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갑게도  동생 정연으로부터 항공우편이 왔다. 이민허가가 떨어졌으니  수속을 밟고 어서 오라는 내용이다. 수속하는 과정을 자세히 설명하고,  항공료도 예납해 두었으니 비자 발급이 완료되면 곧 오라는 것이다.

너무 반갑고 고마운 정연의 편지, 이건 지옥불 구덩이에서 파뿌리 한 줄기에 의해서 벗어나는 기분이다. 말도 통하지 않고 먹고 살 길도 막막한 이국에 가서 어찌 사냐하는 건 걱정도 아니다.

연신은 예나에게도 비밀로 하며 차근차근 준비해 나갔다.

집 문제는 어떻게 하지 ? 한편 생각하면 애엄마에게 마안하다. 비록 유부남인 줄 모르고 변기섭과 사랑에 빠졌다  해도 애멈마아겐 변명거리도 안 된디. 아이들에게도 미안하다. 비록 본의는 아니었지만 아빠의 사랑이 걔들에게 함뿍 쏟아져야 하는데 그의 사랑을 내가 도둑질했다. 그 가족에게 사죄도 할겸  아빠와 함께 오롯이 살 수 있도록 집은 그대로 놔 두자.

 

연신아, 어떻게 그렇게나 냉정할 수 있는 거니 ?”

이민 수속을 하기 위해 퇴거신고를 한 것이 그 동직원 동료에 의해 알려진 모양이다.

그는 연신이 일하는 식당까지 찾아 왔다. 연신의 사정을 잘 아는 주인 아주머니가 밉살스런 눈총을 마구 쏘아대는데도 그는 끈질기게 연신만 쳐다본다.

연신은 그를 데리고 옆 다방으로 갔다.

변선생님, 그동안 감사했어요, 저를 가르쳐 주시고 또, --- 사랑해 주신 것도. 그러나 우리 여기까지가 끝이얘요. 알면서 짓는 죄는 저도 용납되지 않아요. 저를 선선하게 보내 주세요.

 

연신은 어둠이 짙은 밤, 간소한 짐을 꾸려 예나의 손을 잡고 집을 나섰다.

변선생 가족을 만나서 이별의 인사를 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 탐욕과 이기심, 악의로 가득 찬 이들에게 무슨 대화가 필요한가.

예나야, 우린 미국으로 가서 새롭게 시작하는거야. 엄마는 더 똑똑하고 씩씩해 질거야. 예나가 곁에 함께 있으니 난 용감한 엄마가 될꺼야.”

예나는 대답이 없다. 낮에 학교에서 반 친구들에게 이별의 인사를 한 것이 아직도 서운하고 슬픈  것일까,

예나야, 우리 미국 가서 살면 뜰이 넓은 집에서 꽃도 가꾸고 예쁘게 꾸미고 살자. 예나는 학교에 들어가 신기한 미국 친구들도 많이 사귀고, 또 공부 열심히 해서 어마어마하게 큰 대학도 다니고 멋진 사람으로 자랄거야. “

김포 공항 로비에서 밤을 지새운 연신 모녀는  다음 날 아침 일찍 출발하는 마국행 비행기에 용감하게 몸을 실었다. 이 오욕으로 멍든 땅을 떠나 새로운 출발이다

알라스카 앵커러지 공항을 거쳐 뉴욕 케네디 공항에 도착한 것은 13 시간울 거친 한낮이었다. 짐을 찾아 출구로 나오니 정연 부부가 마중 나와 있었다.

예나는 신기한듯 사방을 휘돌러 보다가 외삼촌과 인사도 변변히 하기 전인데

외삼촌 우리가 비행기 안에서 하루밤 잤는데 왜 여긴 아직 우리 한국서 출발한 날짜 그대루여요 ? “ 벽 정면에 대형 시계를 보며 묻는다 .

하 하 예나는 그것이 궁금하구나. 동서양의 위도에 따른 시차가 있어서 그렇단다. 한국이 약 14 시간 앞서 가지. 그런데 외숙모에게 인사해야지, 내 아내란다.”

연신도 처음 대하는 손아래 올케에게 반갑게 인사한다.

뉴저지 남부 프린스턴 지역에 사는 정연의 집은 지은지 얼마 안 된듯 산뜻하고 쾌적하다.

잘 손질된 넓은 잔디와 잘 꾸며진 꽃밭은 파스텔톤 물감을 뿌려 놓은 듯 화려하다.

정연의 처는 치과의사로 일하고 있으며 정연은 로우스쿨에서 국제 변호사 자격을 따기 위해 아직 공부를 계속하고 있다고 한다.

36 개월 쯤 되는 어린 사내아이가 있어 예나는 금방 그 아이와 어울려 데리고 논다. 예나는  어린 동생이 있다는게 엄청나게 기쁜 모양이다.

동생 부부는 무척 바빳다. 아침 일찍 각자 차를 타고 나가면 올케가 6 시 쯤 들어오고 정연은 좀 더 늦게 들어 온다. 로열자격 시험 날이 가까워져 도서관서 공부하고 오느라 늦는다 했다아이는 엄마가 출근하러 나가는 길에 데이케어에 맡기고 저녁에 퇴근하며 데려온다고 한다. 낮에는 메이드가 들러 4 시간 동안 청소, 빨래, 음식을 만들어 놓고 우렁각시처럼 사라진다고 한다.

올케, 내 있는 동안은 내가 집일 다하고 아기도 봐 줄께. 집 일은 걱정 뚝 끊고 너들 일이나 열심히 하그라. “

형님도 여기 정착하기 위해서 준비할게 많아요. 그걸 다 마스트하려면 바쁠거얘요  미국 2세대인 올케는 다행으로 한국 말을 대충 한다. 대학시절 여름 한 철이면 한국에 나와 한국어 학당에 다녔던 덕분이다.

한국 말 뿐이얘요 ? 거기서 정연씨도 만났잖아요 ? 일차 사법고시에  합격한 사람을 제가 유혹해서 미국으로 데리고 왔지요. 호 호하며 꾸밈없이 웃는다.

올케는 순수하고 상냥하다. 연신의 걱정스런 얼굴을 보며 위로하듯 말한다.

염려 마세요. 정연씨는 잘하고 있어요. 이 번 시험에서 꼭 붙으리라 믿어요

예나를 학교에 전학시키고 연신도 일주일에 두 번 운전 교습을 받았다. 기초 영어라도 익히기 위해 이민자들을 위한 교육기관 ESL에 등록하여 공부도 한다.

모든게 만족하고 희망적이다. 정연이도 올케의 낙관적 예측대로 무난히 합격했다.

자동차 라이센스를 획득한 연신이 중고차나마 하나 얻어 직접 운전하며 예나와 아기 리안을 학교와 데이케어로  라이드하며 미국 생활을 익혀 갔다.

 여름 날 뒤뜰 데크에서 구워 먹는 소고기나, 생선 바베큐의 맛이라니.

연신은 과거의 어두운 기억을 씻어내고 예나와 함께하는  새로운 가능성, 희망에 힘을 낸다.

 

어느 날 저녁 식사 후. 올케와 예나는 각자 방으로 올라가고 정연과 마주 앉았다.

내 커피 한 잔 내려줄까 ?”

아니, 누나 오늘은 누나와 와인 한 잔 하려구

와인 한 병과 잔 두 개를 내 온다.

누나가 정착할 기반을 더 마련해 줘야 하는데 미안하게 됐어.”

정연은 와인을 한 모금

. 사실 벌써 부터 계획이 있었는데 우리가 좀 늦춘거야. “

여기도 살기 좋구만 왜 그 먼 대로 가노 ? “

거기에 와이프나 내게 좋은 찬스가  있어 . 놓치기 아까운 기회야. 와이프의 친인척이 모여 살기 때문에 입지도 든든하고"하며 와인을 마신다. 무척 면목없는 얼굴이다.

왜 무슨 일인데 ? “

우리가 서부 샌프란시스코로 이사를 가야 해.우리가 장차 더 큰 기대를 갖고 있어. “

더 큰 기대라고 ? “

뭐 안 될 것도 없지. 지방 판사나 국회의원이나, 난 자신 있다구 .”

과장하며 하하 웃는 정연 . 장하다 정연아, 네 꿈을 이루어야지

그런데 낸 우찌 살아야 하노 . 연신의 머릿 속은 또다시 복잡해 진다.

연신도 얼결에 와인을 한 모금 꼴깍 마신다.

동연 형이 한국서 인편에 돈을 보내 왔더만. 누나 살만한 발판을 만들어 주라고. 내 누나 이름으로 예금해 두었어. 뭘 할지 연구해 봐.”

갸가 농투성이 갸가 무신 돈이 있다고, ---- 얼마나 보냈대 ?”

적지 않은 돈이야. 5만 불 쯤 되더군. “

 

연신의 홀로살기 프로젝트는 여간 비장한게 아니다.

우선 불랙퍼스트 가게에 일자리를 찾았다. 새벽 6 시 부터 오픈하는 이 곳서는 즉석에서 간단히 만들 수 있는 샌드위치나 핫도그, 볶은 소고기나 닭고기를 치즈와 함께 바켓빵 가운데 끼워 넣은 치즈 스테이크, 그리고 커피 쥬스 등의 다양한 음료를 파는 가게이다. 이 가게를 선택한 것은 새벽 일찍 일을 시작하지만 불랙퍼스트 , 브런치( 중간참 ) 런치까지 만 써빙하고 장사를 끝내 두 세 시 쯤 문을 닫는다는 것이다. 오후 시간을 예나와 같이 보낼 수 있는 시간 여유가 생기는 것이 맘에 든다.

과정이 간단하고 시설이 좋아 일에 곧 익숙해지며 연신은 이에 재미마져 났다.

거처는 예나 학교 근처의 아파트로 옮겼다. 주변 경관이 깔끔하고 살림에 필요한 모든 가구들이 구비되어 있어 당장 들어가 사는데 불편함이 없다.

인근 교회에도 이름을 올리며 이제보다 더욱 신앙생활에 집중하려 맘 먹는다.

연신의 미국살이는 연착륙으로  순조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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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예나의 걱정이 사실로 되어 있었다.

집으로 들어서니 자기네 식구들이 안채를 차지하고 있다안방 건너방의 번듯한 살림가구는 그냥 뇌두고 허접스런 물건들만 이랫방으로 어지럽게 던져 놓았다.

어이가 없어 입만 벌리고 섰는 연신에게 닥아온 건 애들 할머니.

내 아들하고 많이 얘기해 봤다. 걔는 너와 절대 헤어질 수 없다 하더만. 그렇다고 엄연히 애까정 딸린 눈 시퍼런 조강지처를 내친다 말가, 그도 안 될 말이고만, 우리 집안이 모여서 의논을 했다 아이가. 둘이서 여기 한 서방 섬기며 오손도손 살아라카이. 우리 늙은이는 내려가 시골살이 하려니 우리 걱정은 말더라고. “

마치 큰 맘 쓴듯 나직나직 부드럽게 말한다. 연신은 숨이 콱 막혀 내쉬지가 않는다.

얼른 냉수를 한 컵 마시고 겨우 진정하며 묻는다.

그 사람이 이렇게 하자고 했습니까 ?  공무원씩이나 되서 법률상 축첩은 안 된다는거 모른답니까 ? “

그라이 우리끼리 조용히 살면 되는기 아이가 ? 자네도 알고 봉께 의지가지 읎이 딸 하나 델고 사는구만, 서로 기대 감서 의논껏 살면 안 되겠나 ? “ 할메는 어설프게 웃는다

내 아들 갸가 자네를 무척이나 고이더구마. 쟈와 갈라선다고 야단했쌋는데 오매, 쟈가 애엄씨가 되어 씨알이가 먹히나 그나마 자네를 받아들여 함께 살겠다고 하는 것도 크게 양보하는겨

 

지는 그렇게 죽어도 못합니다. 말이나 되는 소립니까 ? “ 연신의 음성이 높아진다.

부엌에서 은근히 엿듣던 애어메가 우르르 뛰어 나오며 갈구리 손을 들어 푸들푸들 떤다.

오매,오매 이 빤빤한 년 좀 보소. 남의 서방 뺏은 년이 아주 서방 독차지하겠다네.

내 그만큼이나 이해하고 양보해서 서방 양 쪽에서 이렁저렁 살락켓는데 이년 욕심이 무지하고만이라. “

난 당신 서방 가운데 두고  같이 살고 싶지 않아요. 다 소용없으니 애들 데리고 어서 이 집을 나가세요. 안 나가면 경찰에 신고할 거얘요.”

연신도 이 번은 질 수 없다하고 야무지게 나간다. 경찰에 신고한다는 말에 두 여인은 주춤 겁을 먹는다  그들이 쫄은 틈을 타 더 강도 높은 엄포를 놓는다.

어디 주인 없는 틈을 타 안방을 차지하고 주인을 뜰아랫방으로 내 몰아 같이 살자 합니까 ? 내 보기에 당신네들은 흉악한 도둑들입니다. 어서들  썩 나가소 ! “

 

이튿 날 예나가 학교에서 돌아 온 후 , 엄마에게 편지를 한 통 준다.

아랫방 아저씨가 학교까지 찾아와서 엄마에게 전해 주라하데. “ 쌀쌀맞게 말한다.

이런 심부름 담부턴 절대 해쌋지 마라. “ 연신도 엄하게 말하며 편지를 받는다.

거기에는 다만 ,만나 할 말이 있으니 나오라며  장소와 시간만을 간단히 적어 놨다.

하여간에 한 번 만나  관계를 정리하고 이 집안에 주저앉아 대놓고 뻔뻔하게 나오는 그 가족들의 문제도 해결해야겠지. ‘

집에서 멀리 떨어진 외딴 곳, 조용한 다방에서 본마누라가 나선 분란 이후 처음으로 그를 대했다.

연신아 내 생각은 이랫다. 먼저 애엄마와 이혼하고 너와 결혼하려 했어 . 그래서 시간이 많이 걸렸다. 너도 애엄마를 봤으니 알거다. 얼마나 무식하고 사나운지 컨트럴이 안 된다. 그게 내 불행의 원인이다. “

그는 평소 안 피우던 담배를 꺼내 불을 붙이고 깊이 빨아 들인다.

왜 진작에 처자식이 있다는 말을 안 했어요 ? 그게 속인다고 넘어갈 수 있는 일인가요 ?”

나는 네가 너무 탐났어, 너를 놓치고 싶지 않았어. 내가 유부남인 걸 알면 너는 벌써 도망갔을거니까. “

그럼 이제와서 어쩌자는 건가요 ? 당신은 생각이 있기나 한거얘요 ?”

좀 더 참고 내 곁에 있어주면 안 될까 ? 내 꼭 이혼을 성사시키고 너를 정식 내 아내로 모셔올께

모두 한통속 아닌가, 역겹다. 연신은 발딱 일어섰다.

내 마음에서는 이미 당신을 지웠어요. 헛꿈꾸지 말고 자식들에게 좋은 아버지나 되세요, 그리고 빨리 가족들 데리고 내 집에서 나가 주세요. 안채를 다 차지하고 꿈쩍 않는 당신네 가족들이 이해할 수 없어요. “

애엄마가 저렇게 고집을 피우고 있으니 내 원 참 ! “ 그는 무력하고 소심하게  말한다.

연신은 뜰아랫방을 치우고 예나와 함께 지냈다.

신고를 하면 그의 사회적 입지가  매우 곤란해지고 그 가족들을 쫒아내자 해도  극성스런 애엄마의 악다구니를 견디기 어려웠다. 그러나 더 견디기 어려운 건 밤마다 기어드는 그였다. 이상하게 가족들과 어떤 합의가 있었는지 안채에선 모르는 척 아무 기척 없이 조용하다. 하지만 귀를 곤두세워 이 방을 염탐하고 있겠지 ?

, 이건 아냐, 이런 추접한 일에 얽혀들 수 없어

견딜 수 없어 저녁이면 예나를 데리고 낮에 일하는 식당으로 간다. 영업이 끝나 문을 닫은 가게방에서 자는 것이다.

예나야, 미안해. 조금만 참아. “

엄마 난 괜찮아요, 엄마가 너무 힘들어 하는게 속상해. “

이제 엄마는 이 세상 살아 가는데 너 하나 뿐이야, 넌 나를 실망시키지 않을거지 ? “

엄마, 나도 엄마 하나 뿐이야. 엄마에게 좋은 딸이 될께요 모녀는 딱딱한 의자를 길게 붙여만든 불편한 침상에서 소근소근 서로를  위로하며 손을 꼭 잡고 잠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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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예나의 걱정이 사실로 되어 있었다.

집으로 들어서니 자기네 식구들이 안채를 차지하고 있다안방 건너방의 번듯한 살림가구는 그냥 뇌두고 허접스런 물건들만 이랫방으로 어지럽게 던져 놓았다.

어이가 없어 입만 벌리고 섰는 연신에게 닥아온 건 애들 할머니.

내 아들하고 많이 얘기해 봤다. 걔는 너와 절대 헤어질 수 없다 하더만. 그렇다고 엄연히 애까정 딸린 눈 시퍼런 조강지처를 내친다 말가, 그도 안 될 말이고만, 우리 집안이 모여서 의논을 했다 아이가. 둘이서 여기 한 서방 섬기며 오손도손 살아라카이. 우리 늙은이는 내려가 시골살이 하려니 우리 걱정은 말더라고. “

마치 큰 맘 쓴듯 나직나직 부드럽게 말한다. 연신은 숨이 콱 막혀 내쉬지가 않는다.

얼른 냉수를 한 컵 마시고 겨우 진정하며 묻는다.

그 사람이 이렇게 하자고 했습니까 ?  공무원씩이나 되서 법률상 축첩은 안 된다는거 모른답니까 ? “

그라이 우리끼리 조용히 살면 되는기 아이가 ? 자네도 알고 봉께 의지가지 읎이 딸 하나 델고 사는구만, 서로 기대 감서 의논껏 살면 안 되겠나 ? “ 할메는 어설프게 웃는다

내 아들 갸가 자네를 무척이나 고이더구마. 쟈와 갈라선다고 야단했쌋는데 오매, 쟈가 애엄씨가 되어 씨알이가 먹히나 그나마 자네를 받아들여 함께 살겠다고 하는 것도 크게 양보하는겨

 

지는 그렇게 죽어도 못합니다. 말이나 되는 소립니까 ? “ 연신의 음성이 높아진다.

부엌에서 은근히 엿듣던 애어메가 우르르 뛰어 나오며 갈구리 손을 들어 푸들푸들 떤다.

오매,오매 이 빤빤한 년 좀 보소. 남의 서방 뺏은 년이 아주 서방 독차지하겠다네.

내 그만큼이나 이해하고 양보해서 서방 양 쪽에서 이렁저렁 살락켓는데 이년 욕심이 무지하고만이라. “

난 당신 서방 가운데 두고  같이 살고 싶지 않아요. 다 소용없으니 애들 데리고 어서 이 집을 나가세요. 안 나가면 경찰에 신고할 거얘요.”

연신도 이 번은 질 수 없다하고 야무지게 나간다. 경찰에 신고한다는 말에 두 여인은 주춤 겁을 먹는다  그들이 쫄은 틈을 타 더 강도 높은 엄포를 놓는다.

어디 주인 없는 틈을 타 안방을 차지하고 주인을 뜰아랫방으로 내 몰아 같이 살자 합니까 ? 내 보기에 당신네들은 흉악한 도둑들입니다. 어서들  썩 나가소 ! “

 

이튿 날 예나가 학교에서 돌아 온 후 , 엄마에게 편지를 한 통 준다.

아랫방 아저씨가 학교까지 찾아와서 엄마에게 전해 주라하데. “ 쌀쌀맞게 말한다.

이런 심부름 담부턴 절대 해쌋지 마라. “ 연신도 엄하게 말하며 편지를 받는다.

거기에는 다만 ,만나 할 말이 있으니 나오라며  장소와 시간만을 간단히 적어 놨다.

하여간에 한 번 만나  관계를 정리하고 이 집안에 주저앉아 대놓고 뻔뻔하게 나오는 그 가족들의 문제도 해결해야겠지. ‘

집에서 멀리 떨어진 외딴 곳, 조용한 다방에서 본마누라가 나선 분란 이후 처음으로 그를 대했다.

연신아 내 생각은 이랫다. 먼저 애엄마와 이혼하고 너와 결혼하려 했어 . 그래서 시간이 많이 걸렸다. 너도 애엄마를 봤으니 알거다. 얼마나 무식하고 사나운지 컨트럴이 안 된다. 그게 내 불행의 원인이다. “

그는 평소 안 피우던 담배를 꺼내 불을 붙이고 깊이 빨아 들인다.

왜 진작에 처자식이 있다는 말을 안 했어요 ? 그게 속인다고 넘어갈 수 있는 일인가요 ?”

나는 네가 너무 탐났어, 너를 놓치고 싶지 않았어. 내가 유부남인 걸 알면 너는 벌써 도망갔을거니까. “

그럼 이제와서 어쩌자는 건가요 ? 당신은 생각이 있기나 한거얘요 ?”

좀 더 참고 내 곁에 있어주면 안 될까 ? 내 꼭 이혼을 성사시키고 너를 정식 내 아내로 모셔올께

모두 한통속 아닌가, 역겹다. 연신은 발딱 일어섰다.

내 마음에서는 이미 당신을 지웠어요. 헛꿈꾸지 말고 자식들에게 좋은 아버지나 되세요, 그리고 빨리 가족들 데리고 내 집에서 나가 주세요. 안채를 다 차지하고 꿈쩍 않는 당신네 가족들이 이해할 수 없어요. “

애엄마가 저렇게 고집을 피우고 있으니 내 원 참 ! “ 그는 무력하고 소심하게  말한다.

연신은 뜰아랫방을 치우고 예나와 함께 지냈다.

신고를 하면 그의 사회적 입지가  매우 곤란해지고 그 가족들을 쫒아내자 해도  극성스런 애엄마의 악다구니를 견디기 어려웠다. 그러나 더 견디기 어려운 건 밤마다 기어드는 그였다. 이상하게 가족들과 어떤 합의가 있었는지 안채에선 모르는 척 아무 기척 없이 조용하다. 하지만 귀를 곤두세워 이 방을 염탐하고 있겠지 ?

, 이건 아냐, 이런 추접한 일에 얽혀들 수 없어

견딜 수 없어 저녁이면 예나를 데리고 낮에 일하는 식당으로 간다. 영업이 끝나 문을 닫은 가게방에서 자는 것이다.

예나야, 미안해. 조금만 참아. “

엄마 난 괜찮아요, 엄마가 너무 힘들어 하는게 속상해. “

이제 엄마는 이 세상 살아 가는데 너 하나 뿐이야, 넌 나를 실망시키지 않을거지 ? “

엄마, 나도 엄마 하나 뿐이야. 엄마에게 좋은 딸이 될께요 모녀는 딱딱한 의자를 길게 붙여만든 불편한 침상에서 소근소근 서로를  위로하며 손을 꼭 잡고 잠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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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신은 맥없이 짐을 쌋다. 당장에 입을 옷가지와 돈을 챙겻다.

예나가 학교에서 돌아오자 손을 잡고 집을 나왔다. 집은 돌아보고 싶지도 않고 미련도 없다. 내가 선택하고 믿었던 사랑 , 여기까지인가 ?

이제 가을이 깊어가고 겨울을 예고하는 싸늘한 바람이다. 낙엽들이 바람따라 이리저리 뒹군다. , 공부, 그보다 변선생과의 뜨거운 사랑으로  계절을 잊었었다.

엄마, 어디 갈려구 ? “

오랜만에 엄마 고향 가 볼려구

강남 터미널에 나가 상주행 버스표를 사고 , 버스에 오르기 전 오래 된 수첩을 찾아 동생 동연의 집에 전화를 한다. 마침 동연이 전화를 받는다.

웬일이고 ? 누이 무신 일 있나 ?”

아이다. 그냥 고향이 가고잡아 나왔다. 내 저녁 8 시 쯤 상주 버스터미널에 내릴테니 네가 쫌 나온나. 오랜만이라 내 통 지리를 모린다 아이가? “

‘” 누이가 여길 오겠다고요 ? 지금 때가 좋지 않은데 뒷소리는 우물우물하며 당황해 한다.

왜 무신 일인데 그라노 ? 내 네 집에 신세짓는게 싫나 ? “ 연신의 목소리가 날카로워 진다.

아이, 됏심더 .내 시간 맞추어 터미널에 나갈끼고만 . 그 때 보입시다. “

몇 년만에 만난 동연은 몸집도 크고 중후한 모습이 나이보다  노숙해 보인다.

장가를 일찍 가서 벌써 두 아이의 아범이 되더니 꽤 으젓하구만

연신은 몇 시간 전의 노여움은 사라지고 장성한 동생을 흐믓하게 바라 본다.

누님 오시느라 고생하싰구만요. 아이구 예나도 많이 컷네. 예나 배 고프지 않나 ? 외삼촌이 밥부터 살꾸로. “

모녀를 이끌고 큰 한정식 집으로 향한다.

네 처와 아들은 다 잘 있고 ? “ 연신도 인사를 차린다.

우리사 머 잘 있습니다. 내년 봄이면 한 식구 더 늘어예

그러나 ? 잘됐다. 축하한다. 그라모 머 더 바랄게 있을라고 연신도 기분이 좋아진다.

입에서 살살 녹게 맛있는 불고기와 뜨끈한 만두국으로 배를 채운 모녀가 일어설 채비를 하는데 동연이 목소리를 낮추어 연신에게 말한다.

지금 누이, 읍내나 고향 마을에 가서 사람 눈에 띄는거 좋지 않습니다.오늘은 여기 가까운 여관에서 하룻 밤 유하시고 낼은 어서 떠나는기 좋을끼요

연신의 의문과 노여움으로  날카로운 시선을 느낀 동연이 얼른 이어 말한다.

자세한 말은 자리를 옮긴 담에 하입시다 무겁고 신중하게 말한다.

 

여긴 지금 소문으로 말이 많십니다. 아마 이 지방 신문에도 한 분 낫을끼요.”

무슨 소문 ? “ 연신이 궁금하고 답답해서 묻는다.

우리 죽은 어메귀신이 매형을 잡아가는 바람에 매형이 그렇게 급살을 하싯다네요

뭐라 ? 그기 먼 말인교 ?”

 “ 사실 매형 돌아가실 때부터 그런 소문이 있었십니다 마는 근거 없는 헛소리로 웃어 넘겼지러.”

말을 끊고 잠시 누나를 본다. 숱 검은 눈섭으로 미간을 좁혀 걱정스런 표정이다.

이제 삼 년이나 지냈시니께 잊혀질 만도 하구만, 사실 한 달포 전에 어메 살인범이

잡혔어요. 다른 사건으로 걸렸는데 취조를 하다 보니 매형 사건도 실토를 했더만이라. 그 눔 입에서 이만석이 어메를 죽이삐라고 사주를 했다카데. “

 다시 누나 연신을 지긋이 바라 본다. ‘ 니는 뭐 좀 아는기 없노?’ 하듯이.

, , 예나아빠가 어메를 와 ? “ 목소리가 높아지려는 연신에게 동연은 곤히 자고 있는 예나를 눈짓하며 입술에 손가락을 들어 보인다. 둘이는 다시 목소리가 작아진다.

그 눔 말에 매형이 어메 미쳐 떠돌던 때 몇 분 만났다카데. “

아마 엄마를 타일러 집으로 보낼락 한게 아니것나 ?”

연신이 짐작으로 부드럽게 말한다.

아이라, 어메가 남자만 보면 이만석, 이만석 하고 쫒아갔던기라. 그라이 읍내에 도대체 만석이가 누군데 그에 미쳤노 하고 쓱덕였다네. 읍내서 꽤 유지로 알려진 매형이 똑같은 이름에 엄청시레 맴이 불편했겠지. 더구나 사위 장모 간 아인가

그래서 와, , 죽이기까정, 너도 그 눔 말을 믿나 ? 매형이 이미 저세상 사람이라고 덮어 씌우는가 ? 매형은 그럴 사람이 절대 아이다. “ 연신이 힘 주어 말한다.

내도 누나처럼 믿고 싶지, 그란데 이상한 건 매형의 형님이란 작자가  비록 죽은 동상이지만 동생을 위해 아무 변호가 없는기라. 이미 고인이 된 사람이지만 이렇게 추접고 무서운 살인 사건에 연루된 동생을 위해 오직 난 모르쇠하는거야. 우와, 동생 재산 독차지해 부자가 됐으면서 어쩌면 그리도 인정머리가 없노 ? “

동연은 정말 속 터지고 열 받아 주전자 물을 컵에 따라 벌컥벌컥 마신다.

그라고 누나 왜 고향 동네 가지 말라고 하냐면, “ 동연은 눈을 감고 침을 삼킨다.

모두들 누나를 욕하고 미워 해. 누나 보면 죽일락 할게다

 

, ! 그카는데 ? “

어메 남자를 딸이 가로챘다고, “ 동연은 한숨처럼 내뱉는다.

“ 택도 읎는 소리 마라. 동연아 이 무슨 해괴한 소리야 ?” 연신이 비명을 지른다.

동연은 또 예나를 가리키며 입에 손가락을 댄다.

누나 누나, 나도 알지. 누나의 배꽃 같이 순백한 마음을  정연이하구 내는  알지.“   동연의 목소리에 흐느낌이 가득차며  연신도 가슴이 먹먹하다.

근데 누나야, 그 시댁네, 시아주버니라는 작자가 ,매형의 형이라는 눔과 그마누라가 그렇게 해괴한 이야기를 엮어 동네에 소문을 퍼뜨리는거야. 사람들은 또 그런 얘기를 좋아라, 입방아를 찧어대고, 누나 나도 여기서 사는거 괴롭다. 당장에 여기 뜨고싶지만 장인어른이 이 고장서 한 발도 못 움직인다카는데 데릴사위 내가 별 수 있노 ? 숨 죽이고 살 뿐이제.”

왜 니도 전답을 솔찮게 가지고 갔구만 기 좀 피고 살그라. “ 연신의 응원에 동연이 서글프게 웃는다.

그기 누나가 이만석씨에게 시집 가며 댓가로 받은 기 아니가 ? 그거 생각하면 내 피눈물 난다. 어찌 자랑스럽것노 ?”

밤이 이슥하도록 밀리고 막힌 이야기를 하다 동연이 집으로 가겠다고 일어선다.

한없이 서운한 연신의 맘이지만 붙잡지는 못한다. 그 서운한 마음을 알아 챈 동연이 말한다.

누나야, 여긴 잊어라. 모두 잊고 멀리 가그라. 손가락질 받지 않고 자유롭게 살 곳으로 떠나그라. “ 동연은 잠시 말을 끊고 생각에 잠긴다.

내 정연에게 말해 놨다. 누나 미국으로 델꼬 가라구, 아마 수속하고 있을끼구만. 연락 오면 퍼뜩 떠나그라. “

동연이 떠난 후 , 연신은 쑤세미처럼 뒤엉킨 머리 속을 어찌 해 볼 도리가 없다.

엄마가 이만석씨 때문에 미치다니, 그 엄마를 이만석씨가 사람을 시켜 죽이다니, 아니 절대 그럴 이가 없다 그이는 그럴 사람이 아니다. ‘ 연신은 세게 머리를 흔든다 머리 속은 더 엉망진창이다. 꼬리를 무는 해괴한 이야기들의 중심에는 연신 자신이 거기 있다. , 이번엔 연신이 미칠 것같은 혼란의 극치가 된다.

밤을 꼬박 지새운 연신은 예나에게 아침 밥을 사 먹이고 터미날로 나가 속초행 버스표를 끊었다.

예나야 바다 보러 가자. 엄마도 처음 보는 바다지만 아마 너도 보면 좋아할걸

예나는 불안하다. 그 낮선 사람들이 우리 집에 쳐들어온 후 엄마는 이상해졌다.생전 돌아보지 않던 고향을 다 찾고 고향 마을을 자세히 돌아 보지도 않은 채 인젠 또 왠 바다인가. 엄마가 많이 심난하고 괴롭고 힘든 모양이다. 엄마가 불쌍하다는 생각에 정작 할 말은 꾹 참는다.

엄마는 군것질거리를 한 봉지 사 들고 예나 심심하면 보라고 만화책도 몇 권 샀다.

 

바다는 정말 엄청나다. 넓고 시퍼렇고 또 파도소리, 새소리로 시끄럽다. 바다와 모래벌판을  휩쓸고 불어오는 바람이 너무 차가워 금방 손발이 오그러든다.

엄마 춥다 민박 집의 따뜻한 방을 생각하며 엄마를 본다.

엄마는 찬 바람이 느껴지지 않는지 돌비석처럼 서 았다. 무척 슬퍼 보여 또 할 말을 꾹 참는다.  

연신은 대입 검정고시 공부할 때 달달 외었던 시를 생각한다.

<겨울바다에 가 보았지

그대 생각을 했건만도

매운 해풍에

그 진실마저 눈물져 얼어 버리고

허무의 불

물 이랑 위에 불 붙어 있었네

나를 가르치는 건

언제나 시간

끄덕이며 끄덕이며 겨울 바다에 섰었네 ------ >

이제 많이 잊어 버렸지만  띄엄띄엄 기억 찾아 마음 속에 읊어 본다.

악의와 이기심, 치욕만이 가득한 저 바깥세상에 나가고 싶지 않다 .그냥 잠 들었으면 . 며칠 연신의 맘 속에 우뚝 불거진 고집이다. 그런데 아직 어린 내 딸 예나, 예나를 하며 연신은 깜짝 놀란다. 예나는 새파랗게 얼어 부들부들 떨고 있다.

아유! 미안해 엄마가 미쳐 몰랐네. 어서 집에 가자. “ 연신이 예나를 감싸안으며 걸음을 옮긴다. 예나의 반가운 음성이 들린다.

그럼, 엄마 오늘 당장 집에 가는거예요 ?” 연신은 민박집으로 향하며 딸에게 묻는다.

예나는 빨리 집에 가고 싶어 ?”

그럼, 엄마 벌써 5 일째나 결석해서 선생님이랑 친구들이 걱정해요. 나도 빨리 학교 가고 싶구요 예나는 뜸을 들여 망설이듯 엄마 눈치를 보며 말한다.

그리구, 그 사람들이 우리 집 몸땅 차지하고 살까봐 걱정돼요

하 하 ! 아무려면 주인 있는 내 집을 함부로 뺏을까봐 ? 예나 걱정꾸러기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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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신은 갖고 있는 옷 중 , 가장 최신의 화사한 옷을 골랐다. 특별히 미장원에 들러 머리를 손질하고 잘 신지 않던 하이힐을 신고 핸드백도 갖춰 들고 거울을 본다.

서른 살이 조금 넘은  연신은 이젠 시골 때가 벗겨지고 적당하게 살집이 붙고 적당하게 균형잡힌 몸매가 활짝 핀 모란이다.

그는 눈 부신듯 연신을 응시한다. 잠시 동안 그는 여기가 어디인지 왜 와 있는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머리가 텅 비었다.

선생님 음식 주문하셔야지요 연신이 장난스레 웃으며 그의 팔을 가볍게 꼬집는다.

찌릿한 감전에 소스라치게 놀라며 앞에 선 웨이트리스를 쳐다보곤 메뉴 판을 받는다.

오늘은 우리 특별한 쌍칼잡이 식사다. 비프스테이크  이인분 주세요

내가 이렇게 행복해도 되는걸까 , 연신은 벅차게 용솟음치는 행복감에 살그머니 가슴을 누른다. 그렇치만 이렇게 맘 놓고 좋아라만 할 수 없지

선생님 부모님께 인사드리고 싶어요. 만나 뵙게 해 주세요

그는 화들짝 놀란다. 취한듯 화사했던 얼굴에 짙은 구름이 낀다.

그래, 저 이를 처음 봤을 때는 늘 저런 얼굴이었어. 요샌 좀 표정이 환해졌는데.’

연신은 생각하며 이왕 말을 꺼낸 이상 망설이던 얘기도 쏟아낸다.

근데, 저어 아이 딸린 홀엄씨를 며느리로 받아 주실까요 ? 그게 걱정이 돼요. “

변기섭은 이마를 아드득 꾸기며 눈을 아래로 깐다. 투명한 유리잔 가득한 물을 들어 벌컥벌컥 마신다. 한참 대답이 없다.

뭐 고민이 있나요 ? 말해 봐요

마침 아직도 철판 위에서 자글자글 끓고 있는 비후스테이크가 왔다.

갓 구운 구수하고 말랑한 빵이 담긴 바구니와 버터, , 그리고 수북하게 담긴 싱싱한 셀러드 .

한 상이 잘 차려진다.

연신아 어서 먹자. 먹고 힘내고, “ 그는 눈을 찡긋한다. 연신은 살짝 눈을 흘기며 나이프과 포크를 양 손으로 잡고 비후스테이크 해체작업에 들어 간다.

 

연신아 걱정 마. 부모님은 장성한 아들이 객지에서 하숙집 밥 먹고 사는 걸, 몹시 걱정하셔. 널 데려가서 보이면 무척 좋아하실꺼야. 우리 부모님은 아들 밥 잘 해 먹이고 뒷바라지 잘 해 주면 그걸로 만족하실꺼야. 니 음식 잘 하나 ? “

 

그럼요 선생님 서울 세련된 멋쟁이 음식은 못하지만 우리 고향 경상도 음식은 모두 잘 해요 . 장어탕, 육게장,

, 네가 차려주는 밥, 빨리 먹고 싶다

연신은 그를 본다. 손색없이 잘 생긴 얼굴, 강한 뼈를 유연하게 감싼 면도자국이 파르스럼한 턱선은 연신을 숨 막히게 한다. 그는 부자는 아니지만 성실하게 일하는 공무원이다. 별 볼일없는 나를 몇 년이나 친절하고 열심으로  지도해 준 선생님, 아마 예나에게도 좋은 아빠가 되 줄꺼야.

인물, 학식, 직업 출중하고 , 나이도 나랑 비슷하고 ,거기에 우리는 마그마 같은 뜨거운 사랑을 하고 있어.

연신은 결심하고 말한다.

선생님, 우리 집 뜰 아랫방이 비어 있어요. 거기 들어 오셔서 하숙하세요. 물론 하숙비는 톡톡히 내시구요

뭐락 하나 ? 네 집에 들어와 살라꼬 ? 네가 밥도 해 준다꼬 변기섭은 깜짝 놀라 얼결에 고향 사투리 발음이 그대로 튀어 나온다.

직장까지 거리가 멀어 출퇴근 시간이 좀 걸리겠지만 마을 버스 타고 다녀도 되잖아요 ?

 

연신은 저녁마다 그가 집으로 돌아오기를 기다리게 되었다. 밥상을 차려놓고 시계를 본다. 배곺은 예나를 위해선 따로 조그만 소반에 차린 밥을 먹인다.

엄마도 나하고 같이 먹자아 예나가 혼자 먹기 싫다고 조른다.

난 선생님 오시면 먼저 드리고 먹을꺼야

피이, 엄마는 뭘 몰라 예나는 눈섭을 꼿꼿이 세우며 엄마를 똑바로 본다.

내가 뭘 모른다는 거야 ? “

그 선생님은 엉큼하단 말이야, 속이 꺼멓다는거야

어머, 얘가 무슨 소리 하는거야 뭘 보고 하는 말이야 ?”

그 사람은 솔직하지 못해 단언하듯 소리를 빽 지른다.

예나는 서둘러 밥을 먹고 후다닥 제 방으로 들어 간다. 예나가 제법 컷다고 질투를 하나.

연신은 쓰게 웃지만 한편 예나의 경고에도 신경이 쓰여  그이를 객관화시키며  꼼꼼히 점검한다. 그는 사소한 약속을 어긴 적은 없다. 또 연신에게 대학 진학을 목표로 꾸준히 공부할 것을 권하며 수학 문제지도 계획적으로, 단계적으로 만들어 지도해 준다.

그의 짝이 되려면 대학은 나와야지 않것나, 그나저나 어서 그이의 시부모님을 뵈어야 할긴데. ‘ 그기 맘에 걸리는구만 .오늘 저녁은 그 문제를 좀 더 확실히 해 두려 한다.

 

 

 

그 날도 연신은 식당 일을 일찍 끝내고 집에 오자, 그이의 방을 청소하고 때묻은 옷들을 걷어내어 마당 수도가에서 빨래를 한다. 속옷은 애벌 빨은 다음 뽀얗게 삶아서 햇빛 쨍쨍한 빨랫줄에 널어 놓으니 기분이 산뜻하고 흐믓하다.

그 때 철문에 달린 종이 뗑그렁 울리며 사람 기척이 난다.

예나 왔니 ? “ 하며 나가서 문을 여니 아이를 업은 젊은 여인과 늙수그레한 두 여인이 서 있다. 자세히 보니 애 엄마 뒤에 또 한 사내아이가 엄마 치마에 얼굴을 묻고 수줍게 서 있다.

여기가 변 기섭씨 하숙하는 집이우 ? 늙수그레한 여인이 나서며 묻는다.

, 맞는데요. 무슨 일로 찾아 오셨습니까 ? ‘

아직 문을 막은 채 묻고 있는 연신을 확 제쳐 밀은 것은 젊은 애 엄마다.

엄니, 묻고 자시고 할 것도 없당게요. 제가 다 알고 있구만이라. 저 년이 바로 애 아버지를 꼬신 여시랑께요. ‘그 여자는 보란듯 부끄럼 타는 아이 손을 부여잡고 집 안으로 들어선다. 적의로 번득이는 눈초리가 사방을 훓는다 이윽고 그녀는 바닥에 주저 앉아 악을 악을 쓴다. 등에 업은 아이까지 덩달아 쇳되게 울음을 터뜨린다.

어머이 저 것 좀 보소, 제 서방맨치로 빨래까정 저렇게 해 널었당게로. 아주 이것들이 살림을 차려 꿀떡 같이 살고 있구만이라아이구 억울해라 이일을 어짤꼬 ? 어쩔꼬

벌써 그녀의 입 가장자리는 게거품으로 허옇게 엉긴다.

이를 어쩌노 ? 기도 안 찬다. 이 보소, 남의 서방을 이리 가로채면 되는교 ? 이 아들은 변선생 아들이란 말이시. 난 그 어매고, 여긴 아 어맨게라 . 정말 몰랐던교 ? “

연신은 하얗게 질려서 이들의 모습을  크게 뜬 눈으로 똟어지게 바라 본다.

시어매의 역성에 힘을 얻은 애엄마가 벌떡 일어서더니 댓짜고짜 달려들어 연신의 머리채를  틀어쥐고 휘휘 흔들어 댄다. 힘이 여간 쎈게 아니다. 연신도 제법 한 힘하는 편이지만 지금은 너무 갑자기 당하는 사태에 속수무책이다.

연신은 바늘 끝 같이 따가운 시선을 느끼곤 우쭐 힘을 써 그 여자를 떼어 밀쳐낸다.

학교에서 돌아 온 예나가 이 난장판을 날카롭게 쏘아 보고 있는 것이다.

애를 업은 채 땅바닥에 주질러 앉았던 애엄마가 다시 벌떡 일어서며

내 이 연놈들의 세간을 빠삭빠삭 뽀사 버릴끼다 하며 우르르 마루에 올라서 안방으로 향한다. 그 때 , 여리지만 쇳소리 나게 쨍쨍한 목소리가 마당을 울린다.

이봐요, 아저씨 방은 거기가 아니고 저 방이얘요 하고 뜰아랫 방을 가리킨다.

애엄마와 할머니는 흠칫 놀라고 기세가 한껏 누그러진다. 그들이 그 방으로 물러 간 뒤 연신은 간신히 정신을 수습하고 이 사태를 정리해 본다.

그 이는 유부남이다. 두 아이의 아버지고 그 아내는 여간 아니게 사납고 무대뽀이다. ‘

예나는 아무 말 없이 뽀로퉁해서 제 방으로 들어가고 연신은 생각난 듯 밖으로 나간다.

동네 입구에 있는 전화부스로 가서 그의 사무실에 전화를 건다. 그는 외근 나가고 자리에 없다고 한다.

, 나는 어떻게야 되는거야 이게 뭐야 이마를 전화 부스 창에 콩콩 박는다.

어쩌면 좋아  난 너무 바보, 어이없는 실수를 한거야 머리를 더 세게 박는다.

연신아, 여기서 뭐 하는거야 반가운 소리, 그러나 지금은 한 없는 고뇌의 근거가 되는  원망스런 그 목소리. 등에서 목덜미로 찬바람이 소름끼치듯 지나간다.

당신, 뭐야 내를 속인거야 ? “ 그가 난해한 얼굴로 가까이 다가 온다.

우린 이제 끝장이야 !   나 어떻게 살아 ? “ 연신이 그의 목을 끌어 안는다. 그는 아직 상황 판단이 안 된 채 연신을 마주 껴안는다. 둘은 서로 죽도록 껴안는다. 사방은 투명한 유리박스 , 그러나 둘은 세상을 잊는다.

아니, 이 것들이 여기서 만나 엉키고 설키고  있당게. 내 이상타 하고 나와 보니 --애시당초 이럴 줄 알았당게 벼락 같이 울려 퍼지는 애 어메의 고함소리, 그녀는 또 우르르 들어와 대짜고짜 연신을 끌어내어 갈구리 손으로 머리칼을 잡아  전화 부스에서 끌어내  바닥으로 팽개치고는 사방으로 외친다.

동네 사람들 나와 보드랑게, 이 꼬랑지 열 둘 달린 여시년이 남의 서방 꼬셔내어 살림을 차렸당게. 이 육실한 년 좀 보드라고 그 기세가 워낙 등등하여 연신은 그 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변기섭은  망연실색 사색되어  보고 있다. 근처 주민들과 지나던 사람들이 하나 둘 모여들어 큰 구경거리가 난 듯 흥미있게 지켜 본다. 그가 한 박자 늦어 상황을 알아차리고 두 여자를 양손으로 질질 끌어 집으로 향한다.

아랫 채 방에서는 큰 소동이 났다. 밤 늦도록 애어매의 패악치는 소리 노파의 울음 섞인 꾸지람과 하소연간간이 젖먹이 아이의 칭얼거리는 소리,그리고 그이의 낮은 , 아주 낮은 달래는 목소리. 그리고 자정이 넘으며 소음도 잦아든다. 조용해진다. ‘ 어떻게 달랫을까 ? 어쩌면 그 막무가내 아내를 품에 안아 잠 재웠을까 ? ‘ 상상만으로도 명치가 뻐근해지며 불꽃이 정수리까지 치솟아 뜨겁다.

이튿 날 이른 아침 일어난 연신은 밥과 국을 넉넉히 하고 예나를 학교에 일찌기 보낸 뒤, 그리고 아랫채 낮선 가족에게도 아침상을 보냈다.

그이는 일찍 직장에 출근했는지 보이지 않는다. 밥을 다 먹은 후 애엄마가 빈상을 들어 연신의 부엌으로 들여 논다.

잘 먹었당게, 아우. “ 일단은 순하게 말했지만  다음 단호하고 고집스럽게  말한다.

우리 아이들과 여기에 눌러 살기로 했당게, 냄펜을 객지로 보낸 후 언제나 맴이 펜찮았는디 겔국에는 이 꼬라지 된게 아닝가. 그라니 자네가 물러나세.”

이 내용을 간밤에 의논한게 아닌가 ? 연신은 기가 차서 말도 안 나온다.

이봐요, 여긴 내 집이얘요. 당신네들이 나가 살아야지요. “

아니 이 년이 안즉도 주뎅이가 살았당가 ? 내 서방 붙어묵는 년을 어예 놔두고 내가 나가 살꼬. 네 못믿어 난 여기 살란다. 한 번 속지, 두 번 속나 ?”

그 여자의 막된 언행은 거침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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