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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로쟈 > 최근에 나온 책들(58)

연말이 가까워지니까 이래저래 못다한 일들이 작당하여 "언제까지 할 건데?"라고 협박을 하기도 하고, 예기치 않은 일들까지 새로이 몰려다니며 "이것도 좀 해보지?"라고 노골적으로 추파를 던지기도 한다. 나는 협박에도 약하고 추파에도 약하다. 그러니 더더욱 진퇴양난이다. 머리가 손가락 수의 절반만이라도 됐으면 싶다(분신술 수련이라도 해야 할까?). 그럼, 능력있는 남편에, 자상한 아빠에, 명민한 학자에, 재능있는 작가에, 얼치기 정부(情夫)까지 5역 정도는 해낼 수 있을 텐데, 사정이 그러하질 못하여 유감스럽다(대략 '얼빠진 30대 가장'이 내 모습이다. 내가 집사람에게 가장 자주 듣는 말 중 하나가 '정신나갔어!'이다). 그저 저녁 먹은 걸 소화시킨다는 이유로 또 책 얘기나 늘어놓는다.

 

 

 

 

가장 먼저 꼽을 책은 한나 아렌트(1906-1975)의 <과거와 미래 사이>(푸른숲)이다(내년이 아렌트 탄생 100주년이 되는 해로군!). '푸른숲 필로소피아'의 13번째 책으로 나온 것인데, 9번째 책이 <칸트 정치철학 강의>였고, 12번째 책이 <정신의 삶> 3부작 중 제1권 '사유'였다. 세 권의 책을 옮김 역자 3인이 소위 '아렌트 3인방'으로 한국에 아렌트 번역/수용을 주도하고 있는 연구자들이다. 이번에 나온 <과거와 미래 사이>는 1968년에 나온 책인데, '정치사상에 관한 여덟 가지 철학연습'이란 부제를 갖고 있고, 당연히 8편의 논문 모음으로 돼 있다. 몇 년전에 아렌트에 심취하여(김선욱 교수의 <정치와 진리>가 계기였던 듯하다. 서평을 쓴 적이 있는데, 그 인연으로 저자와 메일을 교환하기도 했다) 대부분의 주저들과 연구서들을 구했었는데, <과거와 미래 사이>도 거기에 포함된 책이다. 레오 스트라우스의 <정치철학이란 무엇인가>(아카넷, 2002)와 함께 이번 겨울에 읽어볼 짬을 내봐야겠다.

역자인 서유경 교수가 이전에 옮긴 책은 <아렌트와 하이데거>(교보문고, 2000)이다(나는 그 책의 원서까지 제본해서 갖고 있다). 알다시피 1920년대 대학 초년생 아렌트와 젊은 교수 하이데거는 사제지간이면서 그 이상의 연인관계를 잠시 유지했었다. 유부남 교수와의 관계에 대한 부담 때문에 아렌트는 하이데거의 추천에 따라 하이델베르크 대학에 있던 야스퍼스의 지도학생이 되며,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사랑 개념>으로 철학박사학위를 받는다. 유태인이었던 아렌트는 이후 1930년대 히틀러의 박해를 피해 프랑스를 거쳐 미국으로 망명하여 학계와 언론계에서 지적인 명성을 쌓게 된다. 출세작은 '악의 평범성'을 묘파한 <예루살렘의 아이히만>(1963)과 함께 아직 우리말로 번역되지 않은 <전체주의의 기원>(1951). <인간의 조건>(1951)과 <혁명론>(1968)을 비롯한 나머지 주저들은 번역돼 있다.

아렌트의 고유한 용어들의 번역 문제가 제기되기는 하지만, 그녀에 관한 유일한 전기로 알로이스 프린츠의 <한나 아렌트>(여성신문사, 2000)를 참조할 수 있다. 아렌트 자신이 훌륭한 전기적 스케치들을 남기고도 있는데, 그녀의 저작으론 최초로 소개된 듯한 <어두운 시대의 사람들>(문학과지성사, 1983)이 그 전범이다(현재는 절판돼 있는데, 재출간되기를 기대한다. 나는 러시아아어본도 갖고 있다). 얼마전에 나온 손택의 <우울한 열정>(시울)과 견줄 만한 책이다. 사실, 벤야민론에 있어서는 아렌트가 손택의 선배인데, 최초의 영역본 선집 <일루미네이션>을 편집하고 해설격의 서문을 붙인 이가 벤야민과 교우가 있었던 아렌트이다. 그녀의 벤야민론은 <어두운 시대의 사람들>과 <일루미네이션>의 국역본인 <문예비평과 이론>(문예출판사, 1987)에 수록돼 있다(모두 절판된 책들이지만).

 

 

 

  

두번째 책은 이미 지난주에 언론에 소개되었고, 기대만큼의 반응을 불어일으키고 있는 듯한 <대담>(휴머니스트)이다. '인문과학과 자연과학이 만나다'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데, 인문과학이란 제유가 가리키는 이는 영문학 전공의 도정일 교수이고 자연과학이란 제유가 지칭하는 이는 사회생물학 전공의 최재천 교수이다. 자타가 공인하는 간판급 지식인들인데, 연배로는 도정일 교수가 위이지만 두 사람은 (띠)동갑내기이다. 출판사 '휴머니스트'의 기획이 돋보이는 책인데, <대담>은 이승환, 김용석 교수의 대담을 기록한 <서양과 동양이 127일간 e-mail을 주고받다>(2001), 임지현, 사카이 나오키 교수간의 대담을 기록한 <오만과 편견>(2003)에 이은 '물꼬틀기'의 세번째 책이다. 나는 세 책을 모두 진작에 사두게 됐는데, 아마도 이번에 나온 <대담>을 가장 먼저 읽게 될 거 같다. 내용이 나의 관심사와 가장 밀착돼 있기 때문이다.

'늦깎이' 평론가 도정일 교수의 첫평론집 <시인은 숲으로 가지 못한다>(민음사, 1994)가 나온 게 벌써 10년도 더 전이다(도교수는 작고한 평론가 김현보다 한 살 더 많다!). 저자는 그때 이미 수 권의 책들을 조만간 한꺼번에 낼 거란 예고를 한 것으로 기억되는데,  그러한 예고는 <대담>의 머리에서도 다시 읽게 된다. 이번 만큼은 공약(空約)이 아니었으면 싶다. 그만큼 기대를 걸고 있는 독자들이 있다는 걸 염두에 두셔야겠다.

 

 

 

 

이상에서 이미지로 나열한 책들이 번역서들을 제외하고 내가 갖고 있는 최재천 교수의 책들이다. 단독저작으로는 올봄에 나온 <당신의 생을 이모작 하라>(삼성경제연구소, 2005) 정도가 빠진 듯하다. 물론 <개미제국의 발견>을 아직 읽지 않았지만, 이만하면 애독자로서 나무랄 데 없어 보인다. 자연과학 전공자로서 최재천 교수는 발군의 필력을 자랑한다(황소개구리에 관한 글이 중학교 교과서에도 실려 있으니!). 한국의 도킨스라고나 할까?(그는 도킨스의 <이기적인 유전자>를 '나의 고전'으로 꼽기도 했다). 하긴, 애초에 사회생물학의 창시자이자 최교수의 지도교수이기도 했던 에드워드 윌슨에 대한 관심이 연장된 것이다. 사제지간의 끈끈함을 보여주는 번역서들이 또한 아래와 같다(두 사람의 공통 키워드는 '개미'이겠지만).

 

 

 

 

'아는 만큼 사랑하게 된다'는 것이 최재천 교수의 지론이다. 그게 인간관계에도 적용이 될는지는 의문이지만(그쪽이라면, "사람으로 붐비는 앎은 슬픔이니"라는 정현종의 시구에 더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자연과학에서라면 옳은 주장으로 보인다. '통섭' 효과라도 발휘가 돼서 그런 사랑이 인문학적 앎에도 통할 수 있었으면 싶다. 그게 바람이긴 하지만, 내가 아직 더 끌리는 쪽은 정신분석학이 말해주는 진리이다. "알면 사랑하지 않는다!" 왜 있잖은가, 이런 푸념들. "내가 그걸 몰랐던 거지!" "내가 바보였던 거야!" "진정 난 몰랐었네!" 그리하여 신파조의 결론: "이렇게도 사랑이 괴로울 줄 아아알았다면..."

 

 

 

 

한편, 생물학 분야의 책으로  루이키 루카 카발라-스포르차의 <유전자, 사람, 그리고 언어>(지호)와 재출간된 <에덴의 강>(사이언스북스)도 일독할 만하겠다. 예전에 <에덴 밖의 강>(동아출판사, 1985)로 출간됐던 도킨스의 책은 도킨스 입문서로서도 가장 적격인 책이다.   

 

 

 

 

세번째 책은 역시나 기획이 돋보이는 책인데, 60년대 문단에 '감수성의 혁명'(유종호)를 가져왔던 작가 김승옥을 문학적 생애를 기념/조명하고 있는 책 <르네상스인 김승옥>(앨피)이다. 그와 나란히 나온 책이 (이번에 처음 안 사실인데) "4.19 혁명의 기운이 사그라들기 시작한 1960년 9월 1일부터 1961년 2월 14일까지 167일간, 대학생 김승옥이 서울경제신문에 연재한 네 컷짜리 시사만화" <파고다 영감>을 해설과 함께 보여주고 있는 <혁명과 웃음>(앨피)이다. "만화의 인물, 아이콘, 상징들은 모두 대중적인 표상으로서 당시의 인간과 사회를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고. 

 

 

 

 

해서, 작년에 새롭게 출간된 <김승옥 소설 전집>(문학동네)과 함께 꽂아둘 만한 자리를 서가에 두는 것이 좋겠다. (흔히 4.19세대라 불리는) 한 세대의 문학적 초상과 정신을, 그리고 그 감수성을 거기에 고스란히 모셔두고 음미해보는 것도 독자의 권리이자 의무일 테니까.

 

 

 

 

네번째 책은 "라틴아메리카 문학의 거장 마누엘 푸익이 1973년에 발표한 세 번째 장편소설" <부에노스 아이레스 어페어>(현대문학)이다. 제목은 왕가위의 영화 <해피 투게더>의 원제로 익숙한데, 그게 푸익의 원작이었다는 사실은 이번에 알았다. "내 영화에 가장 많은 영향을 끼친 사람은 바로 마누엘 푸익이다."(왕가위) 설명을 보태면, "반페론주의적 성향과 동성애 관계에서의 남성성의 비하를 문제 삼아 1973년 출간되자마자 판매금지 처분을 받았고, 왕가위 감독의 영화 '해피투게더'의 모티프가 된 책으로 화제가 되었다."

영화 <해피 투게더>(1997)도 한때 동성애 장면이 문제가 되어 수입이 보류되었던 적이 있었다. 대학가 축제때 야외에서 저녁시간에 영화상영되는 걸 본 적도 있는데(화질이 안 좋아서 주제가만 좀 들었다), 지금은 영화의 비디오와 음반도 갖고 있다. 물론 아스토르 피아졸라의 탱고를 접하게 된 것도 이 영화를 통해서였고. 작년엔 이 영화의 메이킹 필름 <부에노스 아이레스 제로 디그리>(2000)를 TV에서 볼 수 있었다. 생일파티를 맞은 장국영의 짓궂은 장난기도 메이킹 필름에는 담겨져 있었는데, 그가 더이상 우리 곁에 남아 있지 않다는 게 아쉽다.  

아무튼 푸익의 <부에노스 아이레스 어페어>는 많은 걸 떠올려주는 소설이다. 그의 작품으론 <조그만 입술>(책세상, 2004)와 <거미 여인의 키스>(민음사, 2000)도 국내에 번역/소개돼 있다. 윌리엄 허트가 주연한 헥터 바벤코의 영화 <거미여인의 키스>도 동성애를 다루고 있는 '정치영화'인 걸 보면, 동성애는 푸익 문학세계의 중요한 코드인가 보다(푸익의 소설들을 모두 번역하고 있는 송병선 교수의 <영화속의 문학읽기>(책이있는마을, 2001)에는 이 영화에 대한 해설이 실려 포함돼 있다).  

끝으로 다섯번째 책은  미국 작가 로버트 쿠버의 <잠자는 미녀>(열림원). 원제는 'Briar Rose'(1996)이다. 소개를 잠시 옮겨보면, "'하이퍼 픽션(Hyper-Fiction)'을 주도하고 있는 미국 소설가 로버트 쿠버의 <잠자는 미녀>가 열림원 '이삭줍기 시리즈'의 열다섯 번째 작품으로 출간되었다. 세간에 익히 알려진 그림 형제의 동화를 '다시쓰기' 한 작품으로, 잠자는 미녀 이야기에 대하여 상상할 수 있는 다양한 버전들을 공주, 왕자, 노파 요정이라는 세 인물의 관점에서 나열한다."

사실 쿠버란 이름은 내게 <하녀 볼기치기>(책세상, 1987)의 작가로 각인돼 있는데, 엘리자베스 라이트의 <무의식의 시학>(인간사랑, 2002)에는 이 작품에 대한 분석이 실려 있기도 하다(좀 어색하게도 <하녀 때리기>로 번역돼 있다). 많은 영감을 주는 작품이어서, 한때 언젠가 책을 쓰면 같은 제목을 달고, '주인과 하녀의 변증법'이란 부제를 붙일 생각을 하기도 했다(제목이 풍기는 인상으론 '헤겔과 페미니즘' 정도를 다뤄주어야 할 텐데, 어느 세월에!).

그런 작가가 지난 5월말에 서울국제문학포럼에 참석차 내한하여 강연한바 있으며 나는 직접 작가의 육성을 들을 기회를 가져보았다. 후줄근한 차림의 쿠버 '교수'(브라운대학에선가 문예창작을 가르친다고)는 기대만큼의 카리스마는 보여주지 못했고, '하이퍼픽션'의 가능성과 전망에 대해서 많은 걸 얘기하고 싶어했지만 나는 그 방면으론 아직 관심을 갖고 있지 않다. 내 취향은 여전히 하녀의 볼기나 치는 것이다.  

참고로 동아일보(5.8)에 실린 김성곤 교수의 기고문을 잠시 발췌해 본다: "쿠버 씨는 집필이 끝나면 미국 로드아일랜드 주 프로비던스에 소재한 명문 브라운대에 나가 창작을 가르친다. 쿠버 씨가 주관하는 ‘케이브(CAVE·최첨단 컴퓨터 영상화 센터)’는 전자시대의 문학을 산출하는 미래 소설의 인큐베이터다. 벽이 대형 스크린으로 돼 있는 가상 현실 랩이다. 그곳에 들어가면 컴퓨터그래픽과 애니메이션, 그리고 전자음악과 3D 가상현실이 뒤섞이면서 문학은 더 이상 종이 위의 고정된 활자가 아니라, 사운드와 동영상으로 이루어진 3차원 멀티미디어 종합예술이 된다."

-“나는 컴퓨터게임과 문학이 전혀 다른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해리 포터’나 ‘반지의 제왕’을 보세요. 컴퓨터게임과 아주 흡사합니다.” 현실과 환상을 뒤섞어 새로운 형태의 문학을 만들어내는 쿠버 씨는 이렇게 말한다. ‘컴퓨터 소설의 대가’이자 ‘게임과 문학을 접목시키는 전자소설의 대부’라고 불리는 쿠버 씨가 73세라는 사실은, 나이를 기준으로 진보와 보수를 가르는 우리를 부끄럽게 한다. 최첨단 작가여서인지 쿠버 씨는 얼굴마저 동안(童顔)이다.

-“서울국제문학포럼에서도 저는 말보다 스크린 이미지로 청중들에게 다가갈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벌집문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각기 다른 구멍을 통해 들어가지만 우리는 결국 인터넷이라는 꿀통에서 만나 서로 정보를 교환하고 교류하며 살고 있는 셈이지요.” 쿠버 씨의 아내 필라 씨는 46년 전 그가 스페인 체류 시 카탈루냐에서 만나 결혼한 여자다. “카탈루냐는 프랑스 쪽에 가깝다는 이유로 스페인에서는 차별받는 지역입니다. 그건 내게 특별한 의미를 갖습니다. 작가란 정신적 망명객과도 같아서 카탈루냐 사람들처럼 늘 소외된 삶을 살게 되니까요.”

-쿠버 씨는 아내 필라 씨에게 이번에 극동여행을 특별한 선물로 제공한다. 그의 대표작 <공개 화형>의 배경 가운데 하나인 한국을 아내에게 보여주기 위해 함께 서울에 올 계획이다. “현대판 마녀재판으로 불리는 매카시즘을 패러디하는 소설 <공개 화형>을 쓰면서 한국전쟁에 대한 연구를 많이 했어요. 그러다가 한국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어 1985년 한국을 방문했지요. 이제는 인터넷 강국이 된 한국을 20년 만에 다시 찾게 되어 감회가 새롭습니다.”

-밤이 오면 쿠버 씨는 집에서 영화를 본다. 그의 소설 <영화 보는 밤>은 바로 문학과 영화를 접목시킨 소설이다. 아예 영화처럼 1부와 2부 사이에 막간 휴식도 있다. 쿠버 씨의 하루는 동화들에 대한 패러디 소설 집필로 끝난다. 최신작 ‘계모’에서는 계모가 등장하는 여러 동화들의 재해석을 통해 여성 문제와 성장을 주제로 다루고 있다. “하나의 고정된 해석에서 벗어나 새로운 시각을 이끌어냄으로써, 동화들을 시대마다 다시 태어나게 하는 거지요.”

-그는 진부한 리얼리즘 소설을 쓰는 작가들을 향해 이렇게 질타한 적이 있다. “차라리 다시 한번 고래 뒤를 추적하거나, 헨리 밀러처럼 유랑의 길을 떠나거나, 아니면 신화나 동화의 세계를 탐색해 보라.” 쿠버 씨는 지금 사이버공간 속에서 문학의 미래를 탐색하고 있다. 그가 추구하고 있는 새로운 형태의 문학은 안개를 뚫고 수면 위로 솟아오르는 흰 고래 ‘모비 딕’처럼 이제 우리 앞에 그 신비스러운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이번에 나온 '동화'는 바로 그런 계열의 책이다. 하지만, 내가 먼저 읽고 싶은 건 <공개 화형>이나 <영화 보는 밤> 같은 작품들이다. 순서상으로도 그렇지 않은가? 한국전쟁과도 무관하지 않은 <공개 화영> 같은 소설이 아직 번역/소개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지? 나태는 나만의 것은 아닌 모양이다...

05. 11. 23-24.

P.S. 일본의 종교학자 나카자와 신이치 교수의 '카이에 소바주' 시리즈(동아시아) 두 권, <대칭성 인류학>과 <신의 발명>이 새로 나왔다. 해서 시리즈는 모두 5권이 되었다(몇 권이 더 나오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사랑과 경제의 로고스>를 사두었지만 아직 읽지 않았기에 뭐라 말할 처지가 못된다. 애독하시는 분들의 리뷰를 기다려볼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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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Ritournelle > * 올해의 출판 트렌드 #1: 2006년 최고의 트렌드와 매혹적 단어들(진행중)

* 오늘 아침 조르지오 아감벤의 두 권의 책{호모 사케르: 주권군력과 벌거벗은 삶} (Stanford University Press, 1998)과 {예외상태} (University of Chicago Press, 2005)과 함께 {한겨레 21}과 국내 모 인터넷 서점이 공동으로 기획한 '2006 올해의 책'이 도착했다. 원래 {한겨레 21}와 국내 모 인터넷 서점이 공동으로 기획하여 {한겨레 21}에 별책으로 실려 나온 것인데 인터넷에 따로 올려진 것이 없어 그 핵심 내용을 요약하여 옮겨 본다. 이를 통해 2006년도의 출판 트렌드를 한 눈에 살펴 볼 수 있을 것 같다. 100페이지가 넘는 분량에다가 여러가지 재미있는 주제들이 담겨져 있어 꽤 유익한 소책자가 되었다.(* 이쯤되면 동문선 같은 출판사는 책 값을 한 만 원 정도 받았을 것이라고 생각하면 정말 감지덕지다. 내년에도 이렇게 독자에게 서비스를 해 준다면 더할 나위가 없을 듯 하다. 인터넷 시대가 돼도 '책'의 겉표지에서 풍겨나오는 삶의 내음을 맡는 것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여간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소책자라고 하지만 분량이 만만치 않기 때문에 모두 세 번에 걸쳐서 내용을 옮겨 본다. 삶에 대한 무게가 점점 더 무거워지는 요즘 나를 구원해 줄수 있는 것은 진정 '책'만 있는 것 같아 씁쓸하면서도 유쾌한 생각이 드는 것은 어찌된 연유인가?  

1. 2006년의 책 트렌드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여성 독자의 힘' : 그녀들이 달라지고 있다.

* 아무래도 이번 기획에 참여한 모 출판사의 도서 선정 위원이 여성이 많아서인지 2006년의 책 트렌드는 한마디로 '여성 독자들의 힘'으로 요약되었다. 여성 선정 위원은 2006년에 특히 '자기 관리' 분야가 하나의 독서 트렌드로 자리를 잡았는데 여기에 여성이 차지하는 역할이 매우 컸다고 보고 있다. 여성관련 책들은 다양한 연령대의 여성들을 타겟으로 삶고 출간된 책들인데 미혼에서부터 엄마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종류의 책들이 출간되었다는 것이 특징적이었다고 한다. 먼저 아래와 같은 책들은 20대 여성들을 타겟으로 삶고 출판사에서 기획된 책들이다. 주로 전문직 여성들과 직장 생활을 하는 여성들을 타겟으로 마케팅을 시도한 책들인 것 같다라는 느낌을 받는다.(*물론 나는 이런 책들을 전혀 읽어 보고 싶은 마음이 없다. '자기 관리'를 전문으로 하는 저서들은 모두 '자본주의'에 적합한 표준형 인간형을 제시하고 그에 맞게 모든 인간들이 맞춰져야 한다라는 어떤 윤리적 명제들을 암묵적/무의식적으로 제시하는데 이 책들도 별반 다를 건 없는 것 같다)

* 다음으로는 엄마를 마케팅 목표로 삼고 출간된 책들은 {아이의 천재성을 키우는 엄마의 힘}(랜덤하우스 코리아), {내 아이의 10년 후를 결정하는 엄마의 힘}(큰솔), {내 아이 운명을 바꾸는 엄마의 힘}(빛과 향기)등이 그것이다. 선정위원도 그렇고 내 생각도 그렇지만 이 책들은 모두 '엄마의 힘'(*여기서 엄마의 힘이란 아이들을 자본주의 사회에서 경쟁력 있는 존재로 키우기 위해 필요한 '힘'이며 그것을 키우기 위해서 요구되는 그런 힘이다. 여자들은 미혼이었을 때에도 자기 자신을 경쟁력 있는 사람으로 포장을 해야 하고 어머니가 되어도 그렇게 해야 한다는 어떤 '강박관념'을 사회로부터 부여받고 그것을 또 '내면화'하는 것 같아 씁쓸하다. 이런 책들이 계속 출간되는 것은 그러하다는 반영 아닐까? )

 

 

 

 

* 마지막으로 제시된 책은 바로 정이현의 {달콤한 나의 도시}라는 소설이다. 이 책은 전형적으로 '여성을 위한 소설'이라고 할 수 있는데, 여성 독자들이 80% 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압도적이다는 것이 그것을 반증한다고 한다. 선정위원들은 이 소설을 양귀자의 98년 소설 {모순}과 대비시킨다. 이 둘의 '사이'(-)에는 여성들이 참 많이도 변했고 그들이 가족을 바라보는 관점도 너무도 많이 변했다는 것이다. 이를 대표하는 책으로 그들은 {아내가 결혼했다}(문이당)이다. 여기서 그들은 이 소설의 주인공은 하나의 '정치범'으로 묘사되는 반면, 2000년에 출간된 {결혼은 미친짓이다}(민음사)의 주인공 연희는 '사기범'으로 묘사된다.





 



2. 2006년을 매혹시킨 단어들

* 선정위원들이 선택한 단어들은 모두 14개이다. 구체적인 내용은 아래와 같이 요약할 수 있다.

1) 과학분야: 과학분야에서는 인간의 의식과 사고를 지배하는 '뇌'에 대한 관심이 집중된 해로 대표적인 저서들로서는 {꿈꾸는 뇌의 비밀}(지식의 숲),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이마고), {화성의 인류학자}(바다출판사),{마인드 해킹}(황금부엉이){마음의 진화}(사이언스북스), {뇌의 문화지도}(작가정신) 등이다. 

 

 

 

2) 논술: 논술시장이 점점 더 커지면서 거의 포화상태에 이른 것이 2006년도의 특징이라고 한다면 이에 관련된 서적들의 출간이 봇물처럼 이어진 것이 사실이다. 이와 관련하여 청소년 논술서적과 성인용 글쓰기 서적들이 동시에 팔리고 있는 것이 현재시점에서의 판도라고 할 수 있는데 선정위원도 동일한 평가를 내렸다. 선정위원들이 제시한 서적들로는 (글 고치기 전략}(다산초당), (글쓰기의 공중부양}(동방미디어), (전략}(들녁)등이 많은 인기를 끌었고, 아울러 대중적 교양수준의 고양시킨 {철학 콘서트}와 같은 책들도 대중의 사랑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아울러 강준만의 논술 및 글쓰기 관련 책도 추천한다.)

 

 

 

 

3) 대안: 교과서의 대안을 제시한다. 올해 또한 하나의 트렌드로 제시될 수 있었던 것이 교육분야에서 대안 교과서가 유행한 것을 선정위원들은 꼽고 있다. 이러한 '대안 교과서'는 구체적인 학년과 교과과정을 제시하면서 독자들을 유혹하고 있는 것이다. 선정위원들은 다음과 같은 저서들이 특히 눈에 크게 띄었다고 제시하고 있다.  

 

 

 

 

 

 

 

4) 路: 길 위의 인생: 요즘에 주목하고 있는 특이점이지만 여행관련 저서들이 많이 늘고 있다는 것도 하나의 트렌드로 제시될 수 있는 듯 하다. 선정위원들은 '책 한권에 담에 담은 유럽'이라는 저서의 진화를 예로 들었고 그밖에 여행뿐만 아니라 이민과 관련된 저서들도 많이 늘었음을 강조한다.(*개인적으로는 쿠바에 관련된 여행 서적들이 많이 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5) 마음: 남 생각 말고 나부터 보듬어줘. 선정위원들은 사회에서 생존하기 위해 자기 개발을 하고 그에 필요한 저서들을 찾는 것과 마찬가지로 개인의 심리에 침전하는 우회로를 마련하고 있었던 것이 특징적으로 나타났다고 평가했다. 이른바 심리학 서적들의 난립이 그것이다. 특히 개인적 수준에서의 행복을 추구하는 방법과 그것을 하나의 '관점'에서 사고하려는 저서들이 많이 나왔던 것이다. 선정위원들은 이 "행복론의 핵심에 다양한 욕망을 버리고 가장 근본적인 것에 집중하라는 메시지(...)와 복잡하고 제어 불가능한 사회의 속도감에 대한 반작용으로서의 개인의 심리를 다스리려는 의지"가 있었다고 본다. 구체적으로 아래와 같은 저서들이 주류를 이루었다(*여기에 개인적으로 {긍정의 힘}도 포함될 수 있을 것 같다).

 

 

 

 

 

6) 벌레: 언젠가 로쟈님이 벌레와 관련된 신간이 출간되었을 때(*정확한 책 제목은 기억이 나질 않는다) 멋진 페이퍼를 올려줬는데 '벌레'가 2006년도의 출판 트렌드 가운데 하나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선정위원들은 "전세계에 사는 많은 생물 중에 가장 큰 무리라는 곤충을 다룬 책들이 우후죽순으로 쏟아져나왔다"라고 말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생각하건데, 곤충 관련 저서들은 사회 생물학이나 혹은 초, 중, 고등학생 조카들이 있는 유저들에게 괜찮지 않을까? 선정 도서에는 빠졌지만 '토마스 아이스너'의 {전략의 귀재들, 곤충}들도 포함되면 좋을 것 같았다.

 

 

 

7) 신경제학: 마치 마뉴엘 카스텔의 {네트워크 사회}에 제시되었던 '신경제'의 시대를 패러디한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선정위원들은 올해 특히 IT관련 분야에서 혁명적 전환을 만들어낸 '구글', '아마존'과 관련된 저서들이 인기를 끌었다고 평가한다. 선정위원들이 말하는 것처럼 나하고도 별로 상관 없는 저서들이라고 보는데, 그들이 말하는 것처럼 사놓고 언젠가 볼 일이 있을까?(*참고로 알라딘에도 '웹 2.0' 관련 저서들은 정말 많다)

 

 

 

8) 안전: 이 키워드를 처음 접했을 때 나는 울리히 벡의 {위험사회}를 떠올렸다. 이거 거의 직업병 수준이다. 하지만 예상은 완전 빗나갔다. 선정위원들은 세계화의 시대를 맞이하여 겪게 되는 경제 불안정의 시대에 효율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하고 있는 저서들이 크게 유행했음을 지적한다. 이른바 제태크의 시대를 창출하고 그것을 하나의 트렌드로 만들어낸 저서들이 그것인데, 가장 대표적인 것으로 {파라니아 이야기}, {블루 오션 전략}등과 같은 류가 되겠다.

 

 

 

 

9) 지영: 내가 볼 때도 2006년에는 두 명의 '지영'이라는 이름을 사용하는 이른바 '스타'(*한 명은 문학계의 스타이고 다른 한 명은 방송계 혹은 연예계의 스타이다)들이 신문지상을 완전 장식한 해이다. '공지영'은 내가 보기에도 작년과 올해에 문학계에 하나의 중요한 화두로 확실히 떠올랐다. 그녀는 작년의 '우행시'로 축약되는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과 올해 {사랑 후에 오는 것들}, {빗방울처럼 나는 혼자였다}등의 메가 히트급 저서들을 출간했다. 특히 {우행시}는 베스트셀러 1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는데, 나는 이것이 대한민국 지성의 좌표를 가늠할수 있다고 본다(*책은 읽어보지 않았지만 영화는 봤기 때문에 하는 이야기인데 결코 높은 점수를 줄 수 있을만한 수준은 아니다. 물론 그렇기때문에 베스트셀러에 올랐는지 모른다. 심오한 철학적 깊이가 있는 저서라면 베스트셀러에 오를 수 없다는 것은 당연한 이치가 아닌가?). 한편 정지영이라는 한 인물은 우리나라 출판 업계와 번역의 공론장에 큰 치명타를 날렸다(*나는 이따위 허접 쓰레기 같은 인간들이 '번역'이라는 공론장을 더럽힌 것에 대해 경멸의 쓴웃음을 짓는다). '마시멜로' 사건이라고 명명할 수 있는 이 사건을 놓고 봤을 때 정지영이라는 여자는 이른바 '명예'와 '인기'라는 마시멜로에 중독된 듯 하다. 번역을 자기가 안 했으니 마시멜로의 달콤한 중독이 가져올 파국적 상황을 예측했을리가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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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Ritournelle > * 마시멜로 유감: 우리에게 있어 번역이란 무엇인가? Part 1

* 마시멜로 유감: 우리에게 있어 번역이란 무엇인가? Part 1 : 스타 마케팅의 문제

 * 마시멜로 이야기로 인해 온 나라가 씨끌벅쩍하다. SBS 출신의 모 아나운서는 작년에 이 책을 자신이 번역했다고 대대적으로 광고하면서 이 책을 홍보했고 출판사는 이를 통해 엄청난 부가 이익을 창출했다. 여기서 우리는 어떤 관계 항들이 만들어낸 '효과'가 지니는 이데올로기적 특성들을 발견해 낸다. 출판사-독자-번역자로 이어지는 관계 만이다. 우리는 이 관계 망에서 창출되는 어떤 효과를 통해 '번역'이라는 개념 자체가 우리에게 던져주는 어떠한 의미 구조들을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이하에서 다음과 같은 두 가지 가설에 의거하여 이 사건을 파악하고자 한다. 크게 1) 스타 마케팅의 문제 2) 한국에서의 번역의 문제가 그것이다.

  - 이번 사건의 핵심은 바로 정지영이라는 아나운서가 자신이 이 책을 실제로 번역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이 책의 원 번역자인양 독자들을 기만한 것에서부터 비롯된다. 물론 여기에서는 출판사와의 뒷거래가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으리라. 공식적으로 정지영 아나운서가 이 책을 통해 벌어들인 액수는 약 8100만원이라고 한다.  이 책의 발간을 통해 자신이 얻는 부가적 이익을 놓고 본다면, 단순히 수치로 환원되지 않는 것이 사실이지만 말이다. 출판사는 정지영이라는 이름을 통해 출판시장에서의 부가이익을 노렸을 것이고 정지영은 아무런 일도 하지 않고 부당이익을 획득한 것이다. 물론 여기에는 평소 자신이 구축한 지적이고 세련된 이미지를 보다 강화시키려는 자신의 강한 욕망이 도사리고 있었겠지만 말이다. 하지만 여기서 우리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원 번역자의 위치이다. 과연 그는 도대체 어떻게 이 상황에서 자기 자신을 이해하고 납득시켜야 하는가? 최대의 피해자는 어찌보면 그/그녀가 아닐까? 아니 오히려 가상으로만 존재하는 원 번역자의 '부재하는 위치'를 대체한 미모의 아나운서 출신 번역자  정지영이 사실은 허구였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느끼는 허탈감으로 기진맥진하고 있는 그 책을 산 독자들 아닐까?

- 사실 어떻게 보면 결과론적인 이야기지만 정지영이 그 바쁜 일정을 모두 소화하면서 그 어렵다는 '번역'(물론 나는 이 책을 읽어보지는 않았기에 그 책의 난해함의 수준이 어느 정도가 되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번역이라는 것이 책의 난해함의 수준의 정도가 문제가 아니라 그것에 임하는 자세리라. 아무리 쉬워보이는 책도 번역자가 진지한 자세로 번역하려 한다면 그 책이 쉽게 번역되지는 않으리라. 그리고 그 때문에 결코 날림 번역이 되지도 않으리라.)을 하는 대단한 능력을 소유했다는 것에 대해 경탄을 금치 못한다. 얼굴도, 몸매도, 돈도, 지적 이미지도 모두 갖춘 능력있는 유부녀가 '번역'까지 한다? 나의 상식으로 이것은 그야말로 스캔들이 아닐 수 없다. 물론 나는 이 사건이 있기 전까지는 그녀가 이 책을 번역했는지 조차도 몰랐으니 할 말은 없지만 말이다. 출판사는 스타마케팅이 가져다주는 달콤한 '마시멜로적 유혹'에 빠져 들었는지 모르겠다. 이 책의 주제이자 교훈이 그러한 "마시멜로적 유혹에서 빠지지 말자"인것 같은데,  그 출판사가 그 유혹에 빠졌으니 말 다한 것 아닌가? 출판사, 정지영, 원 번역자들은 이 마시멜로적 유혹에 달콤하게 빠져 들었던 것이다.

-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정지영이라는 이중 번역자에 관련된 가열찬 논쟁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아직도 불티나게 팔려나가고 있다.(알라딘 Sales Point : 254,940로 경제경영 주간베스트 1위)를 차지하고 있는 사실이 이를 증명한다) 뿐만 아니라, 이 책의 후속작이라고 할 수 있는 {피라니아 이야기} 또한 가파른 상승세를 달리고 있는 사실이다. 나는 이 일련의 사태를 놓고 보면서 우리가 목도하는 현상들이 모두 음모가 아닐까라는 생각도 했다. 물론 내가 지금 이 상황에서 음모이론을 주장하는 것은 아니지만 상황은 너무도 아이러니컬한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더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이 사태가 공식적으로 불거져 나오기 전에 KBS의 모 아나운서에 의해 또 다른 종류의 처세술에 관련된 책이 번역되어져 나왔다는 것이다(나는 그녀가 이 책을 번역했다라는 사실을 내가 주문한 책에 끼워져 있던 전단지를 통해서 알게 되었다. 물론 직감적으로 나는 이 상황을 정지영 사태와 연결시켰다). 충분히 대리번역의 소지가 있을 만한 대목이 아닐까? 물론 이것도 내가 음모이론을 제기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다만 정지영 사태를 목도하면서 내가 노파심에서 하는 말이다. 물론 그녀도 그 어렵다는 번역을 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적 여유가 과연 있을까라는 의문은 여전히 남는다. 다만 그녀에게 바라는 것은 정지영 사태의 어이없음을 되풀이 하지 않았으면 하는 것이다.

 - 자, 이제 이 모든 상황을 간단하게 정리 해 보도록 하자. 출판계가 총체적으로 부진한 현재의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좋은 전략으로 스타 마케팅이 적극 활용된다. 책을 홍보하는데 있어 스타의 이미지를 적극적으로 활용한다는 출판사의 전략은 그렇다치더라도 자신이 번역하지 않는 책을 번역했다고 홍보하는 출판사나 그것을 통해 자신의 인지도를 높이려 하는 정지영의 일련의 작태들은 도저히 이해가 되질 않는다. 물론 우리에게 원 번역자의 애매하고 모호한 위치는 여전히 남지만 말이다. 여기서 가장 큰 피해를 보는 것이 바로 책을 샀던 애꿎은 독자들이다(물론 그 독자들은 정지영 아나운서의 미소와 사인에 혹해서 산 사람들이 꽤 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은 한국사회의 지적 수준이 어느 위치에 있는가를 단적으로 드러내준다. 정말 시쳇말로 쪽팔린 줄 알아야 한다. 아래는 이 사건을 "숫자숭배에 지배당한 우리 사회의 한계"로 파악한 한 대중문화 평론가의 글을 옮겨 논 것이다. 그리고 둘 째와 셋 째의 가설은 시간의 여력이 되는 대로 증명하고자 한다.

* 숫자숭배에 지배당한 위험한 우리 사회

[OSEN=정덕현의 네모난 세상] 정지영 아나운서의 퇴진까지 가져온 밀리언셀러, ‘마시멜로 이야기’는 숫자 놀음에 경도된 우리 사회의 일단을 보여주는 것만 같다. 그것은 출판계에서는 ‘판매부수’로 불리며, 영화에서는 ‘관객수’로, 그리고 TV 드라마에서는 ‘시청률’로 불린다. 그것들은 이름만 다를 뿐 그 역할은 비슷하다. 작품에 권력을 부여하는 것이 숫자들이 맡은 역할이다.

숫자들의 권력은 점점 커져서 언제부턴가 우리네 문화계는 콘텐츠 자체의 질에 승부하기보다는 이 숫자를 얻기 위한 무한경쟁에 들어서 있는 느낌이다.




스테디셀러보다는 베스트셀러를, 두고두고 꺼내보는 명작으로 남기보다는 최단기간에 최대의 관객을 끌어 모은 영화를, 그리고 시청자들과 호흡하는 완성도 높은 드라마보다는 욕을 먹더라도 시청률이 높은 드라마를 추구하고 있다는 얘기다.

‘마시멜로 이야기’가 보여준 숫자놀음의 진수

‘마시멜로 이야기’는 작금의 출판계가 해온 기획 출판의 정점을 보여준다. 책은 작가의 손에서 나오는 것이 분명한데도 불구하고 이 책은 전문번역자가 아닌 아나운서 정지영씨의 얼굴을 달고 세상에 나왔다. 목적은 단 하나. 베스트셀러를 만들려는 것이다. 이러한 출판의 스타마케팅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벌써부터 연예인들은 작가라는 또 다른 명함을 갖는 것에 익숙해져 있었다.

우리가 이름만 들으면 누구나 다 아는 유명 연예인들은 자서전에서부터 여행서, 수필, 어학교재, 요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의 서적들을 냈다. 일찍부터 출판사들은 스타마케팅을 적극 활용하고 있었다는 얘기인데 실제 출판사 얘기를 들어보면 비디오를 갖춘 선물세트의 성격을 띤 서적류에 있어서는 상당한 돈이 오간다고 한다. 그만큼 스타마케팅을 활용한 책에 성공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이러한 스타마케팅을 활용한 책들을 누가 썼는지는 알 수 없으나, 그중 ‘마시멜로 이야기’가 모난 돌이 된 이유가 그 책이 추구했던 베스트셀러에 있었다는 점에서 이 사건은 아이러니하다.

그런데 여기서 생각해봐야 할 것이 이러한 책들이 과연 출판계에 진정으로 도움이 될 것이냐는 점이다. ‘마시멜로 이야기’의 경우 원 번역자는 이 책이 “1만 부나 나갈까 싶었지 이렇게 많이 팔릴지는 생각하지 못했다”며 “내용은 좋지만 밀리언셀러감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이 말은 책 자체의 내용보다 정지영씨의 이미지가 상당한 역할을 했다는 걸 말해준다. 즉 이러한 책들은 스타들의 이미지를 포장한 ‘상품’의 성공이지 콘텐츠 자체로 승부한 ‘서적’의 성공으로 보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대리작가들과 얼굴마담 스타들만 늘어나는 출판계는 당장의 이익을 위해 미래의 독서군을 빼앗는 사태를 예고한다. 이 사건은 정지영씨의 윤리적인 문제보다 더 앞서, 이러한 베스트셀러라는 숫자놀음에 빠져있는 출판계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는 걸 알 필요가 있다.

영화의 관객수와 드라마의 시청률

그런데 이러한 숫자 경도 현상은 출판계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영화에서 관객수로, 드라마에서는 시청률로 대변된다. 작품 자체의 완성도를 차치하고라도 우리는 최고의 수치를 기록했다는 점에서 영화 ‘괴물’과 드라마 ‘주몽’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영화 ‘괴물’은 개봉 그 자체부터 괴물다웠다. 칸느 영화제에서의 호평(수상이 아니다)을 통해 솔솔 불어온 괴물에 대한 기대감은 마치 괴물의 탄생처럼 저 한강 밑바닥에서부터 차츰차츰 커져갔다. 그리고 대낮에 버젓이 등장한 괴물에 대해 일제히 언론들은 호평을 쏟아냈다. 비평가치고 괴물 평 안 해본 사람 없을 정도로(이 영화는 실제로 비평가들의 비평 욕구를 자극하는 구석이 있다) 홍보가 된 이 영화는 기대에 부응하기라도 하듯이 엄청난 속도로 관객몰이를 시작했다. 여기에 언론들은 ‘몇 일 만에 몇 만 돌파!’라는 식의 기사들을 쏟아냈다. 엄청난 정보의 홍수들로 범람하는 인터넷이라는 강물 속에서 뛰쳐나온 ‘괴물’은 일순간 ‘정보의 획일화’를 불러 일으켰다. 이제 어딜 가든 우리는 괴물에 대한 기사들을 보게 되었다. 그 숫자의 압력은 지대한 것이어서 우리를 극장 앞으로 가게 만들었다.

그런데 괴물이 사라진 지금까지 그 혼령은 여전히 인터넷을 떠돈다. 새로운 영화가 등장할 때마다 나오는 ‘○○, 괴물의 흥행 넘을까’류의 글들이다. 이러한 기사들은 괴물의 숫자를 다시 떠올리는 힘을 발휘하는 동시에, 새로 등장할 영화에 대한 기대감을 끄집어낸다. 그런데 엄밀히 생각해보자. 이 기사는 정보일까. 홍보일까. 정보라기보다는 홍보에 가깝다. 물론 ‘타짜’와 같이 19세 이상가 영화로서 500만 관객을 넘은 경우, 그것이 기사로 나왔다면 정보라고 봐야 한다. 그러나 이마저도 홍보로 느껴지는 것은 이러한 대박 영화들에 조명이 집중되는 시각, 소외되고 있는 타 영화들이 너무 많기 때문일 것이다.

영화의 관객수는 TV로 오면 시청률로 변신한다. 드라마 ‘주몽’에 많은 비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상위 40%대를 넘는 시청률을 유지하는 것은 드라마적인 재미 이외에도 시청률의 그 숫자가 한몫을 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 이제 시청률은 권력이 되었다. ‘주몽’에 대한 비판이 어려운 것은 그 40%라는 막연한 시청률이 주는 무게감 때문이다. 이것은 ‘주몽’이외에도 수위의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는 드라마들 모두가 갖고 있는 무언의 압력이다. 시청률이 권력이 된 상황은 ‘욕하면서 보는 드라마’가 탄생할 수 있는 기반이 된다. 무조건 시청률에만 올인하여 결국 시청률은 높으나 완성도는 떨어지는 드라마가 탄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 드라마의 존재기반은 드라마 자체가 아닌 시청률이 되는 셈이다. 따라서 이제는 ‘높은 시청률 = 완성도 높은 드라마’라는 등식은 깨지게 된다.

예술작품은 재미없다는 말은 옛말(?)

과거에 흔히 우리는 ‘예술작품은 재미없다’는 식의 자조적인 얘기를 하곤 했다. 그러나 이 얘기 속에는 예술성과 상업성은 별개라는 의식이 있었다. 또한 이 얘기는 상업적으로 실패하더라도 그것이 예술적으로도 실패는 아니라는 의미도 내포되어 있었다. 그러나 최근의 문화계에서 이러한 얘기는 점점 사라지고 있는 듯 보인다.

영화 ‘괴물’에 대한 관심은 ‘재미있다’는 점에 ‘작품성이 있다’는 두 가지 요소를 함께 자극하는 지점에서 발생한다. 그것은 바로 칸느 영화제라는 작품성의 공간에서 벌어진 ‘재미있다’는 반응이었다. 드라마 ‘주몽’에 대한 관심의 증폭 역시 ‘최초의 고구려사에 대한 접근’이라는 가치와 ‘퓨전사극’이라는 재미가 만나는 지점에 있었다. 물론 ‘마시멜로 이야기’ 역시 여타 연예인과는 다른 정지영 아나운서라는, 무언가 지적인 면모와 미모를 함께 갖춘 인물로 인해 가능했다(요즘 아나운서들의 전성시대는 바로 이 직업이 갖는 양면성에 비롯한 부분이 많다).

그렇다면 이제 예술작품(완성도 높은 작품)도 재미가 있다는 얘기인가. 아쉽게도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그보다는 거꾸로 상업적으로 성공한 작품이 이제는 작품성이라는 부동의 지위까지 얻는 현실을 말하는 것이다. 이것은 좀더 대중과 가까워진 예술이라는 긍정적인 측면으로도 읽을 수 있으나, 그럼에도 이제는 잘 팔리는 작품이 좋은 작품이라 불리는 권력까지 부여한 혐의를 지울 수는 없다. 이로써 진정한 예술작품들은 예술로서도, 상업적으로도 소외 받는 상황이 되기도 한다.

 보다 다양한 콘텐츠를 즐기면 안 되는 것인가

우리는 현재가 다양한 콘텐츠의 시대라는데 이견을 갖지 않는다. 그런데 과연 우리는 그런 다양한 콘텐츠들을 실제로 누리며 살아가고 있는가. 결론적으로 말하면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매일매일 홍수처럼 쏟아져 나오는 정보들은 마치 다양성이 보장된 사회로 가는 징후로 얘기됐으나, 실제 우리의 삶은 그 중 ‘선별된’ 몇 개의 정보를 누리는 정도의 삶을 살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너무 많은 콘텐츠와 정보들은 어떤 식으로든 선별되지 않으면 모두 쓰레기가 된다. 그런데 그 선별과정은 과연 투명한가. 아니 공정한가. 이 정보들을 선별하는 순위 혹은 수치라는 근거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닐까. 이 부분에 우리는 의문을 가져야 한다. 수치는 콘텐츠의 질과는 그다지 상관이 없다는 걸 알아야 한다. 단순한 수치가 아닌, 다양한 작품들에 대한 다양한 의견들이 개진되는 그 속에서 독자들과, 관객들과, 시청자들의 제대로 된 선택이 가능해질 것이다.

/정덕현 대중문화 평론가 mansuri@osen.co.kr 블로그 http://thekian.net/

http://news.media.daum.net/entertain/broadcast/200610/21/poctan/v1443777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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