 톤 높아지고 눈은 활기로 반짝인다.

“ 이보게, ‘ 정든 님  버리고 가시는 님은 십리도 못 가서 발병이 난다 ‘는 우리나라 민요가 있네

나와 같이 천천히 걸어 가세나 “

한 시간 쯤 후 , 산 밑 평지로 내려오니 벌써 와 있어야 할 클라우드가 보이지 않는다. 두리번거리며 찾고 있는데 교회에서 낯익은  한 아이가 달려와선

“ 목사님 큰 일 났어요. 코쟁이 목사님이 개울에 빠졌어요 “

아이를 따라 계곡의 다리께로 가 보니 오트바이는 다리 난간에 기대어 있고 오트바이 주인은 이마에 약간 상처가 나서 피가 나 있다. 그런데 클라우드는 안 보인다. 어디에 있지? 그는 오트바이가 살짝 커브를 도는바람에  잘 잡지 않은 몸이  균형을 잃고  날라가 개울물에 빠진 것이다.   요석은 사람들과 함께 힘을 합쳐 물에서 그를 끌어냈다.   다행히  계곡물 있는  곳으로 떨어져 다친 곳은 없으나 흠씬 젖은 몸둥이를  제대로 가누지 못할 정도로  충격이 크다. 요석은 파랗게 질리고 부들부들 떠는 그를 부축하여 숙소로 돌아왔다.

그 날 밤 또다시 클라우드는 열이 펄펄 끓으며 땀을 흘리고 온 몸이 불덩이가 되어 앓고 있다.

육중한 몸이 사오미터를 날라 물 위로 곤두박질을 쳤으니 온 몸이  타박상을 입어  결리고 쑤시고 져려서 견딜 수가 없는 것이 다.

“ 여보게, 김목사 나를 위해 기도해 주게. “ 클라우드는 애처럽게 부탁한다.

요석은 그를 걱정하며 궁리하다 좋은 생각이 났다. 마을 어른을 찾아가 비장된 귀한 약을 좀 주십사고 부탁한다.

그 약이란  베보자기 씌운 항아리를 똥통에 깊이 가라앉치고 몇 년 동안 묵힌 다음,항아리에 걸러지고 숙성한  진국 똥물을 깨끗한  됫병에 담아두고 응급시에 사용하는 민간요법이었다. 이것은 넘어져 다친데, 또는 매 맞아 멍들고 골절되거나 내장이 다쳤을 때도 특효약이라고 전해져 웬만한 집에선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는 것이다.

“ 친구, 이 약을 마시게. 아주 효과가 좋을거야. “ 요석은 그것을 한 사발 건넨다.

“ 이게 뭔가 ? 냄새가 고약하군, “ 클라우드는 미심적은 듯 얼굴을 찡그린다.

“ 입에 쓴 약이  몸에 좋은 거야, 어서 먹게 “ 그는 온몸의 통증이 더욱 고통스러운지 그것을 벌컥벌컥 마신다.

“ 아, 너무 이상한 맛이야. 사탕, 사탕 좀 빨리 줘 “

사탕을 입에 물고 그것이 다 녹기도 전에 클라우드는 혼곤한 잠에 빠진다. 숙성된 똥물의 독한 기운이 온 몸에 퍼지자 술에 취한 듯 통증이 잦아들고 깊은  잠에 빠져 드는  것이다.

이튿 날 아침, 클라우드는 거뜬이 일어난다.

“ 아, 상쾌하네,  어제 그 약이 효과가 그만인걸 , 그게 뭔 약인가 ? “

요석은 그의 얼굴을 피해 고개를 돌린다. 그의 입에서 나는 짙은 똥내를 견딜 수가 없어서다.


클라우드는 결국 똥물에 빠져 고생을 하고 그도 모자라  똥물까지 먹어 속을 다 비워내고 난 다음에야   현저한 변화를 보인다. 새로운 눈이 열린 듯 성경을 보고,  이런 구절이 다 있었나 ?

아, 그런 뜻이었군. 난 그걸 몰랐었어. 신기한 듯 성경을 열심히 읽는다. 생활 주변을 보면서도 아, 이런 아름다운 꽃, 새소리,  이런 곳서 사는  복 받은 사람들 ! 하며 감탄한다.

그 약이 성령의 역사,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하게 해 주신게다.


그러나 아직 그는 설교할 자신이 없다고 한다.

“ 어떻게 해야 자네처럼 파워풀한 설교를 할 수 있나 ? 자네가 설교할 땐 말 끝마다 모두들 아멘, 아멘 하는데  나는 몇 년을 설교해도신자들로 부터  ‘ 아멘 ‘ 소리를 못 들어 보았다네 “

몇 달 전 자만에 가득찬 당당한 모습은 사라지고 이제는 수줍고 소심하게 묻는다.

“친구,  설교는 입으로 하는게 아니야, 손과 발과 행동으로 전하는 것이네 “

그럼, 내가 어떻게 해야 할까 ?”

“직접  행하고 기도하고 찬양하면 성령의 충만한 역사로 신자들에게서 ‘ 아멘’이 나온다네 “



클라우드는 한 일 년간 나와 함께 지내다 고향으로 돌아갔다.

목사로서의 그의 태도가 백팔십도 달라진 건 두 말 할 필요도 없다.   따라서 그가 돌아가서 시무하는 교회는 날로 부흥되고 신자 수도 크게 두 배나 늘었다고 한다.

이제 그는 맏음과 확신에 찬 훌륭한 목사가 되어 있었다.

참으로 감사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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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석은 쉬지않고 학문에만 몰두했다.

그리고 가끔은  조용한 시간을 틈타 눈을 감고 깊은 생각에 잠긴다. 얼굴도 모르고  희미한 실루엣만으로  남은  부모님을 찾아 대화를 청한다. 하노라면 옆으로 성령님의 잔잔히 미소짓는 모습도 느껴진다. 요석은 이런 시간을 자주 가질수록  정신영역이 확장되며  시공을 초월하는 감각능력이 더욱 진보됨을 느낀다. 비현실적인 느낌따라 마음 속으로 들어오는 이해와 긍정, 확신. 남들은 쉬이 느낄 수 없는 사유의 공간이다.

요석은 재학 중 군복무를 마치고 복학하며 유학 준비도 차근차근 해 둔다.

고교 때 부터 제이 외국어로 독일어를 선택하여 기초나  문법체계를  어느 정도 알고 있는 위에  실생활에 적응하는 듣기, 말하기, 독해력 어느 한 가지도 소홀하지 않는다 . 더하여  유럽 언어권의 대세인 불어나 이탈리안 서반아어 까지도 열심히 습득해 둔다.

그리고 유학의 목표 코스로는  신학에 관한 한 , 종교개혁의 진원지로  많은 신학자들을 배출한 독일의   본고장으로 가고 싶다.  신학에 관한 더욱 깊고 진지하며 온전한 모든 것을 배우고자 하는 열정으로 고대 히브리어나 또는 헬라어 까지도 해독하려 노력한다.

그리하여  긍극적으로 자신이 나아갈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길을 찾으려고 한다

.

과연 노력과 준비한 보람이 있어 국가에서 치루는 국비 장학생에 선발되었다.

독일로의 유학의 길이 열린 것이다.

독일로 떠나기 며칠 전 요석은 하직 인사로  외삼촌댁에 들렀다.

여전히 반겨주시는 외삼촌 내외, 요석은 고맙고 기쁜 마음으로 꿇어 엎드려 머리를 깊숙이 숙인다. “ 모두 외삼촌과 숙모님의 정성 덕분입니다. 은혜가 큽니다. 고맙습니다 “

“ 아니제, 네가 잘 해 왔지 않은가 ? 하나님의 보살핌이 크신게다. “

예전이나 변함없이 정갈하고 조촐한 집안은 세월의 자국으로 조금은 피폐하고 ,그처럼 외삼촌과 외숙모님도 세월 속 바람을 비켜 갈 수 없드시   주름살 늘어난  모습에 마음이 싸아하니 아프다.

“ 외삼촌 제가 공부 마치고 올 때 까지 건강하게 잘 계세요. 제가 돌아와서 잘 모실께요. “

“ 우린 잘 산다 ,우리 내외 걱정말고 네나 몸 성히 잘 다녀오거라. “

“ 먼 타국나가면 먹는 것도 마땅찮고 의식주 어케 살거나, 이불이랑 챙겨주랴? “ 외숙모님도 걱정이 많다.

“ 숙모님 짐되는 건 안 갖고 갈깁니다. 젊은 놈이 뭐 가릴게 있겠습니까? 그리고 나라에서 장학금으로 생활비까지 넉넉하게 주어서 사는건 문제 없십니다. “

외삼촌은 만족한 얼굴로

“ 그래, 그래 애썼다. 네 부모님도 하늘나라에서 기뻐하실꺼로,

우리 늙은 내외나 너도 하나님께서 잘 지켜 주실께다. 모든걸 주님께 맡기고 각자 맡은 직분들을 열심히 준행하자, 그리고 다만 기도, 늘 기도 ,우리 합심하여  항상 기도하자꾸나 “


튀빙겐 대학, 독일 중부에 작은 도시 튀빙겐에 위치한 이 곳은 거의 천년의 역사를 지닌 유서깊은 대학이다. 신학부가 주축을 이루고 의학부와 법학부도 우수한 실력을 자랑한다.

별다른 큰 건물은 없지만 아기자기 예쁘고 고풍스런 목조건물들이 정연한 도시,여기저기에 대학 건물과 기숙사 등이 산재해 있고 주민들과 여러 곳에서 모여든 젊은 학생들이 공존하여  고요하고 평화스럽게 살아가는 그 도시는  그림처럼 아름답다. 언덕위에 우뚝 선 오래 된 켓슬, 도시 외각을 감싸고 흐르는 맑고 투명한  강 , 젊은이들이 공부에 지친 머리를 식히기에도 좋은 환경은 요석에게 놀라움과 감동을 준다.  ‘ 이 아름다운 곳으로 인도해 주신 하나님, 참으로 고맙습니다’ 요석은 입 속으로 가만히 외친다.


세미나가 열린다고 한다. 초빙교수는  세계적으로 저명한 신학자  < 칼바트 >.

 신약 성서에 대한 수많은 저술로 1970 년대에 세계적인 명성을 날렸고   특히 로마서를 집중  해설한 그의 로마서 해설집은  모든 신학자들에게 깊은 인상으로 남아 있다.  그런데 세미나 안내 팜플렛에 새겨진  그의 사진, ‘ 어, 낮 익은 얼굴 , 이 분이 아직 생존해 계시다니 !  ‘ 요석은 저으기 놀란다. 요석의 머리에 기억되는 생생한 기억 ,    요석이 중학교 시절 어느 일요일,  목사님은 설교를 끝내고 강대상에서 내려오시다가  문득 신문 한 장을 펼쳐 어느 한 컷의 사진을 보이시며,


“  이 사람은 신학자이고 목사지만 반드시 천국이 아닌  지옥으로  갈 사람입니다. “ 하는 것이다. 어린 요섭은 그 사람이 지옥 갈 사람이라면 혹시 머리에 뿔이 났을까 ? 하는 궁금증이 나서 목사님을 따라가 다시 사진을 보여 달라고 했다. 기억에 각인된 그 이름, 칼바트, 어린 요석은  그가 아마  담배를 끊지 못하고 늘상 파이프를 물고 있어서 지옥 갈 사람이라고 했나 ? 정도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가 아직 그것도 이 도시에서  생존해 계시다니. 그리고 그를 실제로 만날 수 있다는게 꿈만 같다.


요석은 그에게 꼭 확인하고 싶었다. 기대했던 세미나가 끝난 후 그를 따라가  짧으나마 기회가 있었다.

“ 선생님, 반갑습니다. 한 가지 여쭙고 싶어서요 , “  

“ 뭔가 말하게 “

“ 제가 열다섯 살 때, 우리 목사님이 신문에 난 선생님 사진을 보이시며 이 사람은 지옥 간다 . 하셨는데 선생님, 지옥 갈 무슨 일이 있으셨나요  ? “ 했다. 독일 말은 참으로 냉혹하고 직선적이다. 에둘러 하는,  보다 부드럽고 은유적인 표현이 부족하다. 해서  참으로 난처한 질문을 그대로 직선적으로 할밖에.

노교수는 순간 표정이 굳어지며 눈을 감는다, 그리고 잠시 후 망설이며  말한다.

“ 내가 지금 바쁘고 피곤하여 길게 얘기할 수 없구만, 다음에  다시 연락하지 “

일주일 후 요석은 다시 그 노학자를 찾았다. 그는 저 번 보다 훨씬  평정을 찾은듯 보였다.


‘ 나는 신약을 평생 연구하고  여러  주석과 해석을 달아 많은 저술을 하였네, 그 때 나는 아직 젊었고 자만으로 가득 찼었다네. 내게 어떤 오류가 있으리라곤 전혀 의심치  않았지.

그러나 내 신학 성경에 대한 해설이 하나님 뜻에 맞지 않았던 점도 있지 않았을까.  내 깊이 생각해 보니 그 자만과 오류를 자네 목사님이 바로 짚으셨는지도 모르겠네  “

그 노학자는 매우 곤혹스러운 얼굴로 그러나 담담하게 말한다.

“ 지금은 그 자만과 치기를 깊이 부끄러워 하고 후회하고 있다네. 판단은 주님께서 할 일, 남은 인생에서 더 이상 죄짓지 않고  다만 회개하며 겸손하게 살려하네. “

요석은 노학자의 진심에 찬 깊은 회한과 겸허의  목소리에 질리고 말았다. 그가 예상한 건 기껒해야

“ 우하하 ! ! 내가 아직 담배를 피고 있어서 자네 목사님이 꽤 눈꼴이 시었나부지 “ 이런 가볍고 유머러스한 반응이었는데 너무 무겁고 진지한 대답에 할 말을 잃었다.


신약학을 강의하는  위르겐 몰트만 교수, 그는 신학부 교수 중에서도 가장 존경받고 인기있는 유명한 교수이다. 그의 강의 시간에는 신학부 학생 뿐 아니라 의학부 법학부 학생 대학원생 , 심지어 목사 시험을  통과한 수많은 학생들이 몰려와 열강한다.

어느 날 그는 수업을 시작하기 전 , 교단 앞에서 두터운 성경책 을 번쩍 들고 말한다.

“ 여러분 이 안에 가득 적힌 기록과 내용들을 믿으십니까?”  

한 이백여 명이 모인 ,일층과 이층이  툭 트여  넓은 강의실 안은  다만 조용할 뿐이다. 그 정적이 요석에게는 너무도 길고 답답한 시간이다. 중간 쯤 구석에 앉아있던 요석이 손을 번쩍  든다.

“ 그 기록들은 비록 사람 손에  쓰여졌지만 분명 성령으로 쓰여졌다고 선지자들이 증언 했습니다. “

조용하던 모든 학생들의  눈이 그에게 쏠렸다.

위르겐 몰트만 교수도 그를 유심히 바라  본다.

“ 당신은 독일인은 아니고--   아시아에서 왔소 ?

“ 저는 한국에서 왔습니다 “

“ 흠, 한국은 아직 샤머니즘과 원시종교에 젖어있어서 이걸 무조건 믿는 모양인데 당신이 여기서 신학을 잘 배워보면 아마 믿을 건 아무 것도 없다는 걸 알게 될거요. “

그리고 그는 대중을 향하여 큰 소리로 말한다.

“ 여러분 이 책에서 믿을 건 앞뒤에 있는 검은 색 가죽장정 뿐 , 내용은 아무 것도 믿을게 없습니다 “

하고 단정해 버린다.

요석은 전혀 이해가 안 되었다. 내가 혹 독일어가 서툴러 잘 못 이해한 것인가 ?

집으로 돌아와 룸메이트 클라우드에게 묻는다

“ 내가 잘 못 이해하고 있는건가 ?”

아니, 너는 잘 이해하고 있어 , 근데 뭐가 문제지 ?

“ 성경을 믿지 않으면서 왜 신학을 하지 ?

클라우드는 요석이 제 정신인가 하는 얼굴로 심각하게 들여다 본다. 요석은 흐트러지지 않은 맑은 눈으로  진정이 가득한 의문을 띄고 있다.요석의 진의를 알자 클라우드는 현실에 몽매한 그를 측은한 듯 바라본다.


“ 신학은 틀림없는  제일 고급 학문이지.  학문은 높은데 성경과 신학을  별개로 생각하는거야. 성경에 기록된 연대적 의미, 과학적인 근거 앞 뒤의 인과관계, 그게 모호하기만 하거든 .그걸 누가 믿겠어 ? 우리 신학생들은 이상은 높게, 가슴은 차갑게. 성경을 대하지. “ 하며 어깨를 으쓱한다.

그럼 왜 굳이 믿지도 않으면서 신학을 하는건가  ?”  요석은 묻는다.

“ 그건 대개 스팩의 문제지. 신학대학을  졸업하고  시험에 합격하여 목사가 되면   공직에 우선권으로 진출하여  대우도 좋고 존경을 받거든, 귀족집 딸과 결혼하여 신분상승할 수 있는 좋은 기회도 생기고 말야  하 하,“

사실 당시 독일이나 영국 유럽권에서는 교구제로 나누인 교회에  나라에서 선출한  목사들을   지역따라 임명하여 관할 구역 신도들에게 각종 신권 행사를 위임하고 있었다. 이를테면 유아 출생신고  세례의식이나 혼례 진행, 또는 장례의식까지 서민들 생활과 밀접한 신권행사를 총괄하고 있으니 이는 바로 상당한 명예와 권위가 되는 것이다.


요석은 새삼 룸메이트 클라우드 디터 그레스를 찬찬히 살펴 본다. 허우대 당당하고 반짝이는 푸른 눈 , 최신 유행하는 멋스러운 스트라이프 통 좁은 바지가  그에게  잘 어울린다.


힉교 생활에서 더우기  요석을 혼란스럽게 하는  건 그 당시 즉 1960~70 년 대를 휩쓸던 사회주의 신학 또는 막스주의  신학의 거센 물결이었다. 심지어 위르겐 교수는 사회주의 유물론을 주창한 칼 막스를 신약성서의 사도 바울의 대를 잇는  위대한 사도라고 찬양하는데도 그에게 이의를 다는 학생은 아무도 없었다.심하게 말해서 당시 분위기 신학은   신은 없다고 여기는 것을 전제로 하는 것이다.  다만 성경을 학문적 연구의 대상으로 생각하며 예수는 평화공존의 이상 실현을 위한 철학적이며 개혁적  변론가로 그가 말한 각 구절을 해부학적으로 조직 분석하는 교의적 신학이었다.

요석은 유년시절 부터 마음 깊이 심어지고 성장한 신앙이 여기에선 너무도 다른 시각에서 연구되고 다루어지고 있는 현실이 생소하고  전혀 동의할 수 없는 저항을 느낀다.

어느 날 그는 다시 위르겐 교수를 찾아갔다.

“ 아, 자네 삼위일체 성령의 존재를 믿는 보수주의자 젊은이. 그래 자네가 그토록 그를 믿는다면 내게 그 증거를 보여 주게. 그를 본 일이 있는가 ? 그와 손을 잡은 적이 있었나 ? 그와 대화한 적이 있었나 ? 그 증거를 내게 보여준다면 내 자네와 다시 얘기를 하겠네 “


요석은 사실 위르겐 교수가 요구하는 실체를 확신있게 말할만한 근거가 없었다.

막연하게 위로와 격려의 따뜻한 느낌을 받으며 나름 소신을 가졌으나 구체적 시각, 청각, 또는 촉각의 경험은 없다 즉 신에의 느낌은 내부로 부터 느끼는 것이지, 외부로 실증하기는 어렵다.

대답을 하지 못하고  물러난 요석은 그러나 일말의 확신은 일단  마음 속에 깊이 접어  둔다.그리고 시류에 따라 환경에 따라 수많은 신약 해설집과  종교적  고전 성경 기록을 치열하게 파고 들며 세밀하게  조직 분석하고 유대 역사를 통시적 안목으로  연구하며 구약 성서의 연대기와 대조해 가며  조사한다.

 그러며 칠 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는   각별한 관심으로 지도해 준 위르겐 교수의 촉망받는 제자로 인정되고 그의 강력한 서포트로  박사 학위를 획득하였다.


그리고 본국 ㅅ 신학대학에 초빙되어 한국으로 귀국한다.  그 곳서 < 조직신학 >과목을 강의하는 교수로 재직하게 되었다. 그런데 한국에서 신학대학 분위기는 독일과는 또  다르다. 학생들이지만 이미 교회 부목사를 하는 이도 있고, 여가를 이용하여  개척교회나 , 작은 교회에 전도사로 봉사하는 이들이 많았다.

따라서 이들에게  성경 구절을 낱낱히 이론적으로 해부하고 진위를 논한다는게 도무지 먹혀들지 않고 강의 시간은 냉냉하고 허망하기만 하다.  이들의 뜨거운 열정이 추구하는 바는 하나님과의 믿음과 만남이라는 사실이다 . 이를  알게 된  요석은 자신의 위치에 회의를 느끼며 방황하게 되었다. ‘ 과연 나는 이들의 바램을 충족시키고 있는가 ?

어느 날 한 교단에서 요석을 초빙한 세미나가 있었다 대상은 기존 목사들을이였다.

요석은 나름 정성껒 준비한 주제와 내용으로 진행된 강연이었다. 그러나 , 후에 이어진 질의응답 시간에 한 목사의 신랄한 비판이  요석을 엄청나게 당혹시켰다.

“ 김요석 박사님 , 당신은 독일서 배워 왔다는게 진보 사회주의적 해방 신학이요 ?  그건 쓰레기 같은 칼막스의 사회주의 공산당의 이론일 뿐이요. 그걸 우리에게 믿으라는 거요 ? “

장내는 흥분하고 살벌해 졌다. 아마도 단단히 작심하고 요석을 공격하는 듯 하다. 요석은 당황스럽고 참담하다. 독일서는 보수주의자라는 비판을 받으며 공부했고 한국에 오니 불순한 공산주의를  바탕한  해방신학이라니, 갑론을박으로 소요하는 장내는 일단 온건한 원로목사들에 의해 더한 망신없이 진정되었으나 요석은 뭔가 확실한 결단이 있어야 한다는 걸 확실히 깨달았다. 그래서 기도한다.

‘ 주여 , 제가 어디 부터 잘 못 되었나요 ? 이제 까지의 길도 앞으로의 길도 주님이 인도하심을 굳게 믿습니다. 저는 부족하고 용렬합니다. 다만 주께서 저를 인도하소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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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글을 읽고
    from 장작불을 태우며 2015-02-23 04:47 
    안녕하세요 타오르는 불꽃입니다.신학부문은 전혀 모르는 내용이어서 관심있게 읽고 갑니다.다음회가 기다려지네요.
 
 
성에 2015-02-26 04: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반갑습니다.
부족함이 많더라도 꾸준히 찾아 주시고 좋은 가르침도
기대하겠습니다.
 

연신은 가슴이 터지도록 벅찬 감동으로 산기슭을 통통통 뛰어 내려 온다. 세상에 태어나 살아 오면서 오늘같이 자존감을 벅차게  느껴 본 적이 없다.역시 살아있다는 건 즐거운 일이야

‘ 그 꼽꼽스런 요석 오빠가 설마 내를 마음에 담아두고 있었는지를 내 어찌 알았겠나’ 심장이 너무 부풀어 목까지 꽉 차 오른다.

그러나 곧 연신은 한숨을 포옥 내쉰다.  ‘ 하지만 그 오빤 내게 먼 별빛일 뿐이제. 그와 내 시이에 어디 통하는게 있어야제.내 오빠를 그여코 잡으려 한다면 서로 불행이제. 다만 -- 다만 내 살아온 세월이 헛 것은  아니라는 걸 알았다는거 아이가? 그래도 나는 좋대이.’

마치 무지개 구름 위로 날고 있는 듯 황홀한 기분에 취해있던 연신은 벼락같이  자기를  부르는 소리에 깜짝 놀라 딱딱하고 울퉁불퉁한 돌비탈길에 우뚝 멈춰 선다.

“ 아이고 간 떨어질 뻔 안 했나? 동연아 네 웬일이고 ? “ 손 아래 이제 열 다섯 살인 남동생이다.

“ 누부야 어데 이리 쏴돌아 댕기노 ? 아부지가 지금 큰일났다.”

“ 왜? 어찌된 긴 데? “ 연신도 화들짝 놀라  동생과 함게 허겁지겁 산을 내려와 집으로 향한다.

집안은 썰물이 빠져나간 듯 휑하고 사립짝 문 밖에 마을 노인 서넛, 혀를 끌끌 차고있을 뿐이다.

“ 우리 어맨 어데 갔는데요? “ 연신이 누구랄 것도 없이 외치자 아직 눈믈자국이 마르지 않은

막내 남동생이 뛰어나오며 “ 어맨 아부지랑 병원으로 갔다. “

“ 엄마가 어째 아부지를 업고 갔나? “

“ 아니, 만석 아재가 차를 가지고 와서 태우고 갔다. “

‘ 만석 아재가?’ 되뇌이는 연신은 가슴이 부르르  떨린다. ‘ 안 되는데. 그 사람한테 신세지면 안 되는데.’하지만 연신은 지금 이런저런 생각할 때가 아니다. 차도 끊긴 도로에서  읍내를 향해

냅다 뛰어간다. 한 삼십 여 분 어두운 거리를 달려온 남매의 얼굴은 땀 범벅이고 등도 땀으로 흥건히  젖은 옷이 등에 착 붙었다.

“ 우리 아배는 어디 있십니까 ? “  숨차게 묻는 연신에게 카운터를 지키고 있던 간호사가

“ 여기선 응급조치만 하고 서울 큰 병원으로 가싰습니다 “ 나른하게 대답한다. 이미 밤이 깊은 것이다. 좁은 읍바닥이라 웬만하면 모두 서로 아는 얼굴들, 영신은 간호사와도 약간의 안면이 있다.  “ 언니, 울 아배가 어떻게 아픈긴데요 ?  어떻게 응급했는지 알려주소 . 내 답답해서 안 그러요?  이제 서울 갈 수도 없고. 서울 큰 병원가면 살 수는 있는거라 요? “

연신은 오도가도 못하는 이 밤, 답답한 심사를 간호사에게 매달린다.

“ 아버님은  간경화가 많이 진행되어 있더랍니더 . 간기능이 거의 정지되어 독소가 온 몸에 퍼지고 소화가 안 되어 위 속에 싸인 음식을 세척해내 고 뱃 속에 쌓인 혈변을 관장해 드렸어요.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거기까지고요, 근본적으로 간기능을 다시 살려야 하는데 그 방법이 -- “

자세하게 설명해 주는 간호사의 얼굴엔 안타까움과 연민이 짙게 깔려있다.


차도 인적도 끊어진 어두운 신작로를  터덜터덜 걸어 집으로 돌아오는 남매는 말이 없다. 그러나 마음은 천근만근  태산에 깔려 있다. 저녁녘에 소동으로 저녁밥도 짓지 못하고 불도 때지 않아 싸늘한  방바닥 구들은 고픈 배를 안고 누운 삼남매의 등허리를 더욱 시리게 한다.

“ 누부야, 아배는 살아 돌아 오것나 ? “ 첫 째가 망설이듯 입을 뗀다

“ 에이씨, 아배는 없는게 낫다. 아배는 우리 집안의 흉물이다. “ 열 두 살 막내는 씹 어뱉듯 말한다.

“ 동연아, 정연아 , 그래도 살아가노라면 아배가 우릴 세상에 낳아준게 얼마나 고마운지 알게 될 때가 있어 . 너무 아배를 원망하지 말아라. 그라고 이 누나가 너들을 잘 길러줄 기다. “

“ 피이. 우리도 다 자랐다 아이가 ? “  하는 동연의 말에

“ 아유 요것들, 머리에 피도 안 마른 것들이 “ 연신은 동생들의 머리를 한방 씩 콩콩 쥐어박고  셋이는 큭큭  웃으며 각자 잠을 청한다.

“ 아, 요석오빠를 오늘 안 만났더라면 난 지금처럼 씩씩하지도 않고 자신있지도 못하고 징징 울며 투덜거리기만 했겠지. 오빠는 내 안에 있는 또 다른 나를 일깨워 주었어. 새로 태어난 나는 씩씩하고 당차고 지혜롭고 햐 ! 뭔 일이 닥쳐도 겁내지 안을꺼야 ‘  

심장에서 따뜻한 체온이 모락모락 온몸으로 퍼지고 몸이 따뜻해지자  연신은 평정을 찾아 고요하게  잠이 든다.


과연 연신의 아버지는 살아 돌아오지도 못하면서 남은 가족들에게 엄청난 빚만 남 겨 주고 떠났다. 읍내 병원에서의 치료비는 새발에 피이고 서울 적십지 병원에 입원하여 열흘 간 치료받은 비용은 이 가족들에게는 생전 들어보지도 못한 거금이었다. 그리고 그 곳서 곧장 홍제동  화장터로 옮겨져,  집으로 돌아온 건 흰  보자기에 싸인 유골상자였다.  물론 장례식도 절차대로 규모있게 치루어야 하겠지만 서울서 이 곳 까지 운구하는 비용이며 또 쌀독에 얼굴이 비칠 정도로 말간 집안 형편에 삼일장이니 묘지매입이니 모든게 감당이 전혀 안 되어 이렇게  약식이 된 것이다.

그래도 고마운 것이 이만석씨가 엄마 곁에서 모든 일을  도맡아   급전을 대주고  화장 아이디어나 절차를 밟아준 덕분이다. 덕분이라고 하기에는너무 야박한 감이 없는 것도 아니지만 그래도 아무 것도 모르고 가진 것도 없이 우왕좌왕하며 울고 짜고 할 이 가족을 위해 이만큼 발 벗고 나서 처음부터 끝까지 말끔하게 처리해 준게 감사할 뿐이라 할 밖에.


아버지 곁에서 병수발하랴 , 화장터까지 쫒아다니며 애쓴 어머니는 거의 초죽음이 되어있다. 그래서 하룻 밤을 새우고  다음 날 이른 새벽,  세 남매만이  아버지의 유골함을 가슴에 안고 산길을 오른다. 이 오목한 동네에 살며 가장 높다고 생각되는 산봉우리를 목적지로 하여  올라가는 것이다.산길도 끊어지고 간간히 약초군이나 지날만한 험하고 먼 길을 돌아 올라 드디어 정상에 도착했다. 바람이 거세게 분다. 세 남매는 유골함을 향하여 엄숙하게 세 번 넙죽 절하고 그래도 맏아들이라고   동연이가 침착하게 함 뚜껑을 연다. 휘리릭 바람이 고운 회색의  가루를 휩쓸며 지나간다. 먼저 연신이가 맨 손에 유골가루를 한 줌 쥐고 바람결 따라 사르르 손을 편다. ‘ 아부지 저 세상에서 행복하게 잘 사시이소  ‘ 목이 꽉 차올라 맘 속으로만 중얼댄다. 동연도 한 줌 쥐어 바람에 날리며 코를 훌쩍인다. “ 아부지 죽어서나마 우리 가족들 좀 지켜주시고 도와주소 “ 퉁명스럽게 외친다.

“ 아부지 하늘나라에서 이젠 술 좀 작작 마시이소 “ 막내 정연이 악을 쓰듯 말한다. 얼굴은 이미 눈물로 가득 젖어있다. 셋은 서로 손을 잡고 주저앉아 마음껒 소리내어 엉엉 울어 버린다.

얼마 후 , 그들은 슬프고 허전한 마음으로 산길을 터덜터덜 내려 온다. 그러나 산을 올라갈 때 보다 발걸음은 한결 가벼워졌다.


일이 어느 정도 일단락되자 이 번엔 어머니의 시름이 깊어간다.

“ 니 아부지 치료비랑 입원비, 기타 경비로 만석아재께 빌린 돈이 십이만 팔천 원 쯤 된데이. 이걸 어찌 갚아야 하것노 ? 물론 만석아재는 재촉은 안 하고 있지만서두, 그 집이 꽤 부자라카지만  그만큼 신세를 지고도 가만 있음 이게 사람짓이라 할꺼로 ? 어째야겠노? “

두 동생들은 벌써 입이 쑥 나오고 눈알을 부라린다. 다시 아버지에 대한 원망과 미움이 쏟아질 판이다. 그들이 입을 열기 전 얼른 연신이 말한다.

“ 어무이 너무 걱정 마소. 설마 산 입에 거미줄 치것소 . 내 생각이 있으니께니. “

순간 엄마의 눈과 연신의 눈이 날카롭게 마주치며 챙 쇳소리가 들린다.

“ 앙이 된다. 택도 읎는 소리 생각도 마라 “  엄마는 홱 돌아 이불을 쓰고 누워 버린다.

사실, 이 만석씨는  몇 년 전 상처하고 어린 두 남매를 기르고 있는데 ,  작년 갈,  먼 친척 할매를 중간에 넣어  은근히 청혼을 한 일이 있었다. 열 여덟 연신과 거의 나이 두 배, 그리고 키워줘야 하는 어린 아이들, 아무리 그 사람됨이 덕망있고  살림이 윤택하다 하지만 안 될 일이라 하여 어매는  영신의 어린  나이를 핑게삼아 딱 자르고 더 이상 말도 못 꺼내게 하였다.

‘ 그가 우리에게 무한 호의를 보인 것은 빼도박도 못하는 함정이 깔려 있는게 아니것 나 ‘ 연신과 어매의 마음을 더욱 무겁게 하고 조바심치게 만든 원인이다.

그러나 연신은 생각한다. ‘ 내가 우리 집 안의 살림밑천이다이 . 꽉 막힌 집안 형편에  열쇠 노릇이라도 할 수 있다면 그게 얼마나 다행인가  ‘


내린 눈이 녹을 새도 없이 첩첩이 쌓이고 매운 바람이 얇은 스레이트 지붕과 흙벽을 핥듯이 유린하던 음울한 겨울이 지나갔다. 양지터에 햇살이 한결 상냥해지고, 앙상한 가지만 세찬 바람에 하느적대던 수양버들도  나날이 연두빛이 짙어가는  봄이다.

연신은 큰 맘 먹고 읍내로 나가 미장원에 들렀 다. 이제까지 손대지 않고 칠칠하게 길렀던 머리를 풀어내어  귀밑 단발로 쌍둥 자른다.

그 다음엔  옷가게에 들러 포기배추 속고갱이같은 노란빛 어린   연두색  불라우스, 그리고 깊은 바다 물색같은  군청색 주름치마를 산다. 아래 위 입어보고 ,  얼마전 아배를 여읜 상제로서의 처신을  벗어난 건 아닌가 곰곰히 들여다 본다. 그러나 앞 이마위로 가지런히 꼽은 조그만 흰빛 리본달린   실핀이 모든걸 한 눈에  정리해 준다.

며칠 후 읍내 한 다방에서 영신은 이 만석씨를 만났다.

“ 연신아 네가 웬 일이고 ? “ 먼저 와서 새초롬히  앉아있는 연신을 눈 부신듯 바라보며 만석씨는 싱글벙글 웃는다.

“ 아자씨 안녕하싯습니까? 바쁘신데 폐가 되는건 아닌지요 ?”

“ 내사 바쁘기는 뭐 --” 하는 이 만석씨는 사실 바쁜 시간에 매달린 사람은 아니다. 읍내 노른자위땅에  기다란 상가 건물은 세입자들에 의해 장사가 잘 되고 두둑한 보증금을 깔고 앉아 그 위에  매달 월세만 챙기면 된다. 그리고 그가 운영하고 있는 마을 금고, 여기도 주사 한 사람에 여직원 둘,  사환 한명으로  척척 잘 돌아가며 만석씨는 금고에 쌓인 돈의 출납과 사장으로서 직함으로 유지들과의 교류, 돈의 흐름을 잘 간파하며 적절하게 손을 쓰는 그런 일들을 시간 제약 없이 느긋하게 관리하고 있는 것이다. 부동산으로 논마지기와 밭도 적잖이 소유하고 있으나 모두 소작인의 손에 부쳐 가을 추수만 관장하면 집안의 가용과  식량, 몫돈도  넉넉하게 충당되며 재산이 쌓여간다.

만석씨는 손목 시계를 들어 보이며  “ 아따, 점심시간이 됐네 그려, 어데 가서 식사나 하며 천천히 얘기하제 “ 자리를 털고 일어선다.

읍내 거리에서 제일 크다는 용궁각 중국요리집으로 앞서 들어간 만석씨는 반겨 맞는 뽀이에게 귓속말을 한다. “ 예이 예 ! 알겠슴다. 이리로 오시소 “ 안내된 방안은 밖의 소음이 완전 차단된 고요하고 말쑥한 방이다. 뽀이는 두툼한 비단 방석을 내놓으며 주문을 받는다.

사실 연신에게는 처음 와보는 무척 생소한 곳이다. 그러나 스스로 촌티내지 말자 , 기 죽을거 없어. 주문처럼 뇌이며 침착하게 방 안을 살핀다. 뽀이가 나가고 잠시 망설이던  연신은

“ 인사가 늦었십니다 ,  제 아배의 일을 잘 돌봐 주세서 고맙습내다. 아저씨 아니었으면 어쨋을까 아찔하구먼요.  정말 감사합니다.” 공손히 머리를 숙인다.그리고 만석씨가 대답도 하기 전에 말을 계속한다.

“ 요즘 어매가 걱정을 많이 하십니다. “  “ 머를 ? “ 만석씨가 눈을 치뜨며 묻는다.

“ 너무 많은 신세를 져서 이를 어찌 갚나 하고 말입니더. “

만석씨는 잔잔한 웃음을 띄우고 연신을 본다. 살집좋은 두툼한 얼굴에 코가 너부죽하여 연신에겐 천만 낯선 얼굴이다. 그러나 약간 아래로 쳐진 두리두리한 눈매는 사납지 않다.

또 연신이 먼저 입을 뗀다. 마치 신중하게 써놓은 원고를 달달 외어 그걸 까먹을까봐 성급하게 써내려가는 논술 시험지 같이.

“그래서  제가 생각했십니다. -- 제가  아제씨 집으로 들어가 살림을 살아주면 안 되겠습니꺼 ? “

마침 노크 소리가 들리고 주문한 요리가 몇 접시 들어 온다.  양파와 고기와 버섯을 넣어  볶은 화려한 색감의 음식, 거창한 기름냄새, 생전 첨 보는  요리며 냄새지만 이에는 전혀 신경 쓸 수  없는 연신.

만석씨도 이제까지 재미있다는듯이 웃음짓던 얼굴이 굳어진다.

“ 그 무슨 뜻이고 ? 네 살림 산다는 말의 의미나 알고 하는 말이가 ? “

연신은 눈 하나 깜짝않고 그를 마주 본다. 얼굴이 하얗게 질려있고 칼로 그은듯 붉은 입술이 야무지다.  “ 제가 아아들의 엄마 노릇도 잘 하겠십니다. 제 두 동생들도 제가 키운거나 잔배없어 아아들을 잘 다룹니더. “

만석씨가 어이없다는 듯  피식 웃는다.  연신을 바라보는 눈도 한결 부드러워진다.


‘ 알았다  알았어, 네가 효녀 심청이맹쿠로  인당수로 뛰어드는구나.  “

한심하다는 듯, 비웃는듯 하는 그의 말에

‘ 아임니더, 그건 아이고요 제 하나로 여러 사람들이 행복해지기를 바래는 맘 뿐입니다. 지도 행복하면 더 바랄 것두 없겠지만서두 “  

요건 원고지에 없던 말이다. 아직 원고지에 써 놓은 말을 다 끝내기도 전에 불쑥 나온 말이다. 감히 내 행복을 꿈꾸다니. 또 원고지에 없던 돌발상황, 후두둑, 눈물이 떨어진다. 요건 전혀 계획에 없던 순서인데 감정의 통제가 안 된다. 후두둑 눈물 따라 흐느낌마져 따라 온다.

무너져 버렸다. 연신의 계획과 통제가 와락 무너져 버리고 열아홉 철부지 여자애의 여리고 겁나는 속살이 그대로 드러난다. ‘ 다 망친게 아이가 ‘ 부끄러움과 실망으로 연신은 엉망진창에 빠져 그대로 엎드려 흐느낌에 맡겨버린다

“그라믄  네 행복은 내 책임이 되겠구마  “  의외에 그의 목소리가 가까이서 들린다. 어깨에 얹은   그의 두툼한 손도  느껴진다.  그가 곁으로 다가와 연신을 가볍게 안은 것이다.

“ 자자, 밥부터 먹자. 다 식는거 아이가 , 어서 먹자 “

그는 연신의 접시에 음식을 몇 가지 덜어준다. 한 번 더 어깨를 토닥이고 난 후 ,그는 몸을 일으켜 그의 자리로 들아가 천연스레 식사를 시작한다. 좋은 먹성이고 침착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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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삼촌, 저는 그냥  여기 근처에 있는  근명 종합 기술 학교에 진학하고 싶어요.

졸업하면 외삼촌과 농사지으며 잘 모시고 살께요 “

요석이 서울 K중학교에 합격 통지를 받은 날,  요석은 외삼촌  부부 앞에 어려운 청을 한다.

그러나 외삼촌  부부의 대답은 단호하다.

“ 네 아버지와 어머니는 괴뢰군 앞에 예수 신앙을 지키려다 순교한 분들이다. 어린  너를 우리에게 밑기시며 너를  굳센 믿음의 자식으로 키워달라  부탁하셨어. 부모님의 소망을 잊으면 안 된다. 우리에게도 이런 특별한 임무가 있어 너를 평범하게 키울 수가 없구나.”

외삼촌의 엄격하고도 결단에  찬 음성, 그리고 외숙모님의 눈물 가득한 슬프고 간절한 시선,

요석은 더 이상 고집을 피울 수 없다.

요석의 아버지는 시골 자그마한 개척 교회의 목사였다.

육이오 변란 때, 괴뢰군들은 이 작은 시골 마을까지 들어와 교회와 신자들을 박해했다. 그리고 끝까지 신앙을 지키며 오히려  그들을 회개시키려는 요석의 부모는 최고 악질 반동으로 몰려 깊은 산 속으로 끌려가 총살당했다.미리 피신시켜 달아났던  외삼촌 부부의 덕분으로  생명을 지킨  요석의 나이 , 그 때, 겨우 다섯 살,

신앙 깊은 외삼촌  부부는 요석을 순교당한 부모의 아들로서 그 부모의 대를 잇는 신실한 교역자로 키우기로 굳게 결심하신 것이다.



요석이 서울 k 중학교와 K고등학교 6 년의 교육과정을  졸업하고  Y 대 신학대학에 무난히 합격된 뒤 요석은 다시 한 번  외삼촌 부부 앞에 무릎을 꿇었다.

“ 외삼촌, 저는 그냥 보통의  남자가  되어 외삼촌을 어버이로  섬기며  아내랑 아이들이랑 한 가정을 이루고 평범하게 살고 싶습니다. 저는 특출난 인간이 아닙니다. 신학교 포기하겠습니다.”

그 동안 요석을 뒷바라지하느라 힘들게 농사지으며 살아 온  세월 속에 한결 늙고 초췌한 모습의  외삼촌  부부는 여전히 고개를 가로 흔들며 단호하게 답한다.

“ 요석아, 너는 한 두  인간, 가족만이 아니라, 세상에 많은 가난하고 힘들게 사는  사람들을 위해 네 힘을 쏟아야 할 사명이 있다. 그걸 명심하고    거역하지 말아라. 그리고 네 모든 고민이나 걱정은 주 님께 맡겨라.하나님은 반드시 너와 함께 계시니 너를 잘 인도해 주실게다.”


요석은 언젠가 부터 기도가 낮설지 않다. 고요한 가운데 눈을 감고 높은 그  곳으로 정신을 집중하면 한없이 부드러운  기체가 자신을 감싸는듯  누군가의 따뜻한 숨결이 느껴진다. 신의 숨결일까? 하늘에서도 아들을 위해 신께 중보소망을 올리는 부모님의 숨결일까. 잘 모르지만 요석은 편안하다. 그래서 청춘의 회오리치는 욕망도 외로움도 느끼지 않고 십대를 공부와 독서와 사색으로 십대를 보냈다.

그런데 오늘의 기도는 특별히  간절하다.

‘ 하나님 , 저는 못나고 부족한 인간입니다. 주님의 사명이란게 저로선 두렵고 겁이 날 뿐입니다.

무엇보다 저는 착한 여자를 아내로 맞아 아이들을 낳고 외삼촌 , 외숙모를 부모삼아 평범하고

건실하게 살고 싶습니다. 허락해 주소서. 응답해 주소서.’

젊은 요석의 기도는 마음 깊은 염원을 담고 있었으나 아무런 응답이  없다. 그러나 요석은 자신을 응시하는 슬프고 근심에 찬 깊은 시선을 온 감각 으로 느낀다. 따뜻한 에너지가 전해져

심장이 쩡하니 울린다. 요석은 가만히 한숨을 내어쉰다. 


며칠 후 요석은 뒷산 얕으막한 빈터에서 연신을 기다린다 .

그 빈터는 웬만한  야구장 넓이로 한 편에는 나무로 만든 철봉틀,  그리고 역시 다듬지 않은 거친 나무로 만들어진 긴 의자 ,  이곳은 이 마을에 아이들의 놀이터이고 어르신의 마실 터, 한여름 개를 잡아 보신탕을  추렴하기도 하는 마을 모두의 쉼터이다.  

한 밤 어두울 땐 , 때로  젊은 청춘, 그들의 은밀한 밀회장소가 되기도 하는 곳.

아직 해는 지지 않았지만 석양이 멀지 않아 하늘은 연한 살구빛이다.


별로 변할 것 없는, 어렵고 궁색한 삶이였을 터이나 연신은 그럼에도 훌쩍 자라 호리호리한 몸매, 가느다란 종아리가 회초리처럼 날렵하고 탄탄하다.

이제 조금 더 석양이 짙어져  발그스레한 복숭아 빛 하늘을 배경으로 서있는  연신을 요석은 찬찬히 바라 본다.

까무잡잡한 얼굴이 매끄럽고 요석을 바라보는 그녀의 눈이 가을 포도알처럼 깊게 빛을 빨아 들인다. 그리고 야무진 입술.

“ 연신아, 네가 많이 생각나더라,언제나  궁금하고 걱정되고 .”

“ 피이, 그짓말 마라. 그란데 편지 한 장 없었노? “연신은 옛날 도시락 같이 먹던 때 모양 허물없이 입을 비쭉한다.  

“ 그러치만  네게 잡념이나 욕심을 품은 적은 없어, 다만 너를 언제나 항상 지켜주고 싶다는 생각이-- 거기에 내 인생을 몽땅 바친다 해도, 그래도  괜찮다는 생각을 때때로 했어. “

“ 오빠야 그기 뭔 소린고? 내도 오빠에게 아무 것도 바란게 읎다. “

“ 근데 내 외삼촌은   내게 더 많은 사람들을 위해 내 인생을 살라고 하신다. 그게 하나님이 내게 주 신 사명이라고. “



요석은  이제 해가 떨어져 서서히 부드러운 비둘기 빛으로 변해가는 하늘을 바라보고 있다.

하얗고 뾰죽한 옆 얼굴, 검은 눈은 한없는 걱정스러움과 우수를 담고 있어 연신과의 만남은 차라리 그의 또 다른 하나의 십자가이다.


연신은 애초  감히 요석 오빠를 마음에 두지 않았다.

으젓하고 수재이고, 서울서도 최고의 학교를 다니며 마을 소문으로 그가 제일 훌륭한  신학대학에 진학한다는 소식도 들었다. 그러나 국민학교 때부터 각별한 친절과 이해로 더없이 다정하고 친했던 오빠. 너무 좋기만한 하늘에 별 같이 빛나는 요석 오빠.

“ 오빠야, 나는 누구의 보살핌을 받을 사람은 이니제. 오히려 내가 보살펴야 하는 내 가족이 있데이, 아버지도 이제 힘이 빠져 처량하게 누워 지낸데이. 어매와 난 우리 가족 사는 일에 보탬 이 된다면 무슨 일이고 열심히 한데이, 난 바쁘고 책임이 크니 난 내삐리 둬라.

그리고 오빠야, 난 잘 모르지만 오빠의 받은 바 사명을 잘 이루거라. “

연신은 비록 국민학교만을 졸업했으나,지난  6 년의 험하고 고달픈 세월이 스승이 되어  더더욱 어른스럽고 야무져  있다. 요석은 오히려 자신의 여리고 허약함을 느끼며 할 말을 잊는다.

요석은 연신의 어깨를 조심스럽게 보듬어 안으며

“ 정말 굳건하게 살아라, 정 어려울 땐 날 찾아 오너라.”

하고 등을 토닥인다.

그리고 속으로 다시 한 번 되뇌인다.

‘ 내가 사랑하여 지켜주고 싶은 한  가족, 나의 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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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아침,

뽀오얀 안개가 사방을 빈틈없이 채우고 있다. 우유빛 기체는 자잘한 물기 머금어 무겁게 아래로 쳐지고 나뭇잎 풀잎에 이슬로 맺히며 또르르 또르르 굴러 내린다.

온 세상 소음은  안개가 모두 먹어치운 듯 적막하다. 풀벌레들의 기척도 찾을  수 없다.

발 밑 삼 사미터만을 내려다 볼 수 있는 가시거리에, 새로 밀어낸 신작로의 하얀 흙과 자갈이 습기로 차분하여  한낮 땡볕 아래 그 뽀얀 흙먼지는 비현실적인 기억이다.


언뜻 멀리에서 부터 도란도란 말소리가 들려 온다. 자박자박 가벼운 발자국 소리도 들린다.

계속 재잘대는 쪽은 어린 여자아이, 그리고 가끔 짤막한 댓구로 응수하는 사내아이. 차츰 목소리가 가까워지며  등교하는 초등학생 두 아이의 모습이 안개 속에 윤곽부터 서서히  드러난다.

“오빠야  니 오늘 점심밥 건건이는 뭐꼬 ? “ 묻는 여자아이.

“ 응 외숙모님이 싸주시는 대로 들고 나와서  나도 모 르겠는데.” 남자 아이는 싱겁게 대꾸하고

“ 너 오늘 밥만 싸왔구나, 점심시간에 느티나무 아래로 나와. 같이 밥 먹자” 부드럽게 말한다.

남자아이는 까까중 머리에 책보자기를 왼쪽 어깨부터 오른 쪽 허리께에 비스듬이 둘러 묶고 여자아이는 책보자기를 허리에 감았다. 그리고 손에 들린  작은 베보자기 보퉁이에는 소중한 점심 밥이 들어있다.

요석은 어젯 밤에도  바로 뒷집 사는 연신이 집에서 일어난 소동을 알고 있다. 번번히 일어나는 소동이라 놀랄 것도 없다 .  그건 연심의 아버지가 술이 잔뜩 취해  들어와서는   늦은 저녁상에 둘러 앉아 먹는 자기 식구들의 밥상을 뒤엎고  잡아 족치는 것이다.

그 바람에 연신이와 엄마, 어린 두 남동생들은 밥도 다 먹지 못한채  구석에 오그려 공포에 떨다 그대로  잠 들어버린다는 것도 요석은  사진을 보듯 훤히 안다.

연신이는 오늘 아침 일찍 일어나 어제 저녁 내동댕이 쳐져 흐트러진 밥알을 대충 모아서  밥그릇에 담아 왔다는 말을 장황하게 하지만 듣는 요석은 가슴 속에 뜨겁게 차오르는 연민을 차마 말하지 않는다.

외삼촌과  외숙모도 그 소동을 들으며 탄식 하시지 않던가

‘ 저 한서방이  어서 회개하고 교회에 나와야 저 집 식구들이 살아날텐데, ‘

“ 그러니 여보 저 가족들  구원을 위해 우리 더 열심히 기도 합시다”

요석은 외삼촌 부부의 두런거림을 들으며 연신을 걱정하며 힘들게 잠을 청했다.


학교 뒷편의 그늘진 커다란 느티나무 아래,

아이들은 운동장에 모여 노느라,  여긴 조용하고 웅숭깊다.

요석이 기다린지 얼마 안되 연신이 통통 뛰어 온다. 두 손으로는 점심 밥 그릇을 감싸듯 들고서.

요석은 자기 점심 보자기를 끌러낸다. 밥주발과 따로이 싼 벤또에는 계란말이 , 멸치볶음, 그리고 무장아찌도 들어 있다. 연심이는 얼른 무짱아찌를 집어들어 이 세상 더 없이 맛있는 음식처럼 아삭아삭 먹성 좋게  씹는다.

“요석이 오빠야, 난 오빠가 있어 참 좋아 “

“ 연신아 이 계란말이와 멸치 볶음도 먹어,  많이 먹어.”

둘이는 각자 싸온 점심밥을 맛있게 먹는다. 물론 연신은 오빠의 반찬을 실례하고 있지만 망설임이나 거리낌은 별로 없다.

요석은 잠시 먹는 일에 열중한 연신을 본다. 볼살이 통통한 연신은 이제 사학년이고 집에 가면 일 나간 엄마를 대신하여 동생들을 돌봐주고 저녁밥도 해내느라 손은 어린애답지 않게  거칠고 뻣뻣하다.

요석은 문득 가여음과 귀엽고  사랑스런 느낌이 벅차게  목으로 차오른다. 언제까지나 자신이 연신에 곁에 있어 연신이 배곯지 않고  편하게 살도록 지켜주고  싶다는 성숙한 생각을 해 본다..

“ 요석이 오빠야, 내년이면 니 졸업이네. 상급핵교 진학은 준비하고 있나?”

열심히 밥을 퍼 먹던 영신이 문득 생각난 듯  묻는다.

“ 물론 그러제, 외삼촌과 외숙모님은  내를 서울 핵교로 보낼려고 하신다.”



“ 니 공부 잘 하나, 서울은 되기힘들다든디”

“ 그러나 마나, 그건 걱정 없데이 . 그란디 -- “

“ 그란디, 뭐?”

요석이 마냥 머믓댄다. 요석은 연신을 두고 떠난다는게 너무 믿업지가 않다. 술주정꾼인 아버지 밑에 가난한 살림, 그리고 두 어린 동생의 큰 언니, 연신의 짐이 너무 애처러워 요석은 차마 떠난다는 말이 쉽지 않다.

‘ 연신아, 너 마음 굳게 먹고 살아야 한다. ‘

눈을 호둥그레 뜨는 연신을 바라보며 요석 혼자 입 안으로 중얼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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