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오후의 글쓰기 - 자발적 글쓰기를 시작하는 어른을 위한 따뜻한 문장들
이은경 지음 / 큐리어스(Qrious) / 2021년 2월
평점 :
"일기 쓰기가 숙제이던 시절,
우리는 모두 쓰는 사람이었다.
다시, 쓰는 사람이 되기에 늦지 않았다."
책 뒤표지에 실린 글입니다.
작가는 서른일곱이 되던 해부터 글을 썼다고 합니다.
글을 쓰기 시작한 지 5년 만에 12권의 책을 썼다니 정말 그 부지런함에 놀랐습니다.
내 나이는 이제 해가 바뀌어서 서른여덟인데
실제로 글을 써보고 싶다고 생각하며 시도한 것은 서른일곱 부터이니
조금은 동질감이 들었달까요.
무언가를 해보기에 늦었다는 생각이 더 쉽게 고개를 들겠지만,
작가는 말합니다.
지금 당신이 몇 살이든지 글쓰기와는 무관하며,
"하나도 안 늦었습니다."
라고 대답할 거라고 말이에요.
과연, 글을 써보려고 주춤주춤 망설이는 사람에게
다독이며 글을 쓸 수 있도록 격려하고,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글 쓰는 걸 뒤로 미루려고 할 때에는
마치 몰래 숙제 안 한 것을 감추려다 들킨 사람처럼
얼굴이 홧홧하고, 더는 글쓰기 미루는 핑계를 대기가 어렵겠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작가의 글을 조근조근 읽다 보니
"글쓰기"라는 작업이 얼마나 특이한 점을 가지고 있는지,
그러면서도 사실 실생활에 많이 녹아져있다는 것도 깨달았습니다.
저는 작년부터 책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했는데요,
엄마에게 책을 만들어 선물하고 싶었고,
저처럼 암 환자의 보호자 역할을 맡고 있는 사람에게
위로나 격려가 될 수 있는 그런 책을 써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호기롭게 책 만들기 수업을 신청했지만,
사실 써놓은 글이 없는 마당에
책 만들기 수업 하나만 듣는다고 갑자기 글이 줄줄 써질 리가 없었지요.
결국 수업을 다 듣는 동안 책을 만들어낸 분만 부러워하고,
내 책을 내지 못한 씁쓸함을 뒤로한 채 수업이 끝나고 말았어요.
그때 글이 안 써진다고, 못쓰겠다고 한 이유가 바로
"감정이 올라오지 않는다. 도저히 글 쓸 기분이나 에너지가 없다."
라는 이유였습니다.
지금 "오후의 글쓰기"라는 책을 읽고난 뒤, 다시 생각해 보니
이게 얼마나 핑계였는지 알게 되었어요.
위의 "감정이 올라오지 않는다."라는 말은 결국
"영감이 떠오르지 않는다" 와 얼추 비슷한 구석이 있는데요,
엄마에게 감사한 부분을 모아 글을 쓰려고 했는데,
몸이 너무 피곤한 거예요. 직장 마치고, 엄마를 돌보고 집에 돌아오면 밤 12시.
터덜터덜 녹초가 되어버린 몸을 이끌고 집에 와서
'글을 도저히 못쓰겠다 그럴 마음이 올라오지 않는다'라는 핑계를 대며
결국 노.트.북 도 펼치지 않았답니다.
네, 지금 생각해 보니 반은 핑계고, 반은 정말 에너지가 없었던 것이 사실이지만,
가장 중요한 건 평소 글쓰기라는 행동을 특별한 행동 취급하며
부담을 가지고 있었고, 매일 하지않아서였구나..
그래서 내가 결국 책을 만들지 못했구나 하고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이 책 제목이 <오후의 글쓰기>잖아요,
왜 하필 오전도 밤도 아닌 오후의 글쓰기일까요?
작가분은 "오후"라는 시간이 주는 편안한 느낌 때문에 이걸 사용하셨다고 해요.
이미 부담 백배인 글쓰기라는 주제에 살짝 힘을 빼보고 싶었다는 것이죠.
이 제목 하나만으로도 왠지 책의 전반적인 느낌이 오시죠?
이제 글을 막 써보려고 하는 사람들이 글쓰기에 대한 부담을 내려놓을 수 있도록
작가분이 충분히 배려하고 있구나라는 것을 알 수 있는 부분입니다.
아래 소제목들만 보고도, 저는 이미 빠져들고 있었습니다.
"출근하듯, 밥 짓듯"
"영감이 오든, 오지 않든,
"커피 마시며 수다 떨듯"
최대한 글쓰기에 대한 부담을 살포시 내려놓게 만들어 다독다독 격려해 주면서도
때로는 부끄럽고, 쓰기 싫은 날, 왠지 미루고 싶은 날에도
책상 앞에 데려가 앉혀서 그래도 쓰게 만드는(?)
부드럽지만 은근히 매일 옆에서 조근조근 이야기해 주는 듯한
그런 느낌의 책입니다 :)
역시, 읽으면서 다시 한번 느꼈습니다.
'아, 꾸준함을 이길 수 있는 건 없구나'
그리고 한 가지 더,
'난 너무 완벽하게 잘 쓸 수 있는 타이밍만을 기다리고 있었구나.'
그런 순간은 오지 않거나, 주로 쓰면서 온다는데,
저는 어쩌면 감나무 아래에서 감 떨어지기만을 기다린 사람이었던 거죠.
그리고 글쓰기라는 것에 대한 부담을 내려놓는 법도 알게 되었어요
"하나의 작품을 완성하는 데 중요한 것은
'정말 엉망진창인 초안'을 써보도록
자신에게 허락하는 것이에요.
-앤 라모트, <쓰기의 감각> 웅진 지식하우스-
글을 써보기는 했어도,
정말 많이 써보지는 못했으니,
처음 쓰는 글이 엉망진창인 것은 당연할 것인데,
어찌 나는 처음부터 잘 쓰기를 기대했던 걸까요.
엉망진창인 초안을 볼 용기가 없어서, 계속 미루고만 있었던 것은 아닐까요.
그리고 글쓰기라는 것이 어디 멀리에서 빛나고 있는- 닿기 힘든 목표가 아닌,
내 일상 속에 생각보다 깊이 들어와 있었다는 걸 느꼈습니다.
작가분은 글쓰기를 통해서 오랜 우울증과 결별했다고 나와있는데,
나 역시 정말 감정이 극에 달하면,
결국 찾는 것이 <글쓰기>라는 것이 생각났어요.
저는 정말 정말 있는 힘껏 화가 났을 때
워드든, 메모장이든 창을 열어서
미친 듯이 온갖 하고 싶은 말과 욕(?)을 실컷 쓰면서 토로하고
저장하지 않고 글을 바로 지워버립니다.
세상 혼자 남겨진 것처럼 우울할 때도
메모장을 열어서 그곳에 감정을 풀어놓습니다.
그 글은 적어두고 절대 바로 읽지 않고
그저 내 마음을 토해내듯이 적기만 합니다.
그렇게만 해도 왠지 조금 정말 해소가 되거든요.
나중에, 시간이 지나서 읽어보면 이미 대부분 해결되어 있고,
우와 내가 이때 이랬었구나~ 한답니다.
(사실 민망해서 거의 읽지도 않아요)
이런 부분까지도 사실은 글쓰기였는데,
그동안 제가 글쓰기를 너무 대단(?) 하고, 어렵게만 느꼈던 것 같습니다.
결국 이 책은, 한 문장을 쓰기 시작하는 데까지 너무 오래 걸리는 사람,
글은 써보고 싶은데 시간도 없고, 자신도 없고, 무엇부터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생각하는
초보자분들에게 좋은 지침서가 될 듯합니다.
문장력, 글쓰기의 기술 - 이런 부분이 아니라,
정말 꾸준히 글쓰기라는 활동을 할 수 있도록 따뜻한 격려와 응원이 담겨있어요.
무엇을 써야 할지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
챕터마다 써볼 수 있도록 등 떠밀어주는
과제들도 준비되어 있습니다.
하나씩 따라 하다 보면
어느새 글을 쓰고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저도, 서평에서 단순히 끝나는 것이 아닌,
이 책을 통해 이제부터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풀어나가 보고 싶습니다.
"글 쓰는 사람이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일상이 힘에 부치게 느껴진다면, 그럴수록 더욱 글을 쓰면 좋겠습니다.
터널이 너무 어둡고 길어서 아무리 열심히 노력해도 끝이 안 보인다면 글을 써보면 좋겠습니다."
-P.260
저는 지금 끝이 안 보이는 동굴 속에 갇혀 더듬거리며 나아가는 느낌입니다.
동굴로 막혀버리는 것이 아닌,
터널로 만들기 위해서 글을 써봐야겠습니다.
※ 네이버카페 문화충전의 서평으로 책을 제공받아 솔직하게 느낀대로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