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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아들은 방학입니다.

 

큰 아들은 올해 5학년이고 둘째아들은 올 초등학교에 들어가는 유치원생이니 겨울방학은 겨울방학인 셈입니다.

하지만 저의 집 방학 풍경은 조금 더 남다릅니다.

 

두아들...  어떤 말로 표현해야 할까요?

 몸이 차돌보다 더 더욱 단단하고 체력은 산삼을 삶아 먹었는지 모를 정도로 활동하니 집안은 언제나 전쟁터같고 누가 말 않듣나 내기를 하는 말썽꾸러기, 개구장이라는 말이 너무 어울립니다.

이런 두아들을 챙기고  고생하는 것은 아내 몫입니다. 어찌보면 두 아들보다더 힘이 센 사람은 아내라는 생각도 듭니다. 

허지만 어느 부모나 마찬가지지만 아이들이 건강하게 잘 자라주기만을 바라는 것은 어느 부모에게나 가장 큰 소망이지만 저에게 더욱 중요한 것은 이 한가지입니다.

 

이 겨울 방학에 저는 아들들에게 그저 학교 안가고 노는 것이 아닌 방학이 되도록 도와 주고 있습니다.

방학중 가르쳐주고 싶은 몇가지는

 

공부보다더 저 중요한 것은 인사를 잘하는 것이 첫째입니다.

어른을 뵈면 90도로 정중히 인사를 하고 안녕하세요  하는 라고 말하는 따뜻한 마음씨를 가르치고 싶습니다.

어른에게 예의를 갖추는 좋은 습관을 먼저 가르치고 싶습니다.

저도 잘하지는 못하지만 아들들이 어릴때부터 공부 잘하라고는 말 안했지만 인사잘 하라고 가르쳤습니다.

제가 살아보니까 가장 기본이면서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방학중 더 가르쳐주고 싶은 것은 이것입니다.

요즘 아이들 컴퓨터다 오락이다, 여러 놀이문화에 너무 많이 젖어있습니다.

저는 아이들에게 바둑은 지난봄부터 복지관에 보내어 가르치고 장기는 지난 추석때부터 가르쳤습니다.

지금은 챙피하지만 바둑은 막내인 8살 자리에도 지고 장기는 제가 한수 위지만 질때도 가끔 있을 정도로 잘 둡니다. 어린 아들이라고 우습게 보았다가는 큰일납니다.

 

저의 퇴근후 시간은 아이들과의 장기와 바둑으로 이어집니다.

매일 저희 둘이 하루 몇판씩 두지 , 제가 또 저녁에 두 판씩 둬 주니 실력이 일취월장한다는 것을 느끼기도 하지만 아들들이 너무 재미있어해서 책까지 사와서 공부를 해서인지 참으로 잘 둡니다.

 

가끔 아들들에게 지면 챙피하기도 하지만 흐믓합니다.

녀석들 많이 컸구나  기쁘기도 하지만 세상 안좋은 놀이문화가 아닌 전통놀이를 하니 부모로써 너무 기분이 좋습니다.

 

바둑이 끝나고 장기도 끝나고 두아들에게 책을 읽어 주는 시간에는 너무 행복합니다.

어린이 명작동화나 전래동화를 재밌게 흉내내어 읽어 주면 어느새 잠드는 아이들...

잠든 두 아들을 보노라면 이제상 모든 행복이 제 행복인 것 같습니다.

정말 힘들다는 요즘 . 서민경제,, 저라고 피 해갈 수는 없지만, 정치적으로도 말도 많고 어느 기업에서의 노사문제, 살을 에는 듯 힘든 요즘이지만 저는 그저 제자리에서  제 할일을 해나가고 싶습니다.

 

아툼베게를 껴안고 새근새근 숨소리를 내면서 귀엽게 자는 저 아이들에서 저는 언제 그랬냐는 듯 힘이 불끈 솟습니다.   너희들의 방학이 끝날 때까지 항상 아빠가 지켜주마....



참 요즘 방학때 큰아들과는 아침마다 뒷산에 있는 체육공원에 운동도 하러갑니다...

춥다고 움추리지만 말고 아빠가 아이들에게 해 줄 수 있는 있는 것을 연구 했으면 합니다.

가족은 가장 소중한 저의 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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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이 지난  비가 오는 한 여름의 일이다.

 

집에 일이 있어 오후에 출근하게 되었었는데 7년지기 동생에게서 전화가 왔다.

" 형 어데야...? 

 "어..  여기 집이다. 웬일이냐? "

" 그래 조금만 기다려 금방 갈게... "

10분후 다시 전화가 왔다.

" 형 !  지금 도착했는데 아파트 1층으로 내려와 !  잠깐이면 돼. 

간편한 복장으로 아파트입구에 내려갔다.
" 허... 이상하다 통닭집하는 녀석이 바쁠텐데 어쩐 일이지.. 별일이네  그것도 우리집에... "

녀석은 웃음 띤 얼굴로 나에게 한마디를 던졌다.

" 형!  놀랬수? "   말을 던지면서 몇 바구니 비닐바구니를 건넸다.
자세히 보니  ----- 배추, 얼가리배추,상추며 갖은 야채가 든 큰 비닐바구니를 내미는 것이었다.
" 아니 이게 뭐다냐? "  황당하기도 하고 은근히 기분이 좋아졌다.  이유를 막론하고 공짜가 아닌가?
궁금하고 으아해하는 순간  가까이에 차의 윈도우가 내려지면서 낯익은 분들이 보였답니다.

 동생녀석의 부모님이셨다.

" 어...잘있었남?  오랜만이여 ..."  하시며 전라도 사투리를 구수하게 쓰시며한손엔 시골서 빻아온 고추가루 라면서 큰봉다리에 한자루,다른손엔 오시면서 김치를 담구으셧다면서 김치를 한 무더기를 또 주셨다.
순간 어이가 없으면서 너무 감사하기도 했지만  감짝 놀랬다.
세상에 전북 무주에서 안양까지는 얼마나 먼거리인데 어떻게 이리도 많이도 가져오셨담.
어찌나 감사하던지 무슨 복권에 당첨된 기분도 들고 코끝이 시큰해지는 감동이 일었다.
" 어 ...  여기 안양 아들네 오는데 자네 생각이나서 가져왔네.. 그냥 올 수가 있나. "
하시는데 나는 할말을 잊을 수가 없었다... 
" 아이고 자식들도 네 분이나 계시는 분이 피 하나 안 섞인  이 사람을 이렇게 생각해 주시다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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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해 여름 휴가 때였다.

두 분을 처음 뵌건 5년전 음료회사를 같이 다니던 설씨성을 가진 회사 동생과 워낙 친하고 막역하게 지내던터라 " 형!  이번  휴가때에는 꼭 우리집 무주에 한번 꼭 오슈" 했다. 

고향이 진안인지라 고향 들른후 그 곳 무주에 가게 되었다. 같은 무진장 골짜기지만 은근히 멀다.  용담댐을 경유하면서 유람하듯이 가게 되었다.
톨게이트에서 부터 동생녀석 형제들이 마중나와 주는데 귀빈대접이 따로 없다.

 

동생 녀석 집에 도착하니 참으로 인상좋고 허물없이 대해주시던 두분.
내집에 온 것 마냥 편안하게  대해주시고 그저 내집이려니 편안하게 지내고 놀다가 가시게나  하시는 두분 부모님께 부담이 전혀 들지가 아니하고 정말 내 집처럼 편하게 대해 졌다.

어머님이 차려주시는 시골음식을 너무 맛있게 먹었다.
마당건너 편에는 소가 풀을 뜯고 있고 저멀리 강이 보이는 곳으로 고기 잡고 물놀이 할 것을 약속하면서 마지막 남은 숭늉 한대접까지 남기지않고 먹게 하신다.

" 형! 이곳이  너무 시골인지라  일급수만 산다는 쏘가리도 잡고 꺽지며 여러고기도 잡아봅시다...! "큰소리치는 동생을 따라 낚시대며 여러 채비를 하고 강을 ( 냇가가 하면 작다.) 건넜다.

아내와 두 아들은 무더위에 지쳤다.

아내도 두 아들도 더워 죽겠는데 무슨 고기를 잡느냐... 이 땡볕에 있느니 집에 가자고 성화다.
낮은 냇가 돌들로 자리를 만들어 주고 조금만 참아라 하고 물을 끼엊어 주었다.
내가 이러고 있는 동안 동생형제들은 난리가 났다.
여기는 쏘가리네...   여기는 꺽지네 하면서 고기 잡았다고 난리가 났다.
아닌게 아니라 손바닥 만한 고기들을 금새 몇마리 잡아냈다.

아내와 아이들이 신기한듯이 연신
"우아 ! 와 !   고기다.... "
잠시후 신난 것은 웨려 나였다.
동생의 낚시대를 빼앗아 직접 닐 낚시대를 힘껏 던지니 묵직하기도, 작은 울림의 느낌도 몇번의 손맛을 보는데 신이 나버렸다.

아빠가 고기를 잘 잡은이 아이들도 신났다.

동생의 남동생이 작은 칼을 꺼내어서 능숙한 솜씨로 쏘가리 회를 썰고 있다.
동생과 나는 초고추장과 소주한병을 준비했다.

돌위에 가지런히 놓인 쏘가리들은 내가 그리 많이 보던 횟집에서와 달리 너무도 멋지고 군침이 도는 모습이었다.  레이디퍼스트   아내에게 먼저 쏘가리 회 한점과 소주한잔을 건넸다.
아까까지 무더위와 제대로 앉을 자리도 없다고 투정을 부리던 아내였다.
소주한잔을 독하다고 마시고 쏘가리 회를 먹고난 아내의 웃음띤 그 미소와 맛있다 !   를 연발하는 그 모습에서
무안한 행복을 느꼈다.
내가 먹어도 진짜로 맛있다.  세상에 이런 맛이 존재하다니....   독한 소주가 단맛이 나 버린다.

초고추장을 듬뿍 묻혀서 인가...    주거니 받거니 잔을 돌리는 그 순간에 어느덧 저녁노을이 드리운다.
찾아온 피로도 다 풀리고 강가에 물을 담군 발은 시원도 하구나...
세상 시름 다 잊은 듯하다...  풀벌레소리가 나기 시작하고 어두움이 깊어 갈때즘 강건너를 작은 배를 타고 건너는 행운도 치뤘다.  동생후배라는 사람이 대수리 ( 고동, 소라라고도 한다.)를 전문적으로 저녁에 잡는 일을 직업으로 여름에만 한다고 한다.

경운기의 엔진으로 배를 제작한 배는 모터소리를 내면서 잘도 간다.
한없이 행복한 기운이 감돈다....

저녁엔 귀한 손님왔다고  몇일전에 그물로 잡은 자라로 끓인 용봉탕과 멍멍탕도 같이 주신다.
역시 음식은 전라도 음식이다.
얼큰하면서도 간이 잘 뵌 깜끔한 음식들...  같이 어울린 갖은 야채와 향토음식들...
마당에는 모기들을 쫒으시려는지 피오놓은 쑥대잎이 연기를 내면서 타오른다.
달이 떠올랐다...   둥근 달은 우리 가족들을 보면서 웃는 듯 하다.
저 멀리 개소리며, 새소리, 풀벌레소리들이 너무도 정겹다.
이 모든 것이 다 정겹지만 가장 정겨운 것은 동생녀석의 부모님이시다.생면부지의 사람들에게 이렇듯 쏫는 이 정겨움말이다.
밤이 깊어가고 소주에서 시원한 맥주로 술잔을 이어갔지만 술은 전혀 취하지를 않는다.
냉동실에서 내오셨다는 수박한입을 먹어 보니 얼음덩어리같구나...
작은 아들은 엄마품에서 언제 잠들어 있는지 색색거리면서 꿈나라를 향하고 있다.
한가지 소망이 들었다...

 

 "  시간이 이대로 멈추어 버렸으면.......  " 

 이튿날 직접 재배하셨노라하시며 수박이며 고추며 상추 여러 야채들을 차에 실어주시는 데 얼마나 감사하던지.....차가 멀어지는데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을 흔들어 주시던 두 분.....

" 아!  낳아주신 부모님만  부모님이 아니구나.............! "

 

안양에 도착 후 나는 가전제품 가게에 들러 선풍기를 하나 산후 바로 무주로 보내드렸다.
두 분이 계시는 시골은 너무 더워 선풍기 하나만 더 있으면 좋으련만 ...하시는 소리를 제가 들었엇다..  보내드리는데 얼마나 기분이 좋고 흐뭇하고 시원하던지...
그 후로도 1년에 한 두번 오시면 꼭 인사드리고 자주는 아니지만 갈비집에 모시고가서 고기도 대접 해드리고 식사도 대접해드리면 얼마나 기분이 좋던지.......

 너무 감사하다며 인사를 드리는데 드릴께없어 아버님,어머님 차비라도하세요
하며 3만원을 드리는데 참으로 부끄러웠습니다.
한사코 안 받으시겠다는 두분께 정말 잘먹겟습니다.  하고 부끄러운 손을 내밀면서   차가 저 멀어질 때까지 서있을 수 밖에 없었다.
" 사람사는 정이라는 게 이런 것이구나....  "
이 글을 다 써내려간 지금 창밖에는 찬바람을 동반한 눈이 내리고 있다.
지금 이순간 왜이리 그해 여름 그 햇살과 바람이 많이도 그리워지는 것일까?

가장 중요한 것은 진심어린 마음이다.

진심어린 마음이란 상대를 배려하는 따뜻한 마음에서 나오는 내면의 아름다움이다.
배려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은 상대에게 많은 것을 요구하지 않기에 마음의 상처를 받지 않는다.
내 자신에게 가장 하고픈 말은 한가지이다.
내게 해가 되는 몇몇사람을 제외하고 항상 정으로써 상대를 배려하고 긍정적으로 대하기로 하자.
하지만 내 자신에게는 엄격한 사람이 되도록하자.
따뜻하고 여린 마음을 간직하돼 또 다른 내면은 미래를 위하여 일정 부분은 인내하기로 하자.
비록 지금은 고통이 따르더라고 조금만 더 참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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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는 두 아들이 있다.




정말 내 아들이지만 멋지고 잘 생긴 아들들이다.




나의 분신인 셈이다.  낳아준 나의 아내에게 진심으로 감사한다.




첫째 아들은 내가 군대를 제대한지 몇 달후 가진 아들이다.

너무도 어려운 시절이었고 뭐하나 가진 것 없는 천둥벌거숭이 같은 삶을 살았던 시절에 가진 아들이었다. 군대를 제대하면 정말 무엇이든지 할 수가 있을 것만 같았고 자신이 있었지만 현실은 그리 녹녹치 않았던 힘든 삶에서 24살에 가진 아들이었다.




아내를 마중 나간 대방역 산부인과에서 검사를 하였는데 임신이 틀림없다는 것이다.




정말 솔직한 심정으로 너무나 두렵고 세상에 대하여 이루어 놓은 것이 없기에 많은 생각을 하였다.  아내는 어차피 가진 아이니 낳자고 하엿다.  준비가 덜 된 나는 조금만 시간을 갛자고 하였다.  하지만 그때 낳기로 한 결정이 나에게 세상에서 가장 큰 기쁨이고 잘 한 선택이라는 것을 나는 지금도 감사히 생각한다.




많은 방황고 힘겨움 끝에 일번가 신형순병원에서 3.5킬로그램으로 탄생한 나의 아들.

힘 딱 두 번 주고 태어난 멋진 아들. 간호사가 안고 나오는데 세상에 나하고 똑같이 생긴 녀석이 나오는 것이었다. 1996년 1월10일 나에게는 정말 소중한 날 인 것이다.

아내는 쿨 쿨 잘 자고 있고 나는 밤새 몇 십번을 깼는지 모르는 밤이다.




나하고 똑같이 생긴 녀석.  하지만 성격은 나하고 아내하고 반반을 닮은 듯 하다.

어려서부터  한 고집 하더니 매일 놀이터에서 하루내 살았다.

칠성 아저씨들만 보면 인사해서 용돈받고 녀석 정말 힘들이지 않고 키운 듯 하다.

없는 살림이지만 칠성에서 열심히 일한 시간이지만 나에게 아들은 듬직한 녀석이었다.




아들이라는 존재가 나의 분신이라는 존재가 그렀더라.

내가 삶을 떠나면 증거가 되기도 하지만 아들은 또다른 나이기에 언제나 웃음 을 지울 수 있다는 것이지.

나는 아들에게 정말 바라는 것이 없다. 단지 건강하고 어른들에게 인사를 잘하는 사람으로 예의 바른 사람으로만 살아주기를 바랄뿐이다.

아버지는 그런 존재다. 언제나 고기를 잡아 줄 수는 없다.

너희들에게 고기잡는 방법을 알려줄 뿐이다.

언제까지나  이세상을 잘 살아가는 힘을 길러주는 그런 존재말이다.

세상은 때론 힘들고 지칠때가 많은 법이다. 그런 세상에서 현명하게 잘 살 수 잇도록 아버지가 그런 길을 안내하고 깊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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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고교생활이 거의 끝나고 이제 취업이라는 사회속으로 나가기 위한 몇일이 얼마 안남은 시즘에 어쩌면 조금은 아쉬운 마음과 어쩌면 이 날을 기다렸다. 이제 진정한 어른이 된다는 그 마음에 더욱 좋았을 것이다.




몇친구 녀석이 완주 시골의 저수지에서 텐트를 치고 놀고 있다고 시간되면 오라고 연락이 되었다. 얼마나 좋았겠는가? 이제 사회인으로 가는 마지막길에 청춘을 불사르라고 시간이 마지막으로 주어진 느낌이었다.

이리에서 전주까지 버스에 몸을 실고 내 달렸다. 전주에서 완주까지 가는 골자기 시골길을 지나니 큰 저수지가 나왔다.




나와 2명이 갔는데 개개인의 손에는 먹고 죽자는 건지 소주 댓병( 당시 유리로 된 소주대병)에 안주 맥주 많이도 사왔다.

친구들을 아무리 찿아도 보이지 않는다. 텐트가 있었던 흔적까지 찿았으나 아무리 살펴보아도 없다. 무언가 오차가 있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 이렇듯 없을 수가 있다는 것인가.

저녁노을이 넘어가는 그 저수지에서 어둠을 벗 삼아서 그렇게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깊어가는 밤과 취하는 술들...    하여름이지만 어딘가에서 자고 가야만한다.

한 녀석을 고주망태가 되어버려  여기저기로 쳐벅힌다.    미친놈 다 보겠네   하는 표현을 받앗다.  정말 미친놈들이지  밤 열두시가 넘어서 부량한 얼굴로 잠을 재워달라니  어디 그것이 가당키나 하겠는가.




여름 날씨지만 쾌 쌀쌀해지네...




더 몇군데 가보니 다른집으로 가보시오  하는 말들 뿐이다.

그래 마지막으로 한번만 더 가보자...




하여 간집에서 할머니가 나온신다.   이어서 할아버지가 나오시어  사정 말씀을 드렸다.     선뜻 누추하지만 사랑방이 있으니 자고 가라고 하신다.

대나무 돗자리가 깔린 그 방에서 피곤과 술에 찌들려 나는 잠이 들었다. 




아침에 눈을 떠보니 간밤의 술들을 얼마나 많이 마셨음을 알고 있었다.

속이 쓰리고 어질어질한데 입구 문이 열리면서 할머니가 들어오신다.

양손으로 양은 상에 음식들을 가득차려 오시는 것을 거들어서 내려 놓는다.

“젊은 사람들이 웬 술들을 그리 많이 마신 게야..”

어서 식사들 해야제  속 버린당게..

간밤에는 자네들이 막내 아들같아서 남같지가 않아서 재워 준거야.

우리막내도 서울로 일하러 같거든 ...  막내보다더 더 어려보이는 군...




밥상을 보니 상추, 고추에 갖은 반찬들.  시골의 냄새가 물씬 하구나.

국도 우리 술 마신걸 아시고 콩나물국이시네..

결정적으로 할머니가 하시는 말씀 ....

술은 술로 풀어야제.   자  한잔씩들 해야지.

사홉들이 한병을 꺼내시더니 양은 그릇에 반잔씩 따라 주신다.

지금은 사홉들이가 안 나오니까 기본지금 소주가 이홉들이 한병이니까.

두병인 것이다.   할머니가 손수 다 따라주시면서 자 어서들 먹자고 ...

간밤에 그렇게 먹고 또 술이라..

빈속으로 들어가는 짜릿한 그 느낌의 술을 두 번에 나누어서 쭉 들이켰다.

콩나물국물을 떠 먹고 고추를 찍어 먹으니 입맛이 절로 난다.




우리 영감은 새벽에 밥에 나가셨거든.   영감과 이렇게 가끔 한 잔 씩하면 이게 술이 아니고 약이라니까..  그래서 약주라고 하나봐..

언제든 또 놀러오라고 .    다음에는 그리들 술들 많이 마시지말고...




정말 감동의 마음이 일었다.

이런 분이 세상에 또 계실까.




식사를 그렇게 맛있게 해 주시고 우리가는 걸음에 차 타는 곳까지 보시면서 차비하라고 5000원 까지 주셨다.

정말 평생에 잊을 수 없는 분.

연락처나 위치를 안 알아둔 둔것이 지금도 후회스럽다.




전주에 도착하여 이리로가는 차를 기다리는데 참 속에서는 편안하다.

그 이후로 내가 과음한 다음날도 소주 한 병 이상을 가볍게 마시나보다.




술은 술로 풀어야 한다는 그 할머님. 

정말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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