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부장님, 앞으로 손님들이 반디 앤 루니스에서 책 한 권을 사면 스타벅스 매장에서 커피 한 잔을 무료로 접대해 드리도록 하죠?”

?”

놀라실 줄 알았습니다하지만이유는 묻지 마시고 그대로 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래도 조금은 설명을.”

굳이 설명하라면사람들이 너무 책을 읽지 않아서 그렇습니다대합실의 승객들 보셨죠책을 읽는 이들이 한 명도 없더군요전부 스마트폰만 보고 있어요제 비록 장사꾼이지만이건 정말 아니다 싶더군요우리 미래가 암울하게 느껴졌어요저는 현명하고 아름다운 소비자를 상대하는 스마트한 장사꾼이고 싶어요그러려면 소비자들이 책을 읽어야

아무 말 마시고 그렇게 해주세요어머니께는 내가 승낙을 받을 테니 걱정하지 마시고.”

알겠습니다그런데 문제가 있습니다반디 앤 루니스는 이미 철거되지 않았습니까거기엔 주방 침구 매장이.”

알고 있습니다당연히 원래대로 복원해야겠지요그곳과 다시 연락하도록 하세요.”     


과거 사회의 계층 질서는 사농공상으로사회의 오피니언 리더는 ()’였다오늘날 사회의 계층 질서는 사라졌지만 보이지 않는 계층 질서는 분명 존재한다그렇다면 오늘날 사회 계층 질서의 최상위즉 오피니언 리더는 누구일까? ‘()’이다돈이 지배하는 자본주의 사회이기에 당연하다고도 볼 수 있다그래서 오늘날의 오피니언 리더인 에게는 과거의 과 다른 점이 요구된다과거의 처럼 돈만 추구해서는 안 된다는 점오피니언 리더이기에 돈의 추구와 함께 가치의 추구도 요청되는 것이다.     


코로나 상황으로 한동안 못 갔던 서울 강남고속버스터미널을 어제 찾았다많이 바뀌어 있었다전체적으로 단순하면서도 산뜻한 느낌을 주었다자잘한 가게들을 많이 정리했고 매표 공간도 이동과 함께 규모를 줄였다비워진 공간을 채우지 않고 그대로 두어 여유를 느끼게 했다(비워놓은 건 좋은데 건물 기둥에 현란한 LED 광고판을 설치한 건 좀 아쉬웠다). 다양한 메뉴의 정갈한 음식점들이 대합실과 떨어진 곳에 별도로 모여있어 대합실과 음식점이 뒤엉키는 어수선함도 일소시켰다지하철과 연결되는 지하 공간도 변화가 있었다지하 공간의 주인공인 신세계 백화점의 영역이 한층 확장된 것이다서점이었던 공간이 주방과 침구 매장으로 바뀌어 있었다강남고속버스터미널의 이번 변화 주제는 단순 · 여유 그리고 화사함이 아니었나 싶었다.     


그런데개인적으로이번 터미널의 변화에서 서점을 없앤 것은 더없이 아쉬웠다지하 매장의 첫머리에 있었던 서점이 뒷방으로 밀리더니 급기야 사라진 것인데서점을 애용했던 나로선 아쉬움을 넘어 허탈함까지 느껴졌다서점이 사라진 것은 당연히 돈이 안 됐기 때문일 것이다그런데주지하는 것처럼서점은 단순히 책이라는 물건을 사고파는 공간 그 이상의 의미가 있다도서관과 가게를 합친 곳이 서점이라 해도 대과 없을 것이다상업성이 없다고 도서관을 무시하지 않는 것처럼서점도 그런 대우를 해줘야 하는 곳이라고 보는데, 이번 변화에서 서점을 없앤 것은 전적으로 상업적 판단에만 초점을 뒀기 때문인 것 같았다(서점측에서 먼저 철수를 요청했을 수도 있다. 그렇다하더라도 잔류를 권고했어야 하지 않을 않을까 싶다. 만약 잔류를 권고했는데도 서점측에서 먼저 철수를 요청했다면 위의 언급은 전적으로 나의 잘못된 지적이다).

    

오늘날 사회의 오피니언 리더인 에게는 돈의 추구와 함께 가치의 추구도 요구된다. 이번의 강남 고속버스터미널의 변화에서 은 가치의 추구는 빼고 돈만 추구한 것은 아닌가 싶다아쉬운 일이다하여 한쪽의 가치 추구도 이행했으면 하는 바람에서, 첫머리의, 다소 발칙한 상상을 해봤다강남고속버스터미널의 주인은 신세계 그룹이다신세계 그룹의 회장은 이명희 씨이고 백화점 분야는 그의 딸인 정유경 씨가 맡고 있다. ('신세계' 하면 자연스럽게 정용진 씨가 떠올라 그가 주인인 줄 아는데, 그는 이마트 쪽을 담당하고 백화점 쪽은 동생인 정유경 씨가 맡고 있고 있다.)


*여기서 언급한 강남고속버스터미널의 변화는 대합실의 변화만을 말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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읍취헌 박 선생은 곧은 말을 하다 연산조의 미움을 받았다. 끝내 이 일로 하여 갑자사화(1504) 때 사형을 당했으니, 당시 나이 26세였다. 당시의 일은 차마 가슴이 아파 말하기 어렵다. 선생이 참화를 당했기에, 지었던 글들도 산실되었다. 다행히 친우였던 용재 이상국께서 얼마간 수습하여 세상에 내놓았는데, 이도 세월이 흘러 사라질 지경이 되었다. 나는 선생의 문집이 사라질 지경에 놓인 것이 너무 안타까웠다. 어떻게 이 천지간에 선생 같은 이의 문집이 사라질 수 있단 말인가!

 

나는 어렸을 때 최간이와 권석주 두 분께서 읍취헌에 대해 평가한 것을 들은 적이 있다. 두 분은 읍취헌의 문장이야말로 동국 제일이라고 말씀하셨다. 훗날 장성한 뒤 읍취헌의 글을 보니, 결코 틀린 말이 아니었다. 그의 시는 기품이 호방하고 뛰어나 황정견과 비길만했고, 문장은 우아하면서도 굳건하여 서한 시대의 글에 핍진했다. 돌아간 아내 신 씨를 추모하는 행장은 문호 한유도 손댈 수 없는 명문이다. 읍취헌을 천하의 기재(奇才)라고 말해도 결코 틀린 말이 아닐 것이다. 이런 분이 곧은 도리를 행하다 돌아갔으니, 어떻게 이 천지간에 선생 같은 이의 문집이 사라지게 둘 수 있겠는가!

 

이에 예조판서 오준과 이조참판 조석윤 대제학 채유후 승지 박장원과 상의하고 전라감사 심택에게 편지를 넣어 중간을 부탁했다. 심공은 흔쾌히 승낙하고 곧바로 간행에 착수했다. 이제 읍취헌집이 다시 세상에 널리 유포될 수 있게 됐으니,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다.

 

문집을 세상에 전하려면 반드시 간행을 해야 하고, 간행을 하려면 남의 힘을 빌 수밖에 없다. 그 힘이 없으면 비록 뜻이 있더라도 일이 성사될 수 없다. 읍취헌집의 출간은 비록 우리 5인이 처음 뜻을 세웠으나 그 끝은 심공이 해냈다고 할 수 있다. 심공 또한 글을 아끼고 의를 사모하는 이라 아니할 수 없다. 간행이 마무리될 무렵 심공이 내게 서문을 청하고, 함께 뜻을 모았던 이들도 내게 서문을 청하기에, 감히 청을 받들어 이 서문을 쓴다

 

 정두경(鄭斗卿)의 중간읍취헌유고(重刊 挹翠軒遺稿)



* 읍취헌 박은(1479-1504)은 흔히 해동강서시파로 불리는 시인이다. 강서시파는 송대의 황정견 진사도 등 일군의 시인을 일컫는 말로, 주도자였던 황정견의 고향이 강서였기에 붙여진 명칭이다. 이들은 험벽한 전고의 사용과 기굴(奇崛)한 시풍을 추구했다. 해동강서시파는 박은 이행 정사룡 등을 지칭한다. 박은의 널리 알려진 복령사(福靈寺)(아래 시)를 읽어보면 이들의 시풍이 어떤 것인지 짐작할 수 있다.

 

신라부터 내려온 오래된 절이요    伽藍却是新羅舊

서축(인도)에서 가져온 천불상이라    千佛皆從西竺來

예부터 신인은 절속한 험지를 찾았나니    終古神人迷大隗

지금 이곳은 천태산과 같구나    至今福地似天台

봄 날씨 어둑어둑 비 올듯하여 새들 지저귀고    春陰欲雨鳥相語

무정한 고목엔 구슬픈 바람만 스쳐가네    老樹無情風自哀

만사란 한바탕 웃음거리도 안되거니    萬事不堪供一笑

청산서 세상 보니 먼지 본색 드러나네    靑山閱世自浮埃


* 1, 2구는 복령사의 오래된 햇수와 보기 드문 소장품을 통해 복령사의 특별한 외적 면모를 그렸다. 3, 4구는 이를 심화하여 도교의 성지인 천태산과 같은 고고한 곳이라는 것으로 복령사의 특별한 내적 면모를 그렸다. 5, 6구에서는, 시상에 변화를 주어, 누구나 한 번쯤 그려봤을 이러한 탈속적인 곳에 대한 시인의 느낌을 표현했다. 보편적으로는 탈속적인 곳에서 느낄법한 청신한 감상을 쓸만한데, 시인의 느낌은 이와 다르다. 음울한 비장미마저 느끼게 하는 감상을 말했다. 5, 6구가 외적 사물을 통해 그런 감상을 표현했다면, 7, 8구는 그런 감상을 직접적으로 토로했다. 이 시는 평범치 않는 감상을 전반부와 후반부의 격렬한 대비 구도를 통해 표현하면서 그 내에서도 외부와 내부의 대비 표현을 사용해 대비 구도를 심화시키고 있다. 내용과 형식 모두 기굴(奇崛)함을 발휘한 시라 볼 수 있다.

 

* 정두경이 박은의 문집을 중간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박은의 문학적 성과가 사라질 것이 아쉬운 것도 있지만, 무엇보다 박은이 보여준 선비로서의 올바른 자세곧은 말과 행동 가 문학인의 본보기가 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어쩌면 정두경은, 박은의 문집 중간(重刊)을 통해, 삶과 문학이 유리되()는 현실에 대해 비판하고 싶었던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 복령사(福靈寺)3구와 마지막 구의 해석에 자신이 없다. 부족한 점, 이해해 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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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비 된 자가 인간 성품의 근원을 탐구하고 고금의 변화를 통찰하여 자신을 수양하고 그것의 공효를 천하 국가에 펼치는데 도움이 되는 것은 경전과 사서일 뿐이다. 이 밖에 다른 책을 구하게 되면 오도(유학의 도)를 버리고 이단으로 빠지게 된다. 그러나 천하의 이치는 무궁하고 사물의 변화 또한 이와 더불어 무궁하기에 경전과 사서 외에도 다른 책들이 있다. 다양한 사상과 기예를 가진 자들이 각자가 터득한 소견을 바탕으로 자기 나름의 주장을 펼치고 책을 지었으니, 이들의 주장과 책의 내용이 비록 성인의 말씀을 기록한 경전과 부합되지 않는다 해도 나름의 볼만한 부분이 있다고 아니할 수 없다. 하여 이들의 주장과 책의 내용은 견문을 넓히는데 도움이 되어 도는 지극히 크기에 어느 곳에나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새삼 알게 한다. 하여 고래로 선비 된 자들이 이러한 주장과 책을 버리지 않았던 것이다.     

 

『태평광기』도 이러한 연유로 지어진 책 중의 하나이다. 그런데 이 책은 많은 이야기들을 빠짐없이 담느라 내용이 너무 많고 지리하다. 물경 500권에 달하여 이 책을 다 읽은 이들은 극히 드물다. 나의 벗 성임은 옛것을 좋아하는 해박하고 단아한 군자이다. 일찍이 이 거질의 책을 독파하고 이 글이 갖는 풍부함과 화려함 그리고 신비하고 경이로운 이야기가 주는 놀라움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하지만 그 역시 압도적 양과 요점의 미비함에는 아쉬움을 느꼈다. 이에 그 지리하고 지나치게 황탄한 내용들은 빼고 50권으로 축약하여 읽기 좋은 판본으로 만들었다.     


완성된 책을 내게 가져와 서문을 요청하기에 받아서 읽어보았다. 진(晉)의 온교가 우저가에서 쇠뿔에 불을 담아 물아래를 비췄더니 온갖 신이한 것들이 다 보였다는 것처럼 『태평광기』의 주요 신이한 내용들이 다 들어 있었다. 그리고 진시황의 여산릉을 발굴할 때 팔수록 진기한 패물이 나온 것처럼 책장을 넘길수록 점입가경의 내용이 나오게 하여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책장을 넘기게 된다. 이 책에는 수천 년간의 귀신과 인간에 관한 온갖 이야기들이 다 들어있는바, 기쁘고 놀랍고 받들고 버려야 할 것들이 모두 한 상에 빠짐없이 차려져 있다. 하여 다섯 수레의 많은 책을 읽지 않고도 이 책만 충실히 읽으면 좁고 고루한 식견을 탈피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성임이 얼마나 이 책에 공력을 들였을지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성임이 내게 책을 건네며 한 말이 있다. “자네도 알다시피 괴력난신(怪力亂神)은 공자께서 언급하길 꺼리신 바일세. 후세 사람들이 이 책을 지목하여 성인의 가르침을 그르치는 책이라고 할까 좀 걱정되네. 자네의 생각은 어떠한가?” 나는 이렇게 답했다. “역경에도 하도가 있고 서경에도 낙서가 있으며 시경에도 ‘현조’와 ‘무민’ 같은 시가 있으며 예기에서도 네 영물(기린, 봉황, 거북, 용)의 응답을 언급하고 있고 역사서에서도 여섯 비익조에 관한 일을 기록하고 있네. 성인께서 경을 정비하실 때 이러한 일들을 모두 그대로 둔 것은 무슨 뜻이었겠는가? 천하의 이치란 무궁하고 사물의 변화 또한 이와 더불어 무궁하기에 하나의 생각이나 사상으로 재단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보신 것이 아니겠는가! 성인께서 괴력난신을 언급하길 꺼리신 것은 사람들이 육경의 이치엔 어두우면서 색은행괴(索隱行怪)의 설에 매몰될까 걱정하셨기에 그리하셨다고 보네. 만약 먼저 육경의 도를 분명히 궁구하여 학문의 경지가 정대하고 고명한 경지에 이르렀다면 비록 저잣거리의 비루한 말도 모두 나름의 이치가 있기에 나를 성장시키는 한 방편이 될 수 있을 걸세. 하물며 한적하고 답답할 때 이 책을 보면 흡사 옛사람과 한자리에 앉아 즐겁게 담소하며 즐거워하는 듯한 느낌이 들어 무료하고 답답한 기운이 얼음 녹듯 사라져 가슴이 시원해지니 그 가치가 어떠하겠는가? 이런 것이 예기에서 이르는 “한 번 긴장하면 한 번 이완해야 한다”는 이치 아니겠는가! 옛사람도 이런 것을 알았기에 패관을 두었고 소설가라는 이들의 글도 전해지게 된 것 아니겠는가? 그렇지 않았다면 어찌 그런 것이 존재하고 전해 졌겠는가!” 성임은 나의 말에 동조의 뜻을 보였다. 이에 이 서문을 지어 그에게 보냈다.          


이승소(李承召, 1422-1484)의 『약태평광기서(『略太平廣記』序)



*『태평광기』는 송 태종(939-997) 연간에 이임 등이 편찬한 설화집으로 송대 이전까지의 거의 모든 설화가 집대성된 책이다. 우리나라에 전래되기는 고려 고종(1192-1259) 이전으로 보며, 최근에는 나말여초로 보려는 입장도 있다. 비교적 일찍 도입된 설화집으로 우리나라의 소설 발달사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노신은 이 책의 장점을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나는 '태평광기'의 장점에 두 가지가 있다고 생각한다. 첫째는 육조에서 송초까지의 소설이 거의 전부 그 안에 수록되어 있으므로 만약 대략적인 연구를 한다면 많은 책을 따로 살 필요가 없다는 것이고, 둘째는 요괴·귀신·화상·도사 등을 한 부류씩 매우 분명하게 분류하고 아주 많은 고사를 모아 놓았으므로 물리도록 실컷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윗글에서도, 관점은 약간 다르지만, 이런 『태평광기』의 장점을 언급하고 있다.     


*도덕과 재미는 양립하기 쉽지 않은 가치이다(윗글에서는 둘 다 ‘도’라는 이름으로 얼버무리고 있다). 지금도 그러한데 하물며 예교가 지배하던 과거에는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윗글 마지막에 성임이 애써 책을 만들고도 걱정스러운 말을 한 것이나 서문을 써 준 이승소가 글 첫머리와 마지막 부분에 『태평광기』가 갖는 가치를 애써 변론한 점은 이런 양립이 쉽지 않음을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이는 달리 말하면 아무리 도덕을 강조해도 재미를 추구하는 인간의 본능을 억제하기란 쉽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선초만 해도 성리학이 강고하지 않고 도학보다 사장의 전통이 강했던 고려의 영향이 남아 재미를 지닌 책을 옹호하는 이런 글이 나올 수 있지 않았나 싶다. 성리학이 난숙한 조선 중기 이후엔 이렇게 패사소품의 글을 옹호하는 글을 쓰기란 어렵지 않았을까 싶다.      


*이 서문은 『약태평광기』란 책에 써준 서문이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알려진 이 책의 제목은 『태평광기상절(太平廣記詳節)』이다. 어느 책명이 맞는 걸까? 서문으로 본다면 『약태평광기』가 맞을 것 같다. 『태평광기상절』이란 책을 갖고 와 서문을 요청했다면 『태평광기상절서』라고 하지 굳이 『약태평광기서』라고 할 리가 없겠기 때문이다. 후에 책 제목이 바뀐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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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구시(다른 이의 시구를 모아 지은 시)는 송초에 시작되어 왕안석 · 석연년 등에 이르러 성황을 이루었다우리나라에선 매월당의 집구시가 돋보인다     


일찍이 서거정이 스승인 유방선에게 집구시의 어려움과 쉬운 점에 대해 질의한 적이 있다그때 유방선은 이렇게 말했다: “집구시를 짓기란 어려우면서도 쉽고쉬우면서도 어렵다.” 서거정이 무슨 말씀이냐고 물으니유방선이 이렇게 말했다: “집구시는 왕안석도 어려워한 바인데 고려 때 임유정과 최집균은 모두 이에 능했다그들의 집구시를 보면 흡사 평소 시를 지을 때처럼 운에 맞춰 자연스럽게 시를 지은 것처럼 보여 평소 많은 인물들의 시를 수집해 제재별 내용별로 분류해 시작에 대비해 놓은 것처럼 느껴진다그런데 우리나라는 서적이 그렇게 많지 않아 이름난 이들의 작품이 대부분 드러나 있는데 위 두 사람의 집구시에 등장한 사람 중에는 듣도 보도 못한 사람이 많으니 이들의 집구시가 진정한 집구시인지 매우 의심스럽다또한 두 사람이 집구시에 능통했는데도 정작 그들 자신의 시는 세상 사람들의 입 줄에 오르내리는 것이 한 편도 없으니 이들의 집구시가 제대로 된 집구시라 할런지도 의문이다이러니 집구시 짓기가 어려우면서도 쉽고쉬우면서도 어렵다고 하지 않겠느냐?” 근자에 영남 사람 전극항이란 이가 집구시에 능하다고 알려졌는데그 속에 듣도 보도 못한 이들의 시가 들어 있으니 그의 집구시는 저 임유정과 최집균의 집구시와 같은 유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병자년(1636)에 나는 북경에 사신으로 갔다가 병이 생겨 그해 겨울을 병상에서 보낸 적이 있다당시 무료하던 차 문천상이 지은 집두시(두보의 시를 집구한 시) 200수를 읽은 적이 있는데모두가 뛰어나고 절실하여 흡사 두보가 문천상을 위해 지은 시 같았다이에 자극받아 나도 시험 삼아 집구시를 지었는데다른 이의 시는 섞지 않고 오로지 두보의 시만을 모아 절구(4구의 시)를 짓고 문산(문천상의 호)라 명명했다쾌차하여 귀국한 이후에도 계속 지어 총 2백여 수가 됐고간혹 장편으로 짓기도 했으며 율시(8구의 시)로 지은 것도 있다이 집구시가 잘됐는지의 여부는 자신할 수 없으나적어도 임 · 최 · 전씨의 작품과 같은 의심은 받지 않을 자신이 있다. 

         

김육(金堉, 1580-1658)의 『집두시』후서(『集杜詩』後序)



집구시는 요즘 말로 하면 짜깁기라고 할 수 있다짜깁기의 핵심은 그 흔적이 남지 않게 하는 것이다집구시도 마찬가지이다비록 타인의 시구를 조합하여 시를 지을지언정 극히 자연스러워야 성공한 시라고 할 수 있다그런데 위 유방선의 말을 빌면 집구시의 원작은 많은 이들에게 공개된 작품이어야 한다는 불문율이 있는 것 같다공개된 작품으로 자연스럽게 지어 많은 이들의 공감을 받을 때 성공한 집구시로 본 것그렇지 않으면 집구의 능력이 부족한 것으로 평가받았던 것으로 보인다불투명한 표절보다 투명한 표절을 더 높이 쳤다고나 할까?     


모방이나 표절은 창작의 기운이 막혔을 때 나오는 궁여지책이다일반적으로 송시는 당시에 비해 격이 낮다고 평가받는데송대에 집구시가 시작되고 성황을 이루었다는 것도 이런 평가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김육의 시도그의 시를 읽어보지 않아 모르겠지만혹 창발성이 부족한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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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는 저 꽃과 / 우는 저 새들이 / 그 운명이 모두 다 같구나 / 삶에 열중한 가련한 인생아 / 너는 칼 위에 춤추는 자로다     


윤심덕의 「사(死)의 찬미」 한 대목이다. 삶과 죽음을 같이 보고 있지만, 죽음 쪽에 더 비중을 두고 있다. 삶이란 칼 위에서 춤추는 격인데 왜 그리 삶에 열중하냐며 삶에 목매는 이들을 안타깝게 여기고 있다. 그래서 그랬을까, 윤심덕은 꽃다운 목숨을 현해탄에 던졌다(이설(異說)도 있지만, 일반적으로 알려진 설을 따랐다).

     

사진의 한문은 맹호연(孟浩然, 689-740)의 「춘효(春曉, 봄 새벽)」란 시이다(사진은 한 음식점에서 찍었다).     


봄 잠이라 노곤해 새벽 온 줄 몰랐더니 / 곳곳의 새소리 늦잠을 깨우네 / 밤사이 비바람 거셌거니 / 아, 꽃잎은 얼마나 졌을까 春眠不覺曉  處處聞鳥啼  夜來風雨聲  花落知多少     


봄날의 정감을 시각이 아닌 청각을 통해 묘사한 점이 돋보이는 시이다. 그런데 이 시를 봄날의 정감을 그린 것이 아닌 다른 각도로 볼 수는 없을까? 삶과 죽음에 대한 태도를 우회적으로 그린 작품으로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1·2구는 삶, 3·4구는 죽음에 대한 태도를 그린 것으로 보는 것. 이 시를 「사의 찬미」와 견줘보면, 삶과 죽음을 동시에 보고 있지만, 삶 쪽에 더 비중을 두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죽음을 상징하는 거센 비바람에 맥없이 떨어졌을 꽃잎에 안타까움을 느끼는 것은 그만큼 삶에 우선 가치를 두고 있다는 것을 역으로 말해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랬을까, 맹호연은 비록 출사하여 부귀공명을 누리진 못했으나 녹문산에 은거하며 유유자적하게 살았다.     


삶은 죽음의 이면이고, 죽음은 삶의 이면이다. 어느 한쪽을 경시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둘 모두를 고르게 바라보고 대해야 한다. 어차피 죽을 인생이라며 삶을 경시하는 건 자포자기의 태도이고, 삶이 최고라며 죽음을 터부시 하는 건 과대망상의 태도이다(맹호연은 죽음을 안타까이 여기지만 터부시하고 있지는 않다). 과거 인도에선 자녀들을 성가(成家)시킨 뒤 출가하는 풍습이 있었다고 한다. 출가란 이해타산의 삶을 벗어나 청빈한 삶을 추구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삶을 떠나 죽음을 준비하는 행위이기도 하다. 옛 인도의 출가 풍습은 삶과 죽음을 고르게 대한 고귀한 풍습이었다란 생각이 든다.     


인생 백세 시대를 바라보고 있다. 이에 맞춰 노인을 위한 각종 복지제도가 마련되고 있다. 좋다. 그러나 이런 제도에 앞서, 나이 드는 이들 스스로의 자기 검속(檢束)도 필요할 듯싶다. 삶과 죽음을 고르게 바라보고 출가의 심정으로 남은 인생을 사는 것, 이런 자기 검속이 있을 때 복지도 더 의미 있게 누리지 않을까 싶다.     


여담. 사진의 한시에서 ‘조제(鳥啼)’는 ‘제조(啼鳥)’로 바뀌어야 한다. 그래야 운이 맞는다. 원시에도 그렇게 되어있다. 글씨 쓰신 분이 착오를 일으킨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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