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 3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  마리는 누구인가  >


얼굴로만 몰려드는 밝고 뜨거운 햇살에 와락 짜증으로 눈을 뜬 마리, 아직 정신이 몽롱하다.

커튼 사이로 들어온 햇살이 이렇게 강렬한 건 꽤나 늦은 아침이라는 것도그녀는 몇 번이나 눈을 껌벅인 후 느껴졌고, 지난 밤 언제 어떻게 누가 집에 데려다주었는 지는 도무지 감감하다.

아 내가 또 뭔 실수를 하고 만거야. 마리는 후다닥 옆자리를 본다

남편자리는 사람이 누웠던 흔적조차 없이 말갛고 집 안은 적막하기만하다. 마리는 가슴이 쿵덕 내려 앉는다 정말 이이가 떠나고 만건가 ?

어제 아침이다.

그이가 그랬다.’ 나 내일은 떠날거다. 언제 오느냐고 묻지 말고 기다리지도 말아라’

마리는 언제부턴가 맨정신으로는 남편에게 아무런 댓구도 못했다. 그렇다고 남편이 마리에게 많은 말을 하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그들은  한 지붕 아래서 부부라는 관계로 엮여 덤덤하게 살고 있다.

그러나 마리가 술을 한 잔 걸쳤다 하면 그런 아슬아슬한 평형도 깨지고 만다.

마리는 평소 불만과 울화가 그대로 폭발하여 갖은 큰소리 욕설, 폭행 행폐 포악이 마구 쏟아져 나오고 끝내는 통곡, 통곡으로 밤을 지새우는 것이다.

“ 야! 이 나쁜 놈아 , 나를 용서해 주지 말지, 왜 용서해 주었니? 그래서  나를 이렇게  죽지도 살지도 못하는 연옥살이를 시키냐? 차라리 이 못된 년을 발길로 뻥 차서 내쫒아라. 이 쪼다같은 놈아. 나, 네 얼굴을 보느니  차라리 지옥 염라대왕 대면이  낫겠다. 너 무서워, 너 웃는 얼굴이 더 무서워”

아 이런 되지도 않는 주정으로 온 밤 소란 떨다가  새벽녘이 다 되어서야  잠이드는 못된 술버릇.


아!! 다시 마리는 이마를 두드리며 토막토막 기억나는 어제밤을 떠올린다.

같이 일하는 디렉터 토미킴,  사람들을 만나 상담하거나 , 저녁 미팅이나  식사까지 남편보다 더 많은 시간을 함께하는 그에게 거의 안기다시피 집에 들어와 남편이 보고 있는 앞에서 토미를 끌어 안고 자고 가라고 붙잡았지. 헤어지기 싫어 하면서, 아  이 주책, 날 어째야 하냐.

이미 떠나기로 맘 먹은 남편이 밉고 원망스러워 그딴식으로 폭발이 되었던가. 정말 이이가 가 버렸으면 어떻게 하지?  작별 인사도 없이 가 버리다니,절대 안 돼. 네버에버 노우 ! .마리는 벌떡 일어나 가운을 걸치고 거실로 나간다.

거실은 불라인드가 열려있어 밝은 햇빛이 화사하고  적당한 온도로 에어컨이 작동되어  쾌적한 본위기다. 하지만  남편의 기척은 없다. 어디로 갔을까. 쌩 바람만  울리는 동굴같은 가슴으로 먼저 파킹랏을 내다  본다, 남편의 검은 색 랜드로버가  거기 있다. 우선 안심.

다음은 뒷뜰로 향한 데크, 거기서 남편은 종종 커피를 마시며 신문을 본다. 그러나

거기에 그는 없고 --- 마리는 분주하게 눈을 굴려 뜰 전체를 둘러 본다.

그리고  마리의 얼굴은 반신반의 놀라움으로 뜰  저 편 별채로 된 화실을 바라 본다.

창문이 활짝 열려있는 것을 확인하며 부리나케 뒷문을 밀치고  바람같이 달려 나간다.

여름 날 아침, 첫 번째 뜨거운 햇살이 마리의  대리석  조각 같은 하얀  얼굴에 내리꽂쳐도 전혀 신경쓰지 않고 앞만 보고 달린다.

정말 남편은 거기 있다.

그는 아침 일찍부터  먼지 낀 화실의 바닥을 치우고 여기저기 딩굴은 채 오래된 데생화, 굳어버린 유화 물감 페인트 통, 구겨버린 종이조각 들, 그런 것을 치우며 물걸레로 구석구석 닦아  말끔하게 청소 부터 했다.

청소가 끝난 후 그는  화실 안락의자에 앉아 민화집을 골똘히 들여다 보고  있다.


마리는 우선 두근대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그러나 진심과 달리  앙칼지게 쏘아붙인다.

“ 흥! 왜 안 가고 있어. 당신 말대로라면  지금 쯤 어딘가 거리로  떠돌고 있어야 되는거 아냐? 다신 안 볼  줄 알았는데 .

난 다 정리가 되 있는데 당신은 아직 미련이 남았나봐 . 이봐, 나석 화백님 난 이제 당신 따위에게 미련 없거던.”

“ 알아, 마리 당신 나 없으면 못 산다는거 이미 고백했거던.”

“  언제, 언제 내가 그랬다구 넉살좋게 거짓말, 쌩까고 있네.”

“ 어제 당신이 날 붙잡고 울며 불며 가지 말라고 매달리더라구.다 잊었나?”

“ 어머, 이런-- 난 전혀 기억  없는데요. “

이제까지 빙그레 웃으며 농담처럼 말하던 남편이 써늘하게 웃음을 거두고 건조하게  말한다.  “ 그것도 그렇고  나 할 일이 생겼소. 그 일이 아마 나를 바꿀지도 모르겠소.”

“ 흥 많이 바뀌세요. 난 변함 없을테니까.”

마리는 조롱하듯 소리쳤지만, ‘그래 난 바꾸지  못해. 그를 사랑하는  내 마음은 바뀌지 못해. 왜 난 그에게 집착하는걸까’

엉뚱한생각에 잠기며 돌아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무엇이 되어 만나리  6


오목이는 바보가 아니었다.

그리고 소문처럼 헤프고 막되먹은 계집애도 아니다.

소문과 사실의 괴리, 그러나 어린 소녀,오목이는 알지도 못하고 관심도 없었다.

다만 하루하루 겪어내는 잔혹한 현실에서 살아내는 법을 온몸으로 겪어낼 뿐이다.

최초 맛을 들였던  구멍가게 아저씨가 오면 얼른 캄캄한 다락방에 올라가 숨 죽이고 그가 제 풀에 물러갈 때까지 웅크려 있었다.

구멍가게 아저씨는 처음으로 오목이 자신의 저렴한 값을 깨우쳐 주었다. 아버지가 돈을 전 혀 주지 않은 지  며칠 지나자  집 안에 쌀만 조금 남아 있고  먹을게 아무 것도 없었다. 오목이는 아버지의  밥상을 차리기 위해 구멍가게에 가서 두부 한 모와 계란 두 개를 집었다.

“ 돈을 내야지 “ 구멍가게 아저씨가 말했다.

“ 지금은 돈이 없어요, 다음에 낼께요 “ 하는 오목이를 아저씨는 퀴퀴한 방으로 끌고 들어갔다.

조금 지난 후, 아저씨는 “ 돈은 내지 않아도 된다, 또 뭐가 필요하면 언제던지 오너라.” 하고 친절을 가장해 느물느물하게 말했다. ‘ 아저씨는 나쁜 놈이야, 다신 이 가게에 오나 봐라.’

오목이는 다시는 절대 그 구멍가게에는 가지 않았다.

먹을게 떨어지면 차라리 맞아 죽을 각오로 아버지에게 말했다. “ 돈좀 주세요,반찬거리 사게요  “

돈을 타면 먼 뒷길을 돌아 큰 거리 번잡한 가게에서 식품을 구입했다. 그 후에도 몇 번인가 가게 아저씨가 집으로 찾아오고, 또 무슨 영문인가  낮에는 오목이가 혼자 집에 있다는 소문에  동네 건달들이 꼬여 들었지만 오목이는 꼭꼭 숨어 있기만 했다.

사실과 소문이 이렇게 다르지 마는 누구 하나 오목이를 감싸주는 이는  없었고 소문은 뻥튀기처럼 불어만 갔다..

그런 오목이가 언젠가 부터 길을 향해 난 창문에 붙어 서서  몰래 밖을 내다 보는버릇이 생겼다. 하마 들킬세라 몸은 옆으로 빼내고 얼굴만, 두 눈만, 살며시 창으로 내놓고서.

그 사람, 명수 오빠가 지나간다. 교모는 납작하게 눌러  삐뚜스럼하게 쓰고 교복 상의 칼라 훅을 풀어  셔츠가 허옇게 드러나고,  힙 부분은 꽉 끼지만 내려올수록 바지 가랑이가 거리를 쓸어낼 듯 넓게 퍼진 나팔바지, 그리고 가볍게 옆구리에 낀 납작한  책가방,완전 날나리 학생의 모습이지만 오목이는 그의  멋진 모습에 가슴이 뛴다.

그런던 어느 날, 지 때문에 지 집 마당에 몰려들어 시끌벅적  쌈들을 해대는  건달들을 통쾌하게 패주고 쫒아내 주던 명수 오빠를 보고 이게 꿈이 아닌가 .

오목이는 너무 기쁘고 감사하고, 그리고 뭐라도 그에게 보답하고 싶었는데 무엇으로  어떻게 해야 하나.




열 다섯 오목이의 몸에 이상이 생긴 걸 처음 알아 본 이는 가끔 오목이를 찾아 들던  교회

전도 부인이었다. 그이는 가엾은 오목이의 처지를 동정하며 교회로 인도하려 애썼다. 그러나

오목이 아버지에게는 전혀 가당치 않은 일이다.

하여  가끔 오목이에게 들러 간절한 기도나 드려 줄 뿐이었다. 그 이는  기독교 집안에서 자랐으나 불신자의 집안으로 시집을 가게 되었다. 교회도 못 나가고 잦은 제사, 더우기  시모가 수시로 무당을 들여 푸닥거리를 하는, 그게 몹시 못마땅하였고, 결국엔  도저히 못 참아 시집과 남편을 박차고 뛰쳐나온 신앙 앞에 근성있는  여자였다. 그러나  한편 ‘ 소박대기 ’라는 꼬리표가 기구한 팔자처럼 붙어 다니던 여지임에랴.

무지하고 강퍅 한 아버지한테 허리가 두리뭉실해지며 나날이 불러가는   배를 들키는 날에는 오목이는 맞아 죽을 것이 분명함을 아는 전도부인이 말했다.

“ 오목아 너 왜 배가 불러지는지 아니?”   

“ 전도사님, 나 요새 밥 맛이 너무 좋아 되게 많이 먹어요, 그래서 살이 쪘나봐요 “

“ 바보야, 네 배를 만져 보렴. 뭐가 꿈틀대지 않니?”  

“ 네, 맞아요, 배 안에서 뭐가 움직여요. 이게 뭐지요?”

“ 아기란다. 대체 뭔 짓을 한 거냐?---- 너 사내를 가까이 한 적이 있느냐?”

오목이는 수줍게 머리를 숙였다.

“ 네,마냥 좋은 사람이 있어 요”

전도부인은 ‘휴우’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수소문하여  노량진 역 앞 < 자애 모자원 >으로 몰래

오목이를 보냈다. 거기는 오목이처럼 어린 나이에 원치 않게  임신 한 처녀애들, 또는 불행하게 남편이 먼저 죽거나 버림을 받아  아이들과 살 길이 막막한 홀어미들을 수용하는  곳이었다. 일단 의식주를 지원해 주고 자립할 수 있도록 기술교육과 취업을 알선해 주어 자립 갱생의 길을 열어주는 고마운 사회 봉사 기관이었다.

오목이가 그 곳으로  간 것은 제 이의 탄생과도  같은 새로운 기회고 행운이었다. 전도부인의 간곡한 부탁도 있었겠지만 원장님은 어린 소녀 오목이를 각별히  보살펴 주었다 .생활의 기본 상식을 가르치고 , 글자도 깨우치게 했다.

모자원에서  잘 먹고 편안하게 지낸 오목이는 몇 달 후

건강하고 잘 생긴 아들을 낳았다.

원장 어머님이 아기에게 < 왕 >이라고 이름지어 주었다.모자원의 온 가족들이 축하해주고,

아기옷과 기저귀 등을 보태 주었다

그리고 철부지 어린 엄마, 오목이에게 아기 기르는 방법도 세세히 가르쳐 주었다. 하여 오목이는 차츰 아기 기르기도 익숙해 지고 왕이는 건강하게 토실토실 잘 자라났다.

얼마 후  오목이는 재봉 기술도 배워 봉제도 잘 하게 되었다. 오목이 생애의 특별한 발전이다.

그리고 오목이의 특별한 재주는 음식 만들기였다. 도대체 한 번 맛 보면 못 하는 음식이 없고 그녀의 손이 지나간 음식은 비상한 맛에 끌림에다가, 넉넉지 않은 재료를 갖고도 훌륭한  몇 가지의 음식을 만들어 내는 재주는 그 누구도 따를 수 없었다.

오목이 아들 왕이가 4 살이 되었을 땐,  피부가 희고 훤칠한 외모에 의젓함 까지 겸해  모자원  모든 식구들이 아낌없이 사랑해 주었다. 아직 스무 살도 채 안 된   어린 엄마 오목이도 이젠 봉재 솜씨나 음식 솜씨나 한 몫하는 강하고 독립적인 여성으로  성장해 있었다.

하루는 원장 어머님이 오목이를 불렀다.

“ 미8 군  장교가 홈메이드를 구한다더라. 그래서 네 얘기를 했단다. 마침 그들 부부는 네가 좋다면 네 아이를 그들이 입양할 마음 도 있다고 하더라 . 너한테는 아주 좋은 기회라고 생각되는데 “

“ 내 아이는 주고 싶지 않아요. 내가 길러야 해요 “

“ 네 아이를 그들 앞으로 입양하면 왕이는 미국 시민으로 자라고 좋은 교육도 받을 수 있다는 얘기야. 너도 그 집에서 함께 살면서 네 아이를 직접 키울 수 있고 말이야, 너한테 이보다 더 좋은 기회는 없어. 잘 생각해 봐라.”

“ 왜 하필 나지요? 난 말도 통하지 않는 외국인이 싫은데요.”

“ 그들이 너한테 원하는 건 딱 하나야, 자기들 마음에 드는 음식을 먹고 싶다는구나, 넌 그들이 원하는 음식을 만들면 되는거야. “

모자원 식구들도 이런 좋은 기회가 어디냐며 모두 어서 가라고 야단들이었다. 오목이는 나름대로 생각해 보았다.

- 사랑하는 사람 ,오빠의  소중한 내 아기- 아마 왕이가 없었다면 내 인생의 새로운 기회도 없었을거야.  아버지의 그 폭력적인 일상에서 한 발짝도 벗어나지  못하고  비천하게 살고 있을거야,-

나는 왕이와 함께 새로 태어난거야. 난 왕이가 자라듯 나도 함께 자라는거야.

왕이와

함께 새로 태어난거야. 난 왕이가 자라듯 나도 함께 자라는거야.

왕이와 함께라면 뭘 못 하겠어.’

며칠 후 오목이는 원장님을 찾아 가 말했다.

“ 원장님, 가겠어요. 보내 주세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백년 동안의 고독 - 1982년 노벨문학상 수상작 문학사상 세계문학 6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지음, 안정효 옮김, 김욱동 해설 / 문학사상사 / 2005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올해도 책이 나오자 눈에 띄는대로 곧 샀다. 사는 마음이 별로 시들했지만 1977 년도 김승옥의 

< 서울의 달빛 0 장 > 1회 작품집 부터 해마다 빠지지 않고 샀으므로 올해로 37 권 째를 또 사지 않을 수가 없었다. 처음에는 참으로 가슴 뛰도록 훌륭한 작가와 작품이 많았다. 현재 활동하고 있는 

유수의 작가가 모두 여기를 통과하지 않았나 싶다.


근데 언제부터 새로움에 대한 설레임과 경외가 사라지고 그저 해마다 구색이나 맞춘다고 이 책을 

피상적으로 사게 되었을가.

먼저 상식적인 소설의 정의 부터 정리하고 싶다. 소설은 서사문학이다. 서사문학이라 함은 

리듬을 중시하는 시가문학에 대비하여 줄거리, 즉 스토리를 기둥으로 하는 장르이다. 그런데 언제 부터인지 스토리 부재의 작품들이 메인을 차지하고 그러기에 신진들도 그러한 추세에 따라 

뚜렷한 줄거리는 흐지부지로 내면의 모호한 의식 흐름에 집중한다. 

지금 전 세계의 두터운 독자층을 확보한 작가들의 작품들을 보면 내면보다 오히려 외향적이고

현실 가능한 픽션 속에서 방대한 지식과 예견, 그리고 비젼을 제시해 준다.

근래 내가 심취해 읽었던 작품으로 <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 > , 밀레니엄 시리즈를 펼쳐 낸 

스웨덴의 스티그 라르손의 연작집이 있다. 너무도 치밀한 구성과  깊고 다양한 인성으로 빚어지는

사회상을 그야말로 흥미진진하게 그려내 깊이 천착하게 만드는 작품이었다. 이것이 그냥 대중의

인기 영합적 성공작이었다고 비웃지 마시라. 그는 이 연작을 쓰느라 너무나 골몰했던 나머지 그가 의도한 모든 이야기를 끝내지 못하고 50 세의 젊은 나이로 갑자기 사망했다. 그 만큼이나 한사람의 심혈을 기울인 작품이라 믿고 있으며 그 보다 더 숭고한 예술혼이 있겠는가.

지금은 깊은 사유와 푹 넓은 지식, 발로 뛰는 팩트의 소설이 대중을 휘어잡는게  대세인 시대다.


나는 이런 작품들을 선별하는 심사위원들의 가치기준을 疑視한다.

세계 1, 2 차 전쟁이 끝나던 전후시절 어둡고 세기말적인 사조가 인류를 휩쓸던 때, 우리나라에도 

긴 일제시대, 그리고 육이오 전란으로 피폐하고 빈곤했던 그 시절 허무와 좌절 독백으로 한 시대를

풍미하여 전후문학에서 그려 낸 음울함과 내면으로만 웅크린 소아적인 부정과 혐오, , 그것도 한 시대상의 흐름이었지만 지금은 이제 많이 달라졌다. 우리의 전통적인 뽕짝조의 유행가에서

아이돌의 유쾌발랄하고 율동적인 댄스곡으로 대중의 사랑을 받고 있는 것 처럼 소설도 바뀌어야 한다. 작가들 보다 먼저 심사위원들의 구태의연한 가치기준 부터 크게 변화되어야 한다고 생각된다.

1910 년 박민규의 < 아침의 문 >까지는 희망이 보였다. 박작가는 기상천외한 소재와 상식을 뛰어넘는 재치 넘치는 상상으로 버무려 놀랍지만 유쾌한 정신적 체험을 이끌어 준다.

그러나 2011 년 공지영 작가의 < 맨 발로 글목을 돌다 >에서는 저으기 실망을 감추지 못했다. 

그의 노련한 필력과 폭 넓은 활동상의 영역은 익히 들어 알았지만 그 소설에서는 자신의 주변적인 

 이야기가 소설이기 보다 수필? 또는 자전적 소설, 그런데 이런 자전적 신변 소설이 어떻게 대한민국 

2011 년을 대표하는 우수 소설이 될 수 있는가 란 의문이 강한 불만으로 남는다.

올 대상으로 선정된 김애란의 < 침묵의 미래 >는 아직 읽기도 겁이 난다.

너무 난해하여 내가 수준 낮은 독자가 아닐까, 하며 나를 나무라고 브끄러워 할까봐.. 아니면 이게 

무슨 스토리로 엮인 소설이람. 하고 차갑게 매도할까봐. 사실 둘 다 내가 바라는 바가 아니다.


< 다음 지면으로 계속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완득이 - 제1회 창비 청소년문학상 수상작 창비청소년문학 8
김려령 지음 / 창비 / 2008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책의 매력적인 선전 문구는 이렇다.

' 99 %의 절망, 그리고 1 %의 가장 아름다운 희망'

 

책 첫 장을 펼쳤다.

< 남자는 캄캄한 숲에서 잠을 깼다.밤의 한기를 느끼자 손을 뻗어 옆에서 자는 아이를 더듬었다.

밤은 어둠 이상으로 어두웠고 낮도 하루가 다르게 잿밫이 짙어졌다,차가운 녹내장이 시작되어

이 세상을 침침하게 지워가는 것 같았다. 아이가 귀중한 숨을 한 번 쉴 때마다 그의 손도 가볍게

오르내렸다.>

지구가 핵폭발로 처철한 종말을 고한 후 6 년, 그래도 생존한 남자와 그의 아들인 소년, 그들은

보다 따뜻하리라 여기는 남 쪽을 향하여 춥고 굶주린 여행을 계속한다.

보이는 것은 온통 바람에 날리는 잿 가루, 타버린 나무, 집들, 그 어디에도 생명체는 없다.

아니, 가끔 살아 남은 인간들을 만날 때는 공포에 떨며 숲으로 숨어 든다. 먹을 것이 떨어져

인간 사냥에 눈이 뒤집힌 사람 아닌 악령 들.

소년은 가끔 엄마를 보고 싶어 했다.

< 엄마하고 함께 있었으면 좋겠어요 . 잠시 후에 남자가 말했다.그러니까 죽었으면

좋겠다는 얘기니? 네. 그런 말하면 안 돼.

하지만 진심인걸요. 그런 말 하면 안 돼, 나쁜 말이야.

어쩔 수가 없어요. 안다. 하지만 하면 안 돼.

어떻게요?  나도 모르겠다. >

아내는 이미 사람들이 미치광이로 변해 살상과 약탈로 황폐된 절망의 땅에서 생존하기를

포기하고 스스로 죽음이라는 새로운 애인에게로 갔다.

< 사실 여자 말이 옳았다. 할 말이 없었다. 그들은 수많은 밤을 자지도 않고 정신병원 벽에

사슬로 묶인 철학자들처럼 진지하게 자멸에 관하여 찬반 토론을 벌여 왔다.>

황량하고 추운 벌판과 숲 속, 또는 도시,분지들을 추위와 굶주림을 견디며 불타 버린 죽은

나무 등걸로 몸을 녹이고 빈 집이나 헛간에 들어가 말라 쪼그라진 먹을 것을 찾으며

목적도 없이 , 희망이나 계획없이 막연하게 남 쪽 해안가로 이동하는 아버지와 아들.

남자가 아는 것이라곤 아이가 자신의 근거라는 생각만으로.

지구 종말 이후에 태어났고, 문명도 사회도 경험이 없는 소년은 그래도 상상 속의 친구가

있고 사람을 너무 좋아하는 착하고 지혜로운 소년, 그 소년은 거리에서 만난 어린 아이,

희미하게 들려오는 개의 짖는 소리, 심지어 그들의 귀중한 옷가지와 음식을 실은 카트를

훔쳐 달아나는 노인에게 조차 깊은 연민으로 도와주고 싶어하고, 마음 아파 한다. 남자는

소년에게 불을 운반하는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 가야 한다고 말한다.

그 춥고 험한 길에서도 마치 우리 인생에 가끔 꿈처럼 스치는 행운처럼 맑은 물을 발견하여

싫컷 갈증을 풀고, 또 비상 창고를 발견하여 배 불리 먹고 따뜻하게 물을 데워 목욕도 하고.

그러나 그들은 거기 눌러 앉아 살 수 없다, 필요한 것을 챙겨 다시 길로 나선다.

남자의 육신은 병들어 있었다. 처음에는 아이 몰래, 점점 더 심해지며 아이 앞에서도

터져 나오는 기침을 추스르지 못해 피를 쏟기까지 하게 된다.

< 거기 있는 거야? 남자가 작은 소리로 말했다.내가 당신을 마침내 보는 건가? 내 손으로

잡아 비틀 목은 있는건가? 심장은 있어?당신은 영원히 저주 받아야 해.영혼이 있나? 오,

신이여, 남자는 속삭였다. 오 신이여.>

남자는 자신이 오래 버틸 수 없다는 걸 안다.

< 항상 총을 갖고 다녀.좋은 사람들을 찾아야 하지만 모험은 하지마. 절대 하면 안 돼

듣고 있니?  함께 있고 싶어요.  안 돼. 제발.

안 돼 너는 불을 운반해야 돼. 그게 어디 있죠? 어디 있는 지도 몰라요.

왜 몰라 네 안에 있어 늘 거기 있었어. 내 눈에 보이는데. >

그러며 아버지는 죽어 간다. 절망의 끝. 소년은 울고 또 운다.그리고 사흘을 머물다가

다시 길을 나갔다, 그리고 좋은 사람을 만난다. 사람을 안 잡아 먹는 사람. 아이들이

있고 가정이 있는 사람.

< 여자는 소년을 보자 두 팔로 끌어 안았다. 아, 정말 반갑구나.여자는 가끔 신에 관해

말하곤 했다.소년은 신과 말하려 했지만 가장 좋은 건 아버지와 말하는 것이었다.

소년은 실제로 아버지와 말을 했으며 잊지도 않았다.여자는 그것으로 됐다고 했다.

신의 숨이 그의 숨이고 그 숨은 세세토록 사람에게서 사람에게로 이어진다고.>

 

이야기는 생성되어 가는 세계 지도를 문양으로 한 지느러미로  잔 물결을 일으키는

 송어를 상징으로 끝을 맺는다.

문장은 힘차고 간결하며 절대 허무 속에서 아버지와 아들의 구원의 여정을 보여 준다.

그래서 그 끝에 뾰족하게 내미는 희망의 새 싹.

 

오랜만에 흠뻑 빠져서 마음 깊은 곳을 적시며 읽었다. 다 읽고 나서 다시 장수를 펄렁펄렁

넘기며 또 읽었다. 절망 속에서도 얼마나 아름다운 생성의 힘을 틔우는 사랑인가.

그 사랑을 기억한다면 인류 문명은 결코 멸망하지 않는다는 신념.

현재 풍요롭고 평화스런 이 세상에서 우린 불평할 게 없는 행복된 삶이라는 것.

 

 

 

 

 


댓글(2)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커밍업 2008-09-21 19: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아니, 어째서 <로드>의 리뷰가 <완득이>에... 어딘가 실수가 있었나 봅니다.^^;;

소금연못 2008-11-28 01: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THE ROAD < 코맥 메카시 > 지음 --그리고 이 리뷰가 조선에 나왔던데..무슨 오류가 ...ㅠㅠ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 3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