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0일 월요일


긴 겨울잠을 자고 눈을 떴다. 시계를 보니, 530분이다. 잠시 복식 호흡을 하고 맨손 세수를 한 뒤 몸을 일으켰다. 욕실에 들어가 간단히 세수하고, 아침을 먹었다. , 아침다운 아침을 좀 먹고 싶다! 이런저런 아침 의식 행사를 마친 뒤 모텔 현관 앞에 서니, 610분이다. 안내 프런트엔 문이 닫혀 있고, 열쇠를 놓고 가라는 바구니만이 입이 째지게 하품을 하고 있다. 꿈 속에서 계시를 받지 못한 ‘32’의 의미를 끝내 알 수 없게 됐다.


모텔 밖을 나오니, 주변에 아침 일자리를 구하는 듯한 분들이 여기저기 눈에 띈다. 괜스레 미안하다. 누구는 X 빠지게 일하러 갈 준비를 하는데, 누구는 이른 아침부터 여행 배낭 메고 놀러 가다니. 죄송합니다~. 앱을 켜고 상주 모동까지 길찾기를 누르니 29km에 도보로 7시간 42분 걸린다고 나온다. 오메, 상주 모동에서 점심다운 점심을 먹을 수 있겄네. 뭘 먹을까? ‘옛날 손짜장이란 데가 추천으로 나온다. 줄 서서 먹기까지 한단다. 그려? 그럼, 여기서 점심을! , ‘옛날 손짜장을 향하야, 출발! 이제는 본능만 남은 것 같다. 눈떠서 잘 때까지 그려지는 큰 그림은 오로지 식() (宿) ()밖에 없다. 혹시, 싱숭생숭의 어원이 여기서? 이 사람이 아침부터 같잖은 소리는.


읍내를 통과해 가는데 영동고등학교와 영동 학사가 눈에 띈다. 이른 시간이라 아직 인적이 없다. 문득 학교를 나오기 전 출근 풍경이 그려진다. 나이를 먹을수록 새벽잠이 없어, 자의 반 타의 반으로, 교사 중에서 제일 일찍 출근했다. 간단히 교무실 청소를 한 뒤, 아침 교통 지도를 했다. 안전 업무를 맡고 있어 마땅히 할 일이었지만 업무분장엔 없는 일이었다. 으레 등교 겸 교통 지도는 학생부에서 하는 것으로 돼 있어, 교통 지도는 안전 업무 분장에 빠져 있었다. 안 할 수도 있는 일이었지만 마음이 편치 않고 시간도 여유 있어 자원했다. 처음엔 많은 사람이 오가는 데서 교통 지도를 하는 것이 수줍음 많은 성격에 다소 불편했지만, 시간이 지나니 은근히 재미가 있었다. 작은 깃발 하나로 자동차의 흐름을 조절하고 학생들이 안전하게 길을 건너도록 도와주는게 즐거웠던 것. 그런데 이런 속내를 모르는 다른 이들은 자꾸 하지 말라고 말렸다. 늙다리가 아침부터 교통지도를 하니 젊은이들이 불편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럴 수도 있겠다 싶어 그만두려고도 했지만, 아침 시간이 철철 넘치는 데다 재미까지 있으니 도저히 그만둘 수 없었다. 게다가 교장 선생님이 과도할 정도로 칭찬과 격려를 해주셔서 더더구나 그만둘 수 없었다(교장 선생님의 고차원적인 용인술이었다). 어허, 이게 벌써 추억거리가 됐네! ‘영동학사가 요즘 드물게 보는 한자로 표기돼 있다. 永同學舍. 영원히 함께 할 벗들과 공부하는 집. 한글로 표기했으면 알지 못했을 의미가 분명하게 와닿는다. 평생 함께할 좋은 친구들과 다투지 말고 잘 지내길!



웅장한 스케일의 와인 카페를 지난다. 돈 좀 있는 이들을 꾀기 위한 카페 같다. 그런데 내겐 카페 건물보다 입구의 돌담에 더 관심이 간다. 비록 사각의 철망 안에 가둬놓은 돌담이지만 담쟁이넝쿨까지 어울려 있어 정겨운 느낌이 드는 것. 돌담, 한때는 가난의 상징이어서 모두 허물어 버리고 잘살아 보세의 상징인 브로크 담으로 대치되었던 담. 이제는 그 반대가 되어 돈 있는 사람이나 쌓을 수 있는 담. 세상만사 새옹지마라더니, 돌담에서도 그것을 느끼게 된다.



노근리 평화공원 이정표가 보인다. 아니, 노근리가 여기 있었어? 하여간, 무지하기는! 꽤 큰 규모로 노근리 사건을 기념하는 공원이 조성돼 있다. 잠시 돌아본 뒤, 사건 현장인 노근리 쌍굴다리를 가봤다. 당시의 참상을 보여주는 총탄 자국들에 표시를 해놨다. 피난민과 현지 주민들을 이동시키던 미군이 그들 속에 북한군이 있는 것 같다며 갑자기 돌변하여 비행기로 폭격하고 기관총을 난사하여 거의 몰살시켰던 현장이다(당시 이동하던 사람이 500~600여 명 이었다고 한다). 아비규환 생지옥이 따로 없었을 현장! 전쟁 중이라 부득이한 일이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여러 정황으로 보면 무리한 판단이었다는 게 중론이다. 살아남은 자의 힘겨운 노력으로 후일 미 대통령(클린턴)의 사과까지 받아냈다고 하지만, 어디 마음속에 남은 한이 다 풀릴 수 있으랴! 보면 볼수록 착잡한 마음이 드는 현장이다. 다시는 이 땅에 이런 비극이 일어나지 않기를!



비극의 역사를 아는지 모르는지 무심한 푸른 하늘을 올려다보며 다시 발길을 옮긴다. 황간면을 지난다. 번듯한 중학교가 중앙지에 있다. 그런데 왠지 이상하다. 멀끔하기만 할 뿐 괴괴한 느낌이 드는 것. 혹시? 역시나였다. 교문에 폐교된 학교이니 출입을 삼가 달라는 문구를 붙여 놓았다. 또다시 지방 소멸 인구 소멸의 현장을 본다. 그러고 보니 내가 다니던 중학교도 폐교가 되어 인근의 다른 중학교와 통폐합돼 신축 건물로 이사했다. 언젠가 한 번 차를 타고 모교 곁을 지나는데 황폐해진 건물을 보니, 서글픔을 넘어 고통스럽기까지 했다. 정녕 지방 소멸 인구 소멸을 구할 방법은 없는 것인가? 어디까지가 임계점일까? 임계점에 다다르면 극적으로 좋은 변화가 생길까? 아니면 그냥 소멸로 끝날까? 무거운 고민이(감당할 고민도 아닌데) 머리를 짓누른다. 다시 발걸음을 옮긴다.



여기가 어디냐? 앱을 켜고 확인할까 하다 귀찮아 그만뒀다. 제법 날씨가 뜨겁다. 한참을 걷고 있는데 바로 전에 지나갔던 다마스가 갑자기 멈추더니 슬금슬금 후진을 해온다. 내게 오더니, 창문을 내린다. 검게 탄 얼굴의 여천사(!)가 말을 건냈다. “태워 드릴까요?” 더운 날씨에 배낭을 짊어지고 터벅터벅 도로를 걸어가는 게 안쓰러웠던 모양이다. 그런데 억양이 약간 어색하다. 얼굴을 보니 동남아시아 쪽에서 오신 분 같다. 시집을 오신 게 틀림없을 듯. 얼굴에 선함이 가득하다. 감사하지만, 도보 여행의 정도를 어길 순 없는 법. 미소를 지으며 손을 들어 X자를 표한 뒤 그냥 가시라고 두 손을 앞으로 밀어 보였다. 여천사도 웃음을 지으며 창문을 닫고 출발했다. 부디부디 행복하시고 잘 사시기를!


길가에 폐가가 보인다. 그런데 전남에서 보았던 폐가에 비해 서글픈 느낌이 덜 든다. 전남에서 본 폐가는 슬레이트 지붕의 다 쓰러져 가는 폐가였는데, 여기는 번듯한 양옥집 폐가인 것. 경북과 전남의 경제 격차를 폐가에서 다시 한번 확인한다. 문득 정치인이라면 한 번쯤은 제 발로 전국을 돌아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체감적으로 나라 사정을 알 수 있을 것 같은 것. 그러면 생각에 많은 변화가 생길 것 같다. 그러나 저들이 과연 나라 사정을 몰라서 그럴까? 알지만. 하여간 조그마한 나라에 지방간 격차가 심하다는 건 매우 우려스러운 일이다. 이보쇼들, 제발 잘 좀 하쇼!



115. 드디어 목표했던 상주 모동의 옛날 손짜장에 도착했다. 그런데 점심 타임이 지났나 보다. 손님이 하나도 없다. ", 왔능교?"하는 눈빛의 여주인이, 눈빛과 다르게, 반갑게 인사한다. “어서 오세요~.” 어우, 짜장면집 주인답지 않게 날씬한 몸매에 예쁘장한 얼굴이다. 이 자가, 하여간에. 정신 차려! 짜장면을 주문하고 자리에 앉아 있는데, 여주인이 한마디 한다. “저기 오뎅과 만두 있어요. 갖다 드세요.” ? 이런 서비스는 처음이다. ‘물은 셀프라고 써 붙였는데, 대신에 오뎅과 만두를 서비스하는 모양이다. 마구 먹고 싶지만 짜장면 먹을 것을 생각해 오뎅 2개와 만두 2개만 가져왔다. 조금 있으니 할머니들이 들어와 간짜장을 주문하는데, 왠지 주문이 익숙해 보인다. 오뎅과 만두도 자연스럽게 갖다 드시는 걸 보니 동네분들인 것 같다. 드디어, 짜장면이 나왔다. 그런데 옛날 손짜장은 아니다. 간판만 그리 내건 듯싶다. ‘옛날 손짜장이든 지금 기계짜장이든 뭐가 대수랴! 모처럼 만에 점심다운 점심을 먹게 됐는데. 그야말로, 순식간에 뚝딱 해치웠다. 나오면서(당연히 현금 결제했다. 6천 원) 자판기 커피도 한잔했다. 갑자기 힘이 불끈 솟는다. 배도 부르고 힘도 불끈 솟건만, 어디다 솟는 힘을 쓸데가 없다. 아니, 있구나! 아까 오다 보니 백화산 5km’란 안내판을 봤는데, 거기를 한번 가봐야겠다. 혹시 알아, 거기서 옹녀라도 만날지?



어차피 모동에서 묵기로 했으니, 숙소를 일단 정하고 배낭을 내려놓은 뒤 백화산에 가보기로 했다. 그러고 보니 아까 모동 초입에서 부산 민박이란 데를 봤는데. 부산 민박 앞에 도착해 얼쩡거리는데 웬 연륜 깊은 미루나무 같은 남자분이 건물 안에서 나오더니 먼저 묻는다. “, 숙박하시게? 국토 순례하시나?” 나도 모르게 ""라고 답하고 도보 여행 중이라고 했다. 선택의 여지가 없게 됐다. 가격이 얼마냐니, 3만 원 달란다. 더더구나 선택의 여지가 없게 됐다. 2층으로 올라갔는데(1층은 음식점이다) 안내 프런트에 여러 가지 사정으로 25천원에서 3만 원으로 올렸으니 양해 해달라는 문구를 걸어 놓았다. 방으로 안내하는데, 시설이 단촐하다. 그렇지만 이부자리가 깨끗하고 방에서 별다른 냄새도 나지 않는다. 길가 반대편 방이라 길가의 소음도 들리지 않는다. 게다가 TV도 있다. 방 밖에 샤워실도 있고. 내게 딱 맞는 숙소이다. 다만 방바닥 장판에 전기 열선 자국이 눈에 거슬리는데, 그거야 뭐(방에는 보일라 시설을 안 하고 전기온돌 필름을 깔아 그런 자국이 났던 것이다). 짐을 풀고 나와 백화산으로 향했다.


모처럼 만에 배낭을 떼놓고 걸으니, 걸음이 날아갈 듯하다. 날아갈 듯하다 못해 휘청거리기까지 한다. 백화산 입구로 들어가는데, 사찰이 있다. 스님 한 분이 얼굴을 왼통 가리고 작은 포크레인을 운전하며 조경 공사를 하고 있었다. 낯선 모습이 신기해 실례를 무릅쓰고 잠깐 구경을 하는데 스님이 조작을 멈추고 내려와 뭘 살피다가 나를 발견하고는 두 손을 모아 인사를 했다. 아이고, 죄송해라! 덩달아 엉겁결에 나도 모르게 두 손을 모아 답한 뒤 자리를 떴다. 절을 지나 조금 올라가는데 콘크리트로 징검다리를 해놓은 것이 보였다. 산에서 내려오는 수량이 꽤 많다. 반나절 걸어 성질이 날 대로 난 발가락들을 위로할 겸 잠시 징검다리에 앉아 발을 씻었다. 물이 차가워서 그런가, 성질 난 발가락들이 금세 얌전해지더니 제발 옷(양말) 좀 입혀달라고 아우성친다. 하여간 이놈의 변덕하곤. 백화산은 태안의 백화산과 이름이 같다. 한자도 같다. 들어올 때 입구에서 봤던 백화산 송이 있는데, 엄청나게 자랑을 해놨다(괄호 안 한자 병기가 너무 많아 읽기 불편했지만, 인내심을 갖고 읽었다. 괄호 안 한자 병기는 이제 무의미한 어문 현실이 됐다. 한자를 모르는데 병기한들 무슨 소용이 있으랴. 그냥 오해 오류를 무릅쓰고 한글 전용으로 표기할 수밖에 없다). 어지간하면 제 고장 자랑은 당연한 일. 약간의 뻥을 빼고 두 산을 비교해 보니 우열을 가르기 힘들었는데 이곳에 부가점을 줄 수 있는 게 딱 하나 있었다. 바로 물! 산으로 올라가며 보니 작은 폭포도 있어 산의 운치를 더해줬다.



산 갈림길에 섰다. 정상인 한성봉으로 직통하는 길이 있고, 돌아가는 길이 있다. 당연히 직통이지! 그런데 중간마다 이정표가 분명하질 않다. 이거 맞게 가고 있는 건가? 겨우내 사람들이 별반 다니지 않았는지, 발자취도 그리 선명하지 않다. 꽤 올라와 아까 갈림길에서 확인한 한성봉까지의 거리에 거의 도달한 것 같은데 이상하게 이정표도 안보이고 갈수록 길도 좁아졌다. 게다가 낙엽까지 푹푹 밟혀 더더욱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불현듯 불안감이 밀려온다. 이러다가 옹녀를 만나는 게 아니라 웅녀를 만나 남은 생을 산에서 사는 거 아닌가? 다행히 얼마 안 가 안내판 하나가 보였다. 하산 길 안내판. 불현듯 정상은 포기하고 빨리 하산하는게 낫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하산 길이 지금 올라온 길과 다른 방향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빨리 하산을! 열심히 하산을 하는데, 애가 타서 그런지 목이 말라 산에서 내려오는 물을 떠먹었다. 다시 하산. 그런데, 이게 웬일! 하산 길도 이상하다. 처음엔 그럭저럭 사람 다닌 자취가 있었는데 내려오다 보니 갑자기 그 자취가 희미해졌다. 점점 더 불안해졌다. 그러나 어쨌거나 아래로 아래로만 내려가면 되니. 이런저런 개고생을 하며 산에서 내려오는데 쓰레기 봉지가 보였다. 세상에, 쓰레기 봉지가 이렇게 반가울 줄이야! 쓰레기 봉지가 있다는 건 사람이 다녔다는 자취이니, 지금 가는 길이 하산로인 것은 분명한 것이다! 마침내 올라올 때 걸었던 산 초입의 길이 보이는데, 보일 뿐, 거기로 가는 길은 없다! 도대체 어떻게 된 것이냐! 중간의 내[]를 허겁지겁 무지막지하게 건너 등산로에 들어섰다. 안심! 옹녀를 탐하는 색심으로 등산을 했기에 산신령의 노여움을 사 개고생을 한 것이 틀림없다. 다시는 색심을 품고 산에 오르지 말아야겠다. 아까 지나왔던 사찰을 지나며 부처님께도 용서를 구했다. 나무관세음보살~.



숙소까지 돌아와 시계를 보니, 6시다. 저녁을 사 먹을 까 하다 시간이나 메뉴가 마땅치 않을 것 같아 하나로 마트에서 끼닛거리를 사 해결하기로 했다. 하나로 마트로 가기 전에 동네에 혹 볼만한 것이 있나 싶어 한 바퀴 돌아봤다. 다 그렇고 그런 시설뿐인데, 눈에 띄는 게 하나 있었다. 백화 사진관. 이층집인데 낡은 흙벽의 가건물 형태다. 일본식 가옥이라 해야 하나? ‘백화 사진관이란 상호는 이층 벽체에 스프레이로 써놓았는데, 폐업한지 오래된 듯싶다. 흙벽의 가건물 형태지만 이층집이면 당시에는 꽤 잘나가던 집이 아니었을까? 그러나 이제는 시대의 물살에 이리 할퀴고 저리 할켜 초라한 몰골로 서 있는 것일 터. 시대의 흔적으로 남길만한 가치가 있어 그대로 둔 것일까, 아니면 돈 문제가 걸려 그대로 두고 있는 것일까? 그러거나 말거나 이방(異方)의 나그네에겐 색다른 눈요깃거리를 제공해 주는 건물이다. 사진을 아니 찍을 수 없다. 찰칵!



하나로 마트에 들려 좋아하는 호박죽을 두 개 사고 간식의 왕 누룽지도 샀다. 매실 물도(매실 물, 이것 여행 중 최고의 음료이다. 물보다 낫다). 숙소에 들어와 호박죽으로 저녁을 먹고 샤워(민박이라 무시하지 마시라. 온수, 나온다)를 한 뒤 빨래까지 해 널고 방바닥에 누웠다. 차갑다. 전기온돌 필름을 가동하니 금방 따뜻해진다. 예의 또 부질없이 TV 리모컨을 눌렀다. 그런데, 안 나온다! 주인 분께 말씀드리려다 그만뒀다. 음심을 자제케 하니 이 또한 좋지 않을쏜가! 가족 단톡방에 소식을 전하고, 그냥 빈둥대다(이거, 쉽지 않다!) 이부자리를 깔고 일찍 잠을 청했다. 내일은 문경 시내까지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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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일 일요일


이리스는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무지개는 역시 허망한 것이로다. 눈을 떠 시계를 보니, 5시 반이다. 10분 정도 복식 호흡을 하고 맨손 세수를 한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먼저 아침을 먹고, 샤워를 했다. 여타 제반 의식을 치르고 잠시 침대 끝머리에 앉아 있는데, 불현듯 봉지 커피가 먹고 싶어진다. 어제 남겨 온 탕수육을 먹었기에 속이 약간 느끼해서 그런 것 같다. 갑자기 맹맹이 콧구멍 같은 주인에게 섭섭한 마음이 든다. 아니, 그 봉지 커피 2(일반적으로 2개를 놓는다) 값이 얼마라고 그걸 구비 안 해 놓고.


630, 모텔 현관에 섰다. 맹콧 주인은 없고 부인인 듯한 황개(황소 개구리) 인상의 아주머니가 서성이고 있다. “일찍 나가시네요?” 인상과 달리 말씨는 상냥하다. “, 갈 길이 바빠서요.” 하면서 현관문을 나서려는데 프런트 한쪽에 정수기와 봉지 커피가 눈에 띄었다. 먹고 갈까? 살짝 갈등이 생긴다. 마음을 접었다.


앱을 켜고 무주에서 영동역까지 길찾기를 누르니, 29km에 도보로 7시간 28분 걸린다고 나온다. 적당한 거리이다. 그렇다면, 머루 와인 동굴을 한 번 찾아가 볼까? 무주에서 와인 동굴까지 길찾기를 누르니, 7.3km에 도보로 80분 걸린다고 나온다. 멀지 않은 거리이다. 그런데 개장 시간이 10시이다. 8시나 9시 개장이면 한 번 가보겠는데, 아무래도 어려울 것 같다. 다음에! 그럼, 영동역을 향하야, 출발~!


날씨가 더없이 청명하다. 고려 때 시인 정지상은 청명한 하늘을 유리에 비유했는데[天色淨琉璃], 그이가 본 하늘이 바로 저런 하늘 아니었을까? (여기 유리는 지금 우리가 접하는 하얀 색의 유리가 아니고, 비취색의 유리이다.) 연신 청명한 하늘에 눈과 마음을 빼앗긴 채 걷는다. 간밤에 만나지 못한 이리스에 대한 아쉬움을 하느님께서 달래주시나 보다



무주를 벗어나는 걸 알려주는 표상이 서 있다. 그런데, 웬 해태상? 그러고 보니 지난 번 작천면에서 본 표상도 해태상이었는데, 혹시? 맞았다! ‘해태 제과에서 제공한 표상이었다. 그런데 회사명에 검은색을 덧칠해 놓았다. 무슨 사연인고? 공적인 장소를 알리는 곳에 사적인 회사명이 들어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여 가린 것일까? 분명한 건 저 해태상은 지자체에서 세운 것이 아니라 해태 제과에서 기증했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대기업에서 기증하니 얼씨구나 하고 받아들였는데, 세월이 지나면서 뭔가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어 회사 이름을 가린 것 같다. 아예 상()까지 들어내면 좋겠는데, 그건 좀 부담스럽고. 혼자, 멋대로 상상해 본다.



충북 입성을 알리는 입간판을 만난다. 감회가 좀 남다르다. ‘당신, 이제 전남과 전북을 지나 충북에 들어섰소. 축하하오!’ 하는 듯한 느낌이 든다. 감사합니다! 입간판 아래, 무심히 지나칠 수도 있는데 적어도 내게는 그러기 어려운, 구호에 눈길이 간다. “함께 하는 도민 일등 경제 충북.” '함께 하는'은 괜찮은데, '일등 경제'는 눈에 거슬린다. 무릇 구호란 그렇지 못한 현실을 그런 현실로 바꾸기 위해 내거는 법. 일등 경제 충북이란 그렇지 못한 현실을 반영하는 것이다. 그런데, 충북, 꼭 일등을 해야만 되겄어? 그냥 지금도 좋은 것 같은데. 입간판 상단엔 저 거창한 구호의 1/3 정도 크기 글씨로 아름다운 충북으로 어서 오세요라고 써놓았는데, 차라리 이 글씨로만 입간판을 해놨으면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나저나 저 거창한 구호는 기존 어떤 구호 위에 덧붙인 티가 역력하다. 쭈글거리는 것. 영환 씨가 충북도지사가 된 후 새로 내건 구호인 것 같다(영환 씨라고 하는 것에 반감 갖지 마시라. 영환 씨는 항렬 돌림자 사용상 내게 아들뻘이다). 영환씨, 시인이기도 하다고 들은 것 같은데, 구호는 영 아니올씨다네? 시인다운 아름다운 구호로 바꾸던가, 아니면 아예 쓰지 말던가 하시면 안될까?



별 쓰잘데기 없는 훈수를 두며 걷는데, 하늘을 보니 진짜 너무너무 맑고 푸르다. 연암은 드넓은 평원을 보며 울기 좋은 장소[號哭場]라고 말했다는데, 철학도 표현력도 없는 나는 저 맑디맑은 푸른 하늘을 보니 그저 이 말밖에 안 나온다. ~, 미치겄네!



하늘만 맑고 푸른게 아니다. 물도 맑고 푸르다. ‘봉황 호수라는 곳을 지나는데 맑고 푸른 하늘이 그대로 물 위로 내려온 듯하다. 주변의 연푸른 신록 우거진 산과 어우러져 한 폭의 풍경화를 보여준다. 풍경화는 역시 자연이 그린 게 최고다!



포도나무 과수원을 지난다. , 그러고 보니 영동은 포도로 유명한 곳이잖아? 가지치기를 한 건지 밑둥을 잘라낸 건지 절단된 포도나무를 쌓아놓은 것들이 눈에 띈다. 그런데 이게 예술작품이다. 무슨 추상화 한 폭을 보는듯하다. , , ‘아름다운 충북이라고 하더니 농부님들이 다 예술가인가 보네. 대단들 허십니다(진심). 재배하는 포도나무들 위에 모두 비닐 차단막을 씌워 놓았다. 이런 건 처음 보았다. 일조량을 조절해 포도의 당도를 높이기 위해 설치한 것 같다. 그런데 이 비닐 차단막도 예술적으로 보인다. , .



학산면내를 통과한다. 길 한쪽에 눈길을 사로잡는 문구가 보인다. 팥빙수! 오매, 먹고 싶다. 아녀, 가격이 비쌀텐데, 그렇게 사치스런 음식을 먹으면 여행 취지에 어긋나. 아니 비싸봤자 얼마나 비싸다고 그깟 빙수 하나를 못 사 먹고 그랴. 자신을 위해 그 정도 쓰는 게 뭐 그리 대단하다고. 두 녀석이 서로 다툰다. 승부는? 뒷 녀석이 이겼다! 가던 발걸음을 되돌려 가게에 들어갔다. 시계를 보니, 11시가 좀 못 됐다. 그래, 이걸로 점심을 대체하자. 팥빙수도 열량이 적지 않다고 어디서 주워들은 것 같다. 주인에게 팥빙수를 달라니, 작은 걸로 드릴까요, 큰 걸로 드릴까요, 한다. 점심 대용이니 큰 걸로 해야 할 터. 큰 걸로 주세요, 하니 주인이 살짝 놀란 기색을 보인다. 얼마냐니, 만 이천 원이란다(작은 것은 칠천 원). 작은 카페인데, 손님이 없다. 주인이(여주인이다) 팥빙수를 내오며 빙수를 정말 좋아하시나 봐요?” 한다. 그러면서 너스레를 떤다. “제가 제 입으로 맛있다고 하기는 그렇고, 한 번 드셔 보세요.” 이런, 선입견을 심어 주시네? 선입견을 심어 주는데 어이 반박을 하랴. 두어 입 먹어보고, 일단 맛있네요라고 화답을 해줬다. (그런데 혓바닥이 둔감하고 비교할 만큼 특별한 빙수를 먹어본 적도 없어, 게다가 살짝 배도 고프고 목마른 상태라, 진짜 맛있게 먹었다.) 한 참 먹고 있는데, 여주인이 다가온다. 좀 특별해 보인 손님인데다 다른 손님도 없어 말 상대를 해주고 싶은가 보다. 얼굴을 보니, 내 연배나 그보다 한 두살 많아 보인다. 대화하기 좋은 상대이다. “어디 가세요?” 를 시작으로 이것저것 서로 말을 섞는데, 귀에 와닿는 말을 한다. 자기 남편도 명예퇴직을 했다는 것. 전직 경찰인데 몇 년 남기지 않고 그것도 자식 혼사를 목전에 두고 명예퇴직을 했단다. 말리셨냐고 했더니, 이미 마음이 떠난 것 같아 말리지 않았단다. 지금은 뭘 하시냐니, 복숭아 농사를 짓는데 두 해는 죽을 쒔다가 지금은 제자리를 잡았단다. 남편이 지금 하고있는 일에 매우 만족해한다고 했다. 사장님은 원래부터 카페를 하셨냐고 물으니 마사지 샵을 하다가 업종을 바꿨단다. 으흠, 그래서 이렇게 사교성이 좋은 거구나. 다시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 보니, 어느새 팥빙수 그릇 바닥이 보였다. 자아, 얘기는 이제 그만~. 가게 문을 나섰다. , 팥빙수 값은 현금으로 결제했다.



또 하늘을 본다. 맑다! 푸르다! 미치겠닷! 한참을 가는데 배꽃들이 화사하다. 포도도 많이 생산하지만 배도 많이 생산하나 보다. 영동읍내로 들어선다. 사람들이 붐빈다. 오매, 반가운 거! 길가 좌판에 할머니들이 나물을 놓고 팔고 있다. 생각 같아선 다 사드리고 싶다.



시계를 보니, 310분이다. 예정 시간보다 늦게 왔다. 맑고 푸른 하늘과 물에 마음을 빼앗겨 지체한 것이다. 그러나 하나도 후회스럽지 않다! 언제 이런 안복(眼福)을 누릴 수 있으랴! 그나저나 어디 가기도 그렇고, 일찍 숙소에 들어가 쉬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든다. 목표했던 영동역(특별한 이유가 있어 이곳을 목표 지점으로 삼은 건 아니다. 숙박 시설이 많을 것 같아 정한 것뿐)에 거의 다 왔는데, 특별한 이름의 모텔이 눈에 띈다. 모텔 32. 호기심을 자아낸다. 무슨 뜻일까? 앳다, 저기로 들어가보자! 다소 이른 시간이지만 투숙이 가능하다. 방을 달라며, 얼마냐고 물으니, 4만 원이란다. 일요일 가격치곤 싼 것 같다(나중에 알게 됐는데, 모텔의 일요일 숙박 가격은 평일 가격과 같다. 금요일 토요일만 특별 요금을 받는다). 방으로 가는데 이제 갓 세팅을 마친 듯 객실마다 문이 열려있다. 문을 닫고 들어와 침대에 털썩 누워 멍하니 천장을 바라봤다. 하늘과 물에 마음을 빼앗겨서 그런가, 그렇게 많이 걸은 것도 아닌데 피곤하다. 일단, 씻고 보자!


샤워를 하고 제반 저녁 의식을 치렀다. 저녁을 사먹으러 나갈까 하다가 포기하고 그냥 간식거리로 저녁을 때웠다. 이상하게 모텔 안에 들어오면 나가기가 싫다. 전에 아파트 살 때도 그랬는데, 아파트 형태의 폐쇄 공간은 사람 마음도 닫게 만드는 것 같다. 지금 사는 곳은 문만 열만 바로 나가 땅을 밟을 수 있기에 여간해선 방에만 있기가 어렵다. 꼭 밖에 나가게 된다. 공간과 심리는 상관 관계가 많은 것 같다. 부질없이 TV를 켰다. 예의 시답잖은 프로들이 서로 자기를 봐 달라고 아우성을 친다. 야들아, 좀 볼 만한 걸 내걸고 봐 달라고 허야지! 한바탕 혼을 내고 아우성을 등진 채 화면을 꺼버렸다. 갑자기 쥐 죽은 듯한 적막이 흐른다. 이따금 들리는 기차 지나가는 소리 뿐. 다시 곰의 후손이 되어 겨울 잠을 자기로 했다. 내일은 상주 모동까지 간다. 그나저나 ‘32’는 무슨 뜻일까? 꿈속에서 계시를 받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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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일 토요일


꿈속에서 이브와 술래잡기를 했다. 이브를 붙잡으려는 순간, 잠이 깼다. 그러면 그렇지, 언감생심 이브는. 시계를 보니 5시다. 앱을 켜고 무주 버스 터미널까지의 거리를 살펴보니 52km에 도보로 14시간 48분 걸린다고 나온다. 이런, 꾸물거릴 시간이 없구나. 벌떡 일어났다. 제반 아침 의식을 마치고 거울을 보며 모자를 썼다. 그런데 거울 한쪽에 수줍은 새색시처럼 붙어있는 뭔가가 있다. 쳐다보고 어이없어 웃었다.


숙박시설 문화시민 에티켓

1. 옆방 손님에게 피해주는 행위는 하지 않습니다.

2. 혐오스런 옷차림으로 방에서 나오지 않습니다.

3. 사용한 물건은 제자리에 둡니다.

4. 물과 전기를 아껴 씁니다.

5. 침구 등 물건을 깨끗하게 사용합니다.

월드컵문화시민협의회 ()대한숙박업중앙회


틀린 말은 하나도 없으되, 어이없는 웃음이 나는 건 왜일까? 본인(숙박업소)은 제대로 하는 것이 없으면서 손님에게만 이것저것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흡사 제5공화국의 모토, ‘정의 사회 구현을 대하는 느낌이다. 가장 비정의적인 정권이 정의 사회 구현을 외치다니, 얼마나 모순되고 웃긴 일이었던가! 그나저나 저 라벨은 2002년에 붙인 것 같다. ‘월드컵시민협의회에서 제공한 걸 보니. 그렇다면 이 모텔의 나이는 최소한 21년이 된다는 것. 모텔이 21년 됐다면, 정말 낙후된 시설이다. 물론 리모델링을 했다면 관계없겠지만, 그래 보이지는 않는다. 그간 태초의 천국 에덴이란 이름을 미끼로 얼마나 나같이 어벙한 아담과 이브를 속여왔던 것일까? 에이, 괘씸토다! 출입문을 나서며 침을 퉤퉤 뱉었다(속으로).



오늘은 고통스럽게 많이 걸어야 한다. 에덴동산에서 쫓겨났으니(나왔으니) 당연한 일. 앱을 켜고 읍내를 빠져나가는데, 예의 그 상세한 안내 때문에 또 애를 먹었다. 그런데 또 그놈의 임실이 문제였다. 앱에서 임실 N 치즈피자에서 방향을 틀라고 나왔는데, 영 찾을 수가 없어 엉뚱한 곳으로 갔던 것이다. 다행히 조기에 발견, 약간의 시행착오를 거쳐 그놈의 임실 N 치즈피자를 찾아냈고, 무주 쪽 방향을 잡아 읍내를 빠져 나갈 수 있었다. 읍내를 벗어나 뒤돌아보니 아주 쉬운 경로인데, 괜스레 복잡하게 안내하여 헤매게 만들었다는 생각이 든다. 다시 한번 과도한 친절은 불친절과 매한가지, 아니 외려 더 불편할 수도 있다는 것을 실감했다. (본의 아니게 또 한 번 임실에 대해 불쾌한 말을 했다. 당시 상황을 그대로 드러내기 위해 구사한 표현이니, 임실 관련 분들은 절대 불쾌하게 생각하지 마시길!)


날이 청명하다. 푸른 하늘을 쳐다보니 아침 녘의 잠시 주름졌던 마음이 일거에 펴진다. 역시, 사람은 자연의 일부분인가보다. 우울증 치료에 햇볕을 쬐라는 처방도 있다던데, 그게 그래서 그런가 보다. 날이 청명해서일까, 신록이 한결 더 싱그러워 보인다. 나도 모르게 사진을 자꾸 찍게 된다. (저녁에 가족 단톡방에 찍은 사진을 올렸는데, 딸아이가 감탄사를 댓글로 달았다. 벨기에에 머물고 있는데, 맑은 날 보기가 여기만 못한 것 같다. 그나저나, 딸내미야, 언제 유학 생활 끝내느냐? 애비는 이제 퇴직했는데. 물론 생활비만 보내 미국 쪽 비싼 물가의 유학보다는 낫다만서도 벌써 7년이 돼가는데 아직도 학상이니, 걱정이로다).



진안에서 무주로 가는 도로에 대해 감탄했다. 인도(人道)가 넉넉했던 것. 내 발이 265mm인데 이 길이로 다섯 걸음 되는 길이의 인도였다. 얼마나 여유 있겠는가(수로는 한걸음 반 정도였다)! 물론 차들이 이 인도를 무시로 침범할 터이지만, 인도로 일단 확보를 해놨기에 걷는 사람이 있다면 편안히 걸을 수 있을 것이다. 지금 당장 내가 그 덕을 보고 있잖은가(이런 걷기 편한 도로는 여기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앞으로 만들어질 도로는 모두 이렇게 만들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돈 때문에 쉽지는 않겠지만.



드디어, 터널을 지난다. ‘드디어라는 부사에 주목하시라. 앞으로 내가 지나야 할 터널은 총 6개이다. 구간이 짧은 것도 있지만 긴 것도 있다. 평지의 도로와 달리 터널의 도로는 공명 현상 때문에 소음이 어마어마하다. 귀를 막고 지나지 않으면 귓청이 떨어져 나갈 것 같은 느낌이다. 이런 도로를 6개 지나왔기에, 그 시작점에 앞서 드디어란 부사를 쓴 것이다. 좌우지간, 1터널을 지나게 됐는데... 터널 이름이 수동 터널이다. 아니, 뭐여, 그럼, 자동 터널도 있는 겨. 모든 것이 자동화되는 시대이니 터널도 자동 터널이 있는데, 여기는 옛날에 만들어 수동 터널인가 보구먼. 사람들, , 시대 변화에 발맞춰 바꿔 놓을 것이지(수동 터널의 수동은 원래 한자어인데, 한자의 형태와 뜻은 떼버리고 음으로만 표기한 것이다. 음으로만 표기하다 보니 이런 농담거리를 제공케 된 것이다. 급격히 한글 전용화된 우리 어문 현실에서 한자어들로 빚어지는 오류와 오해가 많다. 원론적인 해결은 한자 교육을 강화하면서 한글 전용으로 가는 거지만, 그간 경험으로 보면, 불가능한 것 같다. 오류와 오해를 무릅쓰면서 그냥 한글 전용으로 갈 것 같다. 한자어들이 차지했던 공간은 영어에게 넘겨주고. ‘수동의 한자 표기는 水東이다). 시답잖은 아재 개그를 혼자 즐기며 터널을 지난다. 그런데 아재 개그에 도취해 그만 귀를 막지 않았다. 덕분에, 귀청이 찢어질 뻔했다. 일반 차보다 소음이 배 이상 큰 오토바이 폭주족이 지나갔기 때문. 아이, 저 씨부럴 X! 욕이 절로 나왔다. 그러나 힘없는 자의 가녀린 욕이 가진 자의 엄한 위세에 무슨 효력을 발휘하랴. 애라, X들아, 가다가 빵구나 나라! (해선 안 될 저주를 퍼부었다. 저 인간들도 누구의 아빠 누구의 아들일 텐데, 저것들이 사고 나면 그 누구는 얼마나 슬플 것인가! 그래도 어쩔 수 없었다.)



터널을 나와 한참을 가는데 아름답고 넓은 강이 펼쳐진다. 지리에 무식해 무슨 강 인지를 알 수가 없다. 앱을 켜보니 금강이다! 오호라, 비단 강이라니, 저래서 붙여진 것이로구나. 절로 강과 이름이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든다. 강을 끼고 있는 산들의 신록이 말할 수 없이 아름답다.



강 다리를 건너는데(다리 이름을 잊었다), 거대하고 길다. 그런데 바람이 몹시 세다. 날아가 버릴 듯하다. , 이렇게 생을 마감하고 싶진 않은데. 긴장과 불안에 휩싸였지만, 안간힘으로 똘똘 무장하고 돌진, 마침내 적진(敵陣)을 돌파했다. 후유~~. 다리 끝 지점, 아래를 보니, 저 멀리서 보였던 그 아름다운 산의 정경을 무색케하는 쓰레기들이 여기저기 널려있다. 어제 셰익스피어가 원경과 근경의 차이를 보고 그것을 인생에 대입시켜 그럴 듯한 명언을 만들어 낸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그것을 오늘 또 한 번 생각하게 된다. 어쩌자고 비단에 오물을 묻힌 것이냐!


유기농 밸리 노채마을이란 홍보판이 보인다. 포도가 주 생산물이라고 돼 있다. 그런데 간판이 영 시원찮다. 유기농 사업이 잘되면 간판이 저리 시원찮도록 내버려 두지는 않았을 텐데. 괜스레 마음이 짠하다. 잘됐으면 좋겠다(어쩌면 잘되고 있는데, 쓸데없는 걱정을 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플래카드들이 보인다. 사진을 한 장 찍었다. 역사적 기념물로. 오잉, 무슨 역사적 기념물? , 지금이야 별거 아니지만, 세월 지나 봐, 역사적인 기념물이 돼지. 안 그려? 그렇네~! 그런데 플래카드들 하단에 유독 눈에 띄는 플래카드가 있다. “친일 매국, 굴종 외교 반대!!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굥의 방일 외교를 비판하는 내용이다. 양국 간 최대 현안이었던 강제 동원 문제와 관련해 3자 변제안구상권 행사를 상정하지 않고 있다는 발표에 대한 질타일 터이다. 세상에 피해자가 가해자 입장을 두둔하는 법이 어딨나. , 법조인 출신 맞어? 우리나라 대통령 맞어? 참 챙피스럽구만. 맹자님이 그러셨어. 인필자모이후(人必自侮而後)에 인모지(人侮之)라고. 사람은 자기 스스로를 비하하면 남에게 모욕당하는 법이라고. 개인만 그러겄어? 국가도 마찬가지지. 허구헌 날 멀쩡한 역사 왜곡하는 이들에게 과거사를 묻지 않겠다고 하는 건 도대체 무슨 셈법인 겨. 저것들이 월매나 우리를 얕보겄어. 짤막한 플래카드 속에 들어있을 긴 사연을 들어본다. , 아무 데서나 화끈하면 안뎌. 그런 건 마누라하고 거시기 할 때나 쓰도록 혀!



마땅히 점심 먹을 곳이 없어 잠시 길가에 있는 하나로 마트에 들렸다. 소규모 매장이다. 구운 계란과 매실 물을 샀다. 카드를 내고 계산하려는데 포인트 적립금이 눈에 띈다. 결제할 금액보다 높다. 혹시 포인트 결재가 가능하냐고 하니, 결재를 안 눌러 가능하단다. 횡재한 느낌이다. 포인트, 요거 고도의 상술이다. 물건이야 거기서 거기이건만 몇 푼 안 되는 포인트 쌓으려 한 매장만 찾게 만든다. 가만 생각해 보면 포인트라는 것도 어찌 보면 제 살 깎아먹기이다. 상품에 내재된 비용을 살짝 포인트란 명목으로 돌려놓았을 뿐일 터이니 말이다. 밑지고 장사하는 데가 어디 있겠는가. 그런데 문제는 이런 것을 알면서도 한 매장만 찾고 자꾸 물건을 산다는 것. , 교묘한 자본주의의 사슬이여! 너무 나갔나?


하나로 마트를 나와 농협 계단(토요일이라 문을 닫았다)에 앉아 계란을 까먹었다. 시선을 들어 맞은 편을 쳐다보는데 희한한(?) 간판이 보인다. 안천 초 중 고등학교. 초와 중이 혹은 중과 고가 통합된 것은 봤어도 이것이 전부 통합된 것은 처음 보았다. 앱을 켜 살펴보니 전국 최초이다. 학교 홈페이지를 보니 19232월 졸업생이 초는 6명 중은 9명 고는 5명이라고 나온다. 원론적으로만 봤을 때, 튼실한 교육과정과 넉넉한 재정 우수한 교사만 갖춰졌다면, 그리고 그것이 지속적으로 가능하다면, 저런 통합형 학교는 교육의 연계성 차원에서 초중등 교육의 모델이 될 만도 하다. 그러나, 공교육에서(많이 유연해졌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경직된) 저런 초중고 통합 학교는, 글쎄. 괜스레 마음이 짠하다(혹 이곳에서 근무하는 분들이 이 글을 보고(그럴 일은 없을 것 같지만) 오해하시지 말기를. 그냥 교육 문제를 생각하는 차원에서 한 말이니 너그럽게 봐주시기를). , 나는 다시 무주를 향하야~!



또 터널을 지난다. 이후 무주까지 다섯 개를 더 지났다. 마지막 터널은 가림 터널이었다. 귓청 찢어지지 않고 지나온 곳에 천신에게 감사드릴 뿐이다. 그 거대한 암굴들을 개미 같은 존재가 천둥 같은 소음을 견디고 귀 멀쩡하게 나왔으니, 어이 천신의 덕분이라고 하지 않을 수 있으랴!



무주에 들어섰다. 그런데, 토요일이건만 왜 이리 사람이 없냐. 반딧불 조상(彫像)이 있는데, 방긋 웃는 표정이건만 왠지 슬픔이 묻어나는 웃음이다. 어서 여름이 와 저 애들 얼굴에 슬픈 그늘이 사라졌으면 좋겠다. 그때는 너희들 구경하러(반딧불 축제) 사람들이 붐비겠지.



배가 몹시 고프다. 숙소를 구하기 전에 저녁부터 먹어야겠다. 모처럼 만에 영양 보충 겸 탕수육을 먹기로 했다. 중화 요리점을 검색해 보니 진강원이라는 데가 나온다. 왠지 끌린다(‘왠지가 적중했다). 무주천을 건너 중심지에 들어가 진강원을 찾았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마른 대꼬챙이 같은 70대 가까운 아저씨가 앉아 있다. 60대 중반쯤 되는 아주머니가 서빙을 본다. 손님이 한 명도 없었다(잠시 후 내 뒤로 3명이 들어왔다). 벽에 붙여놓은 메뉴판을 보니 탕수육이 25천 원으로 돼있다. 최근에 인상한 듯 매직으로 거칠게 써놨다. 오잉, 이건, . 요즘 웬만한 중국집에선 탕수육을 크기별로 달리해 가격을 차별화하고 있는데, 여기는 통으로 저거 하나밖에 없다. 가격도 가격이지만 다 먹을 수 있다면 그냥 시키겠는데, 도저히 소화할 자신이 없다. 그렇다고 그냥 나가기도 그렇고. 서빙하는 아주머니에게 과감하게 트라이를 해봤다. “혹시 2만 원어치 안 될까요?” 아주머니가 멀뚱한 표정으로 바라보다 주방에 들어갔다. 의사를 전달한 모양이다. 주인아주머니가 나오더니 해주겠단다. 마른 대꼬챙이 아저씨가 주방으로 들어갔다. 대꼬챙이 아저씨가 주방장이었다. 잠시 뒤 주인아주머니가 나오더니 묻는다. “소스를 부을까요? 따로 낼까요?” 아무래도 남길 것 같아, 따로 달라고 했다. 탕수육을 내오며 주인아주머니가 말씀하셨다. “이렇게는 안 하는데, 너무 드시고 싶어 하는 것 같아서.” 오호라, 참으로 훌륭한 여인이로다! 어찌 이리 후덕하신고. 전생에 선녀였는데 잠시 현장 체험 학습하느라 지상에 내려오셨나 보다. 웃으며 화답했다. “, 죄송하긴 한데, 양이 너무 많을 것 같아서요. 죄송해요.” 아주머니가 웃으며 말했다. “아녜요~ 천천히 많이 드세요!” 최선을 다해 먹었지만, 역시 남았다. 아주머니께 싸달라고 부탁하며(서빙 아주머니는 어느 순간 퇴근했다) 너스레를 떨었다. “최선을 다해 먹었는데, 도저히 다 먹을 수가 없네요.” “양이 좀 많죠?” 아주머니가 웃으며 화답한다. 현금으로 값을 지불하고 문을 나서며 립서비스를 했다. “다음에 꼭 다시 오겠습니다!” 이제 숙소를 향하야~!


숙소를 검색하는데, ‘이리스 모텔이라는 데가 나온다. 후기를 읽어보니 괜찮다(이전까지는 후기 같은 것을 읽지 않았는데, 이제 후기까지 읽게 됐다. 쓰라린 경험 탓일 터). 망설임 없이 향했다. 가격을 물으니, 5만 원이란다. 안내하는 이가 남주인인데, 맹맹이 콧구멍같은 인상이다. 혹시 현금 내면 깎아주시냐니, 되레 면박을 준다. 10년 전 가격이고, 연료비도 안 나온단다. 찍소리 못하고 가격을 지불했다. 현금으로! 그런데, 시설이, 후기와 다르다. 기본인 봉지 커피도 없다(당연히 커피포트도 없다. 다음 날 이곳을 나오며 알았는데, 봉지 커피와 정수기가 프론트 한 구석에 있었다. 비용 절약 차원에서 중앙에 하나만 설치한 것 같았다. 그렇다면 혹시 에덴?). 다행히 TV는 나온다. 냉장고에 성에도 끼어있지 않았다. 에덴동산에서 쫓겨나온 처지이니 이만도 양반이지만, 그래도 좀 본전 생각이 난다. , ‘에서는 5만 원 내고 화려하게(?) 지냈는데, 똑같은 비용 내고 쿠사리까지 먹고 이게 뭣이다냐. 지방의 모텔들은 악순환인 것 같다. 손님이 없으니, 현상 유지를 위해 비싸게 받고(주인은 싸다지만 손님 입장에선 비싸다. 하루 숙박이 4~5만 원이면), 이를 꺼려 손님들은 비슷하거나 약간 비싼 가격대의 시설 좋은 무인텔로 가니 손님은 더욱 줄고. 여행하면서 지방의 모텔을 지자체가 지원해 주면서 저가의 여행자 숙소로 만들면 어떨까 하는 황당한 생각을 해봤다. 자전거 여행과 도보 여행이 좀 더 활성화되고 경기도 좀 살아나면 가능하지 않을까.


모든 저녁 의식을 끝내고, 가족 단톡방에 소식을 전했다. 내일은 영동까지 간다. 그런데 아까 무주로 들어올 때 머루 와인 동굴이정표를 봤는데, 거기를 못 들린 게 좀 아쉽다. 내일 가볼까? 경로를 찾아보니 갔다고 오면 애초 일정에 지장을 줄 것 같다. , 오늘 일정은 끝났으니, 내일 일은 내일 다시. 메모장에 간단히 오늘 소회를 쓴 뒤 잠자리에 들었다. 오늘 밤엔 이리스(무지개의 여신)를 만나려나? 어제는 이브를 만났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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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일 금요일


노곤한 몸을 일으켰다. 물 한 잔을 마시고 시계를 본다. 6. 좀 늦게 일어났다. 갑자기 무반주 첼로를 켜고 싶다. 기왕 켜는 거 세게 한 번. ~! 앱을 켜고 정읍 버스터미널에서 진안 마이산까지의 경로를 누르니, 기대하지 않은 엉뚱한 내용이 나온다. “출발지와 도착지 간의 직선거리가 50km 이내인 경우만 도보 길찾기를 제공합니다.” 걸어가긴 불가능한 거리란 말씀이다. 그러면, 버스로는 얼마 걸릴까? 버스로 경로를 누르니, 4시간 18분이라고 나온다(중간 텀을 빼고 실제 시간은 3시간 30분가량 걸렸다. 네이버 지도 앱의 내용이 절대적인 내용은 아니다). 경유지를 보니, 광주 장계 진안으로 돼 있다. 광주, 세 번씩이나 들리게 되네? 거 참. 카스테라와 초코 우유로 아침을 먹었다(어떤 이는 일어나서 바로 뭐 먹기가 불편하다고 하는데, 나는 전혀 불편하지 않다. 그게 밥이 됐든, 빵이 됐든, 고기가 됐든. 아침을 꼭 먹는 습관이 있어서 그렇지 않은가 싶다). 아침 제반 의식을 끝내고(이제고문진보읽기는 아침 의식에서 제외하기로 했다. 남들에게 선비 운운의 소리를 들어, 나는 내가 공부를 좋아하는 줄 알았는데, 이번 여행을 통해 아니올시다인 것을 절감했다. 내가 나를 몰랐던 것이다), 모텔을 나섰다.


8시 조금 넘어 광주행 버스를 탔다. 1시간 정도 걸려 광주에 도착, 아니 중간 하차했다. 터미널에서 안 내리고 시내 어중간한 데서 내렸다. 넘들이 다 내리니 내려야 하나 보다 생각하고 내린 것. 넘들은 굳이 터미널까지 갈 필요가 없어 편리하게 시내 어중간한 데서 내려줄 때 내린 것인데, 이 등신이 그것도 모르고 그냥 따라 내린 것이다. 예상하지 않았던 광주 시내 짧은 관광을 마치고 터미널에 도착(‘길찾기앱으로 효험을 못 봐, 끝내 어떤 멋진 분한테 터미널을 물어 도착할 수 있었다. 하여간, 방향 감각은).


장계 가는 버스 시간을 보니 11시 넘어서 밖에 없다. 1시간 이상을 기다려야 한다. 잘됐다, 터미널 구경도 하고 이른 점심도 먹자! 터미널 시설물들은 거기가 거기인지라, 여기도 특별한 것은 없는데...아니,특별한 것 하나가 눈에 띄었다. 길고양이를 보살펴 달라는 대형 화보. 애처로운 눈빛의 고양이를 중앙에 놓고 좌우로 부탁의 메시지가 띠처럼 둘려있다. “길에서 태어났지만 우리의 이웃입니다.” 고양이 밑에 1/10 정도 크기의 글씨로 부연 메시지가 쓰여 있다. “어떤 환영도 없이 태어나 누구 배웅도 없이 떠나는 삶, 길고양이 함께 살아요. 살고 있어요.” 하단엔 깨알 같은 글씨로 후원자 명단이 쓰여 있다. 생명의 도시, 광주에 어울리는 화보란 생각이 들었다. 지난번 외곽에서 접했던 불쾌했던 경험이 일거에 사라지고, 다시 광주에 대한 애정이 샘 솟는다. 아이 러브 유, 광주! (하여간, 변덕 하곤.) 그럴듯한 식당들이 눈에 보이는데, 우리네에겐 그저 백반이 최고. 1만 원 내외의 저가(?) 메뉴가 즐비한 식당가에서 순두부찌개 백반을 시켜 먹었다. 나오면서 가급적 현금 결제 부탁 드립니다란 애처로운 호소문을 써놓은 식당을 봤다. 카드 수수료 때문일 터. 뭐 떼고 뭐 떼면 남는 게 없으니 저럴 것이다. 후유~. ‘편리라는 카드 결제 뒤에 숨은 수탈이란 그늘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하면, 지나친 표현일까(가급적 소액은 현금 결제해 주는 게 좋다는 것을 진즉에 알고 있어 조금 전 식당에서도 현금 결제를 했다)?



어찌어찌하야 진안에 도착했다. 2시가 좀 넘었다. 마이산까지 어떻게 가야 하나? 앱을 켜 살펴보니, 13km3시간 21분이 걸린다고 나온다. 2시가 넘어가는데 산까지 3시간 이상이 걸리면, 5시가 넘어 도착하는데, 입산할 수 있을까? 살짝 고민된다. 그렇다고 벌써 숙소를 잡고 들어갈 수도 없고. 버스 시간을 보니 차도 많지 않고, 앱으로 살펴보니 최적 시간이 1시간 50분 걸린다고 나온다. 고민이 된다. 택시를 한 번 타보자. 택시 기사에게 마이산 가는데 얼마냐니, 시큰둥하다. 저기 택시 기사한테 물어보란다. 아니, 이건 뭔 시츄에이션? ‘그냥 걸어가자.’ 생각하고 혹시?’ 하는 마음에 택시 옆 모종 판매를 하는 젊은 주인한테 여기서 마이산까지 얼마 걸리냐니, 놀라운(!) 대답을 해준다. 40분 걸린단다. 40분이면 4~5km밖에 안 되는 거리이다. 택시로 간다면 4분여 정도 걸릴 거리.아니, 이게 뭔 일이다냐! 앱이 가르쳐 준 거 하고 너무 차이가 나지 않어? 어떻게 된 거지? 젊은 주인은 현지 사람이니 이 주인의 말이 맞을 것이다. 횡재한 기분이면서도 약간 떨떠름하다. 젊은 주인에게 고개를 130° 정도 숙여 깊은 감사를 표하고, 주인이 덧붙여 안내해 준 경로를 따라 발걸음을 옮겼다. 택시 기사가 시큰둥한 반응을 보인 게 다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그래도 그렇지, 사람, , 불친절하기는. 댁이야 짜증 나는 질문이었겠지만 낯선 사람에겐 간절한 질문이었는데 좀 친절하게 말해주면 어디 덧나시나?


버스로 1시간 50분 걸릴 거리를(돌고 돌아가며 사람을 내리고 태워주니 그럴 것이다) 축지법을 사용하야 40분 만에 주파, 마이산 입구에 도달했다. 오다가 중간에 에덴 모텔이란 데를 찜 찍어 놓았다. 하산하여 인근에서 저녁 먹으면 딱 들어가기 좋은 시간대에 있는 모텔이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거기다 에덴이라니. 오늘은 태초의 천국에서 잠을 자게 됐다. 이브까지 있으면 좋으련만, 그건 과한 기대이다(이따 말하겠지만, 이 에덴은 하느님의 노여움을 받아 아담과 이브가 쫓겨나기 직전의 에덴이었다).



마이산은 세 번째이다. 대학교 때 한 번 왔고, 근처를 차로 지나면서 한 번 봤고, 이번에 또 오게 된 것. 앞의 두 번은 진지하지 않은 겉핥기 방문이라고 봐도 좋다. 이번은 진국을 맛보리라! 등산로를 잘 정비해 놓아 오르기가 편하다. 7시간 도보 후 명산 월출산까지 일거에 오른 건각(健脚)에겐 너무너무 편한 등산로였다. 정상. 말의 귀같이 생겼다 하여 붙여진 마이산(馬耳山). 한쪽은 숫, 한쪽은 암마이산으로 부른다. 둘 다 오르기는 불가하여 한쪽만 올랐다. 어느 쪽으로 올랐을지는 상상에 맡긴다. 그런데, 이 마이산, 멀리서 볼 때와는 완전 딴판인 산이다. 멀리서 볼 때는 나무와 풀들이 푸른 것처럼 보였는데, 아니다. 거무튀튀한 돌산이다.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요,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고 셰익스피어가 말했다는데, 그이는 이런 원경과 근경의 다른 풍경을 보고 그것을 인생에 대입시켜 말한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원경과 근경이 너무 딴판이라, 의외를 넘어 놀랍기까지 하다.



산을 내려가 마이산의 그 유명한 돌탑을 보러 간다. 보면 볼수록 신비한 탑이다. 어이 저렇게 쌓아 올렸으며, 어이 저렇게 버틸 수 있단 말인가. 뭔가 과학적 설명을 할 수 있겠지만, 저것을 쌓은 이갑룡 도사는 순전히 영감에 의지해 돌탑을 쌓았을 터, 인간의 신비로운 능력에 새삼 감탄하게 된다. 사람들이 붐빈다. 어떤 외국인 내외를 안내하는 한 가이드가 사진을 찍어 달라고 부탁한다. 어렵지 않죠! 그런데 이 외국인 내외, 포즈를 취하면서 잠시 뽀뽀를 한다. 워매, 남살시려운 거. 그런 건 밤에나 허고, 이 신성한 장소에선 좀 삼가셔! 가이드 양반, 그런 주의사항도 얘기 안 해준 겨. 그럼, 내가. 그건 주제 파악 못 하는 거고. 살짝 마뜩잖은 기분으로 사진을 찍어 줬다. 외국인 내외가 사진을 확인하더니, 엄지손가락을 세우며 원더풀~’이라고 한다. 그려, 마음에 든다니 다행이구먼. 그나저나 앞으로 한국 유명 사찰 같은 데를 다닐 때는 함부로 뽀뽀하지 말어(마음속으로 훈계했다)!



다시 반대로 마이산 정상으로 올라갔다 내려가서 저녁을 먹고 숙소로 가야겠다. 산 정상에서 탑사로 내려올 때는 힘들지 않았는데, 다시 올라가려니 좀 힘에 부친다. 시선을 들어 데크 계단을 올려다 보니 까마득하다. 이럴 때 방법은 위를 보는 게 아니라 발밑만 보는 것이다. 그렇게 걷다 보면 어느덧 정상에 선다. 목표 달성도 그렇지 않을까? 목표만 쳐다보면 아득해 보인다. 그러나 계획을 세우고 한 걸음 한 걸음 꾸준히 걷다 보면 어느 순간 목표에 도달해 있다. 정상에 올랐다. 다시 하산 길. 하산이야 쉽지~. 그래도 방심은 금물. 다리가 풀려 자칫하다간 등산 시보다 위험할 수도 있다. 목표 달성 후 방심하다 일거에 성취한 결과를 다 잃어버리는 경우가 어디 한두 번이던가. 창업보다 수성이 어렵지 않던가. 되먹잖은 개똥철학에 취해 혼자 흐뭇해하며 발걸음을 천천히 옮긴다.



다시 산 초입에 도착했다. 5시가 다 돼간다. 입구에 가위 박물관이 있다. 뭔가 산과 조합이 잘 맞지 않는다. 그냥 갈까 하다 무료라는 말이 있어 잠깐 들렸다. 출입구에 있던 안내하시는 분이 마감시간인데...” 하면서 보고 가라고 한다. 땡큐~. 세상에, 가위가 이렇게 다종다양했던가! 서양 동양 우리나라 고대 중세 근대 현대 다종다양한 가위가 전시돼 있다. 누가 이런 컬렉션을 했을까, 그냥 지나쳤으면 너무 아쉬울 뻔했다. 인형 작가인 아내에게 가위는 필수품. 아내에게 선물이 될까 싶어 사진을 몇 장 찍었다. 다시 한번 감사 인사를 드리고 박물관을 나왔다.

하산하여 얼마 안 가니 음식점들이 있는데, 불은 훤하지만, 파장 분위기다. 한 음식점에 들어가 표고버섯 영양밥을 시켰다. 그런데 나온 밥은 무늬만 표고버섯 영양밥이었다. 표고버섯이 3개 은행이 2개 들어 있었다. 애고, 이나마 먹을 수 있는 게 어디냐. 배고픈 김에 맛있게 먹었다. , 이제 에덴동산으로 가보자.



에덴 모텔에 도착했는데, 외관이 영 아니올시다다. 순창에서 숙박했던 멘하탄보다 더하다. 줄지어 나오는 뻘건색 문자 광고에는 최상의 서비스 최고의 시설이라고 나오는데, 아무래도 요란한 빈 수레 광고 같다. 그나저나 묵기로 작정했으니. 안내실에 방을 달라니 5만 원이란다. ~! 5만 원? 금요일이라, 관광지 바가지성 요금을 감안한다 해도, 이건 영 아니다. 5천 원 깎자니, “내일 전국 노래자랑이 있어 방값이.” 하는데 영 자신 없어 하는 말투다. 자신도 자신의 숙소 처지를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옳거니, 틈이 보이는구나. 약한 자에겐 한없이 강한 영악하고 사악한 본성이 불끈 일어난다. “그래도, 좀 깎아 주셔요!” 주인이 어설픈 미소를 지으며 “45천 원만 내셔요.” 한다. 승리!


방으로 올라가는데, 지금 그 문구가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데, 외국인 근로 노동자들에게 뭔가를 당부하는 문구가 붙어있다. 그렇구나. 여기는 관광객보다, 흔히 망해가는 모텔이 마지막으로 밟는 수순 월방 있어요를 내거는 그런 수준의 모텔이구나. 여기서 무슨 태초의 천국을 맛볼 수 있으랴. 어이쿠, 이놈의 안목하곤. 방에 들어가니 예상이 틀리지 않았다. 시설이 낡은 것은 당연, 기본적으로 모텔에 있는 커피포트도 없고(그런데 봉지 커피는 있었다), TV도 나오지 않았다(나오게 해달라고 부탁할까 하다 그만뒀다). 냉장고를 열어보니 성애가 덕지덕지 묻어 있다(그래도 다행히 물 두 병은 있었다). 한 마디로 꽝이었다. 어찌할 것인가. 어찌하긴 뭘 어쪄! 그냥 머무는 거지. 예의 마음 한쪽에서 음양론 철학이 고개를 든다. ‘이 사람아, 커피포트 없으니 봉지 커피 안 먹어도 되고, TV 안 나오니 음심에 휘둘릴 필요 없고 좀 좋아. 수양한다 생각하고 그냥 하룻밤 잘 묵어. 이브는 꿈속에서 만나고.’ 샤워를 하고 제반 저녁 의식 행사를 마친 뒤 8시가 못 되어 과감히 잠을 청했다. 내일은 무주까지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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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일 목요일


다시 곰의 자손으로 돌아와 때아닌 긴 겨울잠을 자고 눈을 뜨니, 5시다. 12시간을 잤다. 중간중간 잠이 깨긴 했지만, 겨울잠은 계속 이어졌다. 곰도 겨울잠을 자며 가끔씩 깨나 모르겠다. 모든 아침 의식 행사를 마치고 정확히 6시에 모텔 현관문을 나섰다. 마당에 발을 내딛는데, 여주인이 나와 있다. 인사를 했더니, “일찍 출발하시네요?” 하면서 웃는다. 일찍 방을 비워주어서 기분이 좋은 모양이다. 더 기분 좋게 해줬다. “방 깨끗이 정리했습니다~.” “안 그러셔도 되는데.” 하면서 또 웃음을 짓는데 비릿한 냄새가 묻어난다.


네이버 지도 앱을 켜고 임실 공용 터미널까지 길찾기를 누르니 37km에 도보로 9시간 59분 걸린다고 나온다. 오전 오후 5시간씩 나눠 걷고 중간에 간식이든 매식이든 점심을 먹으면 될 것 같다(간식으로 때웠다). 완전히 빗기운이 가시지 않았지만, 비가 지속해 올 것 같진 않다. , 출발~!


청정원에서 운영하는 순창 고추장 공장을 지난다. 고추장 공장이라어렸을 때 고추장 된장은 집에서 담근 것만 먹고 자란 세대라 그런지 왠지 어색하고 낯설게 느껴진다. 먹을거리는 집에서 만들어 먹어야 한다는 고정관념 때문일 것이다. 공장에서 생산된 먹을거리를 부지기수로 소비하고 있으면서도 먹을거리는 집에서 만들어 먹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는 것은 유년 시절의 체험 탓도 있지만 건강염려 탓도 있다. 공장에서 만들어 유통하는 식품엔 아무래도 여러 가지 화학 첨가물이 들어갈 수밖에 없고, 그것은 인체에 유해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미 공장에서 생산되는 음식물을 부지기수로 먹어 왔고, 앞으로도 먹을 수밖에 없는 현실에서 이런 의식을 갖고 있는 것은 무의미한 걱정일 뿐이다. 그저 유해한 화학 첨가물을 덜 넣고 생산하기만을 바랄 뿐. 그나저나 청정원사장님네는 저 공장에서 생산되는 고추장을 드실랑가 모르겄네?



1시간 가까이 걸었는데, 이상하게 임실 가는 중간 이정표가 안 보인다. 대신 보성 이정표가 보인다. , 이거 이상한데? 앱을 켜고 확인하니, 반대 방향으로 가고 있었다. 이상하다? 분명히 출발할 때 잘 확인했는데. 방향을 돌려 다시 출발점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자책이 들었지만 애써 자위했다. ‘지금이라도 발견했으니 다행이잖아.’ 첫 단추를 잘못 끼우면 이후의 단추도 계속 잘못 끼우게 된다. 옷 입을 때만 그럴까, 개인사도 그렇고 사회사도 그렇지 않을까? 해결 방법은, 바로잡는 수밖에 없다! 늦어서 어쩔 수 없다고 무시하고 방치하면 더 악화될 뿐이다. 실수를 통해 대단한 교훈까지 얻은 양 스스로 대견해하며 부지런히 걸었다.


원점으로 돌아와 앱을 켜고 살피니, 순창 읍내를 외곽으로 돌아가게 안내해 준다. 그런데 눈앞에 시내를 가로질러 가는 임실 방향 이정표가 보인다. 앱을 따를 것인가, 저 이정표를 따를 것인가? 이정표를 따라도 별 무리 없을 것 같다. 앱의 안내를 포기하고 이정표를 따라 임실 쪽으로 걸었다. 이번엔 틀리지 않았다. 순창 읍내를 빠르면서도(?) 순조롭게 벗어나 임실 이정표가 보이는 큰 도로를 만나게 되었다. 이제 저 이정표만 보고 걸으면 된다. ~.


날이 개어 화창하다. 한참을 걸으니, 덥다. 큰 도로 옆으로 구도로인 것 같은 데가 나오는데, 잘못하다 길을 잃을 것 같아 그냥 큰 도로로 계속 걸었다. 산 중턱에 요양원이 보인다. 요즘 농촌 지역에 부쩍 늘어난 시설이 태양광과 요양원 시설이다. 그런데 뭔가 계획적으로 들어서기보다 우후죽순 중구난방 격으로 들어서는 것 같은 느낌이다. 분명 필요한 시설들인데 그런 식으로 들어서서 그런지 대할 때마다 마음이 편치 않다. 저 요양원도 그래 보인다(다른 이들도 그렇겠지만, 우리 내외가 공통으로 바라는 생애 마지막 소원은 요양원 안 가고 집에서 임종하는 것이다. “구하라, 그러면 얻을 것이요.”라고 예수님이 말씀하셨으니, 예수님 빽 믿고 구하면 얻게 될는지도 모를 일이다. 부디, 그렇게 되기를!).



날이 더워 자꾸 물을 들이킨다. 아껴 마셔야 하는데. 한 번만 더 마시고! 임실까지 25km 남았다는 이정표가 보인다. 그런데 저만치 터널이 보인다. , 저 터널을걱정하던 차 신의 계시인지 버림인지(결과적으론 둘 다였다) 옆을 보니 구도로가 있고 임실 가는 이정표도 보인다. 그래! 구도로로 가는 거얏! 때마침 작은 볼일도 급해 망설임 없이 구도로로 갈아탔다. 얼마간 가다 주변을 한 번 훑어보고 작은 볼일을 봤다. 오매, 시원한 거! 그간 한 번도 큰일 작은 일로 자연을 오염시킨 적이 없었는데, 오늘은 부득이 오염을 시켰다. 자연, 미안허이, 용서해 주시게나!

터널을 지난 차들이 고가도로 위로 쌩쌩 달린다. 그 아래 구도로를 따라 걸으며, 다시 한번 구도로로 노선 변경하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한참을 걷는데 김용택 시인 생가 안내 표지판이 나온다. 오잉? 생각지 않은 횡재다! 그런데 저 김용택 시인이 그 김용택 시인 맞나? 혹 동명이인 아녀? 요즘엔 자기 자랑하는 문인도 많은디. 길가 동네 분인 듯한 분에게 물어보니, 뜨악한 표정으로(김용택 시인을 모른다 말여?) 나를 바라보다 말씀하셨다. “섬진강 시인, 김용택 맞지라.” 생가까지 얼마나 가야 하냐고 물으니, 얼마 안 가면 있다며 김 시인이 거기 살고 있다고 말했다. 김 시인을 찾아가 사진 한 장 찍으면 좋은 추억거리가 되겠다 싶어, 가던 노정을 잠시 멈추고 김 시인 집으로 향했다.


김 시인이 섬진강의 시인으로 유명한 것은 알지만, 정작 그 시 전편을 읽어 본 적은 없다. 단편으로 한 두 편 읽었을 뿐. 내게 김 시인은 그 여자네 집의 시인이다. ‘그 여자네 집은 유치환의 행복과 함께 아슴아슴한 연애 감정을 잘 그려 읽을 때마다 고목나무에 꽃이 피게 한다.


가을이면 은행나무 은행잎이 노랗게 물드는 집/ 해가 저무는 날 먼 데서도 내 눈에 가장 먼저 뜨이는 집/ 생각하면 그리웁고/ 바로 보면 정다웠던 집


, 내가 그 시인과 사진을 찍을 수 있다니, 이건 신의 계시로다! 그런데 조금만 가면 있다던 김 시인의 집은 꽤 걸었는데도 안 보인다. ~ 신의 계시가 아닌가 보다. 이러다가 지난번처럼 숙소를 못 찾는 낭패를 볼 수 있다. 그냥 가던 길 빨리 가자. 발길을 돌리는데 섬진강 자전거 도로 이정표가 보인다. 잠시 김 시인 집 언저리를 다녀갔다는 표시나 남기자. 김 시인이 그렇게 사랑하고 자랑스러워한 섬진강 사진이나 한 장 찍자(그런데 왜 이리 강이 쪼그만 하냐? 착각이었다. 길을 가며 거대한 섬진강을 만나게 됐다). 사진을 찍고 방향을 틀었던 지점으로 되돌아와 다시 임실을 향해 출발했다.



조금 갔는데 김 시인이 근무했다는 마암 분교를 연상시키는 작은 초등학교가 눈에 띈다. 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아름답다. 평일이니 아이들이 등교했을 터, 아이들이 보일 법도 한데 전부 교실에서 수업받는지 운동장엔 적막만이 감돈다. 사진을 한 장 찍고 발길을 옮겼다.



조금 가다 보니 방치된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옛 건물이 나온다. 근대 건축 유산 같은 느낌을 준다. 교회에 다니진 않지만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에 대해선 애틋한 감정을 갖고 있다. 어렸을 적 어린이 성경 학교를 이곳에서 다녔고, 성장해서는 이곳에서 주장하는 채식과 현미식에 대해 공감했기 때문이다(성경 공부나 교리에 대해서는 무관심하고). 지금도 실천은 미미하지만, 여전히 이곳의 주장인 채식과 현미식에 공감하고 있다. 애틋한 감정을 사진 속에 담았다. 찰칵.



갈수록 거대한 강이 나타난다. 섬진강이다! 구도로라 그런가, 인적도 차량도 드물다. 한적한 강변을 걸으니, 다시 한번 구도로로 갈아타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정면만 보면 안 돼, 옆도 봐야지. 아까 정면만 보고 갔어 봐. 이런 한적한 강변 풍경을 어떻게 감상할 수 있겠어. 인생의 큰 교훈을 얻은 듯 속으로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발길을 옮긴다. 가끔 셀카도 찍었다.



무루마을이란 데를 지난다. 쓸쓸함을 넘어 스산함까지 느껴진다. 시골 산자락 동네가 다 그렇지 뭐, 하면서도 왠지 아쉽다. 스위스는 오늘날 관광과 휴양의 메카가 됐지만, 사실 그 나라 땅은 사람 살 곳이 못 되는 땅이다. 그런데도 관광과 휴양의 메카가 된 것은 천연의 풍경을 잘 유지하면서 인프라를 구축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시골도 그렇게 만들 수는 없을까? 모두가 도회지를 동경하게 만들어 시골은 버림받은 곳으로 된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시골은 시골답게 도회지는 도회지답게 만들어 상생할 수 있는 틀을 짜야 하지 않을까? 신의 계시를 받은 건가, 스스로 생각해도 기특한 발상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길을 걷는다. 섬진강 댐이 보인다. , 역시 댐이라 위용이 돋보이는군. 사진 한 장 찰칵.



그런데 이거 왜 임실 가는 중간 이정표가 안 보이는 거냐? 앱을 켜고 현 위치에서 임실까지의 길찾기를 누르니 25km라고 나온다. ? 아까 구도로로 바꿔탈 때 임실까지 25km라는 이정표를 봤는데, 지금까지 걸은 거리가 얼만데 25km 남았다는 겨? 이상해서 다시 살펴보니, 아뿔싸, ‘현 위치가 이미 임실을 지나 임실과 반대 방향인 정읍시 주소로 나온다. 그러니 여기서 임실까지의 거리를 눌렀을 때 25km라고 나올 수밖에. 시간은 430분을 넘어서고 있었다. 임실 가기는 글렀다. 그러면 부지런히 정읍시로 가서 숙소를 구할 수밖에. 안 되면 중간 어디서라도 숙소를 구해 1박을. , 어디서부터 사단이 생긴걸까? 갑자기 강변 풍경을 즐기던 여유롭던 마음이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후회가 밀려온다. 정도를 벗어나서 그렇지! 아니, 언제는 옆길도 보며 가야 한다고 좋아하더니? 서로 아웅다웅 다툰다. , 그만~.



이따금 펜션이 눈에 띄는데 내게 어울리는 숙박지는 아니다. 패스. 5. 이젠 펜션도 안 보인다. 조금 가니 칠보면이라는 이정표가 보인다. 그래, 저기서 1박 하자. 뭐라도 있겠지. 가만, 지난번 북일에서 낭패를 봤는데. 아녀, 있을 겨. 530. 날이 어두워진다. 6. 아직 칠보면은 멀었다. 630. 어둑하다. 칠보야, 아직도 멀었냐? 7. 깜깜하다. 도로변에 인가도 없다. 이따금 지나가는 차만 있을 뿐. 태워달라고 부탁하고 싶다. 하지만 끝내 손을 들지 못했다. 711. 도로를 벗어난 곳에 마을 불빛이 보인다. 반갑다! 교회 십자가가 반짝인다! 그래, 저기 가서 부탁해 보자! 도로를 벗어나 교회를 찾아갔다. 그런데, 십자가만 번쩍인다. 목사관도 교육관도 깜깜하다. 다시 큰 도로로 나가려는데, 도무지 길이 어디로 연결되는지를 모르겠다. 될대로 되라는 심정이 되어 인도로 보이는 데를 따라 걷는데, 그리 멀지 않은 곳에 하나로 마트네온사인이 보인다. 아니 저것이 보일 상황이 아닌데? 큰 도로를 벗어나 이리로 들어왔고 다시 나가면 큰 도로와 만날 터인데, 어째 저것이 보이지? 그러나, 반갑다(지금도 당시 상황이 어떻게 된 건지 잘 모른다)! 하나로 마트가 이렇게 반가울 줄이야. 하나로 마트가 있다는 건 사람들이 있다는 것. 사람들이 있다면 뭔가 해결책이 있다는 것 아닌가!


도착하고 보니(여기가 그렇게 애타게 찾던 칠보면 중심가였다), 모든 것이 파장 분위기다. 하나로 마트도 문을 닫았다. 숙소할 만한 데가 없다. 어이할꼬? 그런데 눈에 띄는 건물이 있다. 농촌 무슨 무슨 사무소라는데다. 귀농인들에게 도움을 주는 곳 같다. 가면 왠지 숙소를 안내해 줄 것 같다. 노크하고 들어가 사정 얘기를 하는데, ‘웬 미친 놈여?’ 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숙소는 없다고 단칼에 잘라 말하고, 정읍 가는 막차가 있으니, 그것을 타란다. 730분인데, 막차가 있을까? 정말 있냐니, 있단다. 차부가 가까이 있으니 가보란다. 친절하진 않지만 그래도 필요한 말은 다 해줬다. 감사허유~.


차부. 컴컴하기만 하지 아무()도 없다. 그런데 맞은 편에 불빛 환한 카페가 있다. '카페 고현.' 막차가 있는지 물어보았다(아까 알려준 사람이 영 미덥지 않아서). 그랬더니 가게에 붙여 놓은 버스 시간표를 보며 금방 올 거라고 알려준다. 나같이 차 시간을 물어보는 사람이 있어 시간표를 만들어 놓은 것 같다. 혹시 이 근처에 숙박할 데가 있냐고 물으니, 없다면서, 한번 알아는 보겠다고 어딘가 전화를 건다. 그러면서 우선 밖에 나가서 차를 기다리란다. 사람이 없으면 그냥 간다고. 카페 주인은 하얀 얼굴의 가녀린 몸매를 한 도회지 풍의 여성인데, 생각보다, 친절했다. 카페 문을 나서는데 버스가 들어오는 게 보였다. 급히 카페 문을 열고 소리쳤다. “사장님, 버스가 와요. 감사합니다!” 힘차게 손을 흔들어 차를 세우고 올라탔다. 손님이 몇 안 된다. 자리에 앉았다. 살았다! 시계를 보니, 744분이었다.



820. 정읍 시외버스 터미널 간이 승강장에 내렸다. ()라 그런지 사람들이 붐빈다. 반갑습니다, 여러분!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 사람 없는 칠흑 같은 곳에서 헤맸다가 붐비는 사람들을 만나니, 왜 이리 좋으냐! 평소 머루랑 다래랑 먹고 청산에 살어리랐다를 읊었는데, 한계 상황에 부딪혀 보니, 나는 그런 곳에선 살 위인이 못 된다는 걸 절감했다.


터미널 근처라, 숙소가 즐비하다. ‘첼로 모텔을 선택했다. 무슨 무슨 좋은 숙박지로 선정된 곳이라고 내건 광고에 혹한 것. 4만원이란다. 비싸지 않다. 내부 시설도 깔끔하다. 똑같은 가격인데, 어제 묵었던 모텔과 현격히 대조된다. 일체의 저녁 의식을 끝내고 침대에 누웠다. TV를 켜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는다. 많이 피곤하다. 14시간 이상을 걷지 않았는가. 거기다 심적 고통까지.


엎드려 가족 단톡방에 간단히 소식을 올리고 수첩에 오늘의 소회를 썼다. “, 임실! 피곤, 고통! 임실임시임질. 발음 슷비. 중도 이탈+순간 쾌락=피곤! 고통! 그러면, 정면/정도만?” 메모장을 내던지고, 불을 껐다. 빨리 자야 한다. 내일은 진안까지 간다.


*임실과 관련 있는 분들, 글 마지막 부분에 대해 분노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루 너무 힘들어서 스트레스 해소 차원으로 쓴 저급한 소회일 뿐입니다. 임실이야 무슨 죄가 있겠습니까. 길치인 본인이 잘못이지. 그냥 약간 읽는 분들의 재미를 위해 드러낸 것뿐이니, 너그러이 용서해 주시고 웃어 넘겨주시기를 바랍니다. 넉넉한 마음으로 임실을 찾아 관광할 시간이 오기를 기원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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