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따라 명수씨는 많이 피곤했다. 길고 긴 하루 Long day !.


M & A (mergers and acquisttions  인수합병 )의 기업 하이에나들 뒷치닥거리나 하는 자신의 업무에 완전 토할 것 같은 자괴감을 느낀 오늘이었다.  다른 분야로 옮겨 버릴까?  벌써 몇 번이나 갈등했던 화두, 그러나 오늘도 명쾌한 답이 나올 리 만무다. 이 바닥에 굴러다니는 돈이 얼마나인데. M&A에서의 큰 돈의 흐름은여느 다른 분야 업무와는 쨉이 안 된다


그런데 이 기업사냥군들의 술수는 너무 냉혹하고  비열하다. 지지부진 경영이 어려운 유서깊은 기업을 헐값에 사들인다. 그리고 재정비한답시고 오랜 세월 일해온  고임금 기능직과 임원들을 차례차례 해고한다. 생산 단가를 낮추기  위해 생산라인을 자동기계화 시스팀으로 바꾸고, 단순부품들은 해외 값싼 인력으로 돌리는  일도 허다하다.

오로지  자신의 이익을 위해 해고된 사람들의 절망이나 비애,생산품의 질적 저하,나아가  미국의 경제를 침체시키고 , 빈부의 격차를 심화시키는 이 놈들-- 을 위해 그 더러운 똥구멍이나 닦아주는 자신의 처지가 몹시 환멸이다. 민주주의 시장 자유 경쟁의 모순.

오늘 그런 와중에 해고된 고참 임 원과의 면담은 명수씨의 변호사로서 자부심과 양식이

별볼일 없이 초라하기만 했다.

그는 36 년 간 James Inc  가구 회사에서 일하던 고참 디자이너이고 제작자이다.미국을 대표하는 유서 깊은 제임스 가구 회사도 3 대 업주로 경영이 바뀐 뒤로 곤두박질치듯

운영난이 심각해 졌다. 문을 닫고 간판을 내리느니 보다 헐값에라도 팔아 돈을 챙기려는

허약하고 약삭빠른 삼세대 사업주에 의해 침을 흘리며 눈독 들이던 명수씨 소속 인수합병 회사가 삼켜 버렸다. James Inc는 특히 백 년 의 긴 전통 속에 미국인들에 널리 알려진 명품 가구 회사였다. 인수 후 판촉에 온갖 방법을 써서 외형 주가를 단단히 올린 뒤 몇 배의 가격 으로 되팔아 먹는 다는 M$A의  야심을 명수씨는 당연히 알고 있다.

그리고 수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태국에 부품 공장을 짓고 있는 것도 명수씨는 알고 있다.

James Inc 회사의 고참 간부이고 가구 제조 최고의 경력자인 그는

마지막 페이롤  체크를 받고 싸인을 한 후  씁쓸하게 말한다.

“ 나는 똑똑히 기억해요. 창업주였던 미스터 제임스가 자기의 첫 손자 윌리엄이 네 살이 되자

공장에 데려와 무등을 태우고 두루 보이며 ‘ 이건 너의 것이니 영원히 지키고 번영시키라’ 자랑스럽게 말했죠. 근데 미스터 윌리엄이 맡은지 십 년이 채 안되어 조부의 회사를 말아 먹는군요 “





그러나 명수씨 ,오늘 그녀를 단 둘이서 만난다.  카니를 생각하며  기분을 바꿔 봐.

과연  그들은 약속한대로 약속한 시간, 약속한 장소에서 만났다.

감미로운 멜로디가 오월의 훈풍처럼  가볍게 스치는 레스토랑 , 조용 하고 우아하게 담소하며 식사하는 사람들, 그들 속에서  활짝 웃으며 다가오는 카니 박을 보며

명수씨는  깜짝 놀란다. 나, 헐리웃 여배우 만나는 것 아닌가.

카니는 완전 다른 사람 모습으로 다가왔다.반백의 머리를 이마 위로 살짝 세워 마치 여왕의 왕관처럼 품위 있고 , 가슴골이 깊게 패인 감색  드레스, 깊고 그윽한  눈으로 정성들여 매만진  스모키 화장, 그리고 그 지옥불을 품은 듯  붉은 입술, 위엄과 열정이 이렇게 어울려 여전사의 두목, 전설시대 여왕, 그러면서 동시에 주술로 적을 무력화시키는 마녀의 유혹, ‘ 도대체 넌 누구냐.’

“ 와 주셔서 감사해요, 우리 저쪽 바bar로 갈까요? 거기도 가벼운 식사쯤은  할 수 있고 , 난 식사보다 술 한 잔이 더 땡기는군요”


넓은 레스토랑에서 카니는 익 숙하게 한 쪽으로 칸을 막은 조용한 바 쪽으로 인도한다.

명수씨는 카니의 뒤를 따라 의식없는 점비처럼 뒤 따르고. 자리를 잡고 앉은 후에도 멍하니 그 녀를 바라 본다. 내가 누구를 만나고 있지? 분간이 안 가는 어리둥절한 표정.

“ 나, 낯 익지 않나요?” 자리를 잡고 난 후에도 멍한 그를 보며 카니 , 장난치듯 생글거리며 묻는다.

“ 아니요, 카니, 당신은  특히 오늘,  전혀 낯설어요 당신은 누구지요?”

까드득  웃으며 카니 손짓으로 웨이터를 부른다.

카니가 주문한  커스모폴리탄, 명수씨를 위한 더리  마티니 칵테일과

풀리쳐와 나쵸, 그리고 로디스 후라이 등의 안주깜이 차려진다.


이윽고 현실을 깨닫는  명수씨, 긴장하며

“ 자, 이제 본론을 얘기할까요? 내게 할 얘기가 무엇이지요? “

직업 본능의 침착과 냉정 , 또 객관적 자세를 지키려 애 쓰며 말한다.

이미 커스모폴리탄 칵테일을 한 모금 털어 넣어  볼이 발그레해진 카니, 먼 눈으로 미지의 어느 때를 바라보며 속삭이듯 묻는다.

“ < 오목이 >를 아시냐구요? “

오목이? 가 누구야, 갑자기 , 나 모르는데.

점심도 거른 빈 위 속,마티니  한 잔에 짜르르 풀어지는 명수씨,

마법처럼 다가오는 기억의 어두운 터널 저 편, 흑백영화 같은  영상. 그 당시 .


명수씨네는 어느 소읍 , 그래도 번화하다는 중앙로에 살았다. 아버지가 고급 장교였으므 로 아버지 임지 따라 새로 이사 온 곳이었다. 소년 명수는 이사에 이골이 났고

이리저리 빈번한 전학으로 인해   뿌리 내리지 못하는 부평초처럼 학교에 안착하지 못했다. 이를테면 소년 명수는 그 때

고 딩  깡패였다. 학교에는 안 가고 읍내를 빈둥거리며 쏘다니고 쫄갱이 중학생에게 삥쳐서 담배도 사고 중국집 자장면도 사 먹고 공원가서 낮잠이나 자다,하교 시간 맞추어 집에 들어가면 하루가 땡처리되던 그  때 그 나날. 똥은 똥대로 모인다고 그렇고 그런 애들이 명수 씨 근처에 모이게 되었고 그들과 어울려 떠돌던  무심했던 어느 날 ,

아이 들의 흰소리와 잡담이 귀에 꽂쳤다. < 오목이  > 그 애는 말하자면 동네에서 누구나 건드리고 간다고 소문이 난  가난하고 외로운 어린 여자애 였다.

“ 그 기집애네는 낮에 아무도 없어서 아무나 드나든데 “




명수도 마침  가까이에 살아서 흉하게 떠도는 소문은 들었다.

오목이 아버지는 목수였고 술주정꾼이었다. 일당 몇 푼 받으면 그걸 몽땅 술로 바꿔 먹고 곤드레가 되어 집으로 와서는 힘없는 마누라를 오뉴월 개 패듯 팼다. 딸 오목이를 꼭 껴 안고 모진 매를 맞으며  가난한 살림을 지탱해 가던 오목이 엄마는 결국 골병이 들어 오래 살지 못하고 일찍 세상을 떠났다. 어린 딸 오목이를 못내 걱정하며 눈도 못 감았다고 했다.

엄마 떠난 후 오목이가 그 엄청난 시련, 가난과 아버지의 매질을 고스란히 이어받았다. 여덟 살 때 부터 그 작은 손으로 밥을 하고 빨래를 하고 집 안을 치웠다. 엄마의 운명따라.

저녁마다 술 취한 아버지에게서 무참하게 맞았다.  싫컷 패고 난 후, 때로는 길거리로 쫒겨나  엄동설한에 개집에서 개를 의지해 자기도 일쑤였다. 새벽이 오면 술에 취해 잠들었던 오목이 아버지가 부시시 일어나 일하러 나간 뒤에야 집안 으로 들어온  오목이는 다시 어지러운 방을 치우고 빨래를 하고 밥과 국을 끓이고,학교 근처에도 못 가보며 무지랭이로 짐승같이 자라서 열 몇 살 쯤 되었다.

천치같은 계집애. 또래들의 소문을 들은 뒤로는  오목이가 매 맞으며 내지르는  애처러운 비명에  잠 못 이루던 밤도 있었지만 .가엾다는 생각보다 멸시하고 짓밟고 싶은 혐오스러움으로 오히려 화가 나서 이불을 뒤집어 쓰고 잠을 재촉하던 불쾌한 기억.


“ 근데 오목이라니? 왜 오목이 얘기가, “

명수씨가 불현듯 눈을 휘둥그레 뜨며 묻 는다.

‘ 오목이가 명수 오빠를 참 좋아했어요 . 오빠가 거리로 지나는 모습을 늘 훔쳐 봤지요”

명수씨의  머리 속이 아득해 진다.

한 번 오목이네 집에서 난투극이 벌어진 적이 있었다. 오목이가 서로 제 것이라고 건들지 말라고 소유를 주장하다 벌어진 두 깡패 소년의 싸움,

사춘기 소년 명수,그 꼴들이  하도 역겨워서 그 두 놈들을 늑신하게 두들겨 패 주었다.

무리들이 흩어진 뒤, 조용해진 앞마당에 오목이가 나왔다.

창백하고 비쩍 말라 수수깡처럼 껑충한 그애 , 새까만 머리가 치렁치렁 얼굴을 덮어 표정을 알 수 없던 그 애가 늘랍게도  살며시 명수의 손을 잡는다. 그리고 잡아 끈다. “ 어 어 “ 하며 끌려 들어간 방에서 오목이는 뜻 밖에도 치마를 걷어 올린다.

기가 막히지만 말갛게 드러난 오목이의 앙상한 다리와 아직 미숙하게 보이는  다리 사이 그 곳  , 오목이가 바라보던  반짝이는 눈에 가득한  재촉, 기다림.

사춘기 소년 명수는 불현듯 들끓는 욕망과 알수 없는 분노와 멸시로 그 위에 엎어지고 만다. ‘ ‘계집애가  뭣도 모르고 아무렇게나 다리를 벌리니, 동네 양아치들이 꼬이지. 멸시하면 할수록 더욱 드센 힘으로 그녀 속으로 깊이깊이 드리밀며 몸부림치다  끝내는 화통을 힘껒 뿜어낸다.


“ 알아요 ? 그게 오목이식  사랑의 표현이었어요. 고마운 마음에 보답할게 그 것 밖에 방법을 몰랐던 거지요.   오목이에게는 당연히 은밀한 사랑과 감사의 표시였고 그리고 그 순간이 무지하게 행복했답니다.”


“ 근데 오목이가 어쨋다는 거얘요? 그 여자의 마음 까지도 당신이 안다구요?”


“ 오목이가 떠돌이 잡놈들의 노리개가 되어 엄청 몹쓸 짓을 당하며 산다는 동네 소문을 들은 오목이 아버지는 종내 그 동네를 떠나 버렸지요, 그게 최후의 아비다운 양심이었을까요?”

카니는 평소  그녀답지 않게 깊은   감성에 젖어 있다. 술 기운만이 아닌 자신의 감정에 깊이 취한 듯.


명수씨 그 옛날 오목이 얘기는 썩 유쾌하지 않다.  소년 명수의 부모도 공부는 안 하고 늘상 땡땡질에 깡패들과 어울려 쌈질이나 하고 떠도는 아들을 더 이상 방관할 수 없다는 자책으로

서울로 이사했다. 명수도 지방 소읍에서의 치졸 방만했던 기억을 씻어내고, 대학 진학을 위한  입시 준비에 열중하며 질풍노도의 사춘기를 정리했다.


“ 오늘 나 만나려는 용건이 이거였소? “

“ 아니, 아니요. “ 카니는 고개를 살레살레 젓는다.그리고 명수씨를 똑바로 바라보며

“ 부탁이 있어요. “ 눈이 이글이글 타고 있다. 욕망일까, 분노일까. 아니면 전에 말했듯이 죽이고 싶도록  미움일까. 왜? 나하고 저 여자와 무슨 상관이 있기에.

명수씨는 어깨를 으쓱한다. 그러나 승낙을 강요하는 저 무서운 눈빛.

“ 일단 말해 봐요, “ 명수씨는  부드럽게 묻는다.

“ 다음 주 토요일, 당신 생일 파티가 근사하게 열린다지요? 사장님이 나도 초대해 주셨어요”

“ 그럼 오면 될 것 아니요?”

“ 나와 춤 출 기회를 주세요, 당신 아내 앞에서 멋지게 춤추고 싶어요 “

“----?” 미쳐 영문을 몰라 황당해 하는 명수씨에게 카니, 하 하 하 방자하게 웃는다.

이상하게도 명수씨, 노엽지 않다. 잘난 사내는 이런 대시도 능란하게 받아쳐야지.

“ 염려 말아요, 나의 사장님, 이은주씨에게도 허락을 받아 놨지요  하 하 하 “

“ 좋아요, 나도 기대가 되네요.”

“ 그럼 됐어요, 내 용건은 이것 이었어요  전 이제 일어 날게요, 내일도  일을 해야 하니까요.

오늘 밤 기분 좋은 밤,좋은 꿈 꾸세요.” 카니는 일어난다.

“ 아니, 카니 잠깐 물어 볼 말이 있어요. < 오목이 >가 어떻다는 말이요?그여자의 친척이요?”


그러나 카니는 상관 없다는 듯 손을 흔들며 ,이제까지 더불로 마신 커스모폴리탄 에도  전혀 흐트러짐 없이  모델 같은 우아한 걸음으로 푸론트로 향해 간다. 살짝 위로 당겨져 도드라진  그녀의 엉덩이가 리듬 타듯 살랑대는 뒷모습을 오래 바라보며  , 유난히 길고 피곤한 오늘,

아직 시장기도 미쳐 채우지 못한 명수씨는 온몸에 취기가 확 퍼진다.

카니 그녀가 도무지 내게 어떤 존재인지  분간이 안 되는 어리둥절함 속에서 그냥 풍덩 빠져 버리는  기분으로 술집을 나온다.

초여름의 보드라운 산들바람이 얼굴을 스치는 바깥으로 나와 올려다 보는 진곤색 하늘에는 수많은 별들이 반짝이고 있다.

‘ 어때? 카니 멋진 수수께끼 같은  여자 아니야?  난 준비가 돼 있다구’하며 허리를 펴는  명수씨,


은주씨는 텅 빈 큰 집에서 이제까지 모르던 걱정과 낮선 외로움으로 남편을 기다리며 잠 못 들고 있다. 이렇게 연락 없이늦은 일은  없었는데 웬 일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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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이클리닝 카운터.jpg





사실 이 크리닝 공장이 명수씨의 일가가 일어설 수 있었던 핵심 리더였다. 1980 년대

처음 미국에 이민 오던 때, 명수씨와 이은주씨는 유학생 신분이었고  그들은 약혼한 사이였다. 둘이 함께 공부하기에는 너무 빠듯한 형편이어서  은주씨가 공부를 포기했다. 남편 명수씨의 학업을 뒷받침해 주기 위해 은주는 드라이 클리너 가게에 취직하여 일을 시작 하였고 그 뒷바라지에 힘입어 명수씨는 로우스쿨을 마치고 변호사 시험을 치루고 변호사 자격을 취득할 수  있었다. 이십여 년이 흐른 후,명수씨가 장하게 변호사가 되었지만 사실 은주씨가 더욱 장하게 사업에 성취해 있었다. 하나의 크리닝 공장에 여섯 개의 드랍샵, 엄청난 발전이었다. 제법 큰 수입 덕택으로 명수씨의 부모님을 모셔오고  친척들을 미국으로 초청하여 생활 기반을 다져주고 , 자신들의 큰 집을 짓고 동부 버지니아 청정 바닷가에 빌라를 소유하고, 승승장구 아메리칸 드림의 실현이었다.  하지만 아이들이 뛰놀지 않는 텀 비고 적막하기만 한  커다란 집, 명수씨 어머니는 그걸 끝내 한탄하며 5년 전 세상을 떠났다.그 비탄의그림자는 아직  은주의 가슴에 상흔처럼 남아 있다.


아내의 사무실이 있는 이층 계단으로 올라가며 명수씨는 따거운 눈총에 몸이 오싹한다.

그 발원지는 처음 보는 낯선 여인, 키가 크고 광대뼈가 나와 거세 보이는 한 여인이 그의 뒤를 따라 오르고 있다.’ 누굴까’ 의아하며 아내의 사무실 문을 열 때 그녀도 함께 따라 들어 온다.

“ 카니 박이세요?” 은주가 남편 명수씨 보다 먼저 그 낯선 여인에게 반기며 인사한다. 그리고 남편에게 소개한다. “ 오늘 인터뷰하기로 한 카니 박 여사얘요, “  명수씨는 그 여인을 찬찬히 살핀다. 검은 색 정장 바지 차림에 약간 히끗한 머리칼이지만  관록있는 단발 헤어스타일, 그리고 자신감으로 충만하여 직시하는 강한 눈빛,

‘ 좀 거세고 자기 주장이 강하겠구만’ 생각하며 그녀에게 자리를 권한다. 그리고

“ 웬만큼 영어는 하신다구요? “ 하고 묻는다. “ 네, 영어는 물론이고, 스페인어도 어느 정도 해서 카운터 일은 물론 종업원들 다루는데도 어려움이 없을 겁니다.

 “ 나이가 꽤 되시는 것 같은데 일하기 힘들지 읺으시겠습니까? “

“ 내 나이 54세입니다만, 육신 건강하고 여러가지 일을 두루 했으므로 무슨 일이든지 자신있습니다. 뭐든지 맡겨만 주십시요.” 말씨는 상냥했고 태도는 비굴하지 않았다. 아내는 벌써 이 여인이 맘에 든 모양으로 남편 명수씨에게 눈짓을 한다.

‘ 너무 까다롭게 굴지 마세요’ 하고.

일하는 시간과 업무영역, 그리고 보수에 관한 문제는 아내의 몫이다. 명수씨는 커피를 한 잔 마시고   아내의 사무실을 나온다. 그러나 그 여자의 얼굴, 검으스름한 피부와 잔주름, 억세보이는 입매와 광대뼈 두드러진 뺨, 그리고 강한 눈빛으로 직시하는 예사롭지 않은 기세에 명수씨는 서늘하고 짙은  인상을 지울 수 없다.

‘ 쉽지않은 세월을 거쳐온 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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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니와 함께 일하게 된 이후로 아내는 한결 마음의 여유가 생겼는지  명랑해졌으며 무엇보다 말이 많아졌다. 전에는 둘이 마주 앉았어도 피곤으로 늘어져 별 할 말도  없어 적적했는데  이제는 일이 끝난 저녁 , 식사 시간이나 여유 시간마다 재재거리며 그 중에도 카니 박의 이야기를 거르지 않는다.

한종일 업무로 헤어졌다 만나는 시간, 좀 더 사적인 이야기가 필요하지 않을까. 해서 명수씨는 과장스런 몸짓으로  아내를 포옹하고 귀뿌리를 자극하며 속삭인다.

“한종일  당신 체온이 그리워서 꽁꽁 얼었어. 나를 좀  녹여 줘.” 하지만 아내 은주씨는 그럴 계재가 아니라는 듯 몸을 비틀어 내며,

“ 여보, 오늘 굉장한 얘기가 있어요. 당신도 들어 봐야 해요.”


런드리 샤쓰를 다려내는 파트에 유일하게 한국인 부부가 있었다. 부부는 손발이 잘 맞아 시간당 다려내는 샤쓰의 수가 120 장이 너끈이 된다. 매우 능률적이고 재치도 있어 벌써 5 년 째 일하고 있는데 문제는 월요일마다 터지는 부부싸움이다. 남편이 워낙 겜부링을 좋아해서 토요일 주급을 타면  일요일 아틀란틱 시티로 달려가 카지노로 몸땅  날린다는 것이다. 그의 아내 미세쓰리는 이것이 너무 속상해서 남편에게 따지고 들려면, 이 경솔하고 무지한 인간 , 아내에게 욕질을 해대고  심지어 뺨을 때리고 발로 차기도 한다. 미세쓰리는 일을 하다 퍼질러 앉아 대성통곡, 그러면 일도 늦어지고 분위기도 고약해져 도무지 바쁜 시간에 지장이 많다. 이런 일을  번번히 당하고만 지냈는데 카니 박, 그걸 단번에 해결했다는 것이다.

“ 이봐요, 이종규씨 당신 불체자 ( 불법체류자 ) 맞지요? 브라질에서 방문으로 와 가지고 눌러사는 것 아니냐구요? 더 말해 볼까요? 당신, 한국 떠날 때, 엄청난 부도내고 도망 나왔지요? 당신 정신차리지 않고 이렇게 허랑 방탕 살면,  나 당신 신고할 거얘요. 아시겠어요?”

하니까 그냥 팍 죽더더란 것이다. 싹싹 빌고 하소연하고.

심지어 한국에서 많은 빚지고 갚을 길이 없어 밤도망을 쳤는데,

 도망가는 것을 숨기기 위해 일부러  베란다에 빨래 널어 놓고 여행가방 하나씩 들고

돈 한 푼 없이  브라질로 떠나게  된 사정 까지 구구절절 얘기하더란 것이다.

“ 근데 여보, 카니는 너무 인정이 깊은 사람이얘요. 미스터 리에게 앞으로 마누라도 패지 않고 성실하게 일하면 자기가 그들의 영주권 획득을 도와주겠다는군요. 그 방법도 상당히 잘 알고 있는 것 같았어요.”

은주씨는 남편 명수씨를 슬쩍 곁눈질하며

“ 우리가 그들의 스폰서 역할을 해 주면 어떨까요? 이씨부부를 우리 가게서 스폰서로 신분보장을 해 주면 그들이 영주권을 탈 수 있는 방법이 있다더군요”  

명수씨도 물론 그런 규정을 알고 있다. 그러나 그 후일담들이 썩 유쾌하지 않았다. 영주권 없는 사람들을 원룸 아파트에 합숙시키고 일당도 박하게 주면서 하루 14 시간 씩 일을 시키고 심지어는 휴일날도 자기 집에 데려가 청소와 뜰일을 시키며 혹사시킨다는 말, 그러나 그들은 자신의 약점을 알기에 이 악물고 참으며 소정의 5 년을 기다린다는 말,

“ 난 법을 어기며 교활하게 국경을 넘나드는 사람도 싫지만,  약점을 쥐고 비인간적으로 사람을 부리는 것도 원치 않는 일이요”

명수씨는 뚝뚝하게 말하며 손을 씻으려 화장실로 간다.


하루는 명수씨가 K크리너를 들르게 되었다. 들어서 보니, 작업장에 잠시 일이 멈추어지고 소동이 나 있었다. 말썽의 주인공은 역시 이씨, 히스패닉 여인과의 다툼이었다. 작업장의 화장실은 남여 공용 하나, 이씨는  소변을 본 후 번번이 물을 안 내리는게 화근이었다. 신체가 우람하고 성격이 직설적인 에리나, 화장실에 들어갔다 다시 나오며 ‘ 미스터 리를 부른다.

‘ 변기에 있는 노란 물, 당신 오줌, 그대로 있다. 치워라. ‘

아 미안 내 치울께, 조심하지 미안해’하고 사과하면 싑게 넘어갈  일을 이씨, 한국적 남상우월주의 전통의 정신으로 일단 일갈한다.

“ 그거 내거 아냐, “

‘ 요 거짓말장이’  엉덩이가 바위채만한 에리나의 심기를 거슬렸다.

“ 너 화장실 들어 갔던거 나 봤거든, 왜 거짓말하니?”

평소 미운 털이 박힌 이씨에게 다른 멕시칸 까지 떼로 몰려와서 왁왁거리자 궁지에 몰린 이씨, “ 아 18 ! 이게 뭐가 더럽냐고?”

하며 손을 변기 물에 넣어 한 웅큼 집어 쩝쩝 먹어 보인다. 어이가 없어진 관찰자들은 멍하니 보다가 서로 윙크하며 허리를 잡고 웃으며,

“ 절크jerk “하고 자신들의 자리로 흩어진다.

그런  모습을 지켜보다 명수씨도 실소한다. 화장실 하나 더 늘려야 겠군 생각하며.

 사무실 쪽으로 걸음을 옮기려는데 누군가 발을 탁 건다.

방심한 명수씨 중심을 잃고 비척거린다. 다행히 바닥에 넘어져 뇌진탕 걸리는 일은 미연에 방지됐지만 어라! 그를 부축해 안고 있는 이는 카니 박.

“ 뭐야, 당신이 발 걸었어? “ 분노로 고함치는 그에게 돌아온 말은 단 한 마디,  “너두  절크jerk !!”

‘ 이 여자가 미쳤나? 나를 미쳐 몰라 본 걸까?’  노여움으로 많은 질문이 있었지만 카니는 이미 아무 일도 없었다는 둣, 태연하게 카운터에서 기다리고  있는 손님에게 가고 있다.


“ 하이! 미스터 빌, 오랜만에 보는군요. 당신 딸은 이미 대학으로 떠나서 집이 허전하겠군요?

“ 노우, 절대 아니얘요, 아내와 나는 호젓하게 제 2 의 신혼기를 즐기고 있지요”

“ 그럼 아마도  베이비 시스터라도 선물하려고요?  하 하 “

유난히도 나긋하고 유쾌한 그들 대화에 명수씨, 화내고 따지고 할 겨를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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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끝종, 아이들은 소스라치듯 졸음에서 깨어나며 선생님도 서둘러 출석부 챙겨 나가신 교실 안,  다시 생기가 돈다. ‘ 점심시간  먹자’ ‘아주 노래를 불러라. ‘ ‘ 우리 나가서  먹자. ‘ 조오치,날씨되지기분되지 김밥 싸왔다는거 아냐’ 왁자지껄 , 끼리끼리 도시락 주머니를 들고 밖으로 나왔다.

’ 우리 백자광산으로 가자거기 되게 시원하고 조용하고 좋잖아" " 그래 ,가자’ 

교사 후면 산골짜기로 들어서면  가느다란 산길이 있고 조금  들어가노라면 일제시대 때  백토를 파다 도자기를 굽던  동굴이 지금은 폐쇄되어 있다.’  거긴 학생 출입금지구역이쟎아’ 평소 소심쟁이 순애가  마디   수가 없다. ‘ 까잇것 괜찮아 잠간 밥만 먹고 오는건데광순이가  소리치고 ‘ 거기  안에 샘물이 아주 시원하고 달다하며 옥순이가 하경에게 설명해 준다

 과연  곳은 우묵하게 그늘지고   샘에서 흐르는 맑고 차가운 실개천이 졸졸 흐르고 있다. ‘ 어머어쩜 이런 멋진데가 있니여기 산신령님 사시는  아닌가.’하경이 신기해서 중얼거리니 “ 신령님 우리 잠깐  먹으러 왔습니다허락해 주세요하고 영희가 동굴 속에 대고 장난스레 외쳤다그러자 마치동굴 속에서 대답하듯 웅웅대는 메아리가 울려 모두들 깔깔 웃어댄다 먹는 순간은 조용하다배도 고플 때였고 하나 밖에 없는  입은 우선 먹는 일에 분주했으니옥순이가 제일 먼저 도시락을 비우고  안으로 들어가 깨끗이 씻어낸  도시락에 맑은 물을 가득  왔다. " 아, 시원하고 맛있다."돌아가며  모금  마신  다시 얘기가 쏟아진다.

“ 얘들아너네들 김금지라고 알지? “  “ 우리 국민학교  반장 하던 ,” “ 걔가 어쨋는데?”너네들 모르는구나   4.19일어났잖어  걔가 학교에서 돌아오다 총을 맞았다는구나많이 다쳐서 병원에 입원했는데 정신이상이 되서 정신병원으로 갔대 “ 아니그거 확실해진짜 그래읍내 ㅇ초등학교 졸업한 아이들이 질색하며 합창하듯 물어댄다. “ 그럼 , 우리 엄마가 금지네 동네 사는 친구가 있어 소문이  났대. “ 옥순이는 정색하며 대답하고 아이들은 숙연해진다.” 금지가 어떤 앤데?”하경의 묻는 말에 남미가 말한다. “ 금지는 이름처럼 얼굴도 예쁘고 공부도 잘하고 맘씨도 아주 착했단다. “ " 그리고 4 학년 때부터 도맡아 반장을 했지. “ 공부 잘하니까 당연히 서울 유명한 ㅅ여중에 들어갔어.” ㅇ 초등 동창들이 돌아가며 설명한다.

 ‘ 그 학교는 경복궁  근처에 있어 아마도 그럴  있겠다’ 하경도   여중에서  사건을 겪었다.” 도대체 대통령이 뭔데 학생들이 데모 한다  총으로 학생들을 쏴서 죽게 만든다니평소 단세포 영희답지 않게 흥분하여 말한다. " 음, 김주열 학생 눈에 최루탄 맞아 죽어 바다에서 건진 사진 보았니? 그걸 보고 고등 학생들이 더욱 분개해서 사태가 커졌다는구나"" 4.19 데모가 뭔데" 남미가 촌닭스럽게 눈을 꿈적이며 묻는다. “  승만 대통령이 너무 오래 통치를 하고도   대통령직을 연장하려고 부정선거를 했쟎니역시 부반장 손영란이 조금 안다는듯 차근차근 얘기를  준다이어서 아이들은 3.15 부정 선거에서 듣고 보아온 추접스런 얘기들을 침을 튀기며 중구난방하는데  하경이가 낮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 난 4.19 데모하는 거 직접 봤다 다니던 학교가 경무대 근처거던수업하는데 갑자기 담 밖에서 총소리가 탕탕 나며 흰 샤쓰에 검은 바지 입은 대학생들이 한 떼거리 담을 넘어 들어오는거야. 곧  비상종이 울려고 수업 중단한  선생님들이 교무실로 갔단다금새 담임이 들어왔는데 얼굴이 하얗게 질려 있는거야아이들을 교실에서 꼼짝 못하게 하고 화장실도    조를 짜서 보내고 집에도  보내 주는거야.정말 우린 전쟁난  알고 얼마나 겁나고 무서웠는지 몰라 다행히 오빠가 근처 기관에서 근무하고 있어서 오빠가  데릴러 왔어. 오빠 따라 학교 밖에 나오니 밖은 완전 살벌하게 바뀌었더라.행인도 없고 트럭이나 버스에는 이마에 흰띠를 두른 청년들이 마구 뭐라 외치며 지나가고 ‘  아마 이승만 하야하라’ 하던가 군가 같은 것도 부르고 ,  뒤론 군대 차가쫒아가며 총을 쏘아대고   금지 같은 죄없는 행인이 다치기도 했을거야서울 신문사가 대낮에 불이 나서 활활 타오르고정말정말 무서웠어버스도 전차도 끊어졌으니 오빠는  손을  붙잡고 뒷길로 골목길로만 해서 용산 우리집 까지 걸어갔단다. " 아이들은 팔에 오소소 소름이 끼치고  공포스런 얼굴로 심각한 모습이.

갑자기 영희가  “ 아니 사람 냄새” 화들짝 놀라며  쪽을 본다연기가 뭉실뭉실 흐르며  뒤로 김혁제가 담배를 비스듬히 꼬나문채 슬슬 다가 온다.”  니들점심시간 끝나고 5교시 수업이야여태 뭐하고 있는거야” 날카로운 뱁새눈을 치뜨며 낮으막한 소리로 으르렁거린다. “ 아이 오빠 얘기가 길어졌어  번만 봐주세요.” 영희가 생글거리며 앞장 서고 다른 아이들도 오빠,오빠하며 애교스럽게 웃으니 혁제도 어쩔수 없다는  피식 웃으며 “ 어서들 뛰엇하고 소리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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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경의 학급에  광순이라는 애가 있다광순이는  쌍가풀이 굵직하지만 눈알이 약간 돌출하  미인상은 아니다그러나 체격이 큼직하니 튼튼하고 마음씨는 체격보다도  커서 시원시원하여  공공의 복잡하고 귀찮은 일에는 솔선 나서서 봉사하는  매우 호감 가는 친구였다아버지는 육이오 전쟁 당시 국군으로 최전방 전투에서 전사하셨다고 한다엄마는 현재 서울 동대문 광장 시장에서  포목점을 하여  바쁜 엄마는 광순이 양육을 친정 어머니에게 맡겨 그애는 외할머니 집에서 자라난 셈이다.   곳이 서울 멀지 않아  엄마가 자주 광순이를 보려 내려오고 생활비도 넉넉하게 대는지 광순이는 언제나 밝고 당당한 모습이었다. “ 이젠 내가 할머니를 많이 도와 드려야 그래서  빨리 집에 가야지 “ 하며 방과  휑하니 집으로 가는  보면 할머니에게 아주 극진한  하다.

 그런 광순에게 장래 정해놓은 남편감이있다는  우리끼리는  알고 있는 얘기다 대상이 같은 ,   정호라는 남자애다정호는 보육원 소속인데 다리가 길어 키도 크고 특히 검은 눈망울이 너무 갚어 바깥 세상 보다는 내면의 어느  곳을 응시하는   진지하고 우수에  분위기였다공부시간에는 자세를 바로 하고  집중하며  노력하는 결과인지 성적도 항상 우수했다.말이 거의 없고 각별한 친구도 없으며  쉬는 시간에는 홀로 운동장  귀퉁이 농구 꼴대 앞에서 톡톡 공을 치다 껑충 뛰어  베스켓 망에  넣는 동작을 반복하는 모습이 여학생들의 눈길을 끌만큼 어떤  매력이 있지만 쟤 광순이꺼하는 걸로 제쳐져 있어 넘보지 않았다하경은 이광순과 박정호를 보면  ‘ 저렇게 점잖은 남자애가 호박씨를 어떻게 깔까중이 학생 남자 여자애가 은근슬쩍 연애질을 하다니’ 웃고 싶은 마음궁금스런 마음이 스멀스멀 피어났다.

어느 일요일 광순이의 생일이라며 친구들 몇몇을 초대했다.커다랗고 오래된 기와집외할머니와 아직 미혼인 외삼촌 그리고 광순이만 사는 집은 적막하고 고적해 보였다사람이 그리웠던 할머니는 우리 어린 소녀들을  손님처럼 맞아 주시고 음식도 많이 차려 주셨다.떡까지 백설기개피떡 , 찰수수팥떡, “  광순아  애기 돌상 받냐수수팥떡 까지 있고 말야” 처음엔 음전하게 내숭을 떨던 우리도 할머니가 자리를 비켜주신  다음은 깨드득깨드득 웃으며 먹고  수다 떨고,

 “ 근데 광순아  궁금한거있어” 내가 불쑥 말했다. “ 뭔데 말해봐 ,  성심껒 대답하지” “  가끔 박정호 만나니만나서 얘기도 하고 그래?” “ 아니.” 광순이 대답하기 전에 다른 아이들이 합창이나 하듯이 고개를 도리도리하며 대답한다. “ 그럼   보고  맘대로 서방이야?”  “ 광순이가 월요일마다 학용품이랑 먹을 거랑 챙겨서 광호 책상 속에 넣어준단다. “ 영희가  바르게 먼저 얘기한다. “ 그걸 광호가 가져다 쓰면 그게 예쓰라는 의미야” 이번엔 정옥순이가 저희들 끼리는 비밀도 아니라는  심상하게 말한다하경은 ‘ 정말?하는 눈길로 광순을 본다. “ 나는 광호를 끝까지 위해줄꺼야대학교도 내가 보내주고 일생동안  절대 외롭게 내버려 두지 않을꺼야.” 광순이는 하경을 보며 속삭이듯 ,그러나 이미 많이 했던 다짐이었듯 정색하며  말한다하경은 과연 그렇게 생각한다는게 가능한가훗날을  과연 그렇게  먹을   있을까너무  세계를 보는  같아 머리가 띵했다. ' 그러나 훗날 따위가 무슨 걱정이람, 지금이 중요하지. 지금 행복하잖아 ? 그리고 아마도 광호도 위안 받겠지? 흥 ! 자존심 따위 무슨 대수 !' 하경은  따뜻한 온천물에 들어앉아 있는  심신이 녹아내리는 행복감 같은 것에  쉬기 벅차도록 가슴이 뻐근하다.


“ 외삼촌 , 여기로 온게 너무  됐어요학교도 맘에 들고 친구들도 너무 좋구요그리고 음-- 외삼촌한테도 너무 고맙구요근데  주사   맞으면  될까요?” 

이틀에    맞는 스트렙토마이신 주사를 맞느라 엉덩이를 까내리라고 눈짓하는 외삼촌에게 하경이 얼굴을 살짝 찡그리며  말한다. “  부리지 말고   맞아야   임마외숙모한테  파스짓  곽도  받아 두어이침 저녁 8   먹는거 잊지 말아라" 하고 짐짓 엄숙하게 말하던 외삼촌은 문득 안스러운 생각이 들었던지 다정하게 말한다.

" 요새 많이 좋아졌어 임마.이대로라면 내년이면 완치돼. 

" 아, 약 먹는거 주사맞는거 너무 싫어요.여기 맑은 공기만 쏘여도 다 낫겠구만" 말은 투덜대지만 하경은 명랑하게 활짝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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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문제는  방에 해결되었다.

서울 근교 ㄷ읍에 의사인 외삼촌이 있다외삼촌은 개인병원을 운영하시고  곳서 멀지 않은 곳에 중학교도 있다. “ 제가 돌봐 줄테니 저의 집으로 보내세요 하는 외삼촌의 시원스런   마디에 엄마 아버지의 근심은 일단락되었다. 하경은 평소에도 존경하고 선망하던 외삼촌이 더욱  좋아지고 믿음직스러웠다.

학교는 되게 꼬졌다건물이라곤 딸랑 기다란 목조 건물 하나그리고 턱없이 넓은 운동장그러나 맘에 드는게 있다삼태기처럼 아늑하게 학교를 감싸 안고 있는 나즈막한 바야흐로 5 월의  피어나는  신록과 반짝이는 햇살을 튕겨내며 찬란하게 빛나는 살랑이는 바람에 실려오는  초록이들의 냄새  아니라 새콤달콤한 사과 냄샌가아니  안에 고급스런 프랑스제 분냄새 같기도 황홀한 꽃향기그런 꿈같은 향연이 펼쳐지고 있는 , 도심에선 볼 수 없었던 너무도 밝고 현란한 자연의 모습에 하경은 깊은 숨을드리 마시며 힘과 용기가 생긴다.여기서 건강 회복하고 ’ 공부도 열심히 해서 다시  여고로 돌아가는거야.’

 

그러나 교실에 들어서 학급 아이들을 보는 순간 부풀었던 기분은 맥없이 가라앉아 버렸다.  남녀 합반에다 대부분이 무기력하고 음울한 얼굴새로 들어서는 하경을 보면서도  관심도 없는  심드렁한 표정들 또는 몇몇은 저희들끼리 숙덕거리며 킬킬 웃거나 하는.낮설고 불쾌힘. 때마침 들어  담임 선생님이 난감해 하는 하경을 데리고 교단에 올라가 소개시켜 주었다.

“ 서울  여중에서 전학  정하경이다서투른   안내해 주고 사이좋게 지내라.”그리곤

“ 영희야  옆에 자리 비었지와서 네가 데려 가거라. “ 영희라고 불린 애는 별로 탐탁지 않은듯 입을  내밀고 말없이 일어나 하경을 안내한다영희는 머리 끝을 공들여 안으로 말아넣고 교복 셔츠도 하얗고 빳빳하게 다려입어  꽤나 겉치장에 신경쓰는아이 같았다성격도 까칠한지 특히 하경에게 쌀쌀맞게 굴어  학교 시작하는 하경에게 꽤 거북스런 존재였다그러거나 말거나 하경은 짐짓 모른채 하며 나름 착실하게 새로운 학교 생활에 적응해 나가리라만 생각했다.

며칠이 지나도  아이들은 누구도 하경에게 접근하지 않았고 다분히 의식적으로 무관심한 척 하며 친절하지 않았다아마도 모종의 결집으로 텃세를 부리자는 걸까하경은 속으로 웃으웠다그러나 내색하지 않고 쓸데 없는 일에 힘 빼지 말자 생각했다점심시간이면 혼자 나와 낯설은 뒷산을 살랑살랑 걸으며 구경하고 탐색하는게 재미있었다신기한 나무  사이사이 수많은 생명체들처음학교 들어설  자신을 그토록 매혹시켰던 아름다운 향기의 근원도 밝혀 내었다마치 분홍 털보송이같은 원형의  꽃이 담뿍담뿍 피어있는 나무들이  많았다 멀리서 보면 분홍 솜사탕을 잔뜩 달고 있는 것처럼.  식물 도감을 찾아보니  이름은 < 자귀나무 >라고 했다촌스럽고 흔한 나무그런데 어쩌면 그리도 고귀하고 맑은 향내를 아낌없이  산에 풍겨 주는지나무에게 고마움과 경의를 표하며 쓰다듬어 준다. 그리고 깊숙이 심호흡으로 향기를 한껒 온몸으로 빨아들인다.움추리고 찌그러졌던 몸의 세포와 실핏줄 까지 신선한 대기와 꽃향기가 그득이 흘러 들어가 하경의 몸은 서서히 부풀어 오르며 심장은 새삼 힘차게 고동친다.몸이 뜨거워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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