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일한 지명을 갖는 곳이 종종 있다. 내가 사는 지역(서태안)의 한 지명이 다른 곳에도 있다는 것을 이번에 알게 됐다. 모항. 모항은 전북 부안에도 있었다. 한자 표기도 동일하다. 茅項. 茅는 띠 모, 項은 목덜미 항이다. 그런데 두 지명에 대한 설명이 약간 상이하다.


부안의 모항에 대한 설명은 이렇다. "띠가 많이 자라는 곳이라 하여 띠 모(茅) 자, 배가 지나가는 목이라 하여 목 항(項) 자를 써서 ‘모항’이라 하였다."(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태안의 모항에 대한 설명은 이렇다. "모(茅)는 불모지(不毛地)를, 항(項)은 물을 건너가는 곳을 일컫는 말"이다. (출처: 모항항 입간판, 위 사진)


어느 것이 적절한 설명일까? 부안의 설명이 적절한 것 같고, 태안의 설명은 틀린 것은 아니지만 다소 지나치게 의역된 설명 같다.


식자우환이라고, 한 자 몇 자 알다 보니, 가끔씩 한자가 들어간 간판에 딴지를 걸고 싶은 때가 있다. 모항항에서 본 입간판이 그랬다. 


그나저나 전에는 '모항'의 의미를 알지 못했는데, 한자 표기가 수반된 입간판을 통해 그 의미를 알게 됐다. 모항의 의미를 알고 모항을 대하니 모항이 전과 다르게 느껴졌다. 왠지 더 쓸쓸한 느낌이 들었다고나 할까? 


지명의 의미를 알고 모르고는 그 지역을 대했을 때 갖는 생각과 느낌에 영향을 준다. 그런데 의미가 사라진 채 단지 표식으로만 사용된 한글 지명 표기에서는 별다른 감흥이 생기지 않는다. 설혹 생긴다해도 그릇된 생각과 느낌일 가능성이 크다. 지명에는 역사와 문화가 서려있는데 그것을 알 길 없게 만드는 한글 전용 지명 표기들은 재고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이런 점에서 모항항의 설명 입간판은 아쉬운 점이 있긴 하나 모항의 의미를 전달해줬다는 점에서는 칭찬받을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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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오, 기적이로다! 참으로 신.비.하도다! 

AI? 에라이, 너 같은 애가 어디 여기에 한 줌이나 상대가 될쏘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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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을 보시고 무슨 생각이 드셨는지? 난 문득 소순((1009~1066)의 '목가산기(木假山記)'가 생각났다.


산 모양으로 된 나무(일종의 분재)를 '목가산'이라 하는데, 소순은 중심이 높고 주변의 두 봉오리(가지)가 중심을 향하는 형태의 목가산을 얻었다. 소순은 목가산을 보면서 나무의 일생을 먼저 말한다. 싹이 나자 바로 죽는 것이 있고, 조금 자라다 죽는 것이 있고, 어느 정도 성장하면 재목으로 잘려 죽고, 그렇지 않으면 풍우에 시달려 쓰러지거나 썩어서 죽는 것이 대부분 나무의 생이다. 그러나 목가산 나무는 여울진 물속에서 성장하여 이런 나무의 불우한 생을 피하기에 온전히 살아남아, 호사가의 눈에 띄어 산 모양으로 다듬어져 남은 생을 온전히 누린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호사가의 눈에 띄지 못하면 초부들에게 땔감으로 전락될 수 있다며, 자신이 소유하고 있는 목가산은 그야말로 나무 중에서 가장 행복한 나무라고 말한다. 하지만 자신은 목가산이 단순히 이렇게 살아남았기에 대견한 것만이 아니고 중심은 의연하고 주변의 두 봉오리(가지)는 근엄한 자세로 중심을 섬기는 듯하면서도 자신의 주견을 뚜렷이 가지고 있는 듯한 모습을 더 좋아한다고 말한다(소순과 그의 두 아들 소식과 소철은 이른바 당송팔대가에 들어가는 명문장가였다. 목가산의 세 봉우리는 자신과 두 아들을 빗댄 말이기도 하다).


물속에 잠긴 나무를 바라보며 저마다 다른 생각을 할 것 같다. 혹자는 수몰민을 생각하며 실향의 슬픔을 생각키도 할 것이고, 혹자는 무슨 공포나 괴물 영화를 연상하기도 할 터이고... 내가 목가산기를 떠올린 건 아무래도 내가 가진 배경 지식 때문일 터이다.


세상을 편견 없이 보라고 많이들 주장한다. 그런데 나는 외려 편견을 가져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편견 없이 세상을 보라는 건, 내게는, 몹시 위험한 주장으로 들린다. 그것은 마치 어린아이를 전쟁터에 내놓는 것과 같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선 편견을 가져야만 한다. 다만 편견을 갖되, 자기 만을 생각하는 편견보다는 상생을 위한 편견을 가져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려면 공부도 많이 해야 하고 경험도 많이 쌓아야 한다. 목하 윤 대통령이 사람들의 질타를 받는 건 상생보다 위아(爲我)의 편견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게다가 공부도 경험도 미흡하다). 그렇지 않은가?


한 장의 사진을 놓고 다양한 편견이 있을 수 있지만, 단순한 감상의 편견을 넘어 옛과 지금을 연결하며 삶의 가치와 세상사를 판단하는 편견을 가질 수 있다면 어떤 편견이 더 높은 편견인지는 말하지 않아도 될 터이다(본의 아니게 자랑하는 말이 됐다. 용서하시라). 하물며 세상의 큰 일을 대하는 편견에 있어서야 어떤 편견이 더 중요하고 가치 있는지는 말해 무엇하랴.


하여, 결론을 내리면(?), '우리 모두 편견을 갖자! 그리고 '당신의 편견을 응원해요!'가 되시겠다. 다만 전제가 있다. '상생을 위한'을 편견 앞에 꼭 놓아야 한다는 점. 때로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할 때도 있다. '편견을 갖자!' '편견을 응원해요!'에는 이 보이지 않는 전제가 매우 중요하다. 


사진은 태안의 파도리 어은돌 저수지에서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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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책에서 배웠던 인물의 흔적을 생활 주변에서 만나는 느낌은 TV에서 보던 유명인을 실물로 만났을 때의 느낌과 흡사하지 않을까? 


신경준(申景濬, 1712-1781). 학교 다닐 때 '실학자이며 '강계고'의 저자'로 배웠던 인물이다. 그런데 이 이가 서산에 군수로 재임했었고 그를 기리는 '영세불망비'가  동네 산인 물래산에 있다. 놀랍고 설레지 않겠는가.


처음 이 비를 본 건 수년 전. 이번에 태안 해변 길 도보 여행을 마치고 귀가하면서 문득 다시 보고 싶어 찾았다(위 사진). 처음의 느낌만큼은 아니어도 여전히 놀랍고 설레었다. 아쉬운 건 돌아보는 이 아무도 없어 방치돼 있는 것. 사진에는 글자가 거의 안 보이는데 저 마애 영세불망비에는 이런 글자가 새겨져 있다. 군수 신후경준 영세불망비 건륭이십팔년(郡守 申侯景濬 永世不忘碑 乾隆二十八年).


건륭이십팔년은 서기로 1763년 영조 39년이다. 자료를 찾아보면 신경준은 서기로 1762년 영조 38년에 서산에 부임한 것으로 돼있다. 그러면 1년이나 1년이 채 안되게 서산에 재임했던 것. 치적을 남기기에는 극히 짧은 기간 재임했던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세불망비가 있다는 건 그의 감화가 적지 않았기에 가능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많은 수의 그럴듯한 영세불망비가 대개 반강제적으로 세워졌던 것에 비하면 저 초라한 마애 영세불망비는 진심에서 우러나 새긴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비 아래에는 젯상으로 사용된 돌도 있어 이런 추정에 더욱 힘을 보탠다.


유명인과 악수를 나눈 손은 왠지 보물 단지 같아 씻지도 않고 수건으로 감싸기도 한다. 저 마애 영세불망비도 그 같은 대접을 받았으면 좋겠다. 


사족. 고전번역원에 들어가 신경준 관련 자료를 살펴보면 신경준이 1762년 영조 27년  서산에 부임했다고 나온다(아래 사진). 그런데 이현종이 펴낸 '동양연표'를 보면 1762년은 영조 38년이고 중국은 고종 27년이라고 나온다. 고전번역원에서 고종 27년을 영조 27년으로 잘못 표기한 것 같다. 몸통 글에선 '동양연표'를 따라  1762년 영조 38년에 부임했다고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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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는 푸른 하늘처럼 넓은 바다처럼 사소서!


뉴스를 보니 설 연휴를 맞아 해외로 나가는 여행객이 많다고 한다. 원래 설 연휴를 만든 목적은 이런 의도가 아니었으련만, 이제는 설 연휴를 이용한 해외 나들이가 자연스러운(?) 행사처럼 보인다.  행사에 시비(是非)를 따지면 필시 꼰대일 터. 그런데 자꾸 꼰대가 되고 싶어 진다(이런, 벌써 꼰대  해놓고는. 하하). 시속(時俗)이 참 많이 변했다.


새해가 되면 으레 하는 덕담이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이다. 시속이  많이 변했으니, 덕담도 바꿔보는 것은 어떨까? 


새해는 푸른 하늘처럼 넓은 바다처럼 사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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