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로쟈 > 최근에 나온 책들(58)
연말이 가까워지니까 이래저래 못다한 일들이 작당하여 "언제까지 할 건데?"라고 협박을 하기도 하고, 예기치 않은 일들까지 새로이 몰려다니며 "이것도 좀 해보지?"라고 노골적으로 추파를 던지기도 한다. 나는 협박에도 약하고 추파에도 약하다. 그러니 더더욱 진퇴양난이다. 머리가 손가락 수의 절반만이라도 됐으면 싶다(분신술 수련이라도 해야 할까?). 그럼, 능력있는 남편에, 자상한 아빠에, 명민한 학자에, 재능있는 작가에, 얼치기 정부(情夫)까지 5역 정도는 해낼 수 있을 텐데, 사정이 그러하질 못하여 유감스럽다(대략 '얼빠진 30대 가장'이 내 모습이다. 내가 집사람에게 가장 자주 듣는 말 중 하나가 '정신나갔어!'이다). 그저 저녁 먹은 걸 소화시킨다는 이유로 또 책 얘기나 늘어놓는다.
가장 먼저 꼽을 책은 한나 아렌트(1906-1975)의 <과거와 미래 사이>(푸른숲)이다(내년이 아렌트 탄생 100주년이 되는 해로군!). '푸른숲 필로소피아'의 13번째 책으로 나온 것인데, 9번째 책이 <칸트 정치철학 강의>였고, 12번째 책이 <정신의 삶> 3부작 중 제1권 '사유'였다. 세 권의 책을 옮김 역자 3인이 소위 '아렌트 3인방'으로 한국에 아렌트 번역/수용을 주도하고 있는 연구자들이다. 이번에 나온 <과거와 미래 사이>는 1968년에 나온 책인데, '정치사상에 관한 여덟 가지 철학연습'이란 부제를 갖고 있고, 당연히 8편의 논문 모음으로 돼 있다. 몇 년전에 아렌트에 심취하여(김선욱 교수의 <정치와 진리>가 계기였던 듯하다. 서평을 쓴 적이 있는데, 그 인연으로 저자와 메일을 교환하기도 했다) 대부분의 주저들과 연구서들을 구했었는데, <과거와 미래 사이>도 거기에 포함된 책이다. 레오 스트라우스의 <정치철학이란 무엇인가>(아카넷, 2002)와 함께 이번 겨울에 읽어볼 짬을 내봐야겠다.
역자인 서유경 교수가 이전에 옮긴 책은 <아렌트와 하이데거>(교보문고, 2000)이다(나는 그 책의 원서까지 제본해서 갖고 있다). 알다시피 1920년대 대학 초년생 아렌트와 젊은 교수 하이데거는 사제지간이면서 그 이상의 연인관계를 잠시 유지했었다. 유부남 교수와의 관계에 대한 부담 때문에 아렌트는 하이데거의 추천에 따라 하이델베르크 대학에 있던 야스퍼스의 지도학생이 되며,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사랑 개념>으로 철학박사학위를 받는다. 유태인이었던 아렌트는 이후 1930년대 히틀러의 박해를 피해 프랑스를 거쳐 미국으로 망명하여 학계와 언론계에서 지적인 명성을 쌓게 된다. 출세작은 '악의 평범성'을 묘파한 <예루살렘의 아이히만>(1963)과 함께 아직 우리말로 번역되지 않은 <전체주의의 기원>(1951). <인간의 조건>(1951)과 <혁명론>(1968)을 비롯한 나머지 주저들은 번역돼 있다.
아렌트의 고유한 용어들의 번역 문제가 제기되기는 하지만, 그녀에 관한 유일한 전기로 알로이스 프린츠의 <한나 아렌트>(여성신문사, 2000)를 참조할 수 있다. 아렌트 자신이 훌륭한 전기적 스케치들을 남기고도 있는데, 그녀의 저작으론 최초로 소개된 듯한 <어두운 시대의 사람들>(문학과지성사, 1983)이 그 전범이다(현재는 절판돼 있는데, 재출간되기를 기대한다. 나는 러시아아어본도 갖고 있다). 얼마전에 나온 손택의 <우울한 열정>(시울)과 견줄 만한 책이다. 사실, 벤야민론에 있어서는 아렌트가 손택의 선배인데, 최초의 영역본 선집 <일루미네이션>을 편집하고 해설격의 서문을 붙인 이가 벤야민과 교우가 있었던 아렌트이다. 그녀의 벤야민론은 <어두운 시대의 사람들>과 <일루미네이션>의 국역본인 <문예비평과 이론>(문예출판사, 1987)에 수록돼 있다(모두 절판된 책들이지만).
두번째 책은 이미 지난주에 언론에 소개되었고, 기대만큼의 반응을 불어일으키고 있는 듯한 <대담>(휴머니스트)이다. '인문과학과 자연과학이 만나다'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데, 인문과학이란 제유가 가리키는 이는 영문학 전공의 도정일 교수이고 자연과학이란 제유가 지칭하는 이는 사회생물학 전공의 최재천 교수이다. 자타가 공인하는 간판급 지식인들인데, 연배로는 도정일 교수가 위이지만 두 사람은 (띠)동갑내기이다. 출판사 '휴머니스트'의 기획이 돋보이는 책인데, <대담>은 이승환, 김용석 교수의 대담을 기록한 <서양과 동양이 127일간 e-mail을 주고받다>(2001), 임지현, 사카이 나오키 교수간의 대담을 기록한 <오만과 편견>(2003)에 이은 '물꼬틀기'의 세번째 책이다. 나는 세 책을 모두 진작에 사두게 됐는데, 아마도 이번에 나온 <대담>을 가장 먼저 읽게 될 거 같다. 내용이 나의 관심사와 가장 밀착돼 있기 때문이다.
'늦깎이' 평론가 도정일 교수의 첫평론집 <시인은 숲으로 가지 못한다>(민음사, 1994)가 나온 게 벌써 10년도 더 전이다(도교수는 작고한 평론가 김현보다 한 살 더 많다!). 저자는 그때 이미 수 권의 책들을 조만간 한꺼번에 낼 거란 예고를 한 것으로 기억되는데, 그러한 예고는 <대담>의 머리에서도 다시 읽게 된다. 이번 만큼은 공약(空約)이 아니었으면 싶다. 그만큼 기대를 걸고 있는 독자들이 있다는 걸 염두에 두셔야겠다.
이상에서 이미지로 나열한 책들이 번역서들을 제외하고 내가 갖고 있는 최재천 교수의 책들이다. 단독저작으로는 올봄에 나온 <당신의 생을 이모작 하라>(삼성경제연구소, 2005) 정도가 빠진 듯하다. 물론 <개미제국의 발견>을 아직 읽지 않았지만, 이만하면 애독자로서 나무랄 데 없어 보인다. 자연과학 전공자로서 최재천 교수는 발군의 필력을 자랑한다(황소개구리에 관한 글이 중학교 교과서에도 실려 있으니!). 한국의 도킨스라고나 할까?(그는 도킨스의 <이기적인 유전자>를 '나의 고전'으로 꼽기도 했다). 하긴, 애초에 사회생물학의 창시자이자 최교수의 지도교수이기도 했던 에드워드 윌슨에 대한 관심이 연장된 것이다. 사제지간의 끈끈함을 보여주는 번역서들이 또한 아래와 같다(두 사람의 공통 키워드는 '개미'이겠지만).
'아는 만큼 사랑하게 된다'는 것이 최재천 교수의 지론이다. 그게 인간관계에도 적용이 될는지는 의문이지만(그쪽이라면, "사람으로 붐비는 앎은 슬픔이니"라는 정현종의 시구에 더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자연과학에서라면 옳은 주장으로 보인다. '통섭' 효과라도 발휘가 돼서 그런 사랑이 인문학적 앎에도 통할 수 있었으면 싶다. 그게 바람이긴 하지만, 내가 아직 더 끌리는 쪽은 정신분석학이 말해주는 진리이다. "알면 사랑하지 않는다!" 왜 있잖은가, 이런 푸념들. "내가 그걸 몰랐던 거지!" "내가 바보였던 거야!" "진정 난 몰랐었네!" 그리하여 신파조의 결론: "이렇게도 사랑이 괴로울 줄 아아알았다면..."
한편, 생물학 분야의 책으로 루이키 루카 카발라-스포르차의 <유전자, 사람, 그리고 언어>(지호)와 재출간된 <에덴의 강>(사이언스북스)도 일독할 만하겠다. 예전에 <에덴 밖의 강>(동아출판사, 1985)로 출간됐던 도킨스의 책은 도킨스 입문서로서도 가장 적격인 책이다.
세번째 책은 역시나 기획이 돋보이는 책인데, 60년대 문단에 '감수성의 혁명'(유종호)를 가져왔던 작가 김승옥을 문학적 생애를 기념/조명하고 있는 책 <르네상스인 김승옥>(앨피)이다. 그와 나란히 나온 책이 (이번에 처음 안 사실인데) "4.19 혁명의 기운이 사그라들기 시작한 1960년 9월 1일부터 1961년 2월 14일까지 167일간, 대학생 김승옥이 서울경제신문에 연재한 네 컷짜리 시사만화" <파고다 영감>을 해설과 함께 보여주고 있는 <혁명과 웃음>(앨피)이다. "만화의 인물, 아이콘, 상징들은 모두 대중적인 표상으로서 당시의 인간과 사회를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고.
해서, 작년에 새롭게 출간된 <김승옥 소설 전집>(문학동네)과 함께 꽂아둘 만한 자리를 서가에 두는 것이 좋겠다. (흔히 4.19세대라 불리는) 한 세대의 문학적 초상과 정신을, 그리고 그 감수성을 거기에 고스란히 모셔두고 음미해보는 것도 독자의 권리이자 의무일 테니까.
네번째 책은 "라틴아메리카 문학의 거장 마누엘 푸익이 1973년에 발표한 세 번째 장편소설" <부에노스 아이레스 어페어>(현대문학)이다. 제목은 왕가위의 영화 <해피 투게더>의 원제로 익숙한데, 그게 푸익의 원작이었다는 사실은 이번에 알았다. "내 영화에 가장 많은 영향을 끼친 사람은 바로 마누엘 푸익이다."(왕가위) 설명을 보태면, "반페론주의적 성향과 동성애 관계에서의 남성성의 비하를 문제 삼아 1973년 출간되자마자 판매금지 처분을 받았고, 왕가위 감독의 영화 '해피투게더'의 모티프가 된 책으로 화제가 되었다."
영화 <해피 투게더>(1997)도 한때 동성애 장면이 문제가 되어 수입이 보류되었던 적이 있었다. 대학가 축제때 야외에서 저녁시간에 영화상영되는 걸 본 적도 있는데(화질이 안 좋아서 주제가만 좀 들었다), 지금은 영화의 비디오와 음반도 갖고 있다. 물론 아스토르 피아졸라의 탱고를 접하게 된 것도 이 영화를 통해서였고. 작년엔 이 영화의 메이킹 필름 <부에노스 아이레스 제로 디그리>(2000)를 TV에서 볼 수 있었다. 생일파티를 맞은 장국영의 짓궂은 장난기도 메이킹 필름에는 담겨져 있었는데, 그가 더이상 우리 곁에 남아 있지 않다는 게 아쉽다.
아무튼 푸익의 <부에노스 아이레스 어페어>는 많은 걸 떠올려주는 소설이다. 그의 작품으론 <조그만 입술>(책세상, 2004)와 <거미 여인의 키스>(민음사, 2000)도 국내에 번역/소개돼 있다. 윌리엄 허트가 주연한 헥터 바벤코의 영화 <거미여인의 키스>도 동성애를 다루고 있는 '정치영화'인 걸 보면, 동성애는 푸익 문학세계의 중요한 코드인가 보다(푸익의 소설들을 모두 번역하고 있는 송병선 교수의 <영화속의 문학읽기>(책이있는마을, 2001)에는 이 영화에 대한 해설이 실려 포함돼 있다).
끝으로 다섯번째 책은 미국 작가 로버트 쿠버의 <잠자는 미녀>(열림원). 원제는 'Briar Rose'(1996)이다. 소개를 잠시 옮겨보면, "'하이퍼 픽션(Hyper-Fiction)'을 주도하고 있는 미국 소설가 로버트 쿠버의 <잠자는 미녀>가 열림원 '이삭줍기 시리즈'의 열다섯 번째 작품으로 출간되었다. 세간에 익히 알려진 그림 형제의 동화를 '다시쓰기' 한 작품으로, 잠자는 미녀 이야기에 대하여 상상할 수 있는 다양한 버전들을 공주, 왕자, 노파 요정이라는 세 인물의 관점에서 나열한다."
사실 쿠버란 이름은 내게 <하녀 볼기치기>(책세상, 1987)의 작가로 각인돼 있는데, 엘리자베스 라이트의 <무의식의 시학>(인간사랑, 2002)에는 이 작품에 대한 분석이 실려 있기도 하다(좀 어색하게도 <하녀 때리기>로 번역돼 있다). 많은 영감을 주는 작품이어서, 한때 언젠가 책을 쓰면 같은 제목을 달고, '주인과 하녀의 변증법'이란 부제를 붙일 생각을 하기도 했다(제목이 풍기는 인상으론 '헤겔과 페미니즘' 정도를 다뤄주어야 할 텐데, 어느 세월에!).
그런 작가가 지난 5월말에 서울국제문학포럼에 참석차 내한하여 강연한바 있으며 나는 직접 작가의 육성을 들을 기회를 가져보았다. 후줄근한 차림의 쿠버 '교수'(브라운대학에선가 문예창작을 가르친다고)는 기대만큼의 카리스마는 보여주지 못했고, '하이퍼픽션'의 가능성과 전망에 대해서 많은 걸 얘기하고 싶어했지만 나는 그 방면으론 아직 관심을 갖고 있지 않다. 내 취향은 여전히 하녀의 볼기나 치는 것이다.
참고로 동아일보(5.8)에 실린 김성곤 교수의 기고문을 잠시 발췌해 본다: "쿠버 씨는 집필이 끝나면 미국 로드아일랜드 주 프로비던스에 소재한 명문 브라운대에 나가 창작을 가르친다. 쿠버 씨가 주관하는 ‘케이브(CAVE·최첨단 컴퓨터 영상화 센터)’는 전자시대의 문학을 산출하는 미래 소설의 인큐베이터다. 벽이 대형 스크린으로 돼 있는 가상 현실 랩이다. 그곳에 들어가면 컴퓨터그래픽과 애니메이션, 그리고 전자음악과 3D 가상현실이 뒤섞이면서 문학은 더 이상 종이 위의 고정된 활자가 아니라, 사운드와 동영상으로 이루어진 3차원 멀티미디어 종합예술이 된다."
-“나는 컴퓨터게임과 문학이 전혀 다른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해리 포터’나 ‘반지의 제왕’을 보세요. 컴퓨터게임과 아주 흡사합니다.” 현실과 환상을 뒤섞어 새로운 형태의 문학을 만들어내는 쿠버 씨는 이렇게 말한다. ‘컴퓨터 소설의 대가’이자 ‘게임과 문학을 접목시키는 전자소설의 대부’라고 불리는 쿠버 씨가 73세라는 사실은, 나이를 기준으로 진보와 보수를 가르는 우리를 부끄럽게 한다. 최첨단 작가여서인지 쿠버 씨는 얼굴마저 동안(童顔)이다.
-“서울국제문학포럼에서도 저는 말보다 스크린 이미지로 청중들에게 다가갈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벌집문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각기 다른 구멍을 통해 들어가지만 우리는 결국 인터넷이라는 꿀통에서 만나 서로 정보를 교환하고 교류하며 살고 있는 셈이지요.” 쿠버 씨의 아내 필라 씨는 46년 전 그가 스페인 체류 시 카탈루냐에서 만나 결혼한 여자다. “카탈루냐는 프랑스 쪽에 가깝다는 이유로 스페인에서는 차별받는 지역입니다. 그건 내게 특별한 의미를 갖습니다. 작가란 정신적 망명객과도 같아서 카탈루냐 사람들처럼 늘 소외된 삶을 살게 되니까요.”
-쿠버 씨는 아내 필라 씨에게 이번에 극동여행을 특별한 선물로 제공한다. 그의 대표작 <공개 화형>의 배경 가운데 하나인 한국을 아내에게 보여주기 위해 함께 서울에 올 계획이다. “현대판 마녀재판으로 불리는 매카시즘을 패러디하는 소설 <공개 화형>을 쓰면서 한국전쟁에 대한 연구를 많이 했어요. 그러다가 한국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어 1985년 한국을 방문했지요. 이제는 인터넷 강국이 된 한국을 20년 만에 다시 찾게 되어 감회가 새롭습니다.”
-밤이 오면 쿠버 씨는 집에서 영화를 본다. 그의 소설 <영화 보는 밤>은 바로 문학과 영화를 접목시킨 소설이다. 아예 영화처럼 1부와 2부 사이에 막간 휴식도 있다. 쿠버 씨의 하루는 동화들에 대한 패러디 소설 집필로 끝난다. 최신작 ‘계모’에서는 계모가 등장하는 여러 동화들의 재해석을 통해 여성 문제와 성장을 주제로 다루고 있다. “하나의 고정된 해석에서 벗어나 새로운 시각을 이끌어냄으로써, 동화들을 시대마다 다시 태어나게 하는 거지요.”
-그는 진부한 리얼리즘 소설을 쓰는 작가들을 향해 이렇게 질타한 적이 있다. “차라리 다시 한번 고래 뒤를 추적하거나, 헨리 밀러처럼 유랑의 길을 떠나거나, 아니면 신화나 동화의 세계를 탐색해 보라.” 쿠버 씨는 지금 사이버공간 속에서 문학의 미래를 탐색하고 있다. 그가 추구하고 있는 새로운 형태의 문학은 안개를 뚫고 수면 위로 솟아오르는 흰 고래 ‘모비 딕’처럼 이제 우리 앞에 그 신비스러운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이번에 나온 '동화'는 바로 그런 계열의 책이다. 하지만, 내가 먼저 읽고 싶은 건 <공개 화형>이나 <영화 보는 밤> 같은 작품들이다. 순서상으로도 그렇지 않은가? 한국전쟁과도 무관하지 않은 <공개 화영> 같은 소설이 아직 번역/소개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지? 나태는 나만의 것은 아닌 모양이다...
05. 11. 23-24.
P.S. 일본의 종교학자 나카자와 신이치 교수의 '카이에 소바주' 시리즈(동아시아) 두 권, <대칭성 인류학>과 <신의 발명>이 새로 나왔다. 해서 시리즈는 모두 5권이 되었다(몇 권이 더 나오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사랑과 경제의 로고스>를 사두었지만 아직 읽지 않았기에 뭐라 말할 처지가 못된다. 애독하시는 분들의 리뷰를 기다려볼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