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 날으는 화살은 날지 않는다. [ 8 ]    2005/08/21 12:53추천 0    스크랩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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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

 

공학박사 김 명호의 장례식은 그가 생전에 장로로 장립되어 봉사하던 그의 교회에서

거행되었다. 그의 직장 동료들과 그의 제자였던 젊은 학생들, 이웃, 교우들 모두 그의

마지막 가는 길을 배웅하기 위해 모여 들어 넓은 실내가 꽉 찼다.

로컬 TV에서도 한인 사회와 미국 주류사이에 가교 역할을 하며 꽤 두각을 나타냈던 그의

사망 소식을 전하기 위해 카메라 맨을 대동한 아나운서가 나오고, 또 본국 신문사 기자들도

나와서 간단한 취재를 하고 있다.그러나 모두 검은 정장에 숙연한 모습을 하고 있어 장내는

조용하고 엄숙하다. 영결의 순서가 끝나고 조문객들이 관 주위로 한 바퀴 돌며 작별의

슬프고 쓸쓸한 눈 인사를 보낼 때 한 켠에서 기사문을 메모하던 한 기자가 소근소근 옆 동료에게

묻는다." 저 유가족 석에 앉은 노인네는 누구지요? 저 할머니도 가족인가요? "

" 글쎄요, 나도 잘 모르겠어요. 아마 집 안 가정부? " " 아냬요, 고용인이 저리 늙어서야 무슨 일을

하겠어요? 그리고 상석에 앉아 계시잖아요?" "---"

희디 흰 머리의 노파는 눈 코 입이 분간이 안 갈 정도로 주름살 투성이에 미풍에도 사그러들 듯이

조그만 몸을 더욱 웅크리고 앉아 있다.

" 아, 저 할머니요? 김 박사님의 어머님이세요."

옆에서 기자들의 대화를 듣고 한 여인이 아는 체한다.

" 어머 그래요? 우리가 조사한 인적 사항에 어머니는 없었는데" " 아휴! 요 번 한국서 모시고 왔어요.

어쩜 저런 불쌍한 어머니가 있으면서 여지껒 모른 체 살았으까?" 여인은 좀 지나치고 있다.

" 아, 그럼 이 번이 저 할머니 처음 미국 오신 거얘요?" 여인의 심술을 눈치 챘으나 기자로서의

직업의식이 뭔가 긴장을  느끼며 짐짓 고구마 줄기를 들어내듯 슬쩍 능청을 떤다.

" 그럼요 우린 한 교회서 그렇게 오래 같이 생활했는데도 통 몰랐어요. "

 

저 쪽에도 수군수군 종알종알대는 소리가 있다.

" 어머어머. 시어머니가 저렇게 멀쩡하게 살아 계신데도 저 여편네 친정 식구들만

끌어드리고, 얼마나 교만하게 설쳐댓어요?

" 장노님도 너무 했지, 저런 노모님은 무관심한 채 자기 마누라만 여왕님 받들 듯 했잖수?"

" 에이! 그만들 둬요. 영결식에 와서 험담들이나 하면 마음이 편해요?"

하며 점잖게 타이르던 목소리도 잠시 후 탄식하며 말한다.

" 하기사 장노님 부부 금실 좋고 가정 화목한 건 이 바닥서 유명하지.참 좋은 분이셨는데-."

글쎄요, 그 좋은 낭군 먼저 보내고 어떻게 살까 몰라."

하는 말에는 여전히 가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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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 > 날으는 화살은 날지 않는다. [ 7 ]    2005/08/17 13:44추천 0    스크랩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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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

 

   " 그래 넌 그 동안 어떻게 소원성취하고 행복하게 산겨?

엄 노파의 음성은 나즉하고 부드러웠지만 명호는 어머니의 물음에 ' 아얏'

하고 심장이 먼저 반응한다.눈시울을 무겁게 내리고 마른 입술을 혀로 축인다.혀도

마찬가지로 버석거린다.

" 어머니 저는 유학생으로 들어와 고생도 많았으나 공부도 무섭게 했습니다.학위만이

나의 구원이었으니까요. 결국 나의 목표는 달성되고 고생한 만큼 보상받은 셈이지요."

난 자만의 바쁜 일상 속에서 현실에만 열중해서 살면 되는 줄 알았어요. 다만 그렇게 살아 왔어요.

하는 말은 점점 잦아들어 가뿐 숨이된다.

 " 어머니 좀 피곤하군요, 눈 좀 감고 있겠어요."

  

  <  명호의 어둔 방 >

 몸이 한없이 가라앉는 듯한 무기력은 두렵기조차 하다. 이대로 까무루기 정신을 놓고 나면

세상과의 영원한 괴리가 아닐까? 그러나 이상하도록 의식은 더욱 투명하고 두서없이 떠도는

이미지들은 또렷하다. 이젠 더이상 회피하지 않고 명징한 정신력을 집중하여 자신을 깊이

응시한다.의식의 구비를 돌고 돌아 외지고 구석진 조그만 공간을 찾는다.

헐어 없애려 애썼지만 끝내 소멸되지 않고 그 곳에 있는 음습하고 혐오스러운 공간. 

상처와 고뇌만을 상기기켜 차라리 마음의 금지구역이 된 그 곳서 멀어져 더욱 열심히 일에

매달리고 아내와 자식들을 더욱 살뜰이 보살피고 쾌적한 생활의 여건을 만들어 멋지게 살면

그게 행복하고 완벽한 삶이라고 여겼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몸에 이상이 느껴졌다. 식욕이 떨어지고 체중이 나날이 떨어졌어도 대수롭게

생각지 않다가 눈동자와 살갗에 노란 황달기가 생기자, 몸의 심각성을 실감하고 검사를 받은 거였다.

처음 받은 검사 결과는 간염이었다. 유년에 감염된 비 형 바이러스가 잠복되어 있다, 허약해진

틈새를 타서 활동을 시작한다는 비 형 간염, 아무리 도망치려 애썼건만 가난한 유년의 병마에

발목 잡힌 나는 놀랍게도 잊은 것도 없고 변한 것도 없는 그 때 그 자리 그대로임을 깨달은 것이다.

흙손과 톱이나 망치 등을 넣은 연장 망태를 둘러 매고 일다니던 투박한 손의 아버지 , 조그마한 초가집

그 봉당에서 사금파리 모아놓고 소꿉놀이하던 어린 두 누이 동생, 늘 바쁘게 동동거리던 어머니의

축축한 앞치마에선 찝찌름한 짠지 냄새가 났었다

가난한 미장이 집 셋 째 명호는 인물 좋은 수재였다. 주위에 선망과 기대를 받으며 장학생으로

대학까지 마쳤으나, 말단 공무원으로 출발한 명호의 사회생활은 그렇게 찬란한게 아니었다.

전쟁에 참전하였다가 다리를 잃고 상이 군인이 되어 돌아온 둘 째 형이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여

술과 싸움으로 험하게 살다, 끝내 자살하고 만 것도 그 즈음이었다. 아버지는 그예 심화병으로

자리에 눕고, 가난에 오그라드는 집 안의 형편은 명호로서는 역부족이었다. 그리고 명호의 야망은

이런 현실에 심하게 반발하였다. 여기에 발목 잡힐 수 없어 탈출하는거야. 바위에서 뛰쳐나온 손오공처럼

난 부모도 가족도 모두 없어. 난 돌 김가가 되어 이 집에서 뛰쳐 나가야 되.여기서 주저 앉으면 내 인생

개껍데기 되는거야. 내 이상을 찾아 이 누더기 현실을 훌훌 털고 탈출하는거야.

결심하고 명호는 유학 시험을 보고 수속하고, 그리고 매정하게 떠나온 것이다.

그리고 뒤돌아보지 않고 열심히 전진만 생각하며 가장 완벽한 성취를 이룬다 자신하며 살아왔다.

" 그런데 어머니, 솔직이 난 어머니가 몹시 그리울 땐 마음이 편치 않았어요.

이제 어머니 앞에 선 제 자신이 너무 작고 못나 보이는군요. 아직 철 들지 않은 어린아이 그대로얘요."

그여코 명호는 목 안 깊숙이에서 터져 나오는 비명같은 흐느낌과 걷잡을 수 없이 흐르는 눈물을

참을 수 없었다.

" 어머니, 용서해 주세요, 어리석은 저를 용서하세요." 

"명호야, 아들아, 부모는 자식의 모든 것을 책임지는 것이란다. 네가 죄인이라면 나도 떳떳한게

아니야. 그리고 나는 널 생각하면 '기다리면 언젠가 만나려니'만 생각했단다.이렇게 만났으니

에미는 더 좋을 수가 없구나. 이제 서로 절대 떠나지 말자꾸나."

" 어머니 늦었어요, 너무 늦어, 전 곧 다시 떠날 수 밖에 없어요. 그러나 이 번은 내 뜻이 아니얘요."

명호의 흐느낌은 너무 심하여 호홉 곤란이 되며, 온 몸을 뒤틀다 차츰 의식을 잃어 간다.

 " 가엾은 내 아들, 하느님 내 아들을 살려주셔요."

엄 노파는 아들의 손을 잡고 눈물로 간구한다.

 

 

다음 장에 [ 8 ]편이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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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 > 날으는 화살은 날지 않는다. ( 5 )    2005/08/16 01:17추천 0    스크랩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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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

다음 날 아침 며느리는 엄 노파를 병실까지 데려다 주고는 볼 일이 급하다며 선 자리에서 돌아 나갔다.

아들은 어제보다 더 안색이 창백하고 입술이 메말라 있다. 노파는 익숙한 솜씨로 찬 물을 따라

마른 입술을 축여주고 물수건을 만들어 얼굴과 손발을 닦아준다.

" 내가 병원서 환자들을 좀 다뤄 봤어야. 가족 없는 가엾은 노친네들을 많이 돌봐줬지."

명호는 미소 띈 얼굴로  몸을 맡긴 채 잠잠이  어머니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다가 이윽고,

" 어머니 그 동안 어떻게 사셨어요?" 하고 말 문을 연다.

" 이 눔아 내가 억척시럽게 살었시야. 이제 누구에게 손 안 벌리고도 살 만하게 산다.

내가 부자여, 부자." 

" 무슨 사업을 하셨어요?"

" 내가 무신 장사여? 네 동상들, 명자, 명애말이여. 걔들이 여간 똑똑시런 것들이 아니여.

걔들 덕이여."

 

   < 어머니의 이야기 1 >

이 눔아, 네가 무정시레 떠나고, 그 때 젤 집 안이 엉망이었다. 네 형 죽고, 상심해서 앓아 누웠든 네

아버지가 태산같이 의지하던 너마저 떠나니, 얼마 안 있다 그만 돌아가신겨. 네가 가을에 떠나고

그 이듬 해 오월 엿나흘에 네 아바지 돌아가싯신게, 기일이나 알아 둬.

갈 사람 다 가고, 오막살이 가난한 집에 네 어린 두 동생하고 나만 남더구나.그 때, 아직 고등 학교에 다니던

명자가 핵교를 딱  끊더구만. 그리구 양장점 시다로 들어가, 기술도 배우고 돈도 벌구 열심히 했제.

틈틈이 양재학원도 다니구, 애를 쓰며 몇 해 부대끼더니 뜩하니 제 양장점을 차린게여. 고게 꽤

솜씨 좋고, 싹싹해서 게서 돈 좀 벌었다네. 그 뿐인 줄 아네? 신랑도 어니서 그렇게 잘 골랐는지

마음 무던허고 인물 좋고 공부도 많이 해서 큰 회사에 좋은 자리에 있다는구먼. 지 동상 명애도

지 신랑 연줄로 좋은 사람 만나게 해주어 명애도 지금 잘 살고 있어야. 가만 있자아, 명자가 아들

둘에 딸 하나에, 명애는 아들 하나, 딸 하나. 아이구, 명자는 아들 둘 모두 군대 있어야.

니 동상들두 이제 중년이 다 됐다. 참 무참한 인생이지만 세월은 빨리도 가는구나.

엄 노파는 담담하게 지나간 세월을 풀어 놓는다. 슬픔도 괴로움도, 또 분노도 깊숙이 묻어 놓은 채

현실에 골몰했던 그 때가 오히려 다행이었던듯이, 생생하게 풀어 놓는다.

엄 노파는 아들을 건너다 보며 빙그시  웃는다 그리고 얘기를 계속한다.

네 동상 명자 명애는 안즉도 너를 용서하지 못한단다. 네게 맺힌 감정이 무척 많은게여.걔들은 유감 살

만도 하지. 걔들이 내게 얼마나 잘 하는지 몰러. 사위들두 끔찍하구. 내 혼자 사는게 안스럽다고

지들 같이 살자구 아무리 졸랐지만 난 안 갔다.

 난 걔들한테 말했지. 얘들아 난 기다릴 사람이 있단다. 니 오빠가 찾아와서 우리가 간 곳을

모르면 얼마나 섭하겠니? 하룻 밤 잘 곳도 없다면 무슨 낙으로 집으로 돌아오겠느냐? 난 네 오빠

오기를 기다리며 이 집 지키고 있을게니, 네들이 이해해라. 그러니 더 삐쳐서 지들 앞에선 오빠

얘기 하지도 말란다. 에미가 영 움직이려 않하니, 지들끼리 의논해서 - 너도 알지야? 뒤 텃 밭으로 쓰던

땅이 좀 있지야? 게다 한 스무 가구 살 만한 집을 지어 준게야. 방 하나나, 둘에, 부엌. 화장실 딸린

살만한 셋 집으로말야. 마침 근처가 많이 개발되어 사람들이 몰려들어 방 빌 새가 없이 나고 들어

이 늙은이 먹고 살 만하단다.  그치만 명호야 걱정 말아라. 우리 살던 본채는 그대로 있어 뒤란 우물도

그대로 두었다. 뒤로 산자락이 가까워 아직 물이 맑고 시원한데 딸들은 그거 먹지 말라고

매일 잔소리다. 딸의 잔소리가 별로 싫지 않은 엄 노파의 이야기는 유머가 있고 가락이 있고 그러며

끝 없이 이어진다. 팔십 가까운 노인이면서도 흥이 올라 상기된 얼굴로 눈을 반짝이며 말하는 어머니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명호의 마음은 따뜻하고 편안하였다.

참으로 오랜만에 가져보는 행복감과 평화로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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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느리를 따라 들어선 병실은 햇빛이 밝은 조용하고 작은 독방이었다.

흰 시트로 덮힌 침대 위에 깡마르고 머리가 좀 벗겨져 유난히도 이마가 넓어보이는

중년의 사내가 앉아 있다.

엄 노파는 눈을 깜박이는 것도 잊은 듯 두 눈을 크게 뜨고 그의 앞으로 다가간다.

잔인한 세월, 스물 다섯의 젊은 나이로 어미 곁을 떠날 땐 비록 가난 속에서 , 일과 공부에

여위고 힘들었지만 훤한 이마와 맑은 눈 빛이 아름다운 청년이었다.

" 어머니 먼 길 오시느라 고생이 많으셨지요? 이런 모습으로 어머니를 뵙게되니

민망합니다." 명호는 무릎을 꿇고 깊이 머리를 숙인다.

" 명호야, 명호야 네가 내 아들 맞느냐? " 도대체 무슨 병으로 병원에 있는게냐 ? "

" 네 좀 심각합니다. " 하곤 말을 바꾸어 , " 어머니는 어떠십니까?" 하고 물으며 엄 노파를

찬찬히 살핀다. 머리칼이 희고 검버섯 돋은 얼굴에 주름살도 많았으나 허리는 꼿꼿하고

눈 빛도 형형하다.작은 체구에 두 손을 허리에 집고 버티고 서 아들을 보는 눈은 나무라는 듯

원망하는 듯 엄격하였으나 그 녀의 말은 부드러웠다.

" 진작에 어미에게 소식을 보내지, 그래 이게 무슨 꼴이냐?"

" 어머니, 면목 없습니다. 그러나 이제라도 이렇게 어머니를 뵈오니 정말 좋습니다.

정말 잘 오셨어요. 어머니." 맑은 눈으로 어머니를 바라보며 작은 소리로 말하는 그의 눈에는

눈물이 어룽진다. 잠시 후, 문 밖에서 지체하던 며느리가 들어서며,

" 어머니, 저희 집으로 가셔서 좀 쉬시고 내일 다시 오시지요." 하자, 아들도 한 마디 거든 다.

" 그러세요 어머니 식사도 하시고 푹 쉬세요."

며느리와 복도로 나오다 코너에 의지와 탁자가 있는 곳에 오니,

" 어머니, 여기 잠간 앉아서 시원한 음료수 한 잔 마시세요."

뽀얗게 김이 서리도록 차가운 콜라 캔을 손 안에 뱅글뱅글 돌리며 며느리는 무겁게 입을 연다.

" 어머니 지금 저이는 매우 위독해요. 닥터가 말한 사망의 시한이 넘어가 있어

몇칠을 더 갈지, 몇 달이 될지, 아무도 몰라요. 기적이라도 생기면 모를까--"

" 내 짐작 좀 하였지만 생각보다 정신도 또렷아고 안색도 괜찮은데?"

" 저이는 어머니를 안심시켜 드릴려고, 피를 몽땅 걸러내어 새 피로 바꾸고 몸에 연결된 여러 가지

기계들도 모두 떼어낸 거예요. 저렇게는 대여섯 시간도 버티지 못해요."

" 도대체 어멈아, 어디가 아픈게냐? 무슨 병이라냐?"

" 간암이예요. "

"그래, 고칠 수가 없대드냐? 고칠 방법이 전혀 없대드냐?"

" 우리는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으로 다 노력해 보았어요.

사실은 십 개월 쯤 전에 간 이식 수술도 했었어요. 얼마 동안은 건강이 매우 호전되었어요.

몸 무게도 늘고 기운도 나고, 정말 완쾌된 것같이 모든게 희망적이었어요.

그런데 그게 다시 재발된 것입니다."

며느리의 눈물어린 눈을 바라보며 엄 노파는 흐느끼는 숨을 애써 누르며 지긋이 눈을 감는다.

 

아들의 집은 나무들이 울창하게 늘어선 고요한 주택가에 들어서 약간 경사진 언덕을 오르면

거기에 붉은 지붕을 얹은 꽤 큰 규모의 흰 건물이다.

거실의 큰 유리창 밖으로는 오리와 기러기가 한가로이 헤엄치는 호수가 보이는 아름다운 풍경이다.

명호는 중학교 때 음악시간에 배웠다는 < 언덕 위에 집> 이라는 노래를 즐겨 불렀다.

 

   나에게는 집이 하나 있다네.

   언덕 위에 내 집은 통나무 집이라네.

   노래하는 새들도 함께 산다네.

   달도 별도 내려와 친구가 된다네.

 

명호는 과연 그가 그리던 언덕 위에 집을 가졌구나.

 

' 얘들아 할머님이시다. 인사해라."

검은 머리를 길게 느려뜨린 처녀 애 둘에 터울이가 좀 떨어져 보이는 사내애가 하나 있었다.

" 너 이름은 무엇이고 나이는 몇이지?" 할머니의 물음에 두 딸들은 제 엄마를 쳐다보며

어깨를 들썩한다. 며느리가 얼른 받아

 

" 큰 애는 열여덟이고 둘 째는 열여섯이얘요. 죄송하지만 그 애들은 한국 말을 몰라요."

할머니는 크게 놀랐다 그리고 서운했다.서로 멀뚱이 바라만 보는 분위기가 어색해,

엄 노파는 제 엄마 뒤로 숨어 얼굴만 빼꼼이 내민 막내의 머리를 한 번 쓰다듬어 주며

" 에미야, 내가 쉴 곳은 어디냐? 잠간 눕고 싶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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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가 좋은 때라 마음만 정하니 미국 가는 수속은  신속히 이루어져 처음으로 상면하는

사돈 아가씨를 따라서 미국 땅에 도착하였다.

비행기에서 내려 지루한 절차를 끝내고 로비로 나오니 사돈 내외와 며느리가 기다리고 있었다.

 

며느리가 다가와 공손히 절하며,

" 어머님 연노하신 몸으로 먼 여행에 고생하셨지요?" 하고 말을 하나, 엄 노파는 아무 소리도

안 들리는 듯 며느리 어깨 너머만 살핀다.

" 어머님, 아범은 거동이 어려워서 나오지 못했습니다. 어머니를 기다리고 있으니 어서 가시지요."

엄 노파는 안면이 생소한 사돈 내외와 어설픈 인사를 나누고 제 부모 따라가는 사돈 처녀에게

고맙다는 치사도 미처 못한 채, 며느리를 따라 차에 오른다.

엄 노파는 궁금한게 너무 많아 가슴이 답답하다. 그러나 검은 안경으로 얼굴을 반나마 가리고

앞만 똑바로 응시한 채 운전대를 잡은 며느리의 골돌한 모습에 별로 대답할 분위기가 아니다.

' 조금만 있으면 만사 다 알아지것제.'  왠지 안다는게 무서운지도 모를거란 생각에 우선 머리를

비우고 차창 밖으로 시선을 보낸다. 미국 땅은 아득하도록 넓다 . 산도 언덕도 없이 밋밋한 들판이

한참 펼쳐진가 하면 하늘을 가린 키 큰 나무들이 병풍처럼 길 양 쪽을 에워싸고 있다.

길 가 작은 나무에서 문득 작은 새가 포르르르 난다.내 고향에도 흔한 참새다. 그런데 여기 참새는

머리 꼭데기에 빨간 깃털이 달려 앙증맞고 귀여워 노파는 잠시 걱정을 잊고 미소 짖는다. 

다시 초원이 이어지는데 여기저기 흰 천을 펼친 듯 무더기로 야생화가 가득하다.

무슨 꽃이 저리도 무성히 자라는고? 하고 자세히 살펴보니 ' 아 ! 망초 꽃. 고향의 산야에서도

지천으로 널린 꽃이 여기서도 저리 흔하구나. 생각하며 다시 시름에 젖는다.

저승 문턱에 지천으로 피어 있어, 저 쪽 피안으로 넘어가는 영혼들에게 이승의 기억을 깡그리

잊게 해준다는 꽃.하기사 이승의 고락과 인연을 모두 잊어서야 망자는 미련을 훌훌 털어버리고 가볍게

피안으로 향하는 나룻배를 타겠지. 이곳도 역시 사람 사는 곳이라 삶과 죽음이 있고, 삶의 고뇌와

행복이--- 하는 생각에 이르자 노파는 또다시 등골을 달리는 써늘한 한기에 오싹 몸을 웅크린다.

허지만 다시 노파는 ' 아니 절대 놀래지 않으리라. 닥치는 일에 결코 물러나지 않으리라....'다짐하며

의자 등받이에 몸을 깊숙이 기대고 뻑뻑한 눈을 감는다.

차는 여염집이 아닌 큰 병원으로 들어가 멈추었다.

건물 안 로비와 복도에는 갖가지 색갈 피부의 사람들이 오가나, 발소리도 안나게 조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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