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익은 잡생각. 


중국의 과거 역사책을 읽다 보면 그 시대가 그 시대 같다는 생각이 든다. 변화란 그저 정권이 바뀌는 것뿐. 헤겔이 중국의 역사를 '정체'라고 말한 것도 일리 있는 말인 것처럼 느껴진다. 정반합의 발전적/직선적 사관을 가졌던 그에겐 어쩌면 당연한 인식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정말 중국 역사(나아가 우리나라를 비롯한 동아시아 역사)는 '정체'됐었던 걸까? 그것은 혹 역사 기술의 방법(흔히 말하는 기전체나 편년체 기술법과 같은)에서 비롯된 그릇된 인식은 아닐까? 나아가 역사를 꼭 발전적/직선적으로만 보는 게 옳은 관점일까? 역사를 '현상'과 '당위'의 순환적 관점으로 볼 수는 없을까? 


역사를 '현상'과 '당위'의 순환적 관점으로 보는 것은 어떨까 싶은 생각은 영/정/순조 때 관각문인의 대표 격인 남공철의 '여김극기문론서'를 번역하다 든 생각이다. 남공철 당시는 정조가 '문체반정'을 명할 정도로 정통 고문의 아성이 흔들리던 시기였다(그 중심에 우리가 잘 아는 연암 박지원이 있다. 남공철은 박지원과 대척점에 있었다). 정통 고문의 아성이 흔들리는 것은 '현상'이다. 여기에 고문 창작을 강제하는 '문체반정'같은 것은 '당위'에 해당한다. 둘은 길항 관계이고, 이는 순환된다. '당위'에서 '현상'이 나오고, 그 '현상'은 다시 '당위'가 되기 때문. 이를 다른 분야에도 적용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싶어 위와 같은 생각을 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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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의 취미는 끝없는 끝없는 인내다."
    "(무더운 한낮) '화엄경' 독송을 마치고 시냇물에 몸을 씻을 때는 날아갈 듯한 기분이 들었다."
    만족 지연의 법칙이라는 게 있다. 욕구는 즉시보다 지연시켰을 때 충족감이 더 크다는 것. 인용문은 법정 스님의 '무소유'에 나오는 일절들인데(책을 분실해 정확한 인용은 아니다), 스님은(이라서 그런지) 이 법칙을 체험적으로 터득했던 것 같다. 그런데 사실 일반인도 조금 나이를 먹으면 이 법칙을 자연스럽게 터득한다. 다만 실천이 어려울 뿐.
    아침마다 스마트폰과 전쟁을 벌인다. 아침 독서를 방해하기 때문. 2시간 '통감절요' 읽는 것을 아침 중요 일과로 정했는데, 약간 방심해 스마트폰을 켜면 그날 아침 독서는 물 건너간다. 당연히 즉각적 만족감은 있지만 풍족한 만족감은 느끼기는 힘들다. 오늘, 힘겹게 스마트폰의 유혹을 물리치고 아침 독서를 끝내 흡족한 마음이 들기에 몇 마디 주절거렸다. 축하해 주시라!
    여담. '무소유'에서 인용한 첫대목은 70년대 고관대작들이 골프를 취미로 삼는 것에 일침을 놓는 가운데 한 말이다. 모두가 먹고살기 힘든 시절, 서민의 아픔을 공감해야 할 고관대작들이 현실과 괴리된 '골프'라는 고상한 취미를 갖는 것에 스님은 동의하기 힘들었던 것이다. 다소 자학적이기까지 한 저 멘트에서 시대를 걱정하는 지성인으로서의 스님의 면모를 읽을 수 있다. 나는 골프가 대중화된 듯한 지금 현실에서도 스님의 일갈이 여전히 유효하다고 믿고 있다. 두번째 인용 대목은 스님의 독서기에 나오는 것인데, 스님은 더위서 어떤 일도 하기 힘든 시기인 여름이야말로 독서에 제격이라며 무더운 여름날 좁은 방에서 가사장삼을 입은 채 비지땀을 흘리며 화엄경을 읽었던 경험을 들려준다. 나도 스님을 흉내 내 무더운 여름날 좁은 방에서 단정히 앉아 독서를 해본 적이 있는데, 현기증이 일어 죽는 줄 알았다. 하라. 법정 스님이었기에 가능했던 독서라는 생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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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이라는 글자에 점하나를 지우고 / 님이 되어 만난 사람도 / 님이라는 글자에 점 하나만 찍으면 / 도로 남이 되는...


    대중가요 '도로 남'의 한 대목. 점 하나로 그 의미가 현격히 달라지는 우리 글의 묘미(?)를 재치 있게 표현했다. '남'과 '님'은 그 의미가 얼마나 다른가!


    어제 우연히 임시정부의 '대일 선전 포고문'을 읽다 이 비슷한 경험을 했다. 대일 선전 포고문은 한문으로 돼있어 번역문을 참조해(국사편찬위원회 자료실) 읽었는데 마지막 항목 풀이가 황당했다(위 사진). '민주 진영의 최후 승리를 미리 축원한다'로 번역할 것을 '만주 진영의 최후 승리를 미리 축원한다'로 풀이해 놓았던 것. 전자의 풀이대로라면 연합군의 대일전 승리를 미리 축원한다는 의미가 되지만, 후자의 풀이대로라면 만주군(일본의 괴뢰 정부)의 대연합군 승리를 미리 축원한다는 의미가 되어, 완전히 상반된 의미가 된다. '점' 하나의 차이가 이렇게 큰 의미 차이를 가져온다. 우리 글의 묘한 특성을 새삼 실감했다.


    '아 다르고 어 다르다'는 속담은 이런 우리 글의 묘한 특성을 말로 바꿔 표현한 속담일 터이다. 말과 글을 쓸 때 신중해야겠다는 생각을 종종 하지만 이번 경험을 통해 다시 한번 되새겨보게 됐다. 그나저나 국사편찬위원회 자료가 저리 부실해서야...'오류 신고'가 있긴 하다만서도(어제 오류 신고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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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도리에 있는 햄버거 가게, 인생 버거(사진). 미식가인 아내가 칭찬을 해서 해변길 걷기 중 들렸는데(수요일, 10:40) 문을 열지 않아 그 맛을 못 보았다. 그런데 가게 이름이 참 재미있다. '인생 버거'라, 직유법으로 보면 '인생 같은 버거'가 되겠고, 은유법으로 보면 '인생은 버거다'가 되겠고, 우스개로 읽으면 '인생 별거 있어'가 되겠다. 


    '인생 같은 버거'라면 희로애락이 함께하는 것이 삶이니 이 집 버거는 그런 달콤 쌉쌀한 맛이 난다는 것일 터이다. '인생은 버거다'라면 인생은 천지간에 살아가는 존재이니 이 집 버거는 그런 우주론적 의미를 지닌 존엄한(?) 버거라는 것일 터이다. '인생 별거 있어'라면 삶이 꿀꿀할 때 한 잔 마시며 꿀꿀함을 풀듯 이 집 버거를 먹으면 그런 효과가 난다는 것일 터이다. 날이 꿀꿀한 오늘, 마지막 의미로 '인생 버거'집 의미를 풀이하고 싶다. 하하. 재미있는 가게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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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일한 지명을 갖는 곳이 종종 있다. 내가 사는 지역(서태안)의 한 지명이 다른 곳에도 있다는 것을 이번에 알게 됐다. 모항. 모항은 전북 부안에도 있었다. 한자 표기도 동일하다. 茅項. 茅는 띠 모, 項은 목덜미 항이다. 그런데 두 지명에 대한 설명이 약간 상이하다.


    부안의 모항에 대한 설명은 이렇다. "띠가 많이 자라는 곳이라 하여 띠 모(茅) 자, 배가 지나가는 목이라 하여 목 항(項) 자를 써서 ‘모항’이라 하였다."(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태안의 모항에 대한 설명은 이렇다. "모(茅)는 불모지(不毛地)를, 항(項)은 물을 건너가는 곳을 일컫는 말"이다. (출처: 모항항 입간판, 위 사진)


    어느 것이 적절한 설명일까? 부안의 설명이 적절한 것 같고, 태안의 설명은 틀린 것은 아니지만 다소 지나치게 의역된 설명 같다.


    식자우환이라고, 한 자 몇 자 알다 보니, 가끔씩 한자가 들어간 간판에 딴지를 걸고 싶은 때가 있다. 모항항에서 본 입간판이 그랬다. 


    그나저나 전에는 '모항'의 의미를 알지 못했는데, 한자 표기가 수반된 입간판을 통해 그 의미를 알게 됐다. 모항의 의미를 알고 모항을 대하니 모항이 전과 다르게 느껴졌다. 왠지 더 쓸쓸한 느낌이 들었다고나 할까? 


    지명의 의미를 알고 모르고는 그 지역을 대했을 때 갖는 생각과 느낌에 영향을 준다. 그런데 의미가 사라진 채 단지 표식으로만 사용된 한글 지명 표기에서는 별다른 감흥이 생기지 않는다. 설혹 생긴다해도 그릇된 생각과 느낌일 가능성이 크다. 지명에는 역사와 문화가 서려있는데 그것을 알 길 없게 만드는 한글 전용 지명 표기들은 재고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이런 점에서 모항항의 설명 입간판은 아쉬운 점이 있긴 하나 모항의 의미를 전달해줬다는 점에서는 칭찬받을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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