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내 마음의 보물 상자 (반양장) - 작은동산 1 ㅣ 작은 동산 7
메리 바 지음, 데이비드 커닝엄 그림, 신상호 옮김 / 동산사 / 2004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옛날식으로 무친 가지나물의 달큰한 향이 어느 날 문득 나를 여섯 살 여름날 아침으로 되돌려놓아 준 적이 있다. 햇살이 쏟아지는 툇마루에 않아 아침 밥상을 사이에 두고 외할머니와 마주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우던 진저리 쳐질 만큼 돌아가고 싶은 시간 속으로... 어떤 대상과 우연히 부딪히게 되면서 만나는 과거의 흔적이 우리를 옛날로 되돌아가게 해주기 전까지 우리는 흘러간 과거를 모두 기억할 수는 없다. 의식적으로 기억해내려 해도 어렴풋한 영상만 떠오를 뿐 한계가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도 이야기 속 소년처럼 어린 시절 소중한 사람들과의 특별한 경험을 담은 추억상자가 하나쯤은 있었으면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도자기에 도공의 손자국이 남아 있는 것처럼 나의 경험의 흔적들이 새겨져 있는 기록이나 물건들을 가지고 있다면 할머니가 되어서도 생생하게 추억들을 떠올리면서 행복할 수 있으리라.
이 책은 알츠하이머를 앓는 환자와 가족들이 환자의 병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현명하게 대처하는가를 섬세하게 그린 이야기이다. 무엇보다 점점 기억을 잃어가는 외할아버지를 위해 외할머니와 내가 추억상자를 만들어서 할아버지와 함께 나눈 시간들을 정리하고 간직하는 모습들이 가슴 뭉클하게 다가온다. 이 추억상자는 기억을 잃은 할아버지에게는 기억을 되살려주는 역할을 할 것이고, 나머지 가족들에게는 환자와의 아프고 힘든 기억보다는 행복했던 시간들을 돌이켜 주는 소중한 장치가 될 것이다.
책의 말미에서 ‘나’는 “이번에는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가 나를 돌보아 주셨지만, 다음 여름방학 때는 외할머니와 내가 외할아버지를 돌봐 드릴 거다”라고 한다. 치매 환자인 할아버지를 피하고 멀리할 수도 있을 텐데,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그 상황에 맞는 자신의 역할까지 찾을 줄 아는 소년의 마음이 참 대견스럽다.
우리 집은 전형적인 핵가족이다. 그래서 할아버지 할머니와 아이들이 맺는 관계가 제한적이고 아이들도 할머니 할아버지를 그저 용돈 주시는 분이나 자신들과 놀아주시는 분 정도로 생각하는 것 같다. 이 책을 읽고 나서 아이들과 할아버지 할머니가 어떤 분들이고 어떻게 관계를 맺어야 하는지에 대해서 지속적으로 이야기를 나누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생명이 태어나서 자라고 늙고 병들어 가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이치이고 나 또한 할머니가 될 것이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