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십장생도를  찾아서 > 



그가 떠난다고 한다.  카운터 미스 손이  무심코  전해준  말이다 말을 듣는 순간,가득히 부풀어 올랐던 만조가 썰물되어 빠져나가듯 마음이 휑해지고  앞이 아득하더니 그대로 어두워 진다.

순간 나는 다시     자신의  가지 약점을 확인한다하나는  자신의 허약함과 어수룩함그리고 허락없이 들어와 자리잡은 그의 존재내가 즉시 겪는  무너질 듯한 소멸감 모자라는  자신에 연민으로  남 모르게 혀를 끌끌 찬다.

그가 일하고 있는   프레스 대를 본다.땀으로 젖은 등판이 쩔어있어도  여전히 꼿꼿이  자세를 유지한  푹푹 스팀을 내뿜으며 자켓을  다리고 있다빠르고 익숙한 솜씨는 아니지만 꾸준하게 꼼꼼하고 신중하게 일하는 그의 모습은 주인도 호감을 갖고 있었다주인이 먼저 자르는  아닐텐데 그가  곳을 떠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일이 손에  잡힌 채  하루가 엉뚱쌩뚱 지나고 그가 모든 직원들과 작별의 악수를 나누는 것을 보며 나는 먼저 주차장으로 향했다 익은 그의 검은  랜드로바  쪽으로 몸 기대고 하늘을 올려다 본다오랜만에 보는  낮설게 다가오는 하늘은 아직   낯의 더위를 품은채 대지와 함께 지글지글 끓고 있다.해가질려면 한참을  있어야 하는기인 여름 오후의  한나절.

 걸어오는 그의 모습이 보인다

직원들과 인사를 나누며 누군가 ‘ 이젠  하실려구요 ?  하는 물음에 우선 천천히 여행이나 할겁니다.’ 하는 그의 말과 ‘ 우와팔자 좋으십니다.여행 좋지요하는약간의 선망과 질투의 분위기에 당황한  상기되었던 그의 얼굴이 이젠 창백하도록 굳어 깊은 생각에 잠겨 있다.그가 나를 보고도 아직 내면의 생각에서 벗어나오지 못한 느린 반응으로 겨우 “ 설란 , “ 하며 몽롱하게 바라 본다.

“  의논드릴 일이 있어 얘기  하려구요.” 


 

하지만 아이스티가 가득  컾에 물기가 흘러 컵 받침 물이 흥건이 고일 때까지도 피차 아무 말도 없다.

다만 흐르는 음악 속에 각자 생각에 깊이 잠겨있을 뿐.

 

 

정물.jpg



 < 정물   >


 

 

 

 

 

 

 

 

 

 

 

 

 

 


 

 

 

 

 

  설란은  말이 있다고 했으나 그게 무언지 곰곰 생각하고 

설란이 떠나보내기 감당이  되었던 그는 낮으막한 음악이 흐르는 허공  어디 쯤인지에 멈추어 있을 그들에겐 서서히 저물어 가는 여름  날에 대한 ,  쉬임없이 들어오고 나가는 사람들의 움직임도 전혀 관심없이  우주 공간에  둘만이 표류하고 있는  그렇게 멍하니 서로 다른 생각에 잠겨 있다.

 그러나 그들은  시간이 무척이나 아늑하고 편안했다그대로 영원으로 지속된다 할찌라도 좋을 정도로.


" 십장생을  아시나요?" 오랜 침묵을 깨고 설란이 불쑥 물었다.

자면물 속에서 영원한  해나   구름 생명이 있는 모든  중에서도  장수한다고 생각하는 거북이나 소나무 불노초라고 하는  영지 버섯   따지고 보면  가지가 넘지요 모든  십장생 안에 포함하였지요."

그는 막힘없이 말한다.

" 네 조상님들의 그런 여유가 좋아요언제나 가감해도 그렇게 크게 바뀌지 않는 테두리 말이얘요그리고  안에서 우리  조상들의 순박한 꿈도   있어 좋지 않은가요영생불사의 형상들을 생활  주변에 가까이 놓고 건강한 장수를 기원하는 소망이요." 

" 건강한 장수---- "  문득 그가 되뇌이며 입가를 비틀어 시니컬하게 웃는다.

" 어머미안해요, 내 뭐   말한건가요?   

"   아니아니 아닙니다 . 다만 내가   생각을 하느라고 내가 미안해요."

강하게 부인하는 그에게   설란은 이제 핵심을 꺼내야 한다고 생각하며 정면을응시한다

지치고 공허한 그의 얼굴은 여느 때보다  피곤하고 늙어  보였으나 그의 눈은 설란을 향해 따뜻하게 웃고 있다.


" 나는 그런 간절한 꿈을 지닌  사람을 알고 있어요 사람은 바로 나의 외삼촌이얘요. ' 건강한 장수 별로 의식하지 않던 젊은 시절 1970 년 대, 외삼촌은 정말  고생  하면서 돈을 벌었어요.  정말 아메리칸 드림이 현실이   있던 때였지요. 외삼촌의 부자가 되고 싶다는 꿈은 어느 만큼  이루어졌어요

그러나 너무 거기에만 몰두하다 보니 인생에서의 다른 면은 온통 부실함 뿐이얘요.가정이란 조합이 이루어지지 않고 그리고 나이가 들며 몸이 무너지고 그리고 지금 가진거라고는  밖에 없는 , 그리고 머리 속에 그리는 꿈과 소망과 염원만으로 지탱하는 가엾은 분이 되셨어요.

" 꿈과 소망과 염원을 갖고 계시다구요? "

그가 놀랍다는  반문한다.

" 외삼촌의 뚝심은 굉장하세요.뭔가 하고자 하는 목표가 생기면 끝까지 밀어부치고 이루어 내는 ,그게  분의 인생을 지배했지요 분이    폐암에 걸린 것을 알았을 스스로 말년에  안주할 이상적인 멋진 집을 계획하셨어요알아요말년을 안주하기는 너무 늦은 감이 있기는 하지만요근데 이상한게 뭔가  해야만  일이 있다는 신념 앞엔 죽음도 다가오지 못하나 봐요.아직 일을 하고  계시다니까요그러나 이제 집이 거의 마무리되어 가며 우리 외삼촌은  다시 기력이 떨어져 가고 있어요저는 겁이 나요..집이 다 완성되면  아마 몸져 누우실 거 같애서요.

설란은 아이스티를 미신다

외삼촌의 실의아픔을 생각하면 갈증입이 마르며 그래서 설란은 얼음이  녹아 홍차의 맛이 희미하게 남은 아이스티를 마신다.

밖은 이미 어두워져 실내가 더욱 밝은 조명으로 빛나며 , 조금 더 사람들로 북적인다내일이면 떠나  거리로 흘러갈 사람에게 외삼촌 이야기라니 나도 싱겁고 우습다.라고 생각하며 그를 보니 그는 전혀 정색하고  호기심으로  진지하게 다음 이야기를 기다리고 있다.

" 부탁이 있어요. "  설란은  끊어서 용건을 말한다

" 외삼촌의 새로 지은 집에 아직  자리가 있어요 자리는 십장생도가 들어  거실의  벽면이얘요외삼촌은  곳에 꼭 십장생도를 그리고 싶어 화가를 백방으로 찾아보았으나 마땅한 데를 몰라 지금도 비어 있어요우리 외삼촌의 간절한 염원을 위해 십장생도를 그려 주세요.  당신이라면 훌륭하게  주시리라 믿어 부탁드리는 거얘요".

" 아그거였군요."  그가 희미하게 웃었다

너무 뜻밖에 엉뚱한 부탁임에도 놀라거나 거부의 몸짓이 아닌 따뜻한 미소 속에는 인간에 대한 근원적이고  넓은 이해와 긍정이 설란의 마음을  다시 설레게 하고 있다.

" 그럼 가능한 방향으로  생각하시고  연락 주세요."

 하며 일어서는 설란은 결코 이것이 마지막은 아니라는 믿음으로 가볍게 작별 인사를 고한다.


마치 미루었던 숙제를  해낸 어린 학생처럼 팔랑 팔랑 가볍게 걸어가는 설란의  모습을 지켜보던 그는 천천히 주차장으로 가며 인생의 갑작스런 변수에 머리를 흔든다.우선 내일 일찍 출발하려던 여행을 미루고그리고 마무리하려던 모든 일을 일단 중지하고 그리고 십장생도를 연구해 봐야겠다.  정말 좋은 소재이고 좋은 의미이고 그리고아름다운 조화와 형상,  그리하여   몰두해  만한 그런 기회 아닌가.

 

그거보다  중요한  아직 그가 세상에 남아  일이 있다는게 무척이나 가슴에 벅차고 뜨거워 지는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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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개 다리 1    ( 코메리칸 별곡 시리즈 3 )    2014/07/26 10:13추천 2    스크랩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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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G_0451.JPG

 

< 저 멀리 보이는 다리가 미국과 카나다 국경을 잇는

레인보우브릿지입니다 >

 

 1 설난

 

무더운  나날이다.

바깥은 뜨거운 칠 월 폭염이  까 만  아스팔트가  지글지글  끓어 오르도록 달구고 있다.

    내가 일하고 있는 이 내부도 별로 다르지 않다.

기계에서 뿜어져 나오는  뜨거운 스팀으로 내 목에선 땀이 폭포수처럼  흘러 내리고  온 몸은  샤워한 듯 푹 젖어 있다. 나는 이 뜨거움이 좋다. 내 몸과 마음, 정신의 불순물,  가라앉은 찌꺼기가 땀과 함께 용해되어 배출되는듯 시원한 카타르시 스를 느끼는 것이다.

나는 세탁소에서 바지를 전적으로 다리는 팬츠프레서이다. 일이 무지 덥기는 하지만 나는 내 일이 좋다. 물론 기계 성능이 좋아서 웬만하면 기계가 다 해 주지만 내 손 끝에서 주름도 선명하게 갈끔하게 다려진 바지를  행거에 거는 내 작업에 만족한다. 이렇게 열심히 일한 댓가로 주말마다 봉투에 담겨 건내지는 $ 600 페이  또한 큰 즐거움이다.

평일에는 일 때문에 시간이 없고 일요일은 교회, 그래서 난 돈 쓸 일이 거의 없다.

외삼촌네 얹혀 사니 의식주의 부담이 없다. 가끔 내가 선호하는 군것질거리나 아이스크림을 사와서 외삼촌과 함께 사이좋게 얘기하며 나눠 먹으면 외삼촌은 그것으로 매우 행복해 하시고 “ 내가 너를 데려오기 잘 했어 네가 있어 다행이야 “ 를 연발하신다.

나는 나의 쓰지 않는 돈을 $ 1000 단위로 묶어 옷 서랍 속에 넣어 둔다.

그러면서 마음으로 부자가 된다.


 

그런데 그가 내 눈 앞 프레스 대에서 일을 시작한 후로 자꾸 그에게 신경이 쓰인다.

큰 키지만 비쩍 말라 좁다란 등어리에 여리고 긴 팔, 빈약한 근육질의 가느다란 다리, 그 보다도 그는 당최 처음 하는  노동인 양  일이 영 어설프다.  그러나 엄숙하도록 집중하며 열심히 배우고 전력을 다하여 일하는 모습이 우습다가, 안스럽다가 끝내는 그런 내가 조금  머쓱해지기도 한다.

그가 온 몸이 땀으로 범벅질이 되어도 한눈도 안 팔고 성실하고 진지하게 일하는   모습을 보며 나도 모르게 나조차 속도를 내며 열심히 바지를 다려내게 된다.


 

엊그제  평소 말이 없던 그가  나에게 이름을 물었다.

“ 한 설란이얘요 “ 말하자

그는 땀으로 젖은 수척한 얼굴에 빙그레 웃음을 보였다.

“ 설란 , 나도 알고 있는 설란이 있는데 , 이름 참 예뻐요”

“ 어머, 설란이 나 말고 또 있어요? 드믄 이름인데 , 궁금해요,그 설란에 대해서  얘기해 주세요” 하고 졸라서  

우리는 일이 끝난 뒤 근처 전문 커피 집에 들어가 이야기를 하게 되 었다.


 




< 설란  >

 설난은 중국 태산이 원산지로 12월이나 1 속에서 피어난다고 합니다.

  위로 파아란 대궁과 끝같은 잎새 몇이 올라와 대궁 끝에

 여리디 여린 보라색 꽃이 쪽으로 고개를 숙인 함초롬이 피어나는데

  청아한 향내음이 백미터 사방으로 은은하게 퍼져 있다고 합니다.

 그를 처음 만났을 , 그가 느닷없이 들려준 이야기였습니다.

 나의 눈을 똑바로 주시하며 말하는 그의 강한 눈길을 감당하기 벅차서, 그만 눈을

 내리 깔며 당황한 마음을 추수리느라,

 " 정말 신비하고 고고 高孤한 꽃이군요. 그런 보고 싶어요." 하고 목소리로

 대답합니다.

 " 그런데 꽃을 우리나라 소백산에서도 보았답니다.

  한겨울 등산하다 난데없이 어떤 기억을 잡아당기는 꽃향기가 났어요. 향기 따라

 눈길을 돌리니 십여 그루 군락을 이루며 속에 피어 있었어요. 놀라움과

 기쁨은 이루 말할 없었지요." 그는 당시 느꼈던 행복을 회상하는 눈길이

 됩니다. 그의 눈길 위로 파르스름한 담배 연기 줄기가 하늘거리며 부유합니다.

 " 마음같아선 포기 파내 가지고 와서 우리 뜰에 심고도 싶었어요. 하지만 꽃은

 바로 거기 자리에 있어야만 빛갈, 향기 생명을 지닌다는 생각에 욕심은

 접고 대신 내가 겨울마다 곳을 찾기로 마음을 정했어요."

 그래서 그는 매해 겨울마다 속에서 피어나는 아름답고 향기로운 설난을 보러

  곳을 찾아 간다고 합니다. 깔고 앉은 눈의 차가운 감촉도 잊은 동안을

 설난의 청초하고 수줍은 자태와 향기에 도취되어 머문다고 합니다.

 하얀 눈으로 덮인 깊은 , 어느 양지바른 골짜기에 숨은 보이는 , 피어난

 설난의 신비한 자태, 거기 매혹되어 하염없이 떠날 모르고 앉아 있는 나그네.

 나그네의 엄숙하도록 진지한 모습과 에워싸고 있는 고요. 이러한 상상에

 나까지도 아름다운 전율에 아득해 집니다.

얼마 그는 내게 점의 그림을 보내 왔습니다..

무한한 시공 時空인양 비단폭에 날렵하고 유연하게 뻗은 다섯 길고 짧은 ,

 그리고 아래로 숙인 수줍은듯 송이의 설난이 수묵의 농담으로 원근감을

 주며 은은한 향을 뿜는 듯합니다.

 그리고 편에 그의 휘호가 있습니다.

 

  그림을 들고 보니 떨어지는 쪽지가 있습니다.

 <당신을 처음 봤을 깊은 설난의 향내음이 풍겼습니다..

    모습을 화폭에 담아 보았지요. >

 

춥고 어두운 안에 환한 불이 켜지고 손과 발이 따뜻해오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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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애니의 비탄 >

엄마한테는  미안해요. 그런데 나 이 세상 살기 싫어졌어. 사는게 무서워. 사람들이 무서워. 무서운 이 세상에서, 이 삶에서 도망가고 싶었어.

알아요 엄마, 엄마가 나를 얼마나 극진한 사랑으로 보살펴  주시고 언제나 부족한 것 없이  챙겨 주시는 것 알아요. 그렇지만 엄마, 엄마가 내 인생 대신 살아 줄  수  없어요.

나한테는 나름대로   살아가는데 부딪치는 여러 어려움이 있어요. 그건 누구에게 미룰 수 없는 나만이 겪고 내가 그 결말에 책임져야 하는 그런 일 들 말얘요. 난 여지껒 그런 어려운 일들이 있어도  별 망설임이나 두려움 없이 잘 헤쳐왔어요.  그 결과도 괜찮았구요. 그런데 살아가며 사람으로 인해 부딪치는 일이 제일 어렵고 두려운 걸 알았어요. 앞으로도 나는 인간이기에 사람 속에 섞여 더불어 살아가야 하는건대,나  자신이 없어졌어요.

케빈은 정말 좋은 사람이었어요. 대학 들어가자, 처음 만나면서 부터  늘 내게 친절하게 잘 해 주고 늘 곁에 있으니  나도 모르는 새 그를 믿고 많이 기댔나 봐요.

그가 나를 떠났다고 생각하니 내 존재가 갑자기 텅 비어 허무한 비누방울 같더라구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가벼워져 공중으로 올라가다 탁 터질 일만 남은 비누방울 말이얘요.

나 여지껒 살며 물론 엄마의 도움도 컷지만 누구한테도 지면서 산 적 없잖아요?  내 라이벌이며 반드시 이겨야 할 적수, 수아는 그래도 대결해 볼만한 대상이라고 생각했어요. 그 애는 예쁘고 발랄하고  부러울게  없이 다 갖추었다지만 공부는 나만 못 하잖아요? 좋은 성적으로 좋은 대학을 다니고 또 더하여 멋진 남자애를 사귄다면 수아 부러울 거 없다고 자부했어요. 잘 생기고 가문 잘 나가는 사람 거기다 나만을 사랑하는 남자와 결혼한다면 난 단숨에 상류 사회로 수직 상승하여 수아 따윈 얼마든지 무시하고 살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근데 엄마, 왜 하필이면 수아냐구요? 캐빈이 맘 변하게 된 건 수아 때문이라구요. 수아가 캐빈을 빼앗아 간거얘요.  난 수아와 친척이잖아요? 그들에게  즐겁게, 행복하게 살라고 축복해 줄 수 없잖아요? 그들이 행복하게 즐겁게 사는 것 난 곁에서 지켜 볼 자신이 없어요. 엄마 미안해요. 이런 내가 무척 경박하고 경솔하고 유치하여 실망스러우신가요?  세상 사람들이 아무리 나를 어리석다고 비웃어도 이게 나의 진심이얘요. 나는 공부도 잘하고  친구도 많고 활발하게 사는 것 같지만 사실 난 이렇게 단 한 사람 때문에 어이없이 무너지는  단순 경박 유치한 애얘요. 난 앞으로 살 자신이 없어요. 차라리 죽게 내버려 두시지 그랬어요 ? 다시 살아났다 해도  그냥 암담하기만 한 걸요. 난 앞으로 어떻게 살라구요?

딸에게서 살고 싶지 않다고 몸부림치는 모습을 보는 부모의 마음은 어떤가? 차라리 나를 낳지 말지, 그냥  죽게 내버려 두지, 하는 원망을 듣는 부모의 마음은 어떤가. 인생 초보 애니가  하고 하필이면 그 애인을 사촌에게 뺏겨 생전 곁에서 그 꼴 보고 살 수 없다는 딸 애니의 통곡을 들으며 나는 그냥 심장이 얼음 속에 담궈진 것처럼 저릴 뿐이었다.

사실 나는 수아를 없애겠다는 생각은 애초 전혀 상상할 수도 없었다. 다만 의논을 하고 싶었다. 사촌끼리 그러면 안 되지. 남자 친구도 중요하지만 친척이기도 한 애니에게 그토록 상처를 주면 안 되지. 그런 의논 아닌 하소연을 해 볼 생각이었다.

애니를 생각해서 너도 캐빈에게서 멀어지라고, 그 따위 이리 저리 마음 옮겨 다니는 가벼운 놈이라면 너도 언젠가 애니처럼 당할지도 모른다는 말까지 나왔을 때, 수아는 차갑게 웃었다

“’외숙모 저를 애니와 비교하지 마세요. 애니와 나는 차원이 달라요. 애니는 그 수준에서 어울리는 사람과 사귀라고 하세요. “

수아는 내친 김에 할 말은 다 하겠다는 듯, 새촘하게 눈을 흘기며

“한꺼 번에 너무 많은 것을 가지려 욕심으로 똘똘 뭉친 외숙모 식구들, 질리고 역겨워요.”


아, 그 말을 듣자 내 이성은 사고를 멈추고 작동이 멈춘 내 브레인 속에는 낯선 한 마리 악마가 들어섰다. 나는 그 곳에 없었다. 악마가 내 육신을 빌려 모든 걸 휘두른 것이다. 나는 악마에 의해 땅 끝까지, 지옥 밑바닥까지 추락하고 말았다.

그리고 밖으로 나오자 시원하고 부드러운 밤  바람을 온 몸으로 느끼며  담담하고 침착하게 그 집을 나왔다. 악마는 떠나고 나의 행위만 처절하게 남은 그 집을.

수아를 화장하여 그 유골을 납골당에 안치하고 온 날 저녁

남편과 길버트, 딸 애니까지 온 식구가 한 자리에 모였다.

두 밤 세 날이 마치 긴 세월이었던 듯, 오래만에 만난 낮선 가족인듯,  피곤하고 시무룩한 분위기가 무겁게 가라앉아 있다.

남편도 눈길을 피해 세운 무릎 위에 팔꿈치를 올려놓고 바닥만을 응시하고 있다. 사람이 너무 순하니까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며 자기 목소리 한 번 딱 부러지게  내지 못하고 언제나 양보만 해 오며 살아 온  착한 남편, 뭔가  불안감을 느끼나 차마 물어보지 못하고 속만 끓이는 그의 속이 훤히 보인다.감싸고 있는 침묵이 너무 버거운 양 길버트가 말문을 열었다.


“ 엄마 도대체 왜 그런  큰 일을 저지르셨어요 ? “

“ 길벗 너 도대체 뭘 보고 그렇게 단정 짓는거야? 왜 까발리지 못해 안달이야?”

애니가 참았던 울음을 터트리며 소리쳤다. 그리고 엄마를 향해

“ 엄마가 아니지요? 길버트가 잘 못 안거죠 ? 엄마가 그랬을 리 없어. 엄마 아니라고 해요. 설마 엄마는 아니얘요.”

 남편도 그제사 얼굴을 들고 반평생 살아오며 유일했던 조력자 의지했던 사람, 사랑하는 아내를 바라 보았다.

“ 사실이요 ? 어떻게 그런 끔찍한 짓을 설마 당신이 할 수 있단 말이요 ? “

또 다시 한 참 동안의 긴장된 침묵이 지난 후 길버트가 단언하듯  말했다. “ 엄마 낼 변호사를 찾아 의논하고 함께 자수하러 가시지요. 그래야 엄마가 편해지세요. 엄마 그렇게 하세요.” 나는 한숨을 쉬며 매마른 목소리로 말했다.

“ 그러자꾸나. 나도 할 말이 많을 듯 하구나. “

아직 낮게 훌쩍이던 애니는 다시 사나운 울음을 터트리고 남편은 창백한 얼굴을 천정으로 향한다.

무겁고 괴로운 방 안 분위기를 뒤로 한 채 나는 조용히  방을 나왔다

찬물로 바짝 마른 입을 추기고 창가에 서서 하늘을 본다.

이제 와서 수아가 뱉어낸 독한 말을 원망해야 무슨 소용인가. 그 애는 가고 ,그 결과 업보를 등에 걸머진 나만 남지 않았나. 아 내가 지키려던 나의 가정 나의 아들,딸, 함께 사이좋게 늙어갈 남편까지 모두 이렇게 멀어지는 게 아닌가. 다시 한 번 더 올라오는 한숨을 가만이 눌러 삼키며 맑은 밤하늘에 천진하게 반짝이는 몇 개의 먼 별을 바라 본다.


< 우화의 강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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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애니의 비탄 >

엄마한테는  미안해요. 그런데 나 이 세상 살기 싫어졌어. 사는게 무서워. 사람들이 무서워. 무서운 이 세상에서, 이 삶에서 도망가고 싶었어.

알아요 엄마, 엄마가 나를 얼마나 극진한 사랑으로 보살펴  주시고 언제나 부족한 것 없이  챙겨 주시는 것 알아요. 그렇지만 엄마, 엄마가 내 인생 대신 살아 줄  수  없어요.

나한테는 나름대로   살아가는데 부딪치는 여러 어려움이 있어요. 그건 누구에게 미룰 수 없는 나만이 겪고 내가 그 결말에 책임져야 하는 그런 일 들 말얘요. 난 여지껒 그런 어려운 일들이 있어도  별 망설임이나 두려움 없이 잘 헤쳐왔어요.  그 결과도 괜찮았구요. 그런데 살아가며 사람으로 인해 부딪치는 일이 제일 어렵고 두려운 걸 알았어요. 앞으로도 나는 인간이기에 사람 속에 섞여 더불어 살아가야 하는건대,나  자신이 없어졌어요.

케빈은 정말 좋은 사람이었어요. 대학 들어가자, 처음 만나면서 부터  늘 내게 친절하게 잘 해 주고 늘 곁에 있으니  나도 모르는 새 그를 믿고 많이 기댔나 봐요.

그가 나를 떠났다고 생각하니 내 존재가 갑자기 텅 비어 허무한 비누방울 같더라구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가벼워져 공중으로 올라가다 탁 터질 일만 남은 비누방울 말이얘요.

나 여지껒 살며 물론 엄마의 도움도 컷지만 누구한테도 지면서 산 적 없잖아요?  내 라이벌이며 반드시 이겨야 할 적수, 수아는 그래도 대결해 볼만한 대상이라고 생각했어요. 그 애는 예쁘고 발랄하고  부러울게  없이 다 갖추었다지만 공부는 나만 못 하잖아요? 좋은 성적으로 좋은 대학을 다니고 또 더하여 멋진 남자애를 사귄다면 수아 부러울 거 없다고 자부했어요. 잘 생기고 가문 잘 나가는 사람 거기다 나만을 사랑하는 남자와 결혼한다면 난 단숨에 상류 사회로 수직 상승하여 수아 따윈 얼마든지 무시하고 살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근데 엄마, 왜 하필이면 수아냐구요? 캐빈이 맘 변하게 된 건 수아 때문이라구요. 수아가 캐빈을 빼앗아 간거얘요.  난 수아와 친척이잖아요? 그들에게  즐겁게, 행복하게 살라고 축복해 줄 수 없잖아요? 그들이 행복하게 즐겁게 사는 것 난 곁에서 지켜 볼 자신이 없어요. 엄마 미안해요. 이런 내가 무척 경박하고 경솔하고 유치하여 실망스러우신가요?  세상 사람들이 아무리 나를 어리석다고 비웃어도 이게 나의 진심이얘요. 나는 공부도 잘하고  친구도 많고 활발하게 사는 것 같지만 사실 난 이렇게 단 한 사람 때문에 어이없이 무너지는  단순 경박 유치한 애얘요. 난 앞으로 살 자신이 없어요. 차라리 죽게 내버려 두시지 그랬어요 ? 다시 살아났다 해도  그냥 암담하기만 한 걸요. 난 앞으로 어떻게 살라구요?

딸에게서 살고 싶지 않다고 몸부림치는 모습을 보는 부모의 마음은 어떤가? 차라리 나를 낳지 말지, 그냥  죽게 내버려 두지, 하는 원망을 듣는 부모의 마음은 어떤가. 인생 초보 애니가  하고 하필이면 그 애인을 사촌에게 뺏겨 생전 곁에서 그 꼴 보고 살 수 없다는 딸 애니의 통곡을 들으며 나는 그냥 심장이 얼음 속에 담궈진 것처럼 저릴 뿐이었다.

사실 나는 수아를 없애겠다는 생각은 애초 전혀 상상할 수도 없었다. 다만 의논을 하고 싶었다. 사촌끼리 그러면 안 되지. 남자 친구도 중요하지만 친척이기도 한 애니에게 그토록 상처를 주면 안 되지. 그런 의논 아닌 하소연을 해 볼 생각이었다.

애니를 생각해서 너도 캐빈에게서 멀어지라고, 그 따위 이리 저리 마음 옮겨 다니는 가벼운 놈이라면 너도 언젠가 애니처럼 당할지도 모른다는 말까지 나왔을 때, 수아는 차갑게 웃었다

“’외숙모 저를 애니와 비교하지 마세요. 애니와 나는 차원이 달라요. 애니는 그 수준에서 어울리는 사람과 사귀라고 하세요. “

수아는 내친 김에 할 말은 다 하겠다는 듯, 새촘하게 눈을 흘기며

“한꺼 번에 너무 많은 것을 가지려 욕심으로 똘똘 뭉친 외숙모 식구들, 질리고 역겨워요.”


아, 그 말을 듣자 내 이성은 사고를 멈추고 작동이 멈춘 내 브레인 속에는 낯선 한 마리 악마가 들어섰다. 나는 분명코 그 곳에 없었다. 악마가 내 육신을 빌려 모든 걸 휘두른 것이다. 나는 악마에 의해 땅 끝까지, 지옥 밑바닥까지 추락하고 말았다.

그리고 밖으로 나오자 시원하고 부드러운 밤  바람을 온 몸으로 느끼며  담담하고 침착하게 그 집을 나왔다. 악마는 떠나고 나의 행위만 처절하게 남은 그 집을.

수아를 화장하여 그 유골을 납골당에 안치하고 온 날 저녁

남편과 길버트, 딸 애니까지 온 식구가 한 자리에 모였다.

두 밤 세 날이 마치 긴 세월이었던 듯, 오래만에 만난 낮선 가족인듯,  피곤하고 시무룩한 분위기가 무겁게 가라앉아 있다.

남편도 눈길을 피해 세운 무릎 위에 팔꿈치를 올려놓고 바닥만을 응시하고 있다. 사람이 너무 순하니까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며 자기 목소리 한 번 딱 부러지게  내지 못하고 언제나 양보만 해 오며 살아 온  착한 남편, 뭔가  불안감을 느끼나 차마 물어보지 못하고 속만 끓이는 그의 속이 훤히 보인다.감싸고 있는 침묵이 너무 버거운 양 길버트가 말문을 열었다.


“ 엄마 도대체 왜 그런  큰 일을 저지르셨어요 ? “

“ 길벗 너 도대체 뭘 보고 그렇게 단정 짓는거야? 왜 까발리지 못해 안달이야?”

애니가 참았던 울음을 터트리며 소리쳤다. 그리고 엄마를 향해

“ 엄마가 아니지요? 길버트가 잘 못 안거죠 ? 엄마가 그랬을 리 없어. 엄마 아니라고 해요. 설마 엄마는 아니얘요.”

 남편도 그제사 얼굴을 들고 반평생 살아오며 유일했던 조력자 의지했던 사람, 사랑하는 아내를 바라 보았다.

“ 사실이요 ? 어떻게 그런 끔찍한 짓을 설마 당신이 할 수 있단 말이요 ? “

또 다시 한 참 동안의 긴장된 침묵이 지난 후 길버트가 단언하듯  말했다. “ 엄마 낼 변호사를 찾아 의논하고 함께 자수하러 가시지요. 그래야 엄마가 편해지세요. 엄마 그렇게 하세요.” 나는 한숨을 쉬며 매마른 목소리로 말했다.

“ 그러자꾸나. 나도 할 말이 많을 듯 하구나. “

아직 낮게 훌쩍이던 애니는 다시 사나운 울음을 터트리고 남편은 창백한 얼굴을 천정으로 향한다.

무겁고 괴로운 방 안 분위기를 뒤로 한 채 나는 조용히  방을 나왔다

찬물 한 잔으로 바짝 마른 입을 추기고 창가에 서서 하늘을 본다.

이제 와서 수아가 뱉어낸 독한 말을 원망해야 무슨 소용인가. 그 애는 가고 ,그 결과 업보를 등에 걸머진 나만 남지 않았나. 아 내가 지키려던 나의 가정 나의 아들,딸, 함께 사이좋게 늙어갈 남편까지 모두 이렇게 멀어지는 게 아닌가. 다시 한 번 더 올라오는 한숨을 가만이 눌러 삼키며 맑은 밤하늘에 천진하게 반짝이는 몇 개의 먼 별을 바라 본다.

우화의 강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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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화의 강 2  >

“ 엄마가 이상해요”

참혹하게 죽은 조카딸의 황망한 사건으로 멍하고 침통한 아버지에게 아들 길버트가 한 말이다.

아버지는 아직 진의를 이해 못한 듯 건성으로 묻는다.

‘ 왜 어디 아픈것 같더냐?”

길버트는 아차! 속으로 혀를 차며 얼른 화제를 바꾼다.

‘수아누나의 집에 도둑이 들었던 걸까요? 누나가 너무 반항하는 바람에 그 모양이—‘

길버트는 그 끔찍한 살인현장이 다시 생각나자 공포와 분노, 그리고 의혹으로 치를 떤다. 

 ‘경찰에선 뭐래요? “

  ‘ 글쎄다. 문을 순순히 열어준건 아마도 아는 사람의 범행같다더라.

이 밤중에 웬 아는 사람이 그 집을 찾아갔겠니? “

길버트는 다시 가슴이 서늘해지며 설마하는 마음에 갈피를 못 찾고  있다.



사람을 미워한다는게 얼마나 힘들고 괴로운 일인지, 아마 선량한 사람들은 알 수가 없지.

마음 속에 미움이나 갈등이 없이 평화로운 사람들은 그만큼 행복하게 산다는 걸, 그들은 알고나 있을까 나 자신을 태우는 이 지옥의 불길, 미움과 증오로 나를 갉아 먹는

이 흉칙한 구렁이가 똬리를 튼 것이 언제부터였더라.


시누이가 미국이민을 권하며 초청해 주었을 때 정말 기뻤다. 특히 아이들이 더 좋은 교육환경에서 질좋은 교육을 받게 됐다는 것이 제일 좋았다. 그래서 기꺼이 짐을 싸고

새로운 땅 미국에 가면 거기서 말뚝박고 삶의 터전 잡기 위해 힘껒 일하고 노력하겠다고 다짐하며

이 곳에 온 것이다.새로운 희망과 의욕과 무지개 꿈을 한가득 가슴에 품은 한 가족이 태평양을

건너 이 곳으로 날아온 것이다.

미국은 정말 멋진 나라였다. 넓직한 땅과  탁 트인 시야, 우거진 숲, 신선한 대기, 그리고 넓은 땅만큼이나 너그럽고 적당히 타인을 존중할 줄 아는 교양있고 절제있는 사람들의 자유로운 분위기.

처음 보는 미국은 생각보다 훨씬 맘에 들었다.


그런데 문제는 가장 가까운 식구, 가족 갈등으로부터 시작됐다.

미국에 와서 이삿짐을 풀은 곳은 우선 시누이 집이다.

규모가 상당히 커서 뜰에는 나무도 울창하고 풀장도 갖춘 호사스런 주택이었다 그리고  다운타운 중심가에 위치한 큰 상가 빌당이 있고  리쿼스토어를 운영하고 있어  사는게 무척 바빴다.

오자마자 남편은 매형의 비즈니스를 돕기위해 여러가지를 학습해야 했고 나는 시뉘집 안에 널린 일들을 하느라 쉴틈도 없이 일에 매달렸다. 집이 큰 것이 별로 좋은 것이 아니라는 것도 실제 생활에서 알게 됐다.청소,빨래 끼니 때마다  음식 만들고, 가족들의 식성이 다 틀리므로 각 식구에 맞춤형 음식을 준비해야 했다. 시누이 남편은 처남댁의 음식 솜씨가 최고라는 칭찬과 자랑도 함께  해가며 친구들을 저녁마다 초대했다. 시누는 평소처럼 예쁘게 잘 차려 입고  손님들과 한자리에 앉아 웃고 떠들며 부엌 일에는 얼씬도 안하고 모두 올케에게 맡긴다.


늦어서야 일이 끝나 집에 돌아가면 파김치가 된 몸이 수면부족으로 피곤이 겹친다.

시간이나 마음의 여유없는 빠듯한 생활 속에 스트레스가 쌓여가며 삶의 활력과 희망이 사라지고 힘없이 찌들어 가기만 하는 나날이었다.

아마도 시누네가 우리가족을 친절하게 초청해 준 것은 모자라는 일손을 보충하기 위함일거라는 생각이 깊어지자 .  무척 억울하고 분하고, 또 오란다고 낼름 따라 온 자신이 밉기까지 하다.


그러나 그렇게 바쁘고 고달픈 미국 생활에서 위안과 희망을 찿을 수 있었던 것은 딸 애니와 아들 길버트가 학교 생활에 잘 적응하는 것이다. 그 중에서 차츰 두각을 나타내며  좋은 성적을 내고 특히 미국생활을 매우 즐거워 한다는 거였다. 친구들과 잘 사귀어 제법 리더 역할도 맡아 또래들의 인기도 좋았고 나름대로의 특기나 리크레이션, 또 교회를 통한 사회봉사활동도 활발하여 충만하고 행복해했고 그 아이들의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  아이들의 밝은 장래를 위한다면 나 하나 쯤의 희생은 견딜수 있다고 자위했었다.

< 수아 친구 로지의  진술 >

정말 이런 일이 생겼다는게 믿어지지 않아요. 수아는 어제부터 오늘 오전까지 나와 함께 있었어요. 어제 학교에서 만나 자기 부모님들이 골프 여행을 가셔서 혼자 집을 지키게 됐으니 자기 집서 같이 자자는 거였어요. 우린  시험 기간 중 만나지 못했기 때문에 할 말도 많았고  또 나야 어짜피 혼자  기숙사에 있으니까 기꺼이 수아와 함께 수아 집에갔어요. 

아! 어제 저녁 수아와 곧 약혼할 케빈도 잠깐 왔었어요.  왔다가 – 로지는 여기서 약간 망서리며- 수아가 별로 반가워하지 않는 눈치를 채고는 곧  가 버렸어요. 아, 왜 수아가 그에게 쌀쌀했냐구요? 저도 잘 모르지만 – 또 망서리고 주저하며- 제 사촌 애니가 병원에 입원해 있는게 몹시 마음에 걸렸겠지요. 캐빈과 저, 커즌 ( 사촌 )이 얽혀 애니가 그렇게 괴로워했는데 수아인들 마음이 편했겠어요? 어쨋던 캐빈이 시무룩 해서 간 후 우린  맘껒 수다를 떨고 먹고 마시며 늦도록 놀다 잠이  들었어요. 

그리고 – 그녀는 기억을 캐내오느라 잠시 미간을 오므려 생각에 잠겼다.- 이른 아침 아니 새벽이라고 해야 할까요? 누가 세차게 문을 두드렸어요. 나는 설핏 잠에서 깨어나 수아를 보니 아직 곤하게 자고 있더라구요. 그래서 제가 일어나 우선 창가로 다가가 커튼을 조금 열고 바깥은 내다 보았어요. 근데 문을 두드리던 사람은 아무리 문을 두드려도 대답이 없자 아무도 없는 줄 알고 뒤돌아서 가고 있더라구요.  네, 뒷 태를 보아서 몸집이 자그마하고 여자인거 같았어요, 네, 머리는 후드를 푹 쓰고 있어서 못 봤구요, 그리고 아직 완전히 날이 밝지않아 옷 차림 색갈은 모르겠네요. 나중 수아가 깬 다음 그런 사람이 와서 문을 두드리다 갔다고 하니 피식 웃으며’ 우리 외숙모야. 외숙모는 아무 때나 우리집 드나들어도 되는 친척이야. 하더군요.   

그리고 저는 주일이라 교회가느라 오전 10 시 쯤 내 아파트로 갔지요. 그 때까지도 멀쩡하고 활기차던 수아가 이렇게 돼다니.하며 그녀는 끝내 울음을 터뜨린다.


특히  내게 큰 위안은 착한 딸 애니였다.  시누네는 단 하나 공주같이 키우는 딸 수아가 있었다. 애니와 수아는 동갑내기였고,비슷하게 성장하며 모든 면에서 서로 비교가 될 수 밖에 없었다 

따라서 서로 은근한 경쟁의식이 있었는지 모른다. 내 딸  애니는 자기 부모가 고모인 수아네 집일을 일꾼들처럼 안팎으로 해 주는 것을 매우 자존심 상하고 못마땅해 했다. 자연히 생활적인 차이도 생겨 수아는 커다란 저택에서 부족함 없이 호사스럽게 사는데 지는 좁은 아파트에서 옹색하게 지내는 모양이 스스로에게 자격지심이 아닐 수 없었겠지. 그럴수록 애니는 믿을게 공부 밖에 없다고 생각하며 더욱 분발하고 열심히 학업에 매진했다.하이스쿨 시절 , 다른 또래 아이들은 멋을 내고 친구들과 어울려 놀러 다니느라 바쁜데도 애니는 늘 학교에서 곧장 집으로 돌아 와


집안에서 부모가 미쳐 챙기지 못하는 자질구레한 가사 일을 모조리 해 냈 다. 넘브러진 빨래들을 모아 세탁해 내고 말끔하게 청소하고 ,늦게 들어오는 엄마, 아빠를 위해 따뜻한 국과 밥을 만들고 동생 길벗의 학교일정을 챙겨서 공부를 도와주고,  너무도 내게 완벽한 축복같은 딸로 때로는 내가 무슨 복으로 이런 착하고 지혜로운 딸을 갖게 되었는 지 행복감을 느끼기도 했었다.

 그렇게 열심히 공부하고 착실히 스스로 입시 준비를 한 덕분에 대학은 아주 유수한 유펜 대학에 좋은 장학 혜택을 받고 입학하게 되었다

그리고 얼마 안 가  같은 대학  중국계 남자 친구 케빈도 사귀게 되었다.

애니가 대학에 들어가 집과 떨어져 기숙사 생활을 하며 첫 번 째로 사귀게 된 케빈은 애니에겐 정말 특별한 의미였다. 케빈의 집안은 그 할아버지 때에 이민 와, 할아버지 때는 장사로 많은 돈을 벌어 은행을 세웠고 공고한 부의 기반으로 잘  가르친 자녀들은  대학 교수로 은행가로 또는 변호사로 번창한 ,상당한 명문가였다.

그 집에서도 똘똘한  애니를 인정하고 따뚯하게 맞아주어 두 젊은이의 앞 날은 누가 봐도 행복 그 자체였다. 그런데 돌발상황. 그 사이를 비집고 사촌 수아가 들어서 이들의 갈등이 시작되었다.수아가 소개시켜 달라고 조르니 한 번 합석을 하였던 모양이다.그 자리서 수아는 케빈이 탐이 났고 케빈은 수아의 집요한 작전에 말려들며 애니와 사이가 멀어지고 결국에는 사이가 깨지고,


아직 방학도 아니고 휴일도 아닌 어느 날 애니가 집으로 왔다. 문을 열어주러 나갔다가 애니의 너무 수척하고 기운 없는 모습에 깜짝 놀랐다.

아니, 너 무슨 일 있니? 어디 아퍼 ? 갑자기 웬일로 온거야?  하며 여러가지 질문이 한꺼번에 나왔다.애니는 궁금한 엄마의 질문에는 답이 없이 희미하게 웃으며 손사레를 치고 ‘ 엄마 나 좀 쉬고 싶어. 말은 나중에 해. 하며 자기 방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그리고 끼니도 거르고 잠도 안 자는 듯, 걱정스레 들여다 보면 똑바로 누운 채 천정만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다.  그렇게 하루가 지난 날  밤이 되어도 애니 걱정에 잠 못 이루고 있는데 애니 방에서 흐느껴 우는 소리가 들리는 것이다. 무슨 맘 상하는 일 있어 한 밤 중저리 서럽게 울고 있는 것일까. 나는 딸 애니의 애처러운 울음 소리에 가슴이 에이듯 아파왔다. 새벽 일찍 남편이 가게로 일 보러 나간 후 애니 방에 들어가 보았다. 그렇게 울고 뒤척대다 늦게사 잠 들었는 지 고요하다. 그런데 침대가 텅 비었다. 얘가 일찍 나갔나. 미심쩍어 하며 딸려있는 화장실 문을 여는 순간, 나는 너무 놀래 머릿 속이 하얗게 비어져 갔다. 샤워 꼭지에 가운 허리띠를 걸어 목을 맨 것이다.

기겁을 하며 끈을 풀고 내려놓으니 다행히 곧 발견되어 아직 숨은 끊어지지 않았다.

휴! 얼마나 다행인가.


도대체 아가야 무슨 일이 있었던 거니? 엄마한테 말 좀 하렴. 왜 너 혼자 힘들어하는 건대??이 엄마 너를 위한다면 무슨 일을 못 하겠니? 엄마가 너를 지켜주는데 왜 나한테 도와달라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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