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이 온다
한강 지음 / 창비 / 2014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소년이 온다

 

오랜만에 대출한 책으로 서평을 쓴다. 꽤 많이 읽기를 주저하던 책 한 권을 대출해왔다. 시간을 오래 끌었던 만큼 책의 무게감은 자못 무거웠으며 많은 생각들을 불러왔다.

그래서이다. 오늘은 더 자유롭게 그리고 딴은 더 솔직하게 써야 할 것만 같은 기분이다. 의식의 흐름으로 말이다. 이제 시작해보자.

 

대학 동기는 작가 한강을 좋아했다. 그녀의 문체를 좋아했던 것인지 아니면 그녀만의 분위기를 좋아했던 것인지 잘은 모르겠지만, 한동안 그녀의 이야기를 했던 것을 기억한다. 내가 아는 한강은 작가 한승원의 딸이라는 것. 처음에 시를 썼었다는 것. 그러다 소설로 등단을 했다는 것. 그것뿐이었다. 그녀 한강의 소설은 잘 읽게 되지 않았던 것 같다. 작가의 작품에 호불호가 선명하다는 사람들의 이야기들도 애써 귀담아듣지 않았다. 잘 알지 못하기 때문에 쉽게 언급하고 싶지 않았던 까닭이었고, 세간에 많은 이야기에 가볍게 편승해 합류하고 싶은 생각도 없었다.

한강은 그렇게 먼 사람이었고 그렇게 내겐 먼 작가였던가 보다. 더구나 이 소설 소년이 온다는 더더욱 피하고 싶은 작품이었다.

 

작품은 5.18 광주 사태를 이야기한다. 15살 중학생인 동호. 그의 친구 정대. 상무관과 도청을 지켰던 이들. 슬픔과 두려움과 고통. 그 고통을 이야기하는 남겨진 이들의 목소리가 깊은 상처와 울림으로 작품을 가득 채워간다.

그렇게 산 자와 죽은 자. 가해자와 피해자. 잔인한 살상과 처절한 죽음. 서로가 끝까지 함께 하지 못했던 것에 대한 미안함과 후회가 가득하다.

소설은 남겨진 이들 모두가 힘들게 대면해 읽게 되는 책이지 않을까. 벌써 40여 년이 지났다. 오래도록 기억의 자리마저 잃어갔던 이야기가, 한강의 소설 속에서 오롯이 생명력을 부여받았기에 어떤 면에서는 이제라도 다행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아니요. 쏘지 않았습니다.

누구도 죽이지 않았습니다.

계단을 올라온 군인들이 어둠 속에서 다가오는 것을 보면서도, 우리 조의 누구도 방아쇠를 당기지 않았습니다. 방아쇠를 당기면 사람이 죽는다는 걸 알면서 그렇게 할 수가 없었습니다. 우린 쏠 수 없는 총을 나눠 가진 아이들이었던 겁니다.”-p117

 

아주아주 오래전에 그곳에 갔었다. 학교에서 경상도와 전라도 인근을 둘러보고 오는 계획으로 여행의 일정을 잡았을 때, 아버지는 짧게 지나가는 당신만의 성토를 조금은 요란스레 내려놓으셨었다. 이십 대의 나는 그런 아버지를 이해하면서도 안쓰러워했었다.

대학에 전공교과 은사들 몇몇이 공교롭게도 모두 같은 타지방을 고향으로 둔 고향지기였다. 비전공과 교수들도 상황은 다들 조금씩 비슷했다. 그러기도 쉽지 않았을 텐데. 흔히 하는 우스갯소리로 라테는 말이야를 언급하며 서둘러 정리를 해야할 것 같은 분위기다. 물론 그들의 고향은 누구는 바닷가 근처의 어디, 누구는 도심 속 어디처럼 세세하게 들여다보면 다 달랐다.

그런데 뭐랄까. 그들에게는 한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그들이 함께 공유하는 생각들. 사유의 힘이라고 해야할지. 무언가 모를 단단한 결속 같은 게 느껴지곤 했었다. 왜였을까. 단순한 향우회에서 느껴지는 그런 친근함을 훌쩍 뛰어넘는 단단한 그 무언가의 근원은 무엇이었을까.

 

하동을 거쳐 귀경하는 마지막 날 우리의 여정은 망월동 묘지를 향했다. 그날 그들 중 한 교수가 버스의 일행을 남겨두고 도심 어딘가에서 홀로 내렸다. 어머니를 뵈러 집에 다녀오겠다는 짧은 인사를 뒤로하고 그는 서둘러 버스에서 내렸다. 이 낯선 곳 어딘가에 그의 집이 있었구나. 그를 기다리는 노모가 있었던 거였구나. 성큼 걸음으로 걸어가는 그의 모습은 익숙함으로 무척이나 자연스워보였다. . 아니 그들에게는 익숙한 거리. 익숙한 냄새. 익숙한 공기였겠다 싶었다. 그들에게는 그곳 망월동도 그렇게 익숙한 곳이지 않았을까.

 

비석마다 사연이 새겨져 있는, 흑백사진이 동그랗게 박혀있던, 누군가가 곱게 내려놓고 갔을 하얀 국화꽃들, 그리고 끊임없이 들려오던 잔잔한 음악소리.

아주 많은 시간이 흘렀다. 그럼에도 지금까지 기억 속에 각인되어 있다는 생각이 든다. 여전히 뭉클하고, 여전히 따숩고, 여전히 아리다. 분노로 치밀어오르는 화보다는 애잔함과 슬픔이 더 크게 다가왔던 그때의 기억은, 묘하게도 한강의 작품을 접하면서 느낀 감정과 함께 계속 오버랩 되곤 했다. 이라는 글자가 박힌 학생모를 쓴 앳된 학생. 유난히 진지하고도 맑게 빛나는 눈동자를 지녔던 단발머리의 어느 여학생. 생각해보면 이들 모두는 작가의 소설에 나오는 이들이 아니었을까.

 

영혼과 영혼이 교감하고 의지하며 생각하는 순간의 작가적 상상력과 표현력을 조금은 더 느리게 그리고 세심히 들여다보던 순간도 있었다. 육체가 썩어들어가고, 불기운에 휘감기고, 재가 되어가는 순간을 바라보는 연약한 한 영혼의 존재를 마치 곁에서 바라보는 듯한 기분이 드는 순간도 있었다. 그렇게 마음이 한없이 무거워지는 순간들이 있었다.

 

우리가 진정 바라봐야 할 방향은 어디로 향해 있는 것일까.

 

여름의 시작을 알리는 6월이다. 열어놓은 창문 너머로 새가 운다. 참새도 일반적인 까치도 까마귀도 아닌, 저 새의 이름은 물까치라고 했다. 꽁지와 배부분이 하늘색을 띄고 있어 더 순해 보인다. 알 수 없는 무게감으로 힘겨웠던 책을 나는 이제서야 내려놓는다. 언젠가 어느날 즈음에 잊지 않으려 결국 다시 읽게 될 것을 예감하면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바라나시의 새벽 예서의시 25
김미형 지음 / 예서 / 2023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바라나시의 새벽

 


시집이다. 간만에 시집을 읽는가 싶다. 학교 다닐 때는 시집을 꽤 좋아했는데 나이가 들수록 시집을 읽기가 더 어려워지는 것 같다. 뭐랄까. 시집을 읽어내기 위해선 준비가 필요한 까닭이다. 마음의 준비 같은 것이라고 할까.

 


누군가 내게 시집을 왜 보는가, 라고 질문을 했었나. 그때 내가 어떤 대답을 했었는지 기억이 없다. 다른 산문 문학에 비해 상징과 압축의 묘미를 이야기했을지도 모르겠다. 시 읽기는 보물찾기 같은 의미이다. 사람마다 다양하게 받아들이는 수많은 상징적 의미, 함축되어 드러나는 시인의 고백들. 그 안에서 아프게 박제된 듯한 아픔과 고통. 극복의 의지. 혹은 직간접으로 보여주는 희망까지도 함께 공유하는 일은 힘들면서도 행복한 일이다.

 


딴은 시든, 소설이든, 희곡이든 독자는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작품을 바라보고 해석하려는 경향이 크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그 안에서 나 조차도 자유롭지 못하다.


 

김미형의 시집 바라나시의 새벽은 불교적 사상이 짙게 배어나는 시집이다. 화자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의 근원적인 화두는 결국 회환을 끌어안은 성찰. 마지막에 가 닿고자 하는 곳은 성불의 한 지점이 아니었을까 싶다.

작품에서 종종 시인의 시린 가슴을 보는 듯했다. 찰랑거리듯 조심스럽게 담겨진 아쉬움과 씁쓸함 그리고 모두가 공감하게 되는 지난한 삶의 무게감도 다가온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 김미형의 시는 삶의 이름으로 지워진 것들로부터 가볍게 해주는 힘을 지녔다. 그런까닭에 따스하다. 시를 읽으면서 시인의 차분하면서도 따스한 위로를 숨은 그림 찾듯 찾아 위로 받을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이제 개인적으로 울림으로 다가왔던 많은 작품 중에서 몇 편을 소개해보자.

시인에게 낭독해보고 싶은 시가 무엇인가, 라는 질문을 해서 한번 더 각인된 작품인가 싶다.

무탈이라는 제목의 시 전문이다.

 


무탈無頉

 


바람 불지 않은 한 해 없었다

마음먹은 대로 다 이루어진 한 해도 없었다

무슴슴한 한 해도 없었다

입안에 혀 같은 인연은 더더욱 없었다

내 마음도 나에게 그랬다


 

숨이 차면 느리게 걷고

이 말이 되어 달리면

을 쉬게 하고

슬픔이나

아픔이나

외로움이 손을 내밀면

낯설지 않은 숨처럼 보듬고

더 슬프고 아프지 않아

고맙다고 다독인다


 

거친 바람 앞에서는 몸을 낮추고

흔들리면서도

길을 잃지 않고 걷는다


 

느리게

-p13. 무탈, 전문 인용-

 

 


사는 데는 정답이 없다는 말을 종종 듣는다. 이래도 한세상, 저래도 한세상이라는 소리도 들어왔다. 나이가 들면서 치열함은 조금씩 옅어지고, 세상과 친해지기 위해 나는 점점 두리뭉실해지기로 했었다. 그래도 아픈 건 아프고 힘든 건 여전히 힘들다. 투정이고 고백이다. 이제 이만큼 견디어낸 나는, 아니 지금의 내가 시인처럼 손을 내밀 용기가 있는가. 생각에 잠긴다.

기분이 조금 더 가라앉기 전에 짧은 시 두 편을 소개하고 후다닥 도망가야겠다.

 


염주.

 


모난 생각을 둥글게 빚는다

그 둥근 생각조차 닳아서 없어지도록

마음맷돌을 돌린다

-p54. 염주, 전문 인용-

 


 

쇠백로.


 

오래도록 꿈쩍 않고 서 있다

울통불퉁한 개울 가운데서

모래 위에 서 있는 듯 부드럽다

한 끼를 위해

깃털 하나 흩트리지 않고

간절하다

마음을 함부로 쏟아버리지 않아서다

 


삶이 정성스럽게 흐르고 있다

-p58. 쇠백로, 전문 인용-


 

추신의 자리다. 모두의 삶도 정성스럽게 흐르고 있는 이 순간이다. 힘내고 또 힘내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약속
데이먼 갤것 지음, 이소영 옮김 / 문학사상 / 2023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약속

 


데이먼 갤것의 소설이다. 작품을 어떤 시선으로 봐야 할지. 어떤 관점으로 감상을 써야 할지 잠시 생각에 잠겨야 할 듯하다. 한 개인의 성장을 담아낸 가족 소설로 보기에는 시대를 둘러싼 시대적 정치적 요인을 무시할 수도 없어 보이는 게 사실이다. 그렇다고 작품 전체를 그저 사회적 정치적 시선으로만 끌어안기에는 뭔가 아귀가 잘 맞지 않는 듯한 기분이다.

 


먼저 형식의 관점에서 생각해볼까 싶다. 적어도 이 작품에 대해서 우리는 소설의 형식에 관대한 입장을 표명해야 할 듯하다. 소설의 서사는 흐름을 이어가는 듯하면서도 중간중간 엉뚱한 방향과 시선으로 독자를 끌어들인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공을 연상케 한다고 해야 할까. 산만한 듯하면서도 묘하게 끌어당기는 힘이 있다는 인상을 받는다.

소설이면서 희곡의 분위기를 자아내는 듯하고, 상징적 비유와 마치 부조리극을 보고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들이는 순간들이 꽤 있었던 것 같다고 생각했었는데, 작가는 작품 안에서 사뮈엘 베케트의 실제 부조리극 고도를 기다리며를 언급하기도 한다. 에스트라공과 블라디미르 말이다. 어쩌면 작가의 의도된 시선에 깔린 정서는 차가운 비판의식 내지는 씁쓸한 인간애일지도 모른다.

 


소설이 진행되면서 등장인물이 점점 늘어가는데, 인물마다 작가적 시점을 서로 달리하고 있다는 점에서 눈여겨볼 만하다고 생각했었다. 뭐랄까. 이를 두고 전지적 작가 시점이라고 해야할지.. 아니면 그 이상의 새로운 시점이라고 해야할지. 잠시 혼란스럽기까지 했던 것도 사실이다. 이런 고충을 솔직히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과정은 어쩌면 필수적인 과정일지도 모른다. 사견이겠으나 이러한 과정을 통해 소설은 독자에게 보다 더 가까이 친근하게 그리고 매우 솔직하게 다가서려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는가 싶다.

 


소설은 전체 4부로 구성되어 있다. 표면적으로 가족 구성원의 죽음과 살아남은 단 한 사람 아모르의 관계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러나 사회 혹은 정치적 관점으로 분석했을 때, 남아프리카 공화국이 처했던 당대 시대 정치적 부조리와 한 가족사와의 이야기라고 정리할 수 있다.

어머니의 죽음과 약속. 소설의 전체적인 뼈대가 되는 스토리는 약속이었다. 흑인이었으며 노예처럼 백인 밑에서 굴욕당하며 평생을 살아가야 했던 살로메와 그의 아들 루카스는 작가가 의도한 대로 당대 인종차별의 상징적 요소로 작품에서도 부각되는 인물들이다. 가난하고 천대받던 이들 흑인 가족에게 그들만의 집을 남겨주려 했던 어느 백인 여인의 의지. 그 의지를 받아 지켜내려 애쓰는 여인과, 이를 간과하고 무심히 자신의 것만을 지켜내려는 다른 가족간의 공방은 마치 세력과 세력의 다툼처럼 비추어지곤 한다.


 

다행스러운 것은 어딘지 불안정한 면모가 남아있을지언정, 삐거덕거리면서도 약속이 이행되어가는 것을 독자가 확인하게 된다는 점이라고 할까. 아니면 마지막까지 해결되지 못할 원죄 의식 같은 상처만은 다시 확인하게 됨으로써, 여전히 암울함의 진행형이라고 정리해야 하는 걸까. 자못 고민이다. 어떤 의미에서는 이 작품이 열린 결말이지 않겠는가, 라는 사견을 가져와 보고 싶다.

 


한가지 사견을 적는다. 이를테면 작품이 정치적 사회적 해석에만 국한되어 작품 깊숙한 곳에 자리한 작가의 또다른 시선을 놓칠까 염려가 되기도 한다는 점이다. 어떤 시선으로 작품을 바라보는가는 오로지 독자의 몫이겠지만 그래도 뭐랄까 가능하면 폭넓게 읽어가면 좋지 않을까.


 

-어떤 사람들은 이 잔을 제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하며 짐을 거절하고 싶어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만약 그 잔이 당신의 것이라면, 당신은 그것을 마셔야 한다. 그 찌꺼기가 아무리 쓰더라도 신과 절대로 논쟁하지 말아야 한다. p116

 


-진정한 문제는, 아모르는 생각한다. 진짜 문제는 내가 제대로 사는 법을 한 번도 배워 본 적이 없다는 사실이다. 상황은 언제나 너무 하찮거나 아니면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너무 버거웠다. 이 세상이 내 위에서 무겁게 짓누른다. 하지만 나는 점점 더 잘 해낼 것이다! 그녀는 자신에게 상기시킨다. p36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90일 밤의 우주 - 잠들기 전 짤막하게 읽어보는 천문우주 이야기 Collect 22
김명진 외 지음 / 동양북스(동양문고) / 2023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90일 밤의 우주

UNIVERSE SPACE COSMOS 


드디어 비가 그쳤다. 이틀 동안 주룩주룩 내렸던 비가 삼일 째 되는 날 오후에는 해를 데려다주었지만 사실 사일 째 되는 오늘까지도 하늘은 여전히 흐리다.

문득 생각나는 건 어제 오후에 반짝 하늘이 개었다는 것과 함께 낮달을 보았다는 사실이다. 수많은 사람들 중 어떤 이들은 낮달을 보며 즐거워하는 이들도 가끔 존재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든다. 윤석중 선생님의 낮에 나온 반달이라는 동요 가사를 기억하는 세대만큼은 적어도 낮달에 대한 아득한 동경을 품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뭐 딱히 반달 동요를 기억하지 않더라도 연신 내리는 비구름이 지나간 자리에 뜬 반달의 자태는, 나름 아름답지 아니한가 말이다. 그렇다는 말이다. 달 이야기였다.

 


그런가하면 아이와 말 놀음을 주고받을 때 쓰는 표현 얼마만큼 사랑하지? 라는 물음에 대한 답을 다시 생각한다. 우주만큼 땅만큼. 그 말을 듣고서 에잇! 입을 삐죽거리는 아이에게 눈을 흘기며 나는 말한다. 너는 우주를 아직 모르는구나. 우주면 끝난거야. 더 비할 것이 존재하지 않으니까. 우주는 그런 존재다. 더 비할 데 없는 무한의 어떤 무엇.

무한의 어떤 무엇이라고 해두자. 그게 그저 별과 달, 우주를 바라만 보기 좋아하는 평범한 나 같은 이에게 있어서 그나마 설명하기가 쉽다.

 


책을 읽는 동안 아들이 자꾸 관심을 보였다. 재미있겠단다. 무엇이 녀석의 뇌세포 가득 호기심을 불러들였을까. 녀석이 천체학에 관심이 많은 것도 아닌데 말이다. 생각해보니 녀석도 나 같이 그저 그런 부류의 사람인 게 분명하다. 깊이 들어가기에는 부담스러워 언제나 그 언저리에서 별과 달을 생각하고, 우주를 상상하는 그런 부류의 사람들 말이다.

책은 여덟 명의 공저로 탄생했다. 각자가 전공한 분야는 비슷한 듯 닮았지만 세부적으로 들어가보면 또 조금씩은 다른 차이를 지녔다. 그런데도 이들의 이야기들은 서로 참 잘 어울린다. 마치 UNIVERSE, SPACE, COSMOS 라 했던 책의 제목처럼 말이다.

 


책의 부제를 살짝 들여다보자. ‘잠들기 전 짤막하게 읽어보는 천문우주 이야기라고 소개하고 있다. 잠자기 전에 볼 수 있는 우주에 관한 책이라니. 설정도 내용도 편집자의 의도조차도 딱 들어맞는 조합이다.

책은 소소한 에세이 형식으로 친근하게 다가서는가 하면 또 한편으로는 전문적인 지식을 소개하기까지 다양한 스케일을 보여주고 있다. 각각 알파벳 이니셜로 누구의 이야기라는 것을 알 수 있게 표기하기도 해서 나름 개성이 돋보이는 글들이 아니었나 싶기도 하다. 이렇듯 88색의 전문가들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보다 친근함으로 조금 더 가까이 우주와 대면하게 되는 순간을 맞이하게 된다.

 


그런가하면 이번 책은 개개인의 기억과 추억을 소급함에도 기꺼이 자리를 내어주던 것 같다. 어릴 때 가을과 겨울 언저리께 별자리를 찾아 목이 뒤로 꺾인 채 하염없이 올려다보던 기억들. 아무리 찾아봐도 내가 태어난 그 별자리를 찾을 수가 없어서 실망하던 순간들. 국자 모양의 북두칠성일랑은 서른이 지나고 마흔이 훌쩍 지난 과거 어느 해 확연하게 알아보았기에 아이들 보기 더 부끄러웠던 순간들. 그런가하면 소행성과 혜성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밝은 대낮에 맨눈으로 볼 수 있다던 어느 혜성을 찾아 운전하던 오래전 기억이 떠오르곤 했었다.

누구나 자신의 추억을 찾아볼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미래에 만나게 될 우주의 진짜 날 것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을 것도 같다. 행성과 별자리. 개기일식 그리고 역서와 양력. 우주 날씨? 우주 왕복선과 저 유명한 일론 머스크의 스페이스 X에 대한 이야기들. 인공위성과 외계 생명체까지. 책은 일일이 다 열거하기도 어려울 정도로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

 


책을 읽으면서 중간중간 아들에게 이야기를 해주곤 했다. 그거 알아? 우주 정거장이 2030년 임무를 마치고 지구로 돌아올 예정이래. 그리고 포인트 니모에 영원히 수장될 거란다.(인용 P229)

구소련과 미국의 공동 작업의 토대로 이루어진 우주 정거장이 곧 지구로 귀환한다는 이야기는 많은 부분 아쉬움이 남는 부분이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그들은 분명 다 계획이 있지 않겠는가. 그들만의 새로운 우주 시대를 준비할 또 다른 계획 말이다.

 


영화에 자주 등장하는 지구와 행성의 충돌이야기의 첫 출발지였을 아포피스 소행성 이야기도 저자 M의 이야기 속에 담겨있다. 2029413일 충돌 이야기는 걱정을 내려놓아도 될 듯싶다. 스포이기는 하지만 꽤 중요한 내용일 수 있기에 살짝 언급하고 가자. NASA에서 지난 2021년 아포피스 소행성의 지구 충돌 확률은 사라졌다고 선언했다는 내용이 호기심 많은 내 시선에 포착되기도 했다.(P250)

개인적으로는 고천문학을 다루고 있는 부분이 눈에 띄었다고 해야 할 것 같다. 이는 고천문학자 K의 수고 덕분이다. 덕분에 천문학을 우리의 시선과 눈높이로 다시 들여다볼 수 있는 계기가 되지 않겠는가. (~~하지 않겠는가. 라는 표현을 자꾸 쓰게 되는지라 유감이다) 각설하고 책의 깨알 정보 팁 큐알코드 역시 많은 정보를 담고 있기에 찾아보는 재미를 안겨주고 있음도 가벼이 지나치지 않고 꼭 언급할 일이다.

 


우주는 영원히 팽창하고 새로이 탄생하며 동시에 소멸해간다. 이 역시 대자연 대 우주의 이치이다. 그에 반해 인간은 너무나 나약하고 또 연약하지만 그래도 뭐랄까. 지금까지 잘 해왔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문득 하고 싶은 말은 이런 것들이다. 그냥 이렇게 다시 겸손함을 배워가는 순간이었다, 라는 그 말 한마디?

 

 

PS.

지난 525. 한국형 발사체 누리호 발사. 에 대한 짧은 기록도 이곳에 함께 하면 좋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따르는 사람들 스토리콜렉터 107
마이크 오머 지음, 김지선 옮김 / 북로드 / 2023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따르는 사람들

 


마이크 오머의 장편소설이다. 작가에 대해 아는 바가 거의 없지만 한가지 확신이 들었던 것은 이 책이 드라마로 각색되어 나온다면 괜찮지 않을까,라는 생각은 했던 것 같다. 욕심 같아서는 등장인물들의 심리를 다루는 부분에서 조금 더 분석적으로 깊이감 있게 다뤄준다면, 범죄 스릴러 분야를 기다리는 사람들의 기대치를 더 크게 만족시켜 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던 것은 덤이었을지 모르겠다.

 


주인공은 인질 협상가인 애비 멀린이다. 그녀는 어린시절 과거의 아픈 기억을 극복하고 성장해 경찰이 되었고 자신만의 따뜻한 가족을 이뤘다. 그리고 수많은 사건 현장에서 범인과 대처하며 인질 협상가로서의 능력을 여가 없이 발휘하는 인물로 그려진다.

소설은 한 소년의 납치 사건에 초점을 맞춰 시작되지만 사실 이번 작품은 두 가지 이야기가 얽혀 있다고 볼 수 있다. 주인공인 애비 멀린의 과거 이야기와 현재 어린 소년의 납치 사건이 그것이다. 시간의 공백을 뛰어넘은 이번 두 가지 내용의 공통점은 무엇이었을까.

 


범죄 스릴러물에서의 스포일러는 매우 조심스럽다. 자칫 미래의 독자들에게 맥이 풀려버리는 결과를 안겨줄 수도 있으니 더 조심스럽다는 말이다. 그러니 짧게만 언급하고 얼른 후다닥 지나가야 한다. 작품의 뼈대를 지탱하고 있는 플롯의 소재가 되는 것은 바로 사이비 종교였다. 과거 어린 시절의 애비가 등장할 때도 그랬고, 현재로 돌아와 비뚤어진 집착과 도착에 따른 이의 범죄의 근간에 깔린 사유 역시 사이비 종교에서부터 출발했다고 봐야 한다.

여담이긴 하지만 최근에 발간되는 작품들의 특징으로, 핸드폰 혹은 컴퓨터 시스템 호환 등등 소셜 네트워크 시스템이 자주 등장하는 것을 보면, 문학은 언제나 시대와 장르를 뛰어넘어 당대의 거울 기능을 이렇게까지 넘치도록 하고 있다는 생각을 했던 것도 같다. . 사족이다. 다시 책과 관련한 이야기로 돌아가자.


 

개인적으로는 작가가 소설을 구성할 때 두 가지 스토리를 적절하게 잘 배치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물론 지극한 사견이다.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진행되는 이야기는 어색함 없이 잘 어우러지며 앞으로 나아간다. 그 과정에서 사건들의 배열이 긴장감 있게 펼쳐진다. 납치과 살인. 사이비 종교에 여전히 몰입하는 교주와 따르는 이들. 그리고 이들 집단으로부터 벗어난 또다른 무리. 성폭행. 정신적 신체적 세뇌와 감금.

딴은 이 모든 문제들이 어딘가에서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으로 이어지고 있음을 생각했던 것도 사실이다.


 

소설의 구성은 전반적으로 탄탄하다. 무엇보다 속도감 있는 빠른 전개가 읽는 이들에게 재미를 더해주는 작품이지 않을까 싶다.

이쯤에서 다음 예상할 수 있는 글쓰기는 대략 이런 게 아닐까. 소설을 통해 연상해보는 현재의 사이비 종교에 대한 다양한 사견들 말이다. 작품에서 만나게 되는 사이비 종교는 소설로서 충분히 흥미롭지만, 현실에서의 사이비 종교는 매우 씁쓸한 현상이다. 그들 누구도 스스로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아이러니하면서도 꽤 복잡한 일이다.

 


마지막 사견이다. 범인과 주인공 애비의 대화 부분에서 작가가 과하게 애를 쓰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던 것은, 내가 바라는 속도감이 잠시 멈칫하기 때문인가. 아니면 다른 이유에서일까. 물론 이 글의 시작부분에서 언급했듯이 개인적으로도 인물의 심리묘사와 분석을 더 많이 할애하는 것에 찬성하는 입장이다. 그러나 뭐랄까. 우리식대로 표현하자면, 주인공 애비를 더 빛내주기 위해 작가가 범인을 너무 들볶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고 해야할까.^^; 한쪽으로 가볍게 웃고 갈 일이고, 또 한쪽으로는 쉽게 무시하고 갈 이야기이다. 그냥 그렇다는 말이다. 사심 없이 또 그렇게 부담감 없이 편히 읽어도 되는 책이라 반가웠던 책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