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을 때면 나는 항상 책 표지 바로 뒤에 있는 저자 소개부터 살펴본다. 저자의 연령대는 어느정도인지, 어디에 몸담고
계신지, 저서로는 무엇이 있는지 등의 저자 소개를 읽다보면 한 번도 본 적 없고, 이름만으로는 남성인지 여성인지조차 가늠 안될때도 있는 저자와
조금 가까워진 느낌이 든다. 물론 생면부지의 그 저자분과 내가 가까워질리는 만무하나 그래도 마치 나를 위해 이 책을 써준 듯한 혼자만의 즐거운
상상을 하며 책을 읽기 시작하면 한 권의 책을 읽는 내내 나는 귀빈이 된 기분이다. 나만을 위해 써 준 이 책의 유일한 독자가 된 지극히
개인적인 상상속에서 말이다.
이 책의 저자는 강원대학교 생물학과의 권오길 명예교수님이다. 중.고교 교사를 거쳐 현재 대학교수의 자리에 오르신 그 분의
약력을 보며 어떻게 그 어렵다는 교수님이 되셨는지에 놀랐다. 그리고 저서 또한 한 두 권이 아닌 사실에 또 한 번 놀랐다. [권오길의 괴짜
생물이야기], [권오길이 찾은 발칙한 생물들], [꿈꾸는 달팽이], [인체 기행], [생물의 죽살이], [생물의 다살이], [바다를 건너는
달팽이], [원색한국패류도감], [하늘을 나는 달팽이], [자연계는 생명의 어울림으로 가득하다], [생물의 애옥살이], [생명 교향곡] 등
수많은 저서를 펴냈다는 사실에 책을 읽기도 전에 저자의 내공에 감탄부터 해본다. 그리고 책 제목만 들어도 호기심이 솔솔 발동하는 터라 이 책을
읽고 나면 얼른 읽어보고 싶은 책들이 벌써부터 한 두 권이 아니니 권오길 교수님의 별명이 왜 '과학계의 김유정'인지 알 것 같다.
저자소개를 읽고나면 목차에 들어서기 전에 있는 '들어가는 글'을 꼭 읽는데, 책의 내용을 함축적으로 정리해 둔 부분이라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책을 읽기 전 전체적인 책의 내용을 간파하기에 상당히 도움이 되는 내용이다. 여느 때의 독서를 할 때처럼 '들어가는 글'을
읽는데, 가슴을 찡하게 울리는 글귀를 발견했다.
" 일종의 사명감이 나를 이렇게 강하고 독하게 만든다. 한살이가 얼마
남지 않았으니 평생 모은 생물학 지식을 서둘러 조금이라도 더 쏟아 놓고 가야 한다는 의무감이 발동하는 것이다. 어떤 이는 나를 '생물 수필가',
또 어떤 사람은 '제1세대 과학 전도사'라 불러 주니 과분할 따름이다. 그 말에 걸맞게 죽을 때까지 줄기차게 쓰고 또 쓸 것이다. 사람은 죽어도
글은 남는다!"
- 본문 10쪽 인용
- |
'한살이가 얼마 남지 않았으니'라는 생물학자다운 표현이 주는 여운이 컸다. 두 눈 모두 백내장 수술을 한데다 한 쪽 눈은
녹내장으로 슬슬 시력을 잃어가고 있을 뿐 아니라, 치아도 열 두 개나 심을 정도로 몸이 못 배길 정도의 80이 넘으신 교수님이 하신 말씀이라
그런지 학자로서의 사명감이 뼛속깊이 새겨져있으신 분임이 느껴졌다. 그리고 이 책 한 권이 어떻게 완성된 것인지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기에 한
장, 한 장을 읽어나가면서 글자 한 자 그냥 허투루 읽혀지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이제껏 펴낸 책들에서는 시도하지 않은 원색 사진을 첨부한 첫번
째 책이라는 사실에 맘속으로 감사드리며 하나 하나 읽어나갔다.
이 책은 모두 4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 - 물속에서 살아가는 별별 친구들
(개불, 다랑어, 성게, 날치, 전복, 비단잉어, 연어,
돌고래, 쏘가리, 나팔고둥, 피라미, 미더덕, 가물치, 다시마, 꼬시래기)
2부 - 시끌벅적 활기차게
살아가는 이웃들
(직박구리, 휘파람새, 비둘기, 후투티, 동박새, 가마우지,
박새, 얼룩말, 오리너구리, 도마뱀, 미토콘드리아, 미토콘드리아 이브,
땅강아지, 폴탄먼지벌레, 물방개,
갈색저거리)
3부 - 우리에게 도움을 주는 고마운
기부자들
(옻나무, 청미래덩굴, 두릅나무, 헛개나무, 치자나무,
구상나무, 인동덩굴, 구약나물, 생강, 강황, 머위, 양파, 수박, 야콘, 육계나무)
4부-아름답고 화려한 미의
전령사들
( 금낭화, 애기똥풀, 닭의장풀, 달맞이꽃, 능소화,
꽃무릇, 복수초, 모란, 제비꽃, 망초)
책 제목부터 예사롭지 않으신 교수님의 입담 아니 글담(?)에 짐작은 했으나 1부를 시작하는 첫 동물인 개불의 설명글을 보며
혼자 빵 터졌다.
" 횟집에 가면 좀 거시기한, 통통하고 길쭉한 살색의 동물을 수조나 큰
함지에서 볼 수 있다. 생김새가 '개 불알(음낭)같다' 하여 우스꽝스럽게도
'개불'이라 부른다. 개불 자체는 개 고환처럼 생기지도 않았는데 말이지. 점잖은 조상들께서 발칙하고 민망스러워 남근이라 떳떳하게 못 부르고
익살맞게 개의 불알에 빗대어 이름을 붙였던 것이다."
- 본문 15쪽 인용 - |
횟집에 가면 쫄깃쫄깃한 식감이 좋아서 본격적인 메인 회를 먹기 전에 개불을 초장에 찍어서 꼭꼭 씹어먹곤
했는데......... 직장에서의 회식자리에서도 아무렇지 않게 "개불 맛있죠?"라고 서슴없이 말하곤 했는데......... 개불의 이름에
얽힌 비하인드 스토리를 알고 나니, 이젠 회식자리에서 못 먹겠다 싶다. ㅎㅎㅎ
동.식물을 막론하고 다양한 동물들을 소개하고 있는데, 그 중 헛개나무에 관한 내용을 읽다가 역시나 교수님의 구수한 입담에
읽는내내 입가에 미소가 지어진다.
" 필자는 간에서 돌(담석)이 마구 별똥별처럼 쏟아지는 체질이라
쓸개(담낭)를 떼 내버려 이른바 '쓸개 빠진 놈'이 되고 말았다. 그래서 지금도 담석 녹이는 알약을 먹고, 만날 헛개나무가 든 요구르트를
마신다.
헛개나무는 갈매나뭇과의 잎이 지는 넓은 잎 큰키나무(낙엽 활엽
교목)로 줄기가 10~17미터 정도로 자라는 아주 큰 나무다. '이 나무
밑에서는 술이 맥을 못 추고 썩어 헛것(쓸모없음)이 된다'고 하여 헛개나무라
부른다고 하고......
(중간생략)
간과 쓸개는 바로 위아래로 서로 이웃하는 바람에 '간에 붙었다
쓸개에 붙었다 한다'는 속담도 생겨났다. 그리고 서로 죽이 맞아 속마음을 털어놓고 친하게 사귀는 것을 놓고 간담상조라 한다.
아무렴 쓸개 친구를 잃어버린 내 간은 얼마나 쓸쓸할까."
- 본문 193~196쪽 인용
- |
책을 읽다가 잠시 책을엎어 두고 다른 일을 하고 왔더니 과학에 관심이 많은 큰아이가 아예 자리를 잡고 책을 읽고 있는
것이다. 노란 표지에 귀여운 글씨체의 제목이 씌어있는 책이다 보니 쉽게 열어보게 된 모양이다. 사실 이 책의 내용들은 2009년 4월부터 9년
째 '교수신문'에 격주로 연재된 것들 중에서 발췌한 내용들이라고 한다. 그러나 '글은 누가 뭐라 해도 쉽고, 재미나야 한다'는 교수님의 신념으로
술술 가볍게 읽힐 수 있도록 쓰셨기 때문에 중학생인 큰아이 뿐 아니라, 초등학생인 둘째 녀석이 읽어도 무리가 없을 정도로 쉽고 재미난 책이다.
권오길 교수님의 한 평생 생물학적 지식이 총동원 된 책이라고 해도 될만큼 알차고 유익한 내용들로 가득한 이 책을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등 교육기관이란 교육기관에는 다 진열해두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당장 나부터 우리 아이들 학교 도서관에 기증할까
싶기도 한 걸 보니, 내가 이 책에 흠뻑 빠지긴 빠진 모양이다. 학생들 뿐 아니라 교사, 학부모 모두 꼭 읽으면 좋겠다 싶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